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이리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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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이리

2014년 12월 48호


순서 입니다. 비밀 동툰 / 글. 그림. beamil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 글. 사진. 아홉시 영화로 읽는 시공간 - 극장에서 우는 것이란 / 글. 곡주대비 한국영화 돌려 깎기 - 북촌방향 / 글. 최지원, 곡주대비, exxx 팟캐스트 ‘이리오너라’ 광고 기록에 대한 기록 - 사랑을 기록하지 않기, 기록을 들춰보지 않기 / 글. 박이현 여기 문학이 필요한시간 - 작자미상 「청산별곡」 / 글. 고수진 작곡가 B의 노트 - 음대, 내가 바뀌었던 곳 / 글. Composer B 놀고 먹고 그리고 / 그림. 김혜리 송창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 BEST 3 / 글. 박재현 idology’s pick - 11월 중순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소개소 / 글. 신당동 파르한 낭만 스파이 - adieu 2014 / 글. 사진. 낭만스파이 건축이 좋아 - ‘집’ 이야기 / 사진. 글. aoikasa 게임 노동 일지 / 그림. 글. 철민 물질과 비물질 - 맥주병 / 사진. 황은정 글. 김종소리 바다비 일요 시극장 광고 부산오뎅 이야기 - 그까이꺼 뭐 대충 / 글. 사진. odeng 국가란 무엇일까? - 12회 / 글. exxx


어떻게 지내십니까? 별탈 없으셨으면 좋겠습니다. 12월에는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옷을 두껍게 입고 고 칼로리 음식을 먹으면서 배부르고 따뜻하게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발간이 4년이 되었습니다. 그간 월간이리를 만들면서 많은 갈등과 나태함, 반성과 연민을 다 거치고 나니 4년이 지났습니다. 책 때문은 아니지만 흰머리도 늘었습니 다. 그래도 추억이나 자부심은 남아서 월간 이리 라는 단어를 떠올릴때는 씁쓸함 보다는 웃음이 납니다. 작업이든 사랑이든 요리든 인사든 할 수 있는 것은 하시고 웃음을 남기셨으면 좋 겠습니다. 그간 소홀했다는 인사가 오늘의 다짐으로 개선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2015년 에도 함께 하겠습니다. 실컷 마시고 고통스러워 하시길 바라며.. 이만 물러갑니다. ps: 저의 두번째 싱글은 12월 18일에 나옵니다. 하하하 월간이리 연재문의 는 exxx2x@gmail.com 이나 @postyri 로 문의주시면 됩니다. 강력한 독촉의 맛! 보장합니다.

편집: 이훈보 표지: 이주용 주관: 프로젝트 이리 지원: 서울특별시, 서울마을미디어지원센터

공식트위터 @postyri


비 밀 동물툰 Animal Toon by BEAMIL

고양이 감기 : 허피스 (herpes) 면역력이 떨어진 환절기에 길고양이들에게서 자주 발견되는 바이러스로 눈꼽이 끼고 콧물과 침을 흘리는 증상을 보인다. 이 시기에는 치료가 어렵고 밥도 전혀 먹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기도 하며, 예방이 가장 중요하다.

* 비오는 합정동에서 허피스에 걸린 길고양이를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그 녀석을 만나기 전까지는 못 느꼈지만)나름 건강한 길고양이들 만 만나왔던 저는 그때만 해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그 자리에 서서 발만 동동 굴렀었죠. 마음을 추스리고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이런저런 방도가 떠올랐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하지만 동물보호협회라는 곳들은 생각보다 여유롭 지 못했고, 길고양이를 거둬서 무상치료 해주기로 유명한 동물병원도 냉정하기는 마찬가지였어요. 그래서 결국 근처 동물병원에서 허피스 에 좋다는 약을 사다가(집 고양이들의 허피스 예방약으로 쓰이기도 합니다.) 밥에 몇 번 섞어주고 그저 응원하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습니 다. 그 이후로는 이사를 하면서 저도 그 녀석을 잊어갔죠. 무척이나 심했어서 지금쯤 살아있을 지는 모르겠어요. 그런데 얼마전 일본여행에서 똑같은 증상을 보이는 길고양이를 만났습니다. 합정동의 그 녀석과 똑같은 자세로 앉아 눈을 거의 뜨지 못하 고, 콧물과 침으로 범벅이 된 얼굴이었죠. 그런데 가장 크게 다른 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봤던 그 녀석은 차 밑의 가장자리에 숨어 있었고, 일본에서 봤던 녀석은 보란듯이 공원 한 가운데에서 햇빛을 쬐고 있었다는 것. 가장 어두운 곳에 숨어 “지금 나는 아프니까 누구의 방해도 받고싶지 않아”라고 하는 듯 보였던 한국의 고양이와 그리고 “지금 내가 좀 아파. 그런데 나는 가족이 없으니까 당신이 좀 도와주겠어?”라고 하는 듯 보였던 일본의 고양이. 어찌됐건 둘 다 아픈 고양이라서 안쓰러운 건 똑같았지만 왠지 모르게 일본에서 본 고양이는 누군가 도와주리라는 확신이 있었어요. 저는 일본어도 잘 못 하기 때문에 도와줄 수 없었기도 했고요. 같이 간 일행이 말했습니다. “누구든 도와줄거야. 다들 저 고양이를 의식하고 있는 듯 보여.”

* 2014년에는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나름 위트있게, 뜨끔하게 쓰고 그린 짧은 만화를 기고합니다. 팩트를 뒷받침하는 기사와 간단한 의견도 함께입니다. 많이 공감해주세요. 제보도 감사합니다. twitter@ / _beamilie


일본은 고양이를 좋아해 ‘영물(靈物)’이라고 해서 비교적 부정적 시각도 존재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에서는 고양이가 ‘복(福)’을 가져다준다 하여 귀하고 친근한 동물로 생각한다고 합니다. 때문에 고양이는 일본 만화에 가장 빈번하게 등장하는 동물입니다. ‘고양이의 보은’ 등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일본 애니메이션도 많습니다. 일본에서 개발된 캐릭터 ‘헬로 키티’도 그렇고요. 유명호텔이나 관광지의 백화점 등, 곳곳에서 고양이 석상과 인형등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고양이가 복을 상징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옛날에 일본의 한 절에서 고양이를 키웠는데 그곳을 지나던 성주가 더위를 피해 나무밑에 있다가 절 앞에 있는 고양이가 자기를 손짓하면서 부르더랍니다. 고양이가 털 관리를 하는 행동을 자신을 부르는 것으로 착각한 것이죠. 그 행동을 자신을 부르는 것으로 알고 나무 밑에서 벗어나자 마자 벼락이 나무에 떨어졌다고 하는 내용인데요. 그로 인해 목숨을 구한 성주는 가난한 절이 성주의 조상을 모시는 절이 되어 살림이 풍족해졌다고 합니다. 그 설화로 인해서 고양이가 복을 가져다 주는 동물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게마다 고양이 상을 세워 두는 것이 많다고 하네요.’ ‘1908년 키타 사토 시바타부로 의사는 페스트 근절을 위해 한집에 고양이 한마리씩을 키우는 정책을 추진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감염원을 끊는 성과를 가져왔습니다. 과거에는 곡식을 축내는 쥐를 잡아 부를 의미했고, 근대에는 페스트 근절을 하게 해준것을 보면, 이런 환경이 개보 다 고양이를 더 좋아하게 되는데 일조하지 않았나 개인적으로 생각해 봅니다.’ ‘‘고양이가 얼굴을 씻는 모습’ 에서 고양이를 좋아하게 됐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고양이가 자신의 손으로 얼굴을 씻는 청결한 동물 이라는 사실은 많이들 알고 계실텐데요^^ 유럽에서는 ‘고양이가 창가에서 화장을 하면(얼굴을 씻으면) 기다리던 사람이 온다’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에도 ‘고양이가 세수를 하면 손님이 온다’ 라는 속담이 있죠. 손님이 오거나, 비가 오는 것은 환경의 변화를 가리킵니 다. 고양이는 환경의 변화게 굉장히 민감한 동물이기 때문에, 사람이 가까이 오거나 저기압이 접근하면(비가 올 것 같으면) 불안과 동요를 느 껴, 그 스트레스로 인해 전이행동을 일으킵니다. 얼굴을 씻는 것도 바로 그 전이행동의 하나인 것이예요.’

*

일본의 1위택배회사인 야마토운수의 쿠로네코 택배차입니다. 어미고양이가 아기고양이를 물고가는 모습의 로고 인상적이예요.

세계 최대 규모로 지어진다는 IKEA 광명점의 오픈이 얼마 남지 않았죠.

어미고양이가 자기새끼를 다루듯이 고객의 상품을 소중히 다루겠다는

그동안 Fancy, Tumblr 등에서만 보던 고양이 침대를 그 곳에서도

의미가 담긴 로고라고 합니다.

만날 수 있다고 해요.

광고 속 쿠로네코도 참 인상적입니다.

늘 하는 말이지만, 우리도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개에게 위협을 당하고, 물에 빠지고,높은 곳에서 다른 높은 곳으로 뛰어

내가 돈이 많은 사람이라면, 한국의 길고양이들을 다 내 전용기에 태워

오르고. 고양이의 모습 그대로인 쿠로네코 택배차가 많은 역경에도 불구

일본으로 운반하고 싶다는 유치찬란한 생각은 바뀌려면 멀었다는 생각

하고 상품은 안전하게 고객의 집까지 배송하거든요.

은 들지만요. 제 꿈은 아마 일본에서도 반기지 않을 것 같네요. 하하

이번 일본여행에서 심심치않게 마주친 쿠로네코 야마토의 로고와 색채 들은, 저를 내내 기분좋게 해주었답니다.

날씨가 본격적으로 추워지는데, 많은 길고양이들이 다음 해 봄을 맞이

이 택배회사를 처음 기획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정말 궁금해져요.

할 수 있길 바라요.




영화로 보는 시공간 : 극장에서 우는 것 이란: 시네마 천국, 그리고 카트.

억만 년 전 이야기를 좀 해야 한다. 초등학교 때였나, 혹은 조금 더 이전 이었을까. 시네마 천국이란 영 화가 극장에 걸렸고, 난생 처음 극장이란 곳을 경험했다. 영화 말미에서 주인공 살바토레가 훗날 유명 영화감독이 되어 유년기의 그를 영화라는 세계에 입문 시키고 우정과 사랑 이상의 많은 것들을 나눈 영사기사, 토토 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찾는다. 그가 떠나 버린 극장에서 살바토레는 토토가 유품으로 남긴 필름 하나를 틀어보게 되는데, 낡은 의자에 걸터 앉아 필름 – 이라기 보다 토토가 영사기사로 일 할때 신부님의 검열로 인해 잘려나간 키스신과 각종 러브신들의 모음 – 을 보는 살바토레가 씬 몇 개 를 넘기지 못하고 오열하기 시작한다. 살바토레가 느꼈을 인생의 회한과 그리움을 이해 했던 것일까.. 6-7살의 어린 나는. 고작 흑백영화 키 스 신들의 나열, 그리고 그것들을 바라보며 통곡하는 살바토레를 보고, 난 10년도 안된 짧은 평생에 가 장 많은 눈물을 쏟았다. 지금 생각해도 왜 그렇게 서럽게…곡 하듯 울었는지 모르겠다. 눈물이 몇 방울 이 흐느낌으로 전이 되고, 이내 나는 화장실로 대피 해야 했다. 그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정확히 기억하 여 서술 할 수는 없지만, 확실 한 것은… 단지 영화 안의 이야기가 너무 슬퍼서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가 난한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며 아버지 없는 살바토레가 토토 할아버지를 쫓아다니며 외로움을 닦아내 는 것이.. 너무나도 비슷했다. 외할아버지에 집착 할 수 밖에 없었던 나와.


