오스틴의 가을 오만과 편견이 봄날의 하루였다면 설득은 가을의 애상이다. 쉽게 단정하지 않고 거침없이 비판하지 않게 되었다. 젊음을 내준 자리에 자기 성찰의 거울이 서 있었다.
‹피아노를 치는 여인›, 카를 빌헬름 홀쇠에 그림. 19세기
인텔리겐치아 2432, 2015년 2월 3일 발행
이미애가 옮긴 제인 오스틴의 ≪설득≫ 매일매일 돈 쓰는 것이 삼사백을 넘고, 온갖 그녀는 감정을 억누르려고 스스로를 설득하 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지 8년, 거의 8년의 세월이 흐른 것이다. 그 세월의 간극이 아스라한 곳으로 멀리 밀어내 버렸던 감정 의 동요를 이제 다시 느끼기 시작한다면 얼 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가! -«설득(Persuasion)», 제인 오스틴(Jane Austen) 지음, 이미애 옮김, 91쪽
그녀는 누군가? 주인공 앤 엘리엇이다. 고귀한 혈통, 아름다 운 외모, 따뜻한 마음씨를 모두 가졌다. 8년 전에 무슨 일이 있었나? 앤의 나이 19세, 결혼을 약속했던 프레더릭 웬트워스 대령과 헤어졌다. 헤어진 이유는? 허영에 가득 찬 아버지 월터 엘리엇 경은 웬 트워스의 신분이 낮고 가난하다고 결혼을 반대했다. 앤이 믿고 따랐던 대모 레이디 러 셀 또한 둘의 결혼이 서로를 불행하게 만들 것이라며 앤을 설득했다. 결혼을 포기했다.
감정의 동요가 다시 일어난 이유는? 그를 다시 만났기 때문이다. 엘리엇 경은 빚 더미에 앉게 되자 살던 켈린치 홀을 세놓고 바스로 이사한다. 임차인이 웬트워스 대령 의 누나 소피아와 매형 크로프트 제독이었 다. 만남은 어떻게 찾아왔나? 엘리엇 경과 첫째 딸 엘리자베스는 바스로 떠났지만 앤은 동생 메리 머스그로브의 간 청으로 어퍼크로스에 머물게 되었다. 어퍼 크로스는 켈린치에서 3마일밖에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크로프트 부부가 켈린치 홀 에 들어오는 날 머스그로브 식구들은 그들 을 방문했고 두 집안은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때쯤 웬트워스 대령이 켈린치로 왔다. 둘 은 서로를 피하려 했지만 결국 보게 되었다. 대령의 심정은? 그는 이별의 이유를 몰랐다. 여전히 마음의 상처를 안고 있었다. 앤만 아니라면 적당한 여자를 만나 바로 결혼할 생각이었다. 그러 나 그의 마음속에서는 그녀가 떠나지 않았 다. 재회는 축복이 되는가? 둘은 어퍼크로스, 라임, 바스에서 때로 어울 리며 서로에 대한 감정을 확인한다. 앤은 재 산과 신분만 좇는 당대 결혼 관습의 공허함 을 깨닫는다. 진정한 사랑의 길을 걷는다. 둘
은 믿음직한 친구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 한다. 엘리엇 경과 레이디 러셀은 어떤 태도를 취하 는가? 엘리엇 경은 대령의 잘생긴 외모, 대령이라 는 계급에 만족해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레이디 러셀은 과거에 대령을 객관적으로 바 라보지 못했음을 반성하고 둘의 행복을 빌 어 주었다. 이 작품은 오스틴 문학에서 어디쯤 있는가? 그녀가 죽기 2년 전 집필한 마지막 소설이다. 비평가 해럴드 블룸은 “오스틴의 소설 가운 데 가장 완벽한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무엇 때문에 “가장 완벽한 작품”인가? «오만과 편견» 같은 초기 작품이 봄날의 싱그러움을 간직했다면 «설득»은 가을의 애상을 담았다. 작가의 경험이 쌓이면서 여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각이 원숙해졌고 작품 의 분위기가 차분해졌다. 여주인공을 제시 하는 서술 기법도 바뀌었다. 서술 기법이 어떻게 바뀌었나? «오만과 편견»의 엘리자베스 베넷은 쉽게 단정하고 거침없이 비판하며 젊음의 생기발 랄함을 간직한 반면 앤은 젊음의 좌절을 경 험하고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처 럼 자기 성찰적인 인물이다. 앤은 심리적· 경제적·사회적으로 삶의 뿌리를 내리지 못
