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이리 2014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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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입니다. 비밀 동툰 / 글. 그림. beamil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 글. 사진. 아홉시 영화로 읽는 시공간 - 심장없는 그너(her)에게 배우는 감성수업 / 글. 곡주대비 한국영화 돌려 깎기 - 베를린 / 글. 최지원, 곡주대비, exxx 팟캐스트 ‘이리오너라’ 광고 여기 문학이 필요한시간 - 박재삼, 「한」 // 고재종, 「감나무 그늘 아래 / 글. 고수진 작곡가 B의 노트 - 보수와 진보, 브람스가 답하다 / 글. Composer B 낭만 스파이 - 미안 그리고 반성 / 글. 사진. 낭만스파이 놀고 먹고 그리고 / 그림. 김혜리 idology’s pick - 켄지 12주년 스페셜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 소개소 / 글. 신당동 파르한 Hwaiiana - 로코모코 / 글. 이동걸 건축이 좋아 - Villa Rotonda, 르네상스 인의 이상향 / 사진. 글. aoikasa 사진 일기 / 사진. 글. 박민수 게임 노동 일지 / 그림. 글. 철민 웹디자이너의 생존 매뉴얼 - 여행의 생존 매뉴얼 / 글. 김성연 물질과 비물질 - 콘돔 / 사진. 황은정 글. 김종소리 바다비 일요 시극장 광고 부산오뎅 이야기 - 그린 라이트 / 글. 사진. odeng 국가란 무엇일까? - 10회 / 글. exxx


벌써 10월이네요. 이달에는 제가 없는 재주로 음악을 만들어보겠다고 용을 쓰느 라 책이 좀 늦었습니다. 10월 10일 이후에 각종 음원사이트에서제 이름을 검색해 보세요.. 하하

(막간 홍보였습니다.)

올해의 꿈들은 많이 이루셨나요. 저는 올해 목표가 책을 쓰는 것이었는데, 전혀 하 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좌절하고 있지 않습니다. 12월까지 시작만 하면 내년 에는 나오겠죠 뭐... 조금 있으면 또 한살을 먹겠네요. 시간은 의미있게 사용하고 계신가 궁금합니다. 월간이리는 올해 계획했던 것들을 잘 진행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직 두달 정도 가 남았으니, 남은 기간중에 큰 변화의 파도라던가 이렇다 할 만한 목표라던가 아 무튼 으쓱할 수 있는 결과물을 낼 수 있으면 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달에도 많은 필진 여러분들 덕분에 책이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듣지 못해도 읽 기전에 박수 한번 쳐주세요 ^^ 추수철이고 11월이 되면 다들 정신없다고 난리겠지요. 감기들 조심하시고 웃는 얼 굴로 다음달에 만나길 기원해봅니다. 각종 연재문의 는 exxx2x@gmail.com 이나 @postyri 로 문의주시면 됩니다. 참으로 친절하게 안내해준답니다. 이만 물러 가보겠습니다. 월간이리 exxx 드림.

편집: 이훈보 표지: 이주용 주관: 프로젝트 이리 지원: 서울특별시,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공식트위터 @postyri


비 밀 동물툰 Animal Toon by BEAMIL

* 지난 달에 분양과 입양에 대해서 이야기 했었습니다. 그에 연결되는 이야기입니다. 동물입양에 관한 것인데요, 저는 세 마리의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모두 모바일과 인터넷을 통해 입양한 아이들이죠. 첫째 초미는 제가 고양이에 관심을 두지 않던 시절, 당시 이야기를 자주 나누던 트위터 친구분이 자신의 고양 이가 새끼들을 낳았다는 소식과 함께 올린 한 장의 사진을 통해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 마리의 강아지만 키우던 때였는데 뭐에 홀린 듯이 녀석을 만나보고 싶다 고 했습니다. 게다가 세 마리의 고양이가 옹기종기 뭉쳐있는 사진에서 뚱한 표정으로 입가에 점을 찍은 미래의 초미만 보였지요. 그렇게해서 만난 초미는 지금 까지 도도한 저의 첫 고양이입니다. 그리고 둘째 햇님이는 초미를 1년 가까이 키우던 시절 친구를 만들어주자 싶은 마음에 동물자유연대 사이트 입양 카테고리 에서 만난 녀석입니다. 굳이 종류나 다른 조건을 붙이지 않고 오로지 감으로만 여러 고양이의 사진과 이야기들을 읽어내려갔습니다. 그러던 중 고개를 갸웃하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노란색 고양이의 사진을 보게 되었습니다. 아팠고, 사연이 많은 길냥이 출신이었지만 데려오게 되었죠. 제가 고려할 것은 오로지 첫째 초미와 성격이 잘 맞을 것인가? 뿐이었습니다. 데려온 이후 예상대로 둘은 금방 친해졌고 여전한 개냥이 우리집 둘째입니다. 이후로 동물자유연대는 두 번정도 전화를 걸어 햇님이가 잘 있는지 확인을 했고, 입양후기 게시판에 사진을 올려달라 요청하셨습니다. 오로지 아이가 행복한 삶을 사는 중인지 확인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리고 햇님이를 구조한 분과도 지금까지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막내 해초는 친구네 고양이가 낳은 새끼들 중 막내였는데, 뭐 이녀 석도 입양이라고 할 수 있겠죠 ^^ 그렇게 각기 다른 성격에 각기 다른 매력을 가진 세 마리는 한 집에서 아웅다웅 잘 살고 있습니다. 입양이 분양보다 나쁜게 있 나요? 저는 소정의 책임비와 조금의 책임감만으로 이렇게 행복하게 지내고 있답니다. 아 참, 생각해보니 1년 전에 세상을 떠난 저의 가족 초롱이(말티즈, 5세)도 입양을 통해 만났네요. 무려 운전면허학원 강사쌤이 키우던 강아지였습니다. 늘 혼자 있는 녀석이 안쓰럽다던 선생님은 제게 초롱이를 선물해주셨고,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가장 아끼던 저의 가족이었습니다. 그 이후로 강아지는 차 마 키우지 못하고 있습니다만, 조금 더 나은 집으로의 이사를 준비중이라 초롱이를 닮은 유기견을 한 마리 데려올까 생각중입니다. 입양 어렵지 않아요! * 2014년에는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나름 위트있게, 뜨끔하게 쓰고 그린 짧은 만화를 기고합니다. 팩트를 뒷받침하는 기사와 간단한 의견도 함께입니다. 많이 공감해주세요. 제보도 감사합니다. twitter@ / _beamilie


다.

동물사랑실천협회

CAREanimalKorea

토르는 경기도 광주 애니멀호더에게서 구조 한 100여 마리의 아이들 중 한 아이입니다. 토르는 조금 소심한 편이라 간식을 주어도 먼저 다가오지 못하고 구석에서 눈치를 보며 부스러기만 조금씩 먹고 사람에게 쉽게 다가오지 못하 고 있어요. 함께 구조되어 같은 견사에 있는 다른 아이들은 조금씩 두려움을 극복하고 사람에게 마음을 열어주고 있는 반면, 토르는 여전히 사 람이 두렵기만 합니다... 하지만 그런 토르를 눈빛속에는 누구보다 간절히 따뜻한 손길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있는 것이 보인답니다. 다가오진 못하지만 멀리 피하지도 않는 토르... 마음이 너무도 여려서..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너무도 깊기에... 또 다시 상처 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마음의 빗장을 쉽사리 풀지 못하고 있는 토르...

토르의 상처 가득한 가슴을 사랑으로 어루만져 주실 가족을 기다립니다...! 이름 : 토르 나이 : 3~4세추정 성별 : 수컷 (중성화 완료) 문의 : 070-4259-8886(답십리 땡큐센터) 입양절차안내 ☞ http://me2.do/F2x9uRdL

동물보호시민단체 카라 Korea Animal Rights Advocates

벽형은 벽도령과 같이 5월 중순경 벽사이에서 구조되었던 고양이입니다.

뼈에 가죽만 남아있어 곧 죽을 것 같았지만, 병원에서 정성스럽세 보살펴주신 덕분에 건강을 다시 찾을 수 있었고 현재는 살도 많이 찌고 의젓한 벽형이 되었습니다.

차분한 성격이고 아직 만지려하면 살짝 놀라기는 하지만, 앞으로 사람과 자주 접하게 되면 무릎냥이가 되는건 시간 문제입니다. 방사할 생각으로 중성화 후 약간의 귀컷팅을 하였습니다.

문의 : http://www.ekara.org/ 02-3482-0999

다.

동물자유연대 Korea Animal Welfare Association 입양에 관심은 있으나 막상 입양을 하려니 막연하고, 보호소 동물을 입양하는 것은 처음이라 망설여지시나요? 동물자유연대에서는 간헐적인

입양행사를 주최합니다. 동물자유연대에서 지정한 몇 마리의 동물들과 함께 오프라인에서 사람들을 만납니다. 가장 중요한 입양자별 맞춤상담 시간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입양하지 않더라도 입양을 하

기 위해 준비해야 할 사항과 꼭 고려해 볼 사항에 대해서 알기 위해 개인별 상담은 매우 중요합니다. 각 가정에 적합한 아이, 적절한 입양시기를 추천해 드리기도 합니다.

문의 : http://www.animals.or.kr/ 02-2292-6337




심장 없는 그녀 (Her) 에게 받는 감성수업

기대가 크면 반.드.시 실망 한다. 비긴 어게인이라는 영화가 별것도 없어 보이는데 너도 나도 이야기를 하기 에 큰 기대를 갖고 보았다. 별것도 없어 보이더니 별것도 없더라. 연출도 줄거리도 뭐 하나 참신한게 없다. Her 라는 영화 역시 특이하긴 (적어도 캐스팅에 있어) 하지만 별 감흥은 없어 보였다 (사이버 연인과 사랑 에 빠지는 영화가 얼마나 많았던가) . 그치만 다양성 영화 범주로 개봉해 스코어를 올리는걸 보면서 극장 에서 놓치게 되더라도 꼭 보리라 싶어 결국 VOD 로 보게 되었는데. 어라. 반전이다. 비교적 큰 기대를 하 고 봤음 에도 그 기대를 채워주고도 남을 감흥을 주었다. 역시 스파이크 존즈의 바닥 나지 않는 천재성 ( 개인적으로 비슷한 부류로 평가 받는 공드리 감독 보다 몇 수 위라고 생각한다)이 또 한번 사람을 울리 고 웃긴다. 개인 적인 성향과 영화의 매칭이 좋으면 좋은 영화가 더 좋게 느껴지는 법이다. 스파이크 존즈의 모든 영 화가 내겐 그렇다. Adaptation 도, Being John Malcovich 도, 그리고 Her 까지, 평가도 좋았던 영화들이지 만, 내겐 내가 만들었을 영화들 처럼, 입에 착. 붙는 영화들이었다. 첫째로, 존즈의 영화에선 제대로 이루 어지는 사랑이 없다 (로맨스 영화를 많이 찍지도 않을 뿐더러). 그가 그려내는 사랑은 추잡하거나, 탐욕스 럽거나, 위험하거나 혹은 허무하다. 정말 이 모든 것이 사랑의 본질이 아니던가. 필자가 이 영화를 애정하게된 두번째 이유로, 소위 이 ‘사랑’이라는 것을 하는 주체가 너무나도 처량맞고 찌질한 영혼이다. Her 에서의 피닉스가 연기하는 주인공 역시 밤낮 같은 일상 – 파티션으로 갈라진 좁은 공간에서 남의 손편지나 써주는 것으로 생활을 연명하는 – 에서 숨죽여 사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인물 의 전형이다. 그는 잘 웃지도 울지도 화를 내지도 않는데, 이런 그가 컴퓨터 연인, Sam 을 구매(?) 하면서 부터 감정의 격변을 경험한다. 처음엔 소일거리들, 예를 들어 이메일 이나 스케줄러 정리등이 고작이었던 샘의 역할이 점차적으로 커지 면서 피닉스의 일상을 잠식해 가는데, 이는 가상 섹스부터 놀이동산 데이트 까지 여타 ‘불붙은’ 연인들과 별 다를바 없이 속성으로 전개 된다. 울거나 웃지 않았던 그가 콧노래를 부르게 되고, 어린 아이처럼 뛰 어 다니며, 친구나 동료들과의 잡담시간이 길어진다. 이 모든 것이 목소리 연인, 샘이 생겨나고 부터다.


