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omade Vol.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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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nomade

design magazine vol.0 2010.1.18


Staff

design magazine vol.0

Editor-in-chief

Project team

Graphic nomade 홍영숙 김혜림 김구회 김혜정

이대우

Art team

조윤경

Product nomade 김이슬 김민영 정지원 이영글 김나영

김이슬 정지원 김영글 김민영

김남형 조준형 김혜경


Architecture nomade

Advertisement nomade 박영규 김동욱 김미성 함재연

Interior nomade

전나리 김희서

Fashion nomade 양정우 윤상훈 김슬기

조현화 박은비 김지은 신수진


Difinition

design magazine vol.0

Interior

D.nomade 는 꿈많은 대학생 여행가를 위한 잡지입니다. 초보여행자인 당신은 언제나 혼란스럽습니다. 왜냐면 어느길을 가야할지 모르기 때문이죠. D.nomade는 열정적이지만 불안한 당신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Design nomade : 디자인을 찾아 헤매는 유목민 디자인에 대한 열정을 가진 노마드로서 직접 디자인을 찾아 나선다. 바쁜 대학생활 가운데 여유를 가지고, 디자인 아이디어를 공유해보자. 경험담을 소개하고 각 분야의 작가들과 인터뷰 할 기회를 마련하는 공간. 대학생 스스로 뭔가를 찾아가고, 해낸다는 것. 도전하라. 다시 시작할뿐.

Fashion

Product


Archit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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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phic


Contents

1-2

design magazine vol.0

3-4 1에 대한 오해

스키니 찬반론

5-6

아버지 광고


7-8

무명 디자이너 이야기

9-10 실내 학회장과의 만남

11-12 산디인 이야기

To be continued


1에 대한 오해 첫 만남, 첫 사랑, 첫 키스.첫 경험 우리는 왜 이토록 처음이라는 것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가. 첫 시도는 늘 사람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다.

: no.1에 대한 오해!

보그’를 일상화 하다. 레이디가가 일상이 퍼포먼스인 그녀, 파파라치 뮤직비디오는 마치 패션화보를 넘겨보는 듯 착각을 일으킬 정도였고 허를 찌르는 그녀의 패션 센스는 데뷔 이래 계속 화제가 되고 있다. 관능과 섹시를 넘어 페티시한 패션까지 선보이는 그녀. 그녀의 의도된 ‘워스트’감각은 아무도 따라 올 자가 없다. 1도 1이 아니다. 최초의 미니스커트를 입은 것으로 알려지는 ‘윤복희’씨. 많은 질타 가 있었지만 그녀는 여성들의 패션을 한 차원 높은 곳으로 끌어올렸다. 하지만 광고 속 그녀는 윤복희씨가 아니라 대역 모델 일 뿐이다. 게다가 윤복희씨가“60년대 중반, 김포공항으로 귀국하면서 미니스 커트를 입었다는 기사는 오보”로 알려졌다. ‘트위기’버금가는 한국 미니스커트의 아이콘은 오보로 시작되었다. 일등이라는 건 실제 일등 을 했다는 사실보다는 일등으로 기억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

2등은 기억해 주지 않는다고? 누가 그래? 연말 시상식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묘미 중 하나는 배우들의 화려한 패션이다. 내 비록 화려한 시상식을 멀리하며 편한 내 방한구석에 엉덩이 붙이고 자리하고 있을지언정, 여배우들의 패션을 꼼꼼히 곱 씹어 보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연말 행사이다.

워스트 드레서에게 느끼는 쾌감! 그녀들의 몸매는 흠잡을 곳이 없고 미소마저 완벽하다. 그 완벽함이 지루할 정도이다. 하지만 2%부족한 패션 센스를 보여주거나 새로운 도전을 한 배우가 이목을 집중시킨다. 베스트보다 워스트 선정이 더 긴장감 있지 않는가? 정말 못 입은‘워스트’라도 불쾌보단 즐거움을 준다. 이런‘워스트’는 간혹 의도이거나 새로운 도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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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nomade

: 시작은 창대하였으나 그 끝은 미약하더라! ‘아니, 이 브랜드 아직도 있었어?’

‘저 브랜드는 뭐야?’

