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 가는 길
10과. 선조들의 유산을 보존하려는 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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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선조들의 유산을 보존하려는 노력
Section 1 유산의 보존과 활용 Section 2 유산과 평화 Section 3 최고의 유산인 평화
핵심 요약 (Abstract)
선조들의 고유한 정신과 문화가 녹아 있는 유산(遺産)은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 따라서 각국은 자국의 역사가 오롯이 담긴 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힘쓰고 있으며, 유네스코도 ‘탁월 한 보편적 가치’를 지닌 유산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해 모니터링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분 쟁과 전쟁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인류의 유산이 소실되었으며, 유산의 소실은 공동체의 문화와 정 체성 위기로 이어졌다. 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노력은 무너진 공동체 복원의 구심점이 되어, 구성원 의 유대감을 강화하고, 정체성을 회복시켜준다. 또 유산은 새로운 발전과 도약의 원천이 된다. 이 러한 과정은 결국 평화를 증진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평화는 인류가 추구하는 모든 아름다운 가치 를 꽃피울 수 있는 근간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세계평화이 다. 인류 역사상 최고로 고취된 인권 의식과 평화에 대한 전 지구적 공감대를 바탕으로, 세계평화 를 이루어 영원한 유산으로 물려주자.
우리 모두에게는 우리의 유산을 알고,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자하는 갈망이 있습니다. In all of us there is a hunger, marrow-deep, to know our heritage, to know who we are and where we came from. ㅡ 알렉스 헤일리 (미국 소설가, 1921~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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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산의 보존과 활용
01 SECTION
Section 1
유산의 보존과 활용 # 유산이란 무엇이며, 왜 보존하고 활용해야 하는가?
유산은 후대에 상속, 계승될 만한 특별한 가치를 지닌 문화적 소산 을 말한다. 유산의 개념을 확대하면 ‘정신적 가치’와 더불어 ‘사람’ 까지도 유산에 포함된다. 지구촌에는 선조들이 남긴 수많은 유산이 존재하며, 각국은 유산을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유산의 개념과 중요성, 종류, 유산의 보존, 유산을 활용하기 위한 노 력에 대해서 알아보자.
1. 인류의 유산 1) 유산의 개념과 중요성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는 선조들이 물려준 유산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매일 사용하는 언어도 선조로 부터 물려받은 유산이며, 치즈나 버터, 김치 같은 음식도 선조들의 제조 방식을 습득하고 발전시켜 만든 것이다. 학교에서 배우는 학문 도 이전 세대가 연구하고 정리한 지식을 다음 세대에게 가르치는 것 이다. 또 의복이나 건축물에도 선조들의 삶의 흔적이 남아 있다.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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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럼, 우리는 선조들의 유산과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유산과 함께 호흡하며, 상호작용하고 있다.
유산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용어의 의미를 알아볼 필 요가 있다. ‘문화유산(Cultural Heritage)’이라는 용어가 통용되기 전에는 ‘문화재(Cultural Property)’라는 용어가 일반적으로 사용 되었다. 문화재는 문화와 재산의 합성어로, 국가 또는 민족의 재산 이라는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1954년, 헤이그에서 채택한 ‘무력 충 돌 시 문화재 보호를 위한 협약(Convention for the Protection of Cultural Property in the Event of Armed Conflict)’과 1970년에 제16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한 ‘문화재 불법 반·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Convention on the Means of Prohibiting and Preventing the Illicit Import, Export and Transfer of Ownership of Cultural Property)’에는 문화재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그러나 1972년에 유네스코에서 채택한 ‘세계문 화유산 및 자연유산 보호에 관한 협약(Convention Concerning the Protection of the World Cultural and Natural Heritage)’부 터는 유산이라는 용어가 국제회의 석상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되었 다. 현재는 유산이라는 용어가 좀 더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문 화유산은 유산적 관점을 강조한 용어로, 문화재보다 좀 더 넓은 의 미로 사용되며,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것 중 역사적, 예술적, 학문적 으로 가치 있는 모든 것을 뜻한다.
다음으로 유산의 중요성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유산에는 집단의 고유한 정신과 문화, 역사가 녹아 있다. 유산은 집단의 정체성이 응 집된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유산을 통해 사람들은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등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답 을 찾는다. 예를 들면,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유산은 그 유산을 공유 한 국가나 민족의 자부심을 고취하고, 정체성 형성에 큰 영향을 미 치고 있다. 또 유대인은 영토 없이 약 2,000년 동안 세계 각지에 흩 어져 살았지만, 토라나 탈무드 같은 유대인의 유산은 그들의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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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산의 보존과 활용
을 무려 2,000년 동안이나 유지해주었다. 반대로 유산이 소실되면, 정체성도 함께 희미해지는 경우가 많다. 미국 내 아메리카 원주민 (Native Americans in the United States)은 초기 미국 정부의 탄 압, 폭력, 강제 이주 정책1) 등으로 거주지와 유산의 대부분을 잃어 버렸다. 그 결과, 대다수 원주민은 민족 정체성까지 함께 잃어버렸 다. 현재 미국 내 아메리카 원주민은 약 500만 명으로 추산되며, 지 금까지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일부 원주민은 유산의 보호와 복원 에 힘쓰고 있다.
유산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이어주 는 매개체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캄보디아의 앙코르와 트는 15세기에 멸망한 크메르 왕국이 당시 얼마나 거대한 제국이었 는지를 확인해준다. 1860년, 프랑스의 식물학자 앙리 무오는 앙코 르와트를 발견한 뒤 “솔로몬 왕의 신전에 버금가고, 미켈란젤로처럼 뛰어난 조각가가 새긴 것 같다. 이것은 고대 그리스, 로마인이 세운 것보다도 더 장엄하다. (One of these temples—a rival to that of Solomon, and erected by some ancient Michael Angelo— might take an honourable place beside our most beautiful buildings. It is grander than anything left to us by Greece or Rome, and presents a sad contrast to the state of barbarism in which the nation is now plunged.)”고 말했다. 최근의 항공 레 이저 측량 결과와 발굴 데이터에 따르면 13세기 앙코르 유적과 그 주변에는 90만 명 정도의 인구가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2) 당시 파리나 런던 같은 대도시의 인구가 10~20만 명이었다는 사실과 비 교하면 크메르 제국이 얼마나 강대했는지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20세기 후반, 캄보디아는 십수 년 동안 내전을 겪었다. 내전으로 인 한 물리적·경제적·인적 파괴를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 중 하나가 바 로 앙코르와트였다. 앙코르와트 복원 및 보존 사업을 통해 분열되었
1 2010년 미국 정부와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초기 정부가 원주민을 탄압하고 강제 이주 시킨 점을 공식 사과했다.
