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을 지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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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지나며

최완섭 이영미 저


최완섭 연세대, 한국교원대, 미국 뉴멕시코주립대에서 공부하였고, 물리 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천과학고, 한국교원대, 춘천교대, 경인교대 등에서 강의하였고, 현재 선인고와 인하대에서 강의하고 있다. 저서로는 『노벨상으로 본 과학과 창의성』『창의성과 과학 의 만남』『고급물리』『융합 물리학』『고교생을 위한 물리학』 『청소년을 위한 물리학』『탐구형 물리실험 Ⅱ』『영재들의 물리 노트Ⅰ,Ⅱ』EBS 방송 교재 외 다수가 있다. 이영미 이화여대에서 공부하였고, 과학교육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화여대, 경인교대 등에서 강의 하였고, 현재 숭덕여고에서 강의하 고 있다. 저서로는 『노벨상으로 본 과학과 창의성』『창의성과 과학의 만남』『고등교과서 물리학 Ⅰ,Ⅱ』『융합 물리학』『고교 생을 위한 물리학』『융합과학 모델교과서』『청소년을 위한 물리 학』『탐구형 물리실험 Ⅱ』 외 다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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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어머니 하면 바로 떠오르는 느낌이 사람마다 다른 마법의 단어라고 한다. 나에게는 희생과 외로움 이었던 어머니와 이별을 했다. 유한한 시간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별은 피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별을 통하여 “We are nothing but specks of dust.” 라는 사실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이름이 지워진 의료보험증을 받았는데도 여전히 이별이 믿기지 않는다. 지 금도 어머니가 계셨던 곳에 가면“저녁은 먹었니?”하실 것 만 같다. 그러나 어머니는 한 순간에 연기처럼 사라져버려 따사로운 체취도 느낄 수 없고 기억으로만 남아있다.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는 기억을 꺼내보며 생각에 잠긴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너무 힘들게 사셨던 어머니의 삶이 서 글플 것만 같다. 기억을 더듬다 보니 아쉬움과 후회가 남는 다. 이제는 아쉽고 후회스럽더라도 마음의 아픔을 가슴에 묻 고 이별을 지나려 한다.

2018년 8월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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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

1. 외로움

…6

기록

…8

배움

기억

…10

…12

제주도

…14

휴가

…16

차이

…18

선물

…20

목욕

…22

교회

…24

관절염

…26

친구

…28

보청기

…30

변화

…32

화분

…34

외로움

…36

한약

…38

전화

…40

지팡이

…42

…44

눈치

…46

2. 입원

…48

입원

…50

존재

…52

회복

…54

운동

…56

산책

…58

간병인

…60

휴대폰

…62

요양병원

…64

치료

…66

…68

커트

…70

아버지

…72

웃음

…74

다툼

…76

…78

기도

…80

4


만남

…82

며느리

…84

헌금

…86

두유

…88

치유

…90

내성

…92

호스

…94

눈물

…96

저녁

…98

준비

…100

서운함

…102

3. 이별

…104

이별

…106

배려

…108

후회

…110

어머니

…112

친척

…114

사진

…116

조카

…118

종교

…120

자랑

…122

4. 아쉬움

…124

일상

…126

…128

가족

…130

자신감

…132

목소리

…134

여행

…136

빈자리

…138

추석

…140

…142

우연

…144

포기

…146

가끔

…148

통장

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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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로움

6


We are nothing but specks of du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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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오슬로(Os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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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기록하다

로비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있다. 요즘 자주 만나고 있는 분이 와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묻는다.

너무 힘들게 사셨던 어머니의 기억을 기록하고 있다고 하니 왜 하냐고 한다.

곰곰이 생각해본다. 기록하지 않은 채 잊으면 너무 쉽게 잊혀져 서글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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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바르셀로나(Barcel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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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더듬다

많은 기억이 남아있지 않아 외롭고 힘들었던 어머니의 기억을 더듬는데 시간이 걸린다.

아련한 기억을 더듬다 보면 어머니의 행복했던 기억도 있지만 마음이 안타깝고 서글프다.

미래의 우리 모습인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더듬다 보면 아쉽고 후회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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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

보스턴(Bost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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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움을 원하다

어머니는 학교를 다니는 것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시골의 가정에서 자랐다.

