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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문화유산이 살아 숨쉬는 칠암리 집필자 : 정 재 윤 1. 마을의 구성과 위치 공음면 칠암리는 삼한시대에는 마한 땅으로 모로비리국에 속하였으며, 삼국 시대에는 백제국의 상로현에 속하였고 통일신라 때인 경덕왕 16년(서기757 년)에 개명된 장사현의 속지였다.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조 태종 16(서기1416)년에 이르기까지에는 그대로 이 어왔으나 태종17년에 서해연변의 방위체제구축을 위해 무송현과 장사현을 무장현으로 통합할 때에 이곳은 와공면(瓦孔面)과 동음치면(冬音峙面)으로 분면되어 구한말인 건양원년(서기1896)에 칙령 제36호에 의해 고창, 무장, 흥덕군이 전라북도에 편입될때에도 변동이 없었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3 월 1일 부군 통폐합령에 의해 무장군과 흥덕군이 고창군으로 통합될 때 와 공면과 동음치의 양면이 합병되어 孔音面을 설치하였다. 이때 12개 법정리 가 형성되었는데 칠암리의 그내역은 다음과 같다. * 칠암리는 동음치면의 용산리, 연동리, 칠암리, 갑촌리, 원동리, 장곡리일 부를 합병한 법정리가 되었다. 이 때 면소재지는 칠암리로 옮겼다. 2003년 8월 1일 현재 16개 법정리에 39개 분리를 관할하고 있다. 2011년 7월 현재는 칠암리가 관할하는 마을은 원칠암, 신평, 갑촌, 연동, 원동, 용산, 산정 7개 마을로 구성되어있다. 칠암 리의 위치는 동쪽은 무장면이, 남쪽은 대산면이, 북쪽은 상하면이, 서쪽은 전 남 영광군인 법성포가 위치하고 있으며 무장에서 법성방면으로 가는 중간지 점에 자리잡고 교통상으로 4개지역을 갈때는 반드시 칠암리(신평)를 경유해 야만 갈수있는 교통의 요새로 현재 공음면의 행정상 면소재지로 자리잡고 있으며 공음면의 주요 기관 단체 및 경제 문화 생활의 거점으로 구성되어 있다. 2. 마을의 유래와 환경 1) 七岩(원칠암) 마을 칠암 마을은 면소재지에서 대산방면으로 약 1km의 거리에 있으며, 設基年 代는 1800년대초로 추정해 보며 安東 金氏가 터를 잡고 집성촌으로 마을을 이루었으며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로는 마을 뒷산에 7개의 바위가 있어 서 마을을 지켜주고 있었다 하여 七岩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원칠암, 이점례 할머니 이야기, 86세) 마을 뒷산에 있었다고 하는 바위는 고인돌(지 석묘) 이었을 것이라고 마을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으며 지금도 마를 뒷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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