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 행복했다 벙어리 삼룡이가 지른 불은 울분과 사랑을 가리킨다. 아씨를 구하고 자신을 버린 뒤 그의 입가엔 미소가 남는다. 죽음으로 울분은 사랑이 된다. 노예는 천국에서 더 행복했다.
‹불›, 이브 클라인 그림, 1961
인텔리겐치아 2622, 2015년 6월 5일 발행
김춘식이 엮은 ≪초판본 나도향 단편집≫ 새앗시를 자긔 가슴에 안엇슬 그는 이제 서 첨음으로 사러난 듯하얏다. 그는 자긔의
목슴이 다한 줄 알엇슬 그 새앗시를 자긔
가슴에 힘 어 안엇다가 다시 그를 데리 고 불 가운데를 헤치고 박가트로 나온 뒤에 새앗시를 내려놀 에 그는 발서 목숨이
허진 뒤엿다. 집은 모조리 타고 벙어리는 새 앗시 무릅에 누어 잇섯다. 그의 울분은 그
불과 함 살어젓슬는지! 평화롭고 행복스
러운 우슴이 그의 입 가장자리에 열게 나타 낫슬 이다.
- <벙어리 삼룡이>, «초판본 나도향 단편집», 나도향 지음, 김춘식 엮음, 38~39쪽
어쩌다 불이 났는가? 명시되지 않았다. 정황상 삼룡이의 방화로 추정된다. 삼룡이가 불을 지른 이유는? 주인 오 생원 집의 새아씨를 사모하다 추문 이 생겨 쫓겨난 탓이다.
그 추문이 불을 지르고 목숨을 버릴 정도의 일 인가? 센티멘털한 정서, 아씨에 대한 사랑으로 벙 어리 삼룡이는 어떤 생명의 환희, 자신의 인 간 가치를 느꼈는데, 그런 모든 것이 좌절되 었다. 여기서 불은 무엇을 가리키나? 삼룡이의 두 감정 ‘울분과 사랑’의 상징이다. 그의 울분이란 무엇인가? 삼룡이는 추한 외모와 벙어리라는 ‘천형’을 안고 태어났다. 오 생원의 아들은 성정이 바 르지 못해 언제나 삼룡이를 괴롭히고 안하 무인으로 행동했다.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
니 세상과 운명에 대한 울분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울분은 어떻게 해소되는가? 정상적으로는 표출이 불가능하다. 불 속에 서 죽음을 통해 ‘사랑’으로 승화된다. 나도향은 왜 이런 결말을 끌어냈나? ‘낭만적 죽음’을 미적으로 형상화한 결말이 다. 도식적이기도 하지만 그의 낭만성이 보 인다. 그의 낭만적 세계관에는 무엇이 있는가? ‘현실과 이상’의 이원적 대립구도 속에서 좌 절하고 패배하는 주인공의 운명적 비극이 다.
<벙어리 삼룡이>는 나도향의 작품 세계 어 디쯤에 있는가? <뽕>, <물레방아> 등과 함께 초기 낭만 주의와 후기 사실주의의 중간쯤에 위치한 다. 세 작품의 공통점은? 낭만주의적인 격정과 원초적 본능, 생명력이 인간 묘사의 중심을 차지한다. 사실주의 경향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사회적 관계의 부조리가 원인이 되어 욕망의 실패와 좌절이 일어난다. 낭만적 이상이 지 닌 건강성은 현실의 타락한 관계, 환경에 의 해서 일그러지고 왜곡된다.
그의 초기 낭만주의 경향의 특징은 뭔가? «백조» 동인 초기에는 자전적 내용을 소 설로 썼다. 주관적이고 낭만적인 감정 토로 가 드러나고 감상적인 예술가형 주인공이 등장한다. 잦은 영탄과 감격, 감상주의도 두 드러진다. 어떤 작품이 그런가? <젊은이의 시절>, <별을 안거든 울지나 말걸>이 그렇다. 장편 «환희»는 작자 자 신도 “사색과 구상에 들어서 조금도 생각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붓이 내려가 는 대로” 썼다고 고백했을 정도다.
