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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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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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Christine Yun, Agent 583 Skippack Pike Blue Bell, PA 19422 Bus: 215-540-9650 christine.yun.cpb4@statefar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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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흥사단 미주위원부 연락망 흥사단 미주위원부 위원장 :김재관 8 56 -20 3 -2000 수석부위원장 : 이장훈 90 9 - 4 3 8 -00 9 9 부위원장 ; 윤창희 26 7 -6 9 9 - 8 76 3 재무 : 정영조 21 3 - 8 80 -2 50 4 총무 : 이은택 21 5 -66 8 - 7 9 8 5 부총무 : 권태성 21 3 -2 4 7 - 7216
로스엔젤레스 지부장 최창호 32 3 - 360 - 4 4 5 5 / i m a c h o i @ h o t m a i l. c o m
뉴욕 지부장 윤창희 26 7 - 8 9 9 - 8 76 3 / c h a n g h i y u n @ g m a i l. c o m
워싱턴 D. C. 지부장 박대영 2 40 - 401 -16 8 8 / d y p a r k0 51 7 @ g m a i l. c o m
필라델피아 지부장 김승원 26 7 -266 -00 80 / s e u n g k i m d c @ y a h o o. c o m
시카고 지부장 이어기 8 4 7 - 3 70 -1 8 96 / y k a c h i c a g o @ y a h o o. c o m
동남부 (애틀랜타 ) 지부장 김정희 6 7 8 - 521 - 3 3 4 3 / h e o n s o o n i m @ y a h o o. c o m
서북미 (시애틀 ) 지부장 안지호 2 5 3 -2 7 9 - 8 501 / j i h o a n. a c n r e p @ g m a i l. c o m
뉴저지 지부장 임요한 91 7 - 51 9 - 7 5 3 9 / j r i m 9 3 @ g m a i l. c o m
토론토 지부장 강신학 90 5 -2 9 9 - 3 511 / c h u n g j i f a r m @ h o t m a i l. c o m
TABLE OF CONTENTS 05 ..........................미주위원부 조직연락망 06 ..........................애국가 07 ..........................미국국가 08 ..........................환영사-김승원 09 ..........................환영사-김재관 10 ..........................격려사-반재철 11 ..........................축사-손세주 12 ..........................축사-장권일 13 ..........................축사-송중근 14 ..........................축사-윤경희 15 ..........................축사-최현태 16 ..........................행사프로그램 17 ..........................흥사단 운동사 24 ..........................도산연보 25 ..........................도산의 말씀 26 ..........................시낭송-한반도 27 ..........................독립군가(악보) 5 YKA
Korea National An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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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ca National An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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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영사
미주 흥사단 운동의 새로운 100년을 준비하며!
흥사단 필라델피아 지부장 김승원 오늘 이 자리는 창립 100주년을 맞은 흥사단 운동 과 흥사단의 창립자이신 도산 안창호 선생을 기념 하고 의미를 나누는 뜻깊은 자리입니다. 먼저 이 자리의 마련을 위해 애써주신 미주 흥사단 의 대표 김재관 위원장님과 윤창희 부위원장님께 감사드리며 멀리 워싱턴 DC와 뉴욕, 뉴저지 등지 에서 오신 단우 동지 여러분을 뜨거운 마음으로 환 영합니다. 또한 바쁘신 가운데에도 참석하여 행사 를 빛내주신 각 기관 단체장님들을 비롯한 모든 내 빈 여러분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특히 이 번 행사의 타이틀 스폰서로 참여한 State Farm 보 험회사, 그리고 불경기임에도 불구하고 후원을 아 끼지 않으신 동포 사회의 여러 단체와 업체, 개인들 께도 마음 속 깊이 감사드립니다.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흥사단 운동의 발원지 는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의 한인 사회입니다. 100 년전 미국에 이민 온 우리 선배들은 열악한 생활 환 경과 어려운 경제 여건속에서도 독립 운동 자금을 모으고 항일 운동을 펼치며 조국에 대한 사랑을 실 천하였습니다. 이 같은 노력의 중심에는 탁월한 리 더십으로 동포사회를 깨우친 도산 안창호 선생과 흥사단이 있었습니다. 흥사단은 지난 100년 동안 민족이라는 가치를 중심 에 두고 한국 사회의 발전에 기여하는 인재 양성과 시민 사회의 활성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묵묵히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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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해 왔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부침이 이어졌 던 미주 지역에서의 흥사단 운동은 이제 미주 위원 부를 중심으로 각 지역별로 협력하며 새로운 100년 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뿌리없는 나무가 어디 있으며 기초없는 건물이 어 디 있겠습니까? 흥사단은 뿌리에 대한 자긍심을 일 깨우는 도산 선생의 나라 사랑정신을 배우고 계승 하며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 사회의 발전에 기여 하고자 노력하는 시민 운동 단체입니다. 한 세기 전 도산 선생의 가르침은 미국에서 한국계 이민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지금도여전히 소중 한 정신적 자산으로 남아 있으며 우리의 후세들에 게도 굳건한 정신적 버팀목이 되어 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다민족 다문화 이민사회인 미주지역에서 '애기애 타' 정신을 바탕에 둔 흥사단 운동은 동포 사회의 미 래를 위해 앞으로 더욱 활성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 합니다. 필라 동포 여러분의 흥사단 운동에 대한 관 심과 참여를 호소하며, 이번 행사를 계기로 더욱 많 은 분들이 흥사단 운동에 동참 할 수 있기를 바라마 지 않습니다. 끝으로, 이 행사를 준비하느라 애써 주신 모든 관 계자 여러분과 후원해주신 모든분들께 다시 한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축사
우리의 몸과 마음을 바쳐 2,3세 교육에 힘써야 할 것...
미주 흥사단 위원장 김재관 대한민국 국부로 추앙 받아 마땅할, 우리 민족의 스 승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 우리 민족의 독립과 번영 을 위해 흥사단을 창립한지 100년이 되었습니다. 민족을 위했던 100년을 축하하고 이제 세계를 향 한 100년을 다짐코자 준비한 “도산의 밤” 에 참석 해주신 단우 여러분, 회원 여러분과 귀빈께 감사를 드립니다. 100년 전 나라 잃은 슬픔을 가슴에 안고 미국에 왔 던 유학생과 이민 노동자를 중심으로 샌프란시스 코에서 창립된 흥사단이 미국 건국 초기의 수도였 으며, 청년 도산 안창호께 많은 영향을 끼쳤던 송 래 서재필 박사가 생전에 활동했던 필라델피아에서 “100주년 기념 도산의 밤” 을 개최하게 되어 기쁘 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민족 전도 번영에 목적을 둔 우리 흥사단은 일제 강 령기에는 독립을 위해서, 광복 후에는 국민 계몽을 위해, 독립 정권하에서는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 왔 습니다.
