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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과 한국문학 6/10 시

어둠이 스러질 때까지 너무나 참혹했으므로 현실로부터 눈을 거두는 순수와 서정, 아무리 참혹해도 외면은 안 된다는 자기 각성이 전후의 시를 만든다. 구상은 말한다. 빛 속에서 어둠이 스러질 때까지 그 둘을 지켜보자고.

공습으로 무너진 평양의 집들. 키스톤 사진, 1950


인텔리겐치아 2647, 2015년 6월 22일 발행

초토의 시 10 어둡다구요. 아주 캄캄해 못 살겠다구요. 무엇 이 어떻게 어둡습니까. 그래 그대는 밝은 빛을 보았읍니까. 아니 생각이라도 하여 보았읍니 까. 빛의 밝음을 꿈꿔도 안 보구 어둡다 소리 소리 지르십니까. 설령 그대가 낮과 밤의 明暗 에서 광명과 암흑을 헤아린다 칩시다. 그러 량 이면 아침의 먼동과 저녁노을엔 어찌 무심하 십니까. 보다 빛과 어둠이 엇갈리는 사정은 노 상 잊으십니까. 됩데 어둠 뒤에 가리운 빛, 빛 뒤에 가리운 어둠의 意味를 깨치서야 하지 않 겠읍니까. 그제사 정말 암흑이 두려워지고 광


명이 바래질 것이지, 건성으로 눈 감고 어둡다 어둡다 소동을 이르킬 것이 아니라 또 건성으 로 광명을 바래고 기다릴 것이 아니라 진정 먼 저 빛과 어둠의 얼골을 마주 쳐다봅시다. 빛 속에서 어둠이 스러질 때까지. - <초토의 시 10>, «초판본 구상 시선» 구상 지음, 오태호 엮음, 21쪽


초판본 구상 시선 구상 지음 오태호 엮음 사륙판(128 *188mm) 2012년 8월 13일 출간 무선제본, 154쪽 16,000원


작품 속으로

한국전쟁과 시


어느 날 나는 江으로 갔다. 江에는 爆彈 에 맞아 물속에 뛰어든 아주 낭자한 아이 들의 주검이 이리저리 떠가고 있었다. 물살이 어울리면 그들도 한데 어울리고 물살이 갈라지면 그들도 다른 물살을 타고 저만침 갈라져 갔다. 나는 그때가 八月이 라고 생각한다. 어떤 나무에선 樹脂가 흐르고 火藥에 쓰러진 雜草들이 소리를 치며 옆으로 자랐


다. 불붙는 地帶가 하늘로 부우옇게 맞서 는 西쪽 江畔에는 구리빛처럼 氣盡한 女 人들이 수없이 달려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는 가리울 길 없는 衣裳들을 날리며 한결 같이 피 묻은 손을 들어 ‘야오−’ ‘야오−’ 높은 餘韻 속에 합하여 사라져 가는 저 들의 이름을 내가 듣는 것이었다. 神이 차 지할 마지막 自由에 스쳐 나리는 軟粉紅 길을 눈 감고 내가 그리는 것이었다.


‘야오−’ ‘야오−’ 이제는 아주 보이지 않게 떠나간 하직 을 차라리 우는 것이 아니라, 먼 나라 紅寶 色 그물 속으로 생생한 고기와 같이 찾아

가는 하많은 저들의 希望을 불러 보는 것 이었다. 목소리 메인 空間의 말할 수 없는 鼓動 에 사로잡혀 나도 몇 번이나 아름다운 歡 呼에 손을 저었다. 銀비 내리는 구름 속까지 江은 구비쳐

내리기만 하고 노을에서는 바닷녘에 가지


런히 당도하여 돌아 부르는 아이들의 고운 목청이 이제는 다시 물살을 타고 저만침 울려오는 것이었다. 산란한 곡조로 그 소리는 바람 속에서 도 연연히 들리었다. ≪초판본 고석규 시선≫ 고석규 지음, 하상일 엮음, 21∼22쪽


초판본 고석규 시선 고석규 지음 하상일 엮음 사륙판(128 *188mm) 2012년 5월 15일 출간 무선제본, 196쪽 16,000원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나는 광주 山谷에 헤매다가 문득 혼자 죽어 넘어진 국군을 만났다.)

산 옆 외따른 골짝이에 혼자 누어 있는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지김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식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 나.


가슴에선 아직도 더운 피가 뿜어 나온 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 을… 나는 죽었노라. 스물다섯 젊은 나이에 대한민국의 아들로 나는 숨을 마치었노 라. 질식하는 구름과 바람이 미쳐 날뛰는 조국의 산맥을 지키다가 드디어 드디어 나는 숨지었노라.


