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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사람들의 시 사랑 조선은 계급 사회다. 문인 승려야 그렇다 치고 기녀와 계집종까지 시를 썼다면 놀랍다. 안동 권씨 집안의 종 얼현의 작품을 보라. 조선의 문화 수준이 이 정도였다.

<단발령망금강도>, ≪풍악도첩≫, 정선, 1711


인텔리겐치아 2449, 2015년 2월 13일 발행

윤호진이 옮긴 임방의 ≪수촌만록≫ 옛글 속에 고인 마음 있다는 말을 듣고 반평생 문을 닫고 글만을 읽었네. 여기 묻혀 끝나는 날 없을까 걱정 되어 다리 끌고 날짐승을 좇아 이곳에 왔네. 풍악산엔 맑은 기운 천 년이나 쌓였고 동해의 푸른 파도 만 길이나 깊었네. 이곳이 남악구 외기 제일 적당하니 날마다 높이 올라 길이길이 읊조린다.


陳篇聞有古人心 半世牢關字字尋 却怕埋頭無了日 更將閑脚逐飛禽 楓山灝氣千年積 蓬海滄波萬丈深 此地最宜南岳句 每登高處費長吟 -«수촌만록(水村漫錄)», 임방(任埅) 지음, 윤호진 옮김, 40~41쪽

‘수촌만록’이 무슨 뜻인가? 수촌(水村)은 임방의 호(號)다. 만록(漫錄)은 정한 형식이나 체계 없이 느낌이나 생각을 적은 글이다.


임방은 이 책에 무엇을 썼나? 시와 관련된 이야기, 곧 시화만 55편 실었다. 만록이지만 다른 잡기는 보이지 않는다. 시는 누구의 것을 골랐나? 자기 집안사람과 동시대인의 작품이다. 김 수항(金壽恒)·김만중(金萬重)·홍만종(洪 萬宗)·김득신(金得臣) 등 이름난 서인계 문 인, 황진이·매창 등 기녀와 계집종 얼현(孼 玄)같은 여성, 처묵(處黙)·묘정(妙靜) 같은 승려, 신두병(申斗柄)과 같은 기인들의 시를 만날 수 있다.


≪수촌만록≫이 다른 만록, 만필(漫筆)과 구 별되는 점은 무엇인가? 자신의 친인척과 스승의 시가 많이 실린 것이 특징이다. 당시는 직계존속과 같은 지친(至 親)에 대해서는 기휘(忌諱)를 하여 자신의 저 술 속에서 평론은 물론 언급조차 삼갔다. 그 것이 추세였는데 임방은 그러지 않았다. 위에 인용한 시의 작가 우재와 수촌은 어떤 관 계였는가? 송시열이 스승이다. 그의 시를 놓고 수촌은 주자를 불러 비한다. “<소리 내어 읊조리며 나는 듯 축융봉을 내려간다(朗吟飛下祝融 峰)>라는 시와 그 기상이 완연히 한가지”라 고 찬한다.


<낭음비하축융봉>은 어떤 시인가? 그 작품은 이렇다. 만 리 길을 바람 타고 오니 깊은 골짝 층층 구름 가슴 뒤흔드네. 탁주 세 잔에 호기가 발동하여 소리 내어 읊조리며 축융봉을 나는 듯이 내려온다. 我來萬里駕長風 絶壑層雲許震胸 濁酒三杯豪氣發 朗吟飛下祝融峰 기녀와 계집종의 작품은 어떤 것이 있는가? 취죽의 <방석전고거>를 보자.


訪石田故居

석전의 옛집을 찾다 십 년 전에 석전과 함께 노닐던 곳, 양자강 가에서 취하여 몇 번이나 머물었 던가? 지금 그 사람 떠나간 뒤 홀로 찾으니, 흰 마름 붉은 여뀌 물가에 가득한 가을이 라네. 十年曾伴石田遊, 楊(揚)子江頭醉幾留. 今日獨尋人去後, 白蘋紅蓼滿汀秋.


취죽이 누구인가? 안동 권 아무개의 계집종 얼현(孼玄)이다. 취 죽은 그녀의 자호다. 계집종이 시를 썼는가? 임방의 기록에 의하면 조선 중기 남용익(南 龍翼)이 선집한 한시집 «기아(箕雅)»에 두 편이 실려 있다고 했다. 그녀의 이름이 몹시 낯선 까닭이 무엇인가? 이 시가 무명씨의 것으로 잘못 기록되어 있 었기 때문이라고 임방이 설명한다. 임방은 어떻게 살다 갔나? 1640년, 인조 18년에 태어났다. 정랑, 의금


부 도사, 사간(司諫) 등부터 시작해 공조판 서(工曹判書), 우참찬(右參贊)까지 지냈다. 1721년 겨울에 건저(建儲)에 얽힌 사건으로 노론 대신들이 모두 귀양을 가면서 더불어 삭출되었다. 1724년(경종 4) 귀양지 김천(金 川)에서 85세를 일기로 죽었다. 영조가 즉위 하자 신원(伸冤)되었다. ≪수촌만록≫은 어디서 볼 수 있나? 홍만종의 «시화총림», 임방의 현손인 임 렴(任簾)이 편찬한 «양파담원(暘葩談苑)» 등에 수록되어 있다. 당신은 누구인가? 윤호진이다. 경상대학교 한문학과 교수다.


