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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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리




시작하는 말 이 책은‘나’‘우리’‘공동체’총 3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삶의 공 간에서 자신이 갖고 있는 나의 정체성과 삶의 공간이 만나면서 있었던 일들에 관해 인터뷰한 것을 모았다. 나라는 개인은 사회를 살아나가면서 정체성을 갖는다. 이 정 체성은 나 하나를 규정짓고 마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공간과 만나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 비혼 여성이라는 이유로,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불법체류자라는 이유 로 우리는 삶의 공간을 위협받고 시선에서, 현 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아직 이들에 관한 삶 의 공간을 지켜주는 법들이 재정되지 않았고 그들은 그럭저럭 자신의 방법을 찾아 살아나 가고있다. 아직은 이웃과 단절된, 그들만의 룰 을 찾아가며 살고있는 또 다른 우리의 이야기. 아직은 우리와 단절된 공간에서 숨어있는 이 웃으로 지내고있지만 언젠가 곧 우리의 이웃 이 될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모아 보았다. 비혼여성들과 성소수자, 불법체류자의 삷 의 공간에 대한 이야기와 그들에게 집이 지니는 의미를 재영이 묻고 듣고 받아적고 정리했다. 왜 집은 ‘돈’ 이 아니라 ‘권리’와 함께 이야기되어야 하는지, 어째서 “집은 인권이다!”라고 목소리 높이는지에 대해서 또한 생각해 보길 권한다. 너무나 흔해서 텔레비전에도 나오지 않고 신문에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 이지만 모두가 꿈꾸는 ‘내 집’에 관한 이야기 이다. 책을 읽는 동안 독자들은 자신이 바라는 ‘내 집’에 가깝기를 바란다. 한국 사회에서 집은 무엇일까? 한국사회에서 집은 가족과 동일시된다. 동일 시되지 않는 집은 투기를 위한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만일 새롭게 집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람들은 신혼부부라고 생각할 것이다. 집은 정말 혈연과 혼인관계와 끈 끈하게 엮여있는 물질적인 무언가이다. 인생에서 이게 과연 모든 이들에게 진정한 집일까? 글을 읽으면서 가족과 사는 집이 아닌 내가 주체가되는 집에 대해서도 다들 한번씩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다. 또한 나쁜 집은 나쁜 삶을 만든다.이 글은 주거공간에 대해 다루고 있지만 본질적으로 나와 다른사람 사이의 관 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내가 살아가는 공 간과 함께 사는 이와의 관계, 가족과의 관계를 드러내는 것이 성소수자의 권리이고 비혼자의 권리이고 반려 동물과 살아가는 사람들의 권리라는 것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일 수 있겠다. 가족구성권이라는 단어로 운동을 시작하는 과정인 것이다. 임시적인 삶과 불안함 삶 속에서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을 찾아서 우리는계속 전진해 야한다. 사회에서 다른 장치가 없기 때문에 다른 절박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게 있다. 부당한 삶을 살지 않기 위해서, 나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 계속 전진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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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혼 여성, 집을 말하다 정리: 재영

한국 사회에서 집에 대한 정책은 대부분 남성 중심적이거나 ‘정상 가 족’이데올로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결혼하지 않고 혼자 지 내는‘비혼 여성’을 고려하는 정책은 전무하다. 오히려 주거권이란 말 이 무색해질 정도로 배려 없는 정책들만 수두룩하다. 서른다섯 살이 넘어서야, 그리고 청첩장과 예식장 영수증, 남자의 신원 보증서를 가 지고 가야만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는 현실! 이러한 현실에서‘비혼 여성’은 기본적인 주거권을 보장받지 못하고 계속해서 밖으로 밀려나 고 있다. ‘비혼 여성과 집’은 어떤 관계인지, 이들의 주거권은 어떤 방향으 로 변화되고 보장되어야 하는지 길을 찾기 위해 세 사람의 비혼 여성 이 모였다. <민중언론참세상>의 이정원(이하‘정원’) 기자, <한국성폭 력상담소>의 자주 활동가, <w언니네트워크>의 깡뚜껑(이하‘뚜껑’) 활동가와‘비혼 여성과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1

요즘 어떻게, 어떤 집에서 살고 있어요? 뚜껑 전 대흥동에 살아요. 평수는 잘 모르겠고, 나름 싼 가격으로 구 했어요. 맨날 반지하 살다가 지금은 2층이라 옥상, 옥탑방도 있어서 그 공간까지 활용해서 쓰고 있어요. 좀 오래된 집이라 불편한 점도 있는데 그래서 느낌이 더 좋기도 해요. 목상은 나만 올라갈 수 있는 구조인데 텃밭 만들어서 감자도 키우고, 쪄 먹고 그래요. 옥탑방은 특별히 신경쓰지 않았는데 그림그리는 친구한테 빌려줬어요. 그래서 그런지 약간의 공동체 생활도 느껴요. 나름 흥미로운 생활이에요. 반 지하 벗어난 것도 처음이고 혼자 사는 것도 처음이어서 외롭지는 않 을까, 잘살 수 있을까 고민도 했는데 다행히 공간이 영향을 많이 주 는 거 같아요. 친구들이 와서 묵어 갈 수 있고 텃밭도 있고, 좋아요. 스스로 자립해서 사는 게 되게 중요했는데 내 생활 유지하고 이끌어 가는 것이 중요한 키워드에요. 혼자 산다고 건강하지 않게 산다거나 이런 거 싫고, 마늘장아찌나 고추장아찌 담가서 친구들이랑 나눠 먹 고, 집에 살면서 이런저런 것들을 해 보니까 좋아요. 정원 혼자 산 지는 만 6년이 넘었죠. 이 집에서 산 지는 2년이 넘었 고 세 번째 집이에요. 거의 2년 꼴로 이사를 다녔죠. 처음 살던 집은 다락방을 개조한 집이었는데 부엌 천장이 사선으로 되어서 냉장고