100여년 전 미국에 온 우리 이미 선배들이 낮에는 햇빛이 쏟아지는 사탕수수 밭에서, 혹은 오렌지 밭 에서 땀 흘리고, 밤에는 이슬을 가린 지붕마저 없는 마루바닥에서 잠을 자고, 먹을 것을 아껴가면서 조 국의 독립을 위해 자금을 마련했던 그분들의 정신 을 함께 되새기고, 100년 후 이제는 다민국 사회에 서 Made in Korea가 1등 상품이 되고, 한국어가 과 학적이고 배우기 쉬운 1등 언어가 된 것처럼 우리 민족이 1등 민족이 되도록 인격수양운동과 우리 민 족 품격 향상 운동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 2,3세들이 Korean-American이라는 자 부심과 자긍심을 가지고 미 주류사회에서 당당히 활동하며 세계 모든 민족이 번영과 평화를 선도하 도록 우리의 몸과 마음을 바쳐 2,3세 교육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다시 한번 참석해주신 여러분과 성원을 아까지 않 는 동포 지도자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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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려사
전 인류의 완전한 행복을 위해...
흥사단 이사장 반재철 존경하는 단우 동지여러분 반갑습니다. 그리고 자 리에 함께 해주신 모든 분께도 평화와 행복의 인사 를 드립니다. 역사적인 흥사단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도산 의 밤>을 개최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아시다시피 흥사단은 국권침탈의 암울한 시기에 조 국의 독립과 인재양성이라는 희망의 빛을 민족사에 비췄습니다. 우리 단이 근현대사의 극심한 격랑 속 에서도 100년을 이어 올 수 있었던 것은 도산 안창 호 선생님의 가르침과 창립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 다. 방향을 가늠할 수 없는 혼돈 속에서도, 총칼의 위협 속에서도 우리 선배 단우들은 도산 정신과 창 립이념을 좌표삼아 고난을 극복해 왔습니다. 특히 이민 초기에 미국 현지의 힘든 여건 속에서 도 흥사단을 지켜 오신 1세대 단우, 그리고 이국땅 에서 지금까지 흥사단 정신을 간직하며 실천해 오 신 미주 단우 여러분께 존경을 표하며, 감사의 말씀 을 전합니다. 지난 10월 26일, 27일 양일간 한국에서는 <제100 차 흥사단대회>가 성대하게 개최되었습니다. 이 자 리에서 우리 단은 지난 100년간 ‘독립운동과 시민 운동을 통해 국가사회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통 령 단체표창장을 받았습니다. 이는 우리 흥사단이 대한민국과 우리 민족의 화합과 발전을 위해 노력 한 결과라 생각합니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지만, 미 주에 계시는 단우 여러분들께서도 함께 기뻐해 주 시리라 믿습니다. 흥사단은 항상 시대의 과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흥사단 창립 100주년이 의미가 있는 것 은 단지 ‘100년이라는 시간’이 아니라, ‘100년간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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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 사회에서 해왔던 역할’입니다. 우리는 창립 100 주년 비전선언에서 ‘정의롭고 행복한 공동체 실현’ 을 우리의 실천과제로 제시했습니다. 창립 100주 년을 자축하는 것에서 그칠 것이 아니라, 이에 걸 맞은 사회적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하는 역사적 책임 이 있습니다. 미주에서 활동하는 단우 여러분들도 동포사회의 화합과 발전은 물론 미국 사회에 기여 하는 단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시기 바랍니다. 흥사단은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는 비전과제로 ‘민 족을 넘어 인류의 공동번영에 기여할 수 있도록 지 구촌 시민사회 활동’에 적극 나설 것을 선언했습니 다. 이 과제를 실천하는데 미주 단우의 많은 관심과 참여를 바랍니다. 흥사단은 최근 다양한 해외봉사 활동을 실시하고 있으며, UN 경제사회이사회에도 NGO 등록을 신청했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웅장한 꿈이었던 ‘전인류의 완전한 행복’을 실현할 수 있도록 힘써주시기를 바랍니다. 도산 선생님은 음악을 사랑하셨습니다. 오늘 <도산 의 밤> 행사장에 아름다운 선율이 울려 퍼질 것입 니다. 다양한 목소리, 악기가 조화를 이루어 우리의 마음을 감동 시키듯이, 흥사단 단우의 마음과 활동 이 동포사회와 미주사회를 감동시키고, 나아가 세 계의 화합과 공존을 위해 퍼져나갈 수 있기를 진심 으로 기대합니다. 끝으로 소중한 행사를 마련하기 위해 불철주야 애 쓰신 김재관 미주위원부 위원장을 비롯한 단우 여 러분께 힘찬 박수를 보냅니다. 오늘 <도산의 밤>을 다시한번 축하하며, 이 자리에 함께 해 주신 모든 분 들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이제 흥사단의 새 로운 100년은 시작되었습니다. 손잡고 하나가 되어 힘차게 나아가십시다. 감사합니다.
축사
주인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행동해 나아갈 때...