던 민심을 모을 수 있었고, 스스로 자랑스러운 국민이라는 자의식도 가질 수 있었다. 이렇게 앙코르와트는 과거의 크메르 제국과 현재의 캄보디아를 이어주는 동시에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도약하는 발판이
2 https://www.archaeology. org/news/9681-210510cambodia-angkorpopul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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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고 있다.
2) 유산의 종류 유산의 분류와 관리 체계는 국가마다 조금씩 차이를 보인다. 따라 서 여기서는 유네스코의 유산 분류 체계를 바탕으로 유산의 종류를 소개하고자 한다. 유네스코 등재 유산은 형태에 따라 ‘세계유산 (World Heritage)’, ‘무형문화유산(Intangible Heritage)’, ‘세계기 록유산(Memory or the World)’ 세 가지로 구분된다.
‘세계유산’은 각국의 부동산 유산 중 탁월한 보편적 가치 (Outstanding Universal Value, OUV)를 지닌 것을 말한다. 세계 유산은 크게 ‘문화유산’, ‘자연유산’, ‘복합유산’으로 나뉜다. 문화유 산은 역사, 예술, 학문적으로 뛰어난 기념물, 건축물, 유적지 등을 말 하며, 로마의 콜로세움이나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등이 등재되어 있다. 자연유산은 과학상, 보존상, 미관상 뛰어난 자연 지역이나 자 연 유적지를 말하며, 브라질의 이구아수 폭포, 미국의 그랜드 캐니 언 등이 등재되어 있다. 복합유산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특징을 동시에 충족하는 유산을 말하며, 터키의 히에라폴리스-파묵칼레, 페루의 마추픽추 등이 등재되어 있다. 2011년 7월 현재, 세계유산 은 전 세계 167개국에 분포되어 있으며, 총 1,121점이 등재되어 있 다. 그중 문화유산이 869점, 자연유산이 213점, 복합유산이 39점이 다. 한편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은 총 53점이다.
‘무형문화유산’은 각국의 전통문화를 의미하며 각종 지식과 기술, 공연예술, 문화적 표현 등을 아우른다. 무형문화유산은 사람을 통해 생활 속에서 주로 구전에 의해 전승되어왔다. 무형문화유산은 ‘긴급 보호가 필요한 무형문화유산목록’,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으 로 분류해 등재하고 있다. 대표적인 무형문화유산으로는 스페인의 플라멩코, 중국의 서예, 한국의 아리랑 등이 있다.
‘세계기록유산’은 1992년부터 유네스코에서 진행하고 있는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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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보존사업을 의미한다. 이 사업의 목적은 첫째, 전 세계 기록유산 의 보존을 돕는 것, 둘째, 기록유산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는 것, 셋 째, 기록유산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는 것이다. 기록유산의 범주는 양피지나 돌에 새겨진 기록부터 도서, 신문, 그림, 음악, 영 상에 이르기까지 매우 폭넓다. 대표적인 세계기록유산으로는 영국 의 ‘대헌장(Magna Carta, issued in 1215)’, 괴테의 자필 원고 등이 포함된 ‘괴테 문학 유산(The literary estate of Goethe in the Goethe and Schiller Archives)’ 등이 있다.
그림 1-1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문화유산)
그림 1-3 미국 그랜드캐니언 (자연유산)
그림 1-2 페루 마추픽추 (복합유산)
그림 1-4 스페인 플라멩코 (무형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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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분쟁과 전쟁으로 잃어버린 유산 잘 보존되어 후대에 전해진 유산도 있지만, 유실되거나 파괴되어 후대에 전해지지 못한 유산도 있다. 후자는 대부분 분쟁과 전쟁으로 국가가 멸망한 경우에 발생했으며, 간혹 특정한 정치적 목적에 의해 유산이 파괴된 경우도 있다. 인류의 소중한 유산을 잃어버린 안타까 운 몇 가지 사례를 통해 유산 보존의 필요성에 대해 알아보자.
1) 사라진 잉카 문명 1438년부터 1533년까지 존재했던 잉카 제국3)은 당시 남아메리 카에서 가장 크고 발전한 문명국가였다. 제국의 중심지는 쿠스코였 으며, 영토는 현재의 페루를 중심으로 칠레, 에콰도르, 볼리비아, 아 르헨티나, 콜롬비아에 걸쳐 있었다. 잉카 제국은 에콰도르에서 칠레 까지 이어지는 약 3,250마일이나 되는 도로를 만들었고, 쿠스코와 마추픽추 등의 유적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매우 뛰어난 석재 건축술 을 가지고 있었다. 또 잉카 제국은 엄청난 양의 황금과 그 황금을 이 용한 정교한 공예품으로도 유명했는데, 이 황금이 바로 스페인 정복 자를 불러온 원인이 되었다.
스페인의 아즈텍 정복 이후 더 남쪽으로 가면 황금으로 가득 찬 전 설의 도시 ‘엘도라도’가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엘도라도를 발견하 기 위해 스페인 정복자 프란시스코 피사로(Pizarro González)가 남아 메리카를 탐험하던 중 1526년에 잉카 제국을 발견했다. 그리고 피 사로는 1533년에 잉카 제국을 멸망시켰다. 잉카 제국의 마지막 황 제인 아타우알파(Atahualpa)는 피사로의 군대에 붙잡혀 포로가 되 었는데, 자신을 풀어주는 대가로 방을 한가득 채울 수 있는 황금을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황금을 받은 피사로는 아타우알파 황제를 풀 어주지 않고 죽였다. 황제의 죽음 이후 잉카 제국은 멸망하게 되었 고, 엄청난 양의 황금이 유럽 각지로 옮겨졌다. 이후 약 300년 동안 스페인이 통치하면서 수많은 잉카 제국의 도시가 파괴되고, 유산이 유실되었다. 해발 2,430m 산꼭대기에 만들어진 도시 마추픽추는
3 잉카제국의 시작을 13세기 초 쿠스코 왕조로 보기도 한다. 잉카제국은 1533년에 멸망했 지만 이후 잔존세력이 남아 스페인에 대항했으며, 그들마 저 1572년에 완전히 멸망해 역사에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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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년 미국의 탐험가 하이럼 빙엄(Belmond Hiram Bingham)에 의해 재발견4)되기 전까지는 완전히 버려진 상태였다. 잉카 제국의 마지막 수도이자 최후의 저항지인 빌카밤바(Vilcabamba)도 폐허 인 상태로 방치되었고, 1964년에야 미국의 탐험가 사보이(Douglas Eugene Savoy)가 재발견하고 이 유적이 빌카밤바의 흔적임을 공식 적으로 증명해냈다. 황금에 대한 탐욕으로 시작된 침략으로 잉카 문 명은 완전히 파괴되었고, 수백 년간 잉카 문명은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하지만 20세기부터 본격적으로 발굴, 복원 사업을 추진 한 결과 다행히도 지금은 전 세계인이 잉카 문명의 유산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2)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세계유산의 위기 2021년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orld Heritage Committee)에서 지정한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List of World Heritage in danger)’에는 총 53개의 유산이 등록되어 있 다. 2013년, 유네스코는 시리아가 보유한 세계유산 6개 중 6개 전 부를 내전으로 파괴될 위험이 있다고 판단하고 위험 목록에 등록 했다.
