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이리 201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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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입니다. 비밀동툰 / 사진. 글. beamil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 글. 사진. 아홉시 영화로 읽는 시공간 - 더 그레이로 본 생존영화의 법칙 / 글. 곡주대비 여기 문학이 필요한시간 - 「운영전」 / 글. 고수진 회사옆 미술관 - 이대범_투명한, 반투명한 불투명한 미술 / 글. 강세기 idology’s pick - 에이핑크, 오렌지 캬라멜 낭만 스파이 - 그들의 나들이 / 글. 사진. 낭만스파이 물질과 비물질 - 5. 세월호 / 사진. 황은정 글. 김종소리 젖 - 흑역사 / 그림. 글. 두리 뼈그림 - 새의 골반뼈 / 글. 그림. 왼손이 놀고 먹고 그리고 / 그림. 김혜리 건축이 좋아 - 오랜 시간의 꿈이 머무는 곳, 꿈마루 / 글. 사진. aoikasa 웹디자이너 생존 매뉴얼 - 거리두기의 생존 매뉴얼 / 글. 그림. 김성연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 소개소 / 글. 신당동 파르한 송창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 그림. 감 글.박재현 내가 어떻게 다이아몬드가 되었냐면... / 글. 올리브 게임 노동 일지 / 그림. 글. 철민 사진 일기 / 사진. 글. 박민수 부산오뎅 이야기 - 어느날 / 글. 사진. odeng 바다비 일요 시극장 광고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국가란 무엇일까? - 5회 / 글. exxx


할 말이 없는 5월입니다. 모두가 아무일 없이 살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월간이리 exxx 드림.

편집: 이훈보 공식트위터 @postyri

표지: 이주용, 한지인


비 밀 동물툰 Animal Toon by BEAMIL

* 세월호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2014년 4월을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beamil22@gmail.com


* 뜻밖의 사고로 많이들 슬퍼하고 계시리라 예상됩니다. 할 수 있는 건 그저 언론에 의지하고 앉아서 실종자들의 안녕을 바라는 일 밖에 없었죠. 하지만 이번 참사를 잊지 않는다면 앞으로의 세상은 분명 달라지지 않을까요? 한겨레의 기사에서 사고 열흘 째였나, 국내 항해선 S 페리호에 올라 취재한 기자의 글을 보았습니다. 나사가 없는 자판기, 고정되지 않은 소파와 그 외 많은 크고작은 물건 들, 보고와 의무 그 이상의 의미가 없는 승객 인원 카운트와 조사 등.. 뉴스를 보며 그저 내가 앞으로 뭘 할 수 있을지 막막하기만 했 던 저였지만 기사를 접하고 생각해볼 수 있었습니다. 나와 내 가족을 포함한 소중한 사람들이 언젠가 이용할 수도 있는 서비스에 대 한 끊임없는 문제 제기와 사람의 안전을 책임지는 모든 것에 대한 오지랖 뭐 그런 것들 입니다. 그런 류의 오지랖이 취미였던 저 또 한 어느순간 혼자 독특해보이기 싫어 다소 냉소적인 사람들 사이에 묻혀있었구나. 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번 그림은 사고 발생 7일째에 낙서처럼 그렸던 그림을 수정한 것입니다. 그 그림에서 고양이들은 노란 리본을 목에 걸고 있었지 만 지금은 검은 리본을 달고 있습니다. 아직 모든 실종자가 발견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른가 싶지만, 현재까지의 사망자들을 애도하 는 마음입니다. 이런저런 의문점과 봐도봐도 황당한 이야기가 나열된 기사들이 많지만, 그래도 저는 동물관련 페이지를 쓰는 사람이 니 그에 관련된 기사를 일부 옮겼습니다. 아동 심리치료사로 저명한 서천석 선생님의 말을 빌리자면,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 도 무척 중요할 것입니다. 그러고보니 그림과도 어울리는 기사네요. 오랜 시간 동물과 어울리며 살아왔던 저는 그들이 주는 치유를 알기에 자연스레 이런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사에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큰 사건에 왠 동물이야기냐 싶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잠시 시름을 내려놓는다는 마음으로 가볍게 읽어주세요.

아시아투데이 글로벌 종합일간지 asiatoday.co.kr 조준원, 송병형 기자 9·11테러 10주년을 하루 앞둔 2011년 9월 10일 뉴욕에서 발간되는 타블로이드판 일간지 뉴욕 데일리뉴스는 9·11 당시‘티크바(Tikva)’ 라는 이름을 가진 치료견의 활약상을 자세히 소개했다. 당시 한살배기 강아지였던 티크바는 존재만으로도 ‘그라운드 제로(세계무역센터 붕괴지점)’에서 작업 중이던 구조대원들의 심적 고통을 덜 어줬다. 구조대원들은 잠시 쉴 때마다 티크바를 찾아 마음의 위로를 얻었다. 작업을 마치고 돌아갈 때면 조련사에게 다음날 다시 데려와달라고 당부하곤 했다. 티크바 외에도 많은 치료견들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로 고통 받는 생존자와 유가족들을 위로해 그들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는 데 도움을 줬다. 이후 미국사회에서 재난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로하는 데 있어 치료견들은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됐다. 아시아투데이는 한국동물매개치료재활협회 창립을 계기로 한국을 방문한 데니스 터너(Dennis C. Turner) 박사를 21일 만나 세월호 참사로 고 통받고 있는 한국인들이 미국인들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터너 박사는 치료견을 비롯한 동물이 심리치료를 보완하는 역할 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쉽게 마음을 열지 못하는 사람들과 정신과 의사 사이의 다리(Bridge)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또 상실감을 극복 하는 데 기나긴 시간이 필요한 만큼 집에서 기르는 동물이 위안을 줄 수 있다고 했다. - 동물매개치료는 30여년전 미국에서 시작됐다. 이어 영국·유럽·북미·남미, 이제는 아시아 지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본의 아자부(麻布) 대학에서 10여년째 동물매개치료 코스를 가르치고 있다. 아직 아시아 지역은 이 분야의 중심센터가 없는데 곧 세워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동물을 치료에 활용하는 방법은 3가지가 있다. 동물매개치료·동물매개치료교육·동물매개활동 등이다. 사람치료전문가가 개입하여 실제 치 료하는 것, 교사가 훈련된 동물을 데리고 교육에 활용하는 것, 자원봉사자가 자신의 동물을 데리고 시설 등을 방문해 여가활동을 돕는 것 등이 각각의 내용이다. - 미국 9·11테러 등의 경험으로 세월호 사고 생존자들이 PTSD로 고통받을 거라는 걸 모두 알고 있다. 9·11 당시 생존자나 희생자 가족들 로부터 상담 요청을 받는 등록제도가 있었다. 자격을 갖춘 많은 치료사들이 훈련된 동물을 데리고 생존자들과 유가족들을 찾아갔다. 이 때의 일을 통해 동물이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지지(Support)를 제공하고 우울증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동물은 편견이 없어 자 유롭게 사람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다. 특별한 움직임이 없더라도 그 자리에 동물이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도 우울증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 미국의 경우 클리닉이나 정신과 병원의 33%, 그러니까 3분의 1이 진료현장에 동물을 데려다 둔다. 유럽의 경우는 고양이가 많다. 정확한 메커 니즘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우울증 환자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치료사나 의사들은 이미 그 효과를 알고 있다. 그냥 가만히 고양이가 있는 것만으로도 환자는 자기 집에 있는 듯한 분위기를 느끼게 된다. 개도 마찬가지 효과를 볼 수 있다. 동물이 있으면 환자들이 다른 사람들과 접 촉을 하고, 치료를 받아들이려고 한다. 어떤 동물이 효과적이냐는 환자가 이전에 어떤 동물을 길렀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으로 보인다. 훈련된 동물을 가진 치료사나 정신과 의사가 있다면 그룹 치료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룹 토론의 자리에 개를 데려다 가만히만 있게 해도 된 다. 처음에는 개를 만지작거리다가 자신의 감정을 개에게 이야기하게 되고, 이것이 활발한 치료로 이어질 수 있다.

* 데니스 터너 박사는 1948년 미국에서 태어나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공중보건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5년부터 2011년까지 스위스 취리 히 대학 동물행동학과 교수로 있으면서 동물매개치료 분야를 개척했다. 이 분야 최고 권위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와의 인터뷰 전문이 궁금하다면 goo.gl/8ji5al 로 접속해주세요.




더 그레이(The Grey, 2012)로 본 생존 영화의 법칙 영화로 보는 시공간 글. 곡주대비 hjkanjy@gmail.com

다른 여타 하위 장르들 처럼 생존 영화류도 확실히 단언하여 선을 긋기는 힘들다. 재난 영화의 대부분이 캐릭터들의 생존/구출 과정을 다루므로 재난영화나 생존영화는 같은 부류도 볼 수도 있을 것이고 이 두 부류의 영화들이 대개는 블록버스터 스케일로 제작 되어지므로 (배경 특성상) 단순히 블록버스터로 지칭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생존 영화가 영화사만큼이나 유지되고 사랑 받아온 비교적 장수 장르 라는 것이다. 독자들이 기억할 만한 대작들을 꼽자면 60년대에 개봉되었던 타워링이라던지 90년대에 들어서 물밀 듯 개봉 되었던 화산 영화들 (Dante’s Peak, Volcano)한 지구인 대부분이 봤던지 들어봤던지 했을 타이타닉 까지 모두 생존 영화 범주에 넣을 수 있을 듯 하다. 비교적 최근작이라고 할 수 있는 리암 니슨 주연의 <더 그레이>는 전형적인 생존 영화로서 오일 플랜트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귀향하던 중 비행기가 추락해 겪게 되는 과정을 그린다. 사실 생존 영화의 법칙이란 것이 한 두 번 본 관객 들은 외워서 읊조릴 수 있을 정도로 단순하지 않은가. 산이나 섬 등의 비교적 조건이 좋지 않은 환경에 고립 – 음식과 물 부족으로 갈등 고조 – 갈등 과정에서 일어나는 살인, 혹은 사건 – 결국 주인공의 포함해 소수 인원 탈출 혹은 구출. 모두가 알 것이라고 단언 하면 서도 굳이 이 영화를 들고 온 이유는 <더 그레이>가 위에 언급한 공식을 차용 함 과 동 시에 배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은 작품인지 아닌지는 독자들의 판단에 맡긴다) 일단, 주인공들이 예기치 않게 착륙하게 되는 곳은 눈으로 뒤덮인 산간 지방이다. (앵커리지로 가는 비행기였으니 북쪽 지방 어디쯤 일 것) 이 곳에 서 겪게 될 난관은 뻔하다. 일단 눈사태와 지속적인 추위로 주인공들은 고통 받을 것이고 어떻게든 불을 구하고 나면 음식과 물을 위해 싸울 것이다. 이 영화가 취하는 공식의 배신이 여기서 시작이 된다. 죽은 시체의 가방을 뒤져 외투를 챙기고 기내 잡지를 이용해 불을 구한 다음 주인공들이 맞서게 되는 장애는 다름 아닌 늑대다 (영화제목 더 그레이는 늑대를 뜻한다). 한 두 마리의 늑대는 사람을 놀래키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결국 생존자 중 한 명을 모두가 보는 자 리에서 뜯어먹는다.


이 시점부터 늑대는 이 생존 영화의 유일무이한 적이 된다. 늑대를 피해 강으로 피신하는 도중 두 명의 생존자가 늑대 에 잡아 먹힌다. 결국 이 과정에서 우리 들이 익히 알고있는 ‘테이큰’ (Taken)의 영웅 리암 니슨과 그 나마 가장 도덕 적이고 합리적인 이성을 가지고 있는 생존자 한 명이 남는데 이쯤 되면 관객들은 이 두 명이 가까스로 구출되며 영화 가 끝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웅 한 명만 살아 남는 것은 너무 뻔하다 못해 비도덕 적이지 않은가. 우리가 본 역대 재 난 영화나 생존 영화 중 그 어떤 영화도 주인공 한 명 만 달랑 남겨놓은 적 은 없는 듯하다. 앞서 언급한 Dante’s Peak 은 주인공과 주인공 여자친구, 여자친구의 가족들, 그리고 그 집 개까지 살려놓지 않았는가 (참고로, 개를 죽이는 미국 영화는 참으로 보기 힘들다). <더 그레이>의 배신이 여기서 또 한번 일어난다. 그 도덕적인 생존자 마저도 늑대의 추격을 피하다가 물에 빠져 익사 하게 된다. 주인공 리암 니슨 은 좌절한다. 그리고 그 좌절이 극복되지 않은 채 그는 희망을 버린다. 허나, 관객들은 생 각 할 수 있겠다. 우리의 테이큰 아저씨 리암니슨 은 나이에 맞지 않는 체력과 그 간 쌓아온 (전작들에서) 액션 스킬 들이 있지 않은가. 갱단의 무리 전체를 해치웠던 그가 늑대 몇 마리로 무너지겠는가. 그리고 이 때쯤 예리한 관객들 은 타이밍을 생각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쯤 되면 대게 헬기가 뜨던 안되던 핸드폰이 되던 어떠한 형태의 구원의 손길 이 나타나지 않는가. 이 영화의 마지막 배신이 여기에 있다. <더 그레이>의 시작에서 끝까지 그 어디에서도 도움의 손길이나 기적의 힌트 같은 것은 한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리암 니슨 조차 관객의 기적이 되지 못한다. 한참을 절망하고 숲은 걷던 그는 마침 내 그가 늑대 소굴 안에 들어와있다는 것을 인지 한다. 그 때 알파 (the alpha: 늑대 무리에서 우두머리를 뜻함) 가 등 장하고 리암은 자신의 주먹에 유리조각을 덧대며 마지막 전투를 준비한다. 그리고 그의 비장한 클로즈업에서 영화는 앤드 타이틀을 뿜어내는데, 이를 보면서 느꼈던 허무함과 분노가 기대하지 못했던 수준의 게이지였던 걸로 기억한다. 마치 다 짜놓은 고스톱 패를 누군가 엎어버린 느낌이랄까. 관객이라는 것이 참 희한한 존재다. 우린 뻔한 영화를 좋아 하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영화가 뻔한 계산에서 비껴 나가면 배신감을 느낀다. 물론 그게 유쾌할 수도 있고 필자처럼 역정이 날 수도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설명한 여러 가지 이론들이 존재 해왔다. 관객의 심리를 연구하는데 가장 많이 차용된 학문으로는 정신분석학이다. 정신 분석학 적으로는 관객이 주인공을 자신이라고 무의식 적으로 인지하기 때문에 주인공이 죽거 나 부도덕한 인물이라면 관객들은 불쾌해질 수 밖에 없다고 설명 한다 (Christian Metz). 많은 남성 관객들이 홍상수 영화를 보고 “보고 나면 찝찝하다” 라고 반응 하는 것이 좋은 예일 것이다. 이러한 정신분석학 적인 입장은 영화학자 들에게 엄청난 지탄을 받았다. 관객 모두가 다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령 주인공이 남자 고 관객이 여자라면 동일시 하기 힘들 것이고, 이는 성별 뿐 아니라 인종, 나이, 그 외 다른 데모그래픽한 요소에 지배 를 받는다는 주장이다. 이 두 주장 중 어떤 것이 더 현실에 가까운지는 가늠하기 힘들다. 다만 <더 그레이>가 필자에게 예상치 못한 쾌감보다 분노에 가까운 배신감을 주었던 것은 이 영화의 장르적 특성, 즉, 이 영화가 인간의 생존을 전제로 하는 영화라는 사실 이었다. 필자가 로맨틱 코메디를 보고 있었다면 결말이 다소 뻔하지 않더라도 분노했을까? 두 시간 남짓 등장인물들 이 인간으로 태어나 할 수 있는 가장 잔인하고 굴욕적인 결정들을 하는 것을 지켜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생 존자들이 죽어나가는 것까지 인내했지만 결국 하나 남은 그 누군가가 생존도 희망도 아닌 죽음과 절망 사이에 어정쩡 하게 걸려있는 것이 결말이라면 독자들 중 몇 명이나 그 의외 성에 쾌감을 느낄 것인가. 앞으로도 재난 영화나 생존 영화가 쏟아져 나올것이다. 가족이야기를 먼저 꺼내거나 사진을 들춰보는 캐릭터가 먼저 죽는다는 공식도 계속 지켜질 것이다. 감독에 따라서 혹은 다른 이유로 장르적인 트위스트가 어딘가에서 이루어 지겠 지만 누구 한 명이 살아남는다는 공식 만큼은 반전이 없었으면 한다.