크기 맞추기도 어려웠어요. 그래도 옛날식 베란다가 있어서 나만 쓸 수 있어서 좋았죠. 이불이나 빨래가 까실까실 마르는 거 보면 상쾌했 어요. 기억나는 건 천장의 합판 위에 비둘기가 살았는데 그 비둘기를 잡으려고 고양이가 들어왔다가 천장에서 떨어져서,으……. 지금 집은 외관상으로는 세 집 가운데 가장 깨끗한 곳이에요. 2 층이고 창문 밖에 대추나무 한 그루가 있어서 그걸 보면‘아,내 집이 다.’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그런데 개발이 된다고 하니 지분은 늘리 려고 베어 버리더라고요. 삭막한 골목길이 되어 버렸어요. 자주 학교 다닐 때 하숙을 하다가 자취를 한 건 8년, 같은 집에서 8 년 살았어요. 다들 징하다고 그러고(웃음) 자기 집을 가지고 있어도 서울에서는 한곳에서 8년 사는 이는 드물어요. 애들이 더 지겨워해 요, 베란다 있는 것도 좋고 사랑할 수밖에 없는 집인데, 이번에 이사 를 가게 되었죠. 집주인이 갑작스럽게 횡포를 부려서 전세를 월세오 다 돌리자고 하더라고요. 기가 막히기는 했는데 선선히 그러자고 했어요. 근데 집 을 알아봤더니 너무 가혹해요. 정원 첫 번째 집이 23년 된 집이었고, 일흔 살이 다 되어가는 할머니 가 주인이셨는데 깐깐한 것 같아서 계약기간을 1년만 했어요. 고양이 떨어진게 너무 충격저이 커서 계약 기간 끝나기 전 두 달 전에 나간 다고 이야기했어요. 근데 보증금을 안 빼주는 거에요. 방 빠질 때까 지는 난 모른다는 그런 식으로, 내용 증명하고 뭐 이런 방법이 있대 서 해 보려는데 결국 내 몸이 고달파지고 우체국 가고 서류작성하고 이자율이니 뭐니 이런 일들이 귀찮아지니 결국 다른 사람 오기 기다 리면서 한 반 년 더 살았어요. 두 번째 집 주인은 자기 집이 따로 있는 사람이었는데 집에 물이 새서 나가려고 하는데 또 돈을 안 내놔요. 돈이 있는 양반인데도 다 음 사람 올 때까지 안 주겠다는 식이에요. 세 번째 집은 벽지랑 장판이랑 새로 해 줬어요. 전세는 보통 안 해주는데 해주더라구요. 근데 방범 철창이 없어서 해 달라고 하니까 이 동네는 그런 일이 없다면서 왜 달겠다는 거냐는 반응이더라고요. 언젠가 비 부슬부슬 오는 밤에 어떤 사람이 얼굴 가리고 다 벗은 채 로 돌을 던지는 걸 보고 나서는 이사 가야겠다고 맘을 먹었는데 집구 하러 돌아다니다 보니까 돈이 모자라기도 하고, 살다보니 익숙해져 서 그냥 살아요. 뚜껑 집주인 이야기하면 에피소드가 너무 많아요. 전구를 간다거나 하는 사소한 겅 작접 하려고 하는데 싱크대 물 새거나 이런 거는 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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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어렵잖아요. 고쳐 달라고 하면 주인아주머니가 남자친구 없냐요 물어보고, 비혼 여성으로서 혼자 살아가는 것이 불완전해 보이고, 계 속 그런 시선으로 보는 게 불쾌하죠. 정원 저는 중도금 내러 복덕방에 갔을 때부터 대뜸 ‘신혼이야?’물어 보더라고요. 혼자 사는 것이 동네에 알려지지 않게 해야겠다는 강박 같은 것이 생겨요. 지금까지 뭐 시켜먹을 때 1인분만 시켜 본 적이 없 어요, 자장면이 먹고 싶으면 볶음밥을 같이 시켜서 냉장고에 뒀다가 나중에 볶아먹고, 자취하는 여학생들이나 혼자 사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불안한 게 있어요. 부모님이랑 같이 살 때는 골목길에 있는 사람들이랑 친했는데, 평상에 앉아서 고구마순 다듬 고 애들은 사방치기 하면서 놀던 푼경이 좋았어요. 지금은 내 정보가 노출되면 안 된다는 공포가 있어요. 뚜껑 집주인이 한번은 집에 놀러온 친구가 동생이냐고 묻고, 친구들 이 많이 오니까 물세 2인분 내라고 해요. 주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 다는 느낌이 들 때 확 겁나죠. 며칠 지나면 괜찮기는 한데, 너무 스트 레스 받아요. 밤에 널어 놓은 속옷만 없어져도 굉장히 신경 쓰였는 3

데, 그렇다고 또 같혀 사는 건 싫어요. 자주 전 현대인의 주거 생활 패턴에 불편함을 느끼지는 않는 거 같 아요. 주변에 누가 사는지 잘 모르고 그런 게 너무 익숙하고 편해요. 저도 집에서 장아찌 해 먹고 그러고는 싶은데, 막상 장 보고 집에 와 서 펼쳐 보면 햇반, 참치, 김, 콜라 그런게 한보따리에요. 먹고 사는 것도 그렇게 익숙해져 있어요. 안전 문제는 그래요. 어차피 여성이 안전할 수 있는 공간은 없다고 생각하니까, 오히려 둔감해지는 것 같 아요. 뚜껑 부모님이 집에 왔는데 옆집 아줌마한테 “혼자 사는 아가씬데 잘 좀 부탁한다.”고 해서 황당했어요. 부탁은 뭐고, 혼자 산다는 이 야기는 왜 할까 싶은 거지. 먹을거리는 생협에서 주문해서 먹는데 혼 자 사니까 맡길 데가 없어서 저녁에 받았어요. 한번은 처음 보는 아 저씨가 왔는데,“이런 식으로 하면 곤란하다”고 하더라고요. 아저씨 는 낮 시간에 배달 일을 마치고 싶겠지만 그렇다고 혼자 사는 비혼 여성은 집에서 살림만 해야 하는 건 아니 잖아요. 막 따졌죠. 정원 독립하면서 결심한 게 ‘라면은 먹지 말자’였어요. 1년은 지켰는데 지나니까 여지없이 무너졌어요. (웃음) 몸이 좀 안 좋아서 먹을 거리들


은 채소 위주로 바꾸고 집에서 해 먹으려고 노력해요, 재래시장을 이 용하자고 하면서 일부러 가는데, 1인용 채소를 팔지 않으니 많이 사게 되고 결국 버리게 돼서, 그게 또 문제네요. 성산동에 <반찬가게>라는 곳이 있는데 그런 곳을 비혼 여성들이 운영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 도 들고요.

