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 입니다. 비밀 동툰 / 글. 그림. beamil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 글. 사진. 아홉시 영화로 읽는 시공간 - Fury, Brad Pitt, 그리고 잡동사니 한국영화 돌려 깎기 - 북촌방향 / 글. 최지원, 곡주대비, 박이현 나의 4수 이야기 - 대장정의 서막 / 글. 지하실의 거인 기록에 대한 기록 - 틀려먹은 (나와) 당신과 선 자리 / 글. 박이현 여기 문학이 필요한시간 - 작자미상 「박씨전」 / 글. 고수진 작곡가 B의 노트 - 예술인, 맞습니까? / 글. Composer B 놀고 먹고 그리고 / 그림. 김혜리 송창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 세상기준과 조금 다를 뿐 / 글. 박재현 idology’s pick - 인터뷰 : 덕후 시트콤 [일반인 코스프레], 리스너를 위한 화성학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소개소 / 글. 신당동 파르한 낭만 스파이 - 인사 / 글. 사진. 낭만스파이 #898F86 : 벽에 남은 포스터 흔적 / 글. 사진. 김성연 건축이 좋아 - 20세기 예술의 신전,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 / 사진. 글. aoikasa 게임 노동 일지 / 그림. 글. 철민 물질과 비물질 - 식빵 / 사진. 황은정 글. 김종소리 부산오뎅 이야기 - 사나이의 속사정 / 글. odeng Road - 1. 김치 / 글. exxx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5년차 입니다. 군대도 2년을 갔다왔는데, 이 것을 4년 넘게 부여잡고 있었다니.. 그간 어떤 일들이 있으셨나 모르겠습니다. 저희의 초기 의도였던 누군가에게 영감 을 줄 수 있는 잡지가 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많은 문화 예술이 공감을 중요시 한다지만 저는 공감은 그냥 함께 일을 하고 함께 삶을 영위하는 지인들과의 사이에서 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울고 웃는 그 안에서 공감하고 문화와 예술은 여러분의 오감을 자극하고 다음 단계에 대한 이 야기를 하고 제시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끝내주는 작품을 보고 와서 익숙하게 공감해 왔던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다음 단계의 무언 가를 만드셨으면 좋겠습니다. 한발짝도 나아가지 않는 것에 열광하기보다 넘어져도 나아가는 것에 열광하는 독 자분들이 되기를 기원하면서 올해의 첫 인사를 마칩니다. 빛나게 늙어갑시다. 월간이리 연재문의 는 exxx2x@gmail.com 이나 @postyri 로 문의주시면 됩니다. 친절한 안내 보장합니다.
편집: 이훈보 공식트위터 @postyri
표지: 이주용
비 밀 동물툰 Animal Toon by BEAMIL
* 2014년에는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나름 위트있게, 뜨끔하게 쓰고 그린 짧은 만화를 기고합니다. 팩트를 뒷받침하는 기사와 간단한 의견도 함께입니다. 많이 공감해주세요. 제보도 감사합니다. twitter@ / _beamilie
* 지난 호에서는 비 오는 합정동에서 - 그리고 도쿄의 한 공원에서 - 만난 길고양이 이야기를 했었죠. 이번엔 구로에서 만난 개 한마리에 관한 이야기를 해봅니다. 첫 번째 만남은 치킨집 앞에서 ㅡ 노상에 바글바글한 사람들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ㅡ 2m 정도의 거리를 두고요. 두 번째 만남은 조금은 허름한 집들이 줄지어 있는 골목 안에서 ㅡ 4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앉아 저를 빤히 바라봤죠. 사실 그 아이의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아요. 그저 따뜻하면서도 굳은 심지를 느낄 수 있는 눈빛만 어렴풋이 기억이 납니다. 첫 번째 만남 때에는 얼른 편의점에 뛰어들어가 소세지를 사서 나왔지만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고, 그나마 두 번째 만남 때에는 친구 들과 먹고 남은 탕수육을 얼른 꺼내 멀리에 두고 제가 먼저 돌아섰습니다. 벌써 두 달째 녀석은 보이지 않네요. 너무 사력을 다 하지 않는 선에서, 동네 분들에게 묻고 다니고는 있는데 아무도 녀석을 모르네요. 제가 꿈을 꾼 것일까요? 가족같던 강아지를 잃은 뒤로 ㅡ 고양이 외에 ㅡ 처음 마음이 쓰이는 개였습니다. ㅡ 아무래도 상사병인 듯. ㅡ 꽤 큰, 말 그대로 똥개인데..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걸까요? 왠지 모르게 우리 고양이들과도 잘 지내줄 것 같던 큰 똥개.. ! 제가 욕심이 큰 걸까요? 그래도 새해에는 우리 관계에 조금의 진전이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들에 대한 ‘관심’ 끝없는 경제성장이 정부와 주요 금융 기관의 목표로 남아 있는 한, 그리고 기업의 손익 계산이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넘어선 목전의 이익에만 계속 머무르는 한, 세계의 너무 많은 거주자들이 빈곤이 경감되지 않는 채로 계속 살아가는 한, 자연에 대한 범죄는 계속될 것이다. 관심을 가 지고 이해하는 우리들은 맞서 싸우기 위해 원하는 모든 방법을 사용해야만 한다. 우리는 일부 전투에서는 질 수도 있지만, 포기해서는 안 된다. 제인 구달『희망의 씨앗』 중에서
우리 사회의 일순위 목표가 경제성장이라고요? 그래요. 맞아요. 그래도, 사회적 약자와 동물복지 또한 매 해 함께 성장하고 있다고 믿고싶습니다. 새해엔 훨씬 더 멋진 세상을 바라며..
인터넷이 되지 않는 지역을 떠돌면서 하얀 백지를 보내온 그에게 편집인은 뭐라 할 말을 잃고...
영화로 보는 시공간 : 신년호 전쟁영화 스페셜 (평화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Fury, Brad Pitt, 그리고 잡동사니
최근작, Fury (개봉 타이틀: 퓨리) 를 전쟁이란 단어를 빼고 소개해 보자. 피가 흥건한 길 위를 시체가 나무 마다 걸려있는 풍경을 보며 피딱지가 마르지도 않은, ‘차’가 아닌 탱크로 헤쳐가는 로드 무비? 슬 리피 할로우 (팀 버튼 작, Sleepy Hollow)같은 호러 물로 읽힐 수도 있으니 다섯명의 때국물이 줄줄 흐 르는 군복 입은 남자들이 주인공이란 것을 덧붙여 보면 어떨까? 난 전쟁영화가 좋다. 늘 그랬다. 아주 어렸을 때 부모님 어깨 너머로 보았던 지옥의 묵시록 (Apocalypse Now)도, 주말에 명화에 걸핏하면 걸렸던 플래툰 (Platoon)도, 머리 크고 나서 뭐 좀 안다 싶을 때 내 돈 주고 극장가서 보았던 라이언 일병 구하기 (Saving Private Ryan) (그것도 세 번이나) 까지, 전쟁영화 는 항상 날 설레게 했다. 역사의식이 뛰어나서도, 유난히 총명하여 선과악의 모호함을 미리 깨달아서 도 아니다. 냉정하게 말하면, 위에 서술한 요소들이 날 흥분하게 했다. 젊은 남자들이 아드레날린 넘치 는 호기로 머신 건을 난사하고, 그들이 스쳐가는 곳엔, 흡사 슬래셔 영화를 보듯 피가 흘러 넘쳤다. 청초 한 자연을 물들이는 붉은색이 주는 카타르시스에 마냥 매료되었다. 그러한 섬뜩한 취향을 가진 여자아이가 서른 중반이 되어 fury 라는 전쟁 영화를 보았다. 실로 오랜만 이었다. 영화 한 편이 날 압도하여 가슴을 짓이긴 것이. 엔드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극장 청소가 시작 되 도, 다리에 힘이 풀려 일어날 수가 없었다. 사실 돌이켜 보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오프닝 (그 악명 높 은) 노르망디 시퀀스도 비슷한 충격을 주긴 했었다. 젊은이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 가슴이 저렸다.
동시에 (이율 배반적이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로 ‘장인’ 계열에 서게 된 야누스 카민스키 (Director of Photography: Janus Kaminsky)의 사진 촬영이 경이로웠다. 그렇다면 비슷한 시기와 같은 전쟁을 다루고 있는Fury는? 어떤 시각적, 인식적 가치가 이 영화를 애국 가 부르듯 찬양하고 싶은 걸까. Fury를 범작 이상으로 보고 싶게 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는 공간의 활용이다. 영화의 70% 이상이 한 뼘 남짓한 탱크 안 에서 이루어 진다. 카민스키가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오프닝 시퀀스 에서 바래고 거친 재질의 색감을 원경씬 전면에 사용해 죽음의 차가움과 잔인함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면, 퓨리는 이와 반대로, 배틀과 전장 장면들을 광활한 원경씬 (establishing shot) 이 아닌 좁디 좁은 망원경으로 관찰하는데 그것을 목격하는 탱크 안에 군인들의 두려움이 그 작은 공간 안에서 전이되고, 증폭된다. 그리고 이 영화의 드라이빙 포스 (driving force)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의 주인공, Brad Pitt. 광기 와 두려움으로 가득 찬 좁은 탱크 혹은 허무 할 정도로 넓은 전장을 압도하는 것은 Pitt의 연기다. 그의 씬 하나 하나를 눈에 담으며 계속 같은 말을 되 내었다 – “이런 미친... 진짜 미친…” 그는 전쟁터에서 몇 세기를 살아낸 나무 같았다. 목석 같이 냉정하지만 아낌없이 주는 나무. 인간성 ‘humanity’ 라는 건 종이짝 만큼 도 존재하지 않듯 냉기를 유지하다가도 부대원들 뒤로 돌아서자마자 유리조각 처럼 부서져 버리는 그의 눈이, 입술이…그 사이에 아슬아슬 하게 물려있는 벌벌 떨리는 궐련 까지. 그를 보는 순간 순간 마다 재갈을 문 것 처럼 숨을 쉴 수가 없었다. 감동적이라는 표현이 천박 하 다. 죽어가는 동료를 바라 볼 때의 그의 슬픈 눈이나 그나마 살아 남은 몇 안 되는 동료들과 저질 농담 을 하며 억지로 웃어 재 낄 때 짓는 공허한 시선은 가히 피상적인 수식어로는 서술해 낼 수 없을 듯 하 다. 피트의 연기 초년 시절의 작품, 가을의 전설을 떠오르게 하면서도 재능을 타고난 배우가 다년 동안 쌓아온 수완을 얹어 내 빚어내는 최고의 연기가 아닐까 싶다. 이 작품에서의 그는 흡사 껍데기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다. 혹시 그는 껍데기 뿐 인 인간이고, 신이 매 영화마다 그가 맡는 캐릭터에 맞는 피와 장기를 채워주는 건 아닐까. 좋은 영화는 관객으로 하여금 ‘고해’ 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영화가 주는 문제성이나 혹은 그것과는 별개의 미학을 즐기는 데서 오는 경이로움이 근본이 뚜렷하지 않은 반성도, 침통함도 갖게 한다. 참으 로 오랜만에 고해하듯 영화를 보았다. 또 한번 회개 했다. 내가 이번 생의 방점을 영화로 찍은 것 에 대해 나도 모르는 의구심과, 후회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기도했다. 내가 평생 본 나뭇잎 수 보 다 더 많이 죽어 쓰러진 생명들이 저 세상에서 행복 하기를. 다시는 그런 추악한 비극이 이 땅에서 일 어날 수 없기를. Ideals are peaceful. Histories are violent. –Sgt. Collier from Fury글. 곡주대비
최지원:
곡주대비 (hjkanjy@gmail.com) :
강력반 형사인 고건수(이선균)는 감찰반이 내부 수사를
한 줄 감상평 으로 시작하자면, 정말
나왔다는
간만에 “영화 참 잘 만들었다” 고 극찬
동료
형사의
연락을
받고,
급히
어머니의
장례식장을 빠져나온다. 건수는 정신없이 차를 몰고 도로를
했던 한국영화가 아닌가 싶다.
달리다가 얼떨결에 사람을 치고 만다. 장례식장으로 돌아간
이 영화를 보던 주 앞뒤로 군도나 명량
건수는 사람들 몰래 어머니의 관에 시체를 숨긴다. 얼마 후
같은 블록버스터들을 보고 실망이 컸던
강력반 형사들은 실종된 시체를 찾기 위한 수사를 진행하고,
바 였다.
동시에 그의 범행을 목격했다던 의문의 남자가 건수를
영화를 보며 가장 참신하다고 느낀
협박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견수는 숨 돌릴 겨를도 없이
것은, 소위 다른 유사 ‘누명 장르’들의
계속해서 위기에 처한다. 이러한 위기들은 영화에 긴장감을
영화, 예를 들어 테이큰이나, 마이노리티
불어넣는다. 이것은 단순히 영화 곳곳에 위기들이 놓여 있기
리포트, 본 시리즈 , 에너미 오브 더
때문이 아니다. 물론 주인공이 겪는 위기들은 액션 영화의
스테이트 등, 처럼 남자 주인공을 그려
재미를 만들어주는 요소로 작용한다. 그렇다면, 액션 영화는
내는 작법이, 그가 가진 뛰어난 액션이나
위기의 상황들을 많이 만들어낼수록 재밌는 것인가? 이
지능, 혹은 배우의 탄탄한 육체에 기대고
영화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사실상 이 영화 또한 꼬리에
있지 않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꼬리를 무는 것처럼 연이어 위기들이 들이닥친다. 하지만
이선균 배우 (그의 멜로우한 목소리
감독은 위기의 상황들을 단순히 나열하지 않는다. 이
마저도 이 영화에서는 매력 포인트 라기
영화에서 위기의 상황들은 끊임없이 전복된다. 위기를 모면한
보다 악쓰고 떼쓰는 데 쓰인다)는 위에
건수가 안도하는 찰나, 곧바로 예상치도 못한 또 다른 위기가 건수에게 들이닥친다. 마찬가지로 관객은 건수와 함께 잠시 숨을 돌리다가도 어느덧 긴장감을 놓지 못한 채 조마조마하며 건수의 행적을 따라간다. 안도감과 긴장감의 반복으로 인해 관객은 어느덧 건수가 처한 상황에 빠져들게 된다. 이처럼 이 영화는 화려하고 역동적인 액션이 아닌, 장면들의 전개 방식만으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특히 초반부의 장면들이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건수가
끝 까
어머니의 관에 시체를 숨기는 장면을 다시 살펴보자. 사람들 모르게 어머니의 관에 시체를 숨긴 건수는 안도하며 여러 번 짧게 숨을 내뱉는다. 그 순간 시체의 주머니에 있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리기 시작한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경비의
지
발소리와 잠깐 끊기다가도 다시 울리는 휴대폰 벨 소리에 건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하염없이 못 박힌 관을 두드린다. 건수는 울먹이며 이렇게 말한다. “다 왔는데. 엄마, 엄마가 좀 어떻게 해 봐.” 이처럼 이 영화는 우리의 예상을 끊임없이 뒤엎는다. 건수뿐만 아니라 우리도 이 영화의 한치 앞을 전혀 알 수 없다. 결국 우리도 끝까지 가봐야 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끝을 향해서, 땀을 뻘뻘 흘리며 달려가는 건수를 따라가 보자.
