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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 맞나? 죽은 자가 누구인가? 당신의 아들인가? 처음엔 그랬는데 다시 보니 아니었다. 잊을 수 없는 얼굴이어서, 그래서 아들인 줄 알았는데 옆집 아들이었다. 아버지의 그림자 없이 아들 찾기, 어려운 일이다.

연극 ‹이 아이›, 조엘 폼므라 연출, 파리-빌레트 극장, 2006


인텔리겐치아 2563, 2015년 4월 29일 발행

임혜경이 옮긴 조엘 폼므라의 ≪이 아이≫ 마담 마르케르 제 친구예요, 이웃에 사는데 같이 왔어요. 경찰 이분은 같이 못 들어가십니다. 마담 마르케르 같이 못 들어간다고요? 경찰 네, 안 됩니다. 이웃집 여자 괜찮아, 나 여기서 기다릴게. 경찰 여기는 가족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마담 마르케르 (흰 천에 덮인 시체가 있는 방 향을 가리키며) 나도 저 사람 가족이 아니


죠…. 내 아들이 아니니까요, 내 아들일 리가 없거든요. 이웃집 여자 가 봐. 보면 단번에 알게 될 거 야. 경찰 그러니 당신 아드님이 아니라는 걸 그 냥 확인만 해 주시면 됩니다. -«이 아이(Cet enfant)», 조엘 폼므라(Joël Pommerat) 지음, 임혜경 옮김, 69쪽

아들인가? 경찰은 죽은 사람이 마르케르의 아들일 거 라고 추정한다. 그녀는 그럴 리가 없다고 부 정한다.


아들 맞나? 한참 주저하다가 시체를 덮은 천을 들어 확 인한다. 처음엔 아들이 아니라고 하더니 곧, 아들인 것 같다며 통곡한다. 아니라고 하다가 그렇다고 하는 까닭이 뭔가? 얼핏 봤는데도 잊히지 않을 만큼 낯익기 때 문이었다. 아들이 아니라면 그 얼굴이 자꾸 어른거릴 리가 없다는 것이다. 도대체 아들인가, 아닌가? 사실 마르케르의 아들이 아니었다. 경찰과 이웃집 여자의 권유로 다시 한 번 시체의 얼 굴을 확인하다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이웃 집 여자의 아들이었다. 마르케르가 희망을


되찾고 이웃집 여자에게 절망이 닥친다. 누군가, 이 여인들은? 이혼하고 홀로 자녀를 키우는 이주 여성들 이다. “사라지지 않는 아버지를 한번 만나 봤으면 좋겠다”는 대사는 오늘날 가정에서 아버지의 부재를 가리킨다. 이런 주제는 이 작품의 다른 에피소드에서도 이어진다. 어떤 에피소드인가? 이 작품은 가족을 주제로 10개의 에피소드를 엮었다. 가족이란, 부모란, 자식이란 무엇인 가를 묻는다. 가족 문제를 성찰하는 에피소 드다.


오늘날 가족은 어떤 모습인가? 가난, 소통 부재, 애정 결핍, 단절, 파탄에 내 몰린다. 미혼모, 이혼 부부와 자녀, 권위적 아버지, 폭력적 아들이 등장한다. 모두 주변 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물들이다. 가족을 묻는 이유가 뭔가? 2002년에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 칼바도스 시의 가족수당금고와 캉 지방 노르망디국립 극장이 ‘부모가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폼므라에게 작품을 의뢰했다. 작가 와 극단 배우들 그리고 지역 주민들이 ‘오늘 날 가족이란 무엇인가’를 놓고 토론했고 이 것을 바탕으로 작품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작가는 그것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부족함을 무엇으로 채웠나? 여기에 자신의 관점을 붙이고 다른 작가의 작품도 참고했다. 인용한 에피소드는 영국 극작가 에드워드 본드의 작품에서 영향을 받아 쓴 것이다. 공연은 성공했는가? 2003년 캉 지방 사회문화센터 대여섯 군데 에서 조엘 폼므라 연출로 공연한 이후, 2006 년에 파리-빌레트 극장에서 정식 공연되었 다. 그 이래로 지금까지 150회 이상 재공연했 다. 조엘 폼므라가 이끄는 극단의 대표 레퍼 토리 중 하나가 되어 프랑스는 물론이고 러 시아를 비롯한 유럽 각지에서 활발히 공연 중이다.