A6, EXR, DOHC를 기억하는지…

고급브랜드에서 지하철브랜드로,‘김창숙 부띠끄’스토리

몇 년 전, 트레이닝복을 기점으로 시작해서 스포티한 룩들이 대세

도심 곳곳 형성된 지하상가에서 우리는 쉽게‘김창숙 부띠끄’를

를 이뤘던, 그런 때가 있었다. 위 세 브랜드들 모두‘트렌디한 스포

발견 할 수 있다. 우리가 그냥 무심코 지나친 김창숙 부띠끄 역시

티함’을 바탕으로 최고의 인기를 끌었던 캐쥬얼 브랜드들이다. 세

최고의 브랜드에서 지하상가의 저가 브랜드가 되었다.

브랜드 로고가 박힌 옷들과 특히 A6와 EXR의 스니커즈는 그 때

김창숙브랜드는 당대 최고의 하이패션을 선도하던 디자이너 브랜

의 젊은 소비자층에겐 선망의 대상이었다. 허나 역시 트렌드는 변

드였다. 우리들 부모님 세대가 김창숙하면“오~거기 옷 괜찮아”라

하는 법. 스포티룩의 인기가 마르고 닳을 때쯤 이 브랜드들 역시

는 반응은 반사적으로 나온다. 이 반응이 당대 그 브랜드의 영향력

정체성을 잃어가며 침체되기 시작했다. 물 흘러가듯이 그렇게 점

을 증명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브랜드 이미지는 단지

차 우리에게서 잊혀졌다. 하지만 2010년 지금까지도 존재하고 있

지하상가에 있는 흔한 저가 브랜드중 하나가 되었다.

다는 사실이 놀랍다. 스타마케팅과 새로운 포지셔닝, 네이밍의 변

IMF라는 경제위기와 함께 휘청하고 쓰러져 버린 김창숙 브랜드.

화 등으로 이 브랜드들은 다양한 시도들을 하고 있다. 또 다른 재기

당시 최고의 하이패션을 달리던 브랜드는 경제위기와 함께 주춤

를 꿈꾸고 있는 것이다.

하더니 브랜드 이미지에 획을 긋는 대박세일이라는 엄청난 마케

이들을 보며, 또 사라지는 다른 브랜드들도 보며 느끼는 것은 재기

팅으로 저가 브랜드이미지라는 꼬리표를 오늘날까지 지우지 못하

의 가능성이 아직은 희미하지만‘언젠간 다시 빛을 볼 날이 올지도

고 있다.

모르겠다’라는 생각이다. 패션계에 정확한 답은 없으니깐 말이다.

수많은 디자이너들만큼 우리 에겐 수많은 패션 브랜드들이 존재한 다. 이들 브랜드들은 롤러코스터처럼 나름의 최고와 최저의 흐름을 타면서 언제나 최고를 향해 달려간다. 영원히 입고 싶은 브랜드도 영원히 입기 싫은 브랜드도 존재하지 않는다. 패션의 세계에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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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inny 찬성 VS 반대 스키니(skinny)’듣기만 해도 나와는 거리가 먼 그 단어. 어느 순간부터‘피골이 상접하다’는 의미가 선망의 대상이 되어버린걸까?케이트 모스처럼 입는다고 누구나 케 이트 모스처럼 보이는 건 아니다. 이 말을 인지한 것은 단지 소수의‘fashion people’뿐 인걸까?

yes 스타일만은 포기할 수 없다 신의 옷장에 세가지 종류의 팬츠가 있다. 엉덩이부터 발목까지 일자로 떨어지는 스 트레이트 진, 걸을 때 팬츠와 발목 사이로 드나드는 공기가 매력적인 배기팬츠,하반 신 전체에 타이트하게 들러붙어 은근한 긴 장감을 조성하는 스키니진 까지. 대한민국 20대 여자 중 한명으로서의 나의 예상이 빗나가지 않는다면 아마도 95%이 상의 여성들의 손길이 스키니진으로 향할 것이라 믿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여성의 각선미를 가장 도드라지게 보여줄 수 있으 면서 섹시한 느낌을 표현하기에 가장 효과 적인 팬츠니까.

두번째, 사회적 소속감 누구나 타인과 함께 있을 때 주목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주목받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주 목받음의 정도’이다. 대부분의 한국 여성 들은 따갑게 쏟아지는 시선보다는 서로 비 슷한 가운데 약간의 더한 관심만을 필요로 한다. 명료하게 밝은 형광등 보다는 은은한 백열등 정도의 스포트라이트가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기분 좋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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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nomade

No

스키니진을 입으면 입었지 입지 않은 사람들을 눈 씻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황 가운데 ‘스키니진은 벗어던지라!’고 외치는 스키니진 착용자제 캠페이너가있어 ‘패션 노마드’에서 직접 그들의 얘기를 들어 보았다.

