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 입니다.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 글. 사진. 아홉시 영화로 읽는 시공간 - 이미테이션 게임 : 천재와 게이는 두마리토끼를 다 잡았는가 / 글. 곡주대비 한국영화 돌려 깎기 - 살인의 추억 / 글. 최지원, 곡주대비 여기 문학이 필요한시간 - 김동리 「역마」 / 글. 고수진 작곡가 B의 노트 - 작곡가 되어보기 - part 2 / 글. Composer B 인디 잡지에 관한 혼자만의 세미나 / 글. exxx idology’s pick - 두근 두근의 불모지 : 뭄바이 공항사건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소개소 / 글. 신당동 파르한 옆사람 인터뷰 - Granz Globewalker, 여행하며 음악하기 / 글. 정리. 이내 다른 나라에서 / 글. 사진. 황효정 물질과 비물질 - 14. 담배 / 글.김종소리 사진. 황은정 낭만 스파이 - 明節 / 글. 사진. 낭만스파이 #423733 : 깨진 휴대전화 액정 / 글. 사진. 김성연 건축이 좋아 - # 18. MHM BUONA FORTUNA… 피렌체의 두오모 이야기. / 사진. 글. aoikasa 게임 노동 일지 / 그림. 글. 철민 Road - 3. 고추장 / 글. exxx
이달에는 ‘옆사람 인터뷰’와 ‘다른 나라에서’ 라는 새로운 코너가 생겼습니다. 3개 가 될 뻔 했는데, 조금 아쉬운 마음도 있습니다. 다음달에는 또 다른 일러스트 작 업이 연재될 예정이니 기대해 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패션 관련 연재는 매번 될듯 될듯 하면서 진행하다 엎어진것이 벌써 3번째 입니다. 언제쯤 제대로 된 코너를 선보이게 될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 저는 요즘 헬스를 하러 다닙니다. 목디스크가 심해져 치료비를 내느니 운동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다니는데, 이게 의외로 효과 가 좋아 통증이 많이 줄었습니다. 좀 더 회복하면 보다 열심히 컴퓨터에 앉아 있 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의 변화가 다양한 미래를 제시한다고 하죠. 저는 운동을 한김에 나시티를 입어 볼까 고민중입니다. 될지 안될지 모르지만 일단 상상을 해봅니다. 물론 밖에 나가 지는 않을 겁니다. 집에서 그냥 한번 소매를 걷어보는 정도겠지요. 하하하. 변화를 두려워 하기보다 적극적으로 변화를 체험하는 한달이 되기를 바랍니다. 황 사는 최대한 피하고 다음달에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나길 기원하며 이만 줄입 니다. 월간이리 exxx 드림.
편집: 이훈보 공식트위터 @postyri
표지: 이주용
영화로 보는 시공간 : 이미테이션 게임: 천재와 게이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는가?
천재를 다룬 영화들은 많다. 러셀 크로우가 주연했던 뷰티풀 마인드, 맷 데이먼이 각본을 쓰고 (그의 절 친, 벤 어플렉과 함께) 직접 천재 수학 소년으로 출연 스타덤에 오른 굿 윌 헌팅, 최근 작 이었던 사랑에 대 한 모든 것 (올 해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수상 했다), 그리고 이 지면을 할애할 이미테이션 게임 까지. 전례가 많은 장르 영화기에 (‘천재’ 장르 라고 분류하면 되려나) 영화를 보지 않은 독자들이라도 대충의 아웃라인 정도는 그려낼 수 있을 거라 생각이 된다. 가령, 어린 시절부터 괴짜인 천재가 주변의 따돌림이 나 집안의 어려움을 인내하고 각고의 노력 끝에 사람들에게 (천재성이 아닌 인간적으로도) 인정 받고 남 은 여생을 인류에게 기여하며 산다는 뭐 그 정도? 약간의 변주를 제외하면 이미테이션 게임도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그 수학적인 천 재성으로 주목 받던 앨런 튜링(실존 인물)은 30대도 되지 않아 명문대학 교수로 재직하게 되어 석학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영국 정부기관으로부터 비밀스러운 의뢰를 하나 받게 되는 데 그 내용인 즉 슨, 2차 세계 대전에서 크게 손상을 입고 있던 영국 군정부에서 앨런으로 하여금 독일군 의 암호 체계, 이니그마 ( Enigma) 를 해독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암호 해독 프로젝트는 앨런 말고도 4명 의 천재들과 함께 진행되는 팀 과제인데, 이 무리에서도 앨런은 그 괴짜성으로, 천재성으로, 성적 취향 (?) 으로도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다. 영화는 과거 /현재 /미래 시제를 동시 다발적으로 배치하는데 이는 그가 회상하는 유년시절 (플래쉬 백으로 처리되는 과거), 에니그마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 (내러티브 상의 현재), 그리고 동성연애자로 기소 되어 화학적인 거세를 당하게 되는 미래 가 튜링의 시선과 감정선에 따 라 적절히, 혹은 불쑥 뒤바뀌고 버무려진다. 굵은 선을 미리 말하자면 영화는 튜링의 비극적인 삶을 풀어놓는다. 그가 (에니그마를 해독함으로서) 영 국 정부에게 기여한 엄청난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의 동성애성 때문에 그의 업적과 존재는 묵인되어야 했 고 반세기가 넘어서야 그의 모든 발자취가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다. 그렇다면 영화는 무엇에 초점을 맞추 고 있는가? 가공할 만한 천재성으로 독일의 암호체계를 무너뜨린 수학자? 아니면 동성애성으로 인해 화 학적인 거세를 당해야 했던 불운의 한 남성?