감상성이 어디서 극복되는가? 단편 <여이발사>를 발표하면서 극적 변화 가 나타난다. 인물의 심리 묘사가 세밀해졌 고 아이러니한 상황이 들어서면서 플롯이 탄탄해졌다. 간결함과 냉정한 시선, 객관성 을 확보한 문체를 볼 수 있다. 어떻게 살다 갔나? 1902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성의학전문학 교에 입학했으나 문학에 뜻을 두고 중퇴했 다. 와세다대학 영문학부에 입학하기 위해 일본으로 건너갔다. 학비 부족으로 귀국하 여 1920년에는 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1922년 «백조» 동인으로 참가하여, 홍사 용·현진건·박영희· 이상화·박종화 등과
활동했다. 1926년 일본에 다시 건너갔으나 1927년 건강 문제로 귀국한 뒤 사망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김춘식이다.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다.
죽어서 행복했다 벙어리 삼룡이가 지른 불은 울분과 사랑을 가리킨다. 아씨를 구하고 자신을 버린 뒤 그의 입가엔 미소가 남는다. 죽음으로 울분은 사랑이 된다. 노예는 천국에서 더 행복했다.
‹불›, 이브 클라인 그림, 1961
초판본 나도향 단편집 나도향 지음 김춘식 엮음 2012년 5월 25일 출간 사륙판(128 *188) 무선제본, 200쪽, 12,000원
작품 속으로
벙어리 삼룡(三龍)이
一 내가 열 살이 될낙 말낙 할 대이닛가 지금으로부터 십사오 년 전 일이다. 지금은 그곳을 청엽정(靑葉町)이라 부르지만은 그는 련화봉(蓮花峯)이라고 일음하얏다. 즉 남대문(南大門)에 서 바로 내다보면은 오정포가 노여 잇는 산등성이가 잇스니 그 산등성이 이이 련화봉이오 그 새에 잇는 동리가 역시 련화봉이다. 지금은 그곳에 빈민굴(貧民窟)이라고 할 수밧게 업시 지저분한 촌락이 생기고 로동자들밧게 살지 안는 곳이 되어
바리엿스나 그에는 자긔네 은 행세한다는 사람들이 잇 섯다. 집이라고는 십여 호밧게 잇지 안엇고 그곳에 사는 사 람들은 대개 과목밧을 하고 는 채소를 심으거나 그러치
안이하면 콩나물을 길러서 생활을 하여갓섯다. 여기에 그중 큰 과목밧을 갓고 그중 여유 잇는 생활을 하 여가는 사람이 하나 잇섯는데 그의 일홈은 이저버렷스나 동 리 사람들이 부르기를 오 생원(吳生員)이라고 불럿다. 얼골이 동탕하고5) 목소리가 마치 여름에 버드나무에 안저
5) 동탕하고: 활기에 넘쳐 호탕하고.
서 길게 목 느려 우는 매암이 소리가티 저르렁저르렁하엿다. 그는 몹시 부지런한 중년 늙은이로 아츰이면 새벽 일즉 이 이러나서 압뒤로 뒤짐을 지고 도라다니며 집안일을 보살 피는데 그 동리에는 그가 마치 시게와 가태서 그가 일어나
는 가 동리 사람이 일어나는 엿다. 만일 그가 아츰에 도 라다니며 잔소리를 하지 안으면 동리 사람들이 이상하야 그 의 집으로 가보면 그는 반듯이 몸이 불편하야 누엇섯다. 그
러나 그와 가튼 는 일 년 삼백륙십 일에 한 번 잇기가 어려 온 일이오 이태나 삼 년에 한 번 잇거나 말거나 하엿다. 그가 이곳으로 이사를 온 지는 얼마 되지 안이하나 그가 언제든지 감투를 쓰고 다님으로 동리 사람들은 량반이라고
불럿고 그 사람도 동리 사람들에게 그리 인심을 일치 안 으랴고 섯달이면 북어쾌 김 톳식 동리 사람에게 난화주며
롱사의 쓰는 년장도 넉넉히 작만한 후 아무 나 동리 사람 들이 쓰게 함으로 그 동리에서는 가장 인심 후하고 존경을 밧는 집인 동시에 세력 잇는 집이다. 그 집에는 삼룡(三龍)이라는 벙어리 하인 하나이 잇스니
키가 본시 크지 못하야 보로 되엇고 고개가 지 못하야 몸둥이에 대강이6)를 갓다가 부친 것 갓다. 거기다가 얼골이
6) 대강이: 머리. 몸과 머리가 너무 바짝 붙어서 목이 없는 것 같이 보이는
몹시 얼고 입이 몹시 크다. 머리는 전에 새 랑지 가튼 것을 주인의 명령으로 기는 것스나 불밤송이 모양으로 언제
든지 푸 하고 일어섯다. 그래서 거러 다니는 것을 보면 마치 움독개비7)가 서서 다니는 것 가티 숨차 보이고 더듸어 보인 다. 동리 사람들이 부르기를 삼룡이라고 부르는 법이 업고 언제든지 ‘벙어리’ ‘벙어리’라고 하든지 그러치 안으면 ‘앵 모’8) ‘앵모’ 한다. 그러치만 삼룡이는 그 소리를 아지 못한다.