여기, 문학이 필요한 시간

작자미상 「운영전」

누워도 못 이룰 꿈이오. 하늘엔 기러기도 없구나. 눈에 선한 임은 말이 없는데 꾀꼬리 울음소리에 옷깃을 적시네 5월, 특히 이번년도 5월은 황금연휴로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필자는 1년 중 가장 큰 행사인 1학기 중간고

사를 맞이하여, 주말도 연휴도 8시간 보강, 수업, 보강, 수업... ‘그래, X같이 벌어서 연말에 정승같이 쓰리라.’ 의 5월이다. 긴긴 겨울방학을 보내고 첫 시험이라 학부모의 기대와 학원 선생님들의 고충이 섞여 스트레스 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리고 이 가운데 난 이 원고를 쓰고 있다. 쉬쉬쉴틈이... 하하항

아.. 일이 많아.. 비루한 육신이 썩어가고 있어 하하하

흠,흠, 이번호의 작품은 작자미상의 애정소설, 조선후기로 짐

작되는 가슴 아픈 사랑을 담은 「운영전」이란 작품을 골라 보

았다. 먼저 제목을 살펴보자. ‘-전’으로 끝나는 소설은 그 인물

의 일대기를 다룬 것으로 이 작품 역시 운영의 삶을 다루고 있 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는 운영보다는 소설 도입부에 등장하는

‘유영’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인물은 뒤에 다루도록 하고 먼 저 간략하게 줄거리를 읽어보겠다.

선조 때 선비 유영이 안평대군의 구택(舊宅) 수성궁에 놀러갔다가 꿈 속에서 안평대군의 궁녀였던 운영과 그녀의 애인 김진사를 만나 그들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이야기란 이러했다.

안평대군은 풍류왕자로 궁중에 아름다운 전각을 짓고 풍류 재자(才子)들을 모아 시회를 여는 한편, 운영을

비롯하여 궁녀 10명을 뽑아 가무와 서예를 가르치며 별궁에 두고 즐기게 되었다. 어느 날 안평대군과 궁녀 들이 시를 짓고 있는데 김진사가 찾아와 함께 어울려 시회(詩會)를 열게 된다. 그때 운영은 김진사의 용모

와 재주에 마음이 끌려 그를 사랑하게 된다. 김진사 또한 운영에게 정을 보내게 된다. 남의 눈을 피해 그와

서신을 교환하고 밀회를 하다가 발각되어 옥중에 갇힌 끝에 자결하며, 궁 밖에서 운영을 기다리던 김진사도 그녀의 장사를 치른 다음 자살 한다.


이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듣고 유영은 그들을 위로하며 술에 취해 졸다가 문득 산새소리에 놀라 깨어보니

새벽이 밝았는데 다만 김진사와 운영의 일을 기록한 책자만이 무료히 놓여 있었다. 유영은 그것을 가지고 돌 아와 상자에 감추어두고, 그 뒤로는 침식을 전폐하고 명산대천을 두루 돌아 마친 바를 알지 못하였다고 한다.

고전소설임에도 소설의 짜임이 매우 섬세하고 세련됨을 알 수 있다. 유영이 춘(春)흥을 못 이겨 술 한잔 걸 치고 옛 궁터를 돌아다니다 한을 간직한 채 이승에 잠시 내려온 운영과 김진사를 만난다. 그리고 그들의 사

랑 이야기를 듣는 구성은 액자식 구성으로 입체적인 짜임이 돋보인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던 것은 유영의 꿈이었다. 액자식 구성과 몽유록계 구성이 적절히 어우러져 고전소설이라고 믿겨지지

않을 정도이다. 기존의 애정소설류들을 보면 그래도 해피엔딩 권선징악의 주제였다면 이 소설은 굉장히 파 격적인 결말이라고 볼 수 있다. 두 남녀가 결국 자살이라니!

운영은 궁녀였다. 특히 안평대군이 어여삐 여긴 궁녀였다. 이 소설에서 안평대군은 그리 나쁜 사람으로 나

오지 않는다. 두 사람의 사랑을 가로 막은 것은 안평대군의 역할도 있지만, 애초에 운영은 궁녀가 아니었던

가! 이후 거론하겠지만 두 사람을 죽음으로 보낸 것은 최종 보스, 김진사의 몸종 ‘특’이었다.(특이 김진사의

재물을 빼내고 간교한 꾀로 인해 둘은 안평대군에게 들키게 된다) 어쨌든 안평대군의 의도는 그 당시 매우 진보적이었다.

‘하늘이 재주를 내리심에 있어서, 남자에게는 풍부하게 하고 여자에게는 재주를 내리심에 있어서 적게 하였 으랴. 지금 세상에 문장으로 자처하는 사람이 많지마는, 능히 다 상대할 수 없고, 아직 특출한 사람이 없으 니. 너희들도 또한 힘써서 공부하여라.’

하시고는 대군께서는 궁녀 중에서 나이가 어리고 얼굴이 아름다운 열 명을 골라서 <소학>, <언해><중용

>, <대학>, <맹자>, <시경>, <통감>, <송서> 등을 차례로 가르쳐 5년 이내에 모두 대성하였지요. 열 명 의 이름 금련, 은섬, 자란, 보련, 운영이니, 운영은 바로 저였어요.

의도는 좋았으나 사람은 그렇게 살 수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 오직 나만의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무엇보 다 사람, 사람이 고팠을 그녀들이다. 점차 운영은 자신의 삶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그런 운영에게 김진 사는 쿵, 다가왔다.

두 사람은 시를 주고 받으며 서로의 감정을 키워 나간다. 이러한 장치는 고전소설에서 자주 나오는 장면인

데, 고전소설은 내면의 감정이나 진술을 직접적으로 하지 않고 한시로 표현한다. 베옷에 가죽띠를 맨 선비는

누각은 저녁 문 닫혔는데

매양 바라보건만

낙화는 물에 떠 개천으로 흐르고

신선과 같은데,

어이하여 인연이 없는고.

솟는 눈물로 얼굴을 씻으니

원한은 거문고 줄에 우나니, 가슴속 원한을

머리 들어 하늘에 하소연하오.

나무 그늘 그림자 희미하여라.

어린 제비는 흙을 물고 제 집을 찾아가네.

누워도 못 이룰 꿈이오. 하늘엔 기러기도 없구나. 눈에 선한 임은 말이 없는데

꾀꼬리 울음소리에 옷깃을 적시네.


자신의 감정을 한 줄 시구에 꾹꾹 눌러 담아 보내는 것. 얼마나 조심스럽고 절실한지, 시는 아니라도 편지를 받아 본지 언제지? 엄지손가락이 편한 세상이 되었다. 편하니까 좋은데, 내 목소리는 편지만큼 전달되지는 않는다. 내가 얼마나 당신을 좋아하는지, 보고 싶은지, 가슴이 아픈지, 그 떨림 말이다.

학생한테 받는 이런 편지는 가장 신이 난다.

그러나 이 둘의 사랑은 금기였다. 궁녀인 운영과 김진사는 조선의 봉건적 사회 제도의 모순된 현실을 뛰어 넘어 남녀의 진솔한 사랑을 추구하다가 결국 한계에 부딪혀 자살하게 된다. 이러한 표면적 이야기로만 본다

면 주인공인 운영과 김 진사는 비극적 인물이요, 좌절된 인간상이다. 운영은 궁녀라는 신분과 순수한 인간적

애정 사이에서 갈등을 겪다가 죽음을 선택하였으며 운영의 죽음은 곧 김진사의 죽음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 문이다. 그러나, 운영의 죽음이 단순히 비극성만을 나타내지는 않는다. 그녀의 죽음은 순수한 애정마저 감추

어야 하는 유교적 억압과 궁녀라는 삶에 대한 저항이며, 인간성의 해방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

다. 주인공들은 현실에서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지만, 이는 비인간적 규제와 형식에 매인 삶을 벗어나 진정한 자아 찾기를 위한 방편이었던 것이다.

이 소설은 둘의 비밀스런 사랑을 지켜보는 긴박함과 곳곳에 삽입되어 있는 시를 읽는 묘미가 상당하다. 그

리고 이제 우리가 또 지켜봐야 하는 인물 바로 유영이다. 이 글에서 잠시 등장하는 유영은 선비이지만 벼슬 을 하지 못하고 옛 궁궐터를 돌며 자신의 처지를 돌아보고 있다. 이 소설이 작자미상인 만큼 이 유영에 주목 할 이유가 있다. 마지막에 운영과 김진사가 우리들의 이야기를 후세에 전해달라는 이야기를 듣고 유영이 꿈

에서 깨는데, 단순히 이상한 꿈이로다 여길 수 없게 유영의 옆엔 두 사람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 놓여 있었다.

유영은 집에 돌아와 책을 자신의 서재에 숨기고 그길로 속세의 삶을 버리고 떠돌아다닌 것으로 결말처리가 되어 있다. 이상하지 않은가? 책을 만들어 세상에 내놓지 않고 두 남녀의 이야기는 방안에 남겨둔 채 떠돌이

삶이라니 말이다.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아마 이 유영이 작가가 아닐까 라는 추측을 할 수도 있겠다. 소설 속 유영과는 달리 현실의 작가는 자신의 부조리한 현실을 애정소설에 넣어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자신의 답답

함을 해소하고자 노력한 걸로 보인다. 그리하여 기존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유교적 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인 간의 자유의지를 고찰한 선구적인 작품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유영과는 달리 현실의 작가는 자신의 부조리한 현실을 애정소설에 넣어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 자신의 답답

함을 해소하고자 노력한 걸로 보인다. 그리하여 기존의 다른 작품들과 달리 유교적 질서에 얽매이지 않고 인 간의 자유의지를 고찰한 선구적인 작품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바라옵건대 선비님께서는 이 원고를 거두

어 가지시고 돌아가 뭇사람의 입에 전하여 웃음거리가 되자 않도록 영원히 전해 주시 오면 다행으로 생각하겠습니다.” 하더니, 그 리고는 김생은 취하여 운영의 몸에 기대어 시 한 수를 읊었다.

꽃 떨어진 궁중에 연작이 날고,

봄빛은 예와 같건만 주인은 간 곳 없구나. 중천에 솟은 달은 차기만 한데,

아직 푸른 이슬은 우의를 적시지 않았네. 운영이 받아서 읊었다. 고궁의 고운 꽃은 봄빛을 새로 띄고,

천 년 만 년 우리 사랑 꿈마다 찾아오네. 오늘 저녁 예 와 놀며 옛 자취 찾아보니,

막을 수 없는 슬픈 눈물은 수건을 적시네

다음 시간에는 다시 현대 작품으로 넘어와 이성복 「서시」를 살펴보겠다. 지각하면 보강이다.


회사 옆 미술관

글. 강세기

이대범_투명한, 반투명한 불투명한 미술 #1

그림이 없는 미술책이 가끔 좋을 때가 있는데, 글 자체에 집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미지에 대한 상 상을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읽어 내려가다 보면 궁금해질 만할 때를 어떻게 알았나 싶게 떡 하니 그 지점에 작품사진이 나타날 때 면, 어렸을 때 이런 기억이 떠오르게 한다. 목이 마른 상태에서 신나게 뛰어 놀다가 엄마가 불러 잠시

물 마시는 순간. 갈증이 풀어주는 물맛이 시원해서 좋긴 한데 놀이 흐름이 끊긴 것에 대한 약간의 아쉬

움이 섞여있는 그런 감정이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가다 그림을 보면서 현실에 직면하게 되면 마찬가지 로 그림에 대해 생겼던 호기심이 해소되는 동시에 더 이상 상상은 할 수 없겠다는 약간의 포기도 동반 되는 복잡한 마음 말이다.

이대범의 글 모음집 “투명한, 반투명한, 불투명한 미술(2013년, 북노마드)”도 그림 한 점 없는 미술(평 론)책이다. 다른 평론가들의 글과 조금은 달랐던 느낌은 상상의 나래가 위로 펼쳐지는 것이 아니라 상 상의 땅굴을 파고 지하로 깊이 들어 간다고나 할까. 분명 그는 작품을 말하고 있지만, 내가 상상하는 것 은 작가의 내면이었다. #2

평론가들마다 미술을 읽기 위해 착용하는 안경이 다르고, 독자들을 안내하는 길이 다르다. 따라서 각 평론가의 이 미술작품에 접근하는 특징을 잘 안다면, 독자 입장에서는 미술품 앞에 자신의 안경에 더해

10명의 평론가면 10개의 다른 종류의 안경을 끼고 작품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재미로 따진다면 내

가 가진 하나의 관점만 가지고 10명의 작가의 작품을 대하는 것보다, 1명의 작가라도 10명의 평론가들 이 각기 가지고 있는 안경을 하나씩 모아 10개의 다른 종류의 관점으로 미술을 대하면 훨씬 다채로운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을 실천에 옮기기로 했다. 첫 시작은 이대범의 책으로 시작했다. 예전에 김장언의 책 “미술과 정 치적인 것의 가장자리에서(현실문화) “을 한번 다룬 적이 있었지만, 단순한 감상문에 가까웠다. 따라서 이번 책은 평론가를 이해하려는 첫 시도이다. 물론 책 한 권으로 누군가의 뱃속을 훤히 들여다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고 있기는 했다. 허나 앞서 말한 야망을 한 쪽 마음에(내가 당신을 파악하겠

어!) 지니고서 책에 달려들었다. 책을 다 읽고 난 지금 시점에서 안경? 코드? 관점? 수년간 쌓인 내공을 책 한 권으로 파악하려는, 이대범 평론가가 세월에 걸쳐 담가놓은 장맛의 비법을 꽁으로 먹으려 했다는 생각을 금할 길 없다. 이럴 줄 알았으면 회사 옆에서 열리고 있는 정연두 작가의 전시하나 보는 건데.

그렇지만 일말의 만족감은 있다. 바로 그의 안경을 내 것으로 만들지는 못했더라도 적어도 장님 코끼리


만지고 그리는 수준에서 흉내 정도는 내볼만한 요

량은 생겼다는 점이다. 미술 감상에 대한 어떤 태 도를 배웠다고나 할까? 이렇게 쉽게 접근한다면

평론가들이 글을 어떻게 작성하는지 그 과정을 유

추함으로써 나 역시 그 방법으로 작품을 볼 수 있 겠다는 희망이랄까.

이대범 평론가의 책에서 그가 미술에 대해 접근하 는 방식은 한마디로 거칠게 요약하자면 “시골 소

년의 투박한 껄떡거림”으로 정리하고 싶다. 사실 글만 놓고 본다면 이 평론가는 유려하고 세련되었

다. 한 편의 문학작품을 읽는 듯한 직선적으로 툭 툭 끊어지면서도 여운을 남기며 착 감기는 그런 문

장이 계속된다. 직설적이지 않지만 직선을 그리며 타겟을 관통하여 뚫지는 않지만 그 둘레를 빙 돌 아 감는 그의 여유와 비평가로서의 태도가 글 속에

배여 나온다. 사실 이렇게 에둘러 표현하는 이유

는 사실 나도 정확히 무엇을 느꼈는지 정확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상당히 복합적인 정서가 그에게 담겨있기 때문이다. 탐사 저널리즘의 애티튜드로 창조한 한 편의 단편소설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턴 이 평론가는 장황한 배경 지식의 나열 없이 조준하고 있는 작가의 작품을 곧바로 언급하며 글을 시작한다. “시골 소년의 투박함”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상대방(이성)의 배경 따위는 재지 않고 바로

대상에게 들이대는 뚝심 있는 시골소년 ㅋㅋ 그의 글을 통해 레퍼런스를 넓혀가고 싶은 사람이라면 기

대는 많이 하지 않는 편이 좋을 듯하다. 그 대신 아티스트의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한가지 관점을 잡는 뚝심을 배울 요량이라면 이대범 평론가 만한 사람이 있을까 싶다.

그의 글이 문학작품과 같다는 느낌은 글의 서두에서 시작했다. 처음을 잘 읽으면 그가 말하고 싶은 줄

거리를 대강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풀어가는 이야기 속에서 작가의 biography가 등장한다. 이 평론가 가 얽어놓은 큰 줄기의 주제가 이어지는 동안 작가의 작품이 줄거리 옆에 딸려 들어온다. 그가 만들어 놓은 줄거리를 증명하고 그것을 맛깔 나게 하는 요소가 되어 전체 이야기가 완성된다.

그래서 이대범의 글을 볼 때는 제목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초장에 냅다 결론부터 고백해버리는 시골 총각처럼 글의 제목은 여지없이 그가 하고자 하는 바를 군더더기 없이 한방에 드러낸다. 거기서 잘 파

악하지 못하겠으면 첫 문장을 들여다 보면 더욱 명확해 진다. 그렇기 때문에 한 편의 평론에 보통 3-4 개로 구성된 소단원의 제목을 먼저 보면서 그가 설계한 대강의 줄거리를 파악하기도 했다.