그럼 독립에 대한 생각은 어때요? 어떻게 하게 되었고, 어떤지? 정원 전 늦게 독립했는데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왜 그런 데서 일하냐” 시고, 직업도 마땅찮아 하고, 집이 멀고 맨날 늦게 들어가고 친구 집에서 자고 그러면서 부모님이란 트러블이 많이 생겨 점점 안 좋아졌어요. 맨날 결혼하라는 잔소리만 들으니까 돈은 없어도 더 이 상 같이 살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언니 둘이 결혼하고 남 동생이랑 저랑 있었는데 남동생이 취직해서 기숙사 들어가고 나니 까 모든 화살이 저한테 쏟아졌거든요. 독립할 자금이 모자라서 좀 도 와주십사 했는데, 결혼하면 보태줄 돈은 있어도 독립한다고 보탤 돈 은 없대요. 그래서 대출을 알아보게 됐죠. 근데“35세 미만 여성에게 는 대출이 불가능하다. 결혼 예정이라면 청첩장, 예식장 사본, 결혼 할 남자의 신원 보증 서류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하더라고요. 아니, 그럼 결혼 안 하고 사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느냐고 막 화를 냈어요. 다섯 군데 은행 모두 똑같이 말해요. 자기들은 알 바 아니래요, 뚜껑 20대 후반에는 부모님이랑 트러블이 계속 생기는 거 같아요. 결혼, 직장, 남자친구 등, 스트레스도 너무 많이 받았고 그 훨씬 전부 터 독립하고 싶은 욕망이 있었어요,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거죠.(웃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못 하는 거. 텔레바전을 봐도 내가 보고 싶은 거 못보고 채식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엄마가 해 주는 맛있는 음식이 따로 있어서 못하고, 독립해서 좋은 건 내 삶을 내 방 식대로 만들어 갈 수 있는 점이에요. 자주 제 의지는 아니었는데 집이 지방이고, 학교는 서울이니까 자연 스럽게 독립을 하게 된 거 같아요. 물리적으로 독립을 했고, 경제적 인 건 계속 집에 의지하고 있었는데 지금 집으로 올 때도 전세 자금 대부분을 집에서 부담해주셨어요. 그걸 독립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 는 생각도 들어요. 독립에 대한 환상도 있었죠 커리어 우먼의 여성상, 멋있고 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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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공간에서 아침에는 토스트를 구워먹는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환 상이 있었어요. 이미 깨졌지만, 그래도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하 는 꿈이 있는데 그런 게 산산이 부서져 나가요. 이런 상황을 애도 해 야 하는 건지,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척박한 현실과 어디까지 타협해야 할지, 그냥 받아들여애 하는 건지, 척박한 현실과 어디까지 타협해야 할지. 지금 있는 전세금에서 더 손 벌리지 않으려면 지금 돈으로 집을 구해야 하는데 구할 수 있을까 걱정이에요. 정원씨 이야기 들으면서 헌법 소원이라도 해야 하나 생각했어요. 결혼을 앴거나 혹은 할 사람의 경제 규모와 비혼 여성의 경제 규모는 다를 수밖에는 없는데 정책을 바꾸지 않으니 부담스럽죠. 뚜껑 전 독립할 때 부모님한테 어떻게 말할지가 제일 걱정이었어요. 돈은 되는 만큼 모아서 가는 거였고요. 그냥 나오는데 엄마가 2백만 원을 주셨어요. ‘나중에 갚아야지’ 했는데 지금은 뭐 그냥. (웃음)

집을 구할 때 떠오르는 일이나 좋지 않은 추억, 그런 거 있어요? 5

자주 부동산 시장이란 건 오로지 가격만 이야기 되는 거예요. 어떤 삶을 사느냐는 중요하지 않고 거래가 성사되면 그 밖의 것들은 굉장 히 부수적인 것이 되어 버리고. 여성이 혼자 사는 것은 희화화되는 것 같아요. 그런 캐릭터들이 호감을 받는 것 같고, <미술관 옆 동물 원>의 심은하 캐릭터라던가, 아주 새끈하지는 않지만 혼자 사는 여 성의 모습, 환상이 있는 것 같아요. 정원 집 구한다는 친구가 4, 5천만 원 정도 들고 있는데 어떤 집을 구하느냐 물었더니 방과 부엌이 분리되어 있으면 좋겠다고 해요. 물 론 발품 많이 팔면 그런 집도 구할 수 있는데 사실 구하기 어렵죠. 방 두 개는 웬만해서 7천만 원에서 8천만 원 까지는 줘야 하는 데. 그 친구랑 내가 합치면 좀 넓은 공간에서 각자 방을 쓰면서 살 수 있겠 구나, 싶지만 혼자 사는 것에 익숙해져 있는 내 삶을 내놓는 것이 자 신이 없고 반반이 아니고 누가 더 많이 내고 누가 더 조금 낸다고 했 을 때 공동 사용분은 어쩌나 생각을 하다보면 망설여져요. 자주 혼자 독립할 기반이 있는 사람이 함께 독립하는 것도 가능한 거 같아요. 물질문명 자체가 인간을 독립적으로 살기 어렵게 만드니 까, 개인들이 거기에 익숙해져 있어요. 물질문명으로부터 자립하려


는 선언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원 지방에 노조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거기 사람들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동네에서 서로 품앗이를 하고 있어요. 혼자 사는 사 람들한테 이게 가장 현실적이고 익숙한 방식이 아닌가? 대부분 가정 을 이룬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제도가 많고, 결혼이라는 제도에 편 입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건 정책이나 제도, 아무것도 없잖아요. 제도권이 만들어 놓은 기준, 만 서른다섯 살이 넘은 사람들에게는 대출해 주자고 정해 놓은 것, 그럼 서른다섯 살이 되면 책임감이 성숙 해지는 건가, 뭐 이런 생각도 들고, 제도 안에서 맞춰 살려고 해도 기 준에 맞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 그런게 진짜 비참하고 화나죠.

