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이리 2014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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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입니다. 비밀동툰 / 사진. 글. beamil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 글. 사진. 아홉시 영화로 읽는 시공간 - 반성문 및 자전 영화 수기 ‘청춘과 바꾼 골든 리스트’ / 글. 곡주대비 회사옆 미술관 - 정연두_무겁거나 혹은 가볍거나 플라토 / 글. 강세기 팟캐스트 ‘이리오너라’ 광고 여기 문학이 필요한시간 - 이성복 「서시」 / 글. 고수진 송창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 그림. 감 글.박재현 idology’s pick - 엑소, 프로듀서 인터뷰 시리즈 놀고 먹고 그리고 / 그림. 김혜리 뼈그림 - 뱀속의 개구리 / 글. 그림. 왼손이 Hwaiiana - 도심속의 하와이 밴드 마푸키키의 탄생 / 글. 사진. 이동걸 물질과 비물질 - 6. 버스 정류장 / 사진. 황은정 글. 김종소리 낭만 스파이 - 눈에 띈 / 글. 사진. 낭만스파이 웹디자이너 생존 매뉴얼 - 표현의 생존 매뉴얼 / 글. 그림. 김성연 사진 일기 / 사진. 글. 박민수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 소개소 / 글. 신당동 파르한 게임 노동 일지 / 그림. 글. 철민 건축이 좋아 - 하늘과 바람과 윤동주 문학관 / 사진. exxx 글. aoikasa 내가 어떻게 다이아몬드가 되었냐면... / 글. 올리브 부산오뎅 이야기 - 3650 days / 글. 사진. odeng 무엇이 들어 있을까요? 바다비 일요 시극장 광고 국가란 무엇일까? - 6회 / 글. exxx


여름의 행복은 시원한 냉면과 열무 김치를 먹는것. 그외에 또 뭐가 있을까요? 아, 수박을 먹는 것도 빼 놓을 수 없죠. 어느날인가 수박 한 통을 들고 터벅 터벅 걸어가는 아저씨의 뒷 모습을 봤습니다. 처음에는 날도 무척 덥고 해서 ‘무겁고 힘들겠다.’ 싶다가 문득, 예전에 어른들이 집에 놀러 오실 때 미지근한 수박 한 통을 들고오면 쪼르르 달려가 받아들던 생각 이 났습니다. 채 시원해지지 않은 미지근한 수박을 둘러 앉아 쪼개먹는 모습은 과 일의 온도와 상관 없이 더위를 식혀주는 맛이 있었습니다. 신문지를 깔고 칼날을 세워 수박에 밀어 넣으면 ‘쩍’소리와 함께 갈라 지는 수박. 물로 흥건해지는 바닥 을 대충 슥슥 닦고 둘러 앉아 집 주인이 수박을 자르는 동안 손님은 땀을 닦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죠. 요즘에야 시원한 것들도 많고 수박이 무겁다고 배달도 많이 시키지만 수박에에 담 긴 풍성함과 들고 오는 동안의 수고로움은 나눠 먹는 사람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기에 모자람이 없습니다. 여름이 가기전에 무거운 수박을 들고 친구를 찾아가는 독자 여러분이 되시길 바 랍니다. 이달에는 <Hwaiiana>라는 새로운 코너가 등장했습니다. 하와이 음악을 하는 밴드 마푸키키의 이동걸 님께서 앞으로 여러 하와이 이야기를 들려주실 겁니다. 자 그럼 다음 이시간에 또 만나요! 월간이리 exxx 드림. 편집: 이훈보 표지: 이주용 주관: 프로젝트 이리 지원: 서울특별시,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공식트위터 @postyri


비 밀 동물 툰 Animal Toon by BEAMIL

* 2014년에는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나름 위트있게 , 뜨끔하게 쓰고 그린 짧은 만화를 기고합니다. 팩트를 뒷받침하는 기사와 간단한 의견도 함께입니다. 많이 공감해주세요. 제보도 감사합니다 twitter@ / _beamilie


* 때는 2008년 여름이었고, 친지들과 함께 구경삼아 간 꽤 먼 거리의 재래시장에서 유난히 작고 연약해 보였던 강아지 한 마리를 데 려온 건 저의 모친이었습니다. 책임감이 없다고 화를 냈지만 이내 작은 생명에게 마음을 빼앗겼고 그렇게 꿈같은 열흘을 보냈습니다. 내내 잘 지내다가도 제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에는 꼭 아픈 것 같다는 부모님의 메세지가 왔습니다. 작은 몸의 안식 역시 제가 학교 에 가 있는 동안에 일어났습니다. 저의 자전적인 이야기입니다. 어깨 위에 올라타길 좋아했던 한 줌 작은 몸뚱아리는 그렇게 저를 배 려하며 세상을 떠났고, 지금도 그 때를 떠올리면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더럽고 뜨끈한 케이지에서 꺼내진 너는 행복했니? 행복했을 거야. 대충 확신해봅니다. 하지만 인간 한 명, 한 명 순간의 어리석음이 출처를 모르는 생명들의 사고 파는 행위를 부추기는 것은 아 닌지, 딜레마에 빠집니다. 그리고 아직도 모릅니다. 어떻게 하면 연약한 생명이 거래되지 않고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는건지.

재래시장 동물 판매, 아는 만큼 알려드립니다. □종을 막론하고 모두 한 케이지에 몰아넣고 판매하는 재래시장의 판매 현장은 매우 비위생적이며, 다른 종끼리의 합사로 인한 싸움 등은 면 역력이 전혀 없는 동물들의 전염병을 더욱 유발시킵니다. □ 버려진 동물이나 훔친 개, 길고양이의 새끼들, 농장에서 경매로 팔려온 상품성 없는 개들부터 애견샵에서 입양되지 않은 성견, 성묘들까지 다양한 아이들이 결국엔 재래시장으로 오게 되는 것입니다. □ 막다른 골목인 재래시장에서도 운 좋게 품종이 있는 동물이나 그나마 건강해 보이는 동물은 판매쪽으로 회유를 해 입양 될 수 있지만 그 외 의 동물들은 보신용으로 팔려갑니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이야기 많은 동물들이 막차로 온 재래시장에서도 판매되지 않은 아이들은 헐값에 보신용이 됩니다. 사람들은 보신을 한답시고 가장 질이 좋지않고, 비용을 최대한 줄인 가장 더러운 업장에서 제조되어진 음 식을 먹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지만 재래시장의 동물 판매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문화의 한 사례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특별한 법률 제지 방법이 없습 니다.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사례들이 오히려 당연시 되는 것은 우리가 경각심을 가져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호를 마감하며 많이 외롭습니다. 기사를 소개해야 하지만 재래시장 동물 판매에 대한 기사가 검색되지 않을만큼 적거니와, 그 곳의 행 태에 주목하는 동물단체도 없습니다. 글을 쓰는 지금도 답답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성문 및 곡주대비 그녀의 자전 영화수기 ,‘청춘과 바꾼 골든 리스트’

이번 호는 특별하다. 아니 2014년 6월은 특별하다. ‘청춘과 바꾼 골든 리스트’는 필자가 활약 하는 눈물 겹고 비장하며 가엽기도 한 휴먼 첼린지 드라마의 제목이다. 물론 가상 영화다. 6월은 필자의 박사 논문 심사가 있는 달이고 10년 동안의 찌질 했던 학생 생활 청산 및 영화 연구의 여정 을 일단 마무리 하게 되는 달이기도 하다. 먼저 독자들에게 고해야 할 것이, 지난 3-4개월은 필자에게 생지옥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 몇 초간이 하루에서 가장 고통스럽고 두려운 순간이었고 해가 떠 있는 하루가 목을 죄는 혹은 전신을 억누르는 고 문이었으며 또 다시 눈을 감을 때면 반복될 하루가 두려워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논문을 끝내야 했고, 그 과정 한가운데서 열등감과 무능력함, 그리고 더 더욱 싫었던 자기연민과 지독한 우울증,불안함 속에서 무 너지지 않아야 했다. 다소 길고 쓸데 없는 이 자조적인 문장들은 마지막 3개월 간의 연재가 심히 ‘로퀄 (low quality)’이었음을 인정하고 반성하기 위해 깔아놓는 일종의 맥거핀이라고 생각 해주심 되겠다. ‘청춘과 바꾼 골든리스트’ 라는 것은 필자가 지난 10년 동안 영화를 공부하면서 혹은 그 이전에 필자와 영 화를 연을 맺게 해준 작품들을 모아놓은 리스트다. 개인적으로 무슨 영화를 가장 좋아하냐는 정말 뻔하 다 못해 무례하기까지 한 질문에 대비하기 위한 자료인 셈이다. 이번호에서 그 리스트 중 몇 편의 영화를 소개하는 것은 지난 10년의 여정을 마무리 하기 위한 의식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작품명: 청춘과 바꾼 골든 리스트 주연: 김효정/러닝 타임: 대략35년/로케이션: 한국 및 미국 (시카고, 인디애나, 뉴욕,샴페인) 1. 대략 10살 정도 안팍이었다. 린다 (필자 모친의 애칭)는 잠실에 있는 극장에 데려가 시네마 천국이라는 영화를 보여주었다. 평생 처음 경험하는 ‘극장관람’ 이었다. 작품 자체도 놀라웠지만 그 때 경험한 극장이 라는 공간은 내게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유년 시절에 천국 같은 도피처를 맛보게 해주었다. 지금도 기억하 는 극장 매점에서 풍겨오던 싸구려 팝콘 냄새, 벽속에 스며든 것 같은 니코틴 냄새, 하늘처럼 넓어 보였던 스크린, 그 안에 살고 있는 것만 같았던 영화의 주인공, 살바토레. 영화 속에서 지독한 가난 속에서 자라 결국 성공한 감독이 되는 남자 아이는 내가 앞으로 경험하게 될 미래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고 나는 이 순 간부터 영화 속에 살 수 있을 ‘궁리’ 를 하게 된다. 2.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비디오 가게에 출근 도장을 찍게 된다. 뭐 그 당시 유행하던 무협영화나 인 디애나 존스 같은 모험 영화도 좋았지만 그로부터 십년도 넘은 시점에서 다시 한번 영화를 끄집어내어 20 페이지 정도의 논문을 쓸 수 밖에 없게 만든 첩혈쌍웅 (오우삼) 은 영화를 보는 행위가 누군 가에게는 (필


자) 의식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물론 그 나이 때는 모르던 개념이지만 관객의 “동일시” (주 인공에게 자신을 무의식적으로 투영하는 행위) 가 성별을 초월한다는 것을 알았다. 한 동안 내 자신이 여 자로 잘못 태어난 한국인 주윤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3. 지난 호에서 소개 한 바 있는 연인 (장자끄 아노) 은 중학교 때 당당히 교복을 입고 가서 빌린 영화다. 우스운 얘기지만 필자는 아직도 영화 속의 양가휘 처럼 내 몸을 숭배해 줄 수 있는 남자를 꿈꾼다. 두시 간 반 이나 되던 영화를 여섯번, 일곱번을 보면서 매번 최면에 걸린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묘한 기류를 난 아직도 기억한다. 도대체 영상의 힘이란 이렇게 강한 것인가. 4. 고등학생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영화로 먹고 살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다만 구체적으로 뭘 해야 할지는 모르는 상황). 프리미어 잡지를 성경책 처럼 숭배했으며 구구단 처럼 읽고 외웠다. 감독이름과 사운드 트 랙에 쓰였던 음악들을 듣고 외우는 것은 수능시험 공부보다 더 중요했다. 당시 점차적으로 늘어가던 예술 영화 상영들이 내게 커가고 있던 영화에 대한 동경을 광기에 가깝게 만들었다. 수능 시험 3일 전에 달려 가서 본 아름다운 청춘 (본 지에서 다룬 바 있는. 스티븐 비더버그 작.) 은 내게 시력을 주신 하나님께 골백 번을 감사하게 만든 영화다. 아직도 여주인공으로 나왔던 여선생의 푸른색 원피스 뒤로 보이던 우유보다 도 하얀 목선이 두 눈을 뒤덮을 것만 같다. 5. 대학교에 입학해서는 공부를 전폐하고 영화에 올인 했다. 지금껏 단 일초도, 학점 관리를 하지 않은 것 에 후회해 본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듯 하다. 독일영화를 공부 하고 싶었던 나는 독어독문과에 진학 했지만 나치에 가까웠던 원어민 독어 교수는 당시 라이벌 학과 였던 불어불문과로 전과를 하게 만들었다. 훨씬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역시 자유의 상징, “레지스탕스” 프랑스 아닌가.)필자는 마음껏 수업을 빼고 영 화를 보러 다녔다. 사실 이 대목에서는 너무 많은 영화를 봤기 때문에 딱히 인생을 바꾼 영화가 기억나지 않지만 내 평생 처음으로 평론이라는 것을 썼던 영화가 기억이 난다: 스필버그 감독의 라이언 일병 구하 기. 감독도 감독이지만 카민스키 (이 영화의 DP: director of photography)의 촬영을 보고 인재를 볼 줄 아 는 헐리우드가 그리스 신전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6. 너무 많은 헐리우드 영화를 보면서 영화는 미국에서 전공해야 한다는 독단적인 결정을 했다. 아버지에 게 여행을 간다는 거짓말을 하고 4계절 짐을 싸서 미국으로 ‘도망’을 쳤다. 그 당시 일본 항공을 타고 시카 고로 갔는데 일본항공에서 쉴새 없이 배가 고프다고 거짓말을 해서 기내식 빵을 스무개 정도 가방에 챙 겨온 기억이 난다 (주머니에는 $60 남짓 있었던 것 같다). 장발장 비스무레 하게 매일 울면서 빵을 먹었 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했다. 아버지는 예상대로 유학을 반대했고 나는 하루에 14시간 일하 는 노가다 알바를 구했다. 그 와중에 나를 버티게 했던 것은 그제 까지 보아왔던 수 많은 영화 주인공들 이었다. 미국에 있는 것 만으로도 내가 보아왔던 영화들의 주인공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편집증에 가까 운 착각이 들었다. 살바토레 같은 영화감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고, 양가휘 같은 연인이 나타날 것 같 았고, 주윤발 같은 영웅으로 살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한 착각으로 1년을 버텼고, 결국 아버지는 내 고집 에 못 이겨 학비를 대주기로 한다.


