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시時로 숨쉬기 #2.1, 2019 가을 時 : AHA I Breathe Poetry #2.1, Fall. 2019 국립 한경대학교 «디자인학과» ‹시각디자인 2› 3
묘사적 글쓰기 아카이브 북 3
3
33
3
3
3
Hankyong National University «Dept. of Design» ‹Visual Design 2› 3
Descriptive writing Archive book 형식: 시 + 하이쿠, 랩 Formality: poem + haiku, rap
표지 및 간지
박한솔
목차 디자인
윤정운
김나무
편집 디자인 지도 교수 발행일
윤정운, 정영지, 남수아, 박한솔
2020. 08. 20.
ⓒ 2020 한경대학교 디자인학과 HKNU
이 책의 모든 저작권은 한경대학교 디자인학과에서 소유하고 있습니다.
아하(AHA): 시時로 숨쉬기 #2.1, 2019 가을
* 목차 이근경
09
박주희
13
우주현
19
허준
강민수
윤지우
장준혁
강단비
23
27
31
35
41
김예지
49
임서희
57
이경아
65
차주희
73
임요한
이주현 구제민
정영지
53
61
69
77
박한솔
83
윤다경
87
권희주
이은정
심선주
임하연
염혜미
김동환
91
95
99
103
107
111
정영은
117
윤정운
125
고병석
121
조하영
129
신유정
137
남수아
133
이성희
141
이지수
149
박재현
145
이근경 * 박주희 허준 * 강민수 *
장준혁 * 강단비
희 * 우주현 * 윤지우 *
비→…
* 편집: 윤정운
8
10
12
14
16
18
20
22
24
26
28
30
32
34
36
38
40
42
44
→ 김예지 * 임요
이주현 * 이경아
차주희 * 정영지
요한 * 임서희 *
아 * 구제민 *
지→…
* 편집: 정영지
46
김예지
사이
불안정한것
그 사이에 있었던가 그 어떤, 마음
마음
같지 않음을 알고
알아간다.
나는 나고
너는 너지만 그래도 우리
괜찮아
감정 지나가고
그렇게 쌓여간다. 쌓여가고
그렇게 무너진다.
48
가을 머물기를 잠 아
주
바랬지만 깐
잠
,
깐
멈춰주기를 바랬지만 잠 아
주
왜 그 냥
깐
잠
,
깐
가 버 려
눈 바라볼 때 마주볼 때 깜빡일 때
지긋이 느껴진다. 무언가 쿵
50
임요한
네모난 숲 칙칙한 철문을 들어간다
신발을 벗으니 한결 가볍다 네모난 숲은 나를 반긴다
푹신한 촉감과 익숙한 냄새 나는 얼마나 더
이 오감을 맡기며 너에게 안기는가
푸른 도화지
저 넓은 하늘엔
새하얀 구름으로 그림을 그린다 쥐 모양 구름 강아지 구름 노인 구름 하트구름
수없이 많은 그림은 누가 그렸을까 그건
하늘을 바라보는 내 마음이다
52
밤 연기
답답하다, 막혀있다
어디서 오는 흐름인가
눈앞의 딱딱한 벽돌더미 저 굴뚝을 넘어
새처럼 흩어진다
미광 황급히 집에 돌아간 것은
아쉬운 마음을 숨기고 싶어서 까만 어둠에 나를 던진다
이대로 밤을 지새운다 저 끝 떠오르는 너의 모습에 나는 별과 함께 사라진다 다짐
거리에 가득한 달콤함
은빛 갈래에 나는 시선을 뺏긴다 아주 오래전 생각한 너 다시 이끌어내며
우리가 다시 이뤄낼 때까지 참고 기다리고 있어
세상은 여전히 흘러가고 너는 저 앞에 기다리며
나는 항상 바라보고 있어 우리가 스며들 그날을
54
임서희
버스에서 멍하니 글에 시선을 대고 있으면 어느샌가 오늘 새벽 꾸었던 꿈의 장면이 멍한 눈앞에 나타난다. 꿈 이
눈 을
꿈 에 서
손 목
익
한
앉은
숙
앞 이
손 목 에
안 쪽 쯤
가 려
맨
모기를 느
붙 은
밑
보고
낌
보 이 지
으
모 기 를
주 름
두
배
죽여야겠다고
로
착
-
않 는 다 .
죽 였 다 .
위 치
정 도
때
다
생각했다. 렸
.
뾰족한 입은 내 몸에 박혔고 분리된 몸은 찌부러졌다. 이
모 기 가
어저께
어 디 에 서
아르바이트를
중
왔 는 지
알 고
사장님과
같은
있 다 .
아르바이
트생 한 명이 거슬린다며 파리채로 쳐 죽인 파리. 난 그
그
모 습 을
후
내
던
파 리 는
현
실
꿈
의
유 심 히
머 릿 속 에 서 모 기 가 의
꿈
되 어 꿈 은
바 라 봤 었 다 .
