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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가 사는 곳이 여기다 부처가 위대한 이유는 사람이 위대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위대한 이유는 자연이 위대하기 때문이다. 자연이 위대한 이유는 마음이 위대하기 때문이다. 부처는 늘 여기서 산다.

순천 송광사 십육조사진영 중 지눌 진영. 작자 미상. 조선 중기


인텔리겐치아 2499, 2015년 3월 19일 발행

경완이 옮긴 지눌의 ≪권수정혜결사문≫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납니다. 넘 어진 곳도 땅이요, 일어서기 위해 의지해야 할 곳도 땅입니다. 한마음이 미혹해 끝없이 번뇌하면 중생이고 한마음 깨달아 마음 씀이 다함없으면 부처님입니다. 깨닫고 깨닫지 못 한 것은 분명히 다르지만 모두 이 한마음이니 마음을 떠나면 부처도 깨달음도 없습니다.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 지눌(知訥) 지음, 경완 옮김, 3쪽


권수정혜결사문이란 무슨 뜻인가? 정과 혜를 수행하는 결사를 제안하는 문장 이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난다는 것이 무슨 말인가? 근본인 마음으로 돌아가라는 뜻이다. 당나 라의 불교학자 이통현(李通玄)의 선언을 지 눌이 인용해 결사의 문장을 지었다. 결사의 문장을 짓는다는 것은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결사를 시작하며 내적인 결심을 다지는 선 언을 한 것이다.


지눌이 결사를 제안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눌은 고려의 승려다. 그는 당시 불교계 혼 란의 원인을 참된 수행의 부재라고 보았다. 그래서 결사가 필요했다. 결사는 어떤 행동을 말하는 것인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단체를 만드는 것이 다. 그러나 지눌은 다만 눈에 보이는 물리적 인 사실이 아니라 함께 예불하고 경을 읽고 맡은 소임에 따라 살아가는 자세를 말했다. 당시 고려 불교의 사정이 어땠는가? 고려에서 불교는 사회문화의 지성을 대표하 는 흐름이었다. 그러나 무신정권과 몽고의 침입을 거치고 나서, 지눌이 살던 시대에는


권력에 밀착하고 세속화되었다. 참된 수행의 부재란 어떤 상황을 가리키는가? 지눌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들을 돌이켜 보 니 아침부터 밤까지 잘못하고 불법 만난 것 을 자랑삼아 남과 나라는 차별상만 만들어 냅니다. 세상에 널린 것이 이익과 명리라는 풍진이니, 도와 덕은 닦지 않고 의식을 받아 입습니다. 출가는 했으나 무슨 공덕이 있겠 습니까?” 그가 결사문에서 말한 것은 무엇인가? 도반들에게 바르게 수행하기를 권하고 그들 의 회의와 두려움을 반박하고 설득했다. 진 리를 설파하고 수행 방법을 자세히 일러 주 었다.


바르게 수행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명리를 버리고 인연법에 따라 불성을 기르면 서 생에 대한 헛된 집착을 놓는 것이다. 옛적 고승 대덕들의 은일을 추구한다. 수행의 핵심은? 정혜쌍수(定慧雙修), 선교일치(禪敎一致), 돈오점수(頓悟漸修)다. 정혜쌍수란? 정(定)과 혜(慧)를 함께 닦는 것이다. 부처님 의 근본 가르침이자 최상의 방편이다. 이를 실천하면 누구나 성불할 수 있다.


정은 무엇인가? 선정(禪定)이다.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 것 을 말한다. 이것을 얻으면 육욕을 넘어설 수 있다. 혜는 무엇인가? 지혜다. 어리석음이 없는 것을 말한다. 이것 을 얻으면 생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정혜를 어떻게 얻을 수 있나? 신심을 잃지 않고 자신을 이기면 된다. 자신을 이기면 부처가 되는가? 불법은 곧 중생의 마음이다. 이 마음에 의지 해서 마하연(摩訶衍)의 뜻이 드러난다. 말세


중생이라고 한탄하고 능력이 부족하다고 뒤 로 물러나지 말아야 한다. 오로지 자신을 믿 고 신심을 내어 부지런히 수행하면 된다. 정말 아무나 부처가 될 수 있는가? 일체법이 다 마음의 헤아림이다. 마음을 헤 아릴 수 있으면 염불하며 바라지 않더라도 정토에 태어날 것이 틀림없다. 지눌도 그렇게 말했는가? 그는 심지어 유가나 도가에 몸을 담고 있는 사람도 내적 수행에 정진하고자 한다면 결사 문 뒤에 이름을 적는 것을 허용한다고 했다.


