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 입니다. 비밀 동툰 / 글. 그림. beamil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 글. 사진. 아홉시 영화로 읽는 시공간 - 고생사의 끝, 미국식 영웅주의 언브로큰 한국영화 돌려 깎기 - 군도 / 글. 최지원, 곡주대비, 박이현 기록에 대한 기록 - 낮의 노래, 밤의 노래 / 글. 박이현 여기 문학이 필요한시간 - 윤동주 「사랑스런 추억」 / 글. 고수진 작곡가 B의 노트 - 작곡가 되어보기 - part 1 / 글. Composer B 놀고 먹고 그리고 / 그림. 김혜리 송창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 쎄시봉 관람기 / 글. 박재현 idology’s pick - 인터뷰 : 소이, 아키하바라상의 어떤 노심융해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소개소 / 글. 신당동 파르한 낭만 스파이 - 시원하게 추운 / 글. 사진. 낭만스파이 #000000 : 위계 잃은 공간 속 배너. / 글. 사진. 김성연 건축이 좋아 - #17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사진. 글. aoikasa 게임 노동 일지 / 그림. 글. 철민 부산오뎅 이야기 - 나도 모르는 나의 미래 / 글. odeng Road - 2. 밥 / 글. exxx
2월호를 마지막으로 그간 놀고 먹고 그리고를 그려주셨던 일러스트레이터 김혜 리님의 연재가 종료되었습니다. 재미있는 그림이 매번 월간이리의 한 페이지를 밝게 채워주었습니다. 깊은 감사드립니다. 다음달에는 새로운 분들의 참여가 있을 것 같습니다. 늘 같은 잡지 같지만 조금 씩 바뀌고 있답니다. 헤아려보니 월간이리는 올해 안에 인디잡지 역대 발간 부수 기록을 갈아치울 확률 이 높은것 같습니다. 여기까지 올 줄 모르고 걸어왔더니 허허.. 한때는 길을 잃어버 린 것 같아서 주변을 두리번 거리기만 몇 달을 했던 것도 같은데 하하.. 어떻게 지내십니까? 저는 일주일 째 감기를 단 채로 기침을 하고, 편집을 하기 위해 변사또의 마음으로 필진들을 독촉하고 MB의 마음으로 자신의 글을 대충 얼버무리고 그렇게 지내고 있습니다. 음악도 대충하고 있습니다. 감기가 아직이시라면 걸리지 않게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올해 감기는 괴롭지는 않은데 잘게 길게 가네요. 연재문의 는 exxx2x@gmail.com 이나 @postyri 로 언제든지 주세요.
월간이리는 많은 분들의 지원과 노력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한 분 한 분의 도움이 잡지의 생명력을 보다 질기게 합니다. 지난 달에는 1분의 후원이 있었습니다. 안보영님 감사드립니다. 후원 계좌 : 우리은행 1002-045-784310 이훈보
편집: 이훈보 공식트위터 @postyri
표지: 이주용
비 밀 동물툰
Animal Toon by BEAMIL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
* 2015년에도 여전히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나름 위트있게, 뜨끔하게 쓰고 그린 짧은 만화를 기고합 니다. 팩트를 뒷받침하는 기사와 간단한 의견도 함께입니다. 많이 공감해주세요. 제보도 감사합니다. twitter/ _beamilie 기사 원문의 훼손은 없으며, 요약 편집은 있을 수 있습니다.
* 지난 날 언젠가 TV 동물농장 재방송을 통해 안타까운 사연을 보게 되었습니다. 평소에도 동물원 문제는 언제나 제게 많은 시사점을 갖게 했는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문제를 직면하게 된 건 처음이었죠. 눈이 움푹 꺼지고 이빨이 돌출된 호랑이의 모습이 비춰졌는데 그 녀석은 원래 서울의 유명 동물원에서 태어난 호랑이 크레인입니다. 태어날 때부터 외모가 달라 무리에서 떨어진 크레인은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원주의 작은 동물원으로 옮겨지게 되었죠. 그런데 그 곳은 ‘드림’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과는 달리 척박하고 쓸쓸했어요. 여하간 방송을 타면서 아프고 순한 호랑이 크레인은 이전의 인연도 있고, 태어난 곳인 서울의 동물원으로 다시 이주하게 되었어요. 척박한 동물원의 대표로 말이예요. 하지만 남아있는 동물들은 방송 후 3년이 지난 2015년 지금까지도 굶주린 채 살아가고 있다고... 아, 그렇게 된 이유는 이 곳이 한 ‘개인’이 만든 사설 동물원으로 심각한 경영난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을 사서 동물원을 만들어 돈을 벌고 싶은 사람과 동물을 살리기 위해 돈을 모아 동물원을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입니다.
한국경제 ‘동물농장’ 강원도 동물원, 개사료로 명줄이어가 ‘처참’[민경자 기자] 3월25일 방송된 SBS ‘동물농장’에서는 유달리 동물들이 힘이 없고 우리에서는 악취가 진동한다는 제보에 따라 강원도에 위치한 한 동물원을 찾았다. 이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은 하나같이 말라있고 활기가 없었으며 무엇보다 관람하기 불편할 정도로 지저분하고 악취가 진동하는등 관 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 사실 확인을 위해 제작진이 해당 동물원을 지켜본 결과 동물들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아주 적은 음식 에도 필사적으로 반응했으며 탈모는 물론이고 다리가 아픈지 절둑거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경악을 금치 못한 것은 대부분의 동물들이 저렴한 개사료로 생명을 이어가고 있었으며 이 마저도 부족해 자신이 먹던 것을 토해내고 다시 그것을 먹으며 포만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 동물원은 사설 동물원으로 그동안 극심한 경영난을 겪어왔다고. 이에 동물원은 설득끝에 동물보도단체의 도움을 받아들이기로 결 정했다. 동물보호단체는 동물원 곳곳을 돌며 개 사료가 아닌 각각의 동물들에게 맞는 먹이를 공급했다. 일단 영양 보충이 급한 맹수들부터 챙 겼는데 사자는 생닭 한마리를 받더니 뜯어먹기는 커녕 오랜만에 맛 본 음식을 핥으며 음미하기도 했다. 또한 불곰들은 음식 냄새를 맡 고 활기가 생기며 반가워했다. 당장 동물원 밖으로 못 나가는 동물들은 당분간 동물원에 두고 상태를 보며 회복시키기로 했다. 야생동 물은은 근처 강원도 야생보호센터와 연계해서 적절한 치료를 하기로 했다. 동물자유연대 조희경 대표는 “동물원은 동물을 통해서 이득을 얻어 상업적으로 이용하는 시설이다”라며 “어떠한 경우에도 문제가 생기지 않고 동물들이 제대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법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강원일보 치악산 드림랜드 ‘악몽의 나라’2007.6.29 [이명우 기자] 치악산 드림랜드가 놀이시설 규정을 위반해 사업정지 처분을 받는 등 파행 운영되고 있다. 원주시는 치악산 드림랜드가 5월16일까지 놀이시설에 대한 안전성 검사를 받았어야 하지만 이를 받지 않고 타인 경영을 금지한 규정 을 위반해 21일부터 8월4일까지 45일 동안 놀이시설에 대해 사업정지 처분을 내렸다고 28일 밝혔다. 더욱이 치악산 드림랜드는 전기요금을 3개월 동안 내지 않아 25일 오후 5시부터 단전조치 돼 수영장과 동물원을 가동하지 못하는 등 파행 운영되고 있다. 한전 원주지점 관계자는 “드림랜드가 3개월치 전기요금 1,500여만원을 납부하지 않아 부득이 단전조치 하게 됐다”며 “체납된 요 금을 납부하고 향후 3개월치의 요금을 보증금 또는 증권으로 예치해야 전기를 재공급할 수 있다”고 했다. 치악산 드림랜드는 1995년 강원도로 부터 공원사업 허가를 받아 소초면 학곡리 일대 6만1,844㎡ 규모로 조성돼 운영중이다.
* 방송에서는 강원도청과 원주시청에서 오히려 동물원의 경영난에 따른 피해를 돌봐주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게다가 몇 개의 동물단체에서는 이 일을 대대적으로 돕고 나섰죠. 후원을 받아 사료, 병원비 등 동물원에 들어간 후원금을 공개해 가며 도왔으나 2013년 다른 기업의 인수로 신규 투자 후 영리적 이익을 취하고 있으므로 비영리 단체에서의 행동을 일제히 멈추게 되었습 니다. 그러나 이 사태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2014년 여전히 낙후된 동물원으로 남아있게 되었고 강원도청과 원주시청, 동물단체들도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지켜보고 있는 상태. 2015년에는 강원도청에서 빌려준 동물원 부지의 계약기간이 끝남으로 어떠한 결 판이 나게 된다고 합니다. 사람의 욕심으로 인해 피해를 보고 있는 건 오로지 동물들뿐입니다. 동물원이 어떠한 사태로 끝나게 되든, 동물들은 행복해졌으면 좋겠 습니다. 스트레스로 자신의 털을 뽑아대는 타조와 초점을 잃은 염소, 먹은 것을 토한 후 다시 먹는 곰.. 경영진이 좋아한다는 깡마른 달 마시안. 그들이 원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영화로 보는 시공간 : 고생사의 끝. 미국식 영웅주의, 언브로큰 (UNBROKEN, 2014): 졸리 언니의 실망스러운 서사.
안젤리나 졸리 처럼 ‘개과천선’한 배우가 있을까. 20대 때는 오만 남자를 다 ‘후리고’ 다니다가 빌리 밥 손 튼 같은 본인과 비슷한 레벨의 망나니 남자 (좋은 배우이기는 하다) 를 만나 도화지 한 장만한 그의 이름 의 문신까지 새기더니 남동생과 근친 관계라는 염문을 뿌려 세상을 뒤집고… 곧 제니퍼 애니스턴 (혹은 전 세계인의) 의 스윗 하트 였던 브레드 피트까지 뺏어낸 그녀. 그녀가 벼락을 맞았는지 언제부터 선행들에 앞장 서기 시작했는데 아프리카 난민 아이들의 구호 활동이 아마도 초기가 아니었나 싶다. 여기까지 읽은 독자들은 필자가 심히 졸리의 행보에 대해서 냉소적으로 보 고 있지 않나 생각 할 수 있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젊었을 때 좀 ‘놀아본’ 동료로서 그리고 이제는 세상 을 바꾸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어른 동료’ 로서 그녀의 발자취는 귀감이 될 만하다. 단지 더 이상 악동이 아닌 그녀가 한편으로 아쉽기도 할 뿐이다. 그런 그녀가 두 번째 영화를 제작했다. 그녀의 두번째 장편 영화 언브로큰은 금메달 리스트 마라톤 선수 였던 루이 (Louis Zamperini)가 진주만 전쟁에 징병 되면서 겪게 되는 ‘고생사’ 이다. 영화는 지리 멸렬 할 정도로 주인공과 그의 동료 공군들의 수난사에 집중 되어 있다. 고생사 1막 에서는 추 락한 공군기에서 바다 위에 불시착해 몇 십여일 간을 버텨내는 과정이 그려지고, 누군가에게 구조된다 싶
더니 아군이 아닌 적군 일본군에게 포획 되어 독방 감옥에 갇히는 고생사 2막이 펼쳐진다. 간신히 버텨 내는가 싶다니 고생사 3막으로 숨가쁘게 전개 된다. 루이가 포로수용소로 옮겨가게 되면서 다 른 미국군인 포로들과 소통이라도 할 수 있게 되지만 과거 선수시절에 라이벌로 마주쳤었던 악덕 일본 장 교 와타나베 에게 받는 온갖 고문과 박해가 펼쳐지면서…이쯤되면….아…정말 지.친.다. 물론 죽자고 고생만 하다 죽어버리면 그만큼 허망한 영화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죽자고 고생 했지만 결국 살아나고 꽃다발 목걸이 받으며 환대 받으면…음.. 덜 허망한가? 이 영화를 보고 겹쳐지는 영화들이 참 많다. 나쁜 예: 강제규 감독이 크게 말아 먹은 마이 웨이. 좋은 예: 나쁘지 않았던 탐 행크스 일인극 캐스트 어웨이. 최고의 예: 스필버그 감독의 태양의 제국. 고생사 장르의 영화를 안젤리나 졸리의 행보와 병치해서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나름 산전수전 다 겪다 가 박애주의자로 성공가두를 달리고 있는, 소위 의식 있는 영화인이 만든 고생사/전쟁 서사/할리우드 블 록버스터/감독 변신 배우 영화로 언브로큰을 보기에는 너무 허망하다는 주장을 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 이다. 영화는 태양의 제국이 가진 인간의 죄의식도, 캐스트 어웨이가 그려내는 한 인간의 고독에 대한 서 사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단지 악한 일본인들과 선하고 강한 의지를 가진 미국인의 대립관계에 몰두하 는 듯 하다. 앞서 간단히 언급했듯, 2시간 40분의 러닝타임의 상당부분이 주인공의 생존기로 펼쳐지고 마지막 결말 10여분 정도는 실제 인물 루이 잠페리니가 그가 겪은 일제로부터의 비인간 적인 처사에도 불구하고 노인 이 된 그가 일본으로 다시 찾아가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의 응원 속에 그의 마지막 마라톤 완주를 수행하 는 것으로 할애 된다. 이 결론을 골자로 보면, 졸리의 작품은 안타깝게도 고생 끝에 낙이 온다라는 지극히 관습적인 메시지를 벗 어나지 않는다. 약간의 국수주의 적인 사족까지 붙여, 자애로운 미국인의 은혜로 극악무도한 일본인들은 용서를 받았고 심지어 영웅의 마지막 질주까지도 목격하는 거대한 영광을 하사 받은 것이다. 다소 냉소적으로 쓰긴 했지만, 솔직히 씁쓸한 영화다. 평소 졸리 감독의 스크린 밖 고귀한 활약들을 감안 했을 때 더더욱 그렇다. 물론 극영화와 현실은 다른 것이겠지만 그녀가 앞장서는 수많은 구호 활동들과 그로 인한 엄청난 긍정적인 파급효과들을 바라보건데 이 작품이 그것들의 풋프린트 중 하나가 되지 않 은 것이 안타깝다.
