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20150316 p

Page 1

조선의 봉건과 반봉건 거북은 용왕의 충신이다. 조선의 봉건 체제를 신봉한다. 토끼는 용왕을 속인다. 목숨을 구하고 자유를 꿈꾼다. 거북은 순수하나 미련하다. 토끼는 불온하나 꾀바르다. 누가 이기는가?

‹귀묘도›, 작자 미상, 19세기


인텔리겐치아 2493, 2015년 3월 16일 발행

김동건이 옮긴 ≪토별산수록≫

네 말도 옳다마는 고금에 일렀으되 ‘남이 죽 는 것이 내 고뿔만 못하다’ 하니 너는 충성하 려니와 나는 무슨 일이뇨? 내 일을 생각하면 만경창파(萬頃蒼波)에 이내 몸이 네 등에 올 라앉아 무사히 돌아오니 일단 정표 바이없 이 그저 돌아가는 것이 도리어 섭섭하다. 용 왕이 무도하지, 너야 무슨 죄 있느뇨? 우리 둘은 혐의(嫌疑) 마세. -≪토별산수록≫, 작자 미상, 김동건 옮김, 118쪽


≪토별산수록≫은 ≪토끼전≫ 아닌가? 120여 종에 달하는 ≪토끼전≫ 현전 이본 중 하나다. 어떤 이본들이 있나? ≪토끼전≫은 토끼전·별주부전·별토전· 토별전·수궁용왕전·중산망월전·수궁 가·수궁록 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린다. 내 용과 결말이 다양하다. 이본이 120여 종이나 되는 이유가 뭔가? 조선 후기는 역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이 혼 재하던 시기다. 양반 문학과 서민 문학의 혼 융으로 향유층의 다양한 이해도 한몫했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우화의 특성 때문에


당대의 다양한 지향을 반영하기도 쉬웠을 것이다. ≪토별산수록≫은 다른 이본과 어떤 차이가 있는가? 김동욱 소장 ≪토별산수록≫은 이제까지 한 번도 현대역되어 출간된 적이 없는 이본이다. 여러 이본 중 풍부한 이야기가 있어서 ≪토끼 전≫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다. ≪토끼전≫의 뿌리는 무엇인가? 인도의 본생설화(本生說話)와 육도집경(六 度集經) 등의 불전설화다. 본생설화는 석가 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하던 때의 이야 기다. 불교가 전파되면서 많은 불교 경전이


한역된다. 불전 설화가 우리나라에 전파되 어 <구토지설>과 같이 문헌으로 정착되거 나 구전되다가 ≪토끼전≫의 모태가 되었을 것으로 본다. <구토지설>은 무슨 이야기인가? 용왕 딸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거북이가 토 끼를 구슬려 용궁으로 데려온다. 오는 길에 사실은 간이 필요해서 가는 것이라 바른말 을 한다. 토끼는 간을 씻어 바위에 널어 두었 다 하고 육지로 돌아가 달아난다. 어디에 있는 이야기인가? ≪삼국사기≫ ‘열전’에 있다. 신라의 김춘추 가 고구려에 청병하러 간다. 보장왕은 마목


령(麻木峴)과 죽령(竹嶺)을 요구한다. 춘추 는 신하가 국가의 토지를 마음대로 할 수 없 다고 대답하고 옥에 갇힌다. 이때 선도해가 찾아와 춘추에게 <구토지설>을 들려준다. 김춘추는 거북이와 토끼의 이야기를 어떻게 이용하는가? 고구려 왕에게 자신이 귀국하면 맹세코 신 라 왕에게 청해 마목령과 죽령을 돌려주겠 다고 약속한다. 그러고는 적지를 빠져나온 다. 토끼의 계교를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구토지설>은 어떻게 ≪토끼전≫이 되었는 가? 민간설화가 되면서 종교성은 완전히 탈색되


었다. 토끼와 별주부의 지략 대결을 중심으 로 한 설화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용궁 설 화, 나이 다툼 설화, 토끼의 위기 극복 설화 를 수용하면서 부연·변용되어 판소리·소 설로 발전했다. 이 작품에서 토끼와 별주부는 어떤 존재인가? 토끼는 용왕으로 표상되는 봉건 체제를 부 정한다. 개인의 자유로운 삶을 꿈꾼다. 별주 부는 유교 사회의 전통 규범인 충을 정당화 한다. 봉건 체제를 신봉하고 고수하는 보수 이념을 반영한다. 이들에 대한 조선조의 평은 무엇인가? 토끼와 별주부에 대한 평가는 갈린다. 19세


