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per 01. 정치 그리고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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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간사
세이브애즈
흔해빠진 돌멩이가 하나 있다. 길을 걷다보 면 으레 발에 차이곤 하는 그런 흔한 돌멩 이. 하지만 누군가 이 돌을 들어 건물의 창 문 하나를 깨부순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그 순간 돌멩 이는 작은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된다. 이 건 물 주인은 이 정도 돌팔매질에 눈 하나 깜빡 하지 않을 것이다. 깨진 유리창 하나야 교체 하면 그만이니까. 아마 길을 가던 불량 청소 년의 개구진 장난 정도로 치부하리라. 하지 만 누군가 꾸준히 돌팔매질을 시도한다면? 1년, 2년, 3년... 천의무봉했던 매트릭스에 입힌 작은 생채기 하나는 많은 변화를 가져 올 것이다. 아무튼 시작이 중요하다. 시스템 의 전복을 위해 필요한 것은 불도저나 폭탄, 혁명 따위가 아니다. 그저 작은 돌멩이 하나 를 들어올릴 용기. 그것 하나면 충분하다.
에세이
투표용지가 가져온 나비효과
박선영
이 나쁜 디자인의 파급력을 짐작이나 할 수 있었을까? 나쁜 디자인의 최대 수혜자는 조지 부시였다. 그는 결국 플로리 다 주에서 승리했고 미국의 43대 대통령이 되었다. 그의 임 기 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 고 생각한다. 나비형 투표용지의 작은 날갯짓 하나가 전세 계에 가져온 후폭풍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나비효과라는 것 은 이런 것을 두고 말하는 것 아닐까? 비록 역사에는 가정 이 없다고 하나, 만약 플로리다주 팜비치 카운티가 ‘좋은 디 자인’ 의 투표용지를 만들어 냈다면, 지금 세계의 역사는 달
정치와 디자인은 서로 닮아 있다. 좋은 디자인과 좋은 정치
라졌을지 모른다. 나비형 투표용지(Butterfly Ballot) 디자인
는 세상을 변화시킨다. 반면 나쁜 디자인과 나쁜 정치 역시
을 처음 고안했던 테레사 르포르는 이와 같은 혼란을 예상
세상을 변화시킨다. 오늘날 디자인은 단지 외형을 가꾸거나
이나 했을까? 그녀는 아마 좋은 의도와 목적으로 그것을 만
제품에 기능을 더하는 역할을 넘어, 우리 삶의 모습을 변화
들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좋은 의도를 갖고 고안한
시키는 힘을 지닌다.
디자인이 이런 어이없는 결과를 낳게 된 것일까? 그것은 사 용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미국 예일 대학
2000년 미국 대선 과정에서 일어났던 투표용지 사건은 정
교수 에드워드 터프티(Edward Tufte)는 이 사건에 대해 다
치에 개입된 나쁜 디자인이 세상을 어디까지 바꿔 놓을 수
음과 같이 말했다. (*월스트리트 저널과의 인터뷰)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원
“많은 나쁜 디자인은 혁신적으로 보이고자 하는 디자이너
래 주마다 다른 투표방식을 채택하고 있는데 플로리다 주
의 욕망으로부터 나온다. 이것이 예술이라면 좋겠지만, 사
팜비치 카운티는 시력이 약한 노년 유권자를 위해 활자를
용자를 돕는 것은 관습이다. 사용자는 결코 틀리지 않으며
키웠고 이 과정에서 투표용지가 양 쪽으로 펼쳐지는 일명
사용자는 결코 어리석지 않다. 정보 디자인에 있어, ‘디자인’
나비형 투표용지(Butterfly Ballot)를 고안해냈다. 하지만 이
만이 오로지 잘못된 것이고 어리석은 것이다.”
용지는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
이제, 18대 대선을 준비하는 그들에게 묻고 싶다. 그들이
다. 바로 유권자가 후보를 선택하는 과정에서 혼동을 겪은
국민을 위해 내세운 좋은 정책이 사실은 어리석은 정책들은
것. 최초 개표결과, 부시는 상대 후보에게 고작 1725표가
아닌지. 그리고 한번 더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국민을 위
앞서 있었고 근소한 표차로 인한 재검표 결과에 들어가자
한다는 그들의 생각이 혹시 좋은 마음에서 우러나온 ‘오만
그 차이가 930표로 줄었다.(이것은 고작 0.016% 차이에 불
함’ 은 아닌지를 말이다.