내 손에는 범치 못할 총자루, 내 머리엔 깨지지 않을 철모가 씨워져 원수와 싸우기에 한 번도 비겁하지 않 았노라. 그보다도 내 핏속엔 더 강한 대한의 혼 이 소리쳐 나는 달리였노라. 山과 골짝이, 무덤 위 와 가시 숲을 이순신같이, 나폴레온같이, 씨자같이, 조국의 위험을 막기 위해 밤낮으로 앞 으로 앞으로 진격! 진격! 원수를 밀어 가며 싸왔노라. 나는 더 가고 싶었노라. 저 원수의 하늘 까지


밀어서 밀어서 폭풍우같이 모쓰크바 크 레므린 탑까지 밀어 가고 싶었노라. 내게는 어머니, 아버지, 귀여운 동생들 도 있노라. 어여삐 사랑하는 少女도 있었노라. 내 청춘은 봉오리 지어 가까운 내 사람 들과 함께 이 땅에 피어 살고 싶었었나니 아름다운 저 하늘에 무수히 날르는 내 나라의 새들과 함께 나는 자라고 노래하고 싶었어라. 나는 그래서 더 용감히 싸왔노라. 그러


다가 죽었노라. 아무도 나의 주검을 아는 이는 없으리 라. 그러나 나의 조국, 나의 사랑이여! 숨지어 너머진 내 얼굴의 땀방울을 지나가는 미풍이 이처럼 다정하게 씻어 주고 저 하늘의 푸른 별들이 밤새 내 외롬을 위안해 주지 않는가? 나는 조국의 군복을 입은 채 골짝이 풀숲에 유쾌히 쉬노라. 이제 나는 잠시 피곤한 몸을 쉬이고 저 하늘에 날르는 바람을 마시게 되었


노라. 나는 자랑스런 내 어머니 조국을 위해 싸웠고 내 조국을 위해 또한 영광스리 숨지었 노니 여기 내 몸 누은 곳 이름 모를 골짝이에 밤이슬 나리는 풀숲에 나는 아무도 모 르게 우는 나이팅켈의 영원한 짝이 되었노라. 바람이여! 저 이름 모를 새들이여! 그대들이 지나는 어느 길 위에서나 고생하는 내 나라의 동포를 만나거든 부디 일러 다오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


국을 위해 울어 달라고 저 가볍게 날르는 봄 나라 새여 혹시 네가 날르는 어느 창가에서 내 사랑하는 少女를 만나거든 나를 그리워 울지 말고 거룩한 조국을 위해 울어 달라 일러 다고. 조국이여! 동포여! 내 사랑하는 少女여! 나는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 간다. 내가 못 이룬 소원, 물리치지 못한 원수, 나를 위해 내 청춘을 위해 물리쳐 다오. 물러감은 비겁하다. 항복보다 노예보다


비겁하다. 둘러싼 군사가 다- 물러가도 대한민국 국군아! 너만은 이 땅에서 싸와야 이긴다. 이 땅에서 죽 어야 산다. 한번 버린 조국은 다시 오지 않으리라. 다시 오지 않으리라. 보라! 폭풍이 온다. 대한민국이여! 이리와 사자 떼가 江과 山을 넘는다. 네 사랑하는 兄과 아우는 서백리아1) 먼 길에 유랑을 떠난다. 운명이라 이 슬픔을 모른 체하려는가?

1) 서백리아: ‘시베리아’의 음역어.


아니다. 운명이 아니다. 아니 운명이라 도 좋다. 우리는 운명보다는 강하다. 강하다. 이 원수의 운명을 파괘하라. 내 친구여! 그 억센 팔다리, 그 붉은 단군의 피와 혼, 싸울 곳에 주저 말고 죽을 곳에 죽어서 숨지려는 조국의 생명을 불러이르켜라. 조국을 위해선 이 몸이 숨길 무덤도 내 시체를 담을 적은 관도 사양하노라. 오래지 않아 거친 바람이 내 몸을 쓸어 가고 저 땅의 벌레들이 내 몸을 즐겨 뜯어 가


도 나는 즐거이 이들과 함께 벗이 되어 행복해질 조국을 기다리며 이 골짝이 내 나라 땅에 한 줌 흙이 되기 소원이노라. 산 옆 외따른 골짝이에 혼자 누은 국군을 본다. 아무 말, 아무 움지김 없이 하늘을 향해 눈을 감은 국군을 본다. 누른 유니폼 햇빛에 반짝이는 어깨의 표식 그대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소위였고


나. 가슴에선 아직 더운 피가 뿜어 나온다. 장미 냄새보다 더 짙은 피의 향기여! 엎드려 그 젊은 주검을 통곡하며 나는 듣노라. 그대가 주고 간 마지막 말 을. ≪초판본 모윤숙 시선≫ 모윤숙 지음, 김진희 엮음, 55∼60쪽