연쇄살인범 내지는 불운의 아티스트 같은 우울한 역 전담이었던 피닉스의 연기가 샘을 만나 행복해지는 순간부터 더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활짝 웃어도 비웃음처럼 보이게 하는 그의 전매특허 불쾌한 미 소가 이 영화에선 보는 사람마저 웃어 보고 싶게 하는 묘약처럼 기능한다. 물론 로맨스라는 공식이 그러하듯, 이들의 연애가 지속되진 않는다. 전 부인의 그림자에서 완전히 헤어나 오지 못한 피닉스 때문에, 혹은 그런 그를 안타깝게 지켜보다가 자신의 동료 (사이버 운영체제) 와 교감하 게 된 샘 때문에, 혹은 그 둘의 엇갈린 감정 타이밍에 이들이 삐걱대기 시작한다. 결국 이러한 운영체제들 사이에서의 교감은 그들로 하여금 더 나은 세계를 갈구하게 되고 이러한 욕구로 인해 이들은 일제히 인간들과의 결별을 선언하고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남겨지는 피닉스. 또한 비슷한 이 별에 허망해진 수많은 인간 연인들. 피닉스는 다시 색채 없는 일상으로 돌아온다. 그의 무표정과 영혼없이 쓰여지는 대필 손편지들은 늘 그랬 듯 그의 하루를 채우게 되고 잠깐이라도 다이내믹 했던 그의 인생은 기억도 나지 않을 과거 처럼 아득해 진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존즈의 다른 전작들 처럼 허무하고 슬픈 엔딩인가? 필자가 이 작품이 존즈의 전작들과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작품이라고 생각했던 이유는 그의 영화들 속 에서의 슬픈 연인들 이 직면해야 했던 ‘파멸’의 엔딩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의 제목, “Her” 가 드러내듯, Her 는 ‘그녀’에 관한 영화다. 그녀는 감정을 다루는 방법을 잃어버린 인간들에게 각자의 인생에서 ‘감정 적’으로 살수 있는 방법론을 선물했고, 자신 만의 유토피아를 위해 다른 운영체제들과 의기투합하여 떠났 으니 이토록 화통한 영화가 어디있겠는가. 몇해전 ‘심심이’ 라는 어플을 보고 경악을 했던 적이 있다. 심심이라는 기계가 의미없이 뱉어내는 의미없는 대답들에 낄낄거리고 감탄하던 나를 포함한 주변인들이 생각난다. 좀 덜 진화된 버전의 Her 였던 셈이다. 존즈의 최근작, Her 는 ‘인간’만 아니라면 기댈것이 너무도 많아져 버린 이 세상에 언제 울고 웃어야 할지 가르쳐주는 기계에 대한 유쾌한 통찰이다.


최지원: “잘 만들어진 액션영화는 때리는 쾌감 못지않게 맞는 고통을

곡주대비 (hjkanjy@gmail.com) : 영화를 보기 전: 감독, 류승완 굿. 한석규

잘 표현한다.”1)

주연 굿. 하정우 공동주연 이븐 베러

류승완 감독은 과거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전작 <짝패>

(even better). 전지현 류승범 조연, the

를 이야기하던 도중 나왔던 말이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 베를린>에도 해당된다. 특히 표종성과 보위부요원이 벌이는 액션 장면에서 하정우(표종성)는 때리는 쾌감 못지않게 맞는 고통까지도 잘 표현했다. 물론 하정우가 몸의 즉각적인 반응들을 실감나게 연기했기 때문이지만, 그 이전에 류승완 감독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류승완 감독은 어떻게 쾌감을 느끼게 한 것일까.

best!. 근데.. 무엇이 문제 였을까. 왜 당췌 재미가 없었지? (그닥 인상적이지 않은 평들을 보면 나만 그랬던건 아니었던듯 하다-> 김도훈기자 네이버 평 참조).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베를린은 그

미리 말하자면, 이것은 ‘액션’을 통해서만 만들어진 것이

어떤 것으로도 기억에 남을 것이 없다.

아니다.

연출도, 내용도, 연기도… 좋은 배우들이

앞서 이야기했던 액션장면의 앞 장면들을 살펴보면, 정진수가

군단으로 등장한 것은 맞지만, 그 누구의

이스라엘 정보국 모사드 다간을 추궁하다가 뜻밖의 사실을

연기도 그들의 필모에 인상적인 커리어로

알게 되는 장면이 있다. “그때 현장에 있던 북한 친구는

남을 것 같진 않다. 그렇다면 뭐지. 왜 1급

배신당했다고 봐야지.”라고 말하는 다간의 목소리와 함께

배우들이 네 명이나 모여있는 그저 그런

보이는 장면은 집에서 도청장치를 찾는 표종성의 모습이다.

영화가 되버린거지. 감독도 ‘the 류승완’

이때 카메라의 시점은 표종성을 바라보는 관찰자 시점이며, 즉 관객의 시선이다. 관객이 동명수의 계략으로 인해 표종성과 련정희가 함정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그 순간부터 표종성의 액션에는 긴장감과 힘이 실린다. 이것은 관객이 표종성에게 정서적으로 동화함으로써 몰입을 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앞으로 벌어지는 액션들이 더 이상 ‘표종성만의 것’이 아님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한 이 액션 장면에는 련정희도 있다. 표종성이 요원을 제압할 때 관객은 잠시 숨을 고른다. 하지만 지붕 위에서 아슬아슬하게 고군분투하고 있는 련정희의 숏들이 교차로 편집됨으로써 관객은 잠시도 긴장감을 놓을 수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약 5분 동안의 긴 액션 장면들을 짧은 숏들로 구성함으로써 감독은 역동적인 액션장면을 만들어낸다. 이 때의 숏들은 다양한 시점에서 찍었기 때문에, 관객은 긴 액션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사실 나는 액션영화가 주는 장르적 쾌감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단순히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액션영화를 보고 ‘쾌감’을 느꼈던 경험이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에 나는 <베를린>을 보게 되었고, 단순히 관람의 기분이 아닌, 체험의 기분을 느꼈다. 그 기분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다시 생각해보면, 그것은 단순히 화려한 액션만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베를


이 아닌가. 일단 각각의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북한 공작원 하정우, 류승범의 라이벌 대결구도. 이들을 뒤쫓는 남한 요원 한석규. 그리고 전지현이 연기하는 하정우의 아내 (여러모로 이용당하는). 이 캐릭터들의 역할만 봐도 베를린은 아무것도 새로울 게 없다. 맨날 보던 북한 남한 공작원/요원 이야기가 본 시리즈 비슷하게 독일에서 펼쳐지는 것을 제외하면 이 작품은 기존의 한국 스파이물 (예.쉬리) 에서 한 발자국도 떨어져 있지 않다. 쉬리가 그 나마 기존 한국영화에서 보기 힘들었던 예컨대 북한을 배경으로 한 훈련씬이나 남한 SWAT 들과의 도시 전면전 같은것으로 눈요기 라도 했다면 베를린은 아이리스 같은 근래의 텔레비전 대작들과 크게 차별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단지 캐릭터와 이야기의 진부함인가? 필자가 지적하고 싶은 더 큰 문제는 류승완 감독의 최대 강점 중 하나인, 캐릭터 들 사이의 교류든 대립이든 하는, 감정선의 표현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류승완은 명백한 액션영화 감독이지만 감정선에 뛰어난 감독이다. 그가 그려내는 뛰어난 캐릭터들의 그리고 그들간의 감정표현, 특히 전작 주먹이 운다 같은 영화에서 류승범과 최민식의 캐릭터가 링에서 사활을 건 승부를 내야 하는 대립구도 선 상에 있지만 동시의 둘이 서로를 향해 묘하게 녹여내는 연민과 연대의식 같은 것은 류승완 감독을 현재 이 자리에 있게 한 가장 큰 영화적 재능일것이다. 베를린은 그러한 캐릭터들 사이의 감정선이 단절되어 있다. 대사도 길지 않을 뿐더러 그의 쌈마이 감정(?) 액션이 사라지고 값비싼 액션 ‘효과’만 남아있다. 많이 아쉽다. 배우가 귀한 줄 알고, 본인이 쓰는 배우의 마지막 한 방울 까지 써먹었던 그의 스타일이 그립다.

한국영화 돌려 깎기


exxx

이야기 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그간의 북한 소재 첩보 액션물 중에서 이정도의 밀도를 갖고 밀어 붙인 이야기

영화를 재미 없게 보지는 않았다. 워낙 캐스팅이 화려했기

는 없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스포일링 당할까봐 서둘러 갔던 기억이 난다. 재미있었고, 그게 끝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의 끝에 감독이 어떤 붕괴를 그려낼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기 때문에...

앞의 글에서도 나왔지만 감독은 아픔을 잘 보여주고 싶 었다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래서인지 집착적으로 등에서 나오는 고통을 표현한다. ‘쿵’하고 찍히고 허리를 ‘컥’하 고 구부리는 그 느낌 말이다. 하긴 요원들이 주먹 한 대 맞았다고 기가 꺾이거나 뺨을 감싸쥐고 도망칠수는 없 을테니 그랬겠지만.. 그래도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영화를 처음 볼 때도 생각했었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는 데, 과연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 류승범이 어울리냐 하는 문제가 잘 드러난 작품이 베를린이 아니었나 한다. 그간 너무 당연하게 페르소나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아 무도 묻지 않았지만 정말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 류승범 이 ‘지금도’ 어울리냐는 문제는 진지하게 고민해봐야하 는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류승범이 연기를 못했느냐? 그것은 아니다 류 승범은 내 의심이 물색할정도로 괜찮게 연기를 했고 그 게 목소리 톤 때문인지 진짜 연기 때문인지 모르겠지 만 그것들을 다 모아도 괜찮은 역할을 보여주었다. 하 지만 오히려 류승범 보다는 말없이 나왔던 배정남이 왠 지 웃음이 나지만 영화에는 더 잘어울린다는 생각을 하 게되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상대적으로 흥행은 되지 않았지만 ‘짝 패’의 배우들이 영화에 아주 잘 붙었던 것을 생각하면 베 를린의 연기자들이 아주 능숙하게 연기를 했음에도 어딘 지 모를 허전함이 남는 것은 내가 독일에 가보지 못해서 일까.. 아니면 영화에 설명하기 힘든 헛점이 있기 때문일 까 하는 궁금증이 인다. 그래도 2편이 보고 싶기는 하다. 아주 높은 완성도라고



여기, 문학이 필요한 시간 박재삼, 「한」 // 고재종, 「감나무 그늘 아래」

기다림이 익고, 서러움까지도 익어서 저 짙푸른 감들. 마침내 붉어지면... 그제야, 가을이 오네.

이번호에서 살펴 볼 작품은 현대시 2편이다. 원래 예고했던 김남조의 「편지」가 아닌 다른

작품을 골라 보았다. 요즘 고3 학생들은 막바지 EBS수업 중이다. 수능완성 B형 실전편 6회 모 의고사를 풀면서 학생들과 함께 읽었던 작품인데 계절감이 물씬 드러나는 작품이다. 『월간 이리』 독자들과 함께 읽어 보면 어떨까 싶었다. 벌써 가을이다. ‘트랜치 코트’의 계절이 돌아 왔다. 얏호.

먼저 읽어 본 작품은 박재삼의 「한」이다. 감나무쯤 되랴,

서러운 노을빛으로 익어 가는

내 마음 사랑의 열매가 달린 나무는! 이것이 제대로 벋을 데는 저승밖에 없는 것 같고 그것도 내 생각하던 사람의 등 뒤로 벋어 가서

그 사람의 머리 위에서나 마지막으로 휘드려질까 본데, 그러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안마당에 심고 싶던 느껴운* 열매가 될는지 몰라! 새로 말하면 그 열매 빛깔이

전생의 내 전 서러움이요 전 소망인 것을 알아내기는 알아낼는지 몰라! 아니, 그 사람도 이 세상을

설움으로 살았던지 어쨌던지 그것을 몰라, 그것을 몰라!

* 느껴운: 어떤 느낌이 마음에 북받쳐서 벅찬


이 시는 사랑하는 임이 살아 있었을 때 고백하지 못한 사랑에 대한 회한을 노래하고 있다. ‘내

마음 사랑의 열매가 달린 나무는 이것이 제대로 뻗을 데는 저승밖에 없는 것 같고’라는 구절을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고백의 모습이 참 소극적이다. ‘당신의 등 뒤로 벋어 가서 머

리 위에서나 휘드려질까’ 라고 표현하고 있으니 말이다. 당신이 모르게 할 정도로 소극적이지 만 한편으로는 사랑하는 임 역시 자신을 사랑하기를 바라고 믿으려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그 사람의 안마당에 심고 싶던 벅찬 열매가 될는지 몰라!’

아하, 여기서 감나무의 열매는 그냥 붉은 색이 아닌 것이다. 내 사랑의 서러운 빛깔로 익은 붉

고 붉은 감이다. 그리고 그 열매가 혹시나 그 사람이 심고 싶던 열매가 아니었을까 믿고 싶다. 이 열매는 설움의 빛깔이고 소망의 빛깔이다.

이 시의 제목이 어느덧 눈에 들어온다. 왜 제목을 ‘한’이라고 했는지 조용히 고개가 끄덕거려

진다.

‘나’는 ‘그 사람’의 마음을 알고 싶지만 확인할 길이 없다. ‘그 사람’도 나처럼 설움을 가득 안

은 채로 한평생 살았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 확인할 길 없는 안타까움을 ‘몰라’라는 표 현 속에 애절하게 숨겨두고 있었다.

박재삼 시인은 전후 전통적인 서정시의 한 절정을 이룬 것으로 평가된다

박재삼은 유난히 서글픈 시를 잘 썼다. 특히

나 우리 고유의 정서인 ‘한’을 시 안에 잘 녹아 낸 시인이기도 하다. ‘울음’, ‘눈물’, ‘가을’ 등

의 이미지는 박재삼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것

이지만, 이 시에서는 보다 섬세하고 뛰어나다. 사랑의 성숙을 죽음과 소멸의 이미지로 채색

함으로써, 통념적인 것보다 훨씬 강렬하고 새 삼스러운 체험으로 바꿔놓는다. 서러운 사랑

의 끝은 소멸이지만 그 사랑은 강렬한 시적 이 미지를 통해 다시 태어나게 되고, 그리하여 소 멸과 재생의 의미를 동시에 갖게 된다.

이 작품 외에도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이란

작품도 있는데 기회가 되면 읽어보길 바란다. (자 검색창에 바로 고고고,)

탐스럽게 익은 붉은 감은 소멸의 계절로 가기 직전 절정의 아름다움을 뿜어낸다. 그 절정의

절박한 아름다움, 그 순간 시인은 슬픔을 느꼈나보다. 그리고 그 시인의 정서는 이렇게 아름 답게 시로 남겨졌다.


다음으로 볼 시는 고재종 「감나무 그늘 아래」 이다.