간 다
참고로
서술한 영화 주인공들이 가진 육체, 액션 테크닉, 명석한 두뇌 그 하나도 가지지 못한, 그야 말로 억울할 대로 억울한, 운 없는 부패경찰 일 뿐이다. 이러한 캐릭터 설정으로 시작하다 보니, 그가 넘겨내는 한 개 한 개의 위기나 셋업이 그렇게 신통방통 하게 느껴질 수 가 없다. 또한 그가 매 번의 위기를 풀어내는 방법들이란 것이 지극히 ‘그’ 답다. 다시 말해 이 영화는 히어로에게 어울리지 않는 무리한 액션이나 전법을 설정하지 않는다 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가 어머니의 관 속에 본인이 치었다고 믿는 시체를 같이 넣기 위해 장례식장에 잠입하는 씬에서, 감시 카메라를 가리기 위해 풍선을 이용하는 것이나, 시체를 바깥에서 냉동고로 운반하는데 딸의 장난감 솔져를 이용하는 방법은 명석한 두뇌라기 보다, 타고난 잔머리, 즉 이선균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의 유일무이한 재주 – 정도로 고안해 낼 수 있는 해법이란 것이다. 영화가 개봉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씨네 21 김혜리 기자가 이 영화에 대해 평을 하는 방송을 듣게 되었다. 그녀는 이 작품 속 의 이선균에 대해서 “세상에서 가장 억울한 역을 잘 하는 배우” 라고 농담처럼 말했는데, 가히 완벽한 수식어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이런 유약한 히어로가 대적해야 하는 악인은 어떠한가. ‘끝까지 간다’에서는 조진웅 배우가 악역 (더 심한 부패경찰) 을 맡고 있는데 흥미로운 것은 이선균 캐릭터가 갖지 못한 히어로의 모든 덕목들 , 즉 뛰어난 머리, 강인한 체력, 액션 스킬, 그리고 권력 , 까지 조진웅 캐릭터에 몰려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 뻔한 이 “능력자 대 찌질한 자” 혹은 강자 대 약자 의 싸움이 설득력 있는 이유는 영화가 보여주는 앞서 언급한 찌질한 자가 대처하는 설정들이 수퍼 악인을 이겨 먹을 정도로 영리하고 그럴 듯 하기 때문이다. 며칠 전 ‘끝까지 간다’가 청룡영화제 각본상을 받았다. 영화를 보는 중에도 이미 예상 했던 결과였다. 올 해가 가기 전 이런 ‘그럴 듯 한’ 영화 한 편 더 보고 싶어 진다.
한국영화 돌려 깎기
박이현 : 어디가 끝인데? 궁지. 매우 곤란하고 어려운 일을 당한 처지를 뜻하는 말
이 영화는 그 대단한 힘으로 고작해야 ‘우리 모두 깨끗
이다. <끝까지 간다>는 궁지로 간다. 주인공을 궁지로
한 사람은 아니잖아’하는 결론에 가닿는다. 사회나 제
몰고 간다. 이 영화는 극단을 설정해놓곤 금세 그걸 깨
도에 대해서 혹은 인간에 대해서 더 성찰하게 하는 바
부수고, 더 극단으로 밀고 나간다. 그게 이 영화의 힘이
도 없으며 비틀어내는 위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 스릴
다.
말고는 남는 게 없다. 그렇다고 내가 바른생활주의자 는 아니다. 영화가 애써 교훈 같은 걸 남길 필요도 없
이선균이 열연한 고경수 경사는 어머니 상을 당하고 급
다고 생각한다. 있다고 생각하는 쓰레기들이 <명랑
한 일로 차를 몰다 사람을 치고, 다른 경찰에게 음주 운
> 같은 영화를 만들었지. 하지만 그래도 좋은 영화는
전으로 단속된다. 상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경찰서에 들
무언갈 남긴다. 예컨대 내가 좋아하는 <브라이튼 록
이닥친 감찰반에게 상납받은 게 적발되는데, 동료들은
>(1947) 같은 느와르 영화들은 침을 거듭 삼켜도 입에
독박을 써라고 한다. 시체를 어머니 관에 넣고, 웬 모를
맴도는 인생의 비릿한 맛을 남긴다. <끝까지 간다>는?
놈에게 협박당하다가 맞고 때리고 쫓고 쫓기고. 영화가
에이, 퉤. 끝까지 쓰지 않으련다.
시작한지 전반부가 다 가도록 <끝까지 간다>는 끊임없 이 밀어붙인다. 주인공의 곤란함은 끝없이 팽창하며, 관 객은 긴장감으로 쪼그라든다. 그래, 스릴. 감독은 스릴을 주조하기 위해서 이 장르에서 개발된 장치들로 떡칠을 해뒀다. 사물 클로즈업이 여기 저기 삽입되어있으며, 카메라를 손에 들고 정신 없이 뛰 어다니며, 음향을 과장되게 증폭하고, 불협화음을 내는 현악기로 영화를 비벼뒀다. 긴장감으로 일그러진 이선균 의 얼굴은 가끔 어색하게 느껴지지만, 악역 박창민 역할 을 맡은 배우 조진웅의 빵빵한 표정은 위트있는 대사와 어우러진다. 조진웅은 땀이 차서 미끄러질듯한 영화에 서 늘하면서도 간지러운 바람을 불어넣는다. 그래, 스릴러. 인물은 알고 관객은 모르면 추리물이다. 인물도 모르고 관객도 모르면 미스테리다. 스릴러는? 인 물은 모르는데 관객은 알아야 한다. 그래서 영화는 여 기저기 사건의 단초들을 흘린다. 이를테면 검은색 중형 차나 방아쇠라거나 하는 사물들, 그리고 그 사물들에 연 결된 실, 실마리. 영화가 풀어둔 실뭉치를 부여잡고 우리 관객들은 영화의 끝으로 간다. 몇몇은 ‘<끝까지 간다>는 정말 끝까지 가는군’하고 말 할 지 모르겠다. 다른 몇몇은 ‘에개, 끝까지 가긴 뭘.’하 고 혀를 찰 수도 있고. 그런데 그 끝은 어디인가? 스릴의 끝, 서사의 끝, 영화의 끝은 도대체 무엇인가?
너무나 강렬하게 낯설어서 내 밖의 세상에는 별다른 느낌을 갖지 못했다. 나와 연결된 것들이 점점 떨어져 나가는 시기였다. 아직도 잘 이해할 수 없는데, 친구들은 수능이
기
야
의
4
수
이
끝나자마자 귀신같이 컴퓨터 학원에 다니고, 쌍꺼풀 수술을 했다. 다른 옷과 다른 구두를 신고. 그때
나
처음 사람이, 각자에게 주어진 인생이 다르다는 것을 절감했다. 친한 친구가 합격한 대학의 신체검사를 글. 지하실의 거인
앞두고 다이어트를 한다고 했을 때나, 입학도 하기 전에 선배가 밥을 사줘서 서울에 다녀왔다는 얘기를 들을 땐 어쩐지 당혹스럽고, 슬펐다. 그래서 변해가는 친구들이 이제 막 고3의 죄책감을 벗고, 열광적으로
1. 대장정의 서막
시작한 싸이월드에 올라오는, 소주잔이라든지 B형
나는 4수를 했다. 수능을 네 번 봤다는 말이다. 이유는
여자를 사랑하지 마세요라든지 하는 것들을 보며 종종
위대한 인생을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나,
울었다. 나를 원망해야 한다는 걸 깨닫지 못해서, 괜히
동방신기나, 한비야(그땐 인기 많았음)가 되고 싶은
나를 잊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친구들을 원망했다.
게 아니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마냥 위대할 것만 같은 내일을 그냥 잘 살아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삶은 ‘
재수를
위대한 대학’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그렇게 믿었다.
아르바이트였다.
결심하고
강요하는
안에
성인이라는
숨어있던
내가
가장
먼저
사람은
한
없었으나,
정체성이
것은 내
튀어나와
꼭 십 년 전인 2004년 19살 겨울 재수를 결심했다.
아르바이트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을
갈 곳이 없어 시립도서관 열람실에 앉아 책을 읽다가,
들게 했다. 교보문고 물류센터에서 새벽 6시부터
불현듯 재수를 해야 하는 이유를 신들린 듯 적어
정오까지 일했다. 일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으나 새벽
내리곤 유레카를 외치며 집으로 돌아가 당당하게
여섯 시까지 출근하는 게 곤욕이었다. 번번이 지각하고
재수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결근했다. 추운 겨울 아무도 없는 깜깜한 밤을 혼자 걸어 셔틀버스를 타고 출근해 목장갑을 낄 때마다, 내
2004년은 엄청난 해였다. 911테러 이후 미국이
인생이 영원히 이 깜깜함과 차가움에 갇혀있을 것만
이라크를 침공한 지 1년여 만에 사담 후세인이
같아 두려웠다. 내 특별할 것 없는 스무 살은 그런 풍경
체포되었고,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태가 일어났으며, 그
속에서 시작됐다.
여파로 제17대 총선에서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이 과반의 의석을 얻는 전대미문의 일이 벌어졌다. 로또가
그게 십년 전이다. 요즘은 친구들과 이십 대 추억여행을
1,000원으로 인하되며 전국적인 로또 광풍이 불었고,
하느라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실 대학생이 되고,
<올드보이>가
뒤처진 시간을 만회하기 위해 바쁘게 살아가는 동안
칸에서
심사위원대상을
받았으며,
3,300원의 기적 미샤가 우리 동네에도 생겼다.
수능을 네 번이나 봤다는 사실도 완전히 잊어버리고 살았다.
그러나
이제
와
돌이켜보니,
남들처럼
그해 12월, 미디어는 큰 목소리로 이상의 사건들에
영화보고 책 읽고 여행하는 것이 취미인 나에게,
대한 저마다의 평을 다시 쏟아냈고, 대입 정시 논술을
사수만큼 특별했던 경험은 없는 것 같다. 그래서 그
앞둔 친구들은 이 주옥같은 떡밥을 훑느라 정신없는
시절을 적어보려 한다. 또 하루 멀어지기 전에, 점점 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나는 다음 학년이 없는 내일이
멀어지기 전에.
기록에 대한 기록 : 틀려먹은 (나와) 당신과 선 자리 연극 <올리아나 : 어느 쪽에 서든 당신은 틀렸다>(2014, 윤가람 연출) 리뷰 박이현(현대쎈타 http://medium.com/centah-news)
연극 ― 지식이 서 있는 자리 무대 배경의 책장에 꽂힌 책들에 눈이 꽂혔다. 연극이 시작되고도 나는 홀린 듯 책장의 리스트들을 훑고 또 훑었다. 거기에는 『파우스트』와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시리즈부터 까치 출판사에서 나온 서적, 몇몇 그래픽 서적 등이 꽂혀있었는데, 나는 도무지 이 책들의 일관성을 찾을 수 없었다. 한눈팔다가 귀를 배우에게 돌리고서야 나는 무대 위에 서 있는 한 남자가 교육학 교수이며 한 여자는 그 제자라는 걸 알게 됐다. 그런데 남자의 책장에 자리한 책들은 도무지 교육학 교수의 그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흔한 교육학 개론서 하나 없으며, 그 분야 서적이 없다는 것 말고도 책들에는 통일성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이 난잡한 콜렉션이 오히려 이 연극과 아주 잘 맞는 무대 연출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대 배경의 책은, 책이 수행하는 교육이라는 기능 그 자체, 혹은 책이 담고 있는 지식 그 자체를 시각화한 오브제라고 해석할 수 있다. 혹은 이런 기능을 수행하는 인쇄된 책이라는 미디어를 핵심 소재로 다룬 연극으로 <올리아나> 를 읽을 수 있다. 그렇게 보자면 <올리아나>는 명쾌한 연극이다. 단 하나의 장소에 단 두 명의 인물이 등장하는, 조리 있는 극이다. 이 연극에서 시간은 달력과 시계에 고정되어 있으며, 배경이 되는 방은 추상적이지 않다. 상황이 뒤죽박죽 섞여 있지도 않고, 배우들이 해괴한 몸동작을 한다거나 진부한 말장난을 치지도 않는다. 인물(character)에는 거의 특유성(characteristic)이 없다. 그리하여 그 개성없음으로 인해 두 인물은 쉽게 어떤 전형 혹은 알레고리로 읽힐 수 있다. 그 두 인물이 서 있는 자리를 그려보자. 교수, 남자, 연장자, 권력자는 지식의 대변인이다. 교수 존(John)은 일종의 대명사로서 어린 여학생 캐롤 앞에 서 있다. 시소는 평평하지 않으며 존의 쪽으로 기울어져 있다. 존은 종종 캐롤에게 짜증을 내며 반말을 섞어 퉁명하게 대답을 한다. 1막에서 질문을 하러 온 사람은 캐롤이지만 질문권은 존에게 있으며, 그에게는 대화를 중단할 권리도 있다. 원작가 데이비드 메멧의 말처럼 『올리아나』는 힘에 관한 연극이다. <올리아나>의 1막은 지식으로 인해 생긴 위계와 권력관계를 슬쩍 드러내 보인다. 2막과 3막에서는 존에게 기울어진 시소를 반대편의 캐롤로 뒤집어내는 가상적인 순간을 관객에게 제공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보다 <올리아나>는 지식과 권력에 대해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한다. 지식의 위치는 어디이며 그 효과는 무엇인가? 지식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지식은 어떻게 권력을 갖게 되며, 우리는 여기에 어떻게 대항할 수 있을까? <올리아나: 어느 쪽에 서든 당신은 틀렸다 >에는 이 질문들에 대한 단초가 있다.
미디어 ― 법과 명령이 서 있는 자리 <올리아나>의 1막에서 여대생 캐롤은 교수 존의 방을 찾아가 강의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며 도움을 청한다. 캐롤은 존에게 “‘법령 용어’가 뭔가요?”라고 묻는데, 데이비드 메멧은 “term of art” 즉 “기술 용어”라고 쓴 걸 < 어느 쪽에 서든 당신은 틀렸다>은 “법령 용어”로 각색했다. 아무튼, 남자는 “법과 명령에 관한 용어”라고 답한다. 저 대답에는 ‘법’과 ‘명령’이 있다. 나는 법과 명령의 자리를 두 장소 즉 전화와 책이라는 미디어에 두고 보려 한다. 이들 미디어는 <올리아나>에서 도드라진 존재다. 사물 즉 비인간 행위자인 이들은 단지 수동적이지만은 않다. 인물 즉 인간행위자의 수단으로만 남아있지 않고, 그들은 어떤 ‘행위’를 한다. ‘명령(命令)’이란 단어는 입 즉 음성언어와 관련 있다. ‘하여금 령(令)’은 ‘사람 인(人)’과 ‘병부 절(卩)’이 합쳐져 만들어진 한자로, 일을 시키기 위해 사람들(人)을 모아 그들의 무릎을 꿇린다(卩)는 의미다. 한편 일을 부리기 위해선 입으로 말을 하여 뜻을 전해야 하므로 ‘입 구(口)’가 ‘하여금 령(令)’를 합쳐 목숨 명(命)자를 만들어, ‘ 명령’이라는 한 단어가 만들어졌다. 말을 전하는 전화는, 그리고 전화벨은 우리에게 “받으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 명령은, 전화는 존과 캐롤의 대화를 중단시킨다. 연극의 서사는 즉 수업에 대한 상담과 때로는 사적인 교감, 그리고 둘의 갈등은 전화 때문에 종종 끊긴다. 전화는 시도 때도 없이 걸려와서 전화기가 놓인 현장의 상황을 중단하는 동시에, 존과 그의 방 외부 (에 있는 누군가)를 이어준다. 그런데 이 전화는 존에게만 걸려오며, 존만이 받을 수 있다. 고립된 방에서 존만이 전화로 외부로 연결되어있다. 또한, 통화 내용에 의해 존이 처한 상황이 부연 된다. 교수는 처음에 전화라는 명령을 충실히 따른다. 그러다가 뒤 시퀀스에서는 명령에 거부한다. 즉 전화를 받지 않는다. 법은 책을 통해 위정자와 법률가로부터 피통치자로 그리고 과거 세대로부터 다음 세대에 전해진다. ‘법 법(法)’ 자는 ‘물 수(氵)’ 자와 ‘갈 거(去)’를 합쳐 만든 말로, 물(水)이 높은 곳에서 낮은 데로 흘러가는(去) 규칙이 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이 단어에는 어떤 흐름 즉 전파와 전승의 문제가 새겨 있는 셈이다. <올리아나>의 1막에서 교수는 시험 성적에 관한 캐롤의 요청에 시스템이, 법이 그렇게 정해져 있기에 안 된다며 거절한다. 그리고 문서를 뒤져 해당 법 조항을 캐롤에게 친히 보여준다. 책은 법 즉 상속된 지식을 담는 주요 미디어다. 책과 전화는 시간과 공간을 매개하는 방식 또한 서로 다르다. 글은 지식을 공간에 고정한다. 책은 지식을 공간에 고정하는 미디어로, 과거로부터의 유산을 현재에 이어준다. 한편 전화는 서로 다른 공간을 하나의 시간에 고정하는 미디어다. 동시간성을 경험하게 하는 미디어다. <올리아나>에서 법과 명령은 책과 전화라는 위상차를 통해 변별된다. 한편 <올리아나>에는 또 하나의 미디어가 있는데 바로 캐롤의 노트다. 캐롤의 노트는 책과 전화의 사이에 위치한 미디어 같다. 노트는 교수의 음성이 캐롤의 손에 의해 고정화되는 중인 미디어다. 각각은 시점(時點)이 다른데, 책은 기록’된’ 것 즉 이미 기록이 완성되어 보급된 것인데 반해 노트는 기록 중에 있는 매체다.
