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로 가는 길
8과. 타인에 대한 이해와 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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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
타인에 대한 이해와 용서
Section 1 이해 Section 2 용서 Section 3 용서와 평화 Section 4 나로부터 시작하는 용서와 평화
핵심 요약 (Abstract)
용서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해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해를 바탕으로 한 용서는 과거를 극복하고, 현 재의 상처를 치유하며,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다. 용서하기 위해서는 용서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용서와 혼동되는 개념들을 구분해야 한다. 또 용서의 대상과 방법, 조건 등을 정확히 해야 한다. 이 해와 용서는 분쟁과 전쟁을 예방할 뿐만 아니라, 보복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는 중요한 평화의 가치관이다. 인류 역사 속에서 이해와 용서를 통해 평화를 정착시킨 모범 사례는 현재 우리가 사 는 사회에 퍼져 있는 혐오와 갈등을 해소하고 분쟁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된다. 용서를 실천 하기 위해 준비해야 할 마음가짐을 알아보고, 용서하지 못했던 사람을 용서해보자. 용서의 실천은 나와 세상을 치유하는 일이다.
우리는 서로를 용서하기 전에 서로를 이해해야 합니다. Before we can forgive one another, we have to understand one another. ㅡ 엠마 골드만 (러시아 정치인, 1869~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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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해
01 SECTION
Section 1
이해 # 이해란 무엇이며, 왜 필요할까?
용서란 무엇이며, 어떻게 하는 것일까?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용 서하기로 마음먹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용서를 결심해도 정작 마음에서 용서가 안 되는 경우도 있다. 용서하기 위해서는 먼저 충 분한 이해가 필요하다. 진정한 이해 없이는 상대를 완전히 용서하기 어렵다. 그럼 어떻게 이해를 통해 용서할 수 있을까? ‘사건에 대한 이해’, ‘가해자에 대한 이해’, 그리고 ‘자신에 대한 이해’는 용서로 가 는 징검다리가 된다.
1. 사건에 대한 이해 1) 가해의 종류 어떤 사건이나 사고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있다. 피해자는 피해 의 규모와 상관없이 피해를 당한 사실만으로도 억울하고 분할 것이 다. 가해는 명백한 범죄 행위이고, 가해자는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가해자에게 의도성이 있었는지는 들여다볼 필요가 있 다. 가해의 의도성 여부에 따라 가해의 종류를 나눠서 살펴보자.
평화로 가는 길
첫 번째는, 실수로 인한 가해 또는 비의도적 가해가 있다. 한 소녀 의 이야기를 통해 비의도적 가해에 대해 알아보자. 어머니와 단둘이 살던 소녀는 어머니와의 추억이 거의 없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어머 니는 이미 일터에 나가 있었고, 저녁 늦게야 돌아왔다. 어릴 적부터 소녀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어둡고 우울한 성장기를 보낸 소녀는 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과 원망이 사무쳐 있었다. 어 머니는 딸을 사랑하지 않았던 걸까? 자녀의 고통을 알면서도 외면하 고 유기한 걸까? 세월이 흘러 성인이 되어 참여한 용서 프로그램을 통해 딸은 어머니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를 출산한 지 얼 마 지나지 않아 남편을 교통사고로 잃은 어머니는, 아이를 포기하고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라는 주변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갓 태어난 딸 을 끝까지 지키기로 결심했다. 어머니는 딸을 키우기 위해 장사하는 법을 배웠다. 새벽 시장에 나가야 했고, 밤늦게까지 가게 일을 돌봐 야만 했다. 고된 나날이었지만, 딸을 지키겠다는 마음으로 힘겨운 날들을 이겨냈다. 세월이 지난 어느 날, 홀로 두었던 딸과의 관계에 서 좁힐 수 없는 원망의 골을 발견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딸의 외로 움을 알고는 있었으나, 절대 고통을 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성인 이 되어 이 사실을 알게 된 딸은 어머니의 입장을 이해하게 되었고, 결국 어머니를 용서할 수 있게 되었다.
두 번째는, 의도적인 가해가 있다. 자신의 이익이나 특정 목적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피해를 주는 것이다. 사기, 강도, 성폭력, 약탈 등 의 범죄가 여기에 해당한다. 또 법률상 범죄에 해당하지는 않더라도 욕설, 괴롭힘 등도 의도적 가해에 해당한다.
세 번째는, 정신병리학적인 가해이다. 누군가에게 고통을 주는 순 간의 쾌락을 느끼기 위한 가해로, 어떤 이유나 목적이 있는 것도 아 니고, 이익을 위한 것도 아닌 오로지 타인에게 고통을 주는 것 자체 가 목적이다. 이런 정신병적 증세가 생기기까지 가해자의 순탄치 않 은 인생을 이해하는 것은 용서하는 데 도움은 되지만, 무고한 피해 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런 범죄자에 대한 강력한 조치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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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해와 피해의 연관성에 대한 이해 집단 따돌림을 의미하는 용어 ‘이지메(いじめ)’는 1986년 일본의 한 남학생의 자살 사건으로 공론화된 학교 폭력의 한 형태이다. 중 학교 2학년의 이 남학생은 진급하면서 친한 친구와 떨어지게 되었 고, 체구가 작은 탓에 같은 반 학우의 심부름을 하거나, 하교길에 동 급생의 가방을 나르는 신세가 되었다. 같은 반 친구로부터 시작된 괴롭힘은 점차 다른 반까지 번졌다. 지워지지 않는 펜으로 얼굴에 낙서하고, 춤을 추게 하고, 가방에 죽은 쥐를 넣고, 체격이 큰 학생 의 레슬링 상대가 되게 하는 등 가혹 행위가 이어졌다. 피해 학생은 점점 소극적으로 변했고, 가혹 행위는 날로 잔인해졌다. 괴롭힘을 주도한 학생은 이 학생이 죽었다고 치고, 장례식 놀이를 연출했다. 칠판 앞에 해당 학생의 사진을 두고, 향을 피우고, 색지에 방명록 비 슷한 것을 써 놓았는데, ‘바보’, ‘사라져서 잘 됐다’, ‘그것 봐라’라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피해 학생은 부모님과 선생님에게 얘기하면 더 큰 응징이 뒤따를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주변에는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를 해야 했다. 3학년으로 진급한 이후에도 집단 폭력과 따돌 림은 계속되었고, 결국 이 학생은 어느 쇼핑몰 화장실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되었다.1)
학교 폭력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때때로 피해를 당한 학생 은 분노와 복수심으로 제2의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가해자에게 훨 씬 잔인한 방법으로 복수를 하기도 하고, 자신보다 약한 학생을 대 상으로 분풀이를 하기도 한다. 본인이 당한 만큼의 괴로움과 고통을 다른 사람도 느끼게 하고, 그만큼의 보상과 위안을 얻으려는 것이 다. 또 피해자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이 상대보다 강 하고 우위에 있음을 확인한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순간이다. 사람의 이런 심리에 대해 불교의 창시자인 석가모니는 “분노에 차 있는 것은 마치 뜨거운 석탄을 누군가에게 던지기 위해 쥐고 있는 것 과 같다. (The grudge you hold on to is like a hot coal that you intend to throw at someone, only you are the one who gets burned.)”고 표현했다.