많은 얘기들이 나왔는데 마지막으로 정책에 대해서나, 앞으로 이렇게 되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자주 집이라는 게, 재산이라는 인식이 사회적으로 강하잖아요. 집을 구하다 보면 좋은 집에 살고 싶은 마음도 생기는데, 이게 재산을 더 많이 불리는 게 되기도 하니, 내 살의 욕구가 불순하게 느껴질 때도 있어요. 가치에서부터 너무 어렵고 조율하고 고민해야 할 게 많아요. 정책으로 가능할까. 이 둘 사이에서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까 잘 모르겠어요. 뚜껑 집이라는 개념 자체가 바뀌면 좋겠어요.‘집’이 사는 공간이 아 니라 재산이라는 개념이 너무 커요. 사람이 삶을 꾸려가는 공간이 어 느 정도 보장되면 좋겠는데 너무 이상적이라는 생각도 들고요. 내가 살 조건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할 것 같아요. 정원 저 역시 집의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혼자 사는 사 람들오 일부러 제도권 안들어가는 건 아닌데 너무 소외되어 있으니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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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자와 집, 다르거나 같은 수다 정리: 재영

‘집’에 대해 얘기할 때 그것은 보통 ‘정상 가족’의 이미지와 함께 그려 진다. 그렇다 보니 주거 정책에서 정상 가족이 아닌 다양한 ‘가족’이 나 공동체가 배재되기도 한다. 동성애자 주거권에 대한 수다를 통해 보편적인 주거권 실현을 위한 과제를 함께 고민해 보려고 한다. <한 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의 이종걸 님과 <한국레즈비언상담 소> 레고 님과 함께 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

일반적으로 성소수자의 주거권을 이야기 하다보면

가족 구성권 이야기가 많이 나오잖아요. 오늘은 그냥 자신이 생각하는 집에 대해, 좀 더 재미있게, 수다 떠는 것처럼 이야기하면 좋겠어요. 지금은 어디 살고 있어요? 종걸 저는 주거비가 안 들어요. 형이랑 전셋집에 살다가 형이 결혼 하면서 거기 그냥 살까 했는데 집에서 구리에 오래된 집이 있다고 해 서 거기서 혼자 살게 됐어요. 이사를 할 때 한 명 더 같이 살면 좋겠 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혼자 살죠. 저번에 형들이랑 집들이를 했는데, 한 열두 명 정도 왔어요. 형들 이 분위기는 좋은데 혼자는 외롭겠다고 하고 이것저것 키우면 재미 있겠다, 여기다 주말 농장을 하면 어떻겠냐는 말도 나오고.(웃음) 레고 전 아빠랑 같이 살아요. 학교랑 사무실이 서울에 있고, 집은 안 산인데 되게 멀어요, 버스가 있기는 한데 신촌이나 홍대 쪽으로 오는 게 없어서 집에서 나와서 사무실까지 오는데 두 시간쯤 걸려요. 다음 주 쯤에 학교 근처 하숙집에 들어갈까 생각 중이에요. 룸메이트를 구 하고 싶어도, 같은 레즈비언 친구나 잘 아는 친구로 구하려니까 같 이 살 수 있는 친구도 한정되어 있고, 아르바이트도 해야 하고, 어려 워요. 주변에는 자취를 하거나 애인이랑 사는 친구도 있는데 전 일단 혼지 들어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 중이에요.

집에서는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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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밍아웃을 했거나, 모르시고 빨리 결혼해라, 이런 이야기도 나와요? 종걸 2002년부터 형하고 같이 살았는데 2005년에 어쩔 수 없이 커 밍아웃을 했고, 2007년까지 살았어요. 형이 안다는 게 큰 장애가 되 지는 않았는데 처음 1년 정도는 같이 이야기하는 게 좀 껄끄럽고, 형 은 또 내 걱정을 많이 했죠. 근데 1년 정도 형이 연애를 하다보니 조 금 좋아졌어요. 예전에는 늦게 들어가거나 술 먹고 외박하고 그러면 뭐라고 하고 걱정했는데 그 후 1년은 서로 좋았죠. <친구사이>에서 활동하는 걸 좋게 이해해서 괜찮았어요. 그 이후에 누나가 알게 되었 는데 걱정은 하면서도 자기 삶이 있으니까 저까지 걱정하는 게 쉽지 는 않은 것 같아요. 결혼 이야기는 거의 안해요. 레고 아빠는 제가 레즈비언인 걸 모르고 있어요. 저도 아직 커밍아 웃 할 생각 없고요. 엄마가 2006년에 돌아가셨는데, 엄마는 알았던 것 같아요. 엄마가 제가 사귀었던 사람들 이야기를 하는데 그때는 말 할 준비가 안 돼서 선의의 거짓말을 했죠. 그때 엄마가 딱 두가지만 8

