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취주악부(관악부) 95年誌
고려대학교 관악부 교우회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 권두사 |
「95년 장대한 역사를 기리며」
고려대학교 관악부 교우회장 인 기 환 (76, 물리, Trumpet)
고려대학교 관악부 창단 95주년 역사를 정리하는 창단 기념지 발간이라는 이 뜻 깊은 순간에 밀려오는 벅찬 감동과 기쁨을 뭐라 말로 표현 할 길이 없습니다. 우선, 95년 장대한 역사를 정리하시는데 노고를 아끼지 않으신 윤세영(55) 선배님께 모든 교우 회원들을 대신하여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어렵게 찾아 내신 옛 자료들과 써 내려가신 글 한자 한자를 읽어 내려 갈 때마다 그 안에 깃든 선배님의 노고와 애정이 오롯이 전해집니다. 선배님의 학교에 대한 사랑과 관악부에 대한 애정이 한데 어우러져 고스란히 저희 후배들에게 도 전통으로 면면히 이어질 수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 관악부가 이렇게 흔들림 없이 발전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념지 발간을 위해 바쁘신 와중에도 동아리 방에 쌓여 있던 모든 사진들과 자료 및 원고 들을 취합, 정리 해 주신 기념지 편찬 위원장 연건희(74) 선배님께도 깊이 감사 드립니다. 95년 역사를 함께 만들어 낸 수 많은 교우 선후배님들과 금번 창단 95주년 기념지 발간을 위해 정성 어린 성금을 모아 주신 교우님들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렇듯 많은 분들의 노력와 협조로 교우회장에 취임하면서 계획했던 숙원 사업을 마무리 할 수 있음에 뿌듯한 마음입니다. 다시 한번 고려대학교 관악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95주년 기념지를 발간을 축하 하면 서, 장대한 고려대학교 관악부의 역사를 깊이 새기는 벅찬 감동이 후배들에게 계속해서 전달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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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축 사|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의 간행에 즈음하여 지도교수 박 선 화
고려대학교 관악부가 창립 95주년을 기념하여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를 발간하게 된 것을 축하합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오랜 세월 관악부를 유지하고 발전시킨 원동력은 선배님들의 변함없는 후배 사랑과 지원일 것 입니다. 고려대학교에서만 볼 수 있는 선후배의 끈끈한 정은 누구라도 알고 있지만 관악부에서는 더욱 특별한 것 같습니다. 음악대학이 없는 대학에서 음악이 전공이 아닌 학생들을 대상으로 연 2회 연주회를 준비하 고, 각종 학교 행사에서 연주를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에도 열정을 다 해 이끌어 온 모든 선후배님들께 뜨거운 박수를 보냅니다. 살벌하리 만치 엄격하던 규율도 완화되고, 동아리의 명칭도 여러번 바뀌었고, 지휘를 맡아 수고 해 주신 선생님들도 많았지만 특히 10년이 넘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음악과 생활지도를 해 주고 계신 유동휘 교수님께 이 자리를 빌어 감사드립니다. 이 책에는 그간의 동아리 모임을 둘러싼 추억과 연주회, 교우회 활동 등이 담겨 있습니다. 이 자료를 준비하고 엮으면서 걸어온 발자취를 뒤돌아 보며 가슴 벅차기도 하고 지나간 날들의 향 수에 젖어 보기도 하였을 것입니다. 특히, 관악부 95년지 발간의 더 큰 의미는 관악부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고 실현시키는 도화선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며 수고하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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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고려대학교 관악부 95년
사학 55 Tpt 尹 世 英 (前 人文大 敎授)
1. 머리말 주지(周知)하는 바 종래 한 나라의 역사 서술(敍述)은 중앙정치사적(中央政治史的)인 면이 강조 되었으나 근세에는 지방·지역의 사회 경제를 소상히 조사 연구하는 경향이 늘고 있다. 따라서 고려대학교 역사를 대학의 설립과정 시설확충 교수진용 교과내용을 종합 기술(記述) 하는 것은 당연하려니와 그 보다 그 세부 조직의 발전상을 조사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함은 재론(再論)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고대 사학과(高大 史學科)에서 고려대학교 사학과 50년사(高 麗大學校 史學科 50年史, 1998년)를 발간하고, 경영대학(經營大學)에서는 고려대학교 경영대 학 100년사(高麗大學校 經營大學 100年史, 2006년)를, 고대 산악부(高大 山岳部)에서는 고대 산악 70년사(2009)를 출간 하였다. 이와 같이 대학(大學), 과(科), 동아리에서 각기 그들의 조직 의 역사를 출간한 것은 고려대학교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기본자료(基本資料)가 될 것이 다. 따라서 고려대학교 관악부(管樂部)의 역사를 조사 서술 하는 것은 이 나라 최초의 대학 취 주악부(吹奏樂部)인 고려대학교 관악부(管樂部)의 역사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현대음악 발전사 에서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 할 수 있을 것이다. 1955년 봄에 고려대학교 취주악부가 창설(創設)되었으니 2015년이면 60주년이 된다. 우리 나라는 한 세기 전만 하여도 의학기술이 발달되지 않았고 사회여건(社會與件)이 열악(劣惡)하여 인간의 자연수명(自然壽命)의 한계(限界)를 60년으로 보았으므로 이 때 까지 살아남은 것을 기념 하기 위하여 60갑자(60甲子)로 갑년(甲年) 또는 회갑(回甲) 화갑(華甲)이라 하여 크게 잔치를 베풀었다. 그런데 본고(本稿)에서 분명히 밝힐것은 1905년 사립 보성전문(私立 普成專門)이 설립되어 2005년에 고려대학교는 100주년을 기념하였으니 1920년 보성전문 연예부(硏藝部)가 신설되 어 1923년 부터 전국적으로 연주활동을 하였으므로 2015년을 맞으면 고려대학교 관악부의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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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1955년부터 계산하여 60주년이 아니라 보성전문으로 부터 계승(繼承)하였으니 95주년으 로 계산하는 것이 당연하리라 사료(思料)된다. 그런데 지난 2005년에는 “고려대학교 100주년 및 윈드앙상블 창단 50주년 기념 선후배 합동연주회”를 개최하였는데 학교는 보성전문 부터 계산하여 100주년이 되고 관악부는 고려대로 부터 창단되어 50주년이라고 프로그램에 큼직하 게 기록되어 있어 앞뒤가 맞지 않음에도 어느 누구 하나 의아(疑訝)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없어 역사 인식(認識)의 부족을 개탄(慨歎)하지 않을 수 없다. 각설(却說)하고 보성전문 관악대의 활동은 보성전문 학생회지(學生會誌)나 당시의 일간지(日 刊紙) 등에 소개된 제한적인 사료(史料)에 의존 할 수밖에 없어 소상(昭詳)한 활약상을 파악하 는 데는 한계가 있으나 1955년부터는 필자가 창설부원으로 활동하다가 졸업 후 바로 학교 박 물관에 근무하면서 시간강사를 거쳐 교수가 되어 정년퇴직을 하였으므로 고려대학교 관악부와 는 반백년(半百年)을 같이 하였다고 자타(自他)가 공인(公認)하고 있어 고려대 관악부의 역사는 어느 누구보다 소상하고 확실하게 인지(認知)하고 있다 할 수 있다. 대학 재학시절 학회지인 “사총(史叢)”을 편집 간행하였고, 1990년대 박물관장 재직시, 고려 대학교 90년지를 편집 출판(出版)하고, 2000년 봄에 정년퇴직을 한 후 바로 문화재조사연구기 관을 설립하여 초대 원장 이사장을 역임하면서 100여권의 조사보고서(調査報告書)를 출간(出 刊)한 바 있고, 2008년 가을 후학에게 자리를 물려주고 일체 공직(公職)에서 물러나게 되어 처 음으로 시간의 여유를 가지게 되었을 때인 2009년에는 모교인 혜화초등학교(惠化初等學校)의 100년사(百年史) 간행에 동참하였다. 그 후 한가(閑暇)하여 보성전문 취주악부의 연혁(沿革)을 조사하면서 2013년 봄부터 관악부 각 학번 졸업생들에게 협조를 당부한 것은 2015년이면 고려대학교 관악부 창설 60주년인 회 갑(回甲)을 맞이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위에서 밝힌 바 60주년이 아니라 95주년이라고 하는 것이 이치(理致)에 맞는다. 고려대학교 60년지(高麗大學校 六十年誌)에 본교는 음악대학이 없어 지도교수를 얻을 길이 없고 동호자(同好者)의 집합하는 기회도 마련 못하여 음악부는 극히 소수인으로 구성되고 있 다. 그러나 해방 전에도 소수 동호인이 모여 음악부를 조직하고 1940년 제1회 교내 연주대회를 가진 것 같으나 그 후 전시(戰時)라 잠시 활동이 중단 되었다가 해방 후 응원단의 확충으로 취 주악부가 조직되고 또한 정서교육(情緖敎育)의 제창(提唱)으로 음악을 수의(隨意)과목으로 인 정함에 따라 음악강사를 초빙(招聘)하게 되어 그 지도 밑에 합창부도 생기게 되었을 뿐만 아니 라......(六十年誌 pp, 441-442) 운운(云云)하였는데 1940년에 처음 교내 연주를 하였다 함은 당시 60년지 집필자(執筆者)들의 큰 오류(誤謬)라는 것을 아래에서 밝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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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보성전문(普成專門)과 학예부(學藝部), 음악부(音樂部) 조선의 근대는 내우외환(內憂外患)으로 국운(國運)이 기울어지고 있을 때 대한제국(大韓帝國) 의 내장원경(內藏院卿)이었던 이용익(李容翊)은 1905년(光武 9年)에 민족과 국가를 구하는 길은 청년들의 교육에 있다하여 교육구국(敎育救國)의 신념(信念)으로 사립보성전문학교(私立普成 專門學校)를 설립하였다. 2년 후인 1907년에 보성전문은 보전친목회를 창립하고, 총칙 제6조 에 본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각부를 설치한다 하였는데, 1. 서무부, 2. 경리부, 3. 학예부, 4. 체육부를 두고 .....(고려대학교 100년사 p, 320) 부칙에 본 세칙에서 불비(不備)한 사항은 관례에 따른다 하였다. 보전친목회는 회원간의 친목을 도모하며 지(智) 덕(德) 체(體) 삼육(三育)을 장려(奬勵)할 목 적으로 정기총회는 매년 신학기 3월에 개최하고 서무부 경리부 학예부 체육부 등 4개 부서를 두었으나 1920년 어느 시기부터인가 학예부(學藝部)가 연예부(硏藝部) 웅변부(雄辯部) 등으로 나뉘고, 학예부에서는 월간지를 발간하였는데 연예부에서 프린트로 찍어 약 100부를 발행하여 연(硏) 예(藝)에 관한 논문과 이 방면의 소식을 전하였다고 한다. 10년 후인 1930년대의 보전학 생회는 서무(庶務) 경리(經理) 연구(硏究) 출판(出版) 변론(辯論) 덕육(德育) 체육(體育) 연극(演 劇) 음악(音樂) 등 9개 부서로 발전하였다(고려대학교 100년사 p, 323). 보전 연예부(硏藝部)는 음악회(연주회)도 개최하였는데 * 1923년 10월 20일에는 보전도 참여한 전선남녀전문학교(全鮮男女專門學校) 연합음악회 가 중앙청년회관에서 개최되었는데 대회장이 터질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다. (동아일보, 1923. 10. 22)...
* 1925년 7월 25일에는 수재민(水災民) 구제를 위한 보전음악회가 개최되었는데 여기에는 학생부원 외에 당시 명성이 높았던 보전 교가1)를 작곡한 김영환과, 홍영후(洪永厚 홍난파) 1) 보전 교가의 제정에 대해서는 1965년 간행된 고대60년지(高大60年誌) 편찬과정에서 찾아낸 보전법과 제18회 졸 업앨범(1922~25)을 통해서 작곡 작사자가 처음 밝혀졌다 .(고대교우회보 제465호 S3면) 1922년을 전후하여 당 시 東亞日報 편집국장이었던 李光洙가 작사하고 동경(東京)음악학교를 졸업한 金永煥이 작곡 하였는데 김영환은 1919년에 홍난파와 더불어 경성악우회(京成樂友會)를 조직하여 우리나라에 서양음악을 보급하는데 전력하였다고 전한다.(高麗大學校 七十年誌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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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동준(崔東俊)등이 출연하였다고 한다(동아일보, 1925. 7. 25). * 1925년 8월에는 평양 진남포 안주 등에서 보전 연예부의 순회 음악 연주회가 열리고 8월 18일과 31일에는 만주 안동과 평안도 선천에서 순회 음악회를 열고... (1925년 8월 10일, 13일 23일, 26일, 9월 4일, 동아일보 참조)
▲ 1925년 12월 보성전문학교 연예부원들의 모습
* 1926년 1월에는 보전친목회 주최로 신춘남녀 음악대회를 개최하였는데 보전현악대 등이 출연 하였다. 이처럼 보전학생회가 주최한 음악회에는 당시 유명 음악가들이 많이 참여하 여 문화행사가 적었던 식민지하(植民地下)의 조선인들에게 문화적 욕구(欲求)를 충족 시켰 다고 할 수 있다. (고려대학교 100년사 P, 325) * 1926년 1월 7일자 동아일보에 의하면 보전친목회가 주최하는 음악회 소식을 전하면서 보 전 잡지 시종(時鐘)에 들어 있는 할인권을 가지고 가면 2인 까지는 100전을 80전으로 입장 할 수 있다 하였다. (고려대학교 100년사 P, 325) 보전 학생회에서는 음악부의 역할에 대해 “회원의 기본욕구 견해 감정 등의 종합을 일정한 조 직적 기교적(技巧的) 형태를 갖인 객관적 형상으로, 즉 음율(音律)에 의하여 이를 표현하는데 있 다”고 하였고, 이에 따라 음악부의 대표적 사업은 “음악예술의 일반향수”와 “응원단 지휘”였다. 이에 대해 음악부에서는 “전자는 일종의 규성(叫聲)과 평행적 동시적 규율적 음율이 율동을 가지고 공동생활에 힘을 첨가(添加)하려는 본능적 노력이 되며, 후자는 집단적 행동에 대하여 통일적 기분을 주며 조화를 재래(齋來)하고 그것의 준비적 기분을 부여”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 1930년대 중반 음악부의 활동은 주로 교가 학생회가를 학생들에게 보급 연습시키는 것과 학교대항 경기 특히 연전(연희전문)과의 운동경기에서 응원단을 구성하고 응원가를 연습 시키고 사기 앙양을 도모한 것이라 하였다. (고려대학교 100년사 P, 475) <보전학생> 제2집에 의하면 1937년의 경우 전자, 곧 음악회 등 연주활동은 “물질적 사회적 분 위기 등의 외적 제 조건의 결핍” 때문에 실현되지 못했다. 이에 따라 학생들 가운데는 실내악단을 조직하자는 의견이 적지 않았으나 음악부의 존재의의는 집단의 음악전문가를 필요로 하지 않고, 또 외래의 원조를 받지 않는 학생회의 재정면에서도 사업을 수행 할 수 없다고 밝혔다. 후자, 곧 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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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원은 단체적 행동이라는 귀중한 사회적 의의를 가졌으나 “운동종목의 제한과 상대방과 전통 기술 행동 등의 대립이 요인이 되어” 다만 연전(延專)과의 축구 대항전이 있던 1937년 5월 21 일과 9월 18일의 두 차례만 이루어졌다. * 특기할만한 점은 보연전(普延戰)이 벌어질 때 응원전을 위해 동원되던 악대는 그동안 시내 중등학교로 부터 도움을 받았으나 1937년부터는 독자적 악대를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 다. 이때부터 응원전도 지휘자가 군웅할거(群雄割據)하여 무통제(無統制) 무질서 하던 것 이 지휘자의 체계적인 통제로 학생들이 “운동의 역사적 사회적 재인식”하게 되어 자중과 단체적 이상적 행동이 심리적 흥분과 조화롭게 융합되는 등 일층 진전 되었다고 평가 되었 다. 그리고 1937년에는 학교 측에서 음악부의 빈약한 브라스밴드를 강화하는데 필요한 악 기 구입비 300원을 보조해 주었다. 이에 즈음하여 학생회에서는 밴드의 재출발과 성장을 위해 전문가를 초빙한다고 광고하기도 하였다. 한편 1935년도에는 음악부에서 편집한 교 가(이광수 작사, 김영환 작곡) 응원가집인 수진책자(袖珍冊子)가 발간되어 당시 학생들의 생활과 보전학생들의 기상을 엿 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고 전한다. (고려대 학교 100년사 P, 475)
3. 고려대학교 취주악부(吹奏樂部) 보성전문은 1934년 현재 위치인 안암동의 넓은 대지에 서구(西歐)의 고성(古城)같은 웅장(雄 壯)하고 수려(秀麗)한 석조(石造) 본관을 신축하고, 1937년에는 도서관을 준공 개관하고, 1946 년 8월에 법정대학 경상대학 문과대학의 3개 단과대학으로 편성된 종합대학의 고려대학교가 새로 창립되어 발전을 거듭하던 차에 1950년 6월에 뜻하지 않았던 민족참변(民族慘變)인 6.25 전란으로 1951년 9월에 대구에 피란(避亂)하여 목조(木造) 임시(臨時) 가교사(假校舍)를 마련 하고 수업을 하다가 1953년 8월 환도(還都)후에 종합대학으로서의 기구와 내용 확충에 전념하 여 1955년 4월과 1959년 4월 두 차례에 걸쳐 대학원과 법과대학 상과대학 문리과대학 농과대 학 정경대학의 5개 단과대학을 두게 되었다. 1951년 대구 원대동(院垈洞)에 임시교사를 개교하여 수업하다가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 서 정전협정이 조인되어 휴전선으로 국토가 양단(兩斷)되었으며 고려대는 환도(還都)후 미 제5 공군 통신부대(美 第5空軍通信部隊)가 주둔(駐屯)하고 있던 학교의 반환(返還)을 수차 요구하였 으나 여의(如意)치 않아 계동(桂洞)의 중앙고등학교(中央高等學校)의 일부를 빌어 수업하였다. 필자와 같은 문리대(文理大) 지망생들의 학번은 수복(收復) 후 처음인 1955년 입학시험(入學 試驗)을 서관 시계탑 신축건물의 1층 벽체(壁體)만 올리고 천장은 없는 콘크리트 바닥에 가마니 한 장씩 깔아놓고 책상도 없는 바닥에 엎드려 마분지(馬糞紙)같은 받침을 받치고 몇 시간의 시 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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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을 치르는 고통을 당했으나 엄동설한(嚴冬雪寒)의 추위나 허리 아픈 줄도 몰랐다. 극심한 경쟁을 뚫고 합격하여 입학한지 얼마 되지 않은 화창(和暢)한 4월의 봄날 한가(閑暇) 하게 본관 앞 널찍한 교정(校庭)을 거닐고 있는데(당시는 본관과 도서관 두 건물뿐이며 본관 1 층에는 서무과 학생과 교무과 총장실 등이 있었고, 2, 3층은 강의실로 전교생이 이곳에서 강의 를 받았다, 서관은 신축 중이었다) 우연히 박승빈(商, 55, 尊稱 略)2)을 만났다. 1950년 초여름 6, 25전란이 일어나고(그는 바로 해군군악대에 입대) 사방으로 헤어졌다가 처음 만나니 무척 반가웠다. 잠깐의 인사말을 마치니 바로 취주악부를 창설할 터이니 협조하 여 달라는 간곡한 당부이다. 필자는 전란(戰亂)중 대구(大邱), 광주(光州) 등지의 학교를 전전하 다가 부산(釜山)으로 가서 역시 피난 학교였던 중앙고(中央高)를 찾아 복교(復校)하여 1953년 졸업하였으나, 대학입시의 낙방(落榜)의 고배(苦杯)도 맛보았으므로, 그 때 생각으로는 대학에 공부하려고 들어 왔는데 또 악기와 인연(因緣)을 맺어야하나 하고 고민(苦悶)을 하였다. 수일 후에 알게된 사실이지만 박승빈(朴勝斌) 이문용(李文用)은 1955년 상과대학 입학시험이 끝나고 구두시험(口頭試驗)때 시험관인 김순식(金洵植, 상대, 예비역 해군대령) 교수 김효록(金 孝祿, 상대) 교수는 두 학생의 이력서를 보고 해군군악대 출신임을 알고 매우 기뻐하며 악대(樂 隊)에 관한 이야기가 있었다고 한다. 기실은 연희대학(연세대학)과의 각종 운동경기와 응원을 참관하다가 연희대학교에서는 현대적인 관악대(管樂隊)를 동원하였는데 고려대는 항상 단조로 운 농악대(農樂隊)가 동원되니 이 기회에 취주악부를 창설하려고 계획이 있었던 듯하다. 성격 이 급하기로 유명한 김순식 대학원장은 교무위원들과 의론 끝에 당장 취주악부를 창설하기로 결정하고 신입생인 박승빈 이문용을 앞세워 종로에 있던 악기점에서 각종 악기를 구입하였다. 며칠 뒤에 학생과 게시판에 출두(出頭)하라는 필자의 이름이 크게 적혀 있어 찾아가니 악기 (樂器)에 대하여 전혀 무관한 행정직 직원들이라 반가워하며 악기들을 정리하라는 명이다. 하 루 종일 악기대장을 만들고 악기고의 제작을 부탁하였다. 36명의 편제로 클라리넷 4, Eb 1, 플륫 2, 피콜로 1, 알토쌕스 2, 테너쌕스 2, 바리톤 쌕스 1, 오보에 1, 바순 1, 트롬본 4, 바리톤 2, 호른 4, 수자폰 3, 튜바 1, 드럼 1, 사이드드럼 3, 탐탐 1, 심발 1 등이었는데 거의 모든 악기 는 미군악대에서 처분한 중고품이었으며 국산 악기도 몇 점 있었다. 이 시절은 사회경제가 매우 곤궁한 시기였으므로 대부분의 학생들이 생활과 등록금을 위한 부업(副業)을 가지고 있었다. 앞의 朴 李 두 학생도 예외는 아니어서 학교 출석률이 좋지 않아 학교 일을 도울 수 없었으므로 필자를 천거(薦擧)한 듯하다. 이로부터 수시로 학생과에 호출되 어 이후 계속 취주악부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2) 필자의 초 중고의 절친(切親)의 형으로 中央中學 1학년 입학시에 그 형은 3학년 재학으로 입학 하자 그의 권유로 취주악부에 가입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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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대학 써클은 동호인(同好人)들이 모여 조직 申告하게 되었으나 취주악부는 처음부 터 학생들의 취미활동으로 조직된 것이 아니고, 학교에서 필요에 의하여 창설된 유일한 조직이 었으므로 학생과에서 직접 관리 운영하였다. 개인연습과 합주할 공간을 마련하여 달라고 신청 하니 현재 서관아래 강당 밑 느티나무가 몇 구루 서 있는 곳에 미군용 대형천막 1동을 치고 장 의자(長椅子) 몇 개를 제작한 것이 시설의 전부이다. 수일 후 접이용 보면대(譜面臺)와 오선지 (五線紙) 리드(reed) 등 소모품들을 신청하고 연습에 들어갔다. 악기소리를 듣고 많은 학생들이 찾아 왔는데, 3학년인 53학번 상학과 김명진(부산 Tp. 중 퇴), 53학번 법학과 이말병(대구 능인고 Tp, 중퇴), 54학번인 2학년에 경제과 이우근(대전고 Tb) 등이 입회하고, 신입생인 55학번 박승빈(상과, 중앙고 Ba) 이문용(상과, 휘문고 As) 이석 영(법 경북고 hr) 윤세영(사학, 중앙고 Tp) 이기철(사학 경신고 Tb) 이성곤(정치 경북고 Tp 육 군군악대) 김한성(농대 경북고 Bari Sax 해군군악대) 문성수(생물 서울고 Tp) 김장환(생물 Bs) 이성구(수학 Cla) 최준식(수학 Cla) 등 육 해군 군악대 출신이거나 중고등학교 시절 Band부 출신들이어서 거의 악보(樂譜)를 초견(初見)에 소화할 정도의 실력이었다. 그런데 악보(樂譜) 를 구하기가 힘들어 군악대에서 빌려와 각 파트 별로 사보(寫譜)하였는데 이 작업이 보통 고역 (苦役)이 아니었다. Coach 겸 지휘 손중문(孫重文, 해군군 악대 준위 예편, Cla)은 매일 오후에 나 와 열심히 지도하였으나 학생들의 출석 일이나 수업시간이 맞지 않아 합주가 힘 들기도 하였다. 그런대로 열심히 연습하 여 창립 6개월 만인 11월에 강당에서 창 단 연주회를 개최하고, 1년이 넘으면서 1956년 신입생들 중에서 윤길림(商, 道 ▲ 1956년 취주악부원(뒷줄 왼쪽부터 윤세영, 김장환, 김원수, 변동수, 윤길림, 앞줄은 이기철, 이성구, 이우근, 이성곤, 김경호, 장대호 등)
商高 As) 변동수(商, 城東工高 Cla) 임병 규(56 대전고 Tb) 외 여러 명이 입회하고
해를 거듭 할수록 최석희(cla) 홍형식 오준식 이정(As) 홍기선(59 철학 Cla) 이병호(59 사학 동 북고 Tb) 등의 많은 유경험자들이 입회하고 계속하여 김승수(60 물리 As) 송용섭(60 중앙고 철 학 Tp) 안영국(61 교육 As) 김휘일(64 사학 경주고 Bas) 지동직(64경영 서울고 Sax) 장윤철(65 영문 Tp) 이재봉(65 경제 서울고 Tp) 김중조(64 생물 Dr) 이태극(65 수 경기고 Cla) 이병호(65 사 학 동북고 Tb) 안재명(66 물리 Cla) 박종학(66 독문 Tp) 윤춘식(67 전기 대전고 Tb) 이병두(67 생 물 Drum) 서재하(68 토목 대광고 Cla) 조병오(68 산공 Tb) 이성규(69 산공 Sax) 최병찬(70 물리 Cla) 등 이외에도 많은 학생이 입회 활동한 것으로 기억된다. (70학번 이후는 연주회 명단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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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년 학교 써클로는 산악부 역도부 태권도부 등 손꼽을 정도였으나 차차 동 호단체가 늘어나니 이를 관리 통제하기 위하여 전 동호인 단체를 학생과에 등록 하게 될 때에, 필자가 학생과에 자주 출 입을 하니 관계직원이 서류를 주면서 등 록하라기에 다른 동호회 보다 늦게 출발 하였음에도 취주악부가 고려대학교 써 ▲ 1950년대 취주악부
클 제1호로 등록이 되었다.
1956년 중앙고등학교 강당에서 연주회를 개최하니 향토색이 짙고, 우직한 막걸리대학이라 고 불리던 고려대학에서 취주악부의 연주회로 학교 관계자는 물론 세인(世人)들의 감탄(感歎) 과 고려대에 대한 시각(視覺)이 달라졌다. 참고로 50년대로 부터 60년대 초 까지 는 우리나라 전 국민의 80%가 농업에 종 사하고 6.25의 참상(慘狀)을 겪은 직후 라 서울 인구는 150만 정도 였으며, 국 민소득은 60$ 정도여서 사회경제는 매 우 열악(劣惡)하였다. 55년도에 입학하 니 학교 앞은 비포장의 좁은 길로서 당 시 후암동~종암동 종점(현 국민은행 자 ▲ 1958년 연주회 모습
리)의 7번 버스 한 노선만 가끔씩 다니고
학교 앞 로변(路邊)에만 겹겹이 몇몇 집이 줄지어 있었고 그 뒤로는 청량리 전농동(典農洞) 일 대까지 논(畓)이었다. 많은 학생들이 하숙을 하거나 청량리 까지 전차를 타고 와서 도보로 등 교 하였다. 필자의 집은 정릉(貞陵)동 이었는데 돈암동을 거쳐 애기능(현 理工大) 숲속을 지나 학교까지 걸어 다녔다. 필자의 입학년도인 1955년 4월에 법과대학 상과대학 문리과대학 농림대학의 4개 단과대학 17 개 학과로 학생 정원은 3,320명으로 증원되었으며(고려대학교 일람, 2004~2005, P, 34), 개교 50주년을 맞이하여 유진오 총장의 새로운 교가 제정 계획에 의해 조지훈 작사, 윤이상 작곡의 신 교가도 만들어졌다. 1959년 개정된 고려대의 편제(編制)와 정원(定員)을 살펴보면 전교 재적 생이 4040명이고 신입생이 1000여명이었다. 대학 정원을 살펴보면 법정대학 법학과 320(80), 행정학과 320(80). 상과대학 상학과 320(80), 경영학과 320(80) 문리과대학 문학부 국문학 과 160(40), 영문학과 160(40), 철학과 160(40), 사학과 240(60). 교육심리학과 160(40).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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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수학과 160(40), 물리학과 160(40), 화학과160(40), 생물학과 160(40). 농과대학 농학과 160(40), 임학과 160(40), 농예화학과 160(40), 농업경제학과 160(40). 정경대학 정치외교학 과 320(80), 경제학과 320(80), 총계 4040(1010)이었다3). 그리고 여학생에게는 여학생 입학 특전(女學生 入學 特典)을 주었는데 해방이후 여자로서 본교에 입학 하려고 하는 학생이 많았 으나 남자와 같은 조건으로 대학입시를 치기 때문에 여자가 많이 응시하지 아니하였다. 이때 에 이르러 여자에게 특전을 베풀기로 하고 필기시험 면제 제도를 실시하여 모집정원 10%이내 의 여학생을 선발하는 동시에 정규입학 시험에 있어서도 여자는 수학(數學)대신 가정(家政)을 선택하여 시험을 치르고, 커트라인도 남자 보다 낮추었다. 그 결과 여학생이 많이 입학하게 되 어 1958년에는 전교 여학생 수가 200여명에 달하였으므로 여학생을 위하여 금난실(金蘭室)을 마련하였다. (高麗大學校 六十年誌 P. 336) 위와 같이 여학생들의 수가 증가하면서 합창(合唱) 부도 활기를 띠게 되었다. 학교는 정상적인 발전을 거듭하면서, 학벌이 낮은 교직원의 사직(辭職)을 종용하여 자연히 창설로 부터 2년간 고생만 한 손중문도 그만두고 대신 1957년 이흥렬이 객원교수로 부임하였 으나 선생은 피아노, 작곡이 전공이어서 합창부에는 큰 도움을 주었지만, 관악부에는 별로 도 움이 되지 않았다. 이교수도 1963년에는 숙대 음대학장으로 발령을 받아 고려대와는 결별하 였다. 이후로 학교 교수 중 관악에 경험이 있던 경영대 김해천 교수(51 경영 경동고 Cla)가 지 도교수로 임명되어 10여 년간 관계하면서 학교 음악의 전반적인 잡무는 필자가 담당하였다. 강당이 준공되니 천막도 철거되어 연습실이 없어 전전하다가 학생과의 호의로 방과 후에는 간이(簡易) 여학생 휴게실(정문에서 우측으로 올라오면 호상이 있고, 그 옆에 휴게소가 있었다) 을 사용하라는 허락을 받고 이곳에서 연습 합주를 하였다. 그러나 이곳도 출입이 제한되어 어려 움을 겪고 있을 시기였는데, 필자가 1959년 봄 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박물관에 근무하게 되어 그간 학생과에서 취급하던 악기들은 자연히 필자가 근무하는 박물관으로 이관하게 되고 1970 년에는 박물관 뒤 10평 정도의 가건물을 지어 연습을 하기도 하였으나 이곳도 합주 공간으로서 는 불편하여 1956년 12월에 준공된 강당(계단교실) 2층 영사실(映寫室)을 1972년에 취주악부 전용 연습실로 허락을 받아 이후로는 계속 사용하였는데 합주하기에는 협소하여 어려움이 많 았다. 1960년대는 사회가 혼란스러워 교내외가 불안정한 시기였으므로 취주악부 활동도 계속 할 수 없어 연주회를 가지기 어려웠다. 1960년 4월 18일 고려대 학생 약 3,000명은 자유당 정 권의 불의와 독재에 항거하여 데모를 강행하여 4월 혁명의 선봉이 되고, 1965년 9월 한일협정 (韓日協定) 문제로 빚어진 학원사태로 문교부에서 휴교령이 내려졌기 때문이다.(9월 6일부터 20일까지) 1965년 10월에는 고연전이 부활되어 응원연습이 시작되었지만, 1971년 10월 교련 (敎鍊) 반대 시위 격화로 문교부는 본교 등에 휴교령을 내리고(25일간), 1972년 10월에는 계엄 3) 괄호 내는 입학 정원 (高麗大學校 六十年誌 p.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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령 선포로 45일간 휴교, 1975년 4월에는 대통령 긴급조치 제7호에 의하여 본교에 거듭 휴교령 이 내려졌다.(4월 8일부터 5월 13일까지) 그러나 이러한 와중(渦中)에서도 취주악부는 춘추(春 秋)로 연주회를 계속하였으니 그 시기의 학생들의 열정에 감사할 뿐이다. 1990년대 이후에는 재학생 수도 증가하고 각종 학생 써클이 늘면서 각 동아리들은 그들의 자치공간을 요구하게 되 었는데, 취주악부도 2003년 학생회관 옥상에 학생자치활동 공간이 증축 준공되면서 회관 6층 의 넓은 합주실과 작은 연습실 몇 개를 얻게 되어 현재까지 사용하면서 학교행사 및 정기연주 회를 춘추로 개최하여 각기 취미생활도 하고 고대인의 정서 함양에도 크게 이바지 하고 있다. 이러한 취주악부는 수차례 개명(改名)하였는데 1983년 종래 통용하던 취주악부를 관악합주단으로, 1986년에는 관악합주단을 다시 취주악부로, 2000년에는 취주악부를 윈드앙상블(Wind Ensemble)로, 2008년에는 윈드앙상블을 다시 고려대 관악부로 개칭(改稱)하여 현재까지 통칭되고 있다. 취주악부는 해를 거듭 할수록 졸업생들의 증가로 처음에는 재학생들과 같이 연주하다가 그들 만의 독자적 연주회를 갖게 되었고, 이들은 다시 거의 프로에 가까운 실력의 졸업생들이 모여 위튜티(We Tutti)4) 라는 동호단체를 조직하여 정기적인 연주회를 개최하고 있다. 2013년에는 고려대학교 제1회 문화예술제를 KBS홀에서 개최하였는데, 여기에는 관악부, 합창단 코리아싱어스, 관현악단, 고전기타부, 피아노부 졸업생들이 참여하였으며, 현관에서는 디자인조형학부의 전시도 겸하여 성대하게 열렸다.
4. 연혁(沿革) 4-1 역대 지도교수 손중문(孫重文, 해군군악대 준위 예편, Cla) 1955~1957 이흥렬(숙대음대 교수) 1957~1963 김해천(경영대 교수 Cla) 1963~1973 한배호(정경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성영권(공대 전기전자공학과 교수) ~1980 홍기선(59, 정경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Cla) 1980~1983
4) ‘위튜티(Wetutti)’는 사랑과 화합의 하모니란 지향점을 두고 2004년 창단되었으며 ‘모두 함께’란 뜻의 ‘Tutti’에 ‘Wind Ensemble’이 결합된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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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세영(55, 인문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Tp) 1984~2003 전경욱(78, 사범대 국어교육과, 교수 Dr) 2003~2005 유철상(83, 공과대 사회환경공학과 교수 Cla) 2005~2009 박선화(75, 의대 해부학교실 교수 Fl) 2009~현재 위의 지도교수들은 취주악부 학생들의 중의(衆意)를 모아 선임되어 임기도 없이 나름대로 책 무(責務)를 수행하였으나 능력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현상유지에 급급하여 특별히 발전적 인 구상은 없었다고 하여도 과언은 아닐 것이며, 이들 중에는 연주회에도 참석치 않을 정도로 무심한 지도교수들도 있어 향후에는 음악에 관심을 가진 열성적인 지도교수를 선임하는데 신 경을 써야 더욱 발전된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4-2 연주회 및 수상 1955. 11.
창립 연주회 지휘 손중문, 강당(서관).
1956. 06.
6.25 기념연주회, 지휘 손중문, 중앙고등학교 강당
1957. 12.
제3회 음악회, 강당(서관)
1958. 05.
개교 53주년 기념 및 제4회 음악회, 신관(강당), 지휘 손중문
1959. 05.
정경대학 창립기념 연주회, 강당
1959. 06.
제1회 경음악 발표회 겸 제5회 음악회, 강당
1959. 12.
졸업생 환송의 밤 음악회, 지휘 윤세영
1970. 05.
석탑축전 밴드퍼레이드 공연, 지휘 이재봉
1971. 05.
석탑축전 밴드퍼레이드 공연, 지휘 지동직
1971. 09.
대학문화예술축전 음악경연 참가 최우수상 수상(서울시민회관)
1973. 05.
제6회 정기연주회(석탑축전)
1974. 05.
제7회 정기연주회(석탑축전)
1975. 03.
제8회 신입생환영 정기연주회
1975. 10.
제9회 가을 정기연주회(석탑축전), 지휘 최문호
1976. 10.
제10회 가을 정기연주회(석탑음악제), 지휘 최문호
1977. 06.
제1회 전국대학생 음악경연대회 우량상, 지휘자상(김현수) 수상
(중앙학도호국단 주최, 서울대학교 학도호국단 주관, 유관순기념관)
1977. 06.
제11회 정기연주회(유관순기념관), 지휘 김현수
1978. 05.
제2회 전국대학생 음악경연대회 우량상 수상
(중앙학도호국단 주최, 연세대학교 학도호국단 주관, 유관순기념관)
1978. 06.
제12회 정기연주회(대강당)
1978. 11.
제13회 가을연주회(대강당), 지휘 이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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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 05.
개교74주년 석탑음악제 참가
1979. 09.
제14회 정기연주회, 지휘 인기환
1982. 09.
제15회 정기연주회 겸 제1회 선후배 합동연주회(대강당), 지휘 최종국
1983. 05.
개교78주년 석탑음악제 참가
1983. 09. 제16회 정기연주회 겸 제2회 선후배 합동연주회(대강당), 지휘 연건희 1983. 09. 취주악부를 관악합주단으로 개칭 1984. 04. 제17회 정기연주회 겸 신입생환영 음악회(대강당), 지휘 박석준 1984. 09. 제18회 정기연주회 겸 제3회 선후배 합동연주회, 지휘 최문호 1985. 05. 안암음악제(석탑축전) 참가 1985. 09. 제19회 정기연주회(개교 84주년 기념 및 제4회 선후배 합동연주회), 지휘 연건희 1986. 09. 관악합주단을 다시 취주악부로 개칭 1986. 03. 제20회 정기연주회 겸 신입생환영 음악회(대강당) 1986. 09. 제21회 정기연주회, 지휘 김근한 1987. 03. 신춘음악회(대강당) 1988. 03. 신춘음악회(이공대 과학도서관 5층강당), 지휘: 최봉락 1988. 09. 제22회 정기연주회(숭의음악당), 지휘 최봉락 1989. 03. 신춘음악회, 지휘 이희원 1989. 09. 제23회 신춘 정기음악회(숭의음악당), 지휘 이희원 1990. 09. 제24회 취주악부 창립 70주년 기념 및 정기연주회, 지휘 추윤호 1991. 09. 제25회 정기연주회(소프라노 권혜연씨 출연) 1992. 03. 신춘음악회(인촌기념관), 지휘 추윤호 1992. 09. 제26회 정기연주회 1992. 12.
제5회 취주악부 졸업생연주회
1993. 05. 제1회 고연연합음악제에 금관 5중주팀 참가 1993. 09. 제27회 정기연주회(협연 90 Cla 이혜선) 1993. 12.
제6회 취주악부 교우회 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이영기
1994. 12.
제7회 취주악부 졸업생 연주회
1995. 03. 제28회 정기연주회 겸 신춘음악회, 지휘 유홍종 1995. 09. 제29회 개교90주년기념 및 정기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백한선 1996. 03. 신춘음악회, 지휘 김무영 1996. 10.
제30회 정기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이희원
1997. 03. 신춘음악회(인촌기념관), 지휘 이희원 1997. 09. 제 31회 정기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이희원, 한국 관악협회 후원 1998. 09. 제 32회 정기연주회, 지휘 장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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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 03. 신춘음악회 1999. 05. 석탑음악제 참가 1999. 09. 제33회 정기연주회, 지휘 장현배 2000. 09. 취주악부를 윈드앙상블로 개칭 2000. 03. 신춘음악회 2000. 09. 제34회 정기연주회, 지휘 장현배 2001. 03. 신춘음악회 2001. 09. 제35회 정기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장현배 2002. 03. 신춘음악회(고려대 4.19기념관) 2002. 09. 제36회 정기연주회 2003. 03. 신춘음악회, 지휘 유동휘(협연 95 Tp 김용성) 2003. 05. 석탑음악제 참가 2003. 09. 제37회 정기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2004. 03. 신춘음악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2004. 09. 제38회 정기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2004. 10. 제28회 전국대학생 음악경연대회 합주부문 금상 수상 2005. 01. Wetutti 창단연주회 겸 동문회 신년연주회(고려대 4.19 기념관) 2005. 03. 신춘음악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협연 99 Cla 이진환) 2005. 05. 개교100주년 및 창단 50주년기념 겸 제8회 선후배합동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2005. 06. 서울문화재단 주최 서울시민문화축제 참가, 최우수상 수상(마포구민회관) 2005. 09. 제39회 정기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2006. 03. 신춘음악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2006. 06. Wetutti 제1회 정기연주회(나루아트센터), 지휘 유동휘, 장현배 협연 2006. 09. 제40회 정기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2007. 03. 신춘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2007. 09. 제41회 정기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2007. 11. 서울랜드 Youth Plus Festival 참가, 공동 2위 2008. 01. 윈드앙상블을 고려대학교 관악부(윈드 오케스트라)로 개칭 2008. 03. 신춘음악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협연 03 Tp 박형규, 03 Tp 이경민) 2008. 09. 제42회 정기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2009. 03. 신춘음악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2009. 05. Wetutti 정기연주회 겸 한일합동연주회(인촌기념관),
(일본 Nats Wind Ensemble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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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09. Wetutti 고양 관악 Festival 참가(한국관악 총연합회 주최) 2009. 09. 제43회 정기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2009. 12. 관악부 교우회 송년회 및 가족음악회(송파구 올림픽 파크호텔) 2010. 03. 신춘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2010. 08. Wetutti 제2회 한일합동연주회(일본도쿄 Tiara Koto대 홀) 2010. 09. 제44회 정기연주회, 지휘 유동휘, 인촌기념관 2011. 03. 신춘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2011. 09. 제45회 정기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성재창 협연) 2012. 03. 신춘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협연 Tb 김동준) 2012. 09. 제46회 정기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협연 Tb 김동준) 2012. 12. 제9회 관악부 교우회 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2013. 03. 신춘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06 Sax 박훈성 협연) 2013. 09. 제47회 정기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2013. 11. 고려대학교 문화예술교우회 제1회 문화예술제 참가(KBS홀)
(관악부, 합창단 관현악단, 고전키타부, 피아노부, 코리어싱어스)
2013. 11. KUSMO(고대 서창 관악부) 제1회연주회(KT체임버홀), 지휘 이원형 2014. 03. 신춘음악회(소월아트홀), 지휘 유동휘 2014. 09. 제48회 정기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2014. 11. 고려대학교 문화예술교우회 제2회 문화예술제 참가(KBS홀) 2014. 12. 관악부 교우회 송년회 및 제10회 교우밴드 연주회(교우회관) 지휘 전인배
5. 응원단과 취주악부 위에서 보전 학생회 음악부의 활동에 대해서 알아보았거니와 대표적 사업은 “음악 예술의 일반향수”, “응원단 지휘”라 하였고, “교가와 학생회가를 학생들에게 보급 연습시키는 것과 학 교 대항 특히 연전과의 운동경기에서 응원단을 구성하고 응원가를 연습시키고 사기 앙양을 도 모한다.”라고 한바와 같이 그 당시에도 대내외 연주활동 외 운동경기의 응원에도 큰 몫을 담당 한 것으로 되었다. 연세대학교(延世大學校)와의 친선경기는 물론 체육 각 부의 양교의 대항전은 한국체육계의 대표적인 경기의 하나였다. 따라서 양교의 대항전에는 오래전부터 양교의 재학생은 물론 교직 원 및 교우 까지 총동원되어 응원에 열중하였다. 양교의 재학생들은 응원단을 조직하여 응원 의 질서를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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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 응원단은 황호기(黃虎旗)를 앞세우고 징(鉦), 대소의 북 및 장고(長鼓)등의 연주대를 가 진 농악대(農樂隊)와 광복 후에는 취주악대 까지 곁들여 단장의 지휘 하에 연세대학교 응원단의 경쾌한 응원단에 대항하여 호쾌(豪快)한 응원으로 경기자의 사기를 돋운다. 양교의 운동경기도 한국의 대표적 빅게임의 하나로서 관람자를 흥분 시키나 양교 응원단의 묘기(妙技)는 장안(長 安) 팬을 더욱 열광 시키고 경기를 마친 다음 승부 간에 양교 응원단의 서울 번화가(繁華街)를 누비는 시가행진은 서울의 연중행렬(年中行例)의 명물(名物)이며 때로는 양교생은 용호상박(龍 虎相搏)을 벌려 젊은 혈기(血氣)를 발산시킨다. (高麗大學校 六十年誌 p, 442) 개막식에서는 양교와의 친선의 노래(고려대 조지훈 작사, 연세대 나운영 작곡)가 반드시 제 창(齊唱) 되었는데, 연세대학교에는 음대(音大)가 있어 나운영 교수가 지휘를 하였으나 본교는 필자가 취주악부 감독 자격으로 운동장 중앙에서 양교의 응원단장을 옆에 세우고 양교의 응원 단을 지휘하였다. 정기 고연전 경기는 현재와 같이 프로야구나 프로농구 축구 배구 같은 시민들의 환영을 받 는 큰 경기가 없었던 시절이라 당시에는 장안의 큰 기대를 모으는 경기였다. 따라서 교우들 시 민들이 운동장의 입장권을 구하기 어려워 동분서주(東奔西走) 할 때이어서 취주악부가 입장할 때 악기는 따로 들고 빈 악기 케이스만 들고 함께 입장하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그리고 서 울운동장(당시 동대문운동장)에서 럭비와 축구가 끝나 경기를 모두 마치면 승자는 종로로, 패 자는 을지로를 행진하게 약속되어 서울시청 광장 까지 가서 양교는 서로 승리를 외치다 해산하 였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우리가 패자가 되어 취주악대를 앞세워 을지로를 행진한 적이 있다. “1968년 고연전을 위한 응원가집”에 의하면, 교가, 구교가, 응원가, 응원의 노래, 호상의 노 래, 연세 교가, 연세 응원가, 친선의 노래, 반달, 돈도라지, Sloop, J, B. 와이리 좋노, 결전스케이 트, 퐁당퐁당, 학도가, 정든 그노래 등이 었는데, 당시만 해도 전장(戰場)의 노래나 피난(避難) 이 별 등을 주제로 한 비조(悲調)의 노래가 많아서 응원곡으로 차용(借用)하기에는 문제가 있었다. 그 후 “1986년 고연전 응원가집”에는 고려대학교 교가, 응원가, 응원의 노래, 막걸리 찬가, 호상의 노래, 친선의 노래, 연세응원가, 팡파레, 응원단가, 뱃노래, 닐니리 맘보, 향수에 젖어서, 고래사냥, 간다간다, 해야 해야, 햇빛사랑, 징글벨, 선구자, 농부가, 고대찬가, 지중해의 장 미, 신 아리랑, 내나라 내겨례, 고돌이와 ▲ 1979년 정기전의 취주악부
연순이, 석탑, 승리를 얻었네, 엘리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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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하여, 보아라 용사, 자유의 활화산, 탑돌이, 서울의 모정, 사랑아 달려라, 바람, 희망의 나라 로, 무인도, 우리는 고대인, Come and join us, 개선의 노래, 오봉산 타령, 이땅은 나의 땅, 막 걸리 이야기, 우리의 고려대학, 울릉도 트위스트, 까투리 사냥, 아리랑 접속곡, 빙빙빙, 젊은 그 대, 당신의 뜻이라면, Go Go Hatschede, 바윗돌, 기다리는 마음, 백전, 태평양, 자진구호, 발 산호, 탈춤, 레스링, 펜싱, 카우보이, 신 독립군가, 임을 위한 행진곡, 선봉에서 등이 실려있는 데 사회적으로 전쟁의 상처(傷處)도 약간은 치유(治癒)되어 명랑하고 경쾌(輕快)한 리듬의 곡들 이 유행되어 응원곡으로 많이 이용되었다. 정기 고연전은 장충체육관 동대문아이스링크 서울운동장 효창구장을 이용하여 계속 되었는 데 1980년 후반기부터 전자기기(電子機器) 등장으로 응원(應援)에 불참(不參)하게 되자 취주악 부에서는 대자보(大字報)와 성명서를 발표하였는데(1992 9, 22) “잊혀져가는 高大의 魂”이라하 여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하였다. 해마다 치러지는 고연제는 모든 고대인으로 하여금 “나는 고대인이다” 라는 자긍심을 가지 게 하는 우리만의 자랑스러운 전통이었고 앞으로도 이 전통은 이후 고대에 들어올 후배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 중 고연제의 얼굴인 체육제는 2만 고대인이 하나가 될 수 있는 유리한 자리였습니다. 2만 고대인이 뱃노래로 대표되는 고대 응원곡을 하나가 되어 부르는 모습은 어느 누구가 보아도 가 슴 벅찬 장면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고연제 체육제 행사는 응원단과 취주악부에 의하여 진행되어 왔습니다. 잠실 주경기 장에서 고대인들이 포효를 실어 필승의 기세로 울렸던 우렁찬 나팔소리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고연제에서는 컴퓨터음악이 등장하면서 올해에는 이 나팔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경과를 이미 대자보를 통해 알려드린바 있지만 부족한 점이 있어 다시 한 번 총학생회와 취주악부 공동명의로 낸 대자보의 내용을 알려 드립니다. 저희 취주악부는 이번에 사용되어지는 소위 컴퓨터음악에 왜 반대하였으며 이번 92정기 고 연전의 응원음악을 책임져온 단체로서 응원단의 문제 제기에 대해 어떤 식으로 준비하고 있었 는가, 또한 앞으로 응원나팔을 불지 않을 경우 어떠한 모습으로 저희 취주악부를 사랑해주시는 여러분들에게 나타내고자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다음주 고대 신문에 싣고자 합니다. 응원단에서는 올해 초부터 기존의 브라스 밴드를 대신해서 컴퓨터 음악을 사용한다는 점을 지적한 바 있고 이것은 공식적인 논의로 진행되지 않은 상태에서 별 잡음 없이 비정기 고연전 에서 사용되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러나 정기 고연제가 눈앞에 다가 오면서 이 문제는 커다란 마찰을 빚어내면서 극단적인 대립을 보여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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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연대에 비해 음량이 적다는 것과 대응이 느리다는 문제의식 속에서 응원단은 이번 고연제 에서 부터 컴퓨터 밴드를 사용하겠다는 방침을 자체적으로 결정하였고 여름방학 바로 이전부터 추진하기 시작하였고, 거의 완성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것을 고연제가 눈앞에 다가온 8월초에 이르러서 취주악부에 공식적으로 제기하면서 문제는 발생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취주악부의 입장은 앰프 용량(89년부터 응원단 주관이었다)과 입으로 불어야 하는 브라스 밴드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전자음악 부분을 강화하고 앰프 용량의 확대를 통하여 응원 단이 제기한 문제를 극복 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응원단이 제시한 컴퓨터 음악이 정 기전에 사용될 수 있을 정도로 완성되지 않았고, 이 때문에 응원단의 전자밴드는 신뢰 할 수 없 다는 입장을 표명하였습니다...... 중략. 위와 같이 고연전에 관악부가 불참(不參)하게 된 것은 응원단과의 마찰 뿐 만 아니라 몇 가 지 원인이 있었다. 첫째로 수복(收復) 후 응원단의 규모가 크지 않을 때는 응원을 취주악부가 주도(主導)하였으나 학교가 정비되고 학생 수가 증가하여 응원단이 성장되면서 차차 취주악부는 응원단의 요구에 응 하게 되었고, 둘째로 상대교(相對校)인 연세대에서는 음대(音大)가 있었으나 관악(管樂)을 전공하 는 학생 수가 그리 많지 않고, 또 있다 하더라도 전문음악인으로 수업받는 학생이라 수일간 따가 운 가을 햇살 아래 동원할 수 없는 실정이라 앰프라는 기기(機器)를 동원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당시 유행하던 전자기기 즉 고성능(高性能) 앰프의 동원이었는데 몇 사람의 인원으로 음 량(音量)을 무한(無)限) 조절 가능하기 때문이다. 앰프의 동원은 몇 사람이면 가능하지만 취주악 대는 많은 인원이 참가하는데 인원이 많다고 音量이 높은 것은 아니고, 교대로 하기 때문에 기대 치(期待値)의 고음(高音)을 낼 수 없고, 뿐만 아니라 아무리 응원음악(應援音樂)이라 하더라도 음 악에는 고저장단(高低長短)이 있는데 고음만을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농구 빙구 야구 축 구 등 경기장(競技場)이 달라 응원단이 분산배치(分散配置) 됨으로 응원단이 요구하는 음량을 낼 수 없는 것이다. 셋째는 고연전에는 적어도 50여명이 동원되는데 경기전(競技前) 여름방학 때부 터 합숙 또는 합주연습을 하는데 경비 당일까지의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때문에 학교에서도 경 비축소를 고려하여 취주악부 대신 간단한 앰프사용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기전(定期戰)은 종목별 경기가 분산되어 진행되므로 양교에서는 모두 암묵적(暗默的)으로 고등학교 밴드나 군악 대원들을 몇 일 동안 동원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6. 고 려대 취주악부 교우회(KOREA UNIV, Wind Ensemble A. A)와 위튜티 앙상블(We tutti Ensemble) 6-1 고려대 취주악부 교우회 고려대학교 취주악부 졸업생은 자동적으로 가입되고 해를 거듭 할수록 그 수가 증가하여 선 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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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간의 우의(友誼)를 돈독(敦篤)히 하고 틈나는 대로 후배들의 연주에 참석하여 합동연주회 도 개최하는 등 음양(陰陽)으로 취주악부를 돕는 친목 단체이다. 2000년 취주악부는 윈드 앙상블이라 개칭하여 이에 따라 취주악부 졸업생 모임도 고려대 윈 드앙상블 교우회라 고치게 되었다. <역대 교우회 회장> 회장/수석총무(부회장) 제1대 박기복(71) Euph 축산 제2대 김경훈(78) Sax 경영
1995년도
제3대 이창환(84) Trb 화공 제4대 김완기(71) TP 물리 /장재현(89) Horn 불문 2004~2008년 제5대 허영(72) Cla 수학
2009~2010년
제6대 김중조(64) Perc 생물 /김영수(74) Tb 축산
2011.06월~2012.05월
제7대 김영수(74) Trb 축산 /김윤성(78) Cla 물리
2012.06.03~2013.06.02
제8대 전충남(75) Sax 철학
2013.06.02~2014.07.20
제9대 인기환(75) TP 물리 /박영준(76) Perc 농화학 2014.07.20.~ 고려대 윈드앙상블 교우회 회칙 제1장 총칙 제1조(명칭) 본회는 고대 윈드 앙상블 교우회라 칭한다. 제2조(소재지) 본회의 소재지는 서울특별시내에 둔다. 제3조(구성) 고려대학교 재학시 윈드 앙상블(취주악부)활동을 하였던 사람은 자동으로 교우회의 구성원이 된다. 제4조(목적) 본회는 각종 회원 상호간의 친목도모 및 후배지원을 목적으로 한다. 제5조 본회의 활동은 다음과 같다. 1. 정기적인 교우모임은 1월 신년모임으로 한다. 2. 비정규적으로 재학생들과 연주회를 개최한다. 3. 기타 본회의 목적에 맞는 체육대회 등의 행사를 년1회 이상 갖는다. 중략(中略) <제4대 윈드앙상블 교우회 임원> 자문위원단 자문위원장
윤세영(55)
자문위원
이문용(55), 변동수(56), 김승수(60), 안영국(61), 김중조(64), 장윤철(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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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영(64), 지동직(64), 이재봉(65), 윤춘식(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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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단 회장
김완기(71)
수석부회장
인기환(76), 신중택(77)
부회장
임현호(75), 이승환(78), 김요섭(80), 이승렬(84), 이경재(88), 김용성(95),
조효기(00)
총무단 총무
김윤성(78)
회계
장재현(89)
감사
이화자(76)
고려대 관악부 교우회 조직 2008년 1월 윈드앙상블을 고려대학교 관악부로 개칭함에 따라 정관의 일부 개정과 임원이 개선되었다. 고려대 관악부 교우회 회칙 제1장 총칙 제1조(명칭) 본회는 고려대 관악부 교우회라 칭한다. 제2조(소재지) 본회의 소재지는 서울특별시내에 둔다. 제3조(구성) 고려대학교 재학시 관악부(취주악부) 활동을 하였던 사람은 자동으로 교우회의 구성원이 된다. 제4조(목적) 본회는 각종 회원 상호간의 친목도모 및 후배지원을 목적으로 한다. 제5조(활동) 본회의 활동은 다음과 같다. 1. 정기총회는 매년 5월 4째주 토요일에 개최한다. 2. 비정기적으로 재학생들과 연주회를 개최한다. <제6대 고려대 관악부 교우회 임원> 자문위원단 자문위원장 윤세영(55) 자문위원 이문용(55), 변동수(56), 김승수(60), 안영국(61), 장윤철(64), 장하영(64),
지동직(64), 이재봉(65), 윤춘식(67), 박종학(71), 허 영(72), 정대영(72)
회장단 회장
김중조(64)
제1부회장 김영수(74) : 제7대 고려대 관악부 교우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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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제2부회장 전충남(75) : 제8대 고려대 관악부 교우회 회장 제3부회장 이화자(76) 총무단 총무위원
이민호(74)
재무위원
이화자(76)
학번대표 70년대
이민호(74), 권정애(76), 김문일(77)
80년대
김요섭(80), 김효웅(82), 김준영(84)
90년대
신희준(90), 한현선(94), 박용국(96)
00년대
임나빈(00), 이경민(03)
<제9대 고려대 관악부 교우회 임원> 상임고문
이문용(55), 윤세영(55)
고문
변동수(56), 윤길림(56), 김승수(60), 안영국(61), 장윤철(64), 이재봉(65),
박종학(66), 조병오(68)
자문위원(역대교우회장/기수별)
박기복(71), 김경훈(78), 이창환(84), 김완기(71), 허 영(72)
김중조(64), 김영수(74), 전충남(75)
회장단 회장
인기환(76)
수석부회장 박영준(76) 부회장
신승철(76), 이화자(76), 신중택(77), 김문일(77), 이승환(78), 김윤성(78), 송건호(79), 김기수(79), 이인호(80)
총무단 총무
김요섭(80), 장재현(89), 백승학(90)
회계
임은미(86), 이미경(86)
감사
이민호(74), 김현수(75)
교우밴드 회장
전충남(75)
음악감독
연건희(74)
총무
김요섭(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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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95주년 기념지 발간 위원회 고문
윤세영(55)
위원장
연건희(74)
총무
김윤성(78)
간사
백승학(90)
관악부 교우회 연주활동 1982. 09.