1 https://ja.wikipedia.org/ wiki/中野富士見中学いじめ 自殺事件
평화로 가는 길
보통 피해자가 보이는 반응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눈에는 눈, 이 에는 이’로 복수하는 것, 둘째는, 분노를 가슴에 품고 억누르는 것, 그리고 셋째는, 용서이다. 어떤 것이 가장 정당할까? 자신이 받은 만 큼 돌려주는 복수가 가장 정당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복수하고 싶다 는 생각 자체는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여기서 발생하는 오류는 피해를 입은 자신을 ‘절대 선’이라고 인식하는 것이다. 상대 를 ‘절대 악’으로 규정하기 때문에 상대를 응징하기 위한 폭력이나 심지어 살인까지도 정당하다고 여기기도 한다. 그래서 역사 속에는 종종 정의라는 이름으로 가해자를 처단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만으로 결코 절대 선이 되는 것은 아니며, 보 복을 위해 살인과 같은 범죄 행위까지 용납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 각지에는 위와 같은 오류를 실제로 보여주는 복수의 문화가 존재한다. 동아시아에는 불구대천지원수(不俱戴天之怨讐)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부모, 군주, 스승의 원수와는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 다는 뜻으로, 죽을 때까지 원수를 갚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탈리 아의 시칠리아와 발칸반도에는 벤데타(Vendetta)라는 문화가 있 다. 친족이 받은 모욕이나 해악은 대를 이어 가문의 명예를 걸고서 라도 반드시 복수해야 한다는 것으로, 친족의 원수에게는 지구 반대 편이라도 쫓아가서 보복한다. 문제는 그 원수의 아들도 또 자기 아 버지의 원수를 갚으려고 복수의 칼을 간다는 것이다. 이렇게 대를 이은 원한 관계는 수십 수백 명의 사상자를 만들며, 유혈 분쟁과 전 쟁으로 이어지기까지 한다. 끝까지 서로가 보복의 정당성만을 주장 하며, 원한 관계를 풀어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끊임없는 보복 과 복수로 인해 지구에는 분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다. 복수의 본질 은 분노와 폭력이다. 이것은 평화를 이루는 데에 큰 걸림돌이 된다. 용서의 과정을 거침으로써 복수의 고리를 끊어야 평화를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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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해자에 대한 이해 1999년 4월 20일, 미국 콜로라도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12학년 학생 2명이 권총, 반자동 소총, 폭탄으로 무장하고 학교에 난입해 무차별 사격을 가한 뒤 자살한 미국의 대표 적인 총기 난사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12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가 숨졌고, 24명이 크게 다쳤다. 범인은 현장에서 숨졌으며, 피해자의 가족과 가해자의 가족 모두에게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남겼다.
이 사건으로부터 17년 뒤, 가해자의 어머니 수 클리볼드(Sue Klebold)가 쓴 참회록 성격의 자서전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A Mother's Reckoning: Living in the Aftermath of Tragedy)>이 세상에 나왔다. 이 자서전을 통해 레고 블록을 좋아하던 귀여운 꼬 마가 사건 직전에는 지독한 외로움과 절망, 그리고 깊은 우울증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범죄 학생의 일기에는 사랑, 좌절, 그리고 자살에 대한 내용이 여러 번 기록되어 있었다. 어머니 수 클 리볼드는 이 책에서 아들이 겪는 고통의 깊이와 심각성을 가볍게 봤 던 것 같다며 깊은 후회를 표현했다. 이처럼 가해자가 어떤 상황에 서 범죄를 저질렀는지, 그러한 행동을 하게 된 데에는 어떤 성장 배 경이 있었는지 다각도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해의 과정은 결코 범죄를 정당화하기 위함이 아니다. 어떤 이유로도 범죄 행위는 합리 화될 수 없다. 이해는 합리화가 아닌 용서로 가는 단계이다. 그리고 차후 같은 범죄를 예방하는 차원에서도 이해의 과정이 필요하다.
3. 자신에 대한 이해 우리가 가장 먼저 이해하고 용서해야 할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 다. 사람은 과거에 저질렀던 실수나 실패의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면 서 괴로워하거나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때 자신을 증오하게 되어, 약물 중독, 자기 학대, 대인 기피 등 자기 파괴적인 행동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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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한다. 이런 행동은 자기 자신을 돌보지 않는 또 다른 의미의 폭 력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자살은 전 세계적으로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로, 유엔과 세계 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WHO)는 자살 예방에 대 한 국가적 전략 지침을 세우고 시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 세계보건기구(WHO)와 국제자살예방협회(International Associ ation for Suicide Prevention, IASP)는 매해 9월 10일을 ‘세계 자 살 예방의 날(World Suicide Prevention Day)’로 제정하여 생명의 소중함을 상기하고, 서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로 삼도록 하고 있다.
자살은 생명의 존엄성과 자신의 가치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일어 난다. 살인하는 것이나, 자살로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것이나, 사람 의 생명을 해친 점에서는 같다. 사회 제도적으로 자살을 방지하는 장치는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나를 사랑하는 일’이다. 나를 수용하고 이해함으로써 자신을 용서하는 법 을 배워야 한다. 1960~70년대 미국의 농장 노동자 인권 운동을 이
끌었던 여성 지도자 돌로레스 후에르타(Dolores Clara Fernández
Huerta)는 “너 자신의 잘못도 용서해 보지 않았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가? (If you haven't forgiven yourself something, how can you forgive others?)” 라고 반문했다. 자신 을 용서하지 않는 사람이 타인을 용서하기 어렵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타인을 사랑하기 어렵다. 타인을 이해하고 용서하기 위 해서는 먼저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와 용서의 과정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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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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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로 과거를 바꿀 수는 없지만, 미래는 확실히 바꿀 수 있습니다. When you forgive, you in no way change the past - but you sure do change the future. ㅡ 버나드 멜쳐 (미국 방송인, 1916~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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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용서
02 SECTION
Section 2
용서 # 용서란 무엇이며, 왜 필요할까?
살다 보면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해야 할 때가 있다. 반면 내 가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해야 할 때도 있다. 이렇듯 용서는 상대방 을 위한 일이며, 동시에 나 자신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용서한다면 무엇을 용서하는 것이고, 어떻게 하는 것인지, 또 용서하는데 필요 한 조건은 무엇인지 알아보자.