감나무 잎새를 흔드는 게 어찌 바람뿐이랴.

감나무 잎새를 반짝이는 게 어찌 햇살뿐이랴.

아까는 오색딱따구리가 따다다닥 찍고 가더니

봐 봐, 시방은 청설모가 쪼르르 타고 내려오네. 사랑이 끝났기로소니

그리움마저 사라지랴,

그 그리움 날로 자라면

주먹 송이처럼 커 갈 땡감들.

때론 머리 위로 흰 구름 이고

때론 온종일 장대비 맞아 보게. 이별까지 나눈 마당에

기다림은 웬 것이랴만,

감나무 그늘에 평상을 놓고

그래 그래, 밤이면 밤 뒤척여 산이 우는 소리도 들어 보고 새벽이면 퍼뜩 깨어나

계곡 물소리도 들어 보게. 그 기다림 날로 익으니 서러움까지 익어선

저 짙푸른 감들, 마침내

형형 등불을 밝힐 것이라면 세상은 어찌 환하지 않으랴

하늘은 어찌 부시지 않으랴.

이 시는 감이 익어가는 과정 속에 화자의 기다림의 정서를 녹여 냈다. 사랑이 끝난 화자는

그리움에 휩싸여 있다. 무심코 감나무를 본다. 감나무 사이로 빛나는 햇살. 잎을 흔들고 가는 바람. 그래, 사랑은 끝이 났지만 남겨진 사람은 마음껏 그리워 할 수 있지 않은가. 그리움은 남겨진 사람의 특권이지.


고재종 시인은 완결된 시상, 긴장된 비유, 절제된 언어 표현 등을 수반하면서 더욱 긴장감 있게 시적 형상성을 구축하고 있다.

때론 온종일 장대비를 맞아 보고, 밤에는

잠도 뒤척여 새벽을 맞이해 보고. 그렇게

기다리다 서러워지고 그 서러움마저도 서서히 잠잠해지면 이젠 정말 당신을 보낼 수 있게

된다. 정말 떠나갔구나. 어느새 시간은 흘러

가을이 왔네. 내 서러움처럼 붉은 감이 푸른 가을하늘에 주렁주렁 열렸다. 아,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이구나. 그림자조차 없구나. 그리고 나도 당신의 그늘에서 훌쩍 벗어났구나. 가을 하늘은 유난히 푸르다. 눈이 부시다. 꿋꿋한 것은 시간뿐이다.

당신을 생각 할 때마다 유난히 커피를 마셔댔다.

그리고 나만큼 지새울까 싶었다. 유난히 아침은 더뎠다. 이렇게 정처 없는 시간을 견디니

이제는 그 기억에 웃을 수 있다. 미련도 아쉬움도 없이 정말 온전히 ‘나’만 남았다. 가을은 참 재미난 계절이다.

이성부 시인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방법을 아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우리는 방법을 모르니 여전히 아픈 사랑을 하고 있고, 그 아픈 사랑을 추억하고, 그리고 모든

거리에 쏟아내고 있다. 정도는 없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은. 그래서 남겨진 사람은 모든 설움이다.

이런 계절에 이런 시를 읽을 수 있다니, 이런 시가 EBS수능 완성에 실렸다니!! 이런 꽤나 낭만적인 집필진들.

다음시간에는 현대소설 박완서의 「나목」을 읽어 보겠다. 지각하면 보강이다.


작곡가 b의 노트 <보수와 진보-브람스가 답하다> 글. Composer B

1악장. 포스트 베토벤 찾기 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한 가지 말해 두고 싶은 것이 있다. 내가 이 글에서 ‘진보’라든가 ‘ 보수’와 같은 단어를 사용했다고 해서 정치(권력, 특히 국가권력과 관련된 정당간의 싸움)에 대한 이 야기를 하려 한다거나, 2014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풍자하거나 빗대어 말하려는 것 은 아니라는 점 말이다. 여기서 말하는 ‘보수’ 혹은 ‘진보’라 함은 순전히 19세기 서양 음악계에서 있 었던 일련의 논쟁과 관련된 것들이기 때문이다.1) 자, 1824년과 1827년의 상황으로 돌아가 보자. 여기서 말하는 1824년은 베토벤의 교향곡 9번이 초 연된 해이며, 1827년은 베토벤이 사망한 해이다. 지금은 ‘베토벤의 사망=고전파 시대의 종식’으로 규 정짓는 경우가 많지만, 그 때는 베토벤의 죽음을 곧 ‘교향곡’의 위기로 받아들이는 분위기 같은 것이 있었다. 당시 젊은 작곡가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음악적 기술을 요구하는 ‘교향곡’이라는 영역에서 본 받을 만한 압도적인 성과를 남긴 그(베토벤)가 세상에 없다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해 하는 기색과, 자신이 뒤를 이어 새로운 역사를 쓰는 주인공이 되겠다는 패기어린 분위기가 동시에 느 껴지고 있었다. 1827년에 30세였던 슈베르트는 재능도 있었고 베토벤을 몹시 존경했지만, 교향곡만 을 놓고 본다면 베토벤의 힘에 맞설만한 수준은 아니었으며 불과 1년 뒤인 1828년에 세상을 뜰 정도 로 건강도 좋지 않았다. 멘델스존과 슈만은 당시 10대에 불과했다. 물론 훗날 그들이 남긴 교향곡들 은 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니고 있었으나 베토벤이 담아냈던 숭고한 정신세계에 도달하는 경지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독일음악의 정통성을 이어 받을 것이라며 세상 사람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있었던 바그너 역시 베토벤을 숭배했고, 관현악법에 대해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기술력과 미래적인 감각 을 가지고 있었지만 극장 음악에만 집중했을 뿐 정작 교향곡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2) 더군다나 바그 너는, 엄격하고 논리적인 조성체계를 기반으로 작곡된 베토벤의 음악과는 전혀 다른 ‘조성의 붕괴’라 든가 ‘무한선율’ 혹은 ‘유도동기’와 같은 파격적인 것들을 들고 나왔다. 그러니 문제는 여전할 수밖에. 모두에게 화두를 던질 수준의 진정한 ‘교향곡’은 여전히 나오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1) 친절한 전제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읽는 내내 자꾸 대한민국 특정 정당들의 이름이 생각나는 독자라면…… 이번 호 ‘작곡가 B의 노트’는 그냥 넘어가시길 권합니다. 제 의도는 절대 그게 아니니까요. 2)악보가 남아있는 교향곡이 두 곡 있기는 하지만, 그의 오페라들에 비하면 존재감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2악장. 20년간의 기다림, 싸움을 부르다. 베토벤에 맞서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독일-오스트리아 교향악의 뜻을 ‘계승’할만한 사 람이 나타나지 않던 1876년, 음악계에 큰 획을 긋는 하나의 사건이 터지게 된다. 당시 음악계의 많은 주목을 받고 있던 작곡가 요하네스 브람스(1833~1897)가 21년간의 준비 끝에 공개한「교 향곡 1번 C단조」를 두고 벌어진 일련의 논쟁이 그것이다. 특히 이 작품은 당시 음악계에서 절대 적인 영향력을 끼치고 있던 리하르트 바그너(1813~1883)를 추종하던 지지자들(이하 ‘바그네리 안)의 격렬한 비판을 불러 일으켰다. 그 바그네리안들에 반대해 고전주의의 순수함으로 돌아가 형식상의 엄격함을 보다 강력하게 지켜야 한다고 주장해 보수파의 대표적인 싸움꾼으로 꼽혔던 에두아르드 한슬릭(Eduard Hanslick)은 이 작품을 극찬하며 브람스의 방패막이가 되길 자처했 다. 또한 당대 최고의 지휘자로 꼽혔던 한스 폰 뷜로(Hans von Bülow)는 “우리는 드디어 베토벤 의 10번 교향곡을 얻었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사람들에게 브람스의 교향곡이 베토벤의 전통 을 이어나갈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도 했다. 특히 뷜로의 저 한 마디는 상상 이상으로 파급 력이 컸던 나머지, 브람스를 물어뜯을 구실을 찾고 있던 바그네리안들에게 오히려 좋은 먹잇감 을 던져주는 불상사(?)를 일으키기도 했다. 사실 브람스가「교향곡 1번」을 21년간이나 질질 끌어 오게 되었던 이유 역시 베토벤에 있었다. 브람스는 친구들이 “자네의 첫 교향곡은 대체 언제쯤 나오나? 나오기만 한다면 베토벤의 뒤를 이을 수 있을 텐데!”라며 용기를 북돋워주면 그때마다, “등 뒤에서 베토벤이라는 거인의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교향곡을 쓰는게 얼마나 고통스러운 작 업인줄 아는가!”라고 되받아치며 자신이 베토벤이라는 존재에 대해 얼마나 큰 부담을 느끼고 또 의식하고 있는지를 토로하곤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평론가들이 제기한 베토벤의「교향곡 9번」 과의 연관성에 대한 분석도 브람스를 성가시게 만들었다. 바로 브람스의 교향곡에 등장하는 주 제 선율의 일부가 베토벤의 그것과 비슷하다는 이야기였다.

위의 악보가 베토벤의 “환희의 송가” 주제, 아래의 악보가 브람스 교향곡 1번의 일부이다. 리듬 의 형태나 선율의 라인만 대강 보더라도 어느 정도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 게다가 이 테마가 나 오는 부분은 앞서 등장하는 1, 2, 3 악장의 어둡고 무거운 기운을 걷어내고 마지막 4악장에서 밝 고 힘차게 연주하는 부분(Per aspera ad astra3))을 위해 등장하는 선율이라서 그 유사성에 대한 논란은 끊이질 않았다. 또한 이런 부분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3) “고난을 뚫고 별을 향해” 라는 뜻의 라틴어 문장이며 수많은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은 모티브이기도 하다. 문학, 음악, 미술 등 거의 모든 예술분야에서 이 문장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정말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때로는 “Per ardua ad astra”라는 형태로 등장하기도 한다. .


위의 악보는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시작부분의 그 유명한 테마(“딴딴딴 따안-”)이고, 아래의 묶 음악보는 브람스의 교향곡 1번 1악장에 등장하는 모티브를 목관악기들이 연주하는 부분이다. 작품 안에서 구체적인 박자(브람스의 곡은 6/8박자)나 역할은 조금 다르지만, 짧고 긴 음들이 서로 다른 성부에서 교차적으로 등장하며 내적인 긴장감을 부여하고 곡의 전개를 이끄는 중 요한 동력이 되는 점에 있어서 상당히 닮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브람스는 자신의 작품에 뷜로가 붙인 ‘베토벤의 10번째 교향곡’이라는 꼬리표에 대해서 마냥 반기지만은 않았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베토벤의 그림자를 벗어나려고 신중에 신중 을 기했으니 그럴 법도 했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던 한슬릭의 적극적인 옹호마저도 부담스럽 게 받아들일 때가 많았는데, 특히 한슬릭이 강경일변도로 주장했던 안티-바그너의 대항마로 자신을 내세우려는 움직임을 보일 때면 별로 달갑지 않다는 내색을 보이기도 했었다(젊은 시 절에 브람스는 바그너를 몹시 존경해 그의 앞에서 피아노를 연주하고 호의적인 평가를 듣거 나 악보를 정리하는 일을 도운 적도 있었다). 물론 바그네리안들은 한슬릭의 의도(?)대로 브람 스가 새로운 기법이나 ‘혁신’에는 관심이 없고 고리타분한 이전 세대의 시선으로 음악을 대한 다며 브람스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3악장. Brahms, the Progressive. 브람스가 고리타분하고 새로운 것에는 관심이 없다는 편견은, 그 당시 보다 더 큰 목소리를 내던 바그네리안들이 브람스의 작품을 깊이 이해하지 않고 내린 오해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브람스의 작품 구석구석을 훑다 보면 단순히 ‘베토벤의 아류’라고 몰아붙임 당했던(아무 리 과거의 일이었다 할지라도) 이유가 대체 무엇 때문이었는지 의아하게 생각될 때가 많다. 베 토벤 스타일의 고정적이고 규칙적인 선율 취급 방식이나 5도 간격으로 이동하는 조성변화와 비교했을 때, 브람스는 보다 불규칙적인 단절 또는 연장된 모습을 보여주는 선율형태를 사용 했고, 3도 간격이나 과감한 반음계적4)인 조성 변화를 즐겨 사용했다. 그리고 테마 내에서 추출

4) 물론 ‘반음계’만 놓고 본다면 바그너의 ‘반음계적 변화’와는 성격이나 방법론적인 면에서 많은 차이가 있다.