제1회 총동문 연주회
1983. 09.
제2회 선후배합동 연주회
1984. 09.
제3회 선후배합동 연주회
1985. 09.
제4회 선후배합동 연주회
1992. 12.
제5회 졸업생 연주회
1993. 12.
제6회 취주악부 교우회 연주회
1994. 12.
제7회 취주악부 졸업생 연주회
2005. 01.
위뚜띠 창단 기념 연주회 겸 동문회 신년연주회, 4.19 기념관
2005. 05.
개교100주년 기념 및 제8회 선후배 합동 연주회(인촌기념관)
2011. 12.
관악부 교우회 송년음악회(올림픽 파크호텔)
2012. 12.
제9회 관악부 교우회 연주회(인촌기념관)
2013. 12.
관악부 교우회 송년음악회(교우회관)
2014. 12.
관악부 교우회 송년회 및 제10회 교우밴드 연주회(교우회관)
2015. 12.
관악부 교우회 제11회 선후배 합동 연주회(인촌기념관)
<역대부장> 부장/총무 부장1955; 이성곤(55) Tp 정치 부장1958; 김경호(58) Tp 철학 부장1965; 이재봉(65) TP 경제 부장1967; 장윤철(65) TP 영문 부장1969; 안재명(66) Cla 물리 부장1970; 서재하(68) Cla 토목 부장1971; 이성규(69) Sax 산공 부장1972; 이강해(70) Tb 축산 부장1973; 박기복(71) Euph 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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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부장1974; 차근식(72) TP 화학 부장1975; 오윤택(73) Sax 기계 / 연건희(74) Tb 사학 부장1976; 장명호(74) Tb 산공 / 홍준익(74) Sax 기계 부장1977; 김현수(75) Oboe 토목 / 양동광(75) Per 신방 부장1978봄; 이종희(76) Sax 화공 부장1978가을; 이찬용(73) TP 사회 / 박영준(76) Perc 농화학 부장1979; 인기환(76) TP 물리 부장1980; 김윤성(78) CLA 물리 / 변박연(78) Perc 전기 부장1981; 송건호(79) Tb 전기 부장1982; 최종국(74) Sax 토목 / 이용호(77) Cla 산공 부장1982; 이인호(80) TP 전기 부장1983; 이병학(81) FL 사학 부장1984; 박석준(82) Tb 토목 부장1985; 권재현(83) TP 기계 부장1986; 이병학(81) FL 사학 / 이광철(84) TP 무역 부장1987; 김 준(85) TP 통계 / 이홍원(85) Perc 통계 부장1988; 김경훈(86) Tb 기계 부장1989; 박세진(87) TP 무역 부장1990; 이창환(84) Tb 화공 부장1991; 송형근(89) TP 물리 부장1992; 백승학(90) TP 경영 부장1993; 김상욱(91) CLA 금속 부장1994; 노병석(92) FL 노문 부장1995; 김 권(93) Sax 원예과 / 박희복(93) Euph 축산 부장1996; 이유나(94) FL 간호 부장1997; 강영삼(95) TP 원예 부장1998; 박용국(96) Tb 경영 부장1999; 김성진(98) Fl 기계 부장2000; 윤수현(99) Tb 생명과학 부장2001; 김상민(00) TP 토목 부장2002봄; 이유건(01) Sax 경영 부장2002가을; 김종원(01) TP 생명과학 부장2003; 김두희(02) CLA 일문 부장2004; 이경민(03) TP 기계 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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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2005; 김상아(04) TP 중문 부장2006; 조범석(05) CLA 부장2007; 박훈성(06) Sax 의학/생명 부장2008; 황지영(07) FL 불문 부장2009; 용주현(08) Sax 경제 부장2010; 장창수(09) Euph 경영 부장2011; 이계원(10) TP 서어서문 부장2012봄; 백진명(11) Euph 생체의공 / 신동이(11) TP 정외 부장2012가을; 이수연(11) FL 정외 / 신동이(11) TP 정외 부장2013; 허 웅(12) CLA 생체의공 부장2014; 조진웅(13) Sax 기계 부장2015; 강기현(14) CLA 바이오의공 <역대 내외부 지휘자> 지휘:손중문(해군군악대 준위 예편, Cla); 1955~1957 지휘:김두환(68); 1974 지휘:최문호(공군); 1975~1976 지휘:김현수(75); 1977 지휘:이찬용(73); 1978 지휘:인기환(76); 1979 지휘:최종국(74); 1982 지휘:연건희(74); 1983 지휘:박석준(82); 1984 지휘:최문호(공군); 1984 지휘:연건희(74); 1985 지휘:김근한; 1986 지휘:최봉락; 1988 지휘:이희원; 1989 지휘:추윤호; 1990 지휘:이영기(82); 1993~1994 지휘:유홍종; 1995 지휘:백한선; 1995 지휘:김무영;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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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이희원; 1996~1997 지휘:장현배; 1998~2001 지휘:이승열(84); 2002 지휘:유동휘; 2003~현재(재학생, 위튜티) 지휘:전인배; 2014~ (교우밴드) <위튜티 앙상블(We tutti Ensemble) 창단> 2004년 7월 10일 위튜티(다 함께)라는 음악 동호단체를 창단하였는데 앙상블과 다 함께 라 는 뜻의 We tutti는 고려대학교 윈드 앙상블(취주악부) 출신 졸업생들이 취미활동으로 연주단 체를 결성하고, 2004년 7월 서초구 방배동에 개인연습실, 합주실을 갖추어 정식으로 활동하기 시작하였다. 이 단체의 창단은 이비인후과(耳鼻咽喉科) 전문의인 임현호(75 醫)를 비롯한 많은 교우들의 헌신적(獻身的)인 노력의 결실이라 할 수 있다. 위튜티 역대 회장(간사) 1기 임현호(이승열) 2기 이창환(한현선) 3기 임창영(김상욱) 4기 이승열(김상욱) 5기 김상욱(설임연) We tutti Ensemble 정관 제1조(명칭) 본회는 위튜티(We tutti)라 칭한다. 제2조(소재지) 본회의 소재지는 서울특별시 내에 둔다. 제3조(구성) 고려대학교 취주악부(윈드앙상블) 교우 및 기타 본 회의 회원으로서 참여하는 자유인들의 모임으로 한다. 제4조(목적) 1. 본회는 각종 연주 및 음악활동을 통하여 회원 상호간 친목 도모를 주 목적으로 한다. 2. 본회는 사회인 연주단체로서 수준높은 연주능력을 배양하며 더 나아가 국민정서 함양 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음악활동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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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조(활동) 1. 매년 정기연주회를 1회 이상 개최한다. 2. 매년 비정기연주회(위문공연 초청공연 기타 봉사활동)를 하되 5회 이상 넘기지 않는 것 을 원칙으로 한다. 3. 기타 본회의 친교와 목적 달성에 관한 활동 이하 생략 위의 정관 같이 매년 정기연주회를 비롯하여 봉사연주회를 계획 활동하며, 2005년 6월에는 서울시민예술축전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하는 영예(榮譽)도 얻었다. 이들은 자기 생업(生業)에 충실하는 각계의 중진으로 활동하며 사회생활의 분주(奔走)한 틈을 내어 자신들의 취미생활도 살리면서 열정(熱情)과 부단(不斷)한 연습을 계속하다가 음악 동호 (同好) 단체를 구성하여 위뚜띠 앙상블을 창단하였다. 이들의 연습과 지휘는 유동휘의 헌신적 인 봉사도 큰 몫을 담당하고 있다. 유동휘는 경희대 음대 기악과 졸업 후 네델란드 로테르담 음 악원을 졸업하여 경희대 교수를 역임하고 고려대 취주악부, 위튜티 앙상블 상임지휘자로 활약 하고 있다. 그는 2013년에 고려대학교 문화예술최고위과정을 수료하여 고대 교우가 되어 앞 으로 보다 적극적인 봉사가 기대된다. 이 위튜티 앙상블은 음악을 전업으로 하는 연주단체에 버금가는 수준 높은 기량(技倆)은 자타가 공인하고 있다. 위튜티 연혁, 연주회, 수상 2004. 07. 위튜티 창단 2005. 01. 위튜티 창단연주회(고대 4.18기념관) 2005. 05. 고려대학교 100주년 및 윈드앙상블 50주년 기념연주회(인촌기념관) 2005. 06. 서울시민예술축제 참가, 최우수상 수상(마포 구민회관) 2005. 07. 방배동으로 연습실 이전 2005. 12. 서울시민예술축제 연합연주회(창동 열린극장) 2005. 12. 분당차병원 초청연주회(분당 차병원) 2006. 01. 부산 고려대학교교우회 초청연주회(부산 금정문화회관) 2006. 06. 제1회 정기연주회(나루아트센터) 협연 장현배 2006. 07. 사회인 관악대축제 참가(예술의 전당) 2006. 10. 나주시 초청(영산강문화축제) 사회인관악대축전 참가(나주 금성관) 2006. 12. 제2회 정기연주회(도봉구민회관) 협연 정재은 2007. 05. 제3회 정기연주회(소월아트홀) 협연 정문경, 오주영 2007. 08. 강원도 원주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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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11. 장애인을 위한 모금연주회(강남구민회관 라이온스클럽) 2007. 12. 제4회 정기연주회(강남구민회관) 2008. 05. 제5회 정기연주회(소월아트홀) 협연 퓨전퍼포먼스 타악구름 2008. 11. 제6회 정기연주회(장천아트홀) 2009. 05. 7회 정기연주회(인촌기념관) 일본 Nats wind Ensemble 합동연주 2009. 09. 국군정보사령부 위문공연(국군정보사령부) 2009. 09. 사회인 관악연주회 초정공연 2009. 12. 제8회 정기연주회(성남아트센터) 찬조 광주 감리교회 연합찬양대 2010. 05. 제9회 정기연주회(장천아트홀) 2010. 08.
제2회 한일 합동연주회(일본 도쿄 Tiara Koto 대홀)
2010. 10.
대한민국 국제관악제 참가(한강 프로팅 스테이지)
2010. 12. 제10회 정기연주회(장천아트홀) 2011. 05. 자선음악회(힐스테이트 갤러리홀) 2011. 08. 대한민국 국제관악제 참가(새빛둥둥섬 미디어아트 갤러리) 2012. 05. 제11회 정기연주회(장천아트홀) 특별출연 다시다 밴드 2012. 12. 분당 차병원(환우들을 위한) 위문공연 2013. 05. 제12회 정기연주회(소월아트홀) 협연 정경원(Tb) 2013. 08. 제주 국제관악제 참가(제주 해변공연장, 제주 문예회관) 2013. 08. 대한민국 국제관악제 참가(분당 중앙공원) 2014. 05. 제13회 정기연주회(장천아트홀) 이상과 같이 정기연주회 위문공연 등 부단한 연주활동으로 사회에 크게 이바지 하고 있다. 필자가 이들의 합주 장소인 서초동 Korean Pops의 음악연습실을 찾았을 때에 낯설은 젊은이 들이 눈에 띠어 알아보니 정관에 의한 고려대학교 취주악부 출신만으로는 회원을 충당하기 어 렵고 또한 기량(技倆) 문제도 있어 부득이 외부 인사(他大)도 영입하고 있어 현재는 비고대인이 약 30% 정도라고 한다. 여하간 위튜티(다함께)라는 이름같이 다른 단체에서 활약하던 관악 동 호인들도 참여하게 문호를 개방하는 것도 고대 음악인의 아량일 것이다. 음악이 각기 다른 종 류의 음색(音色)을 가진 악기들이 모여 화음(和音)으로 선율(旋律)을 만들어 연주(演奏) 하는 것 과 같은 이치이다. 어떠한 조직이던 순혈주의(純血主義)는 구시대적인 착상(着想)이라고 생각 된다. 이들의 꾸준한 연주활동을 크게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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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고려대와 음악 광복 후 6.25전란으로 나라 사회 학교가 혼란스러웠던 시기에는 음악활동은 전무한 상태라 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가 서울 수복 후 학교가 차차 정상화 되면서 농악대를 위주로 한 응원단이 학교음악 실태의 전부였다. 1955년 봄 학교 중진(重鎭) 교수들의 발의로 취주악부가 창설되어 교내외 행사, 각종 운동 경기의 응원을 비롯하여 합창부 취주악부 활동이 시작되었으며, 1970년대에는 교양과목으로 음악개론 등이 개설되어 많은 학생들이 수강하고 있다. 2003년 9월에는 본교와 한국예술종합 학교와 학예술 교류협정(學藝術 交流協定)을 체결하여 양교 간에 상호 교류가 증진되고 있다. 고려대에서의 초창기 음악활동은 곽병완(郭炳玩, 후일 郭淵으로 개명)이 필자와 대학 동기로 서 학생시절 그는 합창부를, 필자는 취주악부를 이끌면서 자주 만났는데 필자가 졸업과 동시에 박물관에 근무하면서 취주악부를 관리하며 학교의 대소 행사의 음악관계 의전(儀典)을 담당하 였다. 1956년 서울대 음대 1년을 수료한 곽연(郭淵)은 철학과에 편입학하여 고형주(50, 법)가 이끌어 오던 합창부를 맡아 크게 활약하였고, 졸업 후에도 음악활동을 계속하다가 1964년 10 월부터 69년 3월까지 약 5년간 학생과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합창부도 함께 관리하며 교내 모 든 음악행사를 책임지게 되었다. 곽연(郭淵)은 응원가, 응원의 노래, 호상의 노래, 고대찬가 등 을 작곡 하였으며 1965년 3월 교양학부 강사를 비롯하여 2005년까지 ‘음악의 이해’ 등의 음악 과목을 강의하였고 1973년 2월에는 연세대학교 대학원 음악학과에서 베토벤의 피아노곡 연 구로 음악석사를 취득하였다. 1998년 5월에는 고려대학교 특별공로상, 2003년에는 자랑스러 운 고대인상 특별상을 수상 하는 등 2006년 타계(他界)할 때 까지 음악관계 학과가 전무한 고려 대를 위하여 기여(寄與)한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를 위하여 2009년 6월에는 합창부 교우회에 서 “故 郭淵선생님 追慕 音樂會”가 김경진(56, 영) 지휘로 인촌기념관에서 성대히 개최 되었다. 필자 작사에 곽연 작곡(1992,4)의 서창산우가(瑞倉山友歌, 현 세종캠퍼스 교직원 산우회)는 두 사람이 음악을 사랑하는 대학 동기로서 또 같은 대학에서 40여 년간의 우정의 합작이라 그를 더욱 회상(回想)케 한다. 1970년 8월에 김승수(60 물리 A. Sax)가 학교 직원 모집에 응시하였는데 시험성적도 우수하 였겠으나 최종 심사에서 육군대위 전역(轉役, 당시는 所謂 軍事政權 시대)과 취주악부 출신이 라는 점이 가산(加算)되어 특채(特採)된 듯하다. 곽연(郭淵)에게 학교행사 음악관계 의전과 취 주악부의 모든 잡무를 인계 받고 학생과장 총무과장을 역임하면서 취주악부에 음양(陰陽)으로 많은 도움을 주어 취주악부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고려대 음악 발전에 크게 공헌한 사람 중에 이문용(55 상학)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고대 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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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악부 설립자이기도 하지만 1990년대 장기간 미국 체류 후 귀국하여 호연재(浩然齋)라는 음 악홀을 운영하면서 사회봉사단체인 JC(청년회의소)를 이끌기도 하고, 고려대학교 교우회에 많 은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음악 미술관련 학생들에게도 적지 않은 장학금을 수 여하고 있다. 2014년 1학기에 수급자는 최원준(언어학과) 김재규(미디어학부 호우회 부회장) 남도연(합창단 단장) 허웅(관악부 부장) 박종선(관현악단 단장) 장유영(피아노부-TTP회장) 김 유혁(고전기타부 회장) 등이다. 고려대학교 관현악단은 1971년 서경석(농학 65)에 의하여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로 13~4명 의 학생이 주축이 되어 동아리인 현악부로 등록되어 출범하였다.(高藝, 통권 2호, p, 15, 고려대 관현악단 연혁, 2014, 고려대 관현악단 제30회 신춘음악회) 1972년 제1회 정기연주회를 시작 으로 꾸준한 활동을 펴왔으며 2005년 9월 고려대학교 오케스트라가 예술의 전당에서 개교 100 주년 기념연주회를 개최하였는데 이 연주회에서 러시아 작곡가 알렉세이 라린의 “자유 정의 진 리를 위한 교향곡”을 초연하는 등 활발한 연주활동으로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하였고, 2014년 3월에는 제30회 신춘음악회를 인촌기념관에서 성대히 개최하였다. 그런데 1926년 1월 보전친목회 주최로 신춘남녀음악대회를 개최하였는데 보전현악대 등이 출연하였다는(고려대학교 100년사 P, 325 참조) 기록을 보아 관현악단의 역사도 바로 세워야 할 것이다. 2014년 1학기 현재 고려대학교 학생과에 등록된 음악 관계 동아리를 살펴보면 관악부(취주 악부), 합창부(합창), 고전기타부(기타), 관현악단(관현악), 국악연구회(국악), 그루터기(기타), 노래얼(노래), 고대농악대(풍물), 크림슨(락 연주), 소울메이트(뮤지컬), JASS(재즈), LOGS(아 카펠라), TERRA(노래), TTP(피아노) 등이 있다. 그리고 현재는 세종캠퍼스로 개명되었지만 1983년부터 조치원 캠퍼스에서도 이광철(84 Tp 무역)을 비롯하여 관악에 경험이 있는 학생들이 나름대로 활동하고 있다. 이외에도 의과대학 재학, 졸업생으로 구성된 록 밴드 히포피언스(Hippopience)는 1973년 김 두환(피부과 전문의)이 중고앰프 드럼 악기를 구입하여 동호인을 규합 창설하여 현재까지 41년 간 고려대 최고의 록밴드로 존속하고 있는데 회원은 매년 오디션을 통하여 4~6명을 선발하여 연습을 거듭하여 연주활동도 지속하고 있다. 뿐 만 아니라 자작곡으로 Hippo라는 정규 앨범을 발표하여 가요계에 데뷔하였고 또 자작곡으로 이시보도라는 앨범을 내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 다. 현재도 OB팀인 4기 김흥열, 신동완(4기) 최영희(4기) 이혜경(5기) 김창수(9기) 안승연(10 기) 이상달(10기) 이길주(10기) 이태호(11시) 강병덕(13기) 등이 월 1~2회 모여 연습하며 연 4 회 이상의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2012년에는 코엑스 오디토리옴에서 열린 아시아 임상종양학 술대회에서 A-side팀과 함께 오프닝 세레모니 연주를 하여 세계 각국에서 온 500여 의사들의 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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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를 받기도 하였다. 히포피언스는 2013년 써클 창립 40주년을 맞아 4.18기념관에서 대규모 공 연을 하였다. 현재는 방음시설이 완벽하게 가추어진 서클실이 마련되어 재학생 OB팀의 연습으 로 선후배간의 교류와 연습이 활발히 이어지고 있다. (고대교우회보 제526호, 2014, 5, 10 참조)
크림슨 마스터즈 콘서트 고려대에서 무엇보다 획기적인 음악회는 대외협력처에서 주관하는 크림슨 마스터즈 콘서트 이다. 국내 대학에서 유일하게 지속적인 수준 높은 공연 개최를 통하여 문화적인 면에서 고려 대의 대외적 이미지를 제고하고 특정액 기부로 후원하는 이들에게는 학교의 감사의 마음을 전 하며 교직원 재학생들에게 고급 예술문화를 향유하는 기회를 제공하여 글로벌 리더의 기본 덕 목인 문화적 소양을 기르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크림슨 마스터즈는 2005년 개교 100주년 기념행사에 즈음하여 기획한 특별음악회인데 국내 외의 저명한 연주가를 초청하여 순수 크래식 프로그램으로 진행하다가 2007년부터 운영계획 을 바꾸어 음악회의 지속적인 개최와 내실을 도모하여 공연 회수도 년 2회에서 4회로 확대하고 음악회의 성격도 새롭게 편성하여 홍보 성격을 지양하고 순수한 기부자 예우 목적을 명확히하 고 교직원 재학생들에게 보다 많은 참여를 유도하기 위하여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구성하여 순 수 크래식 음악만을 고집하지 않고 관현악 피아노 타악 성악 뮤지칼 재즈 국악 발레(Ballet) 등 고난도의 작품을 편곡하여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각종 악기의 배합을 통해 웅장 경쾌 감미로운 선율로 고품격의 프로그램으로 진행 되고 있다. 2003년부터 매년 크림슨 마스터즈 콘서트 시리즈(Crimson Masters Concert Series)를 개최하 여 오고 있는데 이 콘서트는 문화예술 기금을 재원으로 하여 2014년 8월까지 총 38회의 콘서트 를 진행하였다. 필자도 기부자의 한사람으로 매회 참석하였는데 특히 제37회 콘서트는 두 여자 교우(女子校友)의 활약에 감동하였다. 손미나의 사회로 라틴재즈 여행이라는 주제로 연주가 진행 되었는데 손미나(瑞語瑞文學科 92)는 한국 대표 방송사의 아나운서에서 여행작가로 변신하였으 며, 1부를 담당한 라틴재즈 피아니스트인 유리안(Yurian) 역시 고대 서어서문(瑞語瑞文)학과 출 신으로 라틴문화권의 언어와 스페인어와 문학을 전공하고 재즈 이론가인 이판근 교수와 재즈피 아니스트 곽유진 교수를 사사하여 재즈피아노와 라틴재즈를 공부하고 국내재즈 뮤지션들과 라틴 재즈밴드에서 오래 활동해온 국내정상의 재즈연주자로서 이루어진 라틴재즈밴드 카리브(Karibe) 의 리더로서 앨범도 내며 꾸준한 활동을 계속하여 왔다. 최근 라틴아메리카의 콜럼비아와 파나 마에 장기간 체류하며 현지 라틴뮤지션들과의 교류를 통해 더욱 성숙된 음악세계를 구축하고 귀 국 후 국내활동을 재개 하면서 이번 연주는 국내 정상의 라틴퍼커션 주자 조재범과 함께 피아노 & 퍼거션이라는 구성으로 연주하여 만장(滿場)의 청중들을 감동시켰다. 음악의 황무지 같은 고려 대를 졸업한 후 독학으로 라틴재즈계의 정상에 오를 수 있는 노력과 정열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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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림슨 마스터즈 콘서트에는 그동안 이무지치(I Musici), 빅토리아 뮬로바(Victoria Mullova), 에드워드 아우어(Egward Auer), 오라이언 스트링 콰르텟(Orion String Quartet), 조지 윈 스턴(George winston), 체코 브니푸에리 소년합창단(Boni pueri) 등 세계적인 외국연주가들은 물론 정명화 손열음 최희연 이경숙 이성주 최현수 나윤선 그리고 전재덕의 재즈하모니카 연주 등 국내외의 정상급 연주자들이 참여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의 수준급의 공연을 비롯하 여 우리나라 오케스트라의 정상급인 서울시립교향악단도 여러차례 참여하였다.
문화예술교우회 설립 1986년 서경석(65, 농)이 손숙(63, 史, 연극인)과 함께 설립을 시도 하였으나 여의치 않았다 (高藝 2, p, 16). 그 후 오랜 세월이 흘러 고려대학교 문화예술교우회를 계획하던 이문용(商, 55) 이 2012년 6월 10일 교우회(校友會) 사무실에서 문화예술교우회의 창립을 역설(필자도 참여)한 후 드디어 2013년 7월 30일 고려대학교 문화예술교우회를 창립하였다. (관악부 합창부 관현악 부 고전기타부 피아노부 서화회) 대표들이 참가하여 이문용이 운영하는 뮤직홀인 호연재(浩然 齋)에서 현판식을 가졌고, 2013년 9월에는 문화예술교우회 발대식이 호연재에서 거행되었으 며, 2013년 11월 10일 KBS 홀에서 미술부(美術部)의 전시회를 겸한 연주단의 연주회가 황선 숙(83 생) MBC 아나운서의 사회로 1, 2층이 만석(滿席)으로 박수와 환호(歡呼)로 성황리에 개 최 되었는데 아쉬운 점은 여러 음악단체들이 참가하여 나름대로의 실력을 충분히 발표하지 못 한 것이다. 그러나 이문용의 노력과 재력(財力)이 없었다면 성사(成事)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의 구상과 추진력으로 고려대학교 문화예술 교우회지인 高藝 창간호(2013, 11)에 이어 통권 2호(2014, 2) 3호(2014, 7)가 발행되어 문화예술에 관계하고 있는 교우들을 비롯하여 시민들 에게도 적지 않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고려대학교 문화예술교우회 제1회 문화예술제 운영위원 회장
이문용(55 상)
사무총장
김혜자(63 영)
공연팀
이승열(84 관악), 염선엽(83 합창), 김미경(83 고전키타)
최정선(92 관현악), 윤인권(93 피아노)
홍보편집팀 백미경(91 조형학), 김신화(87 합창), 이동현(01 피아노) 운영팀
황수경(84 관현악)
총감독
김윤성(78 관악)
8. 맺음말 고려대학교 취주악부는 창설이래 입학식 졸업식 등의 학교의전(儀典)과 개교기념행사인 석 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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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축전에 참가하였으며, 춘추(春秋) 연주회를 해를 거르지 않고 개최하는 한편 대외 각종 운동 경기 응원을 비롯하여 많은 활약을 하였으나 1980년대 후반 이후로는 전자기기(電子器機)의 동원으로 고연전의 응원은 불참하게 되었다. 이러한 굉음(轟音)의 전자기기 동원으로 운동경기 응원 불참은 오히려 화음(和音)의 연주회에 더욱 정진(精進)하게 되고, 한편 경제발전과 더불어 국민소득 향상으로 음악에 대한 이해와 참여도 높아져서 개인악기 지참도 그 수가 늘고 있음은 연주활동에 매우 고무적(鼓舞的)이라 할 수 있다. 취주악부 교우 중에는 음악을 전업으로 하는 교우도 많다. 55학번 이문용(상 55)은 대형 음 악전문홀을 경영하며 음악단체들을 적극 협조하고, 61학번 안영국(교육심리)은 부산 시립교향 악단 부지휘자, 65학번 이병호(사)는 수도방위사령부(首防司) 군악대장을 역임 후 전역하여 현 재도 음악단체에 활약하고 있다. 90학번 이혜선(自資大)은 미국에서 음악박사 학위를 받고 대 학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많은 졸업생들이 음악을 전업으로 하기도 하고 음악관계 조 직에 적극 참여하여 그들의 자질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돌이켜 보면 1900년대 초는 이씨조선왕조의 국운(國運)이 극도로 쇠퇴(衰退)하여 풍전등화 (風前燈火) 같은 시기였음에도, 1905년 교육구국(敎育救國)의 신념(信念)으로 보성전문을 개교하 였으나 5년 후인 1910년에는 일제(日帝)에 의한 강제 한일합방의 국치(國恥)를 당하고, 1919년 3.1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는 혼란(混亂) 스러운 시기임에도 다음해인 1920년에 보성 전문의 몇몇 뜻있는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연예부(硏藝部)가 생겼다함은 실로 경이(驚異)로운 사건(事件)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1950년의 6.25의 참변(慘變)을 겪으면서 사회 경제가 극도로 곤궁(困窮)하고, 서울 수복 후 학교 경영에 고난(苦難)이 많았을 시기인 1955년 고려대학교 취주악부가 중진(重鎭) 교수들이 주장하여 탄생된 것은 당시 고려대학교 선각(先覺)교수들의 식견(識見)을 존경(尊敬) 하여야 할 것이다. 음악 예술의 황무지 같던 고려대는 2003년 9월 한국예술종합학교와 학예술교류협정을 체 결한 것은 혁신적(革新的)인 사건 일 수 있고, 교우회 행사로 2003년부터 특정액 이상 기부 자들을 위한 크림슨 마스터즈 콘서트는 교직원 학생 시민들에 까지 지대한 호응을 얻고 환호 를 받고 있다. 치열한 입시경쟁(入試競爭)을 뚫고 입학한 건아(健兒)들이 음악을 비롯한 예술적 감각과는 거 리가 멀다고 여기던 향토색(鄕土色)이 짙은 고려대에서, 전공과목 이수(履修)에도 어려울 뿐 만 아니라 음악과 관계되는 학과나 그 유사(類似)학과도 없는데서, 학교출석 요일(曜日)이나 수강 시간이 맞지 않음에도 시간에 맞추어 合奏하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할 수 있고 또 이러기 를 반복하여 40여회의 연주회를 개최하며 오늘날 까지 지속되어 창립 60주년이 아닌 95주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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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이하니 참으로 감개무량(感慨無量)하다. 뿐만 아니라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 각계에서 중진으로 활약하고 있는 취주악부 출신 교우들 도 관악부 교우회를 조직하여 다망(多忙)한 시간을 쪼개어 후배들을 음양(陰陽)으로 도우며, 선 후배가 모여 열정적(熱情的)인 연습으로 합동연주회를 개최하고, 위튜티 앙상블을 창단하고 수 준 높은 연주회를 개최하여 청중(聽衆)들에게 잠시 둔화(鈍化)된 감정을 순화(純化)시켜 어지러 운 사회를 정화(淨化) 하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을 뿐 만 아니라 병원 환자들을 위한 봉사연주회 는 고려대의 이미지 개선에도 한 몫을 담당하고 있다. 끝으로 고려대 취주악부의 꾸준한 발전으로 경쾌(輕快)하고 웅장(雄壯)한 선율(旋律)과 감미 (甘味)로운 화음(和音)으로 본인의 취미생활을 윤택(潤澤)하게 함은 물론이려니와 고려대생들 의 정서배양(情緖培養)에도 큰 몫을 담당하여 이 나라 음악계에 신선한 자극이 되도록 염원(念 願)하는 바이다. 그동안 거쳐간 모든 부원들의 열정(熱情)과 노고(勞苦), 지휘를 맡아주신 여러 분들, 그리고 본고를 위해 자료를 제공하여 주신 여러분께도 감사하며 고려대학교 취주악부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祈願)한다. 2014. 12 三空書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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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신문에 담긴 고려대학교 관악부 활동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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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신문에 담긴 고려대학교 관악부의 모습4)
잔디밭의 향연 - 음악부의 포부
1947년 12월 23일 고대신문 3호
작년부터 많은 곤란과 싸워오던 음악부에서는 그동 안 그야말로 힘을 다하여 관악단과 합창단의 강력한 조 직을 짜고 착착 연습 중인데 이번 연극회와 합동하여 종 합 예술제를 기획하고 있었는데 사정에 의하여 다음 학 기로 미루는 한편 아지랑이 춤출 때가 돌아오면 잔디밭 에서 음악의 향연을 베풀 것이라고 한다.
고대신문 창간 1주년 기념 문화제(연극, 음악, 영화, 용, 시낭독 등) 1948년 11월 30일 고대신문 8호 <음악 - 우리의 기쁨 - 음악부> 금번 고대신문 창간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하여 열리는 문화제에 본 음악부에서도 출연하여 달라는 부탁을 받고 지도교수 이하 부 원 일동의 맹렬한 활동과 노력으로 해방 후 처음으로 음악회를 갖 게되어 한없는 기쁨과 감사를 금치 못하는 바이다. 본 음악부는 이러한 기쁨을 갖기 위하여 수년간 힘써 왔으나 말할 수 없는 여 러 가지 사정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던 것이다. 금번 문화제 는 문자 그대로 문화제라는 광범한 간판 밑에 열리게 되므로 음악 부에 배당된 무리한 주문엔 약간의 불만을 느끼게 되나 이것은 욕 심에서 오는 야심임을 자인하고 달게 받은 것이다. 이 모임을 내
4) 고대신문은 1986년 발행분까지 축약본이 제작되었는데 이를 바탕으로 정리한 것이며 이후 기록은 인터넷 고대 신 문에 담겨진 기록을 참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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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놓기까지에 애써주신 당국과 특히 신문부에 감사를 표하는 바이며 특히 주야로 걱정해 주시 며 친히 지도해 주신 음악부 지도책임자 오화섭 교수와 합창 지휘에 때를 잊으신 음악계 거성 이흥렬 선생님 두분께 진심으로 감사의 뜻을 올리는 바이다. 더욱이 음악부장 강창희 군의 맹 렬한 활동과 이봉순, 최대현, 김0군의 열정적인 노력과 만사에 어머니 역할을 하며 부원 전체 를 미묘하게 이끌고 나간 이윤근 군에게 특히 경의를 표하는 바이며, 앞으로도 여러 교우의 성 의있는 지도와 협력과 후원을 바라마지 않는다.
<문화의 탑> 음악부 소개
1952년 3월 11일 고대신문 16호
잔디밭의 향연으로 고대의 서정시적 존재가 된 음악부는 문화제에서 여타의 많은 찬조 하에 웅장한 합창을 보여주었 으며 피아니스트 백창규 군도 내보였으며, 관악과 합창에 정 진하고 있다. 그 외 음악 감상회도 정기적으로 가지고 있다.
고대 취주악대 조직 - 특기 소지자의 협조 요망
1955년 6월 6일 고대신문 73호
지난 2일 전하는 바에 의하면 오래전부터 현안 중에 있 던 취주악대를 조직할 것을 결정하고, 목하 악기 구입을 추진 중에 있다고 한다. 머지않은 장래에 조직될 동악 대는 우선 25인조 정도의 것으로서 차차 연습이 진행됨 에 따라 대규모의 취주악대로 육성 발전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방면에 소질과 특기를 가진 다수 학생들 의 참가를 고대하고 있는데 기재가 도착하는 대로 멤버 조직과 연습이 시작될 것이며 앞으로 대내외 중요 행사 시나 혹은 운동 경기 시합 응원 등에 있어서 동 악대가 담 당할 역할에 대해서 기대하는 바 적지 않은 만큼 학교 당 국의 적극적인 후원이 기대된다고 한다.
뺀드부에서 합숙 연습 개시
1955년 11월 14일 고대신문 89호
앞서 조직을 본 본교 뺀드부에서는 지난 10월 24일부터 본교 여학생 휴게실에서 합숙 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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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맹렬히 개시하고 있는데 예정 기간은 앞으로 약 1개월 간이라 한다. 그런데 현재 26인조로 구성된 동 밴드는 발족한 이래 여지껏 제반 준비 관계로 침묵을 지켜오던 바 금번 합숙 연습을 계기로 손색없는 밴드로서 면모를 갖추고자 부원 일동이 분발하고 있어 학교 당국은 물론 일반 학생들의 기대가 자못 큰바 있다 한다.
취주악부 음악회 개최 - 학생처 주최 서관 강당에서
1955년 11월 21일 고대신문 90호
이미 밝힌 바와 같이 그동안 맹렬한 합숙 연습 중에 있는 본교 취주악부에서는 오는 11월 22일 하오 2시부터 서관 계 단 강당에서 학생처 주최로 고대학도호국단과 고대신문사 후원하에 교내 음악회를 개최하리라 하는 바 다수 학생들의 참석을 요망한다고 한다. 그런데 금번 음악회의 지휘는 손 중문 선생이며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1부 1. 아리랑(행진곡)
2. 북과 나팔(행진곡)
3. 베스의 자랑(행진곡)
4. 숲속의 물방아
5. 기병과 拍車(행진곡)
6. 악대 전투(행진곡)
7. 천안 삼거리(민요)
8. 비엔나의 아침, 낮, 밤
2부 1. 합창
3부 swing 부 (찬조 출연)
2. 중창 3. 독창
황홀한 선율에 도취 - 취주악 연주회 성황
1955년 11월 28일 고대신문 91호
지난 22일 하오 2시 20분부터 본교 학생처 주최의 취주악대 연주회가 있어 대성황을 이루었 다 한다. 즉 그간 1개월여를 두고 맹렬한 합숙 훈련을 계속하여 오던 본교 취주악대에서는 그 발표회를 겸하여 금번 연주회를 계획하게 되었던 것인데 26명으로 구성된 동 악대는 손중문 선 생의 지휘에 의하여 정각이 되자 일제히 그 기량을 과시하면서 제1부인 천안 삼거리, 숲속의 물 방아 등 어느 전문 악단에도 미찌지 않는 훌륭한 연주를 들려 주었다. 제2부에서는 남녀 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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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으로 된 합창단이 출연하여 독창, 합창 등 다채로운 프로를 공개하였으며 특히 여학생들의 합창 중창은 청중의 대환영을 받았다. 제3부는 전 해군군악대 출신의 스윙밴드단이 찬조출연을 하였으며 제4부에 가서 다시 본교 악대의 아리랑 등의 행진곡 연주가 있어 다망한 학업에 피로 한 학생들의 신경을 풀어주고 선율이 풍기는 정서는 능히 호연지기를 기르는데 부족함이 없었 다 한다. 그런데 이날 출연한 합창대는 불과 4~5일 간의 연습 밖에 하지 못하였다는 것으로 그 전도가 심히 촉망되는 바이라 한다. 한편 학생처에서 이와 같은 행사를 주최한데 대하여 일반 학생들은 자못 감사해 마지않으며 취주악대의 금후의 발전에 대하여 기대되는바 크다고 한다.
취주악 단원 모집 - 학생처서 다수 응모 요망
1956년 4월 9일 고대신문 99호
학생처에서 알리는 바에 의하면 신년도 취주악단 단 원을 다음과 같이 모집하기로 되었는데 신입생이나 재 학생을 막론하고 다수 응모해 주길 바란다고 한다. 즉 모집 인원은 약간명이라고 하며 자격은 본교 재학생에 한하며 유경험자와 무경험자 모두 모집한다고 한다. 그 리고 지원 장소는 학생처이며 기일은 4월 15일 내에 지 원해 주길 바라고 있다. 그런데 동 취주악단은 작년에 신설된 이래 합숙 훈련을 거쳐 이미 공개 연주회를 가졌던 바 있으며 나날이 발전하여 교위 선양(校威宣揚)과 교내 정서 생활에 크게 공헌한 바 있었으며 자 매단체인 합창부와 더불어 그 활동이 지극히 기대되는 동시에 전기한 바와 같이 신규 단원이 모집되면 면모를 일신하여 새로운 발전을 가져올 것이 예상된다. 한편 금차 모집하는 신입 단 원 중 무 경험자는 별도로 기간을 할당하여 단시일 내에 숙달 할 수 있도록 속성 지도를 할 것 이라 한다.
선율로 상기된 6.25 - 본교 취주악단 연주회 호평
1956년 7월 2일 고대신문 111호
여섯번째 맞이하는 6.25 기념일인 지난 25일은 전국적으로 여러 가지 기념행사가 있었거니와 본교에서도 다채로운 프로 가 예정대로 행하여졌다. 그 중의 하나인 본 대학교 취주악단의 연주회는 합창부와 합동하여 시내 중앙고등학교 강당에서 연 2회의 공연을 가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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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는데 우중에도 불구하고 모여든 수많은 청중에게 다시 한번 6.25를 상기시키면서 절찬을 받 은바 있다. 즉 취주악대는 손중문 선생이, 합창부는 이흥렬 선생이 각각 지휘하는 이 공연은 이 날 하오 4시와 7시의 2번에 걸쳐 있었는데 이 자리에는 유 총장 부처를 비롯하여 김 대학원장, 이 학생처장 등의 본교 간부가 참석하였다. 1부 연주, 2부 합창, 3부 연주로 구성된 프로는 연 청중 수 3000여명을 완전히 황홀한 선율 속에 도취하게 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본 대 학 취주악대가 공개 연주를 하게 된 것은 이번이 2번째이다.
시내 고교 음악부장 좌담회 - 본교 합창부를 음악부로 개칭
1956년 10월 15일 고대신문 120호
본교 합창부에선 기구를 개편하여 동 명칭을 음악부로 개 칭하고 합창부, 레코드반, 피아노반,여성중창반을 새로이 두 었으며 정식 강사로서 1인의 지도자를 두기에 합의를 보았 다고 한다.
취주악부서 신입부원 모집
1957년 4월 15일 고대신문 136호
본 대학교 취주악부에서는 금년도 신입생 및 편입생 을 맞으면서 신입단원을 모집한다고 한다. 동 응모자격 은 유경험자 및 무경험자를 망라하여 본 대학교에 재학 중인 자에 한한다고 하며 특히 신입생과 편입생 중 다수 의 응모자가 있기를 바란다고 한다. 한편 원칙적인 응 모 신청 마감일은 지난 4월 8일까지였다.
“현악부 조직할 터” 이흥렬 강사 임명
1957년 4월 22일 고대신문 137호
이흥렬 교수는 금번에 본대학교 촉탁강사로 되었다 고 하는데 이로써 발전단계에 있는 음악부에 큰 도움 이 될 것이다. 그리고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음악부를 위한 계획은 무엇?’이냐 라는 기자 질문에 동 교수는 ‘현재 있는 합창 부와 취주악부를 확충 발전시킬 것은 물론 장차 현악부 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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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조직할 의도이며 학생들의 이에 대한 적극적인 협력을 바란다.’ 라는 요지의 답변을 하였다. 음악부 임원 개선 완료
1957년 5월 27일 고대신문 142호
이미 대부분의 자치단체에서는 각각 임원개선을 완료한 바 있는데 지난 17일에는 음악부에 서 다음과 같이 임원개선을 완료한 바 있으며, 특히 음악부에서는 매주 정기 행사를 시행하고 있다 하는데 많은 학생들의 참석을 바란다고 한다. 음악부 부장 : 박용관, 차장 김경진, 총무 홍영식 매주 행사 : 월·목요일 현악반, 관악반 / 화·금요일 합창반
악기 점검할터 ... 학생처로 지참요망
1957년 9월 16일 고대신문 151호
취주악부에서는 가을 시즌을 맞아 가진 행사에 대비하 기위해 근간 합숙을 하게 되리라 하는데 그것에 앞서 악 기의 정리를 위해 악기를 갖어간 학생의 조속한 연락이 있기를 바라고 있다. 혹시 고장이 없는 악기라도 일단 출 두하여 달라고 하는데 9월 20일까지 학생처로 연락하기 를 요망하고 있다.
취주악반 12일부터 합숙
1957년 10월 14일 고대신문 155호
학생처 당국에서 금번 알려진 바에 의하면 그동안 연습 이 중지되었던 본교 취주악반이 신학기부터 활발한 움직 임을 보이고 있는데 지난 12일부터는 드디어 합숙을 시작 하고 맹렬한 연습을 계속하고 있다 한다. 그런데 동취주악 반에서는 금번에 많은 신입 반원을 모집 중이라고 하는데 학생들의 많은 입반이 있기를 요망한다고 한다.
제3회 음악회 성황 - 김천애 여사 찬조출연
1957년 12월 16일 고대신문 163호
오랫동안 연습을 거듭해온 본 대학교 음악부에서는 지난 7, 8 양일간에 걸쳐 서관 대강당에 서 이흥렬 선생의 지휘하에 제3회 음악회를 개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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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하오 5시부터 제1회 연극공연이 끝난 후 민창기 군의 사회 로 시작된 동 음악회는 청중들의 절찬을 받았다. 합창과 독창을 비롯하여 피아노 독주, 경음악 등 다채로운 진 행으로 인기를 집중한 가운데 연이은 앵콜을 받았다. 익일인 8일에도 하오 4시부터 시작하였는데 7, 8일 2차 공연에 특별 프로로 본대학교 아마추어 성악계에 그 이름이 높이 알려진 고형주씨와 숙대 음악 담당 교수이며 소프라노 성악계에 일인자 인 김천애 여사가 각각 찬조 독창을 하여 청중의 인기를 독점한 가 운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본교 음악반 주관으로
1958년 5월 24일 고대신문 176호
매년 학생들의 흥미를 끌어오던 본 대학교 음악부의 합창발표 회와 뺀드 연주회가 환도이후 두번째로 오는 30일에 낮과 밤으 로 나누어 낮에는 본교 대강당에서, 밤에는 시내 KY뮤직홀에서 개최하리라 한다. 음악부에서는 동 발표회를 위하여 약 1개월전 부터 합숙을 하며 맹연습을 하고 있는데 합창부는 이흥렬 선생 님의 지휘로 매일 오후 4시부터 구내식당에서 연습하고 있다한 다. 그런데 동 부서에서는 부원이 되고저하는 학생을 약간 모집 한다고 한다.
선율과 화음의 향연 - 지난 30일 제4회 음악회 다채
1958년 6월 7일 고대신문 178호
기보한바와 같이 창립 53주년 기념 제4회 음악회는 지난 달 30일 하오 4시 본대학교 대강당에서 학생과장을 비롯한 여러 교직원과 빈틈없이 모인 학생으로 대성황을 이룬 가운 데 개최되었다. 이날 음악회는 예정했던 것과 달리 교내 공 연만 갖었었는데 이를 제1부, 제2부로 나누어 민창기군의 재 치있는 사회로 정각부터 시작하여 시종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런데 제1부는 이흥렬 선생의 지휘로 본대학교 합창단의 합창과 소프라노 독창, 남성 복4 중창, 테너 독창, 바이올린 독주, 크로모니카 독주, 피아노 독주와 음악부장 곽연군의 지휘로 JEAN SIBLINS 곡인 아름다운 합창 외 여러곡의 합창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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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흥렬 선생은 동 합창을 지휘한 곽군의 능숙 한 지휘에 대해 감탄하시며 본교에는 음악과도 없고 자 치활동으로 학생들이 스스로 뭉쳐서 이루어진 우리 음 악부에서 이러한 능숙한 지휘자가 나와 참으로 기뻐하 며 앞으로 곽군의 앞날이 촉망된다 라는 찬사를 보냈다. 다음으로 제2부 취주악 합주는 손중문 선생의 지휘로 제일먼저 K.L.King 곡인 서곡 I RON COUNT 외 여러 곡을 들려주어 관중들의 절찬을 받았다. 이리하여 약 2 시간에 걸친 이 음악회는 하오 6시 성대한 막을 내렸다.
제1회 경음악발표회 - 본교 취주악부 주최로
1959년 6월 20일 고대신문 213호
지난 5월에 창설을 본 정경대학 창립기념연주회를 가진 바 있는 본대학교 취주악부에서는 지난 15일 본대학교 강 당에서 수많은 학생들이 모인가운데 제1회 경음악발표회 를 개최하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연주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이흥렬교수의 인사가 있은 후 5시 10분부터 약 1시간에 걸처 심야의 브루스 16곡을 연주하여 시종일관 박수 갈채를 받아가면서 관중들을 웃 음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등 흥미진진한 발표를 하였다. 이날 발표한 학생은 8명인데 전부원은 35명이라 하며 앞으로 계속해서 2개월에 1회씩 발표회를 가지리라 한다.
본교 취주악부 - 대천서 하기 합숙훈련
1959년 8월 15일 고대신문 216호
금번 본 대학교 취주악부에서는 부원 상호간의 협동정신 앙양과 기술향상의 도모를 기하기 위해 지난 7월 25일부터 8월 2일까지 약 1주일간에 걸쳐 합숙 연습을 실시하였는데 다대한 성 과를 거두었다 한다. 이흥렬 선생의 지도를 받는 동 취주악부원들은 오전부터 12시까지 개인 연습, 오후 5시부터 7시까지를 합주시간으로 매일매일 열심히 연습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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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취주악부에서는 7월 31일 본사 주최 하에 발표회 겸 피서객 위안의 밤을 개최하여 피서 객에게 많은 흥취를 돋구어 주었을 뿐 아니라 대천애육원 원장인 전덕귀씨 작사 이흥렬 작곡인 바다를 이날 피서객에게 연주하여 많은 인기를 끌은바 있다.
졸업생 환송의 밤 - 연극·합창·취주의 향연 영광의 서곡이 되기를 몸은 가도 석탑의 정은 남는 것
1959년 12월 12일 고대신문 231호
여기 네 번 굴러간 년륜이 멎는 곳이 있다. 작열하는 정열과 고고한 대망을 품고 석탑의 문을 들어선지도 어제 같건만 막상 떠나야하 는 그들에게는 허다한 희비가 교차하리라. 그 러나 몸은 가도 석탑의 정은 남는 것- 지난 5일 본 대학교 학생위원회에서는 합창, 취주 악, 연극을 공연하여 졸업생 환송의 밤을 다채 롭게 베풀었다. 이날의 즐거움이 내일을 위한 졸업생 제형들의 영광의 서곡이 되기를 빈다. 이날 예정대로 하오 6시 신관 대강당에서 명 춘 졸업예정자를 중심으로 수많은 학생이 모 인가운데 호화를 극한 프로로 장식된 졸업생 환송의 밤은 그 막을 올렸다. 먼저 재학생을 대표하여 법과대학 학생위원장 염우정 군의 ‘석탑 의 그늘 밑에서 함께 내일을 구상하고 애기하던 형님들과 이별을 아끼는 마음에서 변변치 못하 나마 환송의 밤을 마련하여 떠나는 형님들과의 정을 나누고저 하니 끝까지 이 밤을 즐겨 주기바 란다’는 송사와 전 법과대학 학생위원장 김양현 군의 ‘우리를 위해 이와 같은 즐거운 모임을 마 련해준 재학생들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는 바이며 한편 막상 석탑을 등진다고 생각하니 자책과 석정이 앞선다. 여러분 부디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 고대의 전통을 더 한층 빛내주기 바란다.’는 내용의 답사가 있은 후 곧이어 이날의 제1부 프로인 노래의 향연이 이흥렬 선생의 지휘로 합창 부 전원의 노래가 있었으며 이중창, 4중창, 독창 등이 있었는데 특히 황양의 처절한 이별의 노 래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가일층 석별의 정을 만끽케 하였다. 혼성 4중창이 끝나자 곧 2부의 프로인 취주악으로 들어갔는데 각종의 악기로소 취주되는 이 음악은 만당의 관중을 열광케 하 였으며 더더욱이 우리나라 고유의 민요가 나오자 관중은 흥에겨워 몸을 흔들고 발장단까지 치 는 등 분위기는 최고조에 달하였으며 ‘심야의 브루스’의 조용하고 애잔한 멜로디는 깊어가는 밤 의 정적과 함께 장내를 감상과 침념으로 이끌었다. 취주악이 끝나자 마지막 제3부의 연극 프로 가 있었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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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연전 대비 응원지도위를 구성 - 체육위서 위원장에 선병기 교수
1967년 9월 23일 고대신문 480호
학교 당국에서는 대학 스포츠의 정화를 목표로한 응원지도위원회 를 지난 15일(금) 구성하였다. 선병기 교수를 위원장으로 한 응원지도위원회는 응원단 자체의 질 서를 바로잡고 고대다운 특징을 살리면서도 차원 높은 응원을 지도 할 것이다. 그런데 응원지도위원회는 지도부와 응원부로 나누고 지도부에서 는 교양지도, 기술지도 등을 실시한다. 응원지도위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선병기(위원장), 김해천 교수, 김치윤 학생과장, 곽병완 교우, 윤세영 교우 그런데 응원 연습은 25일(월) 하오 2시부터 3시간씩 28일(목)까지 4일간 대운동장에서 실시 한다. 체육교수실에서는 응원연습 출석이 제육시간 출석으로 대체된다고 밝혔다.
응원단 결단 - 단장에 오영석 군 선출
1968년 9월 9일 고대신문 510호
응원단 결단식이 지난 7일(토) 하오 2시 교수식당에 서 거행됐다. 이번 9월 27일(금) 28일(토) 양일간에 걸 쳐 개최되는 정기 고연전을 대비해서 응원단장, 조단 장, 기수부장, 밴드부장, 농악부장을 새로 선출했다. 새로 선출된 응원단 임원은 다음과 같다. 단장 : 오영석(경 3), 조단장 : 안광옥(토공 3), 황의철(사회 2), 기수부장 : 이석만(정 2) 밴드부장 : 안재명(물 3), 농악부장 : 조병수(임 4), 총무 : 이철후(경 3) 한편 응원단에서는 고연전에 직접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고자 학생들의 참신한 아이디어 도 모집하고 있다. 또한 이들은 이번 열리는 정기 고연전의 응원단을 이끌게 되는데 며칠간 소 정의 트레이닝을 받게된다. 또한 총 응원연습은 오는 23일(월) 하오 1시부터 3시간에 걸쳐 사 흘간 갖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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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밴드부실 18일 기공 - 6월 초에 완공 예정
1970년 5월 18일 고대신문 562호
밴드부(부장 서재하 토공 3)실이 18일 박물관 뒤편에서 기공될 예정이다. 건설과에서 알려진 바에 의하면 건평 10평의 블로크 건물로 6월 10일 경 에 완공될 것이라 한다. 한편 서 밴드부장은 ‘아무튼 부실이 마련된다하니 반갑다. 앞으로 단시일 내에 부실의 시설이 보완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고연전 대비 밴드부 맹연습중
1970년 9월 21일 고대신문 573호
밴드부(주장 서재하 토공 3)는 지난 10일부터 박 물관 뒤 음악실에서 고연전에 대비해서 합주연습을 갖고 있다. 매년 고연전의 숨은 리더로서 활약해온 밴드부의 활동에 대해 서부장은 ‘하루 평균 2곡 정도를 연습 중 인데 고연전 당일까지 40여곡을 소화할 예정’이라고 밴드부의 앞으로 계획도 아울러 얘기했다.
우울했던 캠퍼스 축전으로 활기찾아 제10회 석탑축전 행사 일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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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5월 4일 고대신문 595호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밴드퍼레이드
1971년 5월 11일 고대신문 596호
개교기념식이 끝난 본관 앞에서는 12시부터 밴드 퍼레이드가 벌어졌다. 응원가에 맞추어 V자를 그 리며 입장한 본교 24인조 밴드부는 이재봉(경제 4) 군의 지휘 아래 약 20분에 걸쳐 8곡에 걸친 화려한 섹션 무용을 벌였다. <1972년에도 밴드 퍼레이드를 계획하여 지동직(64 경제) 선배의 지휘로 개교기념식 후 진행 하였으며 5월 5일 총학에서는 이후의 석탑축전 관련 모든 행사를 중단하였다.>
전국대학문화예술축전서 연극 문예부문 우수상
1971년 10월 5일 고대신문 610호
지난 9월 30일(목) 오전 10시 시민회관에서 있은 제2회 전국대학문화예술 축전 종합 시상식에서 본 교는 현상문예작품분문과 연극부문에서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맹 회장상, 음악경연부문에서 대한출판문화협회장상을 수상하는 등 좋은 성적을 나타냈다. 42개 대학이 참가 총응모수 231편의 현상 문예작품 부문과 16개 대학 18개 단체가 경연한 연극경연부문에서 본교는 우수상을 획득하였으며 부문별 우수상외에도 문예작품 단편부문에 서 송화순, 음악경연부문에서 이성규외 25명이 우수상을 수상하고 심현우 작 ‘위대한 훈장’으 로 참가한 극회(김우광 외 20명)이 연극 부문에서 은상을 획득하는 등 개인별 우수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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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교 68주년 석탑 축전 개막 - 3일부터 사흘간, 5일 오전 10시 1973년 5월 1일 고대신문 657호 기념식 거행 <5월 3일 대강당 오후 6시 밴드부 음악회 개최> 석탑 축전이 폐막한 후 1973년 5월 15일자 고대신문 658호에는 국문과 홍일식 교수의 축전 총평이 실렸다. 5월 3일 오후에 진행된 음악의 밤 관련하여 ‘대체로 음악프로 그 자체로서는 그런대로 성공한 셈이다. 그러 나 이것도 청중과의 호흡이 맞지 않을 때 온전한 성공이 라고 할 수 없다. 앞으로 동네 꼬마들과 하숙집 아주머 니들에게는 옥외 행사에만 초대하도록 철저히 규제해야 하겠다’ 라고 하였다.