하고 여러 곳을 전전했지만 여러 집단을 두 루 경험하면서 비판적인 시각을 갖추게 된 다. 오스틴은 어떤 작가인가? 프랭크 리비스는 «위대한 전통»에서 영국 소설의 전통이 제인 오스틴에서 시작한다고 썼다. 당대에 유행하던 고딕 소설과 감상 소 설, 로맨스 등 대중 문학 장르의 기법을 다양 하게 실험하며 리얼리즘에 입각해 정교한 작 품 세계를 창조했다. 어떻게 살다 갔나? 1775년 영국 남부 햄프셔에서 태어났다. 8세 부터 11세까지 학교교육을 받은 뒤 줄곧 집
에서 책을 읽으며 독학했다. 20세에 장편소 설을 쓰기 시작해 1799년까지 «오만과 편 견», «분별력과 감수성», «노생거 사원» 을 완성했다. 1805년 부친이 사망한 뒤 셋집 과 친척집을 전전하다가 1809년 초턴에 있 던 오빠의 집에 정착했다. 초턴에서 생애 마 지막 8년을 보내며 «맨스필드 파크», «에 마», «설득»을 썼다. 평생 독신으로 지내 다 1816년 42세의 나이에 호지킨 림프종으로 사망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미애다. 서울대학교에서 현대 영국 소설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제인 오스틴 의 장편소설을 모두 번역했다.
오스틴의 가을 오만과 편견이 봄날의 하루였다면 설득은 가을의 애상이다. 쉽게 단정하지 않고 거침없이 비판하지 않게 되었다. 젊음을 내준 자리에 자기 성찰의 거울이 서 있었다.
‹피아노를 치는 여인›, 카를 빌헬름 홀쇠에 그림. 19세기
설득 제인 오스틴 지음 이미애 엮음 2008년 12월 18일 출간 사륙판(128 *188) 무선제본, 342쪽, 13,000원
작품 속으로
설득
제 1부
제 1장
서머싯 주(州)에 자리 잡은 켈린치 홀의 주인 월터 엘리엇 경은 다른 책 은 절대 읽지 않아도 준남작 계보*를 펼치기만 하면 흐뭇해하는 사람 이었다. 한가한 시간에는 소일거리 삼아 그 책을 읽었고, 심란한 시간 에는 위안을 얻기 위해 읽었다. 옛 조상들로부터 지금 얼마 남아 있지 않은 후손들**에 이르기까지의 계보를 찬찬히 살펴보고 있노라면 절로 찬탄과 존경심이 일었다. 지난 세기에 숱하게 생겨난 준남작들***의 계 보를 넘기다 보면, 골치 아픈 집안 문제에서 비롯된 불쾌한 기분은 자 연스레 동정심과 경멸로 바뀌었다. 혹시 다른 페이지에서 조금도 위안 을 얻지 못했다면, 자신의 내력이 기록된 페이지는 변함없이 늘 흥미진 진했다. 그 귀중한 책은 언제나 이 페이지에 펼쳐져 있었다.
‘켈린치 홀의 엘리엇’
‘월터 엘리엇, 1760년 3월 1일 출생. 1784년 7월 15일 글로스터 주 소
* 영국의 준남작들을 열거하고 그들의 계보를 설명한 책. 월터 경이 참조한 책은 1808년에 발행 된 데브렛의 ≪영국 준남작 계보≫였을 것이다.
** 월터 경은 17세기부터 이어져 내려오던 가문들이 사라져가는 것을 유감스러워하고 있다. 제임스 1세는 1611년에 처음으로 준남작 작위를 만들었고, 준남작들에게서 받은 재정적 지원을 북부 아일랜드의 군대 자금으로 사용했다.
*** 낮은 신분 태생으로 작위를 받은 사람들에 대한 월터 경의 경멸 대상엔 시골 목사의 아들 이었던 넬슨 제독도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
17 제 부
재 사우스 파크의 제임스 스티븐슨 향사*의 딸 엘리자베스와 결혼. 레이디(1800년 사망)에게서 자손을 얻음. 엘리자베스, 1785년 6월 1 일 출생. 앤, 1787년 8월 9일 출생. 아들 사산, 1789년 11월 5일. 메리, 1791년 11월 20일 출생.’