방(동굴) ― 캐롤과 존이 서 있는 자리 어쨌건 전화와 책, 노트 모두는 ‘지식’을 매개한다는 점에서 같다. 이들 미디어 모두 ‘지식’을 전파해내고 전승해낸다. 지식과 그 효과는 미디어에 의해 더 오래 더 멀리 전파되며 더 큰 권력을 획득해낸다. 그리하여 이를 쥔 자가 권력을 가진다. 1막에서 캐롤이 약하고 존이 강한 이유다. 이제 막은 다음으로 넘어간다. 상황은 완전히 달라져 있다. 캐롤은 교수 임용을 앞둔 존을 위원회에 고발한 상태다. 성차별적인 언행과 엘리티시즘, 그리고 사적인 만남을 갖는다면 좋은 성적을 주겠다고 한 사실을 전부 폭로해뒀다. 존은 캐롤을 타일러 보려하지만 캐롤은 완고하다. 이제 시소는 뒤집어졌다. 캐롤은 어떻게 권력의 위계를 역전시켰을까? 사람들이 『올리아나』에 품고 있는 주된 불만 중 하나는 “캐롤이 어리숙한 학생에서 논리정연한 여성운동 전사로 갑작스레 변화하는 것”이 “작위적”이라는 데 있다. 나는 여기에 동의할 수 없다. 전화와 책은 그녀에게 없었지만, 그녀에겐 노트가 있다. 그녀는 존의 말과 자신이 처한 상황을 노트에 계속 필기한다. 그리하여 힘을 얻는 데 성공했다. 노트라는 미디어를 통해 지식을 고정해냈고 주변에 전파함으로써 그녀는 그녀를 지지하는 동료들, 성폭력과 권위주의에 반대하는 자들을 대표하고 대변하는 자로 그 앞에 다시 서게 된 것이다. 2막부터 전개되는 둘의 갈등은 ‘대표’와 ‘전승’을 둘러싼 투쟁이다. 3막에서 캐롤은 존에게 존이 쓴 저서를 대학 추천 도서에서 스스로 제외하면 고소를 취하하겠다고 말한다. 눌러왔던 감정은 이 시점부터 분출되기 시작한다.
궤변은 멈춘다. “너 여기서 당장 나가.”라며 소리를 지른다. 존은 말한다. “내 이름 석 자가 박힌 책이 있고. 언젠가 내 아들이 그 책을 읽을 거야.” 그리고 그 아들의 아들도 아들의 아들의 아들도 존의 책을 읽게 될 것이다, 캐롤이 없다면. 존은 강간혐의를 뒤집어쓴 것보다 아카데미에서 쫓겨나는 것보다, 지식의 집 즉 아카이브에서 추방당하고 파문되는 걸 두려워하고 있다. 결국, 캐롤에게 화가 끝까지 난 존은 그녀를 후려 팬다. 여기 또 하나의 암전된 방이 있다. 『국가론』 7장 이상 국가에서 소크라테스는 동굴에의 우화를 들고 있다. 평생 태양을 향해 열려있는 기다란 입구를 가진 동굴에 갇혀, 그 출구와 그림자만 보며 온몸이 묶인 채 살아온 죄수들이 있다. 저기 바깥세상 그것은 ‘이데아’라는 진리의 세계, 실재이며 여기 동굴에서 보는 것은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유로 종종 쓰인다. 이 우화에서는 환영과 실제의 대립이 결정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페이지를 넘겨보면 동굴의 알레고리는 액자에 고정된 양 정적이지는 않다. 여기에는 모종의 해방의 서사가 있다. 한 죄수가 풀려나 지상으로 나오는데, 그의 눈은 어둠에 익숙한 탓에 괴롭다. 눈이 부신 탓에 잘 보지도 못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의 눈은 실재에 익숙해지며, 이제 그는 태양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사계절의 변화와 같은 원리를 이해하게 된다. 그에게 그림자의 변화와 같은 동굴의 지식은 터무니없는 것이 되었다. 그리고 그 죄수는 다시 동굴 속으로 내려가며, 친구들에게 지상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쯤에서 소크라테스는 메타포의 서사를 멈추며 죄수 친구들 속에 끼어 그들과 함께 고통과 명예를 나눠 가질 생각을 하지 말고 암흑에서 광명으로, 실재로 나아가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올리아나>는 방 바깥으로 나가지 않는다. 여기서 진리의 세계란 해방된 세계란 외부에 있지 않다. 연극의 무대는 끝내 존의 연구실이다. 끝에서 캐롤은 존에게 맞고 바닥에 엎드려 울고 있다. 그 앞에서 존은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소파에 앉아 흐트러진 서류를 정돈한다. 목소리를 가다듬고 점잖게, “그래, 이제 다시 시작해볼까.” 그러자 캐롤은 악다구니하는 소리로 “그래, 그럼 그렇지(Yes, that’s right)”. 그리고 다시 한 번 나긋하게 혼잣말로, “그래, 그럼 그렇지.” 자신이 발 딛고 있는 현실에서 한 발짝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을, 그녀는 마냥 절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거기에서만 다시 시작할 수 있음을 그녀는 잘 알고 있는지 모른다. 그리하여 말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 (ou) 장소(topos)인 유토피아(utopia)를 찾아 나가지 않는다. 두 번 반복되는 “그래, 그럼 그렇지”라는 말에는 “ 긍정의 반항적 힘”이 있다. 이는 “‘본질’에 대한 질문보다 더 ‘오래된’ 것이며, 지식보다 더 오래된 것”이다. 둘의 교육은 ‘여기서’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래, 그렇다.
여기, 문학이 필요한 시간 작자미상, 「박씨전」
“우리도 용울대의 머리를 내어 주지 않고 남한산성에서 패한 분을 조금이라도 풀 것이다. 아무리 애걸을 해도 그렇게는 하지 못하겠다.”
와 2015년 첫 호! 떡국들은 드셨는지, 새로운 계획은 잘 짜고 있으신지요. 2015년에는 복잡한 세상 편하게 잘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 볼 작품은 조선 후기 작자미상의 소설 「박씨전」 이다. 이 작품은 병자호
란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다룬 작품인데 실제 치욕스럽게 패배했던 역사적 사실을 소설 안에
서는 오랑캐들에게 반대로 패배감을 주고 있다. 그 당시 백성들에게 전쟁의 패배와 고통을 이
작품을 통해 조금이나마 위로하려 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병자호란당시 조선의 왕이었던 인조 는 머리에 피가 날 정도로 청나라 황제에게 절을 했다고 전해지는데, 청나라라고 하면 만주족 이 세운 나라로 우리가 오랑캐라고 부르던 민족이었다. 그 당시 우리 민족의 치욕스러움이 얼 마나 컸을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두 번째로 주목해야 할 점은 주인공이 여성이라는 점이다. 우리 고전소설에서 대
게 ‘-전’이라 하면 한 인물의 일대기적 구성이고 그 인물이라 함은 영웅적 면모를 지닌 인물
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무려 한 아녀자의 이름과 그리고 그녀가 영웅이라는 점에 주목할 만하 다. 조선시대 여성의 지위는 얼마나 낮았던가? 이 소설은 당시 자유롭지 못했던 여성들에게 정 신적인 위안을 주었을 것이다.
간략하게 줄거리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조선 인조 때 서울에서 태어난 이시백은 어려서부터 매우 총명하고 문무를 겸하여 그 이름이 온 나라에 떨 쳤다. 아버지 이 상공의 주객으로 지내던 박 처사는 자신의 둘째 딸 배필이 병조 판서 이득춘의 아들 이시
백임을 알고 청혼한다. 이시백은 첫날 밤 부인이 천하의 박색임을 알고 대면조차 하지 않는다. 부인 박씨
는 시아버지에게 청하여 후원에 피화당을 짓고 시비 계화와 지내며 신이한 기적을 보이지만, 시백은 거들 떠도 보지도 않는다. 박씨의 신이한 기적으로 남편을 장원급제시킨다. 박씨는 시기가 되어 3년만에 액운
을 벗고 천하절색 절대가인이 되자 거들떠보지도 않던 시백은 크게 기뻐하여 박 씨의 뜻을 그대로 따르고, 부부가 화목하게 지내게 된다. 이 때 중국의 호왕은 용골대 형제에게 수만의 병사를 주어 조선을 침략하게 한다. 천기를 보고 이를 안 박씨는 시백을 통하여 왕에게 호병이 침공하였으니 방비를 하도록 청하였으나 간신 김자점의 반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마침내 호병의 침공으로 사직이 위태로워지자 왕은 남한산성
으로 피난하지만 결국 항서를 보낸다. 많은 사람들이 잡혀 죽었으나 오직 박 씨의 피화당에 모인 부녀자 들만은 무사하였다. 이를 안 적장 용골대가 피화당에 침입하자 박씨는 그를 죽이고, 복수하러 온 그의 형
용울대도 크게 혼을 내 준다. 그러나, 박씨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오랑캐의 침략을 막아 내지만 나라 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 인질을 보낸 것으로 전쟁은 끝난다. 왕은 박씨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서
는 박씨를 충렬 부인에 봉한다. 박씨와 이시백은 국난을 극복하고 행복한 여생을 보내다 선계로 돌아간다.
이 작품은 크게 전반부 박씨와 남편 이시백의 갈등과 후반부 박씨와 용골대형제의 갈등으로
나누어 읽어 볼 수 있다. 먼저 전반부의 썰을 풀어볼까?
박씨의 아버지는 금강산의 신선으로 이득춘과 술친구였다. 그들은 서로의 자식을 혼인시키
기로 한다. 이때 박처사는 이득춘에게 이런 얘기를 한다. 내 아이가 외모가 지금 사정이 있어
서... 그게 좀 걸리네, 라고. 이득춘은 자네의 딸이라면 총명하기 그지없을 테니 그런 것은 흠
이 되지 않을 것이다 라고 한다. 아뿔싸.. 전반부 비극의 시작이다. 결국 혼인 날 이득춘의 아 들 이시백은 아내의 얼굴을 보고 신방을 뛰어나와 달아나 버린다. 아버지, 왜 내 친구 바야바 가 와 있나요?
.....나쁜시끼 이 시백이.
결국 이시백은 아내의 총명함과 지혜로움을 알아보지 못한 채 박대하기 시작한다. 현명한 박
씨는 집안의 시끄러움을 막고자 시아버지께 부탁하여 스스로 피화당(화를 피하기 위한 집)을 짓고 그 안에 충성스런 몸종 계화와 하루하루를 보낸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시아버지는 아들
을 훈계하지만 아들을 말을 듣지 않고 과거시험에 매진하겠노라 한다. 박씨는 비범한 능력으 로 집터를 정비하고 (집 주위에 나무를 심어 놓는데 후에 이 나무들이 군사로 변하고 완젼 SF
가 따로 없다!) 비루한 망아지를 사와서 천리마로 길러 집안 경제에 보탬이 되는 등 시아버지 눈에는 보물단지도 이런 보물단지가 없다. 그리고 박씨에게 이렇게 얘기를 한다.
“네가 비록 여자이지만 만 리 밖의 일을 볼 줄 아는 지혜를 가졌구나. 만일 남자로 태어났더
라면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여자로 태어난 것이 참으로 아깝구나.”
참 재미있는 대목이다. 남자 주인공쯤 되는 이시백을 전반부에는 참 졸렬한 남자, 외모지상주
의 젠장, 이렇게 그려내고 있고 박씨는 오히려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뒤에서 묵묵히 부인으로
써 조용히 내조하며 집안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있다. 남성보다 여성이 정신적으로도 더 성 숙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또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박씨의 외모이다. 필자가 재미를 위해 내 친구 바야바라는 대목을
넣긴 넣었는데.. 편집장님이 사진을 찾아 주실..?꺼죠? ㅋ 어쨌든, 영웅이라면 시련과 고난은
필수 덕목이 아니던가. 그래야 레벨이 쌓여 만렙이 되야 적장의 목을 딸 테니. 그 만렙으로 가
기 전 시련과 고난을 외모로 설정했다는 점이다. 여성에게 시련과 고난은 역시 외모였나 보다. 씁쓸한 대목이다. 아니다 그렇게 만든 사회가 잘못이다! 사회가 나빴네.
그러던 어느 날, (고전소설의 우연성) 박처사가 홀연 찾아온다. 이득춘과 소주 한 잔 하며 딸
은 잘 있냐고 묻고 이득춘은 어색어색. 박처사는 딸이 있는 곳으로 가 이렇게 이야기를 한다.
“너의 액운이 다 끝났으니 누추한 허물을 벗어라.”
그동안 어떤 사연인지 소설에서 이야기 되지 않았으나, 아, 알고 보니 박씨는 초 미녀였던 것
이다. 박씨는 샤워를 하며 그 허물을 벗어버리고 절세가인 월궁항아(결국 다 선녀라는 말)로 결국 자신의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이런 모습을 본 이시백은 아내에게 용서를 빌 고 마음이 넓은 그녀는 모든 것을 다 용서해 준다.
이렇게 격동의 전반부가 끝나고 후반부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박씨의 아버지는 누구다? 바로
금강산의 신선. 이미 비범한 아버지를 둔 그녀기에 그녀 역시 비범한 능력이 있었으니 바로 도 술&예지능력. 박씨는 하늘의 별을 보며 조선의 위태로운 미래를 예감하고 남편에게 나라의 국 방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아내를 깊게 신뢰하게 된 남편은 왕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
하지만 결국 실제 역사처럼 병자호란은 터지고 만다. 박씨는 피화당에 고을의 아녀자들을 모 두 숨기고 자신의 몸종 계화를 훈련시킨다. 한편 청나라 군대의 수장 용골대형제 중 용울대는
서울의 여자들이 피화당에 몸을 숨기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형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먼저 피
화당으로 간다. 그러나 계화에게 목숨을 잃고 박씨는 울대의 머리를 피화당 나무에 걸어 둔다. 그때 용골대는 조선의 왕에게 항서를 받고 왕세자를 볼모로 데리고 가려는 찰나였다. 아우의 개죽음을 듣고 분노로 가득 찬 용골대는 피화당으로 간다. 그런데 용골대 옆에 있던 조선의 신
하였지만 청나라편에 붙었던 간신 김자점은 피화당 주변의 나무의 형세를 보고 이는 제갈공명 의 팔진법과 유사하다며 위험하다고 했지만 이미 아우의 머리가 나무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모습을 본 용골대의 귀에는 아무 얘기도 들리지 않았다. 불화살을 쏘며 맹공격을 했으나 박씨
의 비범한 도술로 불화살은 다시 용골대의 진영을 돌아오고 용골대의 군대는 초전박살이 난다.
“대체 어떤 계집이 감히 장부를 희롱하느냐? 불행하게도 내 동생이 네 손에 죽었지만, 나는 이 미 조선 임금의 항서를 받은 몸이다. 이제 너희도 우리나라 백성인데, 어찌 우리를 해치려 하
느냐? 나라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여자로구나. 살려 두어도 쓸데가 없으니 나와서 내 칼을 받
아라.” 이때 등장한 여인은 박씨도 아닌 계화였다. 박씨도 양반집 부인이기 때문에 함부로 나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계화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계속해서 용울대의 머리만 가리키면서 조롱을 하였다.