총 48개 서클 인가 - 계속활동 38개, 신규 10개 등
1973년 5월 15일 고대신문 658호
학생처에서는 지난 3월 31일자로 접수 마감되었던 73학년도 신규 및 계속 활동 등록을 한 52개 서클 중 지도교수 회의와 학 생처의 최종 심사를 거친 총 48개(계속 38개, 신규 10개) 서클 을 인가, 지난 8일(화) 그 명단을 발표하였다. 당초 계속활동 등록을 했던 써클은 41개였으나 향영회, 원미 회, 고대영어회화 연구회가 한 과에 국한된 것이라고 해서 인 가가 나지않았고 석음회는 밴드부로 소속되어 결국 48개 써클 이 활동을 계속하게된 것이다. <이하 생략>
정기고연전 대비 대응원단 정비 완료 24일부터 단대별 응원연습 - 응원발표회 2천여명만 참석
1973년 9월 25일 고대신문 670호
성동원두에서 푸른 가을하늘 아래 원색의 화려한 팡파레를 울릴 정기고연전이 이제 9일 앞으 로 다가와 교정에는 응원발표회, 현수막, 애드벌룬 등으로 고연전 필승무드는 한결 열기를 띄 도 있다. 젊음의 힘과 기량의 총화로 슬기를 다듬는 고연전은 사학의 쌍벽인 양교가 전통과 명 예를 걸고 불꽃튀기는 열전을 벌이는데 금면에도 필승을 다짐하는 5개부는 이미 합숙 훈련에 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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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갔고 응원단 역시 22일의 응원 발표회를 절정으로 새 로운 응원 아이디어 개발 등 정비 작업에 착수, 제나름대로 의 패기를 펼치기에 만반의 준비태세를 갖추고 농악부, 밴 드부, 기수부 응원단 3개부는 맹 훈련중이다. ◆ 밴드부 밴드부는 지난 9월 13일부터 본격적인 3단계 훈련을 실 시, 부원을 두배로 대폭 증강함은 물론 종전의 고정 레파토 리를 대부분 수정하여 50여곡의 신곡 선정과 아울러 지난 8일까지 악보 구입 및 연습과 악기 보충, 수리를 모두 마쳤 다. 또한 지난 주까지 하루 평균 4시간의 강행군을 통해 기 본적인 연습을 끝낸 밴드부는 이달 말까지 총연습을 마칠 예정이다. 1973년 10월 9일 고대신문 672호에는 응원전에서도 이 겼다. 새 면모 보여준 밴드부라는 기사제목으로 응원 관련 기사가 실렸다.
5월 4일 16시 30분 대강당에서 취주악 발표회(밴드부)
1974년 5월 7일 고대신문 690호
5월 7일 고대신문 691호에는 석탑 축전 하이라이트 사진 모음으 로 취주악 연주회 모습이 실렸다.
정기고연전 응원 준비 박차 - 응원부 연습일정 발표
1974년 9월 3일 고대신문 699호
「포효와 웅비의 대회전」 - 성동 원두를 지성과 정열의 화려한 원색으로 물들인 정기고연전 의 서장의 막은 이미 열렸다. 대회일이 25일 가량 남은 현재 5개부는 필승의 신념을 가지고 전 력 보강 및 확충에 전념하고 있다. 응원 관계 부서에서도 제6종목인 응원전에서 압승한 전통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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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승을 위해 본교 응원의 주류인 「동양미와 서양미의 멋진 조 화」를 주도할 다양한 응원 준비에 피치를 올리고 있다. 오는 27일, 28일 양일간 개최되는 정기 고연전에 대비하여 총학생회 응원부 등 관계 임원들은 지난달 28일(수) 공개 좌 담회를 갖고 과거 응원에 대한 검토 및 평가와 아울러 금번 고연전에 관한 응원 점검 및 연습 상황을 확인했다. 이날 응 원 각 부서간의 계획은 다음과 같다. ◆ 밴드부 본교가 당번교가 됨에 따라 밴드부에서는 새로운 면모를 과시할 준비에 전력하고 있다. 60인 조의 밴드부는 이미 악보 준비 보완을 마치고 레파토리 개발에 전력
고대여! 승리의 스크럼을 - 정기고연전 완승 향한 5개부, 응원단 마지막 점검
1974년 9월 17일 고대신문 701호
◆ 밴드부 밴드부(부장 차근식 화공 3)에서는 본교가 당번교가 됨 에 따라 새로운 이미지를 심어주기위한 마지막 연습에 임 하고 있다. 50여명의 부원이 하오5시부터 9시 30분까지 대강당에 서 맹트레이닝을 하고 있는 밴드부는 현재 유행되고 있는 노래는 물론 특히 「몽금포 타령」, 「뱃노래」, 「박연폭포 접속 곡」 등 15곡의 신곡에 한층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총연습 전까지 40여곡의 레파토리의 완전 확보를 목표하고 있는 동부는 밴드에서의 우 세를 견지할 차비를 차리고 있어 기대되고 있다.
장관이룬 응원 공방 - 「뱃노래」힘찬 율동, 장내 압도
1974년 10월 2일 고대신문 703호
농악대, 기수부, 밴드부 맹활약 이라는 제목으로 밴드부의 노력을 치하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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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클 순례 ① - 『예술 고대』의 기수들 중에서 발췌함
1975년 3월 11일 고대신문 714호
각종 고연전때이면 그 진가가 유 감없이 발휘되는 「밴드부」는 55년에 창립돼 올해로 20주년을 맞는다. 3 월에 대연주회와 5월에 정기연주회 (앙상블 중심)를 갖는데 정서 함양 과 음악 감상 실력에 큰 도움이 된다 한다. 정기 고연전 때의 합숙이 가장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며, 초보자도 부담없이 참가를 할 수 있도록 철저하게 지도하며 악기가 완전히 구비되어 있는 것이 자랑거리다. 오윤택 회장(기계 3)은 흔히 밴드라면 남자들만의 것인양 오해하는 사람이 많 다며 여학생들의 참여를 당부했다.
학도호국단 간부 전면 개편 1975년 7월 15일 고대신문 724호 - 총학생 제대장에 김두환(국 3)군, 각부서 임원도 구성 완료 7월 12일 학도호국단 간부진이 개편되면서 취주악부 김두환 선 배가 사단장으로 임명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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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년 정기고연전 중지 양교 총장 합의, 12일 공동성명서 발표
1975년 9월 16일 고대신문 728호
「피치못할 사정」으로 「금년에 한해」 정기전의 창조적 발전 전기 마련
10월 20일 16시 30분 대강당에서 취주악 연주회(밴드부)
밴드부 - 19일 음악감상회
1975년 10월 07일 고대신문 731호, 10월 14일 고대신문 732호
1976년 3월 16일 고대신문 742호
밴드부(회장 장명호 산경 3)에서는 오는 19일 하오 4시부터 강당 뒤 밴드 부실에서 음악감상회를 갖는다. 연주곡목은 ‘브람스 교향곡 4번’, ‘베토벤 교 향곡’, ‘웰링턴 승리’이며, 해설은 연건희, 이헌식군이 각각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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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일부터 펼쳐지는 석탑 축전 행사 일정 발표 5월 3일 18:00 대강당에서 취주악 연주회(취주악부) 개최
극예술연구회 40회 정기공연 성황 - 맥베드 공연
1976년 4월 20일 고대신문 747호
1976년 6월 1일 고대신문 752호
지난 27일부터 29일까지 3일동안 대강당에서 막을 올 렸던 맥베드는 선후배 합동공연으로 스탭진 등 130여명 이 참가해서 취주악부, 펜싱부, 검도부 및 숙대 기악과의 적극적인 찬조가 이번 공연을 더옥 알차게 했으며, 대학 문화 행사의 인식 부족과 적극적인 지원이 아쉬운 가운 데 열과 성의로서만 무대에 올린 연극이 무더위 속에서 도 성공을 거둔것은 실로 놀라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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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안암의 대지 위를 승리의 물결로! 고연전 열흘 앞으로 박두 - 필승 무드 고조, 전열 정비에 막바지 박차
1976년 9월 28일 고대신문 761호
◆ 밴드부 밴드부(부장 홍준익 기계 3)에서는 50여명의 부원이 하 오 5시부터 9시까지 하루 4시간의 맹트레이닝을 하고있다. 기존 곡외에도 다양한 편곡으로 「아이야 바다로 가자」 「즐거운 아리랑」, 「시골길」 등 30여곡의 신곡을 준비하고 있으며, 연대 밴드부를 압도할 새로 운 레파토리도 갖추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16회 축전 53개 행사 확정 발표 학도호국단본부 주관으로 석탑음악제가 5월 4일 18:00 대강당에서 열린다.
1977년 4월 19일 고대신문 777호
석탑축전 막내려 - 3개 행사 유산
1977년 5월 10일 고대신문 778호
개교 72주년 제16회 석탑 축전이 지난 2일(월) 저녁의 전야제를 필두로 3일간에 걸쳐 개교기 념식, 형사모의재판, 올날 축전, 석탑 향연 등 50개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졌다. 석탑음악제 취주악부, 현악부, 고전기타부, 합창부의 4개 음악 서클이 합동한 이번 음악제는 성황을 이룬 가운데 끝 났다. 종래 각 서클 단위로 진행하던 행사를 한데 묶 은 금번 행사는 합창부의 합창에 이어 기타 듀엣, 현 악 합주, 기타 합주, 관악 합주 등 순서로 진행되었다.
취주악 연주회
1977년 6월 14일 고대신문 783호
본교 취주악부(부장 김현수 토목 3)에서는 내일 하오 류관순 기념관에서 제11회 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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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회를 갖는다. 동부에서는 지난 3일 제1회 전국 대학생 음악경연대회에서 3위로 입 상 우량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지난 9일부터 이번 연주회에 대비 합숙 에 들어갔다. 연주곡은 R. Jager의 Sinfonia Nobilisima for Band 등 10곡
정기 고연전 앞으로 열흘 - 5개부, 응원단, 밴드부, 농악대 최종 합숙 훈련 돌입
1977년 9월 13일 고대신문 788호
푸른 가을 하늘 아래 원색의 화려한 팡파레를 울릴 정기 고연전이 이제 열흘 앞으로 다가와 교정에서는 응원구호 현상공모, 현수막, 애드벌룬 등으로 고연전 필승 무드는 한결 열기를 띠 게된다. 젊음의 힘과 기량의 총화로 슬기를 다듬는 고연전은 사학의 쌍벽인 양교가 전통과 명 예를 걸고 불꽃튀기는 열전늘 벌이는데, 금년에도 필승을 다짐하는 5개부는 이미 최종 합숙훈 련에 들어갔다. 또 응원단, 밴드부, 농악대는 하계방학에는 물론 2학기 개강이후 합숙을 통한 맹훈련 중에 있다.
포효하는 지성 솟구치는 젊음, 울려퍼지는 승리의 팡파레 - 석탑의 의지로 승리의 포옹을, 친선의 광장에서 우정어린 악수를
1977년 9월 20일 고대신문 789호
젊음의 힘과 총화로 슬기를 다듬는 고연전에서의 필승을 위해 이미 5개부는 충천된 사기로 결전장만 기다리고 있는가 하면 응원단, 농악대, 기수부, 밴드부에서도 제 나름대로의 패기를 펼칠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맹훈련 중이다. ◆ 밴드부 종전의 고정된 레파토리에서 탈피 50여곡의 신곡을 선정한 밴드부에 서는 서너시간씩의 강행군을 통해 지난주 연습을 마무리 지었다.
제17회 석탑 축전 52개 행사 확정발표
1978년 4월 18일 고대신문 806호
5월 4일 석탑음악제 16:00~18:00 대강당(학도호국단 문예부 주최): 장소를 배정받지 못하여 유산되었다가 6월 13일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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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써클 53개 발표
1978년 5월 2일 고대신문 807호
호국단 문예부 - 취주악부(이종희 화공 3)
전국 대학생 음악 경연 - 23·24일, 합창, 고전기타, 취주악부 참가
1978년 5월 23일 고대신문 810호
제2회 전국남녀대 학생 음악 경연대회 가 23, 24일 양일에 걸쳐 유관순 기념회 관에서 연세대의 주최로 개최되는데 본교에서는 합창부, 고전기타부, 취주악부가 참가하게 된다. 합창부(부장 김근선 물리 3)는 23일 12번째로 출연하게되는데 약 80여명이 참가할 이번 대회 에는 지정곡으로 「신의 영광」 자유곡으로는 「오우가」, 「사도신경」을 합창할 예정이다. 취주악부(부장 이종희 화공 3)는 24일 약 35명이 참가하게되는데 Carnival of roses, Hongroise 등 2곡이 연주될 예정이다. 고전기타부(부장 강정연 금속 3)는 24일 지휘자 및 22명이 참가하여 바하의 「가보트 부레」, 「소곡」 (민요)를 연주할 예정이다.
제2회 전국 남녀 대학생 음악 경연대회에서 취주악, 합창부 우량상 수상
1978년 5월 30일 고대신문 811호
제2회 전국 남녀대학생 음악경연대회에서 합창부(부장 김근선 물리 3), 고전기타부(부장 강정연 금속 3), 취주악 부(부장 이종희 화공 3)가 참가하여 각각 우량상(3등), 장려 상, 우량상(3등)을 차지했다. 이번 대회에서 각 부는 연습의 부족과 기재 및 예산의 부 족으로 작년과 동일한 성적을 거두는데 그쳤다. 특히 합 창부는 한번도 조율된 피아노로 연습하지 못했고, 취주악 부는 악기부족으로 악기를 빌려오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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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취주악부 내일 6시 제12회 정기 연주회
1978년 5월 30일 고대신문 811호
취주악부(부장 이종희 화공 3)에서는 제12회 정기연주회를 내일 하오 6시 대강당에서 가질 예정이다. 이번 연주회에는 1부 클래식, 2부 경음악으로 나누어, 1부에는 「Carnival of roses」, 「1812 Overture」를 비롯한 6곡을 연주하며, 2부에는 Korea Stones와 협연하여 「La La La」를 비롯한 6곡을 연주할 예정이다.
오늘 석탑음악제 열려 - 4개부 참가, 오후 7시 대강당서
1978년 6월 13일 고대신문 813호
석탑음악제가 오늘 하오 7시 대강당에서 열린다. 작년에 이어 두번째가 되는 이번 음악제에는 합창부(부장 김근선 물리 3), 취주악부(부장 이종희 화공 3), 현악부(부장 이영재 임학 3), 고전기타 부(부장 강정연 금속 3)가 참가하여 그동안 닦아논 기량을 발표한다. 4개부는 각각 앙상블을 가지며 남성 4중창, 현악 4중주, 기타 솔로, 기 타 듀엣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펼치게 되며 「관중과 함께」 라는 순서도 마련되어 있다. 이번 음악제는 작년과 같이 축제 기간 중 열릴 예정이었으니 장소를 배정받지 못하여 유산되었다가 이번에 개최하게 된 것이다.
장안에 물결친 함성 - 78 정기고연전 2승 3패 응원전 - 동질화 아쉬움 남겨
1978년 10월 4일 고대신문 820호
고연전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응원전은 경기 시작 전부터 프 레 고연전을 방불케하는 불을 뿜었다. (중략) 본교의 커다란 자랑인 통일북이 그라운드에 퍼질 때 그 소리는 백두산 정 상에 까지 다다를 듯한 웅장함 이었고 밴드부의 밀짚모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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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발한 착상이었으며, 꽃술대신 등장한 깃발도 그나름대로의 멋을 보여주었다. (하략)
취주악부 연주회
1978년 11월 14일 고대신문 825호
본교 취주악부에서는 오는 15일(수) 오후 5시 30분 부터 제13회 가을 연주회를 갖는다. 이찬용의 지휘로 Finlandia, My way 등 10여곡을 2부에 걸쳐 공연한다 고 한다.
석탑음악제 - 4개부 연합 음악제
1979년 5월 8일 고대신문 837호
개교 74주년 기념 석탑음악제가 3일(목) 2시부터 2시간동안 대 강당에서 열렸다. 고전기타부, 합창부, 현악부, 취주악부 등 4개부의 연합음악제 인 이번 음악제에서는 합창, 기타, 듀엣, 현악 4중주, 현악합주, 기타트리오, 기타솔로, 취주악<경음악>, 합동연주, 응원가, 교가 의 순서로 진행되었는데 클래식에 관심있는 본교생과 음악에 관 심있는 많은 타교생들이 참석, 대강당을 꽉 메웠다.
취주악부 연주회 - 오는 21일 대강당서
1979년 9월 18일 고대신문 848호
취주악부(부장 인기환 물리 3)에서는 오는 21일(금) 오후 6시 30분에 본교 대강당에서 제14회 정기연주회를 갖는다. 이날 연주회는 1부와 2부로 나누어서 하는데 1부에서는 「방아타령」을 비롯한 관악곡들을 연주하며 2부에서는 유행 음악 등도 연주할 예정이다.
1980년 5월 7일 고대신문 865호
1980년 5월 4일 16:00 대강당에서 진행될 예정이던 석탑 음악제는 5월 2일 전야제 행사에서 시작된 철야 농성 이후 5월 3일 학생 총회에서 축제 포기를 결정하여 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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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말많던 축제 오늘 막내려 - 개교 76주년 기념 제20회 석탑 축전
1981년 5월 5일 고대신문 885호
5월 3일 - 대강당에선 공동 주관의 음악제가 열렸다.
푸짐한 행사, 빈약한 시설
1981년 11월 3일 고대신문 901호
지난 10월 31일의 고전기타부의 정기공연을 필두로 하여 시작된 문화행사는 극예술연구회 의 오이디푸스왕(2일~8일), 합창부(26일), 실내악부(12월 예정) 등의 순서로 거행된다. 그러나 행사의 좋은 결과를 얻기위한 그동안의 연습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을 보여 학교측과 학생들의 관심, 개선안 등이 절실한 실정이다. ◆ 실내악부 지난 24일에 있었던 대학생 현악부문에서 장려상을 탄 본교 실내악부는 공연을 한달 남짓 남 겨놓고 마지막 총연습에 들어갔다. 현재 실내악부원은 총 40명 정도이고 공연일에는 부원이외 에 취주악부, 그밖의 학부생들을 동원 53명의 단원으로 구성될 예정인데 (하략) 실내악부는 12월 19일(토) 유관순 기념관에서 제10회 정기연주회를 개최하려 했으나 유산 되었고, 1982년 3월 19일(금) 오후 7시 류관순 기념관에서 제10회 정기연주회를 가졌다. (고대 신문 909호 참조)
석탑음악제 개최 - 21일 오후 6시 대강당
1982년 5월 18일 고대신문 914호
제5회 석탑 음악제가 오는 21일(금) 오후 6시에 대강당에서 열린다. 이번 음악제는 합창부, 실 내악부, 고전기타부가 공동으로 현악 합주, 기타연주, 합창 등을 약 2시간 동안 마련할 예정이다. 한편 매년 참가해오던 취주악부는 이번 음악제에 불참할 것으로 알려졌다.
취주악부 연주회 - 9월 10일, 강당서
1982년 8월 24일 고대신문 920호
취주악부(부장 이인호 전기 3)의 제15회 정기연주회가 9월 10일(금) 6시 30분 본교 강당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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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이번 연주회는 특히 동문들이 처음으로 참여하는 합동연주회 의 성격을 띠고 있는데 연주될 곡목은 시벨리우스의 「핀란디아」 차이코프스키의 「노예의 행진」 (Slave March를 잘못 번역함) 등 총 10곡이다.
개교 78주년 21회 석탑 축전 막올라
1983년 5월 2일 고대신문 939호
취주악부는 합창부, 실내악부, 고전기타부 등과 함께 5월 3일 17:00~20:00에 열린 석탑 음악 제에 참가하였다.
정기전 개최 취소 - 연속되는 파문
1983년 9월 12일 고대신문 950호
7일 오후 1시 양교 총장 공동성명서 발표
석탑 가을 수놓을 연이은 연주회 - 취주악부, 관현악단 음악회 1983년 9월 26일 고대신문 952호 29·30일 각각 대강당, 류관순 기념관서 각종 공연 행사로 풍성했던 지난 주에 이어 이 번에도 여러 가지 음악 연주회 준비로 각 음악 써 클이 분주하다. 먼저 포문을 열 곳이 취주악부(부장 이병학 사 학3) - 오는 29일(목) 오후 6시 대강당에서 열 리게 될 제16회 정기연주회 겸 제2회 선후배 합 동연주회를 위해 연습에 여념이 없다. 1부와 2부로 나뉘어 진행될 이번 연주회의 주요 곡목은 김희조의 March, Nostalgia Stonehill, 차이코프 스키의 Caprice Italian 등 9곡. 지휘에는 취주악 부 동문인 74학번 연건희씨가 수고한다. “참으로 어려웠습니다. 악기도 모자라고 또 남 아있는 것조차 낡은데다 고연전이 취소되는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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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재정 지원조차 없었으니 말입니다”라고 어려움을 토로하는 부장 이병학군의 말처럼 음악 써 클들이 안고 있는 당면 문제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취주악부는 응원을 할 때마다 반 주를 도맡아야하는 입장 때문에 갖는 어려움도 많다. 선후배 합동연주회의 특색은 이름처럼 선후배의 우의를 돈독히 다지는데 있다고 하는데 취 주악부는 이번 공연을 위해 지난 7월 25일부터 8월 3일까지 강원도 주문진에서 합숙 훈련을 가 지는 등 여름부터 오랜 연습시간을 가졌다. (중략) 취주악부, 관현악단이 연습시에 공통적으로 느꼈던 어려움은 역시 장소 문제. 교내의 조용하 지 못한 분위기 때문에 강당, 강의실, 휴게실을 닥치는대로 얻어(?) 썼다고 한다. 우리는 흔히 ‘고대’하면 ‘투박하고 우직한 대학’이라고 일컫는 것을 많이 들어왔다. 예술대학이 없는 우리 입장을 놓고 볼때 고대의 색다른 이미지 창조에는 이러한 음악 써클들의 역할이 자못 지대하다. 모쪼록 결실이 되어야함이 당연한 계절 가을에 단 몇 시간을 위해 몇 개월을 인내한 이들은 학생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하고 있다.
신입생 환영음악회 - 관악합주단서
1984년 4월 2일 고대신문 966호
관악합주단(회장 박석준 토목 3)은 오는 4일(목) 오후 7시 대강당에서 정기연주회 겸 84 신 입생 환영음악회를 갖는다. 이번 음악회는 대학가에서는 처음으로 관악 악기와 전자 파트가 함께 등장, 재즈곡을 연주 하게 된다. 이날 입장료는 무료이다.
석탑대동제 개막 2일~5일, 안암위령제 등 열려
1984년 4월 30일 고대신문 969호
개교79주년 기념 「석탑대동제」가 오는 2일(수) 전야제를 시작으로 3일(목)부터 5일(토)까지 석탑대동제 준비위원회주최로 개최된다. 이번 축전은 까지의 무방향성을 지양, 체계있는 내용으로 학생들에게 정확한 현실 인식의 계기를 마련해 줄 수 있도록 「석탑축전」을 「석탑대동제」라는 이름으로 바꿔 진행되는데 3일은 민족, 4일은 민주, 5일은 민중이라는 주제 아래 모든 행사가 진행된다. (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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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대준위」와 응원단 사이에서 티켓 판매, 가수 초청 문제를 놓고 의견의 차이를 보여왔던 「입실렌티」는 응원단 측의 타협점 수락으로 계획이 수정된 가운데 열리게 되었다. 이번 행사에 서 문제가 된 것 중 티켓 판매는 하지 않기로 했으며 초청 가수 문제는 본교 합창부와 관악합주 단에서 협찬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했다. ※ 석탑 대동제 주요일정표에는 5월 3일 15:00~17:00 대강당에서 석탑음악제(합창부, 고 전기타부, 관현악단, 관악합주단), 19:00~21:00 대강당 뒤 돌벤취에서 관악합주단 선후배 간담회가 들어있다. 1984년 5월 7일 고대신문 970호에는 5월 3일 진행된 석탑음악제는 학생들의 호응이 좋아 성황을 이루었다고 하였다.
안암음악제 - 3개 음악써클 연합
1985년 5월 6일 고대신문 997호
안암음악제가 5월 8일 오후 5시 30분 대강당에서 고전기타반, 합창부, 관악합주단 공동 주 최로 열린다. 이번 안암음악제는 축제 기간 중 열리기로 했던 석탑음악제가 총학생회의 지원금 문제로 무 산되어 고전기타반 등 3개 써클이 독자적으로 개최하는 것이다. 이날 공연의 연주 곡목은 고전기타반의 부란덴부르크 협주곡 2번 1, 3학장과 합창부의 대학 축전서곡 중 가우데아무스 이지투스, 관악합주단의 베니스의 밤 등이다.
예술써클 탐방 - 관악합주단을 찾아 경음악 위주의 인식 벗고 정통 음악의 위치 확보 노력
1985년 9월 30일 고대신문 1005호
1920년 보전 당시, 써클 중에서 가장 먼저 창단된 예술써클 관악합주단(단장 권재현, 기계 83) 창단 당시에는 순수 음악을 연주하는 「풍각쟁이」라는 순수 이름을 가졌었다. 1955년에 「취 주악부」로 승격, 그리고 작년부터 「관악합주단」이라는 명칭을 얻었다. 관악합주단 출신인 윤세영 교수(문리대)님의 지도하에 이루어지고 있는 관악합주단은 55년 이전의 선배들이 오랜 전통에 반하여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실정이다. 교우회를 통해서 선배 찾기 운동을 벌이면서 정확히 파악된 선배는 70~80명 이지만 실질상으로는 이것의 몇 배는 넘을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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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는 신입생 환영연주회, 축제때에는 석탑음악제, 가을에 열리는 정기연주회는 올해로 19 번째를 맞이했다. 선후배 합동 연주회도 겸한 올 정기연주회는 바그너작의 「탄호이저 마치」, 차 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 등의 정통 클래식이 연주되었다. 관악기가 갖는 특수성 즉 현악기에 비해서 정밀한 음과 섬세한 음을 못낸다는 점 때문에 관 악기는 「빵」하는 소리와 함께 화음을 만드는 화음 위주의 음악을 창조한다. 그러나 화음 위주의 연주를 하는데 있어서 악보 구입이 상당히 어렵다고. 현재 50여명이 활동하고 잇는 관악합주단은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 “졸정제 이후 입학한 신입생들은 초보자가 대부분입니다. 관악기가 좋아 들어온 이들 초보단원의 Lesson 문제가 어 렵습니다. 가벼운 응원행사 참여도 못하고 있으니까”라면서 단원들의 레슨은 자체부담으로 타 학교 음대생으로부터 받고있지만, 다른 음대생들은 레슨을 해주면서 아마추어들이 열심히 악 기를 다루는 모습을 보고서 부러워들 한다고 단장은 자랑한다. 또 하나의 문제는 악기문제다. 오래 사용할수록 좋은 악기로 취급되는 현악기와는 달리 관악 기는 오래 사용하면 부식이되기 때문에 다른 악기에 비해 많은 악기의 보급을 요구한다. 학교 에서는 응원행사를 도와주면 격년제로 약간의 악기를 지원해주고 있지만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고 한다. 설상가상으로 축제 등 악기 관리가 소홀해지는 시기가 되면 관악합주단실에 도선생이 찾아와 소리없이 사라지고 있다면서 우리 고대생의 소행은 아닐꺼란다. 관악합주단은 졸업생 환송시에 선배에게 후배들이 신발속에 침을 비롯해서 모든 것을 드린 다. 축제 때에는 졸업한 선배들이 모두들 밴치에 모여서 가든파티(?)를 갖는 전통이 있다. 응원전에서 팡파레도 소홀히 할 수 없는 관악합주단은 “학우들의 인식이 응원전만을 보고 경 음악 위주의 써클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통클래식과 세미클래식 등 순수 브라스 음 악을 연주하면서 민요도 연주하고 있습니다”라고 고심했다. 응원전을 끝내고 나면 악기의 tone 이 달라져 다시 자기 tone을 찾으려면 3~4개월이 소요된다고 한다. 그렇지만 고대생의 사기를 위해서 응원전은 빠질 수 없다고. 관악합주단의 한 회원은 “현재 우리나라 대학 내의 브라스밴드는 많지 않습니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서는 우리학교와 성대가 있지만 우리 관악합주단은 그중에서도 가장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라면서 음악 활동의 새로운 위치를 확보하겠다고 관악합주단을 대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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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일(토) 3:00 석탑음악제에 합창부, 관현악단, 고전기타부와 함께 취주악부 참여
1986년 4월 28일 고대신문 1019호
취주악부 정기연주회 - 11일(목) 대강당
1986년 9월 8일 고대신문 1028호
취주악부(부장 이병학 사학 4)에서는 오는 11일(목) 오후 6시 30분부터 대강당에서 제21회 정기연주회를 가질 예정이다.
써클 단신 취주악부 신춘음악회 오는 20일(금) 오후 6시 30분 대강당 6-101
1987년 3월 16일 고대신문 1043호
이후 고대신문에서는 관악부를 비롯한 많은 써클들의 활동을 써클 단신이라는 제목 아래 간략하게 소개하는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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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1992년 정기고연전을 통하여 응원단에서 컴퓨터 음원을 사용하게 되면서 취주악부는 응원단과의 관계를 더 이상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컴퓨터 음악 사용 재고하길 - 학우들 의견의 정확한 반영 필요
1992년 9월 28일 고대신문 1160호
전자밴드결성과 관련한 응원단의 의견에 대해 취주악 부의 입장을 밝히고자한다. 첫째, 컴퓨터 음악에 대해선 제고를 해야 한다고 생각 한다. 물론 이는 전자악기 사용 자체에 대해 반대하는 것 은 아니다 취주악부에서도 제한된 음량에서 전자음악〈신 디사이저,전자기타)을 사용하여 왔다. 그러나 이번 응 원단에서 사용한 컴퓨터 음악의 제반 문제점들-학생들 의 율동과 감정에 맞추어 속도조절 기능이 제대로 이뤄 졌는가,교가까지 컴퓨터 음악에 맞추어 불러야 하는가 등등-과 함께 컴퓨터 음악이 디스켓에 녹음시킨 음악을 Computer와 Music Card를 사용, 번호를 누르면 음악이 나오고 이를 따라 부르는 수준이라면 이는 노래방의 음악처럼 죽은 음악일 수 밖에 없다. 앞으 로 응원단 자체 내에서 현재의 컴퓨터 음악을 점차 연대와 같은 형태로 바꾸어 나갈 계획을 가 지고 있다지만,당장 내년에 전자악기 위주의 그룹사운드-연대에 버금갈 만한-를 만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고 생각된다. 만약 2만 고대학우가 현재의 컴퓨터 음악 사용에 동 의한다면 모르되 그렇지 않다면 응원단은 일고의 가치도 없이 컴퓨터 음악을 폐지하고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컴퓨터 음악과 고연제 전반에 대한 고대학우들의 평가가 정기전이 끝난 지금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며 응원단은 앞으로 다시는 농구장에 서와 같은 사태가 발생치 않도록 책임져야 할 것이다. 솔직히 음대가 없는 본교 사정상 전반척 인 음악적 수준과 투자가 뒤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며, 특별히 고연제 음악에 대해 우리 취주악부가 가져왔던 고민을 앞으로는 응원단과 2만 고대학우 전체가 함께해야 할 것이다. 총학은 지난번 3회담(총학, 응원단, 취주악부)때 이야기가 나온 것과 같이 다각도의 설 문지 조사를 통하여 학우들의 의견을 정확히 반영하기 바란다. 둘째, 우리 취주악부에 대한 오해의 소지가 있어 잠시 밝힌다. 우리 취주악부는 응원단이 8 월에 공식적으로 제기한 고연제 음악의 문제점들에 대해 이미 인식함과 동시에 논의를 통해 그 해결 방안을 모색해왔다.(Sound 향상을 위한 전자 Part의 확대 강화와 엠프 제한 협정 등) 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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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취주악부가 갖는 문제점이 있음을 인식함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컴퓨터 음악의 사용은 더 큰 문제점이 있음을 다시 한번 밝힌다. 지금까지 고연제의 응원나팔소리를 만들어 내는 작 업이 취주악부에게 있어서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나 이제 자의든 타의든 더 이상 고연 제를 통한 응원나팔을 불지 않게 된 이상 우리는 관악합주단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고자 한다. 지금까지 부족하나마 취주악부의 응원나팔소리를 사랑해주신 학우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고려대학교 취주악부>
‘음악과 함께 한 축제의 밤’ 석탑예술제 23일 열려
2002년 5월 28일 고대신문 1429호
동아리연합회(회장=조기훈·공과 대 재료금속 99) 연행예술분과 주최 석탑예술제가 지난 23일(목) 인촌기 념관에서 열렸다. 연행예술분과에 소 속된 13개 동아리 중 6개가 참여한 이 번 예술제에서는 음악 관련 공연이 주 를 이뤘다. 첫 무대를 장식한 「TTP」는 총 5곡의 피아노 연주를 선보였으며, 「국악연구회」는 「고전기타부」와 함께 『천년만세에 의한 새울림』을 연주해 국악과 양악의 조화를 보여주기도 했다. 또한, 「합창부」는 『오월의 노래』 등 총 5곡을 불러 아름다운 하모니로 무대를 장식했으며, 「윈드앙상블」도 멋진 연주를 들려줬다. 이날 공연한 동아리 중 유일한 댄스동아리였던 「불아스」는 자이브와 차차 등의 댄스 스포츠를 보여줬는데 신나는 배경음악과 리듬으로 관객들의 좋은 반응을 얻었다.
윈드앙상블 제36회 정기연주회 소개
2002년 9월 2일 고대신문 1432호
캠퍼스의 가을 향연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 그것은 가을이 생각을 풍부하게 하는, 보다 감상적인 계절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높아진 가을 하늘과 더불어 학내 동아리들의 분위기 있는 공연전시로 가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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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결 더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각 동아리에서 방학동안 땀흘려 준비하고, 지금도 마지막까지 공을 들이고 있는 문화행사들을 소개한다. 먼저, 「관현악단」을 시작으로 이번주와 다음주에 잇따라 연주회가 열린다. 오는 7일(토) 오후 7시 인촌기념관에서 제30회 정기연주회를 갖는 「관현악단」은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 『바이올린 협주곡』, 『비창』 등으로 가을밤에 어울리는 아름다운 연주를 선보일 예정이다. 그리고 제30회 정기연주회를 맞는 「고전기타부」도 10일(화) 오후 6시 인촌기념관에서 편안한 기타선율로 바흐의 『Sanctifyus by Thy goodness from Cantata No. 22』, 모차르트의 『Symphony No.40 in G minor, KV.550 1. Molto allegro』 등을 들려줄 계획이다. 또한, 고전기타회 「아람소래」도 오는 11일(수) 오후 6시 30분 서창캠퍼스 진달래관 4층 극장 에서 제22회 정기 연주회를 갖는다. 이번 연주회에서는 카를로스 카르델의 『Por una Cabeza』, 타레가의 『Recuerdos de la Alhambra』 등 총 10곡이 선보일 예정이다. 「아람소래」 회장 박성 진(경상대 경제행정 01) 군은 “바쁜 일상 속에서 한번의 여유를 가지고 클래식 기타의 아름다운 선율에 몸을 맡겨보기 바란다”며 학생들의 관심을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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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드앙상블」도 오는 13일(금) 오후 7시 인촌기념관에서 열리는 제36회 정기연주회를 통해 『Orient Express』, 『Sexophone jubilee』, 『Moment for morricone』 등 총 11곡을 선보일 계획이 다. 「윈드앙상블」 회장 이유건(경영대 경영 01) 군은 “이전에는 관현악곡을 취주악으로 편곡해 서 연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이번 연주회에서는 전문적인 취주악곡으로 선곡, 취주악 의 매력을 더욱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공연을 소개했다. 가을이 깊어 가는 10월과 11월에도 음악회는 이어진다. 「세미클래식」은 10월 중 제11회 정기공연을 앞두고 『Brazil』, 『팡파레 2000』 외 여러 곡을 준비하고 있으며, 「합창부」도 11월 16 일 인촌기념관에서 열리는 제61회 정기공연을 위해 연습에 한창이다. 의자에 앉아서 음악을 감상하기엔 뭔가 부족하다면, 가슴까지 시원한 ‘락’의 세계로 빠져보는 것은 어떨까. 의과대 락밴드 「히포피언스」는 오는 7일(토) 오후 6시 신촌 퀸 라이브홀에서 가을 정기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락밴드 「크림슨」은 10월 4일 인촌기념관에서, 「1905」는 11월 중순 경 정기공연을 준비하고 있어 락의 역동적인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제, 여름 내내 흘린 땀의 결실을 열정으로 일궈낸 연극무대를 만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지 난 봄에 이어 가을 공연을 갖는 「극예술연구회」는 『안녕, 재보워키!』라는 연극을 준비하고 있다. ‘재보워키’란 현대 사회에서 자기 자신을 상실해 혼란과 두려움에 빠진 현대인의 위험을 상징적 으로 나타내는 것. 이번 연극은 1999년 『열차 논길을 달리다』 이후 3년 만에 올려지는 창작극이 다. 이번 제83회 정기공연은 오는 12일(목) 오후 4시, 13일(금)과 14일(토)은 4시, 7시에 4·18 기념관 대강당에서 만날 수 있다. 정경대 연극패 「69mm」 역시 10월 둘째주 본교 대강당에서 제8회 정기공연을 계획하고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라는 작품과 또 다른 창작극 하나를 준비중이다. 「69mm」 회장 우소리(정경대 정경 00) 양은 “연극을 사랑하는, 또는 관심있는 학우를 포함한 모 든 학우들의 많은 관심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서창캠퍼스의 극예술연구회 「섬」 역시 11월 초 정기공연을 가질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가을의 막바지인 11월 종합생활관에 들르면 눈과 마음이 보다 풍성해질 것 같 다. 「한국화회」가 11월 7일부터 창립미전을 가질 예정이며, 「서화회」는 11월 초부터 2주간 특별 기획 ‘창조집단 展’을 통해 퍼포먼스와 재학생 및 졸업생들의 회화, 조작 작품 등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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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춘음악회 안내
2003년 3월 3일 고대신문 1445호
뭔가 부족한 듯한 가을 교내공연보며 2% 채우자
2003년 9월 1일 고대신문 1458호
각자 계획한 바를 실천하느라 땀방울을 흘렸던 여름도 저만치 물러섰다. 한결 선선해진 날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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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마음까지 느긋해지는 2학기. 가 을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학내 동 아리들의 공연과 전시회들을 미리 알아봤다. 정서적으로도 풍요로워 지고 싶은 당신, 지금 다이어리를 꺼내 날짜들을 체크해 두면 기대이 상의 행사들로 한 학기를 채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한 학기의 새로운 출발, <관현악단>의 음악과 함께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 오는 7일(일) 오후 7시에는 인촌 기념관으로 가보자. <제31회 정기 연주회>는 드보르작 특유의 아름다운 멜 로디와 드라마틱한 구성의 <교향곡 7번>을 본곡으로, 또 차이코프스키의 <슬라브 행진곡>과 <로코코풍에 의한 변주곡>을 서곡과 협주곡으로 연주한다. <관현악단> 유대진(공과대 산공 01) 회 장은 “음대가 없는 본교에서 음악 활동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도 있지만 본교 학생에게 정통 클래 식을 선보이며 본교 특유의 지성과 야성에 감성을 더한다는 자부심으로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추석 연휴가 끝나고 다시 시작된 일상이 답답하게 느껴진다면 <극예술연구회>의 연극을 추천한다. 오는 17일(수)부터 19일(금)까지 본교 대강당 101호에서 관람할 수 있다. 중국의 옛 동화 를 모티프로 한 <코카서스의 백묵원>은 아이의 진정한 어머니를 가리는 과정을 다룬 친숙한 내용이다. ‘주위의 작은 사랑에도 큰 변화가 온다’는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이번 공연의 목적이 라고 한다. 고연전을 앞둔 9월 넷째주. <윈드앙상블>은 23일(화) 인촌 기념관에서 열리는 <가을 정기 연 주회>로 들뜬 분위기에 힘을 실을 예정이다. 일반 오케스트라와 규모는 같지만 현악기 없이 관 악기만으로 연주하는 것이 이들의 특징. 김종원(생명과학대 01) <윈드앙상블>회장은 “관악기 는 사람의 숨결을 불어넣어 표현하기 때문에 감정을 더 잘 살릴 수 있으며 소리도 훨씬 웅장하 다”며 관악기의 장점을 설명한다. 또한 음악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재즈, 팝, 가요 등 모든 장 르를 연주할 수 있다는 것또한 이들 공연의 매력이다. 1부는 클래식으로 2부는 영화음악으로 구성할 예정이다. 24일(수)에도 인촌 기념관에서 음악공연이 한차례 더 열린다. 클래식 기타동아리 <고전기타 부>의 <제30회 정기연주회>가 그 주인공이다. 중주 연주와 함께 마지막 무대는 동아리 구성원 의 전체 합주로 구성될 계획이다. 이번 행사를 위해 이들은 방학 중 주 3일간의 연습에 몰두하 며 값진 땀을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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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동아리 <TTP (Talk Through Piano)>는 다음달 2일(목) 오후 6시 인촌 기념관에서 가을 정기연주회 <TTP>를 가진다. 한층 깊어진 가을 날씨와 어울리는 클래식과 뉴에이지 곡을 선보인다. 민중마당극패 <탈따람>은 오는 10월 둘째 주에 교내공연을 계획하고 있다. 신문 등 언론매체를 풍자하는 극이 될 것이라고 회장 라용태(인문대 북한 01)씨는 설명한다. 중간고사가 끝난 10월의 마지막 주에는 조금 특별한 공연이 기다리고 있다. 다음달 31일(금) 락밴드 <크림슨>이 준비한 <15주년 기념 정기공연>이 그것이다. 매년 봄·가을에 여는 정기 공연 중 하나지만 이번 공연을 맞는 각오는 남다르다. 지난 1988년 <크림슨> 결성 이후 올해로 15주년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이를 기념하여 88학번 1기 선배부터 03학번 신입생까지 전 멤버 가 참여하는 공연을 준비중이다. <세미클래식>은 10월 말 진달래관 소극장에서 열릴 <정기 연주회>를 계획 중이다. 또 <합창 부>는 11월 셋째 주에, <노래얼>은 11월 마지막 주 금요일에 각각 2학기 정기 공연을 가지며 장소는 아직 미정이다. 댄스 동아리의 공연을 보며 마음껏 즐기고 싶다면 <KUDT>와 <UDF>의 소식에 귀 기울여 보자. <KUDT>는 11월 경 제 2학관 지하 강당에서 정기 공연<파티 타임 2003>을 가질 예정이다. 한편 <UDF>는 12월 초 학관 소극장에서 정기 공연을 가진다. 장르별로 다양한 댄스를 선보임 으로써 대중들에게 춤을 알리고자 하는 그들의 노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차분히 전시회를 관람하며 작품을 통해 소통하고 싶은 사람들은 여기로 가보기를 권한다. 먼저 3일(수)에서 5일(금)까지 서관 앞 잔디밭에 전시된 사진들을 눈여겨보자. 이는 사진 동 아리 <호영회>가 준비한 <호영 정기 사진 전시회>다. 이번 전시회에는 특이한 기법을 사용한 사진들을 많이 전시할 계획이라고 한다. 박용현(사범대 체교 01) 회장은 “신입생들의 작품과 더불어 정회원들의 작품도 출품하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구성원들의 팀웍을 다질 것이다”라고 포부를 밝힌다. 중간고사로 지친 마음을 <한국화회>와 <서화회>의 전시회에서 달래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한국화회>는 11월 8일(토) 창립일을 기념하는 <창립미전>을 준비중이다. 이번 전시회에서 신입생들은 주로 사군자를 통해 향상된 실력을 뽐낸다. 회장 유병찬(공과대 전자 02)씨는 “실외 작품들은 용, 호랑이 등의 캐릭터와 풍경화 같은 친숙한 그림을 전시해 동양화를 사군자에 얽 매여 생각하는 고정관념을 깨뜨릴 것이다”고 말한다. 일반 학생들에게 다가서고자 하는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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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회>의 노력이 돋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마지막으로 <서화회>는 11월 10일(월)부터 14일(금)까지 4·18 기념관 전시실에서 <고대미 전>을 가질 계획이다. 풍경, 인물, 정물 등의 서양화와 서예 작품으로 구성될 이번 전시회는 신입생들의 성숙된 실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또 지난 미전에는 볼 수 없었던 서예 작품도 출품되기 때문에 더욱 풍성해진 전시회가 될 것이다.
새학기의 시작, 학내공연과 함께 싱그런 봄의 설레임을 느낀다
2004년 3월 1일 고대신문 1471호
겨우내 새순 속에 움츠리고 있던 꽃들이 하나 둘 피어나는 3월, 학내 동아리들이 겨울방학 동안 준비한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진다. 먼저 새 학기의 시작과 함께 따뜻 한 봄 햇살과 어우러지는 관현악기 들의 향연을 감상할 수 있다. 오는 6일(금) 관현악단이 오후 7시 인촌기념관에서 신춘음악회를 개최한다. 서곡으로 그리그의 <페르귄트>를 비롯해 협주곡으로 막스부르흐의 <스카티시 판타지(scottish fantasy)> 등을 선 보일 예정이다. 오는 8일(화)에서 13일(토)까지는 학내에서 연극을 감상할 수 있다. 학관 6층 소극장에서 극 예술연구회가 <출옥>이라는 제목의 워크샵을 갖는다. 마샤 노만의 <Getting out>이라는 작품 을 원작으로 한 것으로, 교도소에서 출옥한 한 젊은 여성이 예전의 자신에서 탈피하는 이틀간 의 모습을 그려낸다. 극예술 연구회의 우지훈(공과대 기계공학 02)씨는 “어떤 일률적인 교훈 보다도, 한 여자의 삶에 대해 학생들 스스로 각기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독특한 연극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오는 20일(토) 오후 7시에는 윈드 앙상블의 정기 봄 음악회가 열린다. 공연 1부에서는 <Pastorale Symphonique>, <Aquarium> 등을 연주한다. 이어지는 2부에서는 새 학기를 맞아 ‘시작’이라는 주제로 <La Storia>, <Wizard of Oz>을 비롯해 영화음악과 팝 음악 등 관객들에게 익숙한 음악 위주로 공연을 진행한다. 새 봄을 맞아 기분이 싱숭생숭 하다면, 피아노부 TTP (Talk Through Piano)의 제9회 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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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회가 좋다. 오는 25일(목) 오후 6시에 학생회관 6층 공용공간에서 클래식과 뉴 에이지 피아 노 연주 감상을 만끽할 수 있다. 홍성후 TTP 회장은 “이번 연주회를 통해 학생들과 음악을 통 해 교감을 나누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오는 26일(금)에는 4·18기념관에서 고전기타부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다. 이번 신입생 환영 연주회는 <파헬벨의 캐논>, <피아졸라의 리베르탱고> 등 클래식 기타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도 쉽게 들을 수 있는 곡들로 꾸며질 예정이다. 한편, 매년 봄·가을 마다 정기공연을 가져온 교내 중앙 락 밴드 크림슨은 다음달 15일 인촌 기념관에서 봄 정기공연을 갖는다. 이번 공연은 특별히 신입생들이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 드 럼을 연주하는 김성산(문과대 독문 03)씨는 “이번 공연을 통해 신입생들과 교감할 수 있는 자 리를 마련하고 싶다”며 “신입생들이 크림슨 공연을 보고 대학 생활의 힘과 열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공연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5월에도 동아리들의 공연은 계속 이어진다. 고전기타부 초청으로 파라과이 기타리스트인 베 르따 로해스(Berta Rojas)의 연주회가 5월 15일 인촌기념관에서 열릴 예정이다. 연주 후에는 관객들을 대상으로 하는 마스터클래스도 진행된다. 이형탁 고전기타부 회장은 “프로 기타리 스트에게 교습을 받을 수 있는 이번 기회를 통해 일반인들이 기타에 대한 흥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5월 29일에는 고전기타부 30주년 기념 동문 연주회가 인촌기념관에서 열린다. 고전기타부 출신 졸업생들과 재학생들이 함께 연주하는 자리로, 재학생으로 구성된 중주 두 팀과 졸업생 으로 이루어진 중주 두 팀의 합주와 다른 대학교 고전기타 동아리의 축하공연으로 꾸며진다. 또한, 5월 19일(수) 민주광장과 5월 20일(목) 이공계 캠퍼스에서 댄스스포츠 동아리 불아스 의 신나는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자이브 △차차차 △룸바 △살사 등 다양한 춤이 화려하게 펼쳐진다. 방학이 끝나고 다시 시작되는 학과 수업과 여러 가지 행사로 인해 정신없이 지나갈 수 있는 새학기, 학내 공연과 함께라면 한결 여유롭고 풍요롭게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교내서 즐기는 예술마당 - 지난 17일 ‘제24회 석탑예술제’
2004년 5월 24일 고대신문 1481호
지난 17일(월) 오후 7시 본교 인촌기념관 대강당에서 동아리연합회 소속 연행예술분과(과장= 김종원·생과대 생명과학 01) 8개 동아리가 ‘제24회 석탑예술제’를 열었다. 행사는 관현악단(단장=김현우·경영대 경영 02)의 주최로 △Mis direction △피아노부 TTP △불아스 △윈드 앙상블 △고대합창부 △고전기타부 △작은 손짓 △국악연구회가 참여했다. 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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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사에는 추후 동아리연합회에 공식 등록을 앞둔 수화 동아리 ‘작은 손짓’과 마술 동아리 ‘Misdirection’이 함께해 스포츠 댄스 동아리 ‘불아스’와 더불어 기존의 음악제를 종 합 예술제로 변모시켜 선보였다. 특히 ‘윈드 앙상블’의 연주에서는 관객이었 던 이승환(공과대 재료금속공학 96)씨의 부탁 으로 공개적인 프로포즈가 진행되기도 하는 등 관객들의 참여에 부응해 높은 호응을 얻기도 했다. 이씨는 “여자친구에게 평생 한번 뿐인 멋 진 추억을 만들어주고 싶었다”며 “윈드 앙상블 과 관객들의 도움에 감사한다”고 전했다. 관현악단원으로 이번 행사의 사회를 맡은 최서영(사범대 교육 03)씨는 “예술제가 성년의 날과 겹쳐 학생들이 많이 참여하지 못해 아쉽지 만 최선을 다한 무대였다”고 소감을 밝혔다. 행사를 총괄한 김종원 연행예술분과장은 “5월 동아리 축제의 일환으로 준비한 행사인 만큼 장시간 진행된 공연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높은 관심을 보여 본교의 예술 대제전으로 자리매 김해가고 있다”고 이번 행사를 평가했다.