그 제목에는 이대범 평론가가 설정해 놓은 작가에 대한 컨셉을 발견할 수 있다. 작품의 외형을 통해 그

것이 말하려는 바를 읽으려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보다, 이 평론가는 자신이 구축해놓은 논리에 작가를 집어넣고 글 말미에 그 논리를 사실로 만들어버리는 어떻게 보면 굉장히 공격적이고 선제적인 감상을 이루는 듯 보였다.

누군가의 행동에 패턴이나 그 근원의 힘을 발견한다는 것. 그것을 말한다는 것은 둘 중 하나이리라. 잘

모르는데 던져놓고 보거나 아니면 작품에 깊숙이 빠져 여러 번 살펴보아 나름의 길을 만든다는 것. 이 평론가는 후자라는 생각이다(당연히). 그의 평론을 읽다 보면 마치 작업 당시의 작가마냥 그 과정을 묘

사하는 장면이 종종 나타난다. 그때는 1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이다(아......수능 이후 오랜만에 써보는 이 말......).

작가와 작업에 대한 다채로운 관점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작품에 대해 정서적으 로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이동기 작가를 다룬 글의 경우 스피디하고 무미건조한

듯 제 3자의 관찰로 글을 진행했다. 반면 김학량 작가의 경우는 자신의 감정을 진하게 투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다양한 관점 너머에는 다른 어느 것보다 작가 자체에 대해 집중하는 이 평론가의 집요함이 모든 글에 담겨있다. 대상 작가가 작업을 빛어내게 하는 그 근원적인 힘은 무엇이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 그 것이 칼라TV 이던, 어릴 때 가졌던 정서이던 간에 이 평론가는 하나 붙잡은 원칙을 가지고 줄기차게 파 고 든다. 선생님으로 따진다면 시험문제를 집어주는 쪽집게식 강사라기 보다 원리를 강조하는 ‘개념원 리형’ 선생님에 가깝다.

이런 그의 평론이기에 글로 사진 찍듯이 펼쳐지는 적나라한 묘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대충 뭉뚱 그려놓은 작품의 묘사 속에서도 번뜩이는 날카로움이 감지된다. 그 이유는 굳이 세밀한 묘사 없이도 작 가의 동기를 파악한 다면 저절로 그 작업이 머리 속에 그려지기 때문이 아닐까?

작품에 대한 적절한 감정이입 역시 돋보였다. 터질듯한 감성을 논리로 꾹 누르고는 있지만 문학적인 감 수성이 곳곳에 배여 있고, 이호인 작가를 다룬 글의 경우는 아예 단편소설을 읽는 것 같았다. 그의 평론 을 소설처럼 읽은 줄거리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자연에 대한 몰상식한 이해로 인해 끊어진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 그곳은 폐허만이 남았다. 그런데 한

명의 방랑자가 등장한다. 아무도 그가 어디를 보는지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있는 주위의 모든 것은 “ 두텁고 빠른” 붓질로 채워진다. 죽은 주위가 붓질을 통해 숨이 틘다. 그것이 우리가 잊어왔던 풍경이다.” 이 정리가 약간의 비약일 수도 있겠지만 만약에 나 나름대로 이호인 작가의 작업을 관통하는 줄거리를 이렇게 잡고 나서 그의 작업 앞에 선다면 훨씬 더 감상하기 재미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론가들의 안경쓰기는 당분간 계속 될 것 같다.

Ps. 지금까지 손에 잡은 책 중에 이 책이 가장 착 감겼다. 디자인과 크기, 글씨체와 레이아웃까지 맘에 쏘옥 든다.


’s pick

걸그룹 붐 동안 씬에는 수많은

팬들이 기저에 이미 자리잡고 있는

걸그룹들이 쏟아져 나왔다. 신생

것이

걸그룹은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

필진 중 한 명인 강동은 이를 “

새로운

지남철 이론”이라고 불렀다. 자석이

콘셉트와

추구했다. 그리고

에이핑크의 오늘

소녀시대와

카라

선언이

오래전부터

원더걸스,

쇳가루를

끌어당겨

붙이듯이

코어 팬층이 존재하고, 그 팬들이

장악한 시장에서 차별성을 만들기

충분히 강한 영향력을 갖고 있어야

위해서였다. 그러나 2011년 데뷔한

대중적인 인기도 이끌 수 있다는

에이핑크는 조금 남다른 구석이

것이다.

있었다.

에이핑크가

보일

등의

아이돌로지의

빅네임들이

시대착오적으로까지 흰색

소녀들로 끝났다는

포지셔닝을

일반적이다.

사실

드레스를

등장한

데뷔한

당시

팬덤

입은

상황을 간략하게 회고해 보자면,

에이핑크는,

빅네임 걸그룹 덕후들이 본진에서

새롭다기보다는

과거의

이탈해

에이핑크라는

신대륙을

이어지면서도 좀처럼 끝나지 않는

걸그룹들을 그냥 옮겨온 것 같을

향하거나,

걸그룹의 시대. 그 긴 ‘끝’에서

정도였다.

‘오리지널리티

무소속 덕후들이 에이핑크에 관심을

돌아보는

보다는 익숙함’이 이들의 모토일지

보여 엄청난 양의 직찍을 뽑아내는

모르겠다.

팬사이트를 만들거나 하는 일들이

그들이

에이핑크는 사랑받는

사랑받지

못하는

각별하다.

이유와 이유는

아마도

사실 익숙한 장르적 전형의 힘

에이핑크에

우리가

주목하는 이유다. - 에디터

직찍을

찍는

벌어졌다. 나는 그들의 데뷔곡 ‘

한 가지이기 때문이다. 3월 31 컴백한

걸그룹

‘익숙함’이란

걸그룹이라는 결과일

몰라요’ MV를 보고 걸그룹계의

주로

장르적

것이다.

2010년

아이돌

폭풍을 예감하고 전율했다(하지만

전형의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차트의

무렵은

메이저라고 보기는 쉽지 않다).

매우 특수한 시점이었다. 걸그룹은 무수히 많았지만 전형적인 아이돌

통조림 속의 100%

걸그룹의 것이다. 잘

위치가 에이핑크는

채워넣은

에는

비어

있었던

에이핑크의

자리를

는 개인적으로 걸그룹 데뷔곡의

것이다.

필연적으로

‘새로움’

적응을

마스터피스로

데뷔곡 꼽는

‘몰라요’ 곡인데,

위한

짝사랑하는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

시간이 필요한 데 비해, ‘익숙함’

상대방을 기다리다가 이젠 스스로

소녀본색 에이핑크

있으며

고백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 http://idology.kr/359 )

비교적 호의적으로 받아들일 수

이것은 노래를 듣는 청자에 대한

글 : 맛있는 파히타, 2014 03 31

있다. 그리고 그 ‘익숙함’이 장르적

간접적인 사랑 고백이며, 걸그룹의

전형에서 온 것이라면, 그 장르를

고정 수요층은 ’100%의 소녀’가

2007년 이래 태평성대를 누렸던

꾸준히

이들에게는

이어폰을 통해 자기에게 고백하는

수많은 걸그룹들이 이제 그 시대를

판단의 여지도 없이 받아들여질

것을 듣는 경험을 구매하는 것이다.

마감하고 낙엽처럼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아이돌 걸그룹의 전형은 바로 이런

시점에서, 걸그룹이 지향해야 할

아이돌 걸그룹을 꾸준히 소비하는

판타지에 기초하고 있다.

바는 무엇인가? 이러한 시기에도

이들, 이른바 ‘걸그룹 덕후’들이

세상엔 소녀들의 수만큼 다양한

그나마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바로 그들이다. 걸그룹 덕후들은

소녀들이 존재하지만, 걸그룹 씬이

걸그룹들이 그 해답이 될 것이다.

아이돌 걸그룹의 성패를 결정짓는

만들어내는 것은 ‘통조림 속의 소녀’

그중 에이핑크를 살펴보아야 할

중요한 변수이다. 대중적인 인기를

이다. 예쁘고, 건강하고, 언제나

이유는 매우 명백하다.

얻는 걸그룹은 그에 상응하는 코어

신선하고, 때 타지 않은 순수한 소녀,

손쉽게

다가갈

소비하는


게다가 변하지 않는 소녀인 것이다.

좀 더 과학적인 방식으로 자세히

물론 이것은 다분히 판타지지만

밝혀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아이돌

판타지를

평자의 전공분야가 아니므로 다른

제공하는 것이다. 이런 판타지를

분에게 맡기기로 하고, 좀 더 그

찾는

결과에 주목하면 다음과 같다.

산업은 수요는

심지어는

결국 언제나

아이돌의

있어왔고 암흑기에도

곡을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매시업

존재했다. 콘크리트같이 고정되어

(mash

up)은

하나의

문제를

있는 수요에 맞춰져 있다는 것은

이미지 고착을 넘어서

야기한다. 이는 바로 레퍼런스가

그들의 안정적인 기반을 의미한다.

( http://idology.kr/357 )

글 : 유제상, 2014 03 31

살아난다는 것이다. 에이핑크의 곡

에이핑크의 시기

곡의

‘예스러운’

느낌

또한

중 이러한 측면에서 가장 악명이 오지

걸스데이가 작년 3월 ‘기대해’를

높은 ‘NoNoNo’의 경우, 2000년대

않았다. 이제까지 발표곡 중에서

기점으로 초기의 귀요미를 버리고

초반 인기가 있었던 곡 – S.E.S.의

‘NoNoNo’ 정도가 대중적인 인기를

섹시로 선회한 지금, 에이핑크는

‘Just A Feeling’, ‘꿈을 모아서’,

얻었을 뿐이다. <응답하라 1997>

메이저 아이돌 중 거의 유일한

s#arp의 ‘Sweety’부터 핑클 버전의

로 대표되는 멤버 정은지의 배우

청순

그룹으로

‘늘 지금처럼’까지 – 의 멜로디와

커리어도,

아직

에이핑크의

시기는

콘셉트

여성

남아 있다. 이름을 알리기 위해

가사가 뒤섞여 있다. 호랑이 펌프

알리는 데에 다소 도움을 주긴

수영복,

하던 시절의 인기곡들은 ‘NoNoNo’

했으나

인기에

착용도 불사하는 작금의 세태에

에이핑크의

이것이

그들의

이름을

가터벨트,

망사

스타킹

피와

뼈와

살이

되었고,

시절을

추억케

주었다고

대비해 끊임없이 청순녀 이미지를

‘NoNoNo’는

말하기는 쉽지 않다. 간판 멤버인

고수하는 이들의 고군분투는 어느

하는 곡으로 기능한다. 자연스럽게

손나은이 드라마와 예능을 통해

정도 인정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원곡과 ‘NoNoNo’ 모두에게는 ‘

얼굴을 알리긴 했으나 그 영향력도

그러나 평자는 사실 에이핑크에 별

복고’란 이름이 붙여질 수 있을

크지는

하물며

감흥이 없는 사람들 중 하나이다. 그

것이다. 이는 다채로운 이미지를

윤보미의 예능 출연은 어떤 도움이

이유를 그들의 노래와 뮤직비디오,

보여주되

되었겠는가.

가수로서의

초점이

직접적인

영향을

않을

것이다.

이미지로

나누어

근본은

맞춰져야

세련됨에

아이돌

말하고자 한다.

그룹에게는 적지 않은 마이너스

시기를 맞이할 것이다. 꾸준하고

1. 노래의 경우: 양날의 검, 매시업

요소로 작용한다.

고정적인

리스너로서

따라서

그러나

에이핑크는 팬층이

언젠가 결국

대중을

에이핑크에

대한

에이핑크의

기획자는

이끌고 있다. 그 와중에 걸그룹

평자의 인상은 옛날에 들어봤음

‘NoNoNo’의 인기를 유지하면서도

붐은 막을 내려가고 있고, 콘셉트의

직한 노래를 ‘새삼스레’ 다시 부르는

그 복고적이고 예스러운 분위기를

빈곤과 원천기술의 부족은 결국

그룹에 가깝다. 이는 데뷔곡인 ‘

탈색할 방안을 찾게 되었을 것이다.

수많은 걸그룹을 내리막길로 내몰고

몰라요’부터

반향을

평자는 반년에 육박하는 공백이

있다.

일으킨

이르기까지

아마 이러한 상황과 관계가 있지

에이핑크는

대단하지는

적지

않은

‘NoNoNo’에

다크호스이다.

일관된 이들의 곡 성향과 무관하지

않았을까 싶다. 물론 금년 1월

그들이 물려받은 걸그룹의 정수는

않다. 에이핑크의 타이틀 곡들은

데뷔 1000일 기념으로 싱글 ‘Good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온 비전 같은

우리의 전통 가요(?)도 레퍼런스가

Morning

것이다. 그들은 충실히 100%의

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이런 콜라주

했으니 이는 팬 서비스 이상도

소녀를 추구했다. 에이핑크 함부로

같은 곡이 횡행하면 시장의 질서가

이하도 아니다. 신보 “Pink Blossom”

까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단 한

어지러워지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이 극복해야 할 첫 번째 문제가

번이라도 100%의 소녀였느냐?

동시에 안겨주었다. 이러한 사실을

바로 이러한 무분별한 매시업으로

않지만

꾸준한

Baby’를

발표하기는

야기된 폐해들이라 하겠다.


2. 뮤직비디오의 경우: 식상한 시각

‘핫이슈’ vs ‘몰라요’.

이미지의 반복

이후

지나면서

에이핑크는 ‘이미지의 고착을 경계’

포미닛뿐만

하고 ‘변신의 필요성을 인지’해야 할

철저하게 그 식상함에 집중된다. ‘

아니라 섹시 노선 일변도의 한국

시기인 듯 싶다. 물론 ‘청순하지만

몰라요’, ‘My My’, ‘NoNoNo’ 세 곡의

여성

뮤직비디오는 하나의 일관된 시각

이미지로

뮤직비디오와

관련된

문제는

일정한

결론

에이핑크는

시간이 단순히

전체와

대립된

왠지 이웃에 있을 것 같은 친숙한

자리매김하게

된다.

소녀’에서 갑자기 ‘세상을 집어삼킬

이미지를 고수한다. 꽃이 드리워진

여기에는 그룹사(史)와 관련된 몇

것 같은 탕녀’로 변신하는 것은

파스텔

가지 사건들이 관여했을 것이다.

마치 <폴아웃>이나 <엘더스크롤

옷을 입고 있는 에이핑크 멤버들,

손나은의

소소한

> 시리즈 같은 서양 RPG에서

남심을 자극하는 적당한 제스쳐.

드라마를

통한

특히 제스쳐의 문제는 안무에서도

대박(2012)년,

두드러지는데, 이들의 춤은 적절히

(2013년)에

여성미를 강조하다가도 조금만 더 움직이면 야해질 지점에서 멈춘다.

에이핑크의 이미지는 어느 정도

일이지만

힙이 두드러지는 춤을 추다가 “

정착되었다.

적지 않다. 다만 에이핑크는 게임

아차, 나 뭐하는 거?”하고 몸을

다만

추스르는

이미지의

톤의

건물,

것이다.

밝은

이는

색의

평자와

아이돌계

인기(2011년), 정은지의

인기

카르마(karma)를

‘NoNoNo’의

성공

캐릭터의 성향을 선(善) 성향이나

그룹을

악(惡) 성향으로 만드는 것과 같다.

버티게 해준 각각의 사건으로 인해

선 성향을 유지하는 것은 어려운

이르기까지

이러한

정착은

따르는

이득도

속 캐릭터가 아닌 대중문화산업의

일원이므로, 특정 성향을 유지하는

10개월 정도의 텀을 두고 먼저

것에 대한 이득을 잃어버린다면

유발한다. 물론 3년여의 시간 동안

데뷔한

당연히

이러한 시각 이미지 구성이 계속된

높은 위치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스스로를 움직일 것이다.

데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

이미지의 고착을 피했기 때문이다.

3월

이유’와 평자와의 접점이 없다는 게

걸스데이가 ‘기대해’를 발표했을 때

보면 에이핑크는 기존의 스타일을

문제이겠지만.

긍정적인 파격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은 두 가지 이유에 기인한다. 1)

시간이

‘반짝반짝’, ‘한 번만 안아줘’에서

되돌아보면, 이들의 신보가 섹시

이들은 미약하나마 성적인 코드를

콘셉트로의

뮤직비디오 내외의 이미지를 모두

먼저

어떤

포괄한다. 이는 자연인인 에이핑크

안아줘’는 1인칭 시점의 뮤비를

않을까. 물론 평자는 환골탈태한

멤버들이

선보여 수용자의 머릿속에 야릇한

에이핑크를

있고, 일부는 방송을 통해 꾸며진

상상을

하나지만 말이다.