원래 인쇄공이 책에 직접 박아놓은 내용에는 정확히 이렇게 쓰여 있었다. 하지만 월터 경은 자신과 가족들이 참조할 수 있도록 메리의 출생일 뒤에 이렇게 덧붙여 써넣었다. ‘서머싯 주 어퍼크로스의 찰스 머 스그로브 향사의 아들이자 후계자 찰스와 1810년 11월 16일 결혼.’ 그 밑에는 유서 깊고 훌륭한 그 가문의 역사와 융성이 흔히 쓰이는 말로 기술되어 있었다. 처음에 그 가문은 체셔에 정착했고, 덕데일**의 저서에 언급된 적이 있으며, 주지사 직책을 수행했고, 그 지역을 대표 하여 연이어 세 번이나 의회에 진출했으며, 충성심을 발휘했고, 온갖 메리들, 엘리자베스들과 결혼했으며, 찰스 2세가 즉위한 첫해에 준남 작 작위를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그 기록은 모두 다 해서 멋진 4절판
* 향사(esquire, squire): 시골의 대지주. 귀족은 아니고, 후작사(knight)보다 아래, 신사 (gentleman)보다는 위인 계층으로, 넓게 보아 젠트리(신사 계층)에 포함됨. 젠트리는 토지나 다 른 재산을 상속받거나 혹은 다른 수입이 있어서 일을 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들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말.
** 윌리엄 덕데일 경(1605∼1686): 영국의 고문서 연구가로 ≪영국 남작 명부≫(1675∼1676) 를 저술했다.
*** 엘리엇 가문이 스튜어트 가의 왕정복고와 더불어 충성심에 대한 보상으로 작위를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찰스 2세는 1660년 망명 생활에서 돌아와서 의회와 찰스 1세의 분쟁, 찰스 1세의 처형, 공화정 실험 등 혼란스러운 역사의 한 장을 종결지었다. 이 소설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프랑 스혁명의 실패와 1815년 부르봉 왕조의 왕정복고로 역사는 과거로 회귀하는 듯이 보였을 것이다.
두 장을 가득 채운 다음에 문장(紋章)과 제명(題名), ‘본거지, 서머싯 주 의 켈린치 홀로 ’ 끝맺었다. 이 결말 부분에 또다시 등장한 월터 경의 필 체는 다음과 같이 덧붙이고 있었다.
‘추정 상속인, 월터 경 2세의 증손 윌리엄 월터 엘리엇 향사.’*
월터 엘리엇 경의 성격을 단적으로 묘사하자면, 그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허영심에 가득 찬 사람이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용모와 신분 에 대한 허영심이었다. 젊은 시절에 그는 놀라우리만치 잘생긴 사람이 었고, 이제 쉰네 살의 나이에도 여전히 무척이나 멋진 풍채를 유지하고 있었다. 어떤 여자도 자기 외모에 대해서 월터 경보다 많이 생각할 수 는 없었을 것이다. 또한 새로 임명된 귀족의 시종이더라도 자신의 사회 적 지위에 대해서 그보다 더 기뻐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멋진 외모를 타고난 축복보다 더 훌륭한 것은 오로지 준남작이라는 지위의 축복밖 에 없다고 엘리엇 경은 생각했다. 그러므로 이런 두 가지 축복을 모두 받은 월터 엘리엇 경이야말로 끝없이 열렬한 존경과 헌신을 받을 만한 대상이었다. 잘생긴 외모와 사회적 지위로 보자면 당연히 그는 애정을 받을만
* 이는 월터 경에게 아들이 없으므로 당대의 법률 용어로 한사 상속에 따라서 켈린치 홀의 소유 권이 엄격하게 계승됨을 알려준다. 한사 상속은 상속을 특정인에게 제한하는 것으로 특히 남자 에게만 상속권이 주어지는 법을 의미한다. 아들이 없을 경우 한사 상속법에 따라서 가장 가까운 친척의 아들에게 상속권이 부여된다. 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 <분별력과 감수성>, <설득>에서 한사 상속으로 빚어지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한 자격이 있었다. 분명 그 덕분에 그는 자기보다 훨씬 뛰어난 성품을 지닌 여자를 아내로 맞을 수 있었다. 레이디 엘리엇은 분별력이 있고 상냥하며 탁월한 여성이었다. 