1. 용서의 의미 1) 자신을 위한 용서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한 여자가 남편이 도박과 알코올 중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편은 도박에 빠져서 아내의 돈까지 전부 탕 진했고,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여자는 임신한 상태였다. 여자는 속아서 결혼한 사실에 너무 화가 나서 남편과 이 혼했지만, 양육비를 받지 못해 혼자서 힘들게 아이를 키워야 했다. 이때의 상처로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된 여자는 새로운 남자도 만나지 못했다. 자신처럼 불행한 사람은 없을 거라는 생각은 깊은 우울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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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이어졌다.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전 남편에 대한 미움과 원망을 쏟아냈고, 자연스레 대인 관계도 좁아졌다. 건강에도 이상이 생겼 다. 과거의 아픈 기억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지고 숨이 찼 다. 고혈압으로 약까지 먹어야 했다. 여자는 자신의 삶을 이렇게 망 쳐 놓은 전 남편을 절대 용서할 수 없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이런 조언을 해주었다. “네 모든 문제의 원인을 너의 외부에서 찾는다면, 해결책도 외부에서 찾을 수밖에 없고, 그 사람은 이제 네 문제를 해 결해줄 수 없어. 하지만 문제의 원인을 네 마음에서 찾는다면, 너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 이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여자는 해결 책을 찾다가 용서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었고, 전 남편을 마음에서 용서해야 자신도 회복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좋 은 마음으로 용서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마음속 밑바닥에 있던 분노와 미움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하지만 용서하기로 결심한 후 주 변 사람에게 하소연하는 시간도, 혼자 과거의 상처에 잠기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었다. 대인 관계가 회복되면서 우울증도 나아지기 시작 했다. 원망과 울화로 인한 스트레스가 줄면서 혈압도 조금씩 정상으 로 돌아왔고, 몸도 건강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처음 으로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난 아이를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용서 를 통해 점차 자신이 치유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찾고 난 후에는 전 남편을 완전히 용서할 수 있었다.
위의 예시처럼, 우리는 살면서 부부 갈등, 친구의 배신, 직장에서 의 부당한 대우 등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의 상처를 입는다. 마음의 상 처는 쉽게 치유되지 않으며,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것 또한 쉬 운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용서는 자발적 선택이어야 한다. 용서는 가해자에게 순순히 면죄부를 주려는 것이 아니다. 용서의 목적은 과 거의 상처로부터 현재의 자신을 치유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용서의 대상은 상대방일지라도 용서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자기 자신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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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용서
2) 망각과 용서 몸에 난 작은 상처는 치료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치유가 된다. 하지만 큰 상처는 반드시 치료를 받아야 회복할 수 있다. 마찬 가지로 마음의 상처도 작은 상처는 기억에서 자연스럽게 잊힌다. 하 지만 충격적인 사건은 기억에서 잘 지워지지 않을뿐더러, 나의 감정 과 선택과 일상생활에 지속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때는 용서를 통해 과거의 아픔과 상처를 적극적으로 치료해야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용서의 과정은 순탄치 않다. 오프라 윈프리의 영적 조언자 로 알려진 미국 작가 마리안 윌리엄슨(Marianne Williamson)은 “용서가 항상 쉬운 것은 아니다. 때때로, 우리가 입은 상처보다 더 고 통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Forgiveness is not always easy. At times, it feels more painful than the wound we suffered.)”고 표현했다. 용서가 고통스러운 이유는 잊고 싶은 과거의 사건을 다시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벌어진 사건과 가해자와 자신 에 대해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망각의 결과와 용서의 결과에는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 면, 나를 배신한 친구를 이해하고 용서한 사람은 새로운 사람을 만 나도 신뢰하고 친구로 사귈 수 있다. 하지만 용서 없이 단순히 잊고 지낸 사람은 새로운 친구를 사귈 때마다 과거의 상처와 아픔이 떠올 라 힘들어한다. 용서의 유익은 더 이상 과거에 휘둘리지 않는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사건에 대해 이해하고, 인생의 한 부분이라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또 용서하는 방법을 배운 사람 은 다른 종류의 상처를 받더라도 금방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과 자 신감을 가지게 된다. 요컨대, 용서의 결과는 용서하기 전보다 자신 이 훨씬 정신적으로 강한 사람이 되었다고 느끼는 것이다.
3) 정의와 용서 종종 용서를 ‘범죄를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오해하고, 용서 를 거부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용서는 결코 범죄를 옳다고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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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것이 아니다. 용서하려면 오히려 상대방의 잘못이 무엇인지 명 확하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 잘못을 규명하지 않으면 용서의 대상 자체가 불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미국 작가 스토미 오마샨 (Stromie Omartian)은 “용서는 상대방을 옳다고 인정하는 것이 아 니라,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Forgiveness doesn't make the other person right, it makes you free.)”고 정리했다. 용서는 잘못이 무엇인지를 더 명확하게 드러낸다. 따라서 내가 상대방을 용 서하더라도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법적, 윤리적 책임을 물을 수 있 다. 용서를 통해 바뀌는 것은 상대의 잘못이 아닌 복수하고 싶다는 자신의 욕구다.
용서와 정의를 대립적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 측면에서 이해하 면, 용서는 범죄 감소와 정의 실현에도 도움이 된다. 다이버전 프로 그램은 초범 또는 경범죄를 지은 범죄자에게 형사 처벌이 아닌 재활 및 교육 프로그램을 받게 하는 제도로, 핵심은 용서와 경고를 통한 교육이다. 다이버전 프로그램에서 추구하는 용서는 ‘잘못을 용납하 는 것’이 아닌 ‘잘못을 정확히 인식시키고, 기회를 주는 것’이다. 미 국 뉴욕주 낫소카운티(Nassau County, NY)에서는 2012년부터 2019년까지 16~17세 소년범을 대상으로 ‘청소년 다이버전 프로그 램(Adolescent Diversion Program)’을 도입했다.2) 다이버전 프로 그램 시행으로 낫소카운티에서 형사 유죄 판결 또는 청소년 범죄자 판결로 이어지는 사건의 비율이 14%에서 2%로 감소했다. 범죄에 대한 즉각적인 처벌만이 정의 실현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보는 시각 은 합리적이지 않다. 용서도 정의로운 사회를 구현하는 다양한 방법 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용서만큼 완벽한 복수는 없습니다. There is no revenge so complete as forgiveness. ㅡ 조쉬 빌링스 (미국 작가, 1818~1885)
2 https://knowledgebank. criminaljustice.ny.gov/ adolescent-diversionprogram
2. 용서
2. 이해를 바탕으로 한 용서 1)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사람도 용서해야 할까? 잘못을 뉘우치고 용서를 구하는 경우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반 성하지 않는 경우 용서를 어떻게 적용할지 생각해보자. 첫째, 가해 자가 잘못을 뉘우치고, 먼저 용서를 구할 때에는 용서하기가 수월하 다. 거기에 가해자의 행위가 실수였거나 비의도적이었다는 것이 밝 혀지면 피해자의 정신적 피해가 줄어들기 때문에 용서하기는 좀 더 쉬워진다. 설사 고의적인 가해였다고 해도, 가해자의 진심 어린 반 성과 사과는 피해에 대한 정신적 보상이 되기 때문에 용서에 도움이 된다.