이미지일

수도

후속곡 ‘여자대통령’은 불과 3개월

중요성을

지니는

아마도

차이를 두고 연이어 발표되었다.

가수로서의

이미지란

지니는

노래와

이미지일

있다.

이들

것은

걸스데이가

선보였다.

지점의 고찰을 요한다.

대동소이한데,

입장에서

모회사(큐브 주력

상품인

곡의

오늘날

특히

남긴다.

꾸며진 이미지일 텐데, 이는 몇몇 기획사의

불러왔다.

그에

잃어

같은 사람들로 하여금 갑갑증을

3. 가수로서의 이미지 고착

고착을

자연스레

쌓거나

2)

분위기는

‘한

번만

‘기대해’와

이는

틀에서

걸스데이의

에이핑크는

이미지를 짧은 시간 내에 바꾸는

엔터테인먼트)의

데 도움이 되었다. 이에 더해 2012

포미닛과는

다른

이들의

‘공백

아닌

공백’은

층을 공략해야 한다. 이는 수익의

이미지 변신에 큰 도움이 되었다.

다양성을 추구하기 위해서 당연한

물론 어느 순간 에이핑크가 멜빵

일이다. 따라서 에이핑크는 ‘포미닛’

바지를 입고 비욘세 춤을 출지는

의 안티테제 같은 느낌을 지닌다.

모를 일이다. 다만 이 모든 ‘행운’이

데뷔곡의 이름부터 그렇지 않은가.

에이핑크에게도 그대로 일어나길 바라는 것은 무리다.

반대되는

26일까지

공개된

고수하려는 흘러

성향으로 티저를

것으로 지금

이동을

시작점으로

보인다.

순간을

‘강요당하는’ 자리매김하지

기다리는

사람


참고하고 급격히

있다는 동시대로

추측을

가능하게

올라왔다는

점도

한다. 높이

살 만하고, ‘Crystal’을 비롯한 수록곡들이 곳곳에서 보여주는 우아함은 향후를 기대하게 한다. 다소 삐걱거리는 부분이 없진 않고, 내용적으로도 새로운 것은 별로 없다. 그러나 적당히 간지러운 타이틀 ‘Mr. Chu’의 화사함이 기분 좋게 다가오는 것은, 에이핑크가 기존의 이미지를

고수하면서도

(드디어)

음악적

웰메이드를 지향한 덕분이 아닐까. (또한 ‘Radio Edit’이 아닌 ‘On Stage’란 표기도 흥미롭다.)

1st Listen : 2014.03.21~03.31 (http://idology.kr/393 )

ML : 아이돌 그룹을 시장에서 선두를 다투는 에이핑크

1군, 1군을 차용하는 2군, 1군의 특정 요소를

Pink Blossom

과도하게 부풀려 어그로를 끄는 3군 등으로

에이큐브 엔터테인먼트

구분할 수 있다고 치자. 에이핑크의 경우

2014년 3월 31일

이들의 경쟁을 느긋하게 따라가며 틈새를 찾고, 흘리고 간 것들을 주워담아 재활용하는

김영대 : B 파트로의 트랜지션이

모양새가 주는, 2.5군 비스무리한 재미가 있다.

영 개운치 않은 느낌에 후렴의

케이팝 아이돌 뮤직비디오의 요소들을 (치장을

비트도 뭔가 작위적인 듯싶었는데,

더하기는커녕 원본에 있던 치장까지도 죄다

EP

편곡에

걷어내고 단순하게 만들어) 고루하게 짜깁기한

가까웠을) 버전을 들어보니 결국

‘Mr. Chu’ 뮤직비디오의 휑한 맛이 이 재미를

“입술 위에 chu 달콤하게 chu”의

잘 드러낸다. 다만, 이번에도 역시 (잊혀졌다가)

싱코페이션에서 호소력을 끌어내기

재발견되는 듯한 인상이 강해 (이번에도 역시)

위한 설정임이 드러난다. 세련된

안타깝다.

말미에

수록된

(원

미디엄 템포 “So Long”와 함께 모양새지만,

유제상 : 1. 타이틀 곡 ‘Mr. Chu’는 아주 잘 뽑혀

소녀시대가 빠뜨리고 간 지점을

나왔다. 역대 메이저 아이돌의 어떤 타이틀과

대신 메우기엔 아직 여러모로 갈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 2. 타이틀 외의

길이 먼 느낌.

다른 곡들에 무심한 에이핑크 전통의 곡

분위기를

양분하는

구성은 그대로. 3. ‘Mr. Chu’는 온스테이지 미묘 : ‘Sunday Monday’의 보컬

버전보다 일반 버전이 더 듣기 좋았다. 전주의

질감이나, ‘사랑동화’가 보여주는

건반 소리 때문일까? 4. 잘 정돈된 음반이지만

“이

이것으로 평자와 에이핑크의 인연이 결착나진

정도의

발라드”라는

복안

등은, 아마도 이 음반이 카라를

않은 듯.

**이미지 출처 : ⓒ 에이큐브


예쁘고 섹시하고 핫하고 잘 나간다 외칠 때, ‘다른 여자’ 를 “멋있다”고 감탄하는 것은 분명 이례적이다. 그러나 가사의 행간은 노래의 내용이 음악과 직접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화자는 “춤추는 작은 까탈레나” 와 “함께 춤 추고파”하며 그곳에 “한 시간 두 시간”을 넘어 “뼈를 묻고 싶어” 한다. 그녀에게 바라는 것은 “ 흔들흔들 손 흔들고, 네 목소리가 쉴 때까지 소리 질러” 로 표현되며, 그녀와의 접촉은 “스쳐 가는 두 손”이다. 클럽, 혹은 공연장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표현들이다.

하이퍼의 하이퍼 오렌지캬라멜의 ‘까탈레나’

즉 화자가 동경하는 까탈레나는 보이쉬한 학교 선배나 미모의 학생회장이 아니라, 최소한 클럽의 ‘댄싱 퀸’, 혹은 공연장의 스타로 묘사되는 것이다. “녹-녹-녹-녹아든다”는 그래서 더 재미있다. 녹음된

(http://idology.kr/403 )

보컬을 편집해 반복시키는 것은 케이팝의 대표적인

글 : 미묘, 2014년 4월 8일

소리 풍경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이펙트를 입으로 재현해 “농농농녹아든다, 노롱농롱녹아든다”

개인적으로 관심을 두는 팀은 아니었음을 고백해야 할

가 되어버린 이 구절, 제법 유쾌한 패러디처럼 들린다.

것 같다. 노골적인 오타쿠 코드와 신경 쓰이는 목소리,

거기에,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자연산 문어와 양식

뽕끼 멜로디와 코믹한 콘셉트, 그 어느 것도 나의

인어의 은유, 그 가격의 변동, 액자 속에서 키취하게

마음을 근본적으로 잡아끄는 것들은 아니었다. 그러나

빛나는 인어의 이미지 등을 포함시키면, ‘까탈레나’

지난달 발매된 ‘까탈레나’만큼은 도저히 그냥 넘어갈

는 완연히 아이돌 팝에 관한 은유 덩어리로 보인다.

수 없었다. 도처에 의미불명인 것투성이기 때문이었다.

(디지페디가 “기획사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아니라

이를테면 직접 촬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유일한

했음에도 말이다.)

컷이 <미스터 초밥왕>적으로 연상하는 바닷속이며, 그것이 하필 참치도 아닌 백상아리라는 식인 것이다. (

“주띠 메리”가 대체 뭔가?

혹시나 해서 찾아봤지만 백상아리 밑의 작은 물고기도

그러고 보면 이 곡의 무국적성도 우리가 한국의 아이돌

상어의 먹이 찌꺼기를 받아먹는 전갱이과의 동갈방어

팝을 말할 때 곧잘 접해온 것이다. 가장 눈에 띄는 “주띠

(pilot fish)로 추정되며, 일본어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

메리”는 어떠한가. 펀자브 민요를 샘플링한 이 부분은,

식용이 되기도 하지만, 맛은 좋지 않다”고 한다.)

단편적으로 삽입하고 넘어가기 쉬운 “오이호이호이”

뮤직비디오 감독 디지페디는 최근 <아이즈>와의

의 길게 늘어지는 끝 부분을 집요하게 살려 신비감을

인터뷰에서 이 비디오가 딱히 심각한 의미가 없다고

더한다. 대체 무슨 뜻일지 궁금해 잠을 설친 게 나 뿐은

말했다. 그러나 “까탈레나” – “착할래나?”의 라임에

아닐 것이다. 찾아본 바에 의하면 ‘주띠 메리’는 결혼식

무릎이 풀린 이상, (과잉해석을 경계하면서) 이 희한한

때 부르는 민요라 하며, ‘주띠Jutti’는 펀자브 전통의상의

텍스트를 요모조모 뜯어보며 시시한 의미들을 캐보고

여성용 신발을 말한다고 한다. “주띠 메리”는 힌두어로

싶은 욕망을 어찌 참을 수 있을까.

“내 신발”이란 뜻이며, “알 게 뭐냐”는 의미의 다소 거친 표현이라는 증언도 접수했다. (“파울라 메라”는 “몰라”

메타-아이돌 팝?

란 뜻이라고.)

이 곡은 언뜻, ‘아이돌에 관한 아이돌 팝’, 곧 ‘메타-아이돌

중요한 것은 이 샘플이 가사의 의미 때문에 가져온

팝’처럼 들리고 또한 그렇게 보인다. 어떤 이는 여성을

것은 아마도 아닐 것이란 점이다. 물론 “도도한 콧대

동경하는 여성의 마음을 담은 가사에서 유사-동성애적

까탈레나 / 에라 나도 모르겠다 / 홀려 들어가”라고

코드를 읽기도 하는 모양이다. 여성 아이돌들이 자신을

이어붙여도 말이 되기는 한다. 그러나 “오이호이호이”


의 발음과 “홀려 들어가”가 보이는 두음 “호”의 반복이

그러나 그 층위가 진정 흥미로운 것은, ‘까탈레나’가

“떠-떠-떠-떨려온다”와 같은 패턴을 보이는 음성적

‘원본’으로서의 일본을 재현하는 데에 그치지 않기

효과를 위해 선택됐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

때문이다. 유튜브를 떠도는 일련의 “일본 엽기 예능”

진정한 의미’를 무시하고 외형만을 가져오는, 전형적인

류의 비주얼을 가볍게 뛰어넘는 파격적인 콘셉트는,

엑조티즘의 예이다.

이미 ‘병맛’이라 형용할 단계를 넘어섰다. ‘쓸 데 없이

그리고 그것은 우연하게도, 디스코의 특성과 맞아

고퀄’로 점철된 수많은 디테일과 섬세한 감각으로

떨어진다. 과장된 스타일로 번쩍이던 디스코 컬쳐는

조율된 성적 코드 속에 의미불명의 이미지들이 갖은

세계 각지의 모습을 마구 끌어들였는데, 당연히도

상상을 쏟아내게 만든다. 그중 가장 강렬하게 모든

문화인류학적 접근이나 상대주의와는 그다지 관련이

이미지를 감싸 안으며 이 비디오를 한 차원 위로 끌고

없었다.

느낌에

올라가는 것은, 아이돌로서의 ‘자학 개그’의 연상이다.

이집트의

(다시, 디지페디의 인터뷰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미지와 곧잘 결합하는 디스코의 스테레오타입을

그리고 그 비디오 속에서 오렌지캬라멜은 간장 그릇에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리고 ‘까탈레나’

와사비를 던져 넣고 발로 휘저어버린다. 일본에서는

는 미국에서 발생한 디스코를 대서양 건너 가져다

어떻게 먹거나 말거나, “우리는 이렇게 먹는다”는 듯이.

가까웠던

‘이곳만

아니라면

디스코의

어디든지’라는

엑조티즘은,

고대

제멋대로 버무린 유럽의 유로 디스코를, 다시 유라시아 대륙 반대편으로 가져와 다시 제멋대로 버무리면서,

원본과 사본

파키스탄의 민요를 섞어 넣은 것이다. 그야말로 물고

뻔뻔해서 당당한 엑조티즘의 얼굴로 까탈레나는

물리는 엑조티즘의 연쇄다.

거만한 웃음을 지어보인다. “그래서 뭐?” 인어로 분한 오렌지캬라멜은 ‘진짜 여성’이고, 그럼에도 ‘양식 인어’ 이다. 또한 인어임에도 불구하고 (가짜) 연어, 새우, 고등어가 되어 초밥 벨트 위에 오른다. ‘가짜’보다 ‘ 가짜’ 같은 ‘진짜’의 ‘가짜’ 모습이다. 반면 문어로 분한 까탈레나 김대성은 ‘여장 남자’이고, 그럼에도 ‘ 자연산’으로서 알을 흩뿌리며 ‘여성’으로서의 매력을 과시한다. ‘진짜’보다 ‘진짜’ 같은 ‘가짜’. 그리고 그(녀) 를 “따라따라 따라 하고파” 하는 ‘진짜’ ‘가짜’. 그야말로 ‘원본을 초월하는 사본’, 아니, ‘원본의 원본’을 초월하는 사본의 자신감 넘치는 자기선언이다. 이것은 하이퍼의 하이퍼다.

초밥왕의 소중한 와사비 그렇게

엉망진창의

엑조티즘을

체화하고

내면화하기까지 한 문화를 우리는 알고 있다. 일본이다. ‘아이돌 종주국’인 일본은 극동 아시아의 아이돌 시스템과 정서, 감상법까지 모든 것을 만들어냈다. 한국의 1세대 아이돌들은 쟈니스와 헬로 프로젝트, 오키나와 액터즈 스쿨이란 거인의 어깨 위에 앉은 새들이었다. (그러고 보면 일본에서 애프터스쿨이 유로

사족 : 케이팝을 본 성룡이 한국에서 ‘무난한 케이팝’

디스코도 묘한 대칭을 이룬다.) 일각에서 ‘왜색’이란

으로 더블제이씨(JJCC)를 데뷔시킨 요즘, <어벤져스

소리를 들었다는 ‘까탈레나’의 뮤직비디오는 그래서,

2> 촬영현장을 본 심형래 감독은 ‘<어벤져스>를

또 하나의 층위를 더한다.

능가하는’ <디 워 2>를 만들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 후 와사비의 운명은…

경향신문, 4월 5일).

선보이는

훵크-디스코와

오렌지캬라멜의


오요 : 크레용팝이 등장하며 오렌지캬라멜의 아성에 도전하는 듯했으나 이 싱글은 이미 이 깜찍하고 키치한 걸그룹이 한계를 돌파하여 이미 독자적인 차원 구축에 성공하였음을 보여준다. 자기 복제라는 점에서 기존의 싱글들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다만 가사를 통해 전달하는 메시지, ‘병맛’이란 단어를 고려하지조차 않은 듯 뻔뻔한 태도, 극한으로 밀어붙여 ‘인명 경시’라고까지 일컬어지는 뮤직비디오까지, 이미 오렌지캬라멜은 본인들만의 원더랜드를 훌륭하게 만들어냈다.

다만

‘까탈레나’에

사족처럼

달린

수록곡들은 여전히 의아하다. 이 그룹에게 앨범 단위의 무언가를 바라는 이가 얼마나 될까. “도도한 콧대”를 치켜세운 ‘까탈레나’만으로도 충분할 텐데 말이다. 유제상 : 펀자브 민요 ‘주띠 메리(Jutti Meri)’의 멜로디를 딴 곡 ‘까탈레나’가 타이틀인 싱글 앨범. 인명 경시로 KBS에서 방영불가 처분을 받은 뮤직비디오는

1st Listen : 2014.03.11~03.20

차치하더라도, 주술적인 후렴 “Jutti Meri Oye Hoi

( http://idology.kr/323 )

Hoi, Paula Mera Oye Hoi Hoi”에서 오는 기이한

(커버아트)

기분은

오렌지캬라멜 까탈레나

‘립스틱’

이후

‘까탈레나’의 분위기를 이어받은 다음 트랙 ‘So Sorry’

2014년 3월 12일

나 애프터스쿨이 생각나는 ‘미친 듯이 울었어’는 좀

13 : 걸그룹이 ‘병맛’을 소화하는 방식의 정석을 있는

오렌지캬라멜.

