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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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뚜리 세 사람이 한 상에서 식사하다

세뚜리 세 사람이 한 상에서 식사하다 하성혁 김혜수 이 림 지음

하성혁 김혜수 이 림 지음

값 10,000원 03980

9 791186 188088

ISBN 979-11-86188-08-8

여기 저기

여기저기출판사


세뚜리 세 사람이 한 상에서 식사하다

세뚜리 세 사람이 한 상에서 식사하다 하성혁 김혜수 이 림 지음

하성혁 김혜수 이 림 지음

값 10,000원 03980

9 791186 188088

ISBN 979-11-86188-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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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뚜리마을

하성혁ㅣ김혜수ㅣ이 림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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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의 글 음식의, 음식에 의한 동네이야기. 우리

짬짜면, 후라이드반 양념반, 이번엔 세

가 늘 먹던 맛 같은 맛있는 책이 우리

개를 합쳐보는것은 어떨까? 역사와 전

의 심리적 미각을 자극한다.

통 그리고 세계가 낳은 음식. 그 음식들

- M . Delicious

이 만드는 동네는 어떤 동네일까? - 퓨전 요리점 사장

음식을 통한 갈등이 중심이 된 마을. 이곳에 가면 떡볶이, 족발, 양갈비를 꼭 먹어보길 추천한다.

족발과 떡볶이, 그리고 양갈비?! 당신 이 양갈비가 뜬금포라 생각한다면 이

- 김재민

책을 안 읽었다는 것! 읽는 순간 떡볶이 와 족발을 양갈비집에서 시켜먹을 것이

진정한 식도락 여행을 원하는 자. 세뚜리로 오라!

다. - 소훙리(so hungry)

- 은달 음식의, 음식을 위한, 음식에 의한 마 보기만 해도 먹고 싶은 음식, 특히 떡 볶이, 족발, 양꼬치에 얹힌 사연들까지.

을이다. 전세계 푸드파이터들이여 세뚜 리마을로 당장 뛰어가라!

거기에 재밌는 이야기까지 더해졌다. 음식을 보면 늘 생각날 것 같은 이야기. - 맛집사랑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이었다. 그 날 은 운수가 좋았던 것인지 장사가 잘되 어 여편네에게 설렁탕이나 사들고 갔 다. 설렁탕을 던져줘도 대답이 없던 여 편네...... 이 책을 읽고 있었다. - 현진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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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김시인

어릴적 장충동으로 이사온 후 20여년 째 같은 동네에서 거주하고 있는 32살 젊은 시인. 10대 후반, 첫 작 '처음' 을 통해 등단 한 후 현재까지 왕성한 활동을 지속하 며 매년 시집을 출판하고 있다. 초기에는 자연, 감각의 교감 등 감성적 인 주제의 시를 주로 썼지만 성인이된 후 다양한 사회적 활동을 하며 얻은 경 험을 바탕으로 최근에는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풍자하는 시 를 주로 쓰고 있다.

무달

길의 이야기를 담는 잡지회사 '골목길' 의 신입사원이 된 그는 첫 로젝트로 동 대문 일대의 이야기를 취재 중이다. 그 는 특별한 날이 아니고서는 오후 5시부 터 7시에만 야외활동을 하며 그시간대 의 골목 이야기를 취재한다. 운전이나 자전거와 같은 탈 것을 잘 다루지못하는 대신 걷는 것을 좋아하는 그는 튼실한 다리가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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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수

신당동에서 50년 동안 살았다. 50대가 된 그는 일을 오래해서 이제는 자유를 찾고 싶었다. 또한 인간관계에 회의를 느끼고 이제부터라도 사람사이의 관계 를 잘 가꾸고 싶어 다양한사람들을 만 날 수 있는 편의점을 차리기로 결심했 다. 그래서 현재 위드미 편의점의 점장 이다. 영어를 잘 하시며 다양한 나라의 사람 들과 등산클럽을 설립하고 등산을 하신 다. 그 등산클럽에는 점장님 한 분만 한 국 사람이다. 말레이시아 사람, 미국 사 람, 프랑스 사람 등 다양한 나라의 사 람들이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이 공동의 취미를 가지고 모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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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아... 나는 32살 시인이다. 그동안 뭔가에 쫓기며 시를 썼지. 나는 그저 살면서 무언가 느끼고 끄적이는것을 좋아했을뿐인 데 지금 나는 왜 이렇지? 왜 출판사는 계속 날 못잡아먹어서 안달이지? 그게 중요한게 아닌데... 매달 작품을 써야한다는 부담감인가? 아니면 나를 못마땅해 하는 부모님인가? 음... 뭐가 됐든 지금은 뭔가 문제가 있어! 생각해보니 시인임에도 뭔가 바빴어. 많은 곳들을 돌아다녔 지. 그 여행들도 마음 편하지 않았어. 시간과 작품에 부담이 있었던것 같아. 우리동네는 잘모르겠네. 나의 동네 장충동을 여행해보자. 아무것도 신경쓰지않고... 그게 원래의 이유였던 것 같아. - 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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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Course

10

걷다

10

지도와역사

들어가다

24

건물

스치다

34

사물

마주앉다

44

사람

나누다

50

음식과 놀이


목차는 작가들이 마을을 여행한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처음 작가들은 각자의 사연을 가지고 마을 여행 을 시작하게 된다. 마을곳곳의 길들을 다니며 여행을 시작하는 ‘걷다’

길들을 다 둘러본 후 주변의 특별한 이야기가 있 는 많은 건물들을 찾아보는 ‘들어가다’

길과 건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여러 사물들에 담 긴 마을의 전설들을 찾아보는 ‘스치다’

마을의 주요인물이나 현재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는 ‘마주앉다’

그리고 이 마을의 주요테마인 음식과 오래전부터 마을에 전해 내려오는 놀이에 관한 이야기인 ‘나누다’

로 구성되어있다.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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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세뚜리마을이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시기는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다. 사 람들은 장충동, 신당동, 광희동을 포함한 영역 이 세뚜리마을이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었지만 사실상 정확한 구분이 없는 시점이었다. 마을 관계자들은 회의를 통해 각 동의 특징적인 공 간을 몇몇 지정해서 세뚜리마을의 경계를 명확 히 하기로 한다. 여행을 시작하기로 했으니 한번 걸어본다.