그도 이 집 주인이 이리로 이사를 올 에 데리고 왓스니
진실하고 충성스러우며 부지런하고 세차다. 눈치로만 지내
가는 벙어리지만은 말하고 듯는 사람보다 슬기러울 이 잇
고 평생 조심성이 잇서서 결코 실수할 이 업다.
아츰에 일어나면 마당을 쓸고 소와 도야지의 여몰을 먹
이며 여름이면 밧에 풀을 고 나무를 시러드리고 장적을
패며 겨울이면 눈을 쓸고 장 심부름이며 지른일 말은일9) 할 것 업시 못하는 일이 업다.
상태를 가리키는 말. 7) 움독개비: 옴두꺼비. 8) 앵모: 벙어리의 말투나 행동을 흉내 내어 놀리는 말. 9) 지른일 말은일: 진일 마른일. ‘진일’은 밥 짓고 빨래하는 따위의 물을 써 서 하는 일이고, ‘마른일’은 바느질이나 길쌈 따위와 같이 손에 물을 묻 히지 아니하고 하는 일이다.
그럴스록 이 집 주인은 벙어리를 위해주며 사랑한다. 혹 시 몸이 불편한 긔색이 잇스면 쉬게 해주고 먹고 십허 하논 듯한 것은 먹이고 입을 입히고 잘 재인다.
그런데 이 집에는 삼대독자로 나려오는 그 집 아들이 잇 다. 나히는 열일곱 살이나 아즉 열네 살도 되어 보이지 안코 넘어 귀엽게 길리기 문에 누구에게든지 버릇이 업고 어리 광을 부리며 사람에게나 짐승에게 잔인 포악한 짓을 만히 한다. 동리 사람들은 그를 “호레자식!” “애비 속상하게 할 자식!” “저런 자식은 업는 것만 못해.” 하고 욕들을 한다. 그래서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잘못할
마다 그의 령감을 보고
“그 자식을 좀 려주구려. 왜 그런 것을 보고 가만두?” 하고 자긔가 대신 려주랴고 나스면
“안요. 아직 철이 업서 그러치. 저도 지각이 나면 그러치 안을 것이 안요.” 하고 너그럽게 타일은다. 그러면 마누라는 왜가리처럼 소리를 질으며 “철이 업긴 지금 나히가 몃치이오. 낼모래면 스므 살이
되는데. 몃칠 아니면 장가를 드러서 자식지 날 것이 그
래가지고 무엇을 한단 말이오.” 하고 듸리대며
“자식은 아버지가 버려노앗습닌다. 자식 귀여운 것만 알엇지 버릇 가리칠 줄은 몰으닛가 ―” 이러케 싸홈이 시작만 하랴 하면 영감은 아모 말도 하지 안코 밧갓으로 나가버린다. 그 아들은 더구나 이 벙어리를 사람으로 알지도 안는다. 말 못하는 벙어리라고 오고 가며 주먹으로 허구리를 질으기 도 하고 발길로 응딍이도 찬다. 그러면 그 벙어리는 어린것이 철업시 그리는 것이 도리
혀 귀엽기도 하고 는 그 힘업는 팔과 힘업는 다리로 자긔 의 무쇠 가튼 몸을 건듸리는 것이 우습기도 하고 앙징하기 도 하야 도라서서 빙그레 우스면서 툭툭 털고 다른 곳으로 몸을 피해버린다.
