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41 국제남극탐사 후원기관 영국문화원 보고서 ‘나는 왜 그 곳에 가야만 했을까?’ 1. 2041 국제남극탐사(International Antarctic Expedition) 소개 - 2012년 2월 25일 부터 3월 12일 까지 16일간 진행되었던 2041 국제남극탐사 2012년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돌아왔습니다. 영국문화원과 로이드 인증원(LRQA) 및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지구의 가장 남쪽 끝에 있는 땅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로버트 스완 대장이 이끄는 국제남극탐사팀 2041의 훌륭한 프로그램과 헌신적인 팀 스태프 덕분에 남극을 더욱 잘 느끼고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2003년부터 매년 한 차례 전세계에서 모인 열정적인 사람들을 이끌고 험한 파도를 헤치고 남극에 이르렀던 노하우를 갖고 있는 탐사대입니다. 올해는 2012 팀 인스파이어라는 이름아래 22개국에서 온 72명의 사람들을 뭉쳤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 지구를 위한 지속가능성에 대해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구의 땅끝에 오겠다는 놀라운 열정과 의지를 가진 사람들이 모였기에 서로에게 멋진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2041이라는 팀 이름은 대한민국과 영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이 함께 맺은 남극 보호 조약이 만료되는 해인 2041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남극은 그 어느 나라, 어느 누구의 소유도 아닌
인류 공동의 재산입니다. 그러나 한 때 많은 고래잡이 배와 무분별한 남극지역 활동으로 남극의 환경이 오염되고 생태계가 파괴될 뻔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문제의 심각성을 느끼며 적어도 향후 50년 동안 그 어느 국가도 남극을 더럽히거나, 개발해서는 안된다는 조약을 맺었습니다. 이번 탐사 활동 역시 남극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할 수 있도록 미리 남극 보호 관련 협정에 따라 교육을 받았고, 서로 관련 규정을 지키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리고 남극 뿐만 아니라 점점 바뀌어가는 기후로 인해 자연과 인간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을 막을 수 있는 다양한 사례와 아이디어를 나누는 짧은 기간의 교육 과정이었습니다. 직접 보고 느낀 것을 각자의 일터로 삶으로 돌아가 전하자는 다짐으로 각국으로 돌아갔습니다.
2. 남극으로 가는 도전 과정 지난 해 10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렸던 E-idea 컨퍼런스에서 2041 국제남극탐사대에 대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42명의 E-ideailst 중 한 명에게 남극에 갈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발표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남극?’이라는 물음표를 머리와 마음에 담았습니다. 꼭 가고 싶었습니다. 남극에 갈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놀라웠습니다. 지난 해 말 남극에 갈 행운의 한 명을 뽑는 과정에 지원했습니다. 반드시 가겠다는 마음으로 발표도 나기 전에 필요한 서류 등 많은 것들을 준비하고, 탐사대장 로버트 스완 경이 쓴 책을 비롯한 다양한 남극에 관한 책을 사서 읽었습니다. 경쟁을 통해 선발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최선을 다했기에 기다리며 진짜 남극에 가서 어떤 것을 볼 수 있고, 할 수 있을지 찾아보고 탐사대에도 직접 메일을 보내
소개를 했습니다.