위 6개 세계유산의 상황을 살펴보면, 시리아 남부의 ‘보스라 고대 도시 유적(Ancient City of Bosra)’의 로마 시대 원형 극장은 전투 중에 훼손되었고, 시리아 서부에 있는 십자군 전쟁 당시 건설된 ‘기 사의 성채와 살라딘 요새(Crac des Chevaliers and Qal’at Salah El-Din)’도 비행기 폭격으로 일부가 파괴되었다. 2015년에 극단주 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는 ‘팔미라 유적(Site of Palmyra)’의 ‘ 벨 신전(Temple of Bel)’과 고대 묘지, 개선문, 조각상 등을 의도적 으로 파괴했다. 가장 큰 피해를 당한 지역은 격렬한 시가전과 공습 이 빈번하게 벌어진 알레포이다. 오스만 제국 시절 콘스탄티노플, 카이로 다음으로 제국 제3의 도시였던 알레포는 구도심 전체 (Ancient City of Aleppo)가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알레포 의 상징과도 같은 ‘알레포 대 모스크(Great Mosque of Aleppo)’는
4 마추픽추의 존재는 잉카 제국 멸망 후 주변 현지인에게 간간 히 알려져 있었지만, 아무도 살 지 않고 버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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탱크의 포격으로 첨탑이 부서지는 등 예전 모습을 알아볼 수 없을 정 도로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은 10년 동안 내전을 지속할 만한 군사력이 나 경제력이 없기 때문에, 주변국의 무기 지원과 자금 조달에 의존 해 전쟁을 계속하고 있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안타깝게도 시 리아 국민이다. 시리아 국민은 목숨도 재산도 잃고, 그들의 소중한 유산까지도 잃고 있다.
그림 1-5 파괴되기 전의 알레포 대 모스크
그림 1-6 시리아 내전으로 파괴된 알레포 대 모스크
3) 일제강점기에 잃어버린 유·무형 유산 20세기 초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래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근대화에 성공해 강대국으로 떠올랐고, 현재의 한국과 중국 등 광대 한 영토를 식민지화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독일, 이탈리아 와 함께 추축국으로 참전해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의 여러 국가를 침 략했다. 이 중 한국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6년간 일제에 강제 점령을 당했다. 이 시기에 한국의 수많은 유산이 해외로 약탈 및 유 출되었으며, 남은 유산도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대표적으로 조선 시 대 왕궁인 경복궁에는 원래 509동의 건물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 를 지난 후에는 40동만이 남았다. 약 92%가 파괴된 것이다. 한국 국 외소재문화재재단의 2021년 4월 발표에 의하면, 아직도 약 20만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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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유산이 해외에 있으며, 그중 43%인 약 89,000점이 일본에 있 다.5) <타임(Time)>지 2002년 2월 기사에서는 나치가 약탈한 유산 은 환수 논의가 활발히 되었지만, 같은 시기 일제가 약탈한 유산에 대한 환수 논의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6)
침략과 전쟁으로 잃어버린 것은 유형유산만이 아니다. 더 심각한 피해는 언어, 문화, 풍습과 같은 무형유산의 파괴와 훼손에 있다. 1940년, 조선총독부7)에서 발행한 <조선에서의 국민정신 총동원(朝 鮮に於ける國民精神總動員])>에는 “내선일체(內鮮一体: 일본어)는 반도 통치에서의 최고 지도 목표이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내선일 체’란 일제가 한반도를 완전히 통합하고자 내세운 표어로, 곧 일본 과 한국이 한 몸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는 한민족의 정체성을 희 석해 일제로 편입하려는 민족말살정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이를 위해 먼저 한글과 한국어 사용을 금지했다. 한글로 발간되는 신문과 잡지를 전면 폐간했으며, 한글 학회 간부들을 모두 잡아들였다. 학 교에서는 일본어와 일본 역사만을 가르쳤다. 또 학생들은 아침마다 일본 천황에게 충성한다는 내용의 ‘황국 신민 서사’를 낭독해야 했 다. 일제는 모든 한국인의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는 창씨 개명을 강요했으며, 1940년대에 들어서는 징병제를 실시해 한국 청년들을 강제 징용해 전쟁에 투입했다. 일제가 저지른 최악의 만행은 위안부 이다. 일제는 취업을 시켜준다는 말로 위장해 한국 여자들을 강제로 군부대로 연행했고, 일본군의 성노예로 삼았다. 이렇게 한국은 36 년 동안 인적, 물적, 정신적, 문화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유· 무형의 수많은 유산을 잃어버렸다.
이런 역사는 비단 한국에서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역사 속에서 정 복자가 피정복민의 말과 글을 없애고, 재산과 유산을 수탈하며, 역 사를 왜곡해 민족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시도는 수없이 많았다. 이로
5 http://www.overseaschf. or.kr/front/comm/ htmlPage.do?H_MENU_ CD=100211&L_MENU_ CD=10021101&SITE_ ID=KOR&MENUON=Y&SE Q=86 6 A Legacy Lost, By DONALD MACINTYRE Seoul Monday, Feb. 04, 2002
인해 많은 민족이 생활의 터전과 고유한 문화를 잃어버리고 오랫동 안 고통받았다. 심지어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도 잃어버렸다. 더는 한 국가의 이익을 위해 타국의 문화와 유산을 파괴하는 몰상식한 일
7 일본 제국이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체결일부터 1945년까지 한반도에 대한 통치를 위해 운 영하던 직속기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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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벌어져서는 안 되며, 서로의 문화와 유산을 존중하는 공존과 상 생의 길로 나가야 한다.
3. 유산의 보존과 활용을 위한 노력 최근에는 유산의 보존과 활용이 선택 사항이 아닌 해당 국가의 지 속가능발전을 달성하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인식이 전환되는 추세 이다. 마야 문명의 보존을 위한 공동 협력 사례와 유산의 활용이라 는 두 가지 내용을 통해 유산의 보존과 활용이 지속가능발전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살펴보자.
