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azine BRICKS - Honeym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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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KS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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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neymoon


02 여행 매거진 BRICKS - 신혼여행 특집


여행 매거진 BRICKS 신혼여행 특집

Honeymoon

여행을 떠나기 적절한 때

CONTENTS 4

천국의 모델하우스, 모리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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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일레이, 내가 사랑한 바다

44

신혼여행에 관한 후일담

남국도 일본도 아닌, 오키나와 다게레오 타입

어쩌다 보니, 어떻게든 다녀온 신혼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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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여행을 떠나기 적절한 때 글 이주호

04 여행 매거진 BRICKS - 신혼여행 특집


여행을 떠나기 적절한 때 05


도처에 도식이 있다. 사람 사는 일 이래저래 갈래가 있고 전형이 있지 않겠나. 뭔

가를 지키고 싶은 사람들이 옭아맨 의례도 더러 있겠지만, 사는 도리쯤으로 여긴다면

못 할 것도 없겠지. 예컨대 추석 같은 거. 게다가 나는 의식을 치르며 고양되는 부분들 이 있다고 믿고 살기 때문에 어지간한 도식들은 허투루 건너뛰지 않는 편이다. 결혼 생

활이 한 해 한 해 쌓여갈수록 아내에게 욕을 덜 먹는 건 이제 말하기도 지쳐서일지 모르 지만, 부부 생활의 도식들을 꽤나 놓치지 않고 거쳐 왔던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력에다 지식을 연관시킨다거나, 남성의 사회화와 군대를 묶는다거

나 하는 도식에는 완강하게 화를 내 왔다. 예컨대, 서양철학사 같은 책을 인류 발달사

로 여기는 학번의 몸종들. 인간은 기본적으로 의심이 많고, 의심하는 것으로서 존재 가 증명된다는 구절을 두고두고 우려 마시며 교양에 젖은 인간을 볼 때면, 참으로 졸

렬한 생각이군, 자연과 인간, 인간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말장난 따위가 어찌 윤리의 한 축이 된다는 건가, 구시렁구시렁 미움도 많이 샀다. (용가리 같은 영화 얘기나 하 자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까지 꺼내야 직성이 풀린다니, 나 원 참.)

06 여행 매거진 BRICKS - 신혼여행 특집


이대 후문 빈티지 바bar <섬>

여행을 떠나기 적절한 때 07


쉬고 싶다면서 여행 계획을 짜는 것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게 되는 도식이었

다. 나에겐 여행지에서 쏟는 힘이 평소보다 월등히 컸기에, 살을 빼는 계기로 여길 만

큼 여행을 하루하루 가진 힘을 온전히 소진하는 기간으로 여겨 왔다. 여기에 결혼식, 신혼, 여행이 병치되는 도식이라면. 그 번거로운 의식을 마친 뒤 화장도 못 지우고 수

많은 머리핀을 머리에 꽂고 불평하는 여자와 공항을 향하는 게 옳은 일일까, 절대 하 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우리는 신혼여행을 가지 않기로 했다. 아내는 그전부터 지속해 오던 앨범 녹음

을 재개해야 했고, 나는 겨우 잘 곳 하나 갈무리된 집안 정비를 마저 마쳐야 했다. 쉬 다 오라는 권고들에 마음이 주춤거리기도 했으나, 과일을 몸에 바르는 일도 싫었고, 굿모닝 Sir, 아파요 Sir 하는 과한 대접에 우쭐대고 싶지도 않았다.

내 인격의 줄기는 그렇게나 미숙하고 삐뚤어져 있었던 것이다.

08 여행 매거진 BRICKS - 신혼여행 특집


<섬>은 개업 10년을 앞두고 새 단장 중이었는데, 결혼식 이후 일정을 책임지겠다며 그날 아침 부랴부랴 공사를 마쳤다고 한다. 여행을 떠나기 적절한 때 09


결혼식을 끝내자마자 일단의 무리를 이화여대 후문 근처 섬이라는 바bar에 몰

아넣었다. 결혼 6개월 전 신촌 연세병원 외과 병동 침상에 나란히 누워 만나게 된 사 람의 가게였다. 자정이 오기도 전에 술병과 사람이 바닥에서 한 데 뒹굴고, 희롱과 추 파로 흥건한 소파, 테이블 위엔 음악에 취한 척 흐느적대는 취객들이 쌓였다. 이래서

신혼여행을 갔어야 했구나. 술집 문밖을 나섰는데도 처음의 인원들이 이탈자 없이 2

차를 이야기할 때는 외투 안주머니 현금을 어루만지며, 지금쯤 적도로 향해가는 비행 기 좌석에 앉아 있었다면 얼마나 호젓했을까, 꽤나 급박한 심정이었다. 가장 흥미로 웠던 건 술자리가 둘로 나뉘는 바람에 정작 결혼 당사자인 우리가 따로 떨어져 있어 야 했다는 것이다.

결혼식 이틀 뒤부터 우리는 마치 3년쯤 지난 부부처럼 아침밥을 먹고 나서면

새벽이 되도록 마주치지 않으면서도 집안 꼴이 엉성해지지 않게 유지해 가는 능숙한 부부 생활을 해 나갔다.

10 여행 매거진 BRICKS - 신혼여행 특집


그리고 그해 겨울 아내가 대강의 앨범 활동을 끝내고 난 뒤 오사카행 비행기 표

를 끊었다. 신혼여행은 아니었다. 신혼여행은 오로지 이탈리아가 아니면 안 된다 붙 박아 놓기도 했고, 순전히 필요만 가득한 일정이기도 했다. 그때의 기록은 <오사카에

서 길을 묻다>라는, 5년이 지난 지금까지 소화되지 않는 더부룩한 제목의 책에 남아 있다. 한국에서 산다는 것은 일본, 중국과 교묘하게 얽히고 간사하게 숨겨진 시간 속 에서 딱히 누구의 땅이었다 말할 수 없는 경계를 지으며 살아가는 것일지 모른다는 생 각을 담아보려 했던 책이었다. 하지만 구절구절 남아 있는 건 처절한 다툼과 감정 소 모뿐이었다.

이 사람은 왜 이런 길까지 걸어보려 하는 걸까, 얘는 왜 남의 여행 따라와서 저

런 볼품 없는 소품 가게에 환희하는 걸까. 이 사람은 정말 지금까지 배가 안 고픈 걸 까, 굳이 저런 카페에는 왜 들어가 앉아 있어야 하는 걸까. 교토에 대한 책을 쓰겠다면 서 금각사도 안 간다는 게 말이 돼? 그런 책은 수없이 많은데 굳이 뭐하러 그런 글을

또 쓰려는 건데. 누구의 말도 다 그럴듯했기에 이해는 멀어져 갔다. 침묵이 길어지고, 아내는 급기야 자신도 ‘미친 사람과 여행하는 법’이라는 책을 내겠다고 포고했다. 그 래서 술값이 많이 들었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여행을 떠나기 적절한 때 11


6년이 지난 지금은 얼추 같은 풍경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고, 비슷하게 서성이

다, 엇비슷한 시기에 배가 고프다. 전라도, 강원도 한적한 곳에서 시내버스와 도보에 의존하다 조난당할 위기를 몇 번이나 겪었고, 북극해 앞 농장에 묵으며 기어이 오로 라를 지켜보기도 했다. 독일 맥주를 찾아다닐 땐 화장실에 갈 때마저 맥주캔을 들고

다녔다. 동네 산책을 하도 다니다 보니 망원동 집값을 내다보는 일엔 꽤나 도통한 복 식조가 되었다. 집에 가져다 놓으면 좋을 물건이 뭔지 취향도 같아졌기에 상점을 헤

매는 시간이 줄었고, 통장 잔고마저 낱낱이 공개된 사이라 누가 누굴 따로 책임질 일 도 없다. 준비도 한결 가벼워졌다. 일본, 대만 정도는 전날 비행기 표를 예매한다고 해 서 풍찬노숙을 염려하지 않는다.