젊음과 열정을 무대에 바친다. - 학내 동아리, 새내기 맞이 공연준비 한창
2005년 2월 27일 고대신문 1499호
모두가 움추린 겨울, 방학 중에도 학교를 지켜온 이들이 있다. 2005학년도 1학기 공연을 위 해 방학 내내 자신의 기량을 갈고 닦아온 동아리 회원들이다. 학생이자 연주자·배우·댄서들이 그동안 준비해 온 결실을 소개한다. 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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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예술연구회(이하 극회)는 ‘고려대학교 극예술연구회 제48회 워크샵-동물농장’에서 조지오 웰의 <동물농장>을 각색해 공연한다. <동물농장>의 내용은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줄거리 전 달보다 표현·연출에 중점을 둔다. 극회의 김성은(문과대 국문과 03)씨는 “극회는 대부분 정통 연극을 했는데 이번 워크샵에서는 연극에 뮤지컬적인 요소를 가미해, 관객들이 더욱 재미있게 연극을 관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소개했다. 극회는 뮤지컬 시도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음악 담당자를 초빙해, 직접 작사·작곡한 노래 8곡을 안무와 함께 선보인다. <오페라의 유령>의 감동을 연주로 느끼고 싶다면 윈드앙상블의 ‘윈드앙상블 제39회 신춘연 주회’에 주목해 보자. <오페라의 유령>의 주제곡인 ‘The phantom of opera’ 외 △Symphonic overture △Omens of love 등 다양한 곡들을 선보인다. 윈드앙상블은 1955년 5월, 본교 제1호 동아리로 등록돼 올해로 동아리 창단 50주년을 맞이하는 관악합주 동아리이다. 또한 윈드앙상 블은 지난 해 개최된 ‘제28회 전국 음악 경연대회’에서 합주부문 우승의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윈드앙상블의 이유진(문과대 심리 04)씨는 “정기적으로 열리는 신춘연주회를 보고 신입생들이 윈드앙상블을 찾아온다”며 “이번 공연의 연주곡 중 하나인 ‘The phantom of opera’에 반해 우 리 동아리를 찾아오는 신입생들이 많을 것 같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학생들은 클래식의 형식 때문에 클래식을 어려워 하지만, 자꾸 듣다보면 귀가 트이고 그 깊 이를 알 수 있다” 본교 피아노부 TTP 회장 강지훈(문과대 영문 04)씨가 ‘고려대학교 피아노부 TTP 제11회 정기연주회’를 소개하며 한 말이다. 이번 정기 연주회는 클래식이 약 70%, 뉴에이 지가 약 30%로 이뤄지며 색소폰과의 재즈 협연도 준비돼 있다. 120여명의 단원들이 연주하는 웅장한 악기 합주를 감상해 보는건 어떨까. ‘고려대학교 관현 악단 제21회 신춘음악회’에서는 △요한 스트라우스의 <봄의 소리> △그리그의 <피아노 협주곡 A단조>△베토벤의<교향곡 5번 운명> 세 곡을 연주한다. 기타 선율을 좋아한다면 클래식 기타 부 아람소래의 정기연주회도 좋을 듯 싶다. 이번 정기연주회의 하이라이트로 드보르작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 E장조>를 15명의 연주자들이 다함께 연주하는 순서가 기다린다. 동아리 공연은 학내에서 뿐만 아니라 학외에서도 이뤄진다. 매년 정기공연 때마다 홍익대 앞 클럽을 빌려 공연을 해온 동아리가 있다. 흑인음악동아리 TERRA이다. TERRA는 흑인음악 중 에서도 힙합과 R&B를 다루는 동아리로, 작사·작곡과 공연활동을 위주로 운영된다. 공연 때마 다 TERRA 구성원들이 직접 작사·작곡한 곡들로 공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번 학기에 열 리는 ‘TERRA’s 7th concert’도 홍익대 앞 클럽에서 열 예정이라고 한다. 방학이 끝나고 또다시 학과 수업과 여러 행사로 정신없이 지나갈 수 있는 새학기. 바쁜 일상 속에서 마음의 여유를 느끼고 싶다면 이들 공연과 함께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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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려 아름다운 ‘바람’ [우리클럽어때요] - 관현악 동아리 ‘윈드앙상블’
2005년 10월 31일 고대신문 1519호
“차분한 클래식 음악은 지겹다고요? 그렇다면 클래식은 물론 Pop, Jazz, 영화음악을 아우르 는 윈드앙상블의 음악을 추천합니다!” 학생회관 6층에는 때로는 웅장한, 때로는 갸날픈 소리까지 언제나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이 있 다. 바로 ‘취주악부 윈드앙상블(이하 윈드앙상블)’의 동아리 방이다. 윈드앙상블은 ‘윈드’라는 말 에서 연상되듯 트럼펫, 트럼본, 클라리넷, 플루트, 오보에, 섹소폰 등 관악기가 주를 이루는 음악 연주 동아리다. 관악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오케스트라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음악을 연주한다. 윈드앙상블은 대부분의 타 동아리들과 달리 가입요건에 시기와 학번을 구분하지 않는다. 실 제 윈드앙상블의 구성원은 05학번 신입생부터 군에 다녀와 복학한 학생까지 매우 다양하다. 또 한 악기를 다루지 못해도 상관없다. 윈드앙상블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부분의 동아리 회원들은 처음 악기를 접해본 사람들이다. 누구든 흥미와 열정만 있다면 함께할 수 있다. 이런 이유 때문 0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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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까? 다른 동아리들이 신입생을 받지 못해 고민을 하고 있는 반면 윈드앙상블의 동아리방은 가입과 관련한 학생들의 문의가 끊이질 않는다. 윈드앙상블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신기(사범대 역교 05)씨는 “9월에 있었던 정기연주회를 인상 깊게 보고 윈드앙상블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며 “예전부터 배우고 싶었던 악기도 배울 수 있고 무엇보다 가족같이 편하고 화목한 윈드앙상블의 분위기가 너무 좋다”고 말했다. 열성적인 회원들이 넘쳐나기 때문에 연주 실력도 뛰어나다. 윈드앙상블은 지난해에 열렸던 ‘전국대학생음악경연대회 합주부문’에서 금상을 수상했고 올해 열린 ‘서울시민예술축제 음악 부문’에선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최우수상 수상 기념으로 오는 12월엔 청계천에서 앵콜공연을 가질 예정이다. 윈드앙상블은 정기적으로 3월에 신춘연주회, 9월에 인촌기념관에서 정기연주회를 연다. 여 름과 겨울에는 일주일 정도의 기간동안 함께 합숙하면서 연주 연습은 물론 선후배·동기간의 우정을 다진다. 이런 윈드앙상블만의 정기적인 행사 외에도 입학식과 졸업식에서의 연주를 담 당하며 수시로 비정기적인 연주회를 열고 있다. 올해는 개교 100주년과 윈드앙상블 50주년을 기념해 6월에 인촌기념관에서 기념음악회를 열었다. 평소엔 일주일에 두 번 2시간씩 정기합주 연습이 있다. 일정이 바쁘지만 구성원들 모두가 좋아서 하는 일인 만큼 다들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참여한다고 한다. 이렇게 재학생 시절 윈드앙상블에서 열심히 함께 연주하고 생활한 기억은 평생 지울 수 없 는 추억으로 남는다. 이런 추억을 졸업 후에도 계속 이어가기 위해 현재 윈드앙상블 출신의 졸 업생들이 모여 만든 ‘WETUTTI (위튜티)’라는 밴드가 내방동에 별도의 연습실을 두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윈드앙상블이 개최하는 연주회는 모두 무료다. 티켓 제작이나 공연에 드는 예산은 모두 윈 드앙상블 구성원의 사비로 부담한다. 이에 대해 윈드앙상블의 단장을 맡고 있는 김상아(문과 대 중문 04)씨는 “학생들이 학교 내에서 음악을 접할 기회는 흔치 않다”며 “우리의 공연을 통해 좀 더 많은 학생들이 음악을 접하고 음악에 대한 관심도 높여 나갈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
공연과 함께 캠퍼스에서 느끼는 여유
2006년 3월 27일 고대신문 1531호
싱그러운 3월, 학내에는 방학동안 준비한 동아리들의 다양한 공연이 펼쳐졌다. 지난 10일(금) ‘윈드앙상블’의 <Spring concert-우리의 음악으로 만드는 동화 같은 이야기> 가 인촌기념관 대강당에서 열렸다. ‘동화’를 컨셉으로 진행된 이번 공연에서는 스타워즈, 미 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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녀와 야수의 주제곡 등 대중적 인 곡들이 연주됐다. 공연장에 는 금관과 목관악기 소리 사이 로 실로폰 소리가 어우러져 멋 진 화음을 만들어 냈다. 윈드 앙상블이 학교 밖에도 많이 알 려진 탓인지 강당 안에는 본교 생뿐만 아니라 가족단위의 관 객이 관객석을 채웠다. 오영은 (서울시립대 화학공학 04)씨는 “공연은 잘 안가지만 친구가 있 어 오게 됐다”며 “신비로운 느 낌이 드는 음악들로 구성된 것 같다”고 감상을 밝혔다. 문과대학 내 밴드인 ‘녹두울 림’의 <05’ Workshop> 공연이 지난 14일(화) 4·18 대강당에서 열렸다. 녹두울림은 매년 봄 신입생들을 모집하기 위해 공연 을 열어왔다. 한 시간 동안 진행된 공연에서 녹두울림 05학번 멤버들은 △Kiss me △Lovefool △꿈꾸는 소녀 등을 선보였다. 앵콜곡인 <차우차우>를 부를 때는 모든 관객이 일어나 환호했 다. 녹두울림의 기타 연주자 유근호(문과대 인문 05)씨는 관객들을 향해 “연습하느라 홍보관을 시끄럽게 해서 미안하고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안암역에서는 흑인음악 동아리 ‘테라’의 신입생 모집 게릴라 콘서트가 열렸다. 지난 15일 (수) 오후 6시가 되자 안암역에 테라의 공연을 보기위해 사람들이 계단까지 꽉 메웠다. 김민정 (생명대 환경생태 05)씨는 “지나가던 시민들도 공연을 볼 수 있어 좋은 것 같고 공연도 신나고 재밌다”고 말했다. 테라의 멤버 이진주(문과대 국문 05)씨는 “일부러 시간 내서 공연장까지 찾아올 필요 없이 지나가던 사람들도 공연을 볼 수 있어 매 학기 지하철역에서 공연을 한다”고 말했다. 지난 21일(화) 4·18기념관 대강당에는 고전기타의 선율이 울려 퍼졌다. <서른세번째 고전 기타부 신입생 환영 연주회>가 열린 것이다. 8명의 고전기타부원들이 출연한 이번 공연에서 이들은 로맨틱한 분위기의 ‘morning dew’, ‘눈의 꽃’ 등을 선보였다. 솔로로 연주한 임현석 (공과대 전기전자 05)씨는 “신입생들이 기타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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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연주자들은 앵콜곡으로 ‘어머나’를 연주해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날 공연을 지켜본 황지혜(간호대 간호 06)씨는 “따분하게 느껴졌던 기타에서 다양한 음색이 나와 마음이 바뀌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개강맞이 동아리 공연 풍성
2006년 9월 11일 고대신문 1542호
지난주부터 개강을 맞아 학내에는 동 아리, 소모임들의 공연이 다채롭게 펼 쳐졌다. 이번주도 많은 동아리·소모임 의 공연이 이어질 예정이다. 애기능 동아리 ‘KUAAA’는 가을을 맞 아 높아져 가는 하늘 아래서 별을 관측하 는 공개 관측회를 개최한다. ‘KUAAA’의 회원 정지혜(문과대 영문 04)씨는 “천체 망원경으로 별을 볼 수 있는 기회에 많은 학생들이 와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문과대 소모임인 ‘녹두울림’은 올해 정기공연으로 Knocking on heaven’s door, 멍든 새 등의 노래를 공연한다. 지 난 학기 안암역에의 게릴라 콘서트로 많 은 학생들의 호응을 받았던 ‘TERRA’는 이번에도 게릴라 콘서트를 할 예정이다. 이윤규(정통대 컴퓨터 03)씨는 “지나가는 고대생들과 즐겁게 어울리자는 취지로 준비했다”고 취지를 밝혔다.
뻔한 공연은 없다, Fun한 고대로 오라!
2009년 3월 2일 고대신문 1607호
노래·음악 개강하고 정신없는 일주일을 보내게 될 새내기라면 잠시 짬을 내 클래식에 몸과 마음을 맡 겨보라. 인촌기념관에서 오는 7일(토) 오후 7시에 관현악단의 신춘음악회가 열린다. 이날 공연 은 전반에 서곡과 협주곡을 연주하고, 후반에 교향곡 전 악장을 연주하면서 관객 중심으로 이 뤄질 예정이다. 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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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악부(윈드앙상블)는 오는 21일(토) 오후 7시 인촌기념관에서 정기신춘연주회를 갖는다. 고 전클래식뿐만 아니라 영화음악, 재즈를 함께 즐길 수 있다. 같은 곳에서 오는 27일(금) 오후 7 시엔 TTP의 피아노연주회도 준비돼 있다. 또한 31일(화)에는 세종캠퍼스 학생회관 진달래관에 서 오후 7시 30분부터 세미클래식의 신춘연주회가 열린다. 기타 연주회도 가 볼만 하다. 오는 4일(수) 오후 7시 세종캠퍼스 학생회관 진달래관에서 기 타동아리 아람소래의 신입생환영연주회가 열린다. 클래식 기타 동아리 고전기타부는 오는 14 일(토) 오후 6시 인촌기념관에서 신입생환영연주회를 갖는다. 통기타를 연주하는 그루터기는 4월 말 또는 5월 초 민주광장 주변에서 통기타의 무형식과 자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게릴라 콘 서트를 연다.
뮤즈의 향연은 계속된다
2009년 3월 1일 고대신문 1607호
올해에도 본교를 찾는 국내외 유명 음악가의 발길이 이어진다. 매년 3~4회 열리는 크림슨마스터즈콘서 트는 오는 31일(화) 오후 7시 30분 인촌기념 관에서 오라이온 스트링 콰르텟 내한 공연으 로 첫 시작을 알린다. 올해 20주년을 맞이한 오라이온 콰르텟은 미국 링컨센터 소속 현악 4중주단으로서, 미국에서 인기 있는 앙상블 중 하나다. 이번 내한공연에서는 △베토벤 △하이든 △멘델스존 △브람스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 오는 5월 21일(목)에는 ‘오월의 노 래 그리고 선율’이라는 주제로 소프라노 인성희 씨와 피아니스트 양기훈 씨가 협연할 예정이다. 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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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일(토) 오후 7시에 같은 곳에서 위튜티/나츠 윈드 한일합동연주회가 열린다. 위튜티는 본교 중앙동아리 취주악부(현 윈드앙상블) 동문이 모여 결성한 관악합주단이다. 개교 104주 년을 기념하고자 일본 동경의 나츠 윈드앙상블과 합동 공연을 펼친다. ‘Hand across the sea, Music across the heart’라는 주제로 펼쳐지는 이번 공연은 <Music for a festival>, <Diversions> 외 8곡이 연주되며 무료로 입장 가능하다.
우리 동아리는 몇 살?
2009년 5월 5일 고대신문 1615호
본지가 중앙동아리 79개 중 74개 동아리를 대상으로 창설연도를 조사한 결과 가장 오래된 동 아리는 90돌을 맞은 관악기 연주동아리 ‘관악부’, 가장 역사가 짧은 동아리는 올해 2주년을 맞 은 대학 간 연합 봉사동아리 ‘비누방울’로 나타났다. 최고령 동아리 관악부는 지난 1920년 창설된 ‘취주악부’의 후신으로, 지난 1954년 본교 중 앙동아리 1호로 등록됐다. 그 뒤를 이어 1928년 창설된 ‘연극부’의 후신인 ‘극예술연구회’가 올 해 82주년을 맞이했다. 관악부를 이끌고 있는 황동산(정통대 컴퓨터·통신공학 08)씨는 “전통이 깊어 오랫동안 학 교 행사 찬조연주를 도맡았다”며 “60년대 학번 선배님들과도 합주할 정도로 선후배 사이의 교 류가 활발하다”고 설명했다. (하략)
Fall in Love, Fail in Love?
2009년 10월 10일 고대신문 1625호
지난 8일(수)과 9일(목) 본교 동아리연합회(회장=유낙연·문과대 중문 07)가 주관한 가을축 제 ‘Fall in Love’가 열렸다. 첫날엔 동아리연합회 소속 중앙동아리들의 공연이 오후 7시부터 3시간가량 인촌기념관에서 열렸다. 이번 공연에선 △고대관악부 △마술동아리 미스디렉션 △재즈동아리 Jass △아카펠라 동아리 LoGS 등 9개 중앙동아리가 공연을 펼쳤다. 둘째날엔 4.18기념관에서 영화동아리 돌빛(회장=최용혁·법과대 법학 08)의 주최로 △영화 ‘반두비’ 상영 △신동일(독문과 87학번) 감독과 관객과의 대화 등이 진행됐다. 신 감독은 “취업 이 어려워져 동아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들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이런 때일수록 하나의 관심사를 공유하는 사람들과 밤새 이야기를 나누고 추억을 공유하는 정 서와 분위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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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이번 축제엔 학생들의 참여가 저조해 아쉬움을 남겼다. 유낙연 동아리연합회 회장은 “공연의 수준은 우수했지만 주최 측의 준비와 홍보가 부족했던 것 같다”며 “다음 기회엔 동아리 들의 끼와 열정을 더 많은 학생들이 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당신의 발걸음이 축제의 꽃을 피운다
2010년 3월 7일 고대신문 1635호
새학기의 흥분이 넘치는 싱그러운 봄을 맞아 다양한 문화 행사가 열린다. 예술성과 감수성이 피어오르는 학내 공연과 행사에 참가해보자. 무대 위로 눈길을 돌려라 관악기 연주의 매력이 궁금하다면 최장수 중앙동아리 관악부(윈드앙상블)의 공연을 추천한다. 관악부는 전설적인 록밴드 비틀즈를 테마로 13일 인촌기념관에서 무료 신춘연주회를 연다. (하략)
2012학년도 1학기 학내동아리 행사 감성을 입은 캠퍼스 “즐길 준비 하세요”
2012년 3월 5일 고대신문 1689호
관객과 함께하는 빵빵한 합주 ‘관악부’ 학내 1호 동아리로 등록된 역사 깊은 관악 부가 16일 오후 7시 30분 인촌기념관에서 신 춘 음악회를 연다. 이번 공연은 ‘위풍당당 행진 곡’, ‘티본 협주곡’ 등 웅장한 연주곡으로 이뤄 진 1부와 영화 <오페라의 유령> OST, 비틀즈 의 팝송 같은 잘 알려진 노래들로 이뤄진 2부 로 구성된다. 관악부 이계원(문과대 서문 10) 회장은 “관악곡의 특징은 ‘빵빵’하다는 것”이 라며 “관악연주로 편곡한 ‘들으면 아는’ 노래 들의 새로운 매력을 찾는 기회가 될 것”이라 고 말했다. 관악부의 공연은 어느 연주 행사보다 관객 에게 쉽고 친근하게 다가간다. 이계원 회장은 “객석과 무대 사이에 소통이 가능해 관객이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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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때 언제나 박수를 치거나 크게 호응해도 좋은 것이 관악부 연주회만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무서워서 쫄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더라 “쎄쎄”만 알고 떠난 20일간의 대만 자전거 여행 上 위대용 기자
2012년 5월 5일 고대신문 1695호
대만에서 만난 고대생 왕통거씨 여행 일주일째가 되는 날에는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대만의 부산이라고 할 수 있는 항구도시 카오슝(Kaoshiung)에 도착한 나는 하루 전에 전화로 예약한 ‘하마센 호스텔’을 찾았다. 그곳 주인은 3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왕통거씨 였는데 그는 내가 자 전거 앞에 붙여둔 고대신문 명함을 보더니 자신도 고려대를 졸 업했다며 반가워했다. 한국말도 어느 정도 했는데 하루 전날 한 ▲ 카오슝 하마센 호스텔 주인 왕통거씨.
국인 자전거 여행객 2명이 왔다 갔는데 한 명이 고대생이라고 말 해줬다. 알고 보니 이스트도어에서 들었던 그 여행객이었다. 왕
통거씨는 2001년에 교환학생으로 고려대를 왔었고 관악부 윈드앙상블에도 들어갔었다고 한다. 그는 졸업앨범도 보여줬다. 왕통거씨와의 인연 덕분에 그날은 다른 날보다 좀 더 마음 편히 쉴 수 있었다.
“소치올림픽 남자부 티켓을 거머쥐고 싶다” 김민석(사회체육 11) 선수 인터뷰
2013년 3월 24일 고대신문 1719호
그는 대한민국 남자 피겨스케이팅의 희망이었다. 10 대 시절부터 국내 최고의 남자 피겨 선수였고 세계 선수 권 대회 10위권 진입이 유력했다. 승승장구하던 그는 오 른발뒤꿈치 부상 이후 주춤했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진출의 마지막 기회인 8월 ‘네베론 트로피’ 하나만 보고 묵 묵히 권토중래(捲土重來)를 꿈꾸고 있다. 시련 속에서 자신 ▲ 소치 올림픽 출전권을 따기 위해 태릉 빙상장에서 훈련에 매진 중인 김민석(사회체육 11) 선수. (사진=김연광 기자)
을 혹독히 담금질하고 있는 김민석(사회체육 11) 선수를 태 릉 빙상장에서 만났다. “메달권이 아닌데도 늘 꾸준한 일본의 다이스케 다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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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髙橋大輔) 선수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 훈련 직후라 땀이 마르지 않아 머리는 젖어 헝클어졌 지만 작고 흰 얼굴에 앳된 그는 참 ‘고왔다’. 하지만 김민석 선수는 어린 시절 경기력 향상을 위해 복숭아뼈가 부어올라도 참고 스케이트를 탔을 정도로 근성이 있다. 한때 주목받지 못하는 현실 을 아쉬워했지만 묵묵히 스케이팅을 즐기는 꾸준함은 그를 한층 더 성숙시켰다. (중략) - 학교 생활 중 기억나는 경험이 있나 “3학년이 되면서 교직 수업을 일반 학생들과 듣기 시작했다. 최근엔 관악부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는데 ‘운동’이란 한정된 주제 외의 대화 기회가 늘어나 기쁘다” (하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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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회 활동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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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6월 15일 제11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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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9월 29일 제 16회 정기연주회 겸 제2회 선후배 합동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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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4월 4일 제17회 정기연주회 겸 신입생 환영 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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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9월 7일 제18회 정기연주회 겸 제3회 선후배 합동 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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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9월 13일 제19회 정기연주회 겸 제4회 선후배 합동 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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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9월 11일 제21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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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3월 11일 신춘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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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9월 9일 제21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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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9월 8일 제23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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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3월 21일 신춘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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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9월 5일 제26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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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2월 26일 제1회 졸업생 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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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12월 18일 취주악부 교우 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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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9월 19일 제29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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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3월 15일 신춘음악회
2003년 3월 15일 신춘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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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9월 23일 제 37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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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3월 20일 봄 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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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10일 제38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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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3월 12일 신춘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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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5월 14일 개교 100주년 선후배 합동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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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월 15일 제39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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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3월 10일 신춘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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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16일 제40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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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16일 신춘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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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8일 제41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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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7일 봄맞이 연주회
2008년 9월 20일 제 42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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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3월 21일 신춘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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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9월 4일 제43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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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13일 신춘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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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9월 8일 제44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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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12일 신춘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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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9월 8일 제46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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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29일 교우회 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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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3월 8일 신춘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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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9월 19일 제48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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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3월 6일 신춘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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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9월 11일 제49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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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및 홍보 포스터
2001년 신춘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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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신춘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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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신춘음악회
2006년 신춘음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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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신춘음악회
2008년 봄맞이 연주회
2009년 신춘연주회
2010년 신춘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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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신춘연주회
2012년 신춘연주회
2013년 신춘연주회
2014년 신춘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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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신춘연주회
2003년 제37회 정기연주회
2004년 제38회 정기연주회
2005년 제39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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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제40회 정기연주회
2007년 제41회 정기연주회
2008년 제42회 정기연주회
2009년 제43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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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제44회 정기연주회
2011년 제45회 정기연주회
2012년 제46회 정기연주회
2013년 제47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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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제48회 정기연주회
2015년 제49회 정기연주회
2005년 선후배 합동연주회
2014년 신입부원 모집 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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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 신입부원 모집 공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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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신입부원 모집 공고
관악기와 함께한 삶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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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회고담 |
오래된 6. 25의 추억들
商學 56 Cla 邊 棟 洙 (稅務士 經營學博士) 누구에게나 오래된 추억은 있다. 추억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특히 6.25 동란을 생생히 기억 하는 우리 연배의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내가 겪은 6.25라는 제목의 글을 쓰게 한다면 한도 끝 도 없는 이야기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흔히 우리들 언어생활에서 모든 단어를 국어사전에 나 와 있는 뜻을 찾아 확인해 보고 쓰고 있는 것은 아니다. 때문에 추억이라는 말도 사전을 찾아 본적 이 없는 단어로서 지금 부터 내가 쓰고자하는 추억을 사전에서 찾아보니 지나간 일이나 가버린 사 람을 돌이켜 생각함, 또는 그 생각 추상(追想) 추회(追懷, 신콘사이즈 국어사전 동아출판사 1978 년 개정신판)라고 정의 되어 있기 때문에 오래된 6.25의 추억들이라 제목을 삼은 것은 정확했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이 된 때는 1949년 봄이었다. 신생대한민국(新生大韓民國)의 초대 문교장관 인 안호상(독일 철학박사)박사의 “일인일기주의(一人一技主義)” 산업입국(産業立國)을 문교정책으 로 표방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시 집에서 가장 가까운 “서울 성동공업중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1945년 이전 즉 일제치하(日帝治下)때 입학한 국민학교(초등학교)는 서울 동대문 밖에 있는 창 신공립국민학교(창신초등학교-현재)였고 해방(解放)이 되어 선친(先親)의 신분변경으로 남대문 밖 갈월동 사택으로 이사하여 삼광국민학교를 다니다가 졸업은 동소문 밖 돈암 국민학교에서 했다. 은행에서 퇴직하신 선친은 여수 순천반란사건의 현장이었던 전남 구례 근처 압록이라는 작은 기차역에서 벌목한 통나무를 기차에 싣고 서울 청량리역에 하차 시켜 땔감이나 목재로 공급하 는 산판사업(山坂事業)을 하셨다. 여순반란(麗順反亂) 사건으로 산판사업은 계속할 수 없게 되 었고 그때가 마침 김장철이어서 유휴자금을 투자한 것이 당시의 이상기후 관계로 산더미처럼 쌓은 배추들이 썩어 큰 손해를 보았다. 이로 인해 경동고등학교 아래 동네에 있던 집이 없어지 는 바람에 정릉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정릉 집은 돈암동 전차 종점에서 약 2~3km 떨어진 당시 에는 교통수단이 없던 도보로 밖에 다닐 수 없는 산속의 규모가 큰 한옥이었다. 이 한옥은 왜정때 부터 종로에 있던 유명한 요정 천향원(天香園) 별장(別莊)의 일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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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에 입학한 것은 돈암동 집에서였고 중학교 2학년 때 6.25사변이 발발하였을 때는 정릉에 살고 있었다. 당시 소년이었던 나에게 대포소리는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듣는 큰 소리였다. “되넘어”고 개(되놈 넘어온 고개라고 하여 붙여진 이름, 현재 서울 돈암동에서 길음동으로 넘어가는 미아 리 고개) 가까운 곳에서 살았기 때문에 6.25발발 3일 만에 수도 서울이 괴뢰군에게 점령당하는 과정에서 이 큰 대포소리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북한산 속으로 피란 가게 하였고 우리 가족 들도 그날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산속에서 밤을 지내며 후퇴하는 국군과 괴뢰군과의 총격전을 바위틈에 숨어서 겁에 질린 채 빨간 불똥들이 오가는 것을 보면서 새벽을 맞았다. 겁에 질린 우 리들은 북한산을 올라가고 있었는데 오후가 되자 어떤 사람들이 해방되었다고 외치면서 산 정 상 능선을 향해 올라가는 사람들에게 집으로 돌아가라고 종용하며 외치고 있었다. 그 때 해방되 었다는 말이 이상하게 들렸는데 해방은 8·15인데 6·28에 해방되었다고 외치던 그 사람들은 서울에 숨어 있던 북한을 사모하는 공산주의자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날이 1950년 6월 28일 수도 서울이 공산치하로 넘어간 날이다. 몇 일 지나 7월이 되었는데 학교 친구가 집에 찾아와서 나를 불러 오라고 했다면서 같이 학교에 가자고 한다. 그 때 6년제 중학교 2학년이었는데 1949 년 1학년 입학했을 때 매주 월요일 아침 조회 때마다 전교생이 열병과 분열식을 하였다. 이 때 행진곡을 연주하는 취주악대(뺀드)의 소리와 이를 연주하는 선배들의 모습이 부러워 취주악대 의 일원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서대문 형무소에 감금되었던 사상적으로 불순한 선생님들이 학교를 장악하고 학생들을 “의 용군”이라는 명칭으로 남하하는 괴뢰군에 합세시키기 위한 동원 행진에 취주악대가 필요해서 우리 대원들을 소집한 것이다. 그러나 모인 우리들은 보지도 듣지도 못한 당시 이북의 군가며 국민가요를 당장 연주할 수가 없었다. 기억에서도 없어진 음악선생(공산주의자)이 급히 만들어 진 악보를 나누어 주었고 이를 연습하기 위해 오늘부터 집에 갈수 없으며 합숙훈련을 해야 한다 는 것이다. 저학년인 나는 선배들과 함께 한 보름동안 연습하여 서울 종로에 있는 수송국민학교 까지 악기를 연주하면서 행진하였고 그 곳 운동장에는 우리 학교 뿐 만 아니라 서울 시내 여러 학교에서 모여 있었는데 학교 교실 속에는 미군 포로들이 감금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합숙 훈련은 당시가 한 여름이었기 때문에 교실에서 책걸상을 적당히 정돈하여 별 침구 없이 도 잘 수가 있었지만 식사가 문제였다. 전쟁으로 식량난이 극심한 때라 깡밀밥에 콩나물 된장국 이 전부였는데 선배들이 이렇게 먹고는 나팔소리를 낼 수 없다고 선생님에게 항의하니 어느 날 우리들을 인솔하여 개장국(지금은 보신탕이라 함)집으로 가서 개장국을 한 그릇씩 시켜주었다. 그때 시장이 반찬이라고 처음 먹는 개장국이 정말 맛이 좋았던 기억이 난다. 잠은 옷을 입은 채 로 책걸상 위에서 자기 때문에 쉽게 잠들지 않았고 여름 밤하늘을 보며 선배들과 이런저런 이 야기를 하면서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하다가 너무 졸리면 한 서너 시간 눈을 붙이고 또 하루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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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연습하는 이런 생활이 두어 주일 계속되던 어느 날 미 공군이 용산일대를 대대적으로 폭격한 일이 생겼다. 심리적으로 불안해져서 그날 밤에도 얼른 잠자리에 들지 못하고 선배와 이야기 도 중 내 생일이 내일(7월17일)인데 집에 가야 되겠다고 말하고 도망치다시피 집으로 온 것이 선배 들과의 영원한 이별이 되었다. 집은 천향원 별장. 지금은 상상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경치 좋은 곳이었다. 서울의 초 등학교 중학교 학생들이 소풍을 왔고 휴일에는 일반 사회인들의 휴식장소가 되기도 했다. 산 천초목이 우거진 계곡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개천이 있고 그 개천가에는 수각이 있는 물 좋고 산 좋은 곳이었다. 6.25사변 직전에는 육군본부 군악대가 개울가에 텐트를 치고 합숙훈련을 하였는데 그때 연습하던 곡은 ‘헝가리안 댄스(Hangarian Dance) 5번’을 비롯하여 ‘휘날리는 태극기’ 등이었다. 집안에는 한 500년 된 은행나무가 서 있었고 함께 다른 채에서 사시는 고(高)씨가 운영하는 화훼(花卉) 온실도 있었는데 당시 꽃의 종류가 많기로 대한민국 제일의 온실이라는 말을 들었 다. 가끔 일요일에는 서양 사람들이 꽃을 사러 오기도 하였고 당시 경기중학교 경복중학교 중 앙중학교 생물반 학생들이 고씨(高氏)로 부터 화훼재배를 배우러 오기도 했다. 특히 기억나는 것은 흙을 체로 쳐서 목판에 담아 씨를 뿌리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흙을 체로 친다는 것을 어 린 내 생각으로는 상상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콩이나 팥 같은 곡식가루나 체로 치지 흙을 체로 치다니... 집에 와서 며칠 있으니 달구지(소가 끄는 구르마)에 큰 밥솥을 싣고 인민군들이 우리 집 주위 로 몰려 드는 것이다. 알고 보니 용산에 주둔하던 인민군부대가 며칠 전 대대적인 폭격으로 그 곳을 버리고 온 것이다. 우리를 비롯해 이 집안에서 살던 사람들은 당분간 인민군부대 속에서 생활하게 된 것이다. 한 여름이 지나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가을철 어느 날 멀리서 은은히 포성이 들리기 시 작했고 주둔하고 있던 인민군 들은 몇 사람만 남기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인민군이 주둔하 고 있던 여름동안 서울시내 곳곳에 있던 값진 물건들을 이북으로 가져가려고 산속에는 포장 되 어있는 자동차 부속품들, 건물 속에는 밀가루 포대와 쌀가마니 등 식량을 모아놓고 있었고 심 지어는 피아노 등 취주악기까지 없는 물건이 없을 정도로 많이 모아 놓고 있다가 급히 도망가 는 바람에 놓고 간 것이다. 9.28수복이 눈앞에 있었던 어느날 밤 포성은 점점 크게 들려 잠 못 이루고 있는데 밖에서 무엇을 운반하는 손수레(리어카 rear-car) 자전거 소리가 요란하고 사람들의 떠들썩한 소리가 나기에 나가 보니 아래 동네 정릉 일대의 사람들은 물론 돈암동에 사는 사람들 까지 합세하여 인민군들이 모아 놓았다가 가져가지 못한 물건들을 이고 지고 손수레에 싣고 나르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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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도 이 북새통에 합세하여 쌀가마니는 못들고 밀가루 포대를 주로 가져왔다. 그러는 동 안에 날은 밝았고 아랫동네 청년 네 사람이 피아노를 옮기는 것을 보고 네 사람에게 피아노는 우리 집에 놓고 가라고 하면서 대신 밀가루 한 포대씩 네 포대를 나누어 주고 피아노를 집에 들 여다 놓았다. 지금도 그 피아노 생각이 난다. 그랜드 피아노(Grand Piano)가 아닌 가정용 피아 노로서 영국제인데 제품명은 호레이쇼 넬슨(Horatio Nelson) 이었다. 9·28 수복이후 청명하고 좋은 가을 날씨가 계속되는 동안 사촌 형제들이 집에 놀러 와서 피 아노를 치면서 재미있게 지내는데 신문에 공고가 나기를 병기나 악기 등을 전쟁 중에 습득한 사람은 국방부 정훈국에 신고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고를 했더니 국군 트럭이 와서 피아 노를 싣고 가버렸다. 원래 우리 것이 아니었기에 별로 서운한 감은 없었지만 매일 피아노를 치 면서 놀던 좋은 장난감이 없어진 아쉬움은 있었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기 시작하면서 앞마당의 은행도 무르익어 높은데서 떨어지면서 은행 알이 노란껍질을 벗고 밖으로 나와 냄새는 고약했 지만 알맹이 먹는 재미는 있었다. 이 때 편지 한통이 날아들었는데 국방부 정훈국에서 보낸 것 이다. 편지 내용은 지난번 인수해간 피아노가 서울 종로에 있는 덕성유치원에 있으니 도로 찾아 가라는 것이었다. 이 통지서를 받아들고 어른들은 우리가 피아노를 옮길 능력도 없고 이번 난리 통에 피아노가 없어졌다는 백낙승(그 유명한 비디오 아티스트 Video Artist 백남준의 아버지)씨 댁에 주어 그 집에서 찾아가도록 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그 댁에 연락하여 보내 피아노를 찾 게 하였다. 그때는 우리 힘으로 종로에서 정릉까지 피아노를 옮길 능력이 없었을 뿐 아니라 원래 우리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1·4후퇴의 날이 오고야 말았다. 그 때 선친은 산판사업(山坂事業)을 같이 하시던 작은 아버님과 함께 트럭을 장만하여 피난민(서울에서 대구 부산 등지로 떠나는) 수송사업을 하고 계셨다. 선친은 피난민 수송차 남쪽으로 가시고 언제 돌아오실지 모르는 상태에서 우리는 피난 갈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 때 이모님이 다니시던 정릉에 있는 경국사 주지(보현스님이라고 도 했음)에게 부탁하여 나만이라도 피난시키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어머님과 이모님이 의논하 시는 것을 옆에서 듣고 있으면서 교회를 다니는 교인인 나로서는 당시 경국사 스님을 알고 있었 기 때문에 처분만 바라고 있었다. 왜냐하면 동생들은 어리지만 내 나이 15살 인민군 치하가 되 면 인민군으로 끌려 나갈 것을 우려하셨기 때문이었다. 경국사 스님을 내가 알게된 것은 경국사 요사(寮舍)채에서 한 여름을 지내시는 이모님에게 어머님이 나를 심부름 시키실 때 주지스님의 눈에 뜨여 스님은 나를 귀여워하시며 불러 앉혀 놓고 불목하니 이야기며 잘 알지도 못하는 불 교 이야기를 들려주시기도 하였다. 이모님은 불교 가정으로, 어머님은 기독교가정으로 출가 하 셨기 때문에 두 분이 만나시면 항상 종교적인 논쟁을 하시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듣고 자랐다. 어느 날 갑자기 출타 중이신 선친으로 부터 피난준비를 하라는 연락이 왔었고 GMC 트럭이 집 앞으로 나타났는데 트럭에는 여러 집이 먼저 피난짐과 함께 타고 있었다. 우리도 준비한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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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보따리를 차에 싣고 올라탔다. 이날이 1951년 1월 3일이었다. 정릉으로부터 동소문고개를 지나 서울 시내를 지나는데 조선호텔 맞은편 미도파 백화점 뒤에 있는 경향신문사가 불타고 있 는 것을 보면서 서울시청 광화문을 지나 서대문고개를 넘어 갔다. 그때가 서울을 공산군에게 넘겨주는 마지막 날이기 때문에 후퇴하는 군용차량들이 서대문 로타리로 다 모여드는 것이었 다. 북쪽은 무악재 쪽, 남쪽은 의주로 쪽 동쪽은 광화문 쪽 세 방향에서 후퇴하는 국군 미군 영 국군 등 유엔군 차량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민간인 차량은 없었는데 우리 피난민 이 탄 트럭이 끼어들자 한국군 헌병과 함께 교통정리를 하고 있던 미군 헌병이 군용차들 후퇴하 기도 바쁜데 웬 민간인 피난차량이 끼어드느냐는 듯이 권총을 빼들고 “갓뎀”(God-damn)을 외 치며 열외(列外)로 세워 놓는 것이었다. 선친은 유창하지는 못하셨겠지만 영어구사 능력을 갖 추신 분으로 무어라 말씀하셨는지는 모르지만 미군 헌병에게 다가가 말씀을 하셔서 “갓뎀”을외 치며 역정을 내던 그 미군 헌병이 군용차들 사이에 틈을 만들어 우리가 타고 있던 트럭이 피난 대열에 끼어주었다. 지금 생각하기에는 어딘지 모르지만 마포대교가 놓인 그 근처 어디라고 짐 작 되는 곳에 부교(浮橋)가 설치되어 당시 한강을 건널 수 있는 유일한 다리 역할을 한 것이다. 서대문 로타리에 몰려든 후퇴 차랑들을 헌병들은 교통정리를 하는데 각 방향 마다 일정량의 차량들을 차례로 통과시키는 것이었다. 즉 북쪽 무학재 방향에서 온 차랑 10대, 동쪽 광화문 방향에서 오는 차량 10대, 남쪽 의주로 방향에서 온 차량 10대 이런 식으로 순서대로 마포쪽으 로 보내는 것이었다. 후퇴하는 군용차량들과 함께 흔들리는 부교(浮橋)를 타고 한강을 건너 영등 포 시흥 안양을 지나 수원까지 내려오니 날은 어두워지고 매우 추웠다. 하는 수 없이 1월 4일 밤 은 수원에 있는 부자집 한옥에서 함께 타고 온 사람들이 주인 없는 집 이방 저방 나뉘어 쉬기로 하였고 담가놓은 김장이며 못 가져간 쌀로 밥을 지어 나누어 먹고 한숨을 내쉬며 날이 밝자 다시 남쪽으로 떠났다. 지금 같으면 몇시간 걸릴 거리를 보름 동안이나 트럭을 타고 돌아돌아 대구 변두리인 비산동이라는 곳에 도착하였다. 서울을 출발하기 직전에 피난민 수송사업을 하였기 때문에 당시 계엄사령부에서 발행한 국 도 통행증을 운전석 앞 유리에 붙여 놓기는 하였지만 국도를 통행할 수가 없었다. 때가 전쟁수 행으로 눈코 뜰 새 없이 급한데 군용차량들만 다니기에도 부족한 국도에 한눈에 보아도 피난민 차량인 우리들의 트럭을 통행시킬 리가 없었다. 그래서 국도(직코스)를 운행하지 못하고 지그재 그(Zig-Zag)로 국도를 건너다니며 남쪽으로 남쪽으로 왔기 때문이었다. 특히 낙동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왜관(낙동강 유역의 지명)에 다리가 있다는데 그 다리는 군수물자 수송으로 건널 수 없 다고 하여 지금 낙동강에는 많은 교량이 놓여 있겠지만 당시에는 경상북도인지 남도인지 알 수 없는 상주라고 하는 곳에 낙동강을 건널 수 있는 다리가 하나 있다고 해서 낙동강 상류까지 올라 가 낙동강을 건넜다. 그러다 보니 서울에서 대구 까지 보름(15일)이나 걸리어 온 것이었다. 함께 타고 온 여러 가정들은 헤어져갔다. 그 중 노모를 모시고 온 가정이 있었는데 트럭 짐칸 위에 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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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마포의 부교를 지나오면서 밤중에 그 할머니는 아들 며느리 손자들이 짐 위나 짐 사이에 잘 들 있는지 어두워서 보이지 않게되자 “아범아 잘있니? 어멈아 잘있니?” 하시며 염려를 하셨다. 그 집안에 말 배우는 어린 아이가 할머니의 말씀을 흉내 내면서 하는 말이 “아범범 어범범”이었 다. 우리 동생들은 이제 막 말을 배우는 그 어린아이 보다는 컸기 때문에 그 말을 흉내 내며 “아 범범 어범범”이 동요가 되어 삭막한 피난길을 달래주기도 하였다. 보름 동안이나 동고동락하던 다른 가정들과 헤어져 우리는 비산동에서 한 일주일 머물러 있 다가 대구 시내 남산동이라는 반쯤 포장된 도로가 있는 후진 동네로 왔다. 피난민들로 들끓는 대구시에 방이란 방은 모두 피난민들로 차서 비교적 늦게 도착한 우리에게는 주인집이 도배장 판도 하지 않은 창고로 쓰던 토방 밖에 들어 갈 방이 없었다. 타고 온 트럭은 계엄사령부가 징 발(徵發)하였고 선친은 당장 일자리 없는 실업자가 되었다. 무직자가 되신 선친과 살림만 하시 던 어머님은 당장 우리 5남매를 먹여 살릴 일이 막막하였고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싸들고 온 피난 보따리에서 쓸 만한 옷들을 하나씩 꺼내어 시장에 내다 팔아먹었는데 나도 어머니를 따라 시장에 나가 팔 옷을 들고 있기도 하였다. 그 때 내가 가계(家計)를 돕기 위하여 독자적으로 장 사를 해야 되겠다고 시작한 것이 미제 물건 장사였다. 그 당시 대구역 근처에 미군 피엑스(美軍 PX)가 있었고 그곳에서 흘러나오는 물건들을 얼마간 싸게 사서 약간의 이문을 붙여 파는 일이 었다. 일을 하는 중에 미군 헌병의 단속에 놀라 잠을 못자는 병이 생겼고 잠을 못자니 밥맛도 없어지고 먹지를 못하니 안색이 변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 자신 사람이 이상하게 되고 말았다. 부산에 무슨 일자리가 없을까하고 다녀오신 선친은 나의 정신이상 증세를 확인하시고 나의 생활환경에 변화를 주면 정상적으로 되돌아 올 것으로 기대하시고 나를 부산으로 데리고 가셨 다. 동생들과 어머님과는 헤어졌지만 친척아저씨들과 함께 생활하게 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 면 15살 먹은 장남인 내가 정신이상이 되었으니 얼마나 난감하셨을 것인지 나의 불효는 이루 말 할 수가 없다. 선친을 따라 아저씨들과 함께 생활하던 곳은 당시 부산시청이 그리 멀지 않았던 동광동(東 光洞)의 일본식 2층집 이었는데 1층은 사무실, 2층은 침실 겸 거실로 쓰던 동광동 큰길가의 상 가 주택이었다. 그곳에서 몇 주를 지냈는지 몇 달을 지냈는지 기억은 희미하지만 이른 아침 마 다 재치국 팔러 다니는 아주머니들의 특유한 곡조로 외쳐대는 소리는 매우 인상적 이었고 이 소 리에 맞추어 아침잠에서 깨어 일어나곤 하였다. 나의 정신이상을 일으켰던 우울증도 씻은 듯이 없어졌다. 선친은 당시 나무로 된 화물선으로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크다는 춘광환(春光丸)에 쓰레기 종 이부스러기(紙屑)를 싣고 부산항을 출발하여 군산항 까지 수송임무를 맡으셔서 나를 데리고 2박 3일간의 항해를 하게 되었다. 배를 별로 타보지 못했던 나는 부산에서 군산까지 남해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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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를 지나는 항해를 생각하며 호기심 어린 즐거운 마음으로 들떠 있었다. 출항일이 되어 선친 을 따라 배에 오르니 선원들을 위한 침실도 있고 식당도 있어서 생활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어 보였다. 화주(貨主)들을 위한 특별선실도 있었지만 날이 어두워지기 까지는 바다와 지나는 다른 배들 을 구경하기에 선실 밖에서 서서 있었다. 선원들은 화주의 아들인 나를 귀여워 해 주었고 그 중 한 선원은 친절하게도 이제 몇 시간 후에는 낙동강 하류를 지나갈 터인데 배가 몹시 흔들리더 라도 멀미를 참고 견뎌내면 평생 멀미를 안 하게 될 것이니 멀미를 이겨 보라고 일러주어 이를 실천하여 멀미를 극복하였고 호기심으로 잠이 잘 오지 않아 한 밤중에 조타실(操舵室)에 들어 가 선원과 함께 배 운전을 해 보기도 했다. 칠흑 같은 바다에 멀리 보이는 불빛의 조그마한 고기 잡이 배들이며 밤하늘의 별들은 육지에서 보던 것과는 다르게 더욱 영롱하였다. 특히 선상에서 보는 일출(日出)과 일몰(日沒)은 장관(壯觀) 그 자체였고 서해상에서의 일몰은 인상적이었다. 2박 3일간의 항해는 끝나고 배는 군산항에 입항하였다. 일단 군산항에 상륙한 후 선친과 나는 여관에서 지내게 되었고 그 여관에 있는 동안 선친은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 병원에 다니며 나의 불면 증세를 의사들에게 설명하시면서 약을 받아 복 용하게 하였다. 그 여관집 주인은 판소리의 대가였는지 제자들이 찾아와 판소리를 배우는 소리 가 들리곤 했다. 그 때 선친이 회사 일로 나가실 때는 주인에게 부탁하여 나로 하여금 판소리를 배울 수 있도록 하셨고 나도 낮에 혼자 여관방에 아무 일 없이 있는 것 보다는 그 제자들과 함께 판소리를 배우는 것이 나의 우울증 치료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 때 배운 시조 한 대목이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 아래 뫼이로다....”였다. 여관에서 며칠이나 지냈는지 확실치 않 지만 한 열흘은 넘게 지냈을 것이다. 대구 남산동에 남겨 두었던 어머님과 동생들 다섯 식구가 군산시 구암동 이라는 곳으로 이사를 했으므로 나와 선친의 여관생활도 끝이 났고 선친은 며칠 동안 우리와 함께 생활 하시다가 다시 부산으로 가셨다. 대구에서 군산 까지 어머니께서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혼자서 육로로 오신다는 것은 당시 교통사정으로 불가능 하였다. 즉 장남인 내가 15살, 남동생들은 13살, 6살 여동생들은 11살, 8살이었기 때문에 장남인 내가 빠진 13살, 11살, 8살, 6살짜리 아이들 네 명을 어머님은 혼자 거느리고 이동 할 수가 없었다. 그 때 대구 까지 피난 오셨던 집안 친척 되시는 아주머니 자매 두 분을 대구 거리에서 만나 큰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아이들 넷을 거느리고 오실 수 있었다고 훗날 어머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군산에서의 생활은 전쟁 중만 아니었다면 서울사람으로서는 상상 할 수 없는 낭만적인 생활 이었다. 구암동 집에서 별로 멀지 않은 곳에 남선제지공장(南鮮製紙工場)이 있었는데 통나무를 넣어 종이를 만드는 시설을 갖춘 당시 한국 유일(唯一)의 공장이었다고 했다. 3·8선 이북에도 어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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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북선제지공장(北鮮製紙工場)이 있어서 일제(日帝)때 건설된 규모 있는 제지공장이라고 했다. 앞서 이야기된 춘광환(春光丸)으로 싣고 온 지설은 이 남선제지공장에 투입할 제지원료였던 것이다. 제지공업은 다량의 물을 필요로 하기때문에 물을 얻기 쉬운 강가에 위치하는 것으로 금강 하구에 남선제지공장이 있었고 우리 사는 집도 공장 가까이 있었다. 서해로 흐르는 금강하류는 강폭이 넓어서 바다 같은 느낌이 들었고 강 남쪽은 전라북도 군산 시, 강 북쪽은 충청남도 장항으로 우리집에서 장항제련소(長項製鍊所)의 길고 높다란 연돌(煙突) 이 멀리 보였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서해간만(西海干滿)의 차는 우리집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자고 나면 집 마당에 서해 간만의 차로 인해 작은 고기들이며 게들이 다니고 강물인지 바닷물 인지 물이 들어와 발목을 적실 정도의 물이 마당에 고였다가 낮에는 깨끗이 빠져 나가는 일이 반복 되었다. 군산시내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은 금강 하구의 축대길로 걸어오게 되는데 강둑 왼편에는 금강의 갯벌이 펼쳐있고 오른쪽에는 저수지와 논밭이 펼쳐있었다. 금강 갯벌에는 난생 처음 보 는 게들이 내가 걸어가는 정도에 따라 게구멍에서 일제히 나오기도 하고 들어가기도 하여서, 나는 게들의 사열을 하는 기분으로 강둑을 걸어 다녔다. 보통 참게(민물게)는 양쪽의 다리가 동 일한데 처음 보는 군산 갯벌의 게는 한쪽 다리가 다른 쪽다리 보다 엄청나게 굵고 커서 짝짝이 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게는 본적이 없었다. 지금도 인상에 남는 것은 강 건너 장항제련소의 산 정상으로 솟은 높은 연돌(煙突)이 생각나 지만 지금도 그 모습 그대로 인지 군산을 떠나온 후 가본 적이 없어 잘 모르겠다. 그때가 한여 름이었기에 저수지에서 낚시도 하고 수영도 하면서 지내던 낭만적인 생활을 청산하고 다시 선 친의 직장이 있는 부산으로 오게 되어 결국 부산 동래 온천장 근처 원예고등학교 옆 “산저마을” 이라는 곳에 피난보따리를 풀었다. 나는 피난민 학생으로서 학교 다닐 생각은 못했던 것인데, 어느 날 아침 식사를 마치고 집 근처 산보를 나갔다가 “한국농업과학연구소”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농장을 구경하게 되었다. 농장에는 유리온실이 몇 동 있었고 밭과 논이 연구목적으로 이 용되고 있었는데 유리온실 중 하나에 화훼과(花卉科)온실이라고 팻말이 붙어있었다. 그 온실에 들어가는 순간 썰렁하게 느껴져서 무의식적(無意識的)으로 혼잣말로 “국립온실이 뭐 이따위야” 하는 순간 내 옆을 지나가던 화훼과장 이라는 사람이 듣고 “니 뭐라캤노” 하기에 “뭐 국립온실 이 이따위냐고 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당당하게 말 할 수 있었던 것은 서울에서 살던 집 앞 마 당에 한 500년 된 은행나무가 있었고 사설 온실이 있었는데 그 온실이 그 당시 꽃의 종류가 대 한민국에서 제일 많은 온실이라고 명성이 있었던 온실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온실을 매일 아 침저녁으로 보아 온 나에게 국립온실이 너무 초라하게 보였기 때문이었다. 나를 불러 세운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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훼과장은 “니 어데서 왔노” 하고 묻기에 자세히 설명을 드렸더니 너 내일 부터 여기 와서 물주 는 일 좀 하지 않겠느냐고 하시기에 학교도 못가고 할 일이 없어 하던 차에 잘됐다 생각하고 수 락한 결과 일일고원(日日雇員)으로 취직이 된 것이다. 한국농업과학연구소 일일고원으로 취직되어 다니던 어느 날 평양에서 왔다는 나보다 몇 살 위인 여인과 함께 일하게 되어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는 사이가 되었다. 그 여인의 말 중 6.25 발발당시 평양방송에서 남조선 괴뢰도당이 북침을 감행했다고 방송했을 때 이제는 살았구나 하고 있었는데 뉴스시간 마다 파죽지세(破竹之勢)로 밀려 내려 간다는 소식을 듣고 “이승만 맹 꽁이”라고 탄식을 했다는 것이다. 이 말은 그때(1950)나 지금(2014)이나 북한 주민들이 학정 (虐政)에 시달리고 있슴을 증언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어느 날 온실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웬 자그마한 노신사가 여비서를 대동하고 화훼온실에 오 셨다. 가만히 옆에서 들으니 한국말이 아니고 일본어로 만 말씀을 하셨다. 그 노신사는 씨없는 수박으로 유명한 우장춘(禹長春)박사님이라고 했다. 화훼과장을 통해 내 이야기를 들은 우장춘 박사는 나를 통해서 서울집 마당에 온실을 경영하시던 고(高)선생님을 찾는것이다. 