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율시의 완성, 심과 송 심전기와 송지문을 사람들은 심·송이라 부른다. 당나라 때부터 그랬다. 작품이 비슷해 이름만 가리면 나누기 힘들었다. 둘은 율시의 격률과 체제를 완성한다. 중국 시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매화서옥도›, 남영 그림, 명대
인텔리겐치아 2512, 2015년 3월 27일 발행
최우석이 옮긴 심전기, 송지문의 ≪심전기 · 송지문 시선≫ 夜宿七盤嶺
칠반령에서 야숙하며 천 리 밖에 홀로 떠돌다가 칠반령 서쪽 높은 곳에 누웠더니 산에 뜬 달 창가에 다가서고 은하수는 문에 들어 나직하다 꽃 피는 봄이라 팽나무는 파랗고 맑은 밤이라 두견새 우네
떠도는 나그네 부질없이 귀 기울이면 보성의 새벽닭 우는 소리 들려온다 獨遊千里外 高臥七盤西
山月臨窗近 天河入戶低 芳春平仲綠 淸夜子規啼 浮客空留聽
褒城聞曙雞 -«심전기·송지문 시선», 심전기·송지문 지음, 최우석 옮김, 135쪽
누구의 작품인가? «심전기·송지문 시선(沈佺期·宋之問 詩 選)»에 실린 심전기의 것이다. 왜 한 책에 두 사람의 작품을 함께 실었는가? 심전기와 송지문은 흔히 심·송(沈宋)으로 함께 불린다. 초당 후기의 대표 시인이다. 당 나라 때부터 이미 두 사람을 병칭했다. 내용 과 분위기도 비슷하다. 이름 가리고 보면 어 느 게 심전기고 어느 게 송지문인지 헷갈릴 정도다. 심·송은 중국 율시(律詩)의 격률과 체제를 완비한 것으로도 명성이 높았다. 율시란? 초당(初唐)부터 청 말(淸末)까지 중국 문인
들이 가장 애호했던 시가 형식이었다. 과거 시험에서 공식으로 채택되기도 했다. 율시 의 출현으로 중국 시가는 새로운 지평을 연 다. 그 주인공이 심·송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에게 낯선 까닭이 무엇인가? 후대에서 이들이 궁정 시단에서 아부를 일삼 고 그 목적에 부합하는 응제시(應製詩)만 지 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뇌물을 받는 등 인 품도 저열했다고 여겨 시까지 폄하했다. 맞는 말인가? 온당치 못하다. 뇌물 사건도 무고한 탄핵이 었을 가능성이 높다. 설령 사실이라 해도 문 여기인(文如基人)의 논리만 앞세워 작품을
무차별 비하하는 건 바른 비평이 아니다. 아부하는 시를 짓긴 지었는가? 응제시가 그렇게 많지 않다. 심전기는 전체 시의 4분의 1, 송지문도 전체 시의 7분의 1 정 도다. 심·송은 인생역정도 비슷했지만 시가 창작의 내용 역시 상당 부분 비슷했다. 응제 시뿐만 아니라 증답시, 술회시, 산수시, 변새 시 등을 지었다. 전체 작품과의 비중을 생각 하면 기존 견해는 무리다. 그렇다면 실제로 심·송의 문학이 초점을 둔 곳은 어디인가? 개인 생활의 감정과 뜻을 읊는 술회시다. 이 별의 슬픔을 노래하거나, 폄적의 상념을 토
로하거나, 탈속의 뜻을 염원하거나 상사(相 思)의 그리움을 드러낸다. 곳곳에서 농후한 서정의 색채를 펼친다. 이들이 중국 문학사에 남긴 진정한 의미는 무 엇인가? 당시 시단에 중국 시가의 ‘시연정(詩緣情)’의 전통을 회복시킨 것이다. 율시의 형식미가 갖는 장점을 개인의 성정과 결합시킨 선구 자였다. 중국 산수시를 개척한 시인들이기 도 했다. 위의 인용시에서 심전기의 멘털은 어떤 모습 인가? 홀로 떠도는 나그네다. 고독하다. 심경을 경
물에 기탁해 표현했다. 닭 울고 해 뜨면 떠나 야 하는 처지다. 왜 홀로 떠돌게 되었나? 폄적의 상념이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걸로 보아 시인이 유배된 상황은 아니다. 벼슬을 하고 있을 때 촉(蜀) 지방으로 들어가기 전 칠반령 역참에 잠시 머물며 지은 것으로 추 측된다. 촉(蜀) 근처라는 건 어떻게 아는가? 남방의 정취를 풍기는 ‘팽나무[平仲]’, 촉 지 방 신화의 색채가 강한 ‘두견새[子規]’ 같은 시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책 ≪심전기·송지문 시선≫은 어떻게 묶 었나? 심·송의 시 350수 가운데 49수를 선별해 이 를 다시 주제별로 분류했다. «심전기송지 문집교주(沈佺期宋之問集校注)»를 저본으 로 삼았다. 당신은 누구인가? 최우석이다. 우송대학교에서 중국어를 강의 하는 교수다.