1) 마야 문명의 발굴과 보존을 위한 공동 협력 마야 문명은 중앙아메리카의 멕시코,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벨리 즈, 온두라스를 중심으로 기원전 1500년 무렵부터 17세기까지 존 재했던 문명이다. 독자적인 문자 체계를 갖추고 있었으며, 매우 높 은 수준의 예술, 건축술, 달력, 수학, 천문학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18세기에 마야의 유물을 스페인으로 약탈해간 안토니오 델 리오 (Antonio del Río)는 마야 문명을 만든 존재가 분명 고대 그리스인이 나 로마인이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렇게 착각할 만큼 마야 문명의 예술성과 기술력은 뛰어났다. 대부분의 고대 문명이 거대 왕국을 이 루었던 것에 비해 마야 문명은 티칼, 코판, 팔렌케, 치첸이트사, 마 야판 등 도시 국가의 연합 형태로만 존재했다. 그리고 도시 국가들 사이에는 끊임없이 전쟁이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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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7 마야 문명 지도
아즈텍과 잉카는 스페인 정복자에 의해 멸망당한 역사적 기록이 남아있지만, 마야의 정확한 멸망 원인에 대해서는 남아있는 기록이 없다. 16세기 스페인 정복자가 유카탄 반도에 도착했을 때 마야 도 시는 대부분 폐허인 상태로 버려져 있었고, 남아있던 소수의 도시도 정복자와 전염병에 희생되어 역사에서 사라졌다. 마야 문명은 950 년 무렵에 급격히 쇠퇴해 멸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멸망의 원 인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그중 미국 지리학 자 재레드 다이아몬드(Jared Mason Diamond)는 <문명의 붕괴 (Collapse: How Societies Choose to Fail or Succeed)>에서 마 야 문명의 붕괴 원인을 5가지 요인의 복합적 작용으로 설명했다. 5 가지 요인은 가용자원을 넘어선 인구 증가, 삼림 파괴와 농지 부족, 전쟁 증가, 기후 변화와 대 가뭄, 지도자들의 탐욕과 장기적 안목 부 족이다. 그중 학계에서는 950년 무렵의 대 가뭄을 문명 붕괴의 결정 적 원인으로 꼽는다. 비록 마야 문명은 멸망했지만, 마야의 후손까 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마야인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들어온 16세 기 이후로 오랫동안 학대와 학살 등 끔찍한 고통을 겪었지만, 지금 도 과테말라, 벨리즈, 멕시코 유카탄 주에는 마야어를 사용하는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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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인이 살고 있다. 2018년 과테말라 인구 조사에서는 인구의 약 42%인 620만 명이 스스로 마야인이라고 응답했다. 2021년 5월 3 일, 멕시코 오브라도르(Andrés Manuel López Obrador) 대통령은 지 난 5세기 동안 원주민인 마야인에게 가해진 학대에 대해 공식으로 사과했다. “(스페인의) 정복과 3세기 동안의 식민지배, 멕시코 독립 이후 2세기 동안 외국 정부들과 멕시코 정부가 마야인들에게 저지 른 끔찍한 학대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합니다. (We offer the most sincere apologies to the Maya people for the terrible abuses committed by individuals and national and foreign authorities in the conquest, during three centuries of colonial domination and two centuries of an independent Mexico.)”8)
본격적인 마야 문명 발굴 작업은 19세기가 되어서야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마야 문명은 수 체계, 달력, 천문학 등이 고도로 발전한 문명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대부분 건축물은 열대 우림 속에 흙 과 나무로 뒤덮여 있었기 때문에, 20세기에 들어와서야 대규모 인 원과 장비를 동원해 발굴을 시작할 수 있었다. 각국 정부의 발굴팀 과 세계의 많은 학자가 참여한 발굴 작업으로 마야의 고대 도시는 조 금씩 옛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마야 유적 발굴 작업은 아직도 시 작 단계에 불과하다. 21세기에 들어와 항공 라이다(Light Detection And Ranging. LiDAR) 기술의 발달로 땅속에 숨어있는 마야 유적 이 새롭게 발견되고 있다. 미국 애리조나대 이노마타 다케시 교수가 이끄는 국제연구팀은 국제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항공 라이다 탐색을 통해 멕시코 타바스코(Tabasco) 지역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것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의 마야 유적을 새롭게 발견했다고 발표했 다.9) 또 과테말라 북부의 밀림 속에는 아직 발굴하지 못한 마야 건축 물이 6만 개 이상 존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10)
마야 문명의 발굴 및 보존 작업은 고고학, 인류학적으로도 중요한 가치가 있지만, 해당 지역의 지속가능발전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각국 정부와 대학교 그리고 연구팀은 마야 문명 발굴, 보존 및 학술
8 https://www.dw.com/ en/mexicos-apology-toindigenous-maya-peopleprogress-or-politicalshow/a-57433490 9 https://www.nature.com/ articles/s41586-0202343-4 10 https://www. nationalgeographic.com/ history/article/mayalaser-lidar-guatemalapacunam
1. 유산의 보존과 활용
적 연구를 위해 공동 협력하고 있다. 또 유네스코는 지금까지 발견 된 마야 유적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해 홍보하고, 유산의 보존에 앞장 서고 있다. 마야 유적은 세계적인 관광지로 개발되어 해마다 수많은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영화, 게임, 도서 등 각종 문 화 콘텐츠의 핵심 소재로도 활용되고 있다.
2) 유산의 활용 유산의 활용은 유산이 지닌 가치의 확대 또는 재창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유산의 활용은 원형 보존을 전제로 한다. 최근에는 유산의 활용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그 이유는 유산 을 활용하는 과정에서 유산에 대한 학문적 가치 재발견, 경제적 가 치 재창출, 일반인의 관심 증가 등 다양한 효과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유산을 활용하는 방법에는 ‘유산교육’, ‘관광’, ‘유산을 활용한 문 화 산업’ 등이 있다. 먼저 ‘유산교육’은 학교나 박물관 등에서 학생과 시민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교육을 말한다. 특별히 유산교육은 유산에 대한 관심과 지 식을 다음 세대에 전달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유산교육을 통해 학 생들은 유산 자체뿐 아니라 유산과 관련된 역사, 문화, 예술, 과학적 지식을 동시에 습득할 수 있다. 유산교육은 교실 수업 외에도 현장 견학, 모의 발굴 체험, 유산 제작 체험 등 다양한 형태로 진행할 수 있다.
‘관광’은 유산을 활용하는 대표적인 방법이다. 이탈리아의 로마, 터키의 이스탄불, 그리스의 아테네,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의 예루살 렘, 이집트의 카이로 등은 도시 자체가 문화유산이라 할 정도로 수 많은 유산이 보존되어 있으며, 전 세계에서 관광객이 끊임없이 찾고 있다. 또 뛰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스위스나 뉴질랜드 같은 국가 도 관광 명소로 많은 사람이 찾는다. 관광은 다양한 서비스를 통해 고객을 만족시키는 산업이기 때문에 숙박, 외식, 쇼핑, 레저 등 지역 사회의 각종 서비스업 발전에도 영향을 준다. 또 유산과 관련한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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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 가는 길
야기를 듣고 체험할 수 있는 강연, 도서, 영상 콘텐츠 산업도 관광 산 업과 함께 발전하게 된다. 유산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 에피소드 등 의 이야기는 유산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이야기를 알고 유산을 보는 관광객은 마치 자신이 그 현장에 와있는 듯한 느낌을 받 아 관광의 즐거움이 배로 늘어난다.