글. 곡주대비
최지원:
곡주대비 (hjkanjy@gmail.com) :
윤종빈 감독은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의
평소 윤종빈 감독을 매우 좋아한다. 그의
전작들과 다른 유쾌한 오락 영화를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데뷔작 용서받지 못한 자는 현재 그가
물론 그 오락 영화는 <군도 : 민란의 시대>이다. <범죄와의
누리는 유명세와 출세가 조금도 아깝지
전쟁>을 찍고 난 이후에 더 이상 세상의 변화에 대한 희망을
않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데뷔 이후의
잃어버린 느낌이었다고 고백했던 윤종빈 감독은 그런 것들을
그의 작품들 역시 하나 싫은 것이 없었다.
뛰어넘어, 치유해줄 수 있는 오락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고
특히 범죄와의 전쟁이 가진 약간의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영화를
스콜세지 적인 키치함, 그러면서도 지극히
본 후에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한국적이라 볼 수 밖에 없는 스크린을 가득
메꾸는
끈적하고
비릿한
톤.
오락 영화라고는 하지만, <군도>에서는 비정한 현실이
이것들이 내가 기억하는 윤종빈의 영화다.
디테일하게 드러난다. 부정부패한 양반들과 탐관오리들은
슬프게도, 이번 여름 블록버스터 중
틈만 나면 민중들의 재물을 착취한다. 이를 참지 못한
하나 였던 군도는 윤종빈의 강점 중 그
민중들은 스스로 도적이 되어버린다. 마냥 밝고 유쾌하지만은
어떤 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캐스팅에,
않은 설정이지만, 영화 곳곳에 전작에서 봐왔던 감독의
돈을 쏟아 부은듯한 세트에 그야 말로
블랙 코미디 유머가 능수능란하게 펼쳐진다. 마냥 웃을 수
소문난 잔치 중에 잔치 임이 분명했지만
없다가도 웃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영화에서 악인으로 나오는
윤감독의 장기라고 생각했던, 가령, 마음
‘조윤(강동원)’이 등장할 때마다 마냥 웃다가도 웃을 수 없게
잘 맞는 사내들 사이에 비릿한 무엇이나,
되어 버린다. 그 이유는 영화에서 민중들을 괴롭히고, 가차 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조윤의 캐릭터가 지나치게 합리화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영화의 초반부, 조윤은 아버지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서자로 설명된다. 특히 조윤이 일종의 ‘서자 콤플렉스’를 견디지 못해 악인이 되어버린 것처럼 설명되는 장면들은 다소 과장돼 보이기도 한다. 또한 영화에서 절대적인 악인으로 보이는 조윤과 어쩔 수 없이 악인이 될 수밖에 없었던 애처로운 서자인 조윤의 이중적인 캐릭터는 관객을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리고 영화의 종반부에서 조윤이 자신의 조카를 안고 도치와 싸우는 장면은 다소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조카를 보호하기 위해 애쓰는 조윤의 모습은 절대적인 악인인 조윤의 모습과 혼란스럽게 뒤섞였다. 또한 싸우던 도중에 상투가 풀어져 긴 머리칼을 휘날리게 된 조윤의 모습은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했다. 결국 조윤은 조카를 보호하기 위해 죽음을 맞이한다. 하지만, 도치는 죽음을 맞이한 조윤의 성불(成佛)을 빌어주기도 한다. 도치는 자신의 목적 달성을 실패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어머니와 여동생까지 죽인 조윤에게 성불을 빌어줄 수 있는 것인지, 또한 수많은 살인을 저지른 조윤은 이런 식으로 결말을 맞이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 남는다.
군 도
계층간의 날 선 대립이나, 이도 저도 아니라면 적어도 요새 쏟아져 나오는 흔한 사극영화와는 다른 그 무엇 중 어떤 것도 눈에 담을 수 없었다. 극장을 나오면서 계속 생각을 해보았다. 왜 이렇게 말아 먹은걸까. 그 재기발랄함과 배짱은 어디 가고 닳고 닳은 상업영화 ‘하수’들로 가득한 작품이 나왔을까. 닳고 닳은 설정이라 함은, 왜 굳이 강동원의 캐릭터가 필요했으며, 혹은 그렇게 큰 비중이어야 했는가. 혹은 더 마이크로적으로 들어가서, 강동원의 액션씬에서 굳이 왜 캐릭터는 왜 아이를 내려놓지 않고 설득력도 없어 보이는 액션 choreography를 고수 해야만 했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군도는 겉멋이 너무 많다. 방금 언급한 강동원의 액션 안무도. 군도들이 떼로 등장 할 때 establishing shot으로 그들을 화면에 담아내는 테크닉이며, 이미 윤감독이 범죄와의 전쟁에서 수 차례 써먹었거나, 혹은 의미/감흥 없이 눈만 채우는 장치들이다. 물론 이 작품의 실패가 감독에 대한 애정을 포기 하게 하진 않을 것 이다. 다분히 작품에 대한 실망이지, 감독에 대한 실망은 아니기 때문이다. 윤종빈 감독의 다음 영화가 더더욱 기대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자기 증명에도 그치지 못한 그의 작품이지만, 분명 다음 도약에서 증명과 실패에 대한 성찰이 보일 것이다. 여기에 어울리는 사족 하나: “영화를 시작한 두 종류에 사람이 있어요. 하나는 자기를 증명하고 싶어서 시작한 사람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을 반성하기 위해 시작한 사람이죠. 오직 후자만이 점점 영화가 좋아져요. “ 차이밍량.
재.. 미. 가... 어디.. 에.. 없.. 에...
한국영화 돌려 깎기
박이현 :
는 것은, 그의 고귀함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군도>는 액션 활극을 표방하는 ‘밝은’ 영화다. 또한 이
고귀함? 개뿔,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말이 멋있어 ‘운
영화에는 윤종빈 감독이 만든 장편 극영화를 통틀어 가
명’이고 ‘승복’이지, 실은 ‘체제’고 ‘순응’이다. 윤종빈은
장 낙천적이며 긍정적으로 묘사된 주인공 도치(하정우)
체제에의 순종을 조윤 역의 강동원을 통해 미학화해
가 등장한다. 하지만 <군도>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
냈다. 적자를 위해 목숨을 바침으로써 조윤은 자신을
장 비열한 영화다. 감독 특유의 냉소가 여전할 뿐더러 더
얽매던 규칙들에 스스로 무릎을 꿇는다. 그따위 최후
욱 교묘해졌다고 할 수 있다.
는 전혀 아름답지 않다. 자신이 퇴장해야 할 시대가 왔 음을 깨닫고 묵묵히 사라지는 살리나 공작을 그린 영
엔딩에서 시작해볼까? 안티히어로 조윤(강동원)은 분노
화 <레오파드>(1963)와 비교할 것도 없다. 추하다. 게
한 군도와 민초들의 습격을 받는다. 최후의 순간, 조윤
다가 조윤이 받아온 서얼 차별, 그리고 그 억압을 용인
은 적자를 살리려다 죽음을 맞이한다. 그럼 지금부터 “
하는 사회는 갓난 아기로 표상되어있다. 아무 죄 없는,
왜”라는 이름의 기관총을 영화 속 도치처럼 마구 쏴보
가장 순수한 존재로. 그러하기에 <군도>는 비열할 뿐
겠다. 먼저 조준, 첫 표적은 조윤(강동원)이다. 왜, 감독
더러 교묘한 영화다.
은 강동원을 캐스팅했나? 악당 역을 멋있게 묘사하기 위 해서. 왜, 악당이 멋있어야하나? 단지 흥행을 위해? 아 니, 실은 도치보다 조윤이 주인공이고 이 영화의 주제의
우리에게 필요없는 재미를 나눠 주겠소!
식과 닿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기에 “민란의
줄을 서시오!
시대”라는 부제목을 붙여놓곤, 정작 민초의 존재감이 희 미한 것이다. 다시, 왜, 조윤은 민란을 겪나? 폭력과 신분을 앞세워 백 성들을 수탈했기 때문이다. 왜, 조윤은 돈과 권력에 집 착하나? 아마 학대받은 경험 탓일 거다. 어린 나이에 무 관급제 할만큼 능력이 있지만, 서자라는 이유로 아버지 에게 차별을 당했기 때문에, 그 서러움 때문에 백성들을 삥뜯고 높은 사람들에게 뒷돈을 바치는 것이다. 왜, 그 토록 찾아해매던 조카를 얻고도 죽이지 않나? 감독 인터 뷰에 따르면 어린 아이라서 그렇단다. 조윤이 어린 이복 형제를 죽이려다 어머니를 잃었던 경험 탓에 트라우마가 생겨서, 그리고 자신에게 기어오는 갓난 아기를 두고 복 잡한 감정이 생겨서. 그럼 왜, 그토록 이기적으로 살아오 던 조윤은 조카를 지키려다 최후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 나? 목숨걸고 저항하며 살아온 ‘운명’에 승복하였기 때문 이다. 왜, 도치는 조윤의 상투를 베어가지 않는가? 너무 쉬운 질문일지 모르겠지만 하나 먼저 물어보자. 왜, 쌍놈 돌무치는 군도에 가입해 화적 도치가 된 후에 양반들의 상투를 베어가나? 바로 백정으로 살아온 설움 때문이다. 그러니까 양반의 상징인 상투를 베어감으로써 신분제에 저항하는 셈이다. 그러므로 조윤의 상투를 베지 않는다
기록에 대한 기록 : 낮의노래 / 밤의노래 박이현(현대쎈타 http://medium.com/centah-news)
작년 11월, 벌써 추위가 매서워진 계절에 나는 세운상가에서 전통노래 공연 하나를 봤다. 한복을 입은 한 여자가 밝은 방 안에서 장구를 치며 노래를 이어 불렀고, 우리 관객들은 창 밖 마당에서 그걸 지켜봤다. 지켜보며 들었다. 그녀의 육성으로 불리우는 ‘닐리리야’와 ‘군밤타령’ 같은 귀에 익는 민요를, 마이크나 앰프라거나 스피커 같은 아무 전자장비 없이. 우리 사이에는 유리창이 하나 있었다. 창은 주고받는 눈빛을 막진 못하나, 소리 만은 집요히 가로막는다. 가끔은 주변 소음이 여자의 목소리를 먹어삼켰다. 그래도 창(唱)은 어떻게든 창(窓)을 뚫고 나와 우리 귀에 닿는다. 닿아서, 얼씨구 절씨구.
