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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시의 시 운동 동시도 시가 되어야 한다. 시인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필연의 갈구, 그것을 느끼고 꿈꾸는 자기 세계의 발현. 목월이 앞에 섰다. 최남선 정지용 윤동주와 함께 우리 동시의 시성을 끌어올렸다.

박목월(1915~1978)은 동시가 시적 골격을 갖춘 동시로 발전하는 데 선구자 역할을 했다.


인텔리겐치아 2576, 2015년 5월 7일 발행

이준관이 엮은 ≪박목월 동시선집≫ 물새알 산새알 물새는 물새래서 바닷가 바위틈에 알을 낳는다. 보얗게 하얀 물새알. 산새는 산새래서 잎수풀 둥지 안에


알을 낳는다. 알락달락 얼룩진 산새알. 물새알은 간간하고 짭조롬한 미역 냄새 바람 냄새. 산새알은 달콤하고 향깃한 풀꽃 냄새 이슬 냄새. 물새알은 물새알이래서


날개쭉지 하얀 물새가 된다. 산새알은 산새알이래서 머리꼭지에 빨간 댕기를 드린 산새가 된다. -«박목월 동시선집», 박목월 지음, 이준관 엮음, 70~71쪽

그 박목월인가? 그렇다. 그는 시인으로 등단하기 전에 본명 인 박영종으로 동시로 등단한 아동문학가였 다. 평생 아동문학을 놓지 않았다.


아동문학 활동의 궤적은? 동시집 «박영종 동시집», «초록별», «산 새알 물새알»과 동시 창작 이론서 «동시 교실», «동시의 세계», «소년소녀문학 독본»을 펴냈다. 1962년에 창간된 최초의 아동문학 전문 연구지 «아동문학» 편집 인으로 강소천, 조지훈, 김동리와 함께 참여 했다. 한국 동시문학사에 무엇을 기여했나? 동시가 동요의 틀에서 벗어나는 데 기여했 다. 우리 동시가 시적 골격을 갖춘 동시로 발 전하는 데 선구자 역할을 했다. 후대에 일어 난 동시의 시 운동에 영향을 주었다.


동시가 동요의 틀을 벗으려는 이유가 뭔가? 목월은 자작시 해설 «보라빛 소묘»에서 이렇게 말한다. “당시(1933년 무렵)에 우리 나라 동시라 함은 구전동요의 영역에서 겨 우 벗어나기는 했으나, (…) 시적 정감을 담 지 못한 내용이 다만 7·5조나 4·4조의 글자 나열에 불과했다. 그것을, 나는 자유로운 시 형 안에 나의 향수를 노래하고 (…) 동화적인 신비로운 세계 안에서 빚은 꿈을 담으려고 애를 썼던 것이다.” ‘동시의 시 운동’이 뭔가? 1960년대 몇몇 동시인들이 펼친 운동이다. ‘동시도 시여야 한다, 동시의 독자를 어린이 뿐만 아니라 어른에게까지 확대해야 한다’


고 주장했다. “동시도 시”란 무엇을 가리키는 말인가? 목월은 이렇게 말했다. “아동문학이라는 것 이 아동만을 위한 문학이 아닌 것처럼, 그것 은 동심성이 위주가 된 시라야 하는 것이다. (…) 동시도 시가 되어야 하며, 아기를 위한 것이기보다 자기의 깊은 내부에서 우러나오 는 필연한 갈구의 정신이 느끼고 꿈꾸는 자 기 세계의 발현이어야 한다.” 동시와 시가 갈라지는 지점이 어디인가? 동시는 동심의 단순성과 어린이가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갖추어야 한다.


운동의 결과는 어떤 것이었나? ‘시성(詩性)’을 갖춘 동시가 등장했다. 우리 동시의 수준이 크게 높아졌다. 하지만 난해 한 표현이 문제가 되었다. 그 결과 정작 어린 이 독자와는 멀어졌다. 이후 동시문단은 어디로 가는가? 1970년대까지 ‘동시의 시 운동’이 이어졌다. 하지만 난해성 때문에 ‘얻은 것은 시요, 잃은 것은 독자’라는 반성이 일었다. 1980년대 이 후 ‘동심과 시심의 조화’를 추구했고 동요 부 흥 운동, 이야기 동시, 동시조가 나타났다. 동시문학이 풍성해졌다.