‘인명

경시’로

노이즈마케팅에 성공한 뮤비로 그녀들이 돌아왔는데, 별 기대를 하지 않아서인지 (혹은 어차피 우린 모두 그녀들에게 빠져들 운명이었던 건지) 뽕끼 가득한 노래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콧소리, 어이없는 국적의 추임새(“주띠메리~”)에 자꾸만 재생버튼을 누르게 만든다. “그래, 이런 게 병맛이고 뽕끼다!” 하며 배꼽 때를 파주는 그런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달까. 물론 오렌지캬라멜이 다소 마이너스러운 유닛이라 가능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거기다가 팔딱거리는 인어로 분한 세계 미모 2위(…)의 찬란함은 저렇게 망가져도 드러나는구나, 하는 것 역시 그녀들의 탁월한 셀링 포인트다. PS. 포미닛이 아마 이런 걸 벤치마킹하고자 했던 것 같지만…

비교불가이다.

예상했던 평자의 뒤통수를 후려친 뚝심 있는 한 방. 단

플레디스

보여주고

전작들과도

오히려 이쪽이 애프터스쿨의 본진 역할을 할 것이라

미적지근한 감이 있다. **이미지 출처 : 뮤비 캡춰 ⓒ 플레디스 주띠 : CC BY World Around Richa https://www.flickr. com/photos/worldaroundricha/9066101702/sizes/l/


ⓒ NANGMANSPY letmeflywoo.tumblr.com

한 친구의 어머니가 제주도 올래길에 갔을 때, 올래길 코스를 모두 걷는 것을 목표로 걷고 계신 육십대 아저씨를 만났다고 했다. 아주머니는 그 아저씨께 "힘들지 않으세요? 올레길 다 걷는 건 젊은 사람들도 잘 못하는 건데" 라고 말하셨더니 아저씨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젊은이들은 못하면 나중에 또 와서 걸으면 되지만, 난 이번이 아니면 내 평생 올레길을 다 걸어보진 못할 거야. 더 늙기 전에 완주 해야지." 내겐 그 이야기가 꽤 큰 충격이었다. 우리는 항상 '다음에' 혹은 '나중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나이가 들면 들 수록 그 말들을 쓰는 횟수도 줄 것이라 생각하니 이상했다. 그 이야기를 들려준 친구와 "내가 느끼는 내일과 그들이 느끼는 내일은 다르겠구나"라고 얘기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을 다르게 느낀다면 자연스레 세상도 다르게 보일테지. 그들의 나들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2 그들의 나들이_1


ⓒ NANGMANSPY letmeflywoo.tumblr.com

Rain, 추억이 아직 없어요. 고작 스무살 여자 뿐이여서. 투개월 김예림이 부른 'Rain'의 첫소절이다. 스무살적엔 모든지 해보고 느껴보고 싶겠지만, 오십, 육십, 칠십…이 되다보면 대부분 익숙한 것일 테고, 이제는 새로운 것들을 받아드리기 보단 지금까지 느꼈던 것들과 추억들을 되새김질 하는 삶을 살아가게 될터이다. 우리는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재미있게 살아보려고 공연도 보러 다니고, 친구들도 만나고 연애도 하지만 그들에게 그런 일들은 소식적 추억일 뿐. 지금 하루하루를 살아간다는 건 삐그덕거리는 무릎의 관절을 조금씩이라도 움직여 기름칠을 하고,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이 봄의 햇살을 느끼는 것이겠지. 저기 한강을 걷고 있는 부부는 추억을 회상하는 중 일지도 모른다. “여보,기억나오?”

#2 그들의 나들이_2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뉴스타파와 JTBC의 세월호 사고 관련 뉴스들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들의 대부분은 ‘왜 그런 행동을 한 것일까?’라는 물음으로 이어졌고, ‘얼렁뚱땅’, ‘스리슬쩍’, ‘대충대충’, ‘빨리빨리’라는 표 현들을 연상시켰다. 나는 얼굴 없는 대상들을 향해 화를 냈다. 어째서 그런 행동을 했느냐고, 왜 그랬냐고. 어떠 한 대답도, 구차한 변명조차도 돌아오지 않았다. 답답하고 화가 나서 눈물이 났다.

얼마 전,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일상의실천’은 강정 마을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하여 포스터 시리즈를 제작 하였다. 문제가 불거진 지 몇 년이 지나 어느새 잊혀지고 있는 사안을 다시금 조명한 것이다. 포스터 시리즈의 메 인 문구는 ‘너와 나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였다. 나는 이 문구가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잘 제시해주 고 있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짧은 소설을 쓴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는 우리 사회의 획일화 된 모습이 좀 더 다채로운 모습으로 변화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인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영향을 끼치며 살아 간다는 것을 인식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선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밑바탕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타인을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한 것임을 전제하고,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이해하려 노력한 다면 그러한 자세만으로도 우리 모두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사실 우리의 일상과 동떨어진 것으로 여겨지는 그 어떠한 현상이라도 조금만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우리와 아 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잠시의 귀찮음, 잠시의 편이를 위해 이러 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런 이들이 누군가에게 해가 될지도 모를 일을 천연덕스럽게 행한다. ‘그게 나 랑 무슨 상관이야?’, ‘해가 될지도 모르지만 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잖아?’라는 식의 안일한 사고가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슬프게도 이러한 인식과 사고가 세월호 사고 도처에 만연해있음을 뉴스를 통해 보았다. 금전적인 손해가 발생할지도 ‘모를’ 일은 눈을 치켜뜨고 감시하고 있으면서, 사람 목숨이 달려 있을지도 ‘모를’ 일에는 왜 이토록 안일하게 구는 것일까.

화를 낸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는 세월호 사고와 관련된 뉴스를 다시 돌이켜 본 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생각해보았다. 결론은 글이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을 쓰는 것이니까. 나는 짧게나 마 졸렬한 글을 통해서라도 내가 갖고 있는 의견과 시각을 표현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 이 글이 세월호 사고와 같은 또 다른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나는 그렇게 거창한 일을 행하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글을 쓰는 것이기에 쓸 뿐이다. 생각이 생각에 서 그치면 그 어떠한 것도 변화시키지 못한다.

나는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는다. 때문에 타인에게 도움을 주진 못할지라도, 최소한 해를 끼칠지 ‘ 모를’ 일들은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한다. 이러한 다짐은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다.

포스터:

일상의실천(everyday-practice.




흑역사




그림: 젖은잡지 두리





건축이 좋아. #8 오랜 시간의 꿈이 머무는 곳, 꿈마루 aoikasa

“근대건축물의 보존 문제는 사실 오늘날 우리 도시가 가 지고 있는 중요한 이슈 중 하나라 생각이 됩니다. 선생 님께서 생각하시는 근대건축물 보존의 기준은 무엇인가 요?” “근대건축물 보존의 기준에 대해서는 알로이 리글(Alois Riegl)이 언급했듯이, 우선적으로는 ‘오래된 것’, ‘미학 적 가치가 있는 것’, 그리고 ‘현재 사용가치가 있는 것’ 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게 가장 중요한 판 단 기준은 바로 세 번째 즉 ‘현재의 사용가치’입니다.” -2013년 5월 28일 조성룡 건축가와의 질의응답 중

‘꿈마루’ 그 이름부터 설레임을 가득 건네 주는 이 곳. 그러나 이 곳을 실제로 찾은 이들은 당황할지도 모르겠다. 어린이대공원 내에 있다는 위치적 특성이나 ‘꿈 마루’라는 이름이 주는 이미지로 인해 상큼하고 밝은 공간을 기대했다면, 살짝 ‘폐허’같아 보이는 이 공 간이 적지않게 당황스러움을 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처음의 당황스러움을 잠깐 뒤로 한 채 이 건물을 하나 하나 살펴보면 생각보다 이 건물은 이야기꺼 리가 많은 건물이다. 골프장의 ‘클럽하우스’로부터 시작하여 공원 ‘관리사무소’로 사용되다가 이제는 시민 에게 열린 공간인 ‘꿈마루’가 되기까지 수 십년간 쌓인 시간의 이야기. 건축가 나상진부터 조성룡까지의 대 한민국 건축가들의 이야기. 조선시대 왕릉에서 골프장으로, 골프장에서 어린이대공원으로 변화한 장소의 이야기까지…


‘꿈마루의 시작’ 꿈마루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은 어쩌면 ‘우연’에 의한 것이었다. 항간에 많이 알려졌듯, 이 프로젝트는 원 래 어린이대공원 내 관리사무소로 사용하던 교양관을 철거하고 새로운 건물을 지으려다 이 건물의 범상치 않음을 알아본 서울시 공무원(푸른도시국 최광빈국장)이 조성룡 건축가에게 이 건물을 헐어버리고 새 건 물을 지어도 될지 질문을 하기 시작하며 시작된 프로젝트였다. 조성룡 건축가는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 고 있던 이 건물에 쌓인 층위들을 벗겨내기 시작하며 기존의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 활용하는 방안을 제시 한다. 그렇게 한 공무원과 건축가의 이 범상치 않은 건물을 눈여겨 보기 시작함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꿈 마루’이다.

층 위 1. 건 축 가 나 상 진의 ‘꿈 ’ 지금의 어린이대공원이 위치한 곳은, 순종의 비, 순명 황후의 능이 있던 곳이었다. 1926년 일제는 순명 황후 의 능을 옮기고 이 자리에 골프장을 건설하였는데, 이 골프장은 지금까지 알려져 있기로는 서울에서 가장 오 래된 골프장이었다. 1970년 12월 5일 경향신문 기사 에 따르면 1941년 제 2차 세계 대전의 여파로 농지로 변했던 이 곳은 1950년 다시 이승만대통령의 지시로 다시 이 자리에 골프장을 건설하였다고 하나, 6.25 전 쟁으로 인해 다시 이 곳은 논밭으로 변하였다. 다시 국 제규격의 골프장의 형태를 갖추었던 것은 1954년 7월 의 일이었으니, 전쟁이 끝나자마자 골프장부터 갖춘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이해가 가기도 하다. 이후 1969년 10월 무려 2억원을 들여 클럽하우 스를 지었다고 하는데 바로 이 클럽하우스의 신축이 ‘꿈마루’의 시작이었다. 그런데 이듬해인 1970년, 박정희대통령은 이 곳을 ‘어 린이대공원’으로 용도를 변경할 것을 지시한다. 기사 에 따르면 서울컨트리클럽회원들에게 대지를 수용하 고 서울시가 기초적인 시설을 우선적으로 갖추면 크게 시비를 들이지 않고 ‘꿈의 공원’을 만들 수 있다는 계 산 하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게다가 그 명목이 ‘어린이’ 를 위한 것이니 서울컨트리클럽의 무상 기부까지 기대

그림�������년�12월�5일�경향신문� ‘골프장�잡음�씻고�펼쳐질�어린이�낙원’�


하고 있는 모습을 기사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무려 2억원이나 들여 지은 나상진의 ‘서울컨트리클럽하우스’는 그 기능을 1년여밖에 하지 못한 채, 용도 변경이 되어야 하는 상황에 놓였던 것 이다.

층 위 2. 잃 어버린 시간 들 , 어린이 대 공원 교 양 관 나상진의 서울 컨트리 클럽 하우스는 군자동 골프장, 즉 서울 컨트리 클럽의 가장 중심 시설이었으며, 그 기 능은 골프장의 기능을 지원하기 위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라커룸과 샤워실, 그리고 레스토랑이 있었 던 이 공간은 1970년 어린이 대공원으로 변화하게 됨에 따라 그 기능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그 이름도… 어린이대공원이 되며 이 곳은 ‘어린이대공원 교양관’이라는 이름으로 전시공간과 관리사무소 등으로 사용 되었다. 그렇게 되며 원래의 강렬하고 거친 콘크리트의 느낌의 건물이 아닌 알록달록 페인트칠을 더하여 ‘어린이’스럽게 (대체 왜 어린이는 알록달록만을 좋아한다고 생각할까?) 덧칠해져 갔다. 그리고 아무도 이 건물이 옛 ‘컨트리클럽하우스’인지 알아볼 수 없게 그렇게 변화하였다.

층 위 3. 다 시 찾 은 ‘꿈 ’, 건축 가 조 성룡 의 기억과 재 생 조성룡 건축가는 2002년 선유도 공원 프로젝트를 진행했던 건축가이다. 한 강정수장을 생태공원으로 변화시킨 지 10년 만에 그는 어린이대공원 교양관 을 ‘꿈마루’로 재창조하는 작업을 진 행하였다. 신축이 결정되고 설계자가 정해져 있었던 상황에서 다시 조성룡 건축가가 이 작업에 관여하기 시작한 것은 사실상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 다. (신축 설계를 담당하기로 했던 설 계사는 결국 꿈마루의 실시설계를 담당하였다.) 여러 번 덧칠한 페인트들을 벗겨내며 원래의 모습과 그 후 의 변경되는 모습들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건축가 조성룡은 앞에서 이야기 했듯 ‘현재의 사용가치’에 주목 하며 이 곳이 가진 시간들을 살려내는 작업을 했다. 그 결과 원형 복원이 아닌 그 간의 시간의 흔적들을 그 대로 남겨두는 방식을 택하였다. 그 결과 꿈마루의 벽에는 흰색, 파란색 다양한 색의 페인트가 여전히 남 아 있으며 (사실 이 모든 것을 벗겨내는 건 비용적인 측면에서 무리이기도 했다.) 원래 건물의 기둥과 보가 그대로 드러나 그 구조가 노출되며 주변의 풍경을 담는 프레임이 되었다. 샤워실이 있던 공간은 화장실과 관리실로 사용되며 사방으로 열려있는 꿈마루 내부의 솔리드한 공간이 되었으며, 락카룸이 있던 공간은 하늘로 열리고 데크가 깔리고 나무가 심기며 생명가득한 테라스 정원이 되었다. (조성룡 건축가께서 주신


팁에 의하면, 이 공간에서 여름 저녁 마시는 맥주의 맛은 최고라고. 상상만 해도 즐겁다. ) 벗겨낸 페인트 흔적이 그대로 남은 계단 옆에는 유리 엘리베이터가 들어섰으며, 계단참에는 안그라픽스의 안상수 교수가 디자인한 타이포 한글 나무가 새겨졌다. 거친 표면의 콘크리트 부재에는 꽃들이 심겨 화분이 되었으며 3층 에는 북까페가 들어서 어린이대공원을 찾는 어린이들과 시민들의 편안한 쉼터가 되어준다.

옛� 것과� 새� 것의� 공존�� 푸른� 색� 페인트가� 남아� 있는� 계단� 옆에는� 유리� 엘리베이터가� 들어� 섰 고�� 계단참에는� 한글타이포나무가� 그려졌다�� 맨�살을�드러낸�구조�사이�사이로는�빛과�주변 의�풍광이�담기며�새로운�‘꿈마루’의�풍경을�만 들어낸다���


에필로그. 지난 달, 시게루 반에 대한 원고를 쓰며 우리나라에선 누가 건축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관심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할지 모르겠지만 처음 떠오른 건 이미 고인이 되신 건축가 정기용 선생님. 그리고 얼마 후 너무나도 마음이 아픈 사건이 일어났고, 분노밖에 할 수 없던 나는 망연자실함과 우울함 속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트위터를 통해 세월호의 도면을 구하시는 조성룡선생님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그 다음날 밤, 도면을 구하셨다는 트윗, 그리고 그 다음 새벽, 대학원생들과 함께 밤을 새고 모형을 진도로 보 내셨다는 트윗… 배의 구조를 알기 쉽게 모형을 제작하여 사고현장까지 보내시는 모습을 보며 나는 분노 만 하고 있던 내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고 그래도 이런 어른이 건축계에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 였다. 의재미술관과 선유도공원, 꿈마루까지 … 건축에서 느껴지던 조성룡 선생님의 진정성이 인간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던 듯 하다.



Chapter 11 {거리두기}의 생존매뉴얼 별 볼 일 없는 스펙으로

1) [산문정신] 외형적 규범, 낭만적 감상, 시적 감각을 배제하고, 현실을 객관적으로 탐구하여 자유로운 문장으로 표현하려는 문학상의 태도.

2) 플라톤이 국가론에서 시인추방론을 부르짖은 것은 시인에 대한 개인적 모멸감 때문이 아니었다. 플라톤 본인은 시인을 긍정했으며

잘 다니던 4년제 대학을 때려치우고 서울로 상경해

시의 가치도 잘 알고 있었다.

발 빠르게 2년제 디자인과를 졸업했다.

하지만 아테네가 도탄에 빠지고 국민들이 감정적으로 동요하자

막상 졸업하고 나니 받아주는데도 불러주는 곳도 없다.

우두커니 시가 가지는 서정성을 지켜만 볼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이 악물고 익힌 갖가지 처세술과 생존법을 이용해

서정성이라는 것은 때론 매우 위험한 상황을 초래하기도 한다.