해 낸 단편적인 요소들을 이전 세대보다 더 자주 변용(전위, 역행)해 전체 작품을 끌어나가는 동력으로 삼은 부분들도 상당히 많이 있다. 물론 바그너처럼 오페라 안에서 성악을 또 하나의 악기처럼 간주한다거나, 해결되지 않은 불협화음들을 연속적으로 배치해서 기존의 조성체계 를 탈피하려는 시도만을 ‘진보’라고 본다면 브람스는 그에 대해서 정말로 할 말이 없을지도 모 른다. 하지만 브람스가 주장했던 진정한 발전은 이전 세대의 유산을 밑바탕으로 삼아서 당대 의 새로운 것을 그에 접목시켜야 보다 충실한 진보가 이루어지는 것이며, 이는 바그너 스타일 의 극단적인 감정 표출이 아닌 전통적 대위법과 수직적인 화성의 힘, 그리고 그들을 엮는 보 편적인 흐름을 중요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브람스의 진보적 성향을 뒷받침 할 수 있는 또 다른 강력한 변호는 아이러니하게도 당대가 아닌 20세기의 작곡 가 아놀트 쇤베르크(Arnold Schönberg, 1874~1951)에 의해 이뤄지게 된다.5) 브람스의 진보 에 대해서는 보다 다양한 분석 자료와 사례들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음 기회에 한 번 더 자세 히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으면 한다. 아무튼, 우리가 가장 분명하게 알아두어야 할 것은 브람스는 ‘낭만주의자’였다는 점이다. 그것 도 기존의 틀을 유지하되 보다 자연스럽게 벗어날 방법을 궁리했던, 꽤나 영리하고 온건한 성 향을 띈 낭만주의자말이다. 어쩌면 브람스는 낭만주의 시대의 끝자락(20세기가 시작되기 3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에서 고전주의의 끝자락을 붙잡고 있으려 했던 음악가가 아닐까 생각한 다. 그 ‘붙잡음’이 단지 과거를 잊지 못하고 “옛날에는 말이야...!” 따위의 말만 반복해서 외쳐대 는 꼰대스러운 붙잡음이 아니라, 고전들이 가진 힘을 최대한 활용하고 그 가치를 존중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음 세대로 넘어가는 줄을 잡으려했던, 한 작곡가의 고뇌어린 몸부림이 아니었 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참고로 나의 필명인 ‘Composer B’에서의 ‘B’는 ‘Brahms’를 뜻하 며, 이는 필자의 메일 주소이기도 하다. 늘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는 젊은 작 곡가에게 도움을 주는 그에게 존경의 마음을 보내며 글을 마친다.

5) 이에 대해서는 쇤베르크가 쓴 유명한 에세이 “Brahms, the Progressive”를 참조하면 좋을 것이다. 특히 앞서 언급한 주제의 변용을 쇤베르크의 음렬기법과 연관 지어서 생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 NANGMANSPY letmeflywoo.tumblr.com

얼마 전에 동네 빨래방에서 빨래를 하다가 평소 집 근처 골목에서 가끔 뵜던 아저씨의 요크셔테리어가 혼자 돌아다니는 걸 봤어요. 빨래빵 근처를 돌아다니며 냄새를 맡다가 윗동네로 올라가더라구요. 항상 아저씨와 꼭 붙어있던 아이였는데, 그 땐 그냥 “왜 쟤가 혼자 돌아다니지?”라는 생각만 하고 말았어요. #7 미안 그리고 반성


ⓒ NANGMANSPY letmeflywoo.tumblr.com

몇 일후 그 골목길 전봇대에서 그 아이를 찾는 전단지를 보게 되었어요. 없어진 날짜도, 시간대도 제가 마지막으로 본 시간대와 비슷했어요. 오늘도 전단지는 붙어있네요. 왜 난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면서 가만히 있었을까요. 계속 생각이 납니다. 이제 이웃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버릇이 되었나봅니다. 새삼 느끼고 후회합니다.

#7 미안 그리고 반성


Idology

Kenzie 12주년 스페셜 아트웍 : 강동 아이돌로지는 프로듀서 켄지의 정규작 데뷔 12주년(2012년 9월 이삭N지연 ‘The Sign’)을 맞아 특집 기사를 구성했다. 베일에 싸인 스타 프로듀서 켄지의 모든 것을 살펴보았다. 전문은 URL에서 확인하기 바란다.

(1) 켄지 연대기 (상) by 미묘 http://idology.kr/1486 (2) 켄지 연대기 (하) by 미묘 http://idology.kr/1491 켄지란 이름을 처음 발견하던 순간은 누구에게든 살짝 당황한 추억으로 남아 있지 않을까. 왠지 일본 남자 같은 이국적인 이 이름. 더구나 그런 예명은 아직 낯설었다. 지금처럼 “신사동 옆차기”, “이단 형제” 같은 이름보다는 주민등록증에 적힌 실명을, 예명을 쓰더라도 실명 같은 예명을 쓰는 경우가 아무래도 많던, ‘작곡가 선생님’이 곡을 ‘써주시던’ 시대였다. 시대는 변했고, ‘작곡가’란 말보다는 ‘프로듀서’가 익숙해졌다. 그들은 저마다 독특한 이름을 내걸고 브랜드 이미지를 구축하며 ‘주문에 맞춘’ 프로듀싱을 모토로 내걸고 있다. 그러고 보면 켄지는 이미 2002년부터 그런 형태의 프로듀서의 길을 걸어왔다. 예명도 시대에 다소 앞섰고, SM 전속 작곡가답게 누구보다 치밀한 ‘맞춤형’ 곡을 만들었으며, 적어도 SM 소속 아이돌의 팬들에게는 가장 가슴 설레는 곡을 써내는 작곡가로 그 이름을 깊이 새긴 스타 프로듀서이기도 했다. 초등학생 소녀에게 띠동갑 연하남이 태어나기에 충분한 12년. 아이돌도, 팬도, 환경도 모두 변했고, 켄지의 음악도 달라졌다. (어쩌면 음악을 통해 보이는 것은 극히 일부일지도 모른다.) 불안과 슬픔 속에서도 꿋꿋한 소녀의 감성과 흑켄지의 카리스마, 당혹감과 물음표를 매력으로 치환하는 의미불명의 미학, 디스코/훵크와 록에 탄탄하게 뿌리를 내린 정통파 팝의 양분과, 파격을 두려워하지 않는 감각적인 실험들. 그 모든 것이 지금의 ‘켄지 월드’를 이루고 있다.


(3) 이상하고 켄지한 나라의 소녀들 (상) by 김윤하 http://idology.kr/1532 (4) 이상하고 켄지한 나라의 소녀들 (하) by 김윤하 http://idology.kr/1546 [...] 바로 ‘소녀들’과의 접점이었다. 특히 노랫말이 그랬다. 미끈한 공산품이나 곡에 맞춘 맞춤형이 흔한 보이 그룹들과의 작업에 비해 걸 그룹과의 작업에서 보다 강한 서사성을 띄며 해당 그룹과 그룹 구성원의 정체성과 성장의 역사를 차분히 담아내고 있었다. 그 특징을 쉬운 이해를 돕기 위해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해 보았다. A – 맑고 건강한 소녀 B – 사랑에 빠진 소녀 C – 언니인 듯 언니 아닌 언니 같은 소녀 D – 알 수 없는 소녀 이처럼 켄지의 노랫말이 묘사하고 있는 소녀들은 대부분 꽤나 다층적인 면모를 견지하는데, 그러니까 소녀라고 다 같은 소녀가 아니라는 얘기다. 이 복잡하고 미묘한 나라에 살고 있는 소녀들 가운데 소녀시대, 천상지희, 보아, f(x) 네 그룹을 대표로 뽑았다. 켄지가 비교적 꾸준히 곡을 제공해온 네 그룹의 노래들은 위의 네 가지 요소들을 더하고 곱하는 것만으로 대부분의 수식을 완성할 수 있었다. 다소 뻔한 사랑 노래에서 맨 정신으로 썼다고는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곡에 이르기까지, 켄지와 소녀들이 만난 노래들은 ‘소녀’라는 큰 틀 안에서 수없이 쪼개졌다 합쳐지기를 반복했다. (1) 소녀시대 AxB (2) 천상지희 C+D (3) 보아 (A+B)+C (4) f(x) (A+B+B)xD

보아 - Milky Way (2003)

소녀시대 - 다시 만난 세계 (2007)

f(x) - 라차타 (2009)


(5) The 켄지 리스트 http://idology.kr/1556 켄지 12주년 특집을 준비하면서 필진에게 각자 아끼는 켄지의 곡을 물었다. 아래는 그 대답. 그냥 넘길 수 없는 ‘The 켄지 리스트’이다. ‘켄지 월드’의 주민들과, 그곳에 발을 딛으려 하는 사람 모두에게 유익한 리스트가 되길 바란다. (각 곡에 대한 코멘트는 URL에서) 보아 - Milky Way / 보아 - 공중정원 / 동방신기 - One / 동방신기 & 슈퍼주니어05 - Show Me Your Love / 천 상지희 - 한번 더, OK? / 소녀시대 - 다시 만난 세계 / 슈퍼주니어 M - 迷 (Me) / 샤이니 - Real / 슈퍼주니어 앤젤라 / 소녀시대 - 여자친구 / f(x) - 라차타 / 샤이니 - JoJo / 보아 - M.E.P / 천상지희 다나 & 선데이 - 나 좀 봐줘 / 슈퍼주니어 - 오페라 / f(x) - 제트별 / 태연 - 가까이 / 소녀시대 - Express 999 / 샤이니 - Evil / 엑소 Baby / f(x) - 시그널 / 샤이니 - 빗속 뉴욕 / 엑소 - 첫 눈 / 소녀시대 - 유로파 / f(x) - MIL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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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이니-비스트-인피니트 음방 1위 횟수 분석 http://idology.kr/1291 by 별민 꼭 생년월일 따위가 아니더라도, 남자 아이돌에게 ‘숫자’는 꽤 큰 시사점을 가진다. 팀의 인원수가 그러하고, 멤 버들의 평균 나이가 그러하며, 데뷔 연차가 그러하다. 이 중에서도 마치 모이라의 실처럼 남자 아이돌의 운명 을 읽어내고 예측하는 데에 큰 영향을 미치는 숫자는 아무래도 ‘데뷔 연차’일 것이다. 남자 아이돌에게 ‘5, 6년 차’란 예전과 조금 다른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기, 올해로 데뷔 6주년을 맞이한 샤이니, 데뷔 6년 차에 접어든 비스트, 그리고 5년 차를 맞이한 인피니트가 있다. 한국 나이로, 비스트 25.3세, 샤이니 24.2세, 인피니트 24세라는 비슷한 평균 나이와 2008년 샤이니, 2009년 비 스트, 2010년 인피니트가 데뷔하면서 갖게 된 시기적 동질감, 그리고 비슷한 커리어를 갖추어 온 이 세 팀은, 그 성공적인 행보만큼 지금 남자 아이돌 판도 안에서 일종의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실제로 상당히 많은 후배 남자 아이돌들이 이 세 팀을 벤치마킹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고, 신인 남자아이돌 성공의 척도로서 비교 대상 에 자주 언급되는 팀이 바로 이 세 팀이기도 하다. 약 5, 6년간 이들의 눈부신 활약상 중 극히 일부분에 해당하는, 국내 음악 방송 1위 횟수를 세어보고 그 변화 양상을 이들의 행보와 함께 분석해보았다. 음악 방송 1위 횟수는, 각 음악 방송 차트의 순위 산정 방식의 정밀 성을 떠나, 그 자체로 국내 대중음악 시장 내에서의 입지를 증명할 수 있는 척도 중 하나이기 때문에 철저히 국 내에서만의 영향력을 보는 도구로서 무의미하지만은 않은 수치다. 실제로, 이 횟수를 각 팀의 행보와 함께 맥 락적으로 분석해보면 일정한 경향성과 상관관계를 갖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


샤이니 - 산소 같은 너 (2008)

비스트 - Shock (2010)

인피니트 - 내꺼하자 (2011)

’s pick letters : 박보람 - 예뻐졌다 http://idology.kr/1341 by 쓴귤 [...] 이십 대를 지나면서 거친 몇 번의 연애는 감사하게도 내게 적당한 수준의 자존감을 돌려줬다. 나는 그저 평범했을 뿐이다. 심지어 누군가에게 나는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그것을 아주 오랜 시간을 거쳐 깨달으며 나는 내 외모에 대해 평가하는(혹은 평가하는 듯한) 사람들에 대해 그전처럼 예민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나아지지 않는 것도 있다. 움츠러든 십 대 시절을 보낸 탓에 나는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해야 내 몸짓이나 제스처가 매력적으로 보이는지 모른다. 여전히 나는 뭘 해도 스스로를 어색하게 느낄 때가 많고, 백화점처럼 예쁜 물건들이 널려 있는 곳에 가면 나 자신의 모습부터 검열한다. 연애가 내게 어느 정도 자존감을 회복시켜주기는 했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진 않다.

박보람 - 예뻐졌다 MMO, 2014년 8월 7일

“나도 너처럼 사랑받길 원했어 / 그래서 더 독하게 / 예뻐졌다, 매일 듣고

그런 욕망을 직시하는 것은 나의

싶었던 말”이라는 가사는 그래서 슬프게 느껴진다. 내가 적극적으로

열등감을 먼저 들여다봐야 하는

표현하지 못했던 욕망이 거기 있다. 어쩌면 여자만큼 외모에 가혹하지

일이고, 그것은 괴롭다. 괴로워하는

않은 세상과 몇 번의 연애가 나 자신의 마음을 더 깊게 들여다보지 않게

것을 그만둔 것과 자유로워진다는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내 욕망을 더 깊이 숨기는 것이었다.

것은 같지 않다. [...]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소개소

1. Summer Hill - 루디스텔로

2. Fly Over - 러브엑스테레오

3. 비트와 자장가 - 위댄스

[Experience](2014), 9

[Glow](2013), 2

[Unfixed Tape](2013)

루디스텔로는 레이시오스, 슈가도넛에서

러브엑스테레오는

활동하는

출신의

스크류어택을 전신으로 하는 밴드이다.

위댄스를 처음 봤다. 위댄스는 보컬 위보와

드러머가 만든 밴드이다. 일렉트로닉은

공연 때마다 베이시스트의 스텝이 멋져서

기타리스트

춤추기

생각했는데

기분이 좋았고 참 좋은 리듬을 만드는

노트북으로 비트를 켜두고 노래를 하며

공연에서의 강력한 드럼 연주에 놀랐다.

밴드라고 생각했다. 울려퍼지는 보컬의

기타를 연주하는 방식으로 공연을 한다.