둘째,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반성하지 않을 때에는 용서 하기가 어렵다. 잘못이 명백함에도 인정하지 않는 태도는 정신적 2 차 가해에 해당한다. 또 가해자의 반성 없는 태도는 범죄 재발을 우 려하게 하고, 개인적 차원을 떠나 사회 안전을 위해서도 용서를 어 렵게 만드는 요소이다. 이런 경우, 피해자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조 치는 가해자가 잘못을 인정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처벌하되, 언제든 지 가해자가 반성하면 용서할 마음의 준비를 하는 것이다. 피해자가 가장 고통스러운 경우는 고의적 가해를 당했고, 가해자는 반성하지 않고, 가해자에 대한 법적 처벌도 불가능한 경우인데, 이때 피해자 의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이런 경우 용서는 매우 힘든 선 택이다. 만약 용서하더라도 전적으로 피해자를 치유하기 위한 목적 으로 진행해야 한다.
2) 범죄는 용서할 수 없어도, 사람은 용서할 수 있다 범죄자가 없는 범죄는 성립할 수 없기 때문에 범죄 행위와 범죄자 를 구분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범죄의 예방과 근절이라는 차원에 서는 둘을 분리해 이해하는 것이 좀 더 효율적이다. 예를 들어, 내가 깜깜한 밤에 운전하다가 실수로 교통사고를 내서 사람이 크게 다쳤 다고 가정해보자. 한 번도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 살아왔는데, 한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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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의 실수로 범죄자로 낙인이 찍혀 사회, 직장, 학교에서 남은 평생 불공평한 대우를 받는다면 어떻겠는가? 내가 저지른 범죄 행위에 대 해 처벌받는 것은 납득이 되지만, 모든 사람이 나를 범죄자로 취급 하는 것에 대해서는 부당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러므로 범죄 행위는 엄격하게 처벌하되, 사람을 함부로 범죄자 취급해서는 안 된다. 위 상황을 타인에게 적용해서 생각해보자. 먼저 상대방이 저지른 범죄 행위가 무엇인지 명확히 규명해야 하고, 처벌의 범위와 대상은 상대 방의 범죄 행위에 한정해야 한다. 상대방은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범죄자이지만, 상대방의 인생 전체는 범죄자의 삶이 아니라는 것도 분명히 해야 한다.
범죄자를 용서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알아보자. 범죄자에 대한 처 벌은 감옥에 가두거나, 형벌을 가하는 것이다. 그럼 범죄 행위 자체 는 어떻게 처벌할 수 있을까? 범죄 행위에 대한 처벌은 범죄가 발생 하지 않도록 예방해 범죄를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이는 교화를 통 해 가능하다. 그렇다고 범죄자에 대한 처벌이 없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범죄 행위의 주체인 범죄자도 처벌받는 것이 마땅하지만, 교화가 동반되어야 범죄를 줄여나갈 수 있다. 범죄자의 대부분은 자 신의 행위가 가지는 해악과 파급력을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 에 범죄를 저지른다. 그러므로 교화를 통해 범죄자가 자신의 행위를 인정하고 뉘우치게 되면, 범죄 행위는 처벌하고, 사람은 용서할 수 있게 된다.
범죄 행위와 범죄자를 동일시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나의 실 수나 잘못도 타인에게 용서받기 어렵다. 또 상대방의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고, 서로 고발하며, 처벌하는 경직된 사회가 될 것이다. 범죄를 예방하면서 구성원 간 용서하는 포용력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범죄는 엄격히 처벌하되, 사람은 용서할 수 있다.’는 인 식의 공유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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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용서해야만 평화롭게 살 수 있습니다. Let us forgive each other - only then will we live in peace. ㅡ 레프 톨스토이 (러시아 소설가, 1828~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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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용서와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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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평화 # 용서와 평화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용서가 주는 개인적 차원의 유익이 내면의 치유와 회복이라면, 사 회적 차원의 유익은 국가, 민족 간의 관계 회복과 평화 정착이다. 국 가나 민족 간의 용서는 구성원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므로 개인의 의지만으로 실행하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지구촌의 분쟁과 전쟁 종 식을 위해서는 용서가 필요하다. 지구촌의 평화 정착을 위한 용서의 역할과 다양한 사례에 대해서 알아보자.
1. 용서가 없는 사회의 모습 1) 로베스피에르의 공포 정치 1789년, 자유, 평등, 박애를 표방하고 일어난 ‘프랑스 대혁명’은 인류사의 물줄기를 바꾼 중요한 사건이다. 프랑스 대혁명을 기점으 로 근대 민주주의가 시작되었고, 이때 공표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Dé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은 각
국의 헌법과 유엔의 ‘세계인권선언문’에도 참고가 되었다. 하지만 프랑스 대혁명으로 출범한 입헌 군주제와 공화제는 불과 10년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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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못했다. 나폴레옹은 1799년 무력으로 의회를 해산하고 스스로 제1통령에 취임하면서 혁명은 끝났다고 선언했으며, 대다수의 프랑 스 국민도 10년 동안 정치적 혼란과 전쟁을 겪으면서 안정을 간절 히 원하게 되었다. 과연 프랑스 대혁명 이후 10년간 어떤 일이 있었 던 걸까? 그 시기에 나타난 특이한 형태의 정치가 바로 ‘공포 정치’다.
혁명 이후 국왕 루이 16세(Louis XVI)와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Marie Antoinette d'Autriche)가 공개 처형당하면서, 온건 개혁파 인 입헌 군주제 지지자는 설 자리를 잃었다. 과격파 공화주의자인 ‘자코뱅파’의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Robespierre)가 권력을 장악하면서 프랑스 사회는 큰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로베스피에르 는 자신의 이상에 맞지 않는 사람은 모두 혁명의 적으로 간주하고, 단두대에서 사형시켰다. 심지어 자신의 친구, 혁명 동지까지도 처형 했다. 관용과 용서가 없었던 공포 정치 기간에 30만 명이 체포되었 고, 1만 7천 명이 공식적으로 처형되었으며, 추가로 1만 명 이상이 처형당한 것으로 추정된다.3) 결국, 시민들은 로베스피에르를 국민 공회에 기소했고, 1794년에 로베스피에르 자신도 단두대에서 처 형당했다.
혁명 이후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과는 달리, 기득권에 대한 성 난 민중의 분노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으로 나타났고, 공포 정치로 만들어진 이해와 용서 없는 사회 분위기는 독선과 또 다른 차별을 낳 았다. 이런 상황에서 주변국과의 전쟁까지 벌어져 극도의 불안 상황 에 놓인 프랑스는 결국 군주제 국가로 회귀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역사 속에서 10년이라는 짧은 세월에 불과하지만, 이해와 용서를 통 한 사회적 통합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기간이라고 할 수 있다.