아니면 된다고 했어요. 동성애자거나, 임신을 한 것만 아니면 된다고. 엄마한테 말은 못 했죠. 학교를 한 학기 다니고 미국에 가게 되었는데 그때 이모랑 같이 살았어요. 이모는 커밍아웃을 한 상태였는데 제가 비행기에서 내릴 때 딱! 알아봤대요. 이모가 레즈비언 친구도 소개해 주고, 사회에 굴 하지 말고 살라고 이야기도 해 주고, 사귀는 친구 있으면 미국에 데 려오라고도 했죠. 이모랑 사는 친구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레즈비언 인권 운동 이야기도 많이 했죠. 이모 아들은 고등학생이었는데 자기 학교에 그런 애들 많다면서 소개시켜 주겠다고 해서 해외의 게이랑 레즈비언들을 진짜 많이 만났어요. 미국에 있던 이모를 데리고 커밍아웃을 하려고 했는데, 아직 못 했어요. 아빠는 가끔 결혼 이야기를 하는데 난 안한다고 하고……. 종걸 저는 전화할 때마다 그런 말 나와요. 안정된 삶을 살아라, 직장 도 잘 다녀라. 주위 형들 중에도 답답해서 커밍아웃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해요. 저는 그게 언제쯤일까 고민이 되요. 언젠가는 이야기해 야 한다고 생각은 하고 있어요. 형이나 누나는 이야기하지 말라고 해 요. 근데 이야기를 안 하면 내가 왜 이렇게 사는지를 이야기할 수 없 어요. 부모님이랑 나랑 같이 사록, 그 친구도 같이 살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했어요.


어떻게 살고 싶은가에 대한 고민도 많고, 누구와 살고 싶은가에 대한 생각도 많아요. 지면에서 이야기할 때는 애인이랑 같이 살고 싶 다고 말하는데, 내가 정말 마음이 맞아서 편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막상 산다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곤 해요.

그럼 같이 사는 공간, 사무실이나 집에 대한 생각은 어때요? 레고 사무실로 쓸 집을 구하고 계약을 하고 나면 일주일에도 몇 번 씩 회의를 하고 드나드는 사람들도 많고 하니까 옆집에 사는 사람들 이 “그냥 애들이 사는 게 아닌 거 같다. 여자들만 다닌다.”이런 이상 한 소문이 막 돌아요. 그러면 또 이사를 가고, 차라리 오피스텔 같은 사무실을 가지고 싶어요. 근데 돈이 없고, 사무실 임대료가 계속 비 싸지니까 옮겨 다닐 수밖에 없어요. 종걸 <친구사이> 사무실은 1998년에 종로에 왔는데, 그때부터 조 금 안정적이에요. 사무실에 남자들만 왔다 갔다 한다고 별말은 없는 데 시끄럽다고 항의가 들어와요. 2006년인가? 퀴어 퍼레이드 할 때 지가 많이 왔는데 우리가 지저분하게 한다고 욕먹기도 했어요. 근데 위층, 아래층 친하게 지내다 보니까 무마가 돼요. 활동 더 하려면 좀 더 넓은 공간이 있어애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역시나 돈이 문제죠.

주변에 동거를 하거나, 같이 사는 사람들은 많아요? 그 사람들은 어때요, 사는 게? 종걸 재밌는 경험을 한 친구들 많아요. 친구들끼리 사는 사람들이 있어서 한번 물어봤는데, 그냥 집에서 애인이나 친구들끼리 편하게 술 마시면서 이야기하고, 명절 되면 모여서 고스톱 치고, 음식 만들 어 먹고, 그런 게 사는 재미기도 한 것 같아요. 이런 아지트가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레고 칠팔 년 연애하면 동거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러는 경우도 있고 사귀는 순간부터 동거하는 경우도 있어요. 오래 잘 지내 는 경우도 있고, 짧게 사귀고 헤어지는 경우도 있고. 제 주위에는 오 래 사귀고 따로 살면서 동거 안하는 경우도 있어요. 동거한다는 건 앞으로 잘 살자 이런 거여서, 직장이나 여러 가지가 맞아야 해요.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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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경제적인 거에 이야기도 많이 하고 규칙도 있어야 하고, 혼자 살 았던 사람들은 나 아닌 사람들이랑 살아 보는데 처음이니 많이 싸운 다고 해요. 백년해로 약속해도 따로 살게 되는 경우도 있다고 하고. 같이 살다가도 부모님이 올리러가니 그런 긴급 상황이 터졌을 때를 대비해서 미리 짐 싸 놓고 불안정 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고. 그러다 가 일 터지면 그 짐들고 나갔다가 들어오는 식이에요. 한두 번은 재 미있을 것 같지만 저는 불편 할 것 같아요. 동거하는 사람 중에는 일 주일에 딱 몇 번만 친구를 데려오자는 약속을 하기도 해요. 홍대 주 변에 사는 언니들보면 꼭 3차는 그 근처 언니 집으로 가더라고요. 그 언니가 다행히 방이 두 개인데다 혼자 살고 있어서 그렇지, 같이 동 거하는 사람들 집에 그렇게 자주 가면 불편할 것 같기도 해요.

10대 레즈비언이나 게이들, 집에서 커밍아웃을 하거나 아웃팅을 당하게 되면 집에서 쫓겨나서 이 집에서 저 집으로 전전긍긍하며 사는 경우도 있던데, 그런 경우는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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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고 10대 레즈비언 실태 조사를 하고 있는데 뭐, 학내에서 차별당 한 사례, 아웃팅당하거나 그런 경우 이야기하다 보면 집에서 살기 힘 들어져서 나오는 경우가 있어요. 가출한 상태에서 편의점 알바해서 며칠 동안 돈 벌고, 또 들어가는 식이에요. 쉼터에 가는 경우도 있는 데, 쉼터에서도 레즈비언이라고 하면 그 안에서 차별받는 경우도 많 아요. 청소년이라 돈 벌기도 마땅치 않고, 레즈비언이란 게 알려지면 선생님들이 다가와서 그거 고칠 수 있다고 하거나 아예 접근하지 않 거나 해요. 억압에 노출되는 거죠. 집에 들어가면 다른 가족 때문에 힘들어져 나오게 되고, 악순환이에요. 종걸 게이들은 휴게텔이나 찜질방을 여관처럼 사는 경우도 있어요. 거기서 일하면서 사는 거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렇게 살 길을 찾기도 해요.