걷다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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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다 15


세뚜리마을 마을이름의 유래

과거 1950년대 초 치열했던 전쟁을 치르고 난 후 피폐해진 마을에 두개의 초등학교가 들어섰다. 가난했던 그 시절 친구 들 사이에서 유독 힘 있고 인기가 많았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바로 부모님이 식당을 운영하는 경우였다. 그 이유는 학교에 서의 권력이 되었고, 그렇게 두 개의 초등학교에서 각각 권력 을 잡은 아이가 나타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권력을 잡은 장충초등학교의 족발집 아들과 청구초등학교의 떡볶이집 아들이 시비가 붙게 되었다. 말장난 으로 시작했던 둘의 싸움은 어느새 몸싸움, 단체싸움으로 번 져나갔고 이 소식은 부모님 귀까지 들어가게 된다. 양쪽의 어 머니들도 전쟁으로 남편을 여의고 치열하게 식당을 운영했기 때문인지 말싸움과 욕에 통달을 해서 서로의 잘못만을 주장하 며 이 싸움은 끝나지 않게 된다. 서로 이기려고 하는 두 어머 니의 노력은 각각의 식당을 발전시키는 원동력이 되었고, 마 을을 대표하는 유명인사가 된다. 1980년대까지도 굉장히 융 성하게 된다. 그러던 중... 1982년 옆 동네 광희동에 하나의 몽골음식점 ' 잘루스'가 들어서고 국내에 거주하던 몽골인들이 모여들면서 단기간에 몽골타운이 형성된다. 30대가된 족발집 아들과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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볶이집 아들은 우연히 '잘루스'에서 양갈비를 먹다가 마주치게 된다. 둘은 서로를 보자마자 서로를 알아보고 싸우기 시작하 는데 식당주인 바얄마씨는 당황하지 않고 3인 원형식탁에 둘 을 앉히고 중재를 나선다. 마음을 가라앉힌 두 아들들은 침착 하게 대화를 한다. 둘은 과거에 싸웠던 이유를 생각하게 되고 거기에는 부모님 의 음식이 있었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닫는다. 그리고 지금 같이 양갈비를 먹으며 대화하고 있다는 것도 깨닫는다. 타지 에서 생활하느라 힘들었던 바얄마씨는 두 남자의 깊고 오래된 사정을 듣다가 한 가지 제안을 한다. 앞으로 한 식탁에서 세 사람이 식사하는 자리를 정기적으로 갖자고... 간단했던 이 약속은 의외로 영향력이 컸다. 이제는 명물이 된 족발집 할머니와 떡볶이집 할머니의 관계는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세뚜리(한 상에서 세 사람이 함께 식사를 하는 것)마 을의 이름이 탄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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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 3. 4. 5. 6. 7. 8. 9.

마을로 들어오는 골목길을 지키는 고양이 세뚜리마을을 지키는 두개의 수호신 철거되다만 철근콘크리트기둥 언덕 위의 벽화 늘어서있는 낮은집들 사이의 골목 청구 건너편의 마을 신세대의 도로 표지 낡은전화기 마을의 역사가 담긴 입구 걷다 19


3. 철거되다만 철근콜크리트 기둥

1990년대 장충동지역은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낙후된 시설을 정리하고 재개발 사업이 진행됐었다. 이 시기에 이미 세뚜리마을이 만들어지고 초창기 마을이 다듬 어 지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뚜렷한 경계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세뚜리마을 관 계자들은 마침 철거하고 있던 건물 중 하나가 족발동네를 나눠주는 경계에 있는 것을 파악하고 일부를 조형물처럼 남겨서 마을의 경계로 사용하자고 제안했다. 20 세뚜리


4. 늘어서있는 낮은 집들 사이의 골목

많은 골목길중 비교적 폭이 조금 넓고 긴 골목길이 있다. 이 장소는 세뚜리마을 의 경계 지점이기도 하지만 이전부터 옆 동 신당동과의 경계가 되는 지점이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경계선을 중심으로 좌우로 집들이 배치가 되었고 장충동은 밝은 갈색, 신당동은 짙은 갈색의 벽돌을 사용해서 그 경계를 좀 더 눈에 띄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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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언덕 위의 벽화

장충동에는 수많은 골목길이 있다. 골목길 구석구석을 다니다가 어느 오르막 골 목길 꼭대기에 다다르면 주변 분위기와 별로 연관이 없는 웬 벽화가 있다. 마을이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있던 이 벽화는 누가 어떤 이유로 만들었는지 밝혀진 바가 없다. 그렇지만 벽화 그 자체와 벽화가 있는 위치에 상징성이 있다고 생각해 마을 의 경계로 삼게 됐다. 22 세뚜리