한국 공연은? 지난 3월 카티 라팽 연출, 극단 프랑코포니 제작으로 선돌극장에서 초연했다. 조엘 폼므라가 누구인가? 자신을 희곡 작가가 아니라 공연 작가라고 불러 주기를 원하는 프랑스 극작가이자 연 출가다. 이미 완성된 대본을 가지고 작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극장에서 자신이 이끄는 극단 배우, 스태프들과 공동 작업을 통해 공 연 텍스트를 만들어 가는 “토털 연극”을 지 향한다. 연극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열여섯 살에 연극에 대한 열정으로 학교를


그만두고 열여덟에 연극배우가 되기 위해 파 리로 간다. 이듬해에 극단 테아트르 드 라 마 스카라에 입단하지만 배우라는 직업에 회의 를 느낀다. 스물셋부터 독학으로 극작을 해 오다 스물일곱 되던 해인 1990년에 첫 창작 극 <다카르 길>을 직접 연출한다. 이때 극 단을 창단해 지금까지 운영한다. 작품 주제는? 개인과 사회, 노동, 가족, 권력, 사랑이다. 동 시대 정치, 경제, 사회적인 제도와 권력 문제 를 예리하고 독창적으로 다룬다. 연극에서 이룬 성과는? 2006년 <이 아이>로 평론가협회에서 주는


프랑스어 희곡 대상을 수상했다. 몰리에르 상, 보마르셰피가로최고작가상, 대중연극공 연대상을 받았다. 당신은 누구인가? 임혜경이다. 숙명여자대학교 프랑스언어문 화학과 교수이고 극단 프랑코포니 대표다.


내 아들 맞나? 죽은 자가 누구인가? 당신의 아들인가? 처음엔 그랬는데 다시 보니 아니었다. 잊을 수 없는 얼굴이어서, 그래서 아들인 줄 알았는데 옆집 아들이었다. 아버지의 그림자 없이 아들 찾기, 어려운 일이다.

연극 ‹이 아이›, 조엘 폼므라 연출, 파리-빌레트 극장, 2006


이 아이 조엘 폼므라 지음 임혜경 옮김 2015년 4월 29일 출간 사륙판(128 *188) 무선제본, 126쪽, 14,500원


작품 속으로

이 아이


제1장


젊은 여자와 젊은 남자. 여자는 임신 중이다(아마도 8개월 정도).

임신한 여자 이제는 거울을 쳐다볼 수 있을 것 같아/ 매일 아

침 일어날 힘이 생길 거야/ 드디어 내 인생을 들어 올 릴 힘이 생길 거야/ 이 아이는 내게 힘을 줄 거야/ 내 가 누군지 다른 사람들한테 보여 줄 거야/ 그 사람들 한테 내가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 라는 걸 보여 줄 거야/ 우리 부모한테 내가 그들이 생 각하고 있는 그런 딸이 아니라는 걸 보여 줄 거야/ 엄 마가 날 믿어 주지 않았던 게 잘못이었다는 걸 보여 줄 거야/ 내 아이는 내 아이가 되는 걸 자랑스러워할 거야/ 내 아이는 행복할 거야/ 보통 애들보다 더 행 복한 아이가 될 거야/ 얘는 부족한 게 없을 거야/ 원 하는 걸 가지려고 엄마한테 떼쓸 필요가 없을 거야/ 요구할 필요조차 없을 거야, 필요한 건 다 가지게 될 테니까/ 얘는 꿈꾸는 걸 모두 가지게 될 거야/ 난 내 아이가 슬프게 놔두지 않을 거니까/ 내 아이는 “그게 얼만지 알긴 알아?!” 하고 늘 이런 식으로 대답하는 그런 엄마를 두지 않을 거야/ 내 아이는 귀여움을 많