조선 사람들의 시 사랑 조선은 계급 사회다. 문인 승려야 그렇다 치고 기녀와 계집종까지 시를 썼다면 놀랍다. 안동 권씨 집안의 종 얼현의 작품을 보라. 조선의 문화 수준이 이 정도였다.

<단발령망금강도>, ≪풍악도첩≫, 정선, 1711


수촌만록 임방 지음 윤호진 엮음 2008년 11월 15일 출간 사륙판(128 *188) 무선제본, 152쪽, 12,000원


작품 속으로

수촌만록


1

나의 고조 죽애공(竹崖公)은 휘가 열(說)1)인데, 젊었을 때 ≪창려전집(昌黎全集)≫2)을 천 번이나 읽으셨다. 생원· 진사 양시, 문과 별시, 중시(重試), 중중시(重重試), 발영시 (拔英試), 탁영시(擢英試)에서 일곱 번 장원하여 문명(文 名)을 세상에 떨쳤다. 퇴계(退溪) 이황(李滉),3) 소재(蘇齋)

노수신(盧守愼)4) 등 열 사람과 함께 호당(湖堂)5)에 뽑혀 들어갔고, 벼슬은 판윤, 양관 제학에 이르렀다. 문집 15권이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일실되었다. 남아 있는 시와 글이 혹 누각의 제영(題咏)에 보이기는 하지만, 세상에 전하는 것이

1) 임열(任說, 1510∼1591): 자는 군우(君遇), 호는 죽애(竹崖), 본관은 풍천 (豊川), 시호는 문정(文靖). 2) ≪창려전집(昌黎全集)≫: 당나라의 문인 한유(韓愈)의 문집. 3) 이황(李滉, 1501∼1570): 조선 중기의 학자. 본관은 진보(眞寶). 자는 경호 (景浩), 호는 퇴계(退溪)·퇴도(退陶)·도수(陶叟). 4) 노수신(盧守愼, 1515∼1590): 조선 중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광주(光 州). 자는 과회(寡悔), 호는 소재(蘇齋)·이재(伊齋)·암실(暗室)·여봉노인

(茹峰老人).

5) 호당(湖堂): 독서당(獨書堂)의 별칭.조정의 젊은 관원 가운데 뛰어난 자 질이 있는 사람들을 뽑아 일정한 기간 동안 휴가를 주어 공부하는 것을 사가독 서(賜暇讀書)라고 하는데, 독서당은 바로 사가독서를 하던 곳이다. 한강의 동 호 옆에 독서당이 있었기 때문에 호당이라고도 부른다.


거의 없는 셈이다. 소재 노수신의 집에 ≪십청정시첩(十靑 亭詩帖)≫이 있는데, 대개 당대의 이름난 분들의 작품을 받

아놓은 것이다. 죽애공의 칠언율시 10수도 그 가운데 있다. 10수 가운데 <영송(詠松)>은 이렇다.

용 비늘 같은 무늬에 우뚝 솟은 줄기, 대들보감 좋은 재목 백 길이 넘네. 하늘과 땅이 뜻이 있어 굳센 절조(節操) 내었으니, 눈서리도 굳은 마음 꺾을 방법이 없다네. 남전(藍田)6)에 해 저물 제 왕유(王維)7)가 읊은 시 남아 있고,8) 율리(栗里)9)에 가을 깊어갈 제 국화 향기와 짝했네.10) 늦게 시든다 약속한 것 저버리지 말고, 날이 추워져도 진중하게 울울창창하기를.

6) 남전(藍田): 중국 섬서성(陝西省)에 있는 지명. 좋은 옥이 많이 난다고 함. 7) 왕유(王維, 699?∼761?): 중국 당나라 때의 시인. 자는 마힐(摩詰). 벼슬은 상서우승(尙書右丞)에 이르렀고, 문집으로 ≪왕우승집(王右丞集)≫이 있다. 8) 이 구절에서는 당나라 왕유의 벼슬이 상서우승이었는데, 송지문(宋之問) 이 살았던 남전의 별장을 차지하여 그곳에서 살았고, 그가 읊은 <종송시(種 松詩)>가 있어 이렇게 말했다.

9) 율리(栗里): 진(晉)나라 도연명(陶淵明)이 은거해 살았던 곳. 10) 이 구절은 도연명이 은거해 살며 국화를 좋아했고, 그의 시에는 국화를 읊 은 것이 많아 이렇게 말한 것이다.


그 가운데 <영백(詠柏)>이라는 시는 이렇다.