사실 영화라 는 것이 꼭 한 가지 아젠다를 가지고 만들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영화가 말하고자 하 는 이슈가 있다면 최대한 명확하게, 그리고 그러기 위해 적절한 서사를 배치 해야 할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까지도 계속 고개를 기울게 만들었던 점은, 이미테이션 게임이 영화의 방향성을 뒤섞는 다는 것이었다. 영화의 초반부 와 중반부의 상당량이 (2/3 정도가) 튜링의 천재성 혹은 괴짜성 을 그리는 데 할애 되어있다. 그가 동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 그만의 암호 해독기를 만들어 몇 년 동안 같은 실험 을 되풀이 하는 것, 술집에서 만난 여자의 잡담에서 에니그마의 힌트를 잡아내는 것 등, 영화의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그의 뛰어난 두뇌를 서술하거나 칭송 하는 방식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영화가 후 반부에 , 그 가 그의 유년시절 친구, 크리스토퍼 를 향한 마음이 우정 이상이었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밝혀지면서 튜링 을 사회에서 박해당하는 동성애자로 다소 ‘바쁘게’ 묘사가 된다. 다시 말해 이미테이션 게임은 뷰티풀 마 인드로 시작해 필라델피아로 끝난다고 봐도 무리가 없을 듯 하다. 물론 (앞서 언급했듯) 그 둘 중 하나의 사실에만 영화의 포커스가 맞춰졌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것은 아 니다. 이 두 부분 모두가 튜링의 삶이므로 누락 없이 영화 속에 기재 되어야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특히 전기영화에서 라면). 다만 영화가 이 두 사실을 적절히 버무려 빚어내는 것이 아닌 확실히 나누는 방식 (초 중/후반) 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은 좀 의아한 부분이다. 영화 엔드크레딧에 올라오는 인터타이틀 (속 자막: 대개 전기 영화나 실제 사건을 다룬 영화들 말미에 등 장하는 후술) 역시 이런 영화의 양극화를 현저히 드러내는데, 일반적으로 전기 영화가 인물을 연대기 순서 로 등장시키고 서술 하는 것에 반해, 천재/게이의 이분법적인 수사를 사용하며 천재 튜링은 ~~~ 했으나 게이 튜링은 ~~ 했다 라는 방식으로 맺음을 하는 것이다. 독자들이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러한 서술 방식이 동성애자들을 비하하는 방식으로 쓰인 것은 절대 아니라는 점이다. 영화의 (앞서 말했듯 전기 영화임을 고려했을 때) 특이성이 연대기 순을 따르지 않는다 는 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앨런 튜링의 인물에 있어서 가장 문제적인 두 가지 요소 – 천재성과 동성애 성 – 를 기반으로 영화의 구조가 나누어져 있다는 것일 뿐이다. 필자는 이번 기사를 오픈 엔딩으로 남기고 싶다. 솔직히 말해 이러한 구조가 이상한 것은 확실 하지만, 속 깊은 의도에서 계산 된 것일지, 비난을 받아야 마땅한 시도 일지, 판단하기 힘들다. 독자들의 도움이 절 실할 때다. 결론 없는 기사를 쓰며 죄책감에 사족을 붙이자면 창작물이 관습적이지 않은 시도를 내포 하 고 있다면, 그 작의는 (특히 대중영화에서) 가늠해 볼 수 있는 선상에서 읽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계속 미궁에 빠져 버린다면, 둘 중 하나다. 영화는 관객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혹은 내가 둔한 것이다. 글. 곡주대비
최지원:
곡주대비 (hjkanjy@gmail.com) :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는 보는 내내 ‘도대체 범인은
오늘, 드디어 칭송해 마지 않던 작품을
누구인가. 그리고 범인은 잡힐 것인가.’에 대한 생각만 하고
만났다. 부족한 새치 혀로 작품의 뛰어남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화에서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행여라도 끌어내리는 누를 범하지 않을까
몰리는 ‘박현규(박해일)’가 범인이 맞는지에 대한 의문이
고민스럽다. 한정된 지면을 고려하여
중요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범인을 잡는 것이 중요한 영화가
살인의 추억 주/조연 배우들이 보여준
아니었다. 영화는 ‘왜 우리는 범인을 잡지 못했는가.’에 대한
뛰어난 연기나 완벽에 가까운 음향 등은
질문을 가지고 살인 사건을 다시 추억(追憶)하는 영화였다.