중국 율시의 완성, 심과 송 심전기와 송지문을 사람들은 심·송이라 부른다. 당나라 때부터 그랬다. 작품이 비슷해 이름만 가리면 나누기 힘들었다. 둘은 율시의 격률과 체제를 완성한다. 중국 시의 새로운 지평이 열린다.
‹매화서옥도›, 남영 그림, 명대
심전기·송지문 시선 심전기, 송지문 지음 최우석 옮김 2010년 5월 15일 출간 사륙판(128 *188) 무선제본, 167쪽, 12,000원
작품 속으로
沈佺期·宋之問 詩選 심전기·송지문 시선
흥경지 연회에서−심전기
청록빛 물 맑은 연못에 먼 허공이 비치고 보랏빛 구름 속의 향기로운 수레는 가벼운 바람 속을 내달 리네 한 왕조의 궁궐은 천상에 있는 듯 진나라 땅의 산천은 거울 속에 있는 듯 물가로 배 돌리니 마름은 벌써 녹색이요 나뉜 숲이 궁전을 가리니 무궁화는 갓 붉어졌네 예부터 [한무제가] 분수 가로지르며 노니는 것을 공연히 흠 모했는데 지금 노닐며 지은 황제의 문장은 웅장도 하여라 興慶池1)侍宴應制 碧水澄潭映遠空 紫雲香駕御微風 漢家城闕疑天上 秦地山川似鏡中 向浦回舟萍已綠 分林蔽殿槿初紅
1) 흥경지(興慶池): 장안(長安)의 융경방(隆慶坊)에 있는 연못으로, 평소 운 기(雲氣)가 가득한데, 어떤 사람이 그곳에서 황룡(黃龍)이 나오는 것을 보았 다고 해서 일명 용지(龍池)라고도 부른다.
古來徒羡橫汾2)賞 今日宸遊聖藻3)雄
해설
황제의 유람과 연회를 찬미하고 노래하는 전형적인 가공송덕 (歌功頌德)의 궁정시다. 이러한 부류의 궁정시는 그 내용이 판 에 박은 듯한 느낌에서 벗어나기 힘든 경우가 많은데, 결국 이러 한 부류의 시 창작은 그 형식과 예술적 기교 면에서 후세의 시가 창작에 많은 자양분을 제공해 주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한학자 스티븐 오언(Stephen Owen)은 이 시를 가리켜 당대(當代) 최고의 궁정시를 대표한다고 했으 며, 또한 ≪당시직해(唐詩直解)≫에서는 이 시를 “음률이 조화 롭고 유창하며, 대우가 정밀하고 공교해 초당의 압권이다(音律 調暢, 騈麗精工, 初唐壓卷)”라고 평한 바 있다.
2) 횡분(橫汾): 한 무제(漢武帝)가 분양(汾陽)에 출유하며 부른 <추풍가(秋 風歌)>의 “누각 배 띄워서 분하(汾河)를 건너네, 가운데 물살 가로지르니 흰
파도가 솟구치네!(泛樓舡兮濟汾河, 橫中流兮揚素波)”라는 구절을 전고로 사용하고 있다. 3) 성조(聖藻): 황제가 지은 문사(文辭)를 가리킨다.
