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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다운 마음 무위도식하며 일을 안 하는 법이나 배우는 것이 디킨스 시대 영국의 신사였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 어려운 사람에 대한 선행의 의무감은 신사가 신사로 남기에 충분했다.

≪위대한 유산≫을 쓸 당시의 디킨스. 1860


인텔리겐치아 2460, 2015년 2월 23일 발행

이선주가 뽑아 옮긴 찰스 디킨스의 ≪위대한 유산 천줄읽기≫ 미스 해비셤은 에스텔라를 양녀로 삼았고 또 나를 사실상 양자로 삼은 것이나 마찬가 지니까 우리 둘을 결합시켜 주려는 것이 그 녀의 의도였을 것이다. 그녀는 나에게 황폐 한 집을 복구하게 하고, 또 어두운 방에 햇빛 이 비치게 하고, 시계를 다시 가도록 맞추어 놓고, 차가운 벽난로에 불이 다시 붙도록 하 고, 거미줄을 걷어 내고 해충을 없애도록 하


려고 모든 것을 보류하고 있었던 것이다. 단 적으로 말해서 로망스의 젊은 기사의 빛나 는 위업을 모두 갖춘 뒤 공주와 결혼하라는 것이다.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 천줄읽기≫,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 지음, 이선주 옮김, 114∼115쪽

나는 누구인가? 주인공 핍이다. 어려서 부모를 잃고 스무 살 연상 누나와 대장장이 매부의 집에서 자랐 다. 누나의 결정으로 매부의 견습공이 되는 대신 미스 해비셤의 집에 다니기 시작한다.


미스 해비셤은 누군가? 마을의 귀부인이다. 돈을 노리고 접근한 남 자에게 결혼식 날 배신당한 뒤 세상을 등졌 다. 흰 드레스를 입고 신부 화환을 쓴 채 어두 컴컴한 방에서 수십 년간 시체처럼 지낸다. 그녀 집에서 핍은 무얼 하나? 양녀 에스텔라와 카드놀이를 한다. 그는 그 녀의 아름다운 모습에 매료된다. 그러나 미 스 해비셤으로부터 모든 남성을 실연에 빠 뜨리라는 가르침을 받고 자란 그녀는 그가 네이브(Knave)를 잭(Jack)이라고 부르고 손 이 거칠며, 볼품없는 장화를 신었다고 멸시 한다. 핍은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비천함과 가난과 무지를 깨닫고 자신의 신세를 원망 한다.


“공주와 결혼”한다는 희망은 어디서 왔나? 어느 날 갑자기 핍은 막대한 유산의 상속인 이 된다. 하루아침에 신분 상승의 꿈을 이루 자 런던에서 신사 교육을 받는다. 허영에 빠 져 매부를 무시하고 사치를 부리며 방탕하 게 생활한다. 누가 핍에게 재산을 주었는가? 핍이 두려워했던 탈옥수 매그위치다. 어릴 때 우연히 만났는데 그의 협박에 못 이겨 핍 은 음식과 줄칼을 가져다주었다. 그는 오스 트레일리아로 유배 간 뒤 그곳에서 돈을 벌 어 핍에게 유산으로 주려 한다.


매그위치에 대한 핍의 두려움은 사라지는가? 자신의 은인으로 거들먹거리는 매그위치를 보며 혐오감을 느낀다. 그러나 신사가 되기 위해 매부를 저버린 배은망덕한 자신보다 그가 훨씬 훌륭한 인간임을 깨닫는다. 핍은 부자가 되는가? 천만의 말씀이다. 유죄 판결을 받은 자의 재 산은 왕에게 귀속되기 때문에 매그위치의 재 산은 핍에게 상속되지 못한다. 그러나 핍은 유산을 받지 못하고 자신이 빚더미에 앉게 될 걸 알면서도 그가 죽을 때까지 곁을 떠나 지 않는다.