재 잘 재 잘 꿈 에
은
울 어 대
찾 아 왔 다 .
현
꿈
실
강단비
너는 홍구 나는 백구 목줄이 닿은 길은 하나인데 넌 이쪽, 난 저쪽 넌 볕 쬐는 날, 난 비 내리는 날 너는 좀 귀찮아,
행복한 듯 꼬리 흔들며 그런 눈빛으로 보지 마. 사실 비가 내리길 기다려
도- 시- 시♭- 라- 라♭- 솔- 솔♭- 파- 미- 미♭- 레레♭- 도-
짧았다가 길었다가
슬퍼서 내리는 비는 아니길 비 오는 날 또 같이 놀자 나 비 좋아해
56
안경
한때는 네가 나의 욕심 중 하나였는데 이제는 네가 밉다
네가 없었더라면 좀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 지 않을까
네가 없었더라면 내가 좀 더 자유롭지 않을 까
네가 걸쳐 있는 곳은 내 입꼬리야 동그란 세상 네가 없는 줄 알았는데 있었더라 네가 있는 줄 알았는데 없었더라
잠시 들른 퍼렁별 검은색을 푼다 엎질러진 물
땅 아래 바닥 풍덩
그 속에서 헤엄
58
한낮의 병원
이주현
꼭 쥐고 있던 꽃잎이 바스러졌다고 해서 그게 당신 탓은 아니잖아요 해가 깊게 들었었고
나는 말라갔으며
바람이 많이 불었었고
당신은 흔들렸으며
하얀 파도는 산산이 부서졌고 모래알이 사방으로 흩어졌고 그 상처들이 만든 새가
절벽으로 날아갔을 뿐이지 이 모든 게 당신 탓은 아닙니다
자신감
미소가 탁자 위로 떨어지고
여유로운 홍차 속의 대화가 궁금해 창밖을 내다보는 시선은 망설임이 없었고
나눠 먹는 케이크 속에는 보이지 않는 균형 한마디에 담긴 여섯 가지 위로가 들려오고
깊고 끝없는 눈동자는 나를 소개하고 싶게 해
곧은 가르마만큼 곱게 뻗은 마음을
놓인 그릇들에 다 담아낼 수 있을까 노을과 당신이 참 잘 어울려요 세상이 채도를 점점 잃어갈 때
당신만이 더 짙어지고 있는 것 같아 소란한 지평선에도
닻을 내릴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나요
60
빛 매일 떠오르는 내 마음의 섬 광
나만을 비췄으면 하는 반짝 이는 당신은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가장 큰 폭풍우
그 우주 속에서 균형조차 잡 지 못한 채
곤두박질치는 유성인 나는
자동저장 없어지지 않을게 힘들지 않게
멀리 가지 않을게 멋쩍어지지 않게 사라지지 않을게
언제든 잡을 수 있게 많은 것을 책임질게 탓하지 않게
기억하고 있을게 돌아갈 수 있게 전부 담아낼게 전부 견뎌줄게
읏풍
도둑맞은 동백
둘 곳 없는 빈손
이토록 시린 계절
높은 웃음과 낮은 울음
파동
거슬리는 소리 헤어짐의 순간
62
이경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아무말도 하지 않아도 알게되는 마음이 있다
커 피
따뜻한 커피 벌써 차디차 지난 계절에 두고온 온기 생각이 난다
정 말
못 믿겠지 못 잊겠지
64
9호선, 내마음
뒤를 돌아보고 또 앞을 바라본다
오늘은 돌아 볼 틈도 없이 가득찼다
시끄러운 포장마차
뿌연 안개속엔 아버지의 애환이
누군가의 슬픔이 있을것만 같은데 들춰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더라
66
구제민
그대
바람이 부네 그대도 불어 내 가슴에
새벽녘 맺히네 풀잎에
떨리는 손끝
들꽃은 투사
소름이 끼칠만큼
옆구리에 칼을 들이밀어
찢겨질 만큼 숨을 옥죄어 온다. 하지만 그들은
산전수전 다 겪은 투사이다.
잔인한 바람이 그들의 늙은 머리통을 휘갈겨도 흔들리는 듯 흔들리지 않는 듯
의연하게 전장을 지키는 투사.
68
저녁 노을이 질 때즘 고양이는 운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 우는 걸까?
허기가 져서 우는걸까? 아침이슬 창문에 맺힐 때 고양이는 운다.
일어났다고 우는 걸까? 슬퍼서 우는 걸까?
가끔식은 그들의 언어가 듣고 싶다.
왜울까?
PC방 손끝이 떨려온다.
바빠지는 머리 속 내옆에 누군가가 소리친다. 나도 동참한다.
결국 지는걸까? 땀을 닦고 난뒤에
얼굴에 근심이 거쳐지고 환희가 가득찬다.