봄날 망춘궁에서−심전기
향기로운 교외 푸른 숲에는 봄날의 맑은 빛이 흩어지고 이 층 복도와 행궁에는 아지랑이 피어난다 천 가닥 수양버들 꽃은 봉오리 터뜨리려 하고 백 길의 포도 덩굴은 이제 막 얽히려 하네 숲 향기와 술기운은 원래 서로 섞이는 법 새 지저귐과 노래는 각기 소리 이루네 필경 이 경치가 숙취를 가시게 하리니 새벽 되면 다시 곤명지로 납실 수 있으리 奉和春日幸望春宮應制 芳郊綠樹散春晴 複道1)離宮2)煙霧生 楊柳千條花欲綻 蒲萄百丈蔓初縈 林香酒氣元相入 鳥囀歌聲各自成 定是風光牽宿醉 來晨復得幸昆明3)
1) 복도(複道): 고대 중국의 한 건축 양식으로, 건물과 건물 사이를 연결하는 이 층으로 된 복도를 가리킨다. 2) 이궁(離宮): 흔히 행궁(行宮)이라고도 부르며, 왕이 출궁하거나 도읍을 떠 나 나들이할 때 머물던 별궁을 가리킨다.
해설
이것은 경룡(景龍) 4년 3월에 중종(中宗)이 장안(長安)의 동남 쪽에 있는 망춘궁(望春宮)에 행차했을 때 지은 시다. 황제의 어 명을 받들어 창작한 응제시(應制詩)임에도 불구하고 봄놀이의 내용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어 상투적인 응제시의 격식을 다소 벗어난 가작(佳作)으로 볼 수 있다. 특히 정련된 언어와 정 교한 장법(章法)은 이 시의 큰 성취로 볼 수 있다. ≪당시성법 (唐詩成法)≫에서는 이 시에 대해 “‘터뜨리려 하다(欲綻)’, 이 두 글자는 딱 들어맞는 표현이다. ‘원래 서로 섞이네(元相入)’, ‘각기 소리를 이루네(各自成)’의 글자에서는 새로움이 생겨난 다. ‘풍광(風光)’은 위 여섯 구절과 합쳐져 연결되고, ‘숙취(宿 醉)’는 다섯째, 여섯째 구절과 연결되며, ‘곤명(昆明)’은 망춘궁
과 연결된다. 다만 두 번째 구절과 여덟 번째 구절만이 응제시 에 해당할 뿐이고, 나머지는 단지 봄놀이의 작품이 되니, 지극 히 뛰어나다(‘欲綻’二字有分寸. ‘元相入’, ‘各自成’, 下字生新. ‘風光’合結上六句. ‘宿醉’結五六, ‘昆明’結望春宮. 只二八兩句 是應制, 餘只是遊春作, 佳極)”라는 자세한 분석을 하고 있다.
3) 곤명(昆明): 곤명지(昆明池)로, 호수 이름이다. 당대(唐代) 장안(長安)에 서 약 18리 떨어진 곳에 위치했다.
용의 연못−심전기
용의 못에서 용이 뛰더니 용은 이미 하늘을 나네 용의 덕은 하늘보다 앞서나 하늘도 어기지 않네 연못이 은하수를 여니 황도가 나뉘고 용은 하늘 문을 향하여 황궁으로 들어가네 저택과 누대 빛깔 화려하고 군왕의 물오리 기러기는 환하게 빛나도다 천하의 모든 물이 은혜를 갚으려 이곳으로 와 알현하고 동으로 돌아가지 않네 龍池篇 龍池1)躍龍龍已飛2) 龍德先天3)天不違 池開天漢4)分黃道 龍向天門入紫微5) 邸第樓台多氣色
1) 용지(龍池): 장안(長安)의 연못 흥경지(興慶池)의 별명이다. <흥경지 연 회에서>의 주 1번 참조. 2) 이비(已飛): 현종(玄宗)이 황제의 자리에 이미 오른 것을 나타냄. 3) 선천(先天): ≪주역(周易)·건괘(乾卦)≫의 “하늘보다 먼저 해도 하늘이 어기지 않는다(先天而天弗違)”라는 전고를 사용했다. 4) 천한(天漢): 은하수를 가리킨다. 5) 자미(紫微): 황궁을 가리킨다.
