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양수의 진짜 얼굴 정치가이자 문학가,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 시와 산문으로 만난 구양수다. 그러나 사로 만나는 구양수의 민낯은 그렇지 않다. 개인, 해이, 유흥의 모습이 나타난다. 당황스럽고 민망한 인간의 본연.
‹구양수상›, 도침 그림, 청대
인텔리겐치아 2556, 2015년 4월 24일 발행
홍병혜가 옮긴 구양수의 ≪구양수 사선≫
玉樓春 其四
인생에는 본래 미련한 감정이 있는 것이니 술잔 앞에서 돌아갈 날을 말하려고 하는데 말하기도 전에 아름다운 그녀는 목이 메어 있네. 인생에는 본래 미련한 감정이 있는 것이니
이러한 원망은 바람과 달과는 무관한 것이 라네. 이별 노래를 신곡으로 바꾸지 않아도 한 곡으로 이미 마디마디 애간장이 끊어졌 네. 진실로 모란꽃을 다 보아야지만 비로소 봄바람과 쉽게 이별할 수 있을 것이 라네. 尊前擬把歸期說, 未語春容先慘咽. 人生自是有情癡, 此恨不關風與月.
離歌且莫翻新闋. 一曲能敎腸寸結. 直須看盡洛城花, 始共春風容易別. -«구양수 사선(歐陽修 詞選)», 구양수(歐陽修) 지음, 홍병혜 옮김, 83쪽
본래 미련한 감정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하면 만나게 되는 감 정과 회한을 말한다. 지금 누구와 헤어지는 것인가? 이름을 알 수 없는 기녀다. 구양수가 살았 던 북송 때는 도시가 발달했고 문화의 분위 기가 기녀와의 여흥을 자연스럽게 인정하고
유도했다. 스쳐 지나가는 사랑인가? 비록 기녀였지만 일회의 만남은 아니었다. 구양수는 결혼 생활이 불행했다. 하여 기녀 와의 사랑에 진심을 다했다. 기녀와의 사랑을 담은 노래를 세상이 용인했 는가? 당시 사는 국민 문학의 형식이었다. 작가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가장 유리한 수단이었 다. 구양수는 반듯한 시문으로 나타내지 못 하는 많은 감정을 사를 이용해 신랄하게 드 러냈다. 당시 그것이 결격이나 비난의 사유 가 되지는 않았다.
당시 세태의 반영인가? 그렇다. 구양수는 사를 이용해 당황스럽고 민망한 내용과 표현을 적잖게 보였다. 하지 만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모습이었고 호소 력이 있다. 당황스럽고 민망한 표현이란? 예컨대 기녀와 동침한 이후의 모습을 다소 선정적으로 묘사한 사가 있다. 그녀의 신체 에 대해 묘사하는가 하면 애절한 감정과 애 틋한 그리움도 거침없이 토로한다. 구양수의 사는 그의 문학에서 어떤 의미가 있 나? 그의 문학 세계의 전체 면모를 파악할 수 있
다. 그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사를 반드시 읽어야 한다. 우리에게 알려진 구양수는 어떤 모습인가? 정치가이자 문학가로, 당송팔대가의 한 사 람이다. 그의 문학작품을 언급할 때 시와 산문은 익숙하지만 사에 대해서는 생소하 다. 사람들은 구양수를 유학과 밀접하다고 생각했다. 유학과 가까운 구양수는 어떤 모습인가? 개인보다는 사회에, 해이한 것보다는 경직 되고 긴장된 것에, 유흥적인 것보다는 건설 적인 것에 가깝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전모 가 아니다. 그의 사는 구양수 문학에 대한 이
런 오해를 일소하고 환기할 수 있는 결정적 인 관건이다. 그의 전모는 무엇인가? 뛰어난 문인이었지만 때로는 자유롭게 유 흥할 줄도 아는, 풍부한 감정을 지닌 사람이 었다. 구양수의 사는 처음 소개되는 건가? 그렇다. 번역서가 없는 현실에서 그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위해 처음으로 번역 작업을 단행했다. 작품은 어떻게 엮었나? «전송사(全宋詞)»에 실린 266수 중 그동 안 미세하게라도 연구되었거나 간헐적으로
나마 언급되었던 작품을 중심으로 93수를 선정했다. 사에는 제목이 없는데 위 제목은 어디서 얻은 것인가? 사의 원문에서 각 작품의 제목처럼 제시되 는 사조(詞調)는 단지 음악성을 제시하는 역 할이며 사의 내용과는 무관하기 때문에 사 의 제목이 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래서 번역 서에서는 작품마다 내용을 대변하는 몇 구 절을 본문에서 도입해 제목처럼 사용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홍병혜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대학에 서 강의한다.