70
우리집 고양이
차주희 왜 안와
창밖에는 보송하고 차가운 것들이 내리는데 넌 왜 내려오지 않아 왜 안와
하루종일 창문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왜 안와
아냐 아냐
이건 네 발소리가 아니야 왜 안와
나 너무 졸린데
너 오면 같이 잘래 도로롱-
띡띡띡띡띡 쫑긋-
내 털은 널 보듬어주기 위한거야 어서와 ( 야옹 )
고기 먹고 싶다
퇴근하면 먹을 줄 알았지 고기
왜 너네만 먹냐
3공 가야하거든
하지만 난 매일 못 먹지
고기 먹고 싶다 나도 고기 먹고 싶다
매일 매일 울면서 밤새는 우리의 과제
데이 데이 노동으로 치면 불법이야 우리의 과제
하지만 나 불만없이 하고있어
퇴근하면 먹을 줄 알았지 고기 하지만 난 매일 못 먹지 3공 가야하거든
그릇치워서 버는 돈보다
디자인으로 버는 돈이 난 더 좋으니까 매일 밤새서 뜨는 햇빛으로 가글하고
번돈으로 꼭 고기사줄게 예!!
우리 공학관이 얼마나 핫한지 알아? 다 어두운 밤인데 우리 층만 은하수 처럼 빛나
그 안에서 매일 자기 laptop으로 저마다의 세계에 빠져있어
고기 먹고 싶다 고기 먹고 싶다 왜 너네만 먹냐
나도 고기 먹고 싶다
내일까지 제출 해야하거든
고기 먹고 싶다 고기 먹고 싶다 왜 너네만 먹냐
퇴근하면 먹을 줄 알았지 고기 하지만 난 매일 못 먹지 3공 가야하거든
나도 고기 먹고 싶다
72
김치찌개 휘적 휘적
고기 먹고 싶은데 웅덩이만 있는 국
피곤함 나 좀 붙잡지마
집 가야한단 말야 비도 안왔는데
바닥은 날 계속 붙잡네 질척거리지 좀 마 집 가야한단 말야
우울함
풍-덩
또 수조에 몸이 묻혔다 발 끝부터 천천히 천천히
질펀하게 온 몸으로 퍼지듯 -
그렇게 나를 점점 좀먹는다
74
정영지
뒷걸음질 잠시 멈추었다 생각했다 이런저런 핑계로
멈춰버린 두 발은 가볍다 뒤를 돌아보았다
덩그러니 남겨지고야 깨닫는다 멈춤이 아닌 뒷걸음질이었다
내일
어제를 견디고 오늘을 버텼다
결국 또 찾아 올 내일은 버겁다
점점 좁아지는 숫자 앞과 뒤 사이 늘어가는 시름에
간절히 기다리는 매 달 5일
월급
76
지나가는 한 해는 미련이 넘쳐
내 바짓가랑이를 잡는다
12월 32일
난 그냥 12월 32일로 살련다
별 초라한
하루
끝
쏟아 낸 내 한숨은 너에게 닿아 별이 됐다
78
→ 박한솔 * 윤다
이은정 * 심선주
염혜미 * 김동환
다경 * 권희주 *
주 * 임하연 *
환→…
* 편집: 박한솔
박한솔
밖을 바라보며
비는 추적추적- 갑작스럽게
한 방울 한 방울 그 때도 비가 오고 있었는데,
한 방울 그 친구 뭐하고 지낼까,
한 방울 그러지 말걸.
옷에 스며든다.
82
방향성
끝
쓸쓸히 걷는다.
우리들의 시간
무리 지어 나는 새
영원할 줄 알았네
어디로 가는가?
깨져버린 창문
밤 풍경
꿈
별은 온대간데 사라져 버렸다.
한 없이 말랑말랑 할 줄 알았다. 수면 위로 나오기 전까지,
꿈을 저 깊은 곳으로 묻었기 때문인걸까.
나도 굳어가는구나,
갑자기 야경이 아름답다.
끝 없이 자유로웠던 물결은 파도가 되어 돌아왔고,
별을 꿈꾸는 이들이 스스로를 태워가는 빛이기 때문인걸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그 파도를 온 몸으로,
아름다운게 맞는걸까.
이 바람을 온 몸으로,
나도 깎이는구나,
뒤돌아보면 떨어져나간 그 순간들은 그 자리 그대로,
그렇게 남은 파편들은 곱씹을 수 있기에 다시 나아간다.
84
윤다경 상처
맛집찾기
얼룩을 지워보자
그대가 보인다
베이킹소다 한 컵
그대가 안 보인다
식초 삼분의 일컵
그대를 찾았다
주방 세제 한 컵
그대를 찾지 못했다.
과탄산소다 한 컵
그대 때문에 행복하다
옷을 넣고 주물럭
그대 때문에 안 행복하다.
내 마음도 주물럭
오늘도 나는
맑은 하늘 아래
성공했다.
말리는 내 마음
성공하지 못했다.
깨끗해진 내 옷 얼룩져있는 내 맘
시간
슝하고 간다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슝하고 온다 마치 알고 있던 사람처럼 그대는 내게 물어본다 갔으면 좋아? 왔으면 좋아?