7. 학부를 전공했던 인디애나에서 나는 필름 누와르 수업을 듣게 되는데 이 때 James Naremore 라는 엄 청난 학자와 조우 하게 된다. 그가 가르쳤던 Film Noir 클래스에서 나는 그 전까지는 쳐다 본적도 없는 미 국 3,40년대 고전 영화들을 보게 되는데..아.. 또 한번 오감이 뒤엉키는 경험 (10살 때 시네마 천국을 봤을 때의 그것!)을 하게 된다. 시신경이 주는 오르가즘 같은 것이라 할까. Maltese Falcon을 클래스 첫 스크리 닝 으로 보게 되었는데 영화 곳곳에 일러스트 처럼 깔려있는 shadow work (배경으로 보이는 그림자들을 이용한 미장센) 은 시카고 박물관에서 명화들을 보았을 때의 그 고리타분함과 비교도 안되는 참신한 것 이었다. 참으로 역설이 아닌가. 고전영화에서 보게 되는 참신함 이란. 뭣도 모르면서 미국 고전영화들을 뒤 져보기 시작했다. 한 학기 동안 미국영화사에 등장했던 고전 느와르 영화를 다 훑은 것 같다. 독자들에게 영화도 영화지만 이 당시 만들어졌던 느와르 물의 많은 작품을 썼던 레이몬드 챈들러의 원작 소설, Long Goodbye 를 초.강.추. 하고 싶다. 그의 소설은 종이와 펜으로 만든 영화 같은 느낌을 준다. 보고 있노라면 내가 같은 인간인 것이 창피할 정도의 글을 써낸다. 가령 주인공 탐정 (필립 말로우) 이 담배를 피는 것을 한 페이지 가득 서술 해놓은 것이 있는데 그 디테일이 얼마나 시적이고 영리한지 한 페이지 동안 한 갑의 담배도 피울 수 있을 것 같은 묘사다. 8. 이 기적 같은 수업 이후에 난 무작정 필름 스쿨을 꿈꾸게 된다. 인디애나 대학은 좋은 학교지만 영화로 유명한 학교는 아니었기에 난 뉴욕대나 UCLA 같은 진배기 필름스쿨에서 석사를 해야 한다는 야망을 갖 게 되는데 물론 아버지가 학비를 대줄 것이라는 0.000000001% 가능성 을 배제한 채. 난 졸업 후 시카고 에서 관광 가이드, 바텐더, 헤어 모델 등 잡다구리 노가다를 뛰면서 대학원 학비를 벌기 시작 했고 남는 시 간을 모두 쪼개 영화를 보러 다녔다. 사실 이 당시부터 ‘술’이라는 놀라운 매직 포션을 발견하게 되면서 상 당 시간을 술마시고 술깨는 Cycle 에 허비한것도 아울러 고백한다. 9. 드디어 원하던 학교 뉴욕대에 진학했다. 전공도 제작 쪽이 아닌 그토록 꿈꿨던 Cinema Studies 이론/역 사 분야였다. 이 대목에서 내 인생이 클라이 맥스 급으로 바뀌게 되는데..뭐 뉴욕이라는 도시 자체의 잠재 력이기도 하다. 필자의 경우에 대학원에서 가장 컸던 충격은 거의 행려자의 행색에 가까웠던 한 교수가 너 덜너덜한 노트북 (컴퓨터 노트북이 아닌 진짜 노트복, 공책)을 들고 와서 4시간 가깝게 니체와 히치콕 영 화에 관해 이야기했던 첫 강의 였다. 그의 강의는 내게 예배와도 같았다. 우리는 네 시간여 동안 히치콕 의 일생과 영화에 대해 찬양하고 경배했다. 특히 우리는 히치콕이 미국에 오기 전 독일의 우파 스튜디오 (UFA studio)에서 참여했던 무성영화들을 집중해서 보았는데 그의 초기 영화들은 숨쉴 공간도 없는 설계 도 같았다. 치밀하고 지능적인 퇴폐적임 이랄까 (intellectual obscenity?) 그런 것들이 그의 영화 안의 각 골자들로 흩뿌려지듯 박힌 듯 했다. 그의 무성영화들 중 The Lodger (하숙생?) 는 잭 더 리퍼 (Jack the Ripper)모티프로 만든 영화로 히치콕의 즐거운 수수께께로 가득한 영화였고, 난 극중 주인공인 연쇄 살인 범 아이버 노벨로 Ivor Novello 를 향한 강한 연정을 경험했다.


10. 뉴욕 대에서의 2년 남짓한 시간은 영화를 원 없이 보고 쓰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허나 지금 생각 하면 그냥 짧은 채로 있었어야 했다) 난, 어린 시절 막연히 읊어대곤 했던 ‘영화박사’의 꿈을 목표로 또 다 시 대학원에 지원하게 된다. 박사과정이 5년이니 5년 동안 영화공부를 더 하면 이 끝도 없는 영화에 대한 집착이 좀 가라 앉지 않을까. 곧 일리노이 대학에 박사과정으로 입학하게 된다. 일단 일리노이 샴페인은 뉴욕과 너무 달랐다. 주말마다 이스트 빌리지에서 사케를 마시고 필름 포럼에서 독립영화를 보던 사치를 누릴 수 없었다. 보고 있노라면 욕만 나오는 깡촌 에서 나는 영화공부라기 보다, 영상매체에 대한 고전적 인 학문을 했어야 했다 (일리노이 대학은 신문 방송 전공이 시작된 곳이다; Communications Studies). 물 론 몽땅 싫었던 것은 아니다. Michel Foucault 나 neo liberalism 을 주제로 했던 (영화 이론 수업은 아니지 만) 세미나 수업에서 몇 개 줏어 들은 것으로 술자리 같은 데서 기 좀 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 다. 또한 일리노이 대학의 장점 중 하나는 미국에서 가장 큰 도서관들 중 하나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아는 지인 하나 없이 간 학교/동네에서 즐길 것은 도서관에서 산더미 처럼 빌려온 DVD 들과 물가 싼 깡 촌에서 즐길수 있는 바겐 가격의 와인이 전부 였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때 보기 시작한 영화들이 한국 고 전 영화였다. 영화를 10년 가까이 전공 하면서 단 한번도 궁금해 하지 않았던 한국 고전 영화들을 한국도 아닌 미국의 대학 도서관에서 찾아낸 것이다. 김기영의 충녀/하녀/화녀 를 보고, 이장호, 김호선 감독의 소 위 말하는 ‘호스티스 영화’들 (영자의 전성시대, 겨울여자, 별들의 고향, 여자들만 사는 거리: 이 중 몇 편은 개인 적인 루트로.) 을 보고.. 난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았다. 11. 왜 이 영화들 인가. 거의 천 편이 넘는 미국/유럽영화를 보고 미국에서 대학교 세 개를 거친 내가 왜 이 제 와서 새삼스럽게,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한국 영화로 내 영화공부 순례의 종지부를 찍고자 하는가. 사 실 이 질문은 너무나도 많이 들었드랬다. 누군가는 시니컬 하게 누군가는 순수한 호기심으로. 솔직히 말 하면 난 이 영화들을 보면서 어린 시절 느꼈던 그런 황홀경에 빠진 적은 없었다. 다만…뜬금없는 결론부 터 말하자면. ..여자들이 너무 불쌍했다. 70년대 영화 몇 편을 보고 나면 몇 시간 동안 몸살을 앓듯..그 여자 들의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이 날 괴롭혔다. 이 영화들 안에서 강간당하고, 버림 받고, 자살하고, 혹은 자 살을 강요 받고, 돈을 위해 창녀가 되고, 괴물이 되는 여자들에 대해 쓰고 싶었다. 12. 아직 내 논문은 진행 중 이다. 지금 이 기사를 쓰고 있는 시점에서 논문 심사까지 딱 한달 이 남았다. 지 난 3년 동안 이 불쌍한 여인들 (호스티스 영화 주인공들) 에 대한 글을 썼다. 내가 쓰지 않으면 다른 문화 권 관객들이 박찬욱이나 김기덕이 아닌, 이 영화들을 찾아 볼 것 같지 않다는 쓸 떼 없는 영웅심리도 내가 이 선택을 하는데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물론 이 논문이 통과되고 내가 박사학위를 받아도 이 영화들이 내 인생의 오메가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천편, 만편이 넘는 작품들을 볼 것이고 그 영화들이 (언 제나 그랬듯) 내 인생을 잠식하게 되길 기대 한다. 참…허무하고…놀랍다. 움직이는 그림 몇 장 묶어 놓은 것이 뭐라고. 인생도 청춘도, 사랑도 가족도 건강도 돈도..몽땅 바쳐대게 만드는가.


회사 옆 미술관 글. 강세기

정 연 두 개 인 전 -

상록아파트

“꿈을 이뤄주는 작가”로 유명한 정연두 작가의 작업은 지나치게 긍정적인 단어로 포장되어 있

무 겁 거

음을 확인했다. 그를 언급하는 말에는 “휴머니즘, 꿈, 희망, 소망, 아날로그, 사람” 등의 단어

단어들이다. 위 수식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대부분의 그의 작업은 저 말들이 표면

들이 잊지 않고 들어가 있다. 미술 전시나 관련 매체에서 여간해서는 볼 수 없는 말랑말랑한

적으로 적용된다. 이번 전시를 통해 그의 작업을 바라보는 시각에 조금 변화를 줄 필요를 느껴 약간 오바해서 붙인 나름 강렬한(또는 강렬하고 싶은) 인트로일 뿐이다.

그의 작업을 누군가에게 소개하라면 문장 어딘가에 반드시 “욕망”이란 단어를 넣을 것이다.

욕망. 참 적나라하고도 뒤가 구린 단어이다. 저 욕망이란 단어는 발냄새를 연상케 한다. 왜 발

은 가 볍 거 나

냄새는 내 것은 얼마든지 참을 수도 있고, 혼자 일 때는 더욱더 신나게 즐기지만(?), 남의 것은

얄짤없는 그런 것 아니던가. 정연두 작가는 그 발냄새를 매우 “희망적이고 긍정적으로” 그리 고 “남의 냄새도 내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긍정적인 의미로 킁킁대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데 가히 월드 클래스 급의 재주가 있는 작가이다.

실재로 정연두 작가는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2007년에 국립현대미술관의 ‘ 올해의 작가상’을 최연소이자 사진-미디어 부문에서는 처음으로 수상했고, 미국 잡지 《아트

앤 옥션(Art + Auction)》이 2012년 6월호 특집호에서 선정한 ‘가장 소장 가치 있는 50인의 작

가’ 중 아시아계 작가로서는 유일하게 한 명으로 선정되었다. 이는 한국 미술가로서는 처음 있 는 일이란다(위키피디아 인용).

포장의 강도는 2000년대 초 ‘Bewitched’와 2005년 ‘Wonderland’ 시리즈가 확실히 세다. 그 리고 이 두 작업이 대중들에게 강렬히 각인된 정 작가의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어떤 기사의 헤

드라인처럼 ‘당신의 꿈을 이뤄드립니다’나 ‘꿈을 이뤄주는 작가’라고 하면 뻥이 너무 세다. 하 지만 적어도 허무맹랑히 들리는 나의 꿈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준다는 미술작가는 흔히 볼 수 있는 부류는 아니다.

플 라 토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모습은 동

Bewitched

시대 미술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현상이다. “ 남”에 대한 관심은 정연두 작가의 유일무이함

을 만들어내는 큰 동력이라고 생각한다. 그것 은 자기 속에 빠져서, 그 안에서 일어나는 것

에만 천작하는 동시대 미술 작품과는 확연히 다른 종류이다.

그런 정연두 작가가 조금은 나빠졌다. 조금 씩 욕망을 적나라하게 까발리고 있다. 예전에

는 검은 옷도 맡기기만 하면 흰 옷으로 허옇 게 세탁해 주었는데 지금은 세탁소 사장이 검

은 점을 곳곳에 뭍이거나, 아니면 회색까지만 표백해준다.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세탁소 사장이 새 하얗게 빨아준 흰옷은 표백이 아니라 겉에 하

얀 약품을 살짝 덧바른 것과 같다. ‘욕망’이라 는 코드로 그의 작업을 보니 지금까지 보지 못 했던 그의 작업의 이면, 즉 사람들의 뱃속 깊

은 곳에서 꿈틀거리는 욕심이 희미하게 감지 되었다.

그 결정적인 계기는 ‘크레용팝 스페셜(2014)

에서 였다. 큰 무대와 영상물, 그리고 음향시 설이 설치된 이 작품을 한 20분간 지켜보면

서 나는 얼굴이 화끈거렸다. 크레용팝의 노

래(정확하게 말하면 이들의 노래반주 MR)를

따라 응원 추임새를 떼로 부르는 내 또래 남 자들의 영상이 상영되고 있었다. 노래에 대한 그들의 태도는 단순히 운전할 때 듣듯 의례히 플레이버튼 누르고 흥얼거리는 수준이 아니었

다. 그들은 진지했고 어떤 면에서는 광적이었다. 아이돌과 스포츠스타에 열광하는 여자 아해 들을 빠순이라고 놀려대던 우리였는데 우리가 그 빠순이라는 단어를 만들었는데 이제는 우리 가 빠순이 짓을 하고 있었다. 유치하다고 놀리고 경멸하면서 집에 가서 혼자 즐기다 들킨 것 처럼 부끄러웠다.


처음에는 부끄러움의 정체를 몰랐다. 그런데 함께 있

는 사람들이 누군가에 따라 감정이 미묘히 변하면서 실

마리가 조금씩 잡혔다. 전시장을 지키고 서있는 사람이 20대 초반의 여자였다. 점심시간이라 사람이 없어 닫힌 공간에 나와 알바걸 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남자들이 떼 창을 하는 순간이었다. 음향은 왜 그렇게 잘 세팅해 Wonderland

놓았는지 내 앞에서 남자들이 떼 창하는 것처럼 생생했 다. 게다가 전시장 천장이 좀 높아…… 어찌나 동굴처럼

쩌렁쩌렁 잘 울리는지…… 왜 이렇게 치부를 들킨 것 마

냥 작아지는지, 뒤에 서있는 여알바가 키득키득 비웃는 것 같고, 뻘쭘한 맘 어떻게 하지 못해 좌불안석이었다( 덕분에 어색함을 달래기 위해 끄적끄적 애꿏은 펜과 수 첩이 고생했다).