핍은 이제 어떻게 살아가는가? 매그위치가 세상을 떠난 뒤 며칠을 앓아눕 는다. 그때 매부가 찾아와 그를 돌보고 빚을 갚는다. 그 뒤 친구 허버트와 함께 식민지 이 집트에서 무역업으로 돈을 번다. ≪위대한 유산≫은 어떤 작품인가? 완결성 있는 형식, 깊이 있는 내용, 풍자적인 유머를 모두 갖춘 완벽한 소설이다. 핍의 성 장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19세기 영국의 신사 계급을 비판하고 그 이상을 탐구한다. 디킨스가 비판하는 신사의 모습은 무엇인가? 어떤 노력과 노동도 없이 상속받은 유산으 로 무위도식한다. 핍은 신사 교육을 받으며


수동의 삶을 산다. 그가 하는 일이란, 무엇을 시켜야 좋을지 모를 제복 입은 시동을 문밖 에 세워 두는 것과 유산상속이 완수될 날을 초조하고 무력하게 기다리는 것이다. 마치 ‘일을 안 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신사 교육인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핍에게 투영된 신사의 이상은 뭔가? ‘신사다운 마음’이다. 매그위치가 죽을 때까 지 지킨 인간적 충절, 친구 허버트에게 베푼 선행을 보라. 덕분에 그는 유산을 상속받지 못했는데도 신사로서 자립에 성공했다. 이 작품에 대한 당대의 반응은? 디킨스의 여느 소설과 마찬가지로 큰 인기


를 얻었다. 그는 자신이 편집장으로 있던 주 간 잡지 ≪1년 내내(All the Year Round)≫에 1년여 동안 이 소설을 연재했다. 잡지 판매 부수가 치솟았다. 이 책은 원전을 어떻게 뽑아 옮겼나? 줄거리와 주제를 고려해 주요 대목을 4분의 1가량 뽑아 옮겼다. 작품 전체의 내용을 파 악할 수 있도록 필요한 줄거리를 요약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선주다. 이화여대 HK연구교수다.


신사다운 마음 무위도식하며 일을 안 하는 법이나 배우는 것이 디킨스 시대 영국의 신사였다. 그러나 인간에 대한 변함없는 신뢰, 어려운 사람에 대한 선행의 의무감은 신사가 신사로 남기에 충분했다.

≪위대한 유산≫을 쓸 당시의 디킨스. 1860


위대한 유산 천줄읽기 찰스 디킨스 지음 이선주 옮김 2012년 2월 20일 출간 사륙판(128 *188) 무선제본, 269쪽, 12,000원


작품 속으로

위대한 유산


제1장

아버지의 성은 피립이고, 내 이름은 필립이었다. 그러나 내 어린 혀가 핍 이상 더 길게나 더 분명하게 발음을 낼 수 없었 으므로 나는 나 자신을 핍이라고 불렀다. 따라서 다른 사람 들도 나를 핍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아버지의 성이 피립이라는 사실은 아버지의 비문과 누 나의 말에 근거를 둔 것이다. 누나는 조 가저리와 결혼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본 적도 없고, 그들과 비슷한 사람조차 도 본 적이 없었던 탓에, 나는 엉뚱하게도 부모님의 비문을 읽고 그들의 모습을 마음대로 상상하곤 했다. 아버지 비문 의 글자 모양을 보고 나는 아버지가 네모난 얼굴에 체구는 건장하며 살결은 검은 편이고, 머리카락은 검고 곱슬곱슬 했으리라고 상상했다. ‘상기한 자의 부인, 조지아나 역시 여 기 누워 잠잔다’라는 비문의 글자 모양과 구절을 보고 나는 어머니의 얼굴에 주근깨가 있었으며 몸이 허약했으리라고 결론을 내렸다. 부모님의 무덤 옆에는 다섯 개의 조그마한 마름모꼴 비석이 나란히 한 줄로 서 있었다. 이것은 내 다섯 동생들의 죽음을 추도하기 위한 것이었다. 동생들은 생존 경쟁에서 너무도 일찍 자신의 삶을 포기했던 것이다. 나는 이 조그만 비석들을 보면서 동생들이 연이어 태어났으며 또