과했다!) 이로 인해 기계에 의한 재검표가 이뤄졌는데 부시 의 막강한 라이벌이었던 고어 후보 측은 이를 두고 투표용 지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이의를 제기했다. 나비형 투 표용지의 왼쪽 가장 상단에는 공화당의 부시가, 오른쪽 상 단에는 개혁당의 팻 뷰캐넌이, 그리고 다시 왼쪽 두 번째에 는 민주당의 고어가 표기되어 있었다. 고어의 지지자들이 용지 왼쪽 상단에 부시가 적혀있는 것을 보고 오른쪽 상단 에는 당연히 고어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무심코 두 번째 홀(펫 뷰캐넌)에 투표를 했다고 그들은 주장했다. 실제로 투 표 당시 많은 사람들이 잘못 투표한 것을 깨닫고 이의를 제 기했다는 사실은 고어 측의 주장이 허무맹랑하지만은 않다 는 것을 의미한다.(*투표용지의 정치적 효과 문은영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문제의 나비형 투표용지 Butterfly Ballot
“착한 유권자도
으면 나쁜 사람 조지 진 네이선 /
가, 문예비평가, 잡
인터뷰
오창섭 교수와의 인터뷰
박선영, 손혜인, 최명환
선배들이 85, 86, 87년도 입학생들이었으니까 아무래도 선 배들의 관심이 후배들에게 이전되었다고 할 수 있어요. 당시 에는 선배들과 술자리가 많았는데, 수업을 마치고 술자리에 서도 이런 이야기가 많이 오갔죠. 디자인이 나아가야 할 방
“디자인이란 것 커뮤니케이션,
그 무엇이든 간
자신의 삶으로
에게 그것은 또
이념이고 정치
향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도 많이 했고요.
것이다. 그래서
하지만 시대는 바뀌고 있었죠. 90년대는 우리나라가 소비
을 그렸을 것이
의 사회로 진입하는 시기였어요. 한쪽의 학생들은 여전히 정치에 관심이 있었지만 다른 한편의 학생들은 그렇지 않 았습니다. 소위 말하는 압구정동 오렌지족 같은 부류가 생
바야흐로 대선 막바지에 이르렀다. 매번 대선이 그래왔지
겨나던 시기였죠. 저는 2학년 때 군대를 갔는데, 다시 복
만 이번 대선도 여지없이 이념논쟁과 흑색선전 등이 이어
학한 1992년 이후의 학교 분위기는 입대전과 많이 달랐습
졌다. 특히 올해에는 문재인-안철수의 단일화라는 화두까
니다. 그 시기에 대학은 사회문제에 대해 고민해야 하는 진
지 더해져 더욱 복잡한 양상을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이
지한 공간이 아니었습니다. 평화로웠죠. 어찌 보면 90년대
런 정치에 대한 디자이너들의 반응은 미미하기만 하다. 대
초반에 대학에 입학한 이들은 가장 편하게 대학을 다닌 세
체 왜 매번 디자이너들은 번번히 이런 문제들에 대해 침묵
대라고도 할 수 있죠. IMF로 삶이 꼬이기 전까지 말입니다.
하고 있는 것일까? 건국대학교 디자인 학부 오창섭 교수를 만나 이에 대한 원인과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경청하는
선생님이 입학할 당시 학교를 다니던 분들은
시간을 가졌다.
지금 무엇을 하고 계실까요? 그분들은 지금 회사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겠죠.(웃음) 흔히
선생님 학번이 어떻게 되시나요?
386세대라고 이야기하는... 아, 지금은 486세대가 됐죠? 그
89학번입니다.
분들은 최루탄과 화염병이 난무하는 어려운 시절을 보냈지 만, 다른 한편으로는 행복한 사람들이었어요. 86~88년도
아, 그 당시면 한참 운동권이 활발했던 시기인가요?
는 정치적으로는 매우 암담한 시기였지만 경제적으로는 단
아닙니다. 89년은 그런 움직임들이 잦아들기 시작할 때였
군이래 최고 호황기라 불릴 만큼 경기가 좋았던 때였어요.