엇던 는 낫잠 자는 벙어리 입에다가 을 먹일 도 잇
섯다. 엇던 는 자는 벙어리 두 팔 두 다리를 살몃이 동 여매고 손가락과 발가락 사이에 화승 불을 부처노아 질겁을 하고 일어나다가 발버둥질을 하고 죽으랴는 사람처럼 괴로 워하는 것을 보고 깃버하얏다.
이러할 마다 벙어리의 가슴에는 비분한 마음이 듸
리찻다. 그러나 그는 주인의 아들을 원망하는 것보다도 자
긔가 병신인 것을 원망하얏스며 주인의 아들을 저주한다는 것보다 이 세상을 저주하얏다. 그러나 그는 결코 눈물을 흘 리지 안엇다. 그에게는 눈물이 업섯다. 그의 눈물은 나오랴
할 아주 말너부터 버린 샘물과 가티 나오랴 하나 나오지 를 아니하얏다. 그는 주인의 집을 버릴 줄 몰으는 개 모양으 로 자긔가 잇서야 할 곳은 여기밧게 업고 자긔가 미들 곳도 여기 잇는 사람들밧게 업는 줄 알엇다. 여기서 살다가 여기 서 죽는 것이 자긔의 운명인 줄밧게 아지 못하얏다. 자긔의
주인 아들이 리고 질으고 집어 고 모든 방법으로 학 대할지라도 그것이 자긔에게 의례히 잇슬 줄밧게 아지 못하
얏다. 아푼 것도 그 아푼 것이 의례히 자긔에게 도라올 것이 오 쓰린 것도 자긔가 밧지 안어서는 안 될 것으로 알엇다. 그는 이 맛당이 자긔가 바더야 할 것을 엇더케 해야 면할가 하는 생각을 한 번도 하야본 일이 업섯다.
그가 이 집에서 나가랴 하거나 는 그의 생활환경에
서 버서나랴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하얏다 할지라도
그는 언제든지 그 주인 아들이 자긔를 학대하고 는 자긔
를 못살게 굴 그는 자긔의 주먹과 는 자긔의 힘을 생각 하야 보앗다.
주인 아들이 자긔를 릴 그는 주인 아들 하나은 넉
넉히 제지할 힘이 잇는 것을 알엇다.
엇더한 는 압흠과 쓰림이 자긔의 몸으로 스미어들
면 그의 주먹은 리면서 어린 주인의 몸을 치랴 하다가는 그는 그것을 무서운 고통과 함 참엇다. 그는 속으로
‘안이다, 그는 나의 주인의 아들이다, 그는 나의 어린 주 인이다.’
하고 참엇다. 그리고는 그것을 얼핏 이저버리엇다. 그리다가도 동리
집 아이들과 혹시 작난을 하다가 주인 아들이 울고 드러올
에는 그는 황소가티 날면서 주인을 위하야 싸홧다. 그 래서 동리에서도 어린애들이나 작난군들이 벙어리를 무서 워하야 감히 덤비지를 못하얏다. 그러고 주인 아들도 위급 한 경우에는 언제든지 벙어리를 차젓다. 벙어리는 으더마 지면서도 기어드는 충견 모양으로 주인의 아들을 위하야 실 혀하지 안코 힘을 다하얏다.
二 벙어리가 스믈세 살이 될 지 그는 물론 이성과 접촉할 긔회가 업섯다. 동리의 처녀들이 저를 ‘벙어리’ ‘벙어리’ 하
며 괴상한 손짓과 몸짓으로 놀려먹음을 바들 적에 분하고 골라는 중에도 느긋한 즐거움을 늣기어본 일은 잇섯스나 그 가 결코 사랑으로써 엇더한 녀자를 대해본 일은 업섯다. 그러나 정욕을 가진 사람인 벙어리도 그의 피가 차듸찰
리는 업섯다. 혹 그의 피는 더욱 거웟슬른지도 알 수 업섯 다. 겁다 겁다 못하야 엉기여버린 엿과 가틀는지도 알
수 업섯다. 만일 그에게 볏을 주거니 다시 거운 열을 준다 면 그의 피는 다시 녹을지도 알 수 업섯다.