우리 아동문학사에서 박목월의 좌표는? “본격적 동시의 출현에 획기적 이정표를 세 웠다. 그는 어휘 하나하나가 가지는 이미지 를 중시하여 시어의 발견 및 선택 구사에 특 이한 장기를 보여 동시의 질적 향상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재철의 평가다. 시인 가운데 아동문학을 창작한 사람이 또 있 는가? 최남선·정지용·윤동주가 있다. 최남선의 창가는 우리 창작 동요의 원류였다. 정지용 은 창작 동요가 유행할 때 현대 동시 <해바 라기 씨>를 발표했다. 윤동주는 아동문학으 로 정식 등단하진 않았지만 작품이 높은 수 준을 보여 동시사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준관이다. 시인이며 아동문학가다.


우리 동시의 시 운동 동시도 시가 되어야 한다. 시인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필연의 갈구, 그것을 느끼고 꿈꾸는 자기 세계의 발현. 목월이 앞에 섰다. 최남선 정지용 윤동주와 함께 우리 동시의 시성을 끌어올렸다.

박목월(1915~1978)은 동시가 시적 골격을 갖춘 동시로 발전하는 데 선구자 역할을 했다.


박목월 동시선집 박목월 지음 이준관 엮음 2015년 4월 15일 출간 사륙판(128 *188) 무선제본, 190쪽, 18,000원


작품 속으로

1부 초록별


토끼와 귀

토끼 동무 모여서 숨바꼭질하안다.

바위 뒤에 숨었다. 하얀 귀 보인다.

나무 뒤에 숨었다. 하얀 귀 보인다.

숨기는 숨어도 하얀 귀가 보여서 애구 술레한테 이내 잡혔다.


토끼길

福바위 뒤에

토끼길. 초록길.

낮에는 나리꽃에 감춘 길. 토끼길.

南山골 토끼 白서방

장가 가마 꽃가마. 넘는 길. 쉬는 길.

달밤에는 두세 차례


넘는 길. 초록길.


얼룩송아지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엄마 소도 얼룩소 엄마 닮었네.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두 귀가 얼룩 귀 귀가 닮었네.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울 아기는 또록눈 엄마 닮었네.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엄마 소도 뚜룩눈 눈이 닮었네.


토끼 방아*

낼모레 설날이다 떡방아 찧자 엄마 토끼 누나 토끼 흰 수건 쓰고 오콩 콩콩 콩 한 되 찧고. 오콩 콩콩 팥 한 되 찧고.

애기 토끼 때때옷은 색동저고리. 누나 토끼 설 치장은 하얀 고무신. 오콩 콩콩 한 호박 * 찧고. 오콩 콩콩 두 호박 찧고.

계수나무 절구에 福떡을 찧고,


은 도끼로 깎아 낸 나무절구. 오콩 콩콩 쌀 한 되 찧고. 오콩 콩콩 조 한 되 찧고.

그믐날 밤이래서 어두워지면 초롱불 켜 들어라 수박 초롱 오콩 콩콩 한 호박 찧고. 오콩 콩콩 두 호박 찧고.

* ≪산새알 물새알≫(문원사, 1961)에서는 <토끼 방아 찧는 노래>로 제목이 바뀌었다. ** 호박: ‘절구’의 방언.


잠*

토끼 귀 소록소록 잠이 들고 엄마 토끼 소오록 잠이 들고 애기 토끼 꼬오박 잠이 들지요.

* ≪산새알 물새알≫에서는 <아기 토끼>로 제목이 바뀌었다.


가랑비

옛날 村驛에 가랑비 왔다. 초롱불 희미한 밤 가랑비 왔다.

초롱은 종이 초롱 하얀 驛 초롱. 毛良驛 세 글자

젖어 뵈는데,

옛날 村驛에 가랑비 왔다. 초롱불 희미한 밤 가랑비 왔다.


옛날 옛날

외양간 당나귀가 아직 아직 어려서 그래서 두 귀가 콩잎만큼 적을 적에 그때가 옛날이지.

아저씨댁 삽사리 아직 아직 어려서 그래서 마루 위로 흙발로 다닐 때 그때가 옛날이지.

사랑방 할머니가 아직 아직 어려서 할머니 나막신이 초생달보다 적을 적에 그때가 옛날 옛날이지.


흥부와 제비

옛날 옛날 옛날에 흥부 집은 오막집. 하얀 돌담 외딴집.

오막집 울안에는 박포기가 자라고, 오막집 울 밖에는 옹달샘*이 소옷고,

흥부는 尙州골에 매품** 팔러 가고, 尙州골은 칠십 리

해 저물어 오는데,

박포기에 물은 누가 주우나.


누가 주우나. 숫제비가 한 모금 모금어다 주우고, 암제비가 한 모금 모금어다 주운다.

* 원문에는 ‘옹당샘’. ** 매품: 예전에, 관가에 가서 삯을 받고 남의 매를 대신 맞아 주 는 데 들이던 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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