Q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특별한 에피소드가 있었나? 우선 D.nomade 패션팀을 만났던 것도 특별한 에피소드였고,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알리겠다고 제 이야기를 경청해 주셨던 여선생님과 캠페인 소개를 하는데 잡상인으로 오해하 시고 도망가시던 여성분도 계셨고, 다양한 반응들을 보여주셨 다. 진행하는 내내 굉장히 즐거웠다. Q 앞으로 계속 진행할 것인지? 현장 캠페인 진행시 배포하는 아이템, 포스터가 100% 수작업으 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현장 캠페인은 조금 힘들 것 같다. 그에 비해 온라인 캠페인은 내용을 다양하게 전하기가 훨씬 쉬워 온 라인 캠페인으로 계속 진행하고 싶다. Q 마지막으로 캠페인과 관련돼서 하고 싶은 말 한 마디. 캠페인을 진행하면서, 내 자신이 먼저 변하게 되더라. 날마다 조 금씩 자제하게 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습관처럼 정보를 전달 하기도 하고. 이 캠페인을 통해서 많은 분들이 도움을 받으시 고, 생활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는게 굉장히 뿌듯하고 보람이 된다. 이 캠페인을 어디선가 보게 되신다면, 그냥 지나치지 마 시고, 한번쯤 주의 깊게 봐달라

Q 오, 그간 찾아볼 수 없던 참신한 캠페인이이다. 이런 무서운 병들이 스키니진 착용만으로 일어날 수 있다니,어떤 계기로 이런 사실을 접하게 되었고 캠페인의 진행계기는? 사실을 접하게 된 것은 뉴스나 온라인 기사를 통해서였다. 이를 캠페인으로까지 진행하게 된 계기는 전공 수업에서 1인 캠페인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이미 많이 알려져 있고, 흔한 주 제보다 신선한 주제로 선정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스키니진을 주 제로 시작하게 되었다.

Q 이 캠페인을 하면서 성과는 있었나? 현장으로 나가 진행했던 1,2차 캠페인과 온라인 캠페인을 동시에 진행했는데, 사실 시간적 여유가 조금 부족했던 터라 온라인 캠페인을 통한 성과가 더욱 컸던 것 같다. 블로그에 있는 자료를 보시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앞으로는 자제해야겠다는 다짐을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굉장히 뿌듯했다. 출처 blog.daum.net/Skinny-j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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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으로 눈물 흘릴 줄 아는 나이 스무 살이 지나고 가족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대학이라는 자유 속에 술도 좀 할 줄 알면서 외부활동이 많은 만큼 우정, 사랑보다도 가족애가 싹트기 시작했다. 중 고등학교 시절에는 왜 그렇게도 친구며 애인이 중요했는지...

“우리 아부지.” 아버지. 참 가까우면서도 어려운 존재이다. 예닐곱 살 때 아빠는 슈퍼맨보다도 천하무적 이셨다. 어느 날 엄마에게 혼이 난 날에는 아빠 가 들어오길 기다리며 구석에서 책읽는 척을 하다가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마자 와락 안겼었 다.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아빠라 부르기에는 내 가 너무 커버려서 아빠라는 단어에 거리감이 느껴질 즈음. 아버지의 주름을 손으로 느낄 수 있게 되었고 잠든 아버지의 모습에서 세상의 무게를 보게 되었다.“아버지”라는 소리만 들어 도 감정이 울컥해지고 다 우리 아버지 이야기 이고, 우리 가족이야기로 들리기 시작했다.