가까스로 작은 회사에 취직했다. 그러다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서정시인들은 강물을 보며 강과 하나 되기를 원했고, 하늘에

팀장으로 승진해 어린나이에 만성 위염에 시달리기도 했다.

떠다니는 구름과 하나 되기를 갈구했다.

앞으로 수주에 걸쳐 별 볼 일 없는 스펙으로 디자인계에서

플라톤의 입장에서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발휘되어야 할 덕은

무사히 살아남는 방법을 쓸 예정이다.

존재론적 닮기가 아닌 대상과의 명확한 거리감을 유지한 채 지금

그러므로 이 글은 처절한 생존기이지 훌륭한 디자이너가

눈앞에서 펼쳐지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일이었을 것이다.

되기 위한 지침서가 아니란 것을 먼저 말씀드리고 싶다. 그런 걸 내가 알 리가 없지 않은가.

3) 트위터에서 누군가 ‘슬픔은 모두에게 공유되어야 한다’는 멘션을 날리자 수없이 많은 리트윗이 되어 그에게 되돌아간다. 하지만 정말 하나의 정서가 모두에게 공유되어야만 하고 그러한 정서를 느끼지 않는 자는 악으로 규정돼 사회에서 매장당해야 마땅한 것일까? 일어나버린 사고에 대해 연민을 느끼고 우울을 호소하는 것은 마땅하다. 하지만 모두가 같은 형태로 슬픔을 느껴야 하며 같은 형태로 애도를 취해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쉬운 애도를 위해 표피적 이유를 대상에서 끄집어내어 모든 슬픔을 투사해 지속적인 우울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해방되고 싶어하는 병리적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4) 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프로이트는 “애도와 우울증”(Trauer and Melancholia,“ 1917)이라는 글에서 애도 작업을 사랑하는 대상으로부터 점진적으로 리비도를 회수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반대로 이러한 정상적인 애도 작업이 제대로 수행되지 못하고 자아의 일부가 상실된 대상과 동일화될 때, 그리고 자아가 자신의 일부를 외부 대상으로 취급할 때 자아는 상실된 대상을 자신의 부분적 상실로 받아들이게 되며, 여기에서 우울증이 일어나게 된다고 전한다. 하지만 자크 데리다의 친구였던 니콜라스 아브라함과 마리아 토록은 실패한 애도 작업, 즉 우울증에 대한 새로운 개념화를 통해 이러한 프로이트의 관점을 수정하기를 시도한다.


5) 이들은 프로이트가 상실된 대상과의 동일화로 간주한 것을,

7) 우리는 사랑에 빠지면 상대방의 얼굴에서 이내 궁극적인 소통과

타자를 자아의 내부에 위치한 일종의 지하 납골당 안에

완벽한 공감을 떠올리곤 한다.

안치하는 것으로 개념화할 것을 제안한다.

이때,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타인인 세상에서 완벽히 자신을

이는 다시 말하자면 자아가 자신의 내부에 “합법적인 묘소”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타인, 나와는 다르지 않은 혹은 나의 상상적인

마련함으로써 타자의 시신을 안치하고 이를 통해 이미 상실된

이미지로서의 타인, 나에게 어떤 거북하고 불편한 모든 것이

타자의 죽음 이후의 내 삶을 안전하게 보장할 수 있게끔 한다.

제거된 사랑의 대상으로서의 타인을 떠올릴 것이다.

데리다가 보기에 애도 작업은 본질적으로 타자를 상징적으로

하지만 우리는 사랑이라는 것이 이해할 수 없는 타자를 받아들이는

내면화하는 것, 곧 타자를 자아의 상징 구조 안으로 동일화하는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견고한 사랑의 성벽구석에

것을 의미한다. 이런 측면에서 본다면 소위 정상적 애도, 성공적

나 있는 미세한 균열 안으로 득실대는 징그런 진실들과

애도는 타자의 타자성을 제거한다는 의미에서 타자에 대한

대면할 때 우리는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만다. 그 순간을 견디기

심각한(상징적) 폭력을 함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위해 우리는 이를 악무는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데리다가 보기에 애도가 타자에 대한 존중 혹은 타자에 대한 충실한 기억(나의 상상적인)을 목표로 하는 이상

8) 다자이 오사무 [인간 실격, 직소]

정상적 애도는 실패한 애도, 불충실한 애도일 수밖에 없다.

다자이 오사무의 민음사판 [인간 실격]에는 [직소]라는

반대로 자아 내부에 타자가 타자 그 자체로 충실하게 보존된다

짧은 단편이 함께 엮어져 있다. 이 두 개의 소설은 얼핏 보기에

하더라도 이 타자는 자아로부터 분리된 채 자아와 아무런

전혀 관계없는 독립된 형태로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연관성 없이 유령처럼 떠돌게 되며, 따라서 어떤 의미에서

이 둘은 긴밀한 유착관계를 가지며 동전의 양면처럼 공존한다.

유령화된 타자는 더 폭력적으로 자아와의 관계에서 배제된다.

인간 실격의 주인공 요조는 순수하고 여린 심성의 젊은이로 사회의 위선과 잔혹성을 견디지 못하고 전락하는 인물이다. 그는 세계에 속하지 못하는 주변인이며 자신이 느끼는 것들에 대해 충분히 언어화해내지 못하는 무능한 인간이다. 그리고 직소라는 짧은 단편의 주인공은 배신자 갸롯 유다이다. 빌라도앞에서 예수를 고발하는 유다의 모습을 크로키하듯 그리고 있는 이 작품에서 유다는 예수를 사랑하고 흠모하지만 그 사랑이 거부당한것에 대한 분노와 반발심을 수다스러운

6) 이런 데리다의 분석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언어의 연쇄를 통해 의미화에 지속적으로 성공한다.

애도의 불가능성이라는 역설이며, 이는 주체가 근본적으로 식인 주체라는 점을 시사한다. 곧 타자와의 관계 이전에 그 자체로 존재하는 자아, 주체, 우리란 존재하지 않으며 자아, 주체, 우리는 항상 이미 타자와의 합체를 통해 비로소 자아, 주체, 우리일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정상적 애도라는 관념이 전제하는 것처럼 타자로부터의 완전한 분리란 존재하지 않으며, 또한 실패한 애도(우울증)라는

9) "무구한 신뢰심은 죄인가? 유일하게 믿었던 장점에조차 의혹을 품게 된 저는 더 이상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되었고, 그저 알코올에 손을 뻗칠 분이었습니다. 제 얼굴은 극도로 천박해졌고, 저는 아침부터 소주를 마셨고, 이빨은 흐물흐물 빠지기 시작했고, 만화도 거의 외설에 가까운 것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관념이 전제하는 것처럼 타자와의 완전한 합체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위의 텍스트는 인간 실격에서 요조의 아내 요시코가 상인에게

그러므로 데리다에 따르면 정상적인 애도와 병리적인 애도,

비참히 능욕당한 후 느끼는 요조 자신의 감정이다.

혹은 성공적인 애도와 실패한 애도를 구분할 수 없다.

이 사건 이후 요조는 요시코에게 상인과의 일을 일절 언급하지

애도는 불가피하지만 동시에 불가능한 어떤 지점이기 때문이다.

않으며 그저 자신만을 묵묵히 파멸시켜 나갈 뿐이다.


10) "자기 자신을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그래서인지 요조와 유다는 플라톤의 [향연]에서 본래

자기 자신을 낮추는 자는 높임 받으리라고 그분은

한 몸이었으나 제우스에 의해 둘로 갈라진 채 영원히 서로를

약속하셨지만, 세상이라는 게 어디 그렇게 쉽게 되는 겁니까?

찾아 헤매는 태초의 남녀와 닮아있다.

그 사람은 거짓말쟁이야. 말하는 것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엉터리야. 나는 하나도 믿지 않아. 그렇지만 나는 그 사람의 아름다움만은 믿어. 그렇게 아름다운 분은 이 세상에 없어. 나는 그분의 아름다움을 순수하게 사랑하고 있어. 그뿐이라고. 나는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아."

12) [인간실격]의 요조와 그의 친구 호리키가 옥상에서 나눈 '비극 명사', '희극 명사' 놀이처럼 두 작품에서 순수와 세속은 명확히 구분된다. 이 둘 사이에는 노력으로 해결되지 않는 깊은 심연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유다의 편지를 요조에게 배달할 수 있는 우체통은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앙심을 품은 유다는 스스로 목숨을 끊지 못하는 요조를 찾아가 자신의 손으로 잔인하게

위의 텍스트는 [직소]에서 유다가 예수를 팔아넘기며 읊조리는 장면이다. 그는 예수를 그 누구보다 사랑하며 흠모하는 자신의 모습을 정당화시킨다. 또한, 자신이 느꼈던 예수의

음해하고는 따라갈 준비를 하기 위해 앙상한 나무를 찾아 헤맬것이다. 순수와 세속은 섞일 수 없는 운명을 지녔지만, 항상 같은 공간에 존재해야 하기 때문이다.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모조리 기억하고 언어로 형상화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새디스트(sadist)다. 그러므로 [직소]는 유다가 예수에게 보내는 한 통의 일그러진

13) 요조와 유다는 자석의 다른 극처럼 자아를 양분한 존재다.

연애편지로 봐도 좋을 것이다. 그 속에는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둘은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했지만 한 편에서는 과잉, 한 편에서는

예수에 대한 원망과 자신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에 대한

결핍을 안고서 살아간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지만 애써

확고한 신념이 보기 싫게 뒤섞여 있다. 이는 사랑의 열병에

모른체 하거나 상기하려 들지 않는다.

빠져 미쳐버린 여인의 모습과 닮아있다. 그는 요조에 비하면

만약 우연히 거리에서 만나 둘이 합치될 기회가 주어진다

터무니없을 만큼 능동적 인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하더라도 각자의 존재양식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도플갱어가 그러하듯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또 다른 나를

11) [인간 실격]의 요조와 [직소]의 유다는 모종의 공모관계에

살해해야만 하는 비극적 운명에 놓일지도 모를 일이다.

놓여있다. 요조는 넙치로 대변되는 인간 군상들의 부조리에

요조와 유다는 내 안의 낯선 것에 대한 은유이며 이들에게

심한 이물감을 느끼지만, 술과 몰핀으로 세상과의 가느다란

소통은 사치에 지나지 않는다.

끈을 위태로이 유지하며 살아간다.

완전한 합일이 애초에 불가능하다면 요조와 유다는 서로 간의

유다의 눈에 비친 요조의 모습은 부조리한 세상 한복판에서

적당한 거리를 가지고 상대의 영역을 침해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자신을 파괴함으로써 존재의 당위를 입증해내려는 예수의

할 것이다. 만에 하나 둘의 합일이 이루어진다고 가정해본다면

모습과 겹쳐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두 가지 정체성의 공존이 아닌 섞일 수 없는 것들이

그렇기에 유다는 요조를 욕하겠지만 동시에 사랑할 것이다.

뒤범벅된 제3의 존재로 출몰될 가능성이 크다.

가장 세속적인 인간인 유다의 모든 반대어에는 예수가 서 있기 때문이다.

자크 데리다의 말대로 ‘나’라는 존재는 타자와의 관계에 의해

타락한 세상에서 자신을 보존하기 위해 일체의 언어화를

사후적으로 발생하는 하나의 효과라고 가정해보자. 그러한

중단한 요조는 타락한 개인인 유다에 의해 충실히 번역되는

밀착감에서 자아의 일부라도 보존하기 위해서는 타자와 내가 쉬이

과정을 거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은 자신들이

뒤범벅되지 않기 위한 일종의 책략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발설하는 언어의 양과는 무관히 세상에 전혀 닿지 못한다는

그것은 앞서 언급했듯 타인과 나 사이의 특별한 거리일 것이다.

공통의 문제를 떠안고 있다.

소통의 불가능성과 공감하지 않음으로써 획득되는 윤리. 그것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뜻밖의 자유를 누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


14) 상처받지 않기 위한 전략으로서의 냉소주의 [cynicism] ;

17) 사전에 등재된 ‘시크’와 부정적 뉘앙스를 함축하고 있는

냉소주의란 대상에 대한 지적이고 냉철한 접근 태도를

‘냉소’라는 말의 결정적 차이는 무엇일까.

유지하는 상태를 일컫는 말이다.

우리는 가끔 회사에 출근하며 동료 직원들에게 인사 대신

원시인들이 공허한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텅 빈 공간에

‘누구누구 씨 오늘 옷차림이 시크하시네요.’ 라는 말을 듣곤 한다.

점을 찍는 것처럼 공포나 억압으로 다가오는 타인을 대처하는

또는, 업무에 있어 냉철하고 이지적인 판단을 내리며 매사에

가장 효과적인 방식은 그 대상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것이다.

막힘이 없는 상태를 보고 ‘누구누구 씨는 성격이 시크해’라고

예컨대 대상에 대한 앎을 통해 공포나 불안을 극복한다는

말하기도 한다.

논리이다. 또한, 자기 자신을 분리하는 냉소주의도 있을 수 있다. 누군가의 용어를 빌려 쓰자면 ‘보여지는 나’와 ‘바라보는 나’로

18) 일상어에 스며든 ‘시크’ 라는 말은 한 사람의 인간됨에서

분리시키는 것인데 이는 곧 진짜 자기를 감추기 위한

독립적으로 떨어져 나온 연극적 요소를 지시한다.

위장의 전략이 된다. 나는 마리오네트의 인형사가 되며 세상을

회사라는 공동체에 한정 지어 말해본다면 우리는 옷차림이 시크한

하나의 연극무대로 조망하는 역할을 떠맡게 된다.

사람에게 그 사람의 인간됨까지 시크하기를 바라지는 않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형사는 인형을 다루는 데 있어 일체의

항상 나에게 예의 바르며 젠틀한 사람이 ‘옷차림마저도’

감정개입을 배제해야만 손끝의 실들을 정확히 조율할 수 있을

시크하기를 우리는 마음속 깊이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다.

것이다.

결국, 공동체 안에서 통용되는 시크란 위험이 제거된 시크, 예컨대 냉소적이지 않은 안전한 시크만이 생존할 수 있는 셈이다.

15) ‘냉소’라는 말에 배어있는 냉랭한 정서탓인지 현실에서

반면, 집단으로부터 냉소적이라는 꼬리표를 부착당한 사람이

그것은 이내 타인을 매도하는 성격으로 변질되기 십상이다.

있다면 그는 현재 자신이 처한 집단을 넘어 사회 어디에서도

그러므로 위장의 전략으로써 사용될 냉소주의는 자신의

적응하지 못할 문제적 개인으로 등록되어 버린다.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상대방에게 발각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 사회의 무수히 많은 냉소주의자들은 그들의 정체를

근래에는 냉소라는 말 대신 ‘시크[chic]’ 라는 말로 순화되어

감춘 채 어딘가에서 은밀히 잠행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연히

사용되기도 하므로 거기에 기대 보는 것은 어떨까.

마주친 냉소주의자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침묵하지만, 자신들의 처지를 한탄하며 가벼운 눈짓으로 상대를 떠나보내야 할 것이다.

16) 시크[chic] 절제된 단순미와 부드럽고 도시적인 지성미를 느끼게

19) 사람들이 ‘저 사람 냉소적이야.’ 라는 판결을 선고할 때는

하는 이미지. 조화, 차분, 고상, 도시, 성숙의 이미지로서,

앞으로도 나와의 정서적 거리감이 좁혀지지 않으리라고

도시의 색으로 대표되는 무채색과 맑은 색에 어두운 회색이

확신할 때이다. 하지만 이러한 판결을 내리는 당사자들에게서는

섞인 암탁색 등이 그런 이미지를 준다.

아이러니하게도 두려움이라는 정서가 포착된다.

색조는 세련된 느낌과 절제된 분위기의 스타일이다.

나에게 친숙한 이미지로 쉽게 대상화되지 않는 상대방에게

이성적이고 도시적이며 고급스러움을 나타낼 수 있는 저채도,

우리는 쉬이 이웃이라는 호칭을 부여하지 않는다.

저명도를 중심으로 무채색인 검정, 하양, 회색과 퇴색된 듯한

예컨대, 명절만 되면 티비에 등장하는 필리핀 새댁은 평소에

파스텔 톤 등이 시크한 이미지를 느끼게 한다.

페이스북으로 고향 친구들과 소통하기를 즐기며, 우디 알렌의 영화를 좋아하고, 맥도날드를 애용하는 기호를 가졌다. 하지만 명절 티비 속에 등장한 그녀는 필리핀 전통의상을 입고서 자신도 난생처음 본 음식과 씨름 중이다. 그녀를 보고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대다수 사람의 머릿속에는 우디 알렌의 영화를 감상하고 맥도날드를 향유하는 이민자의 이미지는 낯설기 때문이다. 이때의 미디어는 머릿속에 고정된 상을 한 번 더 재현해줌으로써 고정관념을 강화해주는 동어반복(tautology)적 기능을 수행한다.