개방회로 페이스북 페이지(http://facebook.com/openhoero) 개방회로 인터뷰 (http://imetu.tistory.com/534)
2부에서 그녀는 어두운 방 안에 앉아있다. 조명기를 든 남자가 그녀를 살포시 비추고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동작도 거의 않는다. 노래는 창 앞에 설치된 스피커의 몫이다. 거기서 이름 모를 할머니가 제목 모를 노래를 부른다, “별 하나 내 하나, 별 둘 내 둘”. 아니, 노래인지 모를 소리를 낸다, “에헤야 디 거어어어어그으으”. 그 광경을 창 앞에 설치된 캠코더와 레코더가 매섭게 노려보고 있다. 우리는 그 소리의 풍경을 지긋이 듣고 있다. 공연 이름이 뭐였더라? “낮의 노래 / 밤의 노래”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착각했다. 2부에서 조명을 든 개방회로 김세현이 태양처럼,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그림자의 위상이 변하는 김보라가 달처럼 보였다. 스피커를 따라 불리우는 노래들이 잊혀진 유령들의 곡성처럼 들렸다. 그래서 2부는 밤, 김보라는 강령술사로 거기 앉아있고. 페이지를 뒤져보니 제목이 <밖의 노래 / 안의 노래>다. 중요무형문화재 제 57호 경기민요 이수자 ‘김보라’와 세운상가에 둥지를 튼 기획자 콜렉티브 ‘개방회로’의 이 협업 퍼포먼스 제목은 <밖의 노래 / 안의 노래>였다. 개방회로와 김보라는 안과 밖으로 경계 지어진 ‘노래들’에 대해 얘기한다. 어떤 노래는 제도 안에 편입되어 문화재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전승된다. 전문소리꾼의 육성은 녹음되고, 악보로 채보되며, 한자 한자 또박또박 가사가 받아쓰여진다. 이런 기록들을 거쳐, 부르는 사람에 따라 기분에 따라 자리에 따라 다른 모냥으로 불리웠을 노래들은 하나의 이상형으로 고정되고 박제된다. 그들의 이름은 통속민요와 신민요, 여기서는 ‘안의 노래’.
한편 어떤 노래들은 제도 밖에 있다. 바깥에 버려져있다. 정박으로만 흐르지 않는 우리네 삶의 흐름과 동기화되어, 육아의 노동의 기원의 장례의 배경음악으로 쓰이던 노래들은 이제 세월이 흐르며 색이 바랜다. 부르던 이들이 늙어가고 죽음을 맞이함에 따라 그 노래들은 더 이상 불리워지지 않는다. 어떤 노래는 죽는다,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 밖에서 덜덜 떨며 고독하게. 이들의 이름은 토속민요, 여기선 ‘밖의 노래’. 그런데 밖의 노래가 처한 기구한 운명을, 안의 노래 역시 마주하고 있는듯 보인다. 당신이 전공자가 아니고서야 군밤타령을 음악 교과서 밖에서 불러본 경험은 거의 없을 것이다. 안의 노래는 ‘전통’이란 이름으로 기록은 되고 있으나, 일상에서 아주 드물게 불리우기에 어떤 죽음을 맞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노래는 죽는다, 밖으로 숨통을 내지 못하기에 안에서 숨이 막혀, 외롭게. 1부에서는 음원이 김보라의 목 즉 개방회로 안에 있다면 2부에선 음원이 스피커 즉 개방회로 밖에 있다. 그러니까 김보라와 개방회로는 제도 안과 제도 밖을 개방회로라는 공간 안과 밖으로 병치해둠으로서 이런 문제를 제기한다. 플랫폼에 기록된 텍스트를 따라, “노래의 순수성이란 무엇인지, 제도화되고 무대화된 ‘전통’ 민요가 전통예술로서 우리 사회에 어떤 기능을 하는지, 그리고 삶 속에서 태어났지만 현재의 삶에선 배제된 ‘토속’ 민요가 동시대에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내가 공연 이름이 뭐라고 착각했더라? 그래, 낮의 노래 / 밤의 노래. 나는 내가 주목한 경계에 ‘ 안과 밖’이 아니라 ‘낮과 밤’이란 이름을 붙여보았다. 앞서 말했듯 하나의 울타리는 공연장의 밝기를 경계로 놓여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울타리가 음성 기록 즉 기록물과 기록술을 따라 쳐져있다. 1부는 노래가 어떠한 전자매체도 거치지 않고 육성으로 전달된다. 이를 위해서 음성은 악보로 시각화되어야하며 텍스트로 정리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반복’(repeat)될 수 있다. 반면 2부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토속민요는 음성 기록을 전제하고서야 우리에게 닿을 수 있다. 그러고서야 우리 앞에 ‘재현’(representation)될 수 있다. 뭐 결국 같은 말이지만 이들 제도와 기록은 안과 밖을 나눠 전통노래를 고사시키는 독소지만 한편 그들의 비료 같은 것이기도 하다. 암모니아처럼. 한 달 뒤 열린 동명의 전시 <밖의 노래/ 안의 노래 pt.2>에서 그 진단과 착각과 조율의 과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김보라가 손으로 쓴 메모와 개방회로가 촬영한 공연 기록물과, 클로징 파티에서 그녀 자신의 육성을 통해서. 개방회로는 김세현, 조근하, 이현인, 이예슬로 구성된 기획자 콜렉티브의 이름이자 세운상가 가열 327호에 자리를 튼 그들의 공간 이름이기도 하다. <밖의 노래/ 안의 노래>는 경계를 구분 짓지 않은 확장된 형태의 협업을 실험하기 위해 진행된 <프로젝트 X>의 첫 번째 꼭지란다.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여기, 문학이 필요한 시간 윤동주, 「사랑스런 추억」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어머니와 함께 짧지만 약 보름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의 마지막 밤. 파리에서 어머니는 우 셨다. 나는 당황스러웠고 울지는 않았다. 나는 울지 않았다. 그저 어머니께서 웃으시는데 눈물 을 흘리시는 눈을 보며 내가 얼마나 어머니께 큰 기쁨을 드렸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태어날 때 간호사의 실수로 피를 토하는 바람에 신생아 중환자실에 가야 했고 어머니 혼자 퇴원하셨
다고 했다. 그리고 병원에서 포기하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머니와 아버지는 많이 우셨다고 한 다. 그리고 지금은 대박, 31살이다. 꺅!
지금도 어머니는 그 이야기를 하시며 눈이 붉어지신다. 나는 어머니의 속을 무지하게 썩인 맏
딸이다. 어머니 23살에 나를 낳으셨고 난 어머니의 청춘을 먹고 무럭무럭 큰 셈이다. 그래서 항상 마음속에 나도 모르게 큰 짐이 있었나보다. 그리고 지금은 그 짐의 약 1/3을 덜어 낸 기분
이다. 어머니께서는 그 당시 너무 힘들었지만 이렇게 어느새 큰 너와 손을 잡고 파리에 와 있
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는다고 하셨다. 앞으로도 더 잘 살아야겠다. 어머니의 청춘을 조금이나 마 돌려드리고 싶다.
이번 호 우리가 볼 작품은 윤동주의 시 「사랑스런 추억」이다. 처음 월간이리를 시작할 때 소
개 했던 시가 윤동주의 작품이었다. 돌고 돌아 다시 윤동주의 시를 선택 한 것은 그만큼 아름 답고 서정적인 작품이 많아서다. 어떤 이는 윤동주의 ‘시’는 다소 투박하고 촌스러운 시 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자세히 보면 유려하게 다듬어지지 않은 시어들, 감정의 나열 등이 그의 시를 투박하게 보는 이유가 된다.
시론에서는 시란 사물의 순간적인 파악, 시인 자신의 순간적인 사상, 감정을 표현하는 것, 생
의 순간적 파악이며 짧은 장르이기 때문에 율격, 비유 등 여러 수사적 장치를 동원하여 시 안
에 영원한 현재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정의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학창시절 시란 함축적이 고 암축적인 성격이라고 배워 왔던 것이다.
함축, 압축. 다시 말해 언어의 고도의 조직성을 뜻한다. 이러한 시 정신을 가장 잘 따르고 귀신
같이 써내려가는 시인이 바로 서정주다. 서정주를 국문과 교수님은 ‘시 귀신’이라고 설명해 주 셨던 기억이 난다. 아마 이 작품을 예로 들면 좀 더 이해가 쉽지 않을까?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애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커다란 눈을 나는 닮았다고 한다.
스물셋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 가도 부끄럽기만 하더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것도 뉘우치지 않을런다. 찬란히 틔어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언제나 몇 방울의 피가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을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
-서정주 <자화상>
이 시는 서정주가 23살 때 쓴 시로 지독하게 가난했던 시절에 쓴 작품이라고 전해진다. 이 시
를 읽어보면 그의 삶이 눈앞에 그려질 정도로 생동감 있는 비유와 얼마나 거칠게 살아 왔는지 그 짐작조차 못할 시어들이 압축적으로 채워져 있다.
‘스물셋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이 고도의 언어 구사 능력은 그의 시가 한국
서정시의 큰 별이 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었다. (물론 그의 친일 행각은 용서받을 수 없다.)
이에 비해 윤동주의 시는 참 투박하다. 그래 마치 간장과 그냥 구운 맨 김 같다. 그런데 이렇
게 입맛이 없는 겨울에는 맨 밥에 그냥 구운 김에 참기름과 깨로 양념한 간장을 한 숟갈 넣고 싸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윤동주의 시가 그렇다.
자 이제 그의 시, 이곳에 두 번째로 소개할 윤동주의 시 「사랑스런 추억」을 보자.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조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트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동경(東京)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 게다. -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먼저 1연과 2연을 읽어보자. 만물이 소생하는 봄, 따스한 봄이 왔다. 시적화자는 이 봄 날 정
거장에 서 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이곳은 정거장. 동경 유학을 가고자 서울 어느 작은 정거 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미래를 기다리고 있다. 문득 발 밑 그림자를 본다. 덩그러니, 그런 기 분이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트리고, 담배를 피웠다.’ 여기서 ‘간신한’ 단어의 뜻은 힘들고 고생스러운 이란 뜻이다. 그의 기억에 과거는 힘들고 고
생스러웠나 보다. 그래서 그런가, 유난히 그림자 힘이 없어 보인다.
쓸쓸한 마음에 담배를 입
에 문다. 하지만 마음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있다. 이 상반된 감정이 교차되면서 시적화 자는 담배연기를 뿜는다. 그리고 하늘로 비둘기 한 떼가 자유롭게 날아간다. 과거를 생각하니 쓸쓸해져 담배를 문 자신과 달리 비둘기는 참 자유롭다. 마음의 짐은커녕.
이윽고 기차가 왔다. 그러나 기차는 그냥 나를 멀리 실어다 줄 뿐이었다. 시간은 흘러, 봄은 다
가고 현재 동경 교외의 어느 작은 하숙방에 있다. 시적화자는 봄 날 정거장에서 희망을 품고 기
차를 기다렸던 그 시절, 그 시간이 그립다. 꿈을 잃지 않았던 자신의 모습. 고생스럽고 힘에 겨 웠지만 희망과 사랑의 마음을 지녔던 그 모습이 그립다.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이를 통해 화자가 현실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도 기차는 무의
미하게 지나간다. 기차는 여기에서 화자에게 전해줄 새로운 소식이나, 혹은 화자에게 삶에 대
한 기대감, 의욕 등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그래서 화자는 정거장 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가 기 다리고 있다. 서성거리고 있다. 그리고 이 시의 마지막 구절에 윤동주만이 보여줄 수 있는 미 학이 담겨져 있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아! 고생스러웠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부풀었던 과거의 내 모습이여, 너만큼은 그 자리에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삶에 지쳐 허덕일 때 그 때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그 용기를 네
가 주어야만 한다. 현재의 화자가 앞으로의 화자가 바라고 그리워하는 모습이 바로 과거의 ‘나’ 이기 때문이다. 그 때의 나는 사랑과 희망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현재의 나는 이 모든 생활에서 회의감이 드는 구나. 그러나 놓치지 않으리라. 시간은 소중하기 때문이다. 이제 이 작품의 창작된 배경이 이해가 된다. 이 작품은 윤동주가 동경 유학 중에 느낀 삶에 대한 회의와 소망을 노래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
다. 과거로부터 자신이 추구해온 바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소망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윤동주의 시가 좋다.