‘유산을 활용한 문화 산업’은 영화, 도서, 음악, 연극, 미술 등의 문 화 산업의 소재로 유산을 활용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내셔널 지오그래픽(National Geographic) 채널에서는 최신 정보와 학계 의 동향을 반영한 다양한 유산 탐험 다큐멘터리를 제작해 전 세계에 방영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쿵푸 팬더(Kung Fu Panda, 2008)>는 중국의 무형문화유산인 쿵푸를 전 세계에 알렸고, 영화 <아바타 (Avatar, 2009)>도 중국의 자연유산인 장가계를 배경으로 촬영한 것으로 유명하다. ‘유산을 활용한 IT 산업’도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세계의 문명 중 하나를 선택해 발전시키는 전략 게임인 <시드마이 어의 문명(Sid Meier's Civilization)>은 1991년에 처음 출시된 이 후 현재까지도 전 세계인이 꾸준히 즐기는 게임의 명작으로 꼽힌다.
이렇게 유산은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앞서 살펴 본 바와 같이 유산의 적극적인 활용을 통해 지속가능발전의 토대까 지 마련할 수 있다. 과거 ‘개발과 보존’의 대립 속에서 많은 유산이 방치되거나 훼손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전 세계 대다수 국가가 유산 의 보존과 활용을 선택이 아닌 필수로 인식하고 있다. 각종 기업과 시민 단체까지도 자발적으로 유산 보호 사업을 후원하고, 각종 캠페 인에 동참하고 있다. 이제 유산의 보존과 활용은 우리 모두가 관심 을 가지고 달성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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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평화로 가는 길
유산은 나의 기반이 되었고, 나에게 평화를 주었다. My heritage has been my grounding, and it has brought me peace. ㅡ 모린 오하라 (아일랜드 여배우, 1920~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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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산과 평화
02 SECTION
Section 2
유산과 평화 # 유산과 평화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인류는 전쟁으로 많은 유산을 잃어버렸고, 심지어 문명 붕괴와 문 화 퇴보가 발생하기도 했다. 유산을 보존하고 활용하기 위해서는 평 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유산과 평화의 연관성을 심층적으로 이해하 고, 유산의 보존과 평화 정착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해 가자.
1. 전쟁 중 유산을 보호하려는 시도 십자군 전쟁(1095~1291년)은 예루살렘을 차지하기 위한 기독교 세력과 이슬람교 세력 간의 전쟁이었다. 예루살렘은 두 종교 모두에 게 중요한 성지였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보호하려는 양측의 노력은 전쟁의 피해를 줄이는 계기가 되었다. 그중 1187년 10월 2일에 진 행된 살라딘(Salah ad-Din)과 발리앙 이블랭(Balian d'Ibelin)의 회담 내용은 주목할 만하다. 살라딘을 중심으로 한 연합 이슬람 군 대는 십자군과의 전쟁에서 연승을 이어갔고, 십자군에게는 더 이상 예루살렘을 방어할 만한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이때 십자군을 이
평화로 가는 길
끌었던 발리앙은 살라딘에게 회담을 요청했고, 살라딘의 천막에서 두 사람의 회담이 성사되었다. 패배를 눈앞에 둔 발리앙은 오히려 이 자리에서 살라딘을 협박했다. 협박 내용은 만약 살라딘이 예루살 렘으로 그대로 진격해온다면, 예루살렘 안에 있는 ‘바위 사원’, ‘알 아크사 사원’ 등 모든 이슬람 성지를 파괴하겠다는 것이었다. 살라 딘은 예루살렘의 정복자가 되겠지만, 살라딘이 정복한 것은 불에 타 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피로 물든 예루살렘이 될 것이라고 협박했 다. 살라딘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것을 본 발리앙은 이어서 포로 협상을 시작했다. 당시 포로의 몸값 시세는 남자는 한 사람당 10디 나르, 여자는 5디나르, 어린이는 1디나르였는데, 당시 십자군이 가 지고 있었던 3만 디나르로 기독교인 약 7천 명을 구출할 수 있었다. 발리앙은 살라딘에게 자신의 사유재산이라도 전부 내놓아 한 사람 이라도 더 구출하겠다고 말했다. 이에 살라딘은 감격했고, 노인과 과부와 고아는 몸값을 받지 않고 예루살렘을 떠날 수 있도록 허락했 다. 결국,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기독교인 중 포로가 된 사람은 한 명 도 없었고, 모두 안전하게 철수했다. 이 에피소드는 양쪽 지도자 모 두 유산의 가치를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만 약 한쪽이라도 유산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면 이 협상은 실패했을 것이다. 나아가 유산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과도 이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유산을 보호하려는 특별한 시도가 있었다. ‘모뉴먼츠 맨(Monuments Men)’으로 잘 알려진 ‘기념물, 미술품, 기록물 전담반(Monuments, Fine Arts, and Archives program, MFAA)’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인 1943년에 연합군 측에서 결성한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한 특수부대이다. 박물관 관장, 큐레이터, 건 축가, 시인, 고고학자, 미술품 복원전문가 등 13개국 350여 명으로 구성된 이 특수부대의 임무는 문화적으로 중요한 구조물, 유물 등이 파괴되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었다. 유산 파괴를 막기 위해 비행기 조종사에게 폭격 시에 피해야 할 지역을 표시한 지도를 만들어 주었 고, 이미 훼손된 곳은 신속히 파악해 복원하기 위한 조처를 했다.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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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유산과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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쟁이 끝날 무렵에는 나치가 약탈한 문화재를 회수하는 쪽에 초점을 맞춰 램브란트,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등의 명작을 회수하 는 성과를 올렸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1944년 2월 18일 연합군은 1,200년의 역사를 가진 몬테카시노 수도원(Abbazia di Montecassino)을 폭격했다. 천 년 동안 이어온 유산을 함부로 파 괴했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는 아무리 전쟁 중이라도 유산을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국제사회의 입장을 확 인해주었다. 모뉴먼츠 맨의 활약은 제2차 세계대전과 같은 대규모 전쟁 가운데서도 유산은 반드시 지켜야 할 소중한 것이며, 무분별한 파괴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경각심을 일깨워주었다.
모뉴먼츠 맨의 정신은 이후 한국전쟁으로 이어졌다. 팔만대장경 이 보관된 합천 해인사 역시 한국전쟁 당시에 폭격당할 위기에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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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다. 1천여 명의 북한군이 해인사에 모여 있다는 첩보를 습득한 유 엔군은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당시 남한의 김 영환 장군은 폭격 지점이 민족 유산인 팔만대장경이 보관된 장소라 는 점을 알고 명령에 따르지 않았다. 또 미군 포병부대 장교 제임스 해밀턴 딜(James Hamilton Dill)은 북한군이 덕수궁12)에 집결해 있 다는 소식을 들었다. 하지만 적군을 소탕하기 위해 고궁을 폭격하면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유산이 파괴될 것은 불 보듯 뻔했다. 그는 동 료 장교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몬테카시노 수도원에 관해 이야기 를 나누었고, 결국 고궁을 보호하기로 결정을 내렸다.
