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 입니다. 비밀동툰 / 사진. 글. beamil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 64, 65 / 사진. 글. @Ahopsi 영화로 읽는 시공간 - 아름다운 청춘 : 배우고 싶은 유년 동화 / 글. 곡주대비 회사옆 미술관 / 글. 강세기 詩詩劇劇 (시시극극) / 글. 뮤즈 여기 문학이 필요한시간 - 강신재 / 글. 고수진 송창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 그림. ㅈ양 글.박재현 아무런 ‘것’ 이야기 / 글. 그림. .Jooeny 놀고 먹고 그리고 / 그림. 김혜리 물질과 비물질 - 3.토마토 / 사진. 황은정 글. 김종소리 니 다리 내놔 / 질문. exxx 답. nightplanet 건축이 좋아 - 봄 그리고 ‘KIASMA’ / 글. 사진. aoikasa 젖 / 그림. 글. 두리 우울한 청춘 / 그림. 글. 철민 웹디자이너 생존 매뉴얼 - 창조의 생존 매뉴얼 / 글. 그림. 김성연 내가 어떻게 다이아몬드가 되었냐면... / 글. 올리브 사진 일기 / 사진. 글. 박민수 뼈그림 - 바다 코끼리의 음경뼈 / 글. 그림. 왼손이 독신자의 독서일기 - 체르노빌의 목소리 / 그림. 이다솜 글.권고마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 소개소 / 글. 신당동 파르한 부산오뎅 이야기 - 내 목소리가 들리니? / 글. 주용 국가란 무엇일까? - 3회 / 글. exxx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행복에 대하여 / 글. exxx 바다비 일요 시극장 광고 뒷 표지 / 글. 그림. 지인
살면서 몇 번씩 무릎이 꺾이는지는 사람마다 다르 지만 원래 무릎이란게 꺾이는 게 정상입니다. 안꺾 이면 안돼요. 그러니까 좌절을 경험하면 일단 한숨 자고 생각하 는 습관을 들입시다. 잠이란 것이 스트레스를 줄여 주는 효과도 있으니까요. 이달에는 4개의 신 코너가 생겼습니다. 놀고 먹고 그리고, 송창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시 시극극, 내가 어떻게 다이아몬드가 되었냐면 이렇 게 4코너입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입니다. 이제 편집을 마치고 커피 몇 잔을 마시고 나면 4월 이 되어 있을 겁니다. 봄이 오는 것을 놓치지 마시고 봄이 가는 것을 아쉬 어 마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모든 계절에 곁에 있겠습니다. 월간이리 exxx 드림.
편집: 이훈보 공식트위터 @postyri
표지: 이주용, 한지인
비 밀 동물툰 Animal Toon by BEAMIL
중부 매일 www.jbnews.com 문영호 기자 (moon05@iasan.com) 아산시 둔포면에 위치한 사설동물보호소 천사원이 개체수 증가로 보호소 기능을 상실해 대책 마련이 시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 일부 후원자들은 자신들이 보내는 후원물품이 동물들에게 제때 지급되지 않을 뿐아니라 운영자가 동물을 학대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 을 제기하고 있다. 천사원은 할머니 한 명이 10여년 전부터 유기동물을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인근 시에서 발생하는 유기동물들이 보내지고 개를 버리고 가는 경우도 잇따르고 있다. 여기에다 자체 번식이 이뤄지면서 개체수가 급증해 현재는 500여 마리의 유기견을 사육하고 있는 등 수용 한계를 벗어나 보호소 기능을 상실했으나 정부 지원없이 민간 후원에만 의존해 행정 당국의 지원이 절실한 상황이다. 더욱이 토지주가 지난해 11월까지 시설을 비워줄 것을 요구해 일부 자원봉사자들이 보호견들을 안락사 시키는 것이 아니냐며 걱정하고 있다. 후원자 S씨는 “할머니 한분이 돌보기에는 보호소의 동물 개체수가 너무 많아 유기견들이 제대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오히려 학대 받고 있 다는 느낌”이라며 “후원물품을 택배로 보낸 뒤 봉사활동때 확인해 보면 후원물품이 동물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 다”고 했다. 또한 자원봉사자들이 2주에 한번씩 찾아와 청소하고 사료를 후원하는 등 헌신적으로 노력하고 있지만 환경 개선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동물 보호소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다. 자원봉사자 A씨는 “유기견들이 계속해서 들어오는 이상 후원자와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에도 한계가 있어 동물보호소의 기능을 회복하기에는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으로 유기동물들의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제도 개선이 우선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현장을 확인한 결과 여러가지 문제가 많은 것을 확인했지만 정부 지원없이 민간에서 운영하는 시설에 대해 행정당국이 쉽사리 나설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며”자원봉사자들도 시설을 폐쇄하기보다는 동물들이 보호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으로 알고 있으며 다각적 으로 해결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복한 도시 행 이 물 동 .kr) 6일 사람과 ’(뉴스1 www.news1 2 , 시 울 회 ‘서 청책 토론 2월 23일 방송된 TV 동물농장 에서는 사 람의 보살핌을 전혀 받지 못하고 방치된 개 들의 모습이 공개됐다. 견사 관리자와 견주 는 강아지를 키워 분양일을 계획했지만 예 상보다 높은 경비를 감당하지 못했다. 결국 개들은 방치됐고 동족 육식장면까지 포착 됐다. 견주의 방치로 더이상 생명이 죽어가 는 것을 볼 수 없었던 동물보호단체는 개들
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이와 함께 새로 운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한 한명숙 국 회의원은 “동물의 생명이 위협받는 긴급 한 경우에는 누구든지 동물을 구조해서 학 대자로부터 격리를 할 수 있게 했다. 상습 적으로 동물을 학대하는 경우에도 소유권 을 제한하거나 박탈할 수 있게 했다”고 설명했다. (www.newsen.com 하수정 기자)
입양하실 분을 찾습니다. 한남동에서 외국인 커플이 키우다 버리고 떠난 고 양이입니다. 작년 7월부터 거리 생활 을 했다는데 여전히 사람을 잘 따릅니 다. 수컷으로 추정되고 나이는 한 살 가 량, ... 아직 중성화수술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혹시 입양하실 분이 있으시다면 병원비의 절반으로 입양비를 대신할까 해요. 나머지 절반은 제가 부담하구요. via Instagram @kokoon (leebido@hanmail.net)
* 동물에 대한 인식과 의식수준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따뜻한 명제들을 중시하는 박원순 서울시장님
의 부임을 비롯해, 동물단체와 활동가들이 더욱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님과 활동가들이 ‘사람과 동물이 행복한 도시’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어 생중계 하기도 하고, 동물학대자는 청원 사이트를 통해 알리고 정당한 처벌을 위한 서명을 받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유기동물은 발생하며 어떤 지역구에서는 유기견을 잡아들여 살처분하기도 한다. 그야말로 시대역행이다. 지금 한국은 동물을 사람과 다를 바 없는 생명으로, 동물권을 가진 존중받아야 하는 가족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고 이러한 시대적 발상을 이해하는 자와 하지 않는 자가 극단적으로 부딪히는 과도기가 아닐까? 그러나 사실 이렇게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도 쉽지가 않기는 한데, 반려동물이라는 단어를 쓰며 몇 년씩 함께 살았던 동물도 결국 사랑받던 가족의 손에 의해서 버려지기 때문이다. 외국인 부부가 이사를 가며 동네에 풀어놓은 고양이는 외로이 두 계절을 버텼고 이제 봄을 맞이하려 한다. 도시 사람들은 강아지에게 땅 끝 마을의 바다를 보여주고는 결국 너는 혼자 살아가야 한다며 등을 떠밀기도 하고. 이번 만화는 영화 인사이드 르윈 의 장면을 각색했다. 이 뮤지션은 우연히 만나게 되어 위로 아닌 위로를 받은 고양이를 자신의 사정때문에 결국 유기(또는 방치?)하 게 된다. 어차피 모든 걸 잃은 상황에서 이 노란 고양이를 포기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사랑스런 생명과 함께 할 때 얻는 것이 많다.
’ yn Davis Inside Llw 주의 ;) ‘ 화 영 ** 음악 포일러 습니다. 스 를 각색했
* 2014년에는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나름 위트있게 , 뜨끔하게 쓰고 그린 짧은 만화를 기고합니다. 팩트를 뒷받침하는 기사와 간단한 의견도 함께입니다. 많이 공감해주세요. 제보도 감사합니다. beamil22@gmail.com
영화로 보는 시공간 _ 글. 곡주대비 hjkanjy@gmail.com
19금 특집 III Lust och fägring stor (아름다운 청춘): 배우고 싶은 유년 동화.
고3 수능시험이 5일인가 남은 때 었던 걸로 기억한다. 신문에서 ‘아름다운 청춘’이라는 (제목 번역은 정말 최악의 수 준이지만) 영화의 광고를 보고 한나절 동안 가슴이 두근 거렸다. 오로지 봐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시험 생각 따위는 스쳐 지나가지도 않았던 것 같다. 일단 미성년자 관람 불가니 약간의 변장(?) 이 필요했다. 지금은 온데간데 없지만 그 때는 꽤 어려 보이는 얼굴이라 그냥 가면 입장 불허 일것이 너무 뻔했다. 화장품 가게에 들러 가장 나이 들어 보이는 그 당시 김지호가 선전했던 스모키 어쩌고라는 이름의 밤색빛이 도는 립스틱을 사서 덧칠하듯 발랐다. 상영시간이 10 시 언저리 었던 걸로 기억한다. 롯데리아에 들러 새우버거를 사서 가방에 찔러 넣었다. 시간 맞춰 극장에 도착해 만석 인 극장 (당시 씨네코아) 정 가운데 자리를 잡고 립스틱을 지우며 영화를 기다렸다. 아.. 그리고는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 그 순간을 지금도 떠올리면 자꾸 눈물이 고인다. 가슴이 벅차서 그냥 그대로 죽으 면 축복일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한밤의 극장 냄새. 관객들의 숨소리. 그리고 이 영화. 아름다운 청춘. 엘비라 마디간이라는 영화를 본 독자들은 많을 것이다. 이 영화는 엘비라 마디간을 만든 베르히만 감독과 양대산맥 이라 할 수 있는 스웨덴 감독, 보 비더버그 (Bo Widerberg)의 영화다. 15세 소년이 학교에서 새로 부임한 선생님을 만 나 성과 사랑에 눈뜨게 되는 지금 보면 그다지 파격적일 것도 없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때 고3이었던 나 에겐 너무나도 (그 때 정서로는 다른이들에게도 마찬가지 였을 듯 하다) 충격적인 소재였고 유럽인들의 별난 (?) 성윤 리에 대해 놀라게 만든 영화이기도 했다. 주인공 스티그는 학교에서 보게 된 비올라라는 여선생을 짝사랑 하게 된다. 사춘기 소년은 저돌적으로 선생님에게 구 애하고 자신의 결혼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던 비올라는 소년과 관계를 맺는다. 그 이후로 둘은 서로를 스스럼 없이 찾는 관계가 되고 비올라는 점점 스티그에게 빠져들지만 그는 서서히 이런 부적절한 관계에 염증을 느끼고 평범한 15세 소 년으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분노한 비올라는 그를 유급시키고, 친구들이 졸업하는 날 그는 강당으로 찾아가 그녀 앞에 서, 그리고 모든 동기들 앞에서 지퍼를 내리고 그녀를 공개적으로 조롱하며 강당을 떠난다. 영화는 이 둘의 로맨스와 섹스를 골자로 하고는 있지만 저변에 “전쟁”이라는 굵은 선을 배치한다. 2차 세계 대전시중 고통 받는 사람들의 일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로맨틱하고 파격적인 사건을 영화화 한 것이다. 전쟁터로 사랑하는 형을 보내는 스티그는 사춘기의 일탈을, 전쟁의 가혹함을 금기된 섹스로 치유받는 것 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그는 결 국 치유를 받았는가. 훔쳐 먹는 사과 처럼 짜릿했던 비올라의 아파트 에서의 비밀 섹스가 그에게 평온을 선사했는가. 그가 결국 비올라에게 유급을 당하는 것은 스티그가 권력투쟁의 집약체인 전쟁에 형을 보내야 했고 이어 다시 한번 권 력의 희생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가 이 영화 속에서 성장하며 배우는 것은 연상의 여자와의 사랑도, 처음 눈뜨게 되는 아름다운 성도 아닌 결국 권력의 폐해 이고 음란함을 탐닉했던 탐욕스러운 자신의 발견일 것이다. 필자가 가장 광분했던 점은 이 영화의 얼토당토 않는 제목이었다. 한국제목인 아름다운 청춘은 이 영화에서 존재 하지 않는다. 원 제는Lust och fägring stor 즉 음란과 아름다움이란 뜻이다. 영화의 말미에서 소년이 자신의 penis 를 강당에서 공 개하듯 노출하는 것은 권력 (phallic symbol: 남근적인 상징에서) 에 대한 비웃음이자 음란 (남성의 성기) 에 탐닉했 던 자신에 대한 모욕 일 것이다. 내 열아홉 감성을 가장 흔들었던 것은 (영화를 보기전) 신문 광고에 등장 했던 영화 포스터 였다. 푸른색이 주는 묘한 퇴폐성… 그리고 가터벨트.. 지금은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가 되어 이 정도에 가슴이 뛰거나 눈이 혼란스럽진 않지만 지 금도 영화 전반에 걸쳐 흩뿌려지듯 등장하는 헨델의 lascia chio pianga (울게 하소서) 는 아직도 그 시절 포스터를 보 았을 때 만큼이나 가슴을 뛰게 한다.
회사 옆 미술관 글. 강세기
3월에는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한가지 큰 이벤트가 있으니, 바 로 3월 30일 11시에 시작하는 “아트스타 코리아”라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이 기존에 예술을 다뤘던 방송과 극명하게 차별성을 보이 는 점은 서바이벌 오디션 형식을 도입하여 아티스트 중에서 옥석을 가리겠다는 점이다.
서바이벌 오디션 식의 편성은 이제 어느정도 식상할 법하지만, 일단
이제껏 한번도 ‘감히’ 건드리지 못했던(시청률 때문이던 이유없는 계 급 의식인지 그 이유는 모르겠지만) 미술분야에도 대중문화의 프레임 이 끼워진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다. 그래서 방송이 어떻게 진행될 지 궁금한 마음이 크다. 그래서 보고 싶다. 이 프로그램을 두고 말들은 참 많다.
가타부타 말은 많아도 일단 미 술은 지금보다 훨씬 대중들에
게 노출이 많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 프로그램 은 일단 환영이다. 통계수치를 찾아보다가 포기했지만 모르긴 몰라도 우리나라의 인구 1인당
미술관 비율은 그렇게 좋아하 는 “OECD 통계”에서 아래에서
찾는게 쉽지 않을까 모르겠다. 물론 입시미술 학원수는 위에 서 찾고 말이다(워워~ 흥분 가 라 앉히고).
사람들은 예술이 경쟁의 대상이 될 법하냐느니, 자유분방히 분출해
아무튼 미술 애호가의 수가 지
능하냐느니,
각하는 나로서는 일단 TV가 미
야할 예술가들의 끼를 일부 심사위원의 기준으로 재단하는 것이 가
거대 자본과 미디어로 인해 예술의 숭고함은 간 곳없고 진흙탕 싸움이
되지나 않을지 하는 점 등을 우려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세간의 우려 에 BS 한마디를 날려주고 싶다(얼마전에 미국 10대한테 배운 미국 속 어이다. 궁금하시면 Urban Dictionary를 검색해보시라)
금보다 훨씬 많아야 한다고 생 술을 다룬다는 사실이 반갑기 그지없다. 게다가 방영시간이 11시다.
요즘은
프라임타임
시간대가 되어버린 11시에 바
로 미술프로가 떡하니 자리잡 고 있다니 말이다. 얼마 있지도
않는 미술 프로들도 새벽 1,2시로 밀려버려 한번
뭐니뭐니해도 이 프로를 통해 가장 기대되는 점은
의 단비다.