당신에게 지눌은 어떤 의미인가? 이 책에서 스님의 자비로움과 자상함을 느 낀다. 그의 말은 수행의 근본으로 돌아가라 는 경책이 아니라 따스함이 전해지는 생생 한 가르침으로 다가온다. 처음 중이 되고 나 서 본 글도 스님의 ≪계초심학인문(誡初心 學人文)≫이다. 스님의 글이 마음의 평화와 안녕을 구하는 모든 사람에게 희망이 되기 를 바란다. 당신은 누구인가? 경완이다. 예산 수덕사 승려다.


부처가 사는 곳이 여기다 부처가 위대한 이유는 사람이 위대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위대한 이유는 자연이 위대하기 때문이다. 자연이 위대한 이유는 마음이 위대하기 때문이다. 부처는 늘 여기서 산다.

순천 송광사 십육조사진영 중 지눌 진영. 작자 미상. 조선 중기


권수정혜결사문 지눌 지음 경완 옮김 2012년 3월 20일 출간 사륙판(128 *188) 무선제본, 161쪽, 15,000원


작품 속으로

勸修定慧結社文 권수정혜결사문


1. 서문


땅에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난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짚고 일어납니다. 넘어진 곳도 땅이 요, 일어서기 위해 의지해야 할 곳도 땅입니다. 한마음이 미 혹해 끝없이 번뇌하면 중생이고 한마음 깨달아 마음 씀이 다함없으면 부처님입니다. 깨닫고 깨닫지 못한 것은 분명 히 다르지만 모두 이 한마음이니 마음을 떠나면 부처도 깨 달음도 없습니다.

恭聞. 人因地而倒者. 因地而起. 離地求起. 無有是處 也. 迷一心而起無邊煩惱者. 衆生也. 悟一心而起. 無 邊妙用者. 諸佛也. 迷悟雖殊. 而要由一心. 則離心求 佛者. 亦無有是處也.


마음을 그윽하게

저 지눌은 젊은 날, 불문에서 청춘을 불사르고 참구해 자비 의 부처님께서 드리우신 진리를 자세히 익혔습니다. 부처 님의 가르침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모든 인연을 쉬고 마음을 그윽하게 해서 외부 경계에 휘둘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경 전에서 “부처의 경계를 알고 싶으면 그 뜻을 깨끗이 해 허공 과 같아야 한다”고 한 것이 이 말입니다.

知訥. 自妙年. 投身祖域. 遍參禪肆. 詳其佛祖垂. 慈爲 物之門. 要令我輩. 休息諸緣. 虛心冥契. 不外馳求. 如 經所謂若人欲. 識佛境界. 當淨其意如虛空等之謂也.


출가는 했으나 무슨 덕이 있겠습니까?

부처님을 보고 듣고 염불하고 수행을 배울 수 있는 인연은 수승(殊勝)한 것입니다. 지혜로운 마음으로 관조하고 스스 로 불심을 닦아 불도를 이루면 부처님의 은혜에 보답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들을 돌이켜 보니 아침 부터 밤까지 잘못하고 불법 만난 것을 자랑삼아 남과 나라 는 차별상만 만들어 냅니다. 세상에 널린 것이 이익과 명리 라는 풍진이니, 도와 덕은 닦지 않고 의식을 받아 입습니다. 출가는 했으나 무슨 공덕이 있겠습니까?

凡見聞誦習者. 當起難遇之心. 自用智慧觀照. 如所說 而修. 則可謂自修佛心. 自成佛道. 而親報佛恩矣. 然 返觀我輩. 朝暮所行之迹. 則憑依佛法. 裝餙我人. 區 區於利養之途. 汨沒於風塵之際. 道德未修. 衣食斯䝴. 雖復出家. 何德之有.