그가 박박하는 기름등잔 아래에서 밤이 깁도록 집
세기를 삼을 이면 남모르는 한숨을 안이 쉬는 것도 아니 지만은 그는 그것을 곳 억지할 수 업슬10) 만치 정욕에 대하 야 벌서부터 단념을 하고 잇섯다. 마치 언제 폭발이 될른지 아지 못하는 휴화산(休火山) 모양으로 그의 가슴속에는 충분한 정열을 깁히 감추어노앗 스나 그것이 아직 폭발될 시긔가 일우지 못한 것이엇섯다. 비록 폭발이 되랴고 무서웁게 격동을 벙어리 자신도 늣기지 안은 바는 아니지만은 그는 그것을 폭발식힐 조건을 엇기
어려웟스며 는 자긔가 여태지 능동뎍으로 그것을 나타 낼 수가 업슬 만치 외게의 압축을 바덧스며 그것으로 인한
10) 업슬: 문맥상 ‘있을’이 적합하며 작가의 잘못으로 보임.
리지(理智)가 넘어 그에게 자제력(自制力)을 강대하게 하 야주는 동시 한 넘어 그것을 단념만 하게 하야주엇다.
속으로 나는 ‘벙어리’다. 자긔가 생각할 그는 몹시 원
통함을 늣기는 동시에 나는 말하는 사람들과 가튼 자유와 가튼 권리가 업는 줄 알엇다. 그는 이와 가튼 생각에서 언 제든지 단념하랴 단념하지 안을 수 업는 그 단념이 싸이고 싸여서 지금에는 다만 한 개의 긔게와 가티 이 집에 노예가 되어 잇스면서도 그것이 자긔의 천직으로 알고 잇슬 이고 다시는 자긔가 사러갈 세상이 업는 것 가티밧게 알지 못하 게 된 것이다.
三 그해 가을이다. 주인의 아들이 장가를 들엇다. 색시는 신랑 보다 두 살이 우인 열아홉 살이다. 주인이 본시 자긔가 언제 든지 문벌이 야튼 것을 한탄하야 신부를 구할 에 첫재 조 건이 문벌이 놉허야 할 것이엇다. 그러나 문벌 잇는 집에서 는 그리 쉽게 색시를 내놀 리가 업섯다. 그럼으로 하는 수 업 시 그 엇더한 령락11)한 량반의 을 돈을 주고 사 오다십히
하얏스니 무남독녀 외을 둔 남촌 엇던 과부를 을 발러
서 약혼을 하고 혹시나 무슨 소리가 잇슬가 하야 불야불 야 성례를 식혀버렷다.
혼인할 에 비용도 그 돈으로 삼만 량을 썻다. 그리고
아들의 처가집에 며느리 뒤보아주는 바느질삭 래삭이라 는 명목으로 한 달에 이천오백 량식을 대여주엇다. 신부는 자긔 아버지가 도라가기 전지 상당히 견듸기
도 하고 는 금지옥엽가티 길른 터이라 구식 가정에서 배
울 것 닑힐 것은 못할 것이 업고 는 본래 인물이라든지 행 동거지에 조곰도 구김이 잇지 안하다. 신부가 오자 신랑의 험절이 생기기 시작하얏다.
“신부에게다 대면 두루미와 막이지.” “아직도 철선이가 업서.” “색시에게 쥐여 지내겟서.” “신랑에겐 과하지.”
동리 집 말 조와하는 녀편네들이 모혀 안지면 이러케 비 평들을 한다. 엇더한 남의 걱정 잘하는 마누라님은 간혹 신 랑을 보고는 그대로 세워노코 “글세 인제는 어른이 되엿스니 셈이 좀 나요. 저러구 엇 더케 색시를 거느려가누. 색시 방에 드리가기가 붓그럽지
11) 령락: 영락(零落). 세력이나 살림이 줄어서 보잘것없게 됨.
안탐.” 하고 듸리대다십히 하는 일이 잇다. 이럴 적마다 신랑의 마음은 그 말하는 이들이 미웟다. 일 부러 자긔를 붓그럽게 하랴고 하는 것 갓태서 그 후에 그를 맛나면 말도 안 하고 인사도 하지 안이한다.