그리고 이십 몇 년이 지나 얼마 전 개봉한 ‘카트’ 라는 영화를 보며 기록 할 만한 ‘곡’ 한 번을 쏟아냈 다. 우선, 좋은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배우들 연기 (염정아, 도경수는 뛰어나다) 를 봐도, 영화가 강요 없이 메시지를 전달 하는 방식, 뭐하나 안 좋지 않을게 없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카트는 특이한 영 화는 아니다. 다시 말해 그렇게 곡을 할 정도로 감동적이거나, 몇 세기 동안 남을 엄청난 걸작은 아니 라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무엇이 또 그렇게 서러워 또 콩나무 시루 같은 영화관 사이에 끼어 대성 통곡을 했어야만 했 을까. 영화는 고등학생 아들과 초등학생 딸을 둔 싱글맘의 이야기다. 넉넉치 않은 생계를 꾸리기 위해 엄마 는 마트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는데 곧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한 껏 들떠 있 던 와중, 얼마 지나지 않아 마트로 부터 비정규직을 포함한 모든 직원들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정리해 고가 있을것이라는 통보를 받는다. 이러한 통보는 정규직 전환을 앞둔 그녀에게도 적용되는 것이었고 그녀는 자의반 타의반으로 노조에 가입하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어쩌면 다소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가는데, 각자 사연도 많고 여유도 없지만 마음 좋은 사람들이 의기투합하여 힘겨운 싸움을 하루하루 견뎌낸다는 뭐 그런 레파토리다. 내가 울었던 대목이 딱히 어떤 부분은 아니다. 노조원들이 용역 깡패들에게 끌려가던 장면도 아니고, 어려운 노조원을 위해 설거지해서 번 돈을 보태주는 장면도 아니다. 다만, 어느 시점부터 가슴이 뛰고, 울컥하기 시작했는데, 일련의 비슷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들과 다큐멘터리를 떠올리면서 (두 개 의 문, 또 하나의 약속, 부러진 화살 등), 그 많은 무고한 사람들의 땀과 피가 스크린 안에서든 밖에서 든 그들이 받아 마땅한 결실로 맺어진 경우를 떠올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시네마 천국을 보았을 때 그렇게 곡을 했던 것은 다소 로맨틱 하고 희망적인 울음이 었다. 성공한 영화감독으로 돌아온 살바토레에 대한 대견함과 감동에 나도 영화인이 되겠다는 다짐 에 대한 눈물이었다고 생각이 든다. 카트 라는 영화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던 것은 희망이 보이지 않 았기 때문이다. 돈도 못 받고 관심도 못 받는 상처뿐인 노동 현장. 크레인을 타고 올라가던지, 몸에 기 름을 붓거나 목이라도 메야 주의를 끌 수 있는 사람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가슴이 복받치고 손가락 이 떨린다. 참 슬픈 세상. 시대다. 작은 스크린이 아니라 그 세상이 슬프다. 글. 곡주대비


최지원:

곡주대비 (hjkanjy@gmail.com) :

“어디 갈 데도 없는데. 정말 영호 형만 만나고 갈 거다. 어떤

불균질한 시공간의 미학:

새끼도 안 만나.”

홍상수의 북촌방향

오랜만에 서울에 올라온 성준(유준상)은 이렇게 말한다.

홍상수는 시간과 공간을 가지고 놀기

하지만 영호 형(김상중)은 연락이 되지 않는다. 정처 없이

좋아하는

북촌을 배회하던 성준은 우연히 마주친 영화과 학생들과 함께

미래를 과거로 뒤집거나 꿈과 현실을,

술을 마신다. 애초에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화면에 등장한

착각과 기억을 얹고 버무렸다가 몇 개의

것은 북촌의 어느 도로 안내 표지판이었다. 창덕궁과 광화문

교차점에서 마주치는 인물들로 구성되는

사이, 탑골공원과 낙원상가. 표지판에 쓰여 있는 장소들 중

에피소드가 많은데 가령 초기 작품인, ‘

어느 곳에도 성준의 목적지는 없다. 서울을 구경할 것이라던

오, 수정’ 이나 최근작들, ‘다른 나라에서’

성준은 ‘북촌’이라는 장소 안에서 도대체 무엇을 구경한다는

‘북촌 방향’ 이 그러한 예들이다.

것일까. 그는 북촌에서 우연한 계기로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이렇게 시공간이 뒤죽 박죽, 혹은 반복

술을 마시고, 잠자리를 가지기도 한다. 그가 우연히 마주치는

되는 것이 북촌 방향에서는 주인공

사람들, 그가 찾아간 사람들이 그의 여정의 방향이 된다.

성준이 서울에 며칠간 머물러 겪었던

즉 그가 북촌을 유람하는 데 있어서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일련의 우연적인 사건들을 통해 보여

장소가 아닌 사람이다.

지는데 가령 하루 동안 세 명의 지인을

사람이다.

과거를

현재로

연달아 마주쳤다거나 한 사건이 다른 그는 북촌의 어느 곳이든 쉽게 머무르지만, 오랫동안 머무르지 못한다. 처음 본 영화과 학생들과 술을 마시다가도 버럭 소리를 지르며 뛰어나가고, 사랑한다고 고백하며 하룻밤을 같이 보낸 예전(김보경)에게 전화번호조차 남기지 않은 채 떠나버린다. 또한 그는 자신을 아는 체하며 반가워하는, 자신은 누군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 작곡가(백현진)에게 쉽게 전화번호를 주기도 한다. 이처럼 그는 어디에도(누구에게도)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북촌 안에서 맴돌기만 할 뿐이다.

북 촌

북촌에서의 여정이 끝나갈 무렵에도 그는 우연히 네 명의 지인(영화감독, 제작자, 작곡가, 영화 팬)들을 만나게 된다. 나는 성준과 영화 팬(고현정)이 만나는 장면이 유독 슬프게 느껴졌다. 성준의 사진을 찍고 싶다는 영화 팬의 요청에 머쓱하게 사진을 찍는 성준의 표정이 묘하면서도 슬프다. 클로즈업되는 표정은 처음 예전을 봤을 때의 표정과 동일한 것으로 느껴진다. 대상만 달라졌을 뿐 동일시되는 감정은 영화 내내 계속해서 되풀이된다. 이처럼 며칠간의 여정에는 끊임없이 우연한 만남과 재회가 반복된다. 하지만, 북촌을 유람하는 데 있어서 방향이 되어 주었던 그들은 성준에게 잠시 머무르는 거처지일 뿐이다. 그렇다면 성준은 어느 곳이든(누구에게든) 정착할 수 없는 것일까? 또한 성준은 북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방 향


교차점에서는 성준이 아닌 송선미 분의 보람이 겪은 우연으로 그려지고, 같은 술자리가 어떤 시퀜스 에서는 네 명이 참석 했던, 또 다른 시퀜스 에서는 세 명이 참석했던 기억으로 그려진다. 따라서 북촌방향 전체 영화 한편으로 보자면 몇 개의 중심 적인 사건들이 서로 다른 구성으로 반복되어 등장하는 셈인데, 이러한 스킴 (scheme) 이 지루하거나 성의 없어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매번 반복 될 때 마다 흥미롭고 맛깔 나다. 어찌 생각하면 사람의 기억이란 것이 지극히 사적인 소유물 같지만, 그 시간과 장소를 공유한 자들이 반드시 있었기 마련이니 꼭 그렇다 할 수도 없는 것 이다. 다시 말해 현재가 과거가 되어 기억으로 변환되면 그 때의 그 향기, 오갔던 말들, 풍경, 누군가의 행동 들의 주체는 사실 가히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억과 시간, 그리고 장소, 라는 지극히 메타 (meta) 적인 주제들을, 술자리 구성원과 소소한 대사로 풀어내는 홍상수가 참 영리하고 부럽다. 최근에 개봉한 자유의 언덕은 그의 이러한 (시간을 뒤집는) 장기가 대폭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인데, 시간의 유니티 (unity) 를 배제 하고 작품을 만들어 내는 그의 배짱이 두드러지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영화 돌려 깎기


exxx : 워낙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즐겨 보지 않기 때문에 영

글은 끝이다. 많은 사람들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추

내키지 않았지만 이놈의 성격이 반찬 투정을 하면서도

천해주었고 앞으로도 추천하겠지만 한동안은 또 보지

잔반을 남기지 않는 것처럼 막상 보기시작한 다음부터

않을 작정이다. 또 아는가 한동안 안보다 보고 감탄했

는 낄낄거리면서 보았다. 그렇게 생각하면 꽤 맛있는 밥

던 것처럼 좀 더 시간이 지난 뒤에 또 즐겁게 볼 일이

집인데 그동안 간판 때문에 가지 않았던 셈이다. (그렇

생길지 말이다.

다고 감독의 다른 작품을 볼 마음은 없다.) 나이가 조금 있는 사람이라면 거의 아침 드라마를 보는 기분으로 상 쾌하고 즐겁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결혼전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깔끔하면서도 유려하게 잘 만든 영화이다. 영화 는 많은 것들을 이야기 하는 것 같은데, 이런 중요한 내 용들은 앞의 필자들이나 여러 리뷰들이 다루었으리라 생 각되니 나는 늘 그렇듯 다른 이야기를 조금 하면서 글을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 대해 세가지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먼저 왜 이런 영화가 좀 더 일찍 인디 영화로 나 오지 않았는지를 꼭 이야기 하고 싶다. 이렇게 가볍고 경 쾌하면서 비용을 적게 쓰는 영화가 더 많이 나왔으면 좋 겠다. 어쩌면 이렇게 말하는 것이 내가 인디영화를 찾아 보지 않아서, 무지에 의한 것 일수도 있지만 북촌방향에 서 보여주는 적당한 위트와 함정들은 충분히 다른 작품 들에서도 적은 비용으로 응용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두번째로, 이 이야기는 일정부분 첫번째와 모순되기 도 하지만 배우들의 빼어남이다. 기껏 싸게 만들 수 있 는 대본을 쓰자는 이야기를 해놓고 비싼 배우들 이야기 를 하자니 모순 같아 보이지만 영화 초 중반부에 걸쳐서 배우들이 연기를 정말 잘했다. 특히 후반부 이전의 송선 미, 김상중, 유준상의 연기는 뛰어나다. 자연스럽다기보 다 부자연스럽게 대사를 주고 받으면서 초반부터 덜그럭 거리는 영화의 리듬을 한껏 살려준다. 초반부가 어색해 서 눈에 띄었다면 후반부는 안정적이어서 연기가 안정감 을 찾을 즈음 영화의 날이 무뎌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흑백이라는 것, 그리고 러닝타임이 유독 짧 다는 것은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이게 흑백이어서 짧은 것인지, 원래 그정도 길이 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인지 말이다.



기록에 대한 기록 : 사랑을 기록하지 않기, 기록을 들춰보지 않기 <연애의 온도> (노덕, 2013) 리뷰 박이현(현대쎈타 http://medium.com/centah-news)

다시 잘 되려면 일단 한 자리에 연애가 끝나고도 사랑은 계속될 수 있을까? 헤어진 연인이 다시 잘 될 수 있을까? 있다. 있다고 <연애의 온도>는 대답한다. 영화의 주인공 영(김민희)과 동희(이민기)는 사내커플이었기 때문에 매일 같이 만났다. 둘은 3년간 비밀연애를 했었고, 헤어진 지금도 같은 회사에서 근무한다. 그래서 매일 같이 만나야만 한다. 연애가 끝나고 둘이 벌이는 행각은 사랑이나 미련과 거리가 멀어보인다. 차라리 진상이랄까? 영은 동희의 서류를 몰래 버려 동희를 곤란하게 만든다. 한편 동희는 괜히 영의 업무만 늦게 처리해줘 속을 긁는 한편, 사귈적 영에게 빌려줬던 노트북을 지금 당장 돌려달라며 떼를 쓴다. 둘의 심술은 강도를 더 해간다. 영은 동희의 노트북을 완전히 박살내 돌려주고, 그간 데이트 비용을 정산하며 돌려받기도 한다. 그러며 영은 동희에게 널 사랑한 적 한 번도 없다며 안 해도 될 말을 굳이 덧붙인다. 추하다. 헤어지고, 비밀연애의 짜릿함은 저릿함으로 바뀌었다. 하나하나 달콤하던 일상이 이제는 쓰다. 하지만 둘의 인연은 쉽사리 끝나지 않는다. 티격태격하다 사랑에 불이 붙어 다시 연애가 시작된다. 재회에는 일종의 근접성 법칙이랄 게 있다. <청춘고왕>(1967)의 “여자는 가장 가까운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걸요.”라는 대사처럼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자주 마주치고 부딪히는 사람과 사랑에 빠진다는 비슷한 법칙이 적용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재회의 로맨틱코미디’라 할 장르들은 가까운 사람과 가까운 관계를 맺는다는 이 법칙에 충실하다. <응급남녀 >(TVN, 2014.1~4)는 6년 전에 이혼했던 웬수같은 부부가 재회할 가능성을 타진해보는 드라마로, 주인공 둘은 우연히 한 병원 응급실에서 늦깍이 인턴생활을 시작한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밉고 미워 꼴도 보기 싫지만, 한 공간에 있어야 되다보니 갈등이 일고 그러다보니 사랑의 불꽃도 튀게 된다. <연애의 발견>(KBS2 2014.8~10) 역시 5년 전에 헤어진 연인 한여름( 정유미)과 강태하(에릭)의 재회를 담고 있는데, 이를 위해 둘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게 되었으며 일 때문에라도 계속 만나야한다고 설정되어있다. 감정적인 재회를 위해 물리적인 충돌이 강제되는 것이다. <연애의 온도> 역시 회사라는 한 공간에 주인공 둘을 배치함으로써, 사랑과 연애를 회복시킨다.

사랑에 대한 기록으로 우회하지 않기 두 인물이 한 공간에 위치하지 않는 경우에는? 기록이 필요하다. 기록하고 전달할 미디어가 필요하다. 멜로 영화들을 떠올려보자. <8월의 크리스마스>에는 사진, <동감>에는 무전기, <파이란>에는 비디오가 있다. 이들 미디어는 영화에서 핵심 소재로 쓰였다. 로맨틱코미디 <나의 PS 파트너>에서도 휴대전화는 사랑을 기록하고 전달하는 하는 물건들로 쓰였다. 보통 멜로 장르에서 재현적 미디어는 다른 소품보다 ‘무거운’ 사물들이다. 사랑과 연애의 시작부터 끝까지 늘 이 미디어와 미디어적 재현이 중간에 서 있다. 이들은 사랑을 일으키는 매개이자 만남을 지속하는 중개자이며, 지나간 사랑을 기억하는 매체다.