그때 나는 선친을 통해 고선생을 우장춘박사께서 찾는다는 것을 알려드렸고 그후 고선생은 우리식구들 이 서울로 올라온 후에도 한국농업과학연구소 고위직으로 근무하고 계셨던 것으로 기억된다. “국립온실이 뭐 이따위야” 혼자 한 말이 씨앗이 되어 결과적으로 한국농업과학연구소 일일 고 원으로 취직 할 수 있었고 집안 어른들로 부터 칭찬을 받았으며 농사기술의 일부를 배우는 기회 가 되었을 뿐 만 아니라 그 유명한 우장춘박사를 직접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하루는 직장에서 돌아오신 선친께서 부산시내에 서울에서 피난 온 학교들이 있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이젠 너도 학교에 복학해서 다녀야 되지 않겠느냐고 하셨다. 이때 나의 생활은 한국농업과학연구소의 일 일고원으로 주일에는 동래온천장으로 피난온 서울신학교(성결교단 신학교, 당시 교장 이명직 목사)와 같이 있는 임동선목사(후일 공군 군종감 역임)가 시무하는 온천장교회에 출석하고 있었 다. 새벽마다 어머니와 함께 새벽기도회에 참석하여 전쟁 중인 우리나라의 승리를 위해, 흩어져 있는 가족들의 무사안녕을 위해 간절히 기도 하면서 나 자신의 정신이상증세도 신앙으로 치유 되었다고 믿는 독실한 기독신자의 생활이었다. 아무리 신앙심이 독실하다 하여도 매일 추운 새 벽마다 기도회에 참석 한다는 것이 힘들었지만 어머님을 위한 봉사차원에서 매일 어머님과 함 께 새벽 교회에 갔었다. 즉 5시에 시작하는 새벽시간을 맞추기 위해 4시 20분 정도에 집을 나서 서 논밭 사이를 지나 군부대 앞을 통과하여야 한다는 것은 여자인 어머님으로서는 부담스러웠 을 것이기에 곤히 자는 나를 깨워 동행하신 것이다. 하루는 부대 앞 보초가 “누구 얏 서” 하며 심 문하기에 성경찬송가를 보이니 무사통과했다. 전쟁 중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이기에 있었던 일 이었지만 “성경 찬송”이 통행증의 역할을 할 정도로 기독신자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는 사회적 인식이 있었던 것이다. “산저마을”에서 시내까지 가려면 논밭 사이를 15분 이상 걸어서 한국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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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공사(韓國造幣公社) 정문 앞 철길을 지나 부산 서면(西面)에서 온천장 까지 다니는 전차를 동래 역(東萊驛)에서 타고 서면까지 나가 서면에서 대신동(大新洞)까지 다니는 전차를 갈아 타야한다. 지금은 지하철이 있어서 맞지 않는 이야기가 될 수 있겠으나 그때는 집에서 나와 서면으로 왔 고 서면에서 갈아타고 부산진(釜山鎭)역을 지나 경부선의 종점인 부산역 전역(前驛)인 초량(草 梁)역에서 내려 높은 곳으로 계속 올라가면 부산중학교(당시 6년제)가 있고 이를지나 초량저수 지(草梁貯水池)를 옆으로 하고 올라가니 군용천막이 여러 개 쳐져있었다. 여기가 서울에서 피난 온 서울공업 경기공업 성동공업 그리고 배재중학이 연합하여 개교한 곳인데 얼마 전 까지는 중 앙중학도 함께 있었는데 어딘지는 기억에 없으나 보성중학과 함께하기 위해 나갔다고 하였다. 여러 천막들 중에 교무실로 쓰이는 천막에 들어가 보니 낯익은 선생님은 없었지만 한분의 선생님이 어떻게 왔느냐고 물으시기에 성동공업에 다니다 피난 온 학생이라고 말씀 드렸더니 몇 학년을 다녔느냐 다시 물으시어 2학년을 다녔었다고 말씀 드렸다. 그럼 3학년으로 들어가 야 되겠군 하시기에 2학년 다니다 왔으니 2학년으로 들어가야 되지 않겠느냐고 하였더니 그것 은 네 맘대로 하라고 하셨지만 내가 2학년을 선택한 것이 대학의 입학년도가 1955년도가 아닌 1956년도가 된 것이다. 부산의 초량 산꼭대기에서 공부하는 동안 부산의 자갈치 시장 맞은편의 큰 시장 일명 “돗대기” 시장에 큰불이 났었고, 수영(水營) 해운대(海雲臺)에 쌓아 놓았던 탄약이 폭발하는 큰 사고도 있었다. 지금 기억으로 초량 산꼭대기에서 수업중에 멀리 바다 건너 폭발로 인하여 피어 오르는 연기가 보였고 폭발음이 멀리서 은은하게 들려왔던 기억이 난다. 한국농업과학연구소 옆에 있던 원예고등학교는 미군들이 주둔하였고 비교적 넓은 운동장이 있었다. 추운 겨울날 정문 보초에게 “하우스 보이”(House Boy) 취직을 알아보는데 운동장 저 끝에서 내복(런닝)바람으로 이쪽으로 오면서 큰소리로 “아이고 아이고 추겠다”라고 외치기에 영어로 “I go to get a...”라고 하는 것인가 생각했는데 한국 사람들이 말끝마다 “OOO 죽겠다 XXX 죽겠다” 하는 우리말의 흉내 라는것을 알았다. “산저마을”에서 산을 넘어 내려오면 구포(龜浦)가 된다. 이 산이 동래 온천장 뒷산인 금정산( 金井山) 이었다고 생각된다. 선친의 직장을 따라 구포에 삼덕제지공장(三德製紙工場)이 있었기 때문에 구포로 이사하여 구포에서도 기차통학을 한 1년 6개월 정도 하였다. 구포에서 살던 우리 집은 구포다리(구포와 김해를 연결하는) 근처 뚝방 밑에 있었다. 부산 김해 사이를 다니는 시외버 스는 구포다리 건너기 바로 전에 정류장에서 조금 여유있게 정차를 하는데 상인들이 버스 승객 들에게 물건을 파는 소리는 생각할수록 재미가 있었다. 봄철 딸기를 파는 사람은 “내딸 사이소!” 늦 여름 가을철에는 “내배 사이소!” 이는 구포 기차 정거장에서도 차창을 향해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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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지역은 낙동강 하류에 속하기 때문에 서해와 같지는 않지만 조수간만의 차는 있었다. 아 침 일찍 강둑을 산책하면 어부들이 강 중간에 설치해 놓은 그물(정치망 定置網)을 들어 올리는 구경을 할 수 있었는데 그 그물 안에는 온갖 생선들이 가득 잡혀 있었다. 나도 시간이 있을 때면 낚시질을 해 보았는데 기껏 잡히는 것은 망둥어 정도였다. 그런데 하루는 고기가 낚시에 걸린 것 같아서 낚시대를 올려 보았으나 올라오지를 않았다. 계속 올려 보는데 낚시가 바위에 걸린듯 꼼짝을 하지 않기에 낚시대를 뭍에다 놓고 낚시 바늘이 달린 실을 직접 잡아 당겼으나 꼭 바위 에 낚시 바늘이 걸린듯 꼼짝을 안하였다. 얼마동안을 끌어당기고 있었더니 드디어 올라오는데 새끼손가락 보다 더 가느다란 뱀장어가 달려 올라오며 자기 몸을 휘감아 엉기는 것이었다. 낚 시질 하던 제방에서 조금 상류로 걸어 올라가면 작은 하천이 낙동강으로 흘러오는 데가 있었는 데 이른 봄 날 숭어들이 몰려들어 장대 끝에 못을 박아 숭어들을 때려서 잡는 일도 해 보았다. 수복(收復) 후 본인의 고등학교 졸업식에서까지 취주악 대원으로서 악기를 연주하던 나는 천 만 다행으로 고려대학교 상과대학(현재 경영대학)에 입학하게 되었다. 입학 다음해인 1957년 3월 4일자 고대신문 4면 “나의 수험기”란에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라는 제목으로 게재되었던 내용 일부를 회상(回想)해 보려고 한다. 합격의 기쁨을 맛본지가 어제와 같은 이때 벌써 내가 나의 수험기를 쓰게 되었다는 것을 생 각하면 세월의 빠름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고등학교 3학년에 진급하자 전에 갖지 못하던 여러 가지 감정을 갖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대 학입시 문제가 내 전부를 차지했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책임감을 갖게 되었다. 이번 1년간 은 나의 인생항로(人生航路)를 좌우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두려운 생각을 아니 가질 수 없었다. 마치 빗방울이 백두산(白頭山) 위를 하나는 이쪽으로 또 하나는 저 쪽으로 떨어짐으로 말미암 아 나중에는 압록강(鴨綠江)과 두만강(豆滿江)을 형성하듯이 우리도 그러한 차이(差異)를 형성 하는 분기점(分岐點)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중략(中略)... 마침내 시험일(試驗日)이 닥쳐서 시간 시간마다 시험을 보아 나가는데 문제는 나에게 뿐 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어렵다고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거의 전부 완전한 답안들을 써서 제출했 다. 그러나 수학시간 만은 거의 과반수가 백지 정도였다. 나 역시 제한된 시간 내에 쓰기에는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으나 다행으로 평소에 “Slowly But Constantly”의 효과가 발휘되어 입 시 5개 문제를 쓰기는 다 썼으나 나중에 알아보니 완전히 틀린 것도 있었다. ...중략(中略).... 드디어 바라던 참 고대의 학생이 되었던 것이다. 학교에 들어와서 먼저 입학식에 유진오(兪 鎭午) 총장님의 우리학교 유래(由來)와 전통(傳統)과 설립정신(設立精神)을 말씀 하신 것을 듣 고 감개무량하므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우리나라 최고 유일의 우리민족 자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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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하여 운영되는 학교라는 것을 알았을 때 더욱더 노력하여 우리민족을 살리자는 마음이 용솟 음쳤었다. 그리고 매일 학교에 올 때 멀리서 바라다 보이는 석탑(石塔) 이야말로 우리의 하늘을 찌를 듯 한 이상(理想)과 또 믿음직한 그 무엇을 찾을 수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석탑을 바라봄으로서 어떠한 장엄숭고(莊嚴崇高)하고도 성(聖)스러운 감정에 사로잡히면서 한걸음 한걸음 학교로 가 까이 와 교문을 들어서서 높지도 얕지도 않은 향나무로 둘러싸인 트랙을 돌면서 평탄하고도 넓 은 운동장을 바라 볼 때는 이상하게도 이 복잡한 세상에서 얻어 볼 수 없는 고요한 감정(感情) 과 안도감(安堵感)에 사로잡히곤 하였다. (高大新聞 제132號, 단기 4290년 3월 4일 4면, 나의 受驗記欄 拙稿 “천천히 그러나 꾸준하게”) 당시 나의 자란 배경은 연세대학교(延世大學校)가 더 적합 하였지만 연세대학교는 무시험서 류전형만으로 등락을 결정하던 해였기에 나는 공업학교 출신으로 상과대학을 지원하였으니 합격하기 못하였다. 나의 자란 배경을 한국 예비역기독군인회보 제30권-통권-274호- 2014년 4월1일자 拙稿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 p, 21에서 보면 다음과 같다. 기독교의 탄압도 극에 달했던 것으로 짐작되는데 우리 집은 할머니 할아버지를 비롯한 삼대( 三代)가 종로 3가에 있던 묘동교회(妙洞敎會)에 출석하였다. 이 시절 집에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 바위에 손을 놓으시고 기도 하시는 모습의 그림과 ‘밀레의 만종’ 두 가지 명화가 마루에 걸려 있었는데 전자의 그림 중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무서워했던 어린 시절의 기억도 난다. 그 당시 식량이 부족하여 조반석죽(朝飯夕粥)으로 지낼 때 흰 쌀밥을 마음껏 먹어 보았으면 원이 없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기도 했지만 연말연시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몇 가정이 모여 예배도 드리고 쉬쉬하면서 쌀이 부족한 가운데서도 떡을 해서 나누어 먹었었다. 그때는 집에서 떡을 하거나 굿을 하면 순사(巡査, 倭警)가 잡아가는 시절이었다. 우리가 옛날에 출석했던 묘동교회는 현재 강남구 대치동의 신축한 예배당으로 이사하여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종로에 남아있던 문화재적 가치가 있던 건물은 없어졌지만 그 모습은 기억 난다.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의 개념이 적용된 기역자 건물로 강대상을 중심으로 우 측과 좌측으로 남자들의 자리와 여자들의 자리가 구분되어 서로가 보이지는 않지만 강대상은 기 억자의 꼬부라진 중심에 있어서 남녀교인들은 설교자를 다 볼 수 있고 설교자도 남녀 교인들을 볼 수 있는 구조였다. 내 생애(生涯)에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된 것이 있다면 연세대학교에 불합격하여 고려대학 교를 다닌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때 고등학교 졸업 때 까지는 우리 고유의 것은 전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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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신(迷信)이고 낙후(落後)된 것으로 스스로 판단하는 관념(觀念)의 병(病)을 지니고 있었기 때 문이다. 그러던 나에게 국악(國樂)을 비롯하여 우리 역사와 함께한 유구(悠久)한 불교문화(佛敎 文化)에도 관심이 있어 기미독립운동 33人 중 불교계 대표이신 백용성 선사(白龍城 禪師) 탄생 150년을 기념하는 심포지엄(2014년 5월29일 오후 2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개최)에도 참석하였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내가 기독교 신자로 교회 다니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즉 기독교가 일제탄압에 항거하여 3.1운동의 주동적 역할을 했을 뿐 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여러 면에서 우 리나라 근대화에 큰 공헌을 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기독교계가 화합하지 못하고 분열되는 난맥상을 보이기 때문에 신자로서 수치스러워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하는 일은 없게 되었다. 그렇다고 신앙심을 버린 것은 아니었고 계속 교회생 활을 하여 지금은 1942년에 창립된 정릉에 있는 교회의 원로장로(元老長老)로서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 부족함이 없는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입학식(入學式)을 마친 후 공부를 열심히 하려는 생각에서 도서관에 들어가 책을 보고 있는 데 트럼펫(Trumpet)의 소리가 들려와 귀를 기울여 보니 “체리핑크 맘보”(?) 당시 유행하던 곡 의 첫대목이 너무 멋있게 들리는 것이었다. 소리 나는 곳을 찾아보니 당시 교내식당 앞에 군용 천막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였다. 천막 안을 들여다보니 “들어오세요!” 하며 취주악부에 가입할 것을 권유 받았는데 지금 생각하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사람들끼리 완전한 존댓말을 쓰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나는 신입생이니까 당연 선배인 재학생에게 존댓말을 했어야 했지만 선배인 재 학생도 반듯하게 존댓말을 쓰는데 감동하여 취주악부(吹奏樂部)의 일원이 되었고 그 후 2학기 말 쯤 기억이 되는 어느 날 중앙고등학교(中央高等學校) 강당을 빌려서 합창부와 함께 발표회를 갖은 일이 기억되고 사회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하는데도 고연전 때는 지금은 없어진 서울운동 장에 불려 나오기도 했었다. 남북이 분단되어 있다는 이것이 우리에게는 큰 족쇄다. 이로 인해 모든 사람들의 모임인 사회 단체 들은 분열되고 일치되는 일이 어려운 것이다. 비록 사랑을 대 전제로 하는 기독교는 물론 가톨릭계 불교계 등 모든 종교단체들 까지도 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분열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론이 분열되어 제2의 6.25를 부를까 염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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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회고담 |
지난날을 돌아보며 쓰는 편지
물리 60 Cla 김 승 수
Brass Band와 인연을 맺은 건 고2때의 일입니다. 매년 계속되는 교내체육대회에서 피라밋 을 쌓는 종목에서 맨 밑에 깔려 일어섰다 앉았다를 몇 번 반복하면 맥이 빠져 환장할 노릇이었 습니다. 1958년도의 일이라 잘 먹지도 못하는 상태여서 견디기가 어려운 시절이었죠. 그런데 Brass Band 부원들은 체육대회 연습을 안 하는 것이었습니다. 음악 선생님을 찾아갔습니다. “할줄 아느냐?” “왕초보”라고 했습니다. 답은 “No”였습니다. 궁리 끝에 친형이 마침 Y대 영문학 과를 나와 그 고등학교의 영어 선생님을 하고 있어 졸랐습니다. 그 결과가 잘되어 Brass Band 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었습니다. Brass Band는 매년 계속되는 각종 기념식에 참가하여 서울 운동장에서 종로통이나 을지로통을 거쳐 북아현동에 있는 학교까지 행진해 오는 것이었습니 다. 배정된 악기는 Clarinet. 이건 그래도 가벼워서 좀 나았는데 “큰북”이나 “수자폰”은 아주 힘 들어했습니다. 난 다행이라 생각하고 연습을 좀 하긴 했습니다. 그러다 고3이 되어 입시준비를 하는데 담임선생이 입학원서를 안 써주는 것이었습니다. “맨 날 나발만 부는 놈이 어떻게 고대 를 가느냐?” 고대 물리학과를 목표로 했는데 안 써 주는 것이었습니다. 전체 성적은 중간쯤이 었으나 수학만큼은 전교에서 3위권 안에 들었습니다. 그래서 학과를 결정한 것입니다. 이 또한 형님의 힘을 빌어 “일단 원서만 써주게 해 달라”고 졸라서 허락을 얻어냈죠. 그래서 40명 정원 에 4명이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1960년 4월 18일 본관 앞에서 신입생 환영회가 진행되던 중 선 물로 받은 수건을 이마에 두르고 뛰쳐나간 것이 고대의 4.18 민주혁명이 되었습니다. 그날 태 평로의 국회의사당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청계천 4가에서 깡패들의 습격을 받은게 4.19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그날 발포로 타 대학 학생들은 희생자가 많았으나 고대생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1학기를 마치고 2학기에 들어와 휴학을 했습니다. 형의 봉급만으론 등록금을 해 결하기 어려웠습니다. 조카들도 있으니 더욱 그렇죠. 그때 대학생은 18개월 복무만으로 군복 무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등록금 걱정이 되어 육군 간부후보생 시험을 보아 합격하였 습니다. 논산훈련소 전 후반기를 거쳐 광주보병학교에 입교를 하게 되니 그 이듬해 육군 소위 로 임관하여 전방 소대장이 되었습니다. (그땐 ROTC가 없었음) 장교봉급을 저축하여 몇 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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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의 금액을 마련하고 1966년 1학년으로 복학하여 66학번과 같이 다니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강의실에서 옆에 않아있는 학생을 보니 행진곡 악보가 있어 물었더니 “취주악부”에서 트럼펫을 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복학 후 취주악부활동이 시작된 것입니다 정기전은 물론이고 각종 행 사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학교에서 보조금이 전혀 없어 짜장면 값이라도 벌어야했습니다. 예로 “이대 메이퀸행사”, 다방에서 갖는 각종 대학생들의 “미팅행사”, 명절 때 열리는 “지방콩쿨대 회” 등등. 그리고 비정기전 경기에는 많아야 10명 내외, 어떤 때는 2~3명이 나가 응원가의 첫 음만 잡아주는 게 고작이었습니다. 게임이 이기고 있으면 응원은 저절로 잘 되었습니다. 그러 던 중 군복무 중에 모아놓은 등록금은 몇 학기 지나 바닥이 났고, 이걸 해결하기 위해 가정교사 도 해봤으나 등록금 해결에는 미치지 못하여 결국에는 학교의 악기(Electric Guitar 와 Amp)를 빌려 무교동 P요정에도 나갔습니다. “목포의눈물”, “애수의소야곡” 정도만 하면 적당히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등록금도 해결되고 좋아하는 술도 먹게 되어 좋았습니다. 아가씨들이 따라주는 양주를 맥주 그라스로 들이키는데 노래가 끝난 잠깐사이에 논스톱으로 마셔야했습니다. 이걸 두 세잔 들이키면 정신이 혼미하고 어질어질해지는 것입니다. 손님이 없을 때는 선술집에서 한 잔 합니다. 이렇게 해서 입학 후 10년 만에 졸업을 했습니다. 66학번과 같이 졸업했으니 취업 이 쉬울 리 없었죠. 나이도 한계점인 30에 있었으니까요. 마침 동아일보에 고대 행정직 모집이 있어 영어와 논문을 보는데 30대 1의 경쟁이었습니다. 운 좋게 선배님과 교수님의 도움으로 합 격하고, 친정살이가 시작되어 학생과의 써클 담당으로 발령받아 취주악부와 인연을 계속 이어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윤세영 선배님께서 하시던 입학식, 졸업식의 지휘도 인계받아 10년간 을 했습니다. 그동안 음으로 양으로 약간의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교우들로부터 악기 기증을 받아 그걸 면세 처리하는데 무려 36가지의 서류가 준비되어야 했습니다. 그때의 악기는 Trumpet 5개, Trombone 5개였습니다. 어느 해의 고연전 때의 일인데, 항상 열세를 느 끼는 취주악부인지라 상대편 Band를 가서보니 M고등학교 학생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래서 북가좌동에 있는 M고등학교 음악선생을 찾아가 다음해에는 고대에 와서 한 번 해줄 수 있느냐 고 부탁을 했으나 거절당했습니다. Y대와 같은 Mission School인지라 Y대 출신이 많아 어렵다 고 했습니다. 3번을 찾아가 그 학교의 교감선생님에게 허락을 얻어냈습니다. 단 한번만 허락한 다는 조건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대에 와서 고연전을 치렀는데 게임도 이기고 대우도 잘 해주니 아주 만족해하였습니다. 일단 교감선생님과 한번만 하기로 약속을 해서 연락을 안하고 있는데 M고등학교 음악선생으로부터 또 오겠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또 오게 되었고 그 이듬해 한번 더 와서 결국 3년을 연속 오게 되었습니다. Y대는 총학생회를 상대했으나 고대는 학교 측 과 상대를 하니 아주 좋았다고 했습니다. 게임도 이기고 대우도 잘 받았다는 것입니다. 2000년 정년퇴직을 했고 그동안 백수생활을 하다가, 어느 동호회 활동을 하면서 “6사단 위문공연”, “대 덕연구단지 봄꽃축제 참가”, “의정부 장애인복지관 공연” 등으로 세월을 보냈으며 지금은 노원 중계 근린공원 내에 있는 “노원실버카페”에서 월 1회 정도, 대한노인회 도봉지부 노인대학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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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회, 도봉구 산하 경로당 월 6회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노원 실버카페는 왕년의 프로들이 출연하는데 매일 오후 3시~4시 공연이 있습니다. 약 60개 팀이 활동하고 있는데 여기에서 상 위권에 들어가면 월 1회 정도 공연을 합니다. 제가 알토 색소폰, 다른 한명이 테너색소폰, 가수 2명, 하모니카 연주단 7명과 함께 출연하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지난날들을 잠깐 돌아봤습니 다. 비리가 만연해 있는 세상에서 그래도 뽕짝을 읊어가며 살아가는 것이 큰 다행이라고 생각 합니다. 100세가 청년인 요즘 건강하시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물리 60 김 승 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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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회고담 |
어느 나팔쟁이의 즐거운 추억
산업공학 68 Tbn 조 병 오
그동안 인생을 살면서 기억될만한 많은 일 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학교 다닐 때의 취주악부(고교시절은 밴드부, 지금은 관악부) 동아리 활동이다. 고교 2년, 대학에서 4년 모두 6년간 공부만 해야 할 시기에 취미 생활을 한 것이니 재미는 물론이고 청년기 심성을 가꾸는데 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학 졸업 이후 악기라곤 기타(guitar)를 잡아본 게 전부 였던 나로서는 항상 취주악부 시절이 큰 추억이 된다. 마침 “고대 관악부 95주년 기념집”을 만 든다니 기억을 더듬어 그리웠던 그 시절로 돌아가 보련다. 어디서부터 무슨 이야기를 할까 자 료도 없고 기억도 가물가물하여 두서없는 글이 될 듯해서 걱정이 앞선다. 나는 고등학교 1~2학년때 밴드부에서 악기를 다루어 본 인연으로 고대 입학 후에 취주악부 동 아리방을 찾게 되었다. 악기 다루는 실력이 엉성해서 퇴짜를 당하지나 않을까 내심 걱정했는데 대환영을 받았다. 내가 전공(?)한 트롬본 주자가 필요하고 운동장에서 가장 효과가 좋은 악기 이니 열심히만 하면 된단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나의 고대 취주악부 동아리활동은 학교 다니 는 4년 내내 계속되었다. 68학번 6~7명의 부원들 중 나는 같은 공대생이었던 김기주(트럼펫), 서재하(크라리넷)와 많 은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악기 다루는 실력이 매우 우수하여 윤세영 지도교수나 선배들 로부터 칭찬을 받곤 했다. 나보다는 동아리에 나오는 시간이 절반밖에 안 되는 듯 했음에도 불 구하고 취주악부 내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잘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이제 당시 동아리활동을 살펴보고 이후 3명은 어떻게 음악을 가까이 했는가를 정리해보고저 한다. 고대 취주악부의 역할은 뭐니뭐니 해도 가을정기전에서 응원을 리드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운동장의 위치가 달라졌다든지, 응원방법의 디지털화, 참여자들의 태도 등 현대화한 응원방법 때문에 밴드부의 역할이 많이 축소되긴 했지만, 당시에는 취주악부의 리드 없이는 응원이 될 수 없을 정도로 그 필요성은 절대적이었다. 특히 음악대학이 있는 연세대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밴드부와 맞서려니 여간 열심히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운동장에서 크고 우렁차게 연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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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은 물론이고 경기가 끝난 후에 벌이는 거리행진에서도 기마병 다음으로 취주악부(특히 트롬 본은 제1열)가 중심역할을 했으며 많은 사람들의 구경꺼리가 되었던게 기분 좋았다. 몇년 전에 정기고연전을 보러 잠실운동장을 찾은 일이 있었다. 옛날의 아날로그적 추억의 모습은 사라지 고 디지털 음향기기와 영상의 발전으로 대치되었음을 볼 수 있었다. 초가을 정기고연전을 위하여 취주악부는 여름방학 때부터 분주해진다. 합숙훈련(68~69년 미사리와 덕적도, 71년 대천에서 실시)으로 당해년도 레퍼토리를 연습하게 된다. 기초가 부족 한 나의 경우에 다른 부원들보다 더 열심히 했고 선배들에게 개인교습을 받았다. 덕적도 합숙 때에는 태풍을 만나 몇 일 더 묵는 바람에 연습을 더 많이 할 수는 있었지만 배가 고팠던 것도 생각이 난다. 이렇게 집중훈련 뒤 정기전까지의 약 2개월간은 소위 동아리방으로 준비된 판자 촌에서(당시 여학생회관을 지나 중앙산업과의 경계선 근처) 더 많은 인원이 모여 화음을 맞추 고 부족함을 보충하였다. 정기고연전 얼마 전부터는 기수단과 호흡을 맞추기 위해 합동훈련을 했다. 기수단에는 예쁜 여학생들이 많았던 것 같다. 지금은 여학생 비율이 삼분의 일이나 되지 만 당시 68~69학번은 여학생이 각 학번별 50여명 내외뿐이어서 전체 여학생의 절반 가량이 기수단으로 징집(?) 된 듯했다. 경기장에서 기수단과의 합동응원은 신바람이 났으며, 경기에서 이겼을 때에는 더욱 활력이 생겨 힘이 드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이때 듣기 좋은 말 두 가지가 있었다. 응원석 반대편에 우리 악기소리가 잘 들리는지 정탐을 갔던 선배가 “조병오 트롬본 소리가 잘 들리더라”와, 여자 친구한테 듣는 ‘도날드 덕’(연주 후에 입이 툭 튀어나오는 현상)이란 호칭이었다. 당시의 연주곡은 교가와 응원가 외에 ‘Sloop John B’, ‘You are my sunshine’, ‘희망의 나라 로’, ‘Cotton Field’, ‘바나나 보트 송(Day-O)’, ‘당신의 뜻이라면’ 등과 많은 행진곡을 연주한 것 이 생각나는데 지금 들어도 참 좋은 곡이구나를 느끼게 된다. 갈고 닦은 실력을 틈틈이 점검하는 기회도 있었다. 정기전 외에 춘계 추계로 많은 운동경기 가 있게 마련인데 취주악부는 실력을 다듬고 운동장에 간다. 당시 아무리 늦거나 좌석이 없어 도 취주악부 악기를 들고 가면 공짜로 좋은 자리에서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친구들로부터 악기 를 빌려달라는 요구가 있어서 악기의 속과 겉을 따로 들고 들어갔던 기억이 난다. 그밖에도 학 교에는 크고 작은 행사가 많이 있었다. 5월 개교기념일의 행사, 조지훈 교수님 장례식, VIP 내 방행사 등 그때마다 취주악부가 동원되었다. 3학년 때로(1970년) 기억하는데 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개최된 비음악인들의 음악 경연대회에 참가하여 <1970년 9월 23일 제1회 전국 대학생 문화예술 축전 음악 합주 부문> 대 상을 수상한 일이 있다. 당시 음악을 전공하지 않는 사람들이 고대 취주악부처럼 대규모로, 더 욱이나 잘 훈련된 연주 팀은 없었다는 것이 후일담이었다. 생전 처음 금남의 집 이화여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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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선을 치루고 당시 한국 최고의 공연장에서 본선 연주를 했다. 시쳇말로 시골 촌놈이 ‘꿈의 연 주회’ (유명 음악인이 메트로폴리탄에서 하는 연주와 버금감)를 한 것이다. 당시 연주곡은 “서곡 십자훈장”으로 지금도 음악제에 자주 등장하는 좋은 곡이었다. 나는 크게 연주하는 것에는 자 신이 있었지만 앙상블 화음을 위해 많은 연습을 했던 것이 생각나며, 그때 받았던 상패는 내가 졸업 이전까지(72년)는 취주악부 동아리방에 걸려 있었는데 지금도 있는지 궁금하다. 한번(1971년)은 본관 인촌동상 앞에서 김상엽 총장님을 모시고 취주악부 퍼레이드를 한 일 이 있었다. 나는 입고 갈 흰 와이셔츠가 없어서 삼촌 것을 빌려 입고 행사를 치른 기억이 난다. 5월 5일 개교기념일에 학교 설립 66주년을 기념하고자 만든 자리에서 보통 군악대나 의장대에 서나 할 수 있을 정도로 무리한 일이었는데 당시 이성규(69학번) 취주악부장의 의지와 여러 부 원들의 “해보자!”라는 의욕으로 해냈다는 것에 가슴 뿌듯해진다. 당시 야외 퍼레이드 연습장의 시끄러움으로 도서관과 여학생회관으로부터 항의를 받고 조심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취주악부는 군대처럼 빳따를 때리는 일도 있었다.”고 이재봉(65학번) 선배께서 말 씀해주신다. 한 두번 있었던 개그 수준의 사건이었겠지만 화음의 중요성과 연주의 집중을 위해 애쓴 사례로 보아야겠다. 이 선배님께서는 70년도쯤일 거라시면서 악기 분실사건으로 취주악 부의 위기가 있었으나 학교의 지원으로 새로운 악기를 보충하여 더욱 더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 다고 하신다. 선배께서 입학한 65년도에는 취주악부가 유명무실 했었는바, 제3공화국시절 집 회를 억제하였기에 반세기 가까이 지속되어왔던 취주악부 활동이 소원했었던 시기였단다. 선 배는 이것을 윤세영 교수님, 김승수 선배님등과 힘을 모아서 신입회원을 모집하고 취주악부 활 동을 재건하느라고 힘쓴 것이 보람 있었다고 회고하신다. 이재봉, 장윤철, 윤춘식, 장강재, 안재명, 김두한, 안재창, 이성규..... 즐거웠던 취주악부 시 절의 선배, 동료들인데 반세기 가까이 지난 뒤에 그 이름들을 불러보니 감개무량하다. 이제 기 억의 한계로 당시의 상황은 여기서 접고 우리 세 사람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먼저 서재하 군은 연주 실력이(클라리넷) 출중하여 취주악부장까지 역임하면서 고대 취주악 부를 크게 발전시킨 리더였으며, 1971년도에 김두환과 전국 대학생 보컬경연대회에 나가서 좋 은 성적을 내기도 했다. 1972년도에 졸업 한 후 군(학사장교)복무를 마치고 제대한 뒤 25년간 건설회사에 다니다 은퇴하였다. 그때 유행했던 색소폰 연주에 편승하여 다시 악기를 잡고 지 금까지 취미로 하고 있으며 전공한 토목보다 나팔이 흥미있고 즐거웠기 때문에 세월이 많이 흐 른 지금까지도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단다. 특히 그는 몇 년 전 내가 68동기회장으로 취임할 때 에 색소폰으로 휼륭한 연주를 해주어서 옛날 취주악부 시절의 향수를 물씬 느끼게 해주었다. 김기주 군은 학교 졸업 후 일찌감치(75년도) 호주로 이민을 갔다. 그는 음악에 대한 열정을 잊 지 못하고 좋은 오디오 시스템과 트럼펫 악기를 수집하는데 열심이었으며, 얼마 전(6월초)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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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청으로 호주 방문시 들른 그의 집에는 음악의 냄새로 가득하였다. 여러 해를 거쳐 수집한 하 이엔드 음향기기 시스템들은 원음에 가까운 소리로 잘 감상할 수 있도록 최적의 조합이 되어 있 었고 그중 한 조합으로 맞추어진 포칼 스피커와 크렐 엠프 셋트를 우리가 초대된 집에서 감상 할 수 있었다. 아직도 취미를 살려 틈틈이 트럼펫 연주를 한다면서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멋지게 부는 모 습을 보면서, “신선이 바로 여기있구나!” 하고 느끼게 해주었다. 최근에 좋은 트럼펫을 하나 더 장만하였다고 즐거워하면서, 시간 부족으로 연습은 안하고 악기 탓만 하는 자신의 핑계가 자꾸 평판 좋은 트럼펫들을 충동 구매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했다. 나는 졸업 후에 군대 보충대(춘천)에서 군악대(2군단)에 차출될뻔 하다가 빠진 후로 지금까지 악 기를 한 번도 잡아본 일이 없다. 그때 군악대에 갔더라면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나는 얼마 전에 예비며느리를 보게 되었다. 아들의 사전 이력 설명에서 음악을 좋아하는 아가 씨란다. 무조건 오케이 하고 상견례를 하였다. 나의 예측은 틀리지 않아 마음에 드는 아가씨였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마디로 “세상을 여유롭고 슬기롭게 살아간다.”라고 말하고 싶다. 현대에 들어와서 물질적으론 풍요롭지만 정신적, 문화적으론 많이 피폐해졌다. 음악을 좋아 하는 사람들은 이와 같이 험악하고 극복해야 할 것이 많은 복잡한 세상을 원만히 잘 풀어가는 삶을 사는 지혜를 음악을 통해서 얻는 듯하다. 고대 취주악부에서의 사례를 살펴보면 김중조 선배(64학번)와 이성규 군(69학번)을 들 수 있겠다. 우리 세 사람이 고대 취주악부에서 “나팔 쟁이”를 한 덕분에 지금까지 세상을 잘 살아왔으며 원만하고 즐거운 사회생활을 하고 있음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 68년 정기전 모습(효창운동장) (재하, 기주, 내가 함께 보이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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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동장에서 한컷
▲ 지금도 트럼펫을 열심히 연주하는 기주
▲ 60대 중반이 넘어 색스폰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는(재능봉사) 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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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회고담 |
고대 밴드부와의 추억
산업공학 69 Sax 이 성 규
고대 밴드부 시작의 말 내게 있어 고대 밴드부의 시절은 함부로 논할 수 없는 값진 추억이다. 생각해 보는 것마저도 설레는 마음이 앞서게 된다. 그래서 일 년 전부터 부여받은 이 거대한 주제를 어떻게 표현할까, 어떻게 써 나갈까 전전 긍긍만 하다가 시간을 다 보내고 마감이 다 되어간다는 후배의 독촉을 받고서야 공부 못하는 학생이 시험 준비하듯 드디어 다급한 마음으로 책상 앞에서 워드를 열었 다. 생각해보면 40여년이 지난 오래 전의 일들인데 어쩐 일인지 몇 달 전 있었던 일처럼 생생한 현실로 내게 보이는 것은 왠일일까? 보고 싶은 얼굴들이 스쳐 지나간다. 하나같이 정답고 존경 스럽고 만나면 기쁘기만 했던 그 얼굴들 경영학과에 다니는 김**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후배 색소폰을 잘 불지는 못했지만 배우려고 밴드부에 찼아왔단다. 행사때가 되면 인기있는 알토 색 소폰이나 테너 색소폰은 인원이 충분했다. 그러나 바리톤 색소폰은 꼭 필요하지만 불 사람이 없 었다. 그것을 안 그 후배는 무겁고 힘들고 악보가 재미없는 바리톤 색소폰의 고정 주자가 되어 주었다. 필요할 때면 어김없이 핑계대지 않고 꼭 나타나 주었다. 정말 보고 싶다. 그런 분들은 또 있다. 큰 수자폰이나 튜바를 솔선하여 메고 행사에 참여한 선배들, 응원 중에 응원 열기에 쉴틈 없이 힘든 고음 연주를 계속해야하는 트럼펫 주자들(김완기, 이근식 등) 힘들 어도 그래도 연대 밴드 보다는 우리가 더 많이 응원가를 불렀다. 그 열정들이 지금도 살아 있는 듯하다. 그래서 밴드부의 추억이 값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부끄러운 일이지만 한때 도서관에서 공부를 계속 해야 하겠는데 집안은 어려웠 고 식사할 돈이 거의 없었다. 트럼펫을 부는 경영학과의 김 진출 형을 도서관에서 만났다. 조금 의 돈을 부탁했다. 잠시 망설이더니 지갑에서 한달 정도의 점심값을 내어 주었다. 내게는 정말 큰 도움이었다. 본인도 좀 경제적으로 힘들었으리라 생각 되었다. 이게 보통의 선후배의 정이 겠는가? 형 어디계십니까?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그 값진 정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 함부로 이야기 꺼내기 힘든 보물과도 같은 기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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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대학 문화축전 이야기 이젠 아주 자랑스러운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1971년도로 기억된다. 초여름 어느 날 학교캠 퍼스 광고란에 전국 대학 축전을 알리는 광고 포스터가 붙었다. 평소 고연전 게임이 있어 응원 전을 나가게 되면 늘 교내 곳곳마다 서있는 광고판에 매직으로 광고 포스터를 여러 장 만들어 서 붙이고 다녔기에 늘 지나다니며 광고판을 주목하고 다니는 습관 때문에 대학축전 포스터를 바로 발견할 수 있었다. 처음 순간에는 전국 대학에 음악하는 단체가 정말 많을 것 같고 그들의 실력은 막연히 우리 수준보다 아주 높은 수준이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냥 지나쳤다. 전국에 멋있고 잘하는 음악 모 임이 얼마나 많겠는가? 우리 밴드는 주요멤버 몇 명은 고등학교 때부터 나팔을 불었지만 그 나 머지 부원은 실력이 뻔하지 않는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점점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 상금 액수도 꽤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음대전공생은 참여 할 수 없고 합주부분은 우리 같은 밴드에 딱 어울리는 시합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상 등수 3등 안에만 들 수 있으면 정말 해보고 싶은데 그 정도는 할 수있지 않을까? 잘하 면... 특히 4~5명이 기타치고 노래하는 보컬팀 보다 우리 밴드는 얼마나 멋진 합주팀인가? 하 는 생각이 떠올랐다. 좋다! 3등 시상 안에 들지 못해도 이번에 참가하여 실력향상과 단합의 기 회로 삼고, 내년에라도 열심히 하여 좋은 밴드, 유명한 밴드로 발전 하여보자. 비전공 음악인들 이 모여 모교의 명예를 살리자. 이런 생각들이 꿈틀거리며 점점 커지는 것이 아닌가? 좋은 성과 를 거둘지는 미지수였다. 나가서 창피를 당할 수도 있고 멋있다고 박수갈채를 받을 수도 있었다. 후배들은 무조건 부장인 내 말에 따라주었고 몇몇이 주동이 되어 행동이 시작되면 선배 형들 은 이것저것 안 따지고 도와주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맡아주었다. 일단 출정을 결정 하고 나니 마음은 이제 한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저 열심히 연습하는 것 이었다. 아무도 그 생 각밖에는 없는 것 같았다. 올해에도 첫 행사인 5월 개교기념식에서 감히 힘든 밴드 퍼레이드를 잘 해내지 않았는가? 여름합숙을 통하여 마음이 잘 단합되어 있지 않는가? 우리 부원들은 정말 열심이었다. 온몸의 힘을 다 소진 시키는 고연전 응원에서 다져졌을까? 여러 번의 합숙 훈련에 서 다져진 한마음의 단합된 단체정신이랄까? 지동직 선배와 또 한분은 수자폰 주자가 필요하다 는 말에 주저하지 않고 나와서는 힘들고 크고 재미없는 수자폰을 메고 연습에 빠지지 않았고, 거기다 악기를 번쩍 번쩍 거리게 닦고 닦았다. 번쩍거리는 양쪽의 수자폰과 트롬본 유포니움은 소리도 듣기 전에 무대와 관중을 제압했다. 이화여대 강당에서에서 열린 예선결과 우리는 예선 통과에 성공했다. 곡명은 십자훈장 서곡이 아니면 시인과 농부였던 것 같다. 예선전 무대에 올 라온 팀들을 보니 우리는 정말 멋있는 팀이었다. 연주인원이 우선 압도적인 30여명이 넘었고 장비로 보면 누가 보아도 시선을 끌기에 충분한 번쩍이는 나팔들, 거기에 소리는 좀 웅장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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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장한 십자훈장을 연주하고 나서 혹 다른 대학에서도 브라스밴드가 나올지 몰라서 살펴보았 는데 전무 했다. 그저 클라리넷에 첼로 그 정도의 실내악단 아니면 4~5명이 기타치고 노래 불 러봐야 우리들 트럼펫 2~3명보다 소리가 작았다. 한 달 정도 뒤에 시민회관 대강당 무대에서 본선이 치러졌다. 시민회관(지금의 광화문 세종 문화회관) 무대는 정말 크고 웅장했다. 무대가 크면 클수록 우리는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고연 전 운동장 응원을 통해 키워온 실력이 유감없이 발휘 되었다. 주위에서 아무리 난리 응원을 해 도 연주를 틀리지 않는 집중력, 흔들리지 않는 배짱 등이 이 조용하고 엄숙한 무대를 우리의 놀 이터로 만들었다. 우리 서로의 우렁찬 나팔 소리는 우리끼리 서로 더욱 힘을 북돋워 주었다. 합 주의 힘이 그렇듯이 우리는 일등 대상을 차지하였다. 사실 음악 비전공자로써 우리 밴드에 대 적할만한 모임이 전국 대학에는 없었다. 우리는 가장 멋있는 대학 밴드가 되었다. 얼마 후 세종 문화회관에서 치러진 시상식에 69동기인 드럼 김지원(독문과 69)와 같이 참가하여 수많은 팀 들 앞에서 대상을 수여받았다. (전국대학 문화예술축전이기 때문에 문화 관련 여러부분의 대회 였고 여러 부분의 대상이 있었다) 모처럼 양복을 차려입고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그게 마침 아직까지 본 인이 소장하고 있어 이번에 올리게 되었다. 상장은(상패는 학생처 어디에 보관한 것 같다.) 밴 드부실 벽에 높이 걸어두었는데(본인이 학교에 못간지 40여년이 지난 관계로) 그 후 어디에 보 관되어 있는 지 알 수 없다. 그 대회는 본래 매년 계속 되기로 돼있었으나 다음해부터 열리지 않 았다. (아마 정치적 목적으로 시작된 것 같았다.) 그해 주관은 한양대학교가 맡아 시행되었는데(다음해부터는 돌아가면서 맡기로 한 것 같음) 상장은 타고 상금은 다음에 곧 준다고 해서 실망했다. 여러번 상금 지급을 미루긴 했지만 꼭 주 겠다고 약속을 해줬다. 겨울이 다돼서야 상금을 타오게 되었는데 대개 다들 방학이라서 연락들 이 안되고, 행사 때 지불한 경비나 식대 등을 정산한 후 행사 식대 등으로 쓴 것 같다. 시간이 지난 지금 상장은 없어졌겠지만 전국에서 우리 밴드부 만큼 실력있고 멋진 단체가 없 다는 사실은 이미 오래전 그때 증명되었으니 자부심을 가져야 될 줄로 믿고 싶다. 자랑스러운 고대 밴드여! 오늘도 이 전통은 후배들을 통하여 계속 이어져 흘러가고 있기를 빈다. 그해 겨울 방학이 시작될 때 즈음해서 학생처 지도 선생님인 김승수 선배가 늦은 나이로 대구 에서 결혼을 하셨다. 밴드부 지도교수님으로 선배님인 윤세영 교수님(트럼펫)도 계셨지만 학생 처 교직원으로 직접 일들을 도와주시는 선배인 김승수 선생님(테너색스폰)이 계셨기에 우리 밴 드부는 더욱 더 활동적일 수 있었다. 내가 선거를 통해 3학년 부장으로 결정된 날 김승수 선생 님은 이제 밴드부장에게도 근로 장학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발표하셨다. 지금도 있는 지 모르지만 그때부터 밴드부장에게 근로 장학금이 지급되기 시작하였다. 참으로 우리에게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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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 그렇게 고마운 김승수 선생님의 결혼식에 부원 중에 아무도 참석하 지 못하여 축하를 드리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도 정말 송구스럽다. 지금도 김승수 선생님을 뵐 때마다 미안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당시에는 통신 사정이 좋지 않아 지금과는 달리 아쉽게 도 방학이 시작되면서 부원들 사이에 연락할 수가 없었다. 요즘에는 우리사회에 색소폰 동호회가 동네마다 있는 것 같다. 한국인들 사이에 요즈음 유 행하는 색소폰 동호회가 여기 중국 땅 심천에도 있다. 이곳에도 나를 포함하여 한국인 12여명 정도가 모이는 색소폰 동호회가 있다. 매주 토요일 오전 9시 반쯤 시작하여 같이 나팔 불고(주 로 개인 유행가 연습) 대화하며 교민사회 정보도 교환하고 색소폰 지식도 나누며 즐겁게 담화 하며 즐거운 시간을 같이하며 점심식사를 같이한다. 이곳 심천은 중국의 남쪽 홍콩과 붙어있는 개혁 개방 1호 도시로서 상해와 맞먹는 중국에서 1~2위를 다투는 부유하고 앞선 도시이다. 특 히 녹화환경이 잘되어 있다. 집에서 가까운 향미후라는 거리에 중국인 문화센터가 있어서 이곳 을 우리 동호회가 무료로 대관하여 이용하고 있다. 문화예술을 중요시하는 공산당이 문화센터 에 시설을 잘해놓고 운영하고 있다. 12월이 되면 1년에 한 번 하는 동호회원 자체 발표 연주회 가 있다. 그런대로 지난 일년 동안의 발전한 연주 실력을 무대에서 발표한다. 또 가끔 교민 행 사에 참가하여 색소폰을 연주한다. 지난 10월에는 심천 시내 한중 교민 문화 교류의 행사가 있었는데 동원 인원도 많았고 무대 도 화려한 꽤 큰 행사였다. 광주에 있는 광주 총영사가 개막 연설을 했고, 사회는 한국에서 모 셔온 고대 선배 뽀빠이 이상용 선생이 보았다. 거기에서 본인이 그동안 갈고닦은 실력을 유감 없이 발휘하여 많은 찬사를 받았다. 중국제 알토 색소폰을 쓰다가 이번에 거금을 들여 셀마 색소폰으로 바꾸었다. 한 주일 동안 힘든 일상 중에서도 이 색소폰 모임이 즐겁게 기다려진다. 색소폰은 내게는 참으로 아내 다음 의 내 인생 반려이다. 동호회에 모인 우리를 보고 교민 회장이 지나가면서 한 말이 생각난다. “인생을 가장 행복하게 사는 분들 이 여기 계시다.”고... 밴드부에서 보낸 시간들이 내 생활을 얼마나 풍성하게 만들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나게 한다.
을왕리 여름 합숙 이야기 71년 부장으로 바쁘게 지내는 중 여름방학을 맞아 대천으로 여름 합숙을 떠나게 되어 우선 대형 호화 고속버스를 1대 대절했다. 무척 안락하고 거의 반쯤 들어누울 수 있고 창문은 크고 고급스럽게 칼라 처리가 되어있었다. (요즈음의 버스는 대부분 다 그렇겠지만) 버스 안에는 가 져갈 온갖 장비들을 모두 챙겨 실을 수가 있어 무척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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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학년 때는 여름 합숙을 을왕리로 갔었는데, 그 무거운 대형 행사용 천막을 폴대까지 메고, 악기는 손에 들고 버스타고, 인천행 기차타고, 배 타고, 작은 용달 부르고, 지고 메고 그 렇게 다녀왔었다. 대중교통으로 갔던 것 보다 얼마나 편한지 왕자가 된 기분이었다. 일 학년 때 의 을왕리 합숙훈련은 또 할 이야기가 많으니 조금 후에 쓰기로 하자. 버스 승하차 문 쪽으로 빨간색 프랑카드를 아주 크게 주문해서 붙였다. 고대 ‘취주악부 여름 합숙훈련’ 보는 이들에게 뽑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일부 부원은 너무 티내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으나 해수욕장 합숙에 마음들이 한없이 들떠 있었다. 대천합숙소는 새로 개장된 지 1년 정 도 되었는데, 새롭고 깨끗하고 잘돼있었다. 고교시절 매년 대천 해수욕장은 와 봤지만 이름 있 는 대학들의 학교 별장 숙소에 있는 사람들이 무척 부러워 보였다. 이젠 우리도 아주 근사한 현 대식 숙소에서 나팔을 들고 연습하고 시간을 즐길 수 있게 되어 연주 훈련도 열심이었지만 힘들 어 보이지 않았다. 저녁이면 거의 외부 여학생 초청 캠프 화이어 행사가 열렸다. 물론 나팔 개인 솔로연주도 있 었으나 별로 많지는 않았던 느낌이다. 합주를 하다가 개인 솔로하면 좀 단조롭고 싱겁게 느껴 졌던 것 같다. 큰 숙소 건물 앞 마당에 전기불을 끄고 장작을 피우고 시원한 밤 바닷바람에 캠프 화이어는 참 낭만적이었다. 중앙 3층 옥상에서 마당 캠프화이어 장작더미까지 철사와 실로 연결 하고 석유를 적셔 놓고 대기했다. 캠프시작은 불이 꺼지며 시작되었다. 모든 전기불이 꺼지고 잠 시 후 조용한 분위기 속에 옥상에 숨었던 부원이 불을 점화하면 갑자기 어둠 속에서 불이 하늘로 부터 내려와 기름 부운 장작에 확 불이 붙었다. 그리고 팡파레가 연주되었다. 지금은 이런 퍼포 먼스가 일반적인지 모르겠으나 그때만 해도 내가 보기엔 가히 가슴 설레이는 이벤트였다. 놀기 좋아하는 부원 중에 누가 어떤 행사에 참가했다가 배워온 것 같았다. You Tube 싸이트는 없었 을 때이지만, 파티의 내용은 워낙 기발한 아이디어가 많고 주위 분위기나 환경이 어울려져 새 벽 2시, 3시가 되어야 아쉬워하며 끝낼 수 있었다. 초대된 손님들은 주로 낮 시간에 우리 숙소를 여러번 왔다갔다 자꾸 지나다닌 외모 예쁜 여학 생들이었다. 그러나 꼭 예쁜 학생만 온 것은 아닌 것도 같았다. 파트너가 없으면 파티에 참석하 지 못한 채로, 수박을 잘라 나르거나 막걸리를 사서 운반해오고 막걸리 잔으로 양은그릇을 조 달하고 막걸리 대야를 운반하고 장작에 기름을 붓고 전등 스위치를 끄는 등 잡다한 일을 책임 져야하기 때문에 파트너 확보는 필사적일 수 밖에 없었다. 하루 종일 여기저기 다니면서 헛 삽 질을 한 부원은 결국 시간이 다되어서야 급하게 숙소 앞에 서성이는 별 볼일 없는 학생을 손잡 고 입장해야 하고 그녀가 같이 데려온 그녀 친구는 정말 아니올시다 였지만 다급한 나머지 친 구 부원에게 부탁부탁 오늘 하루만 조건에 무슨 프리미엄까지 붙여서는 파트너로써 주기를 성 공 시키니 미인들도 많이 왔지만 무슨 사연들인지 그렇지 못한 여학생도 여럿 있었다. 소문이 돌았는지 대천에 온 여학생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 합숙소 앞을 서성거리며 지나다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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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기도 하였다. 내노라 하는 미모의 학생은 우리 저녁시간 캠프화이어 행사를 대부분 알고 있 었다. 어제는 아주 멋 진 파트너를 데려왔던 부원이 오늘 파티에 참석치 못하고, 신고도 없이 불참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제 파트너는 뒤로 확보해 놓고 더 매력적인 학생을 포섭하여 성공 적으로 데려왔으나 사인이 맞지 않은 다른 부원이 숨겨놓은 그 학생을 친구를 위해 다시 데려 오니 입장이 서로 곤란하여 둘 중 누가 먼저 자퇴하기를 기다리지만 어떤 여학생이 나타나지는 자기를 위해 쉽게 돌아가겠는가? 결국 기다리다 파트너를 구하지 못한 다른 부원이 자기를 초 청할지 모르는데 결국은 밤새 나타나지 못하고 자기의 진실하지 못한 생활 태도를 반성하는 일 이 하루에도 몇 명씩은 있었다. 멀리보이는 캠프화이어 불빛만 쳐다보며 맴돌다 시계만 들여다 보고 밤이 깊어져버린 불쌍한 부원도 한 둘이 아니었다. 애석한 사연들은 그 외에도 얼마든지 있었다. 처음 날에는 파트너를 못 구할까 불안하여 다 른 부원이 단체로 낚아 올린 5명 중 4~5순위 한 명을 마지못해 배정 받았는데, 저녁이 다되어 서 자기도 낚시를 해보니 쉽게 월척이 걸리지 않는가! 4~5명이 단체로 오는 데 치사하게 자기 만 퇴자를 놓을 수도 없고 월척은 내일 서울로 떠나는 날이 캠프화이어가 얼마나 지루했을까? 여름 대천 합숙이 거의 끝나갈 무렵 누군가를 통해 연주 의뢰가 들어왔다. 고대 선배가 운영하 는 대천 해수욕장 제일 중심의 5층짜리 건물에 있는 아주 큰 식당이 있는데 그 건물 5층 옥상에 서 30~60분 정도 합주를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동안 합숙훈련으로 다져진 실력들을 발휘하 고픈 부원들은 연주를 하고 싶어했다. 거의 황혼이 저무는 해변을 바라보며 우리는 평소 연습해둔 곡들을 5층 건물 옥상에서 연주 했다. 거리가 온통 우리 밴드연주로 쿵쾅거렸다. 양쪽의 대로변에선 건물을 통하여 울려 퍼지 는 우리연주는 대천해수욕장 중심가를 완전히 흔들어 놓았다. 건물 아래에서는 많은 군중이 걸 음을 멈추고 옥상을 올려다보며 박수로 찬사를 보냈다. 군중은 점점 많아지고 갈줄 몰라했다. 하기야 놀러온 사람들에게 이만한 이벤트를 어디 가서 보겠는가? 우리 연주가 다 끝났어도 그 들은 흩어지지 않고 서성거리면서 악기를 들고 돌아오는 우리 뒤에서 자기들끼리 이야기한다. 고대 뺀드부래! 그때 그 옥상 연주의 기억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일 중의 하나다. 부원 중에 생물학과에 김중식이란 동기(69학번)가 있었다. 구라당 당수였다. (구라는 요즈음 말로 헛된 만담 내지는 꾸밈말 거짓말의 의미를 가진 당시 유행어) 구라 잘 푸는 학생이 요직을 차지하고 제일 잘 풀어 잘 웃기는 김중식이 대장 즉 그때 유행하는 정치풍자 용어당의 최고 권 력자 당수였다. 그들의 실력은 대단해서 나중에는 10명 가까운 당원이 그를 추종했다. 당비도 걷는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잘 모르겠고 어찌되었든 그들과 같이 있으면 누구도 시간가는줄 모르고 즐겁게 웃고 깔갈대는 것이었다. 특히 밴드부내나 외부 손님으로 좀 새로운듯한 새침한 여학생이 있으면 그들의 기지는 초비상의 재치를 발휘했다. 분위기가 그렇게 재미있으면 새침 하던 여학생이 재치가 생기고 재미있는 사람으로 변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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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이면 즐거웠다 대천 해수욕장에서도 그들의 유머 발표 무대는 더욱 더 빛이 나서 파티가 끝나도 그들의 전 당대회는 끝날줄 모르고 인기 있었다. 남의 파트너 여학생들도 파트너와 헤어지건 말건 자기들 숙소로 갈줄 몰라했다. 구라당이 모이면 합숙소 한바퀴를 한 열명이 한줄로 서서 수영복 차림 으로 냄비나 반합을 들고 수저로 드럼 장단을 치며 고고 스텝을 밟으며 합숙소 전부를 한바퀴 도는 것으로 시작했는데 당시 김 당수의 별명이 닭 머리(대가리)였는데 하루는 부식으로 준비 한 털 뽑은 닭을 사람마다 들고 행진을 하니 모두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김 중식 당수의 집이 장위동 쪽이고 다들 비슷해서 시내버스에 같이 몰려갈 때가 여러번 있었는데 맨 뒷자리에 자리 잡은 그들이 이야기를 시작하면 처음에는 좀 시끄러운 듯한 소리에 다들 시큰둥하다가도 조금 만 지나면 운전기사부터 웃기 시작하여 시내버스에 탄 사람들이 모두 다 같이 웃고 귀를 기울이 면서 재미있어했다. 다들 공대 앞 안암동 로타리에서 우르르 내리면 버스 승객들이 서운해 하 며 손을 흔들곤 했다. 유머에서도 품위와 정치적 풍자가 끼여 있었고 늘 웃기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단골 메뉴도 여러가지 개발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제 앞에서 잠시 이야기 되었던 1학년의 여름 방학 을왕리 여름 합숙 이야기도 좀 해야 할 것 같다. 1학년 여름방학이 되었지만 가끔 이야기되던 여름합숙 이야기 없이 그냥 방학을 맞았 다. 어느 날 밴드부 사무실(윤세영 교수님이 박물관을 관장하시며 밴드부도 관리하셨음)에 전 화를 드리니 “왜 그렇게 연락이 안됐느냐?” 하시면서, 부원 들이 다들 합숙훈련 떠났으니 빨리 짐 꾸려 인천 앞 덕적도 을왕리 해수욕장으로 가서 **여관으로 찻아 가라 하셨다. 당시 부장으 로 있던 김기주(68 산공과 지금 호주거주) 선배가 전화도 없는 우리 집을 하루 종일 찾다가 못 찾고 그냥 갔다 하신다. 당시에 우리 집은 돈암동 산꼭대기 산동네에서도 제일 높은 곳에 살고 있었다. 전화는 물론 없었고 산동네이다 보니 주소 번지도 어지럽게 되었던 것 같다. 당시에는 그런 동네도 많았으나 공기는 시원했고 시야는 탁 트여있어서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산꼭대기지만 마당이 널직하고 여유있어 시원하게 전망이 트였있던것 같다. 밤하늘에는 별들 이 여러개 보일 때가 많았다. 등교와 하교 때 매일 등산 연습을 하니 체력 단련도 힘들이며 할 필요가 없었던 것 같다. 언제 짐쌌는지 모르게 나는 을왕리 해수욕장에 와있었다. 규모있게 합숙훈련하던 고교 시절 보다 합숙 참가 인원이 적으니 합숙 같지 않고 가족 모임보다 좀 큰 것 같았다. 내일이면 합숙 을 끝나고 돌아가는 날 저녁에 우리는 남은 돈과 음식을 다 써버렸다. 그런데 새벽 부두로 나가 니 배 한대가 먼저 온 사람들만 재빨리 태우고 떠난 뒤엔 갑자기 배가 폭풍경보 발령으로 출발 할 수가 없단다. 여관방은 이미 예약된 손님이 들어왔고 한두 식구도 아닌 단체가 언제 풀릴지 모르는 태풍 경보를 기다리는 것은 참 암담했다. 학생들이 개인 돈은 아예 올 때부터 없었고, 객 지 특히 유흥지에서 잘 곳 먹을 것 하나 없이 폭풍경보가 해지되기만을 기다리게 되니 암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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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은 어떻게 다리가 놓아져 알게 된 여학생 팀으로부터 얻고 빌린 음식으로 어영부영 때웠지 만 또 저녁이 닥쳐오고 있었다. 이때는 서울 무슨무슨 동에 사는 누구누구의 친구의 친구 누구 아느냐가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저녁에는 우리가 반납한 여관에 든 고대 대선배가족이 놀러 오셨다가 우릴 알아보고 저녁 전부를 먹여 주셨다. 그리고 밤에는 여관 앞뜰에서 술과 음식을 준비하여 주시고 같이 경음악 유행가 파티도 열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살아날 길이 있다는 속담을 실감했다. 갑자기 여름 피 서 철에 태풍경보로 배가 못뜨게 되니 급한 사정은 우리 뿐이 아닌 것 같았다. 난리들이었다. 그 형편에 또 딸린 식구가 있었다. 부원중에 어떻게 누가 연루되었는지는 몰라도 당시 덕성여 대생들 팀이 우리와 같은 처지인데, 내일 아주 이른 새벽에 병원선이 한대 비밀리에 떠난다는 정 보가 있어서 승선 약속을 받았다고 하며 우리도 태워 주겠다고 말한다. 단 오늘 밤 숙소를 해결 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도 잘 자리가 없는 터에 궁리 끝에 여관 앞 공터 백사장에 참호 모양으 로 모래 참호를 길게 파고 그 위로는 행사용 흰 천막을 뒤집어 씌어서 하늘을 가리고 밤에 쏟 아질지 모르는 비를 대비했다. 그 긴 굴 중간에 모래로 담을 쌓아서 벽을 만들고 여학생용 침 실과 경계를 정했다. 그리고 그 구덩이 속에서 모두들 정신없이 잠에 골아 떨어졌다. 그런데, 다음 날 새벽 5시 떠나기로 예정한 시간이 걱정되어, 일찍 시간 전에 눈을 뜬 우리는 놀라지 않 을 수 없었다. 벽너머 옆에서 잠자던 여러 명의 여학생들이 한사람도 없는 것이었다. 모두 떠난 것이었다. 자기들끼리만 아! 이 배신감, 야속했다. 같이만 있다면 병원선 안타도 좋고 못가도 좋 고 굶어도 좋은데, 같이 가자 해놓고선 자기들끼리만 가다니 어젯밤 긴 참호를 준비하느라 개고 생만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팔이 뻐근해져 왔다. 나중에 서울에 와서 누군지 통해서 전해들은 이야기는 뭐 승선인원 너무 초과돼서 자기들끼리만 우선 떠날 수밖에 없었단다. 이해는 되지만 웃을 수 밖에 --- 당했구나! 여학생에게 당하기 한 두번이냐 뭐 섭섭하긴. 아침에 비는 조금씩 뿌렸지만 백사장 확성기가 울렸다. 배가 한대 떠난다고 해서 우리는 재빨리 행사용 천막 폴대를 몇 명이 빼들어 몽둥이 삼아 배가 닿는 포구에 달려 나가서 오는 사람들을 일렬로 세우기 시작 했다. 우리 팀도 새벽에 떠날 준비가 되었는지라 재빨리 움직여서 맨 앞자리에 짐을 챙겨 놓았 다. 그리고선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뒤에 오는 사람들을 철저하게 줄을 세웠다. 장정 5~6명 이 몽둥이를 들고 줄을 세우니 누구하나 거역하지 앉았다. 사실은 어제도 우리는 일찍 나온 편 인데 짐 적은 사람들이 줄을 무너뜨리고 먼저 타는 바람에 배를 못 탄 경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밤늦게 인천을 떠난 서울역 기차에서 내린 우리는 그 무거운 행사용 천막을 두사람씩 폴대로 어깨에 메고 악기를 들고 메고 하며 일부는 시내버스를 타고하여 학교에 도착해서는 짐을 풀고 피곤한 몸을 이끌면서 각자 집으로 돌아갔던 일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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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천 11사단 체육대회 응원 이야기 71년도 여름이 끝나갈 때 쯤인 것 같다. 강원도 홍천에서 오신 고대 ROTC 출신 중위 한분이 밴드부 부장을 만나자고했다. 홍천에 있는 11사단 포병대에서 왔는데, 다음 주 11사단 내 연대 대항 사단 체육대회가 있는데 밴드부가 와서 포병연대 응원을 도와달라는 부탁이었다. 남자들 만 있는 살벌한 군대내 체육대회는 별로 흥미가 느껴지지 않았으나 하도 간곡히 부탁을 하였 고, 사실 군 내부 생활 실정도 궁금하고 흥미도 느껴지고 몸이 근질근질한 부원들 몇 명이 설치 는 바람에 수락하였다. 군 사정상 군 트럭이 서울까지 오기가 어렵고 시외 버스로 홍천 터미날 에 도착하면 거기서 군 트럭이 우리를 맞아주기로 약속했다. 그 대신 응원(1박 2일) 행사 동안 군대 내부에서 최고의 식사와 대접을 약속받았으나 기대는 별로 안했다. 그때에 군부대 살황을 대강 알고있는 우리는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 보통 시내응원 때도 학교응원단 버스를 타고 다니던 것에 비해 상당히 열악한 조건이었다. 오직 젊은 열기뿐인 우리는 숙박이나 교통이 불 편한 것은 별로 문제되지 않았다. 뭐 그때는 사는 생활 수준이 다 그렇게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기 악기들을 들고(악기만 들었기 때문에 짐은 비교적 간단했다. 숙식용 도구는 가지고갈 필 요가 없었다) 마장동에서 홍천행 시외버스를 탔다. 역시 버스 속에서는 시골 가는 완행버스 손 님 수준에 맞는 즉석 개그들이 터져 나왔다. 어디서 그렇게 순발력들이 나오는지 그것도 자꾸 개발하고 훈련하면 수준이 높아진다는 것을 느꼈다. 누가 그때 그 환경이나 상황에 맞는 기존의 레파토리 개그를 시작하면 그 다음에 즉시 곧바 로 재치있는 변화 개그로 연결해 내는 기발함들이 있었다. 그 개그내용들이 지금은 하나도 기 억이 안돼 소개하지 못하는 게 아쉽다. 그때 같이 갔는지는 기억이 안되지만, 키가 나 만큼이나 작은 양** 후배는 개그와 사투리도 재미있었고 사진 찍을 때면 내 키를 놀리느라 서있는 나에게 자꾸 일어서서 사진 찍으라는 차 근식 후배도 좌우간 만나면 재미있었다. 모이면 재미있었다. 그 여름 군부대 응원을 가고 올 때 한없이 재미있던 그 분위기만 생각난다. 가는 도중 검문소를 지날라치면 헌병들의 검문 검색 이 있었다. 왁짜 지껄 하던 만원 시골 버스가 검문 헌병이 한명 타니 갑자기 쥐 죽은듯 조용해 졌다. 엄숙해졌다. 그때만 해도 군 헌병의 차림이나 행동 과 눈빛은 가히 위압적이었다. 조용할 수 밖에 없었다. 한없이 웃기던 우리 구라 솜씨 발휘도 잠시 중단되었다. 검문 시작 전에 씨끌 벅적 하던 버스가 갑자기 조용해지니 헌병도 머쓱해 했다. 그리고 검문 차 오다가 버스 중간쯤 이후부터는 대학생들이 여럿이 앉자 시선을 집중하고 쳐다보니, 그만 오다가 그냥 돌아서서는 쏜살 같이 거수 경례하고 내린다. 분위기가 또 썰렁해졌다. 누가 침묵을 깨며 한마디 던졌다. 마치 변명하듯이 우리가 헌병 땜에(떠드는 것을) 중단한 게 아니고 말이 생각이 안나서 그랬는 데...... 하고 말을 연결하니 버스속 사람들이 다 웃었다. 어색하던 분위기가 확 바뀌어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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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끄러운 버스가 되었다. 김완기 후배는 군부대 숙식동안 한쪽은 홍천강 쪽 뚝이고 한쪽은 홍 천강 물위에다 기둥을 세워 만들어진 수상 화장실 때문에 불안하여 화장실 문제를 해결하지 못 했다고 들었다. 한강 식수원 수질보호 운동의 선구자였다. 그 홍천강이 요즈음은 한강 식수원 보호구역으로 변하였다. 서울 시민의 마실물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춘천에서 서울로 오는 기차를 타고 오다가 대성리에서 내려 한강물에 실컷 수영을 했다. 다음 기차가 올 때까지 군부대에서 2일동안 샤워도 못하고 먼지 나는 군 체 육대회 후 하는 물놀이었다. 시원한 한강물에 마음껏 물놀이를 즐겼다. 물에 둥둥떠서 눈에 들 어오는 하늘을 봤다. 하늘은 한없이 맑고 높고 푸르렀다. 우리의 젊음도 하늘을 찌를 것 같고 날 아만 갈 것 같았다. 그때가 참 그리워진다. 참 자유로왔다. 걱정이 없었다. 부족한 것뿐 이었지만 부족한 것 하나 모르고 자유롭게 지낸 것 같다.