2. 세뚜리마을을 지키는 두개의 수호신

다른 마을 입구에는 빨간 눈을 가진 수호신이 있다면 세뚜리에는 연분홍의 눈을 가진 두 쌍의 수호신이 있다. 과거 세뚜리마을 내에 분쟁이 있었을 적에 평화를 유 지하기위해 한쪽 눈을 재물로 바쳐 한 수호신은 눈이 하나 뿐이지만 그들은 여전 히 세뚜리를 지키는 든든한 수호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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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마을의 역사가 담긴 입구

마을로 들어오는 지하통로의 모습이다. 벽에는 마을의 역사를 담은 사진들이 전 시되어 있다. 세뚜리마을은 마을안에서의 작은 사회가 아니라 전세계가 주목하는 마을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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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을로 들어오는 골목길을 지키는 고양이

낮에도 밤에도 길을 지키며 수상한 사람들을 감시하고 쫓아다니면서 울어댄다. 세뚜리의 골목을 지키는 이 고양이의 이름은 '뚤이'이다. 뚤이 덕에 마을에 범죄문 제가 많이 줄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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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청구 건너편의 마을

이 돌이 세뚜리마을과 청구 사이에 경계하는 돌이다. 청구(靑丘)는 신화속에서 구 미호의 나라이다. 이 돌은 마을의 주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마을 마당에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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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신세대의 도로 표지

세뚜리마을이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 다. 생활 수준을 향상하게 되었다. 구식 경계를 새 것으로 바꿨다.

8. 낡은 전화기

지금 폐기하였지만 전 시대 주민들의 기억이 많는 것이다. 주민들이 약속장 소로 많은 이야기를 발생하는 추억의 장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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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다 세뚜리마을은 점차 발전하기 시작하며 많은 건물들이 생겨났다. 각 동에는 자신들의 대 표음식들을 파는 수많은 식당, 음식들의 역 사들 보여주는 박물관, 관람객들을 위한 복 합문화테마파크, 좀 더 과학적으로 음식을 연구하는 기관 등 많은 건물들이 마을을 구 성하는 주된 요소로 들어섰다. 동네의'길'은 많이 돌아다녔네. 골목구석구석 구경을 다한 거 같아. 생각보다 내가 모르던 곳들이 많았어. 다니다보니 우리 마을은 먹 을 공간이 참 많은 거 같아. 길을 돌아다니면 주변에는 수많은 건물들이 있었어. 이제 겉 은 다 둘러볼 꼴이 됐고, 본격적으로 마을을 들여다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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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발명인의 집

과거 장충동에서 처음 족발사업을 시작한 전숙렬 할머니의 집이다. 전숙렬 할머 니가 돌아가신 후 한동안 방치되어 있다가 후에 내부를 개조해서 작은 박물관처럼 만들었다고 한다. 규모가 워낙 작아서 유명하지도 않고 그다지 활성화 되어있지는 않다. 아는 사람들만 알고 모여 차를 마시는 아지트 같은 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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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동연구소

마을의 중심에서 동이 구분되는 지역에 위치한 합동연구소다. 이 건물은 음식을 개발하고 연구하면서 동시에 판매도하는 다용도건물이다. 사람들은 기존의 음식 들과 함께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음식을 처음으로 경험할 수도 있고 다소 실험적 인? 음식의 체험자가 되기도 한다. 유동인구가 많고 개방적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 들이 방문하는 장소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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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 숙소

이 건물은 세뚜리마을 관람객을 위한 규모가 제법 큰 호텔이다. 마을이 점차 발전 함에 따라 관련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공동으로 사업계획한 것들 중 하나이다. 그 러나 마을의 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크게 지어서 현재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고 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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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루스 2호점 타바쑴

몽골인들이 많이 거주하기시작하면서 잘루스 한 곳만으로 많은 손님들을 감당하 기힘들었다. 잘루스의 대표메뉴인 양갈비구이와 호쇼르를 판매하는 곳이다. 잘루 스를 운영하는 인케씨의 조카가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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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타운

1990년대 초반 동대문시장을 찾아오는 러시아 보따리장수들이 많아지면서 그들 을 위한 식당, 숙박시설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러시아 언어와 문화에 익숙한 몽 골인과 우즈베키스탄, 키르기스스탄 등 구소련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출신 노동 자들이 뒤따랐고 2000년대 초반 러시아 상인이 가격이 더 싼 중국으로 옮겨가면 서 몽골인이 빈자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서울 지하철 2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12번 출구로 나와 첫 골목으로 꺾어 34 세뚜리