기 중엽 이유원은 판소리 <수궁가>에 대한 감상을 시로 남겼다. <관극팔령 8수(觀劇八 令八首)> 중 한 수에 토끼에 대한 긍정적이 고 우호적인 태도가 보인다. 이런 시다. 용왕이 약 구한다 별주부를 보내려고 수정궁에 물고기 모여 회의를 한다. 달에서 약 찧는 신령스런 토끼를 어찌하여 업신여겨 육지 엿봤나. 龍伯求仙遣主簿 水晶宮闢朝鱗部 月中搗藥兎神靈 底事凌波窺旱土


반대 평은 무엇인가? 거의 같은 시기 송만재는 <관우희(觀優 戱)>라는 시에서 토끼를 비판하고 별주부 의 충을 부각한다. 이런 시다. 동해의 자라가 사신이 되어 임금 위한 충성으로 약 구해 나섰네. 얄미운 토끼는 요설을 펴서 간 두고 왔다고 용왕을 우롱하네. 東海波臣玄介使 一心爲主訪靈丹 生憎缺口偏饒舌 愚弄龍王出納肝


당신은 누구인가? 김동건이다.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다.


조선의 봉건과 반봉건 거북은 용왕의 충신이다. 조선의 봉건 체제를 신봉한다. 토끼는 용왕을 속인다. 목숨을 구하고 자유를 꿈꾼다. 거북은 순수하나 미련하다. 토끼는 불온하나 꾀바르다. 누가 이기는가?

‹귀묘도›, 작자 미상, 19세기


토별산수록 작자미상 김동건 엮음 2015년 2월 25일 출간 사륙판(128 *188) 무선제본, 136쪽, 12,000원


작품 속으로

토별산수록


용왕이 병을 얻다

태극이 초판(初判)1)함에 산천 만물이며 초목과 주수들이 비로소 생장하니 그 가운데 어찌 기이한 물건이 없으리오. 이러므로 천하에 명산이 다섯이 있으니, 동에는 태산(泰山) 이요, 서에는 화산(華山)이요, 남에는 형산(衡山)이요, 북 에는 항산(恒山)이라. 그 가운데는 숭산(崇山)이 있으니 이 른바 오악(五嶽)이라. 그 밖으로 사해가 둘러 각각 용왕이 있어 사시(四時)로 비와 구름을 베푸니, 동해에는 광덕왕 (廣德王),2) 서해에는 광윤왕(廣潤王),3) 남해에는 광리왕 (廣利王),4) 북해에는 광택왕(廣澤王)5)이라. 사해로 용왕 이 서로 왕래하며 풍우와 구름을 피워 조화가 무궁하더라. 이때 남해 용왕이 홀연 득병(得病)하여 사대삭신6) 육천 마디에 성한 곳이 바이없어 신농씨(神農氏)7) 백초약(百草 1) 초판(初判): 처음으로 갈라짐. 2) 광덕왕(廣德王): 동해의 용신. 본래 이름은 하명(河明). 당태종에 의해 광 덕왕에 봉해짐. 3) 광윤왕(廣潤王): 서해의 용신. 본래 이름은 거승(巨乘). 4) 광리왕(廣利王): 남해의 용신. 본래 이름은 축융(祝融). 5) 광택왕(廣澤王): 북해의 용신. 본래 이름은 강(强). 6) 사대삭신(四大∼): 온몸.


藥)8)과 관음보살 감로수(甘露水), 태상노군(太上老君)9)

금단약(金丹藥)과 서왕모(西王母)10) 반도(蟠桃)11)를 얻어 도 무효하여 수국이 황황하더라.