그녀로 하여금 레이디 엘리엇이 되도록 이끌었던 젊은 시절의 무분별한 열정을 눈감아준다면, 그 이후로 그녀 의 판단력과 행실에서 너그럽게 묵인해 줘야 할 구석은 한 군데도 없었 다. 17년 동안 레이디 엘리엇은 남편을 달래어 그의 결점을 보완하거나 숨기면서 그가 진정한 존경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의 의무와 친구들과 자식들로 인해서 그런대로 삶에 애착을 가질 수 있었기에, 그들을 두고 떠나라는 하늘의 부름을 받았을 때 그것이 아무래도 상관없을 문제는 결코 아니었다. 그 어머니는 16살과 14살 난 딸 둘을 포함해서 세 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려니 걱정이었다. 더욱이 변덕스럽고 어리석은 아 버지의 권위와 인도에 맡기기에 이 딸들은 너무 버거운 짐이었다. 하지 만 그녀에게는 아주 절친한 친구가 있었다. 분별력 있고 칭찬받을 만한 여성인 그 친구는 레이디 엘리엇을 무척 좋아했기에, 가까운 켈린치 마 을에 정착해 살고 있었다. 레이디 엘리엇은 자신이 딸들에게 진심으로 불어넣고 싶었던 훌륭한 원칙들과 가르침을 그 친구의 친절한 마음과 조언에서 얻을 수 있으며, 또한 그녀에게서 최선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 리라 믿었다. 주위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무엇을 기대했든지 간에, 이 친구와 월터 경은 결혼하지 않았다. 레이디 엘리엇이 죽은 지 13년이 지났지만 그들은 여전히 가까운 이웃으로 친하게 지내면서 한 사람은 홀아비로, 다른 사람은 미망인으로 남아 있었다. 지긋한 나이에 마음이 차분하고 아주 풍족하게 생활하고 있는 레이
디 러셀이 재혼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굳이 이유를 밝힐 필요가 없었 을 것이다. 아주 불합리하게도 사람들은 여자가 재혼하지 않을 때보다 재혼할 때 더 불만스러워하는 경향이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월터 경이 독신으로 살았다는 사실은 설명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므로 월터 경이 (전혀 터무니없는 청혼을 하고는 한두 번 은밀히 실망을 맛본 후에) 훌륭 한 아버지들이 대개 그렇듯이 사랑하는 딸들을 위해서 독신으로 지내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음을 밝혀두기로 하자. 맏딸을 위해서라면 그는 정 말로 무엇이든 포기했을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해야 할 시련에 처한 적 은 없었지만 말이다. 열여섯 나이에 엘리자베스는 어머니의 권리와 지위 에서 물려받을 수 있는 것을 모두 물려받았다. 무척이나 예쁘고 아버지를 꼭 닮았으므로 엘리자베스의 영향력은 언제나 지대했고, 아버지와 딸은 더불어 무척 행복하게 지냈다. 다른 두 딸은 타고난 자질이 훨씬 떨어졌 다. 메리는 찰스 머스그로브의 부인이 됨으로써 조금이나마 봐줄 만한 지 위를 얻었다. 하지만 진정한 이해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높이 사 주었을 고상한 마음과 부드러운 성격을 지닌 앤은 아버지에게나 자매들 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다. 앤의 말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고, 쓸모 있 는 점이라고는 늘 양보한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녀는 그저 앤에 불과했다. 사실 레이디 러셀에게 앤은 가장 소중하고 귀중한 대녀(代女)이자 사랑스러운 벗이었다. 레이디 러셀은 친구의 딸들을 모두 사랑했지만 오직 앤에게서만 그 어머니의 모습이 다시 살아났다고 느낄 수 있었다. 몇 년 전만 해도 앤 엘리엇은 무척 예쁜 소녀였지만 한창때의 아름 다움은 일찍 시들어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아버지는 한창때의 그녀에 게서도 감탄할 만한 구석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기에(그녀의 섬세한 외 모와 부드럽고 검은 눈은 그 자신과 너무나도 달랐다), 이제 시들어버