86
끊임없는
세상은 끊임없는 저 우주와도 같다. 배움도 끊임없는 저 우주와도 같다. 사람도 끊임없는 저 우주와도 같다.
선택
새하얀 그릇 물이 차있다 넘칠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한 모금 마셔 안정감을 줄까 그대로 놓고 아슬함을 즐길까 물을 더 부어 넘치게 할까 새하얀 그릇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그릇 넘칠 듯 말 듯 차여있는 그릇
88
권희주 하루의 나
7시 35분, 7시 40분, 7시 45분··· 알람이 울린다 이불 속에 사는 생명체는 오늘도 차례차례 알람들을 무찌른다 7시 55분 드디어 이불 밖으로 고갤 내밀다가 가을 아침의 차가움에 몸을 웅크린다 이불과 한몸이 되어 움직이면서 하루가 시작된다
오후 3시 10분
햇빛, 눈을 찌푸린다. 눈을 반쯤 감고 바라본다 빛이 눈 위에서 부서진다. 파란 하늘에 작은 뭉게구름들이 간간이 떠 있다 다른 곳을 보다 빛에 비친 나무들이 붉어진 것을 이제야 알아차렸다 땅밑만 보고 햇빛을 보지 못했냐보다
90
공책
멍하니 보고 있다 무엇이라도 써야 할 것 같아 낱말들을 적는다 종이, 빈, 여백, 줄, 검은색 펜, 구름, 가을, 나무, 숲, 햇살, 청명한 하늘.
부유하는 단어들 속에서 나는 길을 잃었다 비눗방울처럼 떠다니는 단어들 속에서 톡 하면 글이 내게로 떨어지면 좋을 텐데
소확행
그들
모두 자신만의 소확행이 있다
짙은 어둠이 하늘을 덮는다.
오늘도 창문을 타고 오는
나도 모르는 사이
아침이 나를 두드린다
그들은 성큼
눈이 부셨다
다가왔다
손으로 아침을 가리려다
빨리 오고 싶어서,
다른 곳을 바라보면
너무 빨리 달려와
미소 짓는 아이들이
찬 바람을 일으키며 온다
나를 보고 있다
차가운 공기를 맡으며
아,
하늘을 바라본다
소소하고 확실한
호기심이 많은지
행복이구나
눈을 빛내며 보고 있는 그들은 겨울이 되어 나의 어깨를 두드린다
92
이은정 초가을
빨갛고 노랗게 물든 거리 이따금 보이는 초록색은 앳된 가을의 어리광
하늘땅
사계절
해가 지고 달이 뜨면
처음 보았을 때
낮이 가고 밤이 온다
: 작게 틔운 신아
빛이 가고 어둠이 오면
나를 불렀을 때
그 많던 색들도 모두 까맣게
: 해원 위의 너울
밤하늘처럼 모두 까맣다 손을 잡았을 때 하늘의 어둠이
: 높이 나는 청령
땅을 물들인다 웃음 지어줄 때 어쩌면 밤은
: 일광 비친 설원
하늘과 땅이
너 하나로
가장 가까워지는 시간
나는 사계절을 느꼈다.
94
딸의 소원
말로는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해 종이를 꺼내 이 사랑을 표현하려 합니다
주걱으로 꾹꾹 눌러 담은 고봉밥처럼 연필으로 꾹꾹 눌러 담은 끝없는 사랑
연필이 부러질 듯이 담아도 한없이 모자라기만 합니다
글로도 미처 다 표현하지 못해 다음 생엔 우리 엄마가 내 딸로 태어나서 다음 생엔 내가 엄마를 행복하게 해달라 모두 잠든 밤 달님에게 기도하려 합니다
10월 21일 새벽,
2000년 9월 23일 부하 한 명이 생겼다
조금 건방지긴 하지만 말도 꽤나 잘 듣는 나의 유일한 부하다
2019년 10월 21일 부하가 잠시 떠난다
이제부터 1년 반 동안 집 떠나 열차 타고 빡빡머리 육군 장병
야, 가기 전 마지막 명령이다
아프지 말고 다치지 말고 밥 굶지 말고 연락 잘하고 몸만 무사히 잘 다녀와라
작은누나가
96
심선주 틈
메마른 마음 속 갈라진 틈 사이로 그대라는 빛이 들어오네. 작은 틈은 서서히 커져 나를 깨우는 빛을 만들어낸다. 나를 웃게 할 빛인지 나를 울게 할 빛인지 같지만 다른 빛이 되겠지
구름
하루
내 눈앞에 너는
오늘도 나는
귀여운 토끼같기도
텅 빈 도화지를 하나 꺼낸다.