“나는 충렬 부인의 시비 계화다. 너야말로 참으로 가련한 사내로구나. 네 동생 용울대도 내 손 에 죽었는데, 너 역시 나같이 연약한 여자 하나 당하지 못해 그렇듯 분통해하느냐? 참으로 가 련한 놈이로다.”
그러나 용골대는 다시 공격을 하고 박씨는 결국 움바라샤라 주문을 외워 하늘의 장수들을 부 르게 된다. 일명 신(神)장... 그리고 용골대는 대패하게 된다.
용골대가 갑옷을 벗고 창칼을 버린 뒤 무릎을 꿇고 애걸하였다.
“소장이 천하를 두루 다니다 조선까지 나왔지만, 지금까지 무릎을 꿇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
니다. 이제 부인 앞에 무릎을 꿇어 비나이다. 부인의 명대로 왕비는 모셔 가지 않을 것이니, 부 디 길을 열어 무사히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무수히 애원하자 그제야 박씨가 발을 걷고 나왔다.
“원래는 너희의 씨도 남기지 않고 모두 죽이려 했었다. 하지만 내 사람 목숨 죽이는 것을 좋아
하지 않기에 용서하는 것이니, 네 말대로 왕비는 모셔 가지 마라. 너희가 부득이 세자와 대군 을 모셔 간다면 그 또한 하늘의 뜻이기에 거역하지 못하겠구나. 부디 조심하여 모셔 가라. 그 렇게 하지 않으면 신장과 갑옷 입은 군사를 몰아 너희를 다 죽인 뒤, 너희 국왕을 사로잡아 분
함을 풀고 무죄한 백성까지 남기지 않을 것이다. 나는 앉아 있어도 모든 일을 알 수 있다. 부 디 내 말을 명심하여라.”
오랑캐 병사들은 황급히 머리를 조아리고 용골대는 다시 애원을 했다.
“말씀드리기 황송하오나 소장 아우의 머리를 내주시면, 부인의 태산 같은 은혜를 잊지 않을
것이옵니다.”
하지만 박씨는 고개를 저었다.
“듣거라. 옛날 조양자(趙襄子)는 지백(智伯)의 머리를 옻칠하여 두고 진양성에서 패한 원수
를 갚았다 하더구나. 우리도 용울대의 머리를 내어 주지 않고 남한산성에서 패한 분을 조금이 라도 풀 것이다. 아무리 애걸을 해도 그렇게는 하지 못하겠다.”
이 말을 들은 용골대는 그저 용울대의 머리를 보고 통곡할 수밖에 없었다.
이 소설의 끝은 이렇게 된다. 박씨는 용골대에게 임경업 장군을 뵙고 가라고 명령하고, 임경업
장군은 의주로 온 용골대 일행을 무찌른다. 조정으로 돌아온 임금은 동쪽을 지켜 적의 침입에
대비하라는 박씨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크게 뉘우치며 박씨에게 정경부인의 칭호를 내린다. 박씨의 덕행은 온 나라에 울려 퍼지고 그 이름은 후세에 길이 전해진다.
이 소설을 읽다보면 실제 역사적 인물이 등장함을 눈치 챘을 것이다. 이시백, 임경업장군, 용
골대형제 중에 용골대, 김자점이 실제 역사적 인물인데 이렇게 소설에 실제 역사적 인물을 넣
음으로 해서 소설의 사실성과 현장감을 높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 용골대가 패하 였지만 왕세자를 볼모로 끌고 가는 장면 역시 실제 역사적 사실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용골대가 연약한 여인에게 패배하는 장면, 허구적 인물이지만 용울대의 머리를 베는 장면 등 은 병자호란이라는 치욕적인 사건을 겪은 민중들의 현실적인 패배와 고통을 상상 속에서 복수
하고자 하는 심리적인 욕구의 표현이다. 아울러 여성을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주인공으로 설 정함으로써, 봉건적 가족 제도 하에 억압당한 여성들의 해방 욕구를 반영하고 있다. 이토록 재 미난 고전소설, 크리스마스날 쓸쓸하다고 케빈만 볼 게 아니라 한 번 쯤 읽어보는 것도 나쁘 지 않을 것 같다.
다음 이 시간에는 다시 현대문학으로 넘어가 현대 시를 살펴보겠다. 사실 아직 작품을 정해지 못했다. 떡국 먹으면서 생각해 보련다. 2015년에는 어떤 새로운 일이 일어날는지 기대도 해보면서, 지각하면 보강이다.
글. 고수진
작곡가 b의 노트 <예술인, 맞습니까?> 글. Composer B
1악장. 어떻게 하나 최근 서울시립교향악단(이하 서울시향)에 대한 소식이 언론에서 크게 보도되어 많은 사람들의 주목 을 끈 바 있다. 그동안 신문이나 TV뉴스에서 문화예술계를 다루는 비중 자체가 워낙 미미했던 데다 가, 다룬다고 해봐야 대학 입시비리, 해외 아티스트의 방한소식, 볼만한 공연 안내 정도의 바운더리 를 벗어나지 못하는 매우 ‘슴슴한’ 분야였기 때문에 이 사건이 세인들의 주목을 끌게 되는 것은 어쩌 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사실 글을 쓰기 전에 이런 저런 고민을 참 많이 했었다. 일단 서울시향의 내부 사정(지인들이 각각 단원과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 으로서 사태에 대해 몇 마디를 거들고 싶은 욕심이 굉장히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에 앞서 나는 오랫동안 글의 초안도 잡지 못한 상태로 고민만 거듭해야 했다. 전체적인 글 의 구성을 어떻게 짜야 할지에 대한 결정을 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일의 타임라인을 글로 풀어써야할까? 아니면 주변의 반응에 대해서 쓸까?’라는, 글을 쓰기 전 가장 기본적으로 잡아야 할 컨셉에 대해서도 정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전자의 방법으로 쓰면 사건의 흐름을 알기는 편하겠지만, 독자들이 포털 사이트에 시간 순으로 정리 된 언론 기사를 훑어보는 것과 별 차이가 없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고, 후자에 대해 쓴다면, 이 사태와 관련된 사람들의 다양한 반응과 그 이유를 깊게 추적해 볼 수 있다 는 면에서는 좋겠지만, 이 글을 읽을 독자들이 알고 있는 정보의 양은 너무나도 다를 수밖에 없어서, 누군가에게는 알아듣기도 힘든 이야기를 나 혼자서 떠들고 있는 모양새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심 끝에 나는 두 가지 방법을 적절히 섞는 쪽을 택하기로 했다. 단순하게 사건을 나열하는 것을 탈피하기 위해 타임라인 식의 서술은 지양하고, 해당 사안에 대해 독자들이 꼭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신문기사나 칼럼을 부분적으로 첨부하는 방식을 선택하기로 한 것이다.
2악장. 문제는 돈이 아니다 서울시향 박현정 대표(이하 대표)의 막말과 인권유린으로 시작된 이 사태에 대한 뉴스를 시간 순으 로 정리하다보면, 어느 순간부터 논점이 차츰차츰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게 되는 시점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바로 ‘이 상황의 배후에 정명훈 예술 감독(이하 정감독)이 있다’는 인터뷰를 하고 난 이후이다. 정작 자신이 했던 폭언과 괴상망측한 행동에 대해서는 ‘그런 적이 없다’, ‘잘 기억이 나 지 않는다’는 말로 대충 얼버무려 놓고, 여론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애꿎은 정 감독 을 싸움판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또한 정 감독과 시향 직원들의 조직문화를 비난하는 대한 박 대표의 기자회견 역시 사실과는 많 이 다르다. 대표가 ‘나태한 조직문화’나 ‘정명훈의 사조직’같은 단어를 써서 비난했던 시향의 직 원들은 오히려 주말근무와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유럽 투어를 가서도 새벽 4~5시 까지 잠들지 못한 채 단체 카톡으로 업무에 대한 논의를 해가며 일하던 곳이다. 대체 어떤 ‘느슨한 사조직’이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한단 말인가? 아무튼 언론의 시선을 정 감독으로 돌리려는 대표의 전략은 순간적으로는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3년 전, 정 감독의 재계약 시점 당시에 언급되었던 ‘과도한 대우’ 논란이 고스란히 이 논 쟁에 끼어들게 되었기 때문이다. 일의 발단은 대표의 인권유린이었음에도 말이다. 사실 정 감독의 대우(까놓고 ‘돈’이라고 쓰겠다)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는 상당수 사람들의 수준 은 애석하게도 3년 전이나 2014년 12월이나 별반 차이가 없이 허술하며, 그들은 기본적인 사실 관계조차 잘못되어있는 글을 무책임하게 써대기만 했다. 게다가 사건의 시작이 어찌됐든 결국 은 돈에 대한 문제로만 귀결시키려 하거나, 정 감독이 전임 대통령과 친분(실제로는 ‘친분’이라 표현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이 있다고 주장하며 그가 예술 감독직을 그만두는 것이 곧 정의 구현의 실현인 것처럼 서술하는 비약 투성이의 글이 난무하기까지 했다. 또한 업계의 상황에 대 해 제대로 알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이 사안에 대해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쓴 글이 신문에 버 젓이 실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에 대해 반응하는 언론들의 행태도 사뭇 볼만했다. 스스로 ‘공정하고 객관적인 분석’을 원칙으로 한다는 언론사(대부분 종편 채널들이었다)들은 앞 다퉈 이 사안을 시사프로그램에서 다루기 시작했는데, 상당수의 프로그램에서는 문화·예술계에 종사하는 당사자의 의견이 아닌, 뜬금없이 경제평론가나 정치평론가들이 등장해 문제의 본질을 흐리는 이야기들만 하기 일쑤였다. 대체 서울시장의 정치적 성향(시향 관련 인사권에 대한 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과 시향 대표의 막말은 어떠한 연관이 있는 것인데? 대표의 아버지가 누구인지는 왜 알아야 하며, 그녀가 유력 정치인의 처조카라는 사실이 이 상황 에 어떤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뜬금없는 물타기 작전(굳이 언급하자면. 뜬금없지는 않다. 그 전부터 대표가 정 감독을 타겟으로 삼을 것이라는 소문은 파다했다) 때문에 엮인 지휘자의 연봉이 정말로 과하다고 판단되면, 대표 의 막말은 용서될 수 있기라도 한다는 것인가? 그들에게 예술이란, 자신들의 입장에 따라서 ‘우리 편’의 추태를 감추거나, 혹은 드러내기 위한 하나의 도구에 불과한 것이 아니었을까?
3악장. 대체 예술을 무엇으로 보는가? 아이러니하게도 장외 설전의 와중에서 가장 실망스러웠던 부분은 자칭 ‘진보 문화예술인’으로 자처하는 몇몇 이들의 행동이었다. 왜 자신들의 분야에는 그 정도의 예산을 지원1)해주지 않느 냐는 불만은 그나마 점잖은 편이었다. 오히려 매우 저렴한 가격에 시민들이 수준 높은 예술을 접하게 되는 것을 보고, 이를 문화예술계 전체의 목소리와 파이가 커질 수 있는 기회로 삼지는 못할망정 특정 성향 정치인과 엮거나, ‘클래식 음악 공연은 비싸서 서민과 거리가 멀다’고 하지 를 않나, ‘거기에 돈을 쓰지 말고 공연장을 못 가는 서민이나 꿈나무를 위해2) 쓰자’며 본래 논 점을 이탈해 무리수를 두는 주장들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수준의 예술가에게 합리적인 대가를 지불하면서 그 이후로도 지속적으 로 시의 재정적 부담을 줄이려 노력하는, 아시아 최고 수준의 예술을 선사하는 단체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 우리는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만약 음악을 잘 듣지 않거나 관심이 없는 사람이 그렇게 이야기를 한다면 우리(음악인 뿐 아 니라 예술인 모두에게 해당된다)가 먼저 나서서 그들에게 예술의 가치를 설명하고, 다른 분야 에서 이러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그렇게 행동해야함이 옳다. 또한 그 사안에 대 해 잘 설명할 수 없다면, 차라리 언급을 자제하는 것이 맞는 게 아닌가? 우리는 세상이 점점 각박해지고 있기에 예술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왜 스스로 그 가치를 지키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예술인은 누구보다도 ‘보이지 않는 것’의 위대함과 보편적 가치를 사람들에게 전파해야 할 의 무를 가지고 있다. 더 이상 어설픈 진영논리나 숫자놀음을 들먹이지 않았으면 한다. 오늘의 논 쟁이 3년 전과 별 다를 바 없음에 씁쓸할 뿐이지만, 3년 후에는 부디 달라져 있었으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이 상황을 둘러싼 정치적인 부분에 대해 궁금한 독자가 있다면 ‘월간 객석’의 김 나희 특파원이 쓴 글을 읽어보기를 권한다.
서울 시향 사태의 본질은 ‘정명훈의 돈’이 아니다. - 글. 김나희 누르면 연결됩니다
1) 서울시향이 서울시로부터 여전히 재정적 지원을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정명훈 예술 감독 영입과 함께 재단법인으로 독립 한 뒤로는 서울시 출연금이 점차적으로 줄어들고 있으며 그 줄어드는 부분은 민간 기업에게 스폰싱을 받아 운영해나가고 있다. 행정적 독립과 함께 재정적 독립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일을 총괄하기 위해 있는 자리가 바로 서울시향의 ‘대표’ 자리이다. 그러 나 박현정 대표 취임이후 오히려 스폰서가 떨어져 나가고 있다. 대표가 이야기한 ‘방만한 경영’은 과연 누구의 책임일까? 2) 서울시향은 연간 25회 가량의 서울시민을 위한 ‘찾아가는 음악회(무료입장)’를 진행하고 있으며, 별도로 연 18회 가량의 어린이를 위 한 무료 방문 음악회를 진행하고 있다. 또한 정명훈 예술감독 역시 12월 13일, 통영에서 18세 이하를 대상으로 무료 피아노 리사이틀을 진행했다.
송창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만 일 동안 하겠다고 결심했고 하루도 거스르지 않기 위해 외국도 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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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호주는 다녀왔다. 타임 존이 같기 때문에). 한 번은 ‘열린음악회’ 팀에서 저녁 여섯 시까지 와야 한다고
세상 기준과 조금 다를 뿐
했는데, 도저히 그럴 수 없어 호텔 방을 하나 잡아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들이 마련해 준 방을 보고 그는 다시 돌아왔다. 운동하기엔 방이 너무 비좁았기 때문이다.
내 하루는 이렇다. 아침 일곱 시가 조금 지난 시간, 마림바 알람 소리에 겨우 일어나
“세상에 더 중요한 건 없어요. 당장 하고
억지로 씻고 멋을 조금 부린 뒤 약간의 과일을 먹고서 회사로 향한다. 퇴근하고
있는 일을 계속하는 게 중요한 거지.
집에 도착하면 여섯 시 반쯤 되는데, 저녁을 차려 먹고 휴식을 취한 뒤 한 시간
이게 말하자면 1만 일이라는 작품을
반 정도 낮잠을 잔다. 일어나선 어질러진 것을 정리, 땀이 조금 날 정도의 운동,
하는 건데, 작품이 안 끝났잖아요. 하루
샤워까지. 그러면 열한 시 정도가 된다. 이때부터 시작해 두 시까지 글 쓰고 잠들면
삐끗하면 1만일은 없어지는 거라고요.”
어느새 아침이다. 참고로 그의 작품은 2024년쯤 끝난다. 학생일 때, 특히 방학 때나 마지막 학기 즈음엔 더 늦게 자고 더 늦게 일어났다. 새벽 다섯 시까지 글을 쓰거나 별 것도 아닌 일을 하다 잠들어 열두 시쯤 일어나 눈을 끔뻑거렸다.(아, 이 어찌나 넉넉한 삶인가. 언젠가 회귀할 것이다.)