습니다. 절정기는 87년도였죠. 사회, 문화, 정치적으로 87년
따라서 취업의 문이 넓었습니다. 대학 진학률도 지금처럼 높
은 변화의 기점이 되었던 중요한 해입니다. ‘87년 체제’ 라는
지 않았죠. 당시 대학 진학률은 30% 정도였던 것으로 알고
표현도 있잖아요? 87년도는 민주화 항쟁이 극에 달하던 시
있습니다. 때문에 지금처럼 화려한 스펙으로 무장하지 않아
기였습니다. 당시 집권세력의 대통령 후보가 6.29 선언이라
도 마음만 먹으면 취업이 가능한 시기였죠.
는 이름의 민주화 선언을 했는데, 이는 일종의 항복 선언이 었습니다. 그렇다고 진정한 민주화가 도래한 것은 아니었어
당시 시위에 참여하는 디자인과 학생들도 많았나요?
요. 여전히 사회분위기는 심각했고, 제가 대학에 입학한 해
교내의 다른 과에 비해선 적었지만 분명히 있었어요.
인 89년에도 대학은 최루탄 연기가 여전히 자욱했습니다.
지금은 대학에서 시위 자체를 찾아볼 수 없죠. 저도 학교 다닐 때 느꼈는데, 예술대학 학생들이 유난히 사
그렇다면 선생님이 학교를 다니던
회문제에 무관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유가 뭘까요?
시기의 상황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사회문제에 대한 무관심은 예술대학에 다니는 학생들만의
지금 생각해보면 89년도 전후는 사회문제와 민주화에 대
특징이 아닙니다. 다른 학과를 다니는 학생들도 마찬가지
한 관심이 여전히 학생들을 지배하고 있었던 때가 아니었
로 사회문제에 그다지 관심이 없어요. 전체적으로 그런 양
나 싶어요. 사회문제에 관심 있는 학생들은 사회과학서적
상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형상은 세대의 경
등을 읽고 학회나 소규모 세미나에 참석하며 공부했습니다.
험과 어느 정도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의 20대 즉,
고 착하며 아름
『디자인 멜랑콜리
스 / 서동진 / 문화
1990년대 초반에 태어난 학생들은 유년 시절에 IMF를 겪었
하기 어렵습니다.
어요. 그들은 아마 부모 세대가 고통 받는 모습을 보았을 거 예요. 그리고 자신들이 대학을 다니던 2008년 경에는 외환
협회도 일종의 정치기관 아닌지요.
위기를 겪었죠. 이러한 경험이 안전한 삶에 대한 욕구를 강
그런데 그들은 왜 치졸한 싸움으로만 힘을 소비하는지...
하게 만들었다고 봅니다. 새로운 삶을 꿈꾸기보다는 자신
현재 디자인 관련 단체의 행동을 정치라고 보기는 어려운
의 삶의 지속성을 유지하는데 더 집중하는 거죠. 요즘 학생
것 같습니다. 정치는 사람들의 욕망의 흐름을 바꿔, 사회
들의 스펙 쌓기 열풍도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 같습니다. 그
를 보다 긍정적인 차원으로 만들고자 하는 의지와 관계하
것은 위기를 겪은 부모의 욕망이기도 하구요. 시대가 사람
는 개념인데, 디자인관련 단체들은 특정 개인의 이익을 위
들에게 그런 것만을 요구하도록 하는 것 같아요.
해서만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사회를 고민을 할만큼 성숙 하거나 공부가 되어있지 못한 것이지요.
제가 미술학원에서 강사를 하던 2005년 당시
어쩌면 이것이 디자인계의 현 상태인지 모릅니다.
학원 광고 문구에 취업률을 내세우곤 했어요. 미대에 가면 취업을 잘할 수 있다는 식으로 말이죠.
디자이너들은 왜 정치에 관심이 없을까요?
IMF는 사람들을 사회보다는 개인의 삶에 집중하도록 만들
정치를 넓은 의미의 정치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
었습니다. IMF 이후에 신자유주의는 확대되었죠. 신자유주
게 보았을 때 정치는 삶의 문제이자 현실적 문제가 됩니다.