계의 취향이다. 작품을 놓고 심사위원들의 의견 교
보려면 새벽잠 참아가면서 봐야했던 내게는 가뭄
오디션 프로그램을 자주 보는 개인적 취향도 반영 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케이팝스타, 도전 슈퍼모델은 본방사수는 못해도
재방송이라도 챙겨보는 편인데, 직장인을 넘어 사 회생활을 하는 누구에게나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처음에는 주목을 받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
의 한계를 넘지 못하거나, 자신에게 주어진 미션 에 집중하지 못하는 참가자들은 여지없이 탈락의 위기에 몰린다는 점은 모든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것을 내게 적용해보면 불쑥불쑥 주어지는 미션
역시 심사위원을 통해 가늠하게 될 우리나라 미술 환을 거쳐 수작을 가려내는 기본적인 구성은 기존 미술상의 심사방식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
다. 지금까지는 어려운 단어들로 가득찬 1장 분량 의 심사위원장의 후기로만 접해왔던 작품 선정의
과정과 심사위원과 멘토의 시각 그대로가 날 것 상 태로 전해질 것이겠지.
물론 제작자의 개입은 불가피하겠지만 어쨌건 미
술 심사 과정에 참예 한다는 것만 해도 이 프로가 주는 재미는 상당할 것이다. 게다가 심사위원과 멘
토는 (내 짧은 생각에) 메인스트림의 핵심인 김선 정 큐레이터를 비롯해 반이정 평론가와 월간 아티
클의 홍경한 편집장 등 일단 미술 각계에서 일가견 을 이루는 플레이어들이 모였다.
을 하나라도 허투루 건너뛰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
마치 케이팝 스타의 양현석, 박진영, 유희열이 댄
령이나 크고작은 갈등상황이나, 바지가랑이 붙잡
한 평이 은근히 조화를 이뤄 재미를 주는 것처럼,
을 다시금 하게 된다. 예를 들면 작게는 상사의 명 고 뒤집어지는 아이의 땡깡 앞에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말리지 않을 테야 하는 그런 화이팅이라 고나 할까.
미술가들에게는 어떤 미션이 주어질지 모르겠지
만, 공공미술과 같이 불특정 다수를 상대해야하는 도전, 스폰서 기업과의 콜라보나 경쟁자들과의 공
스, 노래, 작곡 등 각자의 장기대로 늘어놓는 신랄 멘토와 심사위원진을 보니 구성에 많은 정성을 쏟 았다는 느낌을 준다.
아. 이 프로를 통해 정작 데미언 허스트와 같은 아 트스타가 기대되지 않느냐고? 5~10년후라면 모 를까 지금은 아니올시다라는 생각이다.
동작업 같은 미션이 주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
갤러리스트나 큐레이터의 한 눈에 들어 혜성같이
지를 분출시킬지, 그 과정이 매우 궁금하다.
까하는 신의 아들일 뿐 미술은 철저히 한발짝 정진
는 이런 미션 앞에서 미술가들은 어떻게 창작 에너
미술품이 트럭타고 포장되기 직전에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는 생생한 얘기가 나 올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어느정도 갈등구도는 좀
나올 것으로 예상되기도 한다. 사회적으로 이슈를
나타난 스타는 그야말로 백년에 한두명 나올까 말 하며 트랙 레코드를 쌓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보 수적인 세계이기 때문에 이 프로 하나로 스타? 수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 탑 3가 지금 뭐하는지 찾아 보시라. 그러면 답은 나올 것이다.
불러 일으킬만한 특이한 이력을 가진 도전자가 나
그저 다른 작가들보다 징하나 더 박힌 스파이크를
느정도는 용서해주리라. 그 와중에도 미술판 안에
가자들에게 응원을 보낼 뿐이다.
와서 프로그램을 산으로 끌고가기도 하겠지만 어 서 노는 것일 테니.
신어서 조금 더 빨리 치고 나가 전시를 하게된 참 <끝>
詩詩劇劇 시
시
극
극
<아주 예술적인 질투> 글. 뮤즈 조각가 미켈란젤로의 걸작인 조각상 “피에타”에는 믿거나 말거나인 일화가 있다. (후세에 이르러 그럴싸하게 붙여졌을지도 모르나 전후 상황으로 미루어보아 그럴 수도 있었겠군, 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일화이다.) 당시 25세이던 미켈란젤로는 성당의 주문을 받아 피에타를 조각했는데, 조각한 이의 이름이 새겨지지 않은 피에타가 당대 유명 조각가였던 이의 작품으로 화자 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것을 질투한 미켈란젤로는 밤이 되자 성당으로 찾아가 성모 마리아의 가슴부근 띠에 자신의 이름을 직접 새기기에 이르렀다고. 철저한 탐미주의로 만들어낸 작품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 것을 후회하며 다시는 조각상에 이름을 새기지 않았다던, 한 예술가의 “질투”에 관한 일화. 이처럼 질투는 예술 안팎의 사건들을 끊임없이 생성하고, 나아가서는 작품을 아우르는 하나의 “키워드”가 되기도 한다. 특히 문학을 통해 들여다본 “질투”란 단순한 인간의 감정으로 대변되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아주 매운 맛을 생각해 보자. 필자는 우리의 혀가 단순한 미각으로 느끼는 것이 아닌, 한 단계 위의 통각으로 받아들이는 그 특별한 맛처럼, 필자는 문학속의 질투란 “매운 맛” 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쓴 맛보다 아리게 만들고, 신 맛보다 가슴 쓸어내리도록 만드는 이상한 감정.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말 그대로 “질투”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학교에서, 직장에서, 인간관계 속에서 마주치는 그 놈을 잘 이겨내기에 앞서 질투를 읽어내야 할 시대인 것이다. 문학 속에서 질투는 어떤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 지 살펴보자. (1) 밑바닥에서 나를 끌어올리는 힘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허무주의적 시인이자 그의 이름만으로도 묵직한 슬픔을 안겨주는 쓸쓸한 시인 기 형도에게 질투란 스스로를 환기시키는 힘이자 어둠 속에서 나를 확인시켜주는 고해 성사이다. 기형도의 대표적인 시 <질투는 나의 힘>은 인간적인, 인간이기에 행해지는 “질투”를 고백한다. 남의 스펙과 자신을 비교하게 되는 일, 더 잘 살아보고자 발버둥 치는 일, 누군가의 성공에 배가 아픈 일, 그것이 현대인의 삶이다. 때문에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질투와 나란히 걷는 것이다. 인간은 생각하고 있음과 동시에 질투한다. “내가 더 잘되고 싶은 마음” 을 욕할 수만은 없는 것은 그 마음이 우리의 삶을 움직이기 때문이라고 시인은 그의 언어로 말한다. 질투는 사람을 일으키는 힘이다. 시인으로서의 천재성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생전 자신의 이름으로 낸 시집 한 권 내지 못하고 우리의 곁을 떠난 기 형도는 그 태생부터가 질투로 뭉쳐진 시인이다. 때문에 그의 시는 질투에서 만들어지고, 뱉어지고, 다시 삼켜진다. 오늘날까지 수많은 문학인들의 가슴으로 읽히고 있는 그 모든 시들을 만들어내게 한 힘의 이름은 바로 “질투”. 그렇기에 우리는 오늘도, 내일도 “지루할 틈” 없이 “질투”해야 할 것이다.
(2) 사랑하는 만큼 질투한다. 로브그리예- 질투 끊임없이 사랑하는 아내를 관찰하는 나, 이웃집의 남자와 아닌 듯 주고받는 묘한 눈길, 교외로 나가 외박을 하고 오는 두 사람, 집안에서 눈치를 살피는 것 같은 행동의 변화, 이웃집 여자의 끊임없는 몸살. 로브그리예의 반(反) 소설적 작품인 “질투”는 밑바닥까지 사랑하는 이의 침묵하는 질투가 얼마나 매서운 바람을 불러 오는지를 다루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야기의 실질적인 주인공이며 자신의 아내를 관찰하는 자인 남자는 작품 속에서 스스로를 주인공의 반열에 올려놓는 행동은 일절 제한다. 오직 카메라 아이즈의 역할로만 등장해, 아내와 이웃집 남자의 일상을 한 컷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무섭게 관찰하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이 소설은 질투와 침묵의 한끝 차이를 담고 있다. 그의 눈에 담기는 아내와 이웃집 남자의 밀애는 결코 평범한 것은 아니지만, “질투”의 맥락에서 이 작품이 남다른 매력과 교훈을 안겨주는 까닭은 사랑 앞에서만은 주인공으로서 등장하고 싶었던 남자의 질투가 끈질기고 인간적인 묘사로 표현되어 있다는 점이다. 사랑하는 한 용서하듯이, 사랑하는 한 질투할 수밖에 없었음을 써내려가는 남자의 이야기. 기존 소설의 안정된 구조를 탈피하고 뒤틀린 묘사 방식을 자랑하는 이 복잡한 소설 속에서 우리는 “질투”를 향해 나아가는 남자의 사랑싸움을 엿보며 탄식하고 같이 주먹을 쥘 것이다.
(3) 동경과 분노로 발현되어 나아가는 죽음의 또 다른 이름. 장 쥬네 - 하녀들 <하녀들>은 당시 프랑스 사회에 큰 충격을 안긴 이른바 빠뺑자매 사건에서 소재를 구해 재해석 해놓은 장 쥬네의 희곡으로, 두 명의 하녀가 자신들이 증오하는 마담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마담의 정부인 무슈를 경찰에 고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마담이 없는 빈 집에서, 극단으로 치닫는 연극 놀이를 시작하는 두 하녀는 서로 역할을 바꿔가며 “마담”과 “하녀”로 분하고, 마담을 죽이기 위한 예비 살인을 연습하기에 이른다. 개인적 해석에 의한 희곡의 <하녀들> 묘미는 인물들의 관계망을 적확하게 엮어 나가는데 질투가 한 몫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마담의 화려한 드레스와 의상실, 사랑하는 남자 무슈와 립스틱. 연극 놀이를 통해 발현되는 마담에 대한 무의식적 동경, 자신들이 누리지 못하는 아름다움과 사치를 당연하게 누리는 마담을 향한 자매들의 질투는 여자로서 여자에게 대항하는 미의 투쟁이자 여자의 본능적 질투심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늙어버린 마담이 앳된 하녀들을 대하는 이중적 태도역시 그런 맥락에서 발생하는 여성적 질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마담을 증오하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마담의 삶을 동경하는 동생을 향해 동성애적 오브제로 나타나는 언니의 질투심은 “이 잔인한 세상에 남겨진 자신과 동생의 자매애”를 잃고 싶지 않은, 집착인 동시에 모성적 표현이다. 질투에 대항하는 질투, 질투를 향하는 질투, <하녀들 >은 “여자이기에 누리고 싶고” “여자이기에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 블랙코미디와 이야기를 다룬다. 예술의 최종적인 지향점은 언제나 인간이다. 각박한 세상일수록 예술을 보고, 듣고, 느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계산적으로는 풀어나갈 수 없는 인간 사회에 대한 해답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예기치 못한 순간 가슴을 치고 올라오는 질투를, 여러 방식으로 그려내고 있는 문학들을 통해 이겨내듯이. 예전부터 문학은 끊임없이 인간의 다양한 질투를 조명해왔다. 필자가 소개한 작품 이외에도 좋은 작품들이 많다. 어떤 방법으로도 “질투”와 안녕할 수 없었던 이들은 좋은 문학 작품을 읽으며 화해하길 바라는 바이다. 그렇다면 이제, “질투”에 잠 못 이루는 청춘들 모두 안녕하길.
여기, 문학이 필요한 시간
강신재
그에게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벌써 3월이다. 월간이리를 오프라인으로 받아 볼 때 쯤 경칩이거나 경칩을 앞두고 있을 것이다. 개구리도 뛰어 나온다는 경칩, 아직은 코끝이 시린 바람이지만 곧 있으면 목련의 꽃망울도 오동통하게 여물 것이고 목련이 피고 질 때쯤이면 봄의 하이라이트 벚꽃도 피겠지. 3월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것. 바로 개학식이다. 중, 고등학교가
?
센세~ 후훗
개학이 되었다. 나는 학생들이 교복 입은 게 참 싱그럽고 예쁘다. 그래서 학생들에게 교복입고 오라고 그렇게 소리를 지른다. 고등학생들은 내게 오덕이라며 뭐라고 하는데 도대체 머리에 음란마귀들만 들어서 아주 선생님의 풋풋한 감성을 이해해 주지 못한다. 흐허헝
편집자는 왜 어디서 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걸까... 고3 주영아 고맙다. ->
3월호의 시작은 현대소설 강신재의 「젊은 느티나무」이다. 역시 봄 하면 아직은 덜 익은 풋풋한 청춘이 떠오르기 때문에 골라 보았다. 어딘가 위태로워 보이며 어쩐지 당돌해 보이고, 한편으로 그 젊음을 본인들도 아는지 얄밉기 그지없다. 그래, 그런 청춘 말이다. 봄에 피는 꽃들만 봐도 얼마나 당돌하고 얄미운지. 고작 3주 안에 모든 걸 뽐내고, 사라지니 더 애가 타고, 조금이라도 더 보려고 우리들은 안달나지 않는가. 그런 모습을 담고 있는 현대 소설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갑자기 내가 늙어 보이는 그런 느낌은 무엇인지……. 하앍)
이 작품은 풋풋한 청춘의 사랑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사랑은 사회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사랑이었다. 안 그래도 쉽지 않은, 싱그럽지만 날카로운 청춘의 사랑을 고된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줄거리는 대략 이렇다. 소설은 여주인공 숙희의 시점으로 시작된다. 민감한 감수성을 지닌 18세 소녀에게 ‘현규’라는 청년은 그녀에게 뜨겁고 설레게 다가온다.
그에게는 언제나 비누 냄새가 난다.
아니, 그렇지는 않다. 언제나라고는 할 수 없다. 그가 학교에서 돌아와 욕실로 뛰어가서 물을 뒤집어쓰고 나오는 때면 비누 냄새가 난다. 나는 책상 앞에 돌 아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더라도 그가 가까이 오는 것을―그의 표정이나 기분까지라도 넉넉히 미리 알 아차릴 수 있다. 티이샤쓰로 갈아입은 그는 성큼성큼 내 방으로 걸어 들어와 아무렇게나 안락의자에 주저앉든가, 창가에 팔 꿈치를 집고 서면서 나에게 빙긋 웃어 보인다. [무얼 해?] 대개 이런 소리를 던진다. 그런 때에 그에게서 비누 냄새가 난다. 그리고 나는 나에게 가장 슬프고 괴로운 시간이 다가온 것을 깨닫는 다. 엷은 비누의 향료와 함께 가슴속으로 저릿한 것이 퍼져 나간다―이런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소설의 첫 시작은 기가 막히면서 한편으로 마음을 아릿하게 만든다. 소녀에게 다가온 현규는 비누 향이었다. 숙희는 그를 잊을 수 없다. 잊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이 비누 향은 그녀의 코끝을 간질이고 그를 기억하는 첫 계기이자 그녀의 가슴을 요동치게 한다. 그러나 그녀는 그를 사랑할 수 없다. 설레어도 안 된다. 그는 숙희의 의붓오빠다. 가까워 질 수 없는 두 사람의 거리.
그녀의 어머니는 서울 모 대학 교수와 재결합을 하게 되는데 현규가 바로 새 아버지의 아들이었다. 22살의 잘생긴 현규, 숙희는 어느새 그를 오빠라고 부르기 힘들어짐을 느낀다.