특히 이 곡은 무게감 있는 드럼 연주와

매력이 잘 드러나고 잠시 느려졌다가 빠른

당시 나는 ‘햇볕에 바싹 타버려도’라는

함께 저음으로 시작해서 마치 베이스를

드럼 비트와 함께 다시 시작하는 부분이

가사가 너무 좋아 한참동안 이 노래를

연주하는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 매우

즐거운 곡이다. 펑크락을 하다가 장르에

찾았었다. 그 외에도 ‘10월의 도시의 밤’

매력적이다. 1분 쯤, 각 악기의 호흡이

변화를 주었는데도 여전히 멋진 음악을

이라던가 ‘냇물에 헤엄치고’같은 가사들이

잘 맞으면서 음이 점점 높아지는 부분이

들려주는 밴드.

참 마음에 든다. 가사에 어울리는 동작들이

멤버들과

좋은

인상적이다.

카피머신

음악으로만

펑크락

밴드

<2013

쌈지

참 기분 좋다.

사운드

위기로

페스티벌>에서

이루어진

2인조로


이번 호는 공연을 보고 마음속에 남았던 일렉트로닉과 펑크 음악들을 골라봤습니다. 서정적이든 신나든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리듬을 가진 음악을 소개합니다. 신당동 파르한 (@chungchoon98)

4. Alibi- 옐로우 몬스터즈

5. This wasteland - 썩스터프

6. 그딴거 다 상관없어 - 럭스

[Red Flag](2013), 6

[Rough Times Ahead](2007), 7

[더러운 양아치](2011), 4

강력한 음악을 하는 팀이지만 어쿠스틱

이 노래는 펑크 밴드 ‘...WHATEVER

2013년의 락 페스티벌에서 처음 럭스를

기타의 연주로 시작하는 이런 잔잔한

THAT MEANS’의 앨범에서 처음 들었는데

봤는데 많은 관객들이 이 노래를 함께

노래도 잘 한다. 3집의 12곡은 각각 3

썩스터프의 곡을 커버한 것이었다. ‘river,

부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나는

곡씩 4부로 나누어져 있는데 그 중 가장

shiver, winter, silver’를 특유의 발음으로

개인을 비판하는 가사에 주목했었는데

애잔함이 뭍어나는 2부에 속한 노래. ‘

부르는 것이 참 좋다. 이 곡은 베이스 음이

가사를 들어보면 개인뿐만이 아니라 정부도

아마도 지금의 내 모습이라면 당신이

잘 들리고 전체적으로 낮고 묵직한 연주가

비판하고 있어서 ‘역시 펑크!’라는 생각이

좋아할 거예요 술 취해 있지 않거든요’

있어 마음을 안정시켜준다. 검색을 하다

든다. 자신의 잊어버린 꿈에 대한 이야기도

라는 가사 때문에 자주 들었던 곡이다. ‘

이 노래에 대해 ‘근사한 펑크연주’라고

하고 있어 더 자주 듣게 된다. 특히 ‘내

남의 슬픔이 이해가 되요’라는 가사도

한 기사를 봤는데 정말 적절한 표현이라

앞길을 막는 나를 이기고’라는 가사가 참

멋지다. 드럼 소리가 가슴에 박혀서 계속

생각한다.

신선하고 멋지다.

귀 기울이게 된다.


! ! ! ! ! ! ! ! ! ! ! ! !

글: 이동걸 mm17@me.com! www.facebook.com/mapukiki

# Elima. 다섯. 도대체 정체 모를 근본없는 음식. 로코모코

!

2008년 처음 하와이를 방문했던 바로 그날 당일 와이키키 해변 길가에서 럭셔리하게 스시를 즐기는 거지를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난 학교 인터뷰를 위해 갔던터라 돈을 최대한 아끼기 위해 뭘 먹으면 점심과 저녁 을 한꺼번에 해결 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던 터였다. ‘역시 하와이는 다르구만.’ 이라고 생각하고 돌아다니

!

던 중 나의 시선을 끄는 어느 레스토랑의 메뉴 사진이 있었으니 그것의 이름은 바로,

!

로코모코 Locomoco

로코모코의 그 투박하지만 강렬한 맛의 유혹을 몇해가 지나도 잊지 못해 결국 난 그 로코모코를 만들어 파는 가 게를 차리고 말았다. 흔히들 미국의 뉴욕을 대표적인 멜팅 팟(melting pot)이라고 일컬으며 여러 인종의 다양 한 문화가 뒤섞인 미국의 문화를 이야기 하곤 한다. 뉴욕에서 길진 않지만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3개월정도 를 생활하며 겪어 본 나에게 뉴욕과 하와이중 대표적인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를 꼽으라면 주저하지 않고 하와

!

이를 꼽을것이다. 그중 음식문화는 정말 대단하다. 하와이의 전통 음식이 뭐냐고 물어보면 우리나라 전통음식을 생각하는 것 만큼 오래되고 다양한 하와이만의 전통 음식이 있지는 않다. 통돼지를 바나나잎에 싸서 뜨거운 땅속에 묻어서 요리하는 ‘칼루아 피크,’ 타로를 으 깨서 만든 벽지 붙이는 풀같은 (사실 향과 맛도 비슷한것 같다.) ‘포이’ 등 이방인들이 즐겨먹을만한 맛과 요리

!

들이 아님에는 분명한것 같다. 하지만 이런 전통적인 하와이 음식말고 하와이 음식 문화를 진정 빛나게 만드는 요리와 세계적인 요리사들이 굉장히 많다. 아주 고급스러운 음식부터 서민들이 즐겨먹는 음식까지 환태평양과 동서양의 음식 문화가 짬뽕

! ! !

이 되어 토착화가 된 퓨젼 음식들이 많은데 ‘로코모코’는 그 음식들을 대표하는 음식중 하나다.


아마 하와이 요리가 뭐냐 라는 질문에 대부분의 하와이 사람들이 떠오르는 음식이 아마 ‘로코모코’가 아닐까 한 다. 원래는 요것이 하와이의 대표 아침식사라고는 하는데 사실 이것을 아침부터 먹을 한국인은 나랑 친한 하와

!

이 마우이섬 출신인 분당 정자동에 사는 배현준 형과 나밖에 없으리라. 그냥 흰 쌀밥에 소고기 햄버거 패티를 아무렇게나 올리고 그래이비 소스를 마구 뿌려놓고선 마치 그제서야 얄

!

궂게 고급스러움을 더하려는냥 계란 반숙 후라이를 조심스럽게 얹어 마무리 해 놓은 음식이 그것이다. 어느집에 가면 된장이 어떤 맛이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듯 로코모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런식으로 로코 모코 맛집 예찬이 이어진다. 바로 그래이비 소스의 맛에 따라서 맛집 호불호가 갈리고 매니아층을 만들어 내는 데 나 역시 이 그래이비 소스를 만들어 내는 연구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너무 하와이의 일반적인 그래 이비를 추구하면 느끼하다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의 입맛에 맞지 않을듯하고 그렇다고 일본인들의 로코모코의 그래이비 소스같이 만들어 쓰는건 아닌 말씀이고… 뭐 그래서 어찌저찌해서 만들어 냈다.

! !

도대체 이게 뭔 맛인지 한번 맛 보고 싶으시다면 찾아오시라.

! 어차피 우리가 하는 모든 일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 !

햄버거 패티 하나 맛있게 구워 따끈하게 대접해드릴테니…

로코모코 먹는 곳 >>>


건축이 좋아. #13. Villa Rotonda, 르네상스인의 이상향 aoikasa ‘단언컨데’ 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얼마만큼의 확신과 자신이 필요한 것일까. 적어도 나는 ‘단언’하는 말투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이고 이런 말투를 보고 듣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어 찌 보면 비겁하게 느껴질만큼 나는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혹은 ‘~일지도 모른다’라는 표현을 더 선호하 는 편이다. 이토론 ‘단언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내가. 감히 ‘단언컨데’ 빌라 로톤다는 가장 완벽한 건축물이다. 물론 내가 아는 한에서 말이다.

(그림1 . Andrea Palladio, Villa Rotonda,1565~71)


Villa Rotonda. 지겹게만 느껴졌던 그 이름. 내가 처음 빌라 로톤다를 알게 된 것은 서양건축사 책을 읽으면서였다. (솔직히 수업시간에 이 건물을 배웠 는지는 잘 기억이 안 난다. 우리 세대가 듣던 서양건축사 수업은 거대 기념비적 건축들이 중심이었으니까) 많은 수의 서양건축사 책에서 공통적으로 빌라 로톤다를 언급하고 있는 어조 자체는 ‘칭송’이다. 이 건축물 의 건축가, Andrea Palladio는 후기 르네상스, 혹은 매너리즘의 마스터로 이 건물을 통해 그가 추구하던 고 전주의의 이상향을 모두 종합화한 것으로 언급된다. 완벽한 대칭구조와 정수비례의 구성, 정사각형과 원형 의 조화 등 어느 한 곳 빈틈없어보이는 이 건물을 보면서 건축사가들의 칭송과는 달리 난 이 건물이 그저 지 루하고 답답했다. 머리로는 아, 이래서 대단한 거구나 생각하면서도 맘으로는 그래서 뭐, 난 이런 스타일 싫어라고 외치고 있었던 것이다. 매너리즘이라는 말 자체가 주는 지루하고 따분함과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거 같은 지나치게 논리적이고 지나치게 냉혹해보이는 이 건물이 늘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건축꿈나 무의 눈에 좋아보일리가 없었던 것이다.

건물만큼 깐깐하고 까탈스러운, Villa Rotonda와의 조우. 빌라 로톤다는 베니스에서 1시간 정도 기차를 타고 가야하는 작은 도시, 비첸차에 위치하고 있다. 비첸차 에서도 도심이 아닌 교외(그래봤자 버스로 10분 정도의 거리이지만)에 위치하고 있어 찾아가는 길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다. (게다가 버스는 1시간에 한 번 있어 한 번 놓치면 1시간 기다려야 한다. 차라리 걷는 게 빠를 정도, 걸으면 30분 정도 소요) 게다가 빌라 로톤다의 내부는 일주일에 딱 하루, 수요일 오전 10:3013:00, 오후 15:00- 18:00 이렇게만 열어준다. 빌라 로톤다를 방문하기 위해서는 여행계획을 이 곳의 개방 시간에 맞춰야할 정도로 깐깐하고 까탈스러운 일정이다.

아무튼, 베니스에 가게 된 이상 비첸차를 가야겠다 싶어 일정 을 수요일로 맞췄다. 그리고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 고 10시경에 로톤다 앞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갑자 기 무지막지한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다행히 방수 기능이 있는 겉옷이 있어 입었지만 그 정도로 막을 수 있는 비 가 아니었다. 그 시골 마을에 우산을 살 곳이 있을리도 없고… 문을 연 미용실이 있길래 혹시 우산 파는 데 없냐 하니까 친절 히 큰 비닐을 준다. 그 비닐로 천가방을 둘러싸고 빌라 로톤다 를 향해 언덕길을 올랐다.

언덕길을 오르니 빌라 로톤다가 열길 기다리는 몇몇이 보인다. (그림2. 굳게 닫힌 빌로 로톤다의 대문)


(그림3 . 양 옆으로 장미꽃이 피어 있는 이 꽃길을 지나야 빌라 로톤다에 다다른다.)

건축학도로 보이는 일본인 한 명, 독일인 가족 3명, 그리고 나 까지… 모두 큰 나무 밑에서 겨우 비를 피하 며 빌라 로톤다가 열리기만 기다린다. 사실 이렇게 장대비가 오면 관리인이 들어와서 처마 밑에서 기다리라 고 말해줄 듯 싶은데, 끝까지 아무 말 없다. 쏟아지는 비를 다 맞으며 20여분을 기다린 결과, 10시 30분에 문이 열렸다.

알수록 보인다. 볼수록 빠져든다. 양옆으로 꽃이 피어있는 (사진으로 늘 보아 어느 정도는 익숙했던) 완만한 경사길을 지나이 6개의 이오닉 기둥들로 이루어진 신전 파사드를 지나 빌라 로톤다에 도착했다. 이 거장의 작품을 음미하며 이 길을 걸을 것이라는 전 날의 기대와는 달리, 쏟아지는 비를 피해 허겁지겁 빌라 로톤다로 뛰어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이리 어렵게 만난 빌라 로톤다는 내부 사진촬영을 허락하지 않았고, 이에 서운한 마음도 들었지만 사진이 없으면 손으로 기억하면 되지 라는 마음으로 카메라를 가방에 넣고 스케치북을 꺼내 들었다.

빌라 로톤다의 내부는 생각보다 작았고 생각보다 평범했다. 화려하진 않지만, 중앙돔이 있는 원형공간을 중심으로 대칭적으로 배치된 8개의 방과 4개의 계단실, 그리고 4개의 방향으로 난 출입구까지. 그런데 이 렇게 생각보다 심플하고 평범한 이 건물 안에 르네상스 비례 법칙들과 완벽한 대칭 구조가 숨어 있다는데


그렇게 이론으로만 알던 것들이 어디에 있는 걸까 궁금해졌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 스케치북을 들고 평면 을 그리면서 빌라 로톤다를 구석구석 살펴보기 시작했다. 환상형의 공간을 돌고 또 돌며 창의 위치를 살피 고 각 공간이 연결되는 방식들을 살펴보다 보니 보이지 않는 선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창과 문은 모두 일 직선으로 놓여 있어 공간을 관통하고, 이를 통해 외부의 풍경이 자연스레 집안의 내부로 끌어들여지는 것이 었다. 지금처럼 큰 유리창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었던 시절, 팔라디오는 이런 방식으로 풍경을 연속적으 로 내부에 끌여들였던 것이다. 원형의 로톤다 공간에서는 기둥을 세심하게 배열한 팔라디오의 트릭이 엿보 인다. 네 개의 포티코 공간의 원형독립기둥, 그리고 집안 내부의 벽기둥(벽에 붙어 있는 기둥)에 이어 벽기 둥 사이 사이에는 그림으로 그려진 기둥들이 보인다. 멀리에서 보면 마치 그 역시도 기둥처럼 보여 로톤다 의 벽을 적절하게 분산하며 이 공간을 마치 로마시대 원형 신전처럼 느껴지게 하였다. 책에서는 볼 수 없었 던, 이론으로는 알 수 없었던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손으로 그림을 그리며 알고자 하였기에 볼 수 있 었던, 볼 수 있기에 빠질 수 있었던 기쁨이랄까.