의는 경쟁을 장려하고, 삶의 공간을 빈익빈부익부의 사회
정치에 대한 무관심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디자인 교
로 만들어버립니다. 삶이 불안해지고, 그에 따라 안정적인
육에도 적지 않은 원인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지배적
삶에 대한 욕망이 사회를 지배하게 되죠. 사실 IMF 이후에
인 디자인교육은 자본의 논리를 긍정하면서 디자인을 가시
나타난 흥미로운 현상이 있어요.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적인 조형의 문제라고 규정합니다. 이러한 믿음에 따라 학
모두 의대를 지원한다는 거죠. 우리 때는 전자공학과, 물리
교에서는 특정한 조형감각만을 트레이닝을 통해 습득하도
학과의 점수가 가장 높았거든요. 지금은 지방 의대의 정원
록 합니다. 자연스럽게 정치나 삶에 대한 관심은 제한적일
을 모두 채우고 나서 서울공대를 지원하는 현상이 일어나
수 밖에 없지요.
ter in the futu
I have to live
더 나아질 것이
멍청하다. 나는
고 있죠. 이것은 오늘날 사람들의 공포와 욕망이 무엇인지 를 보여주는 현상입니다.
“Thinking life
야 할 뿐이다.”
학교에 계시면 그런 문제들이 더 와 닿으시겠네요.
『Things I Have L
fan Sagmeister /
제가 종종 학생들한테 물어봐요.‘한 학기 동안 책을 얼마나
신의 그래픽 디자
디자이너도 분명 의사와 마찬가지로 전문직인데요.
읽어요?’라고. 한 학기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학생
Stefan&Walsh
디자이너는 그에 비해
들도 적지 않습니다. 그런 친구들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
한국에서 개인전을
너무나 다른 대우를 받는 것 같습니다.
질 수도, 문제를 제기할 수도 없습니다.
글쎄요. 의사나 건축가 같은 경우는 사람의 목숨과 직결되
그런 친구들은 자신의 삶과 관련 있는 것은 오로지 라이노,
지만 디자인은 그렇지 않기 때문일까요? 명확한 사실은 가
인디자인 같은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해요. 그들 마음 한 구
치를 인정받는 직업 영역들을 보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
석에는 그저 스타 디자이너에 대한 동경만이 남아있죠. 하지
방어체제를 잘 구축한다는 것입니다. 의사협회나 약사협회
만 이러한 환상 속에 디자인과 관계한 이들이 만나야 할 현
가 자신들의 이익과 관련된 사안에 대해 어떻게 움직였는
실은 암울하죠. 사실 지금 디자인 전문회사들은 붕괴직전이
지를 한번 떠올려 보세요. 그렇다고 우리의 이익만을 위해
예요. 제품도, 시각도 마찬가지죠. 디자인환경도 변하고 있
똘똘 뭉쳐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노동에 대한 정당
죠. 이러한 상황에서 스타디자이너는 처참한 현실을 봉합
한 대가를 받는 상황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하는 얇은 환상의 막일 뿐입니다.
지요. 물론 디자인계 관련 각종 단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단체들은 디자인 영역을 대변해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문제가 심각하네요.
지금까지 하는 일들을 보면 ‘그들만의 리그’ 라는 비난을 피
네, 지금의 88만원 세대(10대, 20대)는 예전의 시각으로
자인 스튜디오를
보면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가야 할 세대입니다. 시스템에
보수적이예요. 20대가 30대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죠. 그렇
문제가 있는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 그것이 자신의 잘못과
다고 30대가 대학을 다니면서 민주화 운동의 세례를 받거
부족함에 원인이 있다고 믿는 것 같아요. 그래서 스펙 관
나 시위 경험이 있었던 것도 아닙니다. 두 세대가 그러한 경
리에 더 몰두하죠.
험이 없기는 마찬가지에요. 흥미로운 현상인 것 같습니다.
사실 요즘 학생들 정말 잘해요. 내가 만약 지금 학교를 다 녔다면 이런 아이들이랑 경쟁해서 승산이 있겠나 싶을 정도
저희들이 다음 정부에게 무엇을 요구해야 할까요?
죠. 그런데 딱 거기까지입니다. 씁쓸하죠. 그들에게 미래는
전 정권 때도, 그 이전 정권 때도 창의 사업에 대한 이야기
어둡습니다. 점점 그 어둠은 짙어지고 있어요. 이러한 상황
는 많이 오갔지만 정작 종사자들은 노동의 정당한 대가를
은 크게 두 가지 현상을 만들어 냅니다. ‘아픔’ 과 ‘분노’ 가 그
받지 못하고 있잖아요.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해
것이지요. 그래서 한쪽에서는 아픔을 치료하기 위해 열심히
야 할 것 같네요.