선발이 되지 않았습니다. 행운의 기회는 호주의 E-ideaist 스테판 무쉰이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멈출 수 없었습니다. 남극에 갈 수 있는 기회가 눈 앞까지 왔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자비로라도 참가할 수 있는 지를 탐사대측과 로이드 인증원에 물었습니다. 갈 수 는 있지만 어마어마한 금액이 필요했습니다. 딱 하루 고민했습니다. 결정하고 움직였습니다. 저의 결정은 모금이었습니다. 단순히 남극에 다녀오는 것이 아니라 2041 국제 남극 탐사대에 참여해서 그 곳에 가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 될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경험은 세상과 나눌 충분한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지금까지 다양한 아이디어를 세상과 나누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통해 열정과 창의를 전달하는 일을 해왔기에 정말 좋은 콘텐츠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믿었습니다. 돌아와서 최소한 열 번 이상 비영리 단체 및 초중고등학교에서 재능기부로 남극체험 이야기를 나누겠다는 약속을 바탕으로 도움을 부탁했습니다. 거절도 물론 있었습니다. 도움을 받을 수 있을 듯 하다가 허탈하게 돌아서야 했을 때도 있었습니다. 한 달도 안되는 짧은 기간 동안 과연 가능 할 지 궁금했지만 남극은 저를 끌어당겼습니다. 부탁하는 많은 글을 써서 보내고, 직접 만나서 설명하고, 전화를 했습니다. 막바지가 되자 조금씩 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고마운 분들이 후원을 해주시겠다고 말씀해 주셨고, 영국문화원에서도 탐사 비용의 일부를 후원해주기로 약속해 주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상보다 훨씬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항공권은 로이드 인증원에서 도움을 주겠다고 손을
내밀어 주셔서 정말 기뻤습니다. 마지막에는 부모님의 도움과 제가 그동안 모았던 거의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해서 남극에 갈 수 있는 돈을 딱 맞게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16명의 후원이 없었더라면 다녀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남극에서 만난 팀원들과 준비했던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더니 모두 놀라워했습니다. 저처럼 개인 모금을 해서 온 경우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기관 및 기업을 대표하여 참가했습니다. 지구의 끝에 가는 준비 과정에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3. 남극에 가기 위한 준비 남극에 가는 것은 지금까지 해왔던 여행과 다른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남반구의 따뜻한 시기이긴 하지만 여름에도 남극의 기온은 0도 이하입니다. 날씨와 기온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산에 오르는 사람들이 쓰는 것과 같은 옷과 장비들이 필요했습니다. 탐사대에서 보내준 리스트에 맞춰 체온 유지를 할 수 있도록 겹쳐 입을 수 있는 옷을 준비하고, 등산화와 고어텍스 재킷과 바지 등이 필요했습니다. 아웃도어 용품들은 가격이 상당히 비쌌습니다. 그래서 최대한 빌릴 수 있는 것들은 빌리고, 같은 소재를 사용한 저렴한 브랜드의 제품을 사서 경비를 줄였습니다. 그래도 생각보다 많은 비용이 들어갔습니다. 다녀와서 보니 남극에 한 번 다녀온 장비면 히말라야 산맥도 오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다행히 생각보다 날씨가 많이 춥지 않아서 다행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견딜 만 했습니다.
남극 탐사를 하는 데 건강 문제가 없다는 담당 의사의 확인이 필요했고, 혹시나 남극에서 사고가 생겼을 경우 우리나라 또는 치료가 가능한 곳까지 옮겨지는 데 필요한 충분한 비용이 보장되는 여행자 보험도 반드시 들어야 했습니다. 국내의 거의 모든 보험회사에 전화를 해서 상담을 해야 했습니다. 남극에 가는 사람을 위한 보험은 따로 없을 뿐더러, 탐사대에서 안전을 위해 요구하는 금액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다행히 외국계 보험사 한 곳과 국내 보험사 한 곳, 두 개의 보험을 함께 들어 해결했습니다. 지난해 가을 무렵 오른쪽 무릎 십자인대 수술을 해서 걱정이 되었습니다. 다행히 의사 선생님께서 뛰거나 무리하지 않는다면 괜찮을 것이라고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탐사 기간 중 조금 높은 곳에 오르는 프로그램은 있었지만 무리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남극 탐사는 큰 무리 없이 다녀올 수 있는 정도입니다. 뒤에서 설명해 드리겠지만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지뢰 폭발로 무릎 아래를 잃은 미군 장교 한 명과 동계올림픽 종목 루지 선수로 활동하다가 사고로 같은 신체 부위를 잃은 영국 군인 한 명도 참석했습니다. 두 사람 모두 거의 모든 남극 탐사 활동에 의족을 사용한 상태로 참여했습니다.