그런데 <연애의 온도>는, 그리고 영과 동희는 미디어적 재현에 의존하지 않는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사랑은 애잔하거나 낭만적인 모양이 아닌데, 그것은 미디어적 재현을 거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다. 손편지를 썼다 꾸겼다를 반복하며 머리를 쥐어뜯는다거나, 전할 수 없는 안부를 라디오 사연으로 보내는 일 같은 건 적어도 이 영화에 없다. 멀어진 몸과 마음의 거리를 좁히기 위한 미디어의 도움을, 둘은 받지 않는다. 사랑과 사랑한 시간을 기록한 무엇을 들춰보는 일도 없다. 오히려 이 영화는 미디어적 재현 혹은 재현 미디어에 적대적인 것 마냥 느껴진다. 이를테면 민 팀장의 도촬이라든가, 동희가 마지막에 극장을 차고 나온다거나 하는 장면이라든가. 그렇다고 사랑에 대한 기록물이 <연애의 온도>에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 영화는 연극으로 치면 방백이라 할 장치를 가져와 영화 안의 영화를 만든다. <연애의 온도>는 여타 내러티브 영화처럼 주인공과 관객 모두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는 와중 서사를 진행하데, 어느 순간 인물이 카메라 앞에 서서 직접 카메라에 말을 건낸다. 인물의 속마음을 관객에게 직접 전달하는 기능을 하는 이 장치는 <우리 결혼했어요>와 <짝>과 같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국내 관객·시청자에게 익숙해져있으며, 위에 예로 든 드라마 <연애의 발견>에서도 사용되었다. 그런데 <연애의 온도>에서 이 카메라는 서사와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 서 있는 게 아니다. 서사 공간 내부에서, 카메라와 관객과 인물 사이의 모종의 계약을 깨서 우리 앞에 선다. <마스터셰프코리아 3>는 사건이 있은 뒤 사후적으로 촬영되었지만 인서트로 삽입된 인터뷰는 현재형으로 서술된다. 이 끼어든 인터뷰가 위치한 공간은 현실에 없는데, 오히려 현실감을 증폭시킨다. 한편 드라마 <연애의 발견>은 인터뷰하는 카메라의 위치가 해명되지 않는 채 진행되나, <연애의 온도>에서는 회사 생활 관련 다큐멘터리를 찍고 있었다고 설명된다. 영화의 마지막에 영과 동희는 이 다큐멘터리가 상영되는 영화관에서 다시 만난다. 둘은 다큐멘터리를 통해 서로의 과거와 속마음을 재차 맞이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 두 번째 재회의 순간은 우리 관객이 <연애의 온도>라는 영화 안의 회사 다큐멘터리라는 내부 층위의 영화를 재회할 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둘은 극장에 들어가지 않는다. 대신 따로 밥을 먹으러 나간다. 두 번째 재회의 순간, 말하자면 재회를 재회하는 순간에 그들은 재현을 통해 과거를 향수하길 포기하고, 서로를 대면하길 택한다. “됐고, 얼굴 보고 얘기하자”고 말하는 셈인데, 영화는 ‘얘기하자’는 것 보다 ‘얼굴 보고’라는 데에 더 힘을 싣는 듯하다. 영화는 다시 묻는다. “연애, 다시 잘 할 수 있을까?” 이제 영과 동희의 대답은 미묘하게 바뀌어있다. 다시 잘 될 가능성이 가능성이 로또보다 낮을 지라도 해 보자고, 롤러코스터가 무섭지만 그래도 이왕 놀이동산 왔으니까 한 번 타보자고 했던 것처럼 연애 역시 무섭지만 해봐야지 않겠냐고 말이다. 이제 ‘가능성’은 고려대상이 아니다. 이는 기록을 우회했기 때문에, 아니 기록으로 우회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결론이지 않을까? <연애의 온도>는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기록을 통해 사랑을 되돌아보는 데 그치지 말자고, 할 수 있을지 계산하지 말고 했었던 기록들을 바라보고 있지 말고 해보자고. 연애를 해보자고, 사랑을 해보자고


여기, 문학이 필요한 시간 작자미상, 「청산별곡」

술이 나를 붙잡으니 낸들 어찌하랴 이번 12월호에서 볼 작품은 고려가요 중 ‘서경별곡’과 함께 비유성과 창작성이 뛰어나며, 문

학성 또한 빼어난 「청산별곡」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작품은 고려인들의 삶의 애환을 반영 한 작품으로서, 서정적인 정서가 잘 나타나 있고, 음악적 효과가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 되고 있다.

서정이란 무엇인가? 인간이 가진 아름다운 정서를 말한다. 슬픔, 기쁨, 안타까움.. 어쩌면 이

렇게 단어 표현 할 수 없는 그런 모든 정서들 말이다. 서정성이 잘 녹아 있는 작품은 문학성이 뛰어나다고 말한다. 더 쉽게 예를 들어 볼까.

갑돌이랑 갑순이가 길을 걷고 있다. 하늘에서 눈이 내린다. 갑돌이가 이렇게 얘기한다. “자기

야, 눈 온다. 우리 뽀뽀나 할래?” “아 뭐야 변태냐” 이건 서정성이 결여된 것이다. 서정은 이런

것이다. 하늘이 흐리다. 갑돌이 문득 갑순이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갑순이의 얼굴이 붉게 상기

되어 있다. 갑돌이는 갑순이의 얼굴을 감싸고 뽀뽀를 한다. “뭐야, 깜짝 놀랐잖아, 어, 갑돌씨 눈이 온다.” 갑돌이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사랑을 축복하기 위해 하늘에서 눈이 내리나봐.” 으허헉 오글오글 「청산별곡」 이 작품은 아마 학창시절에 많이 보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수능세대라면 말이

다. 필자는 요즘 가장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드디어 수능이 끝났기 때문이다. 이번 수

능을 혹시 보셨는지. 비문학 지문에 ‘칸트’의 미학이 출제 되었다. 수능이 끝나고 고3학생들 전 화를 받으며 내가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칸트 개ㅅX.’

난 딱히 해줄 말이 없어 어, 미안해 라고 했다. 내가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수능

진짜 문제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한 학문인데, 이렇게 수능으로 뭘 하려고 하니 학생들이 인문학을 멀리하지. 대학에 가서도 말이다. 안타깝다, 안타깝다. 그래도 이런 안

타까움 속에서 어쭙잖은 필력으로 여기에 문학을 소개하게 되었고, 이걸 읽어 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참 기쁘고 즐겁다.

「청산별곡」은 해석하는 이에 따라 주제가 양분화 된다. 극단적인 현실 도피 내지는 현실 부

정의 면모로 보는 이도 있고 혹은 낙천적으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먼저 작품을 보고 현대어 해 석을 살펴보겠다. 크게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의 공간적 배경은 ‘청산’이다.‘


글. 고수진 살어리 살어리랏다. 靑山애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靑山애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1)

우러라 우러라 새여, 자고 니러 우러라 새여. 널라와 시름 한 나도 자고 니러 우니노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살고 싶구나 살고 싶구나 청산에 살겠노라. 머루와 다래를 먹고 청산에 살겠노라

우는구나 우는구나 새여, 자고 일어나 우는구나 새여. 너보다 시름 많은 나도 자고 일어나 울고 있노라

가던 새 가던 새 본다. 믈 아래 가던 새 본다.

가는 새 가는 새 본다. 물 아래로 날아가는 새 본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물아래로 날아가는 새 본다

잉무든 장글란 가지고, 믈 아래 가던 새 본다.

이링공 뎌링공 하야 나즈란 디내와손뎌.

오리도 가리도 업슨 바므란  엇디 호리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이끼 묻은 쟁기(농기구, 은장도, 붓)를 가지고

이럭저럭 하여 낮은 지내 왔건만

올 사람도 갈 사람도 없는 밤은 또 어찌할 것인가.

어듸라 더디던 돌코, 누리라 마치던 돌코.

어디다 던지는 돌인가 누구를 맞히려는 돌인가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울고 있노라

미리도 괴리도 업시 마자셔 우니노라.

미워할 이도 사랑할 이도 없이 사랑할 이도 없이 맞아서

화자는 청산에서 살고자 한다. 살고 싶구나, 살고 싶구나. 왜 청산에 가고 싶은가? 자신이 살았

던 곳을 벗어나고 싶어 한다. 화자의 현실은 아마 시궁창인 것 같다. 여기서 알 수 있다. 청산 은 도피처, 혹은 화자가 살고 싶은 이상향인 것 같다. 그리고 이내 고려가요에서 보이는 후렴

구가 등장한다. 얄리얄리~ 이 구절 인데, 딱히 뜻은 없다. 악기의 소리를 흉내 낸 의성어란 이

론이 지배적이다. 역시 발라드의 ‘워우워우어 베이베’ 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이상향인 청산

에서 살면 머루같이 소박한 음식도 좋지. 그러나 곧장 화자는 울기 시작한다. 새가 지저귄다. 그런데 나와 같이 우는 것 같다. 왜 우니 나와 함께 울자. 그리고 화자는 새에게 감정이입을 한 다. 자유롭게 날아가고 싶다.

그러나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된다. 왜? 청산별곡의 시적화자는 총 3명으로 압축된다. 작자미상이니 그 당시 사회상과 연관 지어 화

자를 정리해 보면 먼저 고려후기 전란 속에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유랑하는 농민들, 혹은

벼슬길에 나아기지 못하는 지식인, 고려가요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주제인 사랑과 이별로 보 1) 편집자 주 : 렛츠 리듬!


았을 때 이별한 여인으로 압축된다. 이렇게 놓고 보았을 때 뒤를 자꾸 돌아보는 행위는 유랑민

이면 고향에 대한 미련일 것이고, 지식인이라면 현실을 도피하려 속세를 등졌지만 여전히 떨 칠 수 없는 번뇌, 임에게 버림받은 여인이라면 그와의 추억들이 되겠지.

낮은 괜찮았다. 자연물들이 날 위로해 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기도 하고 그렇게 지내면

되니까. 그러나 밤이 오면 이 고독과 슬픔은 온전히 나의 몫이 된다. 시름은 깊어 간다. 누구라

도 내 이야기를 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돌이라도 던져 본다. 누구라도 맞아라. 악 누구야! 저예 요, 미안합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 주세요.

그러나 공중에 그대로 떨어진다. 와, 너무 처절하다. 결국 청산도 화자에겐 위로의 공간이 되질 못했다.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살어리 살어리랏다. 바라래 살어리랏다.

나마자기 구조개랑 먹고 바라래 살어리랏다.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가다가 가다가 드로라, 에졍지 가다가 드로라.

사스미 짐ㅅ대예 올아셔 혜금을 혀거를 드로라.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가다니 배브른 도긔 설진 강수를 비조라.

조롱곳 누로기 매와 잡사와니, 내 엇디 하리잇고. 얄리얄리 얄라셩, 얄라리 얄라.

살고 싶다 살고 싶다. 바다에 살고 싶다.

나문재, 굴, 조개를 먹고 바다에 살고 싶다.

가다가 가다가 듣노라 외딴 부엌을 지나가다가 듣노라

사슴이 장대에 올라가서 해금(奚琴)을 켜는 것을 듣노라

가다 보니 배부른 독에 진한 술을 빚는구나.

조롱박꽃 모양의 누룩이 매워 붙잡으니 낸들 어찌 하겠는가

후반부의 공간은 ‘바다’로 시작한다. 청산으로 가고 싶었으나 결국 가지 못했다. 오히려 절망적

인 ‘나’를 발견했을 뿐이다. 이제 바다를 바라본다. 그래 바다다. 바다만 간다면 해초나 조개만

먹고 살아도 난 좀 나아질 것 같다. 그리고 이제 살아보려 한다. 부엌에 들려 뭐 좀 먹을까. 그 런데 와, 저기 사슴이 장대 위에서 해금을 연주하고 있다. 새로운 세계를 찾아 나선 눈앞에 기 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가능 한 일인가? 이 구절에서는 두 가지 해석 이 가능하다.

정말 기적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을 강조한 것일 수도 있고 또는 산

대잡희를 하는 광대 중에서 사슴으로 분장한 사람이 장대에 올라 해금 연주하는 것을 듣는 것 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현실을 떠나 자연에 묻혀 음악을 들으며 살고자 하는 마음을 노래한

것이다. 마지막 구절에서 결국 화자는 풀어지지 않는 시름을 술로 풀고자 한다. 결국 술이다. 어찌하겠는가, 삶을 포기 할 수 없지 않은가?


