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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냄새가 심장까지 기어들 때 신문기자 도시 인텔리는 고향과 아버지를 생각한다. 귀농하여 농민과 친구가 되고 봄이면 아내와 보리밭을 맨다. 아버지가 판 논을 되찾으면서 흙의 노예 사상을 확인한다. 농민은 자연의 순교자다.

흙에서 나서 흙을 만지며 컸고 흙을 먹고 사는 아버지


인텔리겐치아 2671, 2015년 7월 7일 발행

오양호가 엮은 ≪초판본 이무영 작품집≫ 수택이가 하로 이틀 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 다. 그는 하는 일 없이 교외를 빈들빈들 돌아다 니었다. 하로는 S라는 동료를 유인해 가지고 청 량리로 나갔다. 전부는 아니나 그만둘 게획만을 이야기하고 생게로 이야기가 옮아갔을 때다. 그 도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낸지 몰랐었다. 매키

−한 냄새가 코로 콕 찔른다. 그 냄새는 코를 통 해서 심장으로 깊이깊이 기어 들어가는 것 같았 다 — 흙내었다. -<제1과 제1장>, «초판본 이무영 작품집», 이무영 지음, 오양호 엮음, 44쪽


냄새가 어떻게 심장에까지 미치는가? 수택은 농민을 업신여기고 자기 아버지를 “비웃고 가엽게 여겼”다. 그러나 흙내를 맡 는 순간 “집으로 가 흙을 만지는” 것이 진실 하고 값진 삶임을 깨닫는다. 수택의 처지는 어땠나? 왜 사는지, 누구를 위해 사는지도 모르고 방 황할 때였다. 신문사 일에 쫓기면서도 “한 달 가야 한 번 건들여 주지도 않는 원고지”를 보고, “사는 의미가 무엇인지 모를” 회의에 빠져 있었다. 흙으로 돌아가는가? 서울 생활을 접고 귀농한다. 코피를 쏟으며


농사일을 배워 농민들과 친구가 되고, 추운 겨울 저녁 도둑을 지키기 위해 순라도 돈다. 봄이면 아내와 보리밭을 매고, 쟁기질을 배 워 논도 간다. 아버지를 인정한 것인가? 아버지가 판 논을 되찾으면서 아버지 같은 농민이야말로 존경받아야 할 사람이라는 것 을 깨닫고 진짜 농민이 된다. 아버지의 세계는 무엇인가? ‘흙의 노예’ 사상이다. “농사는 이해타산으로 짓는 것이 아니라는 것”과 “농사짓는 순간만 은 신선의 심정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이다.


이무영의 다른 작품처럼 1930년대 말이 배경 인가? 그렇다. 일본이 조선 농업을 식량 공급, 원료 조달, 상품 판매를 위한 시장으로 간주하고, 그들의 식민지 정책을 위해 토지조사 사업 을 벌이며 농토를 빼앗던 시기다. 그의 농민소설은 무엇이 다른가? 소작농 문제를 다루면서 흙에 대해 순교자 와 같은 삶의 태도를 지녔던 농부들에 초점 을 맞추었다. 농민들의 건실한 생활상과 흙 에 집착하는 혼을 통해 한 시대 한국인의 의 식을 검증·추출했다. 그에게 ‘흙의 노예’인 농민은 어떤 사람들인가? 흙을 떠나지 않고, 흙을 자신의 생명처럼 사


랑하는 사람들이다. 농본주의 사상이 종교 의 경지를 이룬다. 땅의 너그러움과 여유· 포용을 배워 더불어 살고, 베풀고 인종하는 삶에 가치를 둔다. 한국문학사에서 농민소설은 언제 나타나는 가? 1920년대 중반이다. 이익상의 <흙의 세 례>, 김동인의 <시골 황서방>, 이기영의 <농부 정도룡>, 최서해의 <농촌야화>, 현진건의 <고향> 등이다. 초기의 농민소 설은 대개 프롤레타리아 문학과 관련을 맺 고 있다. 1930년대는 어떤가? 이광수의 «흙», 심훈의 «상록수»가 당