4. 남극과 남극 가는 길 남극의 여름은 생각보다 무시무시하지 않습니다. 겨울에는 최저 영하 80도 가까이 내려가고 강풍이 불며 바다가 얼어서 일반인은 접근조차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겨울에는 남극에 있는 많은 국가의 과학 기지에도 대원 수를 줄인다고 합니다. 일반 탐사 프로그램은 남반구가 따뜻한 시기인 10월부터 3월 까지만 진행할 수 있습니다. 크루즈 선박으로 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되었습니다. 물어보니 대부분 60대에 가까운 분들이 그 여행 상품을 이용한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많은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인 듯 합니다. 세상에 정말 아름다운 곳은 많지만 살면서 꼭 한 번 가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웬만한 마음가짐으로는 가기 쉽지 않은 곳이기는 합니다. 탐사대를 만나러 가는 길은 정말 멀었습니다. 인천공항에서 에미레이트 항공을 이용해서 두바이,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루,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를 거쳐 남아메리카의 가장 남쪽이자 지구의 최남단에 있는 도시인 우수아이아까지 갔습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 도착해서 하루를 숙소에서 자고 다음 날 아침 국내선으로 세시 간 삼십 분을 날아 우수아이아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지구를 옆으로 돌고 아래로 내려와 도착하니 반가운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2041 탐사대 스태프들이 현수막을 들고 공항에서 2012년 탐사팀을 맞이해주었습니다. 홈페이지에서 사진과 프로필을 봤던 사람들을 만나 서로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아르헨티나의 땅끝마을 우수아이아에 이르자 이제 정말 남극에 간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준비되어 있는 승합차로 숙소까지 올라가며 빙하가 산꼭대기에 쌓여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탐사대장 로버트 스완의 유튜브 환영 메시지에 배경으로 나왔던 곳 이었습니다. 준비해 온 장비를 점검받고, 2041 팀 자켓과 모자를 받고 사흘 째 되던 날 아침 드디어 항구에 머물고 있는 씨 스피리트(SEA SPIRIT)호에 올랐습니다. 스태프를 포함한 90명 가까운 사람들이 열흘 넘게 머물게 될 숙소이기도 한 곳이었습니다. 배에 오르기 전에 각 나라의 국기와 소속 단체, 후원 깃발을 들고 기념 사진을 찍었습니다. 제가 가져간 현수막이 가장 길고, 제일 많은 후원 관련 로고가 새겨져 있어서 사람들이 놀라워 했습니다. 서둘러 출항 기념 이벤트를 마치고 배에 오르자 2인 1실로 안내를 받았습니다. 해군 영화에 나오는 딱딱한 침대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좋은 작은 호텔 같은 공간이었습니다. 객실마다 화장실이 있고, 커튼을 열면 밖이 환하게 보이는 4층 28호였습니다. 짐을 풀고 갑판에 나와 배가 떠나는 순간을 지켜보았습니다. 이곳 까지 오기 위해 노력한 순간이 떠올랐습니다. 모두들 환호성을 질렀고, 배는 큰 소리를 울리며 남극으로 떠나는 것을 알렸습니다.
5. 드레이크 해협을 지나 남극으로 가는 길 남아메리카 대륙의 끝에서 남극 대륙까지 이틀이 걸리는 항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전 오리엔테이션에서 이틀 동안 지나가게 될 드레이크 해협에 대한 소개가 있었습니다. 엄청나게 큰 파도가 치고, 바람이 부는 실제 영상을 보고 다들 놀랐고, 배멀미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다행히 남극에 이르는 바닷길은 생각보다 평안했습니다. 가는 길에 쌍무지개도 볼 수 있었고, 아침에 태양이 바다에서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대자연의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는 것 같았습니다. 올해는 정말 운이 좋다고 했습니다. 풍랑이 심하기로 유명한 드레이크 해협이 이렇게 조용한 것은 드문 경우라고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흔들리는 배에 익숙하지 않아 배멀미로 고생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가는 길은 예고편에 불과했습니다. 악명 높다는 풍랑에 대한 경고는 정말이었습니다. 남극탐사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바닷길은 갈 때와 너무 달랐습니다. 배 안을 제대로 걸어 다닐 수도 없었고, 앉아있다가 의자가 뒤집어 질 정도였습니다. 아침을 먹으러 오는 사람은 반도 되지 않았고, 혹시나 물건이 떨어져 다칠 수도 있으니 잘 놓으라는 지시도 있었습니다. 큰 배가 작은 돛단배 처럼 검은 바다 위에서 흔들리는 데 타고 있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 시간이 지나가기 만을 바랄 뿐이었습니다. 먼 수평선을 바라보면 나아진다고 해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기도 했습니다. 배멀미는 없을 것이라고 자신했던 저도 힘들 정도였으니 여성 참가자들이나 배를 태어나서 처음 타보는 사람들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었습니다.