구양수의 진짜 얼굴 정치가이자 문학가,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 시와 산문으로 만난 구양수다. 그러나 사로 만나는 구양수의 민낯은 그렇지 않다. 개인, 해이, 유흥의 모습이 나타난다. 당황스럽고 민망한 인간의 본연.
‹구양수상›, 도침 그림, 청대
구양수 사선 구양수 지음 홍병혜 옮김 2009년 10월 15일 출간 사륙판(128 *188) 하드커버, 217쪽, 12,000원
작품 속으로
歐陽修 詞選 구양수 사선
30. 인생에는 본래 미련한 감정이 있는 것이니
술잔 앞에서 돌아갈 날을 말하려고 하는데 말하기도 전에 아름다운 그녀는 목이 메어 있네. 인생에는 본래 미련한 감정이 있는 것이니 이러한 원망은 바람과 달과는 무관한 것이라네.
이별 노래를 신곡으로 바꾸지 않아도 한 곡으로 이미 마디마디 애간장이 끊어졌네. 진실로 모란꽃을 다 보아야지만 비로소 봄바람과 쉽게 이별할 수 있을 것이라네.
玉樓春 其四 1) 2) 3) 尊前擬把歸期說, 未語春容 先慘咽. 人生自是 有情癡,
此恨不關風與月.4) 離歌且莫翻新闋.5) 一曲能敎腸寸結.6) 直須7)看盡洛城花,8) 始共春風容易別.
해제
함께한 기쁜 사랑의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이미 이별의 시간은 두 사람 사이에 예정된 것이다. 작가는 헤어져야 한다고 머뭇거 리며 말하고, 그 사실을 알고 기녀는 울먹인다. 이러한 현실에 상심한 두 사람의 슬픔이 잘 드러나 있다.
1) 春容(춘용): 아름다운 얼굴 모습. 2) 慘咽(참열): 슬퍼서 목이 메도록 울다. 3) 自是(자시): 본래. 4) 風與月(풍여월): 풍월정(風月情)으로 남녀 사이의 애정을 말한다.
5) 新闋(신결): 신곡(新曲).
6) 腸寸結(장촌결): 이별의 원망이 매우 깊음을 의미한다. 7) 直須(직수): 진실로. 8) 洛城花(낙성화): 목단(牧丹).
31. 이별 후에
이별 후에 그대가 어디 있는지를 알 수 없으니 눈에 닿는 것이 처량하고 가엾다네. 떠나가서 점점 멀어지니 소식은 없고 물이 넓어 고기가 깊이 있으니 어느 곳에 물어볼 것인가?
밤이 깊어 바람 지나가니 가을 소리 두드리고 만 가지 잎의 천 가지 소리가 모두 다 한이라네. 일부러 외로운 베개에 누워 꿈속에서 찾았지만 꿈은 또 꾸어지지 않고 촛불마저 타버렸네.
玉樓春 其十三 別後不知君遠近, 觸目淒涼多少悶. 漸行漸遠漸無書, 水闊 1) 魚沈 何處問. 2) 夜深風行敲秋韻, 萬葉千聲皆是恨. 故欹單枕 夢中尋, 夢 3)
又不成燈又燼.
해제
상편에서는 이별 뒤의 상황을 묘사하고, 하편에서는 슬픔 속에 서 방황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1) 水闊魚沈(수활어심): 물이 너무 깊어 서신이 통하지 않음을 말한다. 2) 單枕(단침): 외로운 베개. 3) 燈又燼(등우신): 타서 없어져 버리다.