힐링을 이야기하며 멘토를 찾아 다닙니다. 그리고 다른 한 쪽에서는 여러분처럼 분노를 표출하는 거죠.(웃음)
노동의 대가 이야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디자인 노조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계세요?
88만원 세대 디자이너들은 정당한 대우도 받지 못하는데
일반 기업과 디자인전문회사의 상황이 다르겠죠. 일반 기업
왜 예전처럼 분노를 표출하지 않을까요?
과 달리, 디자인전문회사 내에서 노조를 결성하여 디자이너
요즘 젊은이들은 가장 공부를 많이 한 세대입니다. 동시에
의 권익을 주장한다고 하더라도 얻을 수 있는 것은 한계가
88만원 세대는 부모로부터 많은 보호를 받고 자란 세대이
있을 거예요. 요즘 디자인전문회사의 운영자들도 많이 어려
기도 합니다. 부모들은 자신들이 격은 IMF 트라우마로 인해
워요. 그들도 고통 받고 있는 주체들이죠. 이러한 상황에서
서 자녀들에게 안정적인 삶을 요구합니다. 하지만 안정적 삶
노조를 만들어서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
을 보장하는 자리는 충분치 않고,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비
결되지는 않을 겁니다. 오히려 디자이너들이 서로 소통하고
정규직이라 불리는 불안정한 자리들뿐입니다. 슬픈 세대입
연대하며 디자인 외부에 목소리를 내야겠죠.
니다. 젊은이들은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이러한 현실이 변화되지 않음을 인지해야 합니다. 세상은 디자인을 화려
저희 페이퍼 창간호의 메인 테마는 정치와 대선입니다.
하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죠. 바꾸려
이 잡지를 읽을 디자이너들에게
는 움직임이 없으면 바뀌지 않아요.
마지막으로 한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지금 당신의 삶이 만족스럽다면 움직일 필요가 없습니다.
혹시 트위터에 대나무숲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하지만 현실이 부당해 보이고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
그것을 보면서‘이렇게 쌓인 게 많은 데
한다면 움직여야 하겠지요. 현실은 가만히 있으면 절대로
왜 터져 나오지 않지?’라는 생각을 했어요.
바뀌지 않아요. 생각하는 것 그 이상으로 나아가야 합니
여기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세요?
다.
아, 들어봤어요. 문제를 피상적으로 접근해서는 풀리지 않 을 것 같아요. 피상적 울분을 토해내기보단 사회구조를 파 악하고 실질적인 변화를 모색해봐야죠.
학생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오창섭
바람이 있으신가요?
서울대학교 산업디자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문화에
자기들이 잘 살고 있고 행복한 상황이면 모르겠는데, 그
있다. 저서로 <이것은 의자가 아니다 : 메타 디자인을 찾아서>, <인공낙원을 거닐
렇지 않다면 관심을 가져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여기
다>, <9가지 키워드로 읽는 디자인>, <제로에서 시작하라> 등이 있으며, 현재 건
서 흥미로운 현상 하나를 말씀 드리죠. 현재 20대는 굉장히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디자인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서는 데 관심을 가지고
국대학교 디자인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메타디자인연구실(Meta Design Lab)’ 을 운영하고 있다.