그런데 30대 초로 보이는 보안담당 아저씨가 그 여알바

와 교체를 하는 순간 쫄아있는 마음이 확 풀리면서 급

공감모드로 들어갔다. 비록 미술품 만지작 거리나 감시 하러 온 달갑잖은 아저씨어도, 여아해가 있을 때보다 한 결 편했다. 그가 나와 같이 고개를 끄덕이며 ‘음~ 그렇 지’’캬~ 저 부분 진짜 내가 좋아하는 부분인데’라고 공

감해주는 듯했다. 팬덤, 오타쿠 등의 신조어가 나올 정도가 되면 이미 그 취향은 사회 저변에 한 부류로서 인지되

고 있다는 말이겠다. 그런 면에서 크레용팝의 30-50대 아저씨 팬을 지칭하는 ‘팝저씨’라는 신

조어의 등장 역시 언더그라운드에 있던 특정 취향이 수면위로 나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어감이 퍽이나 재기발랄하고 긍정적이다. 팝저씨. 크레용팝이 무명시절 힘들어도 꿋꿋이 거리공연을 계속하며 분투해온 것에 감동받아 팝저씨를 자청했다지만, 진위야 어쨌던 툭 털어 놓고 얘기하면 예전에 좋아한다고 비웃던 걸그룹을 나도 대놓고 좋아하겠다는 소리로 들렸다.

전시 설명책자는 이 것을 조금 더 하얗게 세탁해주었다. 이 작품이 스타를 통해 ‘성공’을 열망

하는 30대 남자의 열정을 시각화했단다. 세련되고 외교적인 표현이다. 보다 쉽게 말하자면 군 대에서 걸그룹 위문공연 때 소리질렀던 우리 방식, 남자들의 방식대로 좋아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수컷의 욕망(욕정)을 여과 없이 분출하겠다고 하면 너무 적나라한가? 이들의 떼 창 은 싸운드 측면에서 보면 군대 떼 창과 진배없다. 여담이지만, 남자들이 모여 떼 창하면 이십 명이던 이천명이던 다 비슷하게 들린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알았다.

이번 전시의 동선은 치밀하고 정교했다. 크레용팝 스페셜에서 여 아이돌에 대한 남자들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맛보고 갔다면, 다음 이어지는 좁고 긴 복도 끝에 그의 초창기 대표작


hero

hero(1998)가 걸려있다. 질주하는 배달 오토바이 위에 표정 없이, 그러나 공격적으로 앞을 기 울여 속도를 내고 있는 이 10대 후반 또는 20대 초반 남자아이의 사진이다. 얘는 어디로 달려 가고 있을까? 이 아이의 목표는 무엇일까? 마치 길 안내용 화살표처럼 보였다.

화살표 다음에는 편안하고 아늑한 ‘내 집’이 펼쳐진다(상록아파트, 2001년). 엄밀히 따지면 장 기임대아파트라 내 소유는 아니지만 일단 대한민국에서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 이들의 삶은 그 평안함이 일정 수준 보장된다. 오토바이 위의 아이가 향하는 욕망의 끝이 바로 저 1남1녀에 각진 아파트 속에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도쿄브랜드 시티(2002년)에서는 또 다른 종류의 욕망을 사는 사람들이 이어진다. 다른 부류 와는 달리 이들의 삶은 모순이다. 물질적 욕망의 끝판왕, 명품을 걸치고 있고 그 속에 파묻

혀 살지만 스스로 그 욕망을 이루지 못하는(무슨 말이야?), 명품샵 직원들의 포트레이트이다.

그 삶은 남이 자신의 욕망을 싸지르는 것을 도와줄 뿐, 자신은 그 욕망을 표출하지 못한 채 바

라만 볼 수 밖에 없는 삶이다. 브랜드가 내뿜는 모양새는 천차만별이지만 직원들의 표정은 하

나같이 비슷한 이유이다. 자신의 선택으로, 브랜드 샵에서 일하는 것에 자부심을 가지고 즐기 는 분들에게는 실례되는 말일 수 있을 테지만, 적어도 이번 전시에서 이 작품을 볼 때는 자신 의 욕망이 아닌, 다른 사람의 욕망을 살고 있는 억압된 부류에 대한 정연두의 묘사로 읽혔다.

그의 다른 시리즈들도 있는데 ‘욕망’의 잣대만으로 보기에는 좀 부족하다. 다음에 기회가 있 을 때 좀 더 살펴보려 한다.



여기, 문학이 필요한 시간

이성복 「서시」

당신이 보고 싶은 밤이 오면 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마음이 계속 당신을 찾아서 도무지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벌써 여름이다. 아니 5월부터 반바지를 입더니 이제 아예 반팔 반바지가 아니면 한 낮에 땀

이 난다. 이제 길고 긴 여름의 시작이다. 그래도 여름이 좋은 건, 밤에 먹는 치맥. 이 치맥느님 이 있어서 길고 긴 여름밤을 보낼 수 있다. 친구들과 모여 가볍게 맥주 한잔 하고 그리고 이러 저런 지나간 이야기들, 사람, 일, 사랑, 상사 욕..(읭?) 그런 밤에 어울리는 현대 시 한편을 골

라 보았다. 내용은 쓸쓸하지만 원래 머물러 있는 이야기가 아니면 서글픈 법이니까. 추억도 좋 은 안주가 되더라고.

간이식당에서 저녁을 사 먹었습니다 늦고 헐한 저녁이 옵니다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는 미끄럽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당신이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사방에서 새소리 번쩍이며 흘러내리고 어두워 가며 몸 뒤트는 풀밭,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

키 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


이 시의 제목인 ‘서시’의 사전적 의미는 시집의 머리 부분에 실려서 시집에 수록된 모든 시들 의 성격을 예시해 주는 기능을 한다. 이 서시가 실린 시집은 『남해 금산』으로 개인적, 사회

적 상처를 서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일상에 깔린 서러움, 슬픔들을 아름답게 정제된 언어로

표현하고 있어 한 번 읽어볼만 하다. 어쨌든 오늘 볼 작품 ‘서시’는 그 시집의 내용을 집약한다 고 볼 수 있다.

이 시는 전체적으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1연은 어둠이 내리는 저녁 상

황을 2연은 어둠이 점점 깊어가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그리고 시적화자는 누군가를 기다리 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혼자 허름한 간이식당에서 혼자 저녁을 사 먹는다. 시적화자가 어떤 상황인지

아직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낯선 바람이 부는 거리라는 표현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니

화자의 내면 심리가 불안하고 허전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곧 3행에서 그 이유가 직접적으 로 드러난다. 사랑하는 ‘당신’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이러한 그리움은 식사를 마치고 정처 없이

거리를 배회하는 화자의 모습으로 이어지며 이러한 화자의 방황은 ‘당신’이 나를 알아볼 때까 지 혹은 마주할 때까지 계속 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여, 당신이 맞은편 골목에서 문득 나를 알아볼 때까지 나는 정처 없습니다 화자는 점점 짙어가는 어둠 속에서 커져 가는 그리움으로 인해 ‘당신’을 애타게 불러본다. ‘당

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는 그리움의 소리이며 ‘나’를 알리려는 간절한 마음으로 심화되고 있다.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 키 큰 미루나무 사이로 잎잎이 춤춥니다 나는 정처 없습니다 위 구절은 특히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당신을 애타게 부르는 내 목소리(청각적 심상)

가 바람을 타고 잎사귀를 흔드는(시각적 심상)장명으로 묘사하여 간절한 그리움을 극대화 하 고 있다.

이 시에서 주목해야 할 시구가 있다. 바로 ‘정처 없습니다’이다. 당신이 내 곁에 없기에 화자는

방황하고 있으며 그 방황은 당신이 ‘나를 알아볼 때’ 종결될 수 있다. 당신이 나의 존재를 알아 봐 주기 전까지는 화자는 자신이 처한 공간에서 낯설음과 정처 없음을 느낄 뿐이다. 어둠이 짙어지면서 화자의 그리움은 고조되고 또 그렇게 하루가 저물어 가고 있다.


모두 그런 경험 있지 않은가? 우연을 가장한 만남을 위해 괜히 그와 함께 걸었던 길을 밍기적

밍기적 걸어보기도 하고, 친구와 일부러 그가 자주 가는 식당을 가보고. 보고 싶다, 그 지하철 역 어디쯤에, 건널목 어디쯤에 그렇게 정처 없었던 하루 말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후회는 없지만, 별로 좋은 기억은 아니었으니까. 솔직히, 부끄럽기

도 하고. 뭐 그런 기억들. 이런 시나 혹은 어떤 음악이나 혹은 어떤 익숙했던 그 무엇이던, 길 을 걷다 우연히 생각나는 이름이 있다. 이제는 만나면 반갑게 인사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여전히 못 본 척 누구인척 그냥 스쳐 갈까.

그런 기억들 때문에 방황하기도 하고 그냥 걷기만 하는 날이 있다. 그럴 때면 함께 나누지 못

한 것이 더 많은 것 같고, 한없이 아쉬워서 더 마음이 울적했던 시간들. 그리고 결국은 하고 싶 은 말을 다 하면 얼마나 행복해질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대로 잠이 들 수 없어 전화를 하고 친구들을 불러 치맥을 하며 함께 욕도 하고 웃기도 하고.

이렇게 시작해서 이렇게 끝이난다 ㅠ_ㅠ

내가 좋아하는 원피스 극장판 <쵸파의 이야기>에 이러한 대사가 나온다. 좀 오글 돋지만 좋은 대사이다.

사람은 언제 죽는가? 맹독버섯 스프를 마셨을 때? 아니야. 총에 맞았을 때? 그것도 아니지. 바로 소중한 사람에게 잊혀 질 때이다. 내 기억 속에 머문 그는 행복한 사람이다. 누군가에게 남겨진 ‘나’도 행복한 사람인거고. 아, 여행가고 싶다. 길을 잃어도 괜찮아. 스마트 폰이 있잖아? LTE라네.

(편집주. 추워요.)

다음시간에는 현대 소설 김동인의「배따라기」을 살펴보겠다. 지각하면 보강이다.


송창식을 ,잘

알지

못 하

면 서

예술 가

들에

식 란 이

대중들이 열광했듯 많은 예술가들도 송창식을 환호했다. 그의 예술 같은, 남다른 삶의 방식이 예술가들의 어딘가를 자극했을 것 같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그의 실력에 감탄했다. 그래서 많은 예술가들이 그와 함께 작업하길 원했고 그 결과 우리가 잘 아는 몇몇의 작품들이 잉태되었다. 사실 나는 평소 거물과 거물 혹은 천재와 천재의 만남을 좋아한다. 가령, 폴 매카트니와 스티비 원더의 만남이라든지 샤넬과 스트라빈스키의 만남처럼. 그래서 나에겐 송창식과 다른 예술가와의 만남이 더 흥미롭다. 가장 유명한 <고래사냥>부터 이야기해야겠다. 알다시피 작가 최인호가 영화 시나리오를 다 만들어 놓은 후 송창식에게 곡을 요청했고 그가 음을 붙여 만들었다. 이 곡은 그를 최고의 가수로 만들어 놓은 동시에 대중가요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곡이 되어 지금까지도 수없이 불리고 있다. 시원한 후렴구도 압권이지만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 봐도 가슴에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라는 도입부의 가사와 멜로디도 정말 백미 중의 백미다. (아니, 술 마시고 춤을 춰 봐도 슬플 수밖에 없다니, 이보다 더 어떻게 우리의 마음을 잘 표현할 수 있을까?) 송창식, 하면 서정주도 빼놓을 수 없다. 내가 대학에서 국문학을 복수 전공하며 시 창작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그때 시인으로 활동 중인 담당 교수님은 이렇게 말했다. “오로지 ‘시’ 하나로 본다면 저는 서정주 시인이 대한민국 최고의 시인이라 생각합니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정치적인 부분을 제하고 과연 예술을 논할 수 있을까 싶지만은 그의 시보다 더 시다운 시는 없어 보인다.(<동천>이라는 시를 떠올려 보라. 시의 맛을 음미할 수 있을 것이다.) 송창식이 중학생일 때 서정주 시인이 그의 학교에 초청되어 강연한 적이 있었다. 이때 시인의 시 짓는 방법을 듣고 송창식은 큰 감명을 받았다. 그 뒤 시간이 흘러 인기 가수가 된 그는 친구를 따라 우연히 서정주 시인의 집에 들르게 되면서 친분을 쌓았다. 나는 둘의 만남이 궁금해 물어보았다. “저를 종종 부르셨죠. 그러다 어느 날 선생님께서 저에게 시를 한 편 보여 줬어요. 여기에 곡을 붙여 보면 좋을 것 같다고 하면서요. 그래서 만들어 갔더니