시험공부를 하려고 하면 부모님은 시험대신 할아버지 수염을 보라고 하였단다.

공부를 하고 싶었던 어머니는 내가 더 배웠다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텐데 하면서 배우지 못한 것을 아쉬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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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산티아고(Santi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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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이야기하다

몇 년 전 이모와 제주도에 다녀 오셨다. 좋은 호텔 경험이 없었던 어머니에게 잠자리와 식사가 좋으셨나 보다.

다녀오셔서 아시는 분에게 자식 덕에 고급 호텔에서 자고 맛있는 요리를 먹었다고 자주 자랑하셨다.

작은 선물이었지만 좋아하시고 자랑하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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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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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를 다녀오다

오랫동안 조카를 돌보느라 긴 시간의 여행 경험이 없으신 어머니는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던 여동생 집에 가고 싶어하셨다.

한 달간 휴가를 보내드리기 위해서 로스앤젤레스 행 비행기표를 예약하였는데 어머니 혼자 장시간 비행과 출입국 수속 등 걱정이 된다.

돌아오셔서 출입국 수속 등을 혼자 하신 이야기를 하는데 표정이 밝다. 보내드리기 전 걱정은 괜한 기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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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

헬싱키(Helsin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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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차이를 가지다

어머니는 조카들 때문에 형 가족과 생활하셨다. 몇 년 전까지도 조카들을 키우고 살림을 하셨다.

살갑지 않은 나는 이유가 있어야만 어머니를 뵈러 갔다.

어머니는 나의 가까운 곳으로 오셔서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셨지만 나는 이야기를 많이 하지 않고 잠시 머무르다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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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

산티아고(Santi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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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고 싶어하다

어머니를 뵈러 가니 정말 손이 많이 가는 고추를 말리고 있었다.

바쁘신데도 오늘도 늘 그러하시듯 “저녁은 먹었니? 금새 할 테니 먹고 가”라고 하신다.

집에 가려 하니 이것저것 챙겨주신다. 어머니는 항상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을 주고 싶어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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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욕

쿠스코(Cus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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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들이 잘한다

어머니가 밝은 모습으로 들어오셨다. “어디 갔다 오세요?”하니 세리와 목욕을 다녀왔다고 하신다.

혼자 목욕을 하기 어려운 어머니는 조카들과 목욕을 다니셨는데 막내 조카와 목욕 가는 것을 좋아하셨다.

“요즘 애들은 할머니를 싫어하는데 키운 정 때문인지 목욕가면 잘 챙기고 싹싹하게 잘한다.”고 하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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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사해(Dead S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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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을 가지다

가끔 어머니에게 들르면 너무 읽어 낡은 성경을 읽으며 마음에 드는 구절을 암송하며 즐거워하셨다.

명절에 가족이 모이면 가족예배를 주관하고 성경의 내용을 자신 있게 설명하셨다.

심방과 속회를 다니고 많은 분들과 교류를 하며 외로워 하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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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절염

팔로알토(Palo Al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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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절염을 앓다

어렸을 때 비교적 도시인 우리 집에는 많은 친척이 함께 생활을 하였다. 어머니는 혼자서 집안 일을 다 하였다.

무리한 일은 관절에 무리를 주어 오랫동안 고생하였다. 다행이 교회를 다니면서 많이 좋아졌다.

최근엔 다시 심해져 병원에 다니고 한방치료도 받았다. 그러나 효과는 잠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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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바르셀로나(Barcelo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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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아프다

평생 집안일만 하시던 어머니에겐 교회가 유일한 사회 생활이었다.

교회 내에서 많은 분들과 교제를 하였는데 시간이 갈수록 친구들이 아프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다.

만날 수 있는 친구들이 줄면서 혼자 계시는 시간이 늘었다. 외로움이 나타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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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청기

발파라이소(Valparaí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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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력이 약해지다

나이에 비해서 청력은 좋으셨는데 몇 년 전부터 작은 소리가 잘 안 들린다고 하셨다.

속회나 심방에 가면 작은 소리를 못 들으시니 어떤 때는 위축이 된다고 하신다.