그가 입는 개량 한복도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다. 그는 왜 그토록 그것을 고집할까?
국수주의자라서?
옛것을
엄마는 내게 송창식 따라하냐며 호통치곤 했다. 잘 알다시피 송창식은 낮밤을
좋아해서? 아니다. 그의 눈엔 그 옷이
바꿔 산다. 새벽 네 시쯤 잠들어 오후 두 시쯤 일어난다. 통행금지가 있던 시절, 가장
가장 멋지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에겐
조용한 자정부터 네 시까지 작업을 했던 게 지금까지 이어졌다.
패션이란
거다.
1975년,
홍콩으로
돌아가 보자. 그는 홍콩 국제 아마추어 가요대회에 참석했다. 당연히 대회 일어나서는 화장실로 향한다. 변기에 앉아 한 시간 동안 무엇이든 읽는다. 건축이나
참가자로 나간 건 아니었다. 아마추어
기계 매뉴얼 등 종류는 상관없다. 가끔은 소리 내 읽기도 하는데 그건 혀가 잘 안
대회다 보니 쇼의 재미가 떨어질까 봐
돌아갈 때다. 그렇게 나와선 두 시간 정도 방 안을 뱅글뱅글 도는, 자전하면서
주최 측에서 각 나라마다 프로를 한
공전하는 운동을 한다. 원래 사람이 힘을 빼고 가만히 서 있으면 가만히 있을
명씩 동행해 달라고 해 그가 대표로
수가 없단다. 휘청휘청 하며 어느 순간 몸이 돌게 돼 있다고. 그는 삼국시대 때
간 것이었다. 그의 기억에 의하면 당시
무예하던 사람들과 이슬람 수피들의 전통 춤에 대한 이야기로 부연했다. 간단히
그곳의 리셉션 장소는 무용 연습하는
말해, 돌고 나면 ‘만사여의(세상 모든 일이 뜻대로 됨)’ 한다는 것이다. 먼저, 돌면
곳으로 사방이 거울인 방이었다. 그는
원심력에 의해 몸의 기운과 수분이 바깥으로 쏠리면서 손끝이 퉁퉁 붓는다. 이는
한국에서 맞춰온 최고급 양복을 입고서
즉, 혈액 순환이 극대화 된다는 것. 정신적으로도 안 되는 것이 없다고 했는데,
거울을 바라봤다. 그런데 이게 웬
그건 스트레스가 없어지기 때문이란다. 그래서일까. 그는 이 운동을 시작하면서
걸. 자신이 가장 후줄근한 게 아닌가.
다른 나라 사람들은 아무런 옷이나 입었는데도 멋있는데 말이다. 약이 올랐던 그는 다음날, 양복을 벗어 던지고 한복을 입고 나갔다. 다시 거울 앞에 섰다. 물론 혼자만의 생각이었지만 수백 명 가운데 그가 가장 멋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고민했다. 한복이 좋지만 생활하는데 불편하고 관리도 까다로워 매일 입는 건 힘든 일이니 다른 방법이 없을까 하고. 그는 복식에 대해 연구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면서 친했던 디자이너 친구들에게 얘길 꺼냈는데, 모두 거절했다. 하는 수 없이 그가 직접 디자인해야 했다. 그가 연구한 끝에 다다른 결론은 서양 복식은 사람을 세운 뒤 가장 조그마한 조각들을 몸에다 붙인다는 것이었다. 반면 우리 옷은 큰 천을 잘라서 몸에 맞춰 옷을 만들고 그걸 걸쳐 멋을 내는 방식이었다. 그는 그 원칙에 맞춰 옷을 디자인했다. 하지만 옷을 직접 만들 수 없어 결혼 뒤 아내에게 재봉틀과 외국 교본을 내밀며 부탁했다. 결국 장고의 시간 끝에 9년 만에 옷이 만들어졌다. 그는 옷본을 가지고 전문가들을 찾아갔다. 그러나 이번에도 못하겠다는 말만 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김도향의 소개로 보광동에 있는 세탁소 아줌마를 알게 됐다. 한때 양장점을 꿈꿨던 그녀는 송창식의 부탁에 되겠는데요, 하며 결국 그의 마음에 쏙 들게끔 옷을 만들어냈다. 이후 그의 옷을 100벌 가까이 제작했다. 그 덕에 아줌마는 무지하게(그의 표현) 돈을 많이 벌었다. 그때 터득한 노하우로 기념품용 한복을 만들어 미 8군 군인들에게 많이 팔았다나.
이렇듯 송창식은 세상 기준을 굳이 따르지 않고 산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거리낌 없이 살아갈 뿐이다. 음악을 떠나 내가 그를 인간적으로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유도 모른 채 행하는 일상의 평범한 일들이 참 많다. 관습화되어 의문을 제기하지 못하고 그저 살아가기 바쁘다. 그래서 그가 더욱 남다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 만나면 하는 말이 있어요. 나는 철들면 염할 거다. 죽는 순간에 철이 들까? 하고. 나는 사회의 원칙과 기준이 늘 마음에 안 들어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엉뚱하다는 소리를 듣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게 세련되지 않아 그런 거지. 사회적으로 세련된 걸 철들었다고 하니 나는 철 안 들었다 이렇게 생각하고 사는 거예요.”
남의 시선 따위는 우습게 여길 수 있는 그의 배짱이 부럽기까지 하다. 보통, 요즘 사람들이 공허와 우울로 울상 지을 때 오로지 자신만의 문제라 여기는데 그렇지 않다. 남의 눈과 생각을 염두에 두다 보니 자신의 뜻과 좀 다르더라도 더 높은 것을 지향하게 되고, 뜻을 이루려 애쓰지만 그러지 못하니 결국 스스로에게 갇히게 되는 게 아닐까.
나는 그가 아주 오랫동안 철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글. 박재현 (소설가)
[인터뷰] 덕후시트콤 “일반인 코스프레” 전문 보기 : http://idology.kr/2890 2014년 8월 말, 컬러풀필름은 <덕후시트콤 “일반인 코스프레”>를 공개했다. 샤 이니월드라는 정체성을 숨기고 살아가는 과탑 경제학도 송이의 아슬아슬한 연애 담은, ‘덕후 라이프’의 리얼한 묘사와 흥미진진한 전개로 많은 화제를 모았다. 총 7편으로 11월 초 전체 이야기를 마친 컬러풀필름의 채송이 감독에게 몇 가지 궁 금한 것들을 물었다. 인터뷰 전문은 온라인에서 확인할 수 있다.
어떻게 덕후들을 위한 시트콤을 기획하게 되었는지? 첫 시리즈로 ‘일반인 코스프레’라는 소재를 택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아이돌 팬들이 흔히 겪는 것처럼, 아이돌 팬이라는 이유로 눈치를 보게 되는 일을 겪게 되었다. 그 전에 는 몰랐는데 그런 일을 직접 겪고 나니 ‘일코’라는 단 어가 새삼 새롭게 느껴지더라. 그 때 일기를 엄청 썼 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 계속 쓰면서 생각을 정리 해갔다. 그런 일을 겪고 나니 ‘일코’라는 단어가 새삼 새롭게 느껴지더라. ‘일코’를 하고 살아야 하나? 근데 ‘일반인’이 뭔데?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었고, 그래서 좋아하는 걸 숨기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 기를 생각하게 됐다.
제작진은 실제로 일상생활에서 ‘일반인 코스프레’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인가. 일코는 필요하다. 아직은 우리 사회가 선입견과 편견 으로 누군가를 단정 짓는 것에 익숙하고, 누군가에게 진 중에 ‘송이’의 모델이 있는지? 는 ‘취향 존중’을 외치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질 정 내 이름이 ‘송이’고. 경제학과에 재학 중이고, 샤이니 도니까. 일코를 한다고 누가 비겁하다고 할 수 있겠 를 좋아한다. 샤이니와 관련된 아이템은 내가 갖고 나. 있는 물건들이다. 몇 개는 샤이니월드인 다른 친구한 다만, 계속 숨기면 바뀌는 건 없고, 숨기는 건 결국 테 공수 받기도 했다. 근데 내가 ‘송이’의 모델이라고 계속 내가 맞춰야 하는 것이다. 나는 좋아하는 거에 하긴 좀 그렇다. 극중 ‘송이’와 나는 다른 점이 훨씬 대해 내 나름의 확신이 있고, 그 진심을 전한다면 상 많다. 샤이니 덕분에 삶이 행복해진다는 점을 뺀다면 대방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싶다. 그래서 나 성격이나, 성적이나, 연애사나 참 다르다. 과탑이라거 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만나면 대화를 시도하면서 나, 썸남이라거나 나한테는 먼 이야기인데… 아… 잠 편견도 허물고 조금씩 바꿔나가려고 한다. ‘다름’을 깐 울고 가도 될까? 인정하는 방향으로 말이다. <일코>를 만든 것은 그 인터뷰 진행/정리 : 김윤하, 별민 런 행동 중 하나였다.
시트콤 주인공이자 샤이니월드로 등장하는 ‘송이’가 갖고 있는 아이템들이 정말로 진성 덕후가 아니면 구 하기 힘든 것들이던데, 어디서 구했는지? 혹시 제작
리스너를 위한 화성학①
by 미묘 | 전문 보기 : http://idology.kr/2881
화성학 책을 펼치면 처음부터 온갖 숫자와 악보, 개념이 쏟아지기 시작해 읽는 이의 기를 죽인다. 음악 전공 자들 사이에서도 실력의 격차가 확연히 벌어질 정도로, 깊어질수록 끝없이 복잡해지는 시스템이다. ‘화성학 따위 몰라도 얼마든지 히트곡을 써낸다’ 같은 표현이 자주 들려오는 것 또한, 이 악마 같은 존재가 음악 이론 중에서도 대표적인 골칫덩이임을 반증한다. 확실히, 화성학은 몰라도 그만이다. 그러나 그 기초를 알고 있다 면 전에는 보이지 않던 많은 것들이 보이게 되는 열쇠인 것도 사실이다. 또한 화성학이 주는 한 가지 희망, 혹은 희망고문이 있다면, 입문의 문턱만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기도 하 다. 어느 정도면 “하우 아 유? 아임 파인 땡큐 앤쥬?” 정도는 말할 수 있고, 그것만으로도 낯선 땅에서 이방인 을 웃으며 만날 수 있다. 거기에 “엄… 캔 유…? 포토? 플리즈?” 정도의 응용력이 있다면, 셀카봉으로 담기엔 조금 벅찬 에펠탑 전경과 함께 브이를 그릴 수 있다. 이 글은 전공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누구나 복잡한 화성학의 오의를 깨우칠 필요는 없다. 그저 알고 있으면 듣는 재미를 조금은 더할 수 있는 정도를 목표로 한다. 듣는 이를 위한 강좌이다. 따라서 화성학 교과서의 커 리큘럼과는 다르게 진행되며, 아이돌 곡을 재료로 삼는다. 다만 건반이나 베이스, 기타를 조금은 다룬다면 따 라가기 쉬울 것이다.
12인조 신인 아이돌 ‘하모니즈’
2014년말, 아이돌로지 엔터테인먼트는 12인조 화성학돌 하모니즈를 데뷔시킨다. 연말 시상식마저 끝난 시점 에 신인을 데뷔시키다니 참으로 비상식적인 기획사다. 이 그룹의 각 멤버들은 각자 분명한 캐릭터를 갖고 있 으며, 완전체로 활동하는 일은 거의 없다. 상황에 따라 곡에 따라 다양한 유닛으로 활동한다. 하모니즈의 유 닛 유동성은 다른 아이돌보다 월등히 높아서, 유닛에 따라 멤버들의 포지션도 마구 변화한다. A 유닛에서는 리더인 멤버가 D 유닛에 가면 서브보컬이 되기도 하는 식이다. 이를 두고 업계와 팬덤 일각에서는 상도덕에 위배된다는 비난을 하기도 한다. 과연 악랄한 기획사다.
하모니즈의 리더를 찾아라 하모니즈를 이해하는 데에는 리더를 찾는 게 제법 중요하다. 리더의 파트로 끝나는 곡이 많기 때문이다. 그 래서 구별하기도 좋다. 하모니즈 팬덤에서는 리더를 ‘토닉(Tonic)’이라고 부르며, 사이트에 따라 ‘으뜸화음’이 나 ‘I’, ‘i’라 부르기도 한다. 하모니즈의 선배들 중에는 곡의 시작도 토닉이 맡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모 일간 지 음악기자는 토닉을 가리켜 “가장 안정감 있는 멤버”라 평했고, 토닉의 개인 팬사이트 홈마스터는 “그 목소 리를 들으면 마치 집으로 돌아온 기분”이라 하기도 했다. 화성학에서 토닉은 가장 중요한 화음이다. 또한 가장 중요한 음이기도 하다. 모든 화음과 모든 음은 토닉을 향해 돌아오고자 하는 힘이 있다. 하늘을 향해 공을 던진다고 생각해 보자. 공은 위로 날아오르지만 결국 바 닥을 향해 내려온다. 이처럼 여러 가지 화음에 의해 음악은 공중에서 움직이지만, 결국에는 출발점인 토닉에 게 돌아오게 된다는 것이 고전적인 화성학의 시각이다. 현대로 오면서 이 법칙은 많이 약해졌고, 특히 대중 음악에선 이 원리를 비껴감으로써 세련된 느낌을 주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토닉으로 돌아오면 우리 는 여전히, 먼 곳을 돌아다니다 마침내 ‘집으로 돌아온 것’처럼 편안한 안정감을 느낀다.
<리스너를 위한 화성학> 1편은 니콜의 ‘MAMA’, 써니힐의 ‘지우다’, 소년공화국의 ‘진짜가 나타났다’, 빅스의 ‘Error’, 규현의 ‘광화문에서’, 스피카의 ‘Ghost’를 통해 하모니즈의 리더인 토닉의 역할을 살펴본다. 곡 분석과 전문은 온라인에서 확인하시길!