참 좋아하시더라고요” 그 곡이 바로 <푸르른 날>이다. 사실 서정주 시인은 자신의 시에 곡을 붙이거나 가수에게 주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만큼 송창식을 인정했던 게 아니었을까. 역시나 이 노래도 훌륭하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라는 가사에 그가 우렁차게 내뱉는 발성이 어우러진 이 곡은 가요 이상의, 가곡과도 같은 여운을 준다. 또, 송창식의 서울예고 1년 선배로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을 지내고 현재 서울시 오페라단 단장인 이건용은 80년대부터 여러 차례 송창식과 작업했다. 그가 작곡한 노래를 송창식이 부르는 식이었다. 몇 달 전, 카페 무대에서 그런 곡들 중 하나인 <그래 그럴 수도 있겠지>를 부른 송창식은 이렇게 말했다. “클래식하는 사람들이 대중가요 하는 사람들과 일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조심스러운 일이에요. 잘못하다 쫓겨날 수도 있죠.” 그렇다면 그는 왜 굳이 대중 가수인 그와 작업을 했을까? “송창식만 부를 수 있는 노래거든요. 그가 아니면 안 되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황색 예수의 노래>라는 곡은 송창식 외에는 소화할 사람이 없어 초연 이후 아직까지 공연한 적이 없다. 협업까지는 아니지만 송창식을 최고로 여기는 예술가(음악가)의 이야기도 흥미롭다. 역시나 서울예고 동창이었던 지휘자 금난새는 학창 시절 천재가 한 명 있었는데 그게 바로 송창식었다고 말했다. 인터뷰 당시 나는 이에 대해서도 가볍게 물어봤다 . “그렇지만 금난새가 지휘자 됐지, 나는 안 됐잖아요. 음악 쪽으로는 난 천재가 아니에요. 아마 공부 쪽으로 한 이야기였을 거야. ( 그는 학창 시절 늘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이야기가 공부 쪽으로 흘러갔지만 그는 성의껏 얘기해 줬다.) 시험공부를 일부러 해서 하는 건 비겁한 일이라 생각했지. 안 좋은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그것도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부터 한계가 있더라고. 집에서 예습, 복습하는 애들을 이길 수가 없어. 더군다나 수업 시간을 빼먹으니깐 안 되더라고. 공부를 안 하고 잘하는 건 고 1 때까지야. 더 잘하려면 공부를 좀 해야 돼.” 이선희는 송창식을 가장 좋아하는 분이자 자신의 롤 모델이라며 4분이라는 노래 안에 이토록 넓은 세계를 담아내는 게 충격적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가수가 되기 전에도 좋아했지만 가수가 되고 나서 더 좋아하게 됐다는 게 아닌가. 박완규는 가수가 된 후 아버지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완규야, 너 높은음 빽빽 부른다고 다 가수가 아냐. 송창식 노래를 한 번 들어 봐. 그냥 듣고 연습해 봐, 그래서 네가 저 사람처럼 노래할 수 있다면 아버지가 널 가수로 인정하마.” 마지막으로, 현재 가장 가까이에서 송창식을 마주하는 함춘호의 생각은 어떨까. 그의 말을 마지막으로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당시 인터뷰 말미에 했던 내 질문에 그의 답은 이랬다. “좋은 분이죠. 그러니까 음악에 대해서도……. 제가 어릴 적 음악에 눈을 뜰 때 저의 영웅이었죠.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듣는 귀가 달랐는데, 소위 말해 음악적인 거, 폼이 있는 거 하셨잖아요. 그게 나한테는 너무 잘 맞았고, 구성이 복잡했고……. 또 성악을 했기 때문에 기타를 치면 너무나 교과서 같았죠. 그 뒤 기타를 치면서 기타에 눈을 뜨게 됐으니 나의 영웅인 거지. 같이 옆에서 한 지 이제 14년 됐는데 형식과 장르가 없어요. 선생님 음악이. 그냥 노는 거지. 다양하게 놀고 싶은 대로 따라가는 거죠. 말하자면 놀이터 같은 존재에요. 커다란 놀이터에 마당을 만들어서 ‘너 놀아봐.’ 그런 재미를 느끼면서 하죠. 그래서 다른 데서 형식적인 음악을 하는 게 너무 힘들어요.” 박재현(소설가) walrus1618@naver.com


“중독 (Overdose)”를 비롯해 god, 전효성, 지나, 방탄소년단, 엠파이어, 베이비, BTL, 아이유, 미스터미스터, 플라이투더스카이, 지연, 플래쉬의 신보를 다루고 있다.

’s pick

1st Listen : 엑소 - 중독 (Overdose) * 아이돌로지는 엑소의 새 미니앨범 전곡을 트랙 바이 트랙으로 리뷰하였다. <월간 이리>에는 그 중 타이틀 곡인 ‘중독 (Overdose)’와 그 뮤직비디오에 해당하는 내용을 발췌해 본다. 나머지 트랙들에 관한 이야기는 1st Listen : 엑소 - “중독 (Overdose)” (http://idology.kr/539)에서 확인할 수 있다.

1st Listen : 엑소 - 중독 (Overdose)

1. 중독 (Overdose) 작사 Kenzie, 1월 8일 (K) / Hwang Jung Young Annakid (M) 작/편곡 Harvey Mason, Jr, Damon Thomas, Kenzie, Chaz Jackson, Orlando Williamson, Brit Burton, Rodnae `Chikk` Bell, 유한진 김영대 : 신스로 꽉 채운 후렴은 얼핏 알앤비 피쳐링처럼 들린다. 클랩과 스네어를 교차시키며 리듬의 모멘텀을 잡았지만 A파트는 그걸 이어나가기엔 선율이나 보컬이 다소 약한 느낌인데, 그 대신 톤을 지속적으로 바꾸어 가며 점점 육중한 사운드로 옮아간다. (후렴 전 짧은 트랜지션의 배치도 마찬가지) 자칫 허무하게 마무리될 수 있는 후렴을 보완하기 위한 깔끔한 브리지와 두터운 텍스쳐의 래핑은 나름 프로들의 솜씨다.

미니앨범, SM 엔터테인먼트, 2014년 5월 7일

맛있는 파히타 : 감각적인 드럼 비트는 분명 ‘으르렁’을 닮아있으나, ‘MAMA’와 같은 비장미가 조금 더 가미되었달까. 분명히 엑소는 음악적인

김영대 : R&B 스타일의 전면 배치나

일관성을 쌓아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 노래는 표면적으론 중독적인

지나칠 정도로 유려한 만듦새는 SM

사랑을 다룬 노래이지만, 팬들에게는 엑소에 대한 중독적인 덕질에 대한

의 최근 행보가 파격보다는 내실을

노래처럼 들리기도 한다. SM은 이런 트릭을 자주 사용하는데 리스너가

다지는 쪽으로 옮아가고 있음을

어떤 식으로든 감정이입하고 자신과 연관 지을 수 있는 포인트가 있다는

느끼게 한다. ‘싫기 어려운 음악의

것은 중요하다.

완성’으로써 보이 밴드의 역사가 얼핏 한 사이클을 마무리하는 느낌.

미묘 : 1) 후렴의 커다란 신스는 다소 ‘지금 시점에?’ 싶은 기분도 들지만 2) 킥에 오버레이된 텍스처의 파삭거림, 3) 브레이크다운에서의

미묘 : 팬들의 마음을 몽실몽실하게

맑은 공간감으로의 전환, 4) 느릿하게 뿜어져 나오는 베이스가 오르락

만들어

전용되는

내리락하다가 날카로운 신스와 교차하며 사운드의 무게감을 조절하는

장르였던 아이돌 R&B가 완성도와

주는

것으로

방식 등, 5) 타이틀곡이 가져야 할 ‘X 물질’이 멜로디보다는 사운드와 곡의

설득력을 갖추게 되는 이 순간.

흐름에 넘쳐 흐른다.

* 1st Listen : 2014.05.01~05.20

요요 : ‘으르렁’ 이후, 엑소가 어떤 곡을 들고 컴백할지는 꽤 여러 사람들의

(http://idology.kr/690)은

관심사였다. ‘과연 으르렁 만큼 잘되나보자’라는 심보가 태반이었을 테다.

엑소의


EXO-K - 중독 (Overdose) ⓒ SM 엔터테인먼트 신곡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면 ‘ 역시

으르렁은

요행이었다’는

소리가 나올 것이 뻔한 상황에서 ‘중독 (Overdose)’은 미묘하게 ‘ 으르렁’의 연장 선상이라는 족쇄를 비껴간다. 처음 신곡이 ‘MAMA’에 이은 SMP라는 소문이 돌았을 때 빠순이들은 “아버지 감사합니다” 를 외쳤고(의외로 많은 빠순이들은 SMP를 좋아한다) ‘대중’들은 “그럼 그렇지”를 외쳤을 텐데 정작 뚜껑을 열자 튀어나온 건 미끈한 팝이다. 특히 연결 부분의 “oh she wants me / oh, she’s got me / oh, she hurts me”는 케이팝에서 영어가사 활용의 모범적인 사례로 기록될

미묘 : 정장과 ‘힙합 패션’, 스네어에 맞춰 머리를 두드리는 장면과 탐탐에 맞춰 뺨을 두드리는 장면, 기둥 뒤에서 움직이며 번쩍이는 조명과 벽 모 서리를 타고 흐르는 빛 그리고 CG ‘빛덩이’를 던지는 장면. 이 비디오는

만하다.

여러 개의 모순을 지속적으로 교차시키며 떡밥을 뿌린다. 멤버들을 따라

유제상 : 동방신기의 ‘수리수리’

휘두르며 어떤 소외효과(소격효과)를 보여준다는 것은 그래서 재밌다. 그

가는 카메라워크의 정점을 보여주는 엑소가 멤버의 손끝에서 카메라를

를 듣고 SM산(産) 음원도 많이 세련되어졌다고 더군다나

생각했는데

(

‘수리수리’는

SMP

유영진이

만들지

그랜드마스터

않았나), 이런 형태의 원점회귀로 평자의

뒤통수를

때릴

줄이야.

이래서야 올해 나온 엑소 노랜지, 3 년 전에 나온 슈퍼주니어 노랜지, 6 년 전에 나온 동방신기 노랜지 알 길이 없지 않나.

소실점에는 특수능력자 엑소와 연예인 엑소의 교차가 위치한다. ML : 멤버들의 능력(?)의 연장선상에 있는 이미지들을 잽싸게 늘어놓은 뒤, 퍼포먼스를 담은 화면으로 직행하고 집중한다. 카메라 동선의 제한하 는 퍼포먼스와 그 퍼포먼스에 적합하면서 방송국들이 재연 가능할 법한 공간 미술, 친절하게 짚어놓은 화면 전환과 강조점(클로즈업) 등 슈퍼주 니어 M의 ‘SWING’ 뮤직비디오로 정점을 찍은 음악방송 매뉴얼용 뮤직비 디오다. 때문에 엑소를 둘러싼 설정에 대한 이해도가 낮을 경우 텅 비어 보일 여지도 없지 않다. 한국 버전 뮤직비디오는 조잡한 공간전환으로 인 해, 쉼 없이 부유하는 카메라워크가 지워놓은 분절을 자꾸 드러내며 균형 을 부수기 때문에 중국 버전 뮤직비디오를 추천한다. 유제상 : 만화를 연상시키는 인트로와 아우트로의 배경, 복고적인 노래, 의외로 저렴한(여기서의 ‘저렴한’은 문자 그대로 돈이 덜 들었을 것 같 음을 의미한다) 멤버들의 복장과 주술적인 춤까지 ‘중독’의 뮤직비디오 를 구성하는 모든 요소들은 2000년 전후 SMP의 연장 선상에 있다. 축약 해서 말한다면 ‘식상하다’고도 할 수 있겠다. 물론 이는 철저한 시장분석 에 따른 결과이겠지만, 갈수록 ‘으르렁’은 뜬금포였음이 드러나는 것 같 아 슬프다. 오요 :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벙거지 모자, 등산 모자를 싹 다 모아 불태 우고 싶었다. 하지만 백현이가 소중한 모자라고 했으니까 그걸로 됐다.


프로듀서 인터뷰 시리즈 올로프 린드스코그 (Olof Lindskog)

“다른 모든 장르의 음악만큼이나 요새는 케이팝을 정말 많이 듣는다. 내가 처음 들었던 건 비스트의 ‘Bad

Girl’이라는

곡이었는데,

곡을 이루는 훅 중 하나는 며칠 동안이나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 * 스웨덴 출신의 올로프 린드스코그는 빅스, 포미닛, 신화, 소년공화국,

않았다.

와썹의 곡을 작업했고, 최근에는 슈퍼주니어 M의 ‘Swing’에 참여했다.

음악들 역시도 정말 많은 영감을

샤이니와

소녀시대의

전문은 http://idology.kr/577 에서 읽을 수 있다.

준다. 다른 SM 가수들의 음악도 마찬가지다. 또한 개인적으로 2NE1

“(최근 졸업한 Musikmakarna는) 모든 학생들이 전부 개인 스튜디오를

의 광팬이기도 하다!”

가지고 있고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며 하고 싶은 걸 한다. 특이한 건, 우리 학교에서는 업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고 성공적인 A&R(음반사의 신인/ 신곡 발굴 팀)들을 데려와 학생들과 직접 만나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 미팅에서 우리는 직접 만든 음악들을 연주하고 그들에게 직접 조언을 듣기도 한다. 말할 수 없이 소중한 경험들이었다. 또 하나 중요한 건 2 년간의 인턴쉽 과정이다. 쉽게 말해 퍼블리싱 회사들을 위해 곡을 쓰고 1 주일에 두어 번 그들을 방문해 쓴 곡들을 전달한다.” “(공동작업은) 매번 그 양상이 달라진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회의 때 제시하고 함께 토의를 한다. 어떨 때는 멜로디에 대한 아이디어일 때도 있고, 또는 어떻게 프로듀스를 해야 한다는 아이디어에 대한 것일 때도 있다. 예를 들면 곡이 ‘어떤 식으로 호흡을 잡았다가 후렴구에서 이렇게 터져야 한다’는 특정 부분에 대한 아이템일 수도 있고. 그렇게 아이디어가 시작되어 확대되어 가는 거다.

VIXX - hyde (2013)

모든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함께 작업의 리듬을 타고 곡에 대한 수많은

작곡 황세준, D30(Olof Lindskog,

아이디어를 던져 넣는다.”

Caesar & Loui)


윌 심스 (Will Simms)

* 프랑스 출신의 윌 심스는 보아, 샤이니, 조권, 베스티, 코다 쿠미, 레인보우 등의 프로덕션에 참여했으며, 특히 소녀시대의 ‘I Got A Boy’와 엑소의 ‘ 늑대와 미녀’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프로듀서다. 전문은 http:// idology.kr/707 에서 읽을 수 있다. “혼자 일할 땐 머릿속의 어떤 희한한 아이디어라도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하지만 때로 벽에 부닥칠 때가 있다. 함께 일할 때는 그 벽을 부술 수가 있다. 다른 사람의 에너지에서 힘을 얻고 스스로에게선 답을 얻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서 들을 수가 있다.” “솔직히 ‘I Got A Boy’를 쓰기 전까지 SM이 (1990년대부터) 그런 음악을 했던 것은 모르고 있었다. 원래 작업할 당시에는 곡이 세 번 크게 변화하도록 만들어졌었는데, SM은 그보다도 더 많은 변화를 원했다!” “(‘늑대와 미녀’의) 원래 버전은 내가 영어로 불렀고 켄지도 참여했는데, 최종 버전과 이미 상당히 흡사했다. 이수만 대표가 그걸 매우 마음에 들어 했고, 심지어 내게 한국어 버전을 녹음해 엑소에게 연습을 시키려고까지 했다. 결국 잘 되지는 않았는데 내가 한국말에 서툴렀기 때문이다. (웃음) 하지만 켄지는 더 훌륭하게 마무리해 낼 수 있도록 엑소와 매우 열심히 노력했다.” “곡을 만들 때 나라나 문화 등의 요소를 보통 염두에 두는 편인데, 사람에 따라 선호하는 게 다르기 때문이다. 케이팝을 예로 들면 특정한 멜로디를 선호하고 리듬도 복잡한 편이다. 미국에서는 훨씬 단조롭고 반복적인 것을 선호한다. 또한 가사의 콘셉트에 있어서도 차이점이 있다. 나는

소녀시대 - I Got A Boy (2013)

케이팝에서는 좀 더 과감하고 웅대한 콘셉트를 추구하는데, 그에 비해

작곡 유영진, Will Simms, Anne

미국이나 유럽의 곡들은 가사를 좀 더 안전하게 가져가려는 경향도 있다.”