주 뉴욕 총영사 손세주 필라델피아 흥사단 지부가 미주위원회의 참여 하 에 흥사단 100주년 기념 만찬 및 도산의 밤 행사를 성대히 개최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1913년 민족적 과제의 해결을 위해 도산 안창호 선 생님에 의해 창단된 흥사단은 광복 전에는 독립운 동에 헌신했고 광복후에는 민족부흥운동과 인재양 성과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촉진하는데 기여하였습 니다. 특히, 필라델피아 지회를 포함한 흥사단 미주 위원부 소속 흥사단원들은 조국을 떠나서도 뿌리를 잊지 않고 힘든 여건 속에서도 조국과 현지 지역사 회 발전을 위해 기여하고 계신 것은 한인 동포 사회 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이신 도산 안창호 선생님께서 는 우리 민족이 바로 서기 위해서는 민족 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격 개조를 통해 자기 혁신은 점진
적으로 추구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각자가 주인 의식을 가지고 무실역행 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흥사단 창단 100년, 미국 이민 110주년을 맞이하 여 미국 한인 동포 사회는 미국 사회에서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도전과 변화의 시기에 직면해 있 습니다. 이러한 변혁기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주인 의식이라 생각됩니다. 한인 동포 각자가 미국 사회 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먼저 유권자 등록을 하고 적극적인 투표를 함으로써 우리의 차세대들이 미국 주류사회 진출을 더욱 확대할 수 있게 적극적 으로 행동해 나갈 때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 뜻 깊은 행사 준비를 위해 수고 하신 관계 자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 드리며, 충의용감한 흥 사단의 무궁한 발전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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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한민족의 역사에 더욱 의미 있고 발전적인 발자취를 남기는 흥사단이 되기를...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 필라델피아협의회 회장 장권일
흥사단 창립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민족을 위한 100년, 세계를 향한 100년이라는 표어 아래 이곳 필라델피아 에서 개최되는 도산의 밤 흥사단 창립 100주년 기념행사를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더불어 이번 대회에 참석하시기 위해 미주 전역에 서 오신 여러 흥사단 단우님들과 대회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애써주신 미주위원부 김재관 위원장 님, 윤 창희 부위원장님, 김승원 필라델피아 지부장 님을 비롯한 대회 관계자 여러분의 노고에도 감사 의 말씀을 전합니다. 특별히, State Farm 보험회사에서 최고 실적을 올 려서 President’s Club에 매년 뽑힐 뿐만 아니라, 동 포들의 재산을 탄탄하게 많이 불려 주시고, 이번 행 사에 State Farm의 후원을 받기 위하여, 여름부터 계획서를 써내랴, 회사를 설득하랴 애쓰신, 윤 경희 사장님의 헌신에 감사를 드립니다. 이번 행사가 동 포사회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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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13년 도산 안창호 선생을 중심으로 미국 샌 프란시스코에서 창립된 흥사단은 이제 역사적인 100주년을 맞아 아주 중요한 시점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유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우리 민족과 더불어 수난과 발전을 함께 해왔을 뿐만 아니라 일 제 치하에서는 독립운동을, 해방 이후에는 민주사 회 건설을 위한 부단한 사회운동을 전개해 왔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로는 청소년 사업과 민족 통 일, 투명 사회, 교육 등 한국이 선진 사회로 발전하 기 위한 필수적인 3대 시민운동에 주력하는 한편 한국 사회 발전에 기여할 인재 양성 운동에도 앞장 서 왔습니다. 이러한 흥사단의 숭고한 정신과 활발한 대외 활동 이 이번 100주년 창립기념 행사 개최를 계기로 한 단계 더 도약해 한반도는 물론 전세계에 흩어져 살 고 있는 우리 동포들에게 더욱 더 밝고 희망찬 메시 지를 전달해 주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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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을 위한 100년! 세계를 향한 100년!”
필라델피아 한인회장 송중근 이역만리 먼 땅에서 조국의 독립을 꿈꾸며 창립된 흥사단. 올해는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 흥사단을 창 립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러한 뜻 깊은 해에 ‘흥사단 창립 100주년 기념 도산의 밤’ 행사를 이 곳 필라델피아에서 개최하게 된 것을 매우 기쁘 게 생각합니다. 흥사단은 지난 100년 동안 한국사회의 발전을 이 끄는 인재양성과 시민사회의 활성화에 크게 기여 해 왔으며, 미주에서도 가장 모범적인 한인단체중 의 하나로 자리매김 하고 있습니다. 무실, 역행, 충 의, 용감의 4대 정신과 민주시민이 갖추어야 할 덕, 체, 지 삼육을 기본 덕목으로 하는 흥사단 정신에는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세계를 향한 뚜렷 한 비전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듯 합니다. 창립 100 주년을 맞이하는 흥사단이 그 동안 지속적으로 펼 쳐 온 투명사회운동과 교육 청소년 운동, 그리고 사 회 지도자와 세계시민양성 등의 다양한 활동들은 한국뿐만 아니라 미주 이민사회의 밝은 등불이 되 어 이 세상을 환하게 비추어 줄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더우기 흥사단은 일본 강점기 독립운동 과 해방 후 민주화 운동, 시민교육, 청소년 육성 등 의 활동을 통해 국가 및 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 를 인정받아 창립 100주년을 맞이하는 올 해 대통 령 단체 표창을 받았다고 합니다. 참으로 자랑스럽 고 축하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로부터 은근과 끈기, 그리고 예의 범절을 중시해
온 조용한 아침의 나라 대한민국. 그러나 이제 대한 민국은 더 이상 동양의 작은 나라가 아닙니다. 삼성 갤럭시 휴대폰은 이미 애플의 아성을 넘어뜨리고 세계 휴대폰 시장을 석권하고 있으며, TV를 포함한 모든 전자제품 시장에서도 한국 상품들이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 K Pop과 한국 드리마 등을 통한 한류문화는 이제 동남아를 넘어 유럽과 남미에서도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대통령이라고 하는 UN 사무총장 에 반기문 총장이 자리잡고 있고 또한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는 세계은행에 우리의 김 용 총재가 있습 니다. 너무나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흥사단은 이제 새로운 의미의 민 족운동을 전개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명실 공히 세계를 이끌어가는 진정한 지도자들이 더욱 많이 배출되어 대한민국의 위상이 드높아지고 정상 의 자리에 서는 날, 그곳에 흥사단 정신이 살아있어 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행사를 위해 애기애타의 정신으로 불철주야 헌신하신 흥사단 미주위원부의 김재관 위원장님과 윤창희 부위원장님 그리고 필라델피아 지부의 김승 원 지부장님께 필라 한인사회를 대신하여 깊은 감 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100년이란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정신을 지켜온 흥사단이 앞으로도 ‘민족을 위한 100년, 세계를 향한 100년’ 이라는 큰 기치아래 한반도 평화통일과 세계 인류 평화를 위해 앞장서주기를 기대해봅니다. 다시 한 번 흥사단 창립 10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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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흥사단 정신으로 민족과 인류사회에 봉사하자!