우수아이아를 떠난 지 이틀이 지나자 놀라운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바다에 얼음 덩어리가 떠있었습니다. 그 크기가 점점 커지더니 안개 낀 저 너머로 빙하가 쌓여있는 남극의 섬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기온은 점점 내려가서 따뜻한 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남극에 온 것을 실감했습니다. 배 안 강연장에 모여 구명 조끼를 입는 방법과 조디악이라고 부르는 고무보트에서 떨어졌을 경우 대처하는 방법에 대한 자세한 안전 교육이 있었습니다. 남극에는 배가 정박할 수 있는 항구가 없기 때문에 배 뒤쪽에서 고무보트를 타고 육지로 가는 것이 탐사의 중요한 과정 중의 하나입니다. 조디악을 처음 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수심이 깊은 바다 위를 이동해야 했기에 안전의 중요성에 대해 굉장히 엄격하게 강조했습니다. 조디악을 타고 가다보면 얼굴에 바닷물이 튀고, 바람에 얼굴이 시려서 눈만 내놓고 타야 했던 적이 많았습니다. 그런 순간 ‘아! 이것이 남극 탐사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져갔던 카메라에 바닷물이 들어가 망가질까 움직이는 동안에는 꺼내지도 못했습니다. 미리 방수가 되는 카메라를 준비한 꼼꼼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6. 남극과의 첫 만남, 펭귄 그리고 자연 조디악을 타고 가다 보니 오묘한 푸른 빛을 띠며 바다에 떠있는 빙하를 볼 수 있었습니다. 색깔 뿐만 아니라 그 형태는 마치 누가 조각을 한 것처럼 다양한 모양이었습니다. 마치 스핑크스같이 앉아있는 형태의 사자처럼 생긴 거대한 유빙도 있었습니다. 그 옆에 조디악이 멈췄을 때 카메라 셔터를 계속 누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수십 년, 수백 년이 아니라 인간이 상상밖에 할 수 없는 훨씬 더 오랜 시간에 걸쳐 만들어 진 빙하가 육지에서 떨어져 나와 바다에 떠다니는 모습은 정말 놀라웠습니다. 떠다니는 빙하가 푸른 빛을 띠는 이유는 오랜 시간 동안 압축된 눈 결정이 거울과 같은 역할을 하는데, 긴 파장의 붉은 색은 흡수하고 짧은 파장의 푸른색은 반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빛은 색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형용사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습니다. 파란색과 녹색의 중간 정도인 묘한 색은 보석 빛깔처럼 보였습니다. 서른 시간 비행기를 타고 마흔 시간 배를 타고 오지 않으면 볼 수 없었을 모습에 살면서 이런 기회를 얻었고, 현실로 만들어 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떠다니는 빙하의 아름다운 모습에 감탄한 후 ‘우와' 소리를 내도록 만들었던 것은 펭귄이었습니다. 어릴 적 동물원에서 본 적이 있고,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본 애니메이션 ‘해피 피트’에도 정말 귀여운 펭귄을 보았습니다. 육지에 올라 가까이에서 본 펭귄은 정말 귀여웠습니다. 여러 마리가 같이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뒤뚱뒤뚱 걷다가 물속으로 뛰어드는 모습을 보며 ‘이 곳이 정말 대자연이구나’ 싶었습니다. 아직 어린 펭귄은 털이 보송보송난 상태로 가만히 어딘가를 보며 서있었습니다. 다큐멘터리 ‘남극의 눈물'에서 어미 펭귄이 새끼 펭귄을 먹이기 위해 바다에 뛰어들어 먹을 것을 구해오는 것을 보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처음 본 펭귄은 눈 주위가 하얀 젠투 펭귄이었습니다. 젠투 펭귄은 최근 개봉한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파퍼씨네 펭귄'에도 나온 종입니다. 아쉽게도 황제 펭귄은 탐사기간 중에 볼 수 없었습니다.