2) 레닌과 스탈린의 숙청 마르크스(Karl Marx)와 엥겔스(Friedrich Engels)가 1848년에 발표한 <공산당 선언(Manifesto of the Communist Party)>은 러
3 https://www.britannica. com/event/Reign-ofTerr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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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아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마르크스주의자 였던 레닌(Vladimir Lenin)은 노동자 계층에게 ‘평화와 땅과 빵’을 구호로 내걸었고, 1917년 10월 볼셰비키 혁명을 주도했다. 혁명에 성공한 후, 러시아 공산당(볼셰비키는 1918년 초에 러시아 공산당 으로 개명했다)의 주도하에 평화와 땅과 빵에 대한 요구를 실현하기 위한 포고령이 반포되었다. 산업 시설의 국유화, 민간 상행위 금지, 정부 주도의 물자 분배 등을 골자로 하는 공산당 개혁은 본래 노동 자 계층의 이익과 해방을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공산당 체제에서 농업과 공업의 생산력은 점차 감소했고, 경제는 어려워져 굶어 죽는 사람이 늘어났다. 하지만 레닌은 반대 의견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 고, 공산주의 노선에 불만을 가진 세력을 무력으로 제거했다. 결국, 황제 지지자들, 부르주아 자유주의자들, 온건파 사회주의자들의 반 발이 내전으로 이어져 소련에서 1,100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 했다.
그림 3-1 1917년 10월 혁명
레닌 사후 후계자로 집권한 스탈린(Joseph Stalin)은 더 잔인하게 반대파를 숙청했다. 자신의 경쟁자라는 이유로 레닌의 동지였던 레 프 트로츠키(Leon Trotsky)를 해외로 추방한 뒤, 1940년에 멕시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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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 암살했다. 농업의 집단화를 위해 농민에게 농지를 몰수해서 대 규모 농장인 콜호스(Kolkhoz)를 조성했는데, 반대하는 농민은 시베 리아로 추방해 강제 수용소(Gulag)에 가두고 강제 노역을 시키거나 사살했다. 또 소련 전역의 공업 도시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자본주의 국가의 노동자보다 훨씬 더 심한 억압과 착취에 시달렸다. 노동자의 인권은 전혀 보장되지 않았고, 가혹한 노동 조건과 낮은 임금을 강 요당했다. 노동자 계층을 노예 생활에서 해방하겠다고 시작한 공산 주의는 도리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전체주의로 변질되 었다. 스탈린은 모든 반대파에 대해 대숙청을 지시했고, 비밀경찰을 동원해 살해하고 시베리아 강제 수용소로 추방했다. 1930년부터 1953년까지 강제 수용소로 보내진 1,800만 명 중 대략 150만 명에 서 170만 명이 그곳에서 사망한 것으로 파악되었다.4)
자국민에 대한 무력 탄압, 학살, 착취, 은폐 앞에서 ‘평화와 땅과 빵’이라는 공산주의의 구호는 무색해지고 만다. 결국, 소련은 1991 년 12월에 완전히 해체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구소련 국가에는 국 민 간의 의심과 불신, 불관용 등 사상적 잔재가 남아 사회 통합과 발 전을 저해하고 있다. 평화와 땅과 빵을 위해서는 이해와 용서가 꼭 필요하다. 이제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용서를 바탕으로 과거의 아픔 을 극복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할 때이다.
2. 개인적 차원의 용서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 1) 남아프리카공화국: 넬슨 만델라의 용서와 유진 드 콕의 사죄 남아프리카공화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인 넬슨 만델라(Nelson Rolihlahla Mandela)는 흑인 인권운동을 하다가 1964년에 무기징 역을 선고받았고, 1990년에 석방되었다. “27년간의 옥살이를 마치 고 활짝 열린 문을 향해 걸으며 나는 생각했습니다. 내가 받은 고통 과 분노, 원한과 미움을 이곳에 다 묻어 놓고 떠나지 않으면 나는 또 다시 과거의 고통스러운 감옥에 갇혀 헤어날 수 없으리라는 걸 알았
4 Healey, Dan (June 1, 2018), GOLFO ALEXOPOULOS. Illness and Inhumanity in Stalin's Gulag, The American Historical Review.
3. 용서와 평화
습니다. (As I walked out the door toward the gate that would lead to my freedom, I knew if I didn’t leave my bitterness and hatred behind, I’d still be in prison.)” 1994년 5월 10일, 넬슨 만 델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만델라가 투옥되 어 있던 로빈 섬(Robben Island)은 주로 정치범을 가두던 곳으로, 만델라는 채석장에서 석회를 채굴하고, 차가운 바다에 들어가 해초 를 따는 등의 노역을 했다. 그러나 석방 후 만델라는 과거를 털어버 리고 용서하기를 원했다. 성공회 대주교인 데스몬드 투투(Desmond Mpilo Tutu)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1962년 체포되기 전 만 델라는 화가 난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그는 ANC 군부대를 창설한 사람입니다. 그랬던 그가 석방된 후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는데, 그 이유는 복수가 아닌 화해와 용서에 대해 이야기를 했기 때문입니다. (Before Nelson Mandela was arrested in 1962, he was an angry, relatively young man. He founded the ANC's military wing. When he was released, he surprised everyone because he was talking about reconciliation and forgiveness and not about revenge.)” 대다수의 남아프리카공화국 국민은 만델라의 용 서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처벌보다는 진실 규명과 용서를 바탕으로 한 과거사 정리가 시작되었다. 이후 만델라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 (Truth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 TRC)’를 출범시켰고, 아파르트헤이트로 수십 년간 분리되어 있던 국민과 사회를 통합하 는 데 앞장섰다.
1998년에는 유진 드 콕(Eugene de Kock)이라는 경찰 암살단원 이 진실과 화해 위원회(TRC)에 출석했다. ‘죽음의 화신(Prime Evil)’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던 그는 아파르트헤이트 정부 아래서 흑인 인권 운동가를 잔인하게 고문하고 살해했던 백인 경찰이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자신의 범죄 사실을 구체적으로 고백하고 사죄했 다. 이후에도 피해자의 배우자와 가족에게 수차례 사죄의 편지를 쓰 고, 용서해달라고 간청했다. 이 내용은 전국적으로 방송되었고, 이 는 아파르트헤이트 정부에서 일했던 다른 경찰도 용기를 내어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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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명에 동참하는 계기가 되었다. 유진 드 콕의 반성과 사죄는 남아 프리카공화국이 과거의 아픔을 극복하고 민주적 사회로 나아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사실 그가 반성하게 된 데에는 품라 고보 도-마디키젤라(Pumla Gobodo-Madikizela)라는 여성의 끊임없 는 관심과 연민의 손길이 있었다. 그녀는 임상심리학자로서 진실과 화해 위원회(TRC)에서 일한 최초의 흑인 여성이었다. 그녀가 내민 손길로 유진 드 콕은 자신의 잘못을 돌아보고, 뉘우치며, 진심의 용 서를 구할 수 있었다. 그는 1996년 재판에서 212년 형을 선고받았 으나, 지속적으로 범죄를 뉘우친 점과 당국의 수사에 적극 협조한 점이 인정되어 복역한 지 20년 만인 2015년에 가석방되었다.
