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발간한 '하늘에서 바라본 한국의 숨결'
전주Ⅰ전동성당 (사적 제288호)
(전라의 숨결 1~3권)
1권은 전라북도 13개 시군 65개소 2권은 전라북도 일부와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13개 시군 53개소 3권은 전라남도 11개 시군 48개소
전주 전동성당 전주 전동성당(全州 殿洞聖堂)은 사적 제288호로 전
각 문화재 국보, 보물, 명승, 사적, 고택, 사찰, 성당, 교회, 천연기념물 등 유형별로 선정 후 각 테마에 맞게 촬영하여 문헌 기록에 있는 그대로를 정리하여 청소년 또는 노년층도 한눈에 보고 알기 쉽도록 풀이하여 설명하였습니다.
북 전주시 완산구 전동 1가 200-1번지(태조로 51)에 위 치하며, 지정면적은 679㎡이고, 성당대지면적은 7,131 ㎡, 건축면적은 약 624㎡이다.
전주지역의 초기성당 천주교가 처음 전래된 조선시대 말에는 천주교 박해 있었다. 그러던 중 1882년(고종 19년) '조미조약'에 의해 개신 교(기독교)의 공식적 선교가 승인되고 난 후 1886년 (고종 23년) 프랑스와 조선정부 사이에 '조불조약'이 체결됨에 따라 프랑스에서 주도하는 천주교의 공식적 선교도 승인되었다. 천주교의 공식적 선교는 기독교보다 다소 늦게 시작 하였지만 이미 천주교가 전파되어 있었기 때문에 전주 일대는 천주교 신자가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하였다. 따라서 전주일대 선교를 담당했던 프랑스 선교사 보 두네 (X. Baudounet, 1859~1915 : 한국이름 윤사물)는 전주읍성남문 즉 풍남문 밖에 있던 구례영(求禮營)의
외세의 상장인 성당을 매국노 이완용이 막아
가옥을 사들인 다음 개조하여 전라도 지역에서는 처음
전주에 공식적 선교를 위하여 천주교성당을 건축하는 계획 때부
으로 임시성당을 만들었다. 당시 사들인 구례영은 전
터조선정부와 천주교 사이에는 장소선정에 대한 갈등이 있었다.
라감영(전라도 총괄관청)과 구례현과의 연락사무소로
당초 천주교는 한양의 종현성당(현 명동성당)처럼 전주읍성이 내려
구례현의 관리가 전주에서 사무를 보던 건물이었다.
다보이는 지금의 오목대(梧木臺)로 성당 터를 선정하려 하였다.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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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심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라도 일대에 많은 신자가
또한 주말을 이용하여 1박2일 동안 인접시군을 다니며 우리의 아름다운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볼 수 있도록 하였으며 학생들의 학습에 매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진의 배치도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도록 백과사전 크기에 450p 전체 고급양장 칼라본으로 제작하였습니다. 처음 항공촬영부터 책 인쇄 전까지 모든 편집기획을 저자인 저와 유창민 박사, 심재현 비행선 조종사, 이선주 등 4명이 직접 하여 비교적 쉽게 볼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앞으로 제4권은 제주도, 제5권 경주, 울릉도, 독도를 1월중에 발간할 예정이며, 경상남 북도 3권, 충청남 북도 2권, 경기도 1권, 강원도 1권, 서울 1권 등 한글판 13권과 영문판 2권을 포함하여 15권을 2013년까지 발간할 예정입니다.
저자 김치연 올림
한국인이 선사시대부터 근대까지 남겨 놓은 문화재의 아름다운 숨결을 2008년부터 하늘에서 바라 보고 문헌 사실 그대로 기록을 남겨 이 책에 소중히 담았습니다.