그의 고모 되는 이가 와서 자긔 족하를 보고
“인제는 어른야. 너도 그만하면 지각이 날 가 되지 안 엇니. 네 처가 붓그럽지 아니하냐.” 하고 타이를 적마다 그의 마음은 그 말하는 사람이 붓그 럽웁다는 것보다도 자긔를 이러케 하게 한 자긔 안해가 더 욱 밉살머리스러웟다. “녀편네가 다 무엇이냐? 저 비러먹을 년이 드러오더니 나를 이리케 못살게들 구지.” 혼인한 지 며칠이 못 되어 그는 색시 방에 드러가지를 안 엇다. 집안에서는 야단이 낫다. 마치 도야지나 말 색기를 헐 레식히랴는 것 가티 신랑을 색시 방으로 집어느랴 하나 막 무간해엿다.
그럴 마다 신랑은 손에 닥치는 대로 집어 려서 자긔
의 외사촌 누이의 이마를 러서 피지 나게 한 일이 잇섯 다. 집안 식구들은 하는 수가 업서 맨 나종으로 아버지에게
미럿다. 그러나 그것도 소용이 업슬 더러 풍파를 더 이리
키게 하얏다. 아버지 중을 듯고 드러와서는 닷자곳자 로 신부의 머리채를 쥐어 잡어 마루 한복판에 태질을 첫다. 그러고는 “이년 네 집으로 가거라. 보기 실타. 내 눈압헤는 보이지 도 마라.” 하얏다. 밥상을 가저오면 그 밥상이 마당 한복판에서 재 조를 넘고 옷을 가저오면 그 옷이 쓰레기통으로 나간다. 이리하야 색시는 시집오든 날부터 팔자 한탄을 하고서 날마다 밤마다 우는 사람이 되엇섯다.
울면은 요사스럽다고 린다. 말이 업스면 빈충맞다
고12) 친다. 이리하야 그 집에는 평화스러운 날이 하로도 업섯다. 이것을 날마다 보는 사람 가운데 알 수 업는 의혹을 폼게 된 사람이 하나 잇스니 그는 곳 벙어리 삼룡이엇다. 그리케 어엽부고 그러케 유순하고 그러케 얌전한, 벙어 리의 눈으로 보아서는 감히 손도 대지 못할 만치 선녀 가튼 색시를 리는 것은 자긔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업는 의심이다.
12) 빈충맞다고: ‘빙충맞다’의 잘못된 표현. 똘똘하지 못하고 어리석다는 뜻.
보기에도 황훌하고 건듸리기도 황송할 만치 숭고한 녀 자를 그러케 학대한다는 것은 넘우나 세상에 잇지 못할 일 이다. 자긔는 주인 새서방님에게 개나 도야지가티 으더맛 는 것이 맛당한 이상으로 맛당하지만은 선녀와 즘생의 차가
잇는 색시와 자긔가 가티 으더맛는다는 것은 넘어 무서운 일이다. 어린 주인이 천벌이나 밧지 안을가 두려웁기지 하얏다. 엇더한 달밤 사면은 고요 적막하고 별들은 드믄드믄 눈
들만 박이며 반달이 공중에 두렷이13) 달려 잇서 수은으
로 세상을 하게 닥거낸 듯이 청명한데 삼룡이는 검둥개 등을 쓰다듬으며 밧마당 멍석 우에 비슷이 두러누어 잇서 하늘을 치어다보며 생각하야 보앗다. 주인 색시를 생각하매 공중에 잇는 달보다도 더 고읍고
별들보다도 더 하얏다. 주인 색시를 생각하면 달이 보 이고 별이 보이엇다. 삼라만상을 씨서내는 은빗보다도 더 힌 달이나 별의 광채보다도 그의 마음이 아름답고 부드러운
듯하얏다. 마치 달이나 별이 에 러저 주인 새앗시가 된 것도 갓고 주인 새앗시가 하늘에 올러가면 달이 되고 별이 될 것 가텃다.
13) 두렷이: 뚜렷하게.