정혜결사를 제안하다

저 지눌은 오래도록 안타까워해 오다, 임인년 정월에는 보 제사에서 열린 담선법회에 참여했다가 하루는 도반 몇 명에 게 제안했습니다. “우리 이 모임 후에 명리는 놓아 버리고 산속에 은둔해 결사를 맺읍시다. 정(定, samādhi)과 혜(慧, prajñā)를 닦는 것이 근본이며, 예불하고 경을 읽고 함께 울 력하고 각자 맡은 바 소임에 따라 살아갑시다. 인연법을 따 라 불성을 기르면서 이 생에 헛된 집착을 놓아 버립시다. 그 옛날 고승 대덕의 은일을 추구하는 것이니 참 좋지 않습니 까”라고 한 것입니다.

知訥. 以是長歎. 其來久矣. 歲在壬寅正月. 赴上都普 濟寺. 談禪法會. 一日與同學十餘人. 約曰罷會後. 當 捨名利. 隱遁山林. 結爲同社. 常以習定均慧爲務. 禮 佛轉經. 以至於執勞運力. 各隨任而經營之. 隨緣養性. 放曠平生. 遠追達士眞人之高行. 則豈不快哉.


2. 첫 번째 질문: 부처님 가르침이 미약한 시대에는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것이 수승(殊勝)하지 않습니까?


부처님 가르침이 미약한 시대에는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것이 수승하지 않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말하길 이미 말법시대1)로 정도는 사라졌으 니 어떻게 정과 혜에 의지하겠냐고 오히려 부지런히 아미타 불을 염불해 정토에 나기를 기원하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변했어도 마음자리는 변하지 않으니 불법이 흥하고 쇠한다는 가르침은 방편의 학문일 뿐입니다. 지혜 로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지금 최 상승의 법문을 듣고 훈습하고 있으니 어찌 세세생생의 숙연 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말법시대라 하며 부처님 될 종자 를 끊으려 합니까? 염불하고 독경하고 만행하는 것은 사문 의 기본 행이니 어찌 그릇되다 하겠습니까? 그렇지만 근본 적인 수행을 제외하고 밖에서 구하니 지혜로운 이들의 웃음 거리가 되는 것입니다.

諸公聞語曰. 時當末法. 正道沈隱. 何能以定慧爲務. 不如勤念彌陀. 修淨土之業也. 余曰. 時雖遷變. 心性

1) 상법시대 후의 1000년.


不移. 見法道之興衰者. 是乃三乘權學之見. 有智之人. 不應如是. 君我逢此最上乘法門. 見聞薰習. 豈非宿緣. 而不自慶. 返生絶分. 甘爲權學人. 則可謂辜負先祖. 作最後斷佛種人也. 念佛轉經. 萬行施爲. 是沙門住持 常法. 豈有妨碍. 然不窮根本. 執相外求. 恐被智人之 所嗤矣.


부처님은 늘 계시다

≪화엄론(華嚴論)≫2)에 이르길 “이 일승(一乘)의 가르침 은 근본 지혜로 성취할 수 있으므로 일체지승(一切智乘)이 라 이른다. 시방세계가 모두 부처님의 경계다. 부처님과 중 생의 마음 경계가 서로 들어와 중중무진 중첩된 영상처럼 되어 있다. 그러니 부처님 세계가 따로 있고 중생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말세인지 상법시대3)인지를 말할 필요도 없다. 부처님은 어느 때나 계시며 정법은 언제나 존재한다 고 하는 것이 요의경4)이다. 정토와 오염된 땅을 말하고 불 세계와 중생계, 상법·말법을 말하는 것은 요의경이 아니 다”라고 했습니다.