신혼여행으로 계획만 해 두었던 이탈리아 토스카나 여행을 떠나기에 참으로

적절한 때가 오지 않았나, 요새 들어 그런 이야기를 종종 한다. 더 나이 들면 많이 걷

기 어려울지 몰라, 시기를 당겨 보자, 한 달에 얼마씩 모아야 가능할까. 여행 자료를

모아 둔 서랍에서 7년 전 신혼여행을 준비하며 만들어 둔 파일을 꺼냈다. 손으로 그 린 지도에, 읽어야 할 책 목록, 형광펜으로 강조된 여정, 매우 어수룩한 종이 뭉치였 다. 그것들을 구글지도 앱에 표시해 두고 올해 일정을 훑자니, 정말 갈 수 있을까, 한

달 정도 시간을 비워도 될 만큼 일이 안 들어온다면 그게 더 곤란한 건데, 갑자기 상심 이 깊어졌다. 그래도 합의된 건 우리는 아직 신혼여행을 다녀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진 어느 만큼 설레고 풋풋한 관계로 지내야 하겠지. 우리 사이에 부족 했던 건 뒤늦은 의식을 치러내며 고양해 보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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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스 필자 스텔라님이 찍으신 사진. 지도에다 ‘피렌체 - 토스카나의 주도’라고 메모할 때는 이리 쉽게 7년이 가버릴 줄 몰랐다. 여행을 떠나기 적절한 때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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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이주호 브릭스 편집장은 여행을 빌미로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 대한 글을 쓰고 있으며, 최근에 <도쿄적 일상>을 펴냈다.

여행을 떠나기 적절한 때 15


천국의 모델하우스, 모리셔스 글 최 K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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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모델하우스, 모리셔스 17


그곳이 행선지가 된 것은 순전히 ‘3.11 동일본 대지진’ 때문이었다. 후쿠시마

에서 흘러나오는 방사성 물질이 해류를 타고 환태평양을 온통 오염시키고 여진이 언 제 또 발생할지 모른다는 통신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인류는 종말에 한 걸

음 더 가까이 다가갔으며, 구체적으로는 하와이의 바닷물도 방사능으로 오염되어 와 이키키 해변에서 수영을 하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피폭을 당해 아이도 낳기 전에 갑

상선암에 걸려서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는 괴담도 존재했다. 적어도 갑상선암에 걸 려서는 쉽게 죽지 않는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괴담이라 할지라도 그것들을 깡그리 무시할 만큼의 배짱은 불행히도 없었기 때문에 나는 몇 날 며칠을 구글 어스 를 띄워 놓고 고심해야 했다.

환태평양 고리에 해당하지는 않으면서 지진이나 쓰나미에 안전하고, 그렇다고

남들이 다 가 본 휴양지는 아니면서 휴식을 위한 최고급 리조트도 존재하는 그런 곳.

후보지는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태초의 아름다움을 간직했다는 세이셸과 신이 천국 보다 먼저 만들었다는 지상 낙원인 모리셔스 두 곳으로 압축되었다. 비행시간과 숙박 등을 따지면서 저울질하다가 결국 마크 트웨인이 남긴 한마디가 결정타가 되어 우리 는 모리셔스로 떠나기로 했다. 결혼의 백미라는 신혼여행으로 말이다.

“신은 모리셔스를 창조했다. 그러고 나서 천국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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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바지 리조트의 프라이빗 해변.

천국의 모델하우스, 모리셔스 19


홍콩에서 모리셔스 항공을 타고 10시간을 날면 인도양 마다가스카르 옆에 있

는 작은 섬나라인 모리셔스에 도착한다. 생전 처음 타 본 아프리카 국가의 국적기여 서 호기심을 안고 탑승했으나 특이사항 없이 편안한 비행을 했던 것 같다. 자극적이

지 않은 커리가 입맛에도 꽤 맞았던 기억이 있을 뿐. 꼬박 10시간을 날아 주리가 틀리 기 시작할 때쯤 모리셔스에 도착했다. 생체 시간은 새벽인데 현지 시각은 저녁 시간 이었다. 여름에 출발했는데 그곳은 겨울이었고, 저녁 시간 치고 유난히 달이 밝다 했 더니 하늘에는 슈퍼 문이 떠 있었다.

작은 시골 터미널 같은 공항을 벗어나면 끝없이 사탕 수수밭이 펼쳐진다. 차 안

에서는 마중 나온 호텔 직원과 수다가 이어지고, 붉은 황톳길을 오직 달빛과 전조등 불빛에 의지해 내달렸다. 극빈자와 흉악범이 없고 국민의 80%가 관광업과 어업에 종사하면서 섬에서 대를 이어 산다는 설명을 들으면서 어쩌면 정말 천국과 가까운 곳 이 맞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일주일 동안 두 군데 특급 리조트에 머물렀다. 휴양도 즐기고 이따금씩

관광도 할 요량이었다. 예상 밖으로 조식과 석식이 무료 제공이었으며, 리조트 내 해

양레포츠 역시 대부분 무료였고 비수기(6월 중순)라는 이유로 성수기(연말연시)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인 데다 추가 비용도 별로 발생하지 않아서 당시 인기가 많 던 몰디브의 동일 등급 호텔과 비교했을 때 상대적으로 매우 저렴한 편이었다. 나름 합리적인 여행이라는 자기 위안으로 가난한 나라에서 누리는 사치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내려 애썼던 것 같다. 호텔들이 끌어 쓰는 물 때문에 일반 서민들에게는 하루에

두 번만 급수가 허용된다는 말을 가이드로부터 들은 후에는 그마저도 쉽지 않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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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시즌스 리조트.

천국의 모델하우스, 모리셔스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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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객실에서 바라보는 그림 같은 풍경과 숙련된 서비스, 아름

다운 프라이빗 해변은 매번 감탄의 연속이었다. 유리알같이 맑은 바닷물이 허리춤까 지 오는 대륙붕이 끝없이 펼쳐져 있고 파우더처럼 날리는 고운 모래는 산호가 부서진 까닭에 파스텔 톤이었다. 어릴 때 봤던 <블루 라군>이라는 영화가 절로 떠오르는 지 상 낙원 같은 바로 그 모습의 바다를 실제로 만난 것이다.

천국의 모델하우스, 모리셔스 23


카타 마린에서 유유자적하며 먹은 바비큐와 피닉스 맥주는 기가 막혔고, 투명

한 아크릴 바닥을 통해 바닷속을 훤히 볼 수 있는 글라스 보트는 흥미진진했으며, 하 늘 높이 떠올라 드론으로나 볼 법한 풍경을 직접 내 눈으로 감상할 수 있는 파라 세일

링은 짜릿한 동시에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특히 ‘일로 셰프’라는 작은 무인도는 비현 실적으로 아름다웠다. 수백 년은 족히 넘을 것 같은 수령을 자랑하는 거대한 맹그로

브 숲이 우거져 있고 굽이굽이 폭포와 아름다운 해변이 어우러져 있었다. 햇빛의 각

도나 계절에 따라 일곱 가지 색으로 보인다는 모래 구릉인 ‘샤마렐 세븐 컬러즈’, 스케 일이 남다른 ‘샤마렐 폭포’도 인상적이었다.

길가에 핀 풀 한 포기도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게 반짝이는 모리셔스의 무공해

대기는 요즘 같아서는 절실하기까지 하다. 다시 가서 그 대기를 폐 세포 하나도 빼놓 지 않고 몽땅 들이키고 싶을 지경이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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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마렐 폭포.

세븐 컬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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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인도 일로 셰프.

천국의 모델하우스, 모리셔스 27


사실 모리셔스는 그 빼어난 풍광만큼의 슬픈 역사가 있는 곳이다. 끝없이 펼쳐

진 사탕수수밭은 저마다 사연으로 팔려온 노예들의 피땀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무인

도로 발견된 아름다운 섬에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과 같은 유럽 열강이 들어와 노예

와 범죄자를 사탕수수밭에서 노역으로 소모하고 생산된 설탕과 술은 유럽으로 조달 했으며 지구에 유일하게 존재했던 도도새를 멸종시켰다.

우리가 만난 가이드는 스스로를 노예의 후손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부끄러

움이나 억울함의 감정이 느껴지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프랑스의 식민 지배를 통해 이 정도 살게 되었다며 그것을 치욕의 역사가 아닌 구제의 역사로 이야기했다. 그녀

는 섭씨 30도를 웃도는 적도성 열대 기후인 그곳에서 겨울이 다가와 너무 춥다며 얼 음장 같은 손을 내밀었었다. 나에게는 한여름인데 그들에게는 겨울이라 추울 수도 있 다는 사실이 어찌나 신기하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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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악범과 극빈자가 없다는 나라답게 순박하고 욕심 없는 사람들이 살아서일

까? 길가에 돌아다니는 주인 없는 들개가 참 많았는데 1년에 한 번 정부에서 벌이는 들개 소탕 작전 때에는 누군가 다 숨겨준다고 한다. 잡히면 죽임을 당할 것이 불 보듯 뻔하니까. 나와 함께한 이는 일주일 동안 머물렀던 신혼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이 개들이라고 했다. 개를 숨겨주는 측은지심에 감동한 것인지 단순히 개

들이 귀여웠던 것인지 캐묻지는 않았다. 그저 인생에 한 번뿐이라는 신혼여행에서 너 무나 아름다웠던 아내라거나, 함께 보낸 꿈같은 시간들이라고 대답하지 않은 것에 대 해서 면박을 주었다. 하지만 실은, 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얼음장같이 차갑던 가 이드의 손이었다는 사실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비옥한 땅에서 자란 햇양파로 만든 어니언링이 참 맛있었던 기억이라고도 말

하지 않았다. 대신 결혼 10주년이 되면 다시 가자고 약속했다. 이제는 마크 트웨인이 남긴 문장에 현혹되지 않더라도 우리는 주저 없이 모리셔스로 날아가는 비행기에 오 를 것이다. 그때는 몇 명의 아이들과 함께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천국의 모델하우스, 모리셔스 29


30 여행 매거진 BRICKS - 신혼여행 특집


글쓴이 최 Kay는 밤하늘의 달이 자신을 스토킹 한다고 믿는 다섯 살 난 딸과 하 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홍콩에서 거주 중이다. 사유와 걱정을 구분 못하는 정신 노동자이기도.