시 불길같이 일어나던 ‘브나로드운동’을 소 설로 구현했다. 이기영의 «고향»은 소작 농과 지주의 대립을 테마로 삼아 투쟁형 농 민소설로 나타났다. 그 뒤 보수형 농민소설, 이농형 농민소설 등이 등장했다. 이들은 농 민문학론이 작품을 뒷받침하고, 논리를 개 발하며 문단 전면으로 나섰다. 그 결과 1930 년대 중·후반은 농민문학 시대가 되었다. 이무영 작품에서 농민소설의 위치는? 초기 작품은 경향문학의 성격을 띠었다. 장 편 «먼동이 틀 때»를 «동아일보»에 연재 한 뒤 곤비한 상황에서 살아가는 식민지 농 민의 실상을 다루는 작가로 변모했다. 광복 이후에는 여성의 애정풍속소설을 많이 썼


다. 이런 소설은 대중성이 강해, 중기의 농민 소설이 거둔 문학적 성과에 이르지 못한다. 이무영을 농민소설가라 부르는 것은 이런 점 때문이다. 어떻게 살다 갔나? 1908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났다. 1925년 도 일, 고학을 하다가 소설가 가토 다케오(加藤 武雄)의 서생으로 작가 수업을 한다. 1927년 19세 때 장편 «의지할 곳 없는 청춘»을 출 간하고, 이듬해 <폐허의 울음>을 발표하 면서 소설가가 되었다. 1929년 귀국, 소학교 교원, 출판사, 잡지사 직원으로 지내면서 작 품을 발표했다. 1939년 좋은 작품을 쓰기 위 해 경기도 군포로 귀농해 실제로 농사를 지


으며 농민소설을 썼다. 대학에서 소설론을 강의하기도 했고, 6·25 때는 종군작가로 활 동했다. 1960년 뇌일혈로 타계했다. 당신은 누구인가? 오양호다. 문학평론가이고 정지용기념사업 회장이다.


흙냄새가 심장까지 기어들 때 신문기자 도시 인텔리는 고향과 아버지를 생각한다. 귀농하여 농민과 친구가 되고 봄이면 아내와 보리밭을 맨다. 아버지가 판 논을 되찾으면서 흙의 노예 사상을 확인한다. 농민은 자연의 순교자다.

흙에서 나서 흙을 만지며 컸고 흙을 먹고 사는 아버지


초판본 이무영 작품집 이무영 지음 오양호 엮음 2012년 7월 30일 출간 사륙판(128 *188) 무선제본, 167쪽, 16,000원


작품 속으로

제1과 제1장(第一課 第一章)


一 덜크덕덜크덕− 퍼언한 신작로에 소 마차 바퀴 소리가 외로 이 울린다. 사양(斜陽)에 키만 멀숙하니 된 가로수 포푸라 의 그림자가 느른하니 길을 가로막고 있을 뿐 별로이 행인 도 없는 호젓한 신작로다. 동리 앞에는 곰방대를 문 영감님 이 밝아숭이 손주 놈을 더리고 앉아서 돌 작난을 시키고 있 다. 약삭발른 계절(季節)에 뒤떨어진 매아미 소리는 마치 남의 나라에 가친 공주의 탄식처럼 청승맞다. “이러 이 소 쯔쯔!”1) 안반 짝 같은 소 엉둥이에 철썩 무푸레 호초리가 운다. 소란 놈은 파리를 날려주어 고맙게 역일 정도인지 아모런 반응도 없다. 그저 뚜뻑뚜뻑 앞만 내다보고 걸을 뿐이다. 소 마차가 동리 앞을 지날 때마다 주막집 뜰팡에 멍석을 깔고 땀을 드리던 일꾼들의 눈이 일시에 마차짐으로 옮겨진 다. 이삿짐을 처음 보아서가 아니라 그들의 눈에는 이 우차 우에 실려진 가구며 세간이 진기한 모양이다. 항아리니 독 이니 메주덩이 박아지 짝 ― 이런 세간은 한 개도 볼 수 없 고 농 짝은 분명히 농 짝이다. 생김생김도 그러려니와 시골

