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와 열, 전설이 있는 마을, 군유리 정재윤
공음면 군유리 두암리
1. 마을의 위치와 명칭 유래 구암리
신대리
군유리는 공음면 면소재지를 기준으로 볼 때는 공음면 남동부에 자리 잡고 있다. 군유리 석교리 장곡리
마을을 중심에 두고 보면, 북쪽은 상하면(上下面), 동쪽은 무장면(茂長面), 남쪽은 대산면(大山
용수리 선동리
칠암리
건동리
面)
그리고 서쪽으로는 전라남도 영광군과 인접해 있다.
공음면 군유리는 삼한시대에는 마한 땅으로 모로비리국에 속했고, 삼국시대에는 백제국의 상로현에 속했는데, 통일신라 때인 경덕왕16년(757)에 개명된 장사현의 속지였다. 고려시대를
예전리 군유리 덕암리
거쳐 조선조 태종16년(1416)까지 그대로 이어져 왔으나, 그 후 태종17년에 서해 연변의 방위 체제 구축을 위해 무송현과 장사현이 무장현으로 통합될 때, 무장현 와공면(瓦孔面)지역으로 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3월 1일 조선 총독부령 제111호에 의거 본래 무장군 공음면의 용산리(龍山里)와 응암리(鷹岩里)가 병합되어 군유리(群儒里)가 되었다. 마을의 유래를 마을 원로(정강열 씨 등)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추론해 보면, 지금으로부터 약 600년 전(1400년)에 달성배씨(達成裵氏)가 터를 잡고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마을이 이루어졌다 고 한다. 지금은 달성배씨가 한 사람도 살지 않는다. 그 후 1580년대에 진주정씨(晉州鄭氏)가 입촌하여 자손이 번창하니 자연히 집성촌을 이루게 되었다. 지형상으로 볼 때 군유리는 전체적으로 평지이며 마을 앞 중앙에 얕은 산의 형태인 도림봉 (道林峰, 돌音峰)이
있고 남서쪽에는 대산천이 흐르고 북서쪽으로는 선동천이 흐른다. 수리 관
개시설로는 해대마을 서쪽에 비석제(碑石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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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의 마을 제4집…0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