[뭘 해?] 하고, 한 마디를 던져 놓고는 그는 으레 눈을 좀 더 커다랗게 뜨면서 내 얼굴을 건너다본다. 그 눈동자는 내 표정을 살피려는 것 같기도 하고 어쩌면 그보다도, 나에게 쾌활하게 웃고 떠들라고 권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또 어쩌면 단순히 그 자신의 명랑한 기분을 나타내고 있는 것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어느 편일까?
나는 나의 슬픔과 괴롬과 있는 대로의 지혜를 일점에 응집시켜 이 순간 그의 눈 속을 응시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알고 싶은 것이다. 그의 눈 속에 과연 내가 무엇으로 비치는가? <오빠.> 그는 나에게는 그런 명칭을 가진 사람이었다. <오빠.> 그것은 나에게 있어 무리와 부조리의 상징 같은 어휘이다.
그 무리와 부조리에 얽힌 존재가 나다.
그러나 현규도 마찬가지 이었다. 18살의 숙희는 미스 ‘E’여고에 당선될 만큼 출중한 외모에 고향에서부터 인정받던 재원이다. 숙희가 친구인 지수에게 고백편지를 받고 그것을 현규가 발견하며 발끈하자 숙희는 오 히려 뛸 뜻이 기뻐한다. 현규도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숙희 이 계집애, 일부러 러브레터 를 현규 보란 듯이 놔 둔 것은 아닐까? 흥, 여우같은..... 필자도 이런 부분을 본 받아야 하는데..)
어찌되었던 그들은 연인의 마음을 느끼기 시작한다. 그러나 숙희의 어머니가 새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가게 되자 현규와 숙희는 단 둘이 집에 있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숙희는 고민 끝에 홀로 시골로 내려간다. 그 리고 어느 날 현규가 찾아온다. 그들은 서로 사랑하는 감정을 확인하고 먼 훗날을 약속하며 각자 현재의 길 을 가기로 다짐한다. [그래, 숙희, 그 나무를 놓지 말어. 놓지 말고 내 말을 들어.] 그는 자기도 한두 걸음 뒤로 물러서면서 말하였다. 그 얼굴에는 무언지 참담한 것이 있었다. [숙희는 돌아와서 학교에 가야 해. 무엇이고 다 잊고 공부를 해야 해. 나도 그렇게 할 작정이니까. 우리는 헤 어져 있어야 해. 헤어져서 공부해야 해. 어머니가 떠나시려면 비용도 들 테니까 집은 남 빌려주자고 말씀드 렸어. 내가 갈 곳도 생각해 놓고. 숙희도 어머니 친구 댁에 가 있으면 될 거야. 그렇게 헤어져 있어야 하지만, 숙희, 우리에겐 길이 없는 것은 아니야. 내 말을 알아 들어줄까?] 그는 두 발로 땅을 꾹 딛고 서서 말하였다. 나는 느티나무를 붙들고 가늘게 떨고 있었다. [그때 숲속에서의 일은 우리에게는 어찌할 수도 없는 진실이었다. 우리는 이 일을 부정하고는 살아가지도 못할 게다. 우리는 만나기 위해서 헤어지는 것이야. 우리에겐 길이 없지 않어. 외국엘 가든지------] 그는 부르쥔 손등으로 얼굴을 닦았다. [내 말을 알어 줄까, 숙희?] 나는 눈물을 그득 담고 끄덕여 보였다. 내 살은 끝나 버린 것이 아니었다. 나는 그를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 이었다. (중략)
바람이 마주 불었다. 나는 젊은 느티나무를 안고 웃고 있었다. 펑펑 울면서 온 하늘로 퍼져 가는 웃음을 웃고 있었다. 아아, 나는 그를 더 사랑하여도 되는 것이었다.
훗날 이 들이 사랑을 이루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현실 속에서 충실한 젊은 두 남녀, 젊고 푸른 느티나무. 그것으로 족하다. 문득, 지나간 옛사랑이 떠오른다. 그의 외모, 키, 목소리, 이런 것은 생각이 나질 않는데 확실히 기억나는 것은 참 귀여웠던 그의 짧고 굵은 손가락과 웃을 때 없어지는 눈이었다. 사랑은 이렇게나 사소하다.
청춘! 두근거리는 그 이름, 난 교복 입은 학생들이 참 예쁘고, 아이돌도 좋고, 꽃도 좋고, 원피스도 좋고, 맥주도 좋다. 아 맥주는 빼야지. 나 아직 청춘인가 보다. 아직은 풋풋한가 보다. 그래서 좀 서툰가보다. 사랑과 사람에.
다음 이 시간에는 고전 시 정극인의 상춘곡을 살펴보겠다. 계속 봄 특집인 것이다.
지각하면 보강이다.
글, 고수진(gomin19@hanmail.net)
, 잘 알지도 못하면 을 식 서 송창
- 첫 만남
그렇다. 나는 송창식빠다. 어렸을 때부터 그랬던 건 아니다. 내가 어렸을 땐 새롭게 등장한 댄스 음악과 눈물 없이도 들을 수 있는 발라드가 득세하던 시절이었다. 송창식, 하면 팔 벌리며 가나다라마바사 부르는 젊은 가수의 모창이 떠오르곤 했다. 땀내 풍기던 중학생 시절, 나의 불알친구는 송 씨라는 이유로 너희 아빠 송창식 아이가? 혹은 두꺼운 목소리의 가나다라마바사 같은 말과 노래로 놀림을 받았다. 애들은 좋다고 낄낄댔다. (그런데 참 놀라운 건, 그 친구 삼촌의 성함이 정말 송창식이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성인이 되어 그의 삼촌 집에 우연히 들르게 되었는데, 삼촌은 인연이 닿아 윤형주를 초대한 적이 있으며 윤형주 역시 자신의 친구랑 똑같은 이름은 평생 처음 본다고 했단다.) 나도 물론 웃었다.
집으로 돌아오면 나는 묵직한 소니 시디플레이어에 비틀즈를 넣어 듣곤 했다. 사실 억지 춘향으로 간 피아노 학원이나 길보드 차트의 최신 유행 테이프를 가끔 사 듣던 것과 다르게 음악이라는 것을 제대로 향유해 본 게 이때가 처음이었다. 특히 비틀즈에 흥미를 느끼며 <1>을 수백 번 듣고서 차차 정규 앨범까지 섭렵, 미공개 트랙을 모은 <앤쏠로지>마저 모으며 폴과 존의 목소리에 시간을 빼앗겼다. 이후, 대학생이 되어서는 스티비 원더와 카펜터스, 이한철을 즐겼고 제대 후엔 브릿 팝과 마이클 잭슨과 마빈 게이, 사라 본을 반겨 들었다.
시간이 흘러 대학 4학년이 되었다. 교보문고 핫트랙에서 일하던 사촌누나가 종종 샘플 시디를 줬는데, 어느 날인가 흰색 양복 차림의 진지한 가수가 70년대스럽게 담긴 앨범을 내밀었다. 귀한 거라고 했다. 거기엔 심플하게 ’SONG CHANG SIK’이라고만 적혀 있었다. 현재보다는 과거 음악에 늘 귀가 움찔했기에 (또 당시엔 산울림과 이문세를 듣던 때라) 무척이나 고마운 마음으로 받았다. 하지만 구닥다리 노트북으로 리핑할 생각을 하니 한숨부터 나왔고, 학교생활에 바쁘다는 핑계로 여차저차 청취할 기회를 조금씩 미뤘다.
그러던 어느 날, 티브이에 그와 그의 친구들이 출연했다. 놀러와 ‘세시봉’ 특집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괴짜라고 했고, 그의 말과 행동에 나 역시 매력을 느꼈다. 무엇보다 노래가 압권이었다. 특히 함춘호의 기타와 합주해 부른 <한번쯤>은 정말 굉장했다. 그는 근엄한 소리꾼이 되었다가도 어느새 어린아이가 되어 만득이 인형 만지듯 노래를 마음대로 주물럭거렸다. 무아지경에 빠지면서도 결국 웃고 마는 얼굴이 흥을 더했다. 물론 흥의 중심엔 리드미컬한 스트로크가 있었다. 얼마나 들뜨게 만드는지 손가락 끝이 절로 움직였다. 기타를 한번 쳐보고 싶다는 충동도 함께 흔들거렸다. 풍부한 성량에서 나오는 우렁찬 목소리도 빼놓을 수 없었다. 맑고 곧은 목소리는 격정적인 멜로디에 입혀져 속을 시원하게 뚫고 갔다.
선물 받은 앨범을 얼른 열어 아이폰에 담았다. 정확히 그때부터였다. 아, 그것은 새로운 세상이었다. 중독적인 구석이 있었다. 레논 앤 매카트니처럼 그 역시 스스로 곡을 만들어냈다는 데 더 마음이 끌렸는지도 모르겠다. 시공간적 여유가 되면 항상 그의 노래를 틀었다. 샤워할 때도 그의 목소리는 재생되어 심심한 공간을 꽉 울려 줬다. 이미 그때는 그의 앨범을 모두 다운 받았을 때였다.
레논 앤 매카트니 때와 달리 나의 애정은 잠시도 식지 않았다. 첫 장편소설에도 그의 이야기를 넣었을 정도니. 그해 말엔 한 대학교 아트센터에서 열렸던 ‘세시봉 콘서트’를 관람했다. 맨 앞줄에 앉았던 나는 처음으로 그와 악수할 수 있었다. 묘한 기분이었다. 비현실적이었다면 과장일까. 해가 바뀌어도 마찬가지였다. 평소 턴테이블에 음악을 얹어 듣던 나는 그의 엘피를 더 적극적으로 모았다.(지금까지 그와 관련된 엘피를 총 스물여섯 장 소장하고 있다. 영국산 로저스 스피커에서 나오는 그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다른 일을 할 수 없을 때가 많다.) 여름에 열린 ‘가인과 특별한 만남’이란 콘서트에선 막 출판된 내 책을 줄 수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 한 시간 정도는 화장실에 앉아 무엇이든 읽는다기에 기대가 커, 내 책을 읽었을까, 상상해 봤다. 그 여부에 관해선 나중에 다루려고 한다.
해가 지나 그의 노래를 부담 없이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미사리에 있던 그의 전용 라이브 카페가 리모델링을 마치고 <쏭아>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연 것이다. 대구에서 살다 서울의 한 출판사에 취직한 나는 더없이 좋은 기회라 여기며 간간이 활동하던 다음 카페 ‘창식사랑 TWO’에도 자주 기웃거렸고 한 달에 한두 번 그곳에서 열리는 모임에 참석했다. 모두 ‘영이야’, ‘한불휘’, ‘수림’, ‘해달’ 같은 닉네임을 실명 대신 사용했다. 낯선 정경이었다. 촌스럽게 내가 이름을 닉네임으로 했던 터라 더 그랬다. 나는 꾸준히 모임에
참석했다. 비슷한 열정을 가진, 혹은 나에겐 없는 추억까지 가진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렇게 둘러앉아 공연을 감상한 뒤엔 간혹 무대에서 내려온 선생님을 초대해 노래의 뒷이야기나 특별한 일화를 들었는데 그게 또 하나의 재미였다. 그러다 어느새 나는 젊다는 이유로 운영진이 되었다.
출판사 편집부에서 어김없이 월간지를 만들던 어느 날, 편집장이 말했다. “이번에 인터뷰 코너 재현 씨가 좋아하는 송창식 선생님으로 해볼까요?” 가끔 쏭아에서 선생님에게 인터뷰에 관한 언질을 하기도 했고 허락도 받은 상태였다. 난 환하게 웃었다. 거기다 원래 선배가 담당하던 꼭지를 특별히 내가 취재를 하는 게 어떠냐고 권하기까지 했다.
심한 독감에 걸린 선생님과 무사히 얘기를 나누고 무사히 글을 써 무사히 책에 실었다. 다만, 책엔 모든 내용을 담을 순 없었다. 독자층을 생각해 대체로 잘 아는 얘기를 해야 했다.
그의 앨범을 듣기 시작한 후로 그를 직접 만나 인터뷰하기까지. 참 많이 듣고 보고 씹고 맛봤다. 그래도 아직은 그를 잘 모르겠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의 얘기를 조금 해보려 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대개 그를 괴짜 정도로 여기기 때문이다. 기존에 알던 것과 카페에서 그가 들려준 여담, 책에 다 담지 못한 이야기 등 그의 세계에 대해 무겁지 않게 그려 내가 느낀 즐거움을 함께 누렸으면 한다. 어쩌면 고루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우리 세대에 더 재밌을지도 모르겠다.
말이 길었다. 프롤로그라 생각해 주길.
박재현(소설가)
아무런 ‘것’ 이야기 잠에 쉽게 들 수 없었다 고한다.. 다음날 아침 그녀가 가장 J : 필자 A : [가명].20대.여
좋아하는 옷과 양말을 꺼내 입었다. 그리고 나서 그에게 건내줄 자료를 담은 usb를 챙기는데 계속 뭔가 아쉬웠다. 조금은 더 여자로 보이고 싶은 마음에 집에 있는 예쁜 악세사리를 몽땅 꺼내어 늘어놓곤 어느 것이 가장 여자로
그녀와 나는 비슷한 걸 공부하고 있는 대학동기로 20대의
보일까 생각하며 usb 고리에 요리조리 대보았다.너무
풋풋한 서로의 모습을 아는 사이다.나눈 시간에 비해 사는
의식하고 싶지도 않았고,그냥 주기도 싫었다.그녀는
곳이 멀었고,시간이 자주 맞질 않아 딱히 서로에 대해
신경쓴 듯 안 쓴 듯 조그마한 인형 열쇠고리를 usb에 걸어
안부를 물을 수 없었던 요즘, 오랜만에 카페에서 만나
놓곤 챙겨 집으로 나섰다..」
수다를 떨자고 약속을 했었다.나는 조금 일찍 도착한 그녀에게 먼저 카페로 들어가있으라고 했다.조금 풀린
J 여기서 ‘열쇠고리’가 그 열쇠고리 맞죠?
날씨가 좋아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날 같았다. 기분 좋게 카페 문을 열고 들어가 그녀를 보고 반가운 손짓을
A 맞아요~ 사실 지금 생각해보면 별 것도 아닌데, 엄청
했다.너무 간만에 만났던지라 반가워 이것 저것 이야기를
신경 썼었어요. 아 참고로 사실 그렇게 예쁘지도 귀엽지도
하자 금방 시간이 흘러갔다.
않은 고릴라 모양의 인형 열쇠고리였는데, 그땐 그게 나름 귀여워 보일 거라고 생각했었어요.열쇠고리 그림보고
J 근데 날씨 진짜 많이 풀렸다~ 마치 우리 처음 만났던
너무 웃진마요~ 좀 더 그냥 티내게 여성스러운 걸 챙길 걸
날 같아.그때 첫 수업때 말야. 날씨가 엄청 좋아서 밖에
지금도 후회되네요.아무튼 그렇게 열쇠고리 까지 딱 챙기고
놀러가고 싶었던 날이었는데...
학교가서 오전에 수업을 듣는데, 화장이 망가질까봐
A 오 맞아맞아. 아 그때 진짜 풋풋했는데.......이런 저런
하루종일 거울을 들여다보고 괜히 옷도 마음에 안 들고,
일도 있었고...
애꿎은 ‘열쇠고리’만 만지작만지작 거리면서 만날 시간을
J 이런 저런 일........그래서 말인데 나 날씨도 좋은김에 뭐
꼬박 기다렸죠.
하나 물어봐도돼? 요즘 인터뷰 하고 있는건데 해줄거지? A 나 인터뷰 울렁증 있는데 ...뭐 오랜만에 만났겠다.
J 그렇게 떨렸어요?
해봐해봐 J 짝사랑에 대해 물어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A 아무렇지 않은 약속인데…저도 지금 생각하면 바보
A 엇 존댓말로 하는거야...? 음 .. 물론이죠 물어봐요.