훗날 칭송하기로 한다.
영화는 그 당시 시대의 시스템에 대해서 적나라하게 보여줄 뿐만 아니라 범인을 잡으려 했지만, 잡지 못 했던 형사들의
첫째로 살인의 추억은 장르 영화다.
심리 변화를 집요하게 묘사해낸다.
사실 굉장히 파격적이거나 새로운 장르 개척물은 아니다. 있었던 연쇄 살인
특히, 형사로 등장하는 ‘박두만(송강호)’은 자신의 육감만으로
사건을 토대로 만든, 예측 가능한 장르적인
범인을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하는 형사이고, ‘서태윤(김상경)’
수법으로 짜여진 범죄/살인/형사 물이다.
은 과학적인 수사를 가장 중요시하는 형사이다. 두 사람은
그럼에도 불구 하고 살인의 추억이
자신들이 지목했던 용의자들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국내에서, 국외에서 웰 메이드 작품으로
연달아 밝혀지자 지치기 시작한다. 그들은 그럴수록 더
호평을 받은 이유는, 영화의 새로움이라기
집착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범인을 잡고자 하는 그들의
보다 2003년 전까지 만들어진 (특히
욕구 또한 점점 더 커져만 간다. 하지만 어떠한 확신도 없는
한국에서) 스릴러/형사 물의 모델들을
상황에서 계속해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자 그들은 점점
참조 했을 때 지극히 전형적인 토대를
이성을 잃기 시작한다. 이때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박현규가
따르면서도 뻔하거나 지루하지 않은 그
지목되면서, 그들은 박현규가 범인이어야 한다는 집착적인
무언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내게
반응을 보인다. 특히 두 사람은 박현규가 범인일 것이라는
주어진 지면은 바로 이 작품의 이러한 ‘
확신을 가진 채 수사를 진행하지만, 이내 유전자 감식을
묘수’에 한계를 두어 할애 하고자 한다.
통해 박현규 또한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하지만 서태윤은 달아나는 박현규를 향해 계속해서 총을 쏜다. 서태윤에게 이제 더 이상 과학적 수사와 물증은 중요하지 않다. 서태윤에게 박현규는 범인일 뿐이다. 세월이 흐른 뒤, 형사를 그만둔 박두만은 우연히 화성을 지나다 사건 현장을 다시 찾는다. 그곳에서 “얼마 전에 어떤 아저씨가 거기를 들여다봤다.”라는 아이의 말을 들은 박두만은 눈물이 고인 채 정면을 응시한다. 여기서 박두만이 카메라를 통해 쳐다보고 있는 대상은 누구인가. ㅂ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그 대상이 어딘가에 있을 범인이라고 밝혔다. 그의 말처럼 박두만이 쳐다본 대상은 범인이지만, 관객인 우리이기도 하다. 영화는 다시 우리에게 되묻는다. 왜 우리는 범인을 잡지 못했는가.