7) 신농씨(神農氏): 삼황(三皇)의 한 사람. 백성에게 경작을 가르친 데서 신농 이라고 하며 불의 덕으로 왕이 된 데서 염제(炎帝)라고도 한다. 사람의 몸에 소의 머리를 가졌으며 복희씨(伏羲氏)의 뒤를 이어 쟁기를 만들고 온갖 풀을 맛보아 의약을 마련하였다. 8) 백초약(百草藥): 신농씨가 약으로 쓸 수 있을지를 알아보려고 맛보았다는 백 가지 풀. 9) 태상노군(太上老君): 도가(道家)에서 노자(老子)를 높이어 부르는 말. 10) 서왕모(西王母): 고대 중국의 선녀. 주(周)나라 목왕(穆王)이 서쪽 곤륜산 에 사냥을 가서 서왕모를 만나 요지(瑤池)에서 놀다가 돌아옴을 잊었다고 하 는 전설이 있고, 또 한(漢)나라 무제(武帝)가 장수(長壽)를 원하고 있을 때, 그 를 가상히 여겨 하늘에서 선도 일곱 개를 가지고 내려와 주었다고 하는 전설도 있다. ≪산해경(山海經)≫에는 그 모양이 반인반수(半人半獸)로 표범의 꼬 리에 범의 이를 가지고 더벅머리에 머리꾸미개를 쓰고 있고, 서왕모의 남쪽에 는 세 마리의 청조(靑鳥)가 있어 먹을 것을 마련해 준다고 적고 있다. 11) 반도(蟠桃): 삼천 년에 한 번씩 열린다고 하는 전설상의 복숭아.


도사가 토간을 지시하다

일일은 한 도사가 수국에 들어와 영덕전(靈德殿)1) 문 밖에 서 청알(請謁)2)하거늘, 용왕이 내시 가자미로 하여금 도사 를 올릴 때, 용왕이 위(位)에 누워 가로되, “와병(臥病)에 인사절(人事絶)3)이라. 과인이 병이 있어 존객(尊客)을 보아도 예(禮)를 못하오니 바라건대 용서하 라.” 도사가 가로되, “빈도(貧道)는 남해 형산 오유(娛遊)하는 광객(狂客)이 라. 복서지술(卜筮之術)4)을 약간 짐작하옵더니, 대왕의 병 이 중하다는 기별 듣고 문병코자 왔사오니 병 증세를 듣고 자 하나이다.” 용왕이 눈을 들어 살펴보니 기운은 허황(虛荒)하고 의기 (意氣) 표일(飄逸)하니 진실로 범인(凡人)이 아니라.

1) 영덕전(靈德殿): ≪전등신화(剪燈神話)≫<수궁경회록(水宮慶會錄)> 에서 남해 광리왕(廣利王)이 지었다는 궁전. 2) 청알(請謁): 뵙기를 청함. 3) 와병인사절(臥病人事絶): 병을 앓고 있으면 사람의 일도 끊김. 4) 복서지술(卜筮之術): 점치는 기술.


도사를 향하여 슬피 고(告)하여 왈, “과인이 우연 득병(得病)하여 병이 골수에 깊이 들어 꼭 죽기를 기약하더니, 천행(天幸)으로 선생을 만났으니 이는 과인의 홍복(洪福)이라. 바라건대 일루잔명(一縷殘命)을 불쌍히 여기사 자세히 말씀하소서.” 도사 왈, “그간 무슨 약을 썼나이까?” 용왕이 답왈, “병 증세와 약을 말할진대, 열병(熱病)에는 죽엽석골탕 이요, 내종(內腫)5)에는 부자이중탕이요, 음허(陰虛)6)에는 녹용온중탕이요, 풍담(風痰)7)에는 이진오평산이요, 요통 (腰痛)에는 모과지골산이요, 각통(脚痛)에는 우슬모과탕이 요, 대변불통(大便不通)에는 가미승갈탕이요, 소변불통(小 便不通)에는 가미도양산이요, 안질에는 가미청삼탕이요,

치질에는 가미청원산이요, 학질(瘧疾)에는 가미장군탕이 요, 입병에는 용석산을 썼건마는 조금도 효험 없고 점점 정 신이 혼미하고 구미가 없는지라. 원컨대 선생은 자세히 진

5) 내종(內腫): 내장에 난 종기. 6) 음허(陰虛): 음기가 허약한 병. 7) 풍담(風痰): 풍으로 생기는 담병.