같을 정도로 왜 그렇게 떨었나 몰라. 열쇠고리도 너무
J 제가 항상 하는 질문인데,그 사람 하면 떠오르는 인상
귀엽지 않나요 ? 그러고 나서 그 사람 만나러 걸어가는데
깊었던 ‘것’ 들이 있나요? 물건이나 공간이나 그야 말로
usb 하나 주러 가는 길이 왜 그렇게 길어 보이던지..
모든 ‘것’들이요.
복도는 길고 오후니까 노을 빛에 물들어 복도 끝으로
A 음….아 ! 있어요.. ( 이때 그녀는 부끄러운 듯 살짝 콧등을
빛이 들어오는데 천국으로 가는 기분 같기도 하고, 그러고
문질렀다) .. 열쇠고리요. 굳이 좀 특별하게 보이자면 예뻐
나서 어디냐고 전화를 하는데 컬러링이 또 마침 제가 제일
보이고 싶었던 ‘열쇠고리’랄까?
좋아하는 노랜거에요. 막 운명같기도 하구.. J 어. 이렇게 전개되면 짝사랑이 아니였던거 아네요?
예뻐 보이고 싶었던 ‘열쇠고리’ A 근데 정말 바보 같았던 건 이 뒤 부터에요. 막상 만나선 「후배가 선배에게 흔히 붙일 수 있는 뻔한 구실을 만들어
단 한마디로 못 꺼냈어요. 물건을 주고나서 그 사람이
그를 만나기로 했다. 그녀는 그에게 줄 자료가 있다며 전날
같이 조금 걷자 라고 말을 걸었는데 멍하게 친구들 봐야
연락을 했었고, 답지 않게 들떠 있었다. 그녀는 그날따라
한다며 급하게 그냥 나왔지 뭐에요. 그렇게 헐레벌떡
나와서 저는 사람 심장이 그렇게 쿵쾅거릴 수 있다는 걸
끌고 다녀야 했어요. 심지어 아직도 가끔씩 후회되는
처음 알았어요. 최근에 <어바웃 타임> 영화 보셨어요?
순간들이 있으니까.마치 그때 온전히 주지 못했던 마음
J 네 ~봤어요! 시간 왔다갔다하는 영화!
같아요. 지금 저에게 고스란히 돌아온 그 ‘열쇠고리’가. 처음이라서 서툴렀고 숨기고 싶으면서도 예뻐보이고
A 맞아요.맞아요. 그 영화보고 돌려버리고 싶은 순간으로
싶었던 후회스럽기도 하지만 귀여웠던 그때의 모습을
주저 없이 떠올렸던 순간이 그 순간이에요.정말 슬로우
떠올려주게도 하구요.
모션으로 시간이 흘러가서 1분이 마치 10분 같았어요. 너무 긴장해서.. 그렇게 예뻐 보이고 싶어서 나름 신경 쓴
J 아 ..풋풋하네요. 짝사랑인데 첫 짝사랑 경험이라..
열쇠고리 usb를 건내주고 허무하게 집으로 돌아왔어요.
어려운 질문에 대답해주셔서 감사해요! 야 근데 너 그 선배 좋아했었다고??????
J 그리고 ? 어떻게 됐어요?
A 인터뷰 끝~ 더 이상 묻지말기~~
A 우습게도 막상 그 사람한테 돌려받는 과정은 생각보다
인터뷰가 끝나고나서 우린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
시시했어요. 전 끝까지 좋아하는 티를 내지 못했고.. 사실
집으로 돌아갔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다 알고 있었을 수도 있지만, 그러고 그걸 돌려봤는데
풋풋했던 친구의 짝사랑이야기처럼 나도 그랬던 적이
그날 정말 마음이 아팠어요.. 진짜 마음이..제가 그러고
있었던가 생각했다. 어렵지 않게 나도 그랬던 기억을
싶어서가 아니라 그 앞에서면 아무 말도 못하는 제 자신도
떠올릴 수 있었다. 첫 ‘짝’사랑.너무나 서툴렀기에 후회도
싫었고..
많이 되고 바보같은 짓 도 많이 했었던 그때, 그리고 그때를 떠올릴 수 있는 아무런 ‘것’은 이따금씩 서툴러서
J 음 근데 사실 그럼 그때 입고 나간 옷이 됐을 수도 있고,
더 예쁘고 귀여웠던 그때에 우리를 생각하게 만들고
또 다른 짝사랑의 경험에서 나온 다른 물건 일수도 있는데
미소짓게 만들게 했다.
왜 그 날 그 물건인가요?
글. Jooeny
A 사실,그때 제가 처음으로 누군갈 좋아해서 의식했었던 경험이었거든요. 그 전에 딱히 이렇다 할 연애경험도 없었고, 20대가 되면 한눈에 반하는 멋진 사랑을 꿈꾸고 있었는데 막상 그때의 저는 무료했었던 것 같아요. 근데 그때 그를 좋아하게 됐고, 그게 제가 지나치게 무료했기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을 만큼 절절하게 좋아했었어요. 유난히 관계에서는 모든 것이 서툴렀었고, 그의 마음을 얻는데 실패했기 때문에 짝사랑이었던 것이 아니라, 나는 실패한 짝사랑을 했다고 생각했죠. 후회 없는 짝사랑이지 못했으니까.. 그에게 솔직하지 못했던건 내가 나를 지독하게 방어하려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항상 내가 다치기가 두려워 내것 중 어느 하나 그에게 온전히 걸지 못했거든요. 친구가 짝사랑에 눈물 콧물 쏟아가며 자기를 내던지고나서 미련없이 돌아서는 모습을 볼 때, 전 그 당돌함이 참 부러웠고요, 정작 몸을 사리던 저는 눈물 한 방울 쏟지 않았지만 훨씬 오랜 시간 그를 질질
*재밌는 일&프로젝트를 하시는 사연있는 새로운 분들과의 컨텍 언제나 환영합니다.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의 이야기가 들렸다. “걔, 게이래. 알고 있었어?” 옆 테이블에서 이야기한 ‘걔’는 나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를 떠올리니 그가 게이라는 사 실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그럴 법했다. 그리곤 불현 듯 토마토가 떠올랐다. 언젠가 사람들 사이에서 토마토가 야채라는 사실이 자주 언급되곤 했었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서 들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나는 토마토가 야채라는 사실이 별로 흥미롭지 않았 다. 과일이든 야채든 어차피 토마토는 토마토니까.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꽤 흥미롭 게 받아들였다. 몇몇 사람들은 반복해서 그 이야기하곤 했다. 그런데 그게 대체 뭐 그렇게 대단 한 일이라고 그렇게들 얘기를 했던 것일까? 어차피 토마토가 야채든 과일이든 간에 먹는 데는 아 무 상관없지 않나? 내겐 토마토의 정체성처럼, 그의 성정체성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토마토가 야채든 과일이든 토마토는 토마토고, 그가 여자를 좋아하든 남자를 좋아하든 그는 그니까. “진짜? 어쩐지 그럴 것 같더라.” “넌 그거 어디서 들었어?” “걔가 직접 말해줬어.” 국에 밥을 말고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었다. 그리곤 식판을 들고 일어나 다른 테이블로 자리를 옮 겼다. 더 이상 옆 테이블의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그는 내 동기와 동거를 하고 있었다. 동기는 어느 모로 보나 전형적인 남자였다. 센스 없는 옷차림 에, 면도는 일주일에 한 번이나 할까? 축구와 농구를 좋아하고, 위닝일레븐을 좋아했다. 생각해보 니 그도 동기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센스 없는 옷차림은 동기에게 배운 것 같았고, 면도를 매일 매일 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축구를 비롯한 모든 운동을 좋아했고, 게임이라면 밥을 먹다가 도 패드를 잡을 정도였다. 그렇지만 동기와는 조금 다른 느낌이 있었다. 어딘가 섬세한 구석이 있 었다. 이를 테면 짜장면을 먹을 때 면을 조금씩만 집어서 먹었고, 손톱은 늘 말끔하게 깎고 다녔 고, 사뿐사뿐 걸어다녔다. 그렇지만 섬세함은 누구든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섬세함 이 게이들만의 특징은 아니라는 말이다. 더욱이 모든 게이들이 섬세한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나 는 학생식당에서 그가 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왠지는 모르겠지만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가 게이든, 바이든, 나와는 상관없었고, 그렇기에 관심이 생기지도 않았지만, 내가 그 이야기 를 자연스레 받아들인 이유가 무엇인지는 궁금했다. 나는 굉장히 무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남들이 뭘 하든 관심을 갖지 않고, 내가 하는 일에만 관 심을 갖는다. 보고 들은 것들을 곧잘 기억하는 편이지만 그것들을 가지고 깊이 생각하진 않는다. 축구나 농구처럼 함께 하는 팀 운동보다는 탁구나 캐치볼처럼 1대 1로 하는 운동을 좋아한다. 게 임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고전 RPG, 특히 파이널 판타지나 드래곤 퀘스트는 무척 좋 아한다. 사회성이 조금 떨어지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리에서 동떨어져 생활하는 것은 아니다. 사 람들과는 적당히 어울리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야 피곤한 일이 덜 생기니까. 물론 나도 가끔은 사 람들과 함께 술을 마시기도 한다. 어쩌면 이런 나를 두고 누군가는 이상한 놈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마치 토마토가 야채인 것이 신 기한 일이고, 그가 게이인 것이 “정말?”이라고 되물을 만큼 별난 일인 것처럼, 내가 무심한 것 이 사람들에겐 이상한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니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서는데 누군가 내 팔을 잡았다. 뒤돌아보니 그 가 서있었다. “선배.” “응?” “혹시 시간 괜찮으시면 오늘 저녁에 저희 집 놀러오지 않으실래요?” 그가 우물거리며 말했다. “왜?” “오늘 저희 학번 친구들이랑 선배 동기 분들이랑 같이 술 마시기로 했거든요.” “별로.” “별다른 약속 없으시면 같이 한잔해요.” “그럴까?” “네.” “그런데, 아까 식당에서 들었는데. 너 게이야?” “네?” 그가 당황했는지 주춤거리며 되물었다. “너 게이냐고.” “네.” 그가 머뭇거리다 말했다. “근데 네가 게이 티를 내고 다녔었나?” “네?” “네가 게이 티를 냈냐고.” “아니요. 일부러 그러진 않는데요.” “그런데 왜 네가 게이인 게 나는 자연스럽게 느껴지지?” “글쎄요.” “알겠어. 아무튼 이따 저녁에 갈게.” “네. 꼭 오세요.” 그가 인문사회대학 건물 쪽으로 걸어가고, 나는 식당 앞에 멍하니 서서 그가 식당 어디에 있었 는지 기억해보려 했다. 하지만 기억이 나질 않았다. 그를 식당에서 보지 못한 것 같았다. 그럼 밥 을 먹으러 식당에 막 들어왔다가 나를 발견했던 걸까? 그건 아니다. 그랬다면 다시 식당으로 들 어갔겠지. 그는 식당에 다시 들어가지 않고, 다른 쪽으로 갔다. 그럼 나를 보고 일부러 온 건가? 굳이 나를 술자리에 초대한 이유는 뭘까? 이쯤까지 생각하다 생각을 마무리 짓고 도서관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수업 전까지 비는 시간 에 차분한 분위기의 소설을 읽고 싶었다. 천천히 걸으며 날씨를 살폈다. 확실히 3월은 3월인 것 같았다. 화창한 게 곧 벚꽃이 필 것 같았다. 나는 추위가 가시고 점차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벚꽃 생각이 난다. 마치 그가 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토마토를 떠올린 것처럼 자연스럽게. 나는 지갑을 꺼내 학생증을 챙겼다. 그리곤 무슨 소설을 읽으면 좋을까, 생각하기 시작했다.
- 물질과 비물질 3. 토마토 <끝>
탈주하는 필진 발목잡는 인터뷰 부제: “니다리 내놔”
주셨어요. 어릴 때 살 던 집 생각도
에게 다가갈 수 있지만, 돈을 주고
난다고 하시고, 나중에 자신이 어릴
사온 책이 아니기에 쉽고 부담 없
때 살았던 집 이야기를 본인 블로그
이 버려지는 것이 또 무가지의 운
에 올려주셨는데 내가 쓴 글이 누군
명이라 생각해요. 그 와중에 버려지
가에게 추억을 떠올리거나 글을 쓰
지 않고 누군가의 책장 한구석, 책
게 만드는 ‘작용’을 했다는 데에 상
상 위 어딘가를 차지하고 있다면 살
당히 고무되었던 것 같아요. 그동안
아남을 수 있었던 나름의 이유가 있
은 혼자 쓰고 혼자만 보는 살풀이
는 거고, 월간이리가 저에게는 그런
같은 자족형 블로그였는데 반응을
무가지 입니다.
받은 건 처음이라 그 때 ‘누가 내 글 을 읽으면 어떨까?’ ‘내 글도 남들이 읽을 만한 글인가?’ 하는 호기심이 한참 마감 스트레스로 고군분투하고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월간 이
있는
리에 메일을 보내봤어요.
편집장에게
헤헤
거리는
6. 연재란 무엇일까 ? ‘마감 호르몬’이라는 게 있는 것 같
즐거운 얼굴로 말을 거는 이가
아요. 마감이 다가오면서 마감 호르
있었으니,
몬이 나오기 시작하면 심각한 감정
지난달
늪과
같은
월간이리로부터 탈주를 성공한 이
3. 편집장은 어땠나 ?
였다. 어찌나 행복해 보이는지 그
변화를 겪었어요. 초코렛이나 고열 량 음식들도 엄청나게 땡기고, 친구
꼴을 두고 볼 수가 없어 또 다른
원래 천성이 그러신 건지, 월간 이
의 별 거 아닌 말에 짜증도 막 나
마감을 선사하기로 했다. 이름하여
리 편집장을 3년째 하면서 그리 되
고, 글도 안 쓰면서 압박감에 약속
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편집장님은
은 괜히 취소하고 키보드 언저리를
보살 내지는 천사에요.
떠나지 못해요. 쓸 데 없이 머리에
탈주하는 필진 발목잡기 프로젝트:
들어오지도 않을 남의 글을 엄청 읽
“니다리 내놔!”
고, 좌절하고, 다신 글 쓴다고 까불 4. 연재를 끝낸 마음 ?
1. 먼저 인사말 및 자기 소개 ! 안녕하세요. 야행성입니다. 고삐 풀린 망아지 같은 인생을 30년 째 살아오고 있습니다.
짜가 닥쳐서 의자에 앉아 있으면 꾸 폐경을 맞은 중년 여성의 마음이 이
역꾸역 그래도 쓰게 되더라구요. 그
런 것일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연재
렇게 다 써서 편집장님께 이메일을
중에는 그렇게 매달 다가오는 마감
보내고 나면 리셋한 것처럼 세상이
이 고통이었는데도 끝나고 나니 편
다시 행복해지고. 아 마감이 아니라
하면서도 허하고, 여유로우면서도
연재란 무엇이냐고 물으셨구나.
무료하네요. 2. 연재를 결심하게 된 계기는 ? 5. 무가지란 무엇일까 ? 블로그에 최초의 집 이야기를 올렸 었는데 트친분께서 글이 좋다고 해
지 말아야지 자책하고. 그러다가 날
공짜라서 쉽고 부담 없이 사람들
7. 연재를 통해 얻고 잃은 것이 있
8. 마지막으로 이게 과연 남에게 추
9. 월간이리 험담 추가분
다면?
천해 줄만한 일이었나
잃은 거 라면 ‘나 글 좀 쓰는 듯. 데
한 달에 하나씩 적어도 편집장님 한
안 좋은 이야기 할 게 없는데, 왜
헷’ 하던 자만심을 잃었구요. 얻은
명에게는 읽힐 글을 쓴다는 건 일
자꾸 안 좋은 이야기를 하라는 걸
건 제가 원래 뭔가 일을 시작하거나
종의 성실함을 요구하는 일이니까
까. 편집장님은 마조히스트가 아닐
일단 저지르는 데는 굉장히 재능이
저 같이 게으르고 실행력이 부족한
까요.