華嚴論云. 此一乘敎門. 以根本智. 爲所成. 名一切智 乘. 十方世界量. 同虛空爲佛境界故. 一切諸佛. 及以 衆生. 所有心境. 互相參入. 如影重重. 不說有佛. 無佛

2) ≪화엄론≫은 당나라 이통현 장자가 ≪화엄경≫을 풀이한 40권의 저술인 데, 지눌이 이를 세 권으로 요약해 ≪화엄론절요≫를 지었다. 3) 정법시대 후의 1000년. 4) 부처님의 진실한 뜻을 분명히 나타낸 경전.


世界. 不說有像法末法. 如是時分. 常是佛興. 常是正 法. 此乃了義經. 但說有此方穢土. 別方淨土. 有佛無 佛處所. 及像法末法. 皆爲不了義經.


정혜를 선택해야 한다

또 말하길 여래는 “모든 사견에 빠져 전도된 중생을 위해 복 덕을 지을 수 있는 경지를 설하지만 여래는 나고 사라짐이 없는 것이다. 오직 도에 감응하려는 사람은 경계와 지혜를 잘 알아 여래가 오시기도 가시기도 한다는 생각을 내지 않 고 다만 선정과 관의 두 가지 문에서 마음의 때를 없앤다. 정에 빠지고 아상을 가지고 도를 구하면 아무래도 감응하지 못하게 된다. 반드시 지혜로운 사람에게 의지해 교만을 꺾 고 공경하는 마음을 철두철미하게 이르러야 한다. 무릇 정 혜 두 문을 결단하여 선택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인의 거 룩한 가르침이니 어찌 감히 다음을 기약하고 또 낭비하겠습 니까? 어렵고 힘들지만 요의의 간절한 말을 따르고 권학방 편의 설에 의지하지 않기를 서원합니다.

又云. 如來爲一切邪見顚倒衆生. 示現出興. 略說少分 福德境界. 而實如來. 無出無沒. 唯道相應者. 智境自 會. 不於如來出興滅沒之見. 但自以定觀二門. 以治心 垢. 情在相存. 我見求道. 終不相應. 須依智人. 自摧憍 慢. 敬心徹到. 方以定慧二門決擇. 先聖敎旨如斯. 豈


敢造次. 輒有浪陳. 誓遵了義懇苦之言. 不依權學方便 之說.


출가해 수행하면 점점 쉬워진다

지금 우리 사문(沙門, Śramana, 출가수행자)이 말법 세상 에 태어나 품성이 완고하고 어리석어 스스로 물러나며 상에 집착해 도를 구합니다. 그렇다면 옛 선인들이 닦아 깨우친 정혜의 미묘한 법문은 누가 배워서 행한단 말입니까? 행하 기 어렵다고 버리고 수행하지 않고 이제 닦지 않는 까닭에 여러 생이 지나도 여전히 어렵다는 것에 머물러 있게 됩니 다. 그렇지만 지금이라도 어렵고 힘들지만 애써 닦으면 수 행과 연습의 힘으로 점점 쉬워집니다. 처음부터 도를 닦는 사람 중에 범부 아니었던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어떤 경전 에서 말세 중생이라 무루(無漏)5)의 도를 닦지 말라고 한 적 이 있습니까?

我輩沙門. 雖生末法. 稟性頑癡. 若自退屈. 着相求道. 則從前學得定慧妙門. 更是何人. 所行之事. 行之難故. 捨而不修. 則今不習故. 雖經多劫. 彌在其難. 若今强 修難修之行. 因修習力故. 漸得不難. 古之爲道者. 還 有不從. 凡夫來者耶. 諸經論中. 還有不許末世衆生.

5) 번뇌가 없음.


修無漏道乎.


듣기만 해도 훈습을 쌓는 것이다

≪원각경(圓覺經)≫에서 부처님이 “말세의 모든 중생이 마 음에 허망함이 일어나지 않으면, 이 사람이 바로 현세의 보 살이다”라고 했습니다. ≪화엄경(華嚴經)≫에 이르길 “만 약 이 법이 범부의 경계가 아니고 보살의 행이라 한다면 이 사람은 불의 지견을 없애고 정법을 파괴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지혜 있는 사람이라면 이에 응하지 않겠으며, 부지런 히 수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설사 바로 얻지 못하더라도 선한 씨앗은 잃지 않으며 오히려 내세에 이룰 훈습을 쌓는 수 승한 인연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유심결(唯心訣)≫ 에 이르길 “들었지만 믿지는 못했더라도 부처 될 씨앗을 뿌 림이요, 배워도 성불하지는 못하더라도 하늘과 사람의 복 이 넘침이라” 했습니다. 이처럼 말법이니 정법이니 해서 때 를 나누고 스스로 어리석고 밝음을 한탄할 것이 아닙니다. 신심을 내고 자신의 능력에 맞게 수행해 바른 인연을 지으 며 두렵고 약한 마음을 멀리해야 합니다.