1) “이랴, 이 소야, 쯔쯔” 하는 소몰이할 때 쓰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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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는 볼 수 없는 허들겹스렇게 큰 장이다. 이모저모에 가마 니짝을 대어서 전부는 보이지 않으나마 넘어가는 해볕을 받 아 거울이 번적한다. 함 대신에 화류단 칭장 버들상자도 큰 것이 네모번듯하다. 뭣에 쓰이는 것인지 알 길도 없는 혼란 스러운 갓이며 검고 붉은빛이 도는 가죽가방 면장 나리나 무슨 주임 나리나가 놓고 있는 그런 책상에 걸상도 화려하 다. “뉘 첩 살림인 게군.” 키만 먹쑥하니 여덜팔 자 노랑 수염이 담숭담숭 난 헐일 없이 노름꾼처럼 생긴 한 친구가 이렇게 운을 뗀다. “토ᄉ자에 ᆨ햇네.” 누군지가 이렇게 받자, “토ᄉ자에 ᆨ도 트ᄉ자에 ᆯ일세.2) 어디루 보니 저게 첩 살림 같은가. 첩 살림이면야 자개장이 번득이면 번득였 지 사물상이 당한겐가. 짐 임자들을 보지!” 이사짐에서 여나무 간쯤3) 뒤떨어저서 곤색 저고리에 힌 바지를 받혀 입은 청년이 하나 딸아섰다. 아직 해ᄉ살이 따 거우련만 모자도 단정히 썼다. 나이는 한 삼십사오 세쯤 되

2) ‘틀렸다, 맞지 않았다’라는 뜻을 완곡하게 표현한 말. 3) 여나무 간쯤: 열 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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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을까… 청년은 한 손으로 양장을 한 오륙 세 된 게집아이의 손을 잡고 그 옆에는 청년보다는 열 살이나 차이가 있음직한 젊 은 여인이 역시 양복을 입힌 머슴애의 손을 잡고 간다. 한 너덧 살 되었음직한 토실토실하게 생긴 아이다. 과자 주머 니인지 발은손에는 새빨간 주머니를 느렸다. “아빠 아직두 멀었수?” 말소리까지 타박타박하다. “인저 조곰만 더 가면 된다. 에이 참 우리 철이 착하다.” 청년은 담배에 불을 붙혀 물고 덤덤히 마차 뒤를 딸아간 다. “화신상회만큼 되우?” 어린것은 몹시 지친 모양이다. “그래 그만큼 가면 되어.” 하고 안타까운 듯이 젊은 여인이 대신 대답을 하자니까 어린것이 고개를 반짝 들구서 항의를 한다. “뭘 엄만 아나? 엄마두 첨이라면서.” “그래두 난 알아. 그렇지요 아빠?” “암 엄만 알구말구.” 청년과 여인은 어린것을 번갈아 엎기두 하고 안기두 하 다가 몇 걸음 걸려도 보고 몹시 거추장스려우련만 별로이 5


그런 티도 없다. 소에 끌려가는 이사짐처럼 그는 묵묵히 끌 려가고만 있다. “거 어디루 가는 이사짐요?” 동리 앞을 지날 때마다 소 보고 묻듯 한다. 마차꾼은 “나 는 소 아니오!” 하고 퉁명을 부리듯 “샌터4) 짐요!” 하고 돌아다보지도 않고 대답할 뿐이다. “샌터 뉘 집 짐요?” “난두 모르오!” 하고는 소 엉둥이에다 매질을 한다. “이러 이 소! 대ᄉ구하기 귀찮다. 어서 가자.” 동리를 빠저나오더니 청년도 여인네도 뒤를 한 번씩 돌 아다본다. 무슨 감시의 구역에서 벗어나기나 한 때처럼 여 인네는 가벼운 안도를 얼굴에 나타내기까지 한다. “인저 내가 좀 물어봐야겠군. 아직두 멀었어요?” “인저 얼마 안 돼. 전에 단일 때 얼마 안 되던 것 같았는 데 웨 이리 뭘까.” 혼자말에 우차꾼이 받아넘긴다. “여름이라 길두 늘어나 그렇지오.”