리고 야윈 모습에서 존중해 줄 만한 점이라고는 조금도 발견할 수 없었 다. 이전에도 자신의 애독서 어디에 앤의 이름이 오르게 될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었던 적이 없었지만, 지금 그런 일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준남작에 버금가는 가문의 자제와 혼인할 가능성이 있는 딸은 오로지 엘리자베스뿐이었다. 메리는 그저 점잖고 부유하며 유서 깊은 시골 집 안과 혼사를 맺었으므로, 명예를 주기만 했지 받지는 못한 경우였다. 언젠가는 엘리자베스가 적합한 상대와 결혼할 것이다. 어떤 여자들은 스물아홉 살이 되어도 십 년 전보다 더 아름다운 경 우가 종종 있다. 일반적으로 보아서, 살아가는 동안 질병을 앓거나 근 심을 겪은 적이 없었다면 그 나이는 매력을 거의 잃지 않는 시기이기도 하다. 엘리자베스의 경우가 그랬다. 13년 전의 모습 그대로 그녀는 여 전히 똑같이 멋있는 엘리엇 양이었다. 그러므로 딸이 나이 먹어가는 것 을 월터 경이 잊어버렸다 하더라도 너그러이 봐줄 수 있을 것이다. 혹 은, 다른 사람들의 준수한 용모가 볼품없이 변해가는 와중에 자기 자신 과 엘리자베스만이 예전처럼 한창때를 구가하고 있다고 생각했더라도 그의 어리석음을 적어도 절반 정도는 묵과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가족들과 지인들이 얼마나 늙어가고 있는지를 그는 여실히 볼 수 있었 으니까. 앤은 수척해졌고, 메리는 거칠어졌으며, 이웃들의 얼굴은 더더 욱 형편없어졌고, 레이디 러셀의 눈초리에 급속히 늘어가는 주름은 그 에게 오랫동안 고통을 주었다. 하지만 엘리자베스가 느끼는 만족감은 아버지에 미칠 수 없었다. 13년간 그녀는 켈린치 홀의 안주인으로서 실제 나이보다 어리게 볼 수 없으리만치 침착하고 단호하게 집안일을 주관하고 이끌어왔다. 13년 간 그녀는 안주인 노릇을 해왔으며, 가사 문제에서 독단적으로 명령을
내렸고, 사륜마차를 타러 갈 때 앞장섰으며, 인근의 어떤 집을 방문하 더라도 응접실이나 식당에서 나올 때면 레이디 러셀의 바로 뒤에서 걸 었다. 13년간 서리가 내리는 겨울철이 되면 주민들이 많지 않은 그 지 방의 평판이 자자한 무도회에서 선두에 섰고,* 13년간 봄이 되어 꽃이 필 때마다 넓은 세상을 구경하기 위해서 아버지와 함께 여행을 떠나 런던에 몇 주일간 머물렀다. 이 모든 것을 기억했고 스물아홉 살이라 는 나이를 잊지 않고 있었기에 그녀는 일말의 후회와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직도 전처럼 아름답다는 사실에 전적으로 만족하고 있었지 만 위험한 나이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고, 앞으로 열두 달이나 그 다 음 열두 달 안에 준남작 혈통을 이어받은 사람이 으레 자기에게 청혼 할 거라고 믿을 수 있었다면 무척 기뻤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어린 시 절처럼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그 책 중의 책을 펼쳐들 수 있었을 것이 다. 그러나 지금 그녀는 그 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자기의 출생 날짜 만 적혀 있고 막내 동생의 결혼 외에는 결혼 기록이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아버지가 그녀 옆의 탁자에 그 책을 펴 두었을 때, 얼굴을 돌린 채 그 책을 닫아서 밀어버린 적도 한두 번이 아 니었다. 게다가 한번 실망을 겪은 적이 있었는데, 그 책에서도 특히 자기 집안의 내력이 기록된 부분은 언제나 그 기억을 떠올려 주었던 것이다. 아주 관대하게도 아버지가 상속권을 인정해 준 추정 상속인 윌리엄 월
* 근방에서 유일한 준남작의 장녀로서, 엘리자베스는 무도회에서 선두에 서서 춤을 이끌어가는 명예를 누릴 수 있었다. 위의 문장들은 정찬에서 식탁에 앉을 때의 자리와 순서, 무리지어 어떤 곳을 걸어갈 때 걸어가는 순서 등이 엄격하게 사회적 신분에 따라서 결정되었음을 암시한다.