圓覺經云. 末世諸衆生. 心不生虛妄. 佛說如是人. 現 世卽菩薩. 華嚴論云. 若言此法. 非是凡夫境界. 是菩


薩所行. 當知是人. 滅佛知見. 破滅正法. 諸有智者. 不 應如是. 不勸修行. 設行不得. 不失善種. 猶成來世. 積 習勝緣. 故唯心訣云. 聞而不信. 尙結佛種之因. 學而 未成. 猶盖人天之福. 由是觀之. 不論末法. 與正法時 殊. 不憂自心昧之與明. 但生仰信之心. 隨分修行. 以 結正因. 遠離劫弱.


즐거움은 오래가지 않고 바른 가르침 듣기는 어렵다

세상의 즐거움은 오래가지 못하고 정법6)은 듣기 어려움을 알아 ‘어찌 인연을 쫓아 인생을 허송하겠는가’라고 되새겨 야 할 것입니다. 과거 이래 헛되이 받은 일체 심신의 고통은 아무 이익이 없습니다. 현재도 무량한 핍박이 있으며, 미래 에도 한계가 없어 버리기도 여의기도 어려움을 깨닫지 못합 니다. 이 생명의 무상함과 찰나성이란 마치 ‘풍전등화’ 같으 며, ‘흐르는 물결’, ‘저무는 낙조’ 같다는 말로도 형용하긴 부 족합니다. 이렇듯 세월은 지나 가만히 늙어 가는 모습을 재 촉하고 마음 바탕은 닦지 못한 채 죽음의 문에 가까워집니 다. 문득 옛 도반을 생각하니 현자도 있고 어리석은 이도 있 었는데 오늘 아침 손꼽아 보니 열 중의 아홉은 죽고 하나가 남았으나 쇠잔해 앞으로 살 날이 얼마겠습니까? 그런데도 오히려 뜻은 방일하고 탐욕과 성냄과 질투와 아만과 방일로 명리를 구해 하루를 헛되이 보내며, 근거 없는 담화로 천하 를 논하고 계행도 덕도 없으면서 신심 보시를 받고 사람들

6) 바른 교법.


의 공양을 받겠습니까? 참괴심도 없는 이 같은 허물이 무량 무변해 허물을 가릴 수 없으니 정말 애통한 일이 아니겠습 니까!

當知世樂非久. 正法難聞. 豈可因循. 虛送人生. 如是 追念. 過去久遠已來. 虛受一切身心大苦. 無有利益. 現在卽有無量逼迫. 未來所苦. 亦無分劑. 難捨難離而 不覺知. 況此身命. 生滅無常. 刹那難保. 石火風燈. 逝 波殘照. 不足爲喩. 歲月飄忽. 暗催老相. 心地未修. 漸 近死門. 念昔同遊. 賢愚雜遝. 今朝屈指. 九死一生. 生 者如彼. 次弟衰殘. 前去幾何. 尙復恣意. 貪嗔嫉妬. 我 慢放逸. 求名求利. 虛喪天日. 無趣談話. 論說天下. 或 無戒德. 空納信施. 受人供養. 無慙無愧. 如是等愆. 無 量無邊. 其可覆藏. 不爲哀痛乎.