전통음식 만들기를 끝마친 필리핀 새댁의 힘겨운 일과는

22) 나(너)라는 존재는 누군가에게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내 스튜디오가 암전되고 스크린에 불이

자상한 오빠이며, 다정한 남자친구이고, 유능한 팀장이며,

켜진다. 그 스크린 속에는 한 늙은 필리핀 여인의 얼굴이

월급을 주는 사장에게는 말 잘 듣는 부하 직원일 것이다.

들어있다. 필리핀 새댁의 붉게 상기된 뺨에는 한 방울의 눈물이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의 집단에서 더 높은 가치평가를

또르르 흘러내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회자도 손수건을 꺼내

받는 부류는 ‘한결같은’ 사람들이다.

눈가를 닦는다. 그들의 짧은 대화가 끝나자 이내 스튜디오에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매 순간 다른 가면을 꺼내 쓰도록

환한 불빛이 스며든다. 이제 스크린에는 늙은 필리핀 여인 대신

강요당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가면 안의 나는 변치 않기를

세계의 가난하고 병든 아이들의 영상이 재생된다.

기대 당한다. 기묘한 이중검열의 구조 속에서 나와 너의 구분은

우리는 고민 끝에 먼 타국에서 불쌍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모호해지고 세계는 이내 납작해져 버리고 만다.

ARS를 통해 작은 성의를 표시하기로 다짐한다. 프로그램이 끝나자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 대기실 뒤 편에

23) 현실에 대한 객관적 인식이 항상 허무주의(nihilism)로

마련된 화장실로 뛰어가 두꺼운 전통 화장을 녹여내고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스마트폰으로 오늘 등록된 페이스북 알림을 확인한다.

철학자 스피노자는 내 삶이 생각처럼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조금은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20) 이상하게도 우리는 가까운 관계보다 상대적으로 멀리

그러므로 냉소주의자들이 보여주는 현실과의 거리감각은

떨어져 있는 사람에게 더 친절할 때가 많다.

세상의 모든 것이 생성뿐이라고 주장하는 허무주의자들보다

가까운 관계에 대해 우리의 감정소모가 더 많은 이유는

사뭇 긍정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된다.

아마도, 내 머릿속에 그려진 이웃의 이미지와 현실에 존재하는

하지만 위험이 제거된 타인 혹은, 나에게 모두 알려진 비밀 없는

그 사람의 이미지가 계속해서 어긋나기 때문일 것이다.

이웃들만을 상대하며 공감이니 소통이니 하는 추상적 어휘들을 전면에 내세우는 사람들에게 냉소주의자들은 언제나

21) 사랑하는 사람에게 우리는 매일같이 사랑을 확인받고

낯선 타인일 수밖에 없다.

싶어한다. 그래서 가끔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같은 말만

그들은 타인과의 완벽한 합일 즉, 서정성이라는 것이 애초에

되뇌는 바보처럼 비칠 때가 있다.

불가능하다는 것을 전제에 두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달콤한 반복 이면에는 사실, 내 머릿속에만

그러므로 냉소주의를 고집하는 이들에게 타인과의 거리는

존재하는 환상 속 그녀(그)와 현실 속 그녀가 일치하는지를

실천의 끝에서 얻을 수 있는 물리적 성과물이 아닌

확인해보려는 주체의 절박함이 깔려있다.

선험적으로 주어진 어떤 것이며 절대적인 둘 되기일 것이다.

내 앞에 서 있는 현실 속 그녀(그)는 언제나 내가 준 꽃다발에 감동하고 나를 위해 정성껏 편지를 써주는 오직 나만 바라보는

24) 참고자료

사람이어야만 한다. 나에게 알려지지 않은 그녀(그)의 모습을

- 신형철 [서사 윤리학 연습 3강, 4강, 아트앤스터디]

상상하는 내 모습은 ‘믿음’이라는 검증되지 않은 기계를 통해

- 서동진 [사랑에 관한 몇 가지 질문, 두산인문극장2014: 불신시대]

분쇄해 버린 지 이미 오래다.

- 다자이 오사무 [인간실격], [직소]

낯선 그녀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 이전에

- 프로이트 [애도와 우울 mourning and melancholy]

낯선 그녀를 상상하는 내 모습조차 나에겐 타자인 것이다.

- 자크 데리다 [마르크스의 유령들]

낯선 나는 이내 외부적 가치에 의해 검열되며 매 순간 자기기만을

- 서영채 [문학의 윤리]

느끼고, 상대방에게 도달했다는 착각에 빠져 허우적댄다. 하지만 이처럼 매일같이 발생하는 투사의 드라마를 완전히 꺼버릴 수는 없다. 환상을 매개로 하지 않는 관계란 불가능하며 그런 관계가 가능한 세계는 어쩌면 지금보다 더 참혹한 얼굴을 지니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블로그 clichecliche.blog.me 이메일 clichecliche@naver.com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소개소

1. 1. 청춘! 모노스타 - 쿨에이지

2. 이 겨울 끝은 눈보라 - 더 핀

3. Wake up - 룩앤리슨

2006년

쌈지사운드페스티벌

더 핀은 지금 활동을 하고 있지

룩앤리슨의 공연에 갔다가 빠진 노래.

나는 알지 못했지만 당시 굉장히

곡이다. 나와 음역대가 잘 맞아서

가니 남성 팬들의 열기가 뜨거워서

[Rock&Roll](2007), 6

숨은고수에 선정되었던 쿨에이지. 촉망받는 노래는 이름,

천재

물론이고

그리고

펑크밴드였다. 제목과

뮤비

밴드

모두에서

젊음이 느껴진다는 점이 굉장히 부럽다. 그것은 나이가 어리다고 해도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니까. 설명보다

빠릅니다!

한번

들어보는

것이

[올해의 앨범](2011), 5

않지만 이 노래는 내가 자주 부르는 부를

그리고

때마다

기분이

멜로디가

좋아진다. 신선하고

매력적이어서 절로 리듬을 타게 된다.

보컬의

목소리가

노래와

정말 잘 어울리는 것 같다. 2인조의 구성인데도 이렇게 괜찮은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Ready To Go!](2012), 10

방송에서는 잘 몰랐지만 직접 공연에

노래가 더 즐거웠다. 베이스의 경쾌한 연주로 시작된다. 개인적으로 남자

보컬만을 좋아했는데 룩앤리슨은 쾌활한 펑크 걸의 느낌을 줘서 여자

보컬도 좋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룩앤리슨을 보면 3인조 펑크밴드가 이상적인 것을 알게 된다.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고 있지는 않지만 언제나 음악을 꿈꿉니다. 저에게 영감을 주고 본받고 싶은 음악들을 소개합니다. 밝은 음의 세 곡과 그에 비해 잔잔한 세 곡입니다. 신당동 파르한 (@chungchoon98)

4. 그리 쉽게 이별을 말하지 말아요

5. 가자 늑대들 - 오지은과 늑대들

6. 서로 다른 - 서울전자음악단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이상한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서울전자음악단 버전을 먼저 알게

아련한데 좋은 기분이 든다. 가사는

피어있는 꽃들을 정말 아름답다

3집

앨범에

좋은

것은

[멋지다! 슈퍼키드](2010), 13

기분이 든다. 노래 자체는 슬프고

사랑에 대한 것이지만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계속 들게 해주는 노래이기 때문인 것 같다. 베이스 소리가

좋은

슈퍼키드의

다른

노래와 마찬가지로 2절 시작 할 때의 베이스 소리가 인상적이다.

[오지은과 늑대들](2010), 11

가사가 주옥같다. ‘그래도 길가에

느낄 수가 있다면’이 모든 것을 설명해준다. <EBS 스페이스 공감> 영상에서의 멤버들의 멘트를 읽으며 영상을 보면 이런 것이 밴드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멤버 5명 전원이 각자의 파트를 노래하는 아름다운 노래이다.

[Life Is Strange](2009), 9

되었지만 기타리스트 신윤철씨의 먼저

수록되었던

곡이다. 후반부의 긴 기타 솔로가 물론이고

기타와

베이스 음이 같은 부분이 너무 매력적이다.

서울전자음악단은

해체했지만 작년 서울레코드페어 전야제 때 한시적으로 재결성해 이

노래를 연주했고, 이 음반은 LP로 제작되었다.


내가 어떻게 다이아몬드가 되었냐면...

글. 올리브

Part 3. 음악소리를 따라 걸어보자.

수 있다. 카페와 음식점을 겸하는 공연장을 자주 들렸을 분들에게 적

홍대에 공연을 보러 다녔다고만 했

극 추천. 요즘 들어 부쩍 좋은 공연

지 어디가 있는지 이야기 해본 적이

을 많이 한다. 소소한 팬미팅. 작은

없는 것 같아서 오늘은 인상 깊었

콘서트. 이야기가 있는 음악회 등.

던 공연장 소개를 해보려고 합니다.

기획 공연, 대관 공연 등 다양한 음 악을 접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곳이다. 마치 우리 집 거실에서 하 는 작은 콘서트 장 같다고나 할까. - 무대륙 식사와 술을 함께 할 수 있는 곳. 매 콤한 타이치킨은 개인적으로 최고 메뉴. 상수동 화력발전소에서 가깝 다. 첫 방문은 가을 밤. 할로윈 기획 공연이 있었다. 지하 공연장은 어두 컴컴했고, 깊숙하게 자리 잡고 있었

- 제비다방 상수역 3번 출구 근처. 지하 1층에

지만 아늑했다. 이곳의 가장 좋은

- 클럽빵 -

점은 앨범을 판다는 점. 공연을 보

혼자서라도 공연 보러가겠다고 마

고 난 후, 앨범 한 장씩 사가지고 돌

음을 먹었던 내가 제일 처음 찾아간

아갈 수 있다.

곳. 사실은 클럽타를 찾아가려다 갔 던 클럽빵. 이곳의 공연은 믿고 듣

서 매주 목,금,토,일 공연을 한다. 늘 공연을 하고 있기 때문에 언제라도

- C클라우드 -

고, 믿고 볼 수 있다. 필자처럼 이

커피나 맥주 한잔 마시면서 음악을

팬미팅 겸 작은 공연이 있다고 해

름 헷갈리지 말기 바라며, 클럽빵을

듣기에 좋다. 처음 방문 했던 날은

서 찾아갔던 C클라우드. 이곳은 합

한 번 가보자. 필자는 공연장 이름

아주 더운 여름날 밤, 우주히피의

정역에서 가깝다. 상수역을 한 바퀴

이 왜 클럽빵인지 아직도 궁금한 홍

공연이 이루어지고 있던 지하 1층

돌아 합정역으로 오는 산책로로 가

대 초짜지만, 공연장만큼은 정말 좋

에는 자리가 꽉 찼었다. 창문을 열

면 무척 좋다. 본래 커피숍이며, 공

다는 사실을 잘못 찾아간 첫 날부터

어놓고 공연을 하던 그 여름 밤, 베

연장으로 대관하고 있는 곳. 이곳이

느낄 수 있었다. 사운드, 음향, 살아

이스 소리를 워낙 좋아해서일까. 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도란도란 친구

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나무에

과 열기와 둥둥 울리던 소리는 지

와 앉아서 음악을 들을 수도 있고,

서 전해 오는 울림소리 같다고나 할

금도 잊혀 지지 않는다. 그날 이후,

그리고 바로 2층!! 공연장이 2층인

까? 핀란드 숲속, 침엽수림 가득한

무심결에 오늘 공연 보러 갈까? 하

경우는 거의 극소수. 창가를 바라보

선술집 같기도. 나무 공연장 느낌은

고 찾는 곳이기도 하다. 공연이 보

며 음악 감상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 마음을 부드럽게도 해주고, 공

고 싶은데 어디를 가야할지 모른다

제일 좋은 점은 피아노가 있다. 창

연하는 밴드들의 마음도 편하게 해

면, 제비다방에서 커피 한 잔 마시

가 쪽 의자에 앉아 벽에 기대고 있

주는 것 같았다. 매주 수,목,금,토,일

고. 음악에 맘껏 취하자.

는데... 벽면을 타고 피아노 음들이

공연을 한다. 잘못 찾은 나의 첫 번

물줄기처럼 타고 오는 느낌을 받을

째 공연장이였지만, 지금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공연장.


-프리버드- 살롱바다비 -

홍대 놀이터쪽에서 수 노래방 쪽으 로 내려오면 위치하고 있다. 프리버

살롱바다비. 사실 이곳은 공연을 보

- 스트레인지 프룻 -

러 가기 전, 주변사람으로부터 다

드는 평일엔 신인밴드들이 공연을 자주 한다. 유명한 밴드들 중 이곳

양한 얘기들을 들어왔던 곳. 필자

스트레인지 프룻은 무대와 객석의

을 거쳐 가지 않은 밴드가 없을 정

의 동생은 ‘바다비’라는 이름이 너

구분이 없다. 그리고 좁은 공간이

도라고 들었다. 다른 공연장에 비해

무 이쁘다고, 어떤 가수는 고향 같

지만, 실용적으로 만들어졌다. 최근

장소가 넓다. 다만 음향, 기타 장비

은 곳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레코드

다양한 공연을 주관하고 있다. 위치

는 개선해주길... 언젠가 이곳에서

폐허 같은 의미 있는 행사를 주관하

는 클럽빵과 멀지 않은 곳에 있다.

본 밴드가 몇 개월 후, 슈퍼스타K에

고 있기에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

이곳은 오래된 낡은 엘피판이 있어

나와서 TOP10이 되는 걸 보기도 했

의 직접적인 교류처이다.

기억에 남는다. 영화에서나 본 듯한

다. 그리고 현재 필자가 가장 좋아

70~80년대 음악살롱 같은 느낌을

하는 밴드와 가수들을 이곳에서 처

산울림 극장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

간직하고 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

음 만나기도 했다. 좋은 가수와 공

치하고 있다. 작년 여름, 하루에 두

고 빛바랜 영화 속 장면 어디쯤 와

연을 기획해주고 신인가수들의 성

개의 공연을 보려는 욕심에 바다비

있는 듯 착각과 가수와 내가 마치

장을 돕고 있다고 느꼈던 곳.

에서 하는 공연 시간이 늦어져 지인

친구인 마냥 아주 가깝다는 착각을

에게 표를 미리 구매해 달라고 했

주는 그런 곳.

었다. 살롱바다비 로고 속 사진하고

작년 가을, 한참 좋아하기 시작했는

-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공연장

똑같이 생겼던 사장님은 지인에게

데 딱 그때쯤 해체를 결정한 밴드가

은 홍대 중심에 위치한 ‘상상마당’

암호를 가르쳐 줬다. 손바닥에 숫

두 팀이나 있었다. 서교그룹사운드

이다. 상상마당은 조명, 음향, 무대

자를 써서 신원확인을 하라고 마

와 얄개들이라는 밴드. 그들의 음악

등 많은 요소요소들이 그 공연장을

치 007작전처럼 말이다. 산적(?) 아

에 흠뻑 취해, 단시간에 가사외우기

찾게끔 만든다. 공연장 바닥을 타고

니, 푸근하게 생기신 사장님이지만,

신공까지 발휘하고 공연 보러 다닐

음악 소리가 전해지는 느낌이 드는

장난기 가득한 암호작전에 그날 하

준비를 했는데 마침 그때쯤 해체를

곳. 이 외에도 클럽타, 클럽FF, 고고

루 종일 육성으로 웃었던 기억이 있

했다. 뭐라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스2, 롤링홀, 사운드홀릭 같은 공연

다.바다비에서는 평일에도 신인들

안타깝고 아쉬웠지만, 두 밴드의 합

장은 매주 활력 넘치는 공연을 진행

의 공연이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있

동 공연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공

하고 있다.

다. 음악의 비를 맞아본 적이 없다

연 중 하나. 그리고 이곳은 앞으로

면, 살롱 바다비로 걷자.

더 자주 찾고 싶은 곳.


을 창식

, 잘 알지도 못하면 서

신곡을 내지 않는 이유

불후의 히트곡 <담배가게 아가씨>가 담긴 앨범 「참새의 하루」를 마지막으로 송창식은 더 이상 새로운 앨범을 발표하지 않았다. 그 사이 2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이는 그가 공식적으로 음악 활동을 한 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다.