처가 어머니를 모시고가 보청기를 맞추어 드렸더니 좋아하신다. 위축되지 마시고 필요하면 말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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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

톨레도(Tole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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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이 커지다

어머니에게 들리면 성경을 읽고 계시는 모습을 보는 경우가 줄었다.

명절에 가족이 모여도 가족 예배를 형식적으로 진행하고 성경의 내용을 설명 할 때도 자신 없어 하셨다.

오랜 시간을 혼자 보내면서 외로움으로 나타난 어머니의 변화를 이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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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

웁살라(Uppsa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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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분을 정리하다

화분을 관리하는 일은 잔손이 많이 가는 일이었지만 어머니의 오랜 습관이었다.

어머니는 꽃에 정성으로 돌보면 시들었던 꽃도 살아나 꽃을 피우는 화분관리를 즐거워하셨다.

어느 때부터인가 화분을 귀찮아 하셨다. 가꾸던 일을 멈추면서 화분은 메말라가기 시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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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

레이캬비크(Reykjaví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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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워 하셨다

교회 활동이 부쩍 줄면서 아파트에 사시는 분들도 만났지만 혼자 계시는 시간이 많이 늘었다.

가족들이 아침에 나가면 돌아오는 저녁 늦게까지 어머니 혼자 계셨다.

욕실에서 미끄러져 방치된 트라우마를 가지신 이후 혼자 있다 보면 무섭다는 말을 종종 하셨다.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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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

리마(L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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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력이 약해지다

어머니를 뵈러 가니 같은 아파트에 사시는 분이 어머니가 혼자 있는다고 오셨다.

둘째라고 하니 말을 많이 들었다고 하시며 어머니가 요새 많이 아프셨다고 한다.

어머니 기력이 많이 떨어지셔서 한약 좀 해드렸으면 하신다. 어머니는 내가 걱정할까 아프셔도 연락을 안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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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

발파라이소(Valparaí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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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를 하다

오랫동안 연락이 없으면 궁금한 어머니는 참다 연락을 하셨다. “집에 무슨 일이 있니?”하고

어머니는 나를 생각하고 있었다. 어머니를 잊고 있었던 나는 전화를 받으면 들려서 용돈을 드리곤 하였다.

용돈 때문에 전화한 거라고 내가 생각할까 봐 전화를 하고 싶어도 자주 못한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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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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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팡이를 사용하다

어머니의 생일은 겨울이다. 생일 겸 식사를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데 지팡이를 들고 들어오셨다.

처음으로 지팡이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고 당황하였다. 어머니가 지팡이를 …

건강하며 희생을 하는 어머니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어머니였다 그러나 도움을 생각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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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홀름(Stockho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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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놓다

어머니는 깔끔했다. 자주 쓸고 닦아서 집은 깨끗하고 그릇은 빛이 났다.

하얀색 옷은 세탁기를 사용하지 않고 따로 삶았다. “힘드니 세탁기 삶음 기능을 사용하세요.”해도 세탁기로 삶으면 깔끔하지 않다고 하셨다.

거동이 불편해진 후 하시던 많은 일을 놓았다. 그러나 일을 보면 내가 해야 하는데 하면서 마음으로는 일을 놓지 못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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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라파즈(La P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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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가 보인다

조카들을 돌보며 생활하신 어머니는 내가 무엇이 부족하냐며 당당하셨다.

그러나 하던 일을 내려놓으시고 나서는 무엇인가 도움이 되지 못하니 눈치가 보인다고 하신다.

“지금까지 도움을 주셨으니 이제부터는 당당하게 도움을 받으세요.”하였지만 가족들의 눈치를 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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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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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have to make time to be heal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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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

라파즈(La P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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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원을 하다

3월의 봄 입원을 하였다. 연락을 받고 병원에 가니 옆에는 올 때 신으신 운동화와 지팡이 휴대폰이 있었다.

힘이 없고 야윈 모습이다. 약 때문에 몸이 힘들어서 인지 유달리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다.

어머니 불러보지만 거친 숨을 몰아 쉬기만 할 뿐 대답이 없다. 조용히 지켜보다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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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시애틀(Seat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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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생각하다

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처음으로 어머니와 이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별을 생각하지 않다가 어머니와의 이별을 생각하니 어머니의 존재가 크게 다가온다.