32. 마음속의 사랑을 쏟을 곳이 없다네
깊고 깊은 정원에 꾀꼬리는 지저귀고 따뜻한 햇살과 온화한 안개로 봄기운이 짙다네. 푸르고 아리따운 버들잎 싹은 누구를 위해 돋아나 있는지 돌아가고픈 마음을 부질없이 일으키네.
난간에 기대어 말없이 외로운 봉황새를 슬퍼하니 마음속의 사랑을 쏟을 곳이 없다네. 깊이 생각하면 고향을 그리는 마음이 생겨나는데 나비가 때때로 날아들어 꿈을 꾸게 하네.
玉樓春 其二十一 1) 2) 沈沈庭院鶯吟弄, 日暖煙和春氣重. 綠楊嬌眼 爲誰回, 芳
草深心空自動. 倚闌無語傷離鳳,
3)
蝶時時來役夢.
一片風情無處用. 尋思還有舊家心, 蝴
해제
연인을 그리워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1) 鶯吟弄(앵음롱): 누런 꾀꼬리가 지저귀다. 2) 綠楊嬌眼(녹양교안): 버들잎의 새싹을 말한다. 3) 離鳳(이봉): 이별해 외로운 봉황새.
33. 쉬었다 더디 가야 하네
연꽃이 햇무리와 붉은빛을 다투니 화장했던 연지는 옅어지고 늦게 핀 꽃이 오래도록 머물면서 작은 잔치를 열었다네. 화려한 배에 지는 붉은 해는 저녁 바람으로 맑고 버들 색과 시내의 물빛이 밝게 비춰 따뜻하네.
기녀들이 맛있는 술 가득 부은 잔을 다투어 권해오고 춤으로 지친 옥 같은 허리는 치마 가닥이 느슨하네. 은빛 화촉 앞에서 돌아갈 때를 서둘지 말아야 하는데 이미 석양이니 쉬었다 더디 가야 하네.
玉樓春 二十九 1) 芙蓉鬪暈 燕支淺, 留著晩花開小宴. 畵船紅日晩風淸, 柳
色溪光晴照暖. 2)
3)
美人爭勸梨花盞, 舞困玉腰裙縷慢. 莫交 銀燭促歸期, 已 祝斜陽休更晩.
해제
이 작품은 선상(船上)에서 벌어진 연회에서 만난 기녀와의 애 정을 묘사하고 있다.
1) 暈(훈): 햇무리나 달무리 등의 무리. 2) 梨花盞(이화잔): 술잔. 3) 交(교): 교(敎)와 같은 의미로 사역형.
34. 오랫동안 그대에게 기대어
봉황처럼 땋아 올린 머릿결을 금박의 띠로 묶고 용무늬를 새겨놓은 옥 빗으로 빗질을 하네. 창 아래로 다가와서 웃으며 기대고는 “눈썹 화장이 유행에 맞나요?”라고 사랑스럽게 말한다네.
붓을 만지작거리며 오랫동안 그대에게 기대어 손끝에 꽃 한 송이를 그려보네. 무심코 수놓던 것을 멈추더니 “원앙이라는 글자를 어떻게 쓰지요?”라고 웃으며 묻는다네.
南歌子 鳳髻金泥 帶, 龍紋玉掌梳. 走來窗下笑相扶, 愛道畵眉深 1)
2)
淺, 入時無. 3)
4)
弄筆偎 人久, 描花試手初. 等閒 妨了繡功夫, 笑問雙鴛鴦
字, 怎生書.
해제
규정(閨情)을 경쾌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상편에서는 새롭게 단장하고 있는 신부의 분주한 모습을 서술했고, 하편에서는 신 혼부부의 달콤한 규방 생활을 생동적으로 천속한 언어를 통해 완벽하게 구사했다. 전편에서 묘사된 신부는 달콤한 열애에 몰 입된 상태로 아직은 전혀 이별의 아픔이나 애절함을 경험하지 못한 맑은 모습을 보인다. 그러나 이러한 활발하고 명랑한 모습 이 방정스럽거나 경박스러움으로 추락하지는 않았으며, 활달 한 언어 속에 진지한 심리가 동반되고 있다.
1) 金泥(금니): 금가루를 아교에 풀어 금박한 것. 2) 扶(부): 붙들다.
3) 偎(외): 가까이하다. 4) 等閒(등한): 대수롭지 않게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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