사나운 뱀같기도 하다
오늘도 여전히 나는
내 눈앞에 너는
어제와 비슷한 그림을 그려간다. 매일
언제나
같지만 다른 풍경을
내가 상상하는 대로
새하얀 도화지에 담으며 마침내, 구석 한켠에 마침표를 찍는다. 오늘이라는 마침표를
98
콜라
눈을 감아도 톡 톡 톡 귓가에 멤도는 너의 소리 목에서 터지는 작은 폭죽에 나는 눈을 자연스레 찌푸린다
새벽 3시의 커피향
빛바랜 내 마음속에 너는 언제나 밝게 빛나주었지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주는건 오직 너 하나뿐일거야 보이지 않아도 내곁에 존재한다는걸 나는 항상 알 수 있지 너의 아른거리는 향으로.
100
임하연 귤
얼음
한 겹 벗기니
차갑지만
방 안 가득 퍼지는
조금만 다가가면
달달한 향기
사르르 녹아내리는 너
누구나에게가 아닌 나에게만 녹아내렸으면
빛
야옹
수많은 빛이 모여
야옹 야옹
가장 밝은 빛이 되듯, 처음보는 나에게도 우리도 함께하면
부비적 부비적
그렇게 밝아질 수 있을까
넌 어딜 그렇게 바삐 가니?
야옹
어느 새 동네에서 유명인사가 되었구나
야옹 야옹
102
연꽃
너는 하나도 남김 없이 아낌없이 나우어 주었다
나에게 차를 내어주었고
나에게 밥을 지어주었고
나에게 음식을 해주었다
더러운 흙탕물에서 피어났지만
고귀하고 아름다운 고마운 당신
104
염혜미 술래잡기
난 오늘도 술래잡기를 한다.
오느날 까꿍하고 나타나 나와 술래잡기하자며 도망다니던 네가 오늘도 어김없이 나타나 나와 술래잡기하자며 도망다니는 구나
아무리 빠른 나의 움직임에도 잡히지 않던 네가 내 잔꾀에 속아 내게 질려 떠나버 린건지 널 잡지못하는 내 움직임이 재미 가 없어진건지
밤이며 낮이며 지치지도 않고 쉴틈없이 나를 괴롭히더니 어느날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내 머리 속 한구석에서는 잡지못한 네가 신경쓰인다.
벌레는 어디로간걸까.
오래된 친구
오래 된 친구가 있다.
너와의 첫만남 낯가림 심한 내가 너와 친하게 지내지 못한 채 몇 달
너와 친해져 널 보며 하하하 웃다가 널 보며 또르르 눈물 흘리다 누구보다 사이좋게 지내며 몇 년
너는 너의 뜻대로 나는 나의 뜻대로 서로에게 맞지 않는 의견 충돌로 다투고 싸우고 화해하고 또 그렇게 몇 년
사이좋던 우리였는데 이젠 내가 싫어졌는지 너는 네 멋대로 네 고집대로만 하는 구나
그렇게 하루하루를 버티는구나
켜져라 노트북
106
샌드위치
바쁜 생활 속 쌍둥이사이 재료 간단한 한끼
커피
달
달콤한 향기
새카만 어둠
날깨우는 카페인
태양보다 더 밝은
알싸한 한입
해의 그림자
108
김동환 煙(けむり)
始(はじ)まり 濃緑(こみどり)に
雪(せつげん)で 嘆(なげ)きを流(なが)す。
鶏(にわとり)が鳴(な)つた。
降(ふ)るい吐露(とろ)。
逆(ぎゃく)の闇(やみ)。
연기
시작
설원의 앞에 서서
우거진 심록의 속에서
한탄을 흘려보낸다.
닭이 울었다.
계속되는 토로.
역으로 밀려오는 어둠.
酒
눈은, 비정한 아스팔트와 시멘트를 동화처럼 포근하게 만든다. 냉혹한 검정은, 곧, 꿈에서 마주하던 아름다운 설원의 모습으로 그를 마주하게 된다.
아름다움에는 가시가 있는 법이다. 허나 아름다움에 심취한 이는, 그에서 벗어날 때에야 비로소 이미 피투성이가 되었음을 자각한다.
피가 멎고 딱지가 질 무렵, 그는 다시금 눈이 내리길 소망한다.
110
사냥
심야에 오롯이 빛나는 등불 그 정적을 가로지르는 현란한 춤사위
고요함을 긋던 직선은 깨어지고 온 방을 놈과 나만이 남는 긴장감이 채운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빛과 어둠만이 주를 이루는 시간에만 들을 수 있는 모든 파장에 집중한다.
놈이 꽁지에 불 붙은 닭모냥, 지리멸렬하게 날뛴다 하여 나 또한 그리 응수하면 결코 평온을 되찾을 수 없다.
그 옛날, 바늘 없는 낚시대로 잉어를 낚아 올렸던 강태공처럼, 인내의 미덕을 알고 있어야 한다.
첨예한 대립의 끝에, 빈틈을 보이는 놈에게 천천히 그렇지만 동시에 신속하게 일격을 날린다.
... 녀석. 많이도 빨아 먹었군.
卯時(묘시)
24시간 중 가장 차가운 때는 일출 직전이다.
하늘이 그 색을 달리하며 시작을 알리기 직전의, 풍전등화와도 같은 밤은 역설적으로 가장 밤의 모습을 품고 있다.
