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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21일 (토) SAT.
기부의 삶 실천하고 타계한 LA홍명기 이사장의 인생 4.29 폭동이후 인뉴재육성 깨닫고 지원 앞장…몸소 도산 정신 실천
최근 87세의 일기로 타계한, LA 의 홍명기 M&L 홍 재단 이사장 은 한인사회의 리더였다. 그는 특히‘주류사회에서 벌어 한 인을 위해 쓴다’는 평소 철학을 실 천한 애국자였다. 그의 부친은 한 국의 평화신문과 스카라 극장 사 장이었고 동양 최대의 안양종합 촬영소를 설립한 홍 찬씨다. 홍 이 사장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 나 당시 돈을 가져 올 수 없어 500 달러를 들고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UCLA 화학과 고학시절을 이렇게 회상했다. “목장에서 소를 몰고 젖을 짜기도 했고 베벌리힐 스 유대인 집에 하우스 보이로 들 어가 월급 30달러를 받았습니다” 주경야독의 생활이었다. 주인이 전기요금이 많이 나온다고 불을
못 켜게 해 손전등 아래서 책을 읽 었다. UCLA 마지막 학기에 와서 는 도저히 학비를 내지 못할 지경 에 이르러 학업을 포기하려 했다 가 백인 여교수가 주는 200달러로 가까스로 학비를 내고 졸업을 했 다. 고학으로 대학을 졸업한 그는 전공을 살려 자동차 도료, 수지 등 을 제조ㆍ연구하는 휘태커라는 회 사에 연구원으로 26년을 근무했 으나 승진과 급여에서 차별을 받 았다. 보이지 않은 유리천장이 있 음을 안 홍 이사장은 51세의 늦은 나이에 당시 간호사였던 부인 로 리 홍 여사의 권유로 2만달러로 페 인팅 코팅업체인 듀라코트를 설립 해 십수년만에 연간 매출 3억달러 가 넘는 업계 최고의 기업으로 성 장시켰다.
이렇게 성공한 사업가로 안주하 던 홍명기 회장에게 인생의 전환 점이 된 사건은 1992년 4.29 LA폭 동이었다. 홍 회장은 “4.29 폭동 소 식을 보고 들으며 ‘그동안 비겁하 게 뒤에서 나만 잘 살겠다는 생각 을 했구나’ 싶었다”며 “이를 계기 로 역량이 허락된다면 동포사회 에 나가 무슨 일이든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회고했다. 이 후 그 는 교육과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차세대 육성이라면 발벗고 나 서는 열정을 바쳤다. 이 같은 봉사정신으로 캘리포니 아주 한인사회의 든든한 후원자 로 자리매김해 온 홍명기 이사장 의 업적은 한인 커뮤니티에서 다 른 근접한 예를 찾아볼 수 없을 만 큼 두드러진다. M&L 홍 재단을 설립, 수많은 기부를 실천했다. 1999년 남가주한국학원 이사장 재직 시절 350만달러 기금모금에 성공해 폐교 위기에 몰렸던 학교 를 살려낸 것을 비롯 도산 동상 제막, 국민회관 복원, LA 카운티 박물관 한국관 설립, UCLA 코 리안 아메리칸 석좌교수직 신설, UCLA 화확과 장학기금, 한미박 물관, UC 리버사이드대 김영옥 연 구소 등등 그의 후원은 총1천만달 러가 넘는다. 홍 이사장의 삶에는 ‘일관된 원 칙’이 있다. 한인사회 구성원과 차 세대가 ‘자부심’을 갖고 미국 땅의 떳떳한 ‘주인’이 되도록 하는 것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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