배우지 않은 것처럼 쓴 그의 솔직한 감정 표현이 좋고, 여린 것 같지만 어쩌면 누구보다 강인했
을 것 같은.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을 달래려 애쓴 그의 건강한 정신이 좋다. 조금만 들춰도 우 리는 모두 약하고 약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이야기를 꺼내어 놓지 않는다. 그래서 외롭다. 윤동주의 시는 사색을 하게 해준다. 사색의 힘은 그 외로움을 이겨낼 수 있게 한다. 그리고 무
모하지만 용기를 준다. 외롭다고 말 할 수 있는 용기. 시간이 흘러가는 것의 두려움. 돌아오지 않는 젊음의 서글픔. 그 불편한 것들을 말 할 수 있는 용기 말이다. 오글오글하지만.
다음시간에는 현대소설로 넘어 가겠다. 김동리의 「역마」다. 욕망과 운명의 대립. 작가는 어
떤 결말을 내리고 있을까? 지각하면 보강이다.
글. 고수진
작곡가 b의 노트 <작곡가 되어보기 - part 1> 글. Composer B
1악장. 그런 곡 쓰려면 얼마나 걸려요? 내가 어딘가에서 스스로를 “작곡 공부합니다”라고 소개하면 사람들은 나를 신기한 눈으로 쳐다 보곤 한다. 그러면 대부분은 ‘음악을 좋아 한다’거나 ‘작곡하는 거 완전 멋지던데!’와 같은 반응 을 보인다. 그런데 아주 가끔 ‘작곡은 어떻게 하는 건가요?’ 라든가 ‘저도 작곡과에 가서 공부하 면 작곡을 할 수 있게 되는 건가요?’ 같은 질문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사실 작곡을 직업으로 대 하는 입장에서 보면 퍽 당황스러운 질문이기는 하다. 질문이 너무 포괄적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질문의 근원지를 살짝 돌려서 나 스스로에게 물어 보는 형식으로 바꿔보자면... 작곡가의 존재 근원에 대해서 고찰하게끔 만드는 아주 심오한 질 문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그냥 멋쩍게 웃어넘기거나 대충 대답해도 그만인 질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도저히 설렁설렁 넘어가기가 힘들다. 왜냐하면 그런 종류의 질문을 하는 이들의 모습은 대부분 진지한 표정과 자세로 질문을 하고 있 는데다가 나에게서 어떠한 작은 힌트-대부분 ‘작곡’이라는 것에 대해서 환상(혹은 로망?)을 갖고 있다-라도 얻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준비했다. 작곡은 둘째 치고 음대 입시의 기본적인 ‘와꾸’에 대해서 감도 잡지 못하던 내가, 어엿한 작곡과 졸업생 2년차가 되기까지 겪었던 일들을 바탕으로 ‘작곡 공부1)는 어떻게 하는 것일까’는 물음에 대한 대답과 설명 말이다. 물론 이 글을 읽는 모든 이가 다 작곡 공부를 하고 싶어 하는 것은 아니겠지만-다른 잡지의 독자 들보다는 작곡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상대적으로는 조금 더 많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평소에 인상 깊게, 혹은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왔던 멋진 음악들을 만들어낸 사람들은 대체 학교에서 어 떤 식으로 공부를 하는 건지 한 번 쯤은 읽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글은 두 개의 파트로 나뉘어 실릴 것이다. 첫 번째 파트에서는 음대 입시에 대한 준비 과정에 대해서 다룰 것이며, 두 번째 파트에서는 학교생활과 그 이후를 다루게 될 것이다.
2악장. 이상과 현실 1) 여기서 말하는 ‘작곡 공부’는 국내 음악대학의 작곡과 입시와 입학 이후의 학교생활에 관련된 내용을 뜻한다. 아마, 실용음악과에 대해 서 궁금한 독자들도 많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사실 내가 직접 겪어보지 못한 부분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는 건드리지 않는 편이 좋겠 다고 판단해서 빼기로 했다. 다만 ‘음악을 가르치는 학교’라는 공통분모가 있고, 특히 작곡 전공의 경우에는 큰 틀에서 봤을 때 유사한 점 이 매우 많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작곡은 음악의 여러 가지 하위 분야들 중에서도 가장 공부할 것이 많은 분야이다. 기악이나 성 악은 자신의 분야에 대해서만 매진을 하면 되지만, 그들을 위해서 작곡을 해야 하는 작곡가들은 모든 악기의 특징과 음역, 그리고 여러 악기를 함께 사용할 때 생기는 어려움들을 해결하기위한 다양한 기법도 배워야한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서 스스로의 작품을 쓸 수 있는 상황에서 공부하는 부분이고, 기초는 따로 있다. 특히 ‘작곡 공부’에 환상을 가지고 입문하는 일부 애호가들-특히 클래식-이나 고등학생들은 처 음부터 대편성의 관현악곡을 쓰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거라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의 크 고 아름다운 희망은 ‘기본기 습득’이라는 엄격하고 지루한, 높은 장벽에 막혀 시작부터 난관에 빠지게 된다. 화성법은 화음과 화음의 연결법을 배우는 학문이다. 클래식 음악에서 쓰이는 기본적인 음계와 조성(key)의 체계 안에서 선율, 리듬, 구조에 어울리는 적합한 화성을 쓸 수 있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대가들의 작품을 분석하면서 화성의 구조를 설명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제 대로 배웠다’고 말하려면 바그너의 작품2)도 분석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도록 공부해야 한다. 대위법은 둘 또는 그 이상의 성부를 독립적이면서도 조화롭게 전개시키는 방법을 배우는 분야이 다. 화성법 못지않게 중요한 분야이고-나는 두 분야가 대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고 생각 한다-제 대로 된 창작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배워야 하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음악대학들의 입 시에서는 부당하게 빠져있는 경우3)가 많다. 현재의 상황에서는 ‘배워도 그만, 안 배워도 그만’ 취 급을 받는데다가, 음악대학에 입학을 해서 대위법을 배우는 학생들마저도 ‘이거 왜 배워야 하는 지 모르겠네’라고 하는 현실에 비춰봤을 때... 배울 여력만 있다면 반드시 배워두길 바란다. 대위 법을 배우고 곡을 쓰면 그만큼 티가 난다. 선율작곡법은 화성법이나 대위법처럼 엄격한 규칙이 있지는 않다. 그렇기 때문에 선생의 역량 에 따라서 결과가 극단적으로 차이가 나는 영역이기도 하다. 특히 클래식 음악에서의 멜로디 작 곡이라는 영역은 영감(흔히 영화나 드라마에서 멀쩡히 생활하던 주인공이 갑자기 번개라도 맞 은 것처럼 미친 듯이 무언가를 휘갈기는 모습으로 등장하곤 한다)보다는 계획적인 고조-절정-하 강의 원리에 입각해 수없이 고쳐 써보는 과정을 동반해야 하는데, 이 지점에서 선생과 학생 사 이에 갈등이 흔히 생기곤 한다. 선생은 학생에게 ‘이 선율이 왜 부자연스러운지’에 대해서 설득 해야하고, 학생은 그 나름대로 ‘내가 고민 끝에 쓴 건데 이게 뭐 어때서?’하는 반감을 갖기가 쉽 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굳이 선생과 학생의 갈등 때문이 아니라 하더라도, 많은 수의 학생들이 공부를 하면 할수록 자신이 쓴 멜로디에 대해서-대가들의 그것에 비교했을 때-자괴감 을 갖고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작곡’에 대한 허상을 가장 먼저 무너뜨리게 만 드는 분야이기도 하다.
2) 바그너의 작품은 전통적인 화성과 조성의 체계가 서서히 무너지던 시점의 작품이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의 해석 이 필요한 부분도 굉장히 많다. 사실, 그런 곳에서 자신만의 논리로 설명하는 것이 더 힘들다. 절대로 ‘멋대로’ 해석하라는 게 아니다! 3) 최상위 수준의 몇몇 학교에서는 요구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입시생들은 대학교에 들어가서야 제대로 된 대위법을 배우곤 한다.
3악장. 정석대로 가는 것이 제일 빠르다 작곡레슨이 시작되면 보통 음악의 기초4)부터 배우게 된다. 만약 이론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다면 바로 기본적인 화음의 개념에 대해서 배우게 된다. 화음은 어떻게 구성이 되며, 왜 그러 한 규칙이 생겨났는지에 대한 것들 말이다. 이러한 개별적인 화음의 구성 원리를 배운 뒤, 이것 들을 음악적으로 연결시키는 방법을 조금씩 배워나가게 되는데 우리는 이 화성들이 연결되어 만들어내는 흐름을 ‘화성(和聲)’이라고 부른다. 작곡 수업에서 다루는 화성은 대부분 4개의 성부로 구성되어 있다. 혹시 성당이나 교회를 다닌 사람들이 있다면 성가를 부를 때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라고 하면서 각자의 목소리 음 역에 맞춰서 파트를 나눠 노래를 부른 기억이 있을 것이다. 화성법에서 다루는 4개의 성부도 그 와 동일하다. 다만, 인접한 성부의 음역을 침해하지 않으면서 각자가 독립성을 가져야 하기 때 문에 그 안에는 여러 가지 금지된 규칙들이 존재한다. 이 규칙들을 피해가면서(금지된 규칙들로 부터 자유로워지기까지는 상당한 인내심이 바탕이 되는 공부기간을 필요로 한다) 음악적인 성 부 진행을 만들어나가되, 자신의 색깔이 느껴지면서도 구조적으로 탄탄한 힘을 갖추도록 계속 해서 다양한 문제를 풀어보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비로소 앞서 언급한 대위법이나 선율 작곡의 요소도 함께 포함이 되는 것이다. 일단 화성법에 대한 공부 과정만 보더라도 이 정도다. 그 외에도 대위법을 비롯해서 청음5), 악 기론, 음악형식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공부하다보면 정말이지 한 두 해는 눈 깜짝할 사이에 지 나가버린다. 아무튼 이렇게 작곡 공부를 시작한 지망생들은 지원하는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은 실기 시험 때 2일에 걸쳐 3~4개의 부분에 대한 시험을 보게 된다. 화성법, 소품 작곡6) 피아노 연주는 어느 학교나 거의 공통의 시험과목이며 학교의 상황에 따라서 청음이나 대위법 혹은 기본적인 음악 상식에 대한 면접이 추가되기도 한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 할 점은, 실력은 우리가 원 하는 대로 늘지 않고 준비 기간은 한정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중에서 공부가 부족한 부분이 있 다면 감점을 당해서 실기 점수가 하락할 것이고, 실기시험을 잘 봤다고 하더라도 수능이나 학생 부 점수(작곡과는 음대 내에서 가장 높은 수능 컷을 요구한다)에서 밀리면, 어쩔 수 없이 1년 뒤 를 기약해야만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험난한 과정을 거쳐서 제도권 대학에서 작곡공부를 하게 된다고 해서 다들 작곡가 가 되는 것이 아니다. 또한 좋은 학교를 가지 못했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도 없다. 입시 실기는 그야말로 얼마나 훈련이 잘 되어있는지를 판단하는 기계적인 과정일 뿐이고, 학생 개개인이 가진 음악에 대한 열정이나 의지는 전혀 반영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큰 야망을 품고 대학에 들어왔다가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현실에 좌절하며 공부를 그 만두거나, 좋은 재능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만심에 빠져 자신의 기량을 가다듬지 않아 서 흔해빠진 음대 졸업생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수도 없이 많기 때문이다. 이를 비롯한 학교생활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자세히 다뤄보도록 하겠다.