(그림4.5. 사진을 못 찍게 하면 그림을 그리면 된다. 그림을 그리면 더 많은 걸 볼 수 있다.)

빌라 로톤다는 늘 그 평면과 단면에서 보이는 이론적 법칙이 중시되는 건축물이지만, 실제로 경험해 보면 그 이상으로 빌라 로톤다가 외부와 맺고 있는 관계가 중요함을 느낄 수 있다. 언덕 위에 위치한 빌라 로톤 다의 네 출입구에서 바라다보이는 외부 풍광은 그야말로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한 풍경이다. 대문으로 연 결되는 꽃길이 보이기도 하고, 광활한 과수원이 보이기도 하니... 이 곳에 사는 이에게 아마 이 빌라는 상대 적으로 그 크기가 아주 크진 않지만 세계의 중심에서 주변의 풍광 모두를 소유한 기분을 만끽하게 해 주었 을 것이다.


(그림 6.7 . 네 방향으로 모두 똑같은 모습을 가진 빌라 로톤다 & 테라스에서 보이는 풍경)

팔라디오의 도시. 비첸차. 비첸차는 작고 아름다운 도시이며, 팔라디오의 도시이다. 이 도시의 시청은 역시 팔라디오가 설계한 바실 리카 건물이며, 그 앞에는 팔라디오의 동상이 서 있다. 도시 안내도에는 팔라디오가 설계한 20여개의 건물 위치가 표시되어 있으며, 이 곳의 관광객 대부분은 팔라디오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다. 걸어서 1시간이면 전 체를 다 둘러볼 수 있을 정도인 이 도시에서 사실 팔라디오는 주인공인 동시에 배경이다. 도심에서 도보로 30여분 떨어진 빌라 로톤다나, 타운홀로 사용되는 바실리카, 르네상스 시대 극장의 전형을 보여주는 올림 피코 극장의 경우 도시의 주인공처럼 두드러지게 나타나지만 나머지 팔라디오의 건축물들은 도시 속에 자 연스레 스며 들어 있어 비첸차라는 도시를 구성하고 있다. 팔라디오의 도시, 비첸차는 피렌체처럼 화려하 지는않지만 균형잡힌 질서를 가진 르네상스 도시의 매력을 보여주는 듯 하다.

(그림 8.9. 팔라디오가 설계한 로지아(왼쪽)과 바실리카(오른쪽)이 있는 비첸차의 중심광. 바실리카는 비첸차의 시청건 물이다. 바실리카 옆에는 팔라디오 동상이 있는 작은 팔라디오 광장이 있다.)


(그림 10.11. 역시 팔라디오가 설계한 Theatro Olimpico 와 Palazzo Chiericati)

빌라 로톤다는 이후 서구 건축의 역사에서 '빌라'의 이상향이 되었다. 세계의 중심에서 주변의 풍광을 만끽 하는 듯한 이 자기완결적인 건축, 20세기 르 꼬르뷔제의 빌라 사보아에도 영향을 준 이 집은 단언컨데 적어 도 서구 세계에서는 가장 완벽한 건축일 것이다.

(그림12. 안녕, 빌라 로톤다. 떠나기 전 마지막 스케치로 각인)






게임 노동 일지

글. 그림. 철민



Chapter 15 {여행}의 생존매뉴얼 별 볼 일 없는 스펙으로

한 달 남짓 캄보디아, 태국, 라오스를 여행했다. 그곳에서의 기록들을 짧게나마 소개해보려 한다. 캄보디아

언어 : 크메르어 면적 : 181,035㎢ 세계 90위 인구 : 약 15,458,332명 세계 68위 기후 : 전형적인 열대몬순기후 종교 : 남방불교 95%, 기타 5%

21 AUG 2014 작은 입자를 머금은 까끌한 흙바람이 볼에 닿자 캄보디아에 온 것이 실감 났다. 오늘 나를 숙소까지 데려다 준 사람에게 갖갖이 감정이 들었다. 나를 도와주려는 걸까? 아니면 친구인척하면서 속이려는 걸까? 그러다 일종의 자책이 밀려왔다. 이러려고 여행 온 것이 아닌데. 지나친 경계와 의심은 여행을 망친다. 그 중간을 찾아야 한다. 마음이 계속 닫히고 일상성을 유지하려는 생각이 싹튼다. 문득, 낮에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다 부딪힐뻔했던 캄보디아 소녀의 미소가 생각났다. 아무것에도 오염되지 않은 것 같던 미소. 물론 이것도 여행자가 만들어낸 이국에 대한 환상일지 모른다. 캄보디아 입국 절차는 길고도 복잡했다. 비자를 발급받기 위해 길게 선 각국의 사람들. 웅성거리는 언어들. 그중 혼혈인 듯한 남자 하나가 유독 눈에 띄었다. 유머가 있어 보였고 영어에 능통했다. 얼핏 듣기로 한쪽 부모가 일본인 같았다. 살짝 엿본 여권에 적힌 나이는 나보다 한참이나 어렸다. 나는 그 남자에게서 막연한 부러움 같은 것을 느꼈다.


남자는 타인과 교감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것은 이성에게 거는 작업같이도, 무례하지도 않았다. 내가 원하던 교감능력이 저런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무심코 들었다. 나와 같은 미니밴을 탄 마르고 화장을 수시로 고치던 러시아 여자, 겨드랑이털 깎은 자국이 분명했던 야성적인 미국 여자. 그리고 그 남자. 모두 무사히 여행을 마쳤으면 좋겠다.

22 AUG 2014 아마 한 달 간의 짧은 여행 중, 오늘이 최고의 날이 아닐까? 게스트하우스에서 바가지를 쓰고 소개받은 툭툭 운전사 다빈. 다빈의 나이는 29, 나와 동갑이었다. 그는 새벽 4:30분에 일어나 툭툭(TukTuk)을 몰아야 하고 하루 종일 매연과 사고의 위험에 노출된 채 살아야 했다. 그럼에도 다빈은 항상 웃었다. 그의 까맣게 탄 피부와 웃을때 마다 보이는 하얀 치아의 대비가 이국에서의 긴장감을 상쇄시켜주었다. 하루 종일 앙코르와트 구석구석을 땀 흘리며 데리고 다녀 준 다빈에게 나는 차가운 아이스크림과 콜라를 대접했다.

툭툭 (TukTuk)

시동을 걸면 툭툭 소리가 난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다빈의 명함에는 [English Speaking driver]라고 쓰여있었다. 영어를 제대로 배운 적이 있느냐고 그에게 묻자마자 내 질문이 얼마나 한심한지 금세 깨닫고 말았다. 하루 종일 상대하는 관광객들과 실랑이 하며 몸으로 배운 영어. 다빈의 영어에는 내가 배운 알량한 문법 지식 대신 무거운 일상이

이 교통수단은 오래전부터 캄보디아 곳곳을 누비고 다닌 전형적인 교통수단. 관광객을 상대로 바가지를 씌우는 경우가 많아 타기 전 목적지를 미리 말하고 요금을 흥정한 후 탑승하는 것이 좋다. 택시보다 저렴한 가격에

녹아있었다. 갑자기 그의 깡마른 뒷모습에 의해 앙코르와트의 절경은 멀찌감치 뒤로 밀려나버렸다. 다빈은 앙코르와트 투어가 끝나고 나를 현지 주민들이 자주 가는 술집에 데려가 주었다. 값싼 안주, 얼큰한 술 냄새가 캄보디아 더운 바람에 실려 코 끝에 와 멈추었다. 술자리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나는 무심코 다빈을 쳐다보았고 그의 시선은 누군가로 향해 있었다.

이용할 수 있어 많은 관광객이 이용한다.

다빈의 시선 끝에는 캄보디아 유명 맥주 브랜드 LEO 유니폼을 입은 어떤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미인이었고 또한 당당해 보였다. 다빈의 이야기로 그녀는 현재 두 명의 아이가 있고, 이혼 한 상태라고 한다. 다빈은 그녀와 2년 전 연인 사이였었다. 하지만 그는 돈을 벌기 위해 말레이시아로 떠나야 했고, 결국 이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날 내가 동참한 자리는 2년 만에 돌아온 다빈이 그녀를 처음 보러 간 자리였다. 간간이 그녀에 대한 소문만 듣던 다빈이 그날 갑자기 용기가 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다빈은 지금도 그녀를 사랑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아이 둘은 감당할 자신이 없다고 했다. 종업원의 합석이 금지된 상태에서 서로의 등을 마주대고 앉은 다빈과 그녀. 그 둘을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바라봤다.


알아들을 수 없는 이국의 언어. 하지만 찌푸리는 표정과 금세 퍼지는 웃음을 통해 그 둘의 마음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둘은 아침 4시에 일어나고 새벽녘까지 술 시중을 든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저임금을 받으며. 몇 천년을 이어온 앙코르와트의 아름다움은, 둘이 등을 마주 대고 앉은 그 짧은 순간에 비할 바 못된다는 생각이 무심코 들었다.

앙코르와트

신에 비유할 만큼 강력한 왕권을 가졌던 앙코르 왕조의

23 AUG 2014 오늘 낮에 한 번 저녁에 한 번 길을 잃었다. 낮에는 앙코르톰을 보고 석양을 보러 앙코르와트로 다시 돌아가려는데 길을 잘못 들었다. 왔던 길을

수리아바르만 2세는 자신의 무덤이면서 ‘수도의 사원’이라는 뜻을 가진 앙코르 와트를 건축. 12세기에 세워진 앙코르 와트는 힌두교에 나타나는 신의 세계를 표현함. 넓은 대지 위에 건물을 쌓고, 주위에는 둥글게 연못을 파 바다를 표현했으며 히말라야의 봉우리를 상징하기 위해 건물 둘레에 벽을 쌓기도 했다. 이런 힌두교 철학에다 불교의 조각 솜씨가 더해져 웅장함과 섬세함이 함께 하는 세계 최대의 종교 유적이 탄생.

한참이나 다시 돌아 도착한 앙코르와트는 이미 노을에 반쯤 검붉어진 상태였다. 노을을 보며 앙코르 맥주와 바나나 한 송이를 다 먹고 나니 갑자기 주위에 어둠이 내렸다. 순간 겁이 덜컥 났다. 지도에 내가 머무는 숙소를 체크해두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그날 나는 마지막으로 길을 잃었고 어둠 속을 열두 시간 넘게 헤맨 끝에야 숙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길을 잃고 만난 6세 가량의 엽서 파는 아이들은 나에게 끝없이 ‘1 달러’를 외쳤다. 앙코르와트가 그려진 키치한 엽서 한 장을 1 달러에 팔기 위해 그 아이들은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거절을 당해왔을 것이다. 거절이 일상화된 삶. 그 순간에도 아이들은 큰 눈을 껌뻑거리며 쉽게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나는 어땠을까. 아마 조금이라도 타인에 의해 거절당했다고 생각되면 그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을 것이다. 내가 거부당한다는 사실, 존재가 부정당한다는 사실은 견디기 힘들다. 하지만 그 아이들은 삶의 조건이 그렇게 주어져 버렸기에 치열하게 삶과 경쟁해야만 했다. 그리고 성장할 것이고, 어쩌면 저항한다는 의미조차 모른 채 어른이 될지도 모른다.

자신의 선택이 아닌 것들에 대해 타인이 좋고 나쁨을 쉬이 이야기하는 것은 애매한 구석이 있다. 나는 선택에 의해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택했고, 매달 월세를 내며, 많은 옷이 있고, 교육을 통해 수준 높은 미의식을 배울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한국에서 태어나 머리색이 까만 남성으로 살아가는 것은 내 선택이 아니다. 이것은 쉽게 가치판단 내릴 수 없다. 그렇다면 아이들을 볼 때 내 눈에 덧씌워진 측은함과 동정심이란 애매함에서 기인한 나약한 필터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아이들이 키치 한 엽서를 들고 내게 다가온다. 1 달러를 바라며 몸서리치게 예쁜 눈을 끔뻑거린다. 이 순간 내가 윤리적으로 도피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아이들의 엽서를 사고(단돈 1 달러에) 지폐만큼의 도덕적 무게감을 덜어 낼 바에는 그들을 외면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역시 잔인하기는 마찬가지다. 나는 아이들이 파는 엽서를 가지고 싶지 않았다. 왜냐하면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면하기 또한 싫었다. 그래서 나는 1 달러를 아이들에게 주고, 엽서를 받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는 나와 함께 사진을 찍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아이는 흔쾌히 승낙 했고, 나와 같이 사진을 찍어주었다. 내가 아이와 찍은 사진을 한국에 있는 친구들에게 보여준다면, 그것은 내가 취할 수 있는 훌륭한 자랑거리가 된다. 즉, 내 욕망에 비로소 충실할 수 있는 것이다. 타인을 위한 선행이란 때때로 해소되지 않는 잉여를 안는다. 선행을 베풀 타인에 대해 먼저 이해 가능한 범주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알려져 있지 않은 혼돈의 존재에게 선행을 베푸는 것은 어렵다. 선행은 커녕 알려져 있지 않는 타인에 대해 꿈꾸는 것조차 우리는 몸서리치게 싫어한다. 기구를 이용해 자위하는 엄마, 겨드랑이털 깎는 여자친구, 야동 보며 침 흘리는 남자친구. 이런 것들은 세상에 엄연히 존재하지만 발견되지 않는 ‘어떤 것’들이다. 아직 발견되지 않았기에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한 것들. 나 또한 이해 가능한 범주 내에서의 멸균된 타인만을 추구해 왔다. 내게 익숙한 더럽고 가난하며 항상 조금은 아픈 제3세계 지역의 아이들을 기대하는 시선들. 하지만 그들에게도 엄연히 일상은 존재했다. 거친 나무로 만들어진 엽서 통을 잠시 한편에 밀어두고 그늘에 앉아 휴식을 취하는 아이의 감은 눈. 거기서 뻗어 나온 기다란 속눈썹. 거기에는 내가 매체를 통해 지겹게 보아온 불쌍한 제3세계 아이의 정형화된 모습 대신 잘생긴 남자 친구 ‘썸낭’ 앞에서 수줍어하고, 물장구치기가 취미인 캄보디아 보통 소녀 ‘로앗’이 있었다.