목대는 1380년(고려 우왕 6년) 이성계(李成桂, 1335∼1408 : 조선 제 1대왕, 재위 1392∼1398)가 황산에서 왜구를 토벌하고 귀경하는 도 중에 승전연회를 베푼 장소라 하여 그 자체가 조선왕실의 상징이기 도 한 곳이다. 더구나 유교가 국교인 조선정부로서는 오목대 바로 아래에 전주향교가 있는 것을 감안하면 그 위에 외세의 상징인 천 주교 성당이 자리 잡는다는 자체가 용인될 수 없는 사안이었던 것 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매국노 이완용(李完用, 1858~1926)이 당시 전라도관찰 사로 있으면서 전주 유생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오 목대에다 정자를 짓고, 1900년(고종 37년)에는 고종(高宗, 1852~1919 : 조선 제26대왕, 재위 1863~1907)이 친필로 쓴 비석을 세워 성당을 짓지 못하게 했다. 그로 인하여 천주교 측에서는 오목대를 포기하 고 전주성당 터를 다른 장소로 정할 수밖에 없었다.
전동성당의 설계 및 건축 전동성당의 건축설계 양식은 조선백성들에게 보다 친근함을 주기 위해 성당 전통건축양식인 고딕(Gothic)식보다는 다소 부 드러운 로마 네스크(Romanesque)식을 택했다. 당시 천주교 건축 방식 중 고딕식 은 첨탑 등을 높이 세우는 중세 미술양식이고, 로마네스크식은 지붕을 둥글게 하는 양식으로 둥근 형태의 성당 은 아무래도 조선인에게 친숙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었다. 또 전 주읍성 안에서 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성당정문과 첨탑을 남쪽이 아닌 북쪽으로 향하게 두었다. 전동성당은 1908년 한양 종현성당 건축에 참여한 프와넬(V. L. Poisnel, 1855~1925 : 한국 이름 박도행)이 설계하였 고, 1908년 5월 5일 성당신축기공을 하 여 1914년에 완공하였으며, 이 때 사용한 성당 건축물 재료 중
전동성당이 건축되기까지
상당수가 전주성벽을 허물고 남은 성곽 돌이었다고 한다.
오목대에 지으려던 성당신축이 무산되자 천주교는 당초 임시성당이 있던 구례 영과 구례영에 인접한 사형장을 사들여 전주지역 성당 건축을 계획하였다. 이 사형장은 1791년(정조 15년) 윤지충과 권상연 및 1801년(순조 1년)에는 유항검 가족과 그 형제 등 천주교 신자들이 사형당한 장소이기도 하다.
다래나무
구례영과 사형장의 성당 신축계획은 일제가 조선을 본격적으로 침략하고자 하 는 야욕을 드러내면서 조선의 상징인 왕실권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세운 계획과
하늘에서 바라본 한국의 숨결 (전라의 숨결Ⅰ)
도 일맥상통했다. 천주교에서는 비록 오목대처럼 전주읍성이 내려다보는 지역 은 아니 더라도 전주성벽을 허물면 조선왕실 상징인 경기전이 바로 앞에 있어 조선왕실의 권위와 동등하다는 인식을 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또 그뿐만 아니 라 사형장 터에다 선정한 이유는 과거 천주교 박해 때 프랑스 신부들이 조선에 서 23명이나 순교를 당한 사실을 알리기 위한 선교 목적도 달성되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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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침략야욕을 드러낸 일제도 조선왕조의 상징인 경기전을 보호하고 있는 전주성 성벽을 허물어야 침략자의 위상을 갖출 수 있다고 여겨 1907년부터 서쪽 성벽을 일부 허물었지만, 고종이 '성벽철거위원회'를 만들어 지연시키자 자연히 성당건축도 지연되었다. 결국 일제가 1908년 고종을 폐위시키면서까지 경기전 주변에 있던 성벽을 허물자 천주교도 지금의 터에 성당을 짓기 위한 건축계획을 본격적으로 세우기 시작하였다.
저
자Ⅰ김치연 상명대학교 산학협력단 교수
편집기획Ⅰ유창민 상명대학교 환경조경학과 외래교수 기획감수Ⅰ이명수 제 18대 국회의원, 전 충남 행정부지사, 건양대 나사렛대 전 부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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