오래 전 비행기를 오랜 시간 갈아 탈 때 비행기 안에서 느꼈었던 것 같이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견디기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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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

웁살라(Uppsa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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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태가 좋아지시다

며칠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시던 어머니가 오늘은 상태가 좋아지신 것 같다. 누가 음료수를 두고 갔다고 말씀도 하신다.

어제 우리가 놓고 갔다고 하니 같은 병실의 환자 보호자가 간식을 나눠줘 고맙다고 음료수를 주고 싶다고 하신다.

음료수를 나눠 드리고 “운동하시지요.”하니 낮에도 병실복도에서 많이 걸었다고 하면서 움직이는데 많이 호전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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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

오클랜드(Auck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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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찮아 하다

병원에서 퇴원하여 집으로 오셨다. 모든 일을 힘들고 귀찮아 하시며 운동도 안 하신다.

병원에서 하던 걷기도 안 하신다. 운동을 안 하시니 하루 종일 누워 계신다.

운동하려고 하는 의지가 약해지신 것 같다. 걷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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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

베르겐(Ber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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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을 나오다

병원 퇴원 후 거동이 불편하여 하루 종일 집안에서 생활하였다. 답답하다고 하셔서 휠체어로 집 주변을 돌고 있었다.

어느 아주머니가 다가오더니 “000호 권사님 아니세요?”한다. “어머 얼마 전까지 미장원에서 보았는데”하면서 놀란다.

밖에 나오니 공기가 너무 좋다 하던 어머니가 “응 나 봄부터 이렇게 됐어.” 아무렇지 않은 듯 말을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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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인

브뤼셀(Bruss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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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를 받다

퇴원 이후 거동이 불편하였다. 누군가 모든 일을 챙겨주어야만 했다. 식사까지도

어머니를 돌보기 위해서 낮 시간 동안 간병인이 상주하였다. 그러나 가족과 간병인 사이에 간극이 있었다.

거동이 불편한 어머니는 혼자 누워계시는 것을 불안해 하셨다. 그 불안의 크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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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

오슬로(Os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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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을 정리하다

어머니는 손자의 사진이 배경화면으로 되어있는 휴대폰이 있었다. 나는 휴대폰으로 연락하고 뵈러 가곤 하였다.

손의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다고 외부와의 유일한 연결수단인 휴대폰을 정리하였다.

외부와의 연결을 정리하면서 가족과의 이별도 준비하고 있었다.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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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

탈린(Talli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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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보다

아프신 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신 어머니는 요양병원을 자식들이 버리는 곳으로 생각하여 요양병원에 가길 싫어하였다.

요양병원에 계시면 혼자 있는 불안이 덜할 수 있고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설득하였다.

요양병원으로 오셔서 식사도 잘하시면서 표정도 많이 좋아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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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

브뤼셀(Bruss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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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보다

집에 계시는 동안 운동을 안 하셔서 근육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근육을 키우기 위해서 물리치료를 시작하였다. 물리 치료 비용이 비싸니 열심히 하라고 했다며 물리 치료받는 것을 힘들어 하셨지만 열심히 하셨다.

물리치료를 받으시면서 조금씩 좋아졌다. 휠체어에 앉으셔서 균형도 잡고 전에는 못하던 손 동작을 하면서 자랑도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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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아비브(Tel Av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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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녀를 두셨네요

어머니가 입원한 후 일요일 점심에는 병원에 들려 점심을 먹여드리고 산책을 했다.

처는 식사를 하나하나 물어보면서 먹여드렸다. 옆에 계시던 아주머니가 "딸이 참 잘 하네요."한다. 처가 며느리라고 하니 놀란다.

종일 병원에 누워있는 것을 답답해 하셔서 휠체어로 주변을 산책을 하니 표정이 밝아 지신다. 가을을 여유롭게 느끼는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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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푼타아레나스(Punta Are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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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운 하다

어머니를 휠체어에 모시고 밖으로 나왔다. 머리 모양을 보니 어머니도 여성인데 하는 생각이 든다.