곧은 줄기 구름을 뚫고 솟아 땅은 그윽한데, 꼿꼿한 절개 가을에도 놀라지 않네. 안개 어린 무성한 가지는 한없이 푸르고, 달 비치는 성긴 가지에 이슬 아직 걷히지 않았네. 연약한 버들은 시드는 것 몇 번이나 부끄러워했던가? 미친바람아 꺾으려 마음도 먹지 마라. 이미 건곤을 힘 있게 떠받치고 있는데, 조정에서는 왜 장인(匠人)에게 구해 오라 하나?

그 가운데 <영회(詠檜)>라는 시는 이렇다.

아름답고 굳건해서 식물들 가운데 뛰어나다 이름났는데, 가지가 왼쪽으로 늘어진 것 절조 응당 높으리라.11) 웃으며 잎 떨어진 나무를 보니 내 마음 굳세지고, 오만하게 사나운 바람을 흘겨보며 스스로 굳게 지조 지 키네. 늠름한 얼굴은 매우 엄숙하고, 11) 원문의 ‘좌뉴(左紐)’는 왼쪽으로 늘어져서 끈처럼 가지가 드리워진 것을 말한다. 소식(蘇軾)의 ≪동파전집(東坡全集)≫ 권19에 실려 있는 <조경황

이 전나무를 심고 지은 시에 화답함(和趙景貺栽檜)>이라는 시에 “도리어 왼

쪽으로 늘어진 무늬를 만들었네(還作左紐紋)”라는 구절이 있다.


삼엄한 기상은 더욱 크도다. 추위와 더위에 어지럽게 바뀌지 않으니, 해마다 북돋아 주는 일 어찌 수고롭다 꺼리랴?

그 가운데 <영삼(詠衫)>이라는 시는 이렇다.

소나무 잣나무 앞에서 추위를 말하지 않지만, 어찌 알았으리오? 그윽한 골짜기에 고상하게 살아가는 것을. 눈꽃도 감히 문을 넘겨다보지 못하는데, 북풍인들 어찌 마음을 움직이겠는가? 나를 보호하는 푸른 줄기는 모습 변하지 않아, 다른 것 노쇠하여 기가 먼저 꺾이는 것 비웃노라. 아침저녁으로 꽃 피고 시드는 것 내 일이 아니니, 오직 겨울이나 봄에 한결같은 자태를 보기 원하노라.

그 가운데 <영해송(詠海松)>이라는 시는 이렇다.

바닷가 산에 깊숙이 산다는 이름 일찍부터 들었더니, 늦겨울에도 변치 않겠다는 맹세 바꾸지 않고 오로지 지 키고 있네. 가지는 늙어 봉황새가 깃들이는 것 보겠고,


줄기는 크고 곧게 뻗었으니 대들보감이네. 서늘한 바람은 맑은 피리 소리요, 소낙비에 바야흐로 펼쳐진 푸른 장막이 젖노라. 사람들의 이목이 조금 뜸해도 좋은 흥취 많아, 상공(相公)이 마음으로 감상하며 평생을 보내기에 족하다.

그 가운데 <영진송(詠眞松)>은 이렇다.

온갖 물건 예로부터 형체가 서로 다르건만, 기개는 결국 한가지로 귀결되네. 푸른 띠 드리운 실은 난간 밖에서 흔들리고, 푸른 난새 날개 펴고 담 모퉁이에서 비치는 듯. 봄이 와도 나뭇잎은 전혀 변함이 없고, 눈 온 뒤에도 용 수염 같은 잎 시들지 않는다. 진송이라 부르는 것 응당 뜻이 있을 터이니, 어찌 사람의 일과 이치가 같을쏜가?

그 가운데 <영적목12)(詠赤木)>이라는 시는 이렇다.

이름을 물어도 대답 없으니 어떻게 알 수 있으랴? 모양 따라 이름 붙이지만 잘못될까 두렵다. 12) 적목(赤木): 소나뭇과의 낙엽 교목으로 잎갈나무를 말함.


바야흐로 불 속에서 꺼낸 듯 겉이 붉으니, 사물을 보는 것으로부터 사람을 볼 수 있네. 용 같은 가지에 비 지나가니 붉은 빛 젖어 들었고, 검푸른 잎 겨울 지나도 푸르기는 매한가지라네. 눈에 가득한 그 모양 끝내 변치 않으니, 서로 마주하면 응당 마음 통한다네.

그 가운데 <영두충(詠杜冲)>이라는 시는 이렇다. 같은 기운끼리 서로 구하여 함께 숲을 이루고, 때때로 어울리니 마땅히 지음(知音)13)을 만난 것이로다. 풀 우거진 꽃다운 모래톱으로 누가 나를 찾아주리, 향기 나는 술동이에 술 익어도 손은 읊조리지 않네. 땅을 가려 종적 감추고 이름을 숨기며, 굳은 절조는 처음의 마음을 지킨 것이라네. 떠나가고 머무는 것 이미 정해져 바뀔 일 없으니, 화타(華佗)14)와 편작(扁鵲)15)의 의서(醫書)에서 찾지 마오.