맥하여 회생할 길을 가르치소서.” 도사가 듣기를 다하매 왈, “맥을 의논할진대 음맥(陰脈)은 슬어지고 양맥(陽脈)은 동(動)하매 미구(未久)에 위태할지라. 대왕을 위하여 약을 가르치니 이 약 곧 아니면 회춘키 어려우리다.” 용왕이 대왈, “무슨 약을 쓰리오?” 도사 왈, “형산(衡山)에 있는 토끼를 생금(生擒)하여 간을 내어 먹은즉 몸이 소성(蘇醒)8)하고 만수무강하오리다.” 용왕 왈, “토끼의 간이 어찌 약이 되느뇨?” 도사 왈, “용(龍)은 진(辰)이니 오행의 토(土)요, 토끼는 묘(卯)니 오행의 목(木)이라. 목극토(木剋土)가 되고, 천기대요(天機 大要)9)에 ‘갑인진손(甲寅辰巽)은 대강수(大江水)10)요 진

8) 소성(蘇醒): 몸이 회복됨. 9) 천기대요(天機大要): 조선 영조 때 지백원(池百源)이 역학과 오행설의 원 리에 의하여 장례, 혼인, 제사 등 인간 생활 전반에 대한 길흉화복을 가리는 방 법을 기술한 책. 10) 갑인진손 대강수(甲寅辰巽 大江水): 갑(甲), 인(寅), 진(辰), 손(巽)은 큰


간사산(辰艮巳山)은 원속목(元屬木)11)이라’ 하였으니, 음 양이 변하여 수생목(水生木)이 되는 고로 약이 되나이다.” 용왕 왈, “말씀 당연하나 과인은 벽해창파(碧海蒼波) 깊고 깊은 수궁에 처(處)하였고 토끼는 유수청산(流水靑山)에 있으 니, 물과 산이 다르거늘 어찌 토끼를 구하리오. 옛날 진시황 (秦始皇)12)은 만승천자(萬乘天子)13)로되 장생불사하려 하 고 방사(方士)14) 서불(徐巿)15)을 동남동녀(童男童女)와 함 께 삼신산(三神山)에 보내었더니, 불사약을 구하지 못하고

여산(驪山)16) 송백(松柏) 일부토(一抔土)17)에 속절없이 죽

강의 기운을 나타냄. 11) 진간사산 원속목(辰艮巳山 元屬木): 진(辰), 간(艮), 사(巳), 산(山)은 원 래 오행의 목(木)에 속함. 12) 진시황(秦始皇): 중국 진(秦)나라의 황제. 육국을 멸하여 천하를 통일하 고 봉건제를 고쳐서 군현제를 실시하였으며 흉노 및 남월을 쳐서 확장한 후 만 리장성을 쌓았다. 삼신산에 서불(徐巿)을 보내어 불사약을 구해오게 했으나 끝내 얻지 못해 죽고 말았다. 13) 만승천자(萬乘天子): 만 대의 수레를 가진 천자. 14) 방사(方士): 신선의 술법을 닦는 사람.

15) 서불(徐巿): 진시황(秦始皇) 때의 방사(方士). 진시황에게 장생불사약을 구해오겠다고 진언하여 수천 명의 동남동녀와 함께 많은 재물을 하사받아 삼 신산이 있다는 동쪽 바다로 갔으나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16) 여산(驪山): 중국 섬서성 임동현에 있는 산. 진시황(秦始皇)의 무덤이 있 는 곳.


었거든, 과인은 심수(深邃)18)한 궁궐에 유벽(幽僻)하게 숨 어 있어 왕래하는 토끼를 어찌 얻으리오?” 도사 가로되, “정성이 지극하면 감천하고 지성소도(至誠所到)에 금석 (金石)을 가투(可透)19)라 하였으니, 대왕의 성덕(聖德)으 로 어찌 한 토끼를 얻지 못하리오. 하물며 군신은 오륜에 으 뜸이요 부자 일체라. 옛날 맹종(孟宗)20)은 부모를 위하여 엄동설한에 죽순(竹筍)을 득(得)하였고, 위동은 임금을 위 하여 황천지부(黃泉地府)에 서신을 부쳤으니, 대왕의 남해 는 지방이 삼만 리요, 제신이 수천이라. 어찌 여러 신하 중 에 대왕의 병세를 위하여 토끼를 잡을 자가 없사오리까?”

17) 일부토(一抔土): 한 줌의 흙. 18) 심수(深邃): 깊숙하고 그윽함. 19) 지성소도 금석가투(至誠所到 金石可透): 정성이 지극하면 쇠와 돌도 뚫 음. 20) 맹종(孟宗): 중국 삼국시대 오(吳)나라의 효자.


지금까지 북레터 <인텔리겐치아>를 보셨습니다. 매일 아침 커뮤니케이션북스와 지식을만드는지식 저자와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인텔리겐치아>사이트(bookletter.eeel.net)를 방문하면 모든 북레터를 만날 수 있습니다.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