Judith Wik, Sarah Lund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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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동걸 mm17@me.com! www.facebook.com/mapuk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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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마푸키키의 라이브 연주 영상 감상용 QR코드



버스 정류장 그는 친구들에게 먼저 연락을 하지 않는다. 굳이 먼저 연락을 하지 않더라도 만날 일은 늘 생기고, 그 런 만남들로도 관계는 유지될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친구들을 거의 만나지 않 게 되었다. 이유는,

바빠서.

그렇다. 그는 늘 매우 바쁘다. 제약회사 영업팀에서 근무하는 그는 외근과 접대로 이루어진, 그야말로 자는 시간 외에는 늘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늘 일을 하고 있는 셈이다. ‘영업 중의 영업은 제약회사 영업’, ‘제약회사 영업 1년이면 무슨 영업이든 한다’는 둥의 흔히들 말하는 그 직업에 종사하고 있는 것이다. 제약회사 영업이 힘들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친구를 만날 시간이 없을 정도는 아니다. 그가 늘 매우 바쁜 이유는 직업과 더불어 그의 꿈 때문이다. 그의 꿈은,

시인이다.

‘시인?’ 어쩌면 당신은 이런 생각을 하며 잠시 고개를 갸우뚱거렸을 수도 있다. 제약회사 영업과 시 를 쓴다는 것 사이의 갭은 딱 그 정도, 고개를 갸우뚱거릴 만큼이다. 그렇지만 그에게 이 두 가지 일을 병행한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벌써 2년이 다 되어가니까. 그에게 영업은 돈을 버는 일 이다. 시를 쓰는 건 멋진 일이긴 하지만 먹고 살만큼의 돈을 벌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시를 쓰 기 시작할 때부터 시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접었다. 그렇기 때문에 시를 쓰면서 동시에 돈을 버는 일 도 계속 병행하기로 했다. 어떤 이들은 시로 돈을 벌면 되는 것 아니냐고 물을지도 모르겠다. 글쎄, 예 전이라면 모를까, 이미지의 시대라 불리는 지금의 시대에 그게 가능한 일일까? 소비를 극단적으로 최 소화시킨다면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시인으로서 대중적인 인지도를 얻을 수 있다면 그 가능성이 더 높 아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에서 시로만 밥벌어 먹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시를 쓰는 사람들은 대학 교수나, 기자, 카피라이터, 기타 글을 필요로 하는 산업에 몸담고 있는 자들 이 대부분일 것이다.

다른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다.

다시 그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아무튼 그는 제약회사 영업을 뛰며 짬이 나는 시간에는 책을 읽고 시 를 썼다. 이따금 시 창작 클래스에서 시인에게 시를 배우고, 다른 지망생들과 함께 합평을 하기도 했다. 그러니 그에게 친구들을 만날 시간이, 그럴 정신이 있었겠는가. 의사와 약사들 간식거리를 챙겨야 하고, 매달 실적관리를 해야 하고, 그런 상황에서 틈틈이 시를 읽고 자신의 작품을 구상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런 하루하루를 보내던 어느 날, 그는 한 친구와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 제법 친하게 어 울렸던 친구였는데, 서로 다른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멀어지기 시작해, 군입대 후 연락이 끊긴 친구 였다. 그 이후로 정확히 8년만의 만남. 그는 한 손에는 제품들이 들어있는 봉투를, 한 손에는 도너츠 상


자를 들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찻길을 보면서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건너편에 익숙한 얼 굴이 보였다. 신기한 건, 8년간 연락 한 번 하지 않고 지낸 친구인데도 단번에 그 친구를 알아보았다는 점이었다. 친구 역시 그를 바라보았고,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서서 빤히 바라보더니, 활짝 웃으며 손을 높이 들어 흔들어보였다. 그는 좀 어색하기도 해서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친구는 그를 향해 손가락질로,

자신이 건너갈 테니 거기 있으라,

는 신호를 보냈다. 오랜만이네. 응. 진짜 오랜만이다. 그러게. 거의 7-8년 만에 처음 보는 것 같네. 둘은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이라면 나눌 법한 대화를 나눴다. 요즘은 뭐하고 사냐. 직장은 다닐 만하냐. 여자 친구는 있냐. 부모님은 잘 계시냐. 그리곤 마지막 대사는,

언제 한번 술이나 마시자.

그가 이 말을 건넸다. 친구는 언제 한 번 같은 소리 하지 말라고 했다. 어차피 우리가 또 보겠냐고, 잘 살라고 말하곤 다음에도 우연히 마주칠 날이 있겠지, 라는 말과 함께 다시 갈 길을 갔다. 다시 버스정류 장에 혼자 남은 그는 멍하니 서서 친구의 이야기를 곱씹어보았다. 맞는 말이었다. 언제 한번 술이나 마 시자는 이야기는 하나마나한 이야기였다. 사실 그럴 마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 말을 하면서 속으 로 그 언제 한번이 언제가 될까, 라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문제는 무엇인가. 문제는 아무 것도 없다. 정 말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커피나 한잔 마시러 가자고 할 걸 그랬나? 편의점에서 음료수라도 한 캔 사 다가 나눠 마실걸, 담배라도 한 대 나눠 피우고, 오늘 저녁이라도 소주 한잔 하자고 할 걸 그랬나. 그는 자책하기 시작했다. 그리곤 자책하는 자신을 한걸음 물러서서 제 3자의 입장에서 바라보기 시작했다. 왜 자책을 하고 있는 거지? 뭘 잘못했다고? 더운 여름날의 버스정류장. 햇볕이 내리쬐는 보도블럭 위 에 발을 딛고 서있는 남자. 한손에는 감기약 상자가 가득 든 봉투를, 한손에는 12개 도넛 세트를 들고 있 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의 이야기에 자책하고 있다. 어디다

써둬야

겠다. 시를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메모는 소중한 자산이다. 그는 잠시 짐을 내려놓고 핸드폰을 꺼내 자 신의 모습과 생각들을 두서없이 타이핑했다. 어느 정도 정리를 마친 뒤, 전화번호부를 켜서 친구의 연락 처를 찾아보았다. 용케 아직 번호가 저장되어 있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낯선 목소리. 번호가 바뀌었구나. 그는 죄송하다는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곤, 친구에게 번호 라도 받아둘 걸 그랬다는 생각을 했다.

<끝>


ⓒ NANGMANSPY letmeflywoo.tumblr.com

그림자의 주인은 별 눈길이 가지 않는 물건일 뿐인데, 그 것의 그림자는 유달리 예뻐. 버려진 물건 뒤에 늘어진 그림자가 왠지 모르게 내 눈길을 끌어.

#3 눈에 띈_1


ⓒ NANGMANSPY letmeflywoo.tumblr.com

어둠 속의 빛과, 빛에 드리우는 어둠. 눈에 띈 그림자일까 눈에 띈 빛일까.

#3 눈에 띈_2



Chapter 12 {표현}의 생존매뉴얼 별 볼 일 없는 스펙으로

미안합니다. 세월호 실종자분들의 무사귀환과 희생자 여러분의 명복을 빕니다.

1)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고 서울시청의 거대한 전광판에는 무사생환을 상징하는 노란 리본과 함께 미안하다는 글자가 얹혀졌다. 합동 분향소에는 서울 시민들의 조문 행렬이 끊이지 않았고 엄숙함과 미안함이 뒤섞인 무거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하지만 시청의 초록빛 잔디밭에는 조문 행렬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노란 리본

주말데이트를 즐기러 나온 연인도 있었고 시종일관 해맑은 얼굴을 한 젊은 가족도 보였다.

여러상징적 의미가

일상과 비일상. 두 차원 사이에는 알 수 없는 적막감이 흘렀다. 서로 다른 차원에 서 있는 그들은 곁눈질로

담겨있는 인식리본.

상대를 의식하며 불편한 듯 평온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무사생환을 바랄 때 주로 사용.

2) 한국에서 노란 리본 캠페인은 2005년 11월 25일 그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의 주도로 납북동포의 무사귀환을 기원하는 운동으로 시작되었다. 그 후로도 노란 리본은 아프간 피랍자들의 무사생환과 같이 국민 참여를 호소하는 캠페인의 상징으로 사용되곤 했다. 하지만 우리나라 국민에게 노란 리본이 가장 강하게 각인되었던 사건은 역시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이 아닐까 싶다.


2009년 4월, 노무현 전 대통령 검찰 소환 날짜가 정해지면서 ‘노사모’를 중심으로 대검 근처 반포로 가로수에 노란 리본을 매다는 방안이 최초로 논의됐다. 2009년 5월 3일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경남 진해시 진영읍 봉하마을에 노란 리본이 처음으로 달렸고,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하자 마침내 서울 중구 덕수궁 대한문 앞은 노란 리본으로 물결을 이루었다. 민간 차원으로 사용되던 노란 리본의 정치적 시발점은 한나라당 주도에 의해서였으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살을 기점으로 다분히 진보적 색채를 띠게 되었다는 것은 흥미로운 사실이다.

3) 미국의 기호학자 퍼스[Peirce, Charles Sanders]는 기호를 도상(Icon), 상징(Symbol), 지표(Index)로 나눈다. ‘도상’은 유사성의 법칙에 입각한 기호인데 쉬운 예로 화장실의 남녀 아이콘을 들 수 있다. ‘상징’은 사회적으로 약속된 법칙으로 화살표나 신호등의 색깔같이 임의적 성격을 띤다. 마지막으로 ‘지표’는 인과관계에 의존하며 발자국이나 연기 등을 예로 들 수 있다. 하지만 많은 기호가 하나 이상의 속성을 내포하고 있는 경우가 많으며, 최초의 의미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찰스 샌더스 퍼스

완전히 전복되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평화의 상징이었던 비둘기를 떠올릴 수 있다.

1839 - 1914 미국의 철학자. 현대 분석철학 및 기호논리학의 뛰어난 선구자 중 한 사람.

4)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후 진보세력이 노란 리본을 전유하게 된 연유를 오롯이 상징이 품은 의미로 돌리기는 힘들다. 깊은 심연으로 가라앉은 사람에게 ‘무사생환’이라는 의미는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란 리본은 의미(심층)의 적합성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징했던 색깔(표면)의 유사성에 의해 전유됐을 확률이 더 높다. 더이상 노란 리본은 생존해 있을 사람에게 보내는 ‘무사생환’의 의미보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이에게 보내는 ‘애도’의 목소리이자, 그를 천 길 낭떠러지로 떠민 ‘힘’에게로 보내는 원한서린 목소리가 되었다. 또한, 노란 리본은 이제 지표(Index)의 기능도 수행하게 되었다. 언젠가부터 나는 머릿속에 노란색을 떠올리면 불현듯 이 세계의 완벽해 보이는 표면에 대한 경계심이 들어 길에서 잠시 멈춰 서게 되었다. 이번 세월호 참사후 무심코 카카오톡을 켜보니 많은 친구들의 썸네일이 노란리본으로 바뀌어 있는것을 발견했다. 작은 액정안에 가득 들어찬 노란 물결을 보고 내가 느꼈던 감정은 힘없이 죽어간 어린 영혼들을 애도하는 비통한 마음이 아닌 형용할 수 없는 군중의 분노였다. 더불어 웹상에 존재하는 여러 커뮤니티에서는 캠페인에 참여하지 않는 사람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들이 생겨났고 현실 속 사람들은 부자연스러운 제스쳐를 강요당하기도 했다.


5) 우리는 하나의 사건에 대해 ‘이유’와 ‘원인’을 분간해서 볼 줄 아는 능력이 있다. 한 아이의 엄마가 있다. 아이의 엄마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왠지 불길한 전화가 걸려온다. 엄마는 헐레벌떡 뛰어들어가 수화기를 집어 든다. 수화기에서는 웬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당신의 아이가 대낮에 교통사고로 사망했습니다.” 아이의 엄마는 실의에 빠진 채 자신의 삶 전부가 얼어붙은 것 같은 슬픔을 느낀다. 이 사고에서 아이가 죽은 ‘이유’는 명백하다. 바로 교통사고다. 하지만 세상 모든 엄마는 아이의 죽음을 쉽사리 교통사고로 연결짓지 못한다. 아이를 잃은 엄마는 요사이 며칠간, 돈 몇 푼이라도 벌기 위해 남의 집 주방을 전전하다 아이를 혼자 내버려둔 것이 내심 마음에 걸린다. 또한, 별일 아닌 일로 아이를 과하게 야단친 것도 생각난다. 이렇듯 하나의 사건에 대해 이유는 비교적 쉽게 밝혀낼 수 있지만, 원인은 언제나 풀리지 않는 ‘X’이며 모든 사람에게 달리 인식된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하자 정부에서 취한 최초의 행동은 배의 키를 잡았던 선장과 선원들에 대한 매질이었고 현재도 진상규명이라는 구호 아래서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이유’ 밝히기에 몰두하고 있다. 물론 진상규명은 중요하다. 하지만 아무리 사건에 대한 명백한 이유가 뉴스에서 연신 흘러나와도 보는 이들의 마음은 좀처럼 잔잔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세월호 참사를 바라보는 대다수 사람은 배와 함께 가라앉은 ‘원인’을 인양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어떤 사람은 뉴스보도를 보며 현재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시스템의 허술함에 대해 생각할 것이고, 또 다른 사람은 저 침몰하는 배에 타고있었던게 왜 자신이 아니었는지에 대한 의구심을 품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죄송하고 미안해요

1) 분향소에는 애도의 말들이 적힌 노란 리본들이 바람에 넘실거렸다. 리본에 쓰인 말들은 각양각색이었지만 그 밑으로는 미안함과 분노가 언제 터질지 모를 휴화산의 용암처럼 우글거렸다. 글자는 저마다의 꼴에 따라 다양한 목소리(tone)를 가진다. 예컨대 고상한 명조체로 쓰인 ‘사랑’이란 단어와 아기자기한 손글씨체로 쓰인 ‘사랑’이란 단어는 보는 이에게 전혀 다른 의미로 전달될 것이다. 나라면 명조체로 쓰인 ‘사랑’에서는 결혼을 염두에 두고 진지하게 교제하고 있는 30대 연인들을 떠올릴 것이며, 손글씨체로 쓰인 ‘사랑’에서는 10대 고등학생들의 풋풋한 사랑을 떠올릴 것이다.