들어가면 온통 키릴 문자로 도배된 10층 건물이 보인다. 몽골타워(뉴금호타워)라 불리는 이 건물은 층마다 몽골인들을 위한 식당, 잡화점, 여행사, 미용실, 휴대전화 매장, 환전소,탁송업체 등이 3~5개씩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의 3층에 위치한 '잘루스'는 이곳 몽골타운의 터줏대감이다. 하루 평균 수 십 명의 몽골인이 이곳을 찾아 끼니를 해결한다. 메뉴는 몽골에서 흔히 먹을 수 있 는 음식이 대부분이다. 내부는 여느 식당과 크게 다를 게 없지만, 한 켠에 자리한 위성TV에서 쉴 새 없이 흘러나오는 몽골 방송이 이곳의 정체성을 알려준다. 일하는 직원도 모두 몽골인이다. 주방에서는 몽골인 조리사 2명이 분주하게 요리 를 준비하고, 홀에서는 남편과 함께 식당을 운영하는 인케(44) 씨가 손님을 맞는 다. 인케 씨는 지난 2006년 한국에 처음 들어와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몽골에 있던 인케씨는 인연이 있던 마얄바야씨의 부탁으로 잘루스를 운영하게 되 었다. 한국에 몽골 음식을 찾는 동포들이 많은데 자신은 더 이상 운영하지못하는 사정이 생겨 대신 부탁한다고 그녀를 한국으로 불렀고 그녀에게 잘루스 음식의 비 법을 전수해주었다. 인케 씨는 "그때만 해도 한국에 몽골 식당이 많지 않았다"며 "한국 음식은 몽골 사 람들에게 너무 매워서 몽골인을 위한 음식을 만들어 팔면 좋겠다는 마얄바야씨의 뜻을 함께하여 잘루스 운영을 맡게 되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이후 고국의 음식 을 그리워하던 몽골인이 하나둘 찾아들기 시작했고, '잘루스'는 몽골타운의 터줏대 감으로 거듭났다. '잘루스'는 몽골어로 '젊은 사람들'이란 뜻이다. 한국에 오는 몽골인 상당수가 일을 하려는 젊은이들이라 이름도 그렇게 지었단다. 손님의 70%는 몽골인이고, 30%는 한국인과 러시아인이다. 한국인은 몽골 유학 이나 여행을 앞두고 시험 삼아 몽골 음식을 먹어보려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게 인케 씨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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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재료를 받기위해 이용하는 국제배송센터

몽골음식을 만들면서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식재료들을 구하기 위해 애용하는 센터이다.

極東音響

이 건물은 음악학교이다. 건물명은 極東音響이다. 아이들은 날마다 이 건물 안에 서 음악을 배운다. 주변 거주자들도 날마다 아름다운 노래를 듣는다. 옆에 있는 음 식점도 음악식당으로 자처하였다. 36 세뚜리


화방

이 건물의 주인이 1층에 화방을 설립하였다. 건물 외벽은 녹색이다. 아침부터 녹 색 건물은 꽃향기를 뿜는다. 건물 뒤에 떡볶이집이 하나 있다, 거주자는 떡볶이 냄새를 맡고 집에서 떡볶이 요리를 연구한다. 들어가다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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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치다 마을에는 몇 가지 특이한 물건들이 있다. 사람들 은 마을이 형성되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을 좋아 했다. 마을의 탄생이야기부터 시작해서 기존에 항상 존재하던 여러 물건들에 대해 허무맹랑하고 도 그럴듯한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들을 만든 다. 마을은 걷다보면 곳곳에 배치된 평범한 물건 들이지만 그 물건이 주는 많은 이야기들은 사람 들의 시선을 끈다. 마을로 들어가 보면 우리는 모르고 스쳐지나가는 것들에 숨은 이야기들이 있어. 마을에서만 전해 지는 전설적인 이야기들, 궁금하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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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전설의 그릇 조각

이 물건은 깨진 그릇 조각이다. 원래의 그릇은 언제부터인지 항상 그 자리에 위 치했다고 한다. 이 그릇은 약 1M의 지름을 가졌고, 절대 움직일 수 없다. 이 그릇 의 신비로움 때문에 항상 이 자리에 고정되어있는 이 그릇을 중심으로 주변 환경 은 수도 없이 바뀌어갔다. 이 그릇은 마치 생명체처럼 변화하는 주변 환경에 적응 해가고 반경 1M의 근접한 공간 환경은 스스로 만드는 능력을 가졌다. 겉모습은 오 래된 그릇처럼 보이는데 최신과학기술로 소재를 분석해본 결과 현대 과학으로는 밝힐 수없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이 그릇에 한번 요리를 하면 이 그릇은 그 정보를 흡수해서 다음에는 스스로 조리한다고 한다. 이 그릇의 내부는 같은 모 양의 작은 그릇들로 이루어져있는데, 이 조각은 그 파편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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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 보고 있는 조각

신당동 떡볶이 집안과 장충동 족발집안은 치열한 경쟁을 벌이다 1984년 몽골 식 당 '잘루스'에서 화해를 하게 되는데 그 후 정기적인 만남과 대화를 하며 선의의 경 쟁을 이어가게 된다. 10여년의 시간이 흐른 뒤 그들은 화해했던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하나의 조각상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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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재와 도움

두 집안을 중재한 '잘루스'의 비얀마씨. 그리고 그 후 서로에게 위기가 찾아올 때 서로를 끌어주는 모습을 상징하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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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괭이

오랜 옛날에 사람이 하늘에서 자유롭게 생활했다. 그들 사이에서 어떤 사람이 바 닥의 풍경을 홀린다. 이 사람은 내리고 싶었지만 바람에 돌아온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사람이 괭이를 발견한다. 그 괭이는 무제한 연장할 수 있다. 이 사람의 괭이로 바닥을 사로잡는다. 그 사람이 바닥에 발을 내딛는 순간 비상력이 없어졌다. 이 사 람은 바닥에 있는 풍경을 다 유람한 후에 하늘에 돌아간다. 그렇지만 괭이가 공기 를 사로잡을 수 없다. 배고픈 사람이 괭이로 산전을 일군다. 신기한 괭이로 개간한 농지는 생산량이 많다. 이 사람이 그때부터 지상에서 살아간다. 44 세뚜리