4) 악보를 읽고 쓰는 법, 기본적인 음계와 리듬에 대한 숙달을 뜻한다. ‘악전’이라고도 한다. 5) 음감에 대한 공부. 보통 피아노로 선율을 쳐주면 그대로 악보에 받아 적고 채점하는 식으로 공부한다. 6) 교수들이 출제한 2~4 마디 분량의 주제의 뒤를 잇는 30마디 내외의 피아노곡을 일정 시간(2시간~3시간 정도) 안에 작곡해 제출하는 것이다. 학교에 따라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듀엣 작품이나 변주곡을 요구하기도 한다.
송창식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영화 쎄시봉 관람기
쎄시봉, 쎄시봉 하더니 이제 영화까지 나왔다. 활동 중인 팬카페에 VIP시사회 티켓이 나와 송창식 선생님과 함께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운 좋게도 나는 그와 그의 친구들과 같은 줄에 앉았다. 정확히 하자면 김세환 님의 옆옆 자리였다. 영화에 앞서 출연 배우들이 나와 짧은 인사를 했지만 큰 관심이 가진 않았다. 김희애 님의 번쩍이는 피부말곤 기억에 남는 게 없다. 솔직히 말하자면, 영화에 큰 기대가 없었다. 그들 중 큰 조명을 받지 못했던 이익균 님을 주인공으로 앞세워 놓곤, 그의 존재만 빌린 채 완전히 새로운 인물로 만들었으니. 그들의 이야기를 대부분 아는 나로서는 어디까지가 진짜인지 아닌지 보이니 상영 내내 답답할 거라 생각했다. 결론적으로, 더 솔직히 말하자면 영화는 생각한 것 보다 더 실망스러웠다. 하나의 러브스토리를 위해 쎄시봉을 들러리로 세운 느낌이었다. 그 좋은 소재를 왜 그렇게 썼는지, 마치 수제 만년필로 빙고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쎄시봉 멤버들이 한 팀이 되는 과정을 담은 초반(심지어 이것도 과장이 심했다.)을 제외하곤 대부분 주인공의 사랑이야기가 중심이 되었다. 그 당시의 분위기를 꼭 넣고 싶었던 것인지, 그들의 음악을 넣고 싶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럴 거라면 굳이 그들의 실명을 쓰지 않아도 될 판이었다. 그저 60년대의 한 음악감상실에서 있었던 어느 청춘들의 이야기였다면 마지막에 주려고 했던 감동이 더 자연스러웠지 않았을까. 관객들이 영화 쎄시봉에 기대하는 것은 사랑보다는 음악으로 세워진 우정이리라. 세월이 흘러 나이 든 ‘ 어른’ 캐릭터를 등장시켜 아픈 추억을 더듬는 7080 버전의 <건축학개론>이 된 이 각본보다는 한 밴드의 흥망성쇠를 음악과 60년대라는 배경으로 자연스럽게 다룬 <댓 씽 유두> 풍의 각색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영화의 큰 복선이 되었던 대마초 사건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건 어쩌면 좀 민감한 이야기다. 한국 가요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사건 아닌가. 눈물샘을 자극을 위한 극단적인 각색이 과하게 느껴져 나로선 불편하기만 했다.
실존 인물을 그리지 않은 채 영화를 본다면, 반전이 있는 사랑 이야기에 일말의 감동이 느껴질 지도 모르겠다. 이제껏 ‘화난 남자’로만 분했던 김윤석 형님이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영화의 주인공이자, 실제 송창식, 윤형주 님과 ‘쎄시봉 트리오’로 활동했던 이익균 님은 실제로 보니, 골격이 장대한 미남이었다. 그는 스크린 속에서 변형된 자신을 보며 어떤 생각에 잠겼을까. 음악 저작권료만 6억을 쓴 만큼, 영화 내내 송님의 목소리와 그 무렵의 노래를 듣는 건 큰 행운이었다. 더 큰 행운은 미사리에 가면 그의 무대를 볼 수 있다는 사실, 새삼 가까이 있는 그 행운을 다시 한 번 깨달으며, 나는 오랜만에 ‘트윈 폴리오’의 음악을 꺼내 듣는다. 글. 박재현 (소설가)
[인터뷰] 소이 : 티티마에서 라즈베리필드로 전문 보기 : http://idology.kr/3000 1994년 KMTV 1기 VJ를 거쳐 ‘한류 1세대’ 아이돌 티티마(T.T.MA)의 리더로 활동 했던 소이. 영화인이자 밴드 라즈베리필드를 이끄는 싱어송라이터로 새로운 삶을 모색하고 있는 그녀는, 1세대 아이돌 출신으로서 전혀 다른 지평에서 연기와 음 악을 계속해 나가고 있는 드문 사례이기도 하다. 그런 소이를 파리에서 만나, 아 이돌 시절과 방황, 그리고 지금의 삶을 물었다.
근황이 궁금하다.
1년 정도 했다. 그러다 마지막에 보컬(최유진)이 들어 왔는데, 그 뒤 몇 달 있다가 바로 데뷔했다.
<조류인간>이란 장편 영화를 찍은 것이 내년(2015 년) 초에 개봉을 기다리고 있고, 그 후에 찍은 옴니버 지금은 분야별로 전문적인 분업화가 돼있는데, 1세 스 영화 〈프랑스 영화처럼〉도 내년 개봉 계획이다. 대 당시에는 안무도 멤버가 짠다든지 하는 경우도 있 방송 일도 하고 있다. 었던 듯하다. 라즈베리필드는 작년 여름에 음반이 나온 후로 어떻 맞다. H.O.T.나 신화가 그런 케이스였다. NRG는 백댄 게 돼가나? 서 출신들이긴 했는데, (천)명훈 오빠가 한 적은 있을 작업은 계속 하고 있는데, 올해(2014년)는 연기에 집 거다. 하지만 우리 회사는 안무 담당하시는 분이 따 중하느라고 음악에 신경을 많이 못 썼다. 억지로 하 로 있었다. 기보다 마음 가는 대로 하려 한다. 책도 탈고했기 때 (소방차의) 김태형 씨 본인도 댄서 출신이시고. 문에 같이 맞춰서 내년(2015년) 봄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김태형 사장님 부인도 방송국 안무단 출신이다. 사모 […] 님이 일본 문화를 정말 좋아하셔서 우리에게 아무로 나미에 등 일본 쪽 춤을 가르쳐주셨고, 그게 1집 ‘My (티티마) 오디션 뒤에 연습기간이 있었나? Baby’의 베이스가 되었다. 그 당시 같이 활동했던 걸 1년 했다. 그런데 지금 아이돌을 생각하면 연습시간 그룹 멤버들이 특히 ‘Wanna Be Loved’ 안무 보고 이 새 발의 피도 아니고, 그 당시 아이돌 연습생들 사 “우리도 저런 춤 추게 해달라”고 얘기를 했었다고 한 이에서도 우리처럼 널널하게 한 경우는 없었다. 1집 다. 김태형 사장님도 일본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으 멤버들 중에 외국인 학교 다니는 자매가 있었는데 그 셔서, NRG도 일본 보이그룹을 많이 벤치마킹했고, 때 그녀들의 계약조건이 “학업이 먼저”였다. 그래도 우리도 스피드(SPEED)를 벤치마킹한 케이스다.
김태형 씨를 만날 일이 많이 있었나? 그렇다. 거의 매일 연습 때마다 오셨다. 자주 뵀다. 마 전에도 어느 시사회에 갔다가 우연히 뵈었다. 전하시더라. 친절하시고 자상하시고. 우리한테 다 춰주셨다. 번 돈은 별로 없었지만. (웃음) 심지어는 케줄도 힘들다고 하면 하지 말라고 하셨다.
얼 여 맞 스
활동 종료할 때 갈등은 없었나? 사실 사장님은 3집을 제작할 생각이 없으셨던 것 같 다. 2집이 그렇게 잘 되지 않았으니까. (웃음) 그룹 외 활동을 요즘은 멤버들이 나눠서 하지만 당시는 거의 한 사람씩만 할 때인데 그게 나였다. 2집 말부터는 그게 너무 힘들어지기 시작했는데, 그러다 내가 활동 중에 교통사고가 크게 났다. 허리에 금이 가서 한 달 을 병원에 누워 있었다. 어린 마음에 속상하기도 하 고, 그때가 “나는 누구인가?”의 시작이었다. 그래서 사장님께 말씀 드렸더니, 두 말 없이 깨끗하게 보내 주셨다. 계약도 안 끝났는데. 티티마 활동 내내 갈팔질팡한 듯한 인상이 있는데? 어느 순간 TV를 보면서 ‘저 모습은 내가 아니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티티마에서 나와 회사를 옮겼 는데, 여전히 대중이 원하는 이미지는 그런 거였다. ‘티티마의 소이’니까. 그러다가 벽에 부딪히는 때가 왔고, 모든 예능 프로그램을 한번에 다 그만뒀다. 그게 2003년경인가?
몇 명과 꾸준히 연락하는데, 5명 중 2명이 결혼했다. 한 명은 내가 축가도 불러줬다. 재밌는 시기였다. 그때는 힘들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젊었을 때 겪어서 좋았던 소중한 일들이다. 그 당시 에는 어렸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는데, 내가 현명하 게 나를 찾아가는 길을 마련했다면 그 시간에 대한 소중함을 더 알았을 것 같은데.
그렇다. 2003년에서 2005년까지 시기다. (그런데) 작 은 역이지만 연기를 하고, 독립영화를 하게 되면서, 약지 못했던 건가? ‘나는 표현하면서 살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구나’ 그렇다. 요즘 아이돌들 보면서도 그 생각이 든다. 너 하고 생각했다. 무너무 화려하기 때문에 그 빛에 눈이 가려진다. 솔 2005년에 기타를 들기 시작했다. 원래는 다시는 음 직히 아이돌이 영원하진 못한데, 그 기간 안에 얼마 악 안 하려고 했는데. 그런데 워낙 좋아하는 게 음악 나 내가 나를 찾느냐가 관건이다. 그걸 잘 해나가는 이었고, 기타를 들면서 나도 모르게 내 이야기들이 사람들이 보이고, 그래서 기대가 되기도 한다. 혹시 멜로디에 묻혀지고 그러니까. 그냥 물 흐르듯이 다시 그러지 못하는, 특히 걸그룹이 있다면 안타까워진다. 그렇게 된 것 같다. 꼭 인생 설계나 커리어 같은 거라기 보다… […] 그렇다. ‘내가 누군지’가 성립이 돼야 한다. 안 그러면 ‘야채파’라고 해서, 그 시절 친구들과 관계를 오래 잘 나중에 그 모든 게 사라졌을 때 길을 잃는다. 그런데 유지하고 있는 걸로 알려졌다. 나는 좀 너무 드라마틱하게… (웃음) […]
여고 동창 같은 느낌이다. 멋몰랐을 때 같이 시작했 는데 점점 서로 다른 길로 가지만, 그래도 우리는 변 치 않는 뭔가를 공유하는 친구들이다. 사실 지금 만 나면 애 엄마가 돼 있는 친구들도 있어서 애기 얘기 들 하고, 그러면 결혼 안 한 나와 (간)미연이는 “아…” 이러고 있고. 음악 얘기는 많이 안 한다. 그럼에도 그 냥 같이 있으면 좋다. 편하고 행복하다.
지금과는 너무나 다른 1세대 아이돌 시절과 끊임 없이 ‘나’ 를 찾아가는 소이의 삶의 여정에 관한 보다 많은 이야기들 을 담은 인터뷰 전문은 아이돌로지에서 온라인으로 확인할 수 있다.