한번 쯤 TV나, 포스터나 전광판, 광고들을 보면 서“참, 우리 아부지같다..”는 생각을 해봤을 것 이다. 그래서 한 두번 더 눈길이 간다. 자꾸 우리 아버지가 떠올라서 마음이 짠해 애써 고개 돌 려보지만 잊혀 지지 않는 광고가 바로 아버지에 관한 광고이다. 내기억 속의 아버지를 보여주는 광고는 몇 년이 지나도, 새로운 광고가 나와도 항상 마음속에 들어와 있다. 그리고 혼자 꺼내 보고 지워보려고 하다가 코 끝이 찡해지면 다시 감춘다. 그런데 오늘은 은근슬쩍 꺼내보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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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 때 실기시험 보려고 새벽 6시에 떨리는 마음으로 뒷 좌석 에 미술도구를 챙겨 넣고 차에 올라탔다. 추운겨울도 아닌데 새벽 이라 그랬는지, 실기시험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인지 정신없이 추웠 다. 그러다 문득 앞좌석에서 운전 중이신 아부지의 뒷모습이 보였다. 히 끗히끗한 흰 머리 때문인지 회색 잿빛의 머리색이시고 핸들을 잡은 손은 트고 푸석푸석했다. 백미러로 드문드문 보이는 우리 아부지 얼굴에 주름이 많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말없이 시험장으로 가고 있는데 왜 그리 눈물이 나던지.. 가슴으로 운다는 것이 이런 거구나 하고 느꼈다. 거의 도착했을 때 용돈으로 쓰라고 3만원을 쥐어 주셨다. 뭘 이런 걸주냐고 하다가도 울었던 것이 티가 날까봐 서 허둥지둥 내렸던 기억이 있다. 그때 쯤 철이 들었던 것 같다.

어느덧 2009년을 마무리 지으며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 고 송년회를 끝내고 나니 벌써 2010년 새해가 밝았다. 여기저기 인사 다니랴,사람들만나기 바쁘지만 남들 더 챙기기보다는 가 족들에게 편지나 카드 같은 것을 써보는 것은 어떨까. 가족에 게 쓰는 거라 더욱 쑥스러울 수 있을지는 모르나 따뜻한 구정 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책에서 이 광고를 접하였을 때 순간 뭉클. 했다. 1995년. 이 광고가 집행된 95년도라면 내가 아직 초등학생일 때지만 10년도 더 지난 지금 여전히 가슴 찡한 이유는 부모님이라는 그 자체가 시대, 공간을 초월한 유일한 하나이기 때문일 것이다. 당시 1995년도는 존속살인 등 패륜범죄가 횡행하였다.사회적 분노가 치솟던 그런 시기에 모두를 훈훈하게 해준 바람이 되어준 존재 역시,아버지. 바로 누구 나의 아버지였다. 나의 아버지 이야기이 기 때문에,우리네 아버지 이야기이기 때문에 현대사회에서도 역시 그 온기를 전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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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디자이너를 꿈꾸다 날카로운 인상 속에서 장난기 어린 그의 표정과 가끔씩 던지는 유머가 우리를 폭소케 했던가. 그와의 인터뷰는 동대문의 조용한 s 카페에서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명지대학교 건축학과 4학년 이 대 우

Q 건축학과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Q 학교 생활을 하면서 슬럼프를 겪었던 경험이 있나요?

고등학교 재학 당시, 시에서 주최하는 미래건축에 대한 공모가 열렸어

(하하) 매일매일이 슬럼프죠. 농담이고요. 건축학과

요. 강한 끌림이라고 할까. 이것만은 반드시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

학생이면아실거에요. 가장 힘든건 밤새 작업하는 거겠

어요. 친구들이 입시공부에 열을 올리고 있을 때, 저는 은박지, 호스등

죠?그래서 마감을 하게 되면 정말 기분은 좋지만, 한편

재료를 찾고 레고 모형을 만지작거렸죠. 레고 모형에 호스를 연결하고

으로 허전하면서도 뭔가 아쉽죠.욕심때문일거에요. 좀

은박지를 씌우기를 수십번 반복. 그렇게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만들었

더 잘하려는. 그 욕심때문에 마감을 못한적도 있어요.

어요. 레고모형으로 만든게 어떻게 작품이 될 수있냐고 다들 비판했어

슬럼프였죠. 항상 느끼는 거지만 데드라인을 못지키면

요. 하지만, 저의 이러한 점이 특이했던지, 심사위원들은 제 작품을 최

Dead 죠.

우수작으로 뽑았죠. 그 일을 계기로 저는 자신감이 생겼고, 건축에 흥 미를 가지게 됐어요. 자연스레 건축학과를 선택하게 되었고, 현재 디자 인을 하고자 건축설계를 전공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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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itecture nomade

Q 자신만의 건축 스타일,철학이 있다면?

Q 가장 기억에 남는 Project가 있다면?

저는 항상 남들과 다른 무언가를 표현하고 도전해보고 싶었어요.