이렇듯 단어에 사용된 글꼴과 의미를 연결짓는 방식은 사회에서 형성된 담론에 의해 지배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글꼴의 외형과 글꼴이 지시하는 대상에게 씌어진 이미지의 유사관계) 그렇기에 의미의 스펙트럼이 좁아지는 것을 막고 싶다면 창작자는 중립적 표현에 대한 고려를 해야만 한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서체가 다름 아닌 헬베티카(Helvetica)라는 점은 그래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HELVETICA

2) 노란 리본에 매직으로 삐뚤빼둘하게 쓰인 ‘미안하다’라는 글귀에는 물기가 한 가득 머금어져 있다. 매직의 기름성분이 리본의 반들반들한 질감과 만났기에 이렇게 표현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헬베티카

하지만 두 물질의 화학적 충돌(번짐)이 분향소 대기를 떠돌던 정서에 닿자 슬픔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스위스의 서체 디자이너

이 거대한 슬픔은 어딘지 모르게 거칠고 직접적이다.

막스 미딩거가 1957년 디자인한

왜냐하면 ‘죄송하고 미안해요’ 가 의미하는 슬픔의 정서가 눈물이 번지는듯한 표현과 마주치자

산세리프 글자꼴. 원래 이름은 뉴 하스 그로테스크 이다.

그 직접성 때문인지 다양한 의미발생으로의 길이 굳게 닫혀버렸기 때문이다. 슬픔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가족을 잃고 오열하는 슬픔, 애인과 헤어지고 깊은 심연에 잠긴 슬픔, 축하받고 싶은 생일에 주위를 둘러보니 혼자일 때 밀려드는 슬픔, 군중 속에서 불현듯 엄습하는 슬픔. 표현의 한계 때문에 이 모든 감정을 편의상 슬픔이라고 한정 짓지만, 저마다 섬세한 차이에 의해 구분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3) 예술가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섬세한 감정들을 모조리 그러모을 수 있는 형식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만약 예술가 자신이 느낀 감정을 모조리 표현하고 싶다면 형식을 빌려선 안 된다. 하지만 형식이 없는 감정의 표현은 절규나 비명에 가까울 것이다. 그것은 타인에게 불쾌를 유발한다. 그렇기에 형식은 예술에 있어 불가피하지만 언제나 반쪽자리일 수밖에 없다.

I’m Sorry

미안해요

I’m Sorry

미안해요

Helvetica / 10pt

윤고딕700 / 10pt

Garamond /10pt

윤명조700 / 10pt

serif type

4) 서체 헬베티카는 표현의 중립성 때문에 세계인의 가장 많은 애호를 받는 서체이지만 그 때문에

세리프체

거치면 기존의 의미층이 옅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렇듯 ‘표현성’과 ‘중립성’은 언제나 창작자에게

자획 끝부분에 돌출선이 있는 글자나 숫자. 한글로는 바탕체나 명조체라고도 한다.

가장 많은 비난을 받는 서체이기도 하다. 아무리 심오한 의미를 내포한 단어라 하더라도 헬베티카를

풀리지 않는 숙제다. 하지만 적어도 수행해야 할 목적이 뚜렷하다면 거기에 더 부합되는 것을 찾아 여행을 떠나 보는 것이 창작자의 윤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의 네 가지 이미지는 ‘미안해요’ 라는 단어를 한글과 영문으로 각각 분리해 명조와 고딕으로 적용해본 사례다. 확실히 세리프가 있는 서체로 적용된 그룹(우측)이 세리프가 없는 그룹(좌측)보다 정서적 자극이 크다. 반면 세리프가 없는 그룹은 어떤 의미든지 담을 수 있는 투명한 그릇처럼 여겨진다.

5) 나는 전광판의 거대한 명조체를 지나 분향소로 향하는 천막 위에서 사람들이 손으로 써놓은 애도의 문구들을 읽으며 걸어갔다. 모든 사람의 지문이 다르듯 천장에 쓰인 글씨들도 제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거기엔 슬픔에 잠긴 비통함, 때론 침묵, 가끔은 비명 같은 것도 들렸다. 나는 손글씨들의 합창을 간신히 뚫고 분향소에 도착해 묵념을 하고 퇴장했다.


퇴장하자마자 내가 최초로 목격한 이미지는 노란 리본에 사지가 묶인 나무들이었다. 가까이서 들여다보니 노란 리본위에 쓰인 사람들의 글씨는 번지고 번져 눈물의 강을 이루고 있었다. 그것들은 서로 묶이고 묶여 노란색 바다로 범람하려는 듯 보였고 나는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두 다리에 힘을 꽉 주어야만 했다.

정보성과 이야기성

1) 분향소에는 여백이 존재하지 않았다. 복잡하게 엉킨 노란 물결과 눈물을 닮은 번진 글씨들. 바다는 슬픈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연신 넘실거렸다. 애도를 위해서는 대상과의 객관적 거리가 필요하다. 그러한 거리가 확보되었다면 대상에 대한 충실한 기억을 동원해 내 일부였던 그를 점진적으로 소멸시켜 나가야 한다. 만약 충분한 거리를 확보하지 못한 채 대상이 내 안에서 집을 짓도록 방치한다면 주체는 깊은 우울증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가 애도를 위해 끄집어낸 대상의 충실한 기억이라고 하는 것들은 각자의 기호에 의해서 작위적으로 편집된 이미지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오히려 대상에 대한 충실한 애도없이 내 안에서 그(그들)가 오래도록 지내게 놔두는 편이 더 윤리적일 거란 생각도 든다. 모든 것을 단념한 채 우울의 가장자리에 머무르기로 한 주체에게서는 타인에 대한 완전한 앎이 불가능하다는 태도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2) 시청의 분향소에는 분향객들 뿐만 아니라 평화로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연인과 가족들도 있다. 그들에게 너무 빨리 우울의 상태에서 벗어난 것 아니냐고 누군가는 손가락질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남겨진 사람들이 서로를 책망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국, 시간은 지금 이 시간에도 바삐 흘러가고 있고 우리는 일상이라는 형벌로 다시금 돌아갈 운명이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누가 더 충실히 애도했고 오래 슬픔에 머물렀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진실에 대한 응답이 아닐까? 견디기 힘든 진실을 목격한 뒤 앞으로의 삶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시청 앞 분향소에는 원인을 찾아 모험을 떠났던 사람들로 가득했다. 그들이 올바른 응답을 할 수 있게 이 공간은 침묵해야 할까? 아니면 적극적으로 슬퍼해야 할까? 시청 앞 분향소의 다양한 시각체계들은 오롯이 한 가지 감정으로 집중되어 있다. 눈물을 닮은 사람들의 글귀와 바람에 펄럭이는 노란 물결의 리본들. 분향하러 가는 길 천장에 매달린 알록달록한 종이들과 거기에 쓰인 사람들의 손글씨. 이 모든 슬픔의 발화를 위에서 관장하고 있는 ‘미안합니다’ 라는 거대한 명조체. 별 생각없이 분향소를 찾았던 나는 이 직접적인 정서의 공간에 발을 들여 놓자마자 감정의 끈을 놓쳐버렸다. 그곳에서 느낀 우울감의 기원은 내 감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밖을 떠돌던 표현들이었다.


그것들은 마치 내 안에서 발화된 것인 양 살아서 연기하기 시작했다. “그래 나는 슬픔을 느끼고 있구나. 나는 감정이 메마른 사람이 아니었어.” 불현듯 이런 생각들이 머리에 맴돌았고 내심 안심도 되었다. 사람들이 리본에 써놓은 글귀들을 보자 나는 왠지 모를 뭉클한 마음에 리본 하나를 바닥에 펼쳤다. 그러자 갑자기 머리에서 쓰고 싶었던 말들이 허공으로 흩어져 버렸다. 나는 도무지 써야 할 말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3) 분향소를 떠나 카페에 앉아 그곳의 기억을 더듬어보니 나는 그저 자기기만의 상태에 놓여 있었던 것뿐이었다. 직접적인 슬픔에 노출되자 나는 마치 내 자신이 느낀 것처럼 행동했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나 자신이 참을 수 없을 만큼 역겨워졌다. 나는 사실 전혀 슬프지 않았다.

4) 헤로도토스의 저서 [역사]의 제3권 14장에는 ‘사메니투스 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이집트의 왕 사메니투스는 페르시아의 왕 캄비세스에게 패한다. 캄비세스는 포로로 잡힌 사메니투스를 능욕하려고 별렀다. 캄비세스는 사메니투스를 페르시아 개선행렬이 지나갈 거리에 세워두도록 명했다. 그리고서 캄비세스는 사메니투스가 자신의 딸이 하녀가 되어 물동이를 지고 우물로 가는 모습을 지켜보게 했다. 모든 이집트인이 이 장면을 보고 탄식하고 절망했는데, 사메니투스만은 아무런 미동 없이 눈을 땅에 고정한 채 서 있었다. 헤로도토스 BC 484 ~ BC 425 (추정) 소아시아의 하리키루나소스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높은 교육을 받고 문학에 정통했다.

또한, 자기 아들이 처형되기 위해 개선행렬 속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이때도 그는 꿈쩍하지 않았다. 그 뒤 사메니투스는 그의 하인들 가운데 늙고 초췌한 남자를 포로들의 행렬 속에서 알아보고는 주먹으로 머리를 치고 온갖 방식으로 깊은 슬픔을 표현했다고 한다. 왜 그는 하인의 모습을 보는 순간에 탄식했고 그 이전에는 그러지 않았을까? 그 질문에 몽네뉴는 이렇게 답했다.

정치 싸움으로 고향에서 쫓겨나

“왕은 슬픔으로 이미 가득 차 있었기에 미량의 증가만 있었어도 슬픔의 댐이 무너질 판이었다.”

30세 무렵부터 세계 편력의

그러나 이 이야기는 듣는이로 하여금 얼마든지 새롭게 변주될 위대한 구석이 있다.

여행길에 올랐다.

반면 정보는 보는 이에게 해석이 아닌 빠른 직관을 요구한다. 정보는 이야기보다 기능적이다. 하지만 이야기는 침묵에 가깝고 직접적인 것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는 사랑했던 사람들을 이야기로 밀봉해 자기 안에 거주시킨다. 그것들은 언제든 발아될 준비를 마친 곡식 알갱이 같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그토록 고귀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이야기는 결코 자신을 소모하는 법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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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메일 / clichecliche@naver.com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소개소

1. Baby, Don’t Kill Me Now - 청년들

2. 심야영화 - 파블로프

얼마 전 발매한 1집에 들어있을 거라

타이틀

조여진>의

노래를 부르는게 아니라 그냥 말하는

데모 앨범에 수록되어있다. 드럼

1집. 전주 부분을 들으면 서부

원래도 관객들을 춤추게 만드는

[1st Demo](2012), 2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아 아쉬웠다.

소리가 돋보이는 시작 부분이 정말

신난다. ‘Oh baby, don’t kill me now 괜찮아질 테니까’를 부르는 보컬의

목소리는

정말

위안이

된다. 아주 특이한 가사는 아니지만

노래는 밴드 이름대로 재기발랄 그

자체다. 락 페스티벌에서 들으면 절로 기분이 좋아질 것 같다.

3. 아침의 빛 -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26](2014), 10 곡

<한껏

[우정모텔](2011), 8

뮤비가 너무 좋아서 산 파블로프 영화의 긴장되는 장면이 떠오른다.

‘문 샤이너스의 <목요일의 연인 >과 같은 스트레이트한 로큰롤’

이라는 설명을 읽고 듣게 되었는데

누가 비유했는지는 모르지만 참 적절한

표현이다.

아직

올라온

영상이 없기 때문에 다가올 6월 14 일 단독공연에서 꼭 듣고 싶다.

것 같은데 이렇게 어색하지 않다니!

노래에 키보드가 더해지면서 더 발랄해졌다. 중간에 노래가 끝난 것 같았지만 드럼과 함께 노래가 다시

시작되는 부분이 참 좋다. 이 노래를 들으면 구남 멤버들이 무대에서 왜

춤을 추는지 이해가 된다. 구남의 노래야 말로 한국형 그루브라고 생각한다.


저는 드럼과 베이스 소리에 맞춰 춤추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의 마음을 움직이는 장르는 정해져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장르 구분이 무의미한, 저를 춤추게 하는 노래들을 소개합니다. 신당동 파르한 (@chungchoon98)

4. 몸뚱이 블루스 - 김간지X하헌진

5. Refuge - 지니어스

6. Dance (Fresh Groove) - 코어매거진

드러머 김간지와 블루스 뮤지션

“우린 펑크가 아니다. 그냥 술에

코어매거진은

노래 제목을 좋아한다. 전혀 어울릴

부산밴드다. 싱어송라이터 김일두

고수에 선정되었다가 멤버 교체 후

[김간지X하헌진](2013), 1

하헌진의 듀오. 나는 이런 식의

것 같지 않은 조합이지만 들어보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다. 기타 연주가 시작되기 전의 드럼 연주가 정말 맛깔난다. 밴드하면 당연히 4인조를

떠올렸는데

2인조의

음악도 참 좋다. 최근에는 가끔 베이시스트와

함께

공연하는데

아직 보지 못했지만 기대된다.

[Beaches](2014), 14

취했을 뿐이다” 라는 지니어스는 씨의 밴드로 알게되었다. 처음에는

베이스와 드럼만 연주하다가 기타가

합세하여 끝까지 열심히 달린다. 가사 없는 곡이지만 멤버 3명의 연주 모두 듣는 사람을 춤추게 할 만큼 멋지다. 앨범을 듣기 전, 날것의 느낌이 날 것이라 기대했는데 실제로도 아주 그래서 뿌듯했다.