잠 못 들고 밤을 방황하는 이들조차 그 모습을 가장 보이지 않는 시간.
빛을 잃은 조명들로 하여금 우리가 거니는 거리는 민낯을 드러내게 된다. 화려한 조명 뒤에 숨겨져 있던 거리의 실체.
빛을 뿜는 것은 오직 가로등과 누구에게나 평등한 편의점들뿐, 이 시간에서만큼은, 격식을 차리고 대접을 받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112
→ 정영은 * 고병
조하영 * 남수아
이성희 * 박재현
병석 * 윤정운 *
아 * 신유정 *
현 * 이지수
* 편집: 남수아
114
가지 말라고 너와 함께하고 싶다는 나의 무수한 고백이 무색하듯이 너는 그렇게 떠났다. 잠깐이라도 좋았다. 아주 잠깐 이어도 너라서 행복했다. 네가 떠난 그 자리에 쓸쓸함과 차가움 만이 나를 감싼다.
가을
어두운 천으로
첫눈
세상이 가려 있을 때쯤, 저만치 하얀 빛들이 반짝이며 나를 건드리기 시작했다. 나를 건드리고, 장난치고, 나를 너로 물들여 안아주었다.
부서지는 햇빛 가루들 방안에 뿌려지고 따스한 공기만이 남아 마음 깊이 채워진다. 하루 종일 쌓이다 내 마음 속 터져 나오는 어둡고 칙칙한 빛깔들이 어느새 예쁘게 물들어 퍼져나가고 입가에 머금은 미소와 함께 포근한 유혹 속에 빠져든다. * 차가운 바람 속 꼭 잡은 두 손. 드넓은 푸르름. * 부서지는 햇빛 빤짝이는 유리 오후 4시
정영은
한편의 어둠 조각
116
나는 너에게 사과를 주었는데 너는 나에게 콩을 주었다. 왜 내가 준만큼 주지 못할까 왜 너는 콩을 준 걸까 아마도 나는 사과나무이고 너는 콩나무 인가보다. 서로 가장 소중한걸 주었을 뿐이다.
콩의 사과
바다
정영은
바다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맑고 깨끗한 바다, 푸르고 넓으며 끝없는 바다, 고요하고 조용한 바다, 어떠한 파동에도 금세 잠잠해지는 바다, 어쩔 땐 걷잡을 수 없이 성을 내는 바다, 모든 것을 다 집어삼키는 바다, 컴컴한 어둠이 몰려오면 걷잡을 수 없이 무서운 바다, 나는 지금, 어떤 바다일까.
118
스읍
삶과 죽음은 분리될 수 없다.
숨을 길게 들이쉰다.
죽음이 존재하기에, 삶이 존재한다. 둘은 영원한 남매지간
후짧게 숨을 내뱉고, 다시 스읍 후 타닥 탁 오늘은 몸이 가볍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를 마저 뛰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스읍, 후 지끈거리던 머리가 차분해졌다.
나의 달리기
삶
쉼 없이 돌아가는 아이의 눈망울
왔다.
아빠는 담는다
드디어 그녀가 도착했다
애쓰지 않고
그토록 그리웠던 그녀
부성애
그녀와 함께 아침을 맞이한다. 포근하다. 함께한 하루가 금방 지나갔다. 눈 깜빡할 새 내일이면 그녀를 붙잡고 하루만 더, 하루만 더, 아쉬움에 가득 찬 표정으로 그녀에게 묻는다. 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발걸음을 나선다. 주말
고병석
야속한 나의 주말.
120
가깝고도 먼 길 얼마나 더 가야 나타날까 헤매는 길에서 출구를 찾는다 밝게 빛나는 길 그러나 잡을 수 없는 길 오늘도 헤맨다. 출구를 찾아서
길
고병석
122
말할 수 없는 거대함 옥죄어 오는 압박 입을 열어야 한다는 내가 만든 알 수 없는 불안감
운율에 맞추기보단 말을 간결하게 써보는 것이 더 이로울지도 모른다
침묵
시 연습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글을 쓰려니 마치 한석봉이 된 것 같아 무제
윤정운
스스로가 우습기 짝이 없다
124
네모 안의 점 버스 자리 가운데 나 숫자들 사이의 하나 번호 34 딱히 특별한 게 없는 것을 느낄 때 고독을 느낀다. 꺾인다.