집에 대한 정부의 정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레고: 동성애자 관련 정책이 생겨서 이용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게 좋 은 건지, 아닌 건지 고민돼요. 가시화되지 않았는데 여러 가지 억압 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점에서는 정책이 생기면 좋죠. 하지만 그걸 이용하려면 커밍아웃을 해야 할 텐데 그런 과정에서 내 가 어떻게 될지, 그리고 내가 동성애자라는 것을 입증 할 수 있는 자 료도 없을 텐데 그게 가능할지, 생긴다고 하더라도 껍데기지 않을까 걱정돼요. 종걸 공간이 어떻게 정치적으로 드러날지는 고민이 많이 돼요. 장애 인들이 살면 집값이 떨어지고, 감염인들의 쉼터도 드러내기 어렵고. 쿼터제로 하더라도 자연스럽게 들어가기 어렵고, 생활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일본에 있는 그룹 홈에는 다양한 정체성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데, 그런 공간과 상황이 더 이상적인 것 같아요. 서로의 정체성 을 다양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공간, 모든 시설에 장애인 관련 시설 을 포함하고, 손쉽게 이용하고, 활동하고, 소통하는 공간이어야 하지 않을까요.

“집은OO이다.”라고 했을 때 이 OO에 무엇을 넣을 수 있을까요? 종걸 3,4개월 동안 혼자 살다 보니 일하다 보면 계속 있을 수도 없 고, 우리 나이는 몸만 누일 수 있는 공간이면 어디든 괜찮다는 생각 이 있죠. 근데 집들이할 때 왔던 형들은 좀 달라요. 잘 꾸미고 살더라 고요. 집이라는 공간은 “자기만의 공간임을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못하면 진짜 불편하지 않을까. 독립적인 공간 이면서 쉴 수 있는 공간, 성정체성도 드러내지 못하는 공간이라면 정 말 불편하지 않을까요. 아, 부모님이랑 같이 사는 게이는 어떻게 연 애를 해야 하나 진짜 고민이겠지. 레고 집은 “쉬는 곳“이에요, 딱, 주로 활동하는 데랑 집이랑 멀어서 그런지 집에 들어가면 잠만 자고 싶고 그래요. 친구 집이나 사무실에 서 잘 때는 절대 편하지 않고, 집이 그렇게까지 개인적인 공간이라는 생각은 안 드는데 내가 편하게 누워 쉴 수 있는 공간이라는 생각은 들고. 마음이 안 조급해도 되는 공간, 그게 집이라고 생각해요.

각자가 원하는 공간이나, 집에 대한 생각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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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걸 우리만의 공간을 원해요. 서로 편하게 같이 살 수 있는 공간을 원하고, 그런 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그 안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싶고, 쉼터나 커뮤니티 등이 같이 있는 공간, 그런 공간이면 좋겠어 요. 동성애자로서 누구와, 어떤 공간에서 살 건가 하는 문제에 대해 서는 저마다 생각이 다르기도 할 테고 사회적으로도 좀 더 다양한 의 견 교환이 필요할 것 같아요. 한국 사람은 누가 어떻게 사는지 호기 심도 많고 말도 많은데 저마다의 삶을 자면스럽게 받아들이는 분위 기도 필요할 것 같아요. 문화 자체가 많이 바뀌고 서로 관심을 가져 애 할 것 같고요. 레고 우리가, 내가 레즈비언임을 편하게 드러내고 살 수 있는 공간 이 필요한 것 같은데 그래서 모여 살고 싶어하는 것도 같아요. 반면 그렇게 사는데 괜찮은 걸까, 그런 생각도 들고, 그 안에서 모든 걸 해 결할 수 있다고 해도 나 혼자만 편한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계 속 고민이에요. 정책을 원하는 것 같지는 않고, 정책이 생겨서 제도 권 안으로 쏙 들어갔을 때 난 어떻게 할 것인가, 나는 그 안으로 들어 가고 싶어 할 것 같지는 않은데,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차해요. 장단 점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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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편안히만 쉴 수 없는 이유 호연

레즈비언에게 집은 ‘안전’과‘프라이버시’문제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 는 곳일까?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원센터>의 활동가 OO씨가 집 에 대한 이야기와 그녀의 삶을 말해 주었다. -----------------------------------------------저는 방 두 개짜리 단독주택에 사는데 네 명이 살아요. 어렸을 때는 엄마랑 아빠랑 한 방을, 저랑 동생이랑 또 한방을 썼는데 저도 스물두 살이 되고 동생도 고등학생이 되면서 동생이 마루에서 잠을 자기 시 작했어요. 동생한테 미안하기는 한데 동생도 그게 편한가 봐요. 저는 혼자 지내다가, 엄마랑 아빠랑 서로 안 맞아서 지금은 아빠 혼자 큰 방을 쓰고 동생은 마루에서 자고 저랑 엄마랑 같이 방을 쓰고 있어요. 많이 불편했던 거는 흡연이에요. 담배를 못 갖고 들어간다는 거, 엄마가 가방을 뒤지세요. 책상도 뒤지고 어렸을 때는 책상이랑 가방 을 다 뒤지셨는데 제가 그만큼 사고도 많이 쳤어요. 딸이 담배를 피우 13