있는데 비해서 마무리 짓는 일이 굉
사람에게 특히 추천해주고 싶어요.
장히 적은데 연재하면서 지금까지 살았던 집 이야기를 마쳤으니까 개
10. 남기고 싶은말
인적으로 상당히 큰 의미가 있어요. 아마 월간 이리에 안 보내고 혼자서
연재를 끝내고 평화를 찾았습니다.
썼으면 끝까지 다 못썼을 거에요.
피쓰~!
건축이 좋아. #7 ‘봄’… 그리고 ‘KIASMA’
aoikasa
벌써 7번째 글이다.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내 마음 속에 깊게 새겨진 건물들을 소개하는 글을 쓰는 건 어쩌면 지나온 시간의 감각을 되살려 다시 나 자신에게 각인시키는 일이었던 것 같다. 앞선 6개의 글을 신나게 쓰고 나니 유난히 이번 달은 무슨 건물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해야하는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일 단 반드시 ‘가 본’ 건물에 대해 쓰겠다는, 그리고 유명하건 안 하건 나 자신이 ‘감동을’ 받은 건물에 대 해 쓰겠다던, 그리고 나름대로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시대의 건축에 대해 쓰고자 하는 나름의 원칙을 지키고자 하다 보니 이 것도 저 것도 다 성에 차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었다. 겨우 대상을 선정하고 쓰기 시작했던 원고는 ‘저장하시겠습니까?’라는 친절한 컴퓨터의 물음에도 ‘아니요’를 눌러버린 무심함 으로 인해 사라져버렸고… 아무래도 대상을 잘못 골라 그런 일이 발생하였던 거 같다는 말도 안 되는 핑 계를 대며… 원고를 다시 시작해 본다.
‘시작’ ‘봄’ ‘3월’ 몇 가지 키워드를 늘어 놓고 그 동안 다녔던 건물들을 머리 속에 떠올려 본다. ‘시작의 설레임’, ‘봄의 상 큼함’ ‘3월의 햇살’을 닮은 건축은 무엇일까. 그 순간, 잊고 있었던 한 건축물이 떠올랐다. Steven Holl 이 디자인한 헬싱키의 미술관, ‘KIASMA’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핀란드 국립 현대 미술관의 이름인 KIASMA라는 이름은 핀란드어로 Chiasma(4분 염색체가 교차되는 X자 부분을 일컫는 단어이다.)이다. 대체 미술관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듯한 이 이름이 도대체 왜 미술관의 공식 명칭이 되었는가 싶지만, 사실 이는 Steven Holl이 1992년 핀란 드 국립현대미술관 현상설계에 출품할 때의 제목이었다. (현상설계 이 후 건물디자인도 다 바뀌어버리는 우리네 현실에서는 건축가의 처음 의도가 잘 드러나는 이름을 미술관의 공식 명칭으로 사용한다는 건 그 저 부럽게만 느껴진다.) 이 건물에 왜 Chiasma라는 이름을 붙였는지 에 대해서는 차차 이야기하도록 하고. 이 건물이 만들어진 1990년대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보도록 하자.
1992년 현상설계가 있었고, 이 현상설계에서 Steven Holl의 안이 당선된 이후 1996년 공사를 시작하여 1998 년 미술관이 개관하였으니, 이 건물은 1990년대에 걸쳐 탄생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응답하라’ 시리즈로 어느 덧 아련한 추억의 시대가 된 1990년대, 건축계의 1990년대 는 과연 어땠을까? 1920-30년대 모더니즘건축(혹은 국제 주 건축)의 전세계적 유행. 전쟁 이후 어쩌면 모더니즘 건 축이 옳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에서 시작된 1950~60 년대의 모더니즘 건축 벗어나기 시도들과 그 이후 등장한 1970-80년대의 포스트 모더니즘 건축. 그리고 1988년 해 체주의 건축 전시회 이후에는 해체주의 건축의 유행과 프 랭크 게리, 자하 하디드, 렘 쿨하스 등 전 세계를 기반으 로 활동하는 스타 건축가들의 활동이 두드러지게 나타났 다. 이어진 1990년대에는 1980년대까지 지속된 포스트모더니즘의 말많음(?)1에 지친 건축가들의 ‘모더 니즘으로의 회귀’(네오 모더니즘) 혹은 앞서 이야기한 해체주의 건축으로부터 시작된 ‘비선형 건축(수직 수평이 아닌 곡선의 건축)의 유행’과 건축의 ‘Globalization’과 ‘Localization’이 동시에 진행되었다. 특 히 1990년대 컴퓨터 기술의 무한한 발전은 건축에 있어서도 큰 변화를 가지고 왔는데, 1997년 프랭크 게리가 설계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같은 경우 새로운 컴퓨터 기술과 새로운 재료로 만들어낸 1990 년대 최고의 ‘스타’ 건축이 아니었던가 싶다. (이 외에도 수도 없이 많은 1990년대의 건축물들이 있지만 말이다.)
굳이 분류를 하자면, Steven Holl의 KIASMA는 1980년대에 등장한 현상학, Phenomenology 으로서 의 건축에 가깝다. 현상학이 무어냐를 설명하는 것은 너무 어려운 일이고, 건축에서 현상학이 중요하게 받아들여진 이유는 ‘장소’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것이었다. 그 동안 3차원의 공간, 그 공간의 순수성에 집중하던 건축이 그 건물이 어느 곳에 있어서 어떠한 빛을 받으며 어떠한 바람을 맞으며 서 있느냐, 그 곳에는 어떤 사람들이 어떤 문화를 가지고 어떠한 생활을 하느냐… 처럼 ‘공간’ 그 자체로서의 순수한 건축이 아닌 그 건물이 서 있는 땅과 하늘, 그리고 사람과의 ‘관계’를 더 중시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건 축에서 빛은 늘 중요한 요소였고, 사람 역시 늘 중요한 요소였지만, 현상학이 강조하는 포인트는 조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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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전반 모더니즘 건축은 미스 반 데어 로에가 말하듯 ‘Less is More’, 즉 장식을 최대한 배제하고 수평과 수 직으로 이루어진 기능에 충실한 듯하게 보이는 스타일의 건축을 지향했다면, 포스트 모더니즘 건축은 모더니즘 건축 이 장식을 배제하고 대중을 배제함으로써 잃어버린 ‘소통’의 기능을 회복시키고자 하는 데 그 큰 목적이 있었다. 따라 서 포스트 모더니스트들은 역사의 복구를 통해, 기억의 회복을 통해, 상징과 건축의 말하는 요소들을 통해 모더니즘 건축에 반하는 포스트 모더니즘 건축을 지향하였는데, 이는 때로는 너무 과해 많은 사람들을 다소 지치게 만드는 결 과를 가져오기도 하였다.
더 ‘감각적’이고 조금 더 ‘감성적’이다. 기계적으로 계산된 공간이 아닌 ‘우연’과 ‘사건’들이 만들어내는 장소에 조금 더 중점을 두고 있다고 하면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KIASMA로 다시 돌아가보자. KIASMA의 공식 홈페이지에는 이러한 글귀가 나온다.
“Kiasma
is much more than just a museum.”
KIASMA는 단순한 미술관이 아니라 그 이상이라는 이 자신감은 어디서부터 나온 것일까? ‘교차’라는 그 이름이 뜻하듯 KIASMA는 단순히 미술품을 전시하기 위한 장소만은 아닌 듯 하다. 이 곳은 다양한 청중 에 대응하여 다양한 사회적 이슈의 담론을 생산하는 장으로서의 미술관을 지향한다. 그 프로그램이 그 러하듯, 그 건축 역시 외부의 다소 차가워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내부는 빛으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을 보 이며, 내부에서는 램프가 계속하여 미술관 공간을 교차해 나가며 공간과 공간을 엮어 낸다. 외부에서는 유선형의 단순한 매스 하나로 이루어진 건물로 보이지만 역시 내부에서는 그 동선이 복잡하게 엮여 있다. 관람객들은 미술관의 다양한 전시와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감흥을 느끼지만, 이 건축이 만들어내는 경쾌 함 속에 발걸음을 옮기며 직접 그 건물을 경험하고 느끼게 된다.
(Image Source: Wikimedia Commons)
미술관 전체를 빛이 가득한 산책로로 만든 Steven Holl의 장기는 아마도 ‘빛’을 공간에 어떻게 스며들 게 하느냐 인 것 같다. 사실 그의 이러한 디자인 경향은 그가 프레젠테이션 툴로 사용하는 수채화 (화려 한 컴퓨터그래픽이 난무하는 요즘의 눈으로 보면 이러한 수채화는 너무나도 시적이고 아름답게만 느껴 진다.)에서도 드러난다. 빛을 산란시켜 벽에 투영시키고 그 것이 전체 공간에 스며들며 하나의 분위기를 완성하는 것이다.
(Image Source: Steven Holl, sketch, http://www.kiasma.fi/the-story-of-kiasma)
알바 알토의 나라, 핀란드에서 만난 Steven Holl의 KIASMA. 슬라이드 필름 몇 장에 남은 사진들과… 당시의 느낌을 적은 글을 그대로 옮기는 것으로, 나에겐 ‘설레 임’의 공간, ‘봄’과 같은 공간이었던 KIASMA를 소개하는 것을 마치려고 한다. 한국에도 2012년 성북동 에 대양역사관 갤러리를 Steven Holl이 설계하였지만, 아쉽게도 일반에 공개를 하지 않는 개인 주택이 라 들어가 볼 수는 없다. 언젠가 한 번 꼭 들어가 보길 소망하며… (혹은 언젠가 꼭 한 번 더 헬싱키의 KIASMA에 가 볼 기회가 있길 소망하며…)
KIASMA. 헬싱키의 현대미술관. 알토로 가득찬 핀란드에서 만난 또 하나의 걸작품 KIASMA 벨뷰미술관과 약간은 비슷한 느낌의 Steven Holl을 만날 수 있다.
그는 벨뷰에서와 마찬가지로 미술관을 빛으로 가득한 산책로로 만들어주었다. 벨뷰는 가보지 못하였지만 KIASMA를 보면 벨뷰가 너무나도 기대가 되곤 한다.
하얀벽과 그 벽을 타고 내려오는 빛, 미술관 내부를 가로지르는 램프들, 그리고 그 램프를 따라가며 만나게 되는 작은 즐거움들 경험을 디자인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겠구나 느끼게 해 주는 건물.
시간이 너무나도 촉박해 오랜 시간 즐기지는 못했지만 구석 구석 작은 공간들이 만들어 내는 경쾌한 경험들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특별히 사진에 찍힌 길을 떠나는 듯한 남자의 모습과 다락방과 같은 작은 공간에 기대어 책을 읽는 여자의 모습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기억되는 아름다운 모습 2002.07.
젖
그림: 젖은잡지 두리
우울한 청춘
글. 그림. 철민
Chapter 9 {창조}의 생존매뉴얼 별 볼 일 없는 스펙으로
1. 크리에이티브 [Creative]; 크리에이티브는 창조적이라는 의미와 동시에 크리에이티브 아티스트를 일컫는 말이다. 즉, 광고의 제작자로 디자이너, 일러스트레이터, 포토그래퍼, 카피라이터 등 폭넓게 창조적인 작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란 것. 더 크리에이티브라고 부를 때도 있다.
잘 다니던 4년제 대학을 때려치우고 서울로 상경해
2. 크리에이티브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를 살펴보면 일면적으로
발 빠르게 2년제 디자인 과를 졸업.
창조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른바 크리에이티브
막상 졸업하고 나니 받아주는데도 불러주는 곳도 없다.
아티스트라고 불리는 불특정 다수까지 내포한 개념이다.
그때부터 이 악물고 익힌 갖가지 처세술과 생존법을 이용해
그러므로 위의 직군에 속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든
첫 취직한 작은 회사에서 2년여 만에 팀장으로 승진했다.
창조라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앞으로 수주에 걸쳐 별 볼 일 없는 스펙으로 몸 건강히 살아남는 방법을 쓸 예정이다.
3. 새로운 회사로 이직한 첫 날, 내 책상 위에 올려진 삼각뿔 형태의
거의 모든 텍스트가 주관적 경험에 의거한 것이기에 관점에
명패에는 가독성 높은 서체로 디자인된 이름과 함께
따라 비판적 지점들이 상당 부분 형성될 여지가 크다.
‘Creative Designer’라는 직위가 쓰여있었다.
국내의 많고 많은 웹디자이너 중 하나의 개별적 사례로
그 삼각뿔은 일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모니터 위에서 나의 충실한
봐주시면 감사하겠다.
관찰자 노릇을 했다. 창작에 대한 의지가 꺾일 때쯤이면 되려 나 스스로 그 차가운 글귀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던 기억이 난다.
4. 지금 와서 당시의 시간들을 회상해보면 아찔한 부분이 없지 않다. 사흘 밤을 새고 눈 밑이 퀭해진 채 미팅 테이블에 앉은 디자이너들의 얼굴에는 초조함이 그득했다. 사람들은 많았지만, 새벽의 회의실은 조용했다. 후덥지근한 회의실에선 달아오를 때로 달아오른 에어컨만이 시끄럽게 입을 열어댈 뿐이었다. 기획자들은 식상한 눈빛으로 빔프로젝터에 흔들거리던 시안들을 흘깃거렸고 디자이너들은 이에 질세라 ‘사흘밤이나 샜다, 도대체 어쩌라고’라는 식의 분노와 야유가 마구 뒤섞인 후덥한 공기를 뿜어냈다.
그날의 새벽, 파토스로 가득찬 회의실 천장 위를 떠돌던 ‘크리에이티브’라는 유령이 혹시 존재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모두가 동시에 침묵했던 어색한 순간에 헤르메스가 아니라 유령이 왔다 간 것은 아니었을까?
5. 내가 디자인 회사에 갓 입사한 시절만 하더라도
9. 예술사에서 20세기는 혁명의 세기로 기록된다.
‘창조’나 ‘크리에이티브’따위의 말들에 지금정도의
이 혁명은 예술의 기호적 성격에 나타난 변화로 볼 수 있다.
수직적 위계감이 실려있지는 않았다.
예술이 도상-기호로서의 성격을 잃어버리자 소위 ‘추상’이라
오히려 그 말이 창작하는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불리는 새로운 유형의 회화가 등장한다.
있는 구심점처럼 여겨졌고 이내 쉽사리 신뢰하게 됐다.
이 회화는 더 이상 닮음을 통해 액자 밖의 대상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때의 크리에이티브는 분명 모두가 함께 도달하고자 했던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기호’이기를 그친 것은 아니다.
발견되지 않은 땅이었지 맹목적으로 추구되어야 할
그저 도상이 아닌 다른 것, 즉 지표나 상징으로 성격을 바꾸었을 뿐이다.
절대적 가치는 아니었다.
현대 회화 앞에서 대중이 느끼는 곤혹스러움은 여기서 비롯된다. 추상이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 대중은 그것을 도상으로 보고, 그 속에서
6. 감정노동 [emotional labor];
헛되이 재현된 사물을 찾으려 했다.
실제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는 무관하게 직무를 행해야 하는 감정적 노동을 감정노동이라 하며, 이러한 직종 종사자를 감정노동 종사자라고 칭함. 은행원, 승무원, 전화상담원처럼 직접 고객을 응대하면서 자신의 감정은 드러내지 않고 서비스해야 하는 직업 종사자들이 이에 해당한다. 배우가 연기하듯이 직업상 속내를 감춘 채 다른 얼굴 표정과 몸짓으로 손님을 대하는 직종으로, 보통 감정관리활동이 직무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10. 마르셸 뒤샹으로 대변되는 아방가르드는 기존의 예술언어에 대한 새로운 번역작업이었다. 뒤샹 이전의 예술언어가 대개 ‘유사성’에 입각한 형식이라면 그의 예술언어는 ‘반어법’이다. 뒤샹의 오브제 전략은 ‘자고로 미술관에는 유화로 채색된 풍부한 풍경화가 걸려 있어야 해’라고 하는 관습적 코드에 대한 공격이었던 셈이다.