세뚜리마을의 역사를 숨겨두었다고 알려진 창고

우리 마을을 조사하려면 이건 꼭 알고가야 한다네, 젊은이. 우리 마을의 음식이 유명해진 이유를 알고 있나. 그것은 다 이 고장 난 창고로부터 비롯된 것들이야. 아주 오래전에 있던 일이지. 이 창고는 역사자료를 보관하는 것으로만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게 아닐세. 창고 를 잠그는 잠금장치에 원하는 숫자를 맞추면 그 수에 맞는 사람이 먹을 양의 식재 료가 준비되는 신비로운 창고였어. 그것도 아주 싱싱한 채소와 고기들이 준비되었 지. 그 재료로 음식을 만들면 어떤 음식이든 다른 곳에서 먹었던 같은 음식도 아주 다르게 느껴졌어. 훨씬 깊고 진한 맛을 담을 수 있었지. 나는 그때 먹은 그 음식의 맛을 잊을 수가 없다네. 그런데 왜 지금은 왜 사용하지 않느냐고? 이 창고를 소유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도둑들이 늘어났어.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려고만 하다 보니 마을의 평화가 사라졌고 그래서 이창고의 사용을 금지시 켰지. 그뒤로 사용하지 않다보니 이제 제대로 작동하는지에 대해서도 아는 이가 없어. 많은 세월이 흘렀거든. 저 앞에 둔 나무막대 보이는가? 그것은 의미를 담고 있어. 저렇게 문 가운데에 세워둘 때는 이 창고가 없이도 마을의 평화가 잘 유지되고 있다는 뜻이네. 그런데 한쪽으로 치우쳐져서 세워져 있을 때에는 마을에서 재배하거나 마을로 들어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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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의 양에 문제가 생긴 거야. 창고를 열어 사용하라는 뜻이지. 가난한 사람들에 게도 음식을 나눠먹을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양의 재료를 창고가 내어주겠다는 의 미야. 그리고 막대가 바닥에 쓰러져 있을 때는 누군가 창고에 다시 손을 대었다는 뜻이네. 그 기간 동안은 마을 사람들이 돌아가며 창고 앞을 지킨다네. 그런데 막대는 누가 움직이는 거냐고? 그건 아무도 몰라. 마을을 지키는 신이 마 을의 평화를 위해 우리를 돕고 있다고 우리는 믿지. 말도 안되는 소리 같은가? 믿 든 말든 그것은 자네 몫이나 자네가 찍은 사진에는 이미 위치를 달리한 막대 사진 이 있구먼. 허허." 세뚜리마을 할아버지 인터뷰 중

두개의 낡은 나무의자

이 의자에는 하나의 전설이 있지. 옛날 남산 어느 골짜기에 부모와 어린 두 아들, 한 가족이 살고 있었어. 그 가족은 사람들과 좀 떨어져 살고 있었지. 그래서 그들 은 서로를 더 소중하게 여겼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 사이에 전혀 다툼이 없 는 것은 아니었어. 두 아들이 서로 싸운 어느 날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산으로 가서 함께 나무 한그 루를 베어오라고 시켰어. 아들들은 투덜거렸지만 나무를 베어왔어. 아버지는 작은 의자 두개를 뚝딱 만들었어. 그리고 아들들을 따끔하게 혼을 내며 의자에 앉혀놓 고 집으로 들어가 버렸어. 아들들은 언제까지 앉아 있어야 되나? 고민했어. 30분, 1시간이 지나도 아버지는 나타나지 않았지. 고요함속에서 그렇게 시간이 점점 흘 러 밤이 되었고, 한 아이는 먼 곳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어. 다른 아이 는 말하고 있는 아이를 바라보며 대답만 해주었어. 아이의 이야기가 끝나자 자연 스럽게 두 아이는 자리를 바꿔 앉았어. 그리고 반대로 이번에는 듣던 아이가 딴 곳 을 보며 말하고 다른 아이는 그 아이를 바라보며 대답만 했어. 이야기가 끝난 후 두 아이는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갔어. 그 후 이 '고백의 의자'는 이러한 상황이 생길 때,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게 되었다 고 한다. 46 세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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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주앉다 세 동네가 합쳐지기 위해서 사람들끼리 많은 교류가 필요했고 그 동네의 특성들이 조화를 이루기 위해 많은 대화가 필요했다. 세 동네 사람들이 모여앉아 하나의 마을을 이루기까 지 사람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 이다. 과거부터지금까지 동네가 유지되고 마 을을 이루기까지 노력한 동네의 위인들을 잊 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과 마주앉아 대화를 하다보면 나와 맞 는 것이 있고 맞지 않는 것이 있어. 이건 틀 린 게 아니고 다른 것이지. 다른 동네 사람들 과 하나의 마을을 만들기까지, 과거부터 현 재까지 우리를 위해 노력하신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 시작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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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발집 단골 김씨