처가 갑자기 어디를 다녀오더니 미장원에 예약해 놨으니 머리를 다듬으러 가자고 한다. 머리를 다듬고 감은 후 매우 좋아하신다.

스스로 거동을 못하니 머리를 감고 싶어도 누군가 감겨주지 않으면 머리를 감지 못한다고 말을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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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푸에르토몬트(Puerto Mon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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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해 하다

산책하던 중에 아버지와의 만남을 물어보았다. “아버지와 어떻게 만났어요?”

웃으시며 외가의 중매로 아버지를 만났다고 하신다. 아직도 아버지를 좋게 기억하고 계셨다.

아버지가 떠나던 달 처음으로 월급을 봉투째 주셨단다. 한복이 없으셨던 아버지에게 한복을 해준다고 하셨는데 아버지의 떠남으로 약속을 못 지켜 서운하다고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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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

뒤셀도르프(Düsseldor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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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하게 웃다

물리치료나 검사를 받으러 가려면 휠체어에 타고 내리는데 간병인의 도움을 받았다.

모든 일에 도움이 필요한 어머니는 간병인이 고맙고 힘들어 한다고 조그만 선물이라도 하고 싶다고 허셨다.

어머니를 모시고 나가 조그만 선물을 샀다. 선물을 간병인에게 주자 환하게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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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툼

파리(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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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인 생각을 하다

추석에 잠시 외출을 나오셨다. 조카들이 키운 정 때문인지 어머니에게 잘한다.

어머니가 요양병원에 적응하시고 요양병원 생활이 몇 년이 갈수 도 있다고 생각되었다.

형과의 이야기 도중 의견 차이가 있었다. 형과의 의견 차이가 나의 후회의 시작이 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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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알라룸푸르(Kuala Lump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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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데려다 줘

예전에 어머니를 뵈러 오갈 때 근처에 참 잘 짓고 있는 건물을 보고 궁금해하였다.

그 건물은 안락하고 편안한 분위기의 요양병원이었다. 어머니는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종종 집에 가게 택시 좀 불러달라며. 집에 가기를 원하셨다. 왜 그러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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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코펜하겐(Copenhag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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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바꾸다

요양병원에서 몇 달을 지내신다. 조금씩 어머니의 모습이 변하며 힘들어하신다.

“어머니 손으로 식사를 할 수 있게 해주세요.”가 처의 기도 제목이었다.

너무 힘들어하고 변하신 어머니를 보면서 “어머니가 편히 하늘나라에 갈 수 있게 해주세요.”로 기도 제목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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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시안(Xi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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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만나다

어머니가 오늘을 넘기시기 힘들 것 갔다고. 간병인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놀라서 병원으로 갔다.

이야기를 하시다 방금 잠들었다고 한다. 둘째라고 하니 어머니가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생각보다 상태가 좋아 보여 다행이다. 깨우지 못하고 주무시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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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

프랑크푸르트(Frankf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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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느끼다

어머니는 자식이 많지만 자주 오는 자식은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자식한테 버려졌다는 생각을 하셨다.

처는 주말이면 어머니를 만나러 갔다. 가서 어머니의 말 동무를 하거나 식사를 먹여드리고 왔다.

처의 마음을 느꼈는지 네가 진짜 며느리야 하셨다. 마음에 담긴 말은 못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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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금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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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창피하다

오랫동안 몸이 불편하셔서 교회를 다니지 못하셨다. 마음이 불편해 하신다.

처가 “어머니 주일예배를 보러 갈까요?”하니 고개를 흔드신다. “내 손으로 헌금을 못해서 창피하다.”고 하신다.

교회에 가고 싶은 믿음과 움직이지 못하는 신체적 현실 사이에서 어머니는 많은 갈등을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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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

암스테르담(Amsterd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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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유를 좋아하다

요즘 어머니의 건강이 많이 안 좋으시다. 눈에 띄게 마르시고 야위어간다.

치아와 소화기능이 약하니 단단한 음식 대신 부드러운 음식이 나오는데 거의 드시지 못하신다.

처가 두유를 드리면 두유만은 하나를 쉬지 않고 참 맛있게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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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

텔아비브(Tel Av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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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약을 챙겨 드시다

많은 시간을 침대에 누워서 지내신다. 많이 불편하신지 누워 있는 방향을 바꾸어 달라신다.