11. 우리가 맹신하는 크리에이티브라는 개념 속에는 과연 편집증적으로 진실을 탐구하던 아방가르드 정신이 얼마만큼이나 7. 가끔 나는 내가 감정노동자라고 생각한다.
녹아들어 있을까.
그렇다고 항상 은행원처럼 웃어야 하는 스마일마스크증후군에 걸린 것은 아니다.
12. 새로운 프로젝트가 들어온다.
나는 매일 회사를 출근하는 문턱을 넘으면서부터 습관적으로
기획자들이 대강의 프로젝트 소개를 하고 디자이너들은
잘 웃지 않는 연습을 하게 되었고 내 안에 새로울 것이 전혀 없는
디자인 컨셉에 대한 러프한 아이디어를 테이블 위에 쏟아놓는다.
텅 빈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충만한것이 반짝인다는 느낌을
짧은 시간안에 꾸려진 팀은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온기를 나누고
연기해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회사를 퇴근하자마자 엄습해오던
이내 흩어져 각자의 업무에 착수하기 바쁘다. 대개 디자이너들의
뜻 모를 해방감에 ‘아 이런 게 아닌데’하는 자조 섞인 혼잣말을
최초 작업은 관련 자료를 수집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무심코 여기저기 토해내기도 했다.
억측인지 모르겠으나 디자이너들은 이 시간을 가장 좋아하는 것 같다. 자신의 개성에 맞게 수집된 이미지나 글귀들을 타인에게 전달할 때만큼
8. 크리에이티브마스크증후군?
자기다움을 유감없이 발현할 수 있는 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13. 디자이너들이 수집한 자료가 출력돼 책상 위에 펼쳐진다.
17. 결함을 배태한 구조 속에서 크리에이티브만을 강조하는
이때 수집된 자료들 사이에서 중첩되는 이미지들은
경향은 시각적 자극거리만을 생산할 뿐이다.
자연스레 병합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또한, 제시된 자료 중
이미 많은 동료 디자이너들은 창조의 샘이 말라버렸다는 것을
주제에서 많이 벗어나 있거나 자칫 의도를 왜곡할 수 있을법한
인식한지 오래며 업계 내에 만연한 패배의식 또한 어렵지 않게
자료들 역시 제거된다.
감지할 수 있다.
‘불필요해 보이는 자료’들이 차가운 이성에 의해 검열되고 끝까지
이미지 과잉시대를 사는 현재, 클라이언트에게 어떤 디자이너가
살아남은 매끈한 자료들을 기반으로 한 두 번째 리서치가 시작되는데
독창적 이미지로만 자신의 의도를 전달하려는 생각에서 나는
대게 2차 리서치는 실질적인 제작에 기반을 둔 것이기에
까마득한 한계를 느꼈다.
‘디비컷’이나 ‘FWA’같은류의 사이트에서 파악된 최신 트렌드가
매체의 혼성 조합과 참신한 사용자 경험 같은 디자인 외적 부분들과의
반영되어 있으면 좋다.
긴밀한 관계성을 구축해야만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사실은 이제 누구나 알고 있는 기본상식이 된 지 오래다.
14. 2차 리서치 이후 모인 자료들에서 하나의 일관된 문법을 읽을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보편성’이다.
18. 오늘날만큼 여러 형태의 매체를 넘나들 수 있는 디자인의
풀리지 않는 아이러니는 매번 프로젝트는 새로이 시작되는데
일관성이 강조되는 시기도 없는듯 하다.
리서치되는 자료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그래서인지 웹관련 디자이너들은 몇 해전까지만 해도 큰 골칫거리가
갑자기 옆집 사는 사람이 문을 드르륵 열며
아니었던 디자인 가이드작업에 열을 올리게 되었다.
‘그럴 거면 매번 시간 들여가며 리서치는 왜 합니까?’라고
디자인 가이드작업이란 여러 매체에서 최적의 디자인이
내게 소리친다. 그러면 나는
시연될 수 있게끔 꼼꼼히 치수나 기능 등을 명시해 개발자에게
‘예열하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넘기는 일종의 문서화 작업인데 비디자이너들이 믿을지 모르겠지만
라고 궁색하게 대답할 것이다.
가이드 작업에 사용되는 시간이 디자인에 천착하는 시간보다 더 많이 소모된다.
15. 우리의 깔때기 끝에 모인 자료들이 안전빵이 된 이유에
이미 미디어에 의해 이상화된 프로젝트 런웨이형 디자이너와
대한 궁핍한 변명 몇 가지.
실무 디자이너 사이의 거리는 좁히기 어려울 만큼 멀어진 듯 하다.
1) 프로토타입 제작의 시간적 여유 부족. 2) 참조 자료가 최대한 실현 가능한 범위내에서 수집되어야 함. 3) 리서치되는 사이트들의 독창성 부족. 4) 너무 급진적인것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
16. 위의 네 가지 변명은 실제로 내가 기획자들 앞에서 용감하게 내뱉은 것도 있고 누구에게서 들은 것도 있다. 저 4가지 변명 속에는 공통된 하나의 맥락이 존재한다. 바로 즉각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구조적 문제들’이라는 점이다.
19. 예술의지 [Kunstwollen];
여유 부족,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 같음, 실현 가능성 등의
대상을 재현하는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방법 같은 건 없다.
어휘에서 느껴지는 건조함은 분명 하루아침에 형성된 것은
가장 정확하다고 믿어왔던 르네상스 원근법과 투시법조차
아닐 것이다. 그러한 건조함 너머에는 언젠가 용기 있는
세계를 표상하는 수많은 재현 체계 중 하나일 뿐이다.
디자이너들에 의해 시도되었을 말도 안되는 도전들이
지역과 시대에 따라 대상을 재현하는 수많은 공간법, 원근법은
오래된 지층처럼 존재할지도 모를일이다.
우열을 매길 수 없으며 그 자체로 독자적 완결성을 지닌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할 수 있고 없음의 ‘능력’ 차이가 아닌 ‘예술의지’의 차이이기 때문이다.
20. 각 시대는 저마다의 예술의지를 가진다.
25. [MANIFESTO OF THE COMMUNIST PARTY]
독일의 미술사가 하인리히 뵐플린이 활동하던 당시
A spectre is haunting Europe - the spectre of Communism.
독일 미학의 주류는 빙켈만의 신고전주의였다. 신고전주의는 예술사조의 발달과정을 유기체의 성장에서
All the Powers of old Europe have entered into a holy alliance to exorcise this spectre : Pope and Czar, Metternich and Guizot, French Radicals and German police-spies.
소멸로 이르는 선형적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결과로 몇 가지 문제점들을 껴안았는데 그중 가장
26. [공산당 선언]
심각한 것은 특정 사조에 대해 위계적 권위를 부여한다는 점이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지금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뵐플린은 자신의 저서에서 미술사라는 것은 과거와 미래를
교황과 짜르, 메테르니히와 기조, 프랑스 급진파와 독일의
시계추처럼 오갈 뿐이며 그 운동의 우연한 경계에 현재라고
첩보경찰 등 구유럽의 모든 열강은 이 유령을 몰아내기 위해
불릴만한 것이 투명한 막처럼 존재하는 것이라고 서술했다.
신성동맹을 맺었다.
21. 뵐플린은 르네상스 예술과 바로크 예술의 양식을
27. 공산당선언 서문에서 마르크스가 사용한 유령이라는 단어는
예로 들어 다섯 가지 개념 쌍을 만들어 냈다.
설명하기 모호하지만, 모두가 느끼고 있을 한 시대를 휘감은
[르네상스/바로크]
사변적 기류에 대한 은유일 것이다.
1)선적인 것에서 회화적인 것으로.
나는 늘 이 유령속에 햄릿의 개인적 복수의 차원을 넘어 다양한
2)평면에서 깊이로.
시대적 문제점들이 구겨져 들어가 있다고 생각했다.
3)폐쇄된 형태에서 개방된 형태로.
햄릿을 읽는 동안 어렵지 않게 왕위계승의 폭력적 진실과
4)다원성과 통일성.
그 당시 사회적 부조리를 연관 지을 수 있기 때문이다.
5)명료성과 불명료성.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대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복수란 오히려 법이 장려하는 윤리적이었다.
22. 뵐플린은 다섯 가지 개념쌍을 이용해 그 당시
검술의 달인인 레이티어와 호각을 겨룰 만큼 검술이 뛰어났던
상대적으로 저평가되던 바로크예술의 입지를 바로
햄릿이 낭만주의적 감수성에 절어 아버지의 복수를 무기한
세우고자 노력했으며 시대가 각기 다른 양식 간의 위계를
연기시켰다는 것은 사실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무화 시키는데 평생의 시간을 할애했다.
오히려 햄릿이 부왕의 유령을 보며 복수를 지연시켰던 것은 한 시대의 부조리함을 독자들과 마음껏 나눌 수 있을 만큼의
23. 뵐플린의 주장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면
시간을 벌기 위한 전략적 안배였다는 생각이 든다.
천덕꾸러기가 되어버린 크리에이티브라는 유령을 마냥 쫓을 것이 아니라 현재에 어울릴만한 예술의지를 발견하는데
28. 크리에이티브라는 유령을 볼 수 있는 햄릿의 혜안을
시간을 낭비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노력의 대가로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동시에 그렇게 발견된 땅에는 더 이상 창조하지 않아도 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체 하는지도 모를 유령때문에 무던히도
나태함으로 가득찬공간이었으면 하는 희망도 가져본다.
혹사당했을 자기를 위한 영리한 알리바이가 필요한 시점임에는 틀림없다. 더 이상 시대의 문제들에 대해 인내하고 용인하기에는
24. 셰익스피어의 비극 햄릿에서 부왕은 유령의 이미지로
곪아버린 상처가 금방이라도 터져버릴것만 같다.
묘사된다. 왜 하필 유령의 모습이었을까. 꿈에서 나올 수도 있었을 테고 소리를 통해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도 있었을 텐데. 햄릿의 영문판 유령 철자는 Spectre이다. Spectre에는 분명 Ghost와는 다른 뉘앙스를 내포하고 있다.
블로그 clichecliche.blog.me
Spectre를 사용하는 유명한 문구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마르크스의 공산당 선언 서문이다.
이메일 clichecliche@naver.com
Part 1. 원석 발견!!
내가 어떻게 다이아몬드가 되었냐면... 글. 올리브 “두근두근 팝팝팝~하늘로 하얗게
나는 세상을 전부 다 가진 것처럼 그렇게
정신줄 놓고 마음껏 놀 수 있는 그런 곳.
날아올라~ 하늘높이 팝팝팝 이젠
행복해 하고 있었다.
주변 친구들은 공부만 하다가 쟤가 드디어 미쳤구나! 라고 말을 했고, 학교
내 마음도 부풀어 올라~” 서로 잡았던 두 손을 놓지 않았죠!!!
아! 그 날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선생님은 혀를 끌끌 차기 시작했지만, 난 아랑곳하지 않았다. 새로운 친구들을
번개를 맞은듯한 충격을 받았다. 노래를
만나 함께 즐기고 있었고, 깔깔깔 큰
듣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외롭지도 홀로
소리로 웃으며 하루를 보내고 있었기
힘들지도 않았다. 당시 나는 많이 지쳐
때문이다. 나는 더 이상 비좁고 어두운
논문과 끈질긴 사투를 벌이고 있던 나는
있었고, 논문을 포기 할 생각도 하고
연구실 책상에 머리박고 울고 있지
KBS의 TOP밴드에서 데이브레이크의 ‘
있었다. 꿈은 과연 이루어질까? 라는
않았다.
범퍼카’란 곡을 우연히 DMB로 듣게
생각속에 수 만 번 지옥을 넘나들기도
되었다. 나는 그날부터 사랑에 빠진
했던 나에게 “들이박고 또 들이 박아
<데이브레이크>의
소녀 마냥 삶이 그렇게 변해갔다. 사랑
봐도 지치지 않는 나의 엔진에 더 큰
다니면서 나는 궁금한 것들이 늘어갔다.
따위 믿지 않던 내가, 사랑 노래는 전부
용기를~”이란 가사는 내 심장을 제대로
데브가 초창기 활동을 했다는 홍대가
슬픈 노래뿐인 줄 알던 내가, 달콤한
들이 박았다.
어떤 곳인지 궁금했고, 그때까지도
2012년, 어느날, 자취방.
공연을
보러
홍대에 위치한 공연장엔 가본 적이
사랑 노래에 흠뻑 빠져버리다니!! 그 전까지 문화생활과 담을 쌓고 살던
없었기 때문에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결혼을 했어야 할 나이, 또는 한창
내가 본격적으로 축제와 공연장을
그러나 그때까지는 선뜻 용기가 나지
연애를 하고 있어야 할 서른 즈음에 ‘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공연은 그야말로
않았다. 혼자서 공연장을 간다니...
팝콘녀’로 간택되었단 사실 하나만으로
‘새로움과 즐거움이 가득한 곳’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상상마당에서 데브와
일반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는
다른 밴드들의 공연이 있었다. 그곳에서
대중가요가 ‘감정흡수기’ 같아 많이
나는 또 한 번의 벼락을 맞게 된다.
친해지지 못했는데, (감정을 억지로
데브의 노래가 나에게 희망을 주고
끌어올리는 듯 하다고 할까?) 하지만
파이팅을 외치게 만들다 못해 정신줄
이들의 음악은 ‘감정여과기’ 같았다.
놓고 놀 수 있게 했다면, 안녕바다의
음악을 음미하는 과정에서 감정의
노래는 꾸물꾸물 숨겨져 있던 내
정화가 이루어지고 정신이 맑아짐을
감수성을 폭파시켰다. 메말라 있던
느꼈다.
나에게 안녕바다의 노래들은 더욱 감성적으로 다가왔고 보컬의 맑은
나는 과연 음악을 즐길 줄 알고 그 맛을
목소리와 솔직한 가사들은 순수하게
제대로 볼 줄 아는 ‘일반사람’이라도
다가왔다.
되어가고 있는 걸까? 졸업을 한 후, 본격적으로 데브와
필자는 오랜 기간 많은 공연을 보러
곡들은 몇 년간 하늘 한 번 제대로
안녕바다의
다니기
다닌 사람이 아니다. 또 공연과 음악에
쳐다보지 못할 정도로 웅크려 있던
시작했다. 그 해 겨울, 그리고 그 이듬해
대해선 거의 문외한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봄까지 안녕바다 전국투어와 데브의
그런데 내가 어떻게 이런 글까지 적고
전국투어를 찍었다.
있을까?
‘별빛이내린다’,
세상을
‘눈물바다’와
똑바로
같은
응시하지
못하고 있던 나에게 용기를 선사했다.
공연을
보러
지하 2미터 아래로 땅굴을 파고 들어가 웅크리고 앉아 있던 나를 아름다움을
하루는
팝콘녀에
행복한
느낄 수 있는 세상으로 끌고 나왔다.
지르고, 하루는 함께 찍은 사진을
무엇인지도 몰랐던 무지랭이에 가깝던
밤하늘의 별빛과 파란 바다가 얼마나
보면서 이리저리 왔다갔다 두 밴드의
나는 데브의 전투와 안녕바다의 전투를
아름다운지 잊고 살던 나에겐 선물
공연장을 종횡무진 했다. 한 밴드만
찍고 나서 ‘공연’과 ‘음악’ 그 자체에
같았다.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처음
좋아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하기도
대한 갈망에 몸이 한껏 달아올랐다.
받아 본 아이처럼.
했지만, 노래가 너무 좋고 두 밴드
늦바람이
공연 모두 보고 싶단 의지 하나만으로
첫사랑 열병을 심하게 앓고 나서,
그때부터 조금 순수했던 나는 헷갈리기
전투(전국투어)를
사랑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 느낌적
시작했다. 꿋꿋하게 한 가수, 한 밴드, 내
안녕바다 전투는 혼자 열심히 다녔다.