이 노래는 풀 수 없는 삶의 고뇌를 술로 달래야만 하는 인생고를 우수적인 표현과 음악성으로

잘 풀어내고 있다. 전체의 내용을 다시 훑어보면 삶을 고통스럽게 여기고 있으며, 청산이나 바 다와 같이 고된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안식처를 그리워하고 있다. 그러나 은둔한다고 풀어질

수도 없음을 깨닫고, 현실적 삶의 고통과 비애를 술로써 달래려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이 노 래의 서정적 자아는 비애와 고통이 이어지는 상황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기보다는 운명을 받아 들이는 낙천적 인생관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정신없이 달려온 2014년. 친구들과 함께 이른 겨울바다를 보러 갔다. 다리를 건너 출 퇴근.

한강을 가로 질러 간다. 퇴근길의 지하철은 앉을 데가 없다. 그렇게 2014년도를 보내고 있는 데 어머나, 한 주 주말을 쉬게 되어 친구들과 강원도를 갔다. 퇴근하고 모두 모인 시간이 밤 10

시. 밤에 떠나는 그 길이 어찌나 두근두근 거렸는지 모른다. (뮤즈의 스톡홀름 신드롬만 틀지 않았다면 더 완벽했을 그 고속도로.) 새벽 1시에 도착해 밤바다를 보며 크게 소리 한 번 지르

고, 친구들과 맥주를 홀짝홀짝. 향기로운 바다의 향기가 잠시 서울을 잊게 해 주었다. 지친 시 간을 잠시 놓게 된 시간이었다. 그래, 일이 다 그렇지 뭐..

가끔 청산이 필요하다. 청산에 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땐 어쩔 수 없다. 잠시 놓고 쉬어야

한다. 10대에는 공부가 전부였고 20대 때는 이것저것 배웠고 역시 배우기만 했고, 뭘 스스로 생각해 본 적이 있었을 리가. 임용고시를 위해 노량진에서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와, 난 이렇게 내 20대를 다 쓸 수 없다. 결심하고 과감하게 내려놓고, 학원 강사로 주말을 반납하고 학생들 과 씨름한지 벌써 4년째다. 그러면서 싫어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고. 이제야 내 가치관이 세워진 것 같다. 지금이 정말 사춘기 인 것 같다. 긍정적인 사춘기.

인생은 길고 재밌는 일은 많고 같이 나눌 수 있는 친구들이 있고, 취미도 능숙하게 하고 싶고,

아 내년엔 31살이네. 맥주 마시자. 다음 시간에는 고전소설 박씨전을 살펴보겠다. 옛날이나 지 금이나 못생겼다고 어! 그러면 안 돼.

지각하면 보강이다.


작곡가 b의 노트 <음대, 내가 바뀌었던 곳> 글. Composer B

1악장. 이것은 ‘노다메 칸타빌레’가 아니다 오늘은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보겠다. 아마 대학교 내의 수많은 단과대나 학과들 중에서 이상과 현실간의 괴리가 가장 큰 곳은 바로 음악 대학이 아닐까 싶다. 청순한 외모의 여대생들이 가녀린 손가락으로 피아노를 연주하고(상상 속에서 의 연주곡은 주로 뉴에이지 음악), 파마머리를 한 체격 좋은 성악과 남학생들이 코트자락을 휘날리며 오페라 아리아를 중얼거리며 걷는 곳. 그 뒤로는 까칠하면서도 마음 깊은 교수님들이 학생들을 가르 치고 있으며, 빈 곳 없이 꽉 찬 연습실에서는 밤낮으로 학생들이 열정을 불태우는 음대 건물이 있고, 공부가 끝나면 삼삼오오 연주회장으로 몰려가 음악회를 보고난 뒤 맥주를 마시며 음악 이야기로 밤 을 새우고...

나도 처음 음대에 합격했을 때는 대략 저런 풍경을 꿈꿨다.

다른 것은 다 잊어버리고 오로지 ‘음악’이라는 카테고리로 묶인 친구들과 하루 종일 음악적인 분위기 에 푹 빠져서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가나 음반을 이야기하며 밤샘 토론을 하는 곳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거의) 정 반대였다. 대다수의 음대생들은 연주자나 음반에 대한 정보를 줄줄이 꿰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잘 알지도 못했다. 오히려 내가 음대에 들어오기 전에 자주 접속하곤 했던 음악 동호회 웹사이트(대부분 비 전 공자들의 모임)에서 활동하는 애호가들보다도 정보력이 빈약했고 기본적인 음악용어에 대한 상식이 나 기반 지식도 ‘음대생’이라는 이름을 달고 다니기 민망한 수준이었다. 해당 학기에 시험을 보기 위 해 공부해야하는 실기곡 외에는 음악도 잘 듣지 않았고, 음악회는 조교들이 ‘안 오면 출석 점수 깎으 니 꼭 참석할 것’이라고 공지한 연주회나, 감상문을 쓰기 위해 가는 연주회 아니면 연주회장 근처에 도 가지 않았다. 교수님들 역시, 모두가 다 까칠한 것도 아니었고 좋은 분들도 많았지만 학생을 상대로 기 싸움을 하 려하거나 노골적으로 돈(또는 선물)을 요구하는 선생들도 적지 않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판타지는 그야말로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와장창’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난 셈이 다. 고등학생에서 대학생이 된다는 갑작스런 환경의 변화도 만만치 않은 일이었는데, 내 생각과는 전 혀 다른 업계의 분위기를 실감하고 나니까 첫 1년 동안은 굉장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당시의 나는 매일 아침 학교 가는 버스에서 내려 강의실로 들어설 때면 정체모를 답답함을 느꼈고, 만만한 1 학년들이 동원되는 ‘필참(반드시 참석해야하는 행사)’ 행사에 갔다가 자정이 다 되어서 집에 들어올 때면 끝 모를 막막함을 느끼곤 했다. 다른 생각이나 경험은 할 틈도 없이 학과 사무실에서 짜준 시간

1) 그런 친구들은 대부분 두 부류였다. 예중이나 예고를 나와 그 분위기에 이미 익숙해져 있거나, 음대에 들어올 생각조차 하지 않다가 학교성적이 떨어지는 바람에 ‘어쩌다보니’ 음대에 들어와서 그런 것에 대해 개념조차 없는 친구들이거나.


표에 맞춰 동기들끼리 우르르 몰려다니는 재미없고 숨 막히는 학교생활 속에서는 내가 꿈꿨던 자유롭고 폭넓은 공부를 위한 시간이나 여유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냥 그런가보다-” 하 면서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속 편하게 지냈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나 는 그런 분위기를 깨고 나와 ‘독고다이’로 행동할 만큼 대범한 성격도 못 되었고, 그 안에 갇혀 속 만 태우는 고지식한 새내기였다. 대학교에 오기 전, 입시생 시절에 봤던 일본 드라마「노다메 칸 타빌레」같은 음대는 없었다. 애초에 그러리라 기대했던 내가 어리석었던 것일 수도 있었겠지만, 이상하게도 학교에 가서 생활하다 보면 조금이나마 남아있던 의욕들도 사라져가기 시작했다.

2악장. 음대생인 듯 음대생 아닌 나 스스로가 음대 내에서 느꼈던 실망감들을 이해하고 수긍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어쩌면 그 원인은 내가 음대라는 공간에 대해서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한데 있었을 지도 모른 다. 음악가나 음악계에 대해 큰 환상이 없던1) 다른 친구들은 당연히(?) 적응을 잘 할 수밖에 없 었다. 결국 스무 살 한 해 동안 그런 모습을 보며 지내온 나는 고등학교 때와는 정 반대로 ‘음대’ 라는 조직에 대해 극심한 회의를 품게 될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지 생각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 니 죽을 맛이었다. 정말로 이곳에서 원하는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걸까. 강의실이나 교수의 연구실에서 가르쳐 주는 것 말고 스스로 알아서 찾고 생각하는 공부를 해보 고 싶었는데, 그러기는커녕 하루하루 밀린 과제만 처리하고 학교 행사만 따라다니다가 그냥 4 년을 흘려보내는 게 아닐까. 거의 날마다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에 맴돌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학교 친구들이나 교수님에게 서 ‘음대생 같지 않은 애’ 소리를 듣기 시작한 것도 대략 그때쯤이었다.2) 학교에서는 마음이 맞는 친구들-기껏해야 한 두 명 정도-하고만 다니거나, 혼자 다니는 일이 더 욱 늘어났고 ‘필참’하라는 음악회는 점수가 깎이건, 교수님께 한 소리를 듣건 말건 무시해버리고, 내가 가려고 골라뒀던 음악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방학 때 학교에서 하는 세미나에 나가 는 대신에 ‘일부러’ 다른 분야의 공부를 하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음악을 공부하러 들어간 학교에서 일부러 음악 외적인 것들을 갈망하기 시작한 것이다.

3악장. 죽을 만큼 공부하면 죽는다 그 이후-특히 복학한 뒤-로 나는 더욱더 철저하게 음대의 시스템에서 벗어난 개인주의자가 되 었다. ‘열심히 강의 들으면서 학점 관리하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 한다’는 지도 교수님의 엄포도 나에게는 별 소용이 없었다. 정해진 틀에 맞춰서 ‘죽을 만큼’ 공부할만한 이유를 도저히 찾지 못 한 것이다. 그보다는 오히려 수업 빼먹고 홍대로 가서3) 라이브를 보거나, 맥주에 취해 휘청거리 며 사람들(주로 음악인이 아닌)을 만날 때 얻는 에너지가 내게는 더 중요하게 생각되기 시작했 다. 하루 8시간씩 작곡 공부에만 매달리던 시절 보다 아이디어에 대한 생각도 훨씬 다양해졌고, 2) 실제로 내가 음대를 졸업했다고 소개하면 많이들 놀란다. 외모마저 공대나 인문계열 학생 같다고들 하니.


보고 들은 것이 늘어나니 자연스럽게 사고의 폭도 넓어지는 느낌이었다. 아마 음악대학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도제식 교육의 바운더리를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았더라면 절대로 느껴 보지 못했을 것들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아직도 학부 졸업 뒤에 곧장 대학원으로 입학하지 않은 나의 선택에 대해서 여전히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그리고 내가 요즘 홍대에 들락거린다 는 소식을 교수님께서 듣는다면 뭐라 생각하실까?). 우리시대의 위대한 피아니스트 중 한명인 안드라스 시프(Andras Schiff)는 기자에게 ‘당신은 하루에 몇 시간 정도 연습하십니까?’라는 질문을 받고난 뒤, “글쎄요, 연습시간 자체가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닙니다. 하루 종일 연습에 매달리기 보다는 산책을 하거나 사람을 만나거나 책을 읽는 데에도 시간을 꼭 할애하는 편입니다.”라는 대답을 한 적이 있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 고 처한 환경에 따라 다르겠지만, 쉬프는 악보와 악기 앞을 떠나서 있는 시간 역시 굉장히 중 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으리라. 나 역시 음악공부를 힘들어하는 후배들에게 항상 해주는 이야기가 있다. 힘들면 쉬어도 된다고. 물론 교수님들께서는 ‘나 학교 다닐 때는 하루에 10시 간씩 앉아서 곡 쓰고 연습했다’라고 하셨지만, 나는 그 방법이 꼭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하 지 않는다.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아니, 심지어 기계도 어느 지점을 넘어가면 과열돼서 터지는데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공부든 일이든 자신에게 맞지 않는 방식으로 마지노선을 넘어가게 되면 반드시 제 정신이 아닌(?)상황에 이르기 마련이다. 곡을 쓰다가 풀리지 않으면 더 붙들고 있을게 아니 라 밖에 나가서 사람 구경도 하고, 술도 좀 마시고, 잠도 좀 자가면서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창 작은 예술 중에서도 가장 자유롭게 행동해야 하는 분야가 아닌가? 정해진 틀에 맞춘 시스템에 순응하기 보다는, 때로는 실수해도 좋으니까 좌충우돌해가며 자신 만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가는 그 과정이 너무나도 중요하다는 것이다. 난 지금도 공부하다가 답답해서 못 해먹겠다는 작곡과 후배들을 만날 때면 홍대의 밤거리를 걸어보자고 얘기한다. 비슷비슷한 프랜차이즈들이 정복한 홍대 정문 앞거리도 가보고, 그에 반 해 작고 개성 넘치는 가게들이 대조를 이루는 서교 초등학교 근처로 데려가기도 한다. 그리고 큰 길을 건너 (아직까지는)조용한 상수동의 골목을 걷거나, 깔끔한 인테리어로 단장한 새 가게 와 오래 된 건물이 공존하는 연남동을 돌아보기도 한다. 또 거리를 걷다 마주치게 되는 인간 군상들이 내뱉는 말과 행동은 얼마나 다양한가. 난 제발 후배들이 죽을 만큼 공부하지 않았으 면 한다. 얘들아, 교수님 말 믿지 말고, 공부하다 죽지말자. 일단 살아야 돈도 벌고 곡도 쓰지. 그러다 곡이 안 써지면, 그냥 술이나 마시자. 응?

3) 내 음악인생에 있어서 굉장히 큰 분기점이 되었다. 이 동네(?)에 드나들기 시작한 시기에 대해서 나중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다.



송창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 BEST 3

아, 진작에 이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이제야 쓴다. 미루고 미뤘다.