천국의 모델하우스, 모리셔스 31


신혼여행에 관한 후일담 글 최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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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에 관한 후일담 33


18년 만이었다. 주변으로부터 우려와 조언을 넘어서 실로 다양한 오지랖과 참

견까지 접한 게. 지난 세기인 1997년에 입대할 때 선배들로부터 들었던 우주 같은 경 험담에 버금갈 정도로 결혼 선배들은 내 앞에서 신혼 여행담을 늘어놓았다. 그 이야 기는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 써도 모자랄 판. 남의 부부가 여행 가 는 것까지 걱정해주는 사람이 이토록 많다니. 과연 한반도는 고조선 이래 줄곧 한민 족 공동체답게 이들의 오지랖은 바다처럼 넓고, 하늘처럼 높았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선배들이 쏟아낸 의견의 양은

방대했지만, 그 의견의 내용은 두 가지뿐이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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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조건 지고 들어가라.’ vs ‘신혼여행부터 주도권을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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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들은 모두 암묵적으로 부부간의 관계를 긴장과 갈등의 관계로 가정하고

있었다. 부부 관계가 무슨 남북 관계인가. 남북 관계도 때로는 화해와 상생 무드가 조 성되는데, 그렇다면 부부 관계는 지구상에 남아있는 유일한 긴장 관계인 남북관계 보다 더 첨예하고 지속적인 ‘적대적 동반자’ 관계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적과

의 동침’을 십수 년째 유지하고 있는 결혼 선배들은 ‘마조히스트’란 말인가, ‘성인(聖 人)’이란 말인가.

문득, 18년 전이 떠올랐다. 입대를 앞둔 내 앞에서 전역자들은 자신들의 고생

담을 늘어놓았다. 훈련소에서 낮은 포복을 하다가 손바닥이 까져 살점이 보이는데도 정신력으로 버텼다는 둥, 자대배치를 받은 첫날 ‘앉아서 차렷’ 자세를 한 채 낮부터 아

침까지 잤다는 둥, 막타워를 타다가 로프가 끊어져 순간 낙법을 구사하며 손바닥으로 땅을 치며 떨어졌다는 둥,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내 앞에서 허풍을 늘어놓던 때가 떠올랐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는 군 생활 내내 선배들의 고생담과 영웅담 비슷한 걸 목격하지도 못했고, 전해 듣지도 못했다.

이토록, 남자들, 아니 인간의 ‘구라’는 인생의 시기를 거치면서 소재가 변할 뿐,

언제나 지속된다. 군대 일화, 신혼여행 일화, 이제는 육아 일화까지. 실제로 아내가 임신했을 때는 장모님부터 이웃집 아줌마까지 “아유.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좋아”

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고, 막상 낳고 나니까 “아유. 가만히 누워있을 때가 최고야”

라고 하더니, 조금씩 기기 시작하니까 “그래도 길 때가 천국이지”라고 말했다. 물론, 다음 단계의 말은 “걸을 때가 좋지. 뛰면 끝장나”일 것이다. 이렇듯, 인류는 후대에게 ‘내일은 오늘보다 더 끔찍할 것’이란 메시지를 전해왔다.

36 여행 매거진 BRICKS - 신혼여행 특집


싸울까 눈치보느라 즐기지 못했던 카일루아 비치.

신혼여행에 관한 후일담 37


선배들의 우려와 오지랖을 뒤로하고, 긴장과 갈등과 오해와 분쟁이 도사리고

있는 신혼여행지로 떠났다. 나는 겉으로는 웃고 있었지만, 하와이가 아니라 DMZ로 떠나는 심정이었다. 드디어 도착한 날, 향후 부부 관계의 주도권을 결정할 첫날밤의

호텔에는 O2 대신 긴장감으로 구성된 공기가 가득했다, 라기보다는 에어컨으로 낮 춰진 쾌적한 공기만 가득했다. 갖은 언쟁과 불화의 시발 장소이자, 잠자리 실력의 평 가무대가 될 침대에는 ‘자, 어디 한 번 실력 발휘해봐’라는 시선의 아내가 누워있었 다, 라기보다는 그저 갓 결혼한 새내기 부부를 환영하는 하와이 전통 꽃목걸이가 놓 여 있었다. 아울러, 역시 선배들에 따르면 아담과 하와 이후 탄생한 모든 부부들이 겪

어온 논쟁, 즉 ‘쇼핑이냐!’ ‘휴식이냐!’란 주제로 대격론을 펼칠 무대인 와이키키 해변 거리에는 팔짱을 낀 커플들이 웃으며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그중 몇몇 커플의 눈 빛에서 스파크가 튀었으니, 이 스파크의 성격은 대격돌을 앞둔 남녀 전사의 눈빛 싸

움에서 나오는 레이저 같은 것이었다 라기보다는 ‘자기. 우리 어서 방에 가요. 홍홍 홍’ 같은 무언의 신호였다.

나는 사고했다. ‘과연 이들이 남북관계보다 첨예한 갈등을 간직한 커플이란 말

인가?’ ‘아냐, 부부관계는 치약을 짜는 방식 문제로 남이 될 수도 있는데, 저러다 갑 자기 싸우는 게 부부야.’ ‘부부관계는 웃음으로 포장된 지뢰밭이자 휴화산이야!’ 그러 고, 속으로 다짐했다. ‘조심하자. 지뢰밭이야!’ 도쿄에 사는 일본인이 언제 지진이 발 생할지 모른다는 긴장감을 간직한 채 웃으며 밥도 먹고, 섹스도 하듯, 나 역시 시한폭 탄을 안은 것처럼 14박 15일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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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눈치보느라 즐기지 못했던 야자수가 즐비한 마우이의 풍경.

신혼여행에 관한 후일담 39


푸른 바다의 카일루아 비치에서, 석양에 야자수 실루엣을 뽐내는 마우이에서,

청춘들이 파도 위에서 젊음을 발산하는 호놀룰루에서 나는 지진 공포의 망상에 사로 잡힌 사람처럼 돌아다녔다. 이 경험으로 인해 내 인생의 바보짓에 또 하나의 경력이

추가되었다. 입대를 하고 나서야 고생담과 영웅담을 늘어놓은 선배들이 모두 ‘민간

차원의 소설가들’이었다는 것을 자각했듯(고백하자면, 이들에게 배운 덕에 나는 아 예 소설가가 돼버렸다), 신혼여행에서 돌아오고서야 이들의 오지랖과 조언 역시 ‘그 냥 술자리에서 내뱉는 안주 같은 레퍼토리일 뿐’이란 걸 또 한 번 절감했다.

이런 깨달음은 좀 서글프지만, 한국 사회에서 오지랖은 영어권의 “How do

you do?” 같은 것이다. 어제 몇 년 만에 만난 한 동생은 “오빠! 반가워요. 진짜 몇 년

만이에요. 살이 더 쪘네요!”라며 예전 내 모습을 기억하고 있음을 친히 밝혔다. 그러 니까, 슬프게도 이 사회에서 ‘참견’은 안부를 건네는 인사이자, 친해지고 싶은 언사인 것이다. 그런데, 나는 도대체 왜 이런 식으로 친해지고 싶어 하는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겠다. 그토록 할 말이 없단 말인가. 세상에 많고 많은 말 중에, 왜 유독 긴장하게 하고, 듣고 싶지 않은 말들을 꺼내며 애정을 표하려 할까.

그나저나, 그래서 신혼여행은 어땠냐고? ‘잔뜩 긴장하고, 포기한 채로 다녔으

니, 제대로 즐겼을 리가 있나? 나 원 참...’ 때문에 하와이는 다시 한번 가보고 싶다. 다 음에는 제대로 즐기고 싶다.