2학년 2학기 도서관 프로젝트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그 당시 제가 보

그래서 딱히 건축스타일이 정해져있지 않아요. 하지만 중요시 하는게

로노이 패턴의 매력에 빠져 있었어요. 쉽게 말하면 비정형이죠. 당연히

있다면 남을 설득시키는 방법, 표현방법이에요. 설계가 아무리 뛰어나

도서관 또한 비정형을 모티브로 만들었죠. 하지만 표현에 한계가 있었

도 남을 설득시킬 수 없으면 훌륭한 작품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거든

죠. 컨셉이미지가 골다골증 걸린 사람의 뼈 이미지였거든요. 구멍이 슝

요. 처음 하게 된 프로젝트가 Wall-Structure라는 벽을 이용한 건축이

슝 뚫려있는. 징그러울 수도 있지만 그것 또한 구조가 될 수 있다니 신

었는데, 건축적 의미를 쉽게 전달하고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유튜

기하지 않나요? 그렇게 석고로 수십개의 스터디 모형을 만들었고,

브에 소개하기도 했어요. 지중건축의 특성을 이용한 주택 설계를 할 때

개미굴 모양을 한 도서관이 만들어졌죠. 판넬 또한 입체로 만들어 전시

는 땅의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프리핸드기법을 쓰고, 빛을 설명하고자

했어요. 스터디했던걸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지난학기까지 비

도면에 구멍을 뚫어 전구를 심었어요. 미쳤다 vs 재미있다는 반응 제각

정형건축에 빠져있다가 최근엔 그리드시스템에 관심을 가지고 접근해

각이었죠. 그게 저만의 표현방법이고, 스타일입니다.

보고 있어요. 하지만 비정형 표현한계가 아쉬워 재도전 기회를 노리고 있죠. 조만간 하나 터트릴 겁니다.

Q 어떤 건축가가 되고 싶은지, 본인이 하고 싶은건 무엇인가요? 꿈을 꾸는 건축가. 제 어릴적 꿈 중 하나가 천문학자였어요. 콘택트라 는 우주의 신비를 풀어나가는 영화가 있죠. 이 영화에서 이런 대사가 나 와요.‘ 이 드넓은 우주공간에 생명체를 가진곳이 지구밖에 없다면 엄 청난 공간 낭비이지 않겠느냐.’저는 이게 꿈을 향한 메시지라고 생각 해요. 그 이후로 하늘을 바라보게 되고 생각하죠. ‘그 까짓것. 세상에 안되는게 어딨나?’ 이 세상의 공간들이 내가 디자인한 건축물로 채워 진다면? 정말 환상적이지 않아요? 안된다고 말하기 전에 꿈을 꾸고 가 능성을 실험하는 건축가가 될거에요. 그래서 차차 우주공간도 채워 나 갈까 해요.

Q 마지막으로 D.nomade에게 하고 싶은말이 있다면? 순수한 열정으로 뭉친 대학생. 두려울 게 뭐가 있겠어요? 이 세상에 디자인 되지 않은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당신들 앞에는 세상에 안되는 게 없다고 봅니다. 그 열정에 박수를 보냅니다.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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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디자인 공간을 무엇인가로 채워지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공간에 사람의 마음을 담았느냐가 중요하다. 디자인이 좋아도 사람의 마음을 담지 못하면 그건 좋은 디자인이 아니다.

Q 요즘 실내디자인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이 많이늘었습니다. 이 학생들이 공간을 느끼고 실내디자인을 배워 나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다가가면도움이 될까요? 어떤 물리적인 구획을 디자인하지 말고 심리 학적인 부분을 고려한 뒤에 그 공간에 들어갈 사람이어떻게 느낄까를 상상해보세요. 구획 으로 먼저 바닥, 벽, 천정만을 생각하지 말고, 그 공간에 들어올 사람이 누구냐를 생각해서 사람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줄 수 있는 공간을 생각하면 가장 좋은 디자인이 될 거에요. 공간에 사람의 마음을 담아야 돼. 공간을 무엇인가로 채워지느냐는 중요치 않아. 디자인은 그렇게 가야돼. 아무리 좋아도 사람 의 마음을 담지 못하면 그건 좋은 디자인이 아니야.피카소는 연인을 그릴 때 기하학을 그렸어. 뜨개질하는 모습에서, 손과 몸의 움직 임을 그려서 그녀의 실제 모습을 그린것이 아 니라 그녀의 마음을 그렸어. 그러면서 한 이야 기가 '당신들은 보고 있지만 보고 있는게 아니 다. 그저 보지만 말고 생각하라. 표면적인 것 배후에 숨어있는 놀라운 속성을 찾아라. 눈으 로가 아닌 마음으로 보라. 바로 마음을 담은 그림이예요. 그저 보지만 말고 그려야돼. 사람 의 마음을..