터 엘리엇, 바로 그 사람 때문이었다. 아주 어린 시절에 엘리자베스는 앞으로 남자 형제가 없을 경우엔 그가 장차 준남작이 될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그와 결혼하기로 마 음먹었다. 그녀의 아버지 역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늘 생각했다. 그 들은 그가 소년이었을 때는 만난 적이 없었다. 그러나 레이디 엘리엇 이 사망한 뒤 곧바로 월터 경은 그와 친분을 맺으려고 수소문했다. 월 터 경의 접근을 그 젊은이가 열렬히 반긴 것은 아니었지만, 월터 경은 젊은이가 겸손하게 몸을 사리는 것으로 헤아려주면서 계속 친분을 유 지하려고 애썼다. 그리하여 엘리자베스가 한창때에 들어선 어느 해 봄 에 런던에 갔을 때, 엘리엇 씨는 어쩔 수 없이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내 야 했다. 당시 엘리엇 씨는 아주 젊었고 법학 공부를 막 시작한 참이었다. 엘리자베스는 그가 무척 마음에 들었기에 그에게 호감이 있음을 보여 주려고 온갖 계획을 세웠다. 그리고 그를 켈린치 홀로 초대했다. 일 년 내내 그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기다렸지만, 그는 오지 않았다. 이듬해 봄에 또다시 그녀는 그를 런던에서 만났다. 여전히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었으므로 또다시 호의를 보이며 그를 초대하고 기다렸지만 그는 이번 에도 오지 않았다. 그 다음에 들려온 소식은 그가 결혼했다는 것이었 다. 엘리엇 가문의 상속자로서 정해진 길을 따라 재산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신분이 낮지만 부유한 여자와 혼인함으로써 일찌감치 경제적 독립을 손에 넣은 것이었다. 월터 경은 그 사실에 분개했다. 집안의 어른인 자신에게 한마디 라도 상의했어야 했다고 느꼈다. 더욱이 그 젊은이를 남들 앞에서 공 공연히 인정한 다음이었기에 더욱 그러했다. “그 젊은이와 함께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틀림없이 보았을 거야. 한 번은 태터샐*에서, 두 번은 하원 로비에서 말이지.” 그는 이렇게 말했다. 월터 경은 그 결혼 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명했지만, 그 견해는 묵살되었음이 거 의 확실했다. 엘리엇 씨는 전혀 사과하려 들지 않았고, 더 이상 가문의 관심을 받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월터 경은 그가 관심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인물이라고 생각했고, 그들 사이의 교류는 완 전히 끊어졌다. 7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도 엘리자베스는 엘리엇 씨와의 거북스러 운 지난날을 떠올리면 여전히 화가 났다. 그녀는 그 남자가 마음에 들 었을 뿐 아니라 아버지의 상속자였기에 더욱 좋아했고, 가문에 대한 강 한 자부심으로 말미암아 월터 경의 장녀에게 적합한 결혼 상대는 오직 그 사람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다른 준남작들을 모두 살펴보아 도 그녀 자신과 대등하다고 기꺼이 인정해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 다. 하지만 엘리엇 씨가 아주 비열하게 처신했으므로, 비록 그녀가 지 금(1814년 여름) 그의 아내를 위해 검은 리본을 달고 있기는 했지만, 그 를 다시 고려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인물이라고는 여길 수 없었다. 그 의 결혼 생활의 결실로서 자식이 남아 있을 거라고 짐작할 만한 근거는 없었으므로, 어쩌면 그의 수치스러운 첫 결혼을 잊어줄 수도 있었을 것 이다. 그가 더 고약하게 행동하지 않았더라면 말이다. 그러나 중간에 끼어서 늘 소식을 알려주는 친절한 친구들에 의하면, 엘리엇 씨는 그들
* 순종 말을 판매하는 경매 장소인 리처드 태터샐을 말한다. 신사들이 모여서 경마를 즐기며 내 기를 하는 곳이기도 했다.