초판본 모윤숙 시선 모윤숙 지음 김진희 엮음 사륙판(128 *188mm) 2012년 10월 25일 출간 무선제본, 166쪽 16,000원


休戰線

山과 山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

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 서 꼭 한 번은 천동 같은 火山이 일어날 것 을 알면서 요런 姿勢로 꽃이 되어야 쓰는 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風景. 아름 다운 風土는 이미 高句麗 같은 정신도 新 羅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 안한 얼굴의 意味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流血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廣場.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체 休息인가 야위어 가는 이야기뿐인가. 언제 한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아는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 번 겪으라는가 아무런 罪 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 마를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 뿐인가. 山과 山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


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 서 꼭 한 번은 천동 같은 火山이 일어날 것 을 알면서 요런 姿勢로 꽃이 되어야 쓰는 가. ≪초판본 박봉우 시선≫ 박봉우 지음, 이성천 엮음, 12∼13쪽


초판본 박봉우 시선 박봉우 지음 이성천 엮음 사륙판(128 *188mm) 2013년 3월 20일 출간 무선제본, 200쪽 16,000원


高地가 바로 저긴데

苦難의 운명을 지고 歷史의 능선을 타

고 이 밤도 허우적거리며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高地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

넘어지고 깨어지고라도 한 조각 心臟만 남거들랑 부둥켜안고 가야만 하는 겨레가 있다 새는 날 피 속에 웃는 모습 다시 한 번 보고 싶다


≪초판본 이은상 시선≫ 이은상 지음, 정훈 엮음, 97쪽


초판본 이은상 시선 이은상 지음 정훈 엮음 사륙판(128 *188mm) 2012년 9월 25일 출간 무선제본, 333쪽 16,000원


할머니 꽃씨를 받으시다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防空壕 위에

어쩌다 된 채송화 꽃씨를 받으신다. 壕 안에는

아예 들어오시덜 않고 말이 수째2) 적어지신 할머니는 그저 노여우시다.

2) 수째: 숫제.


-진작 죽었더라면 이런 꼴 저런 꼴 다 보지 않았으련만… 글쎄 할머니, 그걸 어쩌란 말씀이서요. 수째 말이 적어지신 할머니의 노여움을 풀 수는 없었다. 할머니 꽃씨를 받으신다. 인제 地球가 깨어져 없어진대도


할머니는 역시 살아 계시는 동안은 그 작은 꽃씨를 털으시리라. ≪초판본 박남수 시선≫ 박남수 지음, 이형권 엮음, 40∼41쪽


초판본 박남수 시선 박남수 지음 이형권 엮음 사륙판(128 *188mm) 2012년 12월 27일 출간 무선제본, 204쪽 16,000원


들꽃과 같이 —長箭3)에서

惡夢이었던듯

어젯밤 戰鬪가 걷혀 간 자리에 쓰러져 남은 敵의 젊은 屍體 하나 호젓하기 차라리 한 떨기 들꽃 같아. 외곬으로 외곬으로 짐승처럼 너를 쫓아 드디어 이 門으로 몰아다 넣은 것. 그 악착스런 삶의 暴風이 스쳐 간 이제

3) 장전: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읍.


이렇게 누운 자리가 얼마나 安息하랴. 이제는 귀도 열렸으리. 영혼의 귀 열렸기에 渺漠히 영원으로 울림 하는 東海의 푸른 구빗물 소리도 은은히 들

리리. ≪초판본 유치환 시선≫ 유치환 지음, 배호남 엮음, 60쪽


초판본 유치환 시선 유치환 지음 배호남 엮음 사륙판(128 *188mm) 2012년 8월 13일 출간 무선제본, 193쪽 16,000원


多富院에서

한 달 籠城 끝에 나와 보는 多富院4)은 얇은 가을 구름이 산마루에 뿌려져 있 다 彼我 攻防의 砲火가

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4) 다부원(多富院): 경상북도 칠곡군의 다부리를 말 한다. 조선시대 한양을 드나드는 관원을 위해 원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거상들이 몰려들면서 부자가 많은 곳이라 해서 다부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6.25 전쟁 당시 최대의 격전지였다.


아아 多富院은 이렇게도 大邱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고나

조그만 마을 하나를 自由의 國土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한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이 荒廢한 風景이 무엇 때문의 犧牲인가를…


고개 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姿勢대로 머리만 남아 있는 軍馬의 屍體 스스로의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길옆에 쓰러진 傀儡軍 戰士 일찌기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生靈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바람에 오히려 간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多富院 진실로 運命의 말미암음이 없고 그것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면


이 가련한 주검에 무슨 安息이 있느냐 살아서 다시 보는 多富院은 죽은 者도 산 者도 다 함께 安住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초판본 조지훈 시선≫ 조지훈 지음, 오형엽 엮음, 77∼79쪽


초판본 조지훈 시선 조지훈 지음 오형엽 엮음 사륙판(128 *188mm) 2011년 8월 25일 출간 무선제본, 170쪽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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