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심과 애경의 마을, 벽송리 서동진
1.마을의 위치와 유래 법정리인 신림면 벽송리는 행정리인 벽송리와 서월리로 이루어져 있고, 이 중 벽송리의 자연부락은 용교동과 사실터마을이 있다. 서월리의 자연부 락은 평월리, 대포리, 세터, 서당촌이 있다. 본래 흥덕군 일서면의 지역으로 서, 벽송, 오월리, 또는 오동촌이라 하다가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산직동, 세월리, 평월리, 서당촌, 덕림촌, 용교동의 각 일부와 이서면의 신 림촌, 마산리의 각 일부 지역을 벽송으로 병합 했다. 이후 고창군 벽사면에 편입되었다가, 1935년 벽사면이 폐면됨에 따라 고창군 신림면에 편입이 되 었다. 1)벽송리 신림면 소재지에서 서쪽으로 약 3㎞ 지점에 1650년경 천안 전씨가 터를 잡아 입촌 하였고, 본래 흥덕군 일서면의 지역으로서, 벽송, 오월리 또는 오 동촌이라 불렸다. 조선조 제21대 영조 때 효자 송와(松窩) 전덕수(全德秀)(전배수-全培秀)의 8대조(代祖))가 마을 뒷산에서 시묘 살이를 할 때 묘 근처의 소나무들이 송 충이가 심하여 죽어가므로 애통하여 울었더니, 까치와 까마귀 떼들이 갑자 기 날아와 벌레들을 잡아먹었다. 서기1764년경 이곳을 지나던 안집(興德縣 倅 安)이 이 내용을 듣고 마을이름을 벽송(碧松)으로 고치게 했다. 주민 은 천안 전씨 · 창녕 조씨 · 여산 송씨 등 여러 성씨들이 살았다. 2)용교동 벽송리의 두 번째 쯤 생긴 마을로, 벽송리에서 동북쪽으로 약 100m 떨어 진 곳에 15호 정도의 작은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고, 마을 앞에 수랑 논과 샘물이 솟아 마을과 마을을 건널 때 불편하여 다리를 설치한 것이 유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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