40 여행 매거진 BRICKS - 신혼여행 특집


이 역시 눈치 보느라 즐기지 못했던 호놀룰루의 칵테일.

신혼여행에 관한 후일담 41


42 여행 매거진 BRICKS - 신혼여행 특집


글쓴이 최민석은 소설가이다. 주변에서 많은 조언을 들으며 살고 쓰고 있으며, 귀가 얇다. 쓴 책으로는 소설 <능력자>, <쿨한여자>, <미시시피 모기떼의 역습>, 에세이 <베를린 일기> 등이 있다.

신혼여행에 관한 후일담 43


라일레이, 내가 사랑한 바다 글 김신지

44 여행 매거진 BRICKS - 신혼여행 특집


라일레이, 내가 사랑한 바다 45


신혼여행지를 고민하다 라일레이에 가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한 장의 사진 때

문이었다. 특별한 곳을 찾아내야 한다는 생각보다, ‘우리’가 즐거울 수 있으려면 우리

에게 어울리는 곳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컸다. 그래서, 라고 하긴 이상하지만 여하 튼 막연히 ‘맥주가 있는 해변’ 어디쯤을 검색하던 나는 이리저리로 흘러다니다가 그 사진을 발견했다.

사진 속에는 조그만 해변 바(Bar)가 담겨 있었다. 바라고는 하지만, 바텐더가

음료를 내어주는 좁은 나무 선반이 가게의 전부였고, 모래사장 위로 펼쳐진 돗자리 몇 개가 테이블을 대신하고 있었다. 뭐랄까, 둘이 겨우 어깨를 붙이고 앉으면 끝인 비

좁은 돗자리가 테이블이라니, 그 사실이 조금 뻔뻔하게 느껴지면서도 재미있었다. 어 차피 해변에 앉을 거라면 모래 위에 앉든 돗자리 위에 앉든 뭐가 다를까 싶기도 했는 데 사람들이 부러 거기 꼬깃꼬깃 앉아 있는 게 귀엽기도 했다. 아무튼 그 귀여운 해변 의 여행자들은 모두가 나란히 노을 지는 바다를 향해 앉아 맥주나 칵테일을 마시고

있었다. 사진이니 당연하지만 그 풍경이 무척이나 고요해 보였다. 해가 지는 걸 보니 서쪽 해변이구나, 생각한 것과 동시에 저 사람들 틈에 함께 앉아 있고 싶단 조바심이 마음속을 휘저었다. 내가 찾던 ‘맥주가 있는 평화로운 해변’이 바로 그곳에 있는 것만 같았다.

어떤 여행은, 그렇게 시작되기도 한다.

46 여행 매거진 BRICKS - 신혼여행 특집


라일레이, 내가 사랑한 바다 47


#1 서쪽의 해변과 동쪽의 맹그로브 숲

라일레이 비치는 태국 끄라비(Krabi)에 있는 작은 해변이다. 섬은 아니지만,

육지에서 이어지는 곳이 온통 바다에 면한 암벽이라 배를 통해서만 닿을 수 있다. 주

로 아오낭(Ao Nang)에서 배를 타고 십 분 정도 들어가는데, 많은 여행자들이 편의

시설과 숙소가 밀집해 있는 아오낭을 거점으로 삼고 라일레이에는 하루나 반나절 정 도 다녀가곤 한다. 이 말은 배가 끊기는 저녁 6시부터는 라일레이가 온전히 그 안에 머무는 이들만의 작은 섬이 된다는 얘기다. 이 섬 아닌 섬에 기꺼이 갇혀 있고 싶어서 나는 더 고민할 것도 없이 라일레이 안에 숙소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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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짐작할 때에도 그리 넓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라일레이는 어디든 걸

어서 닿을 수 있을 만큼 작은 해변 마을이었다. 이곳은 해변을 따라 리조트가 모여 있 는 서 라일레이와, 로컬 식당과 여행사, 바 등이 모여 있는 동 라일레이로 나뉜다. 십

분 정도면 동서를 가로지를 수 있을 만큼 작은 섬(아닌 섬)인데 동쪽과 서쪽의 풍경이 사뭇 달라 놀라울 정도다. 서 라일레이에는 아름다운 해변과 기암괴석이 펼쳐져 있 고, 동 라일레이에는 밀물과 썰물에 따라 표정을 달리하는 개펄 위로 맹그로브 나무

들이 비현실적인 풍경처럼 서 있다. 조식을 먹는 숙소의 레스토랑은 서쪽에서 가장 멋진 풍경을 향해 열려 있었다. 그랬으니 나는 매일 아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아침을

먹으며 바라보는 풍경이 대체 이 정도라니’ 하는 감탄 속에 바보처럼 입을 벌린 채로 식사를 하곤 했다. 낮 동안엔 라일레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놀다가 해가 지면 동 쪽의 식당이나 바를 찾았다. 그건 마치 매일 매일 다른 하루를 여행하는 기분이었다. 그럴 때 작은 마을은 세계처럼 넓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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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라일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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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라일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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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런 곳이라면 맥주를 끝도 없이 마시겠어

라일레이처럼 작은 여행지에 처음 도착하면, 여기 무엇이 있을까 싶어 가볍게

가슴이 뛴다. 짐을 풀어두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막 도착한 여행지를 한 번 둘러 보러 문밖을 나설 때의 설렘은 매번 겪어도 처음 같이 좋다. 저녁을 먹을 식당은 어디

쯤에 있는지, 맥주 마시기 좋은 바는 또 어디쯤인지 눈여겨 봐두고 숙소에서 가장 가

까운 슈퍼와 인상 좋은 주인이 과일주스를 갈아주는 노점도 익혀둔다. 그러다 보면, 머무는 내내 찾아오고 싶어지는 아주 멋진 곳을 발견하기도 한다.

라일레이에 도착한 첫날. 바다를 따라 쭉 이어진 동 라일레이 산책로를 걷다가

인적이 드물어지는 곳에 다다라서 이 바를 발견했다. 여행자들이 머무는 중심지에서 는 한참 떨어져 있어, 마치 어쩌다가 이곳까지 오게 된 사람들에게만 허락된 곳 같았 다. 커다란 나무 아래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자리에선 어디에 앉아도 바다를 바라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가 한눈에 반하고 만 것은 나무 위에 툭, 올려놓은 듯한 자리

였다. 바다 쪽으로 길게 뻗은 가지 끝에 걸쳐놓은 자리는 위태로워 보여서, 구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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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마련해둔 자리인지 앉으라고 만든 자리인지 알 수 없었다. 바의 주인에게 저기에

앉아도 되느냐 묻자 “Sure!” 하고 시원한 대답이 돌아온다. 과연 이 나뭇가지가 우리 두 사람의 무게를 버텨줄까 하는 심정으로 조심스레 중심을 잡고 건너가 보았다. 생

각보다 튼튼한 것을 확인하고 나선 그게 재밌어서 괜히 술잔을 들고 그 위를 왔다 갔

다 했다. 썰물이라 바다는 저만치 물러나 있었다. 낮에 오면 바로 아래까지 바닷물이 찰랑거리겠구나. 꼬질꼬질한 삼각 쿠션에 머리를 대고 눕자 나뭇잎 사이로 별들이 보 였다. 그 순간 라일레이를 두 배 더 사랑하게 되었다고 해도, 거짓말이 아니다.

라일레이, 내가 사랑한 바다 53


#3 놀랍게도 잊고 있던 사실 하나

라일레이에서는 그 외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해가 뜨거운 한낮엔 바다에 뛰어

들어 수영도 했고, 깎아지를 듯한 암벽에 매달려 클라이밍을 하는 청년들을 구경하기 도 했다. 숙소에서 프라낭(Phranang) 비치로 이어지는 길에는 야생 원숭이들이 많 았는데 손에 들고 있던 사과를 어린 원숭이에게 나눠주었다가 대장 원숭이에게 혼쭐

이 나기도 했다. 원숭이들의 집결지(?) 옆으로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었는데 그 위 로 튼튼한 동아줄이 여행자들을 유혹하듯 흘러내려 와 있었다. 낡은 표지판은 이걸 잡고 올라가면 사진 속의 아름다운 뷰 포인트와 호수를 만날 수 있다고 안내하고 있었 다. 호기심에 해수욕을 가던 차림 그대로 절벽에 올랐다가 죽을 고생을 하기도 했다.