부지런히 발심해 수행해야 한다

만일 지혜로운 사람이면 반드시 조심하고 삼가며 심신을 채 찍질하고 발심해 자신의 허물을 알아 참회해서 잘 다스리고 주야로 부지런히 닦아 빨리 모든 고통을 여의어야 합니다. 다만 부처님의 진실한 말에 의지해 맑은 거울을 삼아 자신 의 마음이 본래 신령하고 밝으며 청정하니 번뇌가 이미 공 한 줄을 비추어 보아야 합니다. 더욱 부지런히 사도와 정도 를 정선해야 하며 자신의 견해에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마 음속 생각이 어지럽지도 않고 혼침하지도 않으며, 단견(斷 見)7)을 내지 않고, 공에도 유에도 집착하지 않으면 깨달음

의 지혜가 밝고 원만해집니다. 정미(精微)하게 범행(梵行) 을 닦아 큰 서원을 세워 널리 모든 생명을 이롭게 하니 한 몸 만 홀로 해탈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如有智者. 當須兢愼. 策發身心. 自知己過. 改悔調柔. 晝夜勤修. 速離衆苦. 但依佛祖誠實之言. 爲明鏡. 照

7) 세상만사가 무상하듯 사람도 한 번 죽으면 몸과 마음이 모두 끊어지고 없어 져 무로 돌아간다는 그릇된 견해. 상견(常見)은 세계나 모든 존재, 인간의 자아가 실재로 늘 영원히 존재한다고 고집하는 그릇된 견해를 이른다.


見自心. 從本而來. 靈明淸淨. 煩惱性空. 而復勤加決 擇邪正. 不執己見. 心無亂想. 不有昏滯. 不生斷見. 不 着空有. 覺慧常明. 精修梵行. 發弘誓願. 廣度群品. 不 爲一身. 獨求解脫.


비방도 찬탄도 허망한 것

혹은 여러 가지 세간의 사무에 묶여 있거나 병고로 괴롭거 나 삿된 악마와 악귀에 무섭고 불안하면 시방삼세의 부처님 전에 참회하며 예불과 염불의 행으로 무거운 업장을 덜어 내야 합니다. 움직이거나 고요할 때, 행하고, 말하고 침묵하 는 일체시중에 모두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타인과 나 모두 몸과 마음이 인연법을 따라 환상처럼 일어나 물거 품처럼 구름 그림자처럼 공해서 체성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 도리를 알면 모든 찬탄과 비방도 허망한 음성으로 골짜 기의 메아리와 같고 바람 소리 같을 것입니다.

如或世間事務. 種種牽纏. 或病苦所惱. 或邪魔惡鬼. 所能恐怖. 如是等身心不安. 則於十方佛前. 至心洗懺. 以除重障. 禮念等行. 消息知時. 動靜施爲. 或語或黙. 一切時中. 無不了知. 自他身心. 從緣幻起. 空無體性. 猶如浮泡. 亦如雲影. 一切毁譽是非音聲. 喉中妄出. 如空谷響. 亦如風聲.


사랑도 미움도 담백하게

이처럼 자타의 허망한 상황이 근본적으로 유래한 바를 살피 고 편견에 빠지지 말고 온몸으로 선정에 들어 마음의 성(城) 을 잘 수호하고 관조하는 힘을 증가시키면 고요히 돌아가 편안할 것입니다. 이때에 이르면 사랑과 미움은 자연히 담 박해지고 자비와 지혜가 저절로 더 밝아지며 죄업은 저절로 끊어지게 됩니다. 공과 수행은 자연히 정진하게 되니 번뇌 가 다하면 생사도 끊어지고 생멸이 멸해 마치니 선정의 고 요함과 지혜의 비춤이 눈앞에 드러납니다. 그 무궁무진한 쓰임이 다함이 없어 인연 있는 중생을 제도하니 이는 일 마 친 사람의 입장에서 점차가 없는 가운데의 점차며 공용이 없는 중의 공용입니다.

如是虛妄自他境界. 察其根由. 不隨傾動. 全身定質. 守護心城. 增長觀照. 寂爾有歸. 恬然無間. 當是時也. 愛惡自然淡薄. 悲智自然增明. 罪業自然斷除. 功行自 然精進. 煩惱盡時. 生死卽絶. 生滅滅已. 寂照現前. 應 用無窮. 度有緣衆生. 是爲了事人分上. 無漸次中漸次. 無功用中功用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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