[Peep](2012), 4

1999년

<제

1

회 쌈지 사운드 페스티벌> 숨은 EBS 스페이스 공감 <2012 올해의

헬로루키> 대상을 받은 밴드다.

사실 일렉트로닉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코어매거진이 그 벽을 깨주었다. 돋보이는 베이스와 신디

소리 같은 기타가 매우 좋다. 보컬이

바뀐다고 하는데 앞으로 어떤 음악을 들려줄지 궁금하다.


게임 노동 일지

글. 그림. 철민


건축이 좋아. #9. 하늘과 바람과… 윤동주문학관

aoikasa

산 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이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 가 있습니다.

<윤동주, 자화상>

부암동 산자락에 ‘윤동주 문학관’이라는 작은 건물이 2012년 들어섰습니다. 사실상 새롭게 들어섰다라기보다는 새로운 모습으로 재단장해 일반에 공개되었다라는 표현 이 맞을 것 같습니다. 본래 물탱크와 가압시설이었던 시설이 청운아파트의 철거에 따라 필 요없어지자 윤동주문학관으로 새롭게 태어나게 된 것으로 이 작은 건물은 그 시작부터 완공 까지 많은 건축가들의 관심을 샀습니다. 특히 이 건물의 설계자인 이소진 건축가가 2012년 젊은 건축가상을 받게 됨에 따라 이 건물에 대한 관심도 더욱 높아졌습니다. 개관 후 얼마되지 않아 이 곳을 찾았었습니다. 부암동 산책길에… 들린 이 곳은 그 자체로 ‘ 우물’ 같았습다. 그 사나이가 그토록 들여다 보고 들여다 보던 그 우물. 아주 거대한 그 우 물은 하늘을 담고 별을 담고 시인을 담고 있는 듯 했습다. 그리하여 짧은 시간의 방문이었지 만 이 곳에 내 마음도 가득 담아둔 채 돌아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윤동주 문학관. 함께 바라보기.

언젠가 또 한 번 가고팠던 (아니 햇살 좋은 날이면 늘 가고픈) 윤동주문학관에 exxx님 다녀


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건축가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윤동주문학관이 아닌 건축가가 아 닌 이 곳의 실제 방문자들이 바라보는 그 곳이 궁금했는데… 그의 첫 반응. 사실 저는 자연의 꼭지점에 건물이 있는 걸 좋아하지 않습니다. 능선이나 이런 곳에 건물이 있는 것이 특히 그래요. 자연이 있어야 할 부분에 인위적인게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요. 나무의 곡선위에 인위적인 선이 들어가는 걸 좋아하지 않기도 하고 누군가 그 위치를 선점해 서 독점하는 마음씨도 좀 별로라고 생각하고요. 물론 제가 그런 곳에 살 수 있는 재산이나 지 위가 있다면 어떨지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확실히 맛이라는게 있긴 하거든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팔각정 같은 전망대는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누구나 갈 수 있고 트여있는 구조는 왠지 나무와 다를게 없는 것 같아서요. 그래도 역시 나무가 조금 더 좋긴 하지만요. 이렇게 적고 보니까. 그 지점을 소유할 수 없는 스스로를 알기 때문인지 아니면 순수하게 자 연에 인공이 덧대여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것인지 자신할 수 없긴 한 것 같아요. (이게 소 유욕 때문이라면 안되는데 이것 참.. 하하) 그래서 윤동주 문학관 옆을 몇번이나 지나다니면서도 그 안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운 능선에 왜 저걸 지어서 삐쭉하니 말이죠. 그리고 것으로 보면 건물이 정말 심심합니다. 미워서 그런지 모만 잔뜩 보이기도 하고요. 겉에서 보면 정말 별 것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잖아요. 기념관이란 것이 심심하고 엄숙하고 별 볼일 없는 평평한 느 낌이라는걸 다들 이미 잘 알고 있잖아요.


저 역시 마찬가지. 자연은 자연 그대로가 가장 좋아요. 그래서 자연에 무언가가 들어가야할 때에는 최소한의 제스츄어만 취하는 것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exxx님이 지적하듯, 팔각정은 그 풍경을 함께 누리게 할 뿐, 그 풍경을 소유하지 않는 것이니까… 그러나 이 건물의 경우에는 약간 경우가 다른 것 같습니다. 원래 있었던 물탱크 2개 (그러나 종로구청에서조차 그 존재를 모르고 있었던 군시설) 와 감압시설을 철거한 후 다른 건물을 만든 게 아니라 그 시설을 변형하여 윤동주문학관으로 사용하게 된 것이기 때문이죠. 이 곳 에 왜 ‘윤동주문학관’이 들어서게 되었냐에 대해서는 저 역시 아직 솔직히 이해가 잘 가 지 않지만요... 이 곳은 본래 윤동주가 살았던 곳도 아니고, 윤동주와 특별한 연관성도 없는 곳이었으나 윤동주문학관을 이 곳에 만들기로 결정한 이후 이 건물은 마치 ‘윤동주’와 처 음부터 상관이 있는 듯한 건물이 되었습니다. 물탱크 중 하나는 천장을 들어 내고 하늘로만 열린 우물이 되었고 나머지 하나는 한줄기 빛만 들어오는 암흑의 공간이 되었습다. (영상이 상영되는 동안은 천장의 뚫린 공간은 암막으로 막힙니다.) 이 두 공간 앞에 주전시관이 있 어 윤동주 시인의 문학작품과 유품 등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이 곳에서 ‘윤 동주’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제 2전시관, 그러니까 하늘로 열린 중정 공간이라 생각합니 다. 윤동주와 관련된 아무 것도 없지만… 그가 바라보던 하늘과 별, 그리고 그 먹먹함이 그 대로 다 표현되어 있는 공간.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서 그 사나이가 계속 들여다보던 우 물같은 공간은 제게는 윤동주 그 자체로 다가왔으니까요. 그래서 이 곳을 방문하신다는 exxx님에게 그 곳의‘중정’을 부디 잘 보아달라고 부탁했습 니다. 그리고 그 곳을 다녀온 exxx의 두 번째 반응. 입구를 들어가기 전만해도 입을 꽤 삐죽거리면서 들어갔습니다. 고만고만한 세금도둑이 아닌 가 하는 생각을 면서 들어갔었죠. 첫번째 전시장에서 복사된 것 처럼 보이는 여러가지 윤동주 시인 관련 물품들과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우물 모형을 보고 정말이지 실소를 금하지 못했습 니다. 하지만 이야기 하신 중정에 들어갔을 때는 좀 충격이었습니다. 들어서기 전만해도 안도 다다오가 생각나고 음 이런건가? 하는 생각으로 들어갔었는데 정작 안에 들어갔을 때는 정말 이지 갇힌 느낌 그 자체 였습니다. 우물 안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그런 느낌이 있잖아요. 도저 히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은 깊이감과 폐쇄감 그리고 부식되어 만지고 싶지 않은 벽 아주 멀게 보이는 입구까지 어찌보면 우물 그 자체를 들어간 것보다 충격적인 느낌이었습니다. 좁은 공 간이었다면 그 나름대로 연출이니 뭐니 하면서 우습게 생각했을 텐데 충분히 걸어다니고도 남 는 길에서 벽을 보는 것은 색다른 경험이었습니다. 게다가 길에 경사가 있어서 그 느낌은 배가 되는 것 같았습니다. 정말 간만에 이래서 건축의 의미란 것이 이런데 있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습니다. 의도하지 않은 공간으로 날려진 것 같았습니다. 다만 이것이 순수하게 건 축의 힘인지 시인의 시와 꾸준히 주는 암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인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그 모든 것을 우연이든 의도한 것이든 활용해서 감각으로 돌출시켰다는 것은 대단하다 고 생각했습니다. 과학자들은 어떤 우연으로 노벨상을 받을 정도의 발견을 하기도 하니까요.


하늘을 담고 있는 시인의 우물. 지적하신 대로 이 곳은 꽤나 큽니다. 그리고 그 벽은 새롭게 만든 노출콘크리트벽 (안도 다다오의 느낌을 말씀하셔서 굳이 노출콘크리트로 예를 들었습 니다.) 과는 달리 물탱크로 사용되던 벽을 물때만 조금 걷어내고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시간 의 흔적까지 담겼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이 공간에 감동을 받는 건 순수하게 공간의 힘도 있겠지만 어쩌면 그 보다 더 큰 것은 윤동주의 시에 대한 공통적인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공간을 경험하며 우리는 그의 우물을 모두 떠올릴테니까요. 그리 고 그 우물이 본래 물탱크였다는 것은 ‘우연’이 만들어낸 발견일 듯 하네요. 첫번째 우물, 제 2 전시실

우물벽에 남은 시간의 흔적

이 공간을 지나 들어가는 제 3전시실은 그 자체로 ‘먹먹함’의 공간입니다. 하늘을 바라보는 거 조차, 빛을 보는 거조차 허가되지 않는 공간. 소리의 울림이 증폭되는 공간. 이 곳에서는 윤동주의 이야기가 영상으 로 상영됩니다. 어두운 공간에서 윤동주의 영상을 보고 나와 다시 만나는 중정은 또 다른 느낌입니다. 처 음 만날 때의 갇힌 느낌과는 달리, 하늘이 열려 있는 것만으로 주는 위안의 공간이랄까요.


다시 윤동주문학관을 나섭니다. 출입구에서 나오면 언덕으로 오르는 계단이 있습니다. 이 계단 위로 오르면 시인의 언덕이 있습니다. 시인의 언덕은 사실 윤동주문학관과 연결되는 길이긴 하지만, 사실 큰 관련은 없게도 느껴집니다. 그래도 윤동주문학관까지 오셨다면 시 인의 언덕까지 꼭 오르셔보시길 권합니다. 그 곳에 서서 서울을 내려다보며 바람을 맞노라 면, 지친 서울살이가 조금은 위로받으실지도 모르겠네요.

윤동주 문학관의 정면과 시인의 언덕으로 오르는 왼편 계단

윤동주 문학관에서 바라보는 청운동 풍경. 전 이상하게도 이 풍경이 참 정겹게 느껴집니다.

p.s. 윤동주문학관은 오전 10시부터 18시까지만 엽니다. 1, 2전시실은 문학관이 열려 있는 시 간에는 언제나 관람이 가능하지만 제 3전시실은 암흑 속에서 영상이 전시되다보니 영상 시 작 시간을 잘 확인하고 들어가는 게 좋습니다.


내가 어떻게 다이아몬드가 되었냐면...

글. 올리브 눈이 가기 시작했다. 젊은 열기가 넘치는 그들 의 모습에 애정이 생겼다. 최근 앨범을 발매한 ‘루스터스’는 그간 음원이 공개되지 않아서 노래를 듣기 위해서라도 열 심히 공연장을 찾아야 했다. 그 1년 사이 딱 한 곡 공개되었던 1번 트랙 1번 트랙: ‘Take me away’

너를 만나고 싶었어. 그저 너와 함께 걷고만 싶었지 // she wants to take me away take me away 아무생각이 없었어. 그저 너의 손을 잡고만 싶 었지. // she wants to take me away 내 마음 속에 들어와 나를 마구마구 해쳐놓네 // 내 침 대속에 들어와 나를 마구마구 헤쳐놓네너도 내 맘과 같겠지. // 하지만 아무것도 못해. 난 그 저 예이예이예

part4. 가사로 보는 로큰롤

- 루스터스의 ‘Take me away’는 엘비스 프레슬 리의 곡들이 연상된다. 다듬어지지 않은 자유 분방함이 느껴지며, 마치 침대 위에서 방방 뛰

로큰롤은 마냥 신나기만 하고 즐기기만을 위

고 있는 느낌을 주는 곡.

한 음악이 아니다. 그 노래 안에는 삶에 지친 이들을 위로해주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

2번 트랙: ‘Come to me’

소개 할 ‘루스터스’ 외에도 다양한 로큰롤 밴드 들의 노래 가사를 듣다보면 힘든 삶을 이야기

차가움이 가득했던 달의 맘 따듯함이 필요했어

하고 있고, 사람들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표현

// 너의 눈 oh yeah! saturday night all right

하고 있다. 하지만 그 노래를 들으면서 힘을 내

com to me // 외로움이 깊어 너의 눈 마주친채

는 사람들도 있다. 오히려 직설적으로 드러내

말을하네 // 우리 둘 oh yeah! saturday night.

위로를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all right com to me // 더늦기 전에 말을 할 게 너의 귓속에다가 오늘밤 발걸음 내게 // oh

‘더 루스터스’는 김진우(보컬, 베이스), 남휘현(

yeah oh yeah baby baby baby baby // 이

기타, 코러스), 이찬희(하프, 오르간), 황성민(드

밤에는 내게와 달려와서 안겨봐 oh yeah! oh

럼) 이렇게 4명으로 이루어진 밴드다. 홍대에

yeah!

서 활동한지 2년 정도 된 밴드로, 필자는 약 1 년 전 공연을 처음 접했다. 처음 보았을 땐 ‘참

- 루스터스는 앨범 나오기 전, 약 1주일에 평균

자유롭게 음악을 하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

1회씩, 1년 동안 30~40개의 공연을 소화해냈

었다. 그 후, 1년 가까이 공연을 보러 다니면서

고, 그 결과물이 쌓여 앨범이 나왔다.


특히 루스터스 앨범의 순수 제작비는 음악 전

5번 트랙: 서울 서울

문 크라우드 펀딩 업체인 뮤직킹을 통해 마련 되었다. 팬들을 위한 팬들이 만든 앨범이라고

검은 천장 불빛 춤을 추는 서울 나눠진 땅 //

할 수 있다.

같은 노랠 트는 서울 // 그저 반짝이는 것은 많

기존 음악 산업 방식의 콘텐츠 제작은 그 장벽

네 내가 가질 수는 없지만 // 새벽공기 위안

이 너무 높아 아티스트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삼아 걷는 서울 // 똑같은 밤에 어디로 나가야

기회가 적다. 루스터스는 크라우드 펀딩이란

반대편 나와 춤출 수 있을까 //똑같진 않겠지

방식을 제시했고, 루스터스는 성공적으로 그

love love 익숙한 춤으로 love love / 빠빠빠

새로운 방식을 실현시킨 밴드로 홍대 인디씬

빠빠빠 서울

에 새로운 답안을 제시하고 있다. - 그들은 ‘서울’에 대한 애증을 담은 노래라고 3번 트랙: Roosters!