티티마 멤버들하고도 종종 연락하나?
http://idology.kr/3000 | http://idology.kr/3031
진행/정리 : 미묘 | 사진 : 김꽃비/미묘 | 사진 편집 : 별민
별민 : 그룹의 색깔을 캐주얼하고 유쾌한 방향으로 잡기 시작한 것은 무척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본다. '울면 안 돼' - '울어도 돼'로 위트 있는 대구를 만든 점이나, 앨범 전체를 가득 채우고 있는 가벼운 농담들도 그렇고, 동방신기 '풍선' 이후로 본 기억이 없었던 동물 잠옷 등의 코스튬 플레이는 비투비를 각인시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이것이 최근 활발해진 예능 출연에서의 이미지와 상승 작용을 한다는 점까지 생각해보면 꽤 좋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 멤버들의 보컬이 겨울 시즌송과 착 달라붙어 있는 점도 무척 좋게 들린다. 한동안 보이그룹의 겨울 시즌송이 히트 하는 것을 보지 못했는데, 비투비 팬뿐만 아니라 보이그룹 팬들 입장에서는 무척 반가울 겨울 선물 되겠다. 비투비 - The Winter’s Tale 큐브 엔터테인먼트 2014년 12월 22일
오요 : 비투비는 참 애매한 감이 있었다. '형 그룹'이라 할 만한 비 스트의 노선을 따라가나 싶다가 ('비밀(Insane)', '스릴러') 또 'WOW', '뛰뛰빵빵'을 보면 힙합을 표방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룹 의 정체성이 모호하다 보니 생각만큼의 성과가 나오지 않았던 것 도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The Winter's Tale"은 기분 좋은 한 방 이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시즌용 음반에서 비투비가 물 만 난 듯 그 에너지를 발산하고 있으며, 이제까지의 콘셉트 중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입은 듯 보인다. 수록곡들도 그저 구색 맞추기 가 아닌 개별 곡으로 또렷이 존재감을 드러내며, 특히 랩을 맡은 멤버(정일훈, 이민혁)들의 랩이 탁월하여 듣는 재미가 있다.
비투비 - “울면 안돼”
http://goo.gl/DTVIDp
아이돌로지 필자들의 다양한 시각을 모아서 볼 수 있는 “1st Listen” 시리즈의 더 많은 리뷰는 : http://idology.kr/category/1stlisten 미묘 : 결론을 내리기보다 계속 이어지는 듯한 곡의 구조가 흥미롭 다. 작정하고 머리를 비운 채 오글거림을 유도하는 가사와 멜로디 도, 나쁘게 들리지만은 않는다. (사실 댄스 음악이란 건 원래 그런 것에 가깝다.) 결국 댄스-가요보다는 가요-댄스에 가까운 포지셔닝 인 셈인데, 어쩌면 이 곡을 기점으로 헬로비너스는 지향점 자체를 바꾸는 것일까. 어정쩡함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묘한 지점들이 잔 뜩 있어, 이건 의도라고 짐작케 한다. 그러나 각 파트의 연결과 무 대는 조금 삐걱거리는 듯 느껴진다. '화끈한' 빌드업이나 섹시미도, 은근한 절묘함도 아닌, 그렇다고 능청스러운 애매함도 아닌. 그게 매력이라고 하기에는 아주 조금의 설득력이 아쉽다.
헬로비너스 - 위글위글 판타지오 뮤직 2015년 1월 5일
헬로비너스 - “위글위글” http://goo.gl/2fzWyj
박준우 : 제이슨 데룰로(Jason Derulo)의 곡 'Wiggle'을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가져오니 한 번 당황스럽고, 위글 댄스를 공개한 뒤에 곡을 이렇게 가지고 나오니 두 번 당황스럽다. 'Wiggle'의 악기 구 성까지 빌렸다는 점에서 당황은 이어진다. 글쎄, 성숙한 면모로 이 미지를 바꾸는 것도 좋지만, 좀 더 세련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보다, 이미 AOA가 선점한 ‘용감한 형제 스타일의 곡’을 계속 해야 할까? 별민 : 흔히 아이돌을 '완성형'과 '성장형'으로 나누는 분류가 리스 너들 사이에서 종종 사용된다. 이전 싱글 '끈적끈적'과 이번 싱글을 들어보면 헬로비너스는 이 두 가지 중 아무 곳에도 속하지 않는다 는 것을 알 수 있다. 완성되어 있거나, 성장했으면 좋겠다. 노래를 듣는 사람에게서 뭔가가 낭비되고 있다는 기분이 드는 것은 노래 를 부르는 사람에게도 그다지 유쾌하지 않을 것이다.
아키하바라상의 어떤 노심융해 : 덴파구미.inc와 디어스테이지 by RMHN | 전문 보기 : http://idology.kr/3196 일본의 인디즈 아이돌 덴파구미.inc(でんぱ組.inc)와 이들을 낳은 아이돌 카페 디어스테이지(DEARSTAGE). 아이돌 산업의 일원이라기보다는 출발점인 ‘오타쿠의 성지’ 아키하바라(秋葉原)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마치 ‘아이돌 코스프 레를 하는 오타쿠’ 같은 모습을 보이는 특이한 집단이다. 하드코어 테크노 계열의 동인음악가 RMHN이 바라본 이 이상한 전파계 아이돌, 혹은 ‘가짜 아이돌’의 이야기. – 에디터
수많은 흐름 가운데, 어떤 오타쿠들의 머릿속엔, 이상한 콘셉트 전문, 주말 히로인 모모이로 클로버(ももい ろクローバー 이하 모모크로)*가 있었다. 처음으로 오타쿠 문화의 밑바닥-천박함과 맞대면하기로 작정한 아이돌이자, 가시적인 성과까지 일궈낸 대영웅이었다. 하지만 그 모모크로의 첫 결성과 비슷한 시기, 아 키하바라 한복판에 위치한 아이돌 카페, ‘디어스테이지(DEARSTAGE)’로부터 또 다른 인디즈 아이돌이 모 습을 드러냈다. 그 이름은 덴파구미.inc(でんぱ組 inc, 당시 DEMPAぐみ로 표기. 이하 덴파구미). 디어스테 이지에서 접객원으로 일하던 후루카와 미링(古川未鈴)의 ‘역시 아이돌이 하고 싶다’는 대책 없는 한마디 에 응해 결성된 이 2인조 그룹은 언뜻 보면 단순한 일회성 기획의 전파계 아이돌 같았지만, 좀 다른 곳에 서 이상했다. *모모이로 클로버는 2011년부로 이름을 ‘모모이로 클로버 Z’로 변경하였다. 많은 이들이 〈기동전사 Z 건담〉 (1985)을 연상했다.
[…]
이미지 ⓒ Toy’s Factory
‘아이돌이 되고 싶어!’라는 한 마디로 그 길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을까. 하지만 이들은 그 말에 화답해 아이돌이 되었다기보다는, 아이돌의 모습과 입을 빌려 오타쿠 센스를 마구 어필하고 있는 고퀄리티 아이돌 코스튬 플레이어에 가 까운 느낌이었다. 가짜가 최선을 다해 진짜를 모방하고, 이윽고 진짜의 위치를 뛰 어넘기 시작하는, 이상하고 익숙한 광경. 관심은 서서히 그런 덴파구미를 낳은 공간, 아이돌 카페 디어스테이지에까지 번져 나갔다. 메이드 카페라면 너무 유명하다 못해 이제는 도쿄의 홍보 영상이나 일본 관광 안내 자료에까지 공공연히 얼굴을 드러내는 지경이 되었지만, 아이돌 카페는 다소 낯선 콘셉트. 관련 정보를 찾아도 그 공간에서 유래하는 경험을 곧바로 상상 하기는 어렵다. 나는 결국 직접 방문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
덴파구미.inc “ちゅるりちゅるりら”
(츄루리츄루리라) http://goo.gl/kbdMk1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소개소
1. 꿈이라면 좋을까 - 서울전자음악단
2. 내 맘은 끝없는 우주를 향해
3. 문제없어요 - 김일두
[꿈이라면 좋을까](2014), 2
- 신윤철 [신윤철](2011), 2
[문제없어요](2012), 1
2012년 해체로 많은 이들이 아쉬워했던
다양한
밴드
서울전자음악단이 새로운 멤버들과 함께
신윤철의 솔로 EP 앨범으로 이 곡에는
부산 뮤지션 김일두의 솔로 앨범. ‘사랑의
돌아왔다.
솔로
밴드 구남의 조웅이 참여했다. 음원을
맞담배를 피워요’라는 가사 때문에 좋아하게
앨범에도 참여했었던 장재원씨가 보컬을
들으면서 가장 먼저 했던 생각은 ‘시작부터
되어 가끔 생각나는 노래이다. 다른 악기와
맡은 곡으로 잔잔한 연주와 목소리가 참
반복되는 고요한 드럼 소리가 참 좋네’
화려한 기교없이 기타 한대로 노래하는데
잘 어울린다. 특히 화려하진 않지만 탄탄한
였다. 노래를 여러 번 들을수록 목소리와
그래서 ‘당신이 진심으로 원한다면 담배 뿐
드럼
본받고싶다.
연주 모두 제목과 참 잘 어울리고, 제목
아니라 락앤롤도 끊겠어요’와 같은 독특하고
재결성 후 첫 공연을 봤는데 공연을 보면서
자체도 앞으로 이보다 더 멋진 제목이 나올
따뜻한 가사가 더 와 닿는다. 가끔 지칠 때,
여러가지로 꿈을 꾸는 기분이 들었다.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멋있다는 생각이
이 노래를 들으면 진심으로 평화로워진다.
기타리스트
연주가
신윤철의
인상적이고
들었다.
보컬들이
참여한
기타리스트
‘지니어스’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여러가지 의미로 마음의 평화를 주는 곡들이 있습니다. 잔잔한 곡들과 시원시원한 매력이 있는 곡들을 함께 소개합니다. 신당동 파르한 (@chungchoon98)
4. 96 - 크라잉넛X노브레인
5. Ben - 카운터리셋
6. TONIGHT - 스트라이커스
[96](2014), 7
[Michael Punk Covers](2013), 10
[SCREAMING YOUTH](2011), 8
약 20년간 함께 활동하며 최근 활발히
멜로 펑크 밴드 카운터리셋의 마이클
스케잇 펑크 밴드 스트라이커스의 2집 앨범
콜라보 공연을 하고 있는 크라잉넛과
잭슨 트리뷰트 앨범으로 일본에서 먼저
수록곡. 첫 부분의 ‘Never catch anything
노브레인의 스플릿 앨범. 수록곡 7곡
발매되었다. ‘The Jackson 5’에서 활동하던
for my founding life’에서의 코러스가
중 6곡은 각각 3곡씩 서로의 노래를
마이클 잭슨의 솔로곡 ‘Ben’을 카운터리셋
정말 마음에 든다. 가장 좋아하는 가사인
바꿔 불렀고, 이 곡에는 두 밴드가 함께
스타일로 커버했는데 아주 시원시원해서
‘Getting high when I was seventeen’
참여했다.
있었던
듣고 나면 항상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외에도 정말 ‘청춘’이 느껴지는 곡이라고
<AGAIN 96> 공연에서 이 곡의 라이브를
기분이 된다. 트리뷰트 앨범이지만 카운터
생각한다. 무엇보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처음으로 듣고 비로소 ‘작은 클럽에서
리셋의 탄탄한 연주와 매력이 잘 느껴진다.
‘원하는 것을 못하면서 살면 정말 행복할 수
청춘의 밤을 태웠지’라는 가사가 진심으로
개인적으로는 올드 스쿨 타투 스타일의 앨범
없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되면서 감동적인 기분이 되었다.
커버부터 연주까지 좋아하는 것들이 가득한
2014년
12월에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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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케이션과 가독성 도상화된 텍스트가 정보 전달을 위한 텍스트를 공격한다. 그로 인해 몇 단락은 아예 읽히지조차 않는다. 내용 전달을 위한 텍스트 역시 행간과 자간의 균형이 심각하게 파괴되어 있다. 애초에 읽히기 위한 지면이 아닌 셈이다. 서체를 다룬 한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데이비드 카슨은 헬베티카로 반듯하게 쓰인 ‘미로’와 잘 읽히지 않지만, 미로의 꼬불함을 재현한 글자를 비교한 바 있다. 전자는 분명 잘 읽히지만, 감정이 거세되어 있다. 예컨대 우리가 미로에 갇혔을 때 느낄만한 답답한 심정 같은 것들 말이다. 후자의 경우 서체 스스로 감정을 발화한다. 그는 이 지점에서 커뮤니케이션과 가독성의 본질적 차이에 대해 언급한 바 있다. 그가 활약한 90년대는 디지털 기술의 본격적 유입 시기로 전위적이고 급진적인 작업 양식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져 나왔다. 이 같은 혁신적 디지털 언어의 대표적 발신자로 카슨이 먼저 지목되었다. 모더니스트들에게 그는 가독성을 무시한 ‘범법자’였고 디지털 시대를 맞이한 젊은이들에게 그는 새로운 시대의 ‘선각자’였다. 모더니스트들은 정식 디자인 교육을 받지 않은 그의 이력을 들먹이며 맹렬히 비난했다.