위수령과 고연전 취소 71년도 봄이 다 지나갈 무렵 가을 고연전 준비를 위해 응원곡을 선정하고 악보를 준비해야 했다. 여름 합숙과 고연전 훈련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때는 밴드부실이 따로 없이 지금의 학 생회관 맨 위 5층 대강당을 통째로 우리 뺀드부 연습실로 쓰다가 가끔 대강당을 쓸 교내 큰 행 사가 있으면 우리가 양보하고 그 장소에서 학교 행사를 했다. 연습실로는 대단히 넓고 온 사방 이 유리로 돼서 무척 밝았다. 그 즈음 정치적으로는 윤필용 수도방위사 사령부에 고대생이 끌려가 엉덩이에 빳다를 많이 맞고 풀려나와 학생들이 모인 앞에서 피가 엉기어 붙은 엉덩이를 벗어 보이며 억울함을 호소했 다. 그 데모가 점점 커지더니 휴교 사태까지 운운 되고 있었다. 그날은 아침부터 우리 밴드부 실 에서 전교 학생 과대표 회의가 열렸다. 총학생회장및 간부학생들도 다 모여 있었다. 한 200 명 정도 되어 보였다. 데모를 계속하면 휴교령이 내려지게 돼있으니 데모를 스스로 포기 할 것 인가에 대한 회의였다. 마침 악보를 챙기러 부실에 들렸다가 회의가 열리는 바람에 구경삼아 회의장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5층 유리 베란다 위에서 학교 캠퍼스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회의가 한참 진행 중인 10시쯤 되니 위수령이 발표되었다 한다. 위수령은 예전에 없던 조치 로 모든 학교에 휴교령이 내릴 뿐만 아니라 여태까지는 데모 진압대가 학교 안에 진입을 하지 않았으나 이제부터는 모든 대학의 캠퍼스를 군이 장악하고 휴교 조치 한다는 정부의 발표였다. 10시 발표 후 몇분이 안되어 곧바로 요란한 싸이렌 소리와 함께 군용 지프 한 대를 선두로 수 십 대의 군 트럭이 학생회관 바로 앞 교문을(그때는 교문이 지금의 구 교문이었다.) 통과하여 쏜살 같이 학생회관 정문 계단으로 돌진해왔다. 학생회관 안에서 회의 중인 학생 대표들을 겨냥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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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 같았다. 그리고는 1층 부터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들이 들리고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도 들리 고 문짝을 부수는 소리들과 비명소리들이 들려 왔다. 회의 중이던 학생대표들도 각자 방향으 로 도망가기 시작했다. 총학생회장은 회의 단상의 교단을 누가 들어주니 그 교단 밑으로 몸을 숨기는 걸 나는 보았다. 또 다른 사람들도 여러가지 방법으로 숨고 도망하고 있었으나 이미 학 생회관 정문이 봉쇄된 것을 안 것은 5층에서 안쪽 중앙계단을 보니 알 수 있었다. 나도 처음엔 학생대표도 아니고 급한 것이 없었으나 점점 비명소리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니 겁도 나고 나도 어디로 피하여야 할 것 같아서 두리번거리다가 4층에 있는 졸업생 교우회보 발간 사무실로 숨 어들어가 거기 기자실 직원 자리 의자에 눌러 앉자 있었다. 조금 후 문이 부서지듯 열리더니 야 전 삽자루를 든 장교와 군인 몇 명이 들이닥쳐 앞자리부터 않자있는 사람의 등짝을 삽자루 로 사정없이 내려쳤다. 나도 예외 없이 등짝을 한대 호되게 얻어 맞은 후 일어나서 시키는 대로 신 발을 벗어 양손에 들고 허리띠를 빼서 목에 걸쳤다 그리고 차례대로 줄서서 계단을 내려갔다 두 손을 들고 머리 숙이고 땅만 보고 걸어 내려갔다. 학생회관에 있는 모든 학생들이 다 잡혀 온 것 같았다. 내려가는 학생회관 바닥에는 온갖 유리파편 조각들로 인해 양말발인 우리가 걷 기가 위험했고 각 방의 나무 문들도 여기저기 부서져있었다. 여기저기서 몽둥이질에 비명소리 들이 찢어져 나왔다. 또한 최루 가스 냄새로 눈을 뜨기 어려웠다. 1층에 다 내려오니 경영학과 에서 마케팅 강의하시는 김동기 교수님이 수건으로 자기도 콧물 눈물 흘리며 내 얼굴을 닦아주 셨다. 그리고 다음 사람들도 쭉 닦아주셨다. 1층에 내려온 우리는 교문 옆 학생회관 앞 좁은 장 소에 좌우 줄 맞추어 무릎을 꿇고 않아서 머리 뒤로 깍지를 끼고 완전히 땅에다 머리를 박고 머 리를 들지 못하게 했다. 조금이라도 머리가 올라오면 사정없이 철모로 머리를 내리쳤다. 내가 앞줄에 꿇어 앉았는데 교문 앞에서 90도 커브를 튼 군 트럭과 장갑차들이 내 머리 앞으로 콰당 거리며 지나가는 데 잘못하다가는 내 머리를 밟고 지나가지 않나 겁이 났다. 상황이 이정도 되 면 그런 사고가 나도 억울하게 죽을 것 같아 겁이 났다. 조금 전 5층 베란다에서 본 장면이지만 수십대를 너머 수백대 가량 되는 차들이 교문으로 들 어온 후 각 건물 마다 진입하여 학생들을 잡아서 한곳에 무릎을 꿇게하여 앉게 하였다. 학생회 관 앞 운동장으로 한 학생을 군인 둘이서 땅에 질질 끌고 오는 데 한 군인이 손목을 끌고 또 한 군인은 발목을 잡아서 학생은 반쯤 공중에 떠서 누인 채 땅에 질질 끌려오고 있었다. 끌려오는 학생 손에 든 가방에서는 온갖 물건들이 운동장 바닥에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음에 들은 이야기지만 우리 과에 여학생 한명이 있었다. 본교 캠퍼스 서관(이공대)에 수강 차 왔다가 군인 들이 들이닥쳤다. 군인 둘이서 앞을 막아서더니 서관 앞 인촌 묘소에서 라면 같이 끊여먹자 하 길래 대꾸도 않고 도망치니 쫓아오지 않터란다. 그날 본교 캠퍼스에 있던 학생들은 전부 다 잡혀서 온 것 같았다. 머리를 숙이고 꿇어앉아 얼 마를 기다렸나 배가 고팠다. 드디어 군 트럭이 계속 오더니 짐칸에 재빨리 올라타게 했다. 만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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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물거리면 삽자루나 철모로 사정없이 내려치니 정말 동작들이 민첩했다. 트럭에 탄 후에도 머 리를 못들게 꿇어앉게 하였다. 너무 많이 태워 비좁아서 무릎이 저려왔다. 어디로 가는지 모르 게 한참을 가더니 이번엔 번개같이 내리라 한다. 역시 행동이 느리면 철모 세례. 시멘트 도끼다 시 바닥에 방금 물걸레질을 하여 바닥에서는 물이 젖었고 비릿한 식당 냄새가 났다. 아마 너무 많이 잡아와서 장소가 갑자기 부족한 것 같았다. 식당 입구 옆으로 바로 또 하나의 건물이 있어 서 높은 창문들만 보이는 데 뭐 고문실 비슷해보였다. 그 창안에서 비명소리와 몽둥이질 소리가 들려와서 무척 무섭고 고통스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먼저 잡혀온 간부 학생인것도 같은 생각이 들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우리들을 겁주기 위한 것도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을 그 렇게 패다니 곧 죽을 것 같았다. 수근 거리는 말로 거기가 수경사 필동 헌병대인 것을 알았다. 그 이후에 나는 다시 한번 그곳을 방문하게 되는데, 3학년을 마친 후 군대에 입대하여 군악대 에 근무 중 정기 휴가를 나오게 된다. 군악대는 의전 행사복으로 쓰는 바지에 링을 착용하게 된 다. 바지 주름을 유지시키는 목적으로 평소에도 외출 시 멋부리기 위해서 많이 착용하고 다닌다. 그러나 규정상 일반 외출 시에는 쓸 수없다. 모처럼 휴가에 폼을 좀 잡을려니 군복을 잘 다려입 고 구두를 거울 같이 닦고, 링을 차고서 다니다가 청량리 검문소에서 수경사 헌병에게 걸렸다. 헌병 닭장차에 실려 학교 다닐 적에 악연이 있는 수경사 헌병대 연병장에서 여러번 뺑뺑이를 돌 고 벌을 받았다. 더위가 푹푹 찌는 한여름에... 그 후 복장위반 처벌 고지가 자대인 21사단 본 부에 내려왔으나 사단본부 인사과에는 고대 출신 동문들이 겹겹히 자리잡고 있어서 그날 다시 한번 라면에 소주 파티를 여는 모임의 기회가 되었다. 큰 식당이지만 너무 많은 인원을 빽빽히 꿇어 앉게하니 통제하러다니는(철모로 머리들거나 이야기하는 사람 때리러 다니는 것) 길이 없어져 통제가 좀 어려워진 것 같았다. 그래도 바닥은 물이 축축하고 좁아서 무릎이 저려왔다. 그 식당이 다 찰 때까지 머리숙이고 기다리니 얼마나 지났을까? 한 대령이 나타나서 점잖게 훈시를 했다. 여러분의 조국사랑은 다 이해가 된다 하지 만 이 혼란을 틈타 북한의 세력이 숨어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여러분들은 다 순수한 애국학생인 것도 안다. 불순한 세력을 축출하기 위해 오늘 여러분들을 이렇게 연행 하게 되었다. 지금 앞방에서 들리는 비명소리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의 비명소리이다. 자 그 정 도 됐으니 어디 의견이 있는 사람은 나와서 자기 소신을 이야기 해봐! 이 자리에서 떳떳하게... 하고 대중을 훑어 보았다. 조용하면서도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과연 누가 이 분위기에서 어떤 방향의 의견을 웅변할 것인가? 아무도 쉽게 나서지 않았다. 한동안 침묵이 흐른 후 뒤에서 조그만 웅성거림이 있고 무언가 있을 듯 하더니 한 학생이 다 리를 절뚝거리며 망서리는 듯 마는 듯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좁게좁게 꿇어 있는 사이로 힘겹게 나왔다. 대령도 긴장하고 듣는 사람도 모두 긴장하고 있었다. 이 분위기에 학생 들 앞에서 대령의 애국심에 동참 발언을 할 것인가? 학생의 반대 의견을 발표할 것인가? 참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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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용기있는 학생 같았다. 우리가 왜 데모를 하는가에 대해 논리 정연한 연설을 할 것 같기도 했 다. 그런데 막상 나와서는 꾸부정하니 한손에 신발을 벚어들고 소리쳤다. 여러분 이 신발 한 짝 보신 분 없어요??? 그 바닥은 완전히 뒤집어 졌다. 우리는 웃기에 바빠서 대령을 쳐다보지 못 했지만 대령도 소령도 아마 배꼽을 잡았을 것 같다. 이 이야기는 그 뒤에 신화처럼 되어버린 이 야기인데 심리학과 몇 학번이라든데? 이때 저 뒤에서부터 누가 시작했는지 모르게 ‘북악산 기 슭에 우뚝 솟은 집을보라 안암의 언덕에 피어나는 빛을 보라’ 아주 저음으로 시작한 노래가 큰 노래가 되어 퍼져나갔다. 당황한 대령과 곳곳에 철모를 가지고 줄 속에 서있던 군인들이 “노래 하지마! 노래하지마!” 하고 소리치고 삿대질을 했건만 콘크리트 벽으로 싸인 실내에서 수많은 사람의 합창이 울려 퍼지니 가히 엄숙한 합창이 되었다. “이 빨갱이 새끼들! 아직 정신을 못차 려!” 다시 고개를 숙이게 하고 철모로 내려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심하게 났다. 다시 징벌의 시 간으로 두시간 정도 더 꿇어앉게 하여 시간을 보내고나서 서서히 분위기가 부드러워지고 애초 에 그렇듯이 대부분의 학생은 순순하게 돌려보내지게 되었다. 단 집단행동이 걱정되니 해산은 철저히 조금씩 시간차로 소수로 다시 군 트럭에 태워 여러 곳으로 방향을 달리하여 시간 간격 을 두어 해산시키니, 나는 장충단 공원 옆 체육관 근처에 하차하여 집에 돌아오니 저녁 9시 던 가? 배가 무척 고팠다. 얼마후 학교에 가보니 학교에는 군인들이 천막을 치고 상주하고 있었고 그날 학교에 잃어버 린 책가방을 찼으러 가니 교문에서 못 들어가고 교문 창살 사이로 학과와 이름을 이야기하고 조 금 기다리니 한 군인이 이내 가방을 어디선가 가지고 나와 전해주었다. 학교 교문 앞에는 살벌 하게 장갑차와 장검을 창착한 군인들이 서슬 퍼렇게 수 십명이 부동자세로 서 있었다. 그리고 다시 개학이 되였을 때 김상협 총장님 담화가 발표되었다. 답답한 현실을 넘어 큰 뜻을 가지라 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해 고연전은 취소되었다.
중국땅에서 우연히 밴드부 선배를 만나다 학교 졸업 후 전자업종 중소기업에 7년을 다닌 본인은 직장 생활을 그만두고 아주 작은 공장 을 시작했다. 구로 공단 주변에서 시작하여 6년 정도 유지한 후 파주 봉일천에 공장을 사서 이 사했다. 금형 제작과 철판 프레스 업이었다. 그때는 점점 일손을 구하기 힘들어졌다. 방글라데 시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를 좀 써 보았지만 영 기술이 요구 조건에 따르지 못했다. 더운 나라에 서 온 그들은 추운 지방에서 견디는 방법에 습관이 안되서 겨울엔 고생스럽게 살았다. 아무리 추워도 내복 입을 줄도 모르고 추워도 양말 신기를 귀찮아했다. 기숙사 방안은 덥게 유지하느 라 나무와 석탄을 방안에서 마구 피워서 마치 굴 구멍 같이 커멓게 그을린 채로 살고 있었다. 한 겨울에도 점심 시간이 되면 치마같은걸 입고 야외에서 지하수를 퍼올려 가지고 샤워를 했다. 덜덜 떨다가 혹시 혹한에 밤중에 얼어 죽는 동사 사고가 생기지 않을까 걱정도 됐다. 그래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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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의 생활력은 참 강했다. 고생을 고생인줄 몰랐다. 점점 오더를 주는 전자 공장들도 외국으로 이전해 가고 있었다. 한때는 우리공장도 필리핀으 로 이전하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 몇번 마닐라에 현지 답사를 해본 적이 있다. 마지막으로 필리핀에 갔던 해의 이야기이다. 여름인 것 같다. S물산이 마닐라 외곽에 라구나 한국 업체 공단을 조성하고 이주해갈 가능성 있는 입주 희망업체를 모집하기에 본인도 몇 번 조 사차 갔었던 마닐라를 다시 가게 되었다. 출장일정을 다 마치고 내일이면 비행기 타는 날 저녁 밤 시간에 우리 일행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눈이온다! 밖을 봐라! 달려가 호텔 방 문을 여니 뿌 연 가로등 앞으로 뿌연 안개 비슷한 것이 시야를 가려 마치 눈이 오는 것 같았다. 이 더운 나라 여름에 눈은 아닐테고... 마닐라에서 북서쪽으로 얼마간 떨어진 피나투보 화산이 폭발해서 그 화산재가 마닐라 하늘에 날라온 것이었다. 비행기가 뜰수 없다는 뉴스가 있었다. 마닐라 공항은 폐쇄되었다. 비행기의 제 트 엔진은 활주로 바닥의 화산재를 날려서 엔진 속으로 빨아들이고, 그러면 엔진이 그 돌가루로 인하여 멈춘단다. 우리 단체 인원들은 잘 되었다. 하루 이틀 좀 쉬고 가자며 기뻐했다. 뿌연 하늘 에 가루눈처럼 내리는 화산재는 참 이색적이었다.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다음날 식당에 들어서 니 식탁위에 놓여진 컵과 식기들에 하얀 유황가루가 어디에나 묻어있었다. 길거리에도 유황 돌 가루가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하루 이틀은 그냥 편안히 쉬면서 남의 일처럼 시간을 즐겼다. 공항 활주로에 내린 화산재는 비가 오면 한 두곳으로 흘러가면서 어느 곳에 가서는 시멘트처럼 굳어진단다. 그런데 비가 온 다는 예보가 없단다. 몇 일을 보낸 후 하루는 공항에 군인과 학생이 몇 천명이 총동원되어 일렬 로 서서 빗자루를 가지고 화산재를 쓸었으나 빗자루에 날린 재는 다시 옆에 내려앉아서 약간의 효과 밖에 없단다. 비행기는 며칠째 전면 이착륙 금지 상태... 눈 치우는 기계 여러 대를 가지고 치우면 된다는데, 그런 기계는 더운 나라에 있지도 않고, 그 기계 이번 한번 쓸려고 사올 돈도 없단다. 시간이 가면서 사람들 사이에 점점 급한 사람 급 한 사정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 일행에서 뿐만 아니라, 일본사람, 미국사람, 점점 더 급 한 사람, 급한 사정들이 나타났다. 갑자기 부모상을 당한사람, 내일 자기가 은행에 안가면 부 도난다는 사람, 그 숱하고 딱한 사정은 들을 이야기 할 필요도 없고 들어줄 수도 없었다. 드디 어 내일 아침에는 비행기 한 대가 시험 이륙을 시도한다. 성공하면 내일은 한국에 간다. 그러 나 그날도 실패. 내일도 기다려보자. 화산재가 바람에 많이 날려갔다. 만약 성공하면 하시라도 공항으로 달려가야 하니 호텔에서 밖으로 나가지 말고 대기할 것. 대기한다는 것, 호텔에서 하 는 일 없이 죽치는 것, 창살없는 감옥처럼 지겨웠다. 호텔이 그렇게 지겨운 장소가 될 수도 있 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겼다. 커피숍도 한 두시간이지, 호텔 국제 전화는 통화가 힘들었고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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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공장 상황은 더욱 우리를 불안하게 했다. 마닐라는 섬이라서 배타고 시부라는 제 2의 도시로 가면 거기 공항이 하나 있어서 홍콩까지 갈수 있으나 그것도 가봐야 하고 마닐라에서 시부까지 배로는 24시간 이상 소요된다고 한다. 배들이 노후해서 일 년에 한번쯤은 대형 해상사고가 나 는데, 한번 사고가 나면 1000명 이상이 수장된다고 한단다. 점점 더 심각한 상황으로 들어가는 데, 6일째 모두 포기한 상태에서 저녁시간 되어 하늘에서 빗줄기가 지나간 후 7시 좀 지나더니 JAL이 제일 먼저 초저녁 아직 어둠이 내리지 않은 마닐라의 하늘을 가르며 지나갔다. 하늘을 쳐다보는 사람마다 기립 박수를 쳤다. 제발 무사히 비행기가 날라 가다오. 그래야 내일쯤 우리 도 갈 수 있다. JAL 다음으로 용감한 건 역시 한국의 KAL이었다. 마닐라에 오는 세계의 수많 은 항공사 중에서 두 번째로 KAL 비행기가 떠올랐다. 모두 4기통이 아닌 쌍발 제트 엔진 기종 이었다. 미국 비행기는 우리 보다 하루 이틀 늦게 뜬단다. 다른 비행기들이 다 이상 없을 때 안 전을 확인한 후 뜬단다. 우리는 첫 비행기에는 못탔다. 대한항공 마닐라 지점장의 위세가 대통 령의 위세와 맞먹을 정도였다. S사의 모든 배경이 동원되어 다음 날 저녁 우리는 서울까지는 못 가고, 홍콩으로 가는 KAL을 탈수 있게 되었다. 안전띠는 매라고 하기도 전에 이미 몸에 꽉 끼 도록 매어있었다. 그리고 신을 믿는 사람이건 안 믿는 사람이건 누구나 기도하는 자세인 것 같 았다. 이륙의 굉음이 울리고 비행기는 날렵하게 활주로를 박차고 솟아올랐다. 비행기 안에서는 박수 갈채가 울렸다. 밤 늦은 시간 홍콩 공항에서 무사히 이륙했을 때 또 다시 안도의 환호성과 박수가 터져 나왔다. 죽음의 섬을 탈출하여 살아나온 것 같았다. 홍콩에서는 일박을 하고 서울 에 왔다. 서울 도착 후 우리는 주최 회사측인 S물산에게 연장 체류 동안 쓴 호텔비와 식대 등을 청구하여 받았다. 하기야 누가 책임 질것 인가 내가 먹은 식대 내가 내야지... 그 때의 경험으로 섬나라 필리핀은 혹시 또 공항에 무슨 일이 있을지 몰라 다시 가기가 겁났다. 많은 공장들이 옮 겨가는 중국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중국의 광동성은 세계 전자공장들이 거의 다 모여있는 요새였다. 대만 홍콩 일본 한국의 전 자공장은 대부분 그 곳에 있었다. 유럽 전자업체들도 거의 광동성에 있었다. 일찍부터 중국의 북쪽은 중공업이 발전했으나 광동성은 전자 산업의 메카로 발전하였다. 세계의 모든 전자 공장 이 이곳에 모여 있다 보니 다른 지방에 있던 전자공장도 이곳에 출장소 정도는 있어야 하게 되 었다. 우리 주 거래처 중의 하나인 남성 크라운전자가 위치한 심천 보안으로 이전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때 얼마 떨어지지 않은 혜주시에 S전자와 L전자의 오디오 공장이 이전 하고 있었 다. 참 좋은 위치이고 기회였다. 현지에 먼저 나가있는 우리 직원을 통하여 S전자와 L전자를 접 촉하도록 독촉했지만 구매 담당자 정도만 파악하여 통상적인 전화 통화 정도였고 결과가 나타 나지 않았다. 지금 생산 라인을 셋업하고 있으니 곧 연락 하겠다는 통상적인 답변만 돌아왔다. 이제 더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한 나는 중국 공장 출장 중 S전자를 꼭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 다. 그때도 그렇지만 지금까지도 중국 시골길을 가는 것은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우선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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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게이션도 없고, 설령 있다고 해도 전자지도가 빈약해서 그냥 대로 길하나 그려져 있고 강, 개 천이나 표기된 정도이다. 요즈음도 해당 지역의 랜드마크가 될 만한 동네 파출소나 잘 알려진 관청은 지도에 표기하지 않는다. 아마 보안상 그런가보다. 요즈음에는 시장 구멍가게 이름은 표기되지만 중국의 전자지도는 참 불편하다. 시내 주요 관공서는 하나도 없다. 건물 이름만 표 기되어 찾기 힘들다. 택시를 타도 다른 도시에 가면 기사는 승객보다 더 모른다. 자기 도시에서 만 영업을 하니 당연하다. 길에서 사람들에게 유명한 관공서 이름을 대면 길거리에 서있는 노 인들은 부동화를 모른다. 같은 광동화도 사투리 억양이 심해서 택시 기사도 못 알아 듣는다. 노 인들은 자기 동네만 살아서 지리도 모르고 별로 아는게 없다. 광동의 거리 사람들은 상당히 불 친절하고 배타적이어서 누가 길하나 물어보면 대단한 유세처럼 귀찮아 하면서 바쁜듯이 눈을 내리깔고 턱으로 살짝 들어 까딱하고는 돌아선다. 물어본 것 하고 안 물어본 것하고 결과는 별 로 차이가 없다. 길에는 자가용 영업하는 그 지방 오토바이들이 항상 넘쳐나는데 이들한테 돈 을 얼마나 요구할 것인지 협상한 후 그 뒤를 우리 차가 따라가면 비교적 쉽게 갈 수있다. 중국 에서 제일 최선의 방법이다. 아무리 목적지 바로 옆에까지 온 것 같아도 오토바이는 공짜로 알 려주지 않는다. 어떤 때는 반대로 가도록 턱을 까딱한다(돈 이야기가 없으면). S전자 같은 큰 공 장을 힘들게 찾아갔다. 택시로(지금부터 20년 정도 전에 이야기임). 중국공장에서는 문 앞 수위 실 경비가 대단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한국인 사장을 아는 친구라도 경비의 허락없이 는 들어갈 수도 없고... (당시는 핸드폰이 귀할때이다) 날씨는 덥고 구내 전화는 계속 통화중이고, 신분증 제시하라 하여 여권 내밀면 이런것 말고 자기 신분증 같은 중국 신분증으로 내라고 한다. 이렇게 해야 공장에 들어갈 수 있던 때가 바 로 얼마전 세월까지였다. 방문자 기록카드는 정말 복잡하고 상세해서 빈칸 없이 다 채우다 보 면 만날 사람이 회사차 타고 정문 밖으로 출장나가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경비가 지나가는 한 국직원에게 부리나케 달려가서 경례할 때도 많았다. 한국 사람은 옷은 남달리 깨끗하게 입었으 나 말도 더듬고 경비가 보기엔 이 사람 절대 들여보내면 안될 사람 1호인 것이다. 통역과 같이 S전자 경비실 통과해서 겨우 1층 대기실에서 기다리니 점심시간이 시작되었다. 구매 담당자를 이번 출장 중에는 꼭 만나서 우리 업체를 소개하고 S전자 금형 오더를 소화시킬 수 있는 설비는 아직 현지의 중국 업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꼭 전해야하기 때문이었다. 점심 먹으러 외출한 것이 아닌가 알아보니 오늘 새 총경리(현지 법인장 .현지 사장)가 본사에 서 부임하여 장시간의 회의 중이란다. 절대 밥먹으러 나간 것은 아니니 기다리든지 다음에 다시 오라고 한다. 점점 시간이 늦어지고 나도 새벽에 떠나온지라 배도 고프고 새로 법인장이 부임 했으면 만날 분위기도 아닌 것 같았다. 그래도 고생하며 여기까지 왔는데, 오늘 못 만나면 다음 출장까지 초조하게 기다리는 것 보다는, 오늘은 구매 부서장인 한국 사람이라도 꼭 만나야했기 에 배고픈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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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시간이 한참 지나 1시 반쯤 돼서 위층으로부터 왁짜지껄하더니, 드디어 한국사람들 말 소리가 들리고 계단으로 무리를 지은 한국사람들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 무리 가운데에는 구매 책임자가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 우리도 재빨리 일어서서 계단으로 향해갔다. 그런데 맨 앞에 내려오는 사람은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사람, 목소리도 좀 굵으며 카랑카랑 한 밴드부 조병오 선배(68학번 트럼본 산공과)가 아닌가? 이런 저런 생각없이 아니 이거 형 이 게 웬일이유 여긴 무슨 일? 출장? 아 S전자에 다닌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내가 학생시절 학 교에 한번 와서는 자기가 수원 S사에서 이코노 TV를 만들고 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는 것 같 다. 그래서 S사에 다닌다는 걸 알고 있었다. 조 선배는 자기가 초대 법인장으로 오늘 이곳에 부 임하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고대하던 오더는 하루 아침 에 확보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 생각보다도 반가운 마음 뿐이었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긍금했다. 너무 반가운 나머지 그곳에 회사의 모든 한국인 지원이 배석해 있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반가운 반말을 섞어가며 흉허물 없이 형수님은 전에 그 미팅에서 만난분이 맞는가도 물어보면서... 이것 저것 좀 주책을 떤 것 같았다. 지난 후 생각해보니 좀 부적절한 행동 인 것도 같았으나 그 순간은 이런 곳에서 밴 드부 선배를 이렇게 만나다니... 아! 이런 저런 반가움에 모든 것을 덮어버린 큰 반가움이었다. 그 후 S사의 오더는 우리 공장으로 주체할 수 없이 몰려왔다. 물론 오더를 받기까지 여러가지 노력을 해야만 했다. 많은 시설을 보강하고 S사가 주관하는 교육에 빠지지 않고, S사의 여러 요 구에 합격해야했다. 물론 이를 통해 우리 회사의 관리 제도나 품질 의식들은 한층 더 발전하는 계 기가 되었다. 또한 회사 네임 밸류나 대외 신용도도 많이 높아졌다. 조 선배와 본인이 아마 구정 때인지 같이 한국에 들어갈 기회가 되었다. 조 선배의 제의로(조 선배는 나와 같은 산공과 1년 선 배임) 산공과의 교수님을 인사차 찾아뵙기로 했다. 같은 과의 두 졸업생이 중국 광동성에서 서로 도와가며 잘 근무하고 있다고 교수님께 고마운 마음을 표시하기로 했다. 둘이 좀 고급스런 선 물을 준비하여 L교수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다. 기뻐하셨다. K교수님은 그때 아마 한국에 계시지 않았던 것 같다. 한번은 내가 여권을 분실하는 사고가 있었다. 지금도 중국에서 여권을 분실하면 여간 번잡한 게 아닌데, 당시에는 여권을 분실하면 어떻게 처리한다는 규정조차 없어서 정말 난감했다. 즉, 해결할 길이 딱히 없다는 이야기이다. 주 홍콩 한국 영사관에 본인이 가면 여권을 재발급 받을 수 있겠지만 중국에서 홍콩으로 여권없이는 넘어 갈 수가 없었다. 조 선배에게 이야기하니 S 회사 혜주 조 법인장이 책임지기로 하고 본인 출두없이 발급 해주기로 약속했단다. 사진 2장과 분실사유서를 써서 전달하니 한 달 뒤 쯤 새 여권을 조 선배를 통하여 전달받았다. 심천 향미후 골프장 아침 라운드 티업전에 전달 받았다. 또 한번 크게 도움을 받았다. 또 한번은 우리 한국인 책임자급 한 직원이 회사의 홍콩 통장 돈을 몽땅 다 빼가지고 한국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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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도망가 버렸다. (추후 한국 경찰에 신고하여 사법처리 되고 일부 자금 회수함) 당장 이번 주 에 직원 월급도 문제가 되었다. 당장 회사를 운영할 현금이 없게 되었다. 이 사정을 알게 된 조 선배가 다음 달 S사에서 결제할 돈을 미리 이번 달에 결제 받도록하고, 그 다음 달분도 일부 분 할해서 결제해주어서 우리 회사가 점차적으로 충격을 흡수할 수 있게 조치해 주었다. 하늘이 무너진 가운데 살아난 기분이었다. 아!! 조병오 선배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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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회고담 |
지나간 옛 추억을 더듬으며...
독문 70 Cla 손 건 국
그해 봄 어느 날, 고대 정문 오른쪽 언덕에 있는 대강당 한쪽에서 울려 나오는 나팔소리는 나 도 모르게 은연중 내 귀를 사로잡아 밴드실로 나를 이끌어 갔다. 마침 클라리넷 파트에 부원이 전무한 상태라 대환영이었고 그땐 서재하 악장 때인데 그 악장은 고대 서영갑 교수님의 아들이 고 서영갑 교수의 사모님이 나의 어머니(경기여고 출신)와 고교 동창이라 서로 안부 끝에 내가 악장과 동갑이라는 사실에 밴드부에서 함부로 나(신입부원)를 하대하지 않았다. 첫 연주는 어 느 교수님의 장례식 행사였는데 에코 되는 장송곡 연주가 꽤 인상적이었고 찬송가 연주 “우리 다시 만날 때까지”가 슬픈 장례식을 더욱 숙연하게 해 주었다. 이런 저런 행사 후 당시 교수이 신 윤세영 선배님과 더불어 몇 안 되는 부원들이 연탄불 화덕 탁자에 둘러 앉아 막걸리를 나누 던 그 시절이 생각난다. 그 땐 더 가족적이고 친밀한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다. 그 후 나는 시력 이 나빠 군 면제대상인 4급 보충역 4년째인데 입학 1학기말 갑자기 영장이 나와 24살에 입대하 게 되었다 나는 고대 이전에 다른 대학 공과에 다녀 특과대상 훈련소(논산 훈련소가 아님)인 예 비사단(당시 수영장 딸린 호텔식 훈련소를 갖춘 곳)의 입소로 군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남들과 달리 군대에서 행복감을 많이 느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리부대는 군수화물 하역하는 ‘화하부대’ 즉 노무자 부대라서 인지 물자가 쌀, 라면부터 각종 생필품, 비누, 갱지, 구두, 피복, 하다못해 조립식 식탁 못 봉지에 이르기까지 풍부하였고 강한 근육과 힘으로 봄부터 초여름까 지 노역 작업(화차에서 창고, 야적지로 운반하는 일)은 고달팠으나 휴식시간에 주는 막걸리와 열 무김치는 굵은 땀을 씻어 주기에 가히 족했다. 그때 나는 매트리스 13장(보통 6장 운반이 기본인 데 이건 초인들이 할 수 있는 신기록을 수립한 것임, 고대 체육학점에 팔굽혀 펴기 50번 하면 A 학점 주는 교수만 따라 다녔음)을 등에 지고 야적장을 달려가는 무식한 힘쟁이였다. 난 중대에선 보급계였는데 사수가 고대 대선배라 어려워했지만 유대감에 따뜻한 배려도 함께 받았다. 우리 중 대는 촌놈이 유난히 많아, 저녁 내무반 오락시간의 노래는 전혀 들어 보지 못한 생소한 옛 가요 가 주류였는데 내가 기타 반주하며 “Green green grass of home” 부르니까 저들 중에 생전 들 어 보지 못한 칸츄리 리듬은 내무반의 고리타분한 분위기에 활기를 넣어주었고 앵콜받고 부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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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cheat’ in yeart”에서는 전 대원이 춤추는 아주 흥겨운 분위기로 바뀌며 마냥 즐거워했다. 이런 연고로 난 1소대 오락부장으로 발탁되어 소대 오락시간을 이끌었다. 소대원 40명(고참 포 함하여)이 나의 지도하에 ‘사치기 사뽀뽀’를 시작하면 옆 사람 동작 흉내를 틀리지 않으려는 긴 장과 자기 동작의 괴이한 표현에 전 내무반은 웃음바다가 되곤 했다. 고대입학 전에 다른 대학 에서 캠프 송 및 레크레이션 클럽에서 활동하여 그 분야(특히 팝송분야)에 다분히 소질이 있고, 사실 나는 끼가 많은 사람이다. 또 다른 얘기는 늦가을엔 김장 배추, 무, 각종채소 하역작업(야 간작업)이 있었는데 작업 중 몰래 무 훔쳐 먹은 부대원들로 인해 밤새 내무반에 매운 방귀냄새 로 인해 문을 다 열어놓고 전 대원이 그 추운 날 팬티바람으로 연병장에 나와 구보 기합 받고 냄새를 빼던 일, 산에서 흘러오는 물 받은 보트에 장화 신고 들어가 흙 묻은 무를 질겅질겅 밟 아 씻기, 김장 속 넣기(군대 김치는 각종 양념, 오징어, 명태 등 좋은 건 다 들어감)등 가을에는 김장부대로 변신하며 겨울은 노역 없는 교육훈련 기간이었다. 또, 기상나팔수로도 근무하게 되 었는데 새벽 기상, 야간근무 보초집합, 취침에 이르기까지 나팔을 부는 지극히 편한 일과였지 만 외출, 외박이 없는 구속된 생활이 싫어 상급부대인 군수지원 사령부로 전출하여 깊은 산 속 에 있는 대공감시 초소장(부대 장교보다 더 편한 신선의 세계)으로 근무(산적생활의 즐거움은 지면 관계상 생략하는 아쉬움을 남김)하다 제대하고 복학하여 변함없이 고대 밴드부 생활을 이 어갔다. 입학식, 졸업식, 정기연주회, 각종 시합 경기 때 연주, 합숙 등 빠짐없이 참석하였다고 자부한다. (군대 공백기에 나를 보지 못한 부원 중 내가 뜸하게 활동했을 거라 생각은 착각)-행 사 중 기억나는 일은 당시 악장들의 글에서 볼 수 있을 거라 는 생각에 언급 안 하겠음-행사 준 비로 연습기간은, 없는 실력에 스트레스 많이 받았지만 예술적 욕구충족이 있어 좋았다. 행사 가 끝나면 후련함과 부족했던 것에 대한 허탈감에 늘 젖곤 했다. 행사 중 재미있는 기억은 별반 없다. 우리 밴드부(특히 고대의 고약한 학번 계급사회) )에서 나는 나이로 치면 66학번이 정상 이나 다른 대학에서 재입학하여 늦은 학번으로 시작하니, 심적 고충이 심했다. (학번으로 기 죽 고 사는 거) 학번 속이고 선배(나이가 선배니까)로 자처하는 사람-이해가 된다... 나이가 내 밑 이고 학번이 빠른 학형에게 죽어도 ‘형’이니 ‘선배’ 호칭은 못하겠더라. 이런 입장에서 굳은 얼굴 이 비호감이고 껄끄러운 모습을 보여 주어 재삼 이해를 구한다. 나는 작은 체구에다 나이에 비 해 무척 동안을 갖고 있기에 나이 대접을 제대로 못 받고 수난(만만한 동안으로 인해)과 시비의 대상(사근사근하지 못한 고약한 인상 때문)이 곧잘 되곤 한다. 그래서 참고 어리숙함과 물러섬 이 내겐 배어 있나보다. (비굴함이 아니라 장수의 비결이다). 인생의 가장 큰 미덕은 ‘참는 것과 끈기’라고 하는데 체험으로 느껴져 깊이 공감이 간다. 그런데 촌스럽고 곰 같은 나를 잘 따라 준 후배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고교 밴드 선배들은 나를 무척 좋아했는데 어리숙하고 편한 후 배였기 때문이리라) 말인 즉, 복학 후 어느 눈 오는 크리스마스 전날 마음도 싱숭생숭하여 학교 건너 자메이카 지하다방에 갔는데 마침 예쁜 묘령의 아가씨가 혼자 앉아 있었고 후배 녀석들( 정대영, 이상은 등 )이 나를 그 아가씨 테이블로 밀쳐놓아(자기들은 쑥스러워 꼼짝도 못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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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 없이 즉흥적으로 수작에 성공하여 만남의 축하로 맥주 한잔하기로 합의하여, 길 가 하얀 집(맥주집 명칭)에 정대영과 내가 대표(다른 후배들은 다 도망 감)로 하여 축배를 들고 다시 연 락하기로 하고 헤어졌으나 석 달 동안 소식이 없어 물거품이 되었나 했는데 우연히 옛 홍릉 쪽 종암동 길을 걷다가 종암지역 화장품 가게 부흥을 위해 파견 나온 모델인 그녀를 다시 만나게 되었고 언제는 고대 강당 2층 밴드실로 강냉이 한 푸대를 사 들고 찾아 왔는데 그녀의 굉장한 미모로 인해 밴드실이 환해질 정도였다. 밴드실 여성 면회는 후배 종국이의 색시가 된 귀여운 여자 이외에는 아마 나를 오빠로 따르던 그녀(예쁘고 호방함)가 유일했던 것 같다. 후배 이헌식 (고인), 차준대(그 때 원산도 갈 회비를 강당 뒤 수평대에서 운동하다 잃어 버렸다고 나를 속였 지만 끼워달라는 제스처로 알고 데려감--준대(여름 합숙 때 대천 앞바다에서 무모하게 헤엄 치다 물 먹고 의식 잃은 것을 해질녘까지 지켜 살려 낸 적도 있음)는 목적을 위해 거짓말을 쉽 게 하는 것을 버려야 할 게다. (정직은 신뢰의 근본이니까) 더불어 원산도 섬에 휴양 갔을 때도 그녀를 동행인으로 껴 주었었다. 한편 어느 여름 날 후배 악장 박기복의 친구인 공수부대 어느 군인이 고대 연극부에서 난동(기물 파괴, 부상)을 부리고 떠난 후, 분풀이로 어느 연극부 선배 (태권도 유단자)란 놈이 우리 밴드실에 쳐들어 와 느닷없이 드럼을 부시려고 해서 끌고 내려와 이마와 목을 여러번 밀치고 큰 소리로 격노하며 “종로에서 맞고 한강에 와서 분풀이 하냐고” 혼 쭐을 내면서 1대1 싸움이 붙었는데 우리 후배들은 무서워 구경하다 한 둘씩 꽁무니를 빼고 없 어졌지. 한심한 족속들 ! 선배가 불리하지 않게 지켰어야지... 난투극 끝에 난 그때 코뼈를 다쳐 좀 고생했었다. 나는 그 당시 선배니 아니니 하고 나를 가볍게 보던 부원(후배는 아님)보다 사근 사근하고 착하고 인상 좋은 악장 박기복 후배와 클라 이헌식, 허 영, 바리톤 이상은 등(다른 후 배를 언급해야 하지만 기억이 안 남)이 있어 밴드생활이 즐거웠다. 밴드실은 학창시절에 마땅 히 갈 곳 없는 공허한 마음의 휴식처요, 무료한 대학시절을 즐겁게 보내게 해 준 장소다. 그래서 내 동생 영숙(고인, 교육학과)도 클라리넷 파트에 들어오게 했다. 밴드생활과 분위기가 즐겁다 고 했다. 밴드연습 후는 매번 길 건너 떨어진 고대 세느 강변 쪽 주막집에서 오징어 튀김(상당히 푸짐한 한 접시 500원)에 막걸리(큰 주전자)시켜 놓고 시름을 잊곤 했다. 그 주막집시절엔 후배 이상은이가 늘 함께 했었는데, 어느 추석날 이상은의 고향집- 김포에 추석휴가차 들어가는 버 스는 만원인데 용기 있게 남의 용달차를 얻어 타고 김포 집에 도착하여 상은 아버님 [나의 아버 지(=해병대 창설 장교 멤버)의 해병대 후배이심]께 인사드리고 옆집 숙대생(=상은이의 초등학 교 여자친구)이 밀전병 일명 ‘오니언’(양파전)를 부쳐 갖고 와 우리를 대접하려는 갸륵하고 촌티 나는 시골 촌색시였는데 교양 있어 보였다. “이거 ‘오니언스’군요”라고 말하면 그 아가씨는 까 르르 웃었다. 당시 가수 듀엣그룹의 오니언스가 한창 인기가 있을 때라 수줍은 아가씨는 ‘오니 언스’란 말에 웃음을 보이는 것에 총각들은 마냥 즐거웠었다. 다음 날 논 옆 도랑물을 뗏장으로 위, 아래를 막고 물을 퍼내어 미꾸라지를 잡는데 대풍이었다. 양이 엄청났다. 오는 길에 해병대 군 트럭이 지나 가길래 무조건 ‘찬용아’ 하고 불렀더니 실제 군 트럭이서고 선임수병이 내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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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용(트럼펫 후배)이 탄 소속한 군예대인데 왜 찾느냐는 거였다, 나는 ‘이따 시간 나면 미꾸 라지 탕에 튀김 드시러 함께 오라’고 했더니 ‘고맙다’고 하고선 부대에 들어간 후 오지 않았다. 기다렸는데... (기합 받고 있었나, 아니면 피곤해서 곯아 떨어졌는지) 하여튼 잘 씻고 소금을 살짝 뿌렸더니 미꾸라지가 요동친다. 밀가루 반죽해서 기름에 튀겨 맛보니 역시 고소하기가 그지없다. 아마 자연산이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후배들과의 얘기뿐인데 나는 내 또래의 밴드부 친 구 부류를 못 사귄 것은 아쉽다. 내가 터놓고 다가가지 않아서지만, 위세 부리지 않고 좀 촌스럽고 순한 사람들을 발견 못해서다. --- 시간은 흘러 졸업 후 나는 청주 청석고(유도로 유명한 학교/아 나운서: 김성주, 배우: 유해진 배출) 근무 했는데 청주 일신여고(기독교 재단/아이돌가수: 전효성 의 모교)에는 트롬본 연건희 후배가 있어 기독학교라 몰래 교사 뒷편에서 함께 담배 즐기던 추 억도 떠오른다. 당시는 학교에는 교련훈련이 있어 전 교생이 주로 상당산성으로 행군할 때 2열 종대 대열이 너무 길어 명령하달이 어려웠다. 행군 간에 나의 구식 트럼펫 신호(군대에서 닦은 실력)로 행군을 지휘하였다. 그 시골학교(청주대 부속고등학교)에선 내가 요긴한 사람이었으리 라. 한번은 후배 박기복과 허영 등이 여대생을 데리고 청주에 왔는데 화양동 계곡으로 놀러가 먹거리를 나누며 노래도 시키며 놀았다. 그 당시 “영”이라는 유행가요에 후배 허영의 인기가 되 게 좋았다. 후배들이 청주까지 놀러와 여가를 함께 해준 것에 감사드린다. 서울로 온 후 영파여 고에서 독어교사로 재직 중 결혼할 때에 신부 입장 및, 축하 연주를 나의 고대밴드(당시 악장 김 현수 후배)에서 해 준 것에 새삼 당시 부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예식 시작 5분전에야 주례 목사님이 헐레벌떡 숨을 몰아 쉬며 들어오시고(시골에서 오시느라 서울 지리에 어두워 찾느라 고생하셨다고 한다) 전달이 잘못되었는지 신부가 식장 홀에 들어서기도 전에 연주가 시작되어 (즉, 신부 대기실에서 나올 때부터 연주가 시작됨) 신부 입장 곡 전 악장을 다 연주 해 주었던 것 으로 기억된다. 세상에 이렇게 긴 연주는 처음이라네.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결혼식에 너무 긴 장하여 결혼사진에 나는 입이 삐뚤어져 나왔다. 결혼식에 온 나의 학교 여학생들이 함께 사진 찍자고 해서 단체 사진을 찍는데 내 옆에 서서 찍으려고 자리싸움이 벌어졌다. 가장 골수 팬인 학생(지금의 ‘수지’나 ‘유인나’ 같은 앳되고 이목구비가 큼직한)에게 다들 양보하여 무사히 단체 사진을 마감할 수 있었다. 참 시골학생(서울 강동구 영파여고)들 같았다. 난 독일어 수업이 재 미있고 머리에 쏙 들어오는 즐거운 수업(독일어 노래 ,암기비법 등)과 재미난 얘기도 많이 들려 줘 인기가 많았다. 그후 경문고에서는 소풍때 기타연주로 오락 분위기를 만들기도 하고 학교체 육행사엔 악기 연주로 응원해 주었던 기억이 난다. 이 학교(남자 고교)는 처음 반 담임을 했던 곳이라 특히 정이 간다 지난 2010년에 30주년 홈 커밍 날 초대되었는데 나의반 한 학생이 중년 이되어 ‘그 옛날 사당동 달동네 시절 선생님이 태권도 반인 나를 연습 끝나면 개인지도해주며 힘 을 주신데 대해 감사드린다’고 해서 참으로 뿌듯하였다. 그러나 내겐 긴 시간이 지나 기억이 안 났지만 그 학생은 잊지않고 기억해주니 미안함도 느꼈다. 마지막으로 나의 은광여고는 가장 오 랜 근무 학교(전국 밴드대회 최우수 금상, 학력고사 인문계 수석 배출, 배우: 송혜교(풀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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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혜진(주몽에 나옴), 핑클의 이 진, 가수: 박혜령, 김혜림, 문희옥, 아나운서: 정용실 외에 판/ 검사, 의사 등 많은 인재가 배출 됨)였는데 80년대 부터 90년대 졸업생들에게는 독어 선생님인 나의 이름을 대면 많이 웃는다고 한다. 재미있게 열정으로 수업하며 학생들과 친구처럼 가깝게 대해 주고 원맨 쇼도 잘 하는 선생으로 기억 되기 때문일것이다. 세상에서 즐거움은 내 스스로 자기 말과 표현을, 동작을 동반해 연출해가며 자신을 즐기고 자유롭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가 상대로부터 인정받고 긍지를 느낄 때 마음이 평화로운 가운데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 다. 수업 및 개개인의 성격, 가정형편, 진로, 학생지도 이외에 나는 늘 예능쪽에 일을 맡겨, 수 학여행 장기자랑, 기말, 연말 학예회의 기획, 연출, 진행, 감독까지 다 해내었다, 심지어 미24사 단 군악대-팀스피리트 훈련 후 우리 여고 밴드부와 합동연주 공연에 팝송가수로 출연하여 함 께 한 적도 있다. 나의 반의 유명인은 가수: 김혜림(배철수의 70, 80 무대에 가끔 출연, 가수 나 애심의 딸이며 전영록의 고종사촌)/아나운서: 정용실(책과의 대화, 주부가 세상을 말한다 등의 사회자) 이 두사람은 나의 자부심이며 자랑이다. 옛 프로인 남희석의 ‘학창 보고서’에 내가 가수 김혜림의 ‘가장 잊지 못할 선생님’으로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런데 고대에 관련된 얘기는 재은광 고대 교우회장을 십여년 연속 맡아 고대교우 선후배의 친 목과 결속을 다져온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싶다. 학교도 여느 사회와 같이 고대출신을 견제하려 는 타 대학 출신의 견제세력들이 있었다. 고대출신 교장, 교감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어, 더욱 더 고대인들은 고대파워를 드러내지 않고 겸허한 자세로 근무했다. 때로는 고대출신이기에 중요 직책을 양보하는 불이익도 감수해야했다. 나의 재은광 고대 교우회장 시절에는 주로 자연을 찾 아다니며 친교를 많이 했는데 양평가는 팔당호수쪽 분원 - 봄이면 분원[=남종] 입구 - 논밭의 새싹이 푸르름 속에 복사와 벚꽃이 흐드러진 풍경은 옛스런 시골마을이 고향같은 정감을 느끼 게 한다. 대치동 대모산속 사각누각(얼큰하고 맛깔스런 보신탕 집이지만 그날따라 억수같은 빗 속에 둘러앉은 고대 교우들은 더욱 친밀감을 돋우는 자리였다). 또한 청계산 입구 박부자 장어 구이집(넓은 뜰 포도나무 넝쿨에 둘러 쌓인 아늑하면서도 화사한 햇살이 덩굴사이로 살짝 드리 우는 목상에 모여 앉아 석쇠 장어구이에 한잔하면 마음이 태평하다), 학교에서 근속, 모범, 우 승, 승진 등 고우회 선후배의 경사에는 빠짐없이 축하파티와 때론 금으로 된 행운의 열쇠증정 등 즐거운 자리를 많이 마련했고 대화는 일상에 일어나는 소소한 것들, 자신의 건강문제, 여가 선용, 현 사회실정 등의 직접 와닿는 얘기들이다. 사람은 소소하고 하찮은 것에 공감하고 희로 애락을 나눌 줄 알아야 행복해진다. 행복의 시작은 거창한 성공과 명예획득보다 소소한 것에 서부터다. 상대의 표현을 묵살하지말자. 표현의 자유로부터 행복을 나눌 수 있음이다. 학교사 회는 서로 존대하는 곳인지라 온화하면서도 책임감과 성실함이 은연중에 강조되는 인격의 사 회요, 약속의 사회다. 고대교우회도 학번서열(장유유서보다 뭔 서열?)이 있어 나를 괴롭혔으나 연장자인걸 알고 난 후, 내가 꿋꿋이 헌신과 성의로 고우회를 이끌어 나가니 학번 유세를 못하 였다. 특별히 고대대학원 출신인 당시 교장선생님과 친근하며 많은 사랑과 인정을 받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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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저런 세월 속에 독어교사에서 영어교사, 일어 교사까지 한 후 이젠 정년퇴직하여 15년 동안이나 해 왔던 고교 선후배 앙상블에서 악장을 맡아 연주와 제반 사무에 힘을 쏟고 있다. (고교는 내 나이에 맞는 회수로 입학, 졸업 한 곳이기에 대학과는 달리 자기위치를 찾을 수 있 어 마음이 무척 편하다) 나는 직위로 인한 명예에 별로 기쁨이 없다. 명예욕이 없는 거다. 그저 나서서 봉사하고 대신 희생해 주면 좋아들 한다. 대신 짐을 져주길 바란다. 같이 져주기를 원치 않고 ---- 나는 인정을 나누고 서로를 인정할 수만 있다면 좋다 ----.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 그러나 ‘연주 모임은 음악보다는 사람의 향기와 조화가 더 중요하 기에 연주는 짧고 인생은 길다.’고 생각된다. --- 그리고 요즈음 독일어 스터디(손을 놓기에 는 너무도 아까운 독일어이기에)에 참여하고 있다. 어학공부의 즐거움은 해 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지금 나는 이렇게 길게 글을 쓰리라고는 생각 못했다. 글 쓸 용기가 안났기 때문이다. 왜냐 면 나를 배척하는 밴드부 어느 사람들을 언짢게 하는 글이라도 쓰게 될지 몰라서다. 어둡게 보 이는 나에 대해(실은 나의 귀찮음과 과묵 때문) 오해와 편견이 있던 사람들과 나와 대학시절을 개인적으로 교류하지 못했던 점에서 글을 통해 조금이나 나의 마음을 전하게 되어 마음이 가볍 다. 그러나 아직 나에겐 고대 밴드부로 가는 발걸음은 멀다. 심장에 이상이 왔고, 인생 말년에 조여 살고 싶지 않아서다. 끝으로 고대 밴드부(취주악부) 모든 선후배 부원들의 무궁한 발전과 다시 모인 활동들에 즐 거움과 향상이 있기를 손 모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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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회고담 |
고려대학교 취주악부 시절 회고
물리 71 Tpt 김 완 기
때는 1960년대 중반쯤, Y중학교 1학년이었던 나는 평소 동경해오던 악기를 배우기 위해 밴드부에 들어갔다. 그때는 악기 이름은 커녕 콩나물대가리(악보)조차 알지도, 볼 줄도 모르는 까막눈이었다. 처음 만진 악기는 Clarinet이었는데, (도레미화솔라)시, 도 소리가 내기가 너무 어려워 손가락 놀리기가 비교적 쉬워 보이는 트럼펫으로 악기를 바꾸었고, 가끔씩 오는 S음대 다니는 선배의 칭찬에 지금까지 트럼펫에 눌러앉기에 이르렀다. 중학교 시절 기억나는 행사로는 미국 존슨대통령 방문 환영을 위해 만리동에서 시청 앞까 지 며칠 동안 퍼레이드를 하며 존슨이 좋아한다든 “The eyes of TEXAS” 등등의 곡을 연주 했던 것이 아직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그럭저럭 3학년이 되니 어느새 트럼펫 First 자리를 꿰차고 있었다. P고등학교시절 일찍부터 공부에 전념하려고 밴드부에 가입하지 않으려 했으나, 어디서 소문 을 들었는지 밴드부에서 집요하게 겁도 주고 꼬드기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또 밴드부에 가입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는 FM 방송이 막 시작되어 팝송에서 Classic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악 을 깨끗한 음질로 나의 음악적 소양을 넓힐 수가 있었고, 지금까지 음악감상이 나의 중요한 취 미생활이 되고 있다. 참고로 농장의 움막에도 자그마한 장비를 설치하여 즐기고 있다. 음악적 소양이 넓고 깊어지다 보니 연주회를 해보았으면, 또 이런저런 곡들을 그럴듯한 연주회장에서 연주했으면 하는 꿈이 생겼고 이 꿈을 이루기 위해 고등학교를 1년을 더 다녀야 했다. 그 때만해도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은 연주회장은 지금의 세종문화회관 자리에 있던 시민회 관이었다. 영광스럽게도 그 자리에서 50여 선후배들의 반주로 트럼펫협주곡을 연주할 때가 대학 1학년 때였다. 곡목은 “ADDA Polka” 요즘 트럼펫 좀 한다하는 친구들이 종종 연주하는 “Mildo Polka”와 비슷한 곡이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은 기억이 비교적 정확하게 나는데, 대학 시절 기억이 가물가물하기만한게 이상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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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연유가 있었는지는 몰라도 나와 기복이는 입학식 직후부터 취주악부 일원으로 악기도 연 주했었던 것 같고, 지금도 흑백사진으로 남아있는(재봉이 형이 콘닥으로 폼잡고 있는) 퍼레이드 사진 속에 나도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선배님들이 하라고 강권해서 퍼레 이드에 참석은 했지만, 총장님을 모신 엄숙한 식장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퍼레이드를 한다는게 영 맘에 들지 않았다.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니.. 순전히 내 짐작이지만, 그때가 김승수 선배가 막 신삥 교직원으로 의욕적으로 뭔가 보여주기 위했던게 아닌가 싶다.. 암튼 몇 달 지나지 않아 김선배께서 큰 선물을 취주악부에 갖다주셨다. 광이 번쩍번쩍 광택이 나는 A급악기 일절.. 나중에 들어서 알았는데 김선배께서 고집을 부려 在美校友들로부터 기증 받은 선물 이었다. 우리 ‘71학번들은 참 복이 많아 좋은 악기로 연주할 수가 있었고, 이름은 다 기억이 안 나지 만 트럼펫 3명, 트롬본 2명, Base 1명, 드럼 2명.. 최문규, 조건, 임선배, 박기복, 이기남, 나,... 등등. 제법 괜찮은 멤버들로 구성되어 석탑축제 때 소박한 연주회도 했던 기억이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신입생시절 무슨 대학생 음악경연대회에 나가 예선, 결선을 거쳐 최우수상도 받아봤고(이 건 이성규 형님이 쓸것 같고), 여름방학 때 홍천에 있는 11사단의 포병 사령부에 응원지원을 나가 며칠간이지만 아주 편한 군대생활도 경험했다. 우리가 졸업할 때만해도 졸업과 동시에 산지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져서 특별히 친하지 않은 이상 서로 연락을 주고받을 수가 없는 삭막했던 시대였던 것 같다. 40여년이 지난 지금 그리운 얼굴들은 기억이 나는데, 이름이 가물가물하니 내가 생각해도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도 즐거웠던 추억은 ‘69학번 형님들과 지낸 것 그리고 트럼펫 후배들을 만난 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지금은 한물간 개그맨(흐물흐물한, 특히 아랫도리가 부실한)이 유행시킨 “숭그리 당당 숭당당 수구수구 당당 숭당당”이 있는데, 실은 원조가 고대 취주악부의 ‘69학번 중의 한분이다. 그때 취주악부에 숭구리黨이 있었고 이 당의 黨歌가 “숭구리..”였다. 이름이 기 억은 안나지만 黨首였던 그 선배가 만든 작품이었는데.. 몇 년 뒤에 부실한 하체를 자랑하는 그 개그만이 철자하나 안틀리고 똑같이 해서 히트를 쳤고, 그 친구는 지금도 가끔 TV에 나와 “숭구 리..” 읖조리는 걸 보면 그 선배가 새삼 그립다. 지금 어디서 무얼 하고 계시는지... 지금도 가끔 그때가 그리울 때가 있다. 참 좋은 시절이었었던 것 같다. 2학년 때는 이강해 선배가 부장을 맡았었는데, 기억이 나는 건 2가지. 괜히 트집을 잡아 학생 회관 5층에서 빳따 맞은 일 그리고 고연전 연습을 위한 합숙이랍시고 식당을 학교 앞 중국식당 을 잡아 하루 세끼를 짜장, 짬뽕을 번갈아 한달여 먹었던 것. 지긋지긋하게 먹었지만 지금도 가 끔은 중국음식이 생각나는 건 강해형님 덕분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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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학번 차근식, 73학번 이찬용 그리고 나 이렇게 셋이서 합주를 하면 왜 이렇게 호흡이 잘 맞 는지.... 우리 18번은 “나팔수의 휴일”이었다. 더이상 말이 필요 없는 3인의 트럼펫 트리오였다. 그리고 응원단 선후배들과의 추억도 빼놓을 수 없을 것같다. 강당 1층에 응원단실이 있고 2층 다락방이 우리 취주악부실이었던 관계로 서로의 공적인 관계도 관계이려니와 사적으로도 많이 친했었다. 그때에는 진로소주보다는 “노주”라는 국산 럼주가 유행이었었는데 밤마다 “노주”를 홀짝홀짝 마시며 세상사 이런저런 얘기를 허심탄회하게 주고받았었다. 지금은 응원부와의 관 계가 많이 소원해진 젓 같은 느낌이 들어 서운한 감이 있다. 이런게 인연이 되었는지 처가 쪽의 외삼촌의 장남(74 or 75 김종성)이 응원단출신이다. 76년 군을 제대하여 복학을 하니, 그때는 74학번 장명호, 홍준익, 연건희, 김병순 동문들이 동아리 집행부를 맡고 있었는데 취주악부의 방향이 연주회중심으로 바람직스럽게 바뀌어 있 었고. 내가 아는 한 가장 열심히 그리고 열정적으로 오늘날의 취주악부 기초를 다진 학번이다. 졸업 후 20여년 이상이 지나, 우연한 기회에 기복이를 만나게 되었고 동문회도 결성이 되었고, 재학생들도 정기적으로 연주회를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90년대 말인가, 2000년 초엔가 재학생연 주회에 들러보곤 깜짝 놀랐다, 연주 실력이 상상한 것보다는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에 내가 꿈꾸었던 일을 우리 후배들이 이뤄준 것 같아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기뻤고, 이렇게 지도해 준 지휘자도 참 고마웠다. 물론 그 구성원 중에는 몇몇의 졸업생과 객원연주자들이 있었겠지만... 나는 원래 앞장서서 가기보다는 뒤에서 조용히 후원하기를 좋아하는 소극적인 스타일이다. 그래서 그런지 그 흔한 밴드부장직도, 지휘봉도 잡아보지도 못했다. 그저 연주자의 일원으로 트럼펫만을 열심히 연주해왔을 뿐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2004년도에 이화자 후배가 동문회장을 맡아달라고 했을때, 이런 모임을 이끌어 본 경험이 한번도 없었던 터라 많이 망설였지만, 한편으론 몇 년 전의 감동도 있고 해서 그냥 눈 질끈 감고 수락했다. 2005년은 나에게는 여러모로 바쁘고 보람된 한해였다. 수많은 선배님들, 후배님들의 성원으 로 100주년 기념 선후배합동연주회를 성황리에 마칠 수가 있었다. 특히 물심양면으로 취주악 부 발전을 위해 수십년 동안 성원을 해 오신 윤세영 선배님의 지휘로 교가를 합창할 때가 가장 감동적이었다. 이 분위기를 이어 우리 취주악부 졸업생을 위주로 하는 사회인 연주단체를 만들 자는 의견들이 분분하였고, 몇몇 동문들이 앞장서서 뛴 결과 “WETUTTI”가 탄생하였다. 또한 “WETUTTI” 탄생을 기념이라도 하듯이 서울시 주최 경연대회에서 “젤로소”를 제치고 최우수 연주상을 수상하였다. 그것도 100% 우리 취주악부 졸업생, 재학생만으로 말이다. 또한, 방배동 연습실도 마련했고 매주 모여 합주도 했다. 창단 연주회도 근사하게 치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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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목에서 “WETUTTI” 탄생얘기를 좀 해야겠다. 73학번인 김창호 후배로부터 “젤로소”라 는 사회인 관악합주단에 대한 얘기를 종종들을 기회가 있었고, 나도 서울에서 직장을 다녔으 면 한번쯤 문을 두드렸음직한 연주단체이었을 것이다. 또한 우리 취주악부 졸업생들 상당수가 이 단체에서 활동을 해왔었고, 그때 당시에도 적지 않은 동문들이 “젤로소”의 핵심멤버로써 활 동하고 있었으며, 그 외의 많은 동문들이 우리 취주악부교우가 주축이 되는 연주단체를 만들 었으면 하는 의견을 갖고 있음을 아는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동문회장으로서 앞장서서 이 일을 추진하지 못해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들었고, 나는 다만 동문회장으로서 추인만 하면 되는, 그런 분위기였다. 그러던 차에 열렬한 후배 몇몇이 우리 취주악부 교우들이 주축이 되는 연주단체 결성의 뜻을 가지고 지휘자인 유동휘 선생과 논의를 한 후 나에게 상의를 해왔다. 그동안 보여준 우리 교우 들의 실력으로 어렵지 않게 결정을 내릴 수가 있었다. 진정한 나의 뜻은 우리 졸업생들이 원할 때 편하게 연습할 수 있는 그런 공간도 마련해주고, 이런 연습을 무대에서 여러 청중들에게 가 끔은 발표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졸업과 동시에 악기연주를 잊어버려 야 하는 나 같은 사람이 더 이상은 없었으면 하는 바램이 제일 큰 이유였다. 금상첨화 인 것은 교우들 연주 실력이 어디에 내놔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교우들이 수십명에 달해 몇몇 특수악기 를 제외하고 즉각 괜찮은 연주단이 될 수가 있었다. 당연히 우리의 목표는 대한민국 제일의 관 악연주단임은 자명했고, 그 해 여름에 참가한 서울시 주최 경연대회 최우수상으로 그 가능성을 증명도 해보였다. 그 때의 감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100% 고대 취주악부 동문 및 재학생들이 일치단결하여 그야말로 자발적으로 연습에서부터 경연대회에 임했고, 경연대회에 참석 못하는 선배, 후배님의 열렬한 후원 그리고 최우수상 소 식이 발표되는 날 약속이라도 한 듯 내방동 연습실 근처 식당에 하나 둘씩모여 밤늦게까지 서 로서로 축하해주던 광경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야말로 일치단결된 우리 취주악부 동문들을 보았다. 게다가 연주 실력도 출중한... 이 글을 빌어 “WETUTTI” 창단을 위해 물심양면으로 최선을 다 해준 교우분들(선배님들, 임현 호(의학 75 클라리넷)를 위시한 여러 후배님들 그리고 지휘자인 유동휘 선생)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길지않은 회장 재임기간동안 WETUTTI 창단과 발전을 위해 미력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었음이 나로서는 큰 보람이었다. 앞으로도 오래오래 함께하는 WETUTTI 연주단이었으 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끝으로 그동안 느낀 바를 우리 교우들에게 말하고 싶다. 재학생 시절서부터 느껴온 것인데, 동아리 구성원들 중에 동아리에 나와서 같이 연주하는 것 을 자기들 딴에는 큰 희생을 하고 선심을 쓰는양하는 친구들이 몇몇은 꼭 있었는데, 그 폐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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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졸업한 후 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 같아 참 안타깝다. 애초에 자신이 좋아서 택한 것이라 면, 조금은 마음에들지 않고 약간의 희생이 따르더라도 기꺼이 즐거운 마음으로 같이 할 수 있는 우리 동아리, 교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고,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어주고 다 같이 옆에서 박수를 쳐주는 그러한 취주악부 교우회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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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회고담 |
고대관악부 95주년과 고대문화예술회의 창립 물리 78 Cla 김 윤 성
지난날 추억 중고교 시절부터 자연과 음악에 관심이 많아 보이스카웃 및 방송반 활동을 하면서 학창생활을 보냈었다. 고교때는 취미생활로 밴드부에 가입할까 했는데 당시 밴드부 지도교사님 말씀이, 전 공으로 할 것 아니면 나중에 대학 들어간 후에 해도 늦지 않다고 조언해 주셔서, 음악에 대한 시 도는 잠시 접고, 여행 및 등산과 학기 중엔 방송반을 창단하여 교내 문화활동 전파에 힘을 쏟았 었다. 이 후 물리학을 전공으로 하여 고려대에 입학했다. 입학 후 이틀에 걸친 교가, 응원가 연습 등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마쳤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학업에 충실(?)하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음악이나 산을 해야 하겠다는 결심은 하지 못했 다. 그러던 3월 어느 날, 지금은 ‘우당교양관’으로 명칭과 구조가 바뀐 ‘교양관’에서 수업을 듣 고 있는 중, 어디에선가의 트럼펫 소리가 내 심장을 파고들어 나도 모르게 마치 홀린듯 당시 서 관 앞 ‘대강당’ 내에 있던 취주악부(현 관악부) 써클실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 강당에는 이층에 관악부가 있었고, 아래에 당시 현악부(현 관현악단), 산악부, 응원단 등이 있었다. 잠시 갈등했 던 산악부를 뒤로 하고 음악소리 나는 2층의 관악부로 발길을 옮겨놓은 것이 내 인생의 큰 전 환점이 될 줄은 몰랐었다. 사실 고려대는 음대 및 미대 등 예술대학이 없는, 그저 취미로나 하는 써클의 수준으로만 알 고 있었는데 막상 그들의 열정과 연주 실력은 가히 상상을 못할 정도로 심취해 있었고, 연주회 나 고연전 행사를 위하여 서너달씩 합숙하는 것은 거의 군대 수준 이상의 강도였다. 그렇게 전 공 아닌 전공에 정열을 쏟으며 나의 학창시절은 흘러갔다.