殺人의 추억
묘수 1: 영화는 스릴러영화의 장르적인 관습대로 ‘후던잇 (whodunit; 즉 누가 죽였는가)’ 모델을 따르며 진짜 범인이 아닌 일련의 용의자들을 한 명 한 명씩 지워 가는 형식을 따른다. 특이한 점은 매 번 범인이 아닌 용의자가 등장할 때도 진범이 등장할 때와 비슷한 레벨의 클라이맥스와 설정들이 할애 되어있다는 점이다. 기존 스릴러 영화가 진범으로 포커스를 좁혀가기 전 들르게 되는 일종의 함정 범인 들을 진범 보다 허술 하게 묘사하거나, 진범 보다 신빙성이 떨어지는 단서를 심어놓는 기법과는 반대의 경향이다. 가령 진범 (박해일 분)을 묘사 할 때의 섬세한 미장센 – 그의 손을 묘사 하는 카메라 워크, 그의 목소리를 집중하게 만드는 음향 – 등이 피해자의 오빠 (나중에 죽게 되는 또 다른 용의자) 를 그려 낼 때도 동일하게 사용된다. 다만 손이나 목소리가 아닌, 그의 표정이나 몸짓이 주가 되어 디테일 하게 그려지는데 이러한 섬세한 묘사는 관객으로 하여금 (이정도의 디테일한 묘사라면) 피해자의 오빠가 범인이라고 수긍할 정도를 유지하거나 넘나든다. 따라서 박해일이 진범이라는 것을 거의 확신하게 되는 시점에도 또 다른 용의자가 범인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뭉스러움을 떨쳐낼 수 없게 만드는 것이다. 묘수 2: 묘수 1이라 하면 다시 말해 인물 한 명 한 명이 영화적인 클라이맥스를 소유한다는 것 (인물의 디테일한 설정/추적으로 인한) 인데, 이는 비단 용의자들 뿐만 아니라 형사 캐릭터들에게도 부여 된다.이는 송강호가 마지막 장면에서 어린 아이와 나누는 대화씬 에서 극명하게 보여진다. 일반 적으로 이러한 영화 장르의 구도에서 범인의 클라이 맥스라면 그가 범인일 수 밖에 없는 절대적인 단서가 찾아졌을 때, 그리고 형사가 부여하는 클라이 맥스라면 진범에게서 그 단서를 찾을 때 던가 아니면 결여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살인의 추억에서는 마지막 시퀜스에서 송강호 캐릭터에 의해 마지막 클라이 맥스가 부여 되는데 이는 모든 사건이 종결 (아닌 종결) 되고 나서 그가 갖게 되는 감정의 절정, 즉, 결말에서 오는 카타르시스나 해소가 아닌 모든 사건의 재시작 임과 동시의 미궁으로 닫아 버려야 한다는 인지에서 오는 자괴감과 분노로 영화의 초반부 혹은 중반부에서 그가 가졌던 감정들의 최대한의 표출로 마감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영화는 서론-본론-결론 으로 정리가 되는 것이 아닌 서론-본론-더 강한 서론/ 혹은 더 강한 본론 에서 끝맺음을 하는 것이 된다. 살인의 추억을 좋은 작품이라고 말하는 평들을 많이 보았다. 하지만 그에 더해 강한 작품이라고 말하고 싶다. 데이빗 핀처의 세븐에서 브래드 피트가 오열하며 연쇄살인범을 종료(?) 했을 때의 그 치밀하고 계산된 ‘찝찝함’이 봉준호 감독 작품, 살인의 추억에서 재현됐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억
한국영화 돌려 깎기
여기, 문학이 필요한 시간 김동리, 「역마」
두릅회에 막걸리 한 사발을 쭉 들이키고 난 성기는 옥화더러, “어머니 나 엿판 하나만 맞춰 주.” 어느덧 목련 새순이 올라오고 있는 3월이다. 벌써 2015년 짜란! 하고 3개월이 지났다. 늘 느
끼지만 시간은 야속하다. 이번 2015년 연초는 무척 정신이 없었다. 10월쯤 새로 오신 선생님
께서 12월까지 순탄히 근무 하시는 가 싶더니 연락두절, 무단결근을 하시더니 결국 그만 두셨 다. 결국 그 선생님의 파행(?)으로 나는 그 선생님의 수업까지 도 맡으며 격동의 한 달을 보냈
다. 방학기간이라 오전 중에도 학생들을 부를 수 있다는 부원장의 갑질에 나는 1시부터 10시 까지 정말 뻥이 아니라 한 시간의 저녁시간을 제외하고 끊임없이 수업을 했다. 국어수업은 끊
임없이 말을 해야 하기 때문에 난 성대결절이 더 심해졌고, 지금은 자랑스럽게 오전 중에는 중 저음의 약간 여장남자 같은 그런 목소리 톤을 갖게 되었다.