한국 실내디자인 학회장 오 영 근

Q 안녕하세요. 시간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먼저 한국실내디자인학회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디자인 학회에서는 우리가 영역 성을 갖으면서도 가장 큰 조직을 갖고 있는 학회예요. 우리학회는 17년이 됐고, 대한민국의 총 실내디자인 영역에 관련된 분들이 소속 되어 있어요. 학생에서부터 실내디자인 영역 졸 업자, 연구자, 교수님들까지 다양하죠. 게다가 실내디자인뿐만 아니라 우리의 회원구성을 보면 건축, 색채, 공공디자인 같은 공간을 다루는 학문들이 모두 우리와 관계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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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ior nomade

Q 유명한 디자이너 같은 경우에는 자신만의 디자인 철학이나 관 념이 뚜렷하잖아요? 솔직히 20대, 저희같은 대학생들은 그런 가치관 을 형성해나가는 과정에서 많이 방황하고 망설임이 있는데, 어떻게 그런 강한 의지를 형성해 나갈 수 있을까요?

내가 볼땐, 소위 유명한 사람들은 신념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런 사람 들을 추적해보고 연구해보면, 굉장히 신념이 강해요. 내가 하는 이 학문 에 대해서, 또는 이 영역에 대해서는 상당한 신념을 갖고 있는거죠. 사회 에 나가서, 내가 이 영역으로 우리가 결혼 하고 앞으로 잘 살 수 있는 내 삶을 영위한다는 의미로 직업을 구하는게 아니고 이 직업은,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당위성과 맞물리고 내 인생의 목적과 맞물려 있는 이런 신념을 갖고 있어요. 어떻게 보면 그런 사람들은 좋지 않아도, 돈이 안되어도 하는 거예요. 그런 신념을 가져야 되요. 우리가 그렇잖아요? 여러분들이 지나가다가 어려운 사람 도와줄 때 누가 저기서 기자가 사진 찍는다고 해서 줍니 까? 아니잖아요, 자기 신념이 있는거죠. 그 사람을 돕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주는 거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는거죠.

남을 돕는 것도 똑같아요. 신념이라는 말이죠.. 예를 들어서 내가 어떤 디자인을 하는데 '나만 잘먹고 잘 살겠다'라는 신념으로 하면 좋은 디자인이 나올 수가 없어요. '취직을 좋은데 해야 되겠다..',' 대기업에 들어가야지..' 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난 안타까 워요. 유명한 실내 디자이너들이 다 대기업 출신들은 아니지 않습니 까? 어떤 사람은 목수가 되기 위해서 하다가 유명한 디자이너가 된 경

Q 전국의 디자인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에게 한마디 하신다면?

우도 있어요. 이게 신념이라는 거죠. 건축을 하는데 돈을 벌기 위한 것 만이 아니라 '이걸 해서 공헌을 하겠다. 어려운 사람과 소통하겠다. 불 편한 사람과 소통하겠다.' 이런 마음을 갖고 있다면 좋은 게 나오지 않 겠어요?

디자인을 하는 사람을 감성적이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감성적인 마음을 갖기 위해선 디자인 영역뿐만이 아니라 과학, 철학, 인문학분야 등에 여러분의 눈을 돌려보세요. 예를 들면, 밖에 내리는 비가 똑같은 사람이 쳐다보지만 감성적인 사람이 비를 보면, 상당히 다른 마음을 갖고 있을

Q 실내디자인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에게 추천해 주고 싶은 것이 있다면?

꺼라고 생각해요. 나는 가끔 여행가서 보면 학생들이 럭셔리 하게 다니고 그런 것 보다는

여행을 권해주고 싶어요. 여행은 반드시 자기가 준비를 해야 되고,

정말 느끼면서 스케치하는 학생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어요.이 세상은

찾아가서 스케치를 하세요. 그림을 못 그리더라도 좋으니깐 직접 표현

거울이에요. 나를 보는 거울!! 실제 사진이나 거울에서 보이는 모습은 내

해보세요. 그러면 사람들의 마음을 담아 올 수 가 있어요. 사람들이 생

가 아니에요. 나의 본성을 알고 발상의 전환이 필요할 때 그것이 바로

각하고 , 마음으로 어떻게 느끼는가를 담아 올 수가 있는 거예요.

