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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변・호・사・의・세・상・읽・기

사회 원로의 기도문 엄상익

▲대한민국의 문 학평론가, 언론인, 저술가, 대학 교 수를 지낸 국어국 문학자 이어령 교 수. 노태우 정부 에서 문화부 장관 을 역임했다.

아내가 싱크대 앞에서 문이 반쯤 열려 있는 내 작은 서 재에 대고 소리쳤다. “여보 동영상 하나 보낼게 봐. 감동이야” 잠시 후 나는 카톡을 열어 아내가 보내준 영상을 튼 다. 태극기가 보이고 붉게 아침이 열리는 동해바다가 나타난다. ‘독도 아리랑’이라는 노래의 연주가 애조를 띠고 들려오면서 글자가 밑에서부터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한다. “하나님 우리 조국을 구원하소서. 한국은 못난 조선 이 물려준 척박한 나라입니다. 그곳에는 선한 사람들 이 살고 있습니다. 지금 나라는 벼랑 끝에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이 벼랑인 줄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어 떻게 여기까지 온 사람들입니까? 그냥 추락할 수는 없 습니다. 험난한 기아의 고개 속에서도 부모의 손을 뿌리친 적 이 없습니다. 전란 속에서도 등에 엎은 아이를 버린 적 이 없습니다. 숨가쁘게 달려와 의식주 걱정이 끝나는 날이 앞에 있는데 그냥 추락할 수는 없습니다. 싸움밖에 모르는 정치인들에게는 비둘기의 날개를 주시고 살기 팍팍한 서민들에게는 독수리의 날개를 주 소서.”

44 Christian Review

나라를 걱정하는 이어령 교수의 기도문이 었다. 뒤쳐진 자 헐벗은 자 노인에 대한 그 의 사랑이 적혀 있었다. 그는 이사회가 갈 등으로 더 이상 찢기기 전에 구원해 달라고 부르짖고 있었다. 성경 속의 예언자같이 그 는 부르짖고 있다. 이 사회가 두 쪽으로 찢 기는 데 많은 사람들이 아파하는 것 같다. 며칠 전 이웃빌딩에서 개인법률사무소를 하는 칠십 대의 변호사와 근처 곰탕집에서 함께 점심을 했다. 그는 평생 독신으로 변 호사를 하면서 학자같이 조용하게 사는 사 람이었다. 함께 밥을 먹는 자리에서 그가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좌파냐 우파냐 하는 소리가 제일 듣기 싫어요. 제 나이 또래는 전부 우파래 요. 그러면서 생각이 다르면 전부 빨갱이 공 산당놈이라고 욕을 해요. 어려서 한 번 세뇌된 반공 프 레임 속에 빠져서 헤어나오지를 못하는 거죠. 그런 사 람들이 싫어요. 또 반대쪽 사람들을 보면 세상의 모든 죄가 모두 한 계급이나 독재자 한 사람에게 있는 것같이 말하죠. 나 의 불행은 모두 부자나 이제는 모두 죽어버린 친일파 에게 있다는 거죠. 정신적으로는 그들도 썩어 있으면 서 말이죠. 강남좌파라고 하던 조국 장관 보세요.” 나는 그의 말에 당연히 공감하는 입장이었다. 그가 덧붙였다. “나는 어느 편도 아닙니다. 굳이 말하자면 회색주의 자라고 할까요? 좌도 우도 아니고 그냥 양심에 따라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걸 따라가는 입장이에요. 변호 사를 사십 년 가까이 하다 보니 나 자신이 독특한 색 깔을 지니게 됐어요. 변호사란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 된 거죠. 누가 나쁘다고 하면서 대중이 돌을 던져도 그걸 보 는 나의 캐릭터가 따로 있는 거죠.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나는 곰탕을 먹으면서 조용히 그의 다음 말을 듣고 있었다. 크리스찬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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