State Farm Agency 대표 윤경희
100년 전에 미국에서 창단된 흥사단의 뜻 깊은 100 주년 기념식을, 역시 역사가 오래된 State Farm 회 사의 스폰서를 받아서 “도산의 밤”의 행사를 열게 되니 감격스럽습니다. State Farm 보험회사는 미국 의 Fortune 30에 속하는 대기업이고, 보수적이며, 재정이 탄탄하고, 실속이 있는 회사입니다. 여기에 몸 담고 일한지가 벌써 24년이 되었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1911년 9월 3일에 뉴욕 엘리 스 섬(Ellis Island)에 도착한 이후로, 필라델피아에 있는 서재필 박사, 독립 운동가, 그리고 많은 흥사 단 단우들과 독립 운동을 활발히 전개하였습니다. 특히 주목할 것은, 미국 동부에서 공부한 흥사단 단 우들이, 해방을 전후하여, 한국 사회의 많은 분야에 서 활동을 한 점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교 육과 산업을 일으켜야 한다는 도산의 가르침을 받 은 초창기 흥사단 단우들은, 교육계에 많이 진출하 였고, 각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 내었습니다. 1913년에 조직된, 흥사단은 도산이 한국 민족에게 내놓은 최종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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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사람이 되고, 성실한 사람이 되고, 인생을 열심 히 살라고 하신, 인류가 지향할 수 있는 보편 타당 한 진리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무실역행, 충의용감 의 정신으로, 그리고, 덕, 체, 지 삼육을 꾸준한 수 양으로, 자신을 향상시키고, 한가지 직업과 지식으 로, 사회에 봉사하고, 인류에 봉사하라는 사상을 완 성시킨 것입니다. 그것을, 뜻이 맞는 여러 동지들과 같이 하라는 것이고, 이것이 흥사단의 기초가 된 것 입니다. 도산은, 처음에는 귤 농장의 인부로 시작했 으나, 본인 스스로 끊임없는 꾸준한 노력으로, 나중 에는 성자의 경지에 이르러, 지금은 간디, 킹 목사등 과 같이 귤 농장의 생산지인 California, Riverside 에 나란히 서 계십니다. 도산은 한마디로, 성실과 감동 그 자체입니다. 한국 민족에서, 최고의 인류애를 발휘한 도산이 탄생되 고, 그리고 흥사단이 나온 것은 역사적인 일입니다. 우리 미국에 있는 한국 사람은, 미국에서 시작한 도 산 정신, 흥사단 정신으로, 자기가 속한 지역 사회 에 봉사하고, 나아가서, 민족과 인류 사회에 봉사해 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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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100이 더 넘도록 흥사단이 지속되며, 건투하시기를...
서재필 기념 재단 회장 최현태
1878년에 출생하신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1938년 서거 하실 때까지 일생을 바처 일제의 간악한 식민 통치하에서 우리 한민족의 자주독립 해방운동을 하 신 많은 자도자 가운데 너무나 뛰어나고 잘 알려진 분입니다. 서재필 박사님 보다 연세가 14년이나 어 렸지만 약관의 18세 때 부터 서재필 박사님이 미국 에서 의사가 된 후 일차 망명을 끝내고 귀국하여 많 은 활동을 하셨는데 서재필 박사님이 세웠거나 참 여를 한 독립협회, 신민회, 자강회등 각종 매개체와 접촉하게 되었으며, 서재필 박사님의 강연을 듣고 깊은 감명을 받아, 평생을 조국해방을 위해 헌신하 게 되었던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치열한 애국사 상을 소유한 자였으며, 1919년 3.1운동 이후 상해 임시정부에서 내무총장직을 맡아 수고 하셨고, 수 차례 일제통치 하에서 감옥 생활을 격었던 우리 한 민족이 영원히 잊어서는 안되는 불굴의 애국 지도 자이였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의 일생의 찬란한 공적 중에서 도 주목이 되는 바는, 선생님은 한 민족의 단결에 특별히 관심을 가지시고 우리 민족, 동포들의 모임 을 여러가지 만드셨습니다. 그 한 예로 1909년에는 대한인국민회를 창립 주관 하셨읍니다. 이 대한인 국민회는 2차대전 종말까지 활동하였고 특히 1919 년 3.1운동 이후 서재필 박사님이 이곳 필라에서 자
기의 재산과 건강을 다 바처가며 노력하신 독립운 동과 긴밀하게 상호 협조 활동을 했습니다. 1928년 에 두분이 함께 찍은 사진이 저가 현재 봉사하고 있 는 서재필 기념 재단 강당 입구에 걸려 보존되고 있 습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세운 기관 중에서도 가장 탁 월한 기관이라고 하면, 이제 100년이 넘어서도 살 아 남아 아직도 창립정신을 계승, 활동하는 흥사 단이라고 생각합니다. 흥사단은 도산 선생님께서 1913 산프란시스코 에서 발족하였으며, 일제통치 하에서 민족구원의 길로 사회 개혁과 한 민족 성격 의 개혁, 발전이 목표 였습니다. 도산 선생님께서는 민족운동은 국민교육과 한 민족인으로서의 자질과 인격 발전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모 이기가 힘들고 또 모여서 함께 활동하기가 어려운 것이 한 민족의 하나의 특성이라고 볼 때, 100년이 지난 오늘 까지 이 같이 건재 하여 미국 전역에서 뿐 만아니라 본국에서는 물론이고, 세계 각지에서 흥 사단 모임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진심 으로 축하를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흥사단 창립 100 주년 기념식에서 축하말씀을 드리 게 된 것을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하오며, 또 앞으로 100년이 더 넘도록 흥사단이 지속되며, 건투하시기 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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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진행순서
P r o g r a m 6 : 30 - 7 :20 만찬 .....................식사기도 김성은 목사 동영상상영 _민족의 수난과 도산 안창호 외
1부 : 7 :20 - 8 :20 기념식 및 기념강연 01.개회 (거수례 ) 02.국기에 대한 경례 0 3.애국가 제창 0 4.미국가 독창................................................ M s. R o s e t t a R o b i n s o n 0 5.환영사 ......................................................필라델피아 지부장 김승원 06.축사 ........................................................한인회장 송중근 0 7.축사..........................................................평통 회장 장권일 0 8.축사..........................................................서재필 재단회장 최현태 0 9.감사패 수여................................................ M s. C y n t h i a D a v e n p o r t ( S t a t e F a r m R e p r e s e n t a t i v e )