사람만을 좋아해야 한다는 고지식한
유유자적하면서 전주, 부산, 서울... 그
성격 탓에 고민도 많았다. 이 가수도
당시 나에게 공연을 보러 가는 행위는
솔직히 2001년 자우림 크리스마스
좋고, 저 가수 노래도 좋고, 여기도 가고
억눌렸던 욕망의 분출구이자 탈출구
콘서트가
싶고, 저기도 가고 싶고, 마치 바람난
같았다. 공연 관람 전, 부산 앞 바다,
공연이였는데, 삶이 송두리째 꿈틀꿈틀
여자처럼 두 밴드의 공연 사이에서
크리스마스 이브!! 밤바다 앞에 혼자
변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을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서있었지만, 나는 자유롭게 바다공기에
가졌음에도 홍대로 파고드는 것은 쉽지
흠뻑 취했다.
않았다. 조금 두렵기도 하고......음악
찍었다.
비명을
특히
팝콘녀가 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나는
부끄럽지만
‘커버곡’,
무섭다고
‘셋리스트’가
하던가!
마치
느낌?
내
인생의
단
하나의
또는 공연과 담을 쌓고 살던 ‘일반사람’
태어나서 처음 ‘싸인’을 받았다. 그것도
내 머리가 정말 총 맞은 것처럼
축에도 못 낀다는 사실을 떠나서라도
<안녕바다>에게.
무슨
정신줄을 놓은 게 분명해 보였지만,
홍대문화 속으로 발걸음을 내딛기가 참
보물이라도 발견한 어린 아이마냥,
그들의 음악이 나를 그렇게 만들었다.
쉽지 않았다.
다이어리 첫 장에 고이 받아들었다.
음악과 공연을 즐기면서 나 역시 그들의
그리고 그 싸인은 마치 부적처럼 나를
음악처럼
안녕바다 공연장으로 이끌었다.
있었던 것이다.
나는
마치
무한대로
자유로워지고
그러나 궁금하면 참지 못하는 성격, 데브와 안녕바다의 공연 소강기가 왔을 때, 난 그 갈증을 참지 못하고 드디어 홍대로 입성을 하게 된다. 사실 데브와 안녕바다는 나에겐 첫사랑과도 같다. 첫사랑앓이가 끝나고 나니, 눈에 보인다고 하던가. 홍대로 입성 한 그 날, 나는 마치 폭우를 맞은 것처럼 바람이 나버렸다. 눈앞에 수많은 밴드와 가수들이 즐비했던 것이다. 그것도 잘생김을 얼굴에 듬뿍 바른. 작년 화이트데이, 마치 축제와도 같았던 그 날, 홍대 전역에 위치한 공연장 곳곳에서 다양한 밴드와 가수들의 공연을 보았고, 음악을 들었다. 그들의 달콤한 노래들에 스물스물 녹지 않을 수 없었다. 잘생긴 외모 때문인지, 무대 위에서 더욱 빛이 나는 이유도 있겠지만, 당췌 알 수가 없을 정도로 내 마음엔 여러 개의 방이 생겨버렸다.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고 하던가. 바람난 마음에 살랑살랑 3월의 봄바람이 불어왔고, 여러 ‘잘생김’ 묻은 밴드들과 가수들을 보고 나는 마치 봄처녀처럼 설레기 시작했다. 아!! 또 다른 세상이 있구나!! 하물며 그 날 만난 가수들은 전부 달콤하게 잘생김!!이라고 기억하고 있을 정도...... 그렇게 나의 홍대 입성은 시작되었다. 달콤한 화이트데이사탕을 입에 한껏 물고.
체르노빌의 목소리 - 미래의 연대기 스베틀리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 김은혜 옮김 | 새잎 | 2011년
“적으라, 받아 적으라. 기억에서는 다 지워질 테니.”(215쪽)
체르노빌. 1986년 4월 6일,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4호 원자로가 몇 차례 폭발 후 무너졌다. 벨라루스. 인구 1천 만 명의 농업 국가로 원자력 발전소는 하나도 없다. 사고 당시 바람의 방향 때문에 배출된 방사성 물질의 70퍼센트 가 벨라루스 영토에 도달했다. 오늘날 국토의 23퍼센트가 오염되었고 국민의 5분의 1이 오염 지역에 거주하고 있다. 오염 지역 거주민 210만 명 중 어린이가 70만 명이다. 피해 규모. 그린피스 추산으로 9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암으 로 인한 사망은 9만 3천 건이다. 영국 『인디펜던트』지에 따르면 체르노빌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20만 명에 이른 다. 2005년 유엔 발표에 따르면 암 발생 건수는 4천~9천 건에 불과하다.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20여 년에 걸쳐 사고와 관련된 사람들을 인터뷰하여 모은 책이다. 이 작은 책에 정말로 많은 것이 들어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언어들은 하나같이 시적이고 철학적인 아우라를 거느리고 있다. 체르노빌은 참조할 만한 그 어 떤 선례도 없었다. 그 원인을 무언가에 돌리기엔 그것들이 초래한 결과에 대조하니 너무나 빈약했다. 그들은 언어 의 무력함을 느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의 질문은 근원적일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고통은 시적인 언어로밖 에 담아낼 길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옮겨 적은 저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이렇게 말한다. “예 술이 지금껏 지구의 종말을 그려냈지만, 우리의 삶보다는 기이하지 않다”고.”(이계삼, “부산 핵발전소 사고! 대통 령의 행방은?”, 프레시안, 2011년 9월 16일.)
책을 다 읽고 인터넷에서 서평들을 찾아 읽었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나고 3개월이 지 난 시점에 책이 나왔다. 대강 10편의 서평을 읽었다. 그중에서 이계삼 선생의 글이 가장 좋았다. 그는 『프레시안』 에서 기획한 ‘2011년 올해의 책’으로 이 책을 꼽기도 했다. 여러 독자들이 이 책이 보여 주는 지독한 슬픔과 끔찍한 비극을 겨우 글로 적어 나갔다. 그리고 이런 일이 인간의 삶 에 다시 생겨서는 안 된다고, 무고한 동시대인들뿐만 아니라 후손들의 안전한 삶을 담보로 삼는 짓을 해서는 안 된 다고 말하며 사람들이 이 책을 읽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자신들은 책을 읽는 동안 수차례 덮을 수밖에 없었다는 말 을 덧붙이면서. 하지만 나는 책을 읽는 동안 긴장감을 느꼈다. 지독한 슬픔과 끔찍한 비극을 손쉽게 목격하는 자가 느끼는 긴장감. 이 책을 읽고 나서 쓰는 서평은 대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담을 것이다. 응당 그래야 한다는 듯 이 슬픈 사연을 요약해 독자에게 들려주고, 사건의 원인을 설명해 준 다음, 이것이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사실을 일깨워 윤리 적인 의식과 책임감을 요구하는 것이다. 2011년 3월 일본에서 일어난 일을 지적하는 것도 빠지지 말아야 한다. 독자 는 글을 읽으며 대개 충격, 슬픔, 분노, 두려움의 순서로 감정을 경험한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런 일이 독자의 마음에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것을 무감각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지 의심이 들었다. 여기 한 독자는 평일을 야근으로 보내고 주말은 춤을 춘 다음 겨우 몸을 추슬러 가끔 책을 읽는다. 까 페 밖으로 한가롭게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이 오가고, 독자는 볕 좋은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말 을 잃게 만드는 이야기에 정신없이 빠져 들다가도 고개를 들면 평화로운 세계가 눈앞에 있다.
그래서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내게 흥미로운 문제는 이런 것이다. 독자와 책, 나와 『체르노빌의 목소리』, 인간과 글의 관계 같은 것. 한 편씩 서평을 쓰는 일이 나와 책 사이에 일어나는 일, 한 인간과 책 사이에 일어나는 일의 구체 적인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고 읽는 일 자체에 대해서 생각하는 일이 늘었다. 사람들은 왜 세상의 고통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걸까? 그들의 부족한 지성이 감수성의 영역을 확장해 주지 못하는 것 이라고 치부할 수 있을까? 알면 달라지는가? 우리는 언제나 동일한 강도로 타인의 고통에 자신을 이입하는가? 체르 노빌과 후쿠시마에 무관심한 내가 우리 사회의 노동 문제에 무관심한 대다수 시민들과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 다. 세상에는 타인의 고통 이외에도 온갖 개인적인 골칫거리들이 있고 연애, 사랑, 음악, 춤, 삶을 즐겁게 하는 수많 은 것들이 있다. 나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혹은 골치 아프고 마음도 아픈 일, 고통을 들여 다보기보다 기쁘고 즐거운 일에 관심을 쏟고 싶다.
“포로수용소에서 살았던 사람들을 촬영한 적이 있다. 보통 그들은 만나기를 꺼린다. 다 같이 모여 전쟁을 회상하 는 게 부자연스러웠다. 서로 죽이고 죽은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 모욕을 배우고, 겪으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이들은 서로에게서 도망 다닌다. 자신에게서 도망친다. 사람에 대해 알게 된 것으로부터 도망친다. 사람 속에, 살 갗 아래에 뭐가 있는지……. 그래서 바로 이러한 이유로, 그곳 체르노빌에서도 무슨 이야기가 하기 싫은지 알게 되었다. (…) 긴급한 상황이 닥치면 사람은 책에 나오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책에서 읽은 사람들은 찾지도 못했 고 보지도 못했다. 다 반대였다. 사람은 영웅이 아니다.”(173쪽)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들었다. 체르노빌 같은 일이 없어진다고 해서, 인간과 인간 사이에서 일어나는 비극과 우리 삶 에 보편적으로 닥치는 불행과 고통이 사라질까? 종교와 민족, 가난, 인종, 이데올로기 같은 것 때문에 일어나는 비극 들 말이다.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주제넘은 것인지 마음 한 구석에서 경고 사이렌이 울리는 것 같다. 윤리의 문제를 별개로 할 때 이 책이 흥미로운 점은 재난 자체에 대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원자력 발전 소 폭발 사고를 막고 원자력 발전소를 없앤다고 해도 자연재해는 인간이 아직 막을 수 없는 것이며, 언제 어디서 예 상치 못하게 재난을 불러온다. 책을 읽으면서 재난이 인류에게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보편적인 경험이자 사건이라 는 생각이 들었다. 재난을 다룬 책에도 새롭게 관심이 갔다. 체르노빌은 인간이 이제껏 겪어 보지 못한 종류의 재난이다. 체르노빌 폭발 직후 소련 지도부를 비롯해 군대와 행정 기구의 관료들은 당시 상황을 전쟁과 같은 것으로 이해했고 그러한 틀 안에서 어떤 행동을 할지 선택하고 대처해 나 갔다. 우리를 위협하는 ‘적’이 있고 그것을 막으면서 민간인을 대피시키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체르노빌에서 ‘적’ 은 방사능이었고, 인간의 감각으로는 인지하기가 불가능한 적이었다. 방사능이 미친 피해도 마찬가지였다.
“(갑자기 말을 끊는다) 그래서, 체르노빌에 대해 뭘 아시나요? 무슨 글을 쓰시겠어요? 미안해요. (침묵한다) 내 영 혼을 어떻게 적을 수 있어요? 나도 그렇게 자주 읽지 않는데…….”(324쪽)
인터뷰는 희곡의 지문처럼 쓰였다. 괄호 안에 ‘(말을 끊으면서 한다)’, ‘(숨이 찬다)’, ‘(오랫동안 침묵한다)’로 인물의 모습을 묘사한다. 계속해서 이어지기만 하는 말이 아니라 한 사람의 침묵과 한숨을 듣게 될 때 독자로서 내가 위치 한 지점이 뒤흔들리는 느낌이 있었다. 저자의 말대로, 그리고 이계삼 선생의 말대로 이 책은 시적이다. 시집이다. 우리가 겪었지만 아직 겪지 못한 미래 같 은 느낌, 아직 설명하지 못한 세계가 이 안에 있는 듯했다. <끝>
월간이리에서 필진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식물, 생물, 무속, 종교, 역사, 의학, 과학, 철학, 패션, 요리, 에세이, 연애 등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필진을 구하고 있습니다. 함께 볼 수 있는 다양한 글을 싣는 책이 되고 싶습니다. 그간 월간이리를 재미있게 봐오셨거나 알게 모르게 끌리시는 분들, 망설이는 친구를 옆에 두신 분들은 언제든 연락주시면 친절하게 안내해 드립니다. exxx2x@gmail.com 으로 메일 부탁드립니다.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소개소
1. I miss you - 카운터리셋
[Born To Drive](2013), 11 펑크
공연에서
딱인
노래였다.
밴드.
반전을
3. time to say - 허클베리핀
이
[문제의 시작](2014), 1
발견한
사람또사람은
펑크
곡인데
듀오이다. <그대여 안녕>이라는
좋아하는
나에게
your man’. 처음 반했던 부분은
‘oh~oh~ what a starrynight’인데 밤에 혼자 산책하며 들으면 곁에
연인이 없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드럼
감탄스러울 정도로 빠르다.
연주는
라는
대구에서
[까만 타이거](2011), 6
우연히
가사는 ‘everyday,everynight I’m
카운터리셋의
2. 문제의 시작 - 사람또사람
이름으로
‘건훈씨’
활동했던
혼성
노래의 건반 소리가 인상적이었는데
이 노래의 시작 부분에도 재미있는 소리가 난다. 그리고 정말 적절한 시점부터 등장하는 코러스와 ‘~
한다’ 라고 끝맺는 가사가 마음에 든다. 기타와 건반 멤버 두명이지만 정말 부족함이 없다.
노래는
앨범
음원이
아닌
라디오의 락 페스티벌 실황에서 처음 들었다. 음원과는 달리 락
페스티벌 실황에서는 관객들에게 춤을 가르쳐주고 격려하는 보컬의 멘트가 들렸다. ‘넌 내가 뭘 원해도’
에서 한 글자씩 떼어서 부르는 것이
인상적이다. 영상에서 ‘time to say’ 바로 뒤의 건반 소리와 춤이 잘
어울리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꼭 라이브로 보고 싶다.
이번 달의 키워드는 ‘라이브’입니다. 최근 라이브에서 발견한 보석 같은 밴드, 드디어 라이브를 본 밴드, 죽기 전에 꼭 다시 라이브를 보고 싶은 활동을 중단한 밴드 등을 소개하며 후회하지 않으려면 라이브를 봐야한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신당동 파르한 (@chungchoon98)
4. Now I know - 아홉번째
5. 그녀 - 판타스틱 드럭스토어
6. Here We Go - 더 문샤이너스
현재 보컬의 군 입대로 활동을
판타스틱 드럭스토어의 공연에선
정말 좋아하는 밴드였지만 활동 중단
영어 가사를 좋아하지 않지만 쉴
않았지만 이 곡을 듣는 순간 베이스
‘Let’s go out and live tonight’ 과
[TV를 끄면 좋겠어](2012), 2
쉬고 있는 밴드 아홉 번째. 나는 틈 없이 노래하는 부분에서 영어 가사의 매력이 드러난다. 드럼이 빈 틈을 적절하게 채워주고 바로 보컬 파트가 다시 시작되는 것을
들으면 꼼꼼하게 잘 만든 노래라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폭발적이다가 잔잔하다가
다시
폭발하는게 멋있다.
중간
중간
[Dance With Me](2013), 6
베이스
소리에
귀
기울이지
소리가 정말 잘 들렸다. 특히 노래가 느려지는
부분부터는
더
좋다.
평소 드럼과 베이스 소리에 맞춰 춤추는데 이 노래가 그것을 완벽히
증명해준다. 그리고 보컬과 연주가
하나가 된 느낌이 드는데 ‘오오 그녀’ 를 부를 때 그 기분 좋은 느낌이 극대화된다.