2)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 대표팀의 호소 2005년 10월 8일, 코트디부아르 축구 국가 대표팀과 국민은 모두 초긴장 상태에 있었다.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 한 장을 두고, 아프리 카 전통 강호인 카메룬과 코트디부아르가 각각 이집트와 수단을 상 대로 경기를 펼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코트디부아르는 수단을 3:0 으로 앞서고 있었으나, 카메룬과 이집트는 1:1로 비기고 있었다. 추 가 시간 4분에 카메룬의 페널티 킥이 선언되었다. 페널티 킥이 성공 할 경우 본선 진출은 코트디부아르에서 카메룬으로 바뀌는 상황이 었다. 키커의 킥은 골대 우측 기둥 하단을 강하게 맞으며 튕겨 나갔 고, 코트디부아르는 본선 진출을 확정 지었다. 기적과도 같은 월드 컵 본선 진출을 이룬 코트디부아르 대표팀과 온 국민은 환호했다. 이때 대표팀 주장 디디에르 드록바(Didier Yves Drogba Tébily)
가 카메라 앞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코트디부아르의 북쪽, 남쪽, 중 앙, 서쪽에 살고 계신 국민 여러분, 저희는 오늘 모든 코트디부아르 인이 월드컵에 진출하겠다는 목표 아래 하나가 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였습니다. 우리는 이 축제가 국민을 단결시킬 것이라 약속했습니 다. 하여 저희는 오늘 모두 이 자리에 무릎을 꿇고 여러분께 부탁드 립니다. 용서하십시오.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자원이 풍부한 국가 인 우리가 이렇게 전쟁의 나락에 빠져 있을 수는 없습니다. 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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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으십시오. 선거를 조직하십시오. 그러면 모든 것이 나아질 것 입니다. (Men and women of the Ivory Coast, From the north, south, center and west, we proved today that all Ivorians can coexist and play together with a shared objective: to qualify for the World Cup. We promised you that the celebration would unite the people. Today, we beg you, please -- on our knees -- forgive. Forgive, forgive. The one country in Africa with so many riches must not descend into war like this. Please, lay down all weapons. Hold elections, organize elections. All will be better.)” 그런 뒤 코트디부아르 축구 대표팀 은 드록바의 선창에 따라 모든 코트디부아르인의 염원과도 같은 문 장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즐기고 싶습니다. 총을 쏘지 마세요. (We want to have fun, so stop firing your guns.)” 2005년 당시 코트 디부아르는 부족 간의 갈등과 정치 세력 간의 충돌로 인한 내전에 시 달리고 있었다. 드록바의 이 연설이 단숨에 내전을 종식시킨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용서를 부르짖은 그의 호소는 평화를 염원하는 국 민의 마음을 일깨웠고, 실제로 내전 양측을 협상 테이블에 앉게 만 드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2007년 3월, 내전 양측은 부르키나파 소의 수도 와가두구에 마주 앉아 휴전 협정에 서명했고, 이로써 내 전은 중단되었다.
3) 르완다: 장 폴 삼푸투의 용서 르완다 출신의 가수 장 폴 삼푸투(Jean-Paul Samputu)는 1994 년 ‘르완다 집단학살 (Genocide in Rwanda)’5) 로 부모님, 형제 셋, 누이 한 명을 잃었다. 삼푸투에게 가장 큰 충격을 준 것은 가장 친한 후투족 친구인 빈센트(Vincent)가 자기 아버지를 죽였다는 사실이 었다. 친구에게 복수하고 싶었지만, 도망간 친구를 찾을 수 없었고, 이후 술과 마약에 빠져 9년을 보냈다. 지옥 같은 9년의 세월을 보낸 뒤, 삼푸투는 이제 친구를 용서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바로 그날 나 는 갑자기 완전한 자유를 느꼈습니다.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힘이 느껴졌습니다. (On that day I suddenly felt totally free. I felt a
5 르완다 집단학살은 1994년 4 월부터 7월까지 후투족에 의해 투치족 약 80만 명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이는 투치족 전 체 인구수의 약 70%에 해당하 는 엄청난 수치다. 19세기 말부 터 르완다를 식민 지배했던 독 일과 벨기에가 투치족을 지배 계층으로 인정하면서 르완다 내 종족 갈등이 심화되었다. 독 립 후 1990년부터 1993년까 지 두 종족 간 내전이 벌어졌고, 내전이 끝난 직후인 1994년, 강경파 후투족이 투치족과 온 건파 후투족을 무차별로 살해 한 사건이 바로 르완다 집단학 살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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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wer that I cannot describe.)” 삼푸투는 르완다에서 집단학살 관련 재판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귀국했다. 삼푸투는 법정에 출석 해서 자기 아버지를 죽인 친구를 용서한다고 말했다. 후투족의 학살 에 대해 공식적인 자리에서 용서를 말한 투치족은 삼푸투가 처음이 었다. 빈센트는 삼푸투에게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음을 시인하고, 용 서를 빌었다. 당시 가장 친한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배신자 로 몰려 살해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이때 삼푸투는 빈센트를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었고, 마음에 아주 큰 평 화가 찾아왔다고 표현했다.
삼푸투의 용서는 비록 개인적 차원이었지만, 사회적으로도 큰 영 향을 미치고 있다. 2000년, 르완다 집단학살 희생자 6주년 추모식 에 참여한 벨기에 총리는 대량학살을 외면한 데 대해 공식으로 사과 했다.6) 또 2014년에는 유엔도 르완다 학살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해 20년 만에 사과했다.7) 2017년에는 프란체스코 교황이 학살 당시 교 회도 함께 죄를 지었음을 시인하고 사죄했다.8)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르완다 국민은 그날의 극심한 상처와 고통 속에서 살아 가고 있다. 과거의 아픈 역사를 치유하고,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 은 나라를 물려주기 위해, 삼푸투는 지금도 용서를 외치고 있다.