10. S t a t e F a r m 세미나 ....................................윤경희 , 윤필립 , 이은희 11.기념강연 : 통일 한국의 국부는 도산 안창호 ! ........장철우 목사 (전 흥사단 미주 위원부 위원장 )
2부 : 8 :20 - 9 : 40 도산의 꿈 ,함께 만드는 행복한 세상 ! 01.영상물상영 :도산 안창호 02.시낭송 :한반도 .............................................이현숙 0 3.도산의 말씀 낭독 .........................................박영진 0 4.판소리 마당 : 육자배기 흥타령 , 진도 아리랑 .......강창구 워싱턴 지부단우 0 5. Y o u R a i s e M e U p .................................... M s. R o s e t t a R o b i n s o n 06. W e S h a l l O v e r c o m e................................. M s. R o s e t t a R o b i n s o n 0 7.봉선화.......................................................정성숙 0 8.옛 동산에 올라............................................정성숙 0 9.명태..........................................................양영배 10.신 아리랑 ...................................................신은미 11.그리운 금강산...............................................양영배 ,신은미 12.희망의 나라로..............................................양영배 1 3.선구자........................................................윤창희 (미주위원부 부위원장 ) 1 4.독립군가.....................................................윤창희 , 다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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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 9 : 40 : 단우의 밤 흥사단
미주 흥사단운동
100년 1. 흥사단 창립의 배경
도산 안창호 흥사단을 창립한 도산 안창호 는 1878년 한말의 풍운 속에서 태어났다. 도산은 일 찍이 독립협회에 참여하여 명성을 떨친 이래 국내외 를 드나들며 공립협회, 신민회, 청년학우회 등을 통해 민족운동을 주도하였다. 또한 교육을 통한 민력 배양 에도 선구적인 지도력을 발휘하였으며 훗날 임시정 부 초창기의 중심 인물로 활약하며 탁월한 지도력과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도산은 준비 없는 해방 투쟁이나 실력 없는 독립운동만으로는 민족이 염원 하는 해방과 독립을 성취하기가 어려움을 인식하고 진정한 민족중흥과 자주독립과 함께 무궁한 번영과 발전을 위한 독창적이고 조직적인 운동체로 흥사단 을 창립하여 구국의 대열에 참여하였다.
신민회 20세 청년의 나이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 던 도산 안창호가 조국의 운명을 염려한 나머지 1907 년 귀국하여 그 해 4월 민족의 지도급 인사들과 조직 한 단체로 전국적 구국운동의 선봉이 되었다. 이갑, 이동휘, 이동녕, 전덕기, 이회영, 유동열, 노백린, 이 승훈, 안태국, 최광옥, 최남선, 양기탁, 신채호 박은 식, 장지연 등이 참여하였던 비밀 결사단체 신민회는 인격개조, 단결, 대중운동을 기치로 삼아 평양의 대 성학교를 통한 교육사업, 태극서관의 출판사업, 도자 기회사를 설립하여 기업운동을 펼침으로 민족에 의 한 근대화 및 국권회복운동을 전개 하였다. 도산은 ‘ 지식은 힘이다’ 라는 신념 아래 항일운동과 동시에 민 주화, 현대화 운동의 큰 불길을 일으켰다.
청년 학우회 흥사단의 전신이라 할 수 있 는 청년학우회는 1909년 2월 결성되었다. 구국운동 의 기본 방향을 자기 수양에 의한 힘의 축적과 힘 있
는 동지의 단결에 의한 힘의 결집에 있다고 생각한 안 창호는 민족의 역량을 축적하고자 국내 최초의 청년 운동을 전개키로 하고 중앙회장에 윤치호를 추대하 고 육당 최남선으로 하여금 총무로서 도산을 도와 실 무를 담당케 하였다. 도산은 육당에게 목적, 내용, 취 지 등을 말하여 작성토록 했는데 그때의 요지는 다음 과 같다. 우리 국가와 민족이 이렇게 쇠망한 근본 이유가 진 실한 국민적 자각, 역사적 자각, 사회적 자각을 못 가 진데 있다. 배일운동이 있기는 하지만 그 중에는 그냥 비분강개에 그치는 수가 많고 믿을만한 책임감이 결 여돼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청년운동은 어디까 지나 진실을 숭상해야 한다. 언변보다는 실행을, 형용 보다는 내용을 존중해야 한다. 그것이 무실역행이다. 이상과 목적을 책임 있게 실행할 능력도 기르고 정신 도 기르자. 이렇듯 청년 학우회를 만든 근본 정신은 진실한 민족혼을 자각 함으로서 진실한 독립국가를 찾자는 것이었다. 한국 최초의 근대적 청년운동 단체 인 청년학우회는 주로 인격수양과 단체생활 훈련, 1 인1기 연마를 목적으로 삼고, 무실•역행•충의•용 감을 4대 정신으로 채택하였다. 청년학우회가 한일합 방으로 해산된 지 3년 후 1913년 흥사단이 미국 샌프 란시스코에서 창립되었다.
2. 흥사단의 창립
흥사단 창립의 구상 1911년 미국으로 다시 돌아온 도산은 동포들의 생활 개선과 인격수양 에 전념하던 중 동지들의 권고로 대한인국민회 중앙 총회장에 취임하였다. 당시 국민회 회원은 4,000여명 정도로 미국을 비롯한 유럽의 여러 나라에 한국의 독 립지원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도산은 국민회와 같은 정치적이고 대중적인 운동으로서는 민족운동의 핵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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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이 될 인재를 양성할 수 없음을 절감하고 새로운 운동 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1912년 도산은 리버사이 드에서 로스앤젤레스로 가서 자신이 이미 기초한 흥 사단 약법의 초안을 우강 송종익에게 보여 주고 앞 일 을 상의하였다. 그것은 청년 학우회의 명맥을 잇는 집 념의 재현으로 민족영구 부흥의 핵심체가 아닐 수 없 었으며, 그에 앞서 결성된 비밀 독립운동 단체인 신민 회의 한 줄기를 활성화 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의 기러기 깃발 1913년 5월 13일 성 금요일 인 이날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흥사단의 기러기 깃발 이 오르게 되었다. 강영소 창립위원 자택에서 첫 모임 을 가진 흥사단의 창립 동지는 한국 8도를 대표하는 8명의 창립위원과 뜻을 같이 하는 건실한 청년 등 모 두 25명이었다. 각 도별 창립위원은 경기도 홍언, 강 원도 염만석, 충청도 조병옥, 황해도 김항주, 경상도 송종익, 평안도 강영소, 함경도 김종림, 전라도 정원 도 등이었다. 도산이 기초하고 창립 총회에서 정식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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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채택된 흥사단 약법에는 도산정신의 진수와 국가 와 민족을 위한 그의 신념을 엿볼 수 있다.