프리 토크
신념을 갖고 산다는 것
손혜인, 최경현, 최명환
사회적 디자인그룹의 지속성 최명환(이하 명): 앞으로파간다에 대해서 먼저 설명을 좀
“그림 그릴 때
이 딴 사람들 맘
하고 생각한다
요즘 세상에 가
해줘. 이도진(이하 도): 우리는 세종대학교 산업디자인과를 중심 으로 모인 팀이야. 현재 7명. 1명의 신문방송학과 학생과 6 명의 산업디자인과 학생들이 모여 만든 그룹이지. 명: 언제 결성하게 된 거야? 도: 결성된 건 작년 초였어. 한 2년 정도 됐나? 그런데 사실 요즘 멤버들이 졸업을 하기 시작하고 취업전선에 뛰어들면 서 활동이 뜸해진 상황이긴 하지. 손혜인(이하 손): 음, 아마 지금이 상당히 중요한 시기일 거야. 우리도 너희들처럼 3,4학년 때 쯤 만났잖아. 그 때가 2009년이었으니까, 벌써 만 3년이 다됐네. 아무튼 멤버들 이 하나 둘 취업전선에 뛰어들기 시작하니까 팀이 좀 흔들 리긴 하더라고. 생계와 연관되니까 우리가 그 부분까지는 간섭하기 힘들잖아. 도: 맞아. 우리도 멤버들이 취업을 시작하니까 점점 힘들어 지더라고. 마음 떠난 사람은 그대로 보내주고, 새로운 사람 들을 뽑을까 생각 중이야. 시간이 흐르니까 생각이 바뀌는 사람들도 있더라고. 최경현(이하 경): 어떤 게 바뀌었다는 거야? 도: 글쎄, 그냥 사회적 문제로부터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거 지. 일단 취업이 힘드니까... 생계가 해결이 안 되는 상태에 서 이런 작업을 하는 게 힘든 것 같아. 그런 마음 절대 이해 못하는 거 아니지. 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 꾸 준히 이야기해줘야 하는 것 같아. 누군가가 대신 바꿔주는 건 아니니까 말이야.
신념을 가로 막는 것들에 대하여 최정희(이하 정): 나는 신념을 지키며 살아가기 힘든 이유 이 시대에서 디자이너로 산다는 것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
가 주변에 신념을 지키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없어서 같아.
는 것일까? 한때 화려한 스타 디자이너의 삶을 꿈꿨지만
물론 작은 신념을 갖고 사는 사람들은 있지만 신념으로 가
현실의 벽 앞에 무너지게 된 요즘의 젊은 디자이너들. 분노
득 차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은 거지. 신념의 주축이 되거나
하는 법 마저 잊은 듯한 오늘날. 두 개의 사회적 디자인 그
본보기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
룹 “세이브애즈 save as”와 “앞으로파간다”가 만났다. 소
경: 그런데 신념이라는 것이 항상 절대적일까? 박정희만큼
신을 갖고 사는 것 마저 허용되지 않는 시대에서 자기 신념
신념이 강한 인물도 드물었던 것 같은데. 사실 오늘날 그에
을 지키고 사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진지하면
대한 평가는 상당히 엇갈리는 편이잖아.
서도 유쾌한 대화를 들어보자.
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되 타인의 신념을 짓밟지 말아야 한
은 그림이 뭘 할
며 자꾸 한심해
박이소 / 개념미술
다는 전제가 붙어야 된다고 생각해.
면서 그 안에서 위안을 찾는 걸 보면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명: 타인의 신념을 희생시키지 않는 선에서 모든 삶이 존중
디자이너의 전형이 보인달까?
받는 사회가 좋은 사회인 것 같아. 하지만 오늘날의 사회는
도: 그들은 그런 거라도 있어야 버틸 수 있는 거겠지. 지금
그렇지 못하지. 사회가 그런 것들을 고의적으로 한다고 생
디자인 영역도 크게 힙한 디자인과 착한 디자인으로 나뉘는
각하지는 않아.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그들도 그 밖의 삶은
것 같아. 그런데 항상 힘은 힙한 쪽이 우세해. 착한 디자인
모르는거지. 그러니까 선을 넘어버리면 큰일나는 것처럼 진
은 구질구질하다는 인식이지.
심으로 걱정을 하고.
손: 그리고 또 착한 디자이너는 그걸 또 정치적으로 이용하
민: 사실 가장 그런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엄마 아냐?(일
기도 하고 말이야.
동 빵터짐)
정: 나는 디자이너들이 목적의식을 갖고 살아가야 한다고
손: 그런데 너희들은 엄마와의 이데올로기 대립 문제를 어
생각해. 아무리 힙하고 작업을 잘해도 결국 인기 좀 끄는 디
떻게 해결하는 편이야? 솔직히 우리 엄마는 내게 큰 강요
자이너가 되는 것 밖에 더 되겠어? 디자인을 하는 본질적
를 하진 않지만 요철처럼 튀어나와서 순간순간 걸리는 부
목적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해. 관계와 교육을 통해서 사회
분들이 있거든.