이 받게 될 거야/ 다른 애들은 내 아이가 얼마나 귀여 움을 받는지 보고는 질투하게 될 거야/ 난 내 아이를 때리지 않을 거야/ 내가 내 아이한테 때리려고 손을 드는 일은 절대 없을 거야/ 얘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게 되면 난 얘한테 해야 하는 일이 뭔지 차근차근 설명해 줄 거야/ 인내심을 가질 거야/ 얘를 위해 달 라질 거야/ 옛날처럼 포기하고 살지 않을 거야/ 내 아이를 가지기 전에는 더 나은 삶을 꿈꿀 수가 없었 어/ 괜찮은 월급을 주는 괜찮은 직업을 찾을 거야, 완벽한 엄마가 되기 위해서/ 일을 찾는 게 아무리 힘 들어도 아침 일찍 일어나 사장들한테 직접 이력서를 들고 갈 거야/ 끝까지 할 거야/ 더 이상 머리를 숙이 지 않을 거야/ 내가 원하는 걸 줄 때까지 오히려 머리 를 치켜들 거야/ 더 이상 어깨가 처지지 않게 할 거야 / 지금 내겐 더 이상 그대로만 있을 수 없는 좋은 이 유가 있으니까/ 내 아이를 위해 난 남들이 놀랄 만한 특별한 사람이 될 거야/ 내 아이가 태어나면 난 나 자 신을 가꿀 거야/ 외모도 가꿀 거고/ 이제 더 이상 포 기하고 있지 않을 거야/ 멋진 여자가 될 거야/ 얘가 창피해하지 않도록/ 얘가 엄마를 창피해하지 않도록 / 얘가 사내아이라면 자기 엄마를 사랑하도록/ 다른


애들, 학교 친구들이 부러워하도록/ 멋지고 여성스 럽고 모성애가 있는 엄마를 말이야/ 난 아이가 동정 심을 갖는 그런 엄마는 되지 않을 거야/ 난 이제 이유 없이 울지 않을 거야/ 이제 불행하지도/ 우울증에 빠 지지도 않을 거야/ 텔레비전이나 켜 놓고 소파에 앉 아 담배나 연신 피워 대는 언제나 우울해 보이는 그 런 엄마가 되지 않을 거야/ 어느 날 저녁 엄마를 우리 집에 초대할 거야, 괜찮은 아파트에 살게 되고 그 아 파트가 나무랄 데 없이 정리되었을 때/ 엄마를 집에 초대할 거야, 엄마가 나에 대해 얼마나 잘못 생각했 는지 깨닫게 해 주기 위해/ 아빠는 전혀 관심도 없겠 지만 아빠도 초대할 거야/ 그래, 아빠를 초대할 거야, 아빠가 온다면 엄마한테 더 의미 있는 거니까/ 엄마 는 내가 누굴 닮았는지 알게 될 거야/ 엄마는 내가 뭔 가 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될 거야/ 엄마가 그걸 모를 리가 없지/ 그래서 엄마는 속으로 참을 수 가 없을 거야/ 엄마는 내가 뭔가 할 수 있다는 걸 보 고는 참을 수 없을 거야/ 내가 내 아이를 위해 할 수 있다는 걸 말이야/ 엄마는 자기가 아이들한테 한 것 보다 내가 더 잘할 수 있다는 걸 보고는 참을 수가 없 을 거야/ 엄마는 내 아이가 행복한 걸 보고는 참을 수


가 없을 거야, 우린 불행했으니까/ 그래서 엄마는 내 가 행복하고 알아서 잘 헤쳐 나가고 있고 이제 더 이 상 엄마가 필요치 않다는 걸 보고는 참을 수가 없을 거야/ 엄마는 참을 수가 없을 거야, 그러면 난 정말 행복할 거야/ 난 행복할 거야/ 정말 행복할 거야/ 난 정말 행복할 거고 내 아이도 행복할 거야/ 얘는 행복 할 거야/ 얘는 꼭 행복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제2장


아빠와 다섯 살 난 어린 딸.