는 걸 용납하기 힘들어서, 기독교인이고 보수적인 엄마는 담배를 부 러뜨리곤 했어요. “언제까지 담배 피울 거냐?” 이런 애기 나오고. 또 불편한 거는 뒷풀이 다녀오면 담배 냄새, 술 냄새가 나잖아요. 엄마랑 같이 방을 쓰니까 밖에서 제가 들어오면 냄새가 확 나잖아요. 그런거를 늘 신경써야 돼서 불편해요. 그리고 아침 일곱시에 일어나 나가는 동생이 마루에서 자고 있으니까 제가 밤 열두 시 넘어서 집에 들어가는 날에는 항상 고양이처럼, 도둑처럼 조용히 들어갔다가 씻으 러 갈 때도 조용히 해야 하는게 불편해요. 엄마한테는 제가 <한국성소수자문화인권센터>에서 일한다는 얘 기를 안 했어요. 그래서 엄마하고 직장얘기를 같이 할 수 없는 거죠, 늘. 그래서 정말 친구 만난 얘기만 하고 마는데, 어느 날 집에 와보니 까 어지럽던 책상이 정리가 되어 있는 거예요. 엄마가 “너 버릴 거 다 아래에 내려 왔으니까 필요한 거만 갖다 써라” 그러세요. 서랍을 건 드리진 않았는데 책상과 책장을 정리하셨더라고요. 근데 제가 책상 에 쌓아둔 엘지비티 (LGBT,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양성애자Bisexual, 성전환자Transgender의 줄임말) 포럼 자료집, 한채윤의 『레즈비언 섹스 말하기』,『동성애자와 트랜스젠더 부모들이 알고 싶어하는 37가지 질 문』 이런 책을 버리지는 않고 다 거꾸로 꽂아 놓으신 거에요. 화가 나 서 마당에 가서 파란색 봉지를 다 뒤졌어요. 저희 센터에서 했던 아카 데미 자료, 여성성.남성성, 동성애자와 의학 투쟁 뭐 이런 것부터 시


작해서 포럼 자료집, <퀴어 뱅>에서 썼던 자료들이 다 버려져 있는 거죠. 정말 필요한 거 빼고 다 버리셨던데요. 책상 서랍 안에 진짜 많 은 게 들어 있거든요. 서랍까지 뒤지지 않으셨으니 다행이지요, 뭐. 일을 하다 보면 컴퓨터로 작업을 해야 할 때가 많잖아요. 늦게까 지 회의록을 작성해야 된다든지, 포럼 준비물을 챙겨야 된다든지, 어 머니랑 같이 있으니까 준비물 챙기는 건 전혀 안 되고, 어머니가 몸이 아프셔서 한 시면 주무세요. 그러면 저는 일을 못 하는 거죠. 집에서는 잠만 자는 거 같아요. 너무 피곤할 때면 텔레비전 켜고 누워만 있어요. 무슨 일을 한다는 게 힘들어요. 통계 작업 같은 것도 노트북으로 하려고 하는데 입력 작업을 해야 되는데 그게 다 <퀴어 뱅>, 그 일인데, 보이면 들키는 거죠. 노트북이 있다고 해도 그런 작 업은 아빠 방 가서 해도 늘 조심조심 마음 졸이면서 해야 해요. 그래 서 일부러 생뚱맞은 대학교 리포트 썼던 거 그거 쓰는 거라고 뻥치고 일하고, 문서 창을 여러 개 띄워 놔야 되는 거죠. 엄마가 들어오면 하 던 작업 창을 내리고 다른 창을 켜 놓고 이런 식이에요. 그래서 집에 서 아예 뭔가를 하려고 하지 않아요. 잠자고 아침 밥 먹고 그런 거죠. <센터>에 있으면 마음이 놓이는 것도 사실이지만 집이 편해요. 사실, 워크숍을 가서 딴 데서 잠을 자건 딴 데서 일을 하건 제가 레즈 비언인 것을 밝힐 수 있으니 마음은 편해도, 피로가 쌓이고 그러다 보 면 집이 편해요, 쉴 때는. 저는 예민한 편이여서 같은 이불, 같은 베개 가 아니면 힘들어하거든요. 저희 집이 주택이라 그런지 공기가 차요. 찬 게 익숙해져 있어서 더운 곳을 못 가요. 근데 사람들이 추위를 많 이 타니까 난방을 하잖아요. 근데 저는 저희 집이 너무 편한 거에요. 엄마가 사람 만나는 거 안 좋아해서 가까운 이웃이 없다는 건 편 해요. 제가 고등학교 때 머리를 짧게 하고 다니거나, 여자 친구들이 랑 손 잡고 돌아다니거나, 공원에서 뽀뽀를 해도 알아볼 이웃이 없어 서 저는 편했어요. 그런 부분은 괜찮았는데 저희 동네가 어두워요. 공 장촌이거든요. 동네에 오토바이들이 너무 많이 다녀서 더운 여름에도 문을 닫고 지낸다는 것 정도가 불편해요. 이러면서도 독립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일단 <센터>에 계신 분들이 다 독립을 하고 계신데, 다 보여요. 독립한 자의 불편함 말이 에요. 편한 점이 있기도 하지만 불편한 점도 보여요. 독립한 자의 불 편함 말이에요. 편한 점이 있기도 하겠지만 불편한 점도 보여요. 지금 은 독립까지는 바라지 않고요. 그냥 제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제 방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한테 우스갯소리로 옥상에 컨테이너 박스 하나 놔 주면 안 되냐고 그러면 엄마는.“나를 내 쫓지 그러냐” 같은, 비수가 되는 말들을 하세요. 이제는 조심해서 서랍 정 리도 하고, 문제 될 건 <센터>에 가져다 놓곤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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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제 인생에서는 많은 비중은 차지하거든요, 엄마가 저를 힘 들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는 부분도 있는데 또 어떤 부분은 엄마가 아 니면 안되는 부분도 있어요. 엄마를 그 집에 두고 혼자 나올 수 없다 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어렸을 때 아버지랑 안 좋은 일고 있고 그래 서 엄마를 그 집에 아빠랑 두만 둘 수 없다는 생각을 해요. 엄마가 위 험한 상황도 있고. 아빠가 술 먹고 들어온 날 엄마를 귀찮게 해요. 제 가 엄마의 방패막인 게, 제가 스물두 살이 되니까 제 앞에서 그러는게 창피하신가 봐요. 그래서 제가 있는 날은 안 그런대요. 그러니 엄마는 저한테 일찍 들어오라고 하게 됐지요. 제가 중고등학교 때 엄마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어요. 사사건 건 일이 많아서. 그런 죄책감 때문에 엄마랑 같이 독립을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지금은 독립보다는 내 방을 갖는 것, 외 박을 엄마와 어떻게 타협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하죠. 집은 쉴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편하게 있을 수 있고, 긴장을 하지 않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고 쉴 수 있는 공 간이면 좋겠다는 서, 그리고 제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공간, 해야 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어요. 15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재영