6 http://news.bbc.co.uk/2/ hi/africa/705402.stm 7 https://time.com/66095/ rwanda-genocide-keatingapology/
그림 3-2 투치족 5,000여 명이 학살당한 르완다 응토라마 교회(Ntrama Church)
8 https://www.africanews. com/2017/03/20/popebegs-for-forgivenessover-church-s-role-inrwanda-genoc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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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용서와 평화
3. 국가적 차원의 사죄와 용서 1) 독일: 나치 만행에 대한 끊임없는 반성 독일은 홀로코스트와 같은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벌어진 반인륜적 범죄에 대해 지속해 사과하고, 나치의 과오를 반성해왔다. 빌리 브 란트(Willy Brandt) 전 서독 총리는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바르 샤바 게토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고 나치의 만행에 대해 사 죄했다.9) 1994년, 로만 헤어초크(Roman Herzog) 전 대통령은 바 르샤바 봉기 50주년 기념식(50th Anniversary of the Warsaw Ghetto Uprising)에 참석해 폴란드 국민에게 공식 사과했다.10) 1995년, 헬무트 콜(Helmut Josef Michael Kohl) 전 총리는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를 방문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고통과 죽음, 고통과 눈물이 우리를 이곳에서 침묵하게 합니다. (This suffering and death, the pain and tears, force us to remain silent in this place.)”11)
2000년, 요하네스 라우(Johannes Rau) 전 대통령은 이스라엘 의
9 https://www.dw.com/ en/willy-brandt-on-hisknees-an-image-ofgerman-atonement/av55843190
회 연설에서 홀로코스트에 대해 용서를 구했다.12) 2004년에 게르하 르트 슈뢰더(Gerhard Fritz Kurt Schröder) 전 총리는 바르샤바 봉
기 60주년 기념식(60th Anniversary of the Warsaw Ghetto Uprising)에 참석해 독일의 폴란드 침공에 대해 공식으로 사과했으 며, 2013년 1월에 앙겔라 메르켈 총리(Angela Dorothea Merkel) 13)
는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International Holocaust Remembrance Day)을 앞두고 “독일은 나치의 범죄, 2차 세계대전 희생자, 그리고 홀로코스트에 대해 영원한 책임이 있다. (Naturally, [Germany has] an everlasting responsibility for the crimes of national-socialism, for the victims of World War II, and above all, for the Holocaust.)”고 말했다.14) 2019년 9월 1일, 프
10 https://www.latimes. com/archives/la-xpm1994-08-03-me-22883story.html 11 https://www.latimes. com/archives/la-xpm1995-07-09-mn-22136story.html 12 https://knesset.gov.il/ description/eng/doc/ speech_rau_2000_eng.pdf 13 https://english.radio. cz/reconciliation-andforgiveness-60thanniversary-warsawuprising-8089389
랑크 발터 슈타인마이어(Frank-Walter Steinmeier) 대통령은 폴 란드 비엘룬(Wieluń)에서 열린 제2차 세계대전 발발 80주년 행사
(80th Anniversary of the outbreak of World War II)에 참여해
14 https://www.straitstimes. com/world/germany-haseverlasting-responsibilityfor-nazi-crimes-merk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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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과 같이 폴란드에 용서를 구했다. “비엘룬 공격의 희생자들에게 고개를 숙이고, 독일 폭정의 폴란드 희생자들에게 경의를 표하며, 용서를 구합니다. (I bow to the victims of the attack in Wielun, I pay tribute to the Polish victims of German tyranny and I ask for forgiveness.)”15)
독일의 반성은 정치인의 사죄로만 그치지 않고, 나치 전범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 지속적인 재판 회부, 과거사 반복 교육 의무화 등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 2015년, 독일 법원은 아우슈비츠에서 회계원 으로 일했던 94세의 오스카 그뢰닝(Oskar Gröning)에게 징역 4년 의 실형을 선고하기도 했다.16) 독일 학교에서는 나치의 만행과 홀로
코스트에 대해 역사 교과서에 수록해 어두운 과거를 후대에 숨김없 이 가르치고 있으며, 교재학습과 더불어 강제 수용소 견학 등 현장 수업도 의무적으로 시행하고 있다. 특별히 나치 시대와 제2차 세계 대전에 관련한 부분은 역사가 왜곡되지 않도록 폴란드, 프랑스와 협 의해서 역사 교과서를 편찬하고 있다.
독일의 끊임없는 사죄와 반성은 주변국과의 관계 회복과 평화 문 화 확산에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과거의 역 사적 만행이 사라지는 것도, 피해 당사국이 반드시 용서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잘못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진지한 반성과 성찰, 그리고 해결 방안을 동반한 진심 어린 사죄는 개인이 하기에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독일이 보여준 국가적 차원의 사 죄와 반성은 평화와 공존의 훌륭한 모범으로 기억될 것이다. 15 https://edition.cnn. com/2019/09/01/europe/ germany-poland-ww2forgiveness-grm-intl/ index.html 16 https://www.theguardian. com/world/2015/jul/15/ auschwitz-guard-oskargroening-jailed-overmass-murder
mem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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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의 실천은 우리가 세상을 치유하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큰 기여입니다. The practice of forgiveness is our most important contribution to the healing of the world. ㅡ 마리안 윌리엄슨 (미국 작가,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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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로부터 시작하는 용서와 평화
04 SECTION
Section 4
나로부터 시작하는 용서와 평화 # 용서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
용서와 평화와의 관계를 이해했다 할지라도, 개인적으로 용서를 실천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용서를 실천하기 전에 아래 네 가지 마음가짐을 이해하고, 가까운 사람을 먼저 용서해보자.
1. 용서하기 위한 마음가짐 1) 미움도 용서도 나에게 달려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는 불의의 사고로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입는다. 그러나 이러한 피해가 자신에게 온 순간부터 는, 미움도 용서도 전적으로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 상대방이 용 서를 구한다고 무조건 용서해줄 필요는 없다. 또 상대방이 용서를 구하지 않더라도 나 자신을 위해 용서할 수도 있다. 판단의 주체는 자기 자신이며, 미움도 용서도 나의 선택에 달려있다.
2) 100% 가해자도 100% 피해자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일 사건에는 100% 가해, 100% 피해 상황이 존재한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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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100% 가해, 100% 피해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고, 또 피 해를 입기도 한다. 만약 완벽하게 공정한 사회를 만든다고 가정하 면, 나에게 피해를 준 모든 사람을 처벌해야 하고, 나도 남에게 준 모 든 피해에 대해 전부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사회에서는 아무도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인간 사회에는 용 서가 필요하다. 사람은 누구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가해자이기 때 문에, 용서를 받기 위해서는 용서할 줄도 알아야 한다.
3) 상대의 의도 오해하지 않기 내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었다고 가정해보자. 아무런 이유 없이 상대방에게 그런 행동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혀 의도치 않은 실수였을 수도 있고, 상대방이 나에게 한 무례한 언행 때문에 기분 이 나빠서 똑같이 갚아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피해자는 나의 의 도나 처지를 모르기 때문에, 나를 악의로 가득 차고 불량한 무뢰한 이라고 오해할 수 있다. 상대방이 나의 의도와 처지를 모르고, 보이 는 행동만으로 나라는 존재를 폄하하고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기분 나쁜 일인가?
나에게 피해를 준 상대방에게도 똑같이 적용해보자. 상대방의 행 위는 절대 실수가 아니며, 고의일 거라고 단정하고 있지 않은가? 나 는 상대방에게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는데, 상대방이 일방적으로 무 례를 범한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상대에게 엄 격한 태도는 실체적 진실을 가리고, 상대의 의도를 왜곡한다. 상대 의 의도를 오해하지 않고, 진실을 바라보는 균형 있는 시각을 가질 때 용서를 시작할 수 있다.