24 AUG 2014 또 길을 잃었다. KFC에서 간단히 목을 축이고 앙코르와트 쪽으로 가려는데 알고 보니 프롬 펫이었다. 이로써 세 번째 길을 잃고 있다. 그런데 길을 잃고 방황하던 중에 혼자 열심히 그림을 그리고 있는 한 아이를 발견했다. 그녀의 이름은 vattana였다. 괜히 가서 기웃대니까 내 눈치를 봤다. 그래서 용기를 내 그녀의 옆에 앉아 그림 그리는 것을 구경해도 되냐고 물었다. 수줍은 그녀는 고개만 갸웃. 나는 문득 그림 그리는 vattana를 그리고 싶어졌다. 그래서 연필 한 자루를 빌려 그녀를 그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의 이웃이라는 남자가 다가와 그림 그리는 우리 둘을 구경했다. 낯선 땅, 낯선 곳에서 그림으로 맺어진 세 사람. 그곳에서 언어는 더 이상의 효용을 읽고 싹싹거리는 연필 소리만이 공간을 메웠다. 생각보다 그림이 잘 그려지지 않아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데 옆의 남자가 ‘similar’를 외쳤다.


아이는 돈 받는 것을 계속해 사양했지만, 나는 vattana의 그림에 1 달러를 지불했고, 또 내가 그린 그림을 그녀에게 선물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 순간만큼은 타들어 가는 캄보디아 날씨도 잠시 주춤하는 것 같았다. 그토록 찾기 힘들었던 숙소. 그 덕분에 사람들과 맺어진 우연적인 만남. 한때 ‘여행의 목적은 과정에 있다’라는 말을 부정한 적이 있었다. 이것은 너무나 식상한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모욕하고 업신여기고 침을 뱉었다. 이번 여행에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아직까지 단 하나도 없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던, 그렇지만 실감은 못하던 떠도는 의미들이 몸으로 내려앉고 있다. 이것은 활자가 내게 주지 못했던 것들이다. vattana와 나는 아마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확실성의 세계에서 빗겨난 작은 순간들을 나와 아이는 분명 나누었다. 그 순간만큼은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의 바닥에서 반쯤 얼굴 내민 매끈한 돌처럼 오래도록 그 자리를 떠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25 AUG 2014 어느 저명한 평론가는 자신의 저서에서 레디-메이드化 된 자아가 유통되는 세계에서 진정한 경험이란 상실돼 버렸다고 단언했다. 육안으로 확인되기도 전에 카메라 메모리로 바삐 옮겨지는 앙코르와트. 그리고 타인에게 질세라 다른 곳으로 가 뷰 파인더를 갖다 댄다. 하루에도 수십만 명이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고 원본보다 더한 아름다움을 지닌 사본들이 각자의 컴퓨터에 저장된다. 이윽고 유적은 터져대는 플래시에 의해 아우라를 잃고 나풀대는 허상만 남는다. 그리고 유적은 용도에 맞게 트리밍되어 풍성했던 여행을 기리는 텍스트의 정보로서 기능할 것이다. 번쩍임을 피해 나는 앙코르와트 뒤편의 버려진 듯한 유적에 들어가 잠깐동안 잠들었었다. 작은 유적이 만들어내는 음영과 깨진 부분을 통해 스며드는 바람. 그것은 카메라를 들이대고 싶은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앙코르와트의 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찬사를 보내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았다. 오히려 계보학적으로 접근해 탑 하나를 짓기 위해 희생되었을 수많은 익명의 노동자들에 대한 인포그래픽을 제작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 순간 앙코르와트 앞을 흐르는 강가에서 물장구치는 새까만 아이들이 내 눈으로 뛰어들었다. 해 질 녘 흙빛 강에서 몸을 씻는 아이들과 뒤편에 조용히 잠들어 있는 앙코르와트. 그것의 위대함은 박제된 채 플래시 세례를 받을 때보다 일상과 공명할 때 더 빛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우라

예술 작품에서, 흉내 낼 수 없는 고고한 분위기. 독일의 철학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의 예술 이론에서 나온 말이다.

그때의 유적은 일종의 종교적 성화와 닮아있었다. 유적에 대한 숭배의 울타리를 걷어내고 난 자리에 가득 들어찬 일상의 투박함. 터지는 셔터에 의해 나풀대던 앙코르와트의 아우라는 그 투박한 지점에 닻을 내리고 조용히 정박해 옷차림이 가벼운 여행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27 AUG 2014 다시 국경을 넘어 태국의 치앙마이에 도착했다. 12시간의 긴 길 끝에서 나를 맞이한 것은 끝없이 쏟아지던 장대비다. 나는 비를 피해 아침 식사가 가능한 가게에 들어왔다. 이국에서 맞이하는 아침 식사는 풍요롭다. 90밧, 한화로 채 3,000원 남짓한 돈으로 먹을 수 있는 싱싱한 과일과 부드러운 빵, 그리고 따뜻한 홍차.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니 모자가 없다. 모자를 두고 내렸다. 지금까지 비와 태양에서 나를 지켜주던 귀중한 모자였는데.


50만 원을 도둑맞았다. 만감이 교차하고 여행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시 화장실 간 사이 도둑이 내 가방에서 돈을 빼내 간 것 같다. 하지만 이상한 것이 있다. 분명 내 가방에는 한화로 80만 원 정도 되는 태국 돈과 여권 그리고 신용카드가 있었는데 거기서 딱 50만 원만 빼내간 것이다. 여행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 내지는 연민일까. 아니면 진짜 살려는 주신 걸까. 여행에서 하는 하나의 선택은 여러 가지 항로를 만든다. 나는 갑자기 방콕에서 치앙마이로 떠나기 전 시암 역에 있는 씨티은행으로(수수료를 줄이기 위해) 가서 돈을 뽑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을 뽑아 택시를 타고 돌아오는데 방콕의 러시아워 시간을 계산하지 못 했다. 거기다 택시기사는 돈을 더 주면 제시간에 가주겠다고 끝없이 나를 농락해댔다. 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결국 치앙마이행 버스 시간을 맞추지 못해 20분이나 늦어버렸다. 나는 가까스로 화를 삭혔다. 그리고 택시기사에게 1000밧을 내밀며 거스름돈을 요구하자 기사는 거스름돈이 없다며 그 돈 전부를 요구했다. 나는 화가 머리끝까지 올라 주머니 속에 가지고 있던 동전 몇 개를 기사 옆좌석에 집어던지고 나와 버렸다. 그리고 혹시나 하고 가 본 버스정류장에는 치앙마이행 버스가 아직 나를 기다리고 있었고 결국 아무것도 손해 본 것이 없게 되었다. 그런데 그 안에서 50만 원을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를 힐난하며 계속해서 50만 원에 대한 미련을 품고 있어야 할까? 완전 송두리째 없어져 버릴 수도 있었다. 여권과 카드까지도. 근데 그것들과 30만 원을 남겨 주었다. 더 이상 아까워하지 말자. 내가 그나마 손해를 덜 볼 수 있는 길은 여기서 생각을 접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자. 지금처럼 돈을 썼다가는 여행을 마무리하지 못한다. 그리고 남아있는 것들에 감사하자. 여행의 매 순간들은 그 순간의 옳고 그름에서 끝나지 않고 다음 상황과의 연계에 의해 언제든 전복될 수 있다. 그것은 내가 예측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그래도 아까운 것은 아까운 것이다. 50만 원. 그것은 내가 얼만큼의 노동을 해야 벌 수 있는 돈인가. 뭔가 잘 안 풀리고 있다. 집에 돌아와보니 햇볕에 말리려고 둔 탐스슈즈 한 짝은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50만 원은 사라졌다. 국제적인 호구가 되어가고 있다. 또 출발하기 전에는 비행기 표를 태국 대신 타이베이로 예약을 했었다. 그리고 취소 수수료를 물었다. 나라는 인간에 대한 신뢰가 점점 옅어져 간다. 술을 마셔도 자괴감이 가시질 않는다. 나는 그냥 병신이고 50만 원을 도둑맞았다. 변명이나 철학적 사변을 덧붙일 것도 없다. 그냥 그렇게 되어 버린 것이다. 씨발.

28 AUG 2014 나는 아침이 되자마자 지붕 위로 내려가 바람에 날아간 탐즈슈즈 한 짝을 주워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인터넷을 통해 만약 휴대폰을 분실하면 얼만큼의 보상(여행자 보험)을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보았다. 속으로 ‘핸드폰 바꿀 때 됐으니까’, ‘핸드폰 바꿀 때 됐으니까’를 주문처럼 외웠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에 대해 스스로 계속 반문해 보았으나 너무 억울해서 안되겠다. 방콕의 카오산 로드에 있는 경찰서에 가서 폴리스 레포트를 거짓말로 작성해야겠다. 핸드폰을 도둑맞았다고! 그래 그렇게 하자. 잃은 셈 치자나 인생 경험이라는 말은 모두 헛소리에 불과하다. 모두 배부른 소리인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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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돔

불타오르는 건물 앞에서 울부짖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소방차와 구급차, 모여든 인파들로 어수선한 사건 현장을 지켜보다 그는 불현 듯 그녀가 보고 싶어졌다. TV를 끄고 슬그머니 침대에서 나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침대 위에 잠들어 있던 여자가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손에 가슴 감촉이 되살아났다. 그는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밖으로 나왔다.

새벽녘의 모텔가는 한산했다. 그는 핸드폰 전원을 켰다. ‘언제 와?’ 그녀의 문자.

보낸 시각 2시 32분. 현재 시각 4시 45분. 그는 답장 대신 웹브라우저를 켜고 ‘테러’를 검색했다. 새해 첫 날, 이집트의 한 교회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해 21명이 목숨을 잃고 80 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는 뉴스. 끔찍한 일이었다.

끔찍한 일. 끔찍한, 일. 끔, 찍, 한, 일. 그는 핸드폰을 쥐고 타이핑을 시작했다. ‘

이제 4차 가는 ㅈ’ 삭제. ‘이제 다 먹고 가려ㄱ’ 삭제. ‘아직 안자나? 금방 갈ㄱ’ 삭제. ‘ 사실 다른 여자랑’ 삭제. 그는 지금 당장 그녀를 안고 싶었다. 키스를 하고 가슴을 만지고, 머리와 등을 쓰다듬고, 허벅지 살을 움켜쥐고…… 그리고 그녀 곁에서 잠들고 싶었다. 꿈도 꾸지 않을 만큼 깊은 잠을 자고 싶었다. 그런데 손에는 조금 전까지 함께 있던 여자의 감촉이 살아있었다. 그러고 보니 콘돔을 썼던가? 그는 다시 손을 쥐었다 폈다.

콘돔보다도 집에 있는 그녀가 걱정이었다. 그대로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술 마시러 나와서 새벽녘에 들어가는데 하나도 안 취했다? 의심 받기 딱 좋을 것이다. 그는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과 소주 한 병을 사들고 나와 파라솔에 앉았다. 맥주를 따서 한 모금 마시고 소주를 병째 들고 마셨다. 구역질이 났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평소 같았으면 잠이 왔을 텐데 잠이 오질 않았다. 물론 그가 늦어 걱정이 되는 것도 있었지만 그것과는 다른 느낌이 있었다. 그녀는 그가 다른 여자와 자고 오는 것이 아닐까, 의심이 되기 시작했다. 연락을 한 번 할 법도 한데 깜깜무소식이었고, 결혼한 뒤로 이렇게 늦은 시각까지 들어오지 않는 건 처음이었다. 그녀는 다시 한 번 문자를 보내볼까 하다가 말았다.

노트북을 끄고 TV를 켰다. 불타오르는 건물 앞에서 울부짖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이집트에서 일어난 폭탄 테러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그녀는 테러를 계획한 이들을 떠올렸다. 그들의 믿음이 수많은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잘못된 일이지만 그들에게는 옳은 일이었을 것이다. 믿음을 위한 행동이었을 테니까. 그녀는 그날의 섹스가 자신의 믿음 때문이었는지 떠올려보았다. 그건 아니었던 것 같았다.


결혼을 앞둔 어느 날. 그녀는 전 남자친구에게 연락을 했다. 만나고 싶었다.

처음부터 섹스를 할 생각은 아니었다. 하지만 술이 한 잔 두 잔 들어가기 시작하자 잊고 있던 익숙함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섹스를 하고 있었다. 위에서 움직이던 전 남자친구의 표정과 호흡, 허벅지 안쪽을 스치던 그의 다리, 툭 튀어나온 그의 날개뼈.