남극에서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만 본 것은 아닙니다. 자연과 야생은 뗄 수 없는 단어입니다. 야생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모습들도 볼 수 있었습니다. 펭귄을 잡아먹는 도둑 갈매기가 이미 땅바닥에 쓰러진 펭귄을 부리로 계속해서 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자이언트 패트롤이라는 큰 새가 펭귄 무리가 있는 곳을 덮치려고 하자 우르르 몰려 피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조디악을 타고 배로 돌아가는 길에는 펭귄을 물고 위아래로 패대기를 치는 바다표범의 모습을 보고 같이 탔던 사람들 모두가 깜짝 놀랐습니다. 한 펭귄은 바다표범에게 그렇게 물렸다가 살아 남았는지 배 부위에 핏자국이 선명한 채로 바위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습니다. 누가 봐도 오래 살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그 옆으로 펭귄들이 무리를 지어 지나가는 모습을 보며 어찌 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교과서에 있던 먹이 사슬이 떠올랐습니다. 잔인하지만 자연스러운 것임을 받아들여야 했습니다. 지구에 사는 생명체들은 그렇게 살아남으며 수 만 년 동안 종족을 이어왔기 때문입니다.
7. 지구의 끝에서 함께 한 사람들 남극에서 다양한 활동을 함께 했던 좋은 사람들 덕분에 이번 여정은 더욱 오래 기억에 남을 것입니다. 22개국에서 온 72명 중 정작 아르헨티나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영국,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미국 등 유럽과 호주, 미국 등에서 많은 사람이 왔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아랍 에미레이트,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에서도 열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참가했으며 중국과 인도에서도 모두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왔습니다. 이번 탐사를 앞두고 어떤 사람들이 오는 지 프로필을 보면서 직접 만나게 될 날을 기다렸습니다. 남극의 펭귄, 빙하도 꼭 보고 싶었지만 국제남극탐사에 참가하고자 이 먼 곳까지 오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어떤 만남으로 어떤 이야기를 하게 될 지가 더욱 궁금했습니다.
우수아이아에서 처음 만나 가장 인상 깊었던 참가자는 미육군 장교인 카메론이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지뢰 사고로 왼쪽 무릎 아래를 잃어 의족을 차고 이번 탐사 프로그램에 참여했습니다. 본격적인 남극 탐사에 들어가기 앞서 올랐던 산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올랐고, 남극에 가는 동안 갑판에서 다른 참가자들을 이끌고 체력 단련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다른 참가자들에게도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으며, 미국으로 돌아간 지금은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북돋는 일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곧 제대한다고 했는데, 앞으로 그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 지 궁금합니다.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계속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어 이번 2012 탐사 참가자들과 오래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극에 다녀온 것으로 탐사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특별한 경험을 바탕으로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함께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이 기대됩니다.
중동에서 온 참가자들은 배 안에서도 머리를 가리는 종교적 전통을 따르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배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 중 고기는 이슬람 율법인 할랄을 따른 것이 아니어서 채식을 할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이번 탐사에 참여한 사우디 아라비아 여성 사하르씨는 그 나라에서 최초로 남극에 간 사람으로 이미 출발 전부터 잡지 및 여러 언론에 보도된 것을 직접 보여 주었습니다. 이슬람를 믿는 국가 중에서도 굉장히 보수적인 사우디 아라비아 사람이지만 두바이에서 언론인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남극에서 돌아와 방송 영상으로 본 전문적인 모습은 또 달랐습니다. 아랍 에미레이트의 아부다비 국립 은행에서도 다섯 명이나 되는 여성 참가자가 탐사에 참가했습니다. 참가자들과 활발하게 이야기 나누고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탐사 기간 중 식사 시간 등에 서로의 종교와 문화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장면도 많이 볼 수 있었습니다. 인도에서 온 참가자들은 유행하는 인도 음악을 틀고 춤을 추며 즐거운 분위기를 이끌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나라 사람들의 문화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야기를 나누고, 같이 밥을 먹으며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8. 남극을 온몸으로 느끼기 남극 땅에서 하늘을 보며 잠을 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요? 세종 기지를 비롯한 여러 국가의 남극 과학 기지에 머물고 있는 대원들 빼고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탐사 기간 중 딱 하루는 배가 아닌 남극 땅에서 침낭을 깔고 잠을 잤습니다. 눈으로 1미터 정도 되는 벽을 쌓아서 바람을 막고, 바닥을 평평하게 다진 후 침낭을 깔고 나란히 누웠습니다. 쉽게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어두운 남극 하늘을 바라보며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아직 잠이 들지 않은 동료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남극 땅의 기운이 온몸으로 전해지기를 바라며 잠들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자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습니다. 밤새 약간의 비가 내려 침낭은 축축했고, 옆에 추워서 벌벌 떨고 있는 동료를 보니 저도 추웠습니다. 서로 캠핑을 무사히 해낸 것을 축하하고 격려했습니다. 이번 남극 탐사의 하이라이트는 남극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던 캠핑이었습니다.