4) 나의 좋은 취지 명확하게 하기 때로는 내가 가진 좋은 취지가 용서를 가로막는 요소가 된다. 예를 들면, 이혼한 후에도 부인을 용서하지 못하는 한 남자가 있었다. 단 순히 부인의 외도로 인한 마음의 상처 때문만은 아니었다. 문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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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로부터 시작하는 용서와 평화
이 남자도 자신이 왜 부인을 용서하지 못하는지 정확한 이유를 알지 못했고, 새로운 여자를 만나지도 못하고 있었다. 이 남자에게는 좋 은 취지의 희망 사항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행복한 결혼 생활’이 었다. 이것을 부인이 깨트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부인을 용서하기 어려워했던 것이다. 이 남자는 자신의 목적이 ‘외도한 부인에게 복 수하는 것’이 아니라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는 것’이라는 것을 명확 히 인지하자, 자신이 불필요한 데 너무 많은 에너지와 감정을 소모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 남자는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전 부인을 용서하고, 새로운 여자와 만나 결혼했다.
또 다른 예로는, 횡단보도 교통사고로 아들을 잃은 한 여자가 있었 다. 여자는 가해자를 절대로 용서해주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횡단보도 교통사고가 재발하지 않으려면 강력한 처벌이 필 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국, 재판에서 가해자는 강한 처벌 을 받았다. 문제는 가해자를 처벌해도 횡단보도 교통사고는 줄어들 지 않았고, 여자의 마음의 상처도 낫지 않았다. 오히려 그날의 사고 가 날마다 떠올라 마음의 고통은 점점 커졌다. 여자는 자신의 목적 이 ‘가해자를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횡단보도 교통사고 방지’라는 것을 떠올렸고, 가해자를 용서하기로 했다. 용서를 통해 여자는 마 음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본래 취지인 횡단보도 교 통사고 방지를 위해서, 경찰서 등 관공서에 사고 방지를 위한 다양 한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있다.
이처럼 아무리 좋은 취지라도 용서를 가로막는 원인이 될 수 있다. 따라서 나의 좋은 취지가 명확해졌을 때 드디어 용서할 준비가 되었 다고 볼 수 있다.
2. 주변사람 용서하기 용서하기 전에 위의 네 가지 마음가짐이 준비되었다면, 다음 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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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로 가는 길
에 따라서 용서의 대상을 정하고 용서를 실천해보자.
① 나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용서해야 할 대상을 찾아보자. ② 상처받았던 일을 회상해 보고, 종이에 적어보자. 정확히 상대방 의 어떤 행동이 나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그때의 내 감정은 어 땠는지 적어보자. ③ 부정적 감정에 휩싸이지 않게, 긍정적인 생각을 떠올려보자. ④ 최대한 객관적으로 ‘사건에 대한 이해’, ‘가해자에 대한 이해’, ‘자신에 대한 이해’를 시도해보고 적어보자. ⑤ 용서하기 어려운 이유를 적어보자. 나의 좋은 취지가 왜곡되어, 오히려 용서를 가로막고 있는지도 생각해보자. ⑥ 8과를 다시 읽어보면서 용서가 나와 내 주변 사람에게 주는 유 익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추가로 나의 좋은 취지에 집중해 용 서할 마음을 가져보자. ⑦ 용서할 마음이 생겼다면, 종이에 적은 내용을 주변 사람들과 공 유해보자. ⑧ 용서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면, 먼저 나의 마음을 치유하는 데 집중하고, 천천히 시간을 가지고 용서를 다시 시도해보자.
오늘 용서하기로 해도, 내일 다시 울화가 터질 수도 있다. 하루 만 에 용서가 되지 않아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용서는 지속적인 과정 이며, 용서의 최종적인 단계는 마음의 평화와 안정을 느끼는 것이 다. 용서를 시도하는 것 자체가 이미 주도적인 사람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약한 사람은 결코 용서할 수 없습니다. 용서는 강한 사람의 속성입니다. The weak can never forgive. Forgiveness is the attribute of the strong. ㅡ 마하트마 간디 (인도 정치 지도자, 1869~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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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나로부터 시작하는 용서와 평화
결론
이해와 용서는 평화를 이루기 위한 핵심적인 평화 가치관이다. 감사, 배려, 희생 등 앞선 과에서 배운 다양한 가치관이 주로 분쟁과 전쟁을 예방하는 차원의 역할을 한다면, 이해와 용서는 이미 벌어진 분쟁과 전쟁으로 인한 개인적, 국가적 상처와 증오심을 해소할 수 있는 적극적 해결책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용서를 통해 사회통합을 시도한 사례, 독일이 사죄 와 반성으로 주변국과의 관계를 회복한 사례는, 이해와 용서를 통한 평화 구축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용서하려면 먼저 이해가 필요하다. 깊이 있는 이해는 자연스럽게 용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사건에 대한 이해’, ‘가해자에 대한 이해’, ‘자신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면 상대방을 진 심으로 용서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때로는 용서의 과정이 상처만큼 아프고 괴로워 포기하 고 싶은 경우가 있다. 이때는 용서가 전적으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용서 는 과거의 사건으로 인해 생긴 현재의 상처를 치유하고, 건강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향해 나 아가는 굳센 발걸음이다. 용서는 단순한 망각이 아니며, 가해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행위도 아니다. 용서의 대상은 범죄 자체가 아니며, 범죄를 저지른 나약한 인간일 뿐이다. 결국, 용 서를 통해 바뀌는 것은 마음속 울화와 분노 그리고 복수하고 싶다는 자신의 욕구이다.
지구촌의 모든 사람은 확실히 전쟁보다 평화를 원하고 있다. 이해와 용서는 끊임없는 보복 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다. 그리고 평화의 새 시대를 견인할 힘이 있다. 나부터 주변 사람을 용서하고 평화를 실천해보자. 용서는 어렵지만, 매우 용기 있는 행동이다. 용서 를 시도하는 것만으로도 어두운 세상은 평화의 빛으로 점점 밝아질 것이며, 용서의 실천은 나와 세상을 치유할 것이다.
이미지 출처 그림 3-1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7/79/Armed_soldiers_carry_a_ banner_reading_%27Communism%27%2C_Nikolskaya_street%2C_Moscow%2C_ October_1917.jpg 그림 3-2 Scott Chacon from Dublin, CA, USA - Ntrama Church Altar, CC-BY 2.0, https://upload. wikimedia.org/wikipedia/commons/2/24/Ntrama_Church_Altar.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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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979-11-91898-07-1 ISBN 979-11-974584-9-1 (세트) Copyright Ⓒ 2021 Heavenly Culture, World Peace, Restoration of Light. All rights reserved. 이 책은 저작권법에 따라 보호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무단복제를 금지하며, 이 책 내용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이용하려면 반드시 저작권자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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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979-11-91898-07-1 979-11-91898-07-1 ISBN ISBN979-11-974584-9-1 979-11-974584-9-1(세트) %28%EC%84%B8%ED% ISB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