한 그런 신세에서 결코 벗어난 적이 없었으리라는 확신을 굳힐 수 있었다. 우리 고장은 강 옆 습지대였으며 바다에서 20마일 안쪽 에 있었다. 내가 사물의 정체를 처음으로 폭넓고 생생하게 기억하게 된 것은, 아마도 잊지 못할 어느 습기 차고 추웠던 초저녁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때 쐐기풀로 뒤덮인 장소가 틀림없이 교회 마당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교구의 신 도였던 아버지 필립 피립과 어머니 조지아나가 죽어서 묻혀 있다는 사실, 그리고 어린 내 다섯 형제 역시 세상을 등지고 거기 묻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제방과 무덤과 대문이 서로 교차된 교회 마당 건너에 있는 어둡고 평평한 황야에 소들 이 흩어져 풀을 뜯고 있는 곳이 습지대라는 것과 그 습지대 건너 낮게 펼쳐진 지평선 너머에 강이 있다는 것, 그리고 더 멀리 있는 야생동물의 소굴로부터 바람이 불어오고, 그 너 머에 바다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 모든 음 산한 환경이 점점 무서워져서 온몸을 웅크리고 훌쩍이고 있 는 것이 바로 나 자신 핍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소리 내지 마라!” 교회 현관 쪽 무덤 사이에서 한 사람이 느닷없이 나타나 서 무서운 목소리로 외쳤다. “꼼짝 마라, 요 조그만 악마야, 꼼짝하면 모가지를 잘라 버릴 테다!”


사나운 인상의 남자는 너절한 잿빛 옷을 입고, 발목에는 쇠고랑을 차고 있었다. 모자를 쓰지 않은 머리에는 헌 헝겊 조각을 매고 있었고, 다 닳아 빠진 구두를 신고 있었다. 그 는 물에 빠져 몸이 흠뻑 젖었으며 진흙탕에 범벅이 되어 형 편없는 몰골이었다. 쐐기풀에 찔리고 가시덤불에도 긁혀 다리는 절름거리고, 몸은 벌벌 떨고, 눈을 부라리며 성난 목 소리로 떠들었다. 그는 내 턱을 잡고 나를 노려보았는데, 심 한 추위 때문에 이가 서로 딱딱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제발 목숨만 살려 주세요.” 나는 공포에 떨며 애걸했다. “제발 죽이지는 말아 주세요.” “네 이름을 말해 봐!” 그 남자가 말했다. “어서!” “핍이에요.” “다시 말해 봐!” 나를 노려보며 그가 말했다. “크게 말해!” “핍, 핍이라고 해요.” “어디 사는지 말해 봐. 네가 사는 곳을 대!” 남자가 말했다. 나는 교회에서 1마일 이상 떨어진 오리나무와 가지를 바 싹 자른 나무숲 사이 평평한 해안에 자리 잡은 우리 마을 쪽 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사나운 사내는 나를 잠시 노려보더니 갑자기 나를 거꾸 로 들고 내 호주머니를 털었다. 호주머니 속에는 한 조각의 빵 부스러기 외에는 다른 건 아무것도 없었다. 교회가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보였을 때 그는 너무나 갑자기 사납게 나


를 거꾸로 들었다. 그래서 나는 머리 위에 있다가 갑자기 발 꿈치로 내려간 교회의 뾰족탑을 발밑으로 보았다. 교회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을 때, 나는 높다란 비석 위에 떨며 앉아 있었다. 그 남자는 게걸스럽게 빵 조각을 먹어 대고 있었다. “이 녀석아, 네 볼따구니는 포동포동하구나.” 그는 자기 입술을 핥으며 지껄였다. 당시 나는 내 나이에 비해 몸집이 작고 약한 편이었으나 볼은 오동통하게 살이 쪘던 것 같다. “이 볼따구니를 먹지 못하면 저주를 받을 거다. 당장 잡 아먹을 테다!” 그는 머리를 흔들거리며 나를 위협했다. 나는 그가 올려놓은 비석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찰싹 달라붙었다. 그리고 그가 나를 잡아먹지 말기를 바란다고 간절하게 말했다. “자, 그럼 이봐, 네 엄마는 어디 있지?” 남자가 음흉스럽 게 물었다. “저기 있어요, 아저씨!” 내가 말했다. 그는 놀라서 뛰어 도망가다가 다시 멈추고 나를 자기 어 깨 너머로 쳐다보았다. “저기요!” 나는 겁먹은 목소리로 겨우 설명했다. “‘조지 아나 역시 여기 누워 있다’ 저게 우리 엄마예요.” “아아!” 그는 돌아오며 말했다. “네 엄마 옆에 있는 게 네 아버지냐?”