소개하고 있다. 빠른 비트와 간결한 기타 리프 를 가진 곡이며, 70년대 Mods 리바이벌 밴드

벌써 나의 계절은 초여름이 되어버린걸까. //

‘The Jam’을 연상해 볼 수 있다. 신나는 리듬

싸구려 담배는 바란적도 없는 우리가 태워가

과 가사를 가진 곡.

// 촌스런 외투에 상기된 몸짓과 말을 하는 그 대. // 오래전 버려진 내 모습과 닮은 것 같아.

6번 트랙: 꿈꾸네

// we don’t crow althought the sunrise we are the roosters. // we are crowing on the

수없이 뒤척여도 잠들 수 없는 밤 꺼내주세요

moonlight we are the roosters. // roosters

// 날 샐 수 없는 순간 속에서 // 쏟아지는 비

are dancing roosters are dancing.

처럼 머리를 적셔 흐르네 // 멈출 수도 없지 // 새빨간 빛 속에 아아아 아련한 //

- 개러지 로큰롤 느낌, 촌스러운 하모니카 연

그댄 신기루 같은거 오늘도 우리는 꿈을 꾸네

주가 독특한 사운드를 끌어가고 있다. 로큰롤

// 파도처럼 밀려온 당신을 온종일 우리는 춤

의 가장 원초적인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는 팀

추네 // 아름다운 그대와

이다. - 루스터스의 유일한 발라드 곡. 순수함이 묻 4번 트랙: loud and loud

어나는 젊은 사랑 노래. 단순한 가사지만, 그 솔직함이 가장 순수하다. ‘The Rolling Stones’

한 밤의 야릇한 축제속에 공허한 몸짓이 안쓰

의 ‘Tumbling Dice’에 대한 오마쥬가 느껴지

러워 // 난잡한 노래와 눈빛이 말할 수 있는 건

는 노래

없어요. // there are loud and loud people cheers but I’m lonley // too many loud and loud - 원초적인 리듬으로 드럼 연주를 시작하며, 베이스, 하모니카 그리고 기타리스트인 남휘 현의 섬세한 기타 여기에 더해지는 보컬이 매 력적인 곡.관중들의 함성소리가 유독 멋지다.


내가 가게를 젤 처음 오픈했을 때의 모습은 기다란 바에 오뎅이 수북이 꽂혀 있는 전형적인 오뎅바의 모습이었다. 갖가지 모양 갖가지 맛의 골라먹는 재미 오래전 영화나 CF에서 모르는 사람의 떨어진 물 건 오지랖 발동해서 주워주다가 서로의 손길이 닿았을 때 무언가 운명을 만난 것처럼 (그리고 이어지 는 로맨스~) 이런 장면이 모르는 둘이 같은 오뎅을 잡았을 때도 심심찮게 나오곤 했다(단, 이성인 경우 에) 오뎅바에서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은 수증기인지 드라이 아이스를 넣었는지 모르지만 차갑고 또 뜨 겁게 안을 메우곤 했다. 상상하기에 따라 앞에 앉은 미모의 손님이 안보인다고 투덜거릴 수도 운치 있 다고 좋아 할 수도 있는 그런 모습의 오뎅바.

그 당시에는 서빙, 설거지. 계산, 손님응대, 청소, 끼부리기, 끼받아주기를 모두 혼자하다보니까 싫던 좋 던 손님과 가끔 얘기도 하곤 했다. 예전 부산오뎅 이야기에서도 언급했듯 오뎅이 진짜 부산오뎅이냐 내가 진짜 부산사람이냐(항상 얘기하듯 부산교포) 결혼은 했니 안했니 자기들끼리 나를 보며 사연 있 는거 같다며 ‘쑥더쑥덕’ ‘한잔하시라’ ‘아니다’ ‘일하시는데 술은 권하는게 맞니 아니니’ 별 별 말을 다 들었다.

요즘은 600만 자영업 시대이다 보니 주위에 20~30대가 하는 여러 종류의 아이디어 번득이는 on/off라 인매장과 멀티샵 또는 어르신들이 하는 밥집 고깃집 등등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가게들을 여러 세대가 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젤 처음 가게를 할 때는 젊은 사람들이 별로 가게를 안 해서 인지 내가 다른 비 교대상이 없어서 인지는 몰라도 유난히 말을 많이 건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중에 진짜 부산오뎅이냐 다 음으로 많이 듣던 말이 있었다.

“서울엔 왜 왔어요?” “설마 부산오뎅 하려고 서울 오셨어요?” 라고 물어보면 “아니요, 그건 아니 구요.” “그럼 대체 왜 왔어요?” 예나 지금이나 친절하진 않아도 불친절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나. 왜 왔냐는 질문에 그냥 대충 놀러 왔어요.라고 대답을 한다.

에이~~놀러왔다가 가게 한다는 게 말이 돼요? 지금 내가 생각해도 말이 안 될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 을 하지만 한편으론 희박한 확률이라도 말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가 해외여행가서 거기 서 눌러 앉을 수도 있지 않은가? 암튼 팩트는 정확하다. 놀러왔다 2004년 당시 내 친구 한 놈이 논현동 에서 살고 강남에 잘나가는 회사를 다녔는데 이른바 법카(법인카드)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서 울에 볼 일 보러 올라온 친구들이라도 있으면 그 친구는 무차별로 법카 질을 해댔다는 소문을 듣고 나 도 법카 세례 한 번 맞고 싶다는 소박한 마음으로 상경을 했다. 하지만 나는 얻어먹을 팔자가 아니었는 지 내가 올라왔을 당시 그 친구는 회사를 그만두고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집세도 못 내고 집에 쌀 도 라면도 김치도 없는 난민 그 자체였다 법카 세례를 받으려다 내가 오히려 친구에게 쌀을 사주고 라 면 한 박스를 사주고 김치를 사주고 나는 그 후로 부산 오뎅을 하고 그 친구는 오랜 서울생활을 뒤로하 고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고...그래서 거기서 친구는 이일 저일 하다가 얼마 전 부터 치킨집을 한단다. 집 에서 라면만 겨우 끓여먹고 계란 후라이 노른자 안 터뜨리고 할 줄도 모르고 집에 밥이 없으면 엄마한 테 밥 왜 안해놨냐며 빨리 들어와서 밥해달라고 투덜거리던 내가 남이 먹을 음식을 만들고 처음 가게 할 때 술마시러 오던 코찔찔이 대학생들이 졸업해서 취직을 했다고 하고 그러더니 결혼을 하고 애들이 애를 놓고 젤 처음 가게 할 때 초등학교 다니던 애들이 우리가게에서 알바를 하게 되고 서울에 놀러왔 다가 어찌하다보니 내가 오뎅에 청춘을 바친 지도 이번달이 10년째구나...


부산오뎅 이야기

004

@odeng2


무엇이 들어있을까요?

이달에도 재미있는 것들을 준비했습니다. PDF를 보시면서 누르셔도 되고 스마트 폰으로 찍으셔도 됩니다. 여전히 월간이리 내 원고의 일부분이나 필진 이름, 블로그 주소등을 누르시는 경우 해당 페이지로 연결되기도 합니다.


; 바다비 일요 시극장 2014.6.29 http://cafe.daum.net/badabie


국가란 무엇일까? (6회)

지방 선거란 것을 앞두고 각 지역의 후보들을 살펴보고 있자니 자산이 10억이 넘는 후보가 한 둘이 아니다. 처음에는 ‘와 돈들이 이렇게 많네-’ 하다가 가만 생각하니 ‘아니 이 돈이 있으면 봉사활동이나 시민운동이나 다른 좋은 일을 할 것이지 왜 월급 받으면서 일하는 선거에 나오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이 놈의 심보가 꼬이긴 어지간히 꼬였다. 돈 벌이라고는 제대로 해 본적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10억이 넘는 돈은 ‘저 정도 돈을 모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했을까?’ 하는 생각만으로도 정신이 아득해지는 금액이다. 저 후보는 자수성가의 끄트머리에서 명예를 찾아 선거에 나선 것일까? 그게 아니면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 선거판에 뛰어든 것일까. 돈질의 끝은 명예욕이라는 말이 문득 생각난다. 하긴 나도 돈이 있다면 재미삼아 나가봤을 것 같기도 하다. 누가 보면 뭐라 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많은 후보들이 내 놓은 여러 공약들을 보고 있자면, 그래도 전자제품 설명서 깨나 읽어본 나임에도 이해하기가 영 쉽지 않다. 그런 걸 보면, 공약이란 것에 관심이 없었다거나,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거나, 뭐가 어떻게 되어도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기 마련이다. 혹시 나의 이해력이 딸려서 금과옥조 같은 공약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너무 뭐라고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렇게 두루 후보들을 살펴보고 나면 이 지뢰밭 같은 표본안에 미래의 당선인이 있는 셈이니, 선거 전이나 후나 암담하기는 마찬가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그곳 까지 간 사람들을 위해, 그 사람들을 칭송하는 의미를 한소끔 넣어 오늘은 자수성가 인을 위한 헌정의 글을 써 보련다. “내 어찌 남의 도움으로 성공했겠는가? 먹을 거 안 먹고 잘 거 안자고 노력해서 여기 까지 왔다. 국가가 나에게 해준 것은 없다.!” 는 분들을 위해 몇자 적어본다. 과거, 그리고 앞으로 내가 성공하는데 “국가가 무슨 도움을 줬냐?”는 사람들에게 이 글을 바친다. 일단 당신이 얼마나 성공했든 당신은 국가에게 빚을 지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국가라기보다 국가의 구성원들, 오늘도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살아가는 이 영토안의 모든 사람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국가는 애초에 사람들이 모인 형태에 대한 단어에 가까우니 대충 그렇다 치자.) 먼저 어머니와 아버지. 그 둘이 만나 당신이 태어났으니, 꼭 둘의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다. 둘이 만나기까지 국가가 무슨 도움을 줬겠나? 싶지만, 도움을 줬다. 정확히 무슨 도움인지는 이제까지 당신이 받았던 모든 도움과 거의 흡사하기 때문에 당신과 관련된 부분을 참조하자. 성공 목록을 중심으로 시작. 열심히 공부해서 고시 패스 한 당신 - 밤에 불 안 켜고 공부 했나? 전기 누가 준거임? 뭐 여름밤에 반디불 겨울밤에 눈 모아서 공부했다면 할 말 없다. 장사로 성공한 당신 - 뭘 팔았는지 모르지만 그거 산에서 스스로 자란 것을 직접 채취해서 가공해서 팔았을까? 아니면 직접 낳았을까? 음악으로 성공한 당신 - 노래를 불러봐라 떡이 나오나 밥이 나오나. 당신의 노래를 들어주는 청중들은 그 돈 다 어디서 나왔을까


그림으로 성공한 당신 - 주인 없는 벽에 단 한번 그린 암각화가 당신을 성공으로 이끌었다면 내가 사과한다. 공무원으로 성공한 당신 - 그래 애초에 여긴 국가가 있어야 공무가 있지. 또 뭐가 있을까? 아무튼 이 나라에서 물마시면 상수도 시스템에 빚지고 전기 쓰면 전력 시스템에 빚지고 학교 다니면 교육 시스템에 빚지고, 뭐 그래 솔직히 빚은 아닌 게 맞다. 너도 뭔가를 주니까 괜찮다고? 아니 어렸을 때 아무것 도 줄 수 없을 때는 어쩌나? 국가는 합의 안에서 서로 제공하고 받는 것이라지만 어느 날 그냥 당신 하나 정도는 안 받아주겠다고 해도 사실 그만이다. 비슷한 예는 아니지만 어느날 권력에 의해 배제되는 경험을 우리는 하기도 하지 않나? 그걸 그냥 일상생활 중에 일방적으로 ‘너 퇴출!’ 이라고 생각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비슷하게 당신이 다른 나라의 사람이 되면 어제까지 받던 것을 그냥 받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지 않던가. 그런데 그렇게 되면 평등 하지 않잖아. 국가는 차별을 두려고 만든 게 아니잖아. 자 그럼 이런 이야기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만 이런 도움 받았냐? 그래 저기 저 사람도 받았고 망한 내 친구도 받았고 다 받았는데 그 와중에 내가 자수성가 한 게 얼마나 대단하냐.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 보자. 국가의 모든 시스템이 꼭 하나 ‘당신’만을 위해서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당장 우리가 교육을 혁신하고 급식을 개선하고 최저임금을 조정하고 하는 것이 꼭 누구 하나를 괴롭히거나 누구 하나를 잘 먹고 잘 살게 하기 위해서 그런 게 아니다. 경찰만 해도 그렇다. 당신이 용산에 있다가 마포에 있다가 종로에 있다가 할 때를 지켜주기 위해 마포에도 경찰이 있고 종로에도 경찰이 있고 용산에도 경찰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용산에도 마포에도 종로에도 소중한 국민들이 살고 있으니 고르게 경찰이 있는 것이다. 당신은 그저 그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지내는 것이다. 국가의 안에서 고르게 받을 수 있는 것들, 고르게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있고 그것이 공기처럼 고르게 퍼져있어서 모를 정도로 우리는 감사를 잊고 사는 것 아닐까? 고른 것들의 폭을 넓히고 깊게 하기 위해서 오늘도 많은 사람들이 남들이 다 손가락질 하는 정치판에 앉아서 고민하고 뭔가 조금 더 바꿔 보겠다고 자신에게 십 원 짜리 하나 돌아오지 않는 이득 없는 싸움을 하며 힘든 시간을 보낸다. 근데 그런 수고들을 쪽쪽 빨아먹고 자라서 “자수성가 했소!”라는 말은 정말이지 한심한 이야기 이다. 자 이제 자수성가 자랑은 그만하고, 앞 뒤 양 옆 사람들과 감사의 인사를 나누자. 그리고 다음 선거에는 덜 한심한 후보가 없을지 고민해보자. 그리고 정 없다면 직접 뛰어들어도 좋다. 이렇게 정신없는 6월호는 끝이다. 7월에 우리는 누구를 뽑아야 하고 어떤 국가를 그려야 하는 것일까? 오늘 부터 또 시작이다.

글. exxx


그림.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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