나 입니다. 갇혀있지 말고 소통하는 디자인적 요소를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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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duct nomade

산디인 이야기 본이야기는 산업디자인전공 대학생들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들로 말도안된다는 비판은 삼가합니다

산디인 용어사전

산디인 용어사전

일러스트, 3D MAX, 플래시=디자인과에서 사용하는 디자인, 영상

이중전공 = 복수전공부전공과 다르게 학위취득 가능. 보통 35~42

프로그램 목업= mock-up 제품디자인에서 실물 크기의 모형으로

학점을 추가로 이수해야한다. 졸전두번 미술대학의 졸업시험= 졸

만드는 것.산디인으로서 누리고 싶지않은 특권아닌 특권. 네티즌들

업전시회 시간, 돈 투자가 예상 판넬의 잘못된 말로 작품설명서를

이 한자어‘목각(木刻)’으로 혼동하여 만들어진 말이다. 골드폼, 핸

벽걸이 액자 형식으로 만듦 패키지,디스플레이 시각디자인과에서

디코트, 빠데 (퍼티) 목업때 사용하는 재료. 어린이버전으로 찰흙, 사

포장디자인, 디스플레이 (공간연출) 수업으로 2D보다 3D에 가깝다.

포물체의 거죽을 반들반들하게 문지르는 데에 쓴다.

Diary1 편입생편

Diary2 이중전공자편

두근두근 설레이는 미대생의 학교생활.학교에 적응하

공업디자인전공자. 지금보다 넓은 디자인세계를 위해. 시각디자인을 이중전공으로 하고있다.시작은 복수전공허가서에 도장찍는 순간. 양쪽 과사 조교 들에 혀 놀림을 당하다 (쯧쯧쯧)

면서 느낀거지만,디자인을 한다는 것은그림을 잘 그리 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컴퓨터 작업을 더 잘해 야한다. 그냥 올림픽정신으로 학교를 다닌다. 수업에 참여하는 것에 의의를 두고있다. 처음 본 프로그램들. 일러스트, 3D max, 플래시?! 아이구 머리야 , 나더러 어쩌라고!! 아... 하나님 너무나 넘어야 할 산이 많군요 편입이 끝이아니군.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 목업을 하 란다. 난생처음하는목업! 나의 아이템은 자전거 보관 소인데, 1 : 1 사이즈로 만들랜다.....아

골드폼, 핸디코트, 빠데, 사포, 기타 등... 살게 많다. 게다가 비싸다. 골드폼을 자르고 파고 해서 형태를 잡고 사포질을 했다. 그리고 빠데를 발랐다. 녹았다. 뭘까...이런 시츄에이션은?

하나나 제대로해 임마” “너 죽었다” “나중에 취소해달라 빌지나 말어” “경영이나 영어를 하지” “너 졸전 두번해야되” 모든 놀림에는 “알아요”“괜찮아요” 로 멋지게 화답했다.

현 이중전공 2년차. 조교들은 말이 현실이 되었다. 난 죽어간다. 모든 것이 장점이자 단점. 제품 디자인 하면서 판넬에 목숨걸고 PPT 효과에 집착한다. 시각 디자인하면서 공간과 구조를 생각한다.허나,이 두 가지모두 기본이 충족되었을때 더해져야 효과적이

핸디코트 바르고, 사포질하고 빠데로 메꾸고, 사포질하고 빠데로 메꾸고, 사포질하고 빠데로 메꾸고, 사포질하고 빠데로 메꾸고, 사포질하고 빠데로 메꾸고, 사포질하고 다음날, 내 팔엔 파스가 붙여져 있다. 이 과정이 무한반복 오늘도 난 열심히 삽질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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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는걸 패키지,디스플레이수업. 공디과인것을 들키 게 되면뜻하지 않는 관심을 받게된다. 교수님 -“공 디과? 그럼 넌 작업을 3D로 하면되겠구나”, 팀작 업 -“난 그래픽을 맡을테니 넌 공디과니까 전개도랑 샘플 맡어.”가끔씩 휴강 날 때 연락을 못받는 경우 도 있다. 시디과수업하면서 알았다. 우리학교가 여 대였나?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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