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봉모 신부님의 복음 삼덕에 대하여 2013. 12. 7. 예수회 센터
복
음서에는 가난에 대한 언급은 많다. 하지만 청빈에 대한 어떤 언급도 발견 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단어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보다는 주제로 접근
하는 것이 올바를 것 같다. 우선 우리는 예수님의 청빈한 삶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가난하게 태어나신 예수님에 대해서 말이다.
청빈의 삶 예수님께서는 마굿간에서 태어나서 여물통에서 눕혀졌다. 이는 극단적인 가난함 의 모습이다. 하느님이 이러한 환경 속에서 태어나도록 한데에는 이유가 있다. 가 난한 이들과 함께 살아가도록, 비참한 이들을 위해 당신께서 오셨다는 사실을 상 징적으로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예수님을 처음으로 뵌 이들은 메시아가 오 기를 열망하던 이들이 아니라 가장 준비가 안되었던 목동들이었다. 이것들 모두가 그분께서 세상에 오신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아기 예수를 봉헌할 때 성모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의 제물이라는 별명을 갖는 비둘 기 두 마리를 바치셨다. 이는 곧 예수님 부모님의 가난을 말해준다. 그분께서도 가 난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고. 30년동안 공생활 이전 목수일을 하셨다. 나자렛 주민 이 300명이 안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예수님은 떠돌이 목수생활을 했으리라 추측된다. 그 삶 자체가 풍족할 수는 없었다. 왜 그러셨을까? 가난한 이들과의 연 대의 차원에서 해석되어야할 것이다.
공생활을 시작하면서 광야에서의 40일 체험을 생각해보자. 이는 식별의 시간이다. 세례를 받으면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은 예수님께서 식별을 하신 것이다. 라너에 따르면 12살 때 예수님이 성전에 올라갔을 때 자신의 신성을 어렴픗이 깨달았을 것으로 본다. 완전히 자신의 신원을 깨달은 것은 세례 때이고. 즉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몸이 자라듯이 지혜가 자라고 영이 자랐다는 것이다. 세례 때 당신의 신성 을 온전히 깨달았을 때의 충격은 컸을 것이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인성 을 갖으신 분이시길래 고민과 식별을 했어야 했다. 그것이 광야체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