13) 지음(知音): ≪열자(列子)≫의 <탕문편(湯問篇)>에 보이는 말로, 마음 이 서로 통하는 친한 벗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거문고의 명인 백아가 자기 의 소리를 잘 이해해 준 벗 종자기가 죽자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아는 자가 없 다고 하여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데서 유래한다.

14) 화타(華佗): 중국 후한(後漢) 말기에서 위나라 초기의 명의(名醫). 약제의 조제나 침질, 뜸질에 능하고 외과 수술에 뛰어났으며, 일종의 체조에 의한 양


그 가운데 <영황양16)(詠黃楊)>이라는 시는 이렇다.

하루아침 성했다가 쇠하는 일 사물과 인간 한가지이니, 겸양으로 내 자신 잘 처신해야지. 본성이 굳세어 삼 년 만에 자라는 것 부러워하지 않고, 한 마디 자라는 데 힘드니 열 아름 되는 나무 보배로 여 기지 않네. 온 산골짜기의 나무들 한차례 눈에 다 꺾이건만, 담장 기댄 가지와 잎은 봄빛을 간직했네. 소식(蘇軾)17)은 그윽하게 숨어 사는 뜻 알지 못하고, 부질없이 티끌세상의 윤년(閏年) 이야기 늘어놓았네.18)

생 요법인 ‘오금희(五禽戱)’를 창안했다. 15) 편작(扁鵲): 중국 전국 시대의 의사. 성은 진(秦). 이름은 월인(越人).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치료했다. 장상군(長桑君)으로부터 의술을 배워 환자의 오 장을 투시하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고 전한다. 16) 황양(黃楊): 일반적으로 회양나무라고 하는 것을 말함. 17) 소식(蘇軾, 1036∼1101): 중국 북송의 문인. 자는 자첨(子瞻). 호는 동파 (東坡).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 작품에 <적벽부>, 저서에 ≪동파전집(東坡 全集)≫ 등이 있다.

18) 소식의 ≪동파전집(東坡全集)≫ 권6에 있는 <동소궁을 지키는 유강직

낭중이 사는 곳의 네 사물에 대해 읊음(監洞霄宫俞康直郎中所居四詠)>이 라는 시의 첫 번째 작품으로 <퇴포(退圃)>가 있는데, 그 구절에 “동산의 초 목이 봄이 되어 무수히 피어나는데, 단지 황양만이 윤년에 액운을 맞이했네(園 中草木春無數, 只有黄楊厄閏年)”라는 내용이 있고, 여기에 “속설에 황양은

한 해에 한 촌쯤 자라는데, 윤년을 만나면 세 촌쯤 줄어든다고 한다(俗説黄楊


그 가운데 <영비자(詠榧子)>라는 시는 이렇다.

동산의 초목 눈[六出] 내리자 앙상해졌건만, 외로운 자태 옥산(玉山)의 동쪽에 홀로 빼어났네. 삼팽(三彭)19)을 몰아내기 어렵다 말하지 말게나, 내 붓끝으로 매끄럽고 깨끗한 자질 그려내기 어렵다네. 이제 뜰에 옮겨 심어 베거나 꺾는 일 없다면, 다른 날 난간 가까이에서 무성하게 자라리. 은근히 재배하는 노력 변치 말게나, 열 친구 서로 어울려 변치 않고 잘 지내리.

공의 시는 화려하게 꾸미는 것을 모두 무시하고, 침울하고 웅혼한 것을 귀하게 여긴다. 택당 이식20)이 지은 공의 비명 에 “널리 배우고, 배운 것을 잘 기억했으며, 시와 글을 지음 에 기격(氣格)을 숭상했다”라고 했는데, 사실을 기록한 것 이다.

歲長一寸遇閏退三寸)”라는 자주(自註)가 있다.

19) 삼팽(三彭): 도가(道家)의 귀신 이름으로 삼시(三尸)의 별칭이다. 삼시는 사람의 몸속에 있으면서 재앙을 일으키며 상제에게 고자질한다고 한다. 20) 이식(李植, 1584∼1647): 조선 인조 때의 문신(文臣). 자는 여고(汝固). 호는 택당(澤堂)·남궁외사(南宮外史). 한학사대가의 한 사람으로 이조판서 를 지냈다. 저서에 문집 ≪택당집≫이 있다.