족발은 정말 환상적인 음식이지. 아 언제부터 족발을 먹기 시작했더라?? 50여 년 전이었나?? 누구나 다 마찬가지였겠지만 나도 젊을 때 정말 힘들었지. 내 고향은 부산인데 그 당시 성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돈을 벌기 위해 큰 꿈을 안고 서 울로 상경했지. 아, 정말 이곳은 치열한 삶의 연속이었어. 일이야 뭐 어떻게든 하는 거였지 그렇지만 쌓인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할 수 있었겠나?? 뭐 뻔하지. 사람 들이랑 술 먹고 그 기분에 즐거운 게 인생 낙의 전부였지. 어우..... 그러던 중 장충동을 갈일이 있었는데 족발이라고, 처음 보는 음식이 있는 거야. 아 당연히 고민도 않고 들어갔지. 아 아주 값도 싸고 양도 푸짐하더라고, 먹 기 전에는 조금 이상하게 생각도 했지. 생김새부터해서 아니 양이 값에 비해 지나 치게 많으니까 그냥 의심이 들더라고. 뭐 그런 생각이 들긴 했지만 어쩌겠나? 시 켰는데 먹어야지. 처음 딱 한 점 먹었을 때, 아! 난 느꼈지. 이런 게 있었구나! 내 평 생 먹을 음식이 되겠구나! 아... 정말 다른 촉감 이었어. 그동안 먹어봤던 고기들이 랑은 말이지. 쫄깃쫄깃한 게 아주 그냥 맛이 죽여줬지. 물을 것도 없이 당연히 술 을 먹었지. 아, 지금 생각해보니까 그전까진 술을 먹으려 고기를 먹었었는데 이때 처음으로 족발이란 게 우선이 되었어. 그때는 뭐 정말 맛도 맛이고 돈도 없는데 가격도 아주 저렴하고 지금은 좀 비싸졌지만 어쨌든 그때는 거의 매일같이 갔던 거 같아. 그게 50여 년 전 일이고, 지금도 마찬가지지. 다른 건 몰라도 난 아마 죽 기 직전에도족발을 달라! 할거야. 하하하하하!!! 인생에 이런 음식 하나쯤 있다는 건 정말 좋은 거야 젊은이. 자네도 그런 거 하나 찾아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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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발집 단골손님 김만족

단골식당의 족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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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뚜리마을에 몽골음식점 잘루스를 연 장인 마얄바야

그를 본 자는 오직 현 잘루스 주인인 Enkh tuul씨뿐이다. "한국에서 만나는 우리나라(몽골)인들에게 고향을 느끼게 해주고 싶다." Enkh tuul씨의 인터뷰 중 장인 마얄바야씨가 남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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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nkh tuul씨의 가족사진

오른쪽 끝에 있는 사람이 Enkh tuul이 다. 다른 가족들은 몽골에 거주하고 있 으며 Enkh tuul씨에게 식재료를 배달해 주고 간간히 한국에 와서 그녀의 음식 을 새로이 평가해준다. 한국에서 지내 면서 그 맛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주는 그녀의 든든한 가족이다.

인케(Enkh tuul:평화롭다)씨의 어린시절

그녀는 장인에게 양갈비 구이와 양고 기 군만두인 호쇼르의 비법을 전수받고 현재 잘루스를 운영 중이다. 그녀가 이 지역의 족발과 떡볶이 사이의 음식대립 을 해결하고 세뚜리마을을 탄생시킨 데 에는 그녀의 이름을 지을 때에 이미 정 해진 운명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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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당동 떡볶이를 개발한 명인 54 세뚜리


신당동 떡볶이 장인

하교 길에 출출함을 달래고 얄개와 얄순이의 전유물이 있던 70~80년대 신당동 떡볶이 촌. 선망의 대상이었던 D.J 들의 일거수일투족에 영롱한 눈빛을 고정시켰 고 선호하던 음악이 흐르면 입가에 번진 미소와 알 수 없는 괴성이 우리를 즐겁게 했었고 지금은 한 집안의 어머니, 아버지가 되어 다시 찾아오는 三代-할머니네. 세월의 흐름이라했던가 연탄화덕에서 최신가스렌지로 一代, 二代, 거쳐서 지금은 三代째 가업을 이어 옛 향수를 준다. ‘찾아오시는 분들께 三代-할머니네 전통의 맛과 행복을 전합니다.’

배드민턴 클럽 회장

이 사람은 배드민턴을 잘 치는 경찰이다. 배드민턴 클럽을 운영하고 있으며 클럽 회원들과 배드민턴 친선경기를 하고 난 후 단골 떡볶이집에서 회식을 한다. 이 행사는 30년 동안 지속되어서 떡볶이 가게의 역사와 함께했다. 이 사진은 어떤 시합이 끝난 후 회식이다. 점장님이 수상 소감을 피력하고 우승자들이 사발주를 먹는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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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다 어린 시절을 함께한 친구들과 늘상 하던 놀이나 먹는 음식들이 색다르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우리는 이미 많이 커버렸고 어릴 적의 일들은 이제 추억이 되어버렸 다. 어린 시절이 우리에게 무엇을 느끼고 배우게 해주었는지 생각해본다. 우리도 모 르는 사이에 늘어버린 우리의 감각들을 우 리는 살면서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이제 그만 걷고 한번 멈춰서봐. 네가 서있 는 곳에서 좀 더 머물러있자. 모여 있는 아이들에게 다가가 보자. 무얼 하고 있는 지 무슨 재미난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들 여다보자. 즐거움을 나누면 배가되고 슬픔 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들 하지. 우리는 그 러면서 하나가 되어갔어. 우리는 그러면서 세뚜리가 되어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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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딱놀이

준비물 : 나무막대기, 자 인원수 : 제한없음 놀이방법 술래가 "3cm!"라고 외치면 모두 눈을 감고 감으로 막대기를 3cm 끊어 그 길이가 3cm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 이기는 놀이 세뚜리마을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감딱놀이를 즐겨 해서 음식을 알맞은 크기로 자르는 감이 일반인들보다 발달해있다. 또한 나무막대기를 어떤 것을 고르냐에 따 라 힘이 많이 들기도, 적게 들기도 하기 때문에 팔 힘을 기를 수 있는 놀이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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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모아치

이 꼬치는 세뚜리마을의 세 가지 음식인 양고기, 족발, 떡을 사용한 꼬치다. 세 가지 음식을 모두 먹을 상황이 되지 않을 때 가장 간편하고 값싸게 먹을 수 있 도록 하기위해 개발되었다. 학생들이 간식으로 자주 먹기 때문에 학교주변 분식집 과 관광객이 찾는 주요루트에서 활발한 판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파는 곳마다 꼬 치의 구성이나 순서가 조금씩 차이가 있다.