君王鳧雁有光輝 爲報寰中百川水 來朝此地莫東歸
해설
용(龍)은 당시의 황제인 현종(玄宗)을 상징한다. 전형적인 황 제에 대한 찬미의 내용이다. 이 궁정시는 시인이 죽기 직전 (713)에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내용은 새로운 것이 없으나, 전 아(典雅)한 기풍을 잃지 않으며 그 웅장한 기백을 잘 드러낸 것 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완숙한 솜씨로 ‘용(龍)’ 자, ‘천(天)’ 자 등 을 반복 사용하며 높은 예술적 성취를 이뤘으며, 후에 최호(崔 顥)가 명작인 <황학루(黃鶴樓)> 등에서 이를 따라 하기도 했
다. 이 시에 대해 청대(淸代)의 심덕잠(沈德潛)은 “심전기의 <용의 연못> 악장과 최호의 <황학루> 시는 형상보다 뜻을 먼저 얻었으며, 거침없이 붓을 놀려 완성했기에, 고금의 기이함 을 차지했다”라고 호평했고, 명대(明代)의 육시옹(陸時雍)의 ≪당시경(唐詩鏡)≫에서는 더 나아가 “앞의 네 구절은 법도가 자유분방하며, 뒤의 네 구절은 흥취가 물씬하다. 이것과 <고 의(古意)> 두 수는 마땅히 당대(唐代) 율시의 최고다(前四語 法度恣縱, 後四語興致淋灕, 此與<古意>二首, 當是唐人律 詩第一)”라고 극찬한 바 있다.
칠반령(七盤嶺)에서 야숙하며−심전기
천 리 밖에 홀로 떠돌다가 칠반령 서쪽에 높이 누웠더니 산에 뜬 달 창가에 다가서고 은하수는 문에 들어 나직하다 꽃 피는 봄이라 팽나무는 파랗고 맑은 밤이라 두견새 우네 떠도는 나그네 부질없이 귀 기울이면 보성의 새벽닭 우는 소리 들려온다 夜宿七盤嶺1) 獨遊千里外 高臥七盤西 山月臨窗近 天河入戶低 芳春平仲2)綠 淸夜子規3)啼 浮客4)空留聽
1) 칠반령(七盤嶺): 현재의 산시성(陝西省) 한중시(漢中市) 베이바오허진(北 褒河鎭) 부근의 산령.
2) 평중(平仲): 팽나무. 3) 자규(子規): 두견새. 4) 부객(浮客): 떠도는 나그네.
褒城聞曙雞
해설
명대(明代)의 당여순(唐汝詢)은 “이것은 영남(嶺南)으로 유배 되었을 때의 작품이다”라고 했으나, 이 시의 창작 시기에 대해 서는 아직까지 확실한 고증이 없다. 다만 이 시에서는 폄적의 상념이나 흔적이 보이지 않는 점으로 볼 때, 이것은 시인이 벼슬 을 하고 있을 때, 촉(蜀) 지방으로 들어가기 전에 칠반령 역참에 잠시 머물며 지은 것으로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시 전체는 정 교한 대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산월(山月)’, ‘천하(天河)’, ‘방춘 (芳春)’, ‘청야(淸夜)’ 등의 청신하고 자연스러운 언어와, 남방의 정취를 풍기는 ‘팽나무[平仲]’, 촉(蜀) 지방 신화의 색채가 강한 ‘두견새[子規]’ 등의 정련된 언어를 구사하고 있다. 홀로 떠도는 나그네가 잠시 안식하며 느낄 수 있는 작은 즐거움, 그러나 닭 울고 해 뜨면 다시 떠나야 하는 고독한 나그네의 복잡한 감정을 경물에 기탁해 잘 표현해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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