余高祖竹崖公諱說, 少時讀≪昌黎全集≫千遍, 中生 進兩試 ·文科別試·重試·重重試 ·拔英試· 擢英 試, 七捷巍科, 文望振世, 與退溪·蘇齋諸公, 同被 湖堂之選, 官至判尹·兩館提學. 有集十五卷, 失於

壬辰兵燹, 遺篇殘墨, 或見於樓觀題咏, 而絶無傳世 者. 盧蘇齋家, 有≪十靑亭詩帖≫, 盖受一代諸公之 作, 而竹崖公七言律十首在其中. 其<咏松>曰, “龍 鱗錯落挺千章, 棟廈高材百丈强. 天地有情生勁操, 霜雪無計剉剛腸. 藍田日晩留丞咏, 栗里秋深伴菊

香. 約在後凋休負約, 歲寒珍重鬱蒼蒼.” 其<咏栢> 曰, “直幹穿雲得地幽, 亭亭一節不驚秋. 烟籠深盖靑 無盡, 月透踈枝玉未收. 弱柳幾慙衰謝質, 狂颷莫試

折摧謀. 扶持自是乾坤力, 廊廟何煩匠石求.” 其<咏 檜>曰, “夭驕名雄植物曹, 枝垂左紐節應高. 笑看落 木吾心壯, 傲睨獰風自守牢. 凜烈容顔千尺肅, 森嚴

氣像十分豪. 不因冷暖紛遷就, 封植年年豈憚勞.” 其

<咏杉>曰, “松栢前頭不語寒, 豈知幽客亦彈冠. 霙 花未敢闚門闥, 朔吹何曾動肺肝. 護我菁葱容莫變, 笑他衰歇氣先闌. 榮腓朝夕非吾事, 惟願冬春一樣

看.” 其<咏海松>曰, “深居海岳早知名, 不易惟存 歲暮盟. 枝老會看鸞鳳宿, 材宏直指棟梁成. 凉颸初 鼓淸笙咽, 凍雨方沾翠幔橫. 耳目少閑佳趣富, 相公

心賞足平生.” 其<咏眞松>曰, “百昌從古賦形殊, 氣 槩同歸是一趍. 碧帶挼絲搖檻外, 靑鸞展翅暎墻隅. 春來樹葉渾無別, 雪後龍髥獨不枯. 說許眞松應有

意, 方人安得理相孚.” 其<咏赤木>曰, “問名不答


是何因, 取貌論名恐喪眞. 正中灼中當赤外, 直從觀

物可觀人. 虯枝過雨紅猶濕, 黛葉經冬綠尙均. 形色

滿眸終莫改, 秪應相對會心神.” 其<咏杜冲>曰, “同 氣相求共作21)林, 追隨應是遇知音. 芳洲草滿人誰問, 香甕春濃客不吟. 擇地晦蹤藏姓字, 傲寒堅操守初

心. 去留已定移無所, 莫向華扁藥譜尋.” 其<咏黃 楊>曰, “急盛招22)衰物也人, 好將謙退處吾身. 性堅

不羨三年大, 進寸休論十抱珍. 滿壑樹林摧一雪, 倚

墻枝葉保長春. 東坡不識幽潛志, 謾取塵寰閏歲陳.”

其<咏榧子>曰, “園莽蕭條六出中, 孤姿獨秀玉山 東. 三彭勿說駈除苦, 一筆難尋滑淨工. 今日入庭無

剪伐, 他年近檻益榮葱. 殷勤無替栽培力, 十友相將

好始終.” 公詩盡去華彩, 以沈鬱渾雄爲貴. 澤堂製 公碑銘曰, “博學强記, 爲詩文, 專尙氣格.” 記實也.

21) ≪시화총림≫본에는 ‘상(相)’으로 되어 있는데, ≪양파담원≫본에 의거 ‘작(作)’으로 고쳤다. 22) ≪시화총림≫본에는 ‘초(招)’가 빠져 있어 ≪양파담원≫본에 의거 보충 했다.


2

한림(翰林) 안명세(安名世)23)가 아홉 살 때였다. 진달래를 따서 연적에 끼워놓고, 그의 아버지가 시를 지으라고 했더 니, 즉석에서 다음과 같은 절구 한 수를 지어냈다.

진달래꽃 한 떨기, 푸른 산속에서 왔네. 연적에 생애를 부치니, 타향의 나그네 신세 한가지네.

그의 아버지가 이 시를 보고는 울었다. 대개 그 시에 나타난 뜻이 처량하고도 고생스러워 자못 현달할 상(相)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뒤에 과연 20세 전후하여 과거에 합격하고 벼슬이 한림에 이르렀으나, 역사책에 빈소 곁에서 세 대신을 죽였다는 사실을 써넣었다가 연산군 시절에 화를 당했다.

翰林安名世, 九歲時, 以杜鵑花摘揷硯滴, 其父命賦 23) 안명세(安名世, 1518∼1548): 자는 경응(景應), 본관은 순흥(順興). 1548

년 이기(李芑)·정순붕(鄭順朋)이 을사사화를 일으켜 현신(賢臣)들을 숙청

했는데, 사관(史官)으로서 그 정상을 빠짐없이 시정기(時政記)에 적어 넣은 것이 누설되어 무고로 사형을 당하고 가산이 적몰(籍沒)되었다.


詩, 卽成一絶曰, “杜鵑花一萼, 來自碧山中. 硯滴生 涯寄, 他鄕旅客同.” 父見之而泣, 盖知其意趣悽苦, 殊非遠達之象故也. 後果妙年登第, 官至翰林, 以史 冊書殯側殺三大臣, 燕山朝24)被禍.