레시피 이 꼬치를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아 너네집에는 웬일인지 어제 먹다 남긴 족발이 있을 거야. 떡도 냉동실을 뒤적이면 뭔가 있겠지. 채소들은 뭐 당연히 있을 테고, 그렇다면 이제 밖에 나가서 양고기를 사와 그 다음 양고기를 적당히 익혀 어느 정도 됐다 싶으면 이제 모든 재료를 네가 원하는 대로 꽂아서 꼬치를 만들어 이제거의 다됐어 만든 꼬치를 데운다는 느낌으로 조금 더 불에 올려놔. ....... .......?? 내 얘긴 여기까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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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발의 유래 1. 족발의 시작은? 돼지의 발로 만든 이 요리의 기원은 중국에서 부터 시작돼. 중국에서는 다들 잘 알려나 모르겠지만 돼지고기의 소비가 타 육류 소비보다 월등히 앞서. 현대 중국 요리에서는 소요리도 많이 애용되지만 중세까지만 해도 소고기는 잘 먹지 않았다고 보면 된다고 해. 돼지고기 소비율이 높다보니 어떻게 하면 안 먹는 부위를 잘 먹을 수 있게 요리할까 라는 고민들도 많이 했지. 그러다 탄 생한 요리 중 하나가 족발이야. 특히 족발은 중국에서는 국수와 같이 무병장수를 상징하는 요리다. 가족의 생일상이나 생일을 맞은 사람을 축하하기 위 해 국수와 함께 항상 올려 진 음식이 바로 이 족발이라고 해. 이런 풍습의 시작은 살이 찐 돼지의 무거운 몸을 체구에 비 해 아주 작은 다리로 지탱하는 것을 보고 매우 강한 힘을 가 진 부위라고 생각하여 이 힘을 얻고자 건강함과 장수하는 것 이라 믿어 전해져 왔다고 해. (해구신이 인기 많은 이유도, 올 저놈 정력보소... 하다가 시작 된 거라고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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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한국의 족발 중국에서 유래된 음식이라서 인지 족발은 북쪽 지방에서 주 로 먹었다고 해. 특히 함경도 사람들에게는 우리가 옛날 즐 겨 먹었던 머리고기 만큼 인기가 많았던 술안주였다고 한다. 그런 족발이 우리한테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 부터야. 당시 북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먹기 시작한 것이 정착이 되 었지. 1953년, 평양출신인 할머니 둘이 최초로 시작 되었다 고 한다. 원래 평안도 식 족발은 된장을 넣고 푹 삶은 된장족 발이라고 해. 그런데 이것이 사람들 맛에 익숙지 않아 장사가 잘 안되자 두 할머니들은 간장을 넣고 조리는 방식의 족발을 택했는데 이것이 맛있다는 소문이 점점 돌기 시작했어.

3. 그럼 왜 장충동 족발? 그럼 왜 북에서 내려왔는데 장충동 족발인거냐 생각하는 사 람들이 있을 거야. 그럼 당시 장충동의 배경부터 알아보는 것 이 좋을 것 같다. 장충동은 60-70년대만 하더라도 우리가 어제 뜨겁게 치러 졌던 대선이라든가 총선 등의 연설이 종종 이루어졌던 곳이 지. 우리가 알던 그 장충 체육관에서 말이야. 또한 이곳은 당 시 폭발적으로 인기가 많았던 프로레슬링의 메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였기에 유동인구가 엄청나게 많았어. 나누다 63


장충동 족발의 원조는 전숙렬씨라는 분인데 이분이 평안도 할머니들한테 배운 간장족발을 가판대에서 판매하였는데 요 즘도 야구장이나 축구장 등 무언가 구경하러 가면 먹거리를 사들고 많이 가지? 그때 당시엔 술과 먹을거를 바리바리 챙겨서 어디 이동하는 것이 더 심했던 시대야. 먹는 것이 귀한 시대였다 보니 돼지 고기인 이 족발이 맛도 좋은데 가격도 싸, 이건 뭐 술안주에 이만한 게 없던 것이었지. 그럼 당시 고기가 귀한 시절인데 왜 족발은 값싼 것이냐? 이 전까지 우리한테 족발은 대중적 음식이 아니었대. 그래서 서 울에서 가장 큰 축산물 시장이 있던(지금도 상당히 큼) 마장 동에서 족발은 여기저기 굴러 댕겨도 누가 안 가져갈 정도로 못 먹는 부위라고 생각했다더라. 그걸 전숙렬이라는 사람이 이전에 평안도 할머니들한테 배운 족발을 생각해서 마장동에서 가깝고 유동인구도 많은 장충동 에서 가판대로 팔았고 이것이 대 히트를 쳤던 거지. 그리고 가판대 가게에서 어느 순간 정식 가게로 단계업 했는 데 처음엔 2곳이던 가게가 이제는 12곳으로 늘어났다고 하 지. 그래서 사람들이 '장충동 = 족발' 이라는 원조 인식을 가 지게 되었다고 한다. (추가정보 - 오향족발의 시작은 중국 산동지방, 족발의 시초 도 이쪽이라고 유추되고 있지만 현재 확실한 증거는 없다.) 64 세뚜리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족발