누워계시다가 고통이 너무 심하시면 하나님이 왜 안 데려가냐고 하신다.

처가 “어머니 한약은 드셨어요?”하면 한약을 달라고 하신다. 고통 속에서도 치유를 원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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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성

룩셈부르크(Luxembou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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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생제가 듣지 않다

장 기능의 이상으로 일반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았다. 의식도 있어서 알아보고 “식사 했니?”하셨다.

갑자기 항생제 내성이 나타났다. 단독 병실로 옮겼다. 퇴원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병원에서 더 이상 방법이 없다고 한다. 치료가 중단되니 상태가 급격히 악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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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스

후쿠오카(Fukuo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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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못하신다

병원에서 치료를 할 수 없다고 해서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희망은 점점 멀어진다.

옮긴 병원에서는 부근 식도에 구멍을 내고 호스를 통해 음식을 주입하거나 영양제를 맞는 방법 외는 없다고 한다.

희망이 없는 결정은 모두에게 어려웠다. 어머니를 너무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닌지 조금 일찍 이별을 준비해야 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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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도쿄(Tok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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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약해 졌다

치료를 못 받고 영양제만 맞고 계셨다. 며칠 전까지 하셨던 말을 못하고 의식도 없는 듯하였다.

처가 “어머니 둘째 아들 왔어요.” 하니 눈을 계속 맞추며 눈물이 눈가에 고인다.

무언가를 말하려고 하는데 “이제 왔니? 보고 싶었다.”하는 걸까? 가슴에 눈물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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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멜버른(Melbour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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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을 걱정하다

몇 일 전 보다 더 의식을 차리지 못한다. 처가“어머니 왔어요.”하니까 힘들게 말을 하려고 하시는데 “저녁은?”이라고 말하시는 거 같다.

항상 들르면 저녁은 하던 어머니 저녁 걱정을 하신다. “모레 올게요.”하니까 힘들게 오지 말라고 머리를 흔드신다.

이별의 끝자락에서도 자식을 걱정해주던 어머니가 나에게 있었다.

99


준비

시애틀(Seattle)

100


이별을 준비하다

연구 논문을 읽다 보니 사람이 삶에 대한 희망을 놓으면 면역기능이 급격히 약화된다고 한다.

어머니의 장 기능의 이상 항생제의 내성은 어머니는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모레 올게요.”하니까 머리를 흔드시면서 이별을 이야기 하였지만 나는 알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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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함

프랑크푸르트(Frankf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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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운해 하다

많이 힘들어하신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어머니 모습을 기억하고 싶어 사진을 찍었다.

몇 일 전에는 쳐다보았는데 오늘은 피하신다. 표정도 서운해 하는 것 같다.

말씀은 못하지만 이별을 준비하는 것을 아시는 거 같다.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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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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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wouldn’t be the same without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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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

우유니(Uy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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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 들리다

퇴근 후 병원에 들리니 어머니는 눈의 초점을 못 맞추시며. 목의 혈관이 숨 가쁘게 뛰고 있었다.

잠시 상태가 나쁜 것으로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와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어머니가 떠나실 거 같다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병원에 도착하니 편안한 모습으로 떠나신 상태였다. 이제는 어머니를 기억으로만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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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

레이캬비크(Reykjaví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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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려를 하다

최근엔 처가 나보다 어머니를 자주 만났다. 갑자기 변해가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처는 어머니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시험 문제도 진도에 맞추어 2개를 만들어 언제 어머니와의 이별을 하더러도 일정에 지장이 없도록 준비하였다.

나도 여러 일정이 있었다. 어머니는 이별의 시간도 자식의 일정에 맞추어 여러 일정을 차질 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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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

로스안데스(Los And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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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하다

작고 힘이 없던 어머니를 내가 힘이 되어 줄 수 있었는데 나는 외면하였다.

그래서는 안 되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으면 하는 후회가 남는다.

몇 달 전으로만 돌릴 수 있다면 추억을 많이 만들 수 있을 텐데 하는 이루어 질 수 없는 후회가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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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예루살렘(Jerusa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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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후 모습을 보다

어머니가 떠나가시고 병원에서 형식적인 절차가 진행되었다. 그 중 하나가 어머니가 맞는지 확인이다.