전쟁 중 유산 보호에 대한 공감대는 국지적으로 전투를 중단시키 거나 휴전에 대한 논의를 끌어낼 만큼 강력한 전쟁 억제력을 보여주 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산의 보존을 위한 노력이 전쟁을 미연에 방지한 사례는 아직 찾아보기 어렵다. 유산을 통한 전쟁 예방 효과 가 나타나려면, 유산에 대한 대중의 인식 제고가 더욱 절실하다.
11 대장경(大藏經)은 불경을 집 대성한 경전을 말한다. 팔만 대장경은 현존하는 세계의 대 장경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일 뿐만 아니라 체재와 내용도 가 장 완벽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 어 2007년도에 세계기록유산 으로 지정되었다. 12 대한민국 조선시대의 왕궁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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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 가는 길
2. 유네스코 유산 보호 사업과 평화와의 관계 2015년 11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위험에 처한 문화유산, 전쟁과 분쟁에서 박물관의 역할(Cultural Heritage at Risk, the Role of Museums in War and Conflict)’ 심포지엄에서 이리나 보 코바(Irina Bokova) 전 유네스코 사무총장은 “문화와 유산의 보호 는 회복력, 화해, 평화를 향한 길을 열어주는 인도주의적 안보의 필 수 요소(The protection of culture and heritage is a humanitarian and security imperative that also paves the path towards resilience, reconciliation and peace)”라고 연설 했다.13) 또 2014년 4월, 제네바 대학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는 정치 적, 경제적 합의만으로는 지속가능한 평화를 구축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유네스코의 강한 신념을 강조하면서, “유산 보호는 가치와 정체성을 지닌 인간 생명 보호와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긴급 작전 에 포함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It is therefore critical essential that the protection of heritage be included in emergency operations, as it is inseparable from the protection of human live for which it bears the values and identities.)”고 강조했 다.14)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등재 심사를 담당하는 국제기념물 유적협의회(International Council on Monuments and Sites, ICOMOS)에서는 문화유산과 평화의 연관성에 대한 다양한 연구 결 과를 발표하고 있다. 그 중 ‘평화를 위한 도구로서의 문화유산: 수단 의 예시(Cultural Heritage As a Tool For Peace: A Case of Sudan)’15) 라는 논문에서는 “분쟁 후 상황에서 문화유산은 공동체 를 복원하고, 공동체가 정상 의식을 되찾도록 돕고, 정체성과 다시 연결되도록 하는 끈질긴 수단이 된다. (In post conflict situations, cultural heritage becomes a tenacious means in restoring of communities, aiding them to regain a sense of normality and reconnect with their identities.)”고 발표했다. 위의 발표들은 유 네스코의 유산 보호 사업의 시행 의도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유네 스코의 유산 보호 사업은 단순한 유산의 보존과 활용을 넘어서, 문
13 https://en.unesco.org/ news/protect-heritagenow-resilience-andpeace 14 https://en.unesco.org/ news/irina-bokovaculture-and-heritage-arepowerful-tools-dialogueand-social-cohesion 15 Agarwal, Sharmishtha, Heritage for Peace. In: ICOMOS 19th General Assembly and Scientific Symposium "Heritage and Democracy", 13-14th December 2017, New Delhi, India
2. 유산과 평화
화 다양성 회복을 바탕으로 대화, 화해, 평화의 기틀을 세우는 인도 주의적 사업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유네스코는 전쟁과 폭력의 아픈 기억을 상기시키는 장소를 세계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회복과 평화의 발판을 마련하고 있다. 1979년 유네스코 세계 유산위원회는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 독 일 나치 강제 수용소 및 집단 학살 수용소(1940~1945)’를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했다. 이곳은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학살을 증거하는 장소로서 보존 가치를 인정받았다. 또 1996년에는 일본 ‘히로시마 평화 기념관(원폭 돔)’을 세계유산 목록에 등재했다. 이 건물은 1945 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에 떨어졌을 때 유일하게 남겨진 건 물로, 지금도 폭발 직후의 모습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핵무기의 위력과 참상을 직접 보고, 핵무기의 완전 한 폐기와 세계평화의 중요성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1978년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세네갈의 ‘고레섬(Island of Gorée)’ 은 15~19세기 아프리카 연안에서 가장 큰 규모의 노예무역 중심지 로, 인류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인 아프리카 노예무역 을 상기시키는 곳이다. 1999년에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로벤섬(Robben Island)’은 넬슨 만델라가 거의 20년간 구금되었던 장소로 유명하다. 이 섬은 20세기 아파르트헤이트 정권 하에 정치범을 수용했던 곳으로, 억압과 인종차별에 저항하여 민주 주의가 승리를 거둔 사실을 증언하는 곳이다. 인류 역사의 고통스러 운 장면을 간직한 이 장소들은 전쟁과 차별에 대항하는 보루 역할을 하며, 보다 평화로운 미래를 만들기 위한 역사적 교훈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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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1 아우슈비츠 비르케나우
그림 2-3 고레섬
그림 2-2 히로시마 원폭 돔
그림 2-4 로벤섬
3. 사람이 곧 유산이라는 인식의 확장 2003년, 유네스코 제32차 정기 총회에서 채택된 ‘무형문화유산 보호 협약(Convention for the Safeguarding of the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2조 1항에는 무형문화유산을 ‘공동체, 집단, 때로는 개인이 자신의 문화유산의 일부로 보는 관습, 표출, 표현, 지 식, 기술 및 이와 관련된 전달 도구, 물품, 공예품 및 문화 공간’으로 정의하고 있다. 무형문화유산의 중요성은 무형문화유산을 통해 이 전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정신과 문화, 풍부한 지식, 기술 에 있다. 일반적으로 유형문화유산이 형체가 뚜렷한데 비해 무형문 화유산은 형체가 없는 기억문화 또는 정신문화로, 대부분 ‘전승자’ 라는 매개가 필요하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이로 인해 대부분 국가 에서는 무형문화유산의 보유자를 ‘인간문화유산’으로 지정해 보존
2. 유산과 평화
과 전수에 힘쓰고 있다. 곧, 사람 자체가 정신과 문화를 전달하는 도 구이자 유산인 것이다.
사람은 유·무형문화유산의 창조자이자 다음 세대에 전달하는 연 결점으로서, 정신과 문화, 지식, 기술 등을 담고 있는 살아 있는 문 화유산이다. 특정 무형문화유산의 전수자가 아니더라도, 모든 사람 은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문화와 역사 그리고 각종 지식을 담고 있 다. 사람이 곧 유산이라는 인식의 확장은 유산의 보존에 대한 인식 도 함께 변화시킨다. 사람을 유산이라고 생각하면 사람의 생명을 가 벼이 여길 수 없게 되고, 유산의 보존이라는 개념 안에 전쟁과 폭력, 모든 종류의 차별로부터 사람의 생명과 인권을 보호하는 일도 포함 할 수 있게 된다.