4) 샌터: 샘(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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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안 가니 조고만 실개천이 흐른다. 청년 ― 수택은 어려서 수수미꾸리 잡던 기억도 새로웠고 땀도 드릴 겸 길 목 포푸라 그늘에서 참을 들이기로 했다. 이 개천을 건너서 한 십 분이면 그의 고향인 샌터에 다다르는 것을 알기 때문 이기도 했다. “영감두 쉬어 가치 갑시다. 자 담배 한 개 드슈.” “고약두 있으십니까.” “고약이라께?” “이런 담벨 피구 입술이 정할 수가 있을라구요.” 이렇게 자미있는 늙은인 줄 알았더면 정거장에서부터 말벗을 해왔더면 오는 줄 모르게 왔을껄… 하고 수택은 오 늘 처음으로 웃었다. 수택은 차를 먼저 가게 하고 천천이 세수도 하고 발도 벗 고 씻었다. 안해가 핸드빽의 조고만 면경을 꺼내어 화장을 하는 동안에 어린것들도 벗기고 말끔히 씨처주었다. 물에 손을 잠그고 있으려니 어려서 물장난하던 기억이며 그동안 세파와 싸운 삼십 년간의 생활이 추억되어 덜크덕덜크덕 멀 어저가는 이사짐 소리도 한칭 더 서글펐다. “패북자.”5)

5) 패북자: 패배자(敗北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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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가마니 이렇게 자기를 불러본다. 시내물은 조악돌 이 옹기종기 몰켜 있는 수택의 발밑을 지날 때마다 뭬라고 인지 종알대고 흘러간다. 이 물소리를 해득만 한다면 여러 가지 의미가 포함되었으리라. 그러나 지금의 수택으로서는 이 속사기는 물소리보다도 지난날의 추억보아도 패북자의 짐을 실고 가는 마차 바퀴 소리만이 과장이 되서 울리는 것 이었다. “패북자? 어째서 패북자냐? 오랜동안 동경해 오던 이상 생활의 첫 출발이지.” 누가 있어 자기를 패북자라고 불르기나 했던 것처럼 그 는 분명히 이렇게 반항을 해본다.

二 사실 이번 길은 수택의 일생에 있어서 커다란 분기점이였 다. 그것이 히망의 재출발이 될지 패북이 될지는 그가 타고 난 운명(?)에 맡기려니와 현재 그의 가슴에 채워진 감회도 이 둘 중 어느 것인지 그 자신 모르고 있는 터다. 그가 농촌 생활을 꿈꾸고 이른 봄 사−지6) 안을 두둑하게 넌 춘추복 안주머니에 너두었던 사직원이 이중 봉투를 석 장이나 갈갈 8