관악부와 현악부, 고전기타부와의 조우 및 합동 예술제의 무산 1980년 당시는 3학년이 써클부장을 맡을 때여서 나름대로 종합음악예술 연주회를 개최코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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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취주악부, 현악부와 고전기타부 세개 단체가 모여 5월 축제 기간에 합동음악회를 개최코 자 준비하던 중 1980년의 정치적인 사유로 인해 모든 행사가 취소되게 된다.
단위 단체로의 자생 그 이전, 이후에 각 동아리의 필요에 의해 한두 단체의 합동연주회가 개최되었으나 종합 예술 제는 성사되지 않았고, 개교 100주년 때인 2005년을 계기로 합동음악회를 시도해 보았지만 준 비기간의 부족과 추진주체의 결여 및 각 단위 단체의 이해도 차이로 인해 성사되지 못하였다. 관악부도 2005년도, 개교 100주년 겸 관악부 창설 85주년(고대 써클등록 50주년)을 계기로 보다 전문적인 관악교우 및 사회인 단체를 만들어 전문적이고 쳬계적인 지도 하에 매년 2~3회 의 교우회 연주회 및 부산, 나주, 원주 등 지역사회와의 공연 및 각종 국내외 대회에 출전하여 좋은 성적을 거두는 등 왕성한 활동을 하였으며, 특히 2012년 12월 29일에는 약 70여명의 규 모로 선후배합동연주회를 개최하여 1955학번부터 2012년 학번까지 약 60년의 나이 차를 악기 하나로 한마음이 되는 연주회를 개최한 바 있다.
종합 음악 문화예술 교우회의 태동 우리는 어쩌면 음악대학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더 유연하게 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기존의 작곡, 기악, 성악 그리고 실용음악 등의 학문적 분류에 의한 것 보다 더 자연스러움 그 자체를 가지고 있다 할 것이다.
각 분야는 각각의 고유의 장르가 있다. 행사와 열병으로 대표되는 Brass Band의 씩씩함과 웅장함, 실내악으로 대표되는 현악,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환상적인 악기라는 성대에서 나오는 합창의 아름다움, 음악의 기본 이라는 피아노와 색다른 세계로 안내하는 클래식 기타의 아름다운 선율, 그리고 국악과 타악 기등이 각자의 세계에서 유영하다 또 다 같이 한데 어우려 신나고 우아한 한마당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2013년 2월에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고려대학교를 만들고자 뜻이 모여져서, 관악 교우회 고문인 이문용(상학 55) 교우의 빌딩인 호연재에서 관악부(구 취주악부), 관현악단(구 현악부/실내악부), 합창부(구 음악부)의 교우회 고문들이 모이게 된다. 그 이후 관악교우회 고 문인 이문용(상학 55) 교우의 빌딩인 호연재에서 2013년 4월 9일 제1회 가칭 고려대문화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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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회(이하 고문교) 를 설립하기 위한 홍보위원회와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고 관악부를 위시하 여 관현악단, 고전기타부, 피아노부, 합창부 교우회의 회장, 총무, 고문으로 이루어진 운영위원 회를 매주 화요일 호연재에서 개최하고, 미술교육과(현 조형학부) 교우들의 미술 작품과 문학 교우들의 문학작품 전시를 겸하여 동년 11월 10일 서울 KBS 공개홀에서 제1회 고대문화예술 교우회를 개최하였으며, 매년 문화예술제를 개최하고 있다.
2015. 3. 9 글. 김 윤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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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회고담 |
평생의 동반자, 고려대학교 관악부
생명공학부 06 Sax 박 훈 성 의학전문대학원 의학과 13在 안녕하세요! 관악부 95년지 발간을 축하드리며, 많은 선배님들의 노력에 보탬이 될 수 있어 영광입니다. 전 이 자리를 빌어 2006년부터 현재까지 저와 함께 해 온 관악부를 소개해보려 합니 다. 벌써 9년이란 시간이 흘렀네요. 2006년 3월 신춘연주회 일주일 전쯤 동아리방 문을 두드 렸고, 처음으로 참여한 행사는 여름합숙이었습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학기 중에는 서먹했던 사이가 일주일간의 합숙을 다녀오고 나면 친한 사이가 되어있지요. 연례행사는 다른 선후배님들께서 잘 말씀해 주실 것 같아서 저는 특별 했던(?) 행사 위주로 말씀을 드려볼 까 합니다. 첫번째로 기억에 남는 건 07년도 가을에 서울랜드 주관 음악 경연대회에 참여했던 것이었습니다. 관악 경연대회가 폐지되어 마땅히 실 력발휘를 할 곳이 없었지만 우연히도 ▲ 2006년 여름합숙에서 06학번
시기가 잘 맞았지요. 여러 장르의 팀 들과 경쟁하다보니 공동 2위를 수상 하긴 했지만, 그래도 뭔가 해냈다는 느낌은 아직도 잊혀지질 않습니다. 그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행사는 2012년 5월 5일 어린이날에 남산원 에서 있던 행사였습니다. 01이유건 선배님의 주도로 단원 일부가 주말 마다 남산원의 아이들에게 악기를 가
▲ 2007년 서울랜드 음악경연대회 2위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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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쳐주는 봉사를 해 왔습니다. 그 일 환으로 어린이날에는 더 많은 인원을 모아 연주행사를 했습니다. 연주활동을 해오면서 처음으로 음 악을 통해 봉사를 할 수 있었던 의미 있던 시간이었고, 그 기쁨을 알게 해 준 01이유건 선배님께 다시 한 번 감 사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일은 13 년도 신춘연주회였습니다. 학부생활 을 마무리하며 협연을 하게 되었습니 다. 부원들도 연습하느라 고생이 많 았고, 특히 협연을 할 수 있도록 영 광스러운 기회를 주신 유동휘선생님 께 감사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이 연 주가 끝나고서는 드디어 졸업생이란 느낌이 피부로 확 와닿기 시작했습니다. 졸업 후 의전원 생활이 바쁘다보니 예전만큼의 왕성한 활동은 할 수 없지만 가끔 여유가 나면 합주를 하러 연습실로 찾아가곤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있었던 고려대학교 문화예술교우회의 1회 연주회를 꼽을 수 있겠네요. 졸업생 선배님들의 노력으로 KBS홀에서 열렸던 대규모의 연주였습니다. 선배님들의 엄청난 추진력과 동원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던 행사였습니다. 관객들도 KBS 홀을 가득 채웠 고, 연주도 잘 마쳐서 뿌듯했던 기억이 남네요. 관악부 생활을 시작하면서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을 종이 몇 장위에 다 적기란 어려운 일이라 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못다한 나머지는 앞으로 후배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로 전달하고자 합 니다. 제가 함께 해왔던 시간보다 앞으로 해 나갈 시간이 더 많기에, 쭉 좋은 추억들을 만들며 즐겁게 살아가겠습니다. 그동안 함께했던 모든 선후배동기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며 마무 리하겠습니다.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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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회고담 |
관악부와의 소중한 추억
경제 08 Sax 용 주 현
대학 새내기 시절, 함께 역도부에 가입하자는 친구를 뒤로하고, 누군가의 악기 소리에 이끌 려 다다른 관악부 동아리방. 문을 열고 들어갈까 말까 두근거리며 고민하길 몇 번, 마침내 문을 열었고 그때부터 평생 잊지 못할 동아리 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 고등학교 3학년때 자주 들었던 ‘곱슬머리 케니지’의 아름다운 연주를 떠올리며, 무턱대고 색 소폰이라는 악기를 선택했습니다. 색소폰에 대해서는 색소폰의 영어 철자 saxophone만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색소폰 파트를 담당하던 선배 형들 덕분에 가까스로 소리를 내고, 손가락을 움 직이고, 악보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새내기 부원이었던 저는 매주 화요일 금요일에 있었던 합주 때는 참여하지 못하고 구경만 했지만, 여러 악기들이 이루어내는 화음을 들으면서 언젠가 는 화음의 일부가 되고 싶다는 욕심도 생겼습니다. 물론, 그 당시에는 처음 배우는 악기 연주도 재미있었지만 합주가 끝나고 진행되던 뒤풀이가 더 즐거웠다고 생각합니다. 동갑내기 친구들만 만나다가 형, 누나들과 함께 이런저런 얘기하던 화요일, 금요일의 밤들이 머릿속에 남습니다. 그렇게 언제까지나 관악부의 막내로 시간이 멈출줄 알았는데.. 어느덧 겨울이 지나고 또다시 봄이 오고, 한 학년 어린 후배들이 관악부에 들어왔습니다. 뭔가 선배가 되었다는 부푼 마음에, 미숙한 악기 실력이나마 파트 후배에게 알려주기도 하고, 동아리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알려 주기도 하였습니다. 당해 연도에는 저와 동기 부원들이 관악부를 실질적으로 이끌어야 했습니다. 1학기가 끝나 는 시점에, 동아리 내 일련의 사정으로 저는 갑작스럽게 부장 직위를 맡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저와 동기인 부원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선배 형, 누나들 그리고 후배들이 많이 도와주어야 했 습니다. 관악부 가장 큰 행사인 연주회부터 개교기념일과 같은 학교 행사에의 참여 등 부장 혼 자 힘으로는 진행할 수 없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그때마다 도와주던 선배들, 후배들.. 한명 한 명이 떠오릅니다. 잊을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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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장이 되고 나서 저의 첫 연주회는 2009년의 정기 연주회였습니다. 그때의 정기 연주회 준 비를 떠올려보면, 무엇보다도 여름 합숙이 생각납니다. 여름의 낙산 수련원은 생각만 해도 즐 겁습니다만, 제 불찰로 인해 낙산 수련원 예약을 제대로 하지 못해 다른 연수원으로 장소를 옮 기는 등 시작부터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부장으로서 악기라도 잘 연주해야 했 지만 악기 연습은 연습대로 제대로 준비가 안되어 합주 시간마다 지휘자 선생님께 혼나고.. 합 숙 하루 하루가 힘들었습니다. 합주로 시작하여 합주로 끝나는 고된 스케줄로 부원 모두가 체 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지친 와중에도 버틸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합숙 기간 매일 밤 있었던 뒤풀이라고 생각합니다. 과도하다고 할 수 있는 음주와 이에 따르는, 평소에 볼 수 없었던 선후 배들의 새로운 모습들을 보며 서로가 더 가깝게 되었습니다. 합숙과 관련해서 한 가지 더 기억 나는건 아버지 어머니 연배되시는 선배님들이 합숙장소에 찾아와 부원들을 독려해주었던 점입 니다. 고학번 선배님들의 관악부에 대한 애착을 몸소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합숙이 끝나고 연주회 당일까지는 정신없이 시간이 흘렀습니다. 연주회 당일, 정작 저는 허 둥댔지만, 선후배의 도움으로 이상 없이 연주회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정기 연주회 때 연주했던 곡들이 모두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하나 정확히 기억하는 곡은 ‘Michael!’이라는,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관악곡으로 편곡한 곡입니다. 지휘자 선생님의 넓은 아량으로 저에게도 솔로 파트가 있었던 곡이었기 때문에 여전히 기억에 남습니다. 실제 연주 결과는 저를 포함하여 많은 이들의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현재까지도 저는 그때의 연주 회 실황 녹화영상을 볼때, 그 부분만큼은 차마 다 보지를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아리 선후배와 만나면 훌륭한 이야깃거리는 될 수 있다는 점에 자부를 느끼고 있습니다. 마이클 잭 슨을 따라한답시고 머리에 잘 맞지 않는 중절모를 쓰고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뭔가 어색한 연 주를 한 장본인이 바로 나라고.. 그렇게 저의 첫 연주회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연주의 완성도 등 얼마나 성공적인 연주회를 했 느냐는 생각보단, 일단은 큰 탈 없이 연주회를 무사히 마쳤다는 안도감이 밀려오며 그 안도감 은 뒤풀이에서의 소주와 맥주로 채워졌습니다. 이 한 잔은 연주회를 무사히 마칠 수 있게 도와 준 선배들, 또 한 잔은 잘 따라와준 후배들, 또 한 잔은 여러모로 부족하고 미숙한 부장인 나를 위해.. 또 이런 추억을 만들어준 ‘관악부’에.. 부장직을 후배에게 물려주고 입대한지 4년이 넘어가는 현재에도, 무언가에 열중하다가도 ‘갑 자기’ 떠오르는 기억 중에는 관악부와 관련된 사소한 추억이 많습니다. 합주가 끝나고 뒤풀이에 가서 안주만 먹다가 선배에게 한소리 들었던 기억, 술자리 게임에서 벌칙으로 혼자서 30분 동 안 롱톤 연습만 했던 기억, 동아리 방에 놓여있던 방명록에 장난친 기억, 어느 선배에게 한눈에 반했던 기억, 그리고 눈물을 흘리며 낙산의 겨울 바다를 바라보던 기억부터 합숙 때 선배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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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왔던 끈적한 보드카, 파트 선배가 해주었던 양송이 버섯이 들어간 스파게티, 동아리 방에 가 면 항상 술병과 함께 누워있던 어느 선배까지 사소한 기억 하나하나가 갑작스레 떠오를 때면, 관악부에 고마움을 느낍니다. 새내기 때 용기내어 관악부 동아리방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이런 소중한 추억들은 없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이 자리를 빌어 미처 하지못했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는 제가 부장으로서 역할을 충분히 하지 못했었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모로 부족했던 부장을 도와주었던 선배들, 후 배들.. 정말 고마웠습니다. 한 명 한 명 이름을 나열할 순 없지만 항상 기억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합주하게 될 그 날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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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회고담 |
관악부와의 추억
식품공학 08 Perc 최 일 섭
안녕하세요. 타악기 08학번 최일섭입니다. 먼저 고려대 관악부 95년지 발간을 진심으로 축 하드립니다. 이는 많은 분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울러 이곳에 저의 글을 실을 수 있어 영광이라 생각합니다. 2014년 3월 8일, 소월아트홀에서 신춘연주회가 열렸습니다. 관객의 입장에서 연주회를 지켜보고 있노라니 여러 생각들이 마구 뒤엉키더군요. 늘 그렇듯, 연주회를 통해 모두가 하나가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연주자 뿐만 아니라 관객도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이 특히 매력적이죠! 찾아주신 관객분들도 처음에 는 잘 모르고 오셨다가, 공연이 끝나갈 즈음에는 긴장을 풀고 박수도 쳐주시더군요. 아, 이것이 음악의 힘이구나 싶었습니다. 저는 2008년 모교에 입학하였지만, 2010 년이 되어서야 관악부에 가입하였습니다. 사실 그 전까지는 관악부의 존재도 모르고 있다가, 과 후배인 송하윤(09오보에) 군으 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봄 학기 개강과 동시 에 방문하게 되었죠. 당시 저를 맞이해준 용 주현 부장(08색소폰)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 하네요. 다들 연주회 준비에 한창인 모습이 었습니다. 낯선 공간이었지만, 사람들은 저 를 따뜻하게 맞이해주었습니다. 제가 타악 기를 하러 왔다고 하니 환호와 걱정의 눈초 리를 동시에 보내시더군요. 지금은 왜 그런 지 이유를 알 것 같지만, 당시에는 몰랐습니 다. 2010년 3월 13일, 저는 그렇게 스태프 로서 제 생애 첫 연주회를 맞이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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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연주회가 끝나고 나서야 왜 타악기 연주자가 귀한지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모든 파트가 귀하지만, 2010년 신춘연주회 당시 타악기 파트에 재학생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따 라서 본격적인 동아리 홍보에 들어가야했고, 스스로가 신입부원인 입장에서 앞으로 함께할 파 트원을 구해야했기에 동아리 홍보를 위한 합주도 참석해야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실 력으로 어떻게 했나 싶을 정도로 아찔한 기억이 남아있지만, 어찌되었든 1학년 신입생 두명을 영입하여 맹연습에 들어갔습니다. 따라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합주, 무더웠던 여름날의 합숙 그리고 대망의 정기연주회까지… 모두가 한 마음으로 함께하였기에 해낼 수 있었다고 생각합 니다. 이 자리를 빌어 타악기 파트 선후배님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렇게 첫 연주회를 마치고 나니 그 다음 연주회부터는 비교적 수월해지더군요.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맞나봅니다.
▲ 2011년 안면도 겨울합숙 타악기 파트 사진 – 왼쪽부터 01안광훈, 10강혜리, 08최일섭, 97권희준
시간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졸업을 할 때가 왔습니다. 동아리방을 찾은 때가 엊그제 같은데, 집행부와 부원들이 졸업생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주더군요. 하지만, 이별이라는 느낌은 전 혀 들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우리는 곧 다시 만날테니까요. 새삼 많은 선배님들께서 물심양면 으로 도와주셨기에 재학생들이 힘을 내서 동아리를 잘 이끌어올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 다. 관악부를 통해 졸업하신 선배님들께서는 사회에 진출하여 각자의 일을 열심히 하시면서도 악기를 놓지 않고 꾸준히 연습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요, 재학생 후배들은 캠퍼스 생활에 있 어 또 하나의 소중한 추억을 쌓을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저 역시 졸업생의 입장으로 앞으 로도 동아리의 발전을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임을 다짐하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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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회고담 |
관악부와의 인연
경영 09 Euph 장 창 수
사람이 한 번 태어나서 여러 즐거움을 가질 수 있겠지만, 그래도 가장 큰 행복 중 하나는 바 로 좋은 인연을 만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개성 넘치고 재능이 출중하며, 재기발랄한 사 람들이 오직 음악을 하는 즐거움을 위해서 한자리에 모였다면 더더욱 그럴법 합니다. 2009년 입학하고 관악부에 적을 둔지 5년, 다행스럽게도 관악부에서 여러 감사한 인연들을 만날 수 있 었습니다. 존경스러운 선배님들, 자랑스러운 동기들, 그리고 어느새 괄목상대한 후배님들까지. 하나같이 소중한 인연입니다. 평생 이렇게 좋은 사람들을 여럿 만나기가 쉬울까요. 동아리가 인연이 되어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여러 가지 일들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매년 봄에는 신춘연주회, 가을에는 정기연주회를 열어 연주자들과 관람객들이 함께 어우러져 즐거 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입학식, 졸업식, 개교기념일에 학교 행사의 원활한 진행을 도우기도 했 습니다. 지하철역으로 나가 시민들을 위해 연주를 했었고, 작은 인연이 닿아 방송에 나온 적도 있습니다. 음악을 통해 저희들만의 작은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즐기기도 하고, 또 사회에 여러 모습으로 봉사할 수 있었다는 점은 영원히 간직할 자랑입니다. 음악에 빠져서 오로지 악기만 잡고 동아리방에서만 며칠씩 시간을 보내면서 연습을 하던 것. 사소한 다툼에 며칠 눈도 마주치지 않다가 저녁에 술 한 잔 걸치고 취기에 안암을 이리저리 헤 집고 다니던 것. 낙산 수련원에서 합숙하다 한번씩 바닷물에 온몸을 적시던 것. 은행나무 우거 진 공원에 느긋한 소풍을 간 것. 교내 행사 때 모여서 연습하고, 졸업식 입학식이 무사히 끝난 후 밥 한 끼 먹으면서 도란도란 수다떨던 것. 하나같이 소중하기만 합니다. 아직 어리지만, 살아가면서 몇 안 될, 결코 후회하지 않을 시간 을 보냈다는 자랑으로 앞으로도 살아갑니다. 사랑합니다 관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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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신: 나의 사랑하는 09 동기님들, 그대들의 앞날에 건승을 기원합니다. Flt 김기진, Cla 김정원 이상록 이상민, Sax 강찬수 배진희 이수정, Trp 김초영 편정혜, Horn 김동민 이인하, Trb 김세원
▲ 2010년 여름 합숙
▲ 2011년 겨울 합숙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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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여름 합숙, 낙산 바닷가
▲ 2013년 가을 야외 공연
▲ 2013년 가을, KBS 다큐멘터리 “내 기억속의 전쟁 앙카라 학교”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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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회고담 |
관악부와의 인연
정외 11 Fl 이 수 연
제가 관악부에 처음으로 들어온 때는 2011년, 제가 이 학교에 입학한 해였습니다. 고등학 교 때에도 항상 음악과 관심이 많았던 저는 대학교 입학 후에 들어가볼 음악 동아리를 열심히 찾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저는 제 동기인 영재 언니를 통해 관악부를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관악부에 대한 저의 첫인상은 그 역사가 매우 깊다는 것과, 그 친분이 어느 동아리보다도 돈 독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악기를 불어본지 참 오래되어 많이 서툴었지만 열심히 참가했던 합주 는 제게는 참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재미있었고, 저는 관악부의 매력에 푹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새록새록 음악에 대한 애정을 키워갈 즈음, 관악부 의 꽃이라 할 만한 합숙과 연주회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처음 맞이한 저의 합숙 그리고 연주회는 제게는 잊을 수 없는 기억입니다. 정말 모든 것이 서 툴렀고, 막내 학번으로 참여한 합숙에서는 일주일 동안 부원들과 함께 먹고 놀고 연주하며 일
▲ 제 첫 연주회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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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을 꼬박 보냈고, 계속되는 합주에 지치기도 하였지만 부원들과의 생활은 너무나 재미있는 일주일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합숙을 다녀와서 서게 된 연주회. 그 동안 준비한 모든 것들을 무 대 위에서 표현해 내었을 때, 그 기쁨은 진실로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이미 저는 완전히 관 악인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 이후, 저는 관악부의 집행부가 되었습니다. 한 단체를 주도적으로 이끌어나간다는 것은 참 힘들었고, 동아리 활동이 가끔은 너무도 힘들었지만 잘 버텨 내었고, 지금까지 강한 소속감
▲ 봉사활동도 열심히 했답니다!
▲ 부원들과 합숙에서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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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동아리 활동을 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무엇보다도 저는 관악부 활동을 통해 음악에 대한 조예를 키우고 음악에 대한 애정을 키워나 갔다는 사실이 참 기쁩니다. 사실 고등학교 때까지의 저는 단순히 음악에 관심은 많았지만 실 제로 음악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지는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관악부 활동을 하면서 많은 부 원들과 만나고, 함께 공부하며, 악기를 연주하면서 음악과 악기에 대한 정말 많은 것들을 배웠 고 또 몸으로 익혔습니다. 이는 정말 제 대학 생활에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한 부분이며, 대학 교에 와서 했던 가장 의미있는 활동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이미 졸업하여 사회에 나가신 고 학번 선배님들 또한 졸업 후에도 교우회 활동 혹은 위튜티 모임, 그 외에 사적으로 친목 도모를 꾸준히 해 나가시는 모습을 보면 동아리에 대한 자부심과 고마움을 모두 느끼게 됩니다. 이제 고학번이 되어 이전만큼 열심히 활동을 하지는 못하겠지만, 꾸준히 음악과 동아리에 대한 사랑 을 키워나가려 합니다. 관악부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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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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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윈드앙상블(취주악부) 교우회 회 칙 고대윈드앙상블(구 취주악부) 동문회 회칙(2001년) 제1장 총
칙
제1조(명 칭) 본 회는 고대윈드앙상블 동문회라 칭한다. 제2조(소재지) 본 회의 소재지는 서울특별시내에 둔다. 제3조(구 성) 고려대학교 재학시 윈드앙상블(취주악부) 활동을 했던 사람은 자동으로 동문 회의 구성원이 된다. 제4조(목 적) 본 회는 각종 회원 상호간의 친목 도모 및 후배지원을 목적으로 한다. 제5조(활 동) 본 회의 활동은 다음과 같이 한다. 1.정기적으로 재학생들과 체육대회를 개최한다(매년6월6일) 2.비정기적으로 재학생들과 연주회를 개최한다. 3.기타 본회의 친교와 목적달성에 관한 활동
제2장 회
원
제6조(자격 및 입회) 본 회의 설립목적에 찬동하며 고대윈드앙상블을 졸업한 자로 한다. 제7조(회원의 권리) 1. 회원은 선거권, 피선거권 및 기타 소정의 의결권을 가진다. 2. 회원은 본회에서 주관하는 모든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제8조(회원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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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모든 회원은 본회 회칙의 제 규정 및 결의사항을 준수하여야 하며 회비, 기타 부담금을 소정 기일 내에 납부하여야 한다. 2.월회비 및 기타 의무금의 변경은 총회에서 결정한다. 제9조(애경사) 회원의 애경사에 관한 사항은 별도로 정한다.
제3장 기구조직
제10조(의결기관의 종류) 본 회는 다음과 같은 의결기관을 둔다. 1. 총 회 2. 임원회 제11조(총회) 1. 정기총회는 매년 11~12월 중 회장이 소집하며 회장이 의장이 된다. (단,상황이 여의치 않을때 다음해 1월까지 개최한다.) 2. 임시총회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 해당될 때 회장이 소집한다. 1) 회장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2) 임원회가 소집을 요구할 때 3) 회원 30인 이상의 요구가 있을때는 회장은 15일 이내에 총회를 소집해야 한다. 3. 총회의소집을 위해서는 7일전까지 회원들에게 알려야 한다. 단, 정기총회는 14일전까지 결산서를 포함한 소집안내를 서면(홈페이지 게시 포함)으로 통보하여야 한다. 4. 총회의 의장은 회장이 되며, 회장의 유고시나 회장의 양해시에는 총무가 의장 직무를 대행한다. 5. 총회는 30인 이상의 출석으로 성립되며 특별한 사항이 없는 한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된 다. 단, 가부동수일 경우 의장이 표결에 참가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의장이 결정권을 갖는다. 제12조(총회의 의결사항) 다음 각호는 총회의 의결을 받아야 한다. 1. 정관의 재정 및 개정 2. 회장 및 총무의 임명 3. 연간 사업계획서와 운영 예, 결산의 승인 4. 행사계획 및 예산의 보고 및 행사 결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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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5. 본회의 법적 지위 변경 또는 해산과 해산시 잔여재산 처분방법 결정 6. 기타 본 회의 운영에 특히 중요한 사항
제4장 임
원
제13조(임원의 종류와 수) 본 회의 임원은 다음과 같다. 1. 회장 2. 총무 3. 운영위원회(이하 ‘위원회’) 제14조(임원의 선출) 1. 회장과 총무는 총회에서 선출한다. 단, 총회에서 선거 전형위원을 선출하여 위임 할 수 있다. 2. 위원회의 임원들은 회장이 필요한 인원을 선발한다. 제15조(임원의 임기) 1. 임원의 임기는 1년으로 한다. 2. 총회에서 회원들의 요구시 연임할 수 있다. 3. 임원의 결원으로 인한 보충임원의 임기는 전임자의 잔여 기간으로 한다. 제16조(임원의 임무) 1. 회장은 본회를 대표하며 총회,임원회의 의장이 되며 업무를 총괄한다. 2. 총무는 회장을 보좌하며 본회의 전반적인 업무를 관리하며 특히 재무관리에 책임을 진다. 3. 위원회 의원들은 회장을 보좌하여 각종 기획을 하며 연락 및 동원의 책임을 진다. 제17조(임원회) 1. 정기임원회의는 년2회 회장이 소집한다. 2. 임시임원회의는 회장이 수시로 소집할 수 있으며 또한 임원회의 요구가 있을 때에도 소집하여야 한다. 3. 임원회는 재적임원 과반수 이상의 출석으로 성립되고 2/3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제18조(임원회 의결사항) 임원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의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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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 총회에 제출할 의안 2. 총회로부터 위임받은 사항 3. 정관 시행에 필요한 제 규정의 제정 및 개정 4. 기타 본회의 업무 수행에 필요한 사항
제5장 재
정
제19조(월회비)-년회비: 1백만원 납부시 평생 월회비를 면제한다. 본 회의 재정은 월회비로서 충당하며 1인 10,000원으로 한다. 월회비의 납부는 다음계좌로 자동이체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본인이 원할 경우 자동이체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입금 할 수 있다. 1. 국민은행 김준영 055-01-0405-597 2. 국민은행 김준영 809-01-0188-641 3. 조흥은행 김준영 358-01-111192 4. 외환은행 김준영 154-19-09119-4 5. 하나은행 김준영 568-810134-56007 6. 제일은행 김준영 203-10-025260 7. 우리은행 장재현 021-166641-02-201 제20조(임시회비) 신춘연주회, 동문체육대회, 정기연주회등 공식행사에 참가하는 동문들로 서 뒷풀이 및 회식에 참여하는 동문들은 총무가 정하는 금액을 총무에게 납부한다. 제21조(특별회비) 상기 회비를 제외하고 특별히 기탁된 금액은 특별회비로 따로 관리한다. 제22조(회계연도) 본 회의 회계연도는 매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로 한다. 제23조(예산 및 결산) 매년 정기총회에서 전년대비 본회의 예산 및 결산을 보고하고 의결 을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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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제6장 관리 책임
제24조(보고서류의 제출) 1. 회장은 매년 정기총회 개최 20일전까지 회장 재임 사업년도(이하 전년도라 한다)에 대한 다음 각 호의 서류를 작성하여 회원들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1)사업보고서
2)재무보고서(결산서)
2. 신임회장은 취임후 1개월내에 당해년도 예산계획을 포함한 사업계획서를 홈페이지 동문 게시판을 통하여 제출한다. 제25조(회장의 업무 인수인계) 전임회장은 신임회장이 업무를 개시하기 전까지 모든 관리 서류를 인수 인계 하여야 한다. 제26조 본 회칙에 재정되어 있지 않은 사항에 대하여는 세칙 및 일반 관례에 준한다.
부
본 회칙은 2001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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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고대윈드앙상블(구 취주악부) 동문회 회 칙 (2005년 개정) 제1장 총
칙
제1조(명 칭) 본 회는 고대윈드앙상블 동문회라 칭한다. 제2조(소재지) 본 회의 소재지는 서울특별시내에 둔다. 제3조(구 성) 고려대학교 재학시 윈드앙상블(취주악부) 활동을 했던 사람은 자동으로 동문회의 구성원이 된다. 제4조(목 적) 본 회는 각종 회원 상호간의 친목 도모 및 후배지원을 목적으로 한다. 제5조(활 동) 본 회의 활동은 다음과 같이 한다. 1. 정기적인 동문모임은 1월 신년모임으로 한다. 2. 비정기적으로 재학생들과 연주회를 개최한다. 3. 기타 본회의 목적에 맞는 체육대회등의 행사를 년1회 이상 갖는다.
제2장 회
원
제6조(자격 및 입회) 본 회의 설립목적에 찬동하며 고대윈드앙상블을 졸업한 자로 한다. 제7조(회원의 권리) 1. 회원은 선거권,피선거권 및 기타 소정의 의결권을 가진다. 2. 회원은 본회에서 주관하는 모든 행사에 참여할 수 있다. 제8조(회원의 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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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 모든 회원은 본회 회칙의 제 규정 및 결의사항을 준수하여야 하며 회비, 기타 부담금을 소정 기일 내에 납부하여야 한다. 2. 월회비 및 기타 의무금의 변경은 총회에서 결정한다. 제9조(애경사) 회원의 애경사에 관한 사항은 별도로 정한다. 단, 회원 부모 사망시 조의기와 20만원을 지원한다.
제3장 기구조직
제10조(의결기관의 종류) 본 회는 다음과 같은 의결기관을 둔다. 1. 총 회 2. 임원회 제11조(총회) 1. 정기총회는 매년 11~다음해 1월 중 회장이 소집하며 회장이 의장이 된다. 2. 임시총회는 다음과 같은 경우에 해당될 때 회장이 소집한다. 1) 회장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2) 임원회가 소집을 요구할 때 3) 회원 30인 이상의 요구가 있을때는 회장은 15일 이내에 총회를 소집해야 한다. 3. 총회의소집을 위해서는 7일전까지 회원들에게 알려야 한다. 단, 정기총회는 14일전까지 결산서를 포함한 소집안내를 서면(홈페이지 게시 포함)으로 통보하여야 한다. 4. 총회의 의장은 회장이 되며, 회장의 유고시나 회장의 양해시에는 총무가 의장 직무를 대행한다. 5. 총회는 30인 이상의 출석으로 성립되며 특별한 사항이 없는 한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 된다. 단, 가부동수일 경우 의장이 표결에 참가하지 않았을 경우에는 의장이 결정권을 갖는다. 제12조(총회의 의결사항) 다음 각호는 총회의 의결을 받아야 한다. 1. 정관의 재정 및 개정 2. 회장 및 총무의 임명 3. 연간 사업계획서와 운영 예, 결산의 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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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4. 행사계획 및 예산의 보고 및 행사 결과 보고 5. 본회의 법적 지위 변경 또는 해산과 해산시 잔여재산 처분방법 결정 6. 기타 본 회의 운영에 특히 중요한 사항
제4장 임
원
제13조(임원의 종류와 수) 본 회의 임원은 다음과 같다. 1. 회장 2. 총무 3. 운영위원회(이하 ‘위원회’) 제14조(임원의 선출) 1. 회장과 총무는 총회에서 선출한다. 단, 총회에서 선거 전형위원을 선출하여 위임 할 수 있다. 2. 위원회의 임원들은 회장이 필요한 인원을 선발한다. 3. 산하단체의 운영진은 위원회 임원이 된다. 제15조(임원의 임기) 1. 임원의 임기는 2년으로 한다. 2. 총회에서 회원들의 요구시 연임할 수 있다. 3. 임원의 결원으로 인한 보충임원의 임기는 전임자의 잔여 기간으로 한다. 제16조(임원의 임무) 1. 회장은 본회를 대표하며 총회, 임원회의 의장이 되며 업무를 총괄한다. 2. 총무는 회장을 보좌하며 본회의 전반적인 업무를 관리하며 특히 재무관리에 책임을 진다. 3. 위원회 의원들은 회장을 보좌하여 각종 기획을 하며 연락 및 동원의 책임을 진다. 제17조(임원회) 1. 정기임원회의는 년2회 회장이 소집한다. 2. 임시임원회의는 회장이 수시로 소집할 수 있으며 또한 임원회의 요구가 있을 때에도 소집하여야 한다. 3. 임원회는 재적임원 과반수 이상의 출석으로 성립되고 2/3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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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제18조(임원회 의결사항) 임원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의결한다. 1. 총회에 제출할 의안 2. 총회로부터 위임받은 사항 3. 정관 시행에 필요한 제 규정의 제정 및 개정 4. 기타 본회의 업무 수행에 필요한 사항
제5장 재
정
동문회 재정은 각종회비와 이자등의 수입으로 운영되며, 회장의 책임하에 총무가 관리한다. 제19조(평생회비) 일백만원 일시불 납부시 평생 월회비는 면제된다. 제20조(년회비) 일십만원 일시불 납부시 당해년 월회비는 면제된다. 제21조(월회비) 본 회의 재정은 월회비로서 충당하며 1인 10,000원으로 한다. 월회비의 납 부는 다음계좌로 자동이체하는 방식을 사용한다. 단, 본인이 원할 경우 자동이체가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입금 할 수 있다. 1. 국민은행 김준영 055-01-0405-597 2. 국민은행 김준영 809-01-0188-641 3. 조흥은행 김준영 358-01-111192 4. 외환은행 김준영 154-19-09119-4 5. 하나은행 김준영 568-810134-56007 6. 제일은행 김준영 203-10-025260 7. 우리은행 장재현 021-166641-02-201 제22조(임시회비-행사참석회비) 각종 연주회 및 체육대회 등의 공식행사에 참가하는 동문 들은 인당 3만원을 납부하며, 당일 추가로 납부하는 금액은 월회비로 처리한다. 제23조(특별회비) 상기 회비를 제외하고 특별히 기탁될 금액은 임원회가 결정하며, 회계보 고에 포함시킨다. 제24조(회계연도) 본 회의 회계연도는 매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로 한다. 제25조(예산 및 결산) 매년 정기총회에서 전년대비 본회의 예산 및 결산을 보고하고 의결 을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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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장 관리 책임 제26조(보고서류의 제출) 1. 회장은 매년 정기총회 개최 20일전까지 회장 재임 사업년도(이하 전년도라 한다)에 대한 다음 각호의 서류를 작성하여 회원들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1) 사업보고서
2) 재무보고서(결산서)
2. 신임회장은 취임후 1개월내에 당해년도 예산계획을 포함한 사업계획서를 홈페이지 동문 게시판을 통하여 제출한다. 제27조(회장의 업무 인수인계) 전임회장은 신임회장이 업무를 개시하기 전까지 모든 관리 서 류를 인수 인계하여야 한다. 제28조 본 회칙에 재정되어 있지 않은 사항에 대하여는 세칙 및 일반 관례에 준한다.
부
칙
본 회칙은 2005년 1월 15일부터 시행한다.
<세
칙>
1. 산하단체 설립은 동문회의 정관상 목적과 일치해야 한다. 2. 산하단체는 2005년 1월 15일 현재 동문밴드(WE Tutti)를 둔다. - 집행진과 재정은 별도 운영한다. - 집행진은 동문 운영회의 임원에 포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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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WETUTTI WIND ORCHESTRA 정 관 (2005년) 제1장 총
칙
제1조(명 칭) 본 회는 위튜티 윈드오케스트라(WETUTTI WIND ORCHESTRA)라 칭한다 제2조(소재지) 본 회의 소재지는 서울특별시 방배4동 872-13 명성빌딩 내에 둔다. 제3조(구 성) 고려대학교 취주악부(윈드앙상블) 동문 및 기타 본 회의 회원으로서 참여하 는 자유인들의 모임으로 한다. 제4조(목적) 1. 본 회는 각종 연주 및 음악활동을 통하여 회원 상호간 친목 도모를 주목적으로 한다. 2. 본 회는 사회인 연주단체로서 수준 높은 연주능력을 배양하며 더 나아가 국민정서 함양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음악활동을 지향한다. 제5조(활동) 1. 매년 정기 연주회를 1회 이상 개최한다. 2. 매년 비정기 연주회(위문공연, 초청공연, 기타봉사활동)를 하되 5회 이상 넘기지 않는 것 을 원칙으로 한다. 3. 기타 본 회의 친교와 목적달성에 관한 활동
제2장 회
원
제6조(자격 및 입회) 본 회의 설립목적에 찬동하며 음악을 사랑하는 자유인으로 임원회 심사 를 거쳐 입회원서에 등록 및 입회비를 납입하고 월회비를 납부하는 자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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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조(회원의 권리) 1. 회원은 선거권, 피선거권 및 본회의 의결권을 가진다. 2. 회원은 본 회에서 주관하는 모든 연주회에 참여할 수 있다. 제8조(회원의 의무) 1. 모든 회원은 본회 정관 및 결의사항을 준수하여야 하며 회비 및 기타 의무금을 소정기일 (매월10일) 내에 납부하여야 한다. 2. 정당한 이유로 휴회원을 제출하면 6개월까지 휴회할 수 있다. 3. 월 회비의 변경과 기타 의무금의 부과는 총회에서 결정한다. 제9조(징계) 1. 회원으로서 본 회의 품위를 손상시키거나 정관 및 제 규정 또는 총회의 의결내용을 준수 하지 않는 자 2. 정당한 사유 없이 2개월 이상 불참하거나 또는 3개월 이상 회비를 미납한 자 3. 합 주연습이나 합의된 단체 활동에서 주어진 역할에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자 등은 임원회의 결의를 얻어 경고 하거나 제명할 수 있다. 제10조(애경사) 회원들의 애경사에 관한 예산집행은 임원회의에서 결정한다.