스노클링 투어를 떠난 날엔 머무는 동안 본 것 중 가장 아름다운 노을을 보았고,

밤바다에 들어가서 팔다리를 휘저을 때마다 야광 플랑크톤들이 별 가루처럼 반짝이 는 것을 보기도 했다. 저녁이면 로컬 바에 앉아 뮤지션들이 펼치는 공연을 보며 맥주 를 배가 부르도록 마셨다. 그게 아무리 늦은 시간이어도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면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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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주인은 늘 “벌써 가는 거냐!”고 묻곤 했다. 놀아도 놀아도 놀 게 남았다는 표정, 이 제 막 즐거워지려는 참인데! 싶은 그 태도가 재밌었다. 나는 취한 채로 그들과 동네 친 구가 되고 싶다는 즐거운 상상을 하곤 했다.

그랬는데, 나를 라일레이로 이끈 사진 속 그 해변 바에는 결국 한 번도 앉아 보

지 못했다. 놀랍게도 나는 그 사실을 돌아와서야 깨달았다. 다녀온 뒤에도 친구들이 “거긴 어떻게 알고 갔어?” “거긴 왜 갔어?” 하고 물으면 늘 옛날이야기라도 시작하

듯 “그건 말야, 한 장의 사진에서 시작되었지…” 하는 톤의 농담을 하곤 했는데, 그런

사람치고는 어이없을 정도로 그곳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라일 레이가 가진 다른 것들이 머무는 내내 나를 사로잡아 그곳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잊

은 채로 마냥 즐거웠던 것 같다. 이래서야 어떡하나. 해변의 그 돗자리 바에 앉아 보려

면 다시 라일레이를 찾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다음 달이 되든, 다음 해가 되든, 아주 먼 훗날이 되든.

어떤 여행은, 그렇게 계속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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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신지는 쓰고 찍고 마시는 사람. 열대의 여행지에서 마시는 모닝 맥주를 사랑합니다.

라일레이, 내가 사랑한 바다 57


남국도 일본도 아닌, 오키나와 글 베르고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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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국도 일본도 아닌, 오키나와 59


신혼여행은 남국으로 가는 루트가 정석인 모양이었다. 나는 남국이라는 말이

정확히 어디를 가리키는지는 알지 못한다. 그저 사시사철 기온이 30도를 웃돌고 바 쁘게 돌아다녀야 할 정도로 볼거리가 많지는 않으며 석양이 아주 길게 지는 곳이 아 닐까 싶을 뿐이다. 아, 무엇보다 바다, 바다가 보이는 곳.

그런 곳을 신혼여행지로 선택하는 일은 자연스러워 보인다. 수개월의 결혼 준

비부터 그 절정인 결혼식까지 두 사람이 부부가 되었음을 알리는 세리모니를 진행하 는 덴 적잖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하객이 떠나고 마지막으로 양가 가족의 배웅을 받 으며 공항으로 떠나는 두 사람에게는 필시 숟가락 들 힘조차 남아있지 않겠다. 그래 서 사람들은 말한다. 신혼여행은 쉬는 게 최고야. 터질 듯한 햇볕 아래 가만히 앉아 있

는 일이 삶에 최선을 다하는 셈인 곳. 어디선가 들려오는 라이브 음악이 티셔츠와 반

바지 속을 휘젓고 다니는 통에 내 몸 안에서 소리가 난다고 믿어지는 곳. 바람이 멈출 때마다 살갗 위로 솟는 땀, 얇은 옷과 수영복에서 피어오르는 성적 긴장감 등이 이제 막 부부가 된 두 사람에게 약이 되는 바로 그런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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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국도 일본도 아닌, 오키나와 61


하지만 우리 부부가 가려던 곳은 오스트리아의 할슈타트였다. 독일 뮌헨으로

들어가 차를 타고 오스트리아까지 가서 산간 마을에 묵는다는 단순 자명한 계획이었

다. 당시 결혼 예정일이 9월 중순이었으니 얼마나 두꺼운 옷을 가져가야 하나 고민하 면 고민했지 절대로 남국의 분위기와 가까운 동네는 아니었다. 그러다가 아내가 임신 을 했고, 결혼 날짜가 당겨졌다. 신혼여행도 바로 떠날 수 없었다. 이제 막 착상을 끝

내고 한숨 돌리고 있을 아기가 이착륙의 중력 변화에 놀라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안 되 니까.

결혼식을 올리고 이 개월 후에 신혼여행을 가기로 했다. 어쩌다 보니 신혼여행

은 태교여행이 되었다. 검색창에 태교여행을 넣자마자 따라붙는 여행지는 ‘괌’이었 다. 그러니까 괌은 죽어도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생떼를 부리는 데도 한계는 있었

다. 남국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서울보다 남쪽에 있는 도시나 섬들로, 그것도 비행시 간이 그리 길지 않은 곳으로 범위를 좁힐 수밖에 없었다.

다낭이 좋겠어, 다낭으로 가는 비행기 표를 끊었다. 마침 동남아시아 지역에 태

아의 소두증을 유발한다는 지카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베트남이 청정 지역 의 지위를 유지할 것이냐 말 것이냐 매일 뉴스 페이지를 업데이트하다가 결국 그곳에

가기를 포기했다. 이성적으로는 별일 없으리라 믿었지만, 부모 좋자고 1%의 위험을 감수하는 일은 아이에게 못 할 짓이라는 생각이 더 컸다.

62 여행 매거진 BRICKS - 신혼여행 특집


신혼여행과 태교여행 사이에는, 예컨대 자유여행과 단체여행만큼의 차이가

있다. 신혼여행은 두 당사자에게 있어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여행이다. 태교여행은 시 간과 돈이 허락하는 한 특정한 임신 주기 동안 몇 번이고 가도 무방한데 말이다. 게다

가 신혼여행은 가능한 한 길게, 가능한 화려하게가 모토이며, 심지어 여행지 자체보

다 두 사람이 얼마나 딱지처럼 붙어서 두고두고 기억할 시간을 보냈느냐가 중요한, 꽤 특수한 성질의 여행이다. 신혼여행은 불순물을 허락하지 않는다. 불완전함도 용 인하지 않는다. 그런 고상한 지위에 ‘신행 겸 태교여행’이라는 라벨이 붙어버렸으니 이것을 신혼여행이라 불러도 될 것인가, 나는 자신이 없었다.

처음에 아내는 오키나와에 가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곳의 분위기 있

는 카페와 식당 사진을 보고는 마음을 돌렸다. 차도 빌릴 수 없었다. 내가 운전을 못 할 때였고, 임신한 아내가 차선이 반대인 섬에서 새로운 운전 경력을 쌓을 수도 없었 다. 버스, 모노레일, 택시에 의지하거나 마냥 걸어 다녀야 할 여행이었다. 남부의 해

변을 보러 갈 수도 없었고, 북부의 멋진 수족관에서 고래상어를 만나볼 수도 없었다. 그 섬의 교통은 참 불편하다고 들었다. 그나마 비행시간이 짧다는 점만 위안이었다.

남국도 일본도 아닌, 오키나와 63


일본 내 여행자가 많아 국제선 청사보다 국내선 청사가 더 큰 나하 국제공항에

내렸을 때, 남국의 상징인 야자수를 보았다. 3월 초라 그리 더운 날씨가 아니었어도

남국의 분위기가 얇게 썬 치즈처럼 덮여있었다. 태교여행을 겸한다는 성급함도 부족 해 신혼여행을 오키나와에 데려간다는 비루함까지 겹쳐 내내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김 서린 듯한 이 섬의 냄새가 마음에 들었다. 아내의 표정도 밝아 보였다. 아내가 이곳을 마음에 들어 할 그녀의 이유를 찾았음을 알 수 있었다.