이 피우고 여름을 났을 때는 그래도 ‘패북자’란 감정이 없을 때었다. 일금 팔십 원의 쌜러리라면 그리 적은 봉급도 아니었다. 회사 총무부 주임 말마따나 이런 자리를 노리는 대학 출신 의 이력서가 기 백 장 설합 속에서 신음을 하고 있는 터다. 사변으로 해서 갑자기 물가가 고등해진 터라 이 정도에 수입만 가지고는 도저히 도회에서 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렵 기는 하나 그렇다고 전혀 수입이 없는 것보다 날 것은 주먹 구구까지도 필요치 않은 것이었다. 그의 게획을 듣고 친구 의 대부분이 ― 아니 거의 전부가 반대를 한 것도 실로 이 단순한 타산에서였다. 너 굴러든 복박아지를 차버리고 어 쩔 테냐는 듯싶은 총무부 주임의 눈치나 철없이 날뛴다고 가련해하는 눈으로 보는 동료들의 말투가 그의 결심에 되려 기름을 처준 것도 사실이기는 하나 수택의 게획은 그네들이 보듯이 그렇게 근거가 적은 것은 아니었다. 그의 게획의 무 모함을 충고하는 친구와 동료들의 거의 전부가 생활난에 중 점을 둔 것이다. 그러나 일찌기 수택만큼 생활고를 겪어온 사람도 그만한 났세로는 드믈 것이었다. 열두 살에 고향을 6) 사−지: 양복천의 하나, 사지천으로 만든 양복. 미군들이 즐겨 입던 모 직류다. 특히 하사관(Sergeant)들이 많이 입어 ‘사지(Sarge)’로 불린다 (‘sarge’는 ‘sergeant’의 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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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서 중학교를 고학으로 마첬고 열일곱에 동경으로 가서 C대학 전문부를 마추는 동안도 식당에서 벗겨내 버린 식팡 껍질과 먹고 남아 버리는 밥덩이를 사다 먹고 살아온 그였 고 일정한 직업이 없이 오륙 년 동안 동경서 굴르든 동안에 도 공중식당일망정 버졌하니 밥 한 끼 사 먹어 보지 못한 채 삼십 줄에 접어든 그였다. 조선에 나와서도 지금의 문사 사 회부 기자라는 직업을 얻기까지의 삼 년간은 십 전짜리 상 밥으로 연명을 해온 그였고 직업이라고 얻어서 결혼을 한 후도 고기 한 칼 떳떳이 사 먹어보지 못한 그였다. 더욱이 십 개월이란 긴 동안 신문이 정간을 당코 푼전의 수입이 없 었을 때도 세 끼나 밥을 못 곦히고 인왕산 중허리 같은 배를 끌어안고 숨까지 가뻐하는 안해와 만 하로를 얼굴만 쳐다보 고 시간을 보낸 쓰라린 경험도 갖고 있는 그였다. 이 십 개월 동안에 그는 평상시 오고 가던 친구들도 수입 이 끊어지는 날로 거래가 끊어지는 것도 경험했고 쌀말이나 설넝탕 한 그릇도 월급봉투가 없이는 대주지 않는 것도 잘 안 터였다. “인전 널 것도 없지?” 하고 물을 때, “입은 것밖에 ―” 하고 대답하던 안해의 우울한 음성도 아직 귀에 새로웠 10


고 십여 장이나 되는 전당표를 삼 개년 게획으로 찾아내던 쓰라린 경험도 아직 기억에 새로운 터였다. 바로 신문이 해 간되던 바로 그 전달이었지만 막역지간이라고 사양해 오던 M이라는 친구한테 마침 그날이 월급일이라서(아니 월급날 을 일부러 택한 것이었지만) 삼 원 돈을 취대하러 갔다가 거 절을 당코 분김에 욕을 하고 돌아온 사실을 기록해 둔 일기 가 아직도 그의 책상 어느 구석에 끼어져 있을 것이었다. 이 수택이가 선선히 사직원을 내놓고 나선 것이니 놀랄 만한 사실임에 틀림은 없었다. “그래 갑자기 살 구만두면?” 마즈막으로 사직원을 접수한 R 씨가 이렇게 말했을 때 그는 금후의 생활 설게를 설명하는 데 조곰도 불안을 느끼 지 않았던 것이었다. 다행히 고향에 가면 십여 두락의 땅이 있고 생활 수준이 얕어질 것이오 고료 수입도 다소 있을 것 이오… 마치 R 씨까지도 유인해서 끌고 나갈 듯이 호기가 있었던 것이었다. “좀 더 신중히 하지?” 호의에서 나온 이런 말에 그는 적의나 있는 듯이 “그럴 필요 없지요.” 하고 그 자리서 내찼던 것이다. 사직 이유는 병이었다. 간부 측에서 병? 하고 반문했을 11