장충동 족발의 명인 전숙렬할머니 나누다 65


첫번째 장충동 여행 동대입구역에서 나왔다. 우선 주변 벤치에 앉았다. 엄청 북적거리는 느낌은 없었다. 주로 낮은 건물들이었다. 무엇을 볼까 고민을 했다. 우선 걸으면서 사람들을 보기로 했다. 외국인 아저씨들이 걸어가고 있다. 랩좀 할 것 같은 친구들도 지나가고 있다. 레슬링 좀 하셨을 것 같은 멋진 패션의 할아버지와 부인도 보인다. 근데 이런건 장충동이 아니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역시 그냥 동네에만 있는 모습을 찍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정겨운 풍경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좁고 긴 길, 자그마한 슈퍼 그리고 '여성안심 귀갓길'까지? 이런건 처음 봤다. 좁은 길들을 빠져나오니 큰 호텔? 같은 게 보였다. 각국 대사들이 이용하는 곳인가?? 큰 길을 따라 동국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정말 아담한 그림 같은 식당이 있었다. 가는 도중 좁은 골목에 웬 멋진 벽화가 있었다. 주변과 별다른 연관성은 없어 보였다.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눈이 즐거워서 좋았다. 그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왼편에 66 세뚜리


덩굴식물로 둘러싸인 붉은벽돌집이 있었다. 마음에 들어 사진을 찍는데 창문 안쪽으로 아줌마들이 대화중이었다. 도촬하는 느낌이 들어 흘깃 찍고 급히 가버렸다. 동대에 도착했다. 장충단공원이라는 큰 공원이 바로 눈에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공원으로 걸어갔다. 웅덩이도 조금 있고, 동굴 같은 느낌의 작은 다리 밑을 지나갔다. 이상한 감각을 주는 사람이 내 앞에 있었다. 이 사람도 평범한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그 사람 뒤에서 여유롭게 걸어갔다. 작은 폭포가 나왔다. 유도된 길이 폭포에 가까운 접근을 불가능하게 해놨다. 그 사람은 돌을 넘어 들어가 폭포 앞 돌에 앉았다. 그러고는 커다란 책을 가방에서 꺼내 폈다. 약간 신기하다고 생각하면서 제법 걸었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 길을 따라 나와 폭포가 보이는 벤치에 앉아 쉬기로 했다. 사진을 찍고 다니다보니 배터리 하나는 다 쓰고 나머지 하나도 배터리가 거의 없었다. 어쨌든 한 20분 쉬고 폭포를 보니 그 사람은 아직도 있다. 신선인줄 알았다. 휴식을 끝내고 바로 옆에 멋진 기와집이 있었다. 나누다 67


뭔가를 파는 것 같기도 하고 체험하는 곳 같기도 했다. 왜인지 오래된 것이 편안한 느낌을 준다는 생각을 하며 바라보는데, 바닥에 예쁜 디자인의 맨홀뚜껑이 보였다. 맨홀뚜껑 보고 기분이 좋기는 처음이다. 좀 더 가까이 얼굴을 대고 보니 뚜껑 아래 물에 비친 뚜껑 디자인이 그대로 보였다. 나는 뭔가 대단한 발견을 한 듯이 기뻐하며 자세를 바꿔가며 열심히 봤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나를 또라이로 봤겠지? 여러 여건상 돌아갈 시간이 됐었다. 배터리도 없고... ...생각해보니 지금 사진 찍으며 다닌 것도 마냥 쉰 것이 아닌 것 같았다. 돌아가면서는 생각 없이 멍하게 그대로를 느끼며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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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광희동 여행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 5번 출구로 나가자 퇴근하는 회사원들이 눈에 띄었다. 저마다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면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서 '통화하면서 걸어가는 사람을 발견할 때' 사진을 찍기로 정하였다. 큰 도로를 중심으로 크고 작은 회사건물들이 서 있었고 작은 상가건물에는 자동차정비소, 인쇄소, 제철공업을 하는 작은 회사들이 있었다. 퇴근하는 젊은 회사원들과 트럭을 모는 연세가 있으신 어르신들을 보며 큰 빌딩과 작은 상가들의 삶을 보여주는 듯 했다. 또한 빌딩안에 마련된 도시 속의 농장을 보며 변화 ,발전하고 있는 세상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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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신당동 여행 우리 집이 성수역 근처에 있다. 2호선을 따라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기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다. 먼저 중앙시장을 발견했다. 맛있는 음식, 싼 가격으로 사람을 끌어 모은다. 먹고 싶은 것이 많다. 중앙시장에서 나와서 건너편에 이북집 찹쌀 순대국집이 있다. 그때 입맛이 당기기 시작했다. 맛있는 순대국을 먹고 나서 신당역 네거리에서 청구역 방향으로 갔을 때 재미있는 건물을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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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도서관 출판예정도서목록(CIP) 세뚜리 : 세 사람이 한 상에서 식사하다 / 지은이: 하성혁, 김혜수, 이림. -- 서울 : 여기저기, 2015 p.72 ; A5(14.8 X 21)cm ISBN 979-11-86188-08-8 03980 : ₩10000 도시 디자인[都市--] 539.7-KDC6 711.4-DDC23

세뚜리 출간일 2015년 12월 21일 지은이 하성혁, 김혜수, 이림 출판사 여기저기 주 소 서울시 성동구 성덕정 3길 10-1 herethere.kr ⓒ 하성혁, 김혜수, 이림 2015 본 책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재사용하려면 반드시 저작권자의 동의를 받으셔야 합니다. 72

CIP201503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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