9. 자연스러운 결정 ‘남극에 간다’ 2041 국제남극탐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결정했습니다. 남극에 가기로 했습니다. 살아가다가 운명처럼 받아들이게 되는 때가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번이 바로 그 때였습니다. 끌어당기는 힘이 강한 남극은 저를 놓지 않았고, 저는 남극에 갈 수 있었습니다. 사람의 의지는 그 무엇보다 대단하다고 말을 합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이번에는 의지의 문제를 넘어선 무언가라고 느꼈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남극에 갈 준비를 하며 이토록 온 힘을 쏟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니 저는 어느새 남극에 다녀왔습니다. 적어도 그곳에서는 사람은 자연의 주인이 아니었습니다. 사람을 신경도 쓰지 않으며 유유히 걸어 다니는 펭귄이 주인이고, 보든 안보든 낮은 소리 내며 천천히 걷는 바다표범이 주인이었습니다. 쇠로 만든 큰 배가 검은 바다 위에서 종이배처럼 좌우로 무섭게 흔들릴 때 저는 자연에 비해 한없이 약한 존재였습니다. 자연이 허락해야 들를 수 있는 그 곳에서 겸손함을 배웠습니다. 자연과 자연스러운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 과학 실험을 할 때 쇠못을 자석에 일정시간 붙여 놓으면 끌어당기는 힘이 못에 전해져 다른 쇠가 달라붙던 기억이 납니다. 끌어당기는 힘이 가장 센 곳인 남극에서 저는 어떤 힘을 갖고 왔을지 궁금합니다. 그 힘은 앞으로 살아가는 데 어떤 영향을 줄 지도 궁금합니다. 그 중 하나는 이야기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피부로 느낀 것들을 말로 전할 수 있는 때가 많아 질 것으로 믿습니다. 더욱 많은 사람과 이어질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날 것입니다. 그 기회는 새로운 경험으로 이어질 것이며, 그 경험 속에서 만나는 사람과 어떤 이야기를 또 만들어 나가게 될 지 궁금합니다. 2012년 남극 탐사는 끝났습니다. 그렇지만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리며 느꼈습니다. 여행의 끝이 아니라 이제 시작이라는 것을...
10. 남극을 가고자 하는 분들께 이 글을 보고 있는 분들은 남극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이 누구보다 높습니다. 어떻게 하면 갈 수 있는 지 알려드릴 수 있고 준비를 시작하신다면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사는 동안 꼭 한 번은 가볼 만한 가치가 있는 곳입니다. 그 곳에 이르는 과정은 그동안 제 머릿속에 있던 지리적 한계, 시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었습니다. 남극을 다녀오기 전의 ‘나'와 남극을 다녀온 후의 ‘나'는 다릅니다. 바다 위를 지나고, 얼음 땅을 걸었던 시간은 지나간 것이 아니라 생생하게 남았습니다. 눈 감으면 생각나는 그 순간은 살아가는 힘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한계에 맞닥뜨릴 때 분명 떠올릴 것입니다. 이제 여행을 시작했기에 경험을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어 드릴 수는 있습니다. 남극에 다녀오는 일도 그랬습니다. 절대로 혼자 갈 수 없는 곳입니다. 함께 하는 사람을 믿고, 서로 의지해야 이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말을 건네고, 손을 잡아주고, 함께해야 갈 수 있음을 이해하셨다면 도전해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