신혼여행을 다녀온 후, 지금까지도 우리는 오키나와가 얼마나 좋았는지 떠들

고는 한다. 나는 아예 한술 더 떠서 그동안 교토와 오사카에서 차를 몰아 보았으니 아

이를 데리고 다시 가자고 조르기도 한다. 남부에 봐둔 에어비앤비를 빌려 매일 바다 를 보러 나가고 하루는 섬 북쪽까지 드라이브를 하자고. 우리가 갔던 카페와 식당에 다시 가 보자고. 항상 새로운 곳을 찾는 아내는 아직 우리가 가야 할 곳의 리스트가 마

트 영수증처럼 남아있다며 내 제안을 거절하고는 한다. 하지만 아내 역시 오키나와에 다시 가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오키나와에서 가본 곳이라고는 나하 시내와 섬 중부의 차탄 지역, 그리

고 그 사이에 있는 작은 마을 미나토가와港川 밖에 없다. 4박 5일 동안 2박 3일 단체

여행에서 보는 것보다도 적게 본 셈인데, 도대체 오키나와의 무엇이 그리 좋았는지는 확실히 답하기 어렵다. 그러니까, 신혼여행이었기 때문인 걸까. 누구에게나 신혼여 행은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기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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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국도 일본도 아닌, 오키나와 65


해가 지면 햇볕의 기운이 쏙 빠진 바람이 불어와 야자수 잎을 흔들었다. 이 서

늘함에 질렸는지 누렇게 색이 바랜 이파리도 많이 보였다. 사람들은 적당히 들뜬, 그 러니까 체면은 차릴 줄 아는 표정으로 거리를 돌아다녔다. 지나치게 친절하지 않아 더 좋았던 단골 카페의 – 그래 봤자 두 번 갔을 뿐이지만 – 주인은 가계부를 쓰기 위

해 영수증을 요구한 나를 위해 전표에 손수 금액을 적어 주었다. 서점에는 유난히 꽃 과 요리 서적이 많아 아내를 즐겁게 했고, 머리 위로 지나다니는 모노레일은 보도블 록 한 점까지 낡아서 좋았던 이 도시에 미래의 이미지를 튀지 않게 덧칠했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정류장에 조용히 들어섰다 떠나는 버스들, 인적이 드물어

누군가의 기억만 돌아다니는 것 같은 골목들, 해가 뜨는 곳에 핀 초여름의 꽃들과 해

가 지는 곳에서 흔들리는 갈대들, 조각상처럼 가게 앞에 멈춘 자전거들, 채도를 잔뜩 올린 철판 요리 사진이 붙은 입간판들, 땡볕 아래 커다란 배낭을 지고 땀을 흘리는 서 양인들, 우리랑 다를 바 없이 밝은 얼굴로 사진을 찍는 본토 일본인들, 히피 차림으로

모여 소리 없이 재미있는 일을 꾸미는 이 섬의 젊은이들, 그리고 자주 걸음을 멈춰 눈 을 마주치게 만드는 나의 사랑하는 가족, 아니, 가족들.

66 여행 매거진 BRICKS - 신혼여행 특집


걷기 좋아하는 아내는 점점 무거워지는 몸 때문에 평소 실력을 뽐낼 수 없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참 많이 걸어 다녔다. 출렁출렁 배 속의 아기가 어지럽지는 않았을까. 이젠 세상 밖으로 나와서 저 혼자 걷기 직전까지 자란 아이에게 물어봐도

녀석은 “압빠”라는,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어휘만 반복할 뿐이다. 그때 엄마가 먹었던

오키나와 소바의 맛을 기억하니. 그건 환상적인 맛이었단다. 그래, 초밥 빼고 다 맛있 었던 오키나와의 음식들이 그곳을 좋은 기억으로 만들었는지 모른다.

지친 몸을 의탁했던 카페도 참 많았다. 도대체 무슨 뇌 구조를 가졌기에 이렇게

가지고 싶은 인테리어를 꾸밀 수 있는지 궁금한 장소들이었다. 들어가자마자 한두 시 간 후 다시 그곳을 나서야 한다는 결말이 아쉬워지는 곳들, 커피도 참 훌륭했던 그곳 들. 그때 엄마가 한 모금 마셨던 카페인과 말차 라떼의 맛을 기억하니. 그것도 정말 환 상적인 맛이었단다. 너는 잠이 확 달아나 몇 시간씩 수영을 되풀이 해야 했는지 모르 겠지만 말이다. 아이는 다시 “압빠”라고 반복하다가 뭔가가 성에 안 차는지 온몸에

힘을 준다. 너도 그 기운을 기억한다는 이야기지. 그래, 오키나와에서 갔던 카페들이 그곳을 좋은 기억으로 치장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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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오키나와에 가기 전에는 그곳이 낡았다기보단 늙었으리라고 예상했었

다.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함도 없고, 그렇다고 휴양지 특유의 망각을 유발하는 공기

도 없는 어중간한 곳으로 짐작했었다. 실제로 오키나와에서 본 문명의 흔적 대부분은 낡았다. 바닷바람에 너무 일찍 주름이 팬 사람처럼 섬의 시계가 일이십 년 전에 멈춰 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늙었으리라는 예상은 착각이었다. 금이 가고 칠이 떨어지고 어딘가 기우뚱하게 기운 것 같은 구석구석에 나보다도 젊어 보이는 이들이 삶을 꾸려 나가고 있었다. 적도에 가까워진 만큼 시간이 느려진 이곳에서 그들은 남보다 긴 청

춘을 즐기는 중이었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독립 서점, 작은 공방, 로컬 카페와 동 네 맛집 들을 섬 곳곳에서 운영하면서. 그래, 그런 잔잔한 활기가 이곳을 좋은 기억으 로 완성했음이 분명하다.

이것이 나와 아내가 처음으로 함께 한 여행은 아니었다. 최소한 우리가 본 이

섬의 일부는 신혼여행지로도 그리 어울리지 않았다. 태교여행이라고 하기에도 우리 는 너무 무리해서 돌아다녔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여행에서 빚을 진 나는, 모자란 남편

하나만 바라봐 준 아내에게 고마움과 미안함을 함께 느낀다. 아들에게는, 네가 두 눈 으로 보았으면 더 좋았을 텐데, 너무 일찍 가버렸다고 위로를 전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실패한 신혼여행이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가 좋은 기억을 안고 그곳

에 다시 가고자 하기 때문이다. 남국도 아니고 일본도 아니다. 휴양지도 아니고 유적 지도 아니다. 그곳은 오키나와다. 우리는 오키나와로, 신혼여행답지 않아서 더 신혼 여행다웠던, 그런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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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베르고트는 여행 매거진 BRICKS의 에디터이다.

남국도 일본도 아닌, 오키나와 71


다게레오 타입 글 김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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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게레오 타입 73


다게레오 타입 대중적으로 널리 사용된 최초의 사진술이다. 루이 다게르에 의해 1839년에 개

발되었다. 후대에 개발된 다른 사진술들의 단가가 싸지고 효율이 높아지기 전인 1860년대까지 사용되었다. 셰필드 건판이라 불리는 은 판때기와 요오드 용액을 사용한다. 그래서 아주 비쌌지만, 인간의 눈에도 보이지 않는 세부 디테일까지 표 현해 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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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여행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기억나는 단어는 다게레오 타입이다. 19세

기 위인들의 사진들처럼 배경은 흐릿하지만 인물만은 정교하다고 느껴지는 사진들 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아코디언 가게를 찾기 위해 헤매었던 조그만 시장이 섰 던 그 거리 때문이다.

결혼을 준비하던 11년 전, 특히 신혼여행의 준비는 의견 충돌의 정점이었다.

휴양지와 도시? 유럽? 아시아? 혹은 아메리카? 가고 싶은 곳? 이동 수단? 휴가 스케

줄 정하기? 하나부터 열까지 싸울 일들뿐이었다. 이것이 내 자신이 부릴 수 있는 마지 막 허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는지 서로 의견을 맞추기 정말 힘들었다.

어찌 되었든 파리와 런던으로 신혼여행지를 정하고 호텔과 공연을 예약했다.

쇼핑할 백화점, 악기가게, 시장, 벼룩시장 등도 여행 책자와 인터넷을 통해 정리했고, 식당, 고성, 박물관, 유적지의 교통편을 알아두었다. 계획표를 정리하고… 이 시점에 서 많이 다퉜는데 계획적인 시간 배분으로 최대한 시간 낭비를 줄이자는 아내의 의견 과 마! 여행이 슬렁슬렁 밥이나 먹고 탑이나 보면 됐지 하는 내 입장이 충돌해 버린 것 이다. 결국은 계획표를 세우되 그때그때 결정하는 방식으로 합의를 봤다.

합의를 봤던 것 같다. 사실 여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11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 여행을 가서 뭔가 이것저것 더 하려고 하는 사람은 내가 되 어 버렸다. 그렇다고 한다.

다게레오 타입 75


정신없이 지나간 결혼식과 피로연 뒤풀이 만취. 어쨌든 비행기에 몸을 싣고 파

리로 향했다. 프랑스의 첫인상은 어깨까지 늘어진 공항 경비대의 베레모였을까? 군 복은 생각보다 별로였고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급하게 들어가서 먹은 생미셸의 케밥 은 맛이 없었다. 첫날은 너무 피곤해서 근처 공연장이나 클럽을 찾아볼 생각도 나지 않았고 호텔 방 밑에 있는 아이리시 펍은 그냥 간판만 보고 지나쳤다.

여기서 충고.