바흐까지 다 같아요. 트로트가 단순히

그만큼 결정하기가 어려웠다는 뜻이다. 뭐냐 하면 송창식의 노래 중 베스트 세 곡을

반복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분명한

꼽는 것. 세월에 따라, 기분에 따라 종종 바뀌곤 하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자리를

음악적 표현입니다. 트로트가 경시되는

지킨 노래다. 시간이 되면 들어 보시길. 아니 시간을 내 들어 보시길.

이유는 가수들이 음악 외적인 부분에 더 신경을 쓰기 때문이겠지요.” 특히 바람 소리와 목탁 소리로 시작하는

1. 가나다라

83년 버전을 들어보면 보다 쉽게

이 곡을 처음 알게 된 건 송창식을 모창하는 연예인들 때문이었다. 다른 노래도

대곡의 아우라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많았지만 그들은 꼭 팔 벌리며 이 노래를 불렀다. 한참 뒤 그의 음악에 눈을 떠 갈

(필요에 따라 방송에서 오케스트라와

때쯤 원곡을 처음 들어 보았다. 와, 무슨 이런 노래가 있는 건가? 말 그대로 전율이

나서기도 했는데, 여러 버전 중 나는

흘렀다. 꽹과리로 시작하는 인트로부터 시작해 첫 소절로 치닫는 부분은 가히

‘78년 서울 국제 가요제’ 때 녹음된

압권이었다. 꽹과리와 서양 악기의 조화도 신선했다. 당시 꽹과리를 다른 사람에게

그의 라이브 토함산을 가장 좋아한다.)

시켜 보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자신이 직접 배워 쳤는데 이제 와서 말하길, 지금

이 곡은 형식적으로도 다른 곡과 조금

하라면 더 잘할 수 있을 거란다. 그때 녹음된 곡을 그는 만족하지 못했지만 이 실험적인

차이가 있다. 버전을 막론하고 마지막

곡은 매료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가사가 가나다라마바사아자차카타파하, 라니?

후렴구에서 비트가 빨라진다는 점이다.

이렇게 쿨 할 수 있는 걸까 싶었다. 지금도 그랬지만 늘 가요엔 사랑 노래가 많지

흥을 더하려는 의도였을까. 이 부분을

않았나. 이제나 저제나 당신 생각밖에 안 한다는 천편일률적인, 그런 내용의 노래

듣노라면 발이 절로 흔들거려진다. 빨려

말이다. 그런데 으헤 으헤 으허허, 하더니 하고 싶은 말들은 너무너무 많은데 이내

들어갈 듯한 이 부분이 지나면 어느새

노래는 너무너무 짧고, 라고 하질 않나. 재미있으면서 철학적이기까지 한 가사도 내

곡이 끝나 멍하게 눈을 끔뻑거리곤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흥미로운 건 이 노래를 재일교포 3세들을 위해 일부러

한다. 교회를 다니지만 이곡을 들으면

어려운 말로 만들었는데 너무 발음이 어려워 오히려 배울 수가 없었다고. 제대 후

꼭 맨발인 채로, 신성하게 마음을

각성하고 새롭게 정립한 음악 이론이 가장 많이(50%정도) 담기기도 한 이 곡의

가다듬고서 토함산을 올라야 할 것만

가장 큰 매력은 ‘흥’이 나고 ‘신’이 난다는 거다. 시종일관 거침없이 진행되는 리듬,

같다. 아, 그의 가창이, 트로트인듯

서양의 5선지로는 표현할 수 없을 듯한 ‘우리’만의 리듬이 아직도 귓전에서 울린다.

성악인듯 기가 막히게 소화해내는, 속을 확 뚫는 그의 가창이 이 곡의 백미라는 것을 빼놓을 뻔했다.

2. 토함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그의 앨범 <사랑이야·토함산>에 수록된 곡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처음엔 이 곡이 그리 좋지 않았다. ‘쿵짜작 쿵짝’ 하며 곡이 너무 ‘트로트’

3. 나의 기타 이야기

스럽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묘하게 끌리는 구석이 있었다.

이 곡 역시 앨범 <사랑이야·토함산>

그게 트로트의 매력이라는 것을 이젠 인정한다. 물론 단순한 트로트였다면 안

에 실린 곡이다. 이 앨범에 대해 좀

그랬겠지만 클래식 같은 웅장함이 서려 있는, 고급화된 트로트에 결국 두 손 두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이탈리안과

발 다 들 수밖에 없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 노래 가운데 ‘토함산’ 같은 곡은

필리피노로 이루어진 ‘프랑크 로마노

사실 트로트를 만들겠다고 만든 곡이에요. 단지 ‘트로트도 이렇게 될 수 있다.’는

밴드’가 세션으로 참여했고, 이 해에

시범의 의미를 담았을 따름입니다. 음악은 다 똑같은 겁니다. 자전거의 따르릉부터

아내와 결혼하고 아들을 낳은 것을


기념해, 수록된 대부분의 곡을 ‘작사 한성숙, 작곡 송결’로 했다. B면 첫 곡으로 나오는 이 곡을 세 번째로 꼽은 가장 큰 이유는 멜로디 라인 때문이다. 부드럽게

시작하는

도입부의

음표

위엔 조심스럽게 자리를 옮겨 다니는 새가 있을 것만 같다. 그러다 어느새 힘차고 흥겹게 나오는 후렴구의 선율은 나도 모르게 노랠 따라하게 만든다. 눈을 감고 들으면 작은 동산 하나가 보이는데, 그건 멜로디와 더불어 가사의 힘이 아닐까 싶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만든 문예 잡지에 시나리오를 연재할 정도로 이야기 만드는 데 재능이 있었던 그의 노래엔 항상 서사가 있었다. ‘Cara Mamma’가 그랬고, ‘담배 가게 아가씨’가 그랬고, ‘참새의 하루’가 그랬던 것처럼. 이 곡 역시 소녀에서 기타로 승화하는 그 과정이 하나의 동화처럼 다가온다. 더불어 누가 들어도, 자신의 어린 시절이 떠오르는데 그건 송창식 자신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며 만들었기 때문이다. 합판을 잘라 만든 기타는 소리도 제대로 나지 않는 장난감이 되었지만 그에겐 가장 강력한 추억이었다. 모두 하던 일을 잠깐 멈추고 그때 그 소녀를 만나러 가는 건 어떨까.

글. 박재현


1st Listen : 11월 중순 전문 보기 : http://idology.kr/2761 11월 11일 ~ 20일에 발매된 아이돌 언저리 신작들에 대한 필진들의 단평이다. 하 이수현(Hi Suhyun), AOA, 소년공화국, 프리츠, 규현, 나튜, 풍뎅이, 아우라, 아토믹 키즈(Atomic Kiz), 러블리즈, 루루즈(Luluz), 워너비(Wanna B.), 퀸비즈(Queen B’z), 갓세븐, 서프라이즈(5urprise), 니콜, 헤일로(Halo), 효린x주영, 써니를 들어보았다. <월간 이리>에는 그 중 두 장의 음반을 소개한다.

김윤하 : 러블리즈의 데뷔 앨범은 여러모로 세간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 는 운명을 타고났다. 떠들썩했던 루머는 오히려 부수적이다. 소녀들은 ‘울림 걸그룹’이라는 닉네임으로 불리며 수 년간 분기마다 데뷔다 아니 다의 기로에 섰고, 결국 데뷔작의 프로듀서로 무려 윤상(이 꾸린 작곡가 팀 원피스)을 들였다. 그렇게 꾸준히 들인 공과 매머드급 인사를 생각하 면 다소 김빠진 결과물에 실망했다는 목소리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런데 이들은 여기에서 장르를 바꾼다. 이 앨범에서 가장 중요한 건, 전 반적인 완성도나 멤버들의 능력치가 아닌, 이 앨범이 당신의 취향을 저 격하느냐 아니냐다. 알로에서 강수지까지 소환하는 윤상 특유의 ‘첫사랑 러블리즈 Girls’ Invasion

느낌’ 프로듀싱에 멤버들의 수수한 외모, 교복, 온통 파스텔톤으로 물든

울림 엔터테인먼트

뮤직비디오까지. 만일 이 모든 게 취향이라면, 당신은 아마도 이 앨범에

2014년 11월 17일

서 결코 빠져나갈 수 없을 것이다. Intro에서 ‘Candy Jelly love’로 이어지 는 라인에 ‘심쿵’했다면, 기승전결에서 ‘전’이 빠진 듯한 곡 전개마저도 미숙하고 풋풋한 소녀들의 설렘으로 느껴질 것이다. 어떻게 아냐고? 내 가 그렇기 때문이다. 미묘 : '어제처럼 굿나잇'이 선공개곡인 것도, 그 곡을 더 좋게 들었다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해가 간다. '이별 Chapter 1'과 함께, 윤상의 곡을

러블리즈 - “Candy Jelly Love”

직접적으로 연상시키는 부분이 몇 번이나 나오는 곡이기 때문이다. 반면

https://www.youtube.com/

'Candy Jelly Love'는 보다 과감한 곡이라 하겠다. 특히 가사는 눈이 번쩍

watch?v=dZdzvQPkj70

뜨일 정도로 예스럽다. 사랑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그야말로 아이돌 시 대 이전의 감성이 가득하면서도, 반복적인 날씨 이야기가 풍기는 제이팝

스러움과 더불어, 당당하고 꿋꿋하게 서 있는 소녀상으로 이를 현재화한다. 느긋하게 날아다니는 베이스, 신스 플럭과 영롱한 벨 사운드가 오밀조밀하게 엮이는 리듬이 '오래된 현재'스러우면서도 품격 있다. 보컬 에 다소의 백치미를 담아 조바꿈을 던지며 후렴으로 진입하는 이 곡은, '비밀여행'과 더불어 가요계의 오래 된 소녀상을 가져와 리부트한다. 전반부에 비해 후반부가 다소 약한데, 후반부가 전부 솔로로 구성돼 있다

는 점에서 고전적인 '작품으로서의 앨범'보다는 아이돌 시대의 패키지로서의 앨범을 지향한다고 볼 수 있겠 다. 매우 흥미로운 (재)시작점. 별민 : 극단적 원리주의자는 언제나 소수이고 비주류이듯, 아이돌 역시 '정통파'가 히트한 경우는 사실 거의 없었다. 가장 전통적인 문법을 채택했음에도 외려 가장 특이한 그룹이 되는 것이 지금 러블리즈가 서 있는


지점이다. 이 앨범은 분명 90년대부터 지금까지의 모든 '소녀' 콘셉트 걸그룹의 언어를 모두 모아둔, 어찌 보 면 새로울 것이 없는 앨범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흔치 않고 새롭게 다가오기도 한다. 세상에 책은 많지 만, 모든 책이 백과사전은 아닌 것과 같은 원리랄까. 누군가에게 '소녀 콘셉트 대백과'가 필요하다면, 바로 '제 1권'에 해당할 이 앨범을 보여주면 되겠다. 아무래도 지향점은 최근 소녀시대-에이핑크 계열의, 이미 특정 팬 덤을 타깃으로 하고 있던 '기획형 걸그룹'보다는, (아무래도 윤상의 영향이 분명한) 90년대 초반의 강수지-하 수빈 계열의 '국민 소녀의 탄생'에 가까워 보인다. 기성 아이돌 팬덤 안에서의 파이 공유만을 목표로 하지 않 는다는 점은, 새로운 파이를 개척해냈던 인피니트의 성공을 통해 얻은 노하우로 보인다. 일반적인 미니 앨범 볼륨의 1~5번 트랙과 기존에 싱글로 발표했던 솔로 트랙들을 모은 6~9번 트랙이 묘하게 카세트 테이프의 A/B 사이드를 연상하게 하는 점도 흥미롭다. A 사이드에 해당하는 신곡들을 케이와 류수정이 리드하고 있는 반면, B 사이드에서는 베이비소울과 진이 강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점이 무척 재미있다. 리패키지가 나 온다면 소장용 카세트 테이프를 발매해보는 것도 좋을 듯. 이중엽 사장님, 보고 계세요? 굿즈 내달라구요, 굿 즈.

김윤하 : 타이틀곡 ‘하지하지마’는 지난 미니 앨범 타이틀곡 ‘A’의 명백한 2.0 버전이다. 노래는 ‘아이돌 그룹’하면 떠오르는 한국과 일본의 각종 프 로토타입이 아닌, 하이파이브(Hi-Five)에서 엔싱크(N Sync)를 잇는 각종 미국 보이밴드의 강한 기운 아래 놓여있다. 거기에 더해지는 건 2PM부터

이어져 온 JYP 남자그룹 특유의 ‘체대 옴므’ 이미지. 이 둘의 꽤 매력적인 콜라보는 PD님이 목숨처럼 여기시는 '그루브'가 살아 있는 뉴잭스윙 사운 드를 기반으로 앨범을 꽉 채운다. 데뷔 초의 '힙합' 무드를 과감히 버리고 ‘Gimme’나 볼륨을 올려줘’ 등의 다소 복고적 해석까지 너끈히 소화해내 는 앨범은, 범람하는 아이돌 그룹 가운데 갓세븐의 개성을 돋보이게 만들 기에 부족함이 없다.