여러 차례 어머니의 얼굴을 다시 확인하는데 무척 편안한 모습이라 마음이 편하다.

나의 후회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려고 형식적인 마지막 절차를 나에게 부탁하신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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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

와이헤케(Waihe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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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니다

어머니가 떠나시고 어머니를 떠나 보내는 절차가 시작되었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경황이 없다.

소식을 전해 들은 친척들이 와서 자기 일처럼 도움을 준다. 며칠간 쪽 잠을 자면서

특히 우리 집에서 같이 살던 사촌 형들이 나서서 도와준다. 떠나면서도 어머니는 우리를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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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뉴욕(New Yo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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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 돌고 있다

어머니의 젊은 모습이 나온다. 잊혔던 어머니의 모습도 보인다. 참 건강하신 모습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른다. 사진 속의 어머니는 나이가 들어간다. 내가 느끼지 못했던 변화이다.

지난 4년간의 변화가 너무 빠르다. 갑자기 지팡이가 나오고 마르신다. 최근으로 올수록 변화는 너무 빨라 슬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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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

이스탄불(İstanb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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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과 이별하다

어머니의 얼굴을 마지막으로 보는 시간이다. 모두들 슬퍼하고 있다.

어머니와 많은 시간을 함께한 조카들의 슬픔이 크다. 우리, 소리, 세리

눈물이 흐른다. 이렇게 많은 정과 이별하시려면. 어머니도 힘드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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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리마(L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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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깊었다

어머니는 기독교를 믿으셨는데 항상 성경을 읽으며 즐거워했다. 외로움을 신앙에 의지하며 사셨던 거 같다.

떠나시기 몇 시간 전 말씀을 못하시던 어머니가 목사님의 예배에서 “아멘”을 몇 번 하셨단다.

어머니를 떠나 보내는 예배를 목사님이 진행한다. 어머니 모든 걱정 내려놓으시고 아프시지 마세요. 좋은 곳에서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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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

예루살렘(Jerusa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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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를 자랑하다

어머니의 모습을 떠나 보내는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더 이상 모습을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흐른다. 정이 많은 세리는 자리를 못 떠나고 지켜보고 있다.

어머니와 같은 교회에 다니신 분이 오더니 어머니가 평소 둘째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자랑하셨단다.

듣기가 마음이 편치 않고 죄송스럽다. 얼마나 자랑하실 게 없으셨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자랑을 더 만들어 드릴 수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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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아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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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smile, I 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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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스톡홀름(Stockhol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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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상이다

웃고 먹고 이야기한다. 잊으려고 노력하고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문득 쓸쓸히 노쇠한 몸으로 먼 곳을 바라보시던 사진 속의 어머니가 생각난다.

자식들이 준 마음의 짐을 지고 외롭게 앉아 계셨던 어머니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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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Fukuo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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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집을 보다

매달 얼마 되지 않는 용돈을 드리면 용돈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 추석이면 떡을 좋아한다고 떡을 박스로 해주셨다.

그때마다 나는 너무 많아서 너무 달아서 싫다고 하며 “어머니 용돈으로 원하는데 쓰세요.”하였다.

그래도 어머니는 추석마다 계속해서 왜 하시냐고 신경질적으로 말을 하곤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어머니의 떡이 그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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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오슬로(Os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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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도 가족이다

부모는 가족이 아니라고 한다. 나도 어머니를 가족에 포함하지 않았던 것 같다.

마음의 상처를 주고 도움이 필요한 어머니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어머니를 보내고 난 후에야 뒤늦게 알게 되었다. 어머니도 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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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감

호치민(Ho Chí Min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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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해줘

TV에서 자식에게 자신 있게 “무엇을 해줘;”하는 부모의 모습이 나온다. 어머니는? 하고 생각해보았다.

자식에게 해준 것이 없다고 생각하셨는지 무엇을 주려고 했지 무엇을 달라고 하지 않으셨다.