만큼 그는 그렇게 말 못 된 병자는 물론 아니다. 병이라면 그것은 생리적인 병보다도 정신적인 병이 더 위기에 가까웠 었다. 의사들이 페가 어떠니 늑막이 위험하니 할 때도 한편 겁은 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속짐작이 있기는 했었다. 그 와 가치 소설을 써오던 H가 자기와 같은 자신으로 버티다가 쓸어진 그 길로 끝을 막은 무서운 사실에 잠시 ‘아차’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지마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직업을 버 릴 만큼 심약한 그도 아니었다. 이른 봄 그가 안해도 몰래 사직원을 쓰고 도장까지 단정히 눌러 가진 것은 그의 조고 만 영웅심에서였다. 수택은 동경서부터 소설을 써왔다. 장방형도 아니오 삼 각형도 아니오 그렇다고 똑떨어진 원도 아니다. 세상에서 는 그를 혹은 스타일리스트라고 불렀고 한때 경향문학이 성 할 때는 혹은 반동 또 혹은 동반자라고 불렀고 또는 허무주 의자라고 야유도 했다. 그러나 기실은 그중 어느 것도 아니 었다. 그 자신 자기의 특징이 어디 있는지를 모르는 작가였 다. 소설가로서 차차 알려질 임시해서 ― 아니 그 덕택이었 겠지마는 ― 그는 취직은 했었다. 그것이 그의 작가 생활의 마즈막이었다. 쩌날리슴이란 문학의 매개체를 통해서 그 갖난애 숨길 만한 잔명을 유지해 왔다. 첫 월급을 타던 기쁨은 ‘지난 ×일 밤 자정도 가까워 바 12


야흐로 삼라만상이 잠들려 할 때 ××동 ××번지 근방에서 뜻 아니 한 비명이 주위의 정적을 깨틀였다. 이제 탐문한 바 에 의하면…’ 이런 식의 기사를 쓸 때마다 히미해졌고 그것 이 거듭되기 一년이 못 돼서 그는 자기가 문학도였다는 의 식까지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경찰서를 드 나들며 강절도 밀매음 사기 등속의 사건 전말을 듣는 것이 무슨 문학 수업의 좋은 찬스나 되는 것처럼 생각 든 것도 일 시적이었고 악을 폭로해서 써 민중의 좋은 시준이 되게 한 다던 의협심도 기실 자기 위안의 좋은 방패이어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후부터는 그는 완전히 기게였던 것이 다. 아침이면 나와서 종일 돌아다니다가 저녁 ― 대개는 밤 에 집이라고 찾아든다. 친구에 휩슬려 술잔도 마시고 회합 에서 늦어 이차회가 벌어지고 이러구러 하로가 가고 이틀이 가고 달이 바뀌고 연도가 갈리었다. 그러기를 五년 ― 그동 안에 수택이가 얻은 것은 허영과 태만이다. 그 밖에 얻은 것 이 있다면 자기가 아닌 이런 사회에서의 독특한 존재인 일 르는바 친구 ― 아니 지인(知人)이다. 그러고 잃은 것은 얻은 것에 비해서 너무나 많았다. 그는 적어도 세 사람의 친구는 가졌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가 한 해 두 해 지나는 동안에 세 친구도 없어졌고 문학도로서 쌓 었던 조고만 탑도 출판기념회나 무슨 축하회의 발기인란에 13


