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인어
내가 갓난아기였을 때, 나의 화염상모반은 손톱만한 작은 점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 나를 씻기던 엄마가 왼쪽 무릎에 있던 이 빨간 점을 발견했다.
엄마는 이게 무슨 얼룩인가 했지만 피부 안쪽에 들여다보이는 핏줄을 닦아낼 수는 없었다. 반점은 이내 퍼져나가기 시작했고, 내가 기억하는 한 언제나 내 왼쪽 다리 전체, 발목부터 허벅지까지를 뒤덮고 있었다. 빨간 점과 나는 함께 자라났다. 아프지도 않고 옮는 것도 아니었지만 점은 나를 달라보이게 만들었다.
아홉 살 때 우리 반에 유난히 나를 싫어하는 아이가 있었다. 이유 없이 나를 때리려고도 하고 마주칠 때마다 으르렁거려서 나는 은근히 그 애를 무서워하고 피해다녔더랬다. 어느 날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조용하고 좁은 골목이었는데 저만치 뒤에서 그 녀석 목소리가 들렸다. 제 친구들 몇 명과 함께였는데, 나더러 들으라는 듯 어쭈, 저 앞에 누가 가는지 봐라, 하면서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나는 모른 척하고 손에 든 우산을 흔들며 앞만 보고 걸었다. 그러다 우산이 퍽 하고 뭔가를 쳤고, 돌아보니 그 녀석이 등 뒤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뭐라 말을 할 새도 없이 그 녀석은 나에게 돌진해, 내 책가방 손잡이를 잡고 이리저리 흔들다가 결국은 나를 한 대 쳤다. 다리에 이상한 점 있는 더러운 괴물아! 하면서.
그 뒤에 어떻게 집에 갔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이려고 애썼던 것 같다. 하지만 현관에 들어서서 엄마 얼굴을 보자마자 울음보가 터져 정말로 엉-엉-엉-하고 울었다. 그리고 엄마는 왜 나를 이렇게 낳았냐고 소리를 질렀다. 엄마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대답을 하긴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그 때의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 고작 몇 살 많았을 뿐이다. 엄마는 예뻤고, 예쁜 것들을 좋아했다.
엄마 아빠와 함께 피부과에 갔던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레이저 수술을 해볼 수 있지만 비용이 만만치는 않을 거라고 했다. 수술이라는 말에 나는 칼, 피, 소독약 냄새, 그런 것들을 떠올렸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이 말하는 비용이라는 게 우리가 쉽게 낼 수 있는 돈이 아니라는 걸 방 안의 공기에서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울기 시작했다. 무섭고 미안했다. 그러자 의사는 간혹 수술을 하지 않아도 크면서 자연스럽게 점이 없어지는 경우가 있으니 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기다려보라고 했다.
열한 살 되면 없어진다던 점은 열두 살, 열세 살이 되어도 그대로였다. 나는 수술이라는 게 무섭고 싫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서 수술을 받아서 희고 예쁜 다리를 가졌으면 했다. 가끔 내가 인어공주 같다고 생각했다.
내가 들어간 중학교에서는 교복을 입었다. 동복을 입을 때는 늘 불투명한 검정 스타킹을 신는 게 규칙이었지만 하복에는 얇은 살색 스타킹을 신거나, 맨 다리에 흰 양말을 신었다. 1학년, 하복을 처음 입던 날, 쉬는 시간에 여자애들 몇 명이 물었다. 너 다리가 왜 그래. 해마다 짧은 옷을 입기 시작할 때면 듣는 질문이라서 나는 늘 하던 설명을 줄줄이 읊었다. 갓난아기 때는 손톱만하던 게 이렇게 자란 건데 피부 바로 아래까지 자란 혈관이 비쳐 보이는 거고, 이렇게 꾹꾹 누르면 하얘졌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데 등등. 그 때 내 친구들 사이에는 수빈이라고, 성격이 좋아 친구도 많고 공부도 잘 하는 아이가 있었는데 내 말을 듣더니 온몸에 선의와 동정을 가득 담아 이렇게 외쳤다. 불쌍해.