“예, 아저씨. 아버지도 옛날에 이곳에서 살았대요.” “하! 그럼 누구하고 같이 살지? 혹시 내가 널 살려 준다면 말이야. 아직 내 맘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누나하고 살아요, 아저씨. 대장장이 조 가저리 부인 말 이에요.” “대장장이라고, 응?” 그는 자기 다리를 내려다보며 말 했다. 자신의 다리와 나를 번갈아 여러 번 우울하게 내려다보 더니, 그는 내게 다가와 두 팔로 나를 꽉 잡았다. 그리고는 온 힘을 다해 나를 뒤로 자빠뜨렸다. 그의 눈은 아주 무섭게 내 눈을 쏘아보고, 나는 풀 죽은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자, 잘 들어. 문제는 네가 사느냐 죽느냐는 거다. 너 줄 칼이 뭔지 알지?” “예, 알아요, 아저씨.” “그럼 음식물이 어떤 건지 알지?” “예, 알아요, 아저씨.” 그는 한 가지씩 물을 때마다 나를 조금씩 뒤로 자빠뜨려 가며 위협했다. “내게 줄칼을 가져와.” 그는 나를 또 한 번 뒤로 젖혔다. “그리고 음식물도 가져와. 만약 안 가져오면 네 심장과 간을 빼어 버릴 테다.” 그는 다시 나를 뒤로 넘어뜨렸다. 나는 굉장히 두렵고 어지러워 두 손으로 그에게 꼭 달라


붙으며 말했다. “제발 저를 바로 앉게 해 주세요. 그러면 아프지도 않고 아저씨 이야기를 더 잘 들을 수 있을 거예요.” 그가 나를 난폭하게 내동댕이쳤기 때문에 교회당 뾰족 탑이 그 꼭대기의 풍향계 너머로 거꾸로 한 바퀴 빙글 도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내 팔을 붙들어 비석 위에 올려 앉히고 다시 소름 끼치는 말을 계속했다. “내일 아침 일찍 줄칼과 음식을 가져와. 네가 그걸 가져 오고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지 않는다면 너를 살려 주 겠다. 만약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네 심장과 간을 꺼내 구워 먹을 테다. 지금 나 이외에도 숨어 있는 젊은 사람이 있는 데, 그에 비하면 나는 천사다. 그는 지금 내가 하는 말을 모 두 듣고 있지. 그 사람은 어린아이를 잡아 심장과 간을 빼먹 는 데 무서운 재주를 가지고 있어. 그로부터는 아무리 애들 이 숨으려 해도 소용없다. 너 같은 어린애는 문을 걸어 잠그 고 침대 속에 누워 이불을 머리끝까지 쓰면 편안하고 안전 하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그 사람은 가만히 어린애에게 기어 들어가서 심장과 간을 찢어 버린단 말이지. 지금도 그 가 너를 해칠까 봐 내가 망봐 주고 있는 거란 말이야. 그를 네 가까이 못 가도록 하는 일은 굉장히 어렵단다. 자, 너 어 떻게 할래?” 나는 엉겁결에 내일 아침 일찍 줄칼과 먹을 것을 구해서


포병대 주둔지로 가겠다고 약속했다. “네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느님이 너를 때려죽일 것이라고 말해!” 그가 시키는 대로 내가 말하자, 그는 나를 비석 위에서 내려놓았다. “자, 이제 네가 할 일을 기억하고, 그 무시무시한 사람을 잊지 말고 집으로 가 버려!” “아, 아, 안녕히 주무세요, 아저씨.” 나는 말을 더듬거렸다. “암, 나도 그러길 바란다!” 그는 춥고 습기 찬 뜰 너머를 둘러보며 자기 주위를 살폈다. “제길, 차라리 개구리나 뱀장 어 팔자라면 좋을걸!” 그는 떨리는 몸뚱이에 양팔을 꽉 끼고 교회당 담 쪽으로 절름거리며 걸어갔다. 쐐기풀과 가시덤불로 온통 뒤덮인 묘지 사이를 걸어가는 그는, 마치 무덤으로부터 슬그머니 손을 뻗어 그의 발목을 잡고 놓치지 않으려는 죽은 이들의 손을 뿌리치며 걸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교회의 낮은 담까지 가서 무감각하고 뻣뻣한 다리를 겨우 치켜 담 을 넘었다. 그런 뒤 그는 뒤돌아보며 나를 찾는 눈치였다. 그가 돌아서자마자 나는 집을 향해 줄행랑을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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