김윤하 : 청춘 드라마의 타이틀롤과 함께 흐를 법한 ‘가슴이 뛴 다’의 첫 음이 울리는 순간, 앨범의 의도를 직감했다. 인피니트에 서 노래와 춤 능력치를 기준으로 (미안하지만) 다소 하위권을 차 지하고 있는 이 ‘막내즈’의 무기는 앨범제목으로도 당당하게 발 하고 있는 ‘푸름(靑)’ 그 자체다. 마냥 촌스럽고 부끄럽지만, 젊다 는 밑천 하나만으로 더없이 청량해 그리운 그 시절. 음반에 수록 된 세 곡은 마치 이상화시킨 그 시절의 BGM처럼 거침이 없다. 큰 변칙 없이 정박으로 진행되는 리듬과 꾸밈없는 멜로디 위로 실려오는 막 자란 소년들의 와글와글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난다. 그런데 어라, 이건 어디선가 느껴본 감정인데. 그렇 인피니트 F 靑 울림 엔터테인먼트 2014년 12월 1일
다. 쟈니스 황금기의 리프라이즈가 2014년 대한민국에서 펼쳐졌 다. 뒤통수가 다 얼얼하다. 미묘 : 한없는 청량감과 해방감, 터무니없이 화사하게 빛나는 청 년의 이미지, 마치 1년 내내 여름 휴가의 둘째 날인 듯한. 그런 것 을 쟈니스라 한다면, 그렇다, 이 음반은 매우 쟈니스적이다. (엘의 얼굴이 원래 이렇게 미야케 켄와 오카다 준이치를 섞은 듯했나 싶은 생각마저 든다.) '꽃돌이' 느낌의 곡이 사람에 따라 오글거려 참을 수 없다고 한다면, '가슴이 뛴다'는 제이팝의 편곡과 질감을 가득 가져오면서도 사운드의 무게중심을 미세하게 조절해 접근
성을 높였다. (혹은 일본에서 '케이팝'의 브랜드성을 보강했다고 인피니트F - “가슴이 뛴다” https://www.youtube.com/ watch?v=4nHMNJczXb0
도 할 수 있겠다.) 듣는 이의 '꽃돌이팝 수용성'이나, 한국 시장에 서 (아이돌 원형의 하나로서) 쟈니스계 수용성의 리트머스가 될 만한 곡이 아닐까. 별민 : 미성으로만 구성되어 있는 인피니트F의 세 보컬은 인피니
트 음악 안에서 가장 여리고 엷은 층위를 담당하고 있었다. 그 엷은 색깔은 다른 그룹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인피니트 음악만의 특징이기도 했다. 취향에 따라 '맑고 예쁜 목소리' 혹은 '귀신 우는 소리'로 인식되는 이 목소리는, 어쨌든 확실히 각인되는 소리임에는 분명했다. 이렇게 '튀는' 목소리만 뽑아 서 모아놓았는데, 노래에 대한 선호와 상관없이 귀에 꽂히지 않을 수는 없는 것이다. 싱글에 수록된 세 곡 외에도, 인피니트 정규 2집에 수록되어 있는 유닛 트랙 '미치겠어'까지 놓고 보았을 때, 이들의 작품 내 지향점은 J-pop 시장에서 쟈니스, 특히 아라시, 캇툰 등의 2000년대 남성 아이돌과 궤를 같 이 하는 듯 보인다. 다만 벌써 30년 이상 아이돌 왕국으로 번성하다가 최근 위기를 맞은 쟈니스를 작품 내에서 모티브로 한다고 했을 때 다소 우려되는 점은, 과연 아직 쟈니스조차 해결하지 못한 '맹 점'을 인피니트F는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이다. 이들의 작품 외 행보가 일본 내 케이팝 '한류' 아이돌 의 초기 모델 - 카라, 소녀시대 등 - 에 가까운 것을 보면 결국 작품 외적인 부분에서 자구책을 찾아 내지 않을까 하는 예측을 하게 된다. 전대미문의 성공 모델을 벤치마킹하는 것으로 커리어를 시작하 는 것은 분명 적절한 행보겠으나, 이 이후 포석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면, 아무래도 토양이 다 른 한국 땅에서 꾸준히 살아남기에는 조금 벅차지 않을까 싶다. 요약 : 한류돌이 쟈니스로 진화하였 습니다!【살아남아라!인피니트F】
유제상 : TV에 별민 님이 아른거려 '어, 드디어 때가 된 건가?' 했더니, 아니나다를까 한가운데 엘을 세운 인피니트F가 등장. '가슴이 뛴다', '너라서', 'My Girl'의 세 곡이 수록되어 있으며 수록곡 모두 밝 다 못해 듣는 이가 정화(淨化)될 지경이다. 개인적으로는 장학퀴즈 엔딩송 같은 '가슴이 뛴다'보다 인 피니트 본진의 발랄함을 지닌 '너라서'가 더 듣기 좋았지만, 누가 위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균등한 품질의 곡들이니 모두 들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인피니트 무서운 아이...
맛있는 파히타 : 평이할 수도 있었던 곡이었지만 편곡이 한 번, 그리고 앤씨아의 보이스가 또 한번 이 곡을 들어올렸다. 보사노 바로 시작하지만 담백함은 이내 화려해지고 터져줘야 할 때 기 운차게 터져주는 상큼함, 그리고 다시 기분을 가다듬으며 다시 한번 상승하며 기운차게 달린다. 변화가 많은 곡임에도 앤씨아의 보컬이 능수능란하게 곡을 리드하고 있어 지난 곡들에서 보여준 포텐셜이 진짜였구나 하는 인상을 받는다. 미묘 : 의외로 무척이나 재미난 곡이 나왔다. 글리치한 어쿠스틱 기타를 비롯해 케이팝에서 들을 수 있는 온갖 기법과 스타일을
앤씨아 (NC.A)
총망라하기라도 하는 양, 정말 다른 분위기로 느닷없이 치닫길
후후후
이어가는 흐름이 매순간 유쾌한 물음표를 띄우게 한다. 마무리마
제이제이홀릭 미디어
저 급작스러운 것도 재미있다. 필터를 적절히 사용해 몽글몽글하
2014년 12월 18일
게 굴러다니는 질감의 사운드가 주종을 이루는 가운데 때때로 조금 칼칼해졌다가 다시 빠지곤 하는 섬세한 호흡의 조절이 인 상적이며, 부담스럽지 않은 무게감의 보컬이 갖는 천진한 색채감 도 잘 어울린다. 정규반으로 내기에는 다소 과감한, 시즌송의 시 즌의 즐거운 발견. 유제상 : 기존에 발표한 '난 좀 달라'와 '미쳤나봐'의 장점이 섞인 곡. 전자가 하이틴의 상큼함을, 후자가 노래의 유려함을 추구했 다면 '후후후'는 양자가 어우러져 있다. 앤씨아의 곡은 전반적으 로 양질의 멜로디를 들려주는 장점이 있는데, 이건 아마 그녀에
앤씨아 - “후후후” https://www.youtube.com/ watch?v=1CtuNynIT2g
게 거는 스태프들의 기대를 반영한 것이리라. 이런 시점에서 드라마틱한 변화를 주어도 될 듯한데…
김윤하 : 오프닝을 지나 첫 곡 'Spoiler'에서 '히치하이킹
(Hitchhiking)'까지, 그러니까 잠시 숨을 고르는 곡 'Girls Girls Girls' 직전까지의 초반부는 그야말로 '숨이 막힌다'. 샤이니가 데 뷔 이후 지금까지 발표한 수십 곡의 노래들 가운데 이들의 퍼포 먼스와 카리스마를 가장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곡들로 엄선된 셋 리스트는, 이 무시무시한 순간을 즐길 수 있는 감각이 청각 밖에 는 없다는 사실을 더없이 아쉽게 만든다. 십 여 년간 쉼 없이 자 신들의 한계를 시험해온 케이팝 보이밴드의 경이로운 기록이 궁 금한 이들이라면 체크해볼 만 하다. 더불어 어떤 곡에서건 화룡 점정을 찍는 종현의 존재감이 새삼스럽다. 오요 : 라이브 음반은 대개 팬서비스 차원에서 발매한다고 생각 하는데, (사실 팬이 아니면 들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나) 샤이니의
샤이니 SHINee WORLD Ⅲ in SEOUL
라이브 음반은 그 범주를 비껴간다. 수없이 많은 콘서트를 통해
SM 엔터테인먼트
정제되고 날카로워진 샤이니의 무대를 고스란히 옮겨온 음반을
2014년 12월 11일
듣고 있자면 내가 그 장소에 없다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안타까 움과 동시에, '이렇게라도 들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모든 에너지를 지탱 해내는 샤이니의 곡들이 얼마나 훌륭한지 새삼 깨닫는다. 아이돌로지의 신보 리뷰는 “1st Listen” 코너를 통해 열흘 간격으로 업데이트된다. http://idology.kr/category/1stlisten에서 12월의 다른 신보 리뷰들을 확인할 수 있다.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소개소
1. Asian Prodigy (The Chinkees
2. 손만 잡았네 - 시조새
3. 잡범 - 바비빌
Cover)
[너 얼굴이 왜그래?](2010), 3
[Dr. Alcohol](2011), 2
-
...WHATEVER
THAT
MEANS [Asian Prodigy](2014), 1
재미교포 Mike Park의 스카 펑크 밴드
가사는
슬프지만
좋다.
이 노래를 듣고 든 생각은 ‘바비빌은 천재
‘The Chinkees’의 곡을 한국의 펑크
특히 가사 첫 부분의 멜로디는 내가 가장
같다’였다. ‘잡범’이라는 제목에 맞게 ‘큰
밴드 ‘...WHATEVER THAT MEANS’
좋아하는 류의 멜로디라서 가끔 들을 때
피해는 없었다’는 내용인데 가장 기발하다고
가 커버했다. 밴드의 매력이 잘 느껴지는
설레고 멤버 각자의 실력도 좋다. ‘OK’
생각한 가사는 ‘강력범죄자가 될 싹도
곡이다. 특히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는
를 여러 번 외친 후 다시 곡을 시작하는
없었어’이다. 곡을 쓰고 싶은 사람으로서
2014년 10월 25일에 있었던 클럽 스팟의
부분이
개인적으로
그 센스를 본받고 싶다. 첫부분에 나오는
마지막 공연 모습이 담겨있다. 이들의 밴드
2011년 쌈싸페 숨은고수 후보에서 처음
나레이션도 재미있고 조웅씨의 보컬도 참 잘
캠프에서 음원을 배포하고 있는데, 곡에
봤었는데 그때 바로 노래를 찾아 듣지 않은
어울린다. 컨트리도 참 매력있는 음악이라는
대한 설명이 아주 인상적이다.
것이 후회스럽다.
생각이 들었다.
참
마음에
멜로디가
든다.
참
이번 달에는 펑크, 컨트리, 연주곡을 각각 2곡씩 소개합니다. 요즘 가장 자주 듣는 음악들이자 본받고 싶은 것들이 가득한 곡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신당동 파르한 (@chungchoon98)
4. 사슴루돌프 - 김태춘
5. Joshua Fit the Battle of Jericho -
6. No Spring - 스타트라인
[산타는 너의 유리창을 두드리지
림지훈 [Organ Orgasm](2011), 5
[Light My Fire](2013), 5
블루스 뮤지션 김태춘의 캐롤 음악은
밴드 펑카프릭의 리더이자 하몬드 오르간
첫번째 EP 앨범에 실린 연주곡. 앨범에서
일반적인
달라
연주자 림지훈씨의 솔로 앨범 수록곡으로
이 곡을 제외한 5곡이 펑크 곡들인데
크리스마스 시즌에 잘 어울리고 더 듣고
흑인 영가 ‘Joshua Fit The Battle Of Jericho’
그 사이에서 잘 어울리고 빠른 곡들
싶다. 특히 가사들이 독특한데 ‘사냥을
를 바탕으로 한 노래이다. 펑카프릭의
사이의 잔잔한 노래라 더 매력적이다.
나온 산타에게 붙잡혀’라던지 ‘매맞으며
공연에서도 들을 수 있었는데 듣는 사람을
멜로디가 좋은 스타트라인 음악의 특징이
달리네’같은 가사에서 잘 느낄 수 있다.
춤추게 하면서도 각 악기의 조합이 매우
느껴진다. 베이스와 드럼 없이 기타만으로
가장 좋아하고 와닿는 가사는 ‘야근을
좋아서 배울 것이 많은 곡이라고 생각한다.
연주하는데도 저음이 참 멋지고 마음의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건초에 독한 술을
특히 펑카프릭 특유의 기타 소리가 참
평화를 주는 곡이다. 평소 공연에서는
부어 마시네’.
인상적이다.
연주하지 않지만 2013년 스타트라인의
않을 거야] (2014). 4
캐롤
음악과
완전히
쇼케이스에서 앵콜곡으로 처음 들을 수 있었다.
#898F86
#898F86 에드워드 호퍼의 ‘Intermission’을 구글을 통해 검색한다. 검색 결과 중 원작과 색감이 가장 비슷하게 재현된 것을 내려받는다. 내려받은 이미지를 포토샵으로 불러들인다. 포토샵 필터기능 중 Gaussian Blur의 Radius를 250.0 Pixels로 맞춘다. 그리고 표면을 단일 색으로 만들기 위해 정확히 스물네 차례의 반복된 필터를 적용한다. 필터의 반복 후 얻어낸 컬러 값은 #898F86이다. 주위에서 자주 볼 수 있을법한 회색. 하지만 이 색에는 작가가 자신의 회화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현대인의 고독감이나 자연과 문명의 대립 같은 언어화된 개념으로 고정하기 어려운 측면이 존재한다. 르누아르 작품같이 색의 혼합이 복잡할수록 필터 적용 횟수가 늘어났다. 그의 작품인 '보트파티에서의 오찬'을 단일 색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정확히 팔십 두 차례의 필터 적용이 필요했고, 그렇게 얻어낸 컬러값은 #A78B60 이었다. 툴을 매개해 특정 회화작품을 하나의 컬러로 환원시키는 과정은 대상이 지닌 색 분포의 복잡성에 비례해 필터 적용 횟수가 달라진다는 점을 제외하고는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 단, 검색을 통해 원전과 가장 근접한 컬러의 이미지를 선별하는 데 있어, 주관성이 개입되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다.
#A78B60
화사함과 끔찍함 ⑴ 에드워드
호퍼는 자신의 회화에서 현실을 충실히 반영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물은
단순한 반영 또는 현실의 거울 역할을 할 뿐이다. 문제의 핵심은 그림과 이 그림이 재현해내는 것 사이의 관계에 있지 않다. 현실에 대한 리얼리즘적 재현이란 개인의 능력을 벗어난 지 오래인데도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복구해내려는 환상에 작가는 차가운 냉소를 보낸다. 이러한 에드워드 호퍼의 리얼리즘에 대한 안티테제는 급진적인 시인들에 의해 '나'의 단독성을 보증해주지 못하는 세계에서 '자아'라는 헛된 정체성(동일성)과의 작별로 번역될 수 있다. ⑵ 시인들은
'나'를 재확인하려는 서정적 여행을 그만두고 '나'의 진실을 찾아 탈 서정적 여행을 떠나야
한다고 선언한다. 그렇게 떠난 여행에서 다시금 무언가가 출몰한다. 분열의 세계, 흔적들의 세계, 부조리의 세계 중심에서. 그곳에서 마주친 무언가는 사회적 구성체로서의 ‘자아’와는 판이할 것이다. 그 무언가는 '자아'라는 화사한 인공정원이 아닌 '주체'라는 끔찍한 폐허에 가깝기 때문이다. 앞서 나는 회화작품이 디지털 툴을 매개해 단일한 컬러를 획득해 나가는 과정에 관해 이야기 한 바 있다. #898f86은 오롯이 언어로 지시할 수 없는 무언가가 되었다.
⑴
롤프 권터 레너, [에드워드 호퍼]
⑵
신형철, [몰락의 에티카]
필터를 거쳐 획득된 색은 겉보기에 무의미하지만, 사회가 작품에 부가한 다양한 의미들이 용해됐을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이것에 대해 쉽게 말할 수 없다.
의미의 카니발 나는 낯선 외국인이 내뱉는 외국어에 쉽게 감화되는 편이다. 의미를 알아들으려는 노력을 포기한다면 낯선 언어를 내뱉는 그 사람 자체가 매혹의 대상으로 다가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의미를 포기한 낯선 외국어는 마치 노랫말과 유사하다. 그래서 즐겁다. 사실, 말과 세계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의미가 전달될 때 의미는 다시 세계를 지시하고 설명하며 작동하기 시작한다. 그럴 때 우리는 말과 세계가 잘 연결되어 있다고 착각한다. ‘사과’라는 말을 예로 들어보자. 사과를 표시하는 규칙들, 발음의 질감들, 분절되는 소리. 이것은 시고 달콤한 사과와는 아무런 직접적 연관이 없다. 말은 세계와 관련 없이 그 자체로 자족적인 운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시인들은 일상의 언어들을 낯선 방법으로 결합해 시어를 조직해왔다. 그리고 의미에서 무한히 미끄러지기를 시도한다. 나 또한 말과 세계 사이의 투과할 수 없는 장벽이 있다고 오래전부터 상상해왔다. 모노크롬 작업은 불확실한 말들을 의미의 무한한 카니발 상태로 되돌려보내려는 내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다.
# 나는 기존 질서가 풍화돼 형성된 카니발 상태를 실제의 세계에서 찾고자 하며, 내 시야에 포착된 것들을 ‘#’이라고 이름 지었다. #의 이미지는 지시하는 대상이 없다는 공통된 문제를 껴안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은 추상회화를 닮았지만, 그것을 작동시키는 요인에서 차이가 난다. ‘추상’이 전복의 전복이 만들어낸 미적 성취라고 한다면 ‘#’은 사회가 만들어낸 부산물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은유적인 심상을 져버리도록 요구한다. 은유는 사회적으로 엮어진 구조 속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부산물의 비정형성은 오히려 언어유희와 같은 환유적 질서에 가깝다. 여기서 Object(a)가 Object(B)와 연결되는 논리적 이유는 작동하지 않는다. 예컨대 유년기에 성이 김 씨라는 이유로 김밥이라는 별명을 얻은 것에 타당한 논리가 있을 리 없다. 그렇기에 #이 보는 이와 연결되는 방식은 의미의 세계가 아닌 내밀한 감각과 더 가까운 것일지 모르겠다.