적 디자인을 알리고 목적점을 함께 찾아가는 거지.
정: “네가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 수 없다?”
경: 작가는 자기 표현을 연구한다기 보단 그 시대의 상황과
손: 응. 그런거지. “다 널 걱정해서 하는 말이야” 이런 거.
정신을 반영하고 기존의 윤리와 규범을 깨는 거라고 들었
도: 안정이라는 것이 원래 사람의 두려움을 키우는 거잖아?
어. 그게 작가의 책무지. 디자이너들도 이제 그런 작가의 책
손: 응, 아무튼 나는 모두에게 그런 문제들이 조금씩 있을
무를 다해야 될 거라고 생각해.
것이라고 생각해.
정: 맞아. 더 이상 조형으로서의 디자인 안에서 뭔가를 찾
명: 나는 사실 세이브애즈를 처음 시작하고 1,2년간 아버지
는 시도는 그만했으면 해. 디자이너들은 분명히 장점이 있
랑 엄청나게 싸웠어. 정말 너무 피곤하고 힘든 시간들이었
어. 이제 외치고 싶어하는 메시지를 디자인 안에 담는 연습
지.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니 서로에 대한 관용 같은
해야 할 것 같아.
게 생기는 것 같아. 그 지리멸렬한 싸움을 거치고 나면 좀 괜찮아지는데 그 싸움을 버티기가 힘든 거지. 정: 관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나는 현재 시민단체에 서 일하고 있어. 시민단체는 사실 시민들과 관계를 맺으면 서 나아가는 건데, 관계 맺기는 알다시피 실패의 과정을 겪 어야 하는 거잖아. 그러면서 구질구질해지기도 하고. 그런 게 인간관계인건데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그걸 잊어버렸거 나 알고 있어도 포기해버리는 것 같아.
자본주의 시대에서 신념 있는 디자이너로 살아가기 도: 요즘 뭐든지 급격하게 빨리 돌아가잖아? 소위 “힙(Hip)” 하다는 거. 사실 디자이너는 자기 생활 수준에 미치지 못하 는데 억지로 거기에 맞춰서 사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 그 거 알아? 2000년대에 디자인을 공부한 사람들에겐 어떤 공 통적인 특징이 있어. 상류층의 삶을 동경하고 변용해서라도 그런 삶을 전유하려고 하는 모습들 말이지. 정: 응, 내 지인 중에도 월 150을 받고 사는데 그 힙(Hip)하 다는 자부심으로 사는 애들이 있어. 자기들만의 파티를 하
토크 참석자 이경민, 이도진, 최정희(이하 앞으로파간다) 손혜인, 최경현, 최명환(이하 세이브애즈)
에세이
디자이너가 정치를 안다는 것
모든 디자이너는 정치적이다
최명환
새로운 로마의 정통성을 계승했음을 이미지로 증명해내려 고 했던 것이다. 모더니스트들은 모더니즘 양식을 통해 자 신들이 꿈꾸는 유토피아를 현실화하려 했다. 여러분이 열 광하는 미니멀한 디자인들의 DNA에는 새로운 대중(민중) 적 미의식을 정립하고자 한 러시아 구축주의자들의 소망과 열정이 담겨있다. 오늘날에도 이미지와 정치성의 문제는 이 어져오고 있다. 전 서울시장은 수많은 비난을 무릅쓰고 서 울 도심 한 가운데 스펙타클한 광경을 연출해냈다. 공공성 이 결핍된 이 스펙터클은 자신의 정치적 치적을 과시하고
걸프전에서 있었던 일화다. 어느날, 다국적군 소속의 헬기
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되었다.(수많은 디자이너들이 이 스
조종사가 야간비행 중 지상의 적군을 발견한다. 그는 바로
펙타클을 만드는데 동참했는데 나는 언젠가 이들이 공정한
대전차 미사일을 발사했고 그 결과 탱크 두 대를 포함 꽤 많
심판대에서 재평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은
은 수의 적군을 격파시켰다. 하지만 이내 충격적인 사실이
이런 광의廣意의 정치성을 보여주고 있다. 결국 개인의 성
밝혀졌다. 그가 공격한 것은 적군이 아닌 아군이었던 것이
향이야 어찌되었든 모든 이미지 생산가는 정치적일 수 밖에
다. 이게 대체 무슨 영문일까? 바로 조종사의 잘못된 항법
없는 숙명을 타고났다.