모두에 대해 대단히 불손한 언사를 사용했으며, 자신이 속한 혈통과 이 후에 물려받을 명예에 대해서 극히 경멸하듯이 하찮은 것으로 치부했 다는 것이다. 이 점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엘리자베스 엘리엇의 감정 상태와 기분은 바로 이러했다. 그녀의 인생에서 달래야 할 근심거리들은 이런 것이었고, 벗어나야 할 마음의 동요 또한 이런 것이었다. 이처럼 그녀의 삶은 단조롭고 우아하며, 유 복하고 공허했다. 시골에서 별다른 사건 없이 오래 살아가는 일에 관심 을 기울여야 하고, 바깥에서 유용한 일을 하는 습관이나 집안에서의 재 능과 교양으로 공허함을 메워야 했지만, 그런 관심이나 재능이 전혀 없 는 상태에서 그녀가 느끼는 감정들은 이러했다. 그러나 이제 이런 것들에 덧붙여 또 다른 근심거리가 마음을 짓누 르고 있었다. 아버지가 돈에 쪼들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지금 아버지 가 준남작 계보를 다시 펼친 것은, 상인들이 보낸 과중한 청구서와 대리 인 셰퍼드 씨의 유쾌하지 않은 암시를 머릿속에서 몰아내기 위한 것임 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켈린치 홀의 자산은 상당한 수익을 가져다주 었지만, 월터 경의 생각으로는 이곳 주인에게 걸맞은 품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수준엔 미치지 못했다. 레이디 엘리엇이 살아 있을 때는, 온 갖 방법으로 절제하고 절약함으로써 엘리엇 경의 지출을 수입의 한도 이내로 간신히 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의 죽음과 더불어 그에게 서 그런 올바른 마음가짐은 사라졌고, 그때부터 그의 지출은 언제나 수 입을 능가했다. 그는 소비를 줄일 수 없었다. 월터 엘리엇 경 입장에선 마땅히 지출해야 할 것들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잘못이 전혀 없다고 하 더라도, 이제 그는 끔찍한 빚더미에 앉았을 뿐 아니라 빚 독촉을 빈번히 받게 되었으므로, 딸에게 그 사실을 조금이라도 숨기려고 해봤자 더 이
상 소용이 없었다. 지난해 봄에 런던에 갔을 때, 그는 엘리자베스에게 그 사실에 대해 넌지시 운을 떼었다. 심지어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까? 혹시 절약할 수 있는 부분을 생각해 볼 수 있겠느냐?”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엘리자베스에 대해서 공정하게 말하자면, 그녀는 화들짝 놀란 여 성들이 처음엔 그러하듯이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진지하게 궁리하기 시 작했고, 마침내 절약 방안 두 가지를 제안했다. 불필요한 자선을 줄이 고, 응접실 장식을 바꾸는 일을 중단하는 것이었다. 나중에는 매년 앤에 게 선물을 사다주던 관례를 생략하겠다는 신통한 생각을 이 두 가지 제 안에 덧붙였다. 그러나 이런 방안들이 그 자체로는 아무리 훌륭하다고 하더라도 재해 복구비용을 충당하기엔 역부족이었기에, 오래지 않아 월 터 경은 재해의 실제 규모를 전부 고백해야 했다. 엘리자베스로서는 더 효과적인 방법을 도무지 생각해낼 수 없었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그 녀는 자기가 운이 나쁘고 불행하다고 느꼈을 뿐이었다. 그들 두 사람은 자신들의 품위를 잃지 않으면서, 또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안락함을 포 기하지 않으면서, 지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전혀 알아낼 수 없었다. 월터 경이 처분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땅이 있었다. 하지만 토지를 모두 매각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하더라도 별 차이가 없었을 것이다. 자신이 물려받은 땅을 이미 수치심을 무릅쓰고 저당 잡혔지만, 그것을 모두 팔아버릴 만큼 뻔뻔스러울 수는 없었다. 아니, 그 정도로 자기 이 름을 더럽히지는 않을 것이다. 켈린치의 토지는 자신이 물려받았던 그 대로, 손상되지 않은 온전한 상태로 물려줘야 했다. 그들은 신뢰할 수 있는 벗인 이웃 마을의 셰퍼드 씨와 레이디 러셀 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아버지와 딸은, 자존심을 지키고 조금도 거리낌 없이 마음껏 품위 있게 생활하면서도 재정적인 곤경을 해결하고 생활
비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그 두 사람 가운데 누군가가 생각해내기를 기 대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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