제3장 기구조직
제11조(의결 기관) 의결기관으로 총회와 임원회를 둔다. 제12조(총회) 1. (정기총회) 매 회계연도 말에 회장이 소집하며 회장이 의장이 된다. 2. (임시총회) 다음과 같은 경우 회장이 소집한다. 1) 회장이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2) 임원회나 감사가 소집을 요구할 때 3) 회원 1/5 이상의 요구가 있을 때 회장은 15일 이내에 총회를 소집해야 한다. 3. (총회의 소집) 총회의 소집을 위해서는 7일 전까지 회원들에게 알려야 한다. (단, 정기총 회는 14일 전까지 결산서를 포함한 소집안내를 게시 공고하여야 한다.) 4. (총회의 의장) 총회의 의장은 회장이 되며 회장의 유고시 또는 회장으로부터 권한 위임을 261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받은 경우 총무 의장의 직무를 대행한다. 5. (총회의 성립과 의결) 총회는 재적표결권 수의 과반수 출석으로 성립되며 과반수의 찬성 으로 의결된다. (이 경우 의장은 표결권을 갖지 않으며 가부동수일 경우만 의장이 결정 권을 갖는다.) 제13조(총회 의결사항) 다음 각 호는 총회의 의결을 받아야 한다. 1. 정관의 제정 및 개정 2. 선거 전형위의 선출 3. 선출직 임원의 선출 및 해임(회장, 감사) 4. 임명직 임원의 인준 5. 연간 사업계획 및 예산, 결산의 승인 6. 행사계획 및 결과보고, 예산집행 결과보고 7. 본 회의 법적 지위변경 또는 해산과 해산 시 잔여재산 처분방법 결정 8. 기타 회장 또는 임원회 에서 특별히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사항 제14조(조직의 구성) 본회 조직의 구성은 다음과 같다. 1. 임원회 임원 (임명직 임원의 수와 업무분장은 필요에 따라 회장이 변경할 수 있다.) 1) 회 장 2) 감 사 3) 자문위원 4) 악 장 5) 총 무 6) 회 계 7) 악보계 8) 홍보/기획 9) 파트장 2. 후원회 1) 고대 동문 및 음악을 사랑하며 본회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경제적 지원을 포함하여 각 종 자원을 후원해 주는 개인이나 단체로 구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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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제15조(임원의 선출) 1. 회장, 감사는 총회에서 선출한다. (단, 총회에서 선거 전형위원을 선출하여 위임할 수 있다.) 2. 악장은 상임지휘자의 추천으로 회장이 임명한다. 3. 기타 임원(임명직 임원)들은 회장이 위촉하여 총회에서 인준을 받는다. 제16조(임원의 임기) 1. 선거직 및 임명직 임원의 임기는 2년으로 한다. 2. 총회에서 회원들의 요구 시 연임할 수 있다. 3. 임원의 결원으로 인한 보충임원의 임기는 전임자의 잔여임기로 한다. 제17조(임원의 임무) 1. 회장은 본 회를 대표하며 총회, 임원회, 의장이 되며 모든 업무를 총괄하고 이에 따른 책임을 진다. 2. 총무는 회장을 보좌하여 본 회의 전반적인 업무를 관리한다. 3. 악보계는 악보 구입, 기록, 보관, 배포 등 악보에 관련된 모든 업무를 수행한다. (악보의 취급과 보관) 원본 입수시 소유권 표시, 관리번호 부여, 사본제작, 악보목록 및 곡목해설 D/B 관리 등 4. 홍보/기획은 본 회의 대외/대내 행사를 기획/홍보하며 집행부의 협조를 받아 행사 수행 을 하고 관련 행사 및 연역자료를 관리한다. 5. 악장은 지휘자를 보좌하여 연습준비를 인도하며 연주 및 연습일정을 관리, 안내하고 기 타 음악적 향상을 위한 기획, 관리업무를 수행한다. 6. 각 파트 장은 파트의 책임자로서 파트의 활성화와 실력 향상을 위한 연습과 각종 친목활 동을 주도적으로 수행한다. 각 파트장의 선출은 각 파트별로 호선하여 선출한다. 7. 감사는 본 회와 관련된 모든 업무와 재무 및 회계 상태를 감사하고 그 결과를 총회에 보 고하여야 한다. 8. 자문위원은 역대 회장 및 총무로 구성되며 집행부의 의사결정 및 활동에 자문역할을 수행한다. 9. 임원들의 임무 중 구체적 책임 업무는 회장이 별도로 정할 수 있다. 제18조(임원회) 1. 임원회는 필요에 따라 회장이 수시로 소집할 수 있으며, 회장은 임원의 1/3 이상이 소집 요구할 경우 임원회를 소집하여야 한다. 263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 임원회는 재적임원 과반수이상의 출석으로 성립되고 2/3 이상의 찬성으로 의결한다. 제20조(임원회 의결사항) 임원회의에서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의결한다. 1. 총회에 제출할 각종 의제 2. 총회로부터 위임받은 사항 3. 정관 시행에 필요한 제 규정의 제정 및 개정 4. 기타 본 회의 업무수행에 필요한 사항
제4장 회계 및 문서
제21조(회계) 1. 입회비, 월회비, 행사회비, 회원기부금, 협연찬조금, 행사협찬금(후원금, 광고료) 등의 수입금으로 한다. 1) 행사회비: 특별행사 시 부족예산이 발생되는 경우, 월회비와 별도로 총회 승인을 받아 추가로 납부하는 의무금 2) 회원 기부금: 명목에 관계없이 회원들이 본 회에 지원하는 찬조금 3) 협연 찬조금: 협연자가 본회에 찬조하는 찬조금 4) 후원금 및 광고료: 외부 기관 또는 후원자들의 후원금과 광고 협찬금 2. 입회비, 월회비, 휴회비 및 재입회비 1) 입회비: 100,000원 (학생, 전공자나 재학시 전공했던 자는 면제) 2) 월회비: (일반회원) 40,000원 (학생) 20,000원, (가족회원) 30,000원 3) 휴회비: 10,000원 (매월) 4) 재입회비: 50,000원 제22조(회계 연도) 본 회의 회계연도는 매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로 한다. 제23조(예산 및 결산) 매년 정기총회에서 전년대비 본 회의 예산 및 결산을 보고하고 의결 을 얻어야 한다. 제24조(보고서류 제출) 1. 회장은 매년 정기총회 개최 20일 전까지 회장 재임사업년도(이하 전년도라 한다)에 대한 다음 각 호의 서류를 작성하여 전년도의 감사에게 제출하여야 한다. 264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 사업보고서
2) 재무보고서(결산서)
2. 전 항의 서류를 접수한 감사는 엄정하게 감사하여 정기총회 개최 7일 전까지 의견서를 첨부하여 회장에게 제출하고 정기총회에서 감사의견을 발표한다. 3. 회장은 전 항의 의견서가 첨부된 전 제1항의 서류를 정기총회에 제출하여 승인을 받아야 한다. 4. 신임회장은 취임 후 1개월 내에 당해 년도 예산계획을 포함한 사업계획서를 총회에 제출 하여 승인 받아야 한다. 제25조(회장의 업무 인수인계) 전임회장은 신임회장이 업무를 개시하기 전까지 제27조에 명 시되어 있는 모든 관리 서류와 비품목록을 함께 인수인계 하고 인수확인서를 작성 상호 날인 하여 영구 보관한다. 제26조(보관서류 관리 및 열람) 1. 회장은 모든 서류를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하고 보안을 요하는 것 이외에는 언제든지 열람가능 하도록 있도록 비치해야 하며 디지털 화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컴퓨터에 입력 하여 관리한다. 2. 회장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회원의 보관서류 열람요구를 거절할 수 없다. 제27조(문서관리) 1. 정관 및 제규정 2. 입회원서 3. 회원명부 4. 회원출석부 5. 연혁/행사 자료 6. 비품대장 7. 연도별 사업계획서 8. 회계장부 9. 예산서/결산서 10. 악보/악보목록 11. 연습실 키 관리대장 12. 기타 필요에 의해 관리되던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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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조(회계관리 및 보고규칙) 예, 결산서 및 기타장부의 기록과 보고의 구체적 사항은 별도로 정한다. 제29조(악보관리 규칙) 필요시 회장 또는 임원회의에서 별도로 정한다. 제30조(비품관리 규칙) 필요시 회장 또는 임원회의에서 별도로 정한다. 제31조(연습실관리 규칙) 필요시 회장 또는 임원회의에서 별도로 정한다. 제32조(연주행사 운영규칙) 필요시 회장 또는 임원회의에서 별도로 정한다. 제33조(기타) 본 정관에 제정되어 있지 않고 별도 세칙도 없는 경우 관련법률 또는 일반관 례에 준한다.
부 칙
1. 본 정관은 2005년 6월 1일부터 시행한다. (제정) 2. 1차 개정 (2008년 1월 20일) 3. 2차 개정 (2008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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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개교100주년 및 창단 50주년 기념 선후배 합동연주회에서 윈드앙상블을 소개한 PT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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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고려대학교 관악부 연혁 1920
보성전문 연예부에 취주악대 창설
1925. 8
보성전문 연예부 전국순회음악회 개최
1937
보성전문 브라스밴드 재정비 및 악기 구입
1955. 5
1955년 4월 고연전 응원을 강화하시 위해 김순식 대학원장(해군출신),김효록 상대학장이 중심이 되어 53인조 악기구입(서라벌악기점, 튜바기증), 취주악부 재창립, 써클등록제실시 이후 고려대학교 제1호 써클로 등록
1955. 11. 22 (화)
창립 연주회(서관 강당, 지휘 손중문) (대표곡: Morning Noon&Night in Vienna, 천안삼거리, 아리랑 행진곡)
1956. 6. 25 (월)
6.25 기념 연주회 (중앙고등학교 강당, 지휘 손중문)
1957. 12. 7 (토)
제3회 음악회(서관 강당)
1958. 5. 30 (금)
개교 53주년 기념 음악회 및 제4회 연주회 (신관 강당)
1959. 5
정경대학 창립 기념 음악회
1959. 6. 15 (월)
제1회 경음악 발표회 겸 제5회 음악회 (강당, 지휘 손중문)
1959. 12. 5 (토)
졸업생 환송의 밤 음악회
1970. 6. 10 (수)
밴드부실 준공(박물관 뒤편 블로크 건물)
1971. 5. 5 (수)
석탑축전 밴드 퍼레이드(지휘 이재봉)
1971
취주악부 악기 구입 및 재정비
1971. 9. 30 (목)
대학문화예술축전 음악경연 부문 참가 (최우수상 수상)
1972. 5. 5 (금)
석탑축전 밴드 퍼레이드(지휘 지동직)
박물관 뒤편 블로크 건물
부장: 이성규 69 Sax산공
283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73. 5. 3 (목)
제6회 정기연주회(석탑축전)
부장: 박기복 Bar축산
1974. 5. 4 (토)
제7회 정기연주회(석탑축전)
부장: 차근식 Tp화공
1975. 3
제8회 신입생 환영 정기연주회(지휘 최문호)
1975. 10. 20 (월)
제9회 가을 정기연주회(석탑축전 지휘 최문호) 부장: 오윤택 73 Sax기계
1976. 3. 19 (금)
제1회 음악감상회 개최(해설 이헌식, 연건희)
1976. 5. 3 (월)
제10회 정기연주회 겸 취주악 연주회 개최 (석탑축전)
1976. 5. 17 (월)
극예술연구회 맥베드공연 음악 찬조
1977. 5. 4 (수)
석탑음악제 참가
1977. 6. 3 (금)
제1회 전국 대학생 음악 경연 대회 참가, 유관순기념관(우량상 및 지휘자상 수상) 참가곡: Queen City Suite
부장: 김현수75 TP토목
1977. 6. 15 (수)
제11회 정기연주회, 유관순 기념관 (지휘 김현수) (대표곡: Sinfonia Nobilisima for Band, Queen City Suite, Academic Festival 서곡)
지도교수: 한배호(정경대) 부장: 김현수 75 TP토목
1978. 5. 24 (수)
제2회 전국 대학생 음악경연 대회 참가 (우량상 수상) 참가곡: Canival of Roses overture
부장: 이종희 76 Sax화공
1978. 5. 31 (수)
제12회 정기연주회(Korea Stones와 협연) (대표곡: Carnival of Roses overture, 1812 Overture 등)
지도교수: 한배호(정경대) 부장: 이종희 76 Sax화공
1978. 6. 13 (화)
석탑음악제 참가
1978. 11. 15 (수)
지도교수: 한배호(정경대) 제13회 가을연주회 겸 정기연주회 (지휘 이찬용) (대표곡: Finlandia, My Way 등) 부장: 이찬용 73 TP사회
1978
취주악부 악기 구입 및 재정비
1979. 5. 3 (목)
개교 74주년 석탑음악제 참가
1979. 9. 21 (금)
제14회 정기연주회, 대강당(지휘:인기환) (대표곡:Croix D’honneur, African Symphony, 2부 스윙밴드)
284
부장: 장명호 74 Tb산공
지도교수: 한배호(정경대) 부장: 인기환 76 TP물리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1. 5. 3 (일)
개교 76주년(제20회 석탑축전) 석탑음악제 참가
1982. 3. 19 (금)
실내악부 제10회 정기연주회에서 합동 연주 (유관순기념관)
1982. 9. 10 (금)
제15회 정기연주회 겸 제1회 취주악부 총동문 연주회(대표곡: Exodus, Finlandia, March Slave 등)
1983. 5. 3 (화)
개교 78주년 석탑음악제 참가
1983. 9. 29 (목)
제16회 정기연주회 겸 제2회 취주악부 선후배 지도교수: 홍기선(신방과) 합동연주회(대강당) (지휘 연건희, 대표곡: 부장: 이병학 81 FL사학 바위고개 행진곡, Caprice Italian 등)
1983. 9
취주악부를 관악합주단으로 개칭함
1984. 4. 4 (수)
제17회 정기연주회 겸 1984년 신입생 환영음악회, 대강당 (지휘: 박석준, 대표곡: Canival of Roses Overture 등)
1984. 9. 7 (금)
제18회 정기연주회 겸 제3회 선후배 지도교수: 윤세영(문리대) 합동연주회, 대강당 (지휘: 최문호, 대표곡: 단장: 박석준 82 Tb토목 Poet and Peasant 서곡, Light Cavalry 서곡)
1985. 5
1985년 석탑축전 안암음악제참가
1985. 9. 13 (금)
제19회 정기연주회 겸 고려대학교 개교 80 주년 기념 제4회 선후배 합동연주회, 고대대 강당(지휘: 연건희, 대표곡: Alvamar Overture, March From “Tannhauser” 등 )
지도교수: 윤세영(문리대) 단장: 권재현 83 TP기계
1986. 9
관악합주단을 다시 취주악부로 개칭
1986. 9. 11 (목)
제21회 정기연주회, 고대대강당 (지휘: 김근한, 대표곡: Fingal’s Cave, Novena)
지도교수: 윤세영(문리대) 관악교우 회장: 박기복 71 부장: 이병학 81 FL사학
1988. 3. 11 (금)
1988년 신춘음악회, 이공대 과학도서관 5 층 강당 (지휘: 최봉락, 대표곡: 마탄의사수, 비발디 사계<봄> 등)
지도교수: 윤세영(문리대) 관악교우 회장: 박기복 71 부장: 김경훈 86 Tb기계
1988. 9. 9 (금)
제22회 정기연주회, 숭의음악당 (지휘: 최봉락, 대표곡: 비발디 사계<가을>, CapriceItalian 등)
지도교수: 윤세영(문리대) 부장: 김경훈 86 Tuba기계
지도교수: 홍기선(신방과) 부장: 박석준 82 Tb토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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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9. 9. 8 (금)
제23회 정기연주회, 숭의음악당, 협연 84 이창환 지도교수: 윤세영(문리대) (지휘: 이희원, 대표곡: 부장: 박세진 87 TP무역 LaGazzaLadraOverture, MarcheSlave)
1990. 4
1990년 신춘음악회
1990. 9
취주악부 창립 70주년 기념 및 제24회 정기연주회(지휘: 추윤호)
1991. 4
1991년 신춘음악회
1991. 9
제25회 정기연주회 협연: 소프라노 권혜연, ‘그리운 금강산’ 등
지도교수: 윤세영(문리대) 부장: 송형근 89 TP물리
1992. 3. 21 (토)
신춘음악회, 인촌기념관(지휘: 추윤호, 대표곡: Sempre Fidelis March, Highlight From Jesus Christ Superstar)
지도교수: 윤세영(문리대) 부장: 백승학 90 TP경영
1992. 9. 5 (토) 1992. 12. 26 (토)
부장: 이창환 84Tb화공
지도교수: 윤세영(문리대) 부장: 백승학 90 TP경영 제5회 취주악부 졸업생 연주회(지휘: 이영기 82, 지도교수: 윤세영(문리대) 대표곡: 위풍당당행진곡, Fingal’s Cave) 부장: 백승학 90 TP경영 제26회 정기연주회(대표곡 ‘1812년 서곡’)
1993. 3. 27 (토)
1993년 춘계음악회
1993
제1회 고연 연합음악제에 참가: 금관 5중주 팀
1993. 9
제27회 정기연주회(협연: 이혜선 Clarinet Concertino Op.26 연주)
1993. 12. 18 (토)
제6회 취주악부 교우연주회(지휘: 이영기 82, 대표곡: Queen City Suite, L’Arlesienne Suite II)
1994. 12
제7회 취주악부 졸업생연주회 (대표곡: MagicFlute, JazzSuite)
지도교수: 윤세영(문리대) 부장: 노병석 92 Fl노문
1995. 3. 17 (금)
제28회 정기연주회(지휘: 유홍종, 대표곡: 신세계교향곡 4악장, Bugler’s Holiday)
지도교수: 윤세영(문리대) 부장: 노병석 92 Fl노문
1995. 9. 19 (화)
개교 90주년 기념 제29회 정기연주회 (지휘: 백한선, 대표곡: Overture “DieFledermaus”, NYNY)
지도교수: 윤세영(문리대) 부장: 김권 93 Sax원예
1996. 3
1996년 신춘음악회(지휘: 김무영)
부장: 이유나 94 Fl간호
1996. 10. 5 (토)
제30회 정기연주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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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교수: 윤세영(문리대) 부장: 김상욱 91 Cla금속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7. 9. 23 (화)
제31회 정기연주회
1998. 3
1998년 신춘음악회
1998. 9. 18 (금)
32회 정기연주회 (지휘: 장현배, 대표곡: Song 지도교수: 윤세영(문리대) of the Prairie, West side story) 부장: 박용국 96 Tb경영
1999. 3
신춘음악회, 인촌기념관
1999. 5. 8 (토)
석탑음악제참가
1999. 9. 19 (일)
제33회 정기연주회, 인촌기념관, 지휘: 장현배
2000. 3. 18 (토)
2000년 신춘음악회, 인촌기념관
2000. 5. 6 (토)
석탑음악제 참가(금관 5중주단)
2000. 10 .2 (월)
지도교수: 윤세영(문리대) 제34회 정기연주회, 인촌기념관, 지휘: 장현배 부장: 윤수현 99 Tb 생명과학
2001. 3. 25 (일)
2001년 신춘연주회, 인촌기념관
2001. 9. 12 (수) 2002. 3. 15 (금) 2002. 9
지도교수: 윤세영(문리대) 부장: 김성진 98 Fl 기계
35회 정기연주회, 인촌기념관(지휘: 장현배, 지도교수: 윤세영(문리대) 대표곡: Queen City Suite, New York New York, 부장: 김상민 00 Tp토목 Morning Noon and Night in Vienna) 지도교수: 윤세영(문리대) 2002년 신춘음악회(고려대학교 4.18기념관) 부장: 이유건 01 Sax경영 부장: 김종원 01 Tp 36회 정기연주회 생명과학
2003. 3. 15 (토)
2003 신춘연주회, 지휘: 유동휘, 협연: 95 김용성(대표곡: Second suite for band, Sinfonia Noblissima Concerto for Trumpet and Band)
지도교수: 윤세영(문리대) 부장: 김두희 02 Cla일문
2003. 5
석탑음악제참가
2003. 9. 23 (화)
제37회 정기연주회, 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협연: 조효기(대표곡: Overture to a NewAge, 지도교수: 윤세영(문리대) Music for a Festival 협연: 00 조효기 Carmen 부장: 김두희 02 Cla일문 Fantasie-Bizet)
2004. 3. 20 (토)
2004 신춘연주회, 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지도교수: 전경욱(국교과) (대표곡: RossRoy, Pastorale Symphonique, 부장: 김두희 02 CLA Aquarium) 일어일문
287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004. 6
고대취주악부동문회 정기총회 및 임원선출 회장: 71 김완기, 수석부회장: 76 인기환, 77 신중택, 부회장: 75 임현호, 78 이승환, 80 김요섭, 84 이승렬, 88 이경재, 95 김용성, 00 조효기, 총무: 78 김윤성, 회계: 89 장재현
2004. 7. 24 (토)
위튜티(We Tutti) 창단
2004. 9. 10 (금)
제38회 정기연주회, 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지도교수: 전경욱(국교과) (대표곡: Theatre Music, To a new dawn) 부장: 이경민 03 TP기계
2004. 10
제28회 전국대학생음악경연대회 합주부문 금상 수상(대표곡: To a new dawn, The Seventh night of July)
2005. 1. 15 (토)
위튜티 창단 연주회 겸 동문회 신년연주회 - 4.18 기념관
2005. 3. 12 (토)
2005 신춘연주회, 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대표곡: Symphony nr.1 “The Lord of the Rings” Rahoon - A Rhapsody for Solo Clarinet and Band, Utopia)
2005. 5. 14 (토)
고대 100주년 및 윈드앙상블 창단 50주년 기념 연주회(제8회 선후배연주회), 인촌기념관 동문회장: 김완기 지휘: 유동휘, 협연: 클라리넷 이혜선) 지도교수: 유철상(환경공) (대표곡: Music For a Festival, 부장: 이경민 03 TP기계 Symphonique Overture)
2005. 6. 25 (토)
위튜티: 서울문화재단 주최 경연대회 참가 및 최우수상 수상, 마포구민회관
2005. 7. 2 (토)
위튜티 방배동 연습실 OPEN
2005. 9. 15 (목)
제39회 정기연주회, 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지도교수: 유철상(환경공) (대표곡: Star Wars Saga, SecondSuite, 부장: 김상아 04 TP중문 Dynamica 등)
2005. 12. 17 (토)
위튜티: 서울문화재단 주최 경연대회 수상자 연말 연주회 - 창동 열린극장
2005. 12. 22 (목)
위튜티: 분당 차병원 초청 연주회
2006. 1. 7 (토)
위튜티: 부산 고려대 동문회 초청연주회, 부산금정문화회관
288
지도교수: 전경욱(국교과) 부장: 이경민 03 TP기계
지도교수: 전경욱(국교과) 윈드부장: 이경민 03 TP기계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006. 3. 10 (금)
2006 신춘연주회, 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대표곡: Jubilee Overture, Harnover Festival, Armanian Dances, Beauty and Beast 메들리 등)
2006. 6. 3 (토)
위튜티 제1회 정기연주회(나루아트센터 지휘 유동휘), 협연: 장현배(대표곡: March Slave, Trombone Concerto, Olympica Rhapsody in Blue 등)
2006. 7. 21 (금)
위튜티 사회인 관악대축제참가 (예술의전당 지휘 유동휘)
2006. 9. 16 (토)
제40회 정기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대표곡: Cats, Alvamar Overture, Highland 지도교수: 유철상(환경공) Rhapsody, Windows of the World, Pirates 부장: 조범석 05 CLA영문 of the Carribean 등)
2006. 10. 21 (토)
위튜티 나주시 초청 영산강 문화축제 참가 (나주 금성관 지휘 유동휘)
2006. 12. 17 (일)
위튜티 제2회 정기연주회 (도봉구민회관 지휘 유동휘), 협연: 정재은
2007. 1. 27 (토)
2007년 신년회
2007. 3. 16 (금)
2007년 신춘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지도교수: 유철상(환경공) (대표곡: Gallop, The Year of the Dragon, Third Suite for Band, Desney Medley, the 부장: 조범석 05 CLA WInd in the Willows, South Rampart Street 영어영문 Parade, Benny Goodman Medley 등)
2007. 5. 19 (토)
위튜티 제3회 정기연주회(소월아트홀, 지휘: 유동휘) 협연: 정문경, 오주영 (대표곡: Jazz Suite No.2, Diversion, Concert piece No.2; Two Solo Clarinets with Band)
2007. 6. 6 (수)
체육대회: 고려대학교 송파 잔디구장
2007. 8. 4 (토)
위튜티 따뚜연주회 참가(강원도 원주)
2007. 9. 8 (토)
제41회 정기연주회, 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지도교수: 유철상(환경공) (대표곡: First Suite in Eflat for Military 부장: 박훈성 06 SAX 생명공학 band, Rhapsody in Blue)
지도교수: 유철상(환경공) 부장: 김상아 04 TP중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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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007. 11
위튜티 서울랜드 Youth Plus Festival 공동 2위, 지휘: 유동휘(대표곡: West Side Story, Michael!)
2007. 11. 17 (토)
위튜티 장애인을 위한 모금연주회 참가, 지휘: 유동휘, 강남구민회관 (라이온스클럽 주최)
2007. 12. 22 (토)
위튜티 제4회 정기연주회 (강남구민회관, 지휘: 유동휘)
2007. 12. 18 (화)
2007년도 송년회
2008. 1
윈드앙상블을 고려대학교 관악부 (윈드오케스트라)로 개칭함
2008. 3. 7 (금)
2008년 신춘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협연: 박현규 TP/ 이경민 TP, 찬조: 합창부 지도교수: 유철상(환경공) (대표곡: Madurodam, Minuature Suite for 부장: 황지영 07 FL불문 Wind Orchestra)
2008. 5. 24 (토)
위튜티 제5회 정기연주회(소월아트홀, 지휘: 유동휘) 협연: 퓨전퍼포먼스 타악그룹 Zamstick
2008. 9. 20 (토)
제42회 정기연주회, 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대표곡: The Spirit of the sequoia, Raiders March)
2008. 11. 8 (토)
위튜티 제6회 정기연주회 (장천아트홀, 지휘: 유동휘)
2009. 2. 3 (화)
고려대취주악부동문회 카페 개설, 카페지기 이민호(Tp 74) http://cafe.daum.net/kuwetutti
2009. 2. 12 (목)
고대취주악부동문회 신년모임 및 임원선출 회장: 허영, 총괄회계: 이화자, 총괄총무: 신승철 기별집행임원 - 69학번 이전: 김완기 동문(간사) - 70~79학번: 부회장(정대영), 회계(이화자) 총무(신승철, 이승환) - 80~89학번: 부회장(김요섭), 총무(이경재, 이승렬) - 90~99학번: 부회장(신희준), 회계(권원태), 총무(김상욱, 박용국) - 00학번~: 부회장(조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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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교수: 유철상(환경공) 부장: 황지영 07 FL불문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009. 3. 15 (일)
졸업생 밴드 Kuwetutti 창립 모임
2009. 3. 21 (토)
2009년 신춘음악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지도교수: 박선화(의대) (대표곡: Grand March, Fate of Gods, 부장: 황지영 07 FL Portrait of Freedom) 불어불문
2009. 5. 2 (토)
위튜티 제7회 정기연주회 겸 한일합동연주회 (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일본 Nat’s Wind Ensemble)
2009. 6. 6 (토)
송추 고대구장에서 체육대회
2009. 9. 4 (금)
제43회 정기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지도교수: 박선화(의대) (대표곡: Portrait of acity, Around the world 교우회장: 허영 in 80 days, Strathcarron) 부장: 용주현 08 Sax경제
2009. 9. 5 (토)
위튜티 국군 정보사령부 장병위문 연주회
2009. 9. 13 (일)
위튜티 고양 관악 Festival 참가(고양 아람누리 노루목 야외공연장, 주최: 한국관악총연합회) (대표곡: Twin eagle strut, Waltz No2
2009. 12. 19 (토)
위튜티 제8회 정기연주회(성남아트센터, 지휘: 유동휘) 찬조: 광주감리교회 연합찬양대
2009. 12. 20 (일)
관악교우회 송년회 겸 가족음악회(송파구 올림픽파크텔 2층 서울홀, 지휘 이재봉)
2010. 3. 7 (일)
관악교우회 교우밴드 연습실을 고려대 윈드앙상블실로 이전
2010. 3. 13 (토)
2010년 신춘연주회(고려대 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대표곡: Three Exta ordinary Journeys, Paris by Night)
2010. 5. 15 (토)
위튜티 제9회 정기연주회 (장천아트홀, 지휘: 유동휘)
2010. 5. 29 (토)
관악부 춘계체육대회(녹지운동장)
2010. 8. 21 (토)
위튜티 제2회 한일합동연주회 (일본 도쿄 Tiara Koto대홀, 지휘: 유동휘)
2010. 9. 18 (토)
제44회 정기연주회, 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지도교수: 박선화(의대) (대표곡: Symphony No.1 “The Lord of 부장: 장창수 09 Euph 경영 Rings”, Arsenal)
지도교수: 박선화(의대) 부장: 용주현 08 Sax경제
291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010. 10. 2 (토)
위튜티 2010 대한민국 국제관악제 초청연주 (한강 플로팅 스테이지)
2010. 12. 4 (토)
위튜티 제10회 정기연주회 (장천아트홀, 지휘: 유동휘)
2011. 3. 12 (토)
2011년 신춘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대표곡: Orient Express, Tom Sawyer Suite 등)
2011. 5. 28 (토)
고대 관악부 교우회 정기총회 (이공대 교수회관 식당)
2011. 3. 12 (토)
2011년 신춘음악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지도교수: 박선화(의대) (대표곡: Orient Express, Tom Sawyer Suite) 부장: 장창수 09 Euph경영
2011. 9
제45회 정기연주회, 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대표곡: SymphonyNo.2 “THEBIGAPPLE”)
2012. 3. 16 (금)
2012년 신춘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지도교수: 박선화(의대) 협연: 김동준(Trb) (대표곡: JAZZ Suite No2, 부장: 이계원 10 TP T-bone Concerto) 서어서문
2012. 5. 19 (토)
위튜티 제11회 정기연주회(장천아트홀, 지휘: 유동휘) 특별출연: 다시다밴드
2012. 6. 3 (일)
관악부 교우회 정기총회(교우회관 2층)
회장: 김영수 74 총무: 김윤성 78
2012. 9. 8 (토)
제46회 정기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협연: 임경덕(Horn), 고대 재즈동아리 (대표곡: The Wind in the Willows, Jazz Big Band 등)
지도교수: 박선화(의대) 부장: 백진명 11 Euph 생체의공
2012. 12. 29 (토)
제9회 관악부 선후배합동 연주회(인촌기념관, 교우회장: 김영수 74 Trb, 지휘: 유동휘) (대표곡: Ross Roy Overture, 지도교수: 박선화(의대) African Symphony 등)
2013. 3. 9 (토)
2013년 신춘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지도교수: 박선화(의대) 협연: 박훈성06, Sax) (대표곡: Hanover 부장: 이수연 11 FL정외 Festival, Canival 등)
2013. 5. 11 (토)
위튜티 제12회 정기연주회(소월아트홀, 지휘: 유동휘) 협연: 정경원(Tb) (대표곡: Manhatan Symphony, Diveritimento, Santana, 대부2 등)
협연: 정경원 Tb, 김길수 TP
2013. 6. 2 (일)
정기총회, 제8대 관악부 교우회장 선출
교우회장: 전충남 75 Sax
292
교우회장: 김중조 64 Per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013. 8. 9 (금)
위튜티 제주국제관악제 참가 (제주해변공연장, 지휘: 유동휘)
2013. 8. 27 (화)
위튜티 대한민국국제관악제 참가 (분당중앙공원, 지휘: 유동휘)
2013. 9. 14 (토)
제47회 정기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지도교수: 박선화(의대) (대표곡: Overture to Candide, Hero’s 부장: 허웅 12 생체의공 Collection 등)
2013. 11. 10 (일)
2013년 고려대학교 제1회 문화예술제(KBS홀) 회장: 이문용 55 상학 참가, 음악: 관악부, 코리아싱어즈, 관현악단, 운영위원장: 김윤성 78 물리 고전기타부, 피아노부, 미술: 디자인조형학부 사무총장: 김혜자 63 영문 주최: 고려대학교 문화예술교우회
2013. 11. 23 (토)
KUSMO 제1회연주회(KT 체임버홀, 지휘: 이원형) (대표곡: Second Suite in F, Discovery Fantasy, Selections from Les Misererables 등)
2014. 3. 8 (토)
2014년 신춘음악회(소월아트홀, 지휘: 유동휘) 지도교수: 박선화(의대) (대표곡: Danzon No2, Viva Musica! 등) 부장: 허웅 12 생체의공
2014. 5. 24 (토)
위튜티 제13회 정기연주회(광림아트센터 장천홀, 지휘: 유동휘), 협연: 김보람(Tb), 현은정(Piano) (대표곡: Danzon No2, Rhapsody in Blue 등)
2014. 7. 20 (월)
관악부 교우회 정기총회, 제9대 관악부 교우회장 선출
2014. 9. 19 (금)
제48회 정기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대표곡: Alvamar overture, Duke Ellington 지도교수: 박선화(의대) in concert, American Graffiti 15, Music for 부장: 조진웅 13 기계공 a Festival)
2014. 11. 2 (일)
2014년 고려대학교 제2회 문화예술제(KBS홀) 회장: 이문용 55 상학 참가, 음악: 관악부, 코리아싱어즈, 관현악단, 사무총장: 김혜자 63 영문 고전기타부, 미술: 디자인조형학부, 문학부 총감독: 이승렬 84 축산 주최: 고려대학교 문화예술교우회
2014. 12. 20 (토)
관악부 교우회 송년회 및 제10회 교우밴드 연주회(교우회관, 지휘: 전인배) (대표곡: Jesus Christ Superstar, 김광석 메들리 등)
고려대 세종캠퍼스 관악단 SEMI-CLASSIC 교우회 회장: 표현걸(RS 96 생물공학)
교우회장: 인기환 76 TP 물리
293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015. 3. 6 (금)
2015 신춘음악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대표곡: A Highland Rhapsody,Noah’s Ark, 지도교수: 박선화(의대) Disney Medley, How to Train Your Dragon, 부장: 조진웅 13 기계공 West Side Story 등)
2015. 9. 11 (금)
제49회 정기연주회(인촌기념관, 지휘: 유동휘) 지도교수: 박선화(의대) (대표곡: Symphonic overture, Miss Saigon, 부장: 강기현 14 New York New York, Animation Songs 바이오의공학 Medley, Two World 등)
2015. 10. 10 (토)
위튜티 10주년 제14회 정기연주회 (광림아트센터 장천홀, 지휘: 유동휘) (대표곡: Symphonic overture, La Quintessenza, Abba Gold, Miss Saigon, Takarajima, Copacabana 등)
2015. 10. 17 (토)
관악부 60주년 기념 식수행사
2015. 12. 26 (토)
관악부 95주년 기념 선후배 합동 연주회 (인촌기념관, 지휘: 전인배, 유동휘) (대표곡: 시인과 농부 서곡, 핀란디아, Led Zepplelin on Tour, Abba Gold 등)
294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고대 관악부 교우회 명단 입학년도
이 름
파 트
학 과
1953
이말병
Tpt
법과
1953
김명진
Tpt
상과
1954
이우근
Tbn
경제
1955
김장환
Sax
생물
1955
김한성
Sax
농대
1955
박승빈
Euph
상과
1955
윤세영
Tpt
사학
1955
이기철
Tbn
사학
1955
이문용
Sax
상과
1955
이성곤
Tpt
정외
1955
이성구
Cla
수학
1955
이석영
Horn
법학
1955
문성수
Tpt
생물
1955
장대호
Cla
국문
1955
최석기
Cla
수학
1956
이원수
Euph
화학
1956
이 정
Sax
화학
1956
변동수
Cla
상과
1956
윤길림
Sax
경영
1956
김경호
Tpt
철학
1957
임병규
Tbn
영문
1959
이병호
Tbn
사학
1959
홍기선
Cla
철학
1960
김승수
Cla
물리
1960
송용섭
Tpt
철학
1961
안영국
Oboe
교육
비
고
지도교수(1984년~2003년)
부장 1955년
부장 1958년
지도교수(1980년~83년)
295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입학년도
이 름
파 트
학 과
1963
이유근
Tpt
물리
1964
김중조
Perc
생물
1964
김휘일
Bass
사학
1964
장윤철
Tpt
영문
1964
지동직
Sax
경영
1965
이재봉
Tpt
경제
1966
박종학
Tpt
독문
1966
안재명
Cla
물리
1966
장용철
Tpt
영문
1967
문정선
(불명)
경제
1967
윤춘식
Tbn
전기
1967
이강호
Cla
경제
1967
이병두
Cla
생물
1968
김성욱
(불명)
심리
1968
서재하
Cla
토목
1968
이정팔
(불명)
식공
1968
조병오
Tbn
산공
1968
김기주
Tpt
xxxx
1969
김지현
(불명)
독문
1969
안재창
Cla
지질
1969
이성규
Sax
산공
1970
김두환
Sax
국문
1970
손건국
Cla
독문
1970
유승식
Sax
물리
1970
이강해
Tbn
축산
1970
정광현
Cla
물리
1970
최병찬
Cla
물리
1971
김완기
Tpt
물리
4대 교우회장(2005년~08년)
1971
김원식
Tbn
경영
1971
박기복
Euph
축산
부장 1973년, 1대 교우회장
1971
이기남
(불명)
무역
296
비
고
6대 교우회장(2011년~12년) 부장 1967년 부장 1966년 부장 1968년
부장 1970년
부장 1971년
부장 1972년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입학년도
이 름
파 트
학 과
비
고
1971
임선배
Perc
전자
1971
최문규
Tpt
정외
1972
김덕혜
Cla
간호
1972
김형숙
Cla
간호
1972
박중근
Cla
화학
1972
양돈선
Cla
통계
1972
정대영
Tpt
의학
1972
차근식
Tpt
화학
부장 1974년
1972
허영
Cla
수학
5대 교우회장(2009년~10년)
1973
김지월
Tbn
토목
1973
김창인
Euph
불문
1973
김창호
Tuba
화공
1973
오윤택
Sax
기계
1973
유충렬
Tbn
농화
1973
이찬용
Tpt
사회
1973
임종혁
Perc
식공
1974
김병순
Tpt
전기
1974
김영수
Tbn
축산
1974
연건희
Tbn
사학
1974
유춘성
Cla
물리
1974
이민호
Tpt
경영
1974
이상은
Sax
농학
1974
장명호
Tbn
산공
1974
조연
Tpt
기계
1974
차준대
Perc
토목
1974
최종국
Sax
토목
1974
홍준익
Sax
기계
1975
고현중
Sax
산공
1975
김현수
Tpt
토목
1975
박세현
Tpt
무역
1975
양동광
Perc
신방
부장 1975년 부장 1978년 (가을)
7대 교우회장(2012년~13년)
부장 1976년
부장 1982년
부장 1977년
297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입학년도
이 름
파 트
학 과
1975
임현호
Cla
의학
1975
장 David
Sax
의학
1975
전충남
Sax
철학
1976
권정애
Cla
임학
1976
김향숙
Cla
임학
1976
박영준
Perc
농화학
1976
신승철
Tpt
임학
1976
원천식
Sax
농경
1976
윤경원
Perc
생물
1976
이종희
Sax
화공
1976
이화자
Cla
간호
1976
인기환
Tpt
물리
1977
김문일
Tbn
화학
1977
김주연
Tbn
사회
1977
류옥현
Guitar
신방
1977
방성근
Tpt
국문
1977
송움지기
Perc
기계
1977
신중택
Cla
경제
1977
이용호
Cla
산공
1978
김경훈
Sax
경영
2대 교우회장
1978
김윤성
Cla
물리
부장 1980년
1978
김희서
Tpt
전기
1978
변박연
Perc
전기
1978
이승환
Tpt
재료
1978
이용희
Sax
정외
1978
전경욱
Perc
국교
1979
권영국
Perc
토목
1979
김기수
Tbn
농학
1979
명성숙
Cla
물리
1979
변준희
Cla
식공
1979
송건호
Tbn
전기
298
비
고
8대 교우회장
부장 1978년 (봄) 부장 1979년, 9대 교우회장
관악부 지도교수(2003년~05년)
부장 1981년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입학년도
이 름
파 트
학 과
1979
송인성
Cla
농학
1979
인준환
Bass
전기
1980
김요섭
Euph
물리
1980
신윤익
Sax
경영
1980
윤영삼
Cla
생물
1980
이인호
Tpt
전기
1980
정호선
Fl
농화
1980
정희준
(불명)
영문
1980
주기호
Perc
전기
1981
강신원
Tpt
재료
1981
김성한
Tpt
경제
1981
김인애
Cla
수교
1981
김태경
Cla
xx
1981
노명섭
Cla
영문
1981
배영민
Perc
농경
1981
안운환
(불명)
중문
1981
위성수
Sax
국교
1981
이국연
Cla
농경
1981
이병학
Fl
사학
1981
이학주
Tbn
체교
1981
조현설
Sax
국문
1982
김미령
Fl
영문
1982
김효웅
Tpt
경영
1982
남신우
Sax
물리
1982
박석준
Tbn
토목
1982
양해종
Cla
국문
1982
오병준
Tbn
농생
1982
이영기
Euph
물리
1982
이재용
Perc
행정
1982
임수철
Tpt
통계
1983
권재현
Tpt
기계
비
고
부장 1982년
부장 1983년, 1986년
부장 1984년
부장 1985년
299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입학년도
이 름
파 트
학 과
1983
박성우
Cla
전기
1983
배성환
Tbn
원예
1983
송중석
Perc
일문
1983
원일구
Cla
물리
1983
유철상
Cla
토목
1983
이미자
Cla
간호
1983
이연희
Horn
국교
1983
이을현
Sax
xxxx
1983
하용철
Perc
국문
1984
김동환
Perc
독문
1984
김준영
Tbn
정외
1984
이광철
Tpt
무역
1984
이승열
Tuba
축산
1984
이창환
Tbn
화공
1984
하경숙
Fl
국교
1985
김준
Tpt
통계
1985
이홍원
Perc
불문
1985
인재진
Tbn
영문
1985
장용석
Sax
서문
1985
차인호
Fl
재료
1986
김경훈
Tbn
기계
1986
김용배
Tbn
경영
1986
김응주
Perc
불문
1986
명창주
Perc
일문
1986
박용완
Tpt
기계
1986
신정임
Fl
영교
1986
이미경
Fl
불문
1986
이소영
Cla
수교
1986
임은미
Cla
수교
1986
장원섭
Sax
원예
1986
조중득
Sax
중문
300
비
고
지도교수(2007년~08년)
3대 교우회장, 부장 1990년 부장 1987년
부장 1988년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입학년도
이 름
파 트
학 과
1986
최승철
Oboe
축산
1987
김민정
Oboe
수교
1987
박세진
Tpt
무역
1987
이의석
Tpt
축산
1988
김유정
CLA
원예
1988
김형남
Tbn
행정
1988
문재호
Euph
행정
1988
원현철
Sax
농경
1988
이경재
Tpt
식량자원
1988
장진원
Perc
불문
1988
조성용
Cla
불문
1988
황석미
Sax
국교
1989
강석신
Tbn
화학
1989
권세희
Oboe
가교
1989
김일환
Euph
기계
1989
박혜성
Fl
서문
1989
송형근
Tpt
물리
1989
이강하
Sax
서문
1989
임명현
Cla
서문
1989
임성윤
Cla
서문
1989
장재현
Horn
불문
1990
백승학
Tpt
경영
1990
신희준
Perc
경제
1990
이혜선
Cla
축산
1991
김민아
Fl
미교
1991
김상욱
Cla
금속
1991
변진화
Bassoon
미교
1991
허은주
Horn
원예
1992
김대만
Tpt
영문
1992
노병석
Fl
노문
1992
박창용
Cla
기계
비
고
부장 1989년
부장 1991년
부장 1992년
부장 1993년
부장 1994년
301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입학년도
이 름
파 트
학 과
1992
장경훈
Perc
영문
1992
최윤경
Cla
영문
1993
김관현
Perc
신방
1993
김권
Sax
원예
1993
김동조
Tbn
법학
1993
김용찬
Tbn
무역
1993
박인천
Sax
컴퓨터
1993
박희복
Euph
축산
1993
손아람
Cla
신방
1993
이병희
Euph
원예
1993
이신주
Fl
불문
1993
이양숙
Cla
불문
1993
정상수
Sax
체교
1993
정지문
Tbn
불문
1993
최영진
Horn
불문
1994
권원태
Tpt
경제
1994
김정희
Oboe
한문
1994
이선희
Cla
간호
1994
이유나
Fl
간호
1994
한현선
Euph
간호
1995
가소정
Cla
유전
1995
강영삼
Tpt
원예
1995
김용성
Tpt
경영
1995
류제홍
Euph
토목
1996
구본철
Sax
건축
1996
박용국
Tbn
경영
1996
양기환
Sax
화공
1996
유승란
Cla
원예
1996
이현주
Cla
xxxx
1996
최석우
Tpt
생명과학
1996
표현걸
Sax
생물공학
302
비
고
부장 1996년
부장 1997년
부장 1998년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입학년도
이 름
파 트
학 과
1997
권희준
Perc
농경제
1997
김연희
Sax
생명과학
1997
이민우
Sax
서어서문
1997
이병하
Horn
생명과학
1997
이창호
Tpt
토목
1998
강화동
Perc
경영
1998
곽윤수
Fl
미교
1998
김성진
Fl
기계
1998
김혜선
Cla
화학
1998
박재경
Fl
1998
서성기
Sax
기계
1998
설임연
Oboe
영문
1998
이정훈
Horn
독문
1998
신정자
Perc
중문
1998
이진아
Cla
산림자원
1998
이학
Cla
토목
1998
정지영
Cla
지교
1998
진영민
Horn
가교
1999
강선미
Oboe
상담심리
1999
김경태
Sax
사회
1999
박재경
Fl
생명과학
1999
윤수현
Tbn
생명과학
1999
이정훈
Horn
독문
1999
이종탁
Perc
인문
1999
이준하
Tpt
심리
1999
이진환
Cla
생명
2000
김상민
Tpt
토목
2000
임나빈
Horn
생명유전
2000
조효기
Fl
간호
2000
홍재탁
Perc
생명유전공
2000
홍지희
Perc
경영
비
고
부장 1999년
부장 2000년
부장 2001년
303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입학년도
이 름
파 트
학 과
2000
홍진희
Cla
중어중문
2001
김종원
Tpt
생명과학
2001
김현경
Perc
생명유전
2001
도효진
Cla
생명공학
2001
안광훈
Perc
기계
2001
이유건
Sax
경영
2001
정재연
Bassoon
생명산업
2002
김두희
Cla
일문
2002
김예린
Fl
경영
2002
석태영
Cla
전파통신
2003
김보람
Tbn
역사교육
2003
김선엽
Horn
경영
2003
박현규
TP
재료
2003
안재완
Tbn
기계
2003
이경민
Tpt
물리
부장 2004년
2004
김상아
Tpt
중문
부장 2005년
2004
이보라
Cla
국문
2005
김동준
Tbn
기계
2005
김재훈
Cla
제어계측
2005
박민지
Cla
2005
류인혁
Tpt
전자정보
2005
조범석
Cla
영문
2006
김남훈
Cla
생명공학
2006
김성준
Sax
국어국문
2006
박훈성
Sax
생명
2006
유고은
Tbn
경제
2006
임경덕
Horn
통계
2007
송재언
Tuba
생명과학
2007
최병희
Tpt
화공
2007
홍지은
Fl
경제
304
비
고
부장 2002년 (가을)
부장 2002년 (봄) 부장 2003년
식품공학, 약학 부장 2006년
부장 2007년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입학년도
이 름
파 트
학 과
2007
황정희
Fl
불문
2008
김현웅
Tpt
심리
2008
용주현
Sax
경제
2008
정유진
Tpt
가교
2008
최일섭
Perc
식품공학
2008
황동산
Horn
컴퓨터공
2009
강찬수
Sax
수학교육
2009
김세원
Tbn
국문
2009
김정원
Cla
경제
2009
김초영
Tpt
교육학
2009
배진희
Sax
가교
2009
이상록
Cla
보건행정
2009
이상민
Cla
생체의공
2009
이인하
Horn
영교
2009
장창수
Euph
경영
2009
편정혜
Tpt
가정교육
2010
구서현
Cla
사회학
2010
김태연
Cla
환경생태
2010
문재원
Cla
국문
2010
박재만
Tbn
경영
2010
박정아
Fl
경영
2010
오진수
Sax
생명과학
2010
이계원
Tpt
서어서문
2010
정재연
Cla
사학
2010
하승원
Sax
컴공
2011
강영주
Cla
컴퓨터공
2011
권영재
Oboe
정외
2011
김유진
Horn
정경
2011
백진명
Euph
생체의공
2011
신동이
Tpt
정외
2011
이수연
Fl
정외
비
고
부장 2008년 부장 2009년
부장 2010년
부장 2011년
부장 2012년 (봄) 부장 2012년 (가을)
305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입학년도
이 름
파 트
학 과
2011
이연재
Perc
화학
2012
이수현
Sax
화학
2012
이정연
Fl
화학
2012
조현승
Tpt
식품경제
2012
허웅
Cla
생체의공
2012
허윤정
Sax
영문
306
비
고
부장 2013년
추억의 앨범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보성전문학교 연예부 부원(1925년 12월)
308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취주악부 부원(1956)
309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취주악부 부원(이흥렬 교수와 함께 1958) 뒷줄 왼쪽부터 장대호(55), 이흥렬 교수, 윤세영(55), 임병규(57 영문) 앞줄 맨 오른쪽 김명진(53 상과)
310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취주악부 부원(1955~1959)
311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취주악부 부원 뒷줄 왼쪽부터 윤세영(55) 김장환(55) 장대호(55) 윤길림(56) 앞줄 김한성(55)
312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취주악부 창단 멤버(1955~1959)
313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개교 53주년 기념 취주악부 제4회 정기연주회(1958)
졸업생 환송 연주회(지휘 윤세영 1964년)
314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취주악부 응원 연습(1955~1959)
315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취주악부 응원(가수 김상희와 함께 1964)
1968년 고연정기전 취주악부 응원단(효창운동장, 윤세영 지휘)
316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취주악부 응원(1968)
정기고연전 응원단 표찰 (1968) 취주악부의 스윙 밴드(1968) 왼쪽부터 안재명, 이병두, 안영국, 김승수, 윤세영
취주악부의 보컬밴드 Roseau 사운드(1970) 김두환(70 sax) 서재하(68 cla) 김지현(69 drum) 이정팔(68 trb, guitar) 안창진(69 bass guitar, sax)
317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졸업식(1971년 2월 25일 지휘 윤세영)
1970년 2월 25일 졸업식을 마치고(김승수)
개교기념식에서 밴드퍼레이드를 마치고 기념 촬영(1971년 5월)
318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71년 밴드 퍼레이드(지휘 이재봉 65)
319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71년 밴드 퍼레이드(지휘 이재봉 65)
320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71년 밴드 퍼레이드(지휘 이재봉 65)
321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72년 개교기념식
322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72년 밴드퍼레이드(지휘 지동직 64)
323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72년 밴드퍼레이드(지휘 지동직 64)
324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72년 밴드퍼레이드(지휘 지동직 64)
325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74년 2월 제67회 졸업식
326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74년 입학식
327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74년 5월 제69주년 개교기념식
1974년 제7회 정기연주회
328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74년 제7회 정기연주회
329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75년 2월 졸업식에서
1976년 학도호국단 발대식
1975년 10월 정기전 중단 후 어려움으로 외부행사에 발 벗고 나섰다
330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76년 4월 신입생 환영회
331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76년 5월 정기연주회 지휘 장명호(석탑 축전 참가)
332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76년 팔당에서 장명호(74), 홍준익(74)
1976년 춘천에서 76학번
333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76년 대천 합숙(7월 22일~26일)
334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76년 정기고연전(부장 장명호)
335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76년 정기고연전에서
336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77년 정기고연전에서
337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78년 홍릉에서 77학번 단합대회
1978년 석탑축전을 준비하면서
338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78년 정기연주회
339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78년 개교기념식 후 73, 74학번
340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78년 정기연주회
341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78년 여름 합숙에서
1978년 정기고연전
342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78년 정기고연전
343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78년 정기고연전
1979년 제14회 정기연주회를 마치고
344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79년 대천 여름 합숙
345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0년대 초 취주악부
346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1년 2월 이형구 졸업하던 날
1981년 5월 정기연주회(석탑음악제)
347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1년 8월 대천 여름합숙
348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1년 고연 정기전
349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1년 고연 정기전
350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2년 춘천 위도 MT
351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2년 6월 교우회 체육대회
352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2년 여름 합숙(동해안 주문진)
353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2년 9월 선후배 합동 연주회
354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2년 고연 정기전
355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3년 4월 신입생 환영회
356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3년 5월 석탑음악제
1983년 여름 합숙(동해안 주문진)
357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3년 9월 정기연주회 겸 선후배 합동연주회
358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4년 2월 졸업생 환송회
359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4년 신입생 환영 음악회
360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0년대 초 어느 날
1983년 변박연 결혼식 축하 연주단
1980년대 초 부실 앞에서
1985년 군입대 환송회
361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5년 4월 고연전 응원
362
1985년 부실에서 연습 중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5년 5월 대성리 MT
363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5년 여름 합숙
364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5년 여름 합숙
365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5년 9월 정기연주회 겸 선후배 합동연주회
366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5년 9월 정기연주회 겸 선후배 합동연주회
367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5년 정기 고연전
368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5년 정기 고연전
369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6년 신입생 환영회
370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6년 4월 꽃피는 봄날의 교정에서
371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6년 4.18 마라톤에 나서다
1986년 6월 교우회 체육대회
372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6년 8월 여름합숙(낙산수련장)
373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6년 정기고연전
374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6년 정기고연전
1987년
1987년 1월 졸업생 환송회
375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7학년도 신입생 응원오리엔테이션
1987 신입생 환영 음악회
신입생 환영회
376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신입생 환영회
4.18 마라톤
377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7년 연주회
378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7년 고연 정기전
379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7년 여름 합숙
380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7년 여름 합숙
381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8년 4월 연주회
382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합숙을 떠나기전에
1988년 여름 합숙
383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8년 정기고연전
1988년 정기연주회
384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연주회를 앞두고
385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9년 1월 졸업생 환송회
386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9년 1월 겨울합숙
387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9년 신입생 환영회
388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9년 여름 합숙
389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9년 여름 합숙
390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9년 정기고연전
391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89년 정기연주회
1990년 1월 졸업생 환송회
392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0년 1월 겨울 합숙
393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0년 2월 졸업식
1990년 4월 연주회
394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0년 4월 신입생 환영회
1990년 여름 합숙
395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0년 4월 연주회
396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0년 고연 정기전
397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0년 정기연주회
398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1년 겨울합숙
399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1년 부실에서 연습 중
1991년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400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1년 신춘음악회
401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1년 신입생 환영회
1991년 6월 MT
402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1년 6월 체육대회
1991년 7월 여름 합숙
403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1년 7월 여름합숙
1991년 정기고연전
404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1년 정기고연전
405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1년 정기연주회
1992년 1월 겨울합숙
406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2년 3월 신춘음악회
92학번 신입생 MT를 떠나면서
신입생 환영회
407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2년 6월 체육대회
1992년 8월 여름 합숙
408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2년 8월 여름 합숙
409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2년 9월 정기연주회
410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2년 11월 MT
1992년 12월 졸업생 연주회
1993년 2월 졸업식
411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3년 1월 겨울 합숙
412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3년 2월 졸업생 환송회
413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3년 3월 춘계 연주회
1993년 신입생 환영회
414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3년 신입생 환영회
1993년 4월 춘계 MT
415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3년 7월 여름합숙
416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4년 MT
417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418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월출산 MT 1994년 겨울합숙
419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5년 2월 졸업생 환송회
420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5년 3월 제28회 정기연주회
421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422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5년 12월 교우회 송년회
423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6년 1월 겨울합숙
424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6년 3월 신춘연주회
425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6년 6월 체육대회
426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427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428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6년 10월 제30회 정기연주회
429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7년 1월 겨울합숙
430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7년 1월 겨울합숙
1997년 2월 졸업생 환송회
1997년 2월 졸업생 환송회
431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7년 신입생 환영회
1997년 석탑음악제
432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7년 체육대회
1997년 여름 합숙
433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7년 여름 합숙
1997년 제31회 정기연주회
434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7년 제31회 정기연주회
435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8년 2월 겨울합숙
1998년 2월 졸업생 환송회
436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8년 신춘음악회
437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8년 신입생 환영회
438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8년 4.18 마라톤
439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8년 5월 고대인의 날 기념행사
1998년 석탑음악제
440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8년 봄날
1998년 6월 체육대회
441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8년 8월 여름 합숙
442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8년 제32회 정기연주회
443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9년 1월 겨울합숙
444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1999년 재33회 정기연주회
445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000년 겨울 합숙
446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000년 3월 신춘음악회 2000년 4.18 마라톤
447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000년 5월 일일주점
2000년 5월 석탑음악제(금관5중주팀)
448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000년 여름 MT
2000년 제34회 정기연주회
449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000년 제34회 정기연주회
2001년 2월 겨울합숙
450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001년 2월 졸업생 환송회
451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001년 부실의 어느 날
452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001년 3월 신춘연주회
2001년 신입생 환영회
453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001년 MT
2001년 4.18 마라톤
454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001년 여름합숙
2001년 체육대회
455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001년 제35회 정기연주회
456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002년 겨울 합숙
457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002년 2월 졸업생 환송회 2002년 신춘음악회
458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002년 신입생 환영회
2002년 6월 체육대회
459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002년 여름 합숙
460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002년 제36회 정기연주회
461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002년 MT
2002년 화보 사진 중에서
462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000년대 이후 앨범 사진 모음
463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464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465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466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005년 개교 100주년 기념 음악회
467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경연대회 수상 상장
468
관악부 교우회 활동 사진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014년 송년의 밤
470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관악부 60년 기념 식수
471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2015 재학생 여름합숙 격려
472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관악부 등산 모임 발대식(북한산)
관악부 등산 모임(5월-북한산)
473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관악부 등산모임(11월-남한산성)
관악부 골프모임
474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
관악부 창단 95주년 기념 선후배 합동 연주회
475
고려대학교 취주악부(관악부) 95년지 발간과 기념 식수를 위해 후원금을 보내 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 )안은 학번 윤세영(55),이문용(55),변동수(56),장윤철(64),박종학(66),조병오(68) 최문규(71),박기복(71),김형숙(72),허허영(72),연건희(74),이상은(74) 최종국(74),류춘성(74),김현수(75),전충남(75),양동광(75),인기환(76) 박영준(76),이화자(76),이종희(76),권정애(76),신중택(77),변박연(78) 전경욱(78),이용희(78),김경훈(78),김윤성(78),김희서(78),이승환(78) 인준환(79),송건호(79),김요섭(80),위성수(81),이광철(84),장용석(85) 조중득(86),김주환(86),이경재(88),김일환(89),장재현(89),이유나(94) 그 외 무명씨
| 편집후기 | 우리 고려대학교 관악부 100년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95년지를 만들어보자는 윤세영 선배님 의 말씀을 따라 지난 3년간 여러 가지 자료를 정리하여 이제 겨우 체제를 갖춘 한권의 책이 나오 게 되었습니다. 김완기 5대 교우회장님의 격려를 받으면서도 처음에는 무슨 자료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 기도 하였지만 김윤성 교우가 그동안 모은 많은 자료를 내주어 수월하게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 습니다. 강당의 부실을 정리하는 중에 그동안 관악부 활동을 보여주는 많은 사진 앨범과 팜플렛을 발견 하여 이것을 바탕으로 추억의 앨범과 연주회 기록을 정리하여 보았는데 많은 자료들이 본인의 좁 은 안목으로 취사선택되는 과정에서 누락된 것이 있었음을 아쉽게 생각합니다. 다만 자료 정리 를 통하여 우리 관악부의 초창기 연혁과 사진 자료들이 새롭게 정비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생 각도 해봅니다. 그동안 편찬의 책임을 맡은 본인도 자료 정리에 매달리느라 정작 회고담 같은 것을 쓰지도 못한 채로 많은 분들에게 원고를 부탁하고 독려하는 괴로움을 드려 미안할 따름이며 바쁜 와중에서도 귀한 원고와 자료를 보내주신 많은 선후배 교우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번에 내놓게 되는 95년지는 앞으로 우리 관악부의 100년 역사를 기록하기 위한 시작으로 생 각하며 앞으로 이번 95년지에 담기지 못한 많은 것들이 채워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2015년 12월
편집위원장 연 건 희(사학 74 Tbn)
고려대학교 관악부 95年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