때는 2007년 5월 10일, 집에는 모두 여덟 명의 노동자가 잠잘 준비 를 하고 있었다. 갑자기 신원을 알 수 없는 몇 사람이 문을 막차고 들 어오더니 가스총으로 위협했다. 당신이 그 노동자였다면 어떻게 했 겠는가? 당연히 경찰에 신고할 생각부터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집 의 노동자들은 그렇게 하지 못했다. 미등록 이주 노동자였기 때문이 다. 문을 부수어도, 총기로 위협해도, 불법 가택 침입을 당해도 아무 저항을 할 수가 없었다. 많은 분들이 한국에서 이주 노동자들이 겪게 되는 인권 침해에 대해 들어서 알고 있을 것이다. 공장에서는 갖은 욕설과 인격 모독, 폭행에 시달리고 저임금, 임금 체불, 부당 해고 등에도 아무 대응을 할 수가 없다. 반면 이런 문제만큼이나 심각한 또 다른 문제, 이주 노 동자들의 주거에 대해서는 다른 것들만큼 많이 얘기되지 않았다. 이 주 노동자의 주거궈은 얼마나 보장 받고 있는지 살펴보자. 한국 사회 에서 이주 노동자들의 주거 형태는 매우 열악하다. 살 만한 집이라면 사샐활을 보장받을 만한 공간이어야 하고 건강을 해치지 않을 쾌적 한 환경이어야 한다. 하지만 많은 이주 노동자들이 대부분 공장 기숙 사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산다. 일하는 곳과 자는 곳이 가까워서 좋겠 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다. 하지만 집이 따로 없이 사무실에서 자는 사람들, 낮에는 식당 홀이었던 곳에서 잠을 자야 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사는 게 피폐해진다”고 이야기 한다. 장시간 고된 노동에 시달리던 이주 노동자들이 기숙사에 들어가면서 “아, 이제 ‘집’으로 간다” 는 생각을 하기 쉽겠는가. 게다가 공장 기숙사는 허술하게 지어진 경우가 많다. 화제나 가 스 누출에 무방비로 노출된 경우가 대다수고 사고 위험도 높다. 하지 만 달리 갈 곳이 없으니 어쩔 수 없ㅂ다. 그나마 일하던 공장에서 부 당해고를 당하기라도 하면, 집도 절도 없는 떠돌이 신세가 되고 만 다. 결국 쪽방, 찜질방, 고시원, 반지하, 옥탑방 등 열악한 주거 공간 들로 돌아다니게 된다고 한다. 2007년 3월, <여수 외국인 보호소> 에서 있었던 참사는 정부 보호소에서 벌어진 일이라 많은 이들의 분 노를 샀다. 하지만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이 숨어 지내는 일반 집에서 도 언제든 그런 참사가 일어 날 수 있다. 이주 노동자들은 한국에 처음 들어와 집을 구할 때부터 많은 어 려움을 겪는다. 부동산에서 쉽게 정보를 얻을 수도 없고, 조언을 해 줄만한 친구가 늘 곁에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럭저럭 집을 구한다고 하더라도 대부분 월세나 전세 계약을 맺지 못한다. 그러니 보증금을 떼이거나 특별한 이유도 없이 쫓겨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재개발을 할 때 세입자들에게 보장되는 이주 대책은, 전입 신고도 못 하고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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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서도 쓰지 못한 이주 노동자들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다. 집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편안한 휴식을 떠올린다. 하 지만 이주 노동자들은 늘 숨어 다녀야 하고 쫒겨 다녀야 하니, ‘집’이 그런 공간이 되질 못한다. 주위 한국인의 눈치를 보기도 하고,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단속 공무원 때문에 공포와 불안은 일상이 되다 시피 했다. 그렇다 보니 이주 노동자들도 집이나 마을에 특별한 애착 을 느끼지 않게 되고 떠돌아다니는 것을 당여하게 여긴다. 그러니 피 곤한 밤에도 잠을 잘 이루지 못한다. 근처 선술집에서 친구들과 못다 한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도 어렵다. 단속을 피해 달아나다가 죽은 이 주 노동자들고 있다. 그물, 가스총, 마취총까지 동원하다니, 이건 인 간 ‘사냥‘이라 불러야 할 정도다. 미등록 이주 노동자들은 출입국 관리 절차를 어기기는 했지만 그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건 아니다. 출입국 관리 절차를 지 키지 않았으니 다시 출국하는 것이 옳다고 하더라도 아무데서나 마 구잡이로 체포하는 것은 정당화시킬 수 없다. 살 만한 집에 살 권리 도 마찬가지다. 미등록 이주 노동자가 설령 ‘몰래’ 들어왔다고 하더라도 모든 사 람에게 모장되는 주거권은, 그/그녀가 사람이라면 마찬가지로 보장 되어야 한다. 특정 행정 절차를 어겼다는 이유로 건강할 권리, 주거에 17

대한 권리, 생명에 대한 권리 등이 무시되거나 침해되어서는 안 된다. 집은 집다워야 한다. 이주 노동자들이 처한 열악한 주거 환경도 개선되어야 하겠지만 마구잡이로 진행되는 단속과 체포 관행이 사라 져야 이주 노동자들이 편안하게 살 수 있다. 적어도 집에서는 편안하 게 쉴 수 있도록 잡아 가지 못하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주 노동자 문제들이 현재진행형이 아니라 과거형으로 바뀔 날 을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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