24) ‘연산조(燕山朝)’ 세 자는 ≪양파담원≫본에 의거 보충했다.


3 월봉(月蓬) 유영길(柳永吉)25)의 <영용저녀시(咏舂杵女 詩)>는 이렇다.

쿵더쿵 옥절구 연약한 자태는 가벼운데, 비단 소매 펄럭일 때마다 눈 같은 살결 드러나네. 달나라에서 장생약(長生藥) 찧는 것 습관이 되어, 인간에 내려와서도 솜씨가 익었구나.

세상에서 가작(佳作)이라고 부른다. ≪기아(箕雅)≫26)에 서도 역시 이 시를 뽑아 넣었다. 그러나 ‘솜씨가 익었구나 (手法成)’는 아무 뜻이 없는 것 같은데, 무엇 때문에 뽑았는 지 알지 못하겠다. 月蓬柳永吉, <咏舂杵女詩>曰, “玉杵高低弱質輕, 羅衫時擧雪膚呈. 蟾宮慣搗長生藥, 謫下人間手法 成.” 世稱佳作, ≪箕雅≫亦選, 而手法成三字, 無意 義, 未知其何所取也.

25) 유영길(柳永吉, 1538∼1601): 자는 덕순(德純), 호는 월봉(月蓬), 본관은 전주(全州). 26) ≪기아(箕雅)≫: 조선 중기 남용익(南龍翼)이 선집한 한시집.


4

조직(趙溭)27)의 자는 지원(止源)이다. 자호를 지재(止齋) 라고 했다. 그는 광해군 때 포의(布衣)로 홀로 소를 올려 영 창대군의 억울함을 논하여 폐모론이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 다 6년 동안 갇혀 있었고, 그 후 형벌을 받고 외딴 곳에 유배 되었다. 인조반정 이후 방환(放還)되어 등용되었다. 일찍이 사선정(四仙亭)에서 이런 절구 한 수를 지었다.

사선정 위에 한 신선이 놀고, 삼일포에서 한나절을 머무네. 늦은 봄 벽도(碧桃)필 제 사람도 없어, 달 밝은 밤 길게 피리 불며 배에 기대네.

사람들이 이 작품을 두고 사선정을 읊은 시 가운데 제일이 라고 생각한다.

27) 조직(趙溭, 1592∼1645): 자는 지원(止源), 호는 지재(止齋), 본관은 풍괴

(豐壞). 1613년 폐모론을 반대하다가 친국(親鞫)을 당하고 남해(南海)에 안

치(安置)되었다.


趙溭, 字止源, 自號止齋. 光海朝, 以布衣, 獨疏論永 昌之寃, 以杜廢母之漸, 六年被囚, 受訊刑, 竄絶塞, 仁祖改玉, 放還褒用. 嘗登四仙亭, 賦一絶曰, “四仙 亭上一仙遊, 三日浦中半日留. 春晩碧桃人不見, 月

明長笛倚蘭舟.” 人傳, 此作當爲四仙亭題咏之冠.


5

어떤 사람이 택당 이식에게 “공의 칠언율시 가운데서 어떤 시가 가장 뛰어납니까?” 하고 물으니, 대답하기를, “충주의 동쪽 누대에서 지은 시가 아마 가장 나은 것 같다”라고 했는 데, 그 시는 이렇다.

날아오를 듯 누대는 성벽 한끝에 있는데, 충주를 굽어보니 호기가 생긴다. 산은 동남으로 월악산(月岳山)을 받들고, 강은 서북으로 탄금대(彈琴臺)를 안고 있네. 천지를 둘러보니 청춘이 용솟음치나, 옛일에 마음 상해 백발이 늘어간다. 이미 원룡(元龍)의 호기(豪氣)28)가 다했음을 알았으니, 내일 아침 나 스스로를 탄핵하고 돌아오리라.

내가 공의 문집을 보니, 이 시가 비록 좋기는 하나 <해직귀 협(解職歸峽)>이란 시만은 못했다. 그 시는 이렇다.

28) 원룡의 호기: 원룡은 한나라 때의 사람 진등(陳登)으로 그의 자가 원룡이 다. 그는 호기가 뛰어난 사람으로 평가를 받았으며, 여포(呂布)를 죽인 공으로 복파장군(伏波將軍)이 되었다.


동쪽 문의 아침 햇살 안장에 비치고, 이슬이 조금 걷히어 길은 말랐다. 삼각산 구름안개 새벽 경치를 가리고, 오릉(五陵)29)의 소나무 가을 추위에 떠네. 강호의 근심과 즐거움은 세상에 나가고 숨고 하는 운수 에 달렸고, 우주 사이의 임금과 신하 만나기 어렵다. 아득한 낚시터 깨끗한 물가를 그리워하니, 옛날처럼 마음속을 터놓을 수 있구나.