더구나 자긔를 어린 주인이 리고 집을 감히 입 버 려 말을 하지 못하나 측은하고 불상이 녁이는 정이 그의 두
눈에 나타나는 것을 다시 생각할 그는 부들부들한 개 등 을 어루만지면서 감격을 늣기엿다. 개는 리를 치며 자긔 를 귀여워하는 줄 알고 벙어리의 손을 할텃다. 삼룡이의 가슴은 주인앗시를 동정하는 마음으로 가득
찻다. 는 그를 위하야서는 자긔의 목숨이라도 앗기지 안 켓다는 의분이 넘첫섯다. 그것이 마치 살구를 보면 입속에 침이 도는 것 가티 본능뎍으로 늣기어지는 감정이엇다.
四 새댁이 온 뒤에 다른 사람들은 자유로 안 출입을 금하얏스 나 벙어리는 마치 개가 맘대로 안에 출입할 수 잇는 것 가티 아모 의심 업시 출입할 수가 잇섯다. 하로는 어린 주인이 먹지 안튼 술이 잔득 취하야 무지한 놈에게 마저서 길에 잡버진 것을 업어다가 안으로 듸려다 누인 일이 잇섯다. 그에 아무도 안에 잇지 안코 다만 새색
시 혼자 방에서 바누질을 하고 잇다가 이 을 보고 벙어리 의 충성된 마음이 고마워서 그 후에 쓰든 비단 헌겁 조각으
로 부시쌈지14) 하나를 하야준 일이 잇섯다.
이것이 새서방님의 눈에 엇다. 그래서 색시는 엇던 날
밤에 자든 몸으로 마당 복판에 머리를 푼 채 내어동댕이가 첫졋다. 그리고 온몸이 피가 매치도록 으더마졋다.
이것을 본 벙어리는 다시 의분의 마음이 처올라 왓
다. 그래서 미친 사자와 가티 어드러 새서방님을 밀어 던 지고 새색시를 둘러미엇다. 그리고는 나는 수리와 가티 밧 갓사랑 주인 령감 잇는 곳으로 어가 압헤 내려노코 손짓 과 몸짓을 열 번 스므 번 겁허하며 하수연하얏다. 그 이튼날 아츰에 그는 주인 새서방님에게 물푸레로 얼
골을 몹시 어더마저서 한 이 눈을 얼러서 피가 나고 주 먹가티 부엇다. 그 릴 적에 새서방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이 흉측한 벙어리 가트니. 내 녀편네를 건듸려.”
하고 부시쌈지를 서서 갈갈이 저 뒤간에 던젓다.
하고 채으로 그의 뒤덜미를 갈겨서 그 자리에 쓰러지 게 하얏다.
벙어리는 다만 두 손으로 빌 이엇다. 말도 못하고 고개
를 몇백 번 코가 에 닷도록 그저 용서해 달라고 빌기만 하 얏다. 그러나 그의 가슴에는 비로소 숨겨 잇든 정의감(正義
14) 부시쌈지: 부시, 부싯돌 등을 담는 주머니.
感)이 머리를 들기 시작하얏다. 그는 그 압흔 것을 참어가 면서도 그의 북밧치는 분노(심술)를 억지하얏다. 그부터 벙어리는 안방 드러가지를 못하얏다. 이 드러 가지 못하는 것이 더욱 벙어리로 하야금 궁금증이 나게 하 얏다. 그 궁금증이라는 것이 묘하게 빗이 변하야 주인앗시 를 뵈웁고 십흔 감정으로 변하얏다. 뵈옵지 못함으로 가슴 이 타올랏다. 몹시 애상(哀傷)의 정서가 그의 가슴을 저리 게 하얏다. 한 번이라도 앗시를 뵈올 수가 잇스면 하는 마음 이 나더니 그의 마음의 엿은 늑기를 시작하얏다. 센치멘탈 한 가운데에서 늑기는 그 무슨 정서는 그에게 생명 가튼 히 열을 주엇다. 그것과 자긔의 목숨이라도 밧굴 수 잇슬 것 갓 탓다. 엇던 는 그대로 대강이로 담을 코 드러가고 십도 록 주인앗시를 뵈웁고 십흔 것을 참을 도 잇섯다.
그 후부터는 밥을 잘 먹을 수가 업섯다. 일도 손에 잡히 지 안엇다. 틈만 잇스면 안으로만 드러가고 십헛다. 주인이 전보다 만히 밥과 음식을 주고 더 편하게 하여주 엇스나 그것이 실혓다. 그는 밤에 잠을 자지 안코 집 가장자 리로 도라다녓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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