3.흥사단 조직의 정비 도산은 스스로 실천하면서 모범을 보이는 한편 각처 를 순회하면서 개별 방문을 통해 단우를 모집하였다. 도산의 노력은 많은 호응을 얻어 해를 거듭 할수록 알 찬 일꾼들을 단우로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건전인격 과 신성단결을 평생의 목표로 삼는 흥사단 단우는 자 나깨나 덕• 체• 지 3육의 3대 수련과 무실•역행• 충의•용감의 4대 정신으로 반드시 무리를 지어 하 늘을 나는 역사의 기러기 떼였다. 흥사단 창립위원회 에서는 약법과 규정을 제정하고 도산이 직접 고안한 기장을 단기로 제정하였다. 무실•역행•충의•용감 을 상징하는 4색 단기 외에 무실•역행을 상징하는 황색, 홍색만으로 단대를 만들어 각종 모임 때는 통 상단우들이 착용하였다. 단우를 통상단우, 예비단우, 특별단우로 구분하여 조직을 일원화 한 것도 도산다 운 착상이었다. 또한 엄격하기 이를데 없는 문답식이 나 서약례는 기독교 의식을 참고로 하였으며 흥사단
축사
이 창립된 매주 금요일마다 정기모임을 가 지게 하였다. 매월 한 차례씩의 월례회는 거 수, 약법낭독으로 개회하는 의식을 정하였 고 대회는 상견례, 강론회, 운동회, 희락회, 상별례 등의 다섯 가지로 구분하였다. 상견 례 때에는 먼저 윤회악수의 절차를 가지게 하였다. 그 외에도 단우 간에 서로 부를 때 에는 군이라고 경칭을 붙이게 하는 등 흥사 단의 독특한 의식은 지금까지 그대로 이어 지고 있다.
4.흥사단의 초기 활동
흥사단 정신 배양 운동 흥사단의 초 기 활동은 흥사단 정신의 강화 시기였다고 볼 수 있 다. 즉 우리 민족이 쇠락한 까닭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으나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하여 깊이 깨달아 한편으 로는 인내하는 힘과 용맹스럽게 전진하는 힘을 길러 우리의 정한바 목적을 향하여 끈기 있게 나아갈 것이 며 또한 우리의 분수와 처지를 헤아려 허욕과 요행을 바라는 습관을 버리고 한 걸음 한 걸음 튼튼하고 착실 한 터를 쌓아 확실한 희망을 일으켜서 낙심과 절망 속 에 있는 우리 민족의 빛이 되자는 것이다.
1차 세계대전중의 흥사단 1918년 5년에 걸친 전쟁이 끝나자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민 족자결주의를 발표하였으며 이듬해 일본 동경에서 한국 유학생들의 2.8 독립선언에 이어 마침내 3.1운 동의 횃불이 올랐다. 이 무렵 하와이, 멕시코 등지에 서 흥사단 조직에 열성을 다하고 있던 도산은 1919년 2월 대한인국민회의 이름으로 한국 독립운동에 관한 청원서를 윌슨 대통령에게 제출했다. 도산은 민족의 정신적 독립과 경제적 독립을 강조하 고 이를 위해 첫째 실업 발전의 기초, 둘째 교육, 셋 째 자립, 넷째 흥사단 실무 진흥을 강조하고 이에 전 력을 다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의 원동에 뿌리내리는 흥사단 흥사단 흥사단 구국운동의 발판인 흥사단의 창단은 샌 운동을 필생의 사업으로 여기던 도산은3.1운동이 일 프란시스코에서 되었지만 그 후 단소를 옮겨 로스앤 젤레스가 흥사단 운동의 중심을 이루었다. 단우들의 인격수련과 단결훈련을 중심으로 1914년 1월에는 흥 사단보를 발간하기 시작했으며 그 해 12월 19일에 는 제 1차 대회가 새크라멘토와 클레어몬트 두 곳에 서 개최되었다. 창단 2년 후인 1915년에는 흥사단우 제 1회 시집으로 흥사단 단기가가 발행되었다. 제 1 회 시집에는 도산을 비롯하여 36명의 단우들이 작품 을 발표했다. 이는 흥사단 단우들의 사기양양과 정서 표현을 위한 문학적 활동으로서 매우 뜻 깊은 일이 아 닐 수 없다. 이렇듯 창단 후 수년동안 흥사단 활동은 일취월장 활기를 띠어갔다.
어나자 상해 임시정부에 참여하게 되었다. 도산은 상 해임시정부의 일을 도맡아 하면서도 흥사단 사업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어 중국을 중심으로 한 흥사단 원동위원부 설치를 추진하게 되었다. 상해로 올 때도 도산의 사명은 독립운동의 연속이었다. 젊은 인재의 양성 없이는 독립운동을 계속할 수 없으리라는 의지 의 발로였다.
문답식 민족전도 대업의 기초 준비의 깃발아래 창단된 흥사단은 1920년대에 눈부신 발전을 하게 되 었다. 상해 프랑스 관할 지역에 단소를 설치하고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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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요한, 김여제 등의 문답식과 입단식을 거행하였다. 특 별히 이 시기에 행해진 이광수와의 문답식은 기념비 적인 것으로 여러 문헌을 통해 소개되고 있다. 문답 의 요지는 민족을 갱생의 길로 인도하며 민족성을 혁 신하고 향상시켜 국가와 민족의 발전을 위한 기본적 인 역량을 확립하려는데 중점을 두고 시행되었다. 이 광수, 주요한에 이어 박현환, 김여제 순으로 1920년 부터 1924년까지 5년 동안 흥사단 원동위원부는 48 명에 이르는 새 일꾼들을 맞이했다. 이중 흥사단 활 동에 중추적 역할을 한 단우는 말 할 것도 없고 독립 운동에 참여했거나 해방 후 정계에서 활동한 단우 또 한 적지 않았다.