서나 겨우 발견하는 그런 존재가 되고 말았다. 동료들이 그 달 그 달 발표하는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는 우울했다. 우두머니 마즌편 힌 회벽을 건너다본다. 성급한 전화종 소리도 그를 깨우처주지 못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 다. “받잖을 전환 뭣 하러 놨나요?” 문득 고개를 들면 천리안(千里眼)이라고 소문난 편집장 의 두 줄 시선이 쏜다. 아모것 하나 얻을 것도 없는 회합에서 늦도록 붙잡혔다 가 호을로 막차에 앉인 때의 그 공허, 허무감 그것도 비걸 데 없는 것이다. 어떤 때는 그 큰 전차간에 동그마니 혼자 앉아 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저도 모르게 눈 속이 뜨끈해 지는 일도 있었고 얼간이 술이 취했다가 깰 무렵에 집에 들 어가면 문득 수ᄉ보가 덮인 책상이 눈에 뜨인다. 펜까지 꽂 혀 있는 잉크 스탠드, 한 달 가야 한 번 건들여 주지도 않는 원고지가 마치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주인을 기다리고 망망 한 대해에 떠 있는 목선처럼 애처로워진다. 다소 술기운이 작용을 했겠지마는 그대로 책상에 엎들여 통곡을 하는 것이 었다. “아니다! 낼부터는 나도 단연 공부를 하리라!” 이렇게 一년을 별러서 시작한 것이 <소설 못 쓰는 소설 14


가>라는 단편이었다. 한 소설가가 취직을 했다. 박쥐처럼 해를 못 보는 생활이 게속된다. 무서운 정렬로 창작욕을 흥 분시켜 주기는 하나 그 상이 마물러지기도 전에 출근이다. 잡다한 사무에 억매어 허덕이는 동안에 해 가지고 오뉴월 엿 가래처럼 늘어진 몸을 이끌고 회합이다. 이차회다. 야근이 다를 게속한다. 이런 슬픈 이야기를 짜던 그는 자기도 모로 게 내일 형사들을 녹여내어 재료를 얻어낼 게획이며 안(案) 의 진행 방법 등을 공상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운다. ― 그러나 이 소설도 끝끝내 소설이 못 되고 말았다. 그것은 몹시 무더운 날 밤이었다. 그는 소학생처럼 벽에 다 좌우명(左右銘)을 써 붙였다. 一, 조기할 것. 二, 퇴사 즉 시로 귀가할 것. 三, 독서, 혹은 창작할 것. 四, 일즉 취짐할 것. 그러나 이 좌우명은 이튿날로 권위를 잃고 말았다. 이튿 날은 사회부부회가 밤 아홉 시까지나 게속되었다. 갑논을 박의 三, 四 시간을 겪은 그는 돌아오는 길로 쓸어저 자고 말았다. 이튿날은 신문사 주최인 축구대회 기사로 야근을 했고 다음 날은 부득이한 회합이 있어 역시 거기서 다시 이 차 삼차를 거듭해서 집에 돌아온 것은 새벽 세 시였다. “도대체 나는 뭣 때문에 사는 걸가. 누구를 위해서 사는 걸가. 문화 사업? 흥!” 이러한 반문을 해본다는 것은 벌써 한 전설이 되어 있었 15


다. 이러한 수택은 또 한 가지 위대한 발견을 했다. 그것은 적어도 자기는 신문기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나 현재 아닐 뿐만 아니라 영원히 신문기자로서 성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발견했던 것이다. 아니 신문기자로서의 성공이 곧 문학적으로 그를 파멸시키는 것이라는 것을 그제서야 발견 했던 것이었다. 그것은 히극 ― 아니 비극이었다.

三 수택이가 하로 이틀 쉬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는 하 는 일 없이 교외를 빈들빈들 돌아다니었다. 하로는 S라는 동 료를 유인해 가지고 청량리로 나갔다. 전부는 아니나 그만 둘 게획만을 이야기하고 생게로 이야기가 옮아갔을 때다. 그도 처음에는 그것이 무슨 낸지 몰랐었다. 매키−한 냄새 가 코로 콕 찔른다. 그 냄새는 코를 통해서 심장으로 깊이깊 이 기어 들어가는 것 같았다 ― 흙내었다. 그것이 흙내라는 것을 인식한 순간 일즉이 그가 어렸을 때 듣던 아버지의 음성이 바로 귀ᄉ전에서 울리는 것을 느 끼었다. 사람은 흙내를 맡아야 산다. 너도 공불하고 나선 아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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