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신의 정상에 서라 문 홍국 목사
헌신의 정상에 서라 추천사 여기 한 권의 귀한 책이 있습니다. 서점에 산더미처럼 쌓인 책 속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책입니다. 대부분의 책들은 저자가 자기의 지식을 모아 놓은 책입니다. 자기의 사상을 모아 놓은 책도 있습니다. 혹은 경험을 통하여 얻은 것들을 정리한 책들입니다. 그러나 이 책은 지식도 아니요, 사상도 아니요, 그렇다고 자기의 경험을 기록한 것도 아닙니다. 이민 목회의 외로움과 어려움 속에서 몸부림 치면서 얻어낸 진주와 같은 책입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책을 통해서 혹은 사람과의 대화를 통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보통 입니다. 그러나 저자는 어렵고 힘들 때마다 성경을 주의 깊이 읽으면서 그 말씀을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성경 주석가들도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놓친 부분을 보았습니다. 성경 구절과 구절 사이의 행간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하나님과 눈 맞춤(eye contact) 속에서 하나님의 표정을 보았습니다. 때로는 엘리야처럼 저자는 오직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에만 온통 주의를 집중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통하여 그 때 그 자리에서 저자에게 주시는 음성을 듣고자 오랜 시간 묵상에 묵상을 거듭 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마음이 통하고 하나님과 말이 통하는 자가 되고자 힘 썼습니다. 하나님의 소원이 저자의 소원이 되고 하나님의 성품이 저자의 성품이 되는 경지에 이르도록 저자 자신이 먼저 하나님께 헌신 하였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일꾼의 바른 자세는 무엇인가. 이것이 시종 저자의 마음을 사로 잡은 문제였습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하나님께 절대 헌신한 자라는 정답을 찾아 내었습니다. 그 다음 이 책을 통하여 ‘절대 헌신의 정상에 서라’는 주제 아래서 교회론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절대 헌신의 정상에 서 있는 소수의 무리에 의하여 세워지고 성장하고 발전 한다는 원리를 전개해 나가고 있습니다. 모세에게 절대 헌신한 자들은 여호수아와 갈렙과 같은 소수의 일꾼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 자신의 절대 헌신과 모범으로 더 많은 헌신자를 양육 하였습니다.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는 바로 모세가 길러놓은 절대 헌신자들과 함께 가나안을 정복 하였습니다. 다윗에게 절대 헌신한 자들은 목숨을 내걸고 베들레헴 밖에서 우물 물을 길어 왔습니다. 예수님께 절대 헌신한 자들은 세 명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오직 그들에게만 자기의 고민을 말씀 하셨습니다. 바울 사도에게 절대 헌신한 자들도 많지 않았습니다. 사실은 그들 소수도 부족함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로 말미암아 교회는 세워지고 확장 되었습니다. 이 절대 헌신의 사람들은 먼저 구원의 확신이 있는 자들입니다. 그 확신 가운데서도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려는 자들입니다.
헌신의 정상에 서라
추천사
오늘날 교회의 모든 문제를 푸는 열쇠는 비록 적은 수라도 이런 정예부대를 길러 내는 데 있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위하여 먼저 목회자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절대 헌신의 정상에 서야 합니다. 그 다음 소수라도 하나님께 그리고 목회자 자신에게 절대 헌신하는 자를 세워야 합니다. 또 그들을 통하여 헌신자들을 점차 확대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상명 하달식의 피라미드 조직은 아닙니다. 오직 상호 간 사랑과 헌신을 주고 받는 관계 입니다. 선지자 스가랴가 제사장 여호수아를 위하여 하나님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워 달라고 간구 하였습니다. 마찬가지로 교회를 섬기는 일꾼들은 서로 상대방을 위해 기도와 섬김의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교회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우리에게 열어 주고 있습니다. 비록 큰 교회를 쉽게 이루지 못해도 또 많은 시간의 수고에 비하여 그 열매가 작을지라도 그 결과에 집착 하지 말라고 교훈을 줍니다. 그렇다고 양적 성장보다 질적 성장이라는 진부한 개념을 강조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 모두가 절대 헌신의 자리에 서게 만들어서 성도 하나 하나를 작은 진주알처럼 다듬어 가라는 것입니다. 모쪼록 이 책을 통하여 한국 교회 목회자들은 성도들에게 또 성도들은 목회자들에게 절대적인 헌신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 모두의 헌신이 하나님께 온전한 제물이 되기를 바라는 저자의 마음에 깊이 공감 하면서 이 책을 추천합니다.