갓세븐 Identify

별민 : JYP가 이 앨범을 발매하면서 굉장히 자신감에 찬 홍보 자료를 내놓

JYP 엔터테인먼트

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근거가 궁금해진다. 그저 '2PM 동생' 수준에

2014년 11월 18일

그쳐 보이는 이 앨범으로 정말 갓세븐을 'Identify'한다면 조금 실망스러울

지도 모르겠다. 이전 앨범에서 서서히 드러나고 있던 멤버별 개성과 매력 도 다시 흐려져 버렸고, 팀 전체의 색깔 역시 마찬가지다. 모진 말이지만, 보이그룹 시장 안에서 이들의 경쟁 상대는, '엑소'와 '위너'라는 유례없이 막강한 신인들이라는 사실을 자각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잘 나가다가 갑 자기 왜 그래요, 정말, 속상하게. MRJ : 나는 데뷔 당시 JJ 프로젝트를 무척 좋아했는데, 갓세븐으로 합병 된 이후에는 당시만큼의 팬은 아니다. 이 곡은 독창적이지도 못하고 수많

갓세븐 - “하지하지마” https://www.youtube.com/ watch?v=R_DX64EwH9M

은 잔재주로 뒤덮여 있어 거슬리는 구석이 많다. 그중 가장 두드러지는 잔재주라면 과도한 보코더인데, 인트 로와 후렴에 포함될뿐더러 버스 전체에서도 이펙트로 사용되고 있다. 편곡 자체도 변화가 적고 방향성 또한 부족하다. 다음의 비디오에서 이 곡과 뮤직비디오에 관한 나의 분석 전체를 볼 수 있다. : https:// www.youtube.com/watch?v=9OR_AMXZzE0


갓세븐 - Identify (2014) 서툰 발걸음에서 찾은 가능성 by 블럭 | 전문 보기 : http://idology.kr/2769

갓세븐은 JYP 엔터테인먼트(이하 JYP)를 통해

데뷔한 보이그룹이며, 총 일곱 명의 멤버로 구 성되어 있다. 그 중 JB와 Jr.는 JJ 프로젝트를 통 해 먼저 데뷔한 바 있다. 외국인 멤버가 세 명인데, 셋 다 래퍼다. 최근에는, 일찍 데뷔해 본 두 명이 각각 리드보컬, 서브보컬을 맡고 영재와 유겸이 가세하는 포지션을 취하고 있는데, 완전히 결정된 건 아닐지도 모른다. 갓세븐의 첫 정규 앨범 “Identify”는 데뷔 시기를 생각하면 꽤 빨리 나왔다는 느 낌이 드는데, 앨범 제목에서 보는 것처럼 일찍 정체성을 구축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 타이틀곡 ‘하지하지마’의 경우 JYP 이름으로 나오는 곡 중 가장 이 회사가 잘하는 스타일의 집약체라 고 생각한다. 신시사이저의 적극적 활용, 리듬감 살린 보컬 라인, 마이너 코드의 활용 등이 돋보이며 안무 역시 JYP 특유의 ‘긴 팔다리가 필요한’ 안무다. 루프 중심으로 가는 진행이나 신시사이저의 높 은 위치, 보코더의 사용 등으로 곡은 뉴잭스윙에 가깝다는 느낌을 준다. 또한 훅의 길이에 비해 버스 (verse)의 길이가 짧아서 상대적으로 타이트한 전개를 통해 곡의 단순함을 무마하는데, 중독성과 질 리는 느낌 사이 어딘가에 아슬아슬하게 반복되는 훅이나 브리지는 이 곡의 최고 장점이자 단점이다. ‘하지하지마’에서 랩이 크게 거슬리지 않는 이유는 한 사람의 버스 길이 자체를 짧게 가져가기 때문 이다. […] 앨범은 전반적 무드 조성이나 색깔 알리기에는 성공적이다. 가끔 가성을 포함한 보컬의 측면에서 힘 의 부족이 느껴지기는 하지만, 대신 풋풋한 소년의 모습을 얻어가기도 한다. 이는 가사의 측면에서 도 마찬가지다. 2PM과 다른 점이 있다면, (멤버들의 연령도 고려했겠지만) 노골적으로 남성성을 내 세우기보다는 서툴고 풋풋한 인상을 주며 다소 ‘착한’ 편에 속해있는 표현들로 가사를 채웠다. 이러 한 부분이 시장 내에서 장점으로 통할지는 잘 모르겠으나 보컬이나 프로덕션과 어느 정도 긴밀함을 유지하고 있기에 긍정적으로 본다. 아무래도 같은 레이블에 있는 남성 그룹과 비교될 수 밖에 없는,

더군다나 ‘정체성’을 놓고 이야기하는 상황이다.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면 랩의 비중, 그리고 멤버들 의 연령인데, 갓세븐은 그 차이를 기점으로 2PM과의 비교 분리를 시도하는 듯하다. 이 앨범이 완성형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들의 첫 번째 정규 앨범이라는 점이나 앨범 제목, 목표를 고려했을 때 하는 이야기다. 여전히 각 멤버는 채워나가야 할 부분을 가지고 있다. 이는 프로덕션이 나 제작 등에 있어서 자발적인 부분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걸 소화해내는 역량의 차원에서 하 는 이야기다. 좋은 프로덕션을 소화할 줄 아는 것이야말로 아이돌의 미덕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갓 세븐이 계속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길 바란다.


Play 8

멜론 탑 100이 아이돌의 전부는 아니다. 가끔은 아이돌도 찾아 들어보고 싶지만 뭐부터 들어 야 할지 몰라 고민인 당신을 위해, 혹은 아이돌 웬만큼 꿰고 있지만 좀 색다른 방법으로 듣고 싶은 당신을 위해, 아이돌로지가 주제별로 엄선하는 플레이리스트가 Play 8 시리즈이다.

추워질 땐 (아마도) 윤상 2014년 11월 5일 | by 미묘 전문 보기 : http://idology.kr/2125 새로운 감각을 통해 ‘청춘 아이돌 스타’로 데뷔한 이래, 늘 파이오니어였

으되 늘 ‘시종일관 그저 진지한’ 음악가. 도시적인 우수와 세련을 가장 잘 담아내는 윤상만큼, 스산해지는 이 계절에 어울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이돌 세계에도 그가 남긴 족적은 드물지 않다. 또한 하임(Haihm), East4a, 프랙탈(Fraktal), 이민수 등, 서로 다른 세계가 만나는 지점의 중심 에 그의 콜라보 목록이 위치하고 있기도 하다. 모든 곡이 성공적이었다 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싱어 송라이터와 일렉트로닉 음악가, 아이 돌팝의 세계의 간극을 생각하면 조금씩 차이를 보이는 그 행보가 오히려

더욱 흥미롭다. 가인 – 진실 (2010) | 천상지희 더 그레이스 – The Final Sentence (2006) | 동방신기 – 이제 막 시작된 이야기 (2006) | 소녀시대 – 랄랄라 (2010) | 히스토리 – 난 너한테 뭐야 (2013) | 보아 – The Show Must Go On (2003) | 레인보우 블랙 – Cha Cha (2014) | 아이유 – 누구나 비밀은 있다 (2013)

울고 싶은 날에도 2014년 11월 10일 | by 별민 전문 보기 : http://idology.kr/2305

아이돌팝이라면 댄스 음악이 거의 전부일 것 같지만, 사실 아이돌 발라 드 트랙 중에서도 숨은 명곡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아이돌팝 리스너 중에는 아이돌 발라드 음악만을 즐겨 듣는 경우도 있는데, 그저 우울하 고 울고 싶은 날에는 아이돌의 맑고 청량한 목소리가 다른 어떤 보컬리 스트의 원숙한 노래보다도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특히 요즘 아이돌 때 문에 울 일이 많은 아이돌 팬이라면 함께 들어보자. * 정말로 꼭 추천하고 싶은 노래가 하나 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리스트에 넣지 못하고 숨겨두었다. 꼭 찾아서 들어보시길… 빅뱅 – 눈물뿐인 바보 (2006) | 동방신기 – 사랑아 울지마 (2008) | 아이유 – 아침 눈물 (2009) | 엠블랙 – Cry (2011) | N-train – 울면서 울어 (One Last Cry) (2011) | 인피니트 – Crying (Infinite H Feat. Baby Soul) (2011) | 씨스타 – Crying (2013) | 15& – Rain&Cry (2014)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소개소

1. 끝나가는 시절 - 우주히피

2. Summerdays are over - 골든티켓

3. Empty - 할로우 잰

[3](2014), 3

[Hasta La Vista](2013), 1

[Rough Draft In Progress](2006), 6

꼭 소개하고 싶어서 2월에 처음 라이브를

골든티켓은 대구에서부터 라인업에서 가끔

할로우 잰 공연에서 가장 밝았던 곡으로

봤을

기다린

봤지만 올해 10월, 서울에서 처음 공연을

기억된다. 이 곡을 들으며 스스로도 가장

곡이다. 우주히피의 보컬 한국인씨의 솔로

봤다. 청춘의 느낌이 물씬 나는 ‘teenage

놀랐던 것은 스크리모라는 장르에 익숙치

공연에서 처음 봤는데 밴드 버전에서는 각

summerdays

영어

않았음에도 보컬과 연주가 참 잘 어울려서

악기가 잘 어우러져서 더 감동했다. 마치

가사들이 좋다. 모두 밝은 음의 곡들이라

기분이 좋았던 것이다. 특히 드럼 솔로로

랩을 하듯 끊김없이 노래를 부르는 보컬은

비슷한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각자의

곡이 시작되는 것과 반복되면서 마음을

정말 멋진 하나의 악기 같다는 생각을

매력을 가지고 있는 멜로딕 펑크곡들의

후벼파는 듯한 드럼 등 드럼 연주가 아주

했고, 드럼을 배우는 입장에서 센 음악이

긍정적인 느낌들이 좋다. 중간에 드럼

인상적이다. 이 앨범은 원래 2006년 작인데

아니더라도 배울 점은 항상 있다는 것을 또

연주 후 기타와 베이스 멤버가 함께 노래를

2014년에

한번 깨달았다.

시작하는 부분이 참 마음에 든다.

되었다.

때부터

음원이

나오길

are

over’같은

디럭스

에디션으로

재발매


긍정적인 기분을 주는 노래들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특히 악기를 배우는 입장에서 저에게 많은 영감을 주고 가사들이 큰 위로를 주는 노래들을 소개합니다. 신당동 파르한 (@chungchoon98)

4. 강북청춘애가 - 백화난만조

5. 너 자신을 알라 - 노브레인

6. 아름다운 인생 - 슈가도넛

[눈부시게 푸르른](2014), 2

[청년폭도 맹진가 - Disk 2](2000), 4

[Double Minus](2014), 2

돋보이는

앨범 제목과 동명의 수록곡 <청년폭도

<2011

‘들려오는

맹진가>로

2CD

마지막으로 해체했던 슈가도넛이 3년만에

펑크록의 멜로디’라거나 ‘지하도 벽면에

데뷔 앨범은 발매된지 이미 10년이 훌쩍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 돌아왔다. ‘한 번

그려진 혼잡한 낙서 위에 나 홀로 생각해

넘었지만 여전히 많은 생각을 하게한다.

뿐인 인생, 마음가는 대로 살라’고 말하는

두었던 밴드 이름을 새겨 넣네’같은 가사에

시작부터 신나는 분위기의 곡이지만 제목이

노래들은 많지만 그 중에서 ‘누가 뭐래도

반했다. 가사가 꽤 구체적이고 긴데 그런

말해주듯 ‘그대 모습 거부 하지 말라, 너

나는 나만의 세상에 살고 있다고 늘 말했어’

점이 곡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을 스스로 지켜라’같은 멋진 가사가

라는 가사는 흔치 않다. 그래서 이 노래가

펑크 밴드 중에서도 백화난만조의 음악은

있다. 특히 보컬이 혼자 노래하다가 중간에

더욱 와닿고 소중하다. ‘통장에 잔고는 0

독특하다. 유니폼을 맞춰 입고 공연한다는

여러명이 함께 ‘그대 모습 거부 하지 말라’를

원하고’라는 중의적인 가사도 재미있다.

이들의 라이브를 꼭 보고싶다.

부르는 것이 좋다.

재결성 후 노래를 듣게 되었지만 앞으로

무엇보다

노래이다.

가사가

처음

정말

듣자마자

유명한

노브레인의

쌈지

사운드

오래오래 보고싶은 밴드이다.