이 시는 법에 맞고 중후하며, 우아하고 건장하니, 그의 문집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다. 그런데 이식이 이 시를 버려두 고 앞의 시를 취한 것은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或問澤堂曰, “公詩七律中, 何篇爲第一?” 公答曰, “忠州東樓之作, 似是最優.” 其詩曰, “岧嶢飛閣郡城 隈, 俯視中州氣壯哉! 山鎭東南尊月岳, 水趨西北抱

琴臺. 乾坤縱目靑春動, 今古傷心白髮摧. 已覺元龍 豪氣盡, 明朝投劾可歸來.” 以余觀乎公集, 此篇雖 佳, 猶不若<解職歸峽>之什. 其詩曰, “東門朝旭照

29) 오릉(五陵): 본래는 장안에 있던 한나라 시대의 무덤들. 장릉(長陵)·안릉 (安陵)·양릉(陽陵)·무릉(茂陵)·평릉(平陵)을 말함. 여기에서는 서울 근 교의 왕릉이 모여 있는 곳을 말함.


歸鞍, 草露微收路正乾. 三角雲烟迷曉望, 五陵松栢 動秋寒. 江湖憂樂行藏數, 宇宙君臣契會難. 遙想釣 臺沙水淨, 不妨相照舊心肝.” 典重雅健, 恐當壓卷, 未知公何以捨此而取彼也.


6

양파(陽坡) 정태화(鄭太和)30)가 일찍이 평안도 관찰사가 되어 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지은 <춘첩(春帖)>의 끝 구 절에 이런 것이 있다.

관서(關西)지방의 늙은 수령 한가하여, 술 취해 있으려니 붉은 꽃잎 날아드네.

세상에 전하기를, 이 시는 무한히 좋은 기상이 있으니, 정태 화가 40년 동안 재상 자리에 있으면서 부귀를 누리는 것은 모두 이 한 연 가운데 있다고 한다.

陽坡鄭相公太和, 嘗按關西, 其<春帖>末句曰, “關 西老伯閑無事, 醉倚春風點粉紅.” 世傳, 此時有無限 好氣象, 相公四十年鼎軸富貴, 都在這一聯中云.

30) 정태화(鄭太和, 1602∼167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동래(東萊). 자 는 유춘(囿春), 호는 양파(陽坡).


7

동명(東溟) 정두경(鄭斗卿)31)이 일찍이 북평사(北評事)가 되었을 때, 마천령(磨天嶺)에 올라 이런 시를 지었다.

말 달려 마천령에 오르니, 층층 봉우리는 구름 속에 들어 있네. 앞에는 큰 연못이 있는데, 모두들 북해(北海)라고 부르네.

계곡(谿谷) 장유(張維)32)가 크게 칭찬하여 우주를 떠받칠 만하다고 했다. 채유후(蔡裕後)33)가 일찍이 정두경에게 말 하기를, “자네의 <마천령> 시는 정말 기발하네. 나 같은 좁은 소견이 어찌 자네의 문장을 논하겠는가마는, 다만 ‘큰 연못이 있는데(有大澤)’를 ‘넓은 물(一泓水)’이라고 고친다 면 어떻겠나?”라고 했다. 정두경이 대답하기를, “자네는 사

31) 정두경(鄭斗卿, 1597∼1673): 조선 후기의 문인·학자. 본관은 온양(溫 陽). 자는 군평(君平), 호는 동명(東溟).

32) 장유(張維, 1587∼1638):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지 국(持國), 호는 계곡(谿谷)·묵소(默所). 33) 채유후(蔡裕後, 1599∼1660):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평강(平康). 자 는 백창(伯昌), 호는 호주(湖洲).


마천의 ≪사기≫를 읽어보지 아니했나? 이 말은 ≪사기≫ <대완전(大宛傳)>에 있는 것일세. 내가 어찌 근거 없는 말을 뽑아 쓰겠는가?”라고 했다. 채유후가 집으로 돌아가 <대완전>을 펴서 살펴보니, “끝없는 큰 연못에 다다랐는 데, 북해라고 했다(臨大澤無涯, 蓋乃北海云)”라는 말이 있 었으므로, 채유후는 비로소 감탄했다. 늘 사람들에게 말하 기를, “진실로 옛날 책을 두루 보지 아니하고는 정말 가볍게 남의 작품을 논할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鄭東溟斗卿, 嘗爲北評事, 登磨天嶺, 有一絶曰, “駈 馬磨天嶺, 層峯上入雲. 前臨有大澤, 盖乃北海云,” 谿谷大加稱賞, 以爲可撑柱宇宙云. 蔡湖洲嘗謂東 溟曰, “子之<磨天嶺>一絶, 固奇, 以余管見, 何敢 議子文章, 第‘有大澤’三字, 若改以‘一泓水’ 則何如?” 東溟笑曰, “君不讀馬史耶? 此語在馬史<大宛傳> 我豈無所據而杜撰耶?” 蔡還家考閱“大宛傳”有曰, “臨 大澤無涯, 盖乃北海云” 蔡始乃歎服, 每語人曰, “苟 不遍觀古書, 信不可輕議人製作”云.