김 형주 목사 (Ph. D)
헌신의 정상에 서라 서문 2010년 10월 19(화요)일부터 21(목요)일 까지 5 시간에 걸쳐서 저자가 사랑하는 박 인용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부천 월드 와이드 교회에서 말씀 전할 기회를 가졌었습니다. 박 인용 목사님께서 지난 5년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잘 먹이고 양육 시켜 세우신 너무 좋은 교회이서 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에 마른 스펀지가 물을 흡수 하듯이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선포되는 대로 받아먹는 현장을 보았습니다. 아니, 월드 와이드 교회의 어떤 성도가 그의 블로그에 올린 것을 보면, 저자가 전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성령 하나님께서 교인들에게 말씀하신 것을 알게 됩니다. 일생을 목회 하면서 설교를 많이 하였지만 이 때 집회에서처럼 하나님께서 은혜를 많이 부어주신 경험이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말씀을 전하면서도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 하시는 현장을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의 요구도 있고 그 때에 주신 은혜를 나누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 여겨 책으로 만들었습니다. 집회 동안에는 시간적인 제한으로 나누지 못한 것들을 보충하여 정리 하였습니다. 현대 교회가 헌신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죽도록 충성 하려고 다짐하고 뼈가 으스러지도록 열심히 일하는 일군들이 교회에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그 헌신이 하나님을 향한 헌신인가 묻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받으실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었습니다. 저자 자신이 일생을 목회자로 살면서 자신의 헌신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는 기회를 목회 마지막 10년 동안 고민하며 정리한 것이 본서 입니다. 많은 일을 엄청나게 이루어 놓고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고 하는데, 진정으로 하나님께 영광이 될까 하는 생각을 많이 하면서 살았습니다. 저자 자신이 하나님께 쓰임 받는 종이라고 하는데 무엇인지 모르지만 아쉬움이 묻어나곤 하였습니다. 과연 지금 내가 하나님께 정상적으로 쓰임 받고 있는가? 기도와 사랑으로 격려를 아끼지 아니한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사랑하는 아내에게 가슴 깊은 곳에서 부터 감사하고 싶고 어려운 이민목회를 함께 겪으면서 아름답게 자라 하나님을 사랑하여 사는 네(4)자녀들을 향한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원고 교정을 부탁드렸더니 교정 하다가 출판비를 부담하신 조앤 조 전도사님께 감사를 표합니다. 출판을 위하여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아니한 박 인용 목사님 내외분과 월드 와이드 교회에 감사를 표합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 모두가 한 분도 빠짐없이 진정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쓰임 받는 귀한 은혜가 넘치시기를 축복하며 글을 썼습니다. 분명히 믿기는 독자들이 헌신하면서 전에 알지 못하던 은혜를 알게 될 것이며 전에 느끼지 못하였던 영적 희열을 하나님께서 그 심령과 삶과 사역 안에 충만하게 채우실 것을 확신하며 글을 썼습니다. 2011년 9월 1일 미국 피닉스에서 저자 문 홍국 목사
목 차 (Index)
헌신의 원리 로마서 16:1 ~ 4 (1) 내가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으로 있는 우리 자매 뵈뵈를 너희에게 추천하노니 (2)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 (3) 너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4)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 제 느낌에는 오늘 여러분 중에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해지신 분들도 계시지만 하나님의 사랑이 무엇인가, 이런 것도 같고 저런 것 같기도 한 그런 분도 있을 것입니다. 신앙의 차이도 많고 여러 가지로 서로 다른 점들이 많겠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와 모두에게 합당하신 말씀을 주실 줄로 믿고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믿으시는 하나님께서 무엇을 어떻게 말씀 하시는가 기대 하면서 그 말씀을 듣기 위하여 하나님께 귀를 기울이시는 은혜가 있기 원합니다. 저는 말을 잘하지 못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마음을 열고 기다리십시오. 그러시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번 주제를 ‘헌신의 정상에 서라’로 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합니다. 헌신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헌신은 하나님께 하여야 한다는 것에 대하여서는 재론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그러면 하나님께 헌신하기 전에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과 인간과의 기본적인 관계 (Fundamental Relationship) 또는 기초적인 관계(Basic Relationship)가 어떤 것인지를 확실하게 설정하셔야 합니다. 이 관계가 확실하지 않으면 그 다음 것들은 모두 흔들리게 됩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라 할 때에, 세상의 모든 사람들, 불신자들이나 목사든지 장로든지 이제 예수님을 갓 믿으셨든지 모든 사람에게 해당되는 기본적인 관계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이 하나님과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관계는 사랑의 관계라고 말할 것 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음을 들어서 믿고 알기 때문 입니다. 저는 하나님을 사랑 합니다. 하나님도 저를 사랑 하십니다. 사랑의 관계라고 규정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관계가 맞지만 사랑의 관계는 어떤 관계에서 통하는 사랑이냐 하는 것입니다. 저는 제 아내를 남편과 아내의 관계로 사랑 합니다. 그 사랑은 다른 여인과는 나눌 수 없는 사랑 입니다. 나는 나의 자녀들을 아버지로서 사랑 합니다. 그처럼 여러분이 하나님을 엄청 사랑하시는 줄 알지만 보다 기본적인 관계가 있어 사랑하는 관계로 발전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교회와 모든 인간과의 관계는 이런 것 입니다. 이런 관계를 무시하고 대뜸 사랑의 관계라고 이해하고 하나님께 다가가면 매우 중요한 것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기본적인 삼중 관계 예수님을 믿든지 안 믿든지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피조물 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은 통치주이시고 우리는 종입니다. 하나님께 얼마나 순종하고 따라 왔는가 심판 하시는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심판을 받아야 하는 종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는 인간 사회에서 통하는 관계가 아닌 무한대의 관계 입니다. 감히 접근할 수 없는 관계 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인식 하여야 내가 하나님께 헌신한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것인가를 압니다. <도표 1>을 참조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