이처럼 유산과 평화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전쟁 중 유산을 지키 려는 노력부터 유·무형문화유산의 창조자이자 전수자인 사람 자체 를 유산으로 인식하고 보호하려는 노력까지, 모두가 평화를 위한 일 이다. 나 자신도 내 삶이 후대에 물려줄 유산이라는 인식을 가질 때 평화는 나에게 최우선으로 필요한 것임을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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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같은 시대, 같은 땅에 하늘의 은혜와 생명의 교훈을 받아 태어난 같은 사람으로서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후대에 유산으로 남겨야 한다. ㅡ 이만희 (대한민국 HWPL 대표,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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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최고의 유산인 세계평화
03 SECTION
Section 3
최고의 유산인 세계평화 # 지금은 세계평화를 이루기에 가장 적합한 때이다.
세계평화는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유산이다. 끝없는 우주 공간 어디에서도 지구같이 아름다운 생명체가 있는 곳은 발견 하지 못했다. 이처럼 아름다운 지구를 전쟁과 파괴의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는 세계평화가 필요하다. 세계평화를 후대에 유산으 로 물려주기 위해서 우리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에 대해 알아보자.
1. 전쟁을 물려받은 인류 전쟁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느냐는 전쟁 발생 가능성에 직접적 인 영향을 준다. 전쟁을 미화하면 전쟁을 예방하거나 불법화하기는 어려워진다. 특히 영토를 확장하거나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침략 전쟁’의 정당성을 인정하는 경우에는 더욱더 그렇다. 또는 한발 물 러서 전쟁을 필요악으로 규정하더라도, 결국 특정한 상황에서는 전 쟁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이 된다.
사람은 누구나 폭력을 사용하고 살인하는 데 거리낌을 가지고 있
평화로 가는 길
다. 따라서 어느 시대에나 전쟁을 시작하려면 폭력과 살인을 합리화 할 수 있는 명분이 필요했다. 침략자에 대항해 생명과 재산을 지키 기 위한 ‘방어 전쟁’은 누구에게나 합당한 명분이었다. 그러나 명확 히 방어 전쟁이라고 말하기 어려운 모든 종류의 전쟁에는 납득할 만 한 명분이 필요했고, 주로 철학자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대 표적으로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On War)>에 나오는 “전쟁은 다 른 수단으로 하는 정치의 계속이다. (War is nothing but a continuation of politics with the admixture of other means.)”, 마키아벨리의 <군주론(The Prince)> 제1장의 “영토를 획득하는 방 법에는 타인의 무력을 이용하는 경우와 자신의 무력을 사용하는 경 우가 있다. (Such dominions … are acquired either by the arms of the prince himself, or of others,)” 등이 전쟁의 명분으로 사용 되었다. 군주론 제3장에는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대해주거나, 짓밟 아 버려야 한다. (Upon this, one has to remark that men ought either to be well treated or crushed,)”와 같이 과격한 표현도 등 장하는데, 주로 전쟁 옹호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심지어 영구평화 론을 주장했던 칸트도 소논문 <추측해 본 인류 역사의 기원 (conjectural beginning of human history, 1786)>에서는 전쟁이 인류의 진보를 위한 불가피한 수단이라고 보았다. 물론 위에 인용한 내용은 해당 철학자의 주장의 일부에 불과하며, 전쟁을 선동하기 위 한 목적이 아닌 객관적 사실의 서술이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그러나 위 내용이 전쟁을 옹호하는 명분으로 사용된 것은 사실이며, 전쟁은 자연스러운 인류 역사의 일부라는 인식을 만들었다.
전쟁에서 발생하는 엄청난 충격과 변화는 시대마다 문학, 음악, 회 화 등 모든 예술 분야의 소재가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작가 호메로 스가 남긴 <오디세이아(Odyssey)>와 <일리아스(Ilias)>에는 음모, 전쟁, 폭행을 일삼는 그리스 신들의 모습이 영웅적으로 묘사되고 있 다. 이런 모습은 <로마 신화(Roman mythology)>에서도 비슷하게 발견된다. 베토벤이 작곡한 <웰링턴의 승리(Wellington's Victory)> 도 나폴레옹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웰링턴 장군을 기념하는 전쟁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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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최고의 유산인 세계평화
악이다. 반대로 자크 루이 다비드(Jacques-Louis David)가 그린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Napoleon crossing the Alps)>은 나폴 레옹을 영웅적으로 묘사한 대표적인 그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 시에 집필되고, 2001~2003년에 영화화된 J.R.R 톨킨(John Ronald Reuel Tolkien)의 <반지의 제왕(Lord of the Rings)>도 판타지 장 르에 속하는 대표적인 전쟁 소설이다. 이 외에도 전쟁을 소재로 한 예술 작품을 언급하자면 끝이 없다. 이런 작품들이 비록 전쟁을 옹 호하거나 전쟁 영웅을 칭송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할지라도, 많은 사람에게 전쟁에 대한 환상과 긍정적 인식을 심어주었다.