언어의 엔트로피적 용해 위의 장면은 ‘스 포츠조선’의 ‘인도서 20대 일본 여성 감금 집단 성폭행’이라는 제목을 클릭하고 난 후의 장면이다. 하지만 가장 먼저 내 눈에 들어온 장면은 운세 사이트 배너에 쓰인 ‘궁합’이라는 텍스트였다. 배너는 하나의 소음처럼 여겨지고 이것은 내가 읽으려던 주제에 대한 심각한 간섭을 초래했다.
모더니스트들은 일찍이 지향해야 할 타이포그래피에 대한 정의를 내린 바 있다. 하나의 지면에는 하나 이상의 용도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디자이너는 서체의 크기와 종류, 그리고 색에 대한 면밀한 정의를 내린다. 이 모든 체계 배후에는 용도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존재한다. 그렇다면 스포츠조선 클릭 후 가장 먼저 보여야 할 풍경은 배너의 물결이 아닌 기사의 제목이어야 할 것이다. 또한, 기사 성격상 본문은 중립적 서체로 구성, 읽는 이가 정보 습득의 과정에서 객관성을 견지하게끔 유도할 것이다.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논조에는 인도의 남근 중심주의에 대한 비난이 서려 있다. 또한, 성폭행을 당한 일본 여성의 여행 경로가 ‘불교 순례 센터’인 점에 대해서도 아이러니를 표출한다. 이 기사에서 ‘인도’는 아직 문명화가 덜 된 자연처럼 느껴진다. 아래는 지면에 존재하는 배너들이다.
위계의 위기 기사의 의미를 비웃기라도 하듯 지면의 배너들은 성에 대한 저속한 광고를 진행 중이다. 우리에게는 배너의 저속함과 기사의 내용을 분리할 수 있는 분별력이 분명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 기사에서 성폭행 여성의 국적이 일본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기사를 읽다 옆에 조그맣게 떠다니는 플로팅 배너에 실수로 마우스를 대는 순간 ‘모두투어 초특가 일본여행’이라는 글귀가 펼쳐진다. 이것은 기사가 처한 맥락을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이다. 최초의 의미를 내포한 체스말의 머리를 잡아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은 것 같은 상황은 데이비드 카슨이 꿈꿨던 ‘탈의미’의 세계와 닮아 있다. 이 기사는 수많은 배너에 의해 지면상의 위계가 붕괴해 버렸다. 기사를 읽다 말고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켜 줄지도 모를 배너를 클릭해 전혀 다른 공간으로 링크되어버리는 상황은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일상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활자의 뿌리박힌 고정성이 하이퍼텍스트의 링크개념으로 뒤바뀌면서 정보를 습득하는 인간의 태도 역시 덩달아 변화했다. 예컨대 같은 지면이라도 좌에서 우로 읽어 내려가는 책의 선형성에 비해 공간에서 공간으로 링크해가는 웹은 깊이 대신 무한한 너비를 가지게 되었다. 인상 깊은 글귀가 담긴 페이지에 단풍잎을 꽂아 두는 행위와 북마크를 클릭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태도를 지향한다.
용도의 폐기 데이비드 카슨은 타이포그래피의 해체를 통해 모더니스트들이 쌓아놓은 위계의 세계에 균열을 내고자 했다. 하지만 오늘날 자본은 데이비드 카슨의 해체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전유하는데 성공한 듯 보인다. 한국의 웹 환경이 만들어낸 배너의 홍수는 언어를 은유(유사성의 원리)가 아닌 환유(인접성의 원리)와 결부시킨다. 그렇기에 성폭행 당한 이의 일본국적과 일본여행 배너가 같은 공간에 위치되어버리는 윤리적 공백이 발생하는 것이다. 새로운 미디어 환경과 결합한 자본이 주조해낸 배너가득한 지면에는 어떠한 중심도, 그 중심을 둘러싸고 형성된 위계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은 역설적이게도 데이비드 카슨이 그토록 원했던 좋은 가독성만을 위해 구성된 지면에 대한 전면적 거부라 볼 수 있다. 탈중심화된 지면의 세계에서 의도나 기획은 냉소 가득 머금은 언어들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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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이 좋아. #17.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aoikasa
2014년 12월 마지막 주. 제주에 갔다. 그저 쉬고 싶어 떠난 여행. 바다만 봐도 좋을 거 같은 여행에서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재일교포 건축가 인 이타미준의 바람, 돌, 물 미술관, 그리고 방주교회를 보는 것이었다. 사진으로만 봐도 너무 좋은 그 공간을 한 번쯤은 직접 느껴보고 싶었다.
일요일 아침,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찍 나서 핀크스 비오토피아로 향했다. 비오토피아는 사유지이기 때문에 내부로 들어가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방법이 없는 것은 아 니니… 비오토피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면 미술관을 둘러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래서 전 날 미리 예약을 하고. 다음 날 근처의 방주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비오토피아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하 고 미술관을 둘러보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이방인들의 배, 방주교회 뭔가 기념비적인 형태 때문일까. 사실 방주교회에는 큰 기대가 없었다. 배를 형상화하여 물 위에 띄운다 는 아이디어는 크게 새롭지 않았고 안도 다다오의 물의 교회 같은 곳에서 이미 본 방식이라 기대가 적었 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른 아침 길을 나서 도착한 방주교회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로 붐비었고, 사진으로 볼 때 꽤나 기념비적이다 생각했던 형태 역시 건물의 스케일이 그다지 크지 않음으로 인해 부담스럽게 느껴 지지 않았다. 어딘가로 나아가는 듯한 게 아니라 물 위에 고요히 정박한 듯 한 방주에는 작은 규모의 예 배당이 있었고, 그 안을 가득 채운 사람들은 서로가 다 이방인이었지만 꽤나 따스하게 예배를 드렸다. 목사님을 비롯하여 신도의 대부분이 제주도로 이주온 이들이며, 예배를 드리는 이들 중 다수는 여행객 이기에 이 곳은 정말 지구 곳곳에서 모여든 사람들의 무리로 가득찬 방주 같았다. 그리고 예상보다 (관 광객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게 진행된 예배 가운데 소리의 울림이 작은 공간을 채우며 예배의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예배당 크기가 작기 똏문일까 성가대석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 성가대
들은 회중석의 양 옆으로 일렬로 의자를 두고 앉았다. 그래서일까, 예배 중 찬양 시간이 성가대의 소리 로 가득차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마치 지붕부터 벽을 타고 내려오는 수직 목재를 타고 소리가 오르듯,
찬양 소리가 하늘로 오르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방주교회 바로 옆에는 까페가 하나 있다. 방주교회도 잘 보이고 무엇보다 아름다운 제주의 오름들이 만 들어내는 풍경들이 잘 보인다. 방주교회에 간다면 들려볼 곳.
(방주교회와 방주교회 옆 까페. 배같은 방주교회의 모습과 까페 창으로 보이는 오름들이 아름답다.)
거친 억새밭 사이 작은 미술관들 제주 핀크스 비오토피아는 연예인들과 부유층들이 다수 사는 주택단지로 유명한 곳이다. 그렇기에 철저 하게 외부의 침입을 막는 곳이라 사실 들어가려면 장벽(?)이 좀 있는 편인데, 일단 들어가보면 그 풍광이 낯설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비오토피아 내에는 4개의 미술관이 있다. 바람, 물, 돌, 두손 미술관. 위치적으로 보면 동쪽에서 서쪽 순 으로 돌, 두손, 바람, 물 이렇게 4개가 위치하고 있는데 돌과 두손 미술관은 바로 인접해 있고, 바람 미 술관과 물 미술관은 각각 한 개 블럭씩을 두고 떨어져 있다.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나와 동측에 있는 돌과 두손 미술관부터 가길 추천한다. 레스토랑의 식사값 은 상당히 비싼 편이나 미술관 관람료를 대신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레스토랑 내부공간과 식사의 질도 꽤 괜찮아 비싼 밥값이 크게 아깝진 않다. (혹자는 일단 들어갈 땐 예약했다고 하고 일단 들어가서는 미 술관만 봐도 된다고 하나 그런 사람들이 늘어나면 지금처럼 식사를 하는 사람들에 한해 미술관을 보 게 해 주던 것도 금지될까봐 왠만하면 식사는 하고 들어가길 권한다. 사유지에 들어가는 거니 그 정도는 지불해야할 듯) 아무튼, 서측의 물미술관부터 보지 않고 동측부터 보길 권하는 까닭은 점층적 공간의 경 험을 위해서이다. ‘오’ 하다가 ‘와’ 하다가 ‘아’ 할 수 있게 말이다. 그리고 차로 다니면 편하지만, 걷기에
(두손미술관(좌)와 미술관(우))
먼 거리가 아니니 걷기를 추천한다. 억새풀밭 사이를 걸으며 미술관 사이를 이동하는 그 경험 조차도 이 미술관들을 제대로 경험하는 것의 일부이니 말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차로 이동하기 때문에 미술관 사 이를 걷는 산책길이 오롯이 나만의 산책로가 되는 장점도 있다. 혹 주변에 가족 단위의 혹은 친구 단위 의 시끄러운 이들이 있다면 한 템포 쉬어 그들의 소리가 들리지 않은 정도의 간격을 유지하길 권한다. 이 유는 다음 챕터에)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억새풀밭을 걷는 내내 바람 소리가 노래소리처럼 들린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제목처럼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라고 말하는 듯한 장소이다. 바람의 노래를 들으며 길을 걷노라면 돌미술관이 나타나고, 바람미술관이 나타나고, 물미술관이 나타난다. 작은 컨테이너 박스 같은 돌미술관은 하트 모양 햇빛이 들어오는 걸로 유명한데, 잠망경 같이 하늘로 살짝 솟아오른 원형창을 통해 제주의 하늘과 제주의 빛이 들어온다. 그 빛이 컨테이너 박스 안에 떨어지며 이 공간의 숨결을 만들어낸다. 잠시 호흡을 멈추고 봐 야할 듯한 그런 벅찬 숨이다. 이 미술관의 주 전시물이라 할 수 있는 돌은 하트 창의 빛을 받는 곳에 하 나, 그리고 양 옆으로 난 창 밖으로 각각 하나씩 있다. 큰 창을 통해 바라보이는 돌은 그 돌과 바깥의 억새풀 그리고 저 멀리 보이는 오름까지 어우러져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낸다. 제주의 돌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그대로 전시관 안으로 끌고 들어오는 것이다. 돌미술관 바로 옆에는 두손 미술관이 있다. 수평선 이 강조된 돌미술과는 달리 수직선이 강조된 두손미술관은 다른 미술관들에 비해 다소 강한 인상을 풍 기며 다소 이질적이다. 그러나 이 곳 역시 강력한 한 방을 감추고 있으니, 바로 계단을 내려가서 옆으로 보이는 땅 속 공간의 ‘나무’ 한 그루가 오롯이 서 있는 전시관의 모습이다. 더 이상 쓸쓸할 수 없을 듯한 그 풍경이, 모든 것을 다 제하고 본질만 남은 듯한 나무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두손미술관)
(돌미술관(위)과 바람미술관(아래))
두손과 돌미술관을 뒤로 하고 생태공원 내 억새풀밭길을 걷노라면 억새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이 느껴지 고, 왼편에 위치한 연못의 물소리가 간간히 들린다. 바람이 점점 강하게 불어갈 즈음, 오른편으로 꺾으 면 바람 미술관이 나타난다. 허름한 나무 창고같은 외관에, 오직 바람이 부는 것 외엔 아무 것도 없는 공간이다. 그런데 그 바람이 이 공간의 다양한 색채를 만들어 낸다. 때로는 보드랍게, 때로는 거칠게 부 는 바람은 공간을 채우고 공간을 휘몰아 간다. 숨을 죽이고 이 곳에서 바람의 노래를 들어보라. 살포시 곡선으로 꺾인 공간을 채우는 빛과 바람이 아무 것도 없지만 모든 것이 있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마지막으로 물미술관. 바람미술관을 나와 조금만 서쪽으로 이동하면 바로 물미술관이다. 언덕 위에서 아래로 내려가면, 송판 콘크리트로 거칠게 마감된 진입구를 만나게 된다. 언덕에서 내려가 진입구로 들 어간 후 몸을 한 번 꺾으면, 원형의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물의 공간이 살짝 보이고, 그 정 가운데 개구부 앞에 서는 순간 감탄사를 내뱉게 된다. ‘아!’ 하고… 원형의 콘크리트 벽은 내부의 고요한 물을 품고 원형의 하늘을 담고 있다. 물은 사각형, 하늘은 원형이다. 사각형의 물과 원형의 하늘이 만나는 공 간 사이를 채우는 건 바람과 물의 노래이다. 원형 하늘에서는 시시각각 변하는 제주의 햇빛이 그림자를 만들어내며 공간을 채운다. 또르르 또르르 물이 흐르는 소리와 휘이익 휘이익 바람이 지나는 소리, 그리 고 그 모든 것을 품는 따스한 제주의 햇빛. 가만히 앉아 그 소리와 빛이 만들어내는 공감각적인 경험 을 해 보길 추천한다. 너무나도 고요하지만, 너무나도 다이나믹한 공간이 그 곳에 있다.