아무리 젊어도 신혼여행은 역시 휴양지다. 허세란 숨만 쉬어도 돈이 펑펑 나간

다는 휴양지에서나 누리는 것이지 모두가 바쁘게 살아가는 공간에서, 게다가 대도시 에서 누릴 것은 아니다. 결혼하느라 피곤했잖아. 우리 부부가 아무리 친구로 오래 지 냈다고 해도 15년이었다. 내 인생의 반을 이 사람을 모르고 지냈었다. 그런 사람과 같

이 살기로 결심하고, 같이 살기로 성전을 찾았고, 친척, 친구, 지인들을 모두 불러놓

고 마치 강령회와 같은 결혼의식을 치렀다. 천주교라 성혼미사를 치렀으니 뭐 그렇 다. 아무리 좋다고 해도 신나게 놀러 갈 기력은 없었던 것이다. 쉬다가 출국한 것도 아 니고 정신을 잃을 때까지 마셨으니 더 피곤했겠지.

‘인정하고 싶지 않군, 내 자신의 젊음으로 인한 과오라고 하는 것을’ 이런 건담

뭐 어찌 되었던 그렇게 허니문이 시작되었고 남들과 조금 비슷하거나 조금 다

에 나오는 샤아 아즈나블의 대사를 중얼거리게 된다.

르게 여행을 즐기게 되었다. 밤의 에펠탑을 오르고, 샹젤리제를 걷고, 미슐랭 가이드 인지에 나왔던 프랑스 요릿집에 갔다. (너무 놀라운 맛이어서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집 이었는데 스팅이랑 파바로티 닮은 아저씨 둘이 마른안주에 와인만 마시고 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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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게레오 타입 77


오페라 바스티유에서 오페라를 봤고 프렝탕을 비롯한 백화점들에서 가정용품

들을 샀다. 명품 백 가게 앞의 중국 사람들은 그때도 많았다. 사실 파리에 처음 갔던 1994년에도 많았다.

하루 시간을 내어서 몽생미셸에 다녀오기도 했다. 칼바도스는 정말 맛있었다.

부인어른께서 칼바도스가 40도 가까운 술인 줄 모르고 드시다가 낭패를 보셨다. 모 두가 흐릿한 기억 속에 또렷이 남아있는 19세기 흑백 사진 같은 추억들이다. 그중 가 장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파리의 악기 거리를 찾았다. 지하철 Europe 역이었다. 파리라면 역시 아코디

언이지 하는 기대에 찾았던 악기 거리에 아코디언 샵은 없었다. 주로 클래식 악기상 점이 늘어서 있었는데 그중 아코디언이 전시된 한 가게에서 아코디언을 살 만한 곳을 물었더니 주소를 적어줬다.

80 Rue Daguerre ‘Accordéon Paris’.

다음 날 아침 가게를 찾아갔다. 지하철에서 내리자 상점과 카페가 드문드문 있

는 소박한 주택가였다. 골목은 무슨 행사 준비 중인지 물청소를 하며 쇠기둥 같은 것 을 세우고 있고 건너편 노천카페에서 노인이 빵과 커피를 시켜놓고 졸고 있었다. 아

랍계인 점원이 커피 한잔하라고 손짓하며 졸고 계신 그 어르신을 깨우고 있었다. 11 년 전이지만 아직도 이 광경은 내 눈에 선명히 남아 있다. 그리고 펼쳐진 소박하고 아

담한 거리 풍경. 아주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드문드문 밝은 벽돌색 가게들의 색감이 대도시의 피로를 잊게 해줬다. 아침 공기에 반사된 나의 신부의 뾰로통한 얼굴 또한 어찌나 귀여워 보이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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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게레 거리 ⓒMyrabella

다게레오 타입 79


두어 시간 후 아코디언을 구입하고 돌아온 그 거리에는 장터가 서 있었다. 생선

가게와 치즈나 햄을 파는 정육점이 상당히 컸다. 거리에선 과일이나 채소 같은 먹을

거리와 빵, 샌드위치 같은 것들을 팔고 있었고, 아까는 있는지도 몰랐던 가게가 비디 오 가게였고, 장터에선 옛날 멕시코 흑백 영화의 DVD를 팔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이

렇게 엉뚱하고 덕후 같은 광경을 마주칠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에 경탄하고 말았 다. 부인 어르신은 아무래도 남편의 쇼핑에 지치신 듯했지만 설마 파리 하늘 아래서

마주치리라 생각지 못했던 광경에 우리 둘은…, 무슨 표정을 지었지? 기억이 나지 않 는다. 무려 11년 전이다.

‘우리가 어느 별에서’라는 노래가 있다. 우리는 예전에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

였기에 지금 서로 사랑할까 하는 가사처럼 우리의 만남은 필연적 혹은 운명적이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 계획 없이 발견한 다게레 거리처럼 그녀도 그냥 그렇게 살고 있었을 뿐, 나도 그냥 그렇게 살고 있었을 뿐. 만남은 그저 우연이었구나. 그것 을 깨닫게 된 허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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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떠나려 인터넷을 열어보고 책을 펼쳤을 때 무한히 펼쳐진 정보의 바다

를 볼 때마다 그날의 그 거리가 떠오른다. 우연히 발견한 보석이 어쩌면 더 빛나 보일 수 있는 법. 아직도 프랑스에 여행가거나 공연하러 가는 친구들이 있을 때는 꼭 다게 레 거리의 안부를 묻는다.

아코디언을 샀던 가게는 아코디언과 와인 같은 것을 파는 이상한 가게가 되어

버렸더군. 이 글을 쓰며 다게레 거리의 현재 모습을 찾아보았는데 기억과 조금 달라

도 익숙한 가게들이 보였다. 파리는 워낙에 볼 것이 많은 도시라 아무리 길게 일정을

잡는다 해도 모자라지만, 한 번쯤 동네 시장을 돌아다니는 마음으로 다게레 거리를 산책해 보는 건 어떨까 싶다.

다게레오 타입 81


Agnes Varda감독의 <Daguerréotypes> 1975년 작을 추천한다. 아쉽

게도 볼 기회가 없었지만 다게레 거리 사람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다게레 거리에서 묵묵히 살아가는 다수의 사람을 다뤘다고 한다. Agnes Varda감독은 89세의 나이로, 올해 칸에도 작품을 출품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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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김인수는 크라잉 넛, 그러니까 바로 그 크라잉 넛에서 키보드와 아코디언 을 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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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어떻게든 다녀온 신혼여행 글 더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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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어떻게든 다녀온 신혼여행 85


결혼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 틈에 시간이 흘러 이제 8년이 되어간다. 당시

로써도 다소 나이 든 총각이던 나는 흰 머리가 조금씩 보이고 약간의 노안 증세가 나 타나는 40대 중반의 아재가 되었고 신랑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린 신부였던, ‘그래도

아직은 20대’이던 마누라도 30대 후반으로 향해 가고 있다. 나이를 먹는 만큼 빨라지 는 시간의 흐름에 비애를 느낄 틈조차도 없다는 게 인생의 진정한 비극일지도 모르겠 지만, 그래도 비교적 행복한 부부로 지내고 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진 않아도 두 남녀가 모두 건강하며, 이런저런 사정으로 아

직까지도 슬하에 2세를 두지는 못했지만 대신 1년여 전에 시골에서 데려온 리트리버

믹스견은 매우 건강하고 지나치게 활발하게 자라고 있다. 아직 대출을 모두 갚지는 못했지만 손바닥만 한 마당이 있는, 작지만 두 사람이 살기에는 충분한 우리 집도 구 입했다. 대단한 현금이나 저금, 엄청난 유가증권은 없으나 그래도 아직까지 부부 모 두에게 적은 돈이라도 벌 수 있는 일거리도 꾸준히 들어오고 있다.

가끔 엉뚱하게 생각하는 것인데 우리 부부는 어릴 적에 본 애니메이션에 나오

는 다람쥐 부부랑 비슷한 것 같다. 뭐 대단한 물질적 풍요는 없으나 산과 들을 누비 며 도토리를 물어다가 나무 구멍의 자기 집에 쌓아두는 방식으로 살고 있다는 점에

서 말이다. 많이 벌고 잘 쓰는 방식이 아니라 적게 벌고 적게 쓰는 미니멀한 생존 방 식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인데, 명색이 ‘문화기획자’라는 저임금의 3D업종에 종 사하는 남자(나)와 그보다 더한 저임금과 고된 업무량에 시달리는 시민단체 상근자 인 여자(마누라)의 불가피한 생존전략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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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어떻게든 다녀온 신혼여행 87


결혼을 하던 8년여 전에는 더욱 힘든 상황이었다. 결혼하기 불과 반년 전까지

일하던 문화단체가 수년간 아주 좋지 않은 내외부의 문제를 겪으면서 거의 1년 반 이 상 급여가 체불되었다. 단체를 그만두고 나온 이후에도 체불 급여에 대한 해결은 이

뤄지지 않았다. 그때까지 2년 정도 사귀었던 아내와 결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모아놓은 돈은커녕 당장 생활비며 카드 요금도 이런저런 잡다한 노동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그런데 무슨 배짱인지 여친에게는 “그리스의 해변으로 신혼여행을 가자!”고

호언장담을 해놓은 상황이었다. 결혼식은 다가오는데 제주도도 다녀오기 힘든 게 아

닌가 싶었지만, 인생에 한 번 가는 신혼여행을 대충 때웠다가는 평생 같이 사는 사람 에게 원망을 듣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내 마음이 불편할 것 같았다.