벽에 남은 포스터 흔적 시야에 포착된 최초의 #은 광고 포스터가 붙여졌다 떨어지기를 반복한 벽에 남은 흔적이다. 관찰의 결과 관리인에 의해 포스터는 하루를 주기로 붙여졌다 떼어지기를 정확히 두 번 반복한다. 제거되고 다시금 부착되는 공백시간 동안만 #은 발견되며, 그 외 시간에는 새로운 포스터가 사람들에게 시각적으로 정리된 ‘정보’를 제공한다. 노동자의 손에 뜯긴 포스터 뒤에는 긴 시간이 축적되었을 ‘어떠한’ 흔적들이 잔존한다. 이 흔적들은 낮 동안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부착됐을 포스터의 피부일 것이다.
이들은 개별로 존재하지 않으며 거대한(수량화될 수 없는) 질감이 되어 벽 위에 덧입혀진다. 벽의 주기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이 툴을 매개해 코드화되어 가는 것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포토샵이 포스터를 떼어내는 사람으로 대체됐다는 측면과 모노크롬이 일회적 퍼포먼스지만, 벽은 순환구조를 가졌다는 점이다. ① 포스터가 사람에 의해 부착된다. / 검색을 통해 찾은 이미지를 포토샵으로 불러들인다. ② 약속된 시간 사람에 의해 포스터가 떼어지며, 그 뒤에 잔존하는 표피들이 무질서의 세계를 형성한다. / 포토샵 필터 중 ‘Gaussian Blur’를 단일 색이 될 때까지 이미지에 적용한다. 이미지가 뭉개져 하나의 색으로 변해 질서를 형성한다. ③ 흔적과 모노크롬은 공통으로 재현대상을 박탈당했다. 그리고 무한히 샘솟는 의미의 세계로 진입한다.
벽 위에는 반짝였던 포스터의 질감과 색감, 그리고 사람의 힘이 만들어낸 찢김이 존재한다. 나는 언젠가 이것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었다. 어릴 적 시골에서 본 밤하늘의 은하수 같기도 했고, 처음 어머니의 손을 잡고 보았던 출렁이는 바다의 물빛 같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이 벽을 아름답다고 생각한 정작 중요한 이유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추상적 이미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은 쉽사리 언어화되지 않으려는 역동성을 품고 있다. 그것은 이성이 축조해낸 매끈한 바벨탑 표면에 균열을 가해 다시금 무질서로 퇴행하고자 하는 주체들의 욕망이 호출해낸 결과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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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 좋아. #16. 20 세기 예술의 신전,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 aoikasa
얼마 전 6살 조카에게 이런 메세지가 왔다. '이모, 구겐하임 미술관 가 봤어?' (열혈건축꼬마인 조카는 건축얘길 내게 자주 묻는다. 아,물론 저 메세지는 엄마의 대필이다.) 조카의 질문에 이모는 가 봤다며, 뉴욕/빌바오/베니스 세 군데 다 가봤다는 자랑을 살짝. 물고기 모양 구겐하임(빌바오 구겐하임) 밖에 모르는 조카는 본인도 구겐하임 미술관에 가보고 싶다며 다음엔 같이 가자는 이야기를... 조카와 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문득 깨달은 사실, 어쩌다보니 유명한 구겐하임 미술관들을 세 군데나 가봤구나. 그 중 정말 쌩고생해서 간 빌바오 구겐하임을 제외하고 두 군데는 어쩌다가 그 곳에 있게 되어 간 것이니… 이 정도면 꽤 운이 좋은 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뉴욕/빌바오/베니스 구겐하임 미술관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이다. 아직도 금요일 오후면 생각나는 그 곳.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이야기를 오늘은 해보고자 한다.
건 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건축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꽤나 유명한 이 이름. 누군가에겐 영화 Fountainhead(마천루, 1949)의 하워드 로크와 같은 고집불통 괴짜(실제로 하워드 로크의 모델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이기도 하다)로, 누군가에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복잡한 사생활을 가진 치정꾼으로, 그리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근대건축의 5인 중 한 명이자 미국 건축의 아버지같은 존재로 알려져 있는 그는 그의 길었던 삶만큼이나 다양한 이야기꺼리를 만들어낸 사람이었다. 그의 인격이나 사생활과는 별개로, 그의 건축 [영화 Fountainhead 의 하워드 로크]
자체가 20세기 건축사에서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유럽의 건축가들이 가질 수 없었던 비범한 그의 대륙 기질. 난 그의 프레리 스타일 (Prairie Style 평원 스타일)의 건축들에서 신대륙을 개척해나가는 초기 미국인들의 대범한 기질이 보인다고 생각한다. 신대륙을 개척하는 이들만이 가질 수 있었던, 사방으로 쭉쭉 뻗어나가는 강렬함, 역사나 전통, 관습 따위의 구애를 받지 않는 호방함이랄까. 그런데 사실 그 안에는 벽난로를 중심으로 한 아늑한 피난처가 마련되어 있어 초기 개척자들에게 위로가 되어주는 공간이 되었을 터. 좀 더 스케일이 커진 후의 그가 추구하던 유소니아(Usonia, 미국식 평등주의 문화를 말한다) 개념에 입각한 도시 계획 등에서는 마치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아이가 그린 ‘미래도시 상상도’와 같은 순수한 열정이 묻어나와, 그야말로 미국스러운 ‘유토피아’를 꿈꾸던 모더니스트들의 생각을 읽어볼 수도 있다.
[Image Source: Wikipedia Creative Commons] Tallesin I 주택. 쭉쭉 뻗어나오는 지붕과 매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정부와 아이들이 살던 곳으로, 그들은 이 곳에서 끔찍하게 살해당하였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 중 가장 유명한 것은 Falling Water (낙수장) 이라는 이름의 주택, 그리고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일테다. 카우프만 주택, 혹은 낙수장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집은 폭포위에 세워져 있어 폭포소리를 그대로 들을 수 있으며, 주변의 산에서 그대로 돌출하여 만들어진 듯한 집의 구성으로 인해 자연 그 자체로 읽혀진다.
htt p://us at oday30 .us atoday.com/life/ peop le/2 0 06 -12 - 10- brangelina-fallingwate r_x.ht m]
철근콘크리트를 사용하면서도 자연의 언어를 그대로 따르고자 했던 그의 건축언어가 그야말로 정점을 찍고 있는 듯 하다.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픈 곳인 이 곳은 몇 년 전, 안젤리나 졸리가 브래드 피트에게 생일선물로 주면서 더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그 이후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한 프로젝트가 바로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 거의 90이 다 되어가던 이 노인은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었던 미술관을 짓기에 이르렀다.
파격의 미술관, 뉴욕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 하면 먼저 떠오르는 그림은 뱅글뱅글 도는 나선형의 이미지이다. 마치 어렸을 때 유치원에서 하얀 흙덩어리를 얇게 만들어 뱀처럼 또아리를 틀게 뱅글뱅글 돌리다보면 물병? 같은 게 만들어졌던 것처럼 이 건물은 정말 하얀 선을 동글 동글 돌리다 보니 미술을 담는 거대한 도자기를 만든 것 같은 형태이다. 뉴욕을 방문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들리는
[Image: Wikipedia Creative Commons]
그 곳. 그리고 뉴욕에 사는 예술공부하는 학생들에겐 금요일 오후 5시의 마법을 베풀어주는 곳(뉴욕의 많은 미술관, 박물관들은 금요일 오후에 ‘공짜로’ 전시를 관람하게 해 준다. 그 중 나와 내 친구들이 가장 사랑했던 곳은 MoMA와 구겐하임. 가난한 유학생들에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일주일의 이벤트였다.)이자 MoMA와 함께 뉴욕의 현대 미술을 이끌어 가는 곳인 이 미술관이 주는 인상은 사실 너무나도 심플하다. 그런데 이 심플한 공간이 주는 공간의 힘은 꽤 거대하다. 중앙은 텅 비어 있어 빛으로 가득차고 하얀 콘크리트 나선 띠는 자연스레 그 빛을 전체 미술관에 퍼트린다.
[Image: 2007년 가을에 찍은 사진. 구겐하임을 방문한 이들은 이 구도의 사진을 참 많이 찍는다J]
그런데 사실 지금은 너무나도 익숙한 이 풍경의 미술관이 당시로서는 꽤나 낯선 풍경이었을 것이다. 전통적인 미술관은 ‘예술작품’을 위한 ‘하얀 벽’을 제공하는 방이어야 하는데, 이 미술관은 ‘방’이 아닌 램프라는 ‘통로’가 예술작품을 전시하기 위한 공간일 뿐 아니라,
관람자로 하여금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든다. 심지어 관람객의 시선은 (예술작품이 걸리는) 벽을 향한 것이 아니라 빛이 들어오는 로툰다를, 다른 이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이는 로툰다를 향한다. 어찌 보면 미술관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예술작품이 나선형 램프에 밀려 오히려 외면당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예술작품의 소장자인 미술관 입장에서는 사실 이같은 현상이 달갑지 않을 법 하나, 오히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 이후 미술관이라는 공간 개념의 혁신이 생겼으며 현대 예술을 이끌고 나가는 미술관으로서의 위상도 다지게 되었으니 아마 구겐하임이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를 건축가로 선정한 것은 결국 매우 잘한 선택이 아니었을까.
[Image: Wikipedia Creative Commons]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 설계 당시, 구겐하임 미술관을 이끌던 예술가인 Hilla von Rebay는 “Temple of the spirit”을 만들어 달라고 하였다고 한다. 그녀의 요구에 따라 프랭크 로이드는 빛과 나선형 램프로 가득찬, 그리하여 방과 방을 이동하며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엘레베이터를 타고 맨 위층으로 올라와 램프를 돌아 빙글빙글 내려가며 작품을 감상하는 완전히 새로운 "20세기 모던의 정신이 빛나는 예술의 성전”을 만들었다. 인간이 신에 이르고자 만들었던 바벨탑이 땅에서 하늘로 돌고 돌아 오르는 나선형의 구조를 가졌다는 걸 생각해 보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하늘에서 땅으로 돌고 돌아 내려오는 나선형 구조을 가진 미술관을 만들면서 혹 이 것을 새로운 시대의 신전의 모티브로 삼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순전히 내 생각이지만..)
[Image: 2007년 가을에 찍은 사진. 로툰다의 천창에서 쏟아지는 빛은 흰색 콘크리트에 부딪혀 반사되어 전체 공간으로 흐른다.]
그리고 또 다른 구겐하임 미술관들 서두에서 3개의 구겐하임 미술관에 모두 다 가 봤다는 자랑질 아닌 자랑질을 했으니, 나머지 두 구겐하임 미술관에 대해 간략한 소개. 먼저, 너무나도 유명한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디자인한 이 번쩍번쩍 거리는 물고기 비늘같은 티타늄 마감의 미술관은 Bilbao Effect라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전 세계에 건축적으로, 그리고
[Image Source: Wikipedia Creative Commons]
도시경제적으로 큰 이슈를 불러 일으켰다. 빌바오라고 하는 경제적으로 쇠퇴기에 있던 스페인의 오래된 작은 공업 도시에 건축물 자체가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된 이 미술관이 건축된 후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듬으로써 도시 경제에 엄청나게 큰 도움을 주었는데 Bilbao Effect는 이 걸 표현하는 말이다. 이후 세계 곳곳에서는 사회경제적 효과를 노리고 미술관 건축에 열을 올리는 결과가…아무튼, 개인적으로는 기존 도시를 지배하는 경관을 만든 몬스터 같은 기분. 다음으로는 가장 최근에 다녀온 베니스의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정확한 명칭은 페기 구겐하임 콜렉션). 베니스 구경에 나선 첫 날 아침, 바포레토를 타고 운하를 가로지르던 중 눈에 띄인 매우 모던한 테라스. 저 곳은 무엇일까 했더니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 베니스에서 가장 모던하게 석호를 마주하고 있는 건물. 내부는 페기 구겐하임이 살던 집이자 개인 갤러리였던 Palace를 사용하여 건축적으로는 크게 두드러지는 점은 없지만, 매우 아름다운 정원을 가지고 있으며, 그 무엇보다 정말 아름다운 운하를 향한 테라스를 가지고 있다. 시원하게 운하를 향해 쭉 뻗은 테라스는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이나 빌바오 구겐하임 미술관에 비해 그 ‘파격’의 정도는 덜할지 모르나 ‘모던’을 찾기 어려운 베니스에서는 나름 ‘파격’의 건축이 아닐까 싶다.
남은 이야기들. 1. 몇 달 전 핀란드의 KIASMA라는 미술관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 KIASMA의 복잡한 동선 구조는 서로 엇갈리고 엇갈리며 관람객들이 서로를 바라볼 수 있는 구조가 되어 있었는데, 사실 이렇게 관람객들이 서로를 구경할 수 있는 구조는 솔로몬 구겐하임 미술관이 원조가 아닐까 싶다. 솔로몬 구겐하임에 가면 나선형 램프를 둘러싸고 로툰다를 내다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을 발견할 수 있다. 예술작품은 반대편에 있는데 오히려 사람들은 램프에 기대어 로툰다를 바라보며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다. 구경하러 왔다가 구경거리가 되어 버리고 마는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 장면들이 갈 때마다 재밌게 느껴져서 찍어뒀던 몇 장의 사진들.
2. 동경제국호텔을 설계했기 때문일까, 라이트는 한국에서도 꽤 유명인물이었던 거 같다. 1920년대 말 신문 기사 [조선일보 1927.07.05]에 건축가 ‘라’씨의 이혼소송 기사가 났을 정도니…
게임 노동 일지
글. 그림. 철민
식빵
그녀는 여름방학을 맞아 유럽으로 배낭여행을 다녀온 친구를 만났다. 친구는 작은 유리병을 건네며 말했다.
“선물 사왔어. 이거 먹어본 적 있어?”
“누텔라라고, 초콜릿 잼인데, 악마의 잼이야.”
그녀가 고개를 가로젓자, 친구가 말을 이었다. 그녀로선 달갑지 않은 선물이었다. 마음 같아선 다른 선물로 바꿔달라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순 없었다. 그래서
“야. 나 단 거 안 좋아하는 거 몰라?”
“일단 냄새라도 맡아봐. 아……. 야, 난 생각만 해도 행복해진다.”
라며 화를 냈다.
뚜껑을 열자 달콤한 냄새가 났다. 그녀는 그 냄새가 싫었다. “맛있겠지? 그치?”
친구의 물음에 그녀는 “아니.”
라고 답했다. 그래도 아담한 사이즈의 병은 제법 귀여워 보였다. “예쁜 유리병 선물 고마워.”
그녀의 비아냥거림에 친구는
“야. 일단 먹어봐. 먹어보고 나서 말해.” 라며 툴툴거렸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누텔라를 냉장고에 넣었다. 그리곤 잊어버렸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지나고, 새해가 밝고, 새 학기가 시작되었다. 냉장고 안의 누텔라는 점점 숙성되어 부풀어 오르기 시작했다. 여름이 다가올 무렵에는 냉장고
선반 위로 흘러내렸다. 고체도 액체도 아닌 잼 특유의 점성으로 끈적끈적하게 선반 위에 늘러 붙었다.
새벽, 물을 마시려고 냉장고 문을 연 그녀의 눈에 누텔라가 들어왔다.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냉장고 안으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러자
“이게 뭐지?”
“나는 누텔라다.”
라고 누텔라가 말했다. “누텔라?”
그녀가 되묻자 누텔라는
“그래. 네가 냉장고에 처박아둔 바로 그 누텔라다.”
라고 말했다. 냉장고 문을 닫고 잠시 멍하니 서있었다. 친구에게
누텔라를 받던 장면이 떠올랐다. 그녀는 다시 침대로 돌아가 잠을 청했다.