흥사단의 국내조직수양동맹회 상해에 흥사단 원동위원부가 설 치되어 재중 한인들의 권익옹호와 지위향상에 힘을 쏟기 시작했을 무렵, 국내에서도 서울과 평양에서 흥 사단운동이 태동되고 있었다. 1921년 국내로 돌아 온 이광수와 박현환, 동경에 파견 되었던 김항주, 미국에 서 활동하던 김태진이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다. 이들 은 1년 가량 걸려 뜻 있는 동지를 규합하여 1922년 2 월 12일 밤 서울 신문로 춘원의 자택에서 드디어 그 결성을 보기에 이르렀다. 춘원은 그 해 1921년 천도 교 간행의 잡지 개벽 11월호에 소년에게 라는 글을 발 표하며 소년 동맹론을 제창하였다. 흥사단운동의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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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전개 그 첫 신호탄이었던 것이다. 수양동맹회는 이 듬해 1월 16일 평양에서 대성학교 출신들이 모여 조 직한 동우구락부와 통합하여 1925년 가을 수양동우 회가 되고 1929년 11월 23일 동우회로 새롭게 발족 하여 발전을 거듭하게 된다.
5.수난과 시련의 시기
도산의 피검과 수난의 시기 1932 년 4월 29일 윤봉길 의사가 상해 홍구공원 천장절 행 사에서 일본군 시라가와 대장을 비롯해 왜적 10여명 의 사상자를 내는 쾌거를 이룩한다. 이날의 의거로 일제는 애국지사에 대한 무차별적인 검거에 들어가 게 됐다. 도산 또한 이 사건의 배후 용의자 혐의로 체 포되어 6월 7일 본국으로 송환 되었다. 결국 4년형을 언도 받고 대전감옥에서 2년 반에 걸쳐 복역하는 동 안 흥사단운동은 침체 일로에 빠져 들 수 밖에 없었 다. 도산이 인천항으로 호송되어 오자 주요 단우들이 마중을 나갔다. 악명 높은 총독부의 지휘 아래 일본 경찰이 도산의 신병을 인계 받으러 종선을 타고 나갈 때 단우들 또한 발동선으로 따라 갔지만 호송선에 접 근 할 수가 없었다. 수척한 표정의 도산이 도착하자 마중 나간 일행들은 일렬로 서서 도산과 말없는 목례 만 나눌 뿐이었다.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민족 전도 대업의 웅도를 펼 치지 못한 채 민족의 독립도 보지 못한 채 그렇게 도 산은 순국했다.
6.미주 흥사단운동
1937년-1940년 도산의 순국, 동우회
동우회의 해산
1936년 동우회사건은 이
미 중국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던 일제가 민족주의 계열 인사를 소탕할 작정으로 저지른 범죄이다. 이때 일제의 지독한 고문에 견디다 못해 세상을 뜨거나, 여 생을 거의 폐인으로 지낸 단우, 풀려난 뒤에도 병으로 목숨을 잃은 단우가 부지기수였다. 동우회사건으로 도산도 다시 구속 수감되었다. 미주에서 흥사단이 창립된 후 24년 만에 겪게된 최대의 치욕이요, 뿌리마져 뽑히는 위기 에 처하게 된 것이다. 동우회사건은 역 사적인 악몽이었다. 비록 전원 무죄 선 고를 받았으나, 동우회는 1937년 일제 에 의해 강제 해산되어 국내에서의 흥사 단 활동은 그 명맥이 끊긴 셈이다.
도산의 순국
해산, 원동위원부 해체 등 흥사단 최대의 위기 속에서 도 로스앤젤레스의 흥사단 본부만은 흥사단 운동을 지속해 나갔다. 1938년 1월 25일 흥사단 직영 대동 실업사가 창설되어 농산물 재배와 판매사업을 시작 하여 경제활동에 주력하는 한편, 동맹저축운동을 통 해 흥사단의 부활을 꾀 하였다. 같은 해 5월 18일 창 단 25주년 기념 행사에서는 도산의 유지를 받들어 새 로운 흥사단운동을 전개하기로 하였고 8월 18일에는 국내에 있던 예비단우 및 통상단우 13명에 대한 제적 및 출단이 단행되었다. 동우회사건 발발 이듬해 일본 의 탄압이 극도에 이르고 경찰의 압박이 가중되자 13 명의 단우가 소위 대동민우회에 강제 입회한 사실이 있었는데, 흥사단의 기본정신을 수호해야 한다는 엄 숙한 입장에 따라 징계하게 된 것이었다.
1941년-1944년 1940년대 초반은 흥사 단의 기강 확립을 위해 다시금 진통을 겪어야 했던 암 울한 시기였다. 당시 국내의 민족주의 운동은 거의 전 멸 상태였고 삼엄한 탄압으로 인해 흥사단 부활운동
대전감옥에서
의 옥고로 위장병에 걸려 있던 도산은 1938년 병보석으로 서울대학병원에서 치유 도중 이듬해 봄, 1938년 3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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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1963년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은 상상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미주 본부에 있 는 단우들은 태평양전쟁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날 것 을 확신하고 있었기에 유례없는 엄격한 숙정을 단행 하여 단우들의 지적 수준을 높이거나 신성단결을 견 고하게 함으로서 일본이 패망할 경우 민족 해방과 단 의 발전을 위한 준비를 진행시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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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소는 흥사단의 본부로서 미주지역 독립운동의 본 거지로서, 또 나라 잃은 36년간 변함없이 태극기가 휘날린 대한민족의 마음의 고향이었다. 그러나 1948 년 본부를 국내로 이전하고 많은 단우들이 귀국하면 서 단세가 다소 위축되었다. 하지만 조국에서의 흥사 단 활동이 굳건히 뿌리를 내리도록 물심양면으로 많 은 지원을 하였고 신생조국의 재건을 위해 많은 공헌 을 하였다. 미주 단우들은 본부를 이전할 때와 6.25 동란으로 국내가 어려울 때, 단 운영자금의 원조와 구 호활동 등 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국 생활의 어 려운 여건 속에서도 흥사단 단우들은 따뜻한 동지애 와 애단정신, 애국심을 발휘하여 수 차례에 걸쳐 성 금을 모아 국내 본부와 조국을 도왔다. 이 시기의 미 주 한인사회는 해방 후 도미한 2만명을 포함해 3만명 정도의 한인들이 거주하고 있었으며 해방정국의 혼 란과, 남북 분단, 6.25 한국전쟁 등으로 한인사회 역 시 진통을 겪었다.