아빠는 회사에서 높은 사람이 되었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중에는 피부과나 성형외과 의사들도 있었다. 덕분에 열여덟 살에는 바라던 대로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 후 회복하는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방학이 시작되자마자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는 나를 사방으로 돌려가며 사진을 찍었다. 마치 내가 질병이 된 것 같았다. 두세 시간 걸리는 수술을 받고 나면 겉으로는 출혈이 없었지만 레이저로 혈관을 터뜨린 상태라 까맣게 멍이 들었다. 다리 쪽으로 피가 쏠리면 총에라도 맞은 것처럼 뜨거웠기 때문에 방학 중에는 거의 침대에 누워서 지냈다. 그러다 보면 개학할 때 쯤에는 그럭저럭 걸어다닐 수 있었다. 두 번의 방학을 그렇게 보내고 나자, 의사 선생님은 앞으로 다섯 번 정도만 더 하면 많이 좋아질 거라 했다. 엷은 갈색 자국 정도는 남겠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이래야 하지. 이렇게 다섯 번의 방학을 더 보내고 나서도 붉은 점이 다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것은 이미 18년을 나와 함께 살아온, 지울 수 없는 나의 일부였다. 나의 일부. 그렇게 생각하자 남은 수술들을 마치고 나면 나는 더 이상 내가 아닐 것 같았다. 어째서 내가 나이면 안 되지.
그 다음 방학 때도 그 다음에도 나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얼마 뒤 사촌언니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나는 네가 특별하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가질 수 없는 걸 갖고 있잖아 하고. 마음을 바꾸면 다른 것들이 보이고 한 마음이 비슷한 마음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빨간 점과 나는 자라서 아가씨가 되었다. 하루는 미용실에 갔는데, 나보다 조금 어려보이는 남자 어시스턴트가 내 머리를 말려주다가 물었다. 문신 하셨어요? 아닌데요. 그냥 점이에요. 꽃 문신 같아서요. 머리 예쁘게 잘 나왔네요. 그 남자 눈이야말로 꽃사슴 같았지.
물론 삶은 드라마가 아니기 때문에 한순간에 갈등이 해소되거나 하진 않았다. 여름은 여전히 더웠고 나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거나 지나가면서 혀를 차거나 묻지도 않고 만져보거나 얼굴도 예쁜 아가씨가 안됐다거나 때때로 자기가 고쳐주겠다고 하거나, 그런 사람들은 변함없이 어디에나 있었다. 어디에나. 그리고 그런 이들을 만날 때마다 생각했다. 싸우려고 마음먹은 적이 없는데 어쩌다 하루 하루를 싸우며 살아가게 된 걸까.
누군가는 나를 이렇게 위로했다. 신이 너를 특별히 사랑하셔서 남긴 표지라고. 그럴까. 하지만 내가 아는 신은 모두를 똑같이 사랑하신다. 그러니까 아마도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의 표지를 갖고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나는 단지 눈에 잘 띄는 표지를 갖게 된 것 뿐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나는 생각했다. 뭔가, 분명히.
그리고 그가 나타났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흉터를 숨기고 다니는 사람. 그는 오래 전에 꿈을 꾸었다고 했다. 몸 어딘가에 반점이 있어서 스스로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그래서 완벽하지 않은 자신을 감싸줄 짝을 만나는 꿈. 조금 다르게 생긴 사람이 지나간다고 모두가 돌아볼 때 함께 수근대지 못하는 내가 된 것은 이 한 사람을 위해서였을지도 모른다. 그걸로 충분할지도 모른다. 함께 싸워나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물론 앞으로의 일은 알 수 없다. 갑자기 이 모든 게 지겨워져서 홧김에 수술 날짜를 잡고 싶어지는 날이 또 올 수도 있겠지. 너는 아름답지 않다고, 보기 흉하다는 걸 인정하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을 테니까. 하지만 붉은 비늘로 덮인 나의 다리는 이웃나라 공주의 우윳빛 두 다리만큼 아름답다.
지금 우리는 행복하다. 나와 나의 반점과 그와 그의 흉터. 지금 나는 서른 살이다.
붉은 인어
글, 그림 김소정 펴낸날 2012년 3월 26일 이메일 everylittleprayer@gmail.com 홈페이지 kimsojung.wordpress.com 도움 네이슨 하켓 더못 맥카티 리사 리처드슨 섀런 비든 본머스예술대학 학생상담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