좌석 34번
윤정운
126
한때는 너와 함께 우산을 쓰고 걷고 싶어서 우산을 안 가져왔다고 거짓말을 한 적이 있는데 이제는 다른 거짓말들을 나열하게 돼 너와 같이 있을 때도 지루함을 애써 감추지 않아 우리는 왜 이렇게 된 걸까 왜 사랑은 변하는 걸까
작은 섬 마을 사랑은 은유 시는 낭만
비 오는 날의 거짓말
일 포스티노
바쁜 척 그만하고 나 좀 고쳐줘요 비올 땐 날 보지 못하겠지만 밝을 땐 꼭 날 생각해줘 뭔가를 고치기 위해선 전부 분해한 다음 문제가 뭔지 알아야만 해 가슴 한편이 아린다 그의 눈빛은 줄곧 공허했다 모든 게 은유가 됐네요 데몰리션
메기
안부를 전하며, 데이빗 C 미첼
믿음은 어렵고 의심은 또 너무 쉽고
조하영
굴레와 구덩이 128
한적한 북촌의 골목
이건 처음 먹어보는 맛이야
작은 가게
아니 근데 이건 천국의 맛이야
더 마틴 믿기 어렵지만 얼른 또 베어 문다 문이 열려있고
그때 눈에 보이는 재료 원산지들
들어가면 아저씨가 계신다
그래 이건 프랑스의 맛이야
아저씨 이름을 모르니까
프랑스를 안 가봤지만
마틴 아저씨라 해야지
이건 지금 프랑스 거리에서 여행 중에 먹는 젤라또의 맛이야
마틴 아저씨는 친화력이 좋다 아마 인기가 많을 거야
마틴 아저씨 고마워요 북촌에서 프랑스를 느끼게 해주어서
떨리는 마음으로 서툴게 주문을 한다
마틴 아저씨는 아마 천사 일거야
마틴 아저씨가 묻는다
천국의 맛을 가져온 천사
정말 이거 먹을 거니 네 먹을래요
환상의 젤라또 또 먹고 싶다
마틴 아저씨는 이제 셰프가 된다 아마 오늘 오전에 구운 크루아상을
천국으로 가는 문
반으로 쓱싹 가른다
더마틴
그리고 그 위에 쫀득한 젤라또를 듬뿍 얹어주지 그리고 그 위에 올리브유를 뿌린다 그리고 숙성된 빨갛고 너덜한 하몽을 척척 올린다 그리고 가차 없이 후추를 뿌려버리지 후추는 두 가지 맛 떨리는 마음으로 받은 샌드위치 아저씨 사진 찍고 먹어도 돼요? 정성스레 만들어주신 샌드위치 허락받고 젤라또가 녹기 전에 후다닥 찍는다 내 이에 금방 부서지는 크루아상 차가운 젤라또가 내 혀에 가장 빨리 그리고 오래 남는다 짭짤한 하몽과 향기로운 올리브유 젤라또와 올리브유라니 마틴 아저씨는 천재 아니면 괴짜야 거기에 후추가 풍미를 살려준다
더마틴천국
영화동 골목길 작은 식당 라프란스로 오세요 아보카도 잎이 환영해주는 곳 테이블은 세 개 메뉴는 두 가지 구운 채소 카레와 매주 바뀌는 오늘의 요리 구운 채소 카레는 하얀 밥이 동그란 언덕처럼 얹혀있고 주위를 노란 카레가 강처럼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 위에는 알록달록 쪽배 같은 구운 채소들이 동동 띄어져 있어요. 옆에는 바게트 빵이 살짝 얹혀있습니다. 이번주 요리는 가자미 커틀렛 넙데데한 가자미가 바삭하고 구워져 수제 타르타르 소스가 윤기있게 뿌려져있습니다 슥슥 잘라 소스를 듬뿍 묻혀 입안에 넣으면 부드러운 가자미살이 입안에서 녹으면서 타르타르 소스 안 콘 옥수수가 톡톡 터집니다 중간중간 샐러드를 먹으며 입안에 싱그러움을 채워줍니다 따뜻한 요리들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사장님 취향의 노래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옵니다 노을이 지던 하늘은 어느새 남색이 되었고 우리는 핑계를 대며 돌담길을 걷습니다. 따뜻한 포만감을 주는 라프란스
조하영
작지만 선물 같은 곳 라프란스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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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꾼은 집으로 삐걱 나무꾼은 집으로 삐걱 창이 대답한다 문을 쾅! 삐걱 살짝 삐걱 나무꾼은 창을 떼어 버렸다. 이제 창은 소리가 없다. 밤새 바람과 부엉이와 내가 삐걱
뺨에 박힌 가시 홀연히 사라져버린 밤 그것은 혀의 존재감까지 훔쳐가 버렸다.
창은 사실 소리가 없다
존재
관장님 실력이 늘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어느 순간 짜증이 확 나면 돼. 전 관장님도 좋고 언니들도 좋고, 맨날 맨날 재밌는데요.. 어느 순간 당혹감에 짓눌린 머리 항복의 배 불굴의 가슴 도대체 왜? 이 모든 게 불편해진 순간 어느 순간
남수아
난 이때를 기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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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괜찮아졌어 정말로 이상하리만큼. 다음 고통을 기다리고 있어. 우리는 연속성 안에 살잖아.