이 원인이었다. 조종사는 전선을 향해 전진했다고 생각했지 만 사실 아군 영토 안에서 계속 옆으로 비행하고 있었던 것
많은 디자이너들은 줄곧 정치에 대해 오해한다. 그들은 마
이다. 조종사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야간 탐사 스크린
치 정치를 “쿨하지 못한 노인네들이 이해할 수도 없는 골치
에 나타난 병사들을 적군으로 오인하고 발포한 것이다. 이
아픈 문제로 모여 난투극을 벌이는 것” 정도로 생각한다. 슬
사건은 위치 선정의 중요성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프게도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판을 바라보면 이 말을 완 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건 마치 자신의 좌표를 망
요즘 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신의 위치를 “높낮이”에서 찾으
각한 채, 야간 탐사스크린으로 지상의 상황을 지켜보는 것
려 한다. 어떤 회사에 들어가고, 어느 위치에 오르겠다는 “
과 마찬가지다. 다른 점이 있다면 걸프전과는 달리 지상에
성공지향적” 목표를 설정한다. 또 어떤 디자이너들은 자신
아군과 적군이 뒤엉켜 있다는것 뿐. 정치를 안다는 것은 곧
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적 상황을 애써 외면한다. 나는 이걸
자신의 좌표를 파악하는 것임과 동시에 어디로 어떻게 날아
좌표의 망각이라고 부르는데 ‘예술가적 기질’(이것은 예술
가야 할지 항법을 지정하는 것과 같다. 물론 나도 앎과 소신
가에 대한 그릇된 인식에서 발생한다.)을 타고났다고 생각
이 반드시 행동으로 이어지진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자
하는 순진한 디자이너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신의 좌표를 읽는다는 것 자체가 녹록치않을 뿐더러 앎에
이다. 하지만 슬프게도 자신의 위치를 방위方位의 차원에
서 오는 괴로움이 존재한다. 마치 매트릭스에서 깨어난 네
서 확인하려는 디자이너들은 상당히 적다.
오가 고뇌하듯이 말이다. 클라이언트는 당신이 만들고자 하 는 이상향과 정반대의 이미지를 요구할지도 모른다. 당신이
하지만 그래픽 디자이너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의문을 던
디자이너라는 숙명을 띠고 있는 한, 당신은 해방자가 될 수
져보면 좌표 선정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그리고 그 좌
도, 감옥을 만드는 건축가가 될 수도 있다. 당신이 딜레마에
표의 꼭짓점에는 반드시 정치성의 문제가 개입한다. 그래픽
괴로워하며 필자를 원망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디자이너란 결국 이미지 생산자의 일원이고 가시성은 언제
자신의 현재와 가야 할 방향을 알고 있다는 것은 이탈한 항
나 정치성을 내포하고 있다.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고? 역
로에서 언제든지 복귀 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정치적 소신
사적으로 이미지 생산자들이 어떤 정치적 영향력을 밟아왔
을 당장 당신의 결과물에 반영시킬 필요는 없다. 이건 우리
는지 더듬어보면 좀 더 이해가 빠를까? 나폴레옹은 황제 취
에게는 당장은 너무 먼 미래니까. 이 문제는 우리 우선 투표
임 후, 로마의 고대양식을 복원하려고 노력했다. 프랑스가
부터 끝내놓고 다시 생각해보도록 하자.
“비판과 냉소를
들이 많다. 냉소
그러진 투덜거
지만 비판은 현
기 위한 고뇌이
김규항 / 출판인,
보적 칼럼니스트
『고래가 그랬어』
17 paper save as 페이퍼 세이브애즈는 프로젝트 세이브애즈에서 발행하는 비정기간행물입니다.
앞으로 ‘보통’ 디자이너들의 현실을 솔직하게 전달함으로써 디자인계의 변화를 모색하는 장이 되고자 합니다. 발행일 2012년 12월 10일
발행인 프로젝트 세이브애즈
기획 편집 집 최명환, 손혜인, 박선영
디자인 박선영
E-mail designsaveas@gmail.com
인포그래픽 손혜인, 강주리, 장대원, 원미연
F cebook www.facebook.com/designsaveas Fa
일러스트 최경현, 여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