(물미술관)
게임 노동 일지
글. 그림. 철민
야기...술집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이야기 소재거리는 엄청날것이라는 확신 바로 실 행에 들어간다. 월간이리에는 없는 코드 소소한 웃음코드 를 공략하자 전략이 먹혔는지 내가 월간이 리에다가 글을 쓴다고 하자 지인들은 월초 에 책이 나오면 부산오뎅이야기 먼저 펼쳐
@odeng2004
본다는 얘기 재밌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들 었다. 부산오뎅을 모르는 어떤 묘령의 미인
나도 모르는 나의 미래
이 글이 재밌어서 찾아오고 싶었어요.라는 말을 듣고 싶다는 꿈을 꾸기도 했다(아직 까지 묘령의 사람은 있었으나 미인은...)진
4년전쯤이었다.
짜 부산오뎅이 맞냐는걸 증명하기위해 부 무슨 생각이였는지 나는 우리가 게로 월간이리를 50-60권씩을 매 달가져온다 아무리 무가지라고해 도 양심이 있지 한꺼번에 매달 수 십권을 가져온다는건 너무하다싶 어 월간이리 한 권당의 제조원가 를 당당히 지불을 한다. 지금은 배 포처가 꽤 늘었지만 그당시에는 이리까페 단 한곳이였다. 월간이리의 배포처가 되어야겠다 는 생각을 한건 오로지 나혼자만 의 생각. 나라도 열심히 나르다보 면 월간이리의 독자는 점차 늘어 날것이라는 순수한 마음에 갖다 놓기 시작을 했다 그러다보니 가 게에서 이리까페를 모르는 월간 이리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갖다 놓게된 계기를 이사람저사람에게 설명하게된다 게다가 근데 왜 갖 다놓으세요? 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냥..뭐..이만저만...다른
의미가
필요했다. 그래!!나도 여기다 글 을쓰자 그러면 이사람 저사람 궂
부 산 오 뎅 이 야 기
산의 오뎅거래처에 당일치기로 사진을 찍 으러 다녀오던 작가 정신 투철했던 나... 그렇게 한 2년을 쓰다보니 무궁무진할줄만 알았던 나의 소재가 점점 고갈 나중에는 가 족팔이, 나의 학창시절팔이, 유년시절팔이, 군대이야기까지 부산오뎅안에서만 일어난 일만 쓰겠다던 나의 가치관은 서서히 무너 졌다. 편집장에게 소재가 떨어져서 못쓰겠 다고 징징거리기도 많이했다. 조금만 더쓰 면 책한권나올꺼다. 이때 아니면 언제 글을 써보냐 이때아니면 평생 글 쓸일없다. 당근 과 채찍을 나에게 적절히 가했다. 그런말들 에 또 일년을 더 쓰게됐다. 무궁무진할꺼 같았던 소재의 고갈 이작가님 이라는 사탕 발림도 안먹히게된 초심의 상실 월간이리 에 글을 쓰며 이땅의 모든 창작자들에게 경 의를 표하게됐다. 작가는 아니더라도 다음에 가게를 하면 가 게이름을 이작가야라고 할정도의 작자는 되지않을까하는 실없는 생각을 해본다. 소 재거리가 엄청생겨서 다시 올지 독자로 남 을지는 아무도 모를일이다
이 설명하지 않아도 될거같은 생 각이 들었다. 제목은 부산오뎅이
forever월간이리~~
Road - 2 (밥) 글. exxx 벌써 2회. 1회를 쓸 때만 해도 한 달 뒤면 누군가 음식 칼럼을 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아무런 문의도 오지 않는 것을 보니 이놈의 잡지가 생각보다 인기가 없거나 아무도 이 코너에 관심이 없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나라도 애지중지 해야지... 그래 (여전히 음식 관련 쓰실 분은 언제든 환영합니다.) 오늘은 ‘밥’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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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밥심으로 살아간다는 이야기야 뭐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으니 슬슬 세뇌가 될 때도 되었지만 오직 그것 만으로 밥과 쌀의 위대함을 몰아붙이기에는 프랑스인은 크로와상의 힘으로 살아갈 것 같고 이탈리아는 파스타.. 이렇게 보면 쌀이나 밀가루나 사람은 먹는 에너지로 살아간다는 이야기가 더 설득력 있다. 광합성 X 음식 섭취 O. 하지만, 각 지역의 소화기관이 지역을 따라 조금씩 다르게 발달한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무조건 적으로 무시할 말은 아니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편을 좀 들어야 하는 날이니 오늘은 밥알의 얼굴에 흥부의 빰을 붙인다는 마음으로 모자란 생각이라도 덧붙이려 쓴다.
김치에 이어 왜 밥을 두었냐면 아무리 우리의 식습관이 변했다고는 해도 쌀 과 밥을 빼놓고는 이야기 할 수 없기 때문에 그렇다. 밥이 없이는 한국의 식문화를 설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우선 반찬이라는 개념들. 약간은 달짝지근한 좀 더 한국적인 표현으로는 들척지근한 맛이나는 찐곡식을 강아지 사료씹듯이 마냥 씹어삼킬 수 없으니 나온 것들이 일종의 반찬이기 때문이다. 일단 배는 이걸로 채우고 이거를 꾸준히 씹어 삼키기 위해 지루함을 덜어주어야 하는데 그 변수로 작용하는 것들이 반찬이 되는 셈이다. 국이야 뭐 밥먹다가 숨막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경험을 해본 사람이라면 냉수와 함께 생명의 은인 겪으로 생각할테니,, 반찬이 없거나 시간이 없을 때는 국에 밥 말아서 한 그릇 뚝딱 배부르게 먹어본 경험들이 있을테니, 길게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그럼 단순히 밥이 아니라 고구마나 감자같은 탄수화물 덩어리를 밥이라고 할수도 있는 것 아니냐 라고 이야기 할 수도 있겠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이 쌀보다 용이한 에너지 공급원이었다면 수저와 젓가락이 발달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이 외에도 이부분은 물이 많은 한국의 특징도 한 몫 했을 것 같다. 물이 적거나 평지가 적은 지역에서는 상대적으로 벼농사가 적으니 말이다. 강원도, 제주도 외의 계단식 논은 정말 -_- 대단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는다. 모두가 다 대단하다.
흰 쌀 밥이 다이어트의 적이라고 하지만 맛의 달인에서는 밥의 포만감 대비 칼로리를 생각하면 다이어트 음식으로도 밥이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도 하고, 나도 일정부분 동의 하고 있다. 밥을 고봉으로 먹고 한 그릇을 더 먹던 시절에도 한국인의 비만도가 그리 높지 않았다.
오히려 튀긴음식이나 기름진 음식들을 반찬으로 곁들이면서 밥이란 기름에 불을 당겨 살이 된 꼴이니 밥 탓을 너무 하지는 말자. 밥과 김치, 젓갈과 국, 장과 나물 정도의 식사라면 정말 왠만큼 먹어서는 살찌지 않는다. 그걸 먹고 살이 찐다면 정말 운동이 부족하거나 건강검진을 제안해 본다.
이런 위대한 밥에게도 위기가 찾아왔으니 수입쌀과 인스턴트밥이 아닐지.. 정말 그간의 맹신이 무색할 정도로 쉽게 세상이 바뀐다. 밥심으로 살려면 그래도 신토불이 정도는 같이 우겨줘야 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찬밥을 주면 인심없다는 게 상식처럼 살아온 세상에서 진공포장 답을 데워먹는 세상이 오다니, 친가 외가 쌀 농사를 짓 는, 쌀과 밥에 대해 아주 큰 애착을 갖고 있는 입장에서 무척 속상하고 갑갑한 일이다. 인스턴트 밥은 맛도 없는 데. 참으로 통탄할 일이다. 그 외에 밥을 지어얼렸다가 렌지에 데우면 똑같은 밥! 이라는 말도 이해가 되지 않는 말 중 하나다. 내가 모르는 데우기 혹은 냉동 포장 기술이 있는것인지 아직까지는 렌지에 데운 밥을 먹고 감탄 해 본 일이 없다. (인스턴트 밥은 식감이 좋지 맛이 좋지는 않다. 이 문장을 생각하면서 먹어보자.)
어지간히 밥 이야기를 했으니 재료가 되는 쌀 이야기를 조금, 현재 쌀은 크게 2종이 있다. 인디카 종과 자포니카 종 흔히 인디카 종은 안남미라고 불리우는 베트남 볶음밥 같은 곳에 쓰이는 쌀알. 흔히 날리는 밥알이라는 것이고 자포니카는 (한국과 일본에서 많이 먹는 하지만 일본이 먼저 학명을 명명했기 때문에 자포니카가 됨.) 지었을 때 끈기가 있는 쌀인데 흥미로운 것은 왜 일본과 한국이 유독 자포니카 종을 선택해서 먹고 있는지는 참 의아하다. 쌀의 기원이 중국 내륙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왠지 한국이 먼저 키워서 통신사를 통해서 넘어가지 않았을까 하는 엄한 추측도 해보는데.. 이건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자포니카 종은 세계 쌀 생산량의 10%정도이고 대부분을 한국과 일본 문화권에서 소비하고 있단다. 과거 떡볶이에 열광하던 시절에 이렇게 맛있는 떡볶이가 왜 미국에는 널리 퍼지지 않았을까라는 귀여운 상상을 하기도 했었는데, 외국 문화권에서 떡이 이에 쩍쩍 붙는 식감을 싫어 한다는 이야기에 수긍했다. 쌀도 아마 어지간해서는 점유율 변동이 있지는 않을 것 같다.
맨 앞에 이야기 했던 것처럼 이탈리아 사람은 파스타를 먹어야 힘을 쓰지 하는 것 처럼 각 지역에서 익숙하게 받아들여온 식감과 인식을 넘는다는 것은 인간의 수명을 생각했을 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전에 조사하다 알게 된 것인데, 농민들이 이야기 하는 쌀값 현실화 - 80kg당 23만원 현재는 80kg 당 18만원- 하는데 추가적으로 정부가 지출해야 하는 수매 금액은 1조 가량이다. 정부가 안된다고 강짜부리는 것에 비해서는 크지 않은 금액이란것은 기억해두자.
다음은 무슨 음식으로 하고 싶은지 신청 받습니다. 끝 @exxx2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