열차
남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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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란 바다를 바라보던 새파란 너의 눈망울을 나는 잊지 못한다. 새하얀 모래사장을 뛰놀던 새하얀 너의 웃음을 나는 잊지 못한다. 다채롭게 빛나던 너의 나날들을 우리의 도화지에 오롯이 옮겨 담을 수만 있다면.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 저 구석 한편에 밀어두었던 구겨지고 먼지가 쌓인 도화지를 발견했을 때 그 도화지에 담긴 너의 색깔은 여전히 선명한 빛을 내고 있을 거란 걸 너는 잊지 말아라. 끊임없이 갈고닦는다. 내가 베여나가지 않기 위해 내가 상처 나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갈고닦는다. 내 속이 갉고 닳은 것도 모른 채
도화지
여름이었다. 쏟아지는 장대비에 구멍 난 우산을 꺼내들었다. 올려다 본 구멍에 가득 찬 내 회색빛 하늘 커다란 구멍으로 빗줄기가 쏟아져 내린다. 구석구석을 타고 저 바닥으로 바닥으로 흘러내린다. 한여름에 내린 겨울비에 나는 이내 온몸이 얼어붓는다. 겨울비
신유정
추운 여름이었다.
136
계절이 바뀌었다. 어김없이 찾아온 감기가 날 헤집어놓는다. 이번엔 조금 덜 아플까 날 비웃기라도 하듯 코 끝이 시려와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손바닥을 타고 지난 계절의 온기가 조금씩 흘러내린다. 아직도 이렇게 따뜻한데 여전히 이렇게 선명한데 하지만 이내 빠르게 식어버린 온기가 내 코를 더욱 시리게 했다. 계절이 바뀌었다. 어김없는 찾아온 이별이 날 헤집어놓는다.
환절기
날 선 비바람에 나는 점점 아래로 아래로 가라앉는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것 같던 내 어둠 속으로 누군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빛이었다. 내 마음 한편엔 자그마한 뭉게구름이 피어오르고 난 고개를 들어 빛을 올려다보았다. 환하게 웃는 너에게 난 손을 뻗는다. 내 손끝에 핀 무지개
신유정
너라는 무지개.
138
너 말이야 제발 상처 주지 마 아프잖아 나 말이야 아프니까 제발 상처받지 마
집에 돌아왔습니다 가방을 내려놓습니다 씻고 옷을 갈아입습니다 침대를 향해 쓰러집니다 푹신한 매트리스가 몸을 감쌉니다 이제 저는 침대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지금의 저는 마치 화석. 침대와 이불과 공기 그리고 중력 사이에 만들어진 하나의 화석이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1미리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아무도 나를 움직일 수 없습니다 이 편안함 속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화석이 되어갑니다
상처
행복한 화석
알고 있었음에도 조금의 기대와 그것이 꺾였을 때 망가지고 부서지고 겨우 붙잡고 있던 무언가가 산산조각 나 무너지고 있었지만 천연덕스럽게도 썩은 사과
웃어 보였다
식욕의 계절
식욕의 계절 높게 뜬 하늘 아래 기름진 빈 그릇만 남았네
이성희
쌓여가는 낙엽 140
전선 위에 참새들 바람이 분다 하강하는 무리들 낙엽이 떨어지나?
참새
이성희
142
눈이 시리다. 그만 좀 뜨고 있으라고 한다. 눈을 감는다. 오래가지 못하고 다시 떠 버린다. 눈을 감는다. 오래가지 못하고 영원히 감겨버린다.
한쪽눈
한 입 베었다
베었다
그리고 내게 물었다 다시 한 입 베었다 그것은 대답이 되었다 다시 베었다 그것은 날카롭게 나를 지나갔다.
달라 보이니 이제는 비겁해 보여 이제는 눈 가려 이젠 떠나가 이젠 멀리 가 의미 있게 빛나지 넌 아직 데려가
밤
사라지는 게 나는 편해
매일 밤, 여행을 마친다. 벚꽃이 피고 벚꽃이 진다. 그림으로 사람의 모양을
박재현
그려보세요. 144
빛나는 달, 밤의 수놓은 별빛 그곳은 삼공학관.
박재현
146
들려오는 비밀
쭉 뻗은 소나무 옆
날카로운 구름의 낙엽
구불구불하게 얽혀있는
슬픈 눈
이름 모를 나무 소나무 옆
그게 우리
걸어 다니는 솜사탕, '앙'하고 먹으면 피가 날것 같다 조금만 참아야지
솜사탕
바람에 휘청이는 소나무
훌쩍이는 너
모자를 쓰는 손
빨개진 신발
넌 어디에
머리카락이 주륵 떨어진다 흐려진 몸은 하늘로 올라가 해를 옆에 두고 싶어 한다 너는 혹여 녹아 없어질까 봐 먹구름
이지수
감기약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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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양말 한 짝 혹시 몰라 나무 위로 올라간다 너는 두 발의 양말을 풀어준다 그중에서 돌아온 건 하나뿐 "너는 좋겠다 짝이 생겨서" 나무 위의 양말에게 말했다 "..." 양말은 아무 말도 없었다
...
고양이처럼 지나가는 빛 뜨거운 코스모스 차가운 컵
이지수
150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