돈에 한이 있다고 하신 어머니 하고 싶은 것도 많았을 텐데 말씀이라도 하셨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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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

우유니(Uyu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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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소리를 듣고 싶다

의자에 앉아서 하늘을 보니 하늘이 파랗고 아름답다. 어머니는 어디에 있을까?

어머니가 계신다면 파란 하늘처럼 고통이 없는 곳에 계시겠지.

하늘을 보며 어머니하고 불러본다. 내가 만든 소리일까? 어머니의 목소리가 내 머리에 들리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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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예루살렘(Jerusal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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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인이 부럽다

방송에 어느 연예인이 나와서 외국에 일이 있으면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고 항상 부모님과 함께 한다고 한다.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몇 번 보내드린 것을 빼고는 어머니와 함께한 기억이 없다.

기독교를 믿으신 어머니에게 “건강하시면 이스라엘에 보내드릴게요.”했는데 지킬 수 없는 약속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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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리

오슬로(Osl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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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리가 크다

어머니가 머물렀던 곳에 가고 싶다. 그곳에 가면 계실 것 같다.

정신을 차린다. 그래도 가서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어머니가 있으면 마르신 손을 잡고 “엄마 죄송해요” 하며 펑펑 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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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

오클랜드(Auck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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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다가오다

추석이면 항상 형 집에 가서 어머니와 송편을 만들고 전을 부치고 식사를 하였다.

어머니와 이별 후 처음의 추석이 다가온다. 이번 추석에는 어떻게 할까? 생각하니 조금은 쓸쓸하고 외로워진다.

연결의 고리였던 어머니가 안 계시니 가족간의 거리도 멀어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처도 여행지를 알아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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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Pa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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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를 만나러 가다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 비가 조금씩 내리던 오후에 어머니에게 가려고 터미널로 갔다.

어머니와 너무 닮으신 분을 보고 눈길이 머문다. 옆에는 아버지처럼 체구가 큰 분이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돌아온 것 같은 착각을 잠시 하였다.

도착하여 주변을 정리하는데 마음이 편안하다. “어머니가 좋아한 두유는 사갔어?” 처가 물어본다. 두유를 사오는 걸 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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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

푼타아레나스(Punta Aren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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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만나다

몇 년 전에 한 백화점을 지나가고 있는데 누가 손을 잡는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 근무할 때 같이 근무한 선생님이었다. 너무도 일어나기 어려운 우연이다.

시간이 오래 지났는데도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서울의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리키고 있는데 목회를 하려고 한다고 하였다.

“비를 좋아하는 사람은”을 좋아했던 그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달의 마지막 날에 이별을 하였다. 상처가 아직 안 아물어서인지 그의 소식에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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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

오클랜드(Auck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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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가 남았다

가끔 어머니가 무척 보고 싶을 때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면 늦은 후회를 한다.

호스를 통해 음식을 드셨다면 어쩌면 어머니가 지금까지 계시지 않을까?

어머니가 계신다면 무엇인가를 조금이라도 더 해드릴 텐데 뒤늦은 후회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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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푸에르토몬트(Puerto Mont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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꺼내보다

잊고 있던 안타깝고 아픈 이야기를 가끔 꺼내본다.

처는 잊지 안타깝고 아픈 이야기를 왜 꺼내보냐고 한다.

안타까움과 아픔이 되살아나지만 오늘도 어머니의 이야기를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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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장

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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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를 못하다

처는 지난 통장을 모아두고 있었다. 가끔 나는 지난 통장을 정리하지 않는지 궁금하였다.

얼마 전 처로부터 통장을 거실에 펼쳐놓은 사진과 “개미같이 모았던 흔적 정리하려니 눈물 나려고” 문자가 왔다. 100개가 훨씬 넘었다.

버리지 말지 하니 “다시 있던 자리에” 문자가 왔다. 오래된 무생물을 정리하는데도 슬퍼하는데 더 오래한 어머니와의 이별의 슬픔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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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하면 바로 떠오르는 느낌이 사람마다 다른 마법의 단어라고 한다. 나에게는 어머니는 희생과 외로움 이었던 거 같다. 어머니가 보고 싶을 때는 어머니의 희생과 외로움 을 꺼내보며 어머니에 대한 생각에 잠긴다.

글속의 사진은

필자가 찍은 사진으로 어머니와 연결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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