페스티벌>을


지극히 개인적인 사진들 #8 adieu 2014


지극히 개인적인 사진들 #8 adieu 2014


건축이 좋아. #15. ’집’이야기 aoikasa

집이란 무엇일까. 라는 질문을 해보았다. ‘집’. 사람들이 정착 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살아간 곳. 잠잘 곳이 있고 먹을 곳이 있고 저장할 곳이 있는 곳. 삶의 영위가 가능해야하는 곳. 삶의 보금자리가 되어 주는 곳. 엄마, 아빠, 동생, 우리 강아지, 그리고 나. 사랑하는 우리 가족이 사는 곳. 그 곳이 바로 집일 것이다. 기둥이 어떤 모양인지, 지붕이 어떤 모양인지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마도 그 안 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갔느냐의 이야기일 테니 ‘집’이란 어쩌면 건축의 기본 중의 기본이자 건축을 넘어 서는 그 무언가인 거 같다. 최근 방문했던 몇 개의 ‘집’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우리 주변에 있는 아주 다양한 집들 중에서, 꽤나 오랜 시간을 간직한 몇 개의 집들에 관한 이야이다. 1940년대 초 지어진 집부터, 전쟁 후에 지어진 집들까지… 이 제는 낡고 볼폼없어졌지만 한 때는 소시민들의 스위트 홈이었을 것이며, 갓 상경할 젊은이들의 도시생활이 시작되었던 곳이었던 그런 집들에 대한 이야기, 권력자나 재력가의 화려하고 멋진 집이 아니라, 일반 회사 원과 노동자들과 같은 보통의 도시민들이 살았던 집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1. 일제 시대 노동자 주택, 부평시 산곡동과 부평동 미쓰비시 사택 부평은 1899년 경인선이 설치되며 서울과 인천을 잇는 중요한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도시 규모가 크게 성장한 것은 1930년대 후반의 일이었다. 일 본은 태평전쟁을 준비하며 전쟁에 필요한 군수 물자의 공급을 위해 부평 지역에 무기공장인 일 본육군조병창(1939년)을 설치하였고, 이 외에도 군수공장들인 히로나카(弘中)상공 (이후 미쓰비 시(三菱)중공업으로 합병) 공장 등을 설치하였다. 대규모 공장이 들어섬에 따라 부평에는 전국 각 지에서 노동력들이 몰려 들었는데(조병창에서 일

(1939년 건설된 조병창(지금은 캠프마켓))

하면 징병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은 농촌에 지나지 않았던 부평에는 이들을 위한 집들이 충분하 게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따라서 1940년대 초부평에는 노동자 주택들이 다수 들어서게 되었다.

경인기업주택은 친일기업가였던 조병식의 토목건축회사인 경인기업에서 건설한 것이었는데, 조병창 노동 자들을 대상으로 한 1000세대 규의 대규모 주택단지였다. 경인기업은 이 주택단지를 건설하던 도중 자금 난으로 인하여 조선주택영단(지금으로 따지면 SH공사 같은 곳이다.)에 매각하였으며, 이후 조선주택영단 에서 이 주택단지를 완성하였기에 아직도 산곡동 영단주택이라 불린다. 1930년대 이후 도시로 몰려드는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서울을 비롯한 여러 도시에서 주택을 건설하여 판매하는 소위 ‘집장사들’이 다수 등 장하였는데, (지금의 북촌도 결국 집장사들이 건설하고 분양한 집들이다) 이 산곡동 영단주택의 경우도 비 슷한 경우라 생각된다. 비록 일반을 대상으로 하는 건 아니었고 조병창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분 양을 통해 이득을 얻고자 했던 원래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주택영단에 매각함으로써 그 성격이 조금 은 다르게 변하였지만 말이다. 아무튼 친일파이긴 하나, 한국인을 잘 아는 한국인 기업에 의해 계획된 주택 이어서인지 이 산곡동 영단주택들은 작은 규모이긴 하나 (방 2개, 부엌 하나, 안마당과 변소 하나) ‘ㄱ’자 한옥형으로 되어 있었다. 해방 이후 조병창이 없어지자, 이 곳에 머무르던 사람들은 떠나기도 하였고 대우 자동차 등 새로운 공장의 노동자들로 대체되기도 하였다. 좁은 집을 넓히기 위해 길쪽으로 집을 확장함에 따라 골목은 점점 좁아졌고 과거의 북적이던 마을 분위기도 많은 이들이 떠난 후 변해버렸다. 십여년 전만 해도 공을 차고 노는 아이들이 뛰어 다녔을 법한 골목에는 이제는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만 가끔 보였고, 백 마장의 최고 인기 장소였을 극장 역시도 문을 닫은지 몇 년째다. 40년째 계속되고 있는 봉다방 역시 언제 문을 닫아도 어색하지 않을 듯한 풍경 속 산곡동 영단주택은 마치 해질녘의 쓸쓸함이 가득 묻어있는 곳이 었다. 서울과 인천에는 이외에도 조선주택영단에서 보급한 주택단지들이 다수 있었는데, 서울의 상도동, 문래동 등지의 영단주택은 이미 거의 다 사라져버렸고 그나마 남아 있던 인천 용현동의 영단주택단지도 이


지역 재개발이 시작됨에 따라 곧 철거될 예정이다. 1940년대 주택단지 중 그래도 가장 당시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산곡동 영단주택들 역시 언제 철거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산곡동 경인기업주택(영단주택))

부평동의 미츠비시 사택은 전형적인 1940년대 노동자 주택이라 할 수 있다. 작은 방과 작은 부엌 하나가 전부인 작은 집들이 10개~12개씩 줄지어 나란히 붙어 있다. 화장실은 공동으로 사용하며 미쓰비시 공장에 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모여 살았다. 작은 방 하나와 부엌 외엔 아무 것도 없어 ‘마당’이라는 걸 가질 수 없 었던 노동자들의 퍽퍽한 삶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공간인 이 주택은 아마도 일본식 연립주택인 나가야(長 屋)와 같은 구조일 것이라 예상되는데 지금 현재에도 부평동에는 10호, 12호 연립주택(줄사택이라 불리기 도 한다.)인 미쓰비시 사택들이 여러 동 남아 있다.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떠나 일부는 사람이 살고 일부는 사람이 살지 않는 상황이다. 그리하여 10호 이상이 줄지어 늘어서있는 미쓰비시 사택은 마치 이빨 빠진 것 처럼 중간의 일부는 무너져 있고 또 일부는 여전히 집으로써 기능하고 있어 철거 직전의 마지막 풍경처럼 느 껴진다.


(부평동 미쓰비시사택. 나란히 줄지어 있는 세대들의 다양한 표정)

2.철도공무원의 주택, 부평시 철도관사. 1899년 경인철도의 부설 이후 한반도의 내륙 교통 중 철도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커졌다. 특히 러일전쟁 을 전후로 하여 일제는 한반도의 철도부설권을 장악하고 철도가 놓이는 지역들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침략 기지들을 건설해나갔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용산. 2013년 11월호에 실었던 용산철도병원도 1904년 이후 일제가 용산 일대를 철도용지로 개발하며 만들어진 병원이었다. 부평역은 용산역만큼 큰 역은 아니었기에 용산처럼 다양한 철도관련 시설들이 들어서고 대규모 관사들이 생기지는 않았으나 1930년대 중후반 이후 부평이 중공업 단지로 성장함에 따라 철도역의 중요성도 커졌다. 이에 따라 철도관련 종사자들도 늘어나서 인지 1940년대에는 부평역 남쪽으로 철도관사들도 다수 들어섰다. 철도관사는 2호 연립, 그러니까 두 개 의 똑같은 집이 맞대고 있는 형태의 (얼마전 유행했던 땅콩집 같은) 주택으로 지어졌으며 총 16채, 그러니 까 32호의 규모로 지어졌다고 한다. 현재 남은 건 2개 뿐인데, 그 중 하나는 상업용으로 용도가 변경되었으 나 하나는 여전히 이전의 모습을 상당히 많이 유지한 채 남아 있었다. 해방 이전에는 일본사람들이 주로 살 았으나, 해방 이후에는 한국 사람들이 살았고 철도관사라는 특성상 철도관련 종사자들이 다수 살았던 것 으로 보인다. 철도청에서 일하셨던 아버지 때부터 이 곳에 사셨다던 한 동남은 철도관사에 사시던 노부부 덕에 집안 내부를 구경해볼 수 있었는데, 원래의 집 구조를 거의 그대로 간직한 집에는 방공호 같은 지하공 간도 있었고, 요즘에는 보기 힘든 미닫이문들로 모든 공간들이 구획되어 있었다. 꽤나 컸을 법한 안마당에 는 이전부터 있었던 화장실과 창고, 그리고 새로 지었다는 한 채의 집이 더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70여 년의 시간이 그대로 담겨 함께 나이들며 변해 온 그런 집이었다. 오랜 시간 집을 지켜온 할아버지의 자부심


과 화장실도 밖에 있고 해서 너무 불편하다던, 간간히 들려오는 할머니의 불평까지 이 집은 이 노부부와 함 께 시간을 계속하고 있었다.

(이제는 두 세대 밖에 남지 않은 철도관사. 왼쪽 것은 상업용으로 사용 중. 오른쪽은 주거용)

3. 홍은동 문화촌 마지막 소개하고자 하는 집은, 집 하나가 아니라 집들이 모여 만들어진 마을이다. 1940년대 전쟁을 지원하 기 위해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그러면서 노동자 주택들이 생겼다면 (철도관사는 약간 다른 맥락이 긴 하나 부평의 경우에는 이 역시 전쟁으로 인한 것이었다 할 수 있다.) 이번에는 1950년대 한국전쟁 이후 도시로 몰려든 사람들이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진 마을 이다. 홍은동일대에는 문화촌이라는 동네가 있는데, 이 문화촌이라는 이름이 재미있다. 대체 왜 문화촌일까. 자유당 시절 연립2호 양옥을 지어두고 문인들을 거주하게 하였다는 점에서 문화촌이라고 불린다는 게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이야기인데, 당시 신문기사 등에는 1958년에 문화에 천 호의 집을 건축하겠다는 서울시의 계획이 있었고 그 계획의 일환으로 우이동, 홍제동, 홍은동 일대에 문화촌들이 건설되었다는 기사가 있어, 문화촌이라는 이름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이 당시의 문화촌이란 (일본식 개념이라고 생각되는데) 구락부도 있고 회관도 있고 도서관 도 있고 운동시설도 있고 목욕탕도 있고... 한 그런 동네를 의미했던 것으로 보인다. 문화주택, 부흥주택과 같은 주택이름들이 자주 사용된 것도 아마 전쟁 직후의 극복의지(?)를 드러내는 것 아니었을까. 우이동 문 화촌에는 11동의 주택과 공회당, 목욕장, 부화장, 닭장, 돼지 우리까지 있었다고 하여 일종의 ‘커뮤니티’가 형성된 곳이 아니었나 생각되지만, 홍제동, 홍은동의 경우에는 그 이름이 주는 낭만적인 느낌과는 달리, 실 상은 그렇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홍은동의 경우 전쟁 후 무허가 판잣집들이 산자락에 다수 생겨나 현재까지 이어져 온 것으로 보이는데, 산자락을 오르고 올라 만들어진 작은 집들은 과연 어떻게 여기까지 벽돌을 나르고 콘크리트를 날랐을까 싶을 정도로 가파른 경사의 계단 위에 만들어져 있다. 아마도 이전에 는 물길이었을 길들을 따라 난 작은 길들, 그리고 그 경사를 오르기 위해 만들어진 불규칙적인 계단들, 그 리고 이 길과 계단 옆으로 난 작은 배수로들은 자연스레 형성된 서울의 오래된 모습들을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1968년 신문기사에는 이 무허가주택들을 양성화시키겠다던 서울시장의 인터뷰가 실렸는데, 당시 시 장이 불도저시장으로 불렸던 김현옥시장임을 생각하면 그다지 신뢰가 가지는 않는다. 작고 불편하지만 뒤


에는 산이 있고 앞으로는 서울이 다 보이는 풍경이 있는 홍은동 문화촌은 어쩌면 1960년대 서울살이를 그 대로 보여주는 곳일지도 모르지만, 언제까지 이 집들이 남아 있을 수 있을지는… 예상조차 할 수 없다.

(홍은동 문화촌 풍경: 계단, 물길, 집)

2014년 2월 호에 신문로의 작은 집 이야기를 실었었다. 신문로 대로변에 꿋꿋이 남아 있던 2층 한옥, 50여 년이 넘은 중국집 신문각이 있던 곳. 그 곳이 2014년 11월 사라져버렸다. 새문안교회가 새성전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이 건물의 보존을 두고 이런 저런 이야기들이 많이 오고 갔으나 결국은 개발의 미명하에 허물어져 버리고 말았다. 오래된 것이 모두 아름다운 것은 아니며, 오래된 것이 모두 남아있어야 한다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오래된 것에 담긴 이야기들, 오래된 것이 함께 한 시간들은 소중하다. 그렇기에 그냥 사라져버리기 엔 너무 아쉬운 것들이 많다.