아빠

더 많이 컸구나…. 지난번보다.

(딸애의 침묵)

그럼 안 컸단 말이니? 딸

몰라요.

아빠

컸지, 이제 정말 큰 애가 됐구나.

난 내가 언제 크는지 안 보여요.

아빠

그래, 근데 아빤 보여.

그럼 당신도 컸어요?

(아빠의 침묵)

아빠

당신? 누구한테 말하는 거니? (딸애의 침묵) 당신? 지금 누구한테 말하는 거야?

누구냐 하면…. 내가 누구한테 말하는지 잘 알잖아 요. 여기 다른 사람 있어요? 여기 다른 사람 없잖아 요!


아빠

네가 지금 나한테 “당신”이라고 했어?

“당신”이라고 안 그랬어요!

아빠

난 네 아빠야, 근데 아빠한테 당신이라고 그러니?

“당신”이라고 안 했어요…. 어쨌든!

아빠

당신이라니…. 왜?

몰라요…. 그냥 당신이 컸는지 묻고 싶었어요.

아빠

누가 너더러 나한테 당신이라고 하라고 그랬어?

아니요.

아빠

그전엔 당신이라고 안 했는데…. 넌 내가 너한테 당

상관없어요.

신이라고 하면 좋겠어?

아빠

말도 안 돼, 아빠한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게 아니야. (딸애의 침묵) 그건 네가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 거 야, 넌 내게 마치 모르는 사람한테 하듯 말하잖아, 아 냐?

몰라요.

아빠

이제 아빠 안 보고 싶어?

몰라요.

아빠

몰라?

네.

아빠

근데 애들에겐 아빠가 필요하단다, 알겠니? 모든 사


람한테 다 그런 거란다, 이제 우리가 서로 안 봐도 슬 프지 않겠어? 딸

네.

아빠

그래? 그건 왜?

몰라요.

아빠

이제 날 안 봐도 슬프지 않을 거라고?

네, 그럴 것 같아요….

아빠

그럼 이제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보지 말지 뭐, 그럴 필요 없지 뭐….

좋아요.

아빠

좋다고?! 이게 정말 네가 원하는 거니?

난 상관없어요.

아빠

네가 좋다면 그럼 우리 보지 말지 뭐…. 그럼 오늘이 우리가 보는 마지막 날이다…. 네가 이제 날 보고 싶 지 않다면 말이야.

좋아요.

아빠

너 아무렇지도 않아?

네, 아직 엄마가 있으니까…. 나랑 같은 집에 사니 까.

아빠

엄마만 있으면 돼?

네.


아빠

우리가 이제 다시 못 보게 되면…. 너 우리가 오늘

네.

아빠

슬프지 않아?

네.

마지막으로 본다는 거 알기는 해?

(침묵)

아빠

그럼…. 그럼 집에 데려다줄까?

좋아요.

아빠

지금 바로? 그러는 게 좋겠어?

좋겠어요.

아빠

그럼 나 윗도리 좀 입을게.

나도.

아빠

그래…. 좀 슬프지 않아?

아니요.

아빠

있잖아 이제 우리 못 보는 거야.

네, 알아요.

아빠

그게 다야?

몰라요…. 괜찮아요.

아빠

난 슬픈데…. 나한테 어느 날 자기 아빠를 사랑하지


않는 딸이 생길 줄은 전혀 상상 못했거든….

(침묵)

그럼 갈까? 딸

네, 벌써 세 번이나 그 말 했어요.

아빠

확실하게 하려는 거야.

뭘 확실히 해요?

아빠

몰라.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넌 내가 슬픈 게 안 보여? 딸

네, 안 보여요. 난 슬픈 것도 싫고 우는 것도 싫어요.

(침묵)

아빠 딸

네 엄마가 너무 빨리 돌아왔다고 놀라겠다. 아니 엄만 기뻐할 거예요, 아주 기뻐할 거예요, 엄만 내가 집에 없으면 안 좋아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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