그렇다면 왜 더 이상 새로운 곡을 쓰지 않는 걸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책상머리 앞에 앉아 곡을 쓰려고 하는데 하기가 싫더라고요. 90년대가 넘어서면서 어린 가수들의 앨범이 100만 장, 200만 장이 팔려 나갔는데, 전 10만 장 팔아야 잘 판 것이었으니, 화가 나서 못 하겠더라고요. 더 화가 나는 건 그때 유행하던 댄스 음악이라는 게 미국에서 가지고 온 건데 제대로 된 음악을 가져온 게 아니었어요. 어설프게 가지고 와서 따라 한 거였죠. 저도 한때 댄스 음악을 할까 생각도 해 봤죠.

그뿐이 아니었다. 그는 이제껏 낸 앨범 중 마음에 드는 게 하나도 없다고 했다. 자꾸 내라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부족한 상태로 냈다는 것이었다. 특히 자신이 원하는 대로 연주해 줄 반주자가 없다고 했다. 그것이 또 하나의 이유였다.

항간에는 그가 이제껏 써놓은 미발표 곡이 천 곡이 넘는다고 알려졌다.(완전한 곡이 아닌 부분적인 의미에서) 나는 그 곡을 전부 취입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고 그는 이렇게 답했다. 에이, 옛날에도 써놓은


거 취입한 적은 없어요. 취입할 땐 새로 써서 취입을 한 거지. 먼저 쓴 건 무효라니깐. 그리고 옛날에 써놓은 건 뒤져보면 너무 좀 유치하고 그렇다고. (내가 <한번쯤>같은 경우도, 요즘 스타일과 예전 스타일이 다르더라, 라고 하자) 그렇지. 옛날에 부른 건 옛날의 내 음악성이고, 지금 부른 건 지금의 내 음악성인 거지.

작년 언젠가 그는 새로움 앨범을 내겠다고 한 적이 있었다. 작년 말쯤 이에 관해 물어봤다. 당시 목 상태가 안 좋던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이 목 상태로 되겠어요? (이에 내가 만약 앨범을 내면 기존 곡을 다시 부를 생각이세요? 라고 물었고) 아니 뭐 그런 건 안 정하고. 내 곡 중에도 하고, 남에 곡 가지고도 하고, 신곡으로 하기도 하고 어쨌든 함춘호가 있으니까. 쟤랑 같이 해봐야지. 왜냐면 옛날에 발표할 땐 쟤가 없었거든.(그럼 조만간 기대해도 될까요, 라고 또 묻자) 기대야 뭐 늘 하는 거지. 좀 허무할 뿐이지.

그랬다. 이제는 그의 곁에 대한민국 최고의 기타리스트인 함춘호가 있다. 송창식을 보고 꿈을 품었다는 함춘호는 무대에서 그와 최고의 호흡을 자랑한다. 송창식처럼 클래식을 전공한 터라 원하는 음을 쉽게 짚어 내는 그는 송창식 곡에 세련미를 더한다. 더구나 그의 실력을 의심하는 이는 없다. 송창식도 그를 소개할 때면 ‘늘 대한민국의 기타’라고 할 정도니. 그렇기에 새로운 앨범을 기대할 수도 있을 터.

최근 무대에서 내려온 송창식에게 50대 소녀 팬들이 새로운 곡을 내달라고 입을 모아 말했다. 그러자 그는 신곡을 내면 문화적으로 가치는 있을지 모르지만 히트하진 못할 거예요, 라며 담담히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더불어 그는 한 프로그램에 나와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예전에 부른 노래지만 부를 때마다 상황에 따라 표현이 달라지기 때문에 각각 전혀 다른 노래가 된다고. 그런 의미에서 새로운 곡이라고 말이다.

흔히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가장 큰 라이벌은 본인의 이전 작품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기존의 작품을 뛰어넘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 목표라고도 하면서. 송창식도 자신의 곡을 넘어서는 데에 부담이 있는 것은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성격으로 보나, 배짱으로 보나 그런 건 전혀 아닐 것이다.

종합적으로 판단해 볼 때, 내 생각으론 그가 새로운 앨범을 낼 것 같긴 하다. 다만, 신곡이 포함되진 않고 그전에 만들었던 곡을 함춘호와 재해석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아무렴 어떠랴. 그저 쌍수를 들고 환영할 뿐이다. 신곡이 없다 한들 이제는 언제든 그의 무대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기에 신곡 이상의 기쁨이 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의 목소리도 점차 변하기에 같은 곡이라도 다가오는 소리도 달라진다. 그래서 이명이 되어 한동안 귀에 머무르는 곡도, 시기에 따라 흥얼거리고 재발견하는 곡도 제각각이다.

그럼에도 내 입은 근질거린다. “선생님, 그러지 말고 새로운 곡 좀 들려주면 안 될까요?”

박재현(소설가) walrus1618@naver.com


게임 노동 일지

글. 그림. 철민





부산오뎅 이야기 ( 어느 날 )

혹시 장사를 꿈꾸는 사람이 있는가?

장사해서 돈 벌어서 꿈을 이루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장사를 시작하는 동기, 목표, 나아가는 모습, 장사를 하면서 가지는 꿈, 금전적인 목표, 장사를 하면서 중요 시하는 유무형의 가치 기타 여러 가지 각각의 자영업자들은 자기만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돈을 빼놓곤 얘기 할 수 없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장사는 왜하나 돈 벌려고 하지 않는가? 나도 젤 처 음 돈 벌려고 시작했다 빚 갚으려고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쉬는 날도 없이 일 년에 360일 정도는 한 것 같다,

6시 오픈에 정해진 마감시간도 없이 아침9시10시까지 한 적도 있다 돈이 좋아서 라기 보단 당면과제를 해결 하기위해 몸 축 나는지 모르고 했다. 휴식은 나에게 사치라고 생각했다. 돈은 다행이 다 갚았다. 돈의 아이 러니라는 게 빚 갚으려고 장사를 시작했고 빚을 갚았지만 다른 형태의 빚이 생긴다. 그럼 10년 동안 뭘 했을 까? 하는 생각을 해보면 똑같은 금액의 돈을 빚을 졌을 때 바라보는 눈이 초조한눈에서 초연 할 수 있는 눈 으로 바뀌었다고 할까? 자전거 타면서 한 번도 안 넘어진 사람이 가지는 혹시 넘어지면 어쩌지? 하는 마음


과 몇 번 넘어져서 다치고 하다 보니 넘어 졌을 때 아..또 넘어졌네 하며 훌훌 털고 일어나는 사람의 차이를 후자의 경험을 통해 알아냈다고 표현하고 싶다.

어쨌든 1차 목표 빚을 해결하고 다른 빚이 생겼지만 예전처럼 악착같은 맘이 없어졌다.

목표의식의 상실이랄까? 돈을 벌어서 집사고 차사고 맛있는 것 먹고 놀러가고 하는 맘이 아! 나도 그런 거 싫어하지 않아 정도지 꼭 이루고 말테야 라는 맘이 나중엔 어쩔지 몰라도 지금 현재는 많이 없는 상태다. 그 러다보니 이 사람이 와서 먹어서 올린매상 저 사람이 올려준 매상 한 테이블의 손님이 10만원을 먹던 만원 을 먹던 그 돈을 내가 소유했을 때의 감흥은 이게 돈인지 부루마블 게임속의 화폐인지도 모를 정도다. 매상 이 엄청 오를 때나 파리 날릴 때나 감정기복이 크지 않고 매달 얼마 팔았나 장부에 기록만 할 뿐 계산도 하 지 않는다. 많이 팔았으면 동네방네 소문내고 못 팔았으면 어디다대고 울기라도 할껀가? 어차피 이러나 저 러나 내 책임인 것을..

이런 건 모두 장사를 오래하다 보니 생긴 내공이라고 하자. 하지만 사람인지라 돈 너무 사랑한다. 벌어야 한 다. 목표는 없지만.. 쉬고 싶어도 정해진 날 빼곤 손님이 있던 없던 열어야한다. 못 지킬 수 있지만 손님과 의 약속이기에...

부모님 생신도 쉬는 일요일 맞춰서 식사나 하지 당일 날 챙겨드리지도 못한다.

어디 휴가라도 감칠 맛 나게 3,4일 말고 서 너달 가고 싶기도 하다 누군가는 눈질 끈 감고 다녀 오란다. 하지 만 그러면 내가 내 자신한테 뭐 잘했다고 그런 큰 포상을 내릴까하는 생각을 하며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내 발목을 옥죄는거 같아 그러지도 못 하겠다. 악착 같진 않아도 나태하지 않아야한다는 나만의 정형화 할 수 없는 기준이 깊게 자리잡고 있다

장사란 내가 열심히 하고 위치가 좋고 음식이 맛있고도 중요하지만 알 수 없는 외부상황 국제정세 경기침체 대형 스포츠축제 등에 요동친다. 다 이겨내야 된다. 장사꾼들은 남 탓도 많이 한다. 이XX 월드컵 땜에 이XX 벚꽃놀이 땜에 손님이 그리로 다갔다며 빨리 꽃이 지기를 바란다. 더운 여름을 탓하고 추운겨울을 탓하고 입 학시즌을 탓하고 시험기간을 탓하고 황금연휴를 탓하고, 휴가기간을 탓하고...부모님 친척 친구들이 걱정한 다 “장사 어떠냐고” 그럼 잘 된다고 하지 안된다고 할껀가?

지금 우리는 세월호 침몰이라는 사건속에서 어른이라서 미안하고 정부에 대한 분노로 가득하고 애도하고 싶 은 맘이 가득하고 눈물이 가득한 시기이다. 나도 뭔가를 해야겠다는 맘이 가득하다 가만있는 내 자신이 너 무 싫다. 그러면서 ‘그래 나는 깜냥이 이거밖에 안된다’며 장사를 하기 때문이라며 장사라는 핑계에 숨어 서 지낸다. 장사란 사람을 이렇게 비겁하게 만든다. 아니 내가 원래 비겁했는지 모르겠다. 장사란 순결했는 지도 모른다. 땀흘린 노력의 댓가를 전달만하는 죄 없는 수단일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장사하는 죄인이 된 것 같은 생각이 떠나질 않는다.

여러분은 장사를 꿈꾸는가?


..

바다비 일요 시극장 2014.5.25 http://cafe.daum.net/badabie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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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란 무엇일까? (5회)

책을 읽다가 몸이 찌뿌둥해 밖으로 나왔다. 가만히 앉아서 무언가를 하다보면 몸이 바위처럼 점점 굳어가는 것을 느낀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지나면 내가 무슨 좋은 생각을 했다고 하더라도, 내 머릿속이 무척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하더라도 몸이 죄 굳어 움직일 수 없을 것 같았다. 살면서 느끼는 여러 감정 중에서 무력함만큼 힘든 감정은 없는 것 같다. 무력함은 모든일을 시작도 하기전에 무위로 돌려버린다. 움직이기 전에 생각이 먼저 죽어버리는 격이다. 생각과 몸 중 어느것이 먼저인지는 정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가만히 앉아서 생각만 하다가는 몸이 굳어서 아무것도 못할 것이고 몸을 열심히 움직인다 하더라도 정확한 생각을 하지 않으면 그저 먼지처럼 세상을 휭휭 떠돌뿐인 것 같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면 외로워서도 말을 하지만 때로는 굉장한 생각들을 나누려고 말을 하기도 한다. 말은 때로는 엄청난 갈등을 빚어내 그 말들을 구운 사람들을 죄다 깨러 다니기도 하지만 때로는 잘 꼬아진 새끼줄 처럼 가느다란 결심들을 꼬아 강한 힘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요즘은 새끼줄이 참 많이 필요한 때인 것 같다. 바깥에 나와 팔을 앞 뒤로 젓다가 위로 들었다 해도 영 몸이 개운치 않아 가볍게 달리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몇 백미터 정도이지만 뛸 때의 상쾌함은 무력감을 조금이나마 달래준다. 발이 지면을 디디면서 나는 앞으로 나아가고 다리는 피곤을 모아 근육을 단단하게 뭉쳐준다. 이 피로가 내일이면 더 단단한 다리를 만들어 줄 것이다. 요즘은 편리를 위해 온통 시멘트 칠을 해대는 통에 그런 감각을 많이 잊었지만, 흙이 있는 길을 지날 때면 시멘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푹신한 것을 느끼곤 한다. 중력은 먼지를 지구의 중심까지 끌어모으고 흙들은 같이 당겨지는 공기와 함께 층을 이뤄 조금씩 달려가는 나의 몸을 받쳐준다. 한겹 한겹 공기와 다른 조직이 얽혀진 땅은 편리를 위해 균일하게 만들어내는 시멘트나 아스팔트와는 사뭇 다른 감각을 나에게 전해준다. 어린이 놀이터의 인공 타이어와는 또 다른 푹신함을 주는 흙의 감각. 불친절하지도 않고 과하게 친절하지도 않은 적당함이 나를 받쳐준다. 최근 사람들은 국가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된 것 같다. 지난 4개월 간 비슷한 제목으로 글을 써온 나로써는 나의 글이 설득력을 가지거나 유명세를 타서 그렇게 되었으면 좋으련만 그 계기가 전혀 좋지 않아서, 이달에도 글을 계속해서 써야 하는 나도 힘이 들고, 너무 큰 질문 앞에 갑자기 던져진 사람들도 힘이 든 것 같아서 마음 좋지 않다. 그래서 오늘은 흙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흙. 국가를 이루는 여러 요소중에 가장 중요한 영토. 그것을 이루는 지면의 단단함에 대해서 이야기 하려고 한다. 영해도 있지만 그것도 일정부분 설명이 가능하니 전부 흙이라고 통칭하자. 영토가 나라의 구획이 되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가 자주 이야기 하는 일상적인 국가가 아니라 더 큰 전체가 되는 지구. 지구에는 거스를 수 없는 큰 힘이 하나 있다. 우리가 중력이라 부르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중력을 바탕으로 지구는 형상화 되었다. 중력은 이 별의 모든 것을 끌어당기고 이 별의 모든 것은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 중력의 영향을 받는 범위를 넘어가면 그제야 지구가 아니게 될 것이다. 중력이 우주의 이것저것을 끌어모아 우리가 국가의 3요소 중 하나인 영토라고 부르는 것이 형성 된 것이다. 흙들이 모여 땅이 되고 국가의 영토가 된 것이다. 그 위에 우리는 좋다고 집도 짓고 새끼도 치고 그런다. 조금만 상상을 더 해보자. 만약,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에 흙이 없어 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는 천길 낭떠러지를 따라 지구 중심까지 하염없이 떨어질 것이다. 그렇게 떨어지고 떨어진 뒤에 이 지구의 가운데 위에 서 있는 내가 멀쩡하면 좋겠지만 중력의 힘이 크기 때문에 나는 기를 펴거나, 아니 허리를 펴지도 못하고 그대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혼자 있어도 그렇겠지만 둘이 있어도 마찬가지다. 어지간한 모든 것은 지구의 중심에 가면 그 힘을 버티지 못하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나의 의지나 낙천적임, 긍정적 에너지 이런것들은 그곳에서는 별 소용이 없을게 분명하다. 그런데 다행히 아까 내가 산책을 할 때 밟았던 흙들이 켜켜이 쌓여 나의 곤란을 막아주고 있다. 흙은 아마 어디선가 한 조각씩 흘러 들어와 쌓이고 또 쌓여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그 무수한 노력의 끝에 서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생각도 하고 글도 쓰고 그런 삶을 살고 있다. 흙은 지구가 모든 것을 당기는 힘에 맞서 저항을 하고 있고 그 저항들이 모여 나는 곧게 서 있을 수 있다. 나는 허리를 굽히고 싶을 때 굽힐 수 있고 조금 더 멀리 날아오르고 싶을 때는 펄쩍 뛰어 오를 수 있다. 나는 국가가 이런 흙과 같은 것이라고, 흙과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간이라는, 무서울 정도로 무한히 흐르는 힘의 가운데서 내가 곧게 설 수 있도록 나의 발을 지지해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펄쩍 뛰거나 다른 사람들을 만나 또 다른 방향성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저 우주로 뻗어나가는 하나의 방향이어야 한다고도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라는 흙은 넘어질 수도 있는 사람들을 위해 푹신해야 한다. 뿐 만 아니라 한 생이 다할 때에는 그 삶이 좋은 흙이 될 수 있도록 기록과 전승으로 품어주어야 한다. 그 모든 것들이 모여 또 하나의 지표가 되고 힘이 되는 것 아닐까. 무한한 시간과 황량한 우주의 가운데서 우리가 곧게 서서 중력에 저항하는 것을 도와주는 한 줌의 흙, 우주를 향한 하나의 방향. 지금 국가는 나의 발 밑에서 이런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글. exxx


그림.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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