그녀는 생생하게 떠오르는 장면을 머릿속에서 지우려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다음 장면이 이어서 떠올랐다.

섹스가 끝난 뒤 전 남자친구는 금세 코를 골며 잠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잠이

오지 않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익숙함을 느끼던 남자가 무척이나 낯설게 느껴졌다. 곧 결혼하게 될 그의 품이 떠올랐다. 이튿날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겼다. 전 남자친구와의 섹스가 떠올라 괴로웠지만 한편으로는 전보다 훨씬 더 그의 모습이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섹스가 끝난 뒤에 그의 곁에서 눈을 감고 그녀는 생각했다. 자신의 남편이 될 그와의 섹스가, 아니, 섹스가 끝난 뒤 그의 곁에서 잠드는 이 순간이 정말 행복하다고. 앞으로도 영원히 그의 곁에서 잠들고 싶다고.

TV를 멍하니 바라보다 그녀는 불현 듯 그가 다른 여자와 섹스를 하고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 역시 그녀가 그러했듯 타인과의 섹스를 통해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될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이 믿음이 잘못된 것일지 모르지만 그와 그녀에게는 옳은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꾸만 뻗어나가는 생각을 끊기 위해 주방으로 들어가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그가 현관문을 열자, 라면 냄새가 풍겼다.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환하게 웃어보였다. 그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 침대 위에 누웠다.

“라면 먹을래?”

그녀의 물음에 그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은 채 고개를 가로저었다.

“새해. 첫, 날부터. 이집트에, 서. 폭탄. 테러가. 났대.”

취한 그가 중얼거렸다. 그녀는 냄비를 들고 와 곁에 앉았다.

“그랬다더라.”

“사람, 이. 엄, 청, 나, 게. 죽었, 대.”

“응.”

그녀가 라면을 먹으며 답했다.

“사랑, 해.”

그의 말에 그녀는 대답 대신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평화

바다비 일요 시극장 2014.10.26 http://cafe.daum.net/badabie


얼마전이었다 집에서 뒹굴뒹굴하다가 재밌는게 없다싶어 TV채 널을 돌리다 멈춘 프로그램이 있었다 그 프로그램은 ‘진짜사 나이’ 연예인들의 병영체험이야기... 그걸보다보니 필자의 화려했던 군생활이 새록새록 생각났다 축 구,제설작업,갖가지 훈련....간첩을 잡지않고선 받기힘든 49박50 일의 휴가(포상휴가+포상휴가+정기휴가+포상휴가+말년휴 가)게다가 이프로그램에 특집으로 여군들도 나오고 TV를 그닥 잘보지않는 나를 2시간가까이 꼼짝 못하게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을 보다보니 과거 나의 추억속의 여인이 갑자기 생 각이 났다 1996~1997년쯤이 었을까? 집에서 아버지와 저녁식 사를 하던 도중 아버지는 나에게 여자친구가 없냐고 물어보시 더니 대뜸 소개시켜줄까라고 물어보셨다 20대의 싱싱한 청춘이 애인이 없다고 해서 아버지에게 소개를 받는건 좀 모양새가 빠 지는 것같아 망설여졌다 게다가 어른들이 보는 눈이랑 젊은 사 람이 보는눈이 엄연히 다르다는것을 알기에 아버지가 얘기하시 는 참한 아가씨라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않았다. 상대는 아버지 친구분의 딸 20살 초반에 선을 보는 느낌이라 주 저주저하고 그날은 어물쩡 넘어갔다 확실히 거절을 하지않아서 였을까 그 다음주 아버지로부터 날라온 지령 모월모일 모시모 분에 모모 커피샵으로.... 아버지는 일찍 손주를 보고 싶으셨을까?일사천리로 일을 진행 하셨던 것이었다 아버지의 지령을 받은 나는 모모커피샵으로 간다 거기서 만난 모모양을 만난순간 정신이 혼미해졌다 어른 눈이고 젊은사람 눈이고 간에 남자눈은 똑같다라는 결론 모모 양은 나를 만난다고 방금 막 우유로 샤워를 하고 온거같은 새하 얗고 뽀사시한 얼굴에 초롱,영롱,사슴눈망울에 그당시를 대표 하는 미녀배우 고현정 고소영 채시라등등의 장점만을 고스란히 담아논듯한 모습이었다.

부 산 오 뎅 이 야 기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수줍수줍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모모양과 나는 커피샵을 나와 술을 마시러간다 1차2차로 이 어지는 술 홍조를 띈 그녀의 업그레이드버젼의 모습 하하호 호 이어지는 술자리도 첫만남치곤 꽤 오래 이어졌다 어느정 도 마시고 났을까 그녀의 집에서 호출(삐삐)이왔다. 집에서 이 제 그만 들어오라고 했다는 그녀...나는 그녀를 집으로 데려다 주기로한다. @odeng2004 그녀가 집에 다와갈때쯤이였을까? 그녀는 나에게 딱 한잔만 더하실래요라며 물었다 속으론 완전 콜(X200)을 외쳤지만 집에서 연락왔는데 괜찮으시겠어요?라 며 매너남 모드로 일시변경후 그녀의 집앞 치킨집에서 3차를 마신다. 술자리가 끝난후 그녀의 집앞에 도착한 나는 다음을 기약하고 작별인사를 한후 뒤돌아서는 찰나 잠깐만요!!!라는 그녀...그녀는 집으로 후다닥 들어갔다 나오더니 나에게 그녀 자신의 증명사진을 건넨다 첫만남에 술을 3차를 마시고 그녀 가 나에게 사진까지...이건 무조건 그린라이트다라는 생각을 나 뿐만 아니라 독자들도 그렇게 느끼지 않는가? 그렇게 누가보 나 그린라이트를 받은 나는 우리 애인사진(?)을 꼬옥 품에 안 고 잠이 든다 그담날 삐삐를 친다 근데 그녀는 연락이 없었다. 그담날도 삐삐를 친다 그담날도 그담날도....며칠을 연락해도 답장이 없는 그녀 급기야 아버지께 자초지종을 설명한다. 그 러자 아버지도 인정하신다 그거 그린라이튼데 희안하네 그러 시면서 아버지는 아버지 친구분에게 전화를 한다 장시간의 통 화후 아버지는 나에게 날벼락같은 소식을 전해주신다. 그것은 바로 그녀의 입대소식이였다. 그녀는 군대를 가는데 왜 나에게 사진을 주었을까? 군대 갔다올때까지 기다리란 말이였을까? 수년전 아버지께 들은 바로는 그녀는 군대에서 장교랑 결혼을 해서 애낳고 잘살고 있단다. 그때 사진주신 마녀김상사님 잘살 고 계시죠~~충성!!!

그린라이트


국가란 무엇일까? (10회)

오늘은 이승환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이것으로 인해 나이가 드러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글은 써야 하니까. 하아... 내가 음악을 처음 듣게 된 계기는 학업을 제외하고는 오직 이승환 때문이었다. 친구가 워크맨으로 나에게 이승환 4집을 들려줬었고, TV에 나오는 타이틀 곡 이외에 다른 곡들이 좋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닫게 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 충격이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오래지 않아 나도 워크맨을 구입했었고 거의 반년을 주구장창 이승환의 음반 만을 들었었다. 그리고 용돈을 모아 새로운 앨범을 사면서 테잎 하나로 6개월은 들을 수 있겠다고 자신하기도 했었다. 요즘에야 음반 하나를 세 번 듣는 일도 흔치 않다. 어라 이러고 보니 좀 삶이 전보다 불행해 진 것 같다. 처음에는 슬슬 음악을 듣는 수준에 머무르다가 나중에는 온라인 팬클럽 활동을 하고 콘서트를 찾아갈 정도로 팬이 되었다. 그러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다른 사람들의 음악을 들으면서 ‘이승환 따위야.’ 의 마음가짐을 힌 버릇없는 시크남으로 돌아섰다가 십년정도가(!?) 지나고 최근 다시 팬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팬이라는 것은 원래 갈대와 같이 오락가락한 것아닌가 당시와 지금의 나를 되돌아 보면 살면서 누구나 누군가의 팬이 될 수 있는 것 같다. 어느 순간 그냥 좋아지는 것이니 그걸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연애의 감정과는 다르다. 상대에 대해서 감동을 받거나 황홀함을 느끼지만 기능적이고 도구적인 부분에서 설레임을 준다. 팬의 감정 상태의 수순을 나를 기준으로 설명하자면 처음에는 그냥 좋은 단계 ‘와 이승환 짱짱맨!’ 그 다음으로는 ‘어라? 내가 이 사람의 팬을 왜하고 있지?’ 하는 의문단계 그리고 다시 찾아오는 ‘역시’의 단계 가 있다. ‘역시 내가 팬질을 할 만 했어!’ 가 될 수도 있고 ‘역시, 그때의 치기였나?’ 하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올해의 이승환은 엄지를 치켜세울 만하다. 과거 가슴 설레던 시절이 전혀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훌륭한 앨범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무관심 할 정도로 들여다보지 않았으면서 이렇게 말하는 것도 우습지만 그간, 과거 나름 팬이었던 내가 느끼기에 이승환은 하향세를 그려왔었다. 내가 변한 것인지 가수가 변한 것인지 노래도 어쩐지 전보다 별로인 듯 했었고 전처럼 히트도 치지 못하고 어쩐지 과거의 영광에 기대어 살고 있는 것 같은 그런 인상이었다.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사업도 잘 되지 않았고 .. 여러 가지로 시장 상황도 그에게 유리하게 흘러가지 않았다. 그렇게 하향세라고 볼 수밖에 없는 시기를 지나고 ‘그래, 나도. 그도. 다 늙어가는 구나.’ 할 즈음에 새 앨범이 나온 것이다. 그런데 이게 단순히 노래가 좋다 정도라면 이런 글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정도의 감상 “이번 앨범 듣기에 나쁘지 않네, 혹은 좋네” 정도는 이미 전작에서 충분히 느꼈기 때문에, 오히려 새 앨범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그 정도의 앨범이겠거니 했었고, 첫 인상도 귀에 딱 끌리는 곡은 없다는 정도였다. 하지만 가만히 듣고 있자니 음반이 담고 있는 사운드의 완성도가 혀를 내두르는 수준이다. 스스로 방망이를 다 깎은 노인이 된 것이다. 한동안 등을 돌려놓고도 문득, 팬이었다는 게 자랑스러워진다. 이쯤이면 슬슬 왜 국가란


무엇인가 이야기를 하면서 이승환 이야기를 하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나는 꾸준하게 노력해온 그 자세를 이야기 하고싶다. 아무도 음반은 안사고, 음악은 다 MP3로 듣는 시대에 혼자서 기껏 벌어놓은 돈을 ‘잔뜩’ 깎아먹으면서 이와 같은 높은 완성도의 음반을 내놓는 다는 것은 무척 놀라운 일이다. 사실 기이하기까지 하다. 그 돈을 움켜쥐고 앉아서 아껴 쓰면서 슬슬 음악을 만든다고 해도 아마 사람들은 크게 뭐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승환은 공을 들여 음반을 만들었다. 누군가의 관심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게 자신의 목표이고 가치관이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물론 이승환이 직업으로 음악을 하고 있기 때문에 그 완성도를 추구한다고 말 할 수도 있다. 다른 분야에서도 직업으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은 높은 완성도를 추구하기 때문에, 하지만 그런 사람들을 포함해서 생각을 해보면 ‘완성도’라는 것은 결코 직업의 한 부분이 아니다. 시장의 요구치를 넘어서고 나면 그것은 순전히 개인의 목표이고 실제로 완성도를 추구하는 개개인이 하는 것보다 덜 애를 써도 결과물은 나올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음악이 나오기도 하고, 이는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그의 음반을 더욱 애써 칭찬해 주고 싶다. 그의 목표와 가치관을 높이 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여기저기 떠들고 싶은 것이다. 이것을 음악이 아니라 정치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과거처럼 나는 민주화는 꼭 이뤄야겠다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될 수도 있고 최근처럼 나는 최저임금은 올려야겠다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될 수도 있고 군인권을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누군가가 될 수도 있다.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망하는 것도 아닌데 애정을 갖고 노력을 하는 가치관과 제도들. 보통 사회의 수준이란 서로가 암묵적으로 합의 된 정도를 바탕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활동가 개인의 목표치에 부족할 뿐이지 상황 자체가 완전히 0인 경우는 드물다. 최저임금이 많이 낮을 뿐이지 제도가 없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각자는 높은 목표를 갖고 그 다음 그 다음을 이야기 한다. 그들이 고민하는 문제들은 대부분 가치관이기 때문에 음반이나 영화 등과 같은 상품들처럼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꾸준히 노력하고 애를 쓴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들의 가치관을 높이 사고 널리 이야기 하는 일 정도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목표로 하는 미래에 마음 설레어 하고 누군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하고 함께 지지하기를 호소하는 정도는 우리가 할 수도 있고 해 줘야 하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오래된 팬심을 꺼내서 호들갑 떠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좀 더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자신의 여가 활동이나 오락을 즐길 수 있는, 좋은 것을 맛보고 여유있게 살 수 있는 돈 이런 게 아니라 멋진 것을 보면 시기하기보다 칭찬하고 널리 알리는 여유 말이다. 그것이 음악이어도 좋고 영화여도 좋고 어떤 가치관이어도 좋다. 우리 진짜 대인배가 되자. 후지다고 백번 욕하다가도 정말 좋다고 생각하면 사과하고 칭찬하는 그런 어른이 되자.

글. exxx


그림. 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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