이튿날, 그녀는 친구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네가 준 악마의 잼이 말을 한다고. 그러자 친구는
“드디어 미친 거야?”
“근데 그거 아직도 다 안 먹었어? 안 먹을 거면 나 줘.”
라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그리고 이어서
라는 메시지도 보내왔다. 그녀는 둘 모두 씹었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냉장고 문을 열었다. 다행히 선반 위에 누텔라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깊숙한 곳에 박혀있는 귀여운 유리병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는
병을 꺼내 뚜껑을 열었다. 단내가 풍겼다. 누텔라는 찬 데 오래 있어서인지
단단하게 굳어 있었다. 그녀는 다시 뚜껑을 닫고 누텔라를 책상 위에 두었다. 그리고 지갑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먹어보자. 뭐에 발라 먹지? 아이비? 식빵? 바게트? 생각하다보니 얼마
빵집 골목에 들어서자 구수한 냄새가 풍겼다. 입 안에 침이 고였다.
전 블로그에서 보았던 빵집이 떠올랐다. 식빵이 맛있다던 빵집.
그녀는 빵집에 들어가 우유식빵 한 봉지를 샀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식빵을 뜯어먹었다. 쫀득쫀득하고 고소한 게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 식빵에 누텔라를 발라 먹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집에 돌아온 그녀는 문을 열었다. 문이 잘 열리지 않았다. 힘껏 문을 잡아당기자 그제야 쭈우우욱 열렸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살피니 문 아래 짙은 갈색빛의 누텔라가 끄은저억 끄은저억하게 늘러 붙어 있었다.
“이게 뭐야!”
“왜 이리 늦었어?”
그녀가 소리를 지르자 누텔라가 말했다. 그녀의 다리 위로 누텔라가 슬그머니 달라붙으며 말했다.
“계약을 합시다. 당신은 며칠 안에 기쁜 마음으로 내 재주를 보게 될
것이오. 어떤 인간도 아직 보지 못한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이다.”
그녀는
라며 식빵 봉지로 누텔라를 밀어냈다. 봉지가 뜯어지고 식빵 위에
“뭐라는 거야, 이 미친놈아!”
누텔라가 발렸다. 그녀가 한 입 베어 물자 입 안에 초콜릿이 첨벙첨벙 요동을 쳤다. 그녀는 달콤한 환상에 취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눈을 뜨자 예쁜 유리병이 식빵 위에 놓여 있었다.
사나이건 겨울에는 내복을 최대한 늦게 입 는다. 남들이 입어도 안입은척 추워도 안추운 척....작년 이맘때였다. 나는 길을 가다 엄청 놀라운 아이템을 발 견했다 그건 바로 기모타이즈... 항상 사내 @odeng2004
대장부로 살다보니 겨울 it아이템 이런거 엔 관심을 두지않는다. 그런 내가 기모타이
사나이의 속사정
즈를 발견하고 하나를 장만한다 그걸 보는 순간 나는 이리까페 주인장 친구가 떠올랐 다. 항상 움츠려있고 상수동 시베리아고기
대한민국의 남자는 어릴적부터
압의 최가장자리에 있는듯한 모습 이 아이
타의에 의해 사내대장부가 된다. 길가다 넘어졌을때 사내대장부는 훌훌털고 일어나야지? 울다가고 사대대장부는 우는거 아닌데? 밥 을 남겨도 사내대장부 옷이나 양 말 신발을 신을때도 혼자 척척하 라는 의미로 강제 사내대장부가 된다. 학창시절에는 겨울에 젤먼 저 내복입는걸 공개하기를 꺼려 하고 왠지 내복을 입으면 사내대 장부가 아닌거라며 자체검열하여 발설을 하지 않기도 한다. 담배를 처음경험할때 술을 처음 경험할때도 사내대장부란 엇나간 꼬리표로 인해 일찍 경험하기도 한다. 성인이되거나 군대를 가면 사내대장부란 꼬리표를 누가 그 러라고 한것도 아닌데 사나이로 바꾼다 사나이... 사나이란 호칭을 단다는것은 더 이상 사내대장부로 강등(?)될일 이없는 훈장과 같은 생각과 동시 에 사나이에 걸맞는 행동 사상 철 학을 가져야된다. 사내대장부건
부 산 오 뎅 이 야 기
템은 그 친구를 위한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 며 구매 전달을 한다. 친구의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며 사나이는 속으로 피식웃으며 올겨울 따뜻하게 보내라는 덕담을 건넨다. 그렇다고 사나이라고 한겨울에 아무것도 안입는다는건 아니다. 얇은 어~~어~~ 엄청얇은 입으나 마나한 히트텍 같은건 입 는다. 그나저나 올 겨울은 작년 겨울과는 좀 다른거 같다 일주일동안 기온이 영상 으로 올라가지 않은적도 있었다 이상 한파 라는 얘기도 뉴스에서 나온다. 고향에 계 신 부모님은 가게 수도는 안얼었냐며 걱정 을 하신다 물틀고 다녀서 괜찮다고 안심을 시켜드린다. 사계절 내내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는걸 아 시다보니 오토바이 타고 다니면 추울텐데 따뜻하게 입고 다니라며 고구마(?)얼면 큰 일난다며 다큰자식 고구마(?)걱정을 하신 다. 고뇌에 빠진다 나는 괜찮은데...하지만 부모님이 걱정하시잖아. 불혹의 사내대장 부는 인터넷쇼핑몰을 탐색한다. 기모타이 즈를 검색하다가 기모청바지라는 신세계 를 발견한다.
Road - 1 (김치) 글. exxx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가 태어나기 이전의 세상을 잘 모른다. 태어난 이후도 자세하게 알지 못하고 겨우 아장아장 10여년 돌아다닌 세상 그것도 내가 마주한 몇몇 구석들만 아련하게 (개인적으로 애착을 갖고) 알 뿐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생각이나 분석이란게 큰 통찰력을 갖지 못한다. 다만 그러려니 하거나 그럴듯하게 엮는 것 같다. 아무튼 2015년 내가 엮어갈 시리즈도 마찬가지이다. 숲에서 길을 내듯 몇개의 가지를 꺾어보고 낙옆을 적당히 밟아서 뭔 짐승 한 마리가 지나갔나 보다 하는 정도의 연재가 될 것 같다. 작은 개의 목소리 처럼 시작이 쓸데 없이 카랑카랑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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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고 확정한 것은 아니고 여기저기 찔러보다 보니 시간만 흘러 내 이럴줄 알았지 하는 마음으로 시작되는 연재 정도로, 내일이나 모레나 어떤 필자가 음식에 대한 연재를 하겠다고 하면 당장에 물러설 시리즈가 될 것이다. 어쩌면 당장 다음달부터 음식에 대한 연재가 아니게 될 수도 있다. 그래도 오늘은 음식에 대해 글을 쓴다. 김치에 대해, 음식에 관해 무슨 글을 써야하나요? 라고 물었던 사람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지 못한 글을 쓰게 될 까 두렵기도 하다. 각설하고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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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나 인터넷 게시글을 통해 본 겨우 작은 단면이겠지만 김치만큼 만만하게 무시당하는 것도 없는 것 같다. 무슨 한식에는 김치만 있냐면서 김치를 은연중에 깔아 이야기 하고 좋지 않은 의미로 김치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고 김치 없이 밥을 못먹는 그런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참으로 속이 상해서 첫번째로 김치에 대해 쓰기로 했다. 담배를 옹호하던 비흡연자도 했었으니 이것이라고 못할 것인가.
요즘은 김치의 위상이 전 같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자랄 때만 해도 김치의 지위는 거의 ‘신’의 위치에 있었다. 즐겨 먹었기 때문에 산더미 같은 김장을 했었고 밥상에 없어서는 안되고 또 그 맛이 이 집과 저 집이 다른 것을 무척 존중하여, 옆 집에서 가져온 김치라며 겉보기에는 똑같아 보이는 배추김치를 2종류를 떡하니 반찬으로 올려 놓기도 했다. 그리고 이게 맛있니 저게 맛있니 하면서 열심히 똑같아 보이는 김치를 집어먹은 일도 흔했다. 밥상에 김치가 올라가지 않고는 상차림이 완성되지 않았고 김치가 떨어졌다는 이야기는 그 집 식탁에 무슨 큰 결함이 있는 것같은 일종의 종교같은 반찬이었다. (아 왠지 늙은이 이야기 같아 쓸쓸하다.)
김치는 옆집에서 가져오지 않아도 특별한 이유 없이 열무와 배추, 겉절이 신나면 물김치, 갓김치까지 구비되기도 했었고 아무도 의문시 하지 않는 성스러운 존재에 가까웠다. 집에 김치가 4종이 있으면 당연히 다 올려 놓는
그런 존재였다. (비슷한 이유로 예전에 밥을 하던 시절에 반찬으로 김치볶음 올렸다고 김치 안놓았다가 욕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그리고 다들 신이나서 밥을 먹었다. 그리고 아주 많이.
요즘은 옛날로 치면 애기들 밥그릇 같은 크기의 공기밥을 먹으면서도 그걸 반으로 갈라서 먹니 못먹니 이야기를 하지만 내가 유치원에 다닐 나이만 해도 밥그릇이 얼마나 컸는지 성인이 된 내 주먹 두개가 들어갈 정도 였다. 그것도 깎지 않고 거기에 주먹 크기의 밥덩이를 하나 더 얹어 주었다.
뭔 김치 이야기를 하면서 밥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하냐면.. 김치가 갖는 특징 같은 것 때문에 이렇게 장광설을 펼치고 있다. 먹으면 짜고 시고. 한조각 먹어도 입에 침이 샥 도는 그 맛. 그것 말이다.
나의 어머니 맛인 충청도는 다른 지방에 비해 군내가 적고 시원한 맛이 강한 그런 김치여서 더욱 그런 인상이 강했다. 혹시 충청도 김치를 먹어보지 않았다면 꼭 구해서 먹어봤으면 좋겠다. 엉뚱한 억지 같지만 괜히 한식대첩 시즌2 우승지역이 아니다. 크게 유명해지지 않았지만 충청도 김치만큼은 정말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충청도 김치를 샐러드 라는 말로 설명한다. 적당히 시원하고 매콤하고 신맛이 나는 상큼한 샐러드..
누군가 나에게 밥과 함께 평생 하나의 반찬을 먹어야 한다면 하고 물어본다면 나는 주저없이 ‘김치’라고 할 것이다. 아주 대단한 미식가는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에 살면서 보통 정도 수준의 식생활을 경험해 본 바. 내가 쌀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에서 조그맣게 나마 종횡으로 음식을 먹어본 바 하나를 골라야 한다면 김치를 고른다.는 결정을 나는 내린다. 왜냐하면 ‘밥’ 과 함께 - 고구마나 감자랑도 잘 어울린다. - 탄수화물 / 하나의 - 시시때때로 맛이 유연하게 변하여 지루하지 않게 먹을 수 있는 / 이 두가지 조건이 김치를 완벽하게 한다.
어제 먹고 냉장고에 넣어 둔 김치가 내일은 다른맛이 되어 밥상위에 오를 때의 감동은 이루 말로 할 수 없다. 이런 내가 스무살 이전에는 아침에는 김치를 먹지 않았다면 믿겠는가. 햄이니 소세지니 그외에 많은것들을 다 먹고 보니 김치의 맛이란게 꽤 놀라운 수준이었다.
물론 매일 달라지는 그 맛이란 것이 늘 잘 들지는 않고 때로는 군내가 난다거나 아주 시어진다거나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것을 적당히 조리하면 또 맛있는 반찬이 된다. 이 김치를 김치 이외의 반찬으로 만들려는 절약의 노력과 아이디어를 발휘한 어머니의 수고스러움은 어쩔것이냐고 한다면 감사하다고 말하는 수 밖에 없다. 진심으로 감사하고 또 감사하자.
뭐 아무튼 나의 짧은 식견으로는 김치의 가지수나 그 맛이 천변만화 하는 그것은 절대 우습게 볼 수 없는 그리고 어지간해서는 같은 위치에 한국의 다른 음식을 놓기 힘든 부분이 있는 것 같다.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너무 우습게 보거나 홀대 하지 말자고. 편협해도 어쩌겠나. 아장아장 10년이라고 하지 않았나. 쓰는 나보다 읽는 당신이 더 관대한 사람일테니 부디 유하게 다음달을 기다려 주시길...
끝.
편집인의 편지. <2015년 1월 까지 대략 무슨 일이 있었나>
저희의 필진 그리고 지난 필진들은 지난 12월 비슷한 내용의 메일을 받았었고, 이를 내부의 일로 묶어두느냐 밖의 사례로 남겨두느냐 중에서 제가 선택한 방법은 밖으로 꺼내는 것입니다. 어떤 시도들은 기록이 되어있으 면 사례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월간이리는 그 간 4년을 거쳐오면서 48호의 정기 발간을 마쳤습니다. 가장 두꺼웠던 기억은 아마 104페이지 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가장 얇았던 것도 45쪽, 그 아래는 없었습니 다. 대략 45쪽이라고 한다면 지난 4년간 최소 2160쪽의 무언가를 남겨온 것입니다. 첫달에는 ‘에 뭐 이런것을 다 만들었나.’ 싶었지만 숫자로 적어보니 엄청난 분량인 것 같습니다. 비용은 최소 20만원가량으로 잡는다 해도 960만원. 실제로는 최소 1천만원 이상의 금액이 투입된 여정이었습니다. 이리카페와 부산오뎅, 서울시 마을미 디어 지원센터의 후원으로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오프라인 배포 부수는 매월 약 200부 가량으로 (최소) 9600권 정도의 월간이리가 이 세상 어딘가에 뿌려진 셈입니다. (1만권이 넘습니다.) 오직 PDF 온라인 배포용도로 사용되는 홈페이지 HTTP://POSTYRI.BLOGSPOT. COM 페이지는 97867의 페이지 뷰를 기록하였습니다. 이 수치의 1/5정도가 실제 독자라고 계산한다면 19574 의 페이지뷰 약 20000번 정도의 온라인 스침이 있었습니다. 1/10이라고 하면 약 1만명 정도가 되겠네요. 그 4년의 마지막 즈음에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이 잡지를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언제까지 하려고 하는가?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을까? 비용의 문제도 노력 의 문제도 홍보의 문제도 다 포함된 고민이었습니다. 순수 온라인 페이지로의 변화 라던가, 계간지가 된다거나. 편집인의 교체, 표지 디자인의 교체, 등등 다양한 고민을 하고 (아주 조금) 우왕좌왕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고민의 결과 월간이리는 2015년에도 과거의 체제 그대로 진행됩니다. 기존 무료 배포와 온라인 무료배포는 그대로 진행하면서 일부 인디북 서점에서 유료 판매를 고려해 보기도 했 었습니다. 물론 시장에서 갈등이 있을 수 있겠지요. 당연히 앞의 이유로 실패한 계획이 되긴 했습니다. 하하. 아 무튼 그렇습니다. 별 것 안변하는 것 같아도 내부적으로 고민은 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일부 판매가 안된다고 전면 판매로 전환하기 보다 후원계좌를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실제 인기가 궁금하기도 하고..) 아주 잘 팔 고 싶어서 안달하거나 안팔려서 좌절하기 보다 그냥 하다가 기운 떨어지면 그만 하자는 생각이 더 스스로에게 설득력 있었기 때문입니다. 뭐 그렇습니다. 역시 늘 하는 이야기지만 잡지 스스로 일어나는 것만이 답이겠지 요. (아니면 제가 엄청 유명해지거나..여러분 제 음원에 힘을 !! ) 후원계좌도 열고 위대해 지도록 버둥거려보겠 습니다. 홍보도 열심히 하고 말이죠. 독자 여러분들도 재미있으면 열심히 홍보해주세요. 올 한 해도 건강하시 길 바라며 즐겨찾기 번호를 남깁니다. 즐겨찾기 : 우리은행 1002-045-784310 이훈보 시대의 정론지를 희망하는 (??) 월간이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