여행사를 통해 대충 알아본 그리스 신혼여행 비용은 전혀 감당할 수 없는 금액

이었다. 일단 경제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여친에게 신혼여행지를 바꿀 수밖에 없을 것

같다는 의사를 전달했고 여친도 알겠다고는 했으나 뭔가 마음이 불편했다. 그러던 어 느 날이었다. 새벽까지 자질구레한 노동에 시달리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들어간 항 공 예약 사이트에 이스탄불을 딱 한 번 경유하고 아테네로 가는 노선이 당시 시가의

약 2/3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올라와 있었다. 그것도 우리가 결혼식을 치르는 날 밤 11시 50분에 출발하는 노선으로 말이다. 그 역시도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것은 뭔가 운명이란 느낌이 가슴으로 팍 치고 들어왔다. 새벽이어서 여친과 의논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으나 그냥 그대로 예매를 했다. ‘그래 까짓것 가자!’ 장거리 여행

에서 가장 큰 비용을 차지하는 게 항공 요금이란 점에서 왠지 비행기를 타고 아테네 에 떨어지기만 하면 다른 문제들은 해결될 것 같았다. 그리고 아침에 동이 터서 여친 이 출근할 시간까지 이런저런 것들을 찾아본 후 전화를 걸었다.

88 여행 매거진 BRICKS - 신혼여행 특집


“우리 그리스로 갈 수 있을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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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하면 무모한 도전이었는데 행운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일단 아

테네에서의 숙박은 후배의 소개를 통해 알게 된 한인 민박에서 비교적 저렴하게 해결

할 수 있었다. 문제는 본격적인 신혼여행지로 목표한 산토리니(티라 섬)로 가는 교통

요금과 숙박이었는데, 운이 좋게도 우리의 결혼식이 있던 10월 초가 그리스 도서 지 방 관광이 비수기로 막 꺾이는 시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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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기와 우기의 구분이 있는 해양성 기후를 가진 그리스 도서 지방은 7월에서

9월까지 엄청난 바가지요금을 받는 것에 비해 10월 이후 급격히 겨울로 분류되면서

모든 요금이 매우 저렴해진다. 하지만 우리가 그곳에 갔던 2009년 10월 초는 날씨가 특별히 나쁜 것도 아니었고 사실 거의 여름의 연장선에 있었다. 요금과 날씨가 동시 에 도와주는 상황 속에서 바닷가의 가파른 벼랑에 테라스를 둔, 그래서 매우 멋진 풍 광을 보며 와인을 즐길 수 있는 단독형 빌라, 그것도 침실은 아늑한 다락에 있는 복층 형 빌라를 성수기 가격의 1/3도 안 되는 매우 저렴한 가격에 얻을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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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 놀라운 것은 아테네에서 산토리니까지의 왕복 비행기였다. 그리스 지역

항공인 에게안 항공에 어느 날 새벽 아주 잠깐 1유로짜리 - 과장이 아니고 진짜 1유로 짜리다. 물론 공항이용료를 포함하면 약간의 요금이 더 붙지만 그래도 평소의 요금에 비하면 조족지혈이라 할 수 있다. - 특가 티켓 몇 장이 떴다. 그것도 우리 커플이 아테

네에서 산토리니로 이동하는 일정에 맞춰서 말이다. 안 되는 영어를 해석해가며 그 1 유로 티켓을 예매하고 나니 우주 만물이 우리 부부의 결혼과 신혼여행을 돕는다는 종 교적 믿음까지 생길 지경이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결혼식 날. 관례화된 결혼식은 지루했으나 “결혼에서 가

장 중요한 것은 두 남녀가 행복하게 사는 것이지, 자식들을 위해 자기 인생의 모든 것

을 희생하지 말라.”는 대학원 은사님의 파격적인 주례사를 가슴에 간직한 채 이제 하 나가 아닌 둘로 세상을 항해하기 시작한 커플은 부부로서의 첫 여행을 시작했다. 인

천공항에서 아내의 결혼식용 머리 실핀을 뽑고 비행기에 올라 와인 한잔 마시고 눈을 좀 붙이고 나니 이스탄불의 새벽이었다. 컴컴하고 약간 싸늘한 새벽 기운 속에 다양 한 인종들이 오가는 이스탄불 공항에서 아테네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우리 부부의 세상을 향한 여행과 도전 역시도 현재(당시)의 우울한 상황과 달 리 간절함으로 애를 쓰면 운명이 돕는 행운이 함께하리란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그

리고 실제로 여러 가지 행운에 감사하며 지금까지 작지만 단단한 행복을 키우며 살아 오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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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혼여행의 디테일은 짧은 글로 다 묘사하기 힘들기도 하거니와 시간

이 많이 지나 잊힌 것도 많다. 그래도 몇 가지만 회고해보자면. 올리브유와 치즈 가득

한 그리스 음식에 영 적응을 못 했던 아내가 거의 몇 날 며칠을 제대로 못 먹고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렸다가 아테네로 돌아와 며칠 만에 간 한인 식당에서 김치찌개 백반을

먹고 혈색이 돌아온 고통스러운 기억이라던가, 산토리니에서 큰맘 먹고 간 해산물 레 스토랑에서 전통주인 ‘우조’를 함께 시켰는데 서비스를 하던 점잖게 생긴 백발의 종

업원이 아내가 화장실에 간 틈에 음흉한 미소와 함께 술을 가져다주며 “여자분에게 술을 많이 먹이라”고 권했던(?) 황당한 사연 같은 것이 떠오른다.

아테네에서 산토리니로 가는 비행기를 탈 때 혼자 유독 “산토리니! 산토리니!”

를 외쳐대며 줄을 안 서고 새치기를 하던 이탈리아의 무질서 아재가 있었는데 우연히

섬 가는 곳곳에서 마주칠 때마다 늘 엄청나게 많은 기념품을 사 들고 다니던 것도 아 내와 가끔 그때를 떠올릴 때 빠지지 않고 얘기하는 에피소드다. 산토리니 여행도 좋 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인 민박 아저씨의 차량으로 돌았던 아테네 근교 투어가 인상 깊게 남아있다. 나프플리오, 코린토스, 미케네 등을 돌아다녔는데 특히 그리스의 나

폴리로 불리는 나프플리오에 있는 팔라미디 성채에서 존재의 유한성과 시간의 무한 성이라는, 신혼여행의 분위기와는 다소 동떨어진 철학적 상념에 잠시 젖어 들기도 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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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쁘고 평범한 일상에 치이듯 살아가고 있으나 언젠가 다시 아내와 먼 여행을

떠나고 싶다. 결혼 10주년에도 어딘가를 다녀올 계획이지만 아직 그리스를 다시 가

기에는 못 가본 곳이 많다. 20주년에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30주년 정도 에는 건강이 허락된다면 그리스를 다시 가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가끔 한

다. 노년에 접어들어 다시 나프플리오의 팔라미디 성채에 부부가 다시 올라간다면 어

떤 기분이 들까? 떨어지는 낙조를 보며 황혼에 접어든 인생의 비감함을 느낄까? 아 니면 신혼 시절의 행복을 다시 떠올릴까? 그런 기분이 궁금해서라도 다시 한번은 그 곳을 다시 돌아다녀 보고 싶다. 물론 아직은 더 “멀리 돌아가는 길(The Long and Winding Road)”을 한참 돌아 다녀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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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더프는 문화정책연구자 겸 칼럼니스트. 70년대 초반 태어나서 영화인을 꿈꿨으나 지금은 창작자를 제도적으로 돕는 일을 하고 있으며 이따금 대중음악 과 서사 장르에 관한 가벼운 글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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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여행 매거진 BRICKS - 취중유람 醉中遊覽


여행 매거진 BRICKS - 신혼여행 특집호

발행처 발행인

알레투어 앤 미디어

서울특별시 성동구 서울숲4길 20 201호 이수진 이주호

편집장 편집인

광고 및 기고문의 웹진 및 홈페이지 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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