[모험광백서 - DISK 2](2009), 1
후 이 노래의 진가를 알게 되었다.
같이 가사가 좋으면서도 춤추게 하는 매력이 있다. 문샤이너스의 노래 중
흔치않게 베이스 멤버가 작사/작곡/
보컬을 맡은 곡이다. 문샤이너스의 3
명의 멤버로 이루어진 밴드 ’디디스’ 의 공연에서도 들을 수 있었는데 3 인조 임에도 이 노래는 여전히 좋았다.
부산오뎅 이야기 (내 목소리가 들리니?)
언제부턴가 부산오뎅과 이리까페는 MOU(업무협약)를 맺게 된다.
MOU를 맺고 나서 이리까페는 부산오뎅에 비해 여러가지 물심양면의 해택을 누리게 된다. 업무협약에 대 한 양해각서 같은 건 쓰지 않았지만 우리는 정확히 서로가 해야 할 일을 알고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나의 업무가 훨씬 많다는 거...
그럼 우리 둘 가게가 맺은 협약으로 인해 발생하는 나의 업무(?)를 간단하게 얘기해보면.. 일단 커피 맛을 항 상 체크하는 일을 한다. 한 달에 26일~28일정도 출근을 해서 커피를 마신다. 하루에 2번,3번 가는 일도 가끔 있으니까. 거의 매일 온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내가 우리가게를 한 달에 26일 출근하니까 이리 까페에 출근하 는 날이 많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우리가게 오뎅 탕을 한 달에 한번 먹을까 말까 하지만 이리까페의 커피는 한 달에 리필포함 60잔정도는 마시는 것 같다. 그러다보니 커피에 상당히 민감하다.
커피 맛이 여느 때와 조금이라도 틀릴 경우 직원과의 대화로 해결방안 모색, 대책수립, 가끔은 문책도 서슴 지 않는다. 혹은 기계의 결함, 커피원료 공급처에서의 기술적 변화 등을 꼼꼼히 체크하는 일을 한다. 뿐만 아
니라 신선한 커피 원두의 공수 또한 내가 맡고 있다. 어차피 오는 길이니까 흔쾌히 사주는걸 한 두번 하다 보 니 주인장들이 커피거래처에 커피 구매하러 간지도 엄청 오래 전 얘기였을 것이고 이제 그 커피원재료상에 서도 나를 거의 이리까페 주인으로 알고 있는 눈치다. 게다가 각종 식자재의 납품. 이리까페와 같은 식품업 체를 이용한다는 걸 아는 누군가의 제보에 의해서인지 몰라도 교묘하게 나를 이런 일에까지 MOU라는 올가 미로 엮어서 각종식자제의 납품까지 맡고 있다. (물론 내가 모든 식자재의 납품을 하고 있다는 건 아니다)
게다가 같이 술을 마셨을 때 덜 취한 사람이 많이 취한사람 집에 셔틀해주기...이건 협약과 관계없는것이지 만 이것 또한 내가 압도적으로 많이 했다는 건 내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증거 자료들과 증인들이 많이 있 다. 증인은 월간이리 독자들 중에서도 많이 있을 것이다.
또 식자재 납품 시 음료한잔 공짜 쿠폰발행. 이리 임직원들의 부산오뎅 방문 시 음료 천원 할인. 내가 이리를 방문 했을 시 음료천원할인을 하고 있다. 새로 온 직원들에 우리가게와 이리까페는 천원할인정 책에 대해 교육(?)도 실시하고 있다. 교육의 효과인지 비교적 정확하게 시행,정착 된지도 거의 2년쯤 된 것 같다. 나는 누군가에게서 혹은 어떤 공간에서 어떠한advantage도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번 나에게 주어 진 조그만advantage가 있다면 그것에 감사할 뿐, 있는걸 뺏겼 다고 그걸 또 구차하게 다시 돌 려 내라고 얘기하지도 않는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이리까페 에 새로 온 직원이 근무하던 저 녁...커피를 마시고 계산을 하는 데 어찌된 일인지 잔돈을 주질 않는다. 잔돈 주세요!라고 맘속 으로 외쳤다. 속으로 생각했다. 아직 인턴기간이라 모르는걸 까? 사장한테 전화를 해야 되 나? 잠깐만요 돈 다시 좀 주세 요.해서 천원 짜리로 지불해야 되나? 아님 자초지종을 설명해 줘야 되나? 여러 생각이 난무 하는 와중에 다음 손님이 계산 하려고 기다린다 그냥 나의 권 리를 행사하지 않은 채 잔돈 을 못 받고 집으로 향하는 발 걸음. 그날 저녁은 유난히 쓸쓸 했네요. ㅈ양....
국가란 무엇일까? (3회)
나는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인이다. 의심해 본 적도 없고 (거울을 보면 조금은 동남아 풍의 느낌이 나기도 하지만..) 의심당해 본 적도 없다? 지난 화에서 나는 누군가 어느 국가의 국민이 되는 것이 무척 간단하다고 말했다. 그 나라에서 태어나거나, 누군가에 의해 명명당하는 것. 사실 태어난다는 것도 일정부분 명명당하는 것이다. 엄마가 한국인으로 지정되었으니 자식도 한국인이 되는 것 이것은 당췌 무슨 원리일까? 뭐가 그렇게 만드는거야? 답을 꺼내기보다. 다른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원래 길게 쓰고 있는 이 주제가 답 없는 이야기가 아닌가. 술에 취한 아빠가 강아지 한마리를 데리고 들어왔다. 엄마는 아기 강아지를 받아들고 집안 여기저기를 다니며 말을 건낸다. “뽀삐야 오늘부터 여기가 너희 집이야” “밥은 하루에 두번” “산책은 아빠랑” “화장실은 저쪽” “밥은 허락이 떨어지거든 먹어야되” “이것들만 지키면 지내기 편할꺼야.” “우리집에 온걸 환영해 뽀삐야” 엄마는 수용소의 간수처럼 친절하게 안내를 한다. 뽀삐의 생활에 대한 대부분의 룰은 어머니가 정한 것이다. 그걸 왜 엄마가 정했을까? 누가 엄마한테 그런 힘을 주었을까? 아빠가 준 것일까? 일방적으로 이름을 부여받고 밥을 먹는 시간을 강제 당하고 화장실이란 말도 모르는 개한테 화장실을 쓰라고 하고, 사료는 늘 같은 걸 주면서 언제 먹니 마니 기다리라는 뭐니 간섭은 잔뜩하다니. 그래도 뽀삐는 아마 별 불만 없이 잘 지낼 것이다. 약간의 지시를 따르기만 하면 삶에 고달픔은 없다. 조금만 애교를 부려도 다양한 먹거리를 즐기고 따뜻한 침대에서 잘 수 있다. 하지만 뽀삐의 마음이 나의 예상과 같을까? 뽀삐는 어쩌면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인간들은 얼마나 잔혹한가? 집 밖의 동지들에게는 과자 부스러기 하나 던져주지 않고 신고를 통해 잡아간다. 나는 개로서 개의 존엄과 동족의 억압에 대한 항거의 의미로 이를 들어내겠다. ‘으르렁’ “이 놈의 개새끼가 어디서 이를 들어내” 어디선가 신문지 몽둥이가 날아든다. 뽀삐는 삶에 회의를 느껴 집을 나선다. 차가운 철문이 열리는 찰나의 틈을 이용해 엘리베이터까지 단숨에 달려간다. 1층에서 내려 아파트 광장에 발을 디뎠을 때 뽀삐의 쾌감은 절정에 다다른다. ‘아! 자유!’
그러나 도시의 골목에는 찬바람이 불고 차가 씽씽 달린다. 정을 붙이기 힘든 매서운 공간, 서서히 집이 그리워도 진다. 하지만 자유를 찾아 나선 견생 아닌가. 나아가야 한다. 이곳에서는 도저히 개들끼리 세력을 연합하거나 대화를 나눌 수 없다. 견도국을 만들기 위해 뽀삐는 넓직하고 한적한 광장을 찾아 나선다. 광장에서 가열차게 개의 권리를 부르 짖고 싶었다. 뽀삐는 광장에서 무엇을 보게 될까? 그리고 세상에는 몇 개의 광장이 있을까? 놀이터, 양로원, 강당, 운동장, 공원, 도로, 미루나무 밑. 공자는 셋만 모여도 그 중 하나는 나의 스승이라는 말을 했는데, 나는 셋만 모여도 이미 광장이라고 말하고 싶다. 수천 수 만개의 광장들이 모여 영토를 만든다. 그러니까 국가를 만든다. 뽀삐와 뽀삐의 친구들이 모인 광장들이 잔뜩 모이면 뽀삐가 원하는 견도국이 될 것이다. 그 와중에 동물적인 서열 겨루기가 있을 것이고 서열을 기준으로 몇가지 규칙들이 생길 것이다. 견도적인 입장을 갖고 있는 뽀삐가 선두에 선다면 내부 서열 문제로 피를 보는 일까지 없겠지만 사나운 다른 개가 등장한다면 분명 서열 정리를 위해 피를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서열과 서열에 따르는 특혜들은 존재할까 존재하지 않을까? 서열에 따른 특혜. 좀 더 푸근한 방석을 쓰게된다거나 웃풍이 들지 않는 파이프를 선점할 수 있다거나. 맛난 고기를 먼저 맛볼 수 있는 것. 그것 들은 합의일까? 생존의 위협일까? 어찌 되었든 견도국이 만들어진다면 인류는 견도국과 협정을 맺거나 싸움을 통해 제압을 하려 들 것이다. 만약 견공들의 단결된 힘에 의해 제압이 실패한다면, (충분히 개와 고양이 연합, 개와 참새의 연합을 통해 정보가 새 나갈 위험이 존재한다.) 애완이라는 일방적인 명칭은 사라지고 협력자 또는 동반자라는 단어에 대해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뽀삐는 더이상 소유할 수 없고 함부로 때릴 수 없는 관계가 될 것이다. 언젠가 노예가 사라지듯 말이다. 전혀 비슷하진 않지만 나는 어렸을 때 이모네 집에 갔다가 놀이동산에 데려가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이모부의 후안무치함과 부도덕함에 분개하여 사촌들과 함께 방으로 들어가 비슷한 시도를 한 적이 있었다. 나는 사촌들과 방을 점거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 후안무치하고 부도덕한 이모부를 향해 우리가 국가를 이루었음을 선포하였지만 이윽고 나의 국가는 분쇄되었다. 방문은 열리고 이모부는 뚜벅 뚜벅 들어와 양말 발로 이불로 만든 집을 밀어낸 뒤 뒷덜미를 잡아 우리를 식탁에 앉혔다. 방과 우리들 만으로는 국가가 될 수 없었다. (정말 큰 좌절이었다.) 이모부에 의해 분쇄된 나의 국가는 어디에 있을까? 쌍문 2동 어느 콘크리트 벽에 문화적 흔적이 남아있긴 하겠지만 현실적으로는 나의 마음 속에만 남아 있다. 그런데 아무도 모르고... 국가를 만드는데 2인 혹은 3인과 하나의 광장은 부족한 것일까? 부족하지 않다면 왜 그런 국가는 없는 것일까? 처음으로 객관적인 자료를 등장시켜 말하자면 참고로 현대의 가장 작은 국가는 바티칸 시국이란다. 0.44 제곱km 에 800명 정도가 살고 있다. 그럼 800명이면 충분한 것일까? 바티칸은 예외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다. 그럼 바티칸은 왜 예외가 되는 것일까? 국가란 무엇이기에? 글. exxx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이달에도 재미있는 것들을 준비했습니다. PDF를 보시면서 누르셔도 되고 스마트 폰으로 찍으셔도 됩니다. 여전히 월간이리 내 원고의 일부분이나 필진 이름, 블로그 주소등을 누르시는 경우 해당 페이지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행복에 대하여 맛있게 끓여진 레토르트 된장찌개를 가만히 보다가. 행복이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일을 마치고 돌아와 즐거운 얼굴로 사랑하는 사람과 레토르트 된장찌개를 끓여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나눈다. 빨리도 만들어지는 찌개 한 그릇. 나는 이 시간을 아껴서 무엇에 쓰려고 하는 걸까?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남의 집에 가서도 똑같을 된장찌개를 먹으며 행복을 이야기한다. 옛날에는 이런 게 없어서 그랬는지 몰라도 된장찌개 하나를 끓이면서 일이 참 많았다. 두부를 반 모만 넣고 반 모는 부치기도 하고 깜박 잊고 두부를 사오지 않아 안 넣는 날도 있고, 버섯이 있는 날은 버섯을 넣고 된장이 떨어진 날은 고추장을 조금 넣고, 그날 그날 맛이 달라서 밥상에서 오늘 찌개 맛이 왜 이럴까? 이야기도 하고 아무튼 일들이 참 많았다. 맛없는 된장찌개는 맛없는 된장찌개 대로 맛있는 된장찌개는 맛있는 찌개대로 모여 앉아서 이러니 저러니 이야기들이 많았다. 옛날이 좋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문득 그때 행복했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지 레토르트 된장찌개 때문이 아니고, 레토르트 된장찌개가 우울하단 것도 아니고 그냥, 음식 하나에도 사건 사고가 많았다는 이야기이다. 행복하다는 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영 모르겠어서 반대로 불행한 건 뭐가 있었는지 생각했다. 아파서 아무것도 못 먹고 남이 먹는 밥을 보면서 입맛만 다셨을 때가 불행했던 것 같다. 친구는 아이스크림을 먹는데 돈이 없어서 빈 주머니를 뒤집었을 때가 불행했던 것 같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연락도 못하고 이불을 뒤집어 쓰고 오들 오들 떨었던 때가 불행했던 것 같다. 엄마가 울고 있는 모습을 볼 때 불행 했던 것 같다. 돌아가신 이모를 떠올렸을 때도 불행했다. 이런 저런 불행했던 때를 생각해 보니 죄다 뭔가 하고 싶었는데 하지 못했던 때의 생각들 뿐이었다. 행복이 뭔지는 모르겠다. 근데 뭔가 할 수 있다면 행복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행복은 자유와 동의어인데 괜히 우리는 엄한 행복을 찾아다니는 것 아닐까? 자유롭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자유의 곁에 모든 행복의 가능성이 있고 자유 저 멀리 불행의 전체가 있는 것 아닐까? 그래서 나는 자유를 포기할 수 없다. 우리 서로를 사랑하고, 최대한 자유롭도록 하자.
글. exxx
바다비 일요 시극장
바다비 일요 시극장 2014.3.30 http://cafe.daum.net/badabie
‘아담의 창조’, 1510 (프레스코화)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중 일부 3월호의 뒷표지는 미켈란젤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중 ‘아담의 창조’에서 따왔습니다. 미켈란젤로의 이 작품은 조각가인 그에겐 이례적인 거대 규모의 회화작품입니다. 무려 5 년을 걸쳐 작업했고, 신의 천지창조와 노아 시대의 일 등 창세기의 이야기를 필두로 구약성서의 사건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저는 이 ‘아담의 창조’ 도판을 볼 때마다 아무래도 아담의 자세가 맘에 걸립니다. 아담이 자기의 무거운 흙덩이 육신으로 언덕에 널려있다가 생기를 내려주는 신의 손을 향해 겨우 겨우 팔을 뻗고 있는 것이라는 상상을 해봐도 도대체 말이죠. 그의 자세 어디에서 신을 향한 절실함이 느껴집니까? 여기서 느낄 수 있는 것은 오히려 젊은 육신의 나른한 교만함이다 싶습니다. 그러고나면 다른 갈래의 생각이 뻗어나오죠. 이번 그림은 그 중 한 갈래의 생각입니다. 인간은 태초이래로 꾸준히 신의 손을 가지려했고 그런 뒤엔 해맑게 추락하기만 남았다 뭐 이런 생각이요. 잘가라 아담.
그림. 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