사실 산곡동 영단주택도, 부평동 미쓰비시사택도, 철도관사도, 홍은동 문화촌도 살기 편한 곳들은 아니다. 특히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이 대부분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이 집들이 가진 시간만을 가 지고 이 집들이 사라지지 않길 바라는 건, ‘빈자의 미학’을 말하는 너무 낭만적인 접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곳들이 그냥 사라지지 않길... 적어도 이 곳들이 사라지고 아파트단지가 가득 들어서질 않길 바래어 본다. 이 곳에 살았던 이들의 시간과 기억이 조금이라도 남을 수 있도록, 이 집들이 서울과 부평에서 5, 60년 이상을 버티며 남긴 장소성들이 조금이라도 남을 수 있길 바란다. 산곡동 영단주택을 방문했을 때 좁은 길을 막고 있던 폐지줍는 수레를 잠시 옆으로 치워도 되냐 물으니 연신 미안하다 하시던 영단주택 옆 검정사택에 사시는 할머니, 노른자 띄운 쌍화차를 끓여주시던 봉다방의 주인할머니, 답사온 사람들에게 커피를 대접해 주시면서 집 이야기를 계속 들려주시던 철도관사의 노부부, 그리고 15년전 홍은동에 살던 기억을 이야기해주던 지인까지… 이 별것 아닌 집들을 생각하면 생각나는 이들이 있다. 그들의 시간이 쌓이 고 담겨 만들어진 것이 바로 ‘집’이다. 작고 볼품없어도 이 도시가 거쳐온 시간을 그대로 보여주는 ‘집’인 것 이다. 단순히 세우고 쌓는 것으로서의 ‘건축’을 넘어서는 ‘집’의 의미란 이런 것이 아닐까.


게임 노동 일지

글. 그림. 철민



맥주병

그러고 보니 타임라인에서 그를 못 본 지 좀 된 것 같다. 무슨 일 있나? 팔로우

목록을 펼쳐서 그의 아이디를 찾아 누른다. 마지막 트윗이 한 달 전이다. 꽤 맛이

간 느낌이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여덟, 아홉. 아홉 개의 트윗이 똑같다. 세 글자로 된 트윗들. 마시면서 올린 모양이다. 한 병 마시고 트윗,

“맥주병.”

“맥주병.”

또 한 병 마시고 트윗, 트위터 상의 마지막 흔적은 ‘맥주병.’ 아홉 개다. ‘맥주병.’들을 밀어

올리니 문장이 보인다.

“오늘은 술을 마셔야겠다.”

그는 늘 문장 마지막에 마침표를 찍었다. 시인치고는 특이했다. 보통

시에는 마침표를 잘 쓰지 않으니까. 아닌가? 어쨌든 맞춤법도 잘 지키는 것

같았다. 그의 트윗에서 오탈자를 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어쩌면 맞춤법

틀리는 걸 참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시를 쓴 뒤에 퇴고하듯 트윗도 퇴고를 거쳐 올렸을지도 모른다. 섬세한 사람인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하긴 시인이니 섬세할 수밖에.

“술집에 지갑을 남겨두고 나왔다.”

이런 트윗들을 보면 덤벙대는 사람인 것 같기도 하다. 트윗으로만 본

“우산은 언제나 내 곁을 떠나간다.”

사람이니까 어떤 사람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어쨌든 좋은 사람인 것 같다. 언젠가 한 번쯤은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가끔 사람들의 모습을 문장으로 쓰곤 했는데 그 트윗들이 좋았다. 찾아보자.

“지하철. 죽을 날이 가깝듯 비올 날도 가깝다며 우산과 비옷을 파는

“엘리베이터 안. 정장을 입고 서서, 양쪽 바지 주머니에 손을 찔러

“정장 바지 사이로 짙은 회색 양말이 보인다. 올려다보니 아저씨가

“부둥켜안고 있는 연인 옆에서 노상방뇨하는 아저씨.”

아저씨.”

넣으며 “아, 피곤하다”라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아저씨.” 옆자리에 앉은 아가씨의 문자를 훔쳐보고 있다.”

다시 읽어도 좋다. 왠지 모르게 은근한 웃음이 난다고 할까? 그가 쓴

시들도 좋을 것이다. 아마도 이런 느낌이 묻어나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그의

시를 한 편도 읽어본 적이 없다. 내가 그를 팔로우한 뒤로 그가 트위터에 자신의 시를 올린 적은 없었다. 요즘도 시집을 돈 주고 사서 읽는 사람들이 있을까?

내가 돈 주고 시집을 산 적이 있었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시 같은 걸 읽을 시간이 어디 있나. 그런데 트윗 읽을 시간은 많다. 지하철만 타면 늘 트위터 타임라인부터 확인한다. 정보들과 잡다한 이야기들이 가득한 타임라인을


훑다보면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게임보다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는 게 재미있다.

내 이야기는 올리지 않는다. 올려서 뭐하나. 그러면서 남의 이야기는 잘도

훔쳐본다. 관음증인지도 모르겠다. 그는 왜 트윗을 올린 것일까? 일종의 메모 같은 것이었을까? 그런데 갑자기 왜 그만 둔 거지? 한 달 전, ‘오늘은 술을

마셔야겠다’며 병맥주를 마시기 시작하고, 아홉 병째 맥주를 마신 뒤에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일까? 왜 이렇게까지 그가 트윗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생각하고 있어야 하는 거지? 아무렴 어때. 오늘은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다. 그냥 시간을 보내고 싶다. 다른 생각을 계속 해야 한다. 해야만 한다. 어쩌면

그는 여자친구와 헤어졌을지도 모른다. 헤어진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근황을 알리고 싶지 않은 것이다. 이별통보를 받은 뒤, 혼자 바에 앉아 병맥주를 시켜 마시고, 또 시켜 마시고, 그렇게 트위터 상에 맥주병 아홉 개를 남겼을지도

모른다. 꽤나 괴로웠을 것이다. 술을 마시는 내내 여자친구 생각이 났을 것이다. 가뜩이나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니, 아니다. 그가 감수성이 예민한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시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다 감수성이 예민하다고 할 수는 없다. 아, 미치겠다. 자꾸 생각이 난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 그런데 보고 싶다. 팔로우 목록에서 그녀의 아이디를 찾는다. 누른다. 아니다. 이래서 좋을 게 없다. 다시

타임라인을 누른다. 그만 생각하자. 끝난 거다. 그래도 보고 싶다. 본다고 달라질

건 아무 것도 없다. 하지만 그래도 보고 싶다. 핸드폰 전원을 끄자. 잠금 버튼을 오래 누른다. 밀어서 전원 끄기. 술이나 마시자. 술집 어디든 가서 병맥주를

시키자. 잠금 버튼을 오래 누른다. 트위터를 켜고 오랜만에 트윗을 쓴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요?

“오늘은 술을 마셔야겠다.”

트윗 버튼을 누른다. 완료. 그의 시집을 한 권 사서 읽어볼까? 그런데

왜 트윗을 안 하는 거지? 진짜 헤어졌나? 실연의 아픔을 시로 풀어내고 있는 건가? 유치한 시가 잔뜩 나오겠네. 코트를 입고 밖으로 나와 걷는다. 춥다. 이제 더 이상 그녀를 볼 일은 없다. 사귈 수 없었다. 더 이상 친구도 아니다.

더 이상 보지 않기로 했다. 서점에 들어간다. 그의 이름을 검색한다. 없다. 응? 한 번 더 검색한다. 없다. 그가 저자인 책이 없다. 핸드폰을 꺼내 브라우저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한다. 그가 쓴 시집이 없다. 뭐지? 아, 작년에 등단했구나.

아직 시집이 나오지 않은 건가. 왠지 김이 빠진다. 등단은 어디로 했나? 문예지 등단이구나. 그럼 도서관에 가서 읽어볼까? 뭘 그렇게까지. 제목은, 맥주병?

그럼 헤어져서 맥주를 마신 게 아닌가? 시가 잘 안 써져서 그냥 트윗을 한 건가? 요즘은 시를 쓰느라 트윗을 안 하는 건가? 가끔 가는 바에 들어간다. 병맥주 대신 생맥주를 주문한다. 트윗,

“맥주잔”

올린다. 하나 째.


사라지는 사이

바다비 일요 시극장 2014.12.28 http://cafe.daum.net/badabie


또,또,또 한해가 다가고 12월이다. 우리는 언제나 1월에 계획을 세우고 12월에 이루지 못한 계획에 아쉬워하고 내년으로 넘기며 내년에는 기필코 이룰꺼야라는 다 짐을한다 한해한해 먹어가는 나이를 탓하고 남을 의식을 하며 엄친아 엄친딸이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키며 나라는 독립적인 인간을 독립된듯 독립한듯 구속받는 나로 만든다. @odeng2004 보통 자기 주위에는 다들 열심히 사는거 같고 나도 나름 열심 히 사는거 같은데 제자리인 내상황을 되돌아보거나 내가 젤 못

그까이꺼 뭐 대충

난거같은 자책에 빠지다가 또 내년에는 더열심히 살아야지라 며 나에게 채찍을 가하고 계획을 세운다. 물론 아닌 사람들도 많을것이다. 부모님들 세대는 다들 열심히 사셨기때문에 부모님 눈에 우리 가 무언가를 이뤄 놓지않고 그런 과정이 당신들 눈에 탐탁찮으 면 열심히 살지않는것처럼 여기시기에 잔소리를 듣게 마련이 다. 필자도 마찬가지로 내또래 아니 나보다 한참어린친척들이 모두 결혼을 다하다 보니 결혼관련 잔소리를 종종 듣곤했다. 그 러면 주제를 다른데로 흘리며 실제로는 그렇게 열심히하지 않 는 장사를 열심히하며 그닥 열심히 돈을 모으지도 않지만 돈도 열심히 모으고 있다며 걱정마시라며 안심을 시킨다. 그럼 항상 그래 열심히 돈이나 벌라고 하시던 아버지.... 아버지는 군대를 전역하시고 나서는 일흔이 다가오는 지금 현 재까지도 끊임없이 일을 하고 계신다. 그러다보니 자식된 도리로 열심히 하기싫다 쉬고 싶다는 말은 꺼내지도 못했는데 얼마전 통화에서 내가 아버지에게 요즘 돈 벌이 어떠냐고 안부를 여쭈자 하시는 아버지의 말씀... 50년 열 심히 살아봤는데 별볼일 없다고 하시며 아버지는 이제 대충살 테니 너도 그냥 대충살라고 하신다. 그래서 아버지의 말씀을 잘 듣는 효자는 내년에는 좀 대충살려고 한다. 여러분은 2014를 어 떻게 보냈으며 또 다가오는 2015년은 어떤계획을 가지고 있는 가?

부 산 오 뎅 이 야 기


국가란 무엇일까? (12회)

한 해의 끝이다.

나는 무엇으로부터 도망쳐왔는지 이렇다 할 글 하나를 못남기고 연말을 맞은 기분이다. 참으 로 착잡하다. 그럼 지금 바로 이곳에서 나는 희대의 역작을 남길 수 있을 것인가!?!

불가능하다. 능력이라는게 하루에 빼어나지는 것도 아니고, 없는 능력을 눈덩이 굴리듯 굴려 키울 열의도 없는 상황이다. 삐딱하게 몸을 구기고 앉아서 무표정하게 이 글을 쓰고 있다. 거 북 목이 된 나의 목이 당긴다. 처음에는 무척 잘 쓸 수 있을 것 같았던 연재가 여러가지 국난과 개인적인 게으름과 무지로 기세가 꺾이고 연말을 맞이 하니 산타할아버지 볼 면목이 없다. 하 긴 이맛에 어른을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늘상 좌절한다. 기대하기 때문에 좌절하고 두걸음을 바라기 때문에 고꾸라진다. 일취 월장이라던가 혁명적이라던가 이런 단어는 뱉기는 쉽지만 이루기에는 참으로 어려운 말인것 같다. 오히려 육두문자가 더 친숙하다.

삶에서 이상보다 비난과 욕이 더 친숙하다는 것은 애초에 모든 삶이 더딘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역시 지금도 시발시발 하면서 글을 쓰고 있다. 누군가 대통령 이 된다고 당장에 나라가 망하는 것도 아니지만 괜찮은 대통령이 있다고 당장에 시대의 생각이 발전하는 것도 아니다. 예전에는 그게 되는것인가 했는데, 왠걸 지나고 보니 말짱 도루묵이다. 개인의 생각을 내 생각인양 착각했던 것 같다. 나는 그간 국가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많은 이 야기를 했던 것 같았지만 오늘 마무리글을 쓰기위해 생각을 되돌아보니 모든 글은 다 하나의 단어로 이어지고 있었다.

공동체.


회복하자. 우리, 아끼자 서로,

쉽지 않은거 나도 안다. 나도 미워하는 사람도 많고 욕도 많이 하는데 조금만 더 멍청하게 굴 어보자. 조금더 서글피 울고 조금더 우직하게 앉아서 힘을 실어줘보자. 이말이다.

공동체

겨울이 되면 손끝이 먼저 시리듯 사회의 주변에 내몰린 사람들이 가장 추울게 뻔하다. 장갑 좀 끼워주자. 장갑이 없으면 나중에는 팔목을 잘라내야 하고 그 다음엔 뻔히 몸과 심장이다.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단 말이다.

물론 그전에 다들 늙어죽을것이다.

공동체

마음에 하나만 담아두자. 우리는 하나다.

그리고 공동체의 공정함을 훼손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칼같은 시선을 거두지 말자, 취향이 아 니라 공정을 훼손하는 것들에게 용서를 남기지 말자.

시원하게 원기옥 한번 쏴보자. 어디로 저 악의 무리에게로

끝.

글. exxx


좋은 연말 보내세요 보네세요 좋은 연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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