1964년-1980년 신입 청년 단우의 수 가 적고 1세 단우가 점차 고령화 됨에 따라 활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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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맥을 유지하는 가운데서도 미주위원부 는 도산정신과 흥사단 이념을 발전시키 려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실로 흥사 단의 핵심 정예단우라고 할 단우들의 애 단심으로 흥사단 미주위원부는 매년 연 차대회와 창단 기념행사, 도산 추모식 등 을 쉬지 않고 개최해 왔다. 또한 뉴욕, 필라델피아, 워싱턴, 아틀란 타, 씨애틀 등 각지에 흩어져 있던 단우 동지들이 지부를 창립하고 새롭게 흥사 단 운동을 시작하게 됨으로서 흥사단운 동은 미주 전역에서 싹을 틔우기 시작했 다. 이 시기 필라의 경우 김재관, 임보현, 박 원용 등의 단우와 당시 템플대에 유학 중 이던 이윤배 단우가 중심이 돼 기존 단우 활동을 활발히 하는 한편, 대학생과 고등 학생을 대상으로 한 아카데미 조직을 결 성해 다채로운 활동을 펼쳤다. 다소 부진하였다. 그러나 원로단우들과60년대 중반 부터 유학생으로 미국에 온 청년단우들로 미주 흥사 단운동은 다시 활기를 띄게 되었다. 당시 유학생으 로 미국을 찾은 청년단우 중 백성극, 윤병욱, 이장훈, 김용길, 편무선 등은 미주위원부 위원장을 역임하기 도 했다. 이때의 미주한인사회는 케네디정부의 이민법 개 정으로 가족초청 이민자가 대거 도미해 한인의 수가 100만명이 넘게 되었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한인사 회가 형성되기 시작하자 미주 흥사단 단우들의 활동 이 빛을 발하게 되었다. 흥사단정신과 도산사상으로 무장된 단우들은 사회, 경제, 문화, 체육 등 각 분야에 서 한인사회 형성에 적극 참여함으로 미주한인 이민 사회가 토대를 이루는데 절대적인 역할을 하였다. 또 한 미국 민권운동의 영향을 받아 모국의 인권신장 및 민주화 운동에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1981년- 200 2년 이 시기의 한인사회 는 이민자가 더욱 늘어나 미주 전역에 2백만 이상이 되었으며, 미주 한인사회는 특별히 경제적 안정과 성 장을 위한 토대를 구축하는데 힘을 기울이던 시기였 다. 미주 흥사단운동 또한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2003년-현재
2003년 1월 뉴욕에서 미
주위원부 총회를 열고 미주 흥사단운동의 발전을 위 해 조직을 확대 개편하고 미주 각지에서 활동하던 각 지부를 미주위원부에 편입시키기로 결의했다. 이에 따라 로스앤젤레스의 미주위원부는 로스앤젤레스 지 부로 개편되었으며 이후 미주위원부는 매년 각지부 를 순회하며 미주대회와 총회를 열고 미주 흥사단운 동의 발전을 위해 서로 협력하고 있다. 현재 흥사단 미주위원부는 로스앤젤레스, 뉴욕, 워싱 턴 디씨, 필라델피아, 아틀란타, 씨애틀, 시카고, 뉴저 지와 캐나다의 토론토 등지에 모두 9개의 지부를 두 고 있다. 미주 흥사단은 창단 100주년을 맞아 도산정신과 흥 사단 이념으로 재무장하여 한인 청소년들에게 한민 족으로서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 이는 한편 시민운동 단체로서 건강한 한인사회를 만 들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나아가 도 산이 꿈 꿨던 정의롭고 행복한 공동체를 구현하기 위 한 노력을 경주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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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24 흥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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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한반도 도산 안창호
동해에 돌출한 나의 한반도야 너는 나의 조상 나라이니 나의 사랑함이 오직 너 뿐일세 한반도야 은덕이 깊구나 나의 한반도야 내 선조와 모든 민족들이 너를 의탁하여 성장하였구나 한반도야 역사가 오래된 나의 한반도야 선조들의 유적을 볼 때에 너를 사랑함이 더욱 깊어진다 한반도야 일월같이 빛난 나의 한반도야 둥근 달이 반공에 밝을 때 너를 생각함이 더욱 간절하다 한반도야 산천이 수려한 나의 한반도야 물은 맑고 산이 웅장한데 너를 향한 충성 더욱 깊어진다 한반도야 아름답고 귀한 나의 한반도야 너는 나의 사랑하는 바니 나의 피를 뿌려 너를 빛내고자 한반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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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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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사단 창단 100주년을
축하합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님은 저희 로펌의 멘토입니다. 도산 정신, 흥사단 정신으로 변호사 업무를 하겠습니다. 26년 동안을 믿어주신, 고객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작은 케이스에서 부터 대형 소송에까지, 준비와, 훌륭한 실적이 말해 줍니다.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1. 이민법: 수 많은 영주권을 성공적으로 해결하였습니다. 2. 상해사고: 상해사고의 좋은 결과를 받았습니다. 3. 각종 법정 소송: 복잡한 소송과 대형 소송도, 전문 변호사들과 팀웍을 이루어, 해결하였습니다.
소송 전문 대형 로펌과 같이 일합니다.
윤 창희 법률사무소
Email: changhiyun@gmail.com
뉴욕 사무소 (맨해탄) 32 W. 32 nd St., # 803 New York, NY 10001 (718)359-0600 필라델피아 사무소 583 Skippack Pike, Suite 300 Blue Bell, PA 19422 (267)699-8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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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교회 31 Y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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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사단 100년 활동 보다나은 100년의 미래를 기대합니다. 창립 100주년을 짐심으로 축하드립니다.
Annie International 대표 신유승 36 흥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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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사단 창립 100주년을 축하 합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 진정으로 도산 선생 같은 민족의 선각자가 기다려지는 시대 입니다.
필라델피아민주연합
대표김양일 39 Y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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