8

우재 송시열34) 선생은 비단 도학(道學)만이 당시의 종주일 뿐만 아니라, 문장도 동방 제일의 대가였다. 금석문자가 그 의 손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 세상에서는 대개 부족하다고 여겼다. 그러므로 그가 지은 공사의 비갈(碑碣)이 몇 백 편 이 되는지 그 수를 알 수 없다. 그러나 모두 아주 뛰어나 외 울 만했으니, 실로 천고에 드문 일이다. 시 역시 전중(典重) 하여 법도가 있었는데, 그의 <유풍악(遊風岳)>이라는 시 는 이렇다.

옛글 속에 고인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듣고, 반평생 문을 닫고 글만 읽었네. 여기에 묻혀 끝나는 날 없을까 걱정이 되어, 다리를 끌고 날짐승을 좇아 이곳에 왔네. 풍악산엔 맑은 기운 천 년이나 쌓였고, 동해의 푸른 파도는 만 길이나 깊었네. 이곳이 남악구(南岳句)35)를 외기 제일 적당하니, 34) 송시열(宋時烈, 1607∼1689):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은진(恩 津). 아명은 성뢰(聖賚).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庵) 또는 우재(尤齋).

35) 남악구(南岳句): 남악은 중국 호남성에 있는 형산(衡山)을 말는데, 중국의 오악(五嶽) 가운데하나다. 주자의 ≪회암집(晦庵集)≫ 권5에 그가 지은 <취


날마다 높은 곳에 올라 길이 읊조린다.

이 시는 주자(朱子)36)의 <소리 내어 읊조리며 나는 듯 축 융봉을 내려간다(朗吟飛下祝融峰)>라는 시의 기상과 완 연히 한가지다. 내가 책 상자를 지고 화양(華陽)37)에 가서 선생을 모시고 수십 일을 잤는데, 밤마다 ≪주역≫·≪맹 자≫의 대전(大全)38)을 반복해서 읽고서, 끝까지 읽으면 다 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내가 “몇 번이나 책을 읽었습니까?”라고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세상에서 책 을 많이 읽었다는 사람들도 나만큼 읽은 사람은 없을 것이 다. 세상에서 전하기를 노수신이 많이 읽었다고 하나, 읽은

하여 축융봉을 내려오며 지음(醉下祝融峰作)>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가운 데 특히 “탁주 세 잔에 호기가 발동하여, 소리 내어 읊조리며 축융봉을 나는 듯 이 내려온다(濁酒三杯豪氣發, 朗吟飛下祝融峯)”라는 구절은 산에 오른 흥취 를 읊은 대표작으로 옛날 선비들 사이에서 많이 거론되던 것이다. 36) 주자(朱子): 남송의 유학자 주희(朱熹, 1130∼1200)를 높여 부르는 말. 주 희의 자는 원회(元晦)·중회(仲晦). 호는 회암(晦庵)·회옹(晦翁)·운곡산 인(雲谷山人)·둔옹(遯翁). 도학(道學)과 이학(理學)을 합친 이른바 송학(宋 學)을 집대성했다. 주요 저서에 ≪시전≫, ≪사서집주(四書集註)≫, ≪근사

록≫, ≪자치통감강목≫ 등이 있다. 37) 화양(華陽): 충북 괴산군의 지명. 송시열이 이곳의 화양구곡에 은거해 있 었음. 38) 대전(大全): 어떤 분야에 대한 사항이나 어떤 사람이 쓴 글을 빠짐없이 모 아 엮은 책을 말함.


것이 귀양 가 있던 19년 동안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어려서 부터 늙을 때까지 하루도 책을 읽지 않은 날이 지금까지 없 으니, 옛사람이나 요즘 사람을 막론하고 나만큼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尤齋先生, 非但道學爲一世所宗, 文章灝噩, 亦當爲

東方第一大家. 金石文字, 非出公手, 世皆歉然, 故

公私碑碣, 不知其幾百篇, 而皆宏傑可誦, 實千古所 罕, 詩亦典重有法. 其<遊楓岳詩>曰, “陳篇聞有 古人心, 半世牢關字字尋. 却怕埋頭無了日, 更將閑 脚逐飛禽. 楓山灝氣千年積, 蓬海滄波萬丈深. 此地 最宜南岳句, 每登高處費長吟.” 與朱夫子<朗吟飛

下祝融峯>氣象, 宛然一揆. 余於負笈華陽之日, 陪 宿數旬, 見其每夜輪誦周易孟子大全, 周而復始, 仍 問其讀書幾何, 則答曰, “世間多讀書者, 無如我, 世 傳, 盧蘇齋多讀, 而所讀者, 只在謫十九年而已, 我 則自少至老, 無日不讀, 至于今日, 古今人, 似無如 我者”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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