전쟁은 놀이 문화에도 깊숙이 스며들어 있다. 고대 그리스의 올림 피아 축제 기간에 행해진 ‘아곤(Agon)’이라는 결투 놀이는 한 쪽이 죽을 때까지 끝나지 않았다.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에서도 검투사 경 기, 맹수와 인간의 싸움, 모의 해전 등이 열렸고, 로마 시민은 이런 전쟁놀이를 즐겼다. 마야 문명에도 오늘날 축구와 비슷한 공놀이가 존재했는데, 이기는 편이나 지는 편 중 한 편은 모두 인신 공양 제물 로 바쳐졌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전쟁은 장난감이나 컴퓨터 게임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제1, 2차 세계대전 때 사용되었던 총, 전투 기, 군함 등의 모형이 아동용 장난감으로 만들어져 판매되고 있다. 중세 시대의 기사나 일본의 사무라이처럼 칼로 사람을 베고, 총을 들고 전투 현장을 실제처럼 체험할 수 있는 컴퓨터 게임도 수없이 많 다. 물론 컴퓨터 게임은 가상에 불과하지만, 시뮬레이션 살인도 뇌 에 영향을 미쳐서 폭력에 대한 민감성을 떨어트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처럼 전쟁과 놀이 문화의 결합은 사람들이 전쟁을 매우 친숙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철학, 예술, 심지어 놀이 문화에 이르기까지 전쟁을 당 연하게 받아들이는 시각은 인류 역사에 뿌리 깊게 박혀 있다. 그리 고 이러한 경향은 시대마다 전쟁을 재생산하는 원인이 되었다. 결코 전쟁은 갈등 해결의 유일한 해법이 아니다. 인류에게는 갈등 해결을 위한 여러 가지 선택지가 존재한다. 우리는 얼마든지 전쟁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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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 가는 길
협상과 대화 등 평화로운 방법으로 갈등을 해결할 수 있으며, 후손 에게 평화를 유산으로 물려주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2. 인류의 영원한 유산 세계평화 제1, 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목격한 인류는 더 이상 전쟁을 영웅 적인 사건으로 바라보지 않게 되었다. 전쟁에 대한 부정적 인식의 확산에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위력의 무기들 곧 핵폭탄, 항공 모함, 전투기, 탱크 등의 등장, 언론과 미디어의 발달로 인한 빠른 전 쟁 소식 공유, 그리고 인류 역사상 가장 고취된 인권 의식 등이 바탕 이 되었다. 그리고 이전과는 달리 종교계, 예술계, 과학계 등 각계각 층에서 시민의 입장을 대변한 전쟁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제1, 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여전히 세계 각지에서는 수많은 전쟁 이 벌어졌다. 이를 경험한 세계인은 전쟁이 교향곡에서 느끼는 것처 럼 웅장하고 낭만적인 일도, 전쟁놀이에서 느끼는 것처럼 친숙하고 자연스러운 일도 아님을 알게 되었다. 팔다리가 떨어져 나가고, 사 랑하는 사람의 처참한 죽음을 지켜봐야 하는 비극임을 깨닫게 되었 다. 전쟁의 현실에 대한 자각은 평화와 안보에 대한 시민의 강력한 요구로 이어졌고, 각국 정부는 무력 사용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신 중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평화에 대한 세계적 공감대는 전쟁 방지 와 평화 유지를 위한 국제기구 유엔을 출범시켰다. ‘세계인권선언’ 과 ‘유엔헌장’을 기초로 75년간 이어온 유엔 체제는 국제 질서 확립 과 세계평화에 더없이 크게 이바지했다. 그뿐만 아니라 많은 비정부 기구가 평화의 눈과 귀가 되어 세계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분쟁을 공론화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지구촌에는 평화의 사각지대가 존 재하며, 현재 진행 중인 분쟁의 해결은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이다.
세계평화는 인류가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다. 세계 평화는 새로운 문화를 꽃피우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이루기 위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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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최고의 유산인 세계평화
천이다. 인류 역사를 돌아보면, 21세기의 인류가 세계평화를 이루 기 가장 좋은 때를 맞이했다는 데에는 이견을 찾아보기 어렵다. 하 지만 위협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21세기의 인류는 핵전쟁으로 다 같이 자멸할 수도 있고, 세계평화를 이루어 지속가능한 발전에 돌입할 수도 있는 갈림길에 서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전쟁과 고통 을 물려주느냐, 평화와 번영을 물려주느냐, 선택은 현재의 우리에게 달려있다. 평화와 번영을 물려주기 위해서는 내가 먼저 평화의 정신 을 가진 평화유산이 되어야 하며, 주인 의식을 가지고 평화문화를 세계에 전파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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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 가는 길
결론
‘문화재(Cultural Properties)’나 ‘보물(Treasure)’과는 달리, ‘유산(Heritage)’이라는 단 어는 ‘잘 보존하고 가꾸어 후대에 전해주어야 하는 것’이라는 미래지향적인 뜻을 담고 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수많은 유산이 방치되거나, 분쟁과 전쟁으로 유실 또는 파괴되고 있다. 마야와 잉카의 예시에서도 보듯이, 유산의 소실은 역사와 문명의 단절로 이어질 수 있으며, 그 후손은 자립과 번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산은 그 안에 담긴 공동체의 고유한 정신, 문화, 가치관, 역사 등으로 인해 값으로 매길 수 없는 가치를 지닌다. 이미 특수한 역사적 상황과 그 시대의 문화를 반영해 만들어진 유산 은 무엇으로도 대체 불가능하며, 공동체의 정체성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또 유산은 과 거와 현재가 단절되지 않도록 연결해주는 매개체이자, 지속가능발전을 촉진해서 더 나은 미 래로 나아가게 하는 발판이 된다. 유산의 중요성을 인식한 각국 정부는 유산 보존을 위한 정 책적,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으며, 유네스코는 유산의 보존과 인류의 평화는 직결된 문제라는 진일보한 인식을 바탕으로 세계유산의 지정과 보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유·무형 유산의 창조자이자 정신과 문화의 전달자인 사람 자체도 귀중한 유산이다. 그리 고 인류와 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세계평화는 가장 넓은 범위의 유산이자, 우리가 후대에 물 려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다. 현재의 인류는 역사상 세계평화에 가장 근접해 있다. 인류가 이 기회를 놓치고 또다시 핵무기와 최신 장비를 동원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간다면, 회복 불가능한 공멸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 그러므로 최고의 유산인 세계평화를 반드시 이 루어 후대에 영원한 유산이 되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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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 가는 길
이미지 출처 그림 1-1 https://cdn.pixabay.com/photo/2012/02/07/17/12/acropolis-12044_1280.jpg 그림 1-2 https://cdn.pixabay.com/photo/2021/02/16/21/53/machupicchu-6022493_1280.jpg 그림 1-3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d/db/Mather_Point.jpg 그림 1-4 https://cdn.pixabay.com/photo/2018/07/12/14/01/dance-3533494_1280.jpg 그림 1-5 Fede Renghino / CC-BY 2.0 /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 thumb/3/34/Great_Aleppo_mosque_176.jpg/1200px-Great_Aleppo_mosque_176.jpg 그림 1-6 Fathi Nezam from Tasnim News Agency / CC-BY 4.0 / https://upload.wikimedia.org/ wikipedia/commons/3/33/Great_Mosque_of_Aleppo_%281395100610143169195452 %29.jpg 그림 1-7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7/7c/Mayas.png 그림 2-1 https://cdn.pixabay.com/photo/2018/06/19/19/31/auschwitz-3485116_1280.jpg 그림 2-2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8/8a/HiroshimaGembaku Dome6747.jpg
그림 2-3 Edouard-Auguste Nousveaux, Le prince de Joinville assistant à une danse dans l'île de
Gorée, décembre 1842,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0/0e/Le_ prince_de_Joinville_sur_l%27%C3%AEle_de_Gor%C3%A9e_en_1842.jpg
그림 2-4 https://image.freepik.com/free-photo/aerial-view-robben-island-location-mostfamous-prison-south-africa_160696-819.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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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91898-09-5 ISBN 979-11-974584-9-1 (세트) Copyright Ⓒ 2021 Heavenly Culture, World Peace, Restoration of Light. All rights reserved. 이 책은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무단복제를 금지하며, 이 책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저작권자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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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0
9 791191 898002
ISBN ISBN979-11-91898-00-2 979-11-91898-00-2 ISBN (세트) ISBN979-11-974584-9-1 979-11-974584-9-1 %28%EC%84%B8%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