부원장도 야속하고 그 선생님도 야속한 연초를 보내고 이제 방학기간이 끝나, 정말 다행스럽
게 생각되는 3월이다. 왜지, 엄청난 레벨 업을 한 기분이다. 미리 액땜한 거라 생각하고 숨을 고르며 3월호 김동리의 「역마」를 소개해 보고자 한다.
김동리 작가의 「역마」는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근원적인 힘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제목
에서 의미하듯 ‘역마살’이라는 사주팔자, 한국인의 운명관이 인간의 삶의 질서를 어떻게 형성 하고 있는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작품의 인물들은 모두 무엇인가 그리움을 안고 살 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한이 되어 있는 사람들로 그 원인을 역마살에 두고 있다.
작품의 배경은 이 소설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공간적 배경이 되고 있는 ‘화개장
터’는 만남의 공간이며 열린 공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인연을 맺고 떠나가는 공간이 다. 필연적으로 정착할 수 없는 공간인 셈이다. 헤어짐의 한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장터에서 장 돌뱅이들의 삶을 역마살과 관련 맺고 있다. 이제 간략한 줄거리를 살펴보자.
화개장터에서 주막을 열고 있는 옥화는 성기라는 아들을 두고 있다. 옥화는 타고난 성기의 역마살을 없애
기 위해 쌍계사로 보내고 장날에만 장터에 내려와 책을 팔게 한다. 어느 날 체 장수 영감이 딸 계연을 데리 고 그들 주막을 찾아와 계연을 주막에 맡기고 지리산으로 들어간다. 성기와 계연은 서로 사랑하게 된다. 어
느 날 옥화는 계연의 왼쪽 귓바퀴의 조그만 사마귀를 발견하고 깜짝 놀란다. 그리고 성기와 계연의 관계를 살피게 된다. 체 장수가 찾아와 계연은 아버지를 따라 떠나가게 되고 성기는 갑작스런 이별에 충격을 받아
자리에 눕게 된다. 어느 봄날, 옥화는 조심스럽게 성기에게 마음에 담아 두었던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체 장수가 자기의 아버지가 틀림없으며 자신의 왼쪽 귓바퀴와 검정 사마귀를 보여 주면서 계연은 자신의 여 동생이 틀림없다는 얘기를 한다. 가만히 성기는 듣기만 한다. 그리고 어느 날 성기는 옥화에게 엿판 하나 를 맞춰 달라고 부탁하고 엿판을 들고 길을 떠난다. 옥화는 성기의 역마살을 받아들인다.
할머니는 남사당패와 단 한 번의 만남으로 성기의 어머니인 옥화를 낳는다. 어머니 옥화는 떠 돌이 중과 인연을 맺어 성기를 낳게 된다. 어쩌면 성기의 팔자는 운명적으로 떠돌아다닐 팔자 를 타고 난 듯싶다. 이런 성기의 필자를 어머니 옥화는 열심히 노력한다. 절에도 보내서 중이
라도 만들어 볼까. 그리고 체장수가 놓고 간 계연이라는 여자아이와 혼인이라도 하게 된다면 성기는 정착하게 되리라는 희망을 갖게 된다. 그러나 이 노력은 결국 허사가 된다. 체장수가 돌아와 계연을 데리고 가고 아무것도 모르는 계연은 끊임없이 “오빠, 나 가요. 응? 나, 가요”를
말하며 제발 나를 잡아달라는 눈빛을 보내지만 결국 아버지를 따라 떠나게 된다. 성기는 이별 의 아픔을 이겨내지 못하고 앓아눕고 이런 성기에게 옥화는 모든 사실을 말해준다. 결국 역마
살이라는 운명에 성기는 굴복한다. 그러나 슬프지 않다. 비극적이지 않다. 이 소설의 핵심은 마지막에 있다.
옥화는 잠깐 말을 그쳤다. 성기는 두 눈에 불을 켜듯이 형형한 광채를 띠고, 그 어머니의 얼굴을 쳐다보 고 있었다.
“차라리 몰랐으면 또 모르지만 한번 알고 나서야 인륜이 있으니 어쩌겠냐?”
그리고 부디 에미 야속타고나 생각지 말라고, 옥화는 아들의 뼈만 남은 손을 눈물로 씻었다. 옥화의 이 마지막 하직같이 하는 통정 이야기에 의외로 성기는 도로 힘을 얻은 모양이었다. 그 불타는 듯
한 형형한 누 눈으로 천장을 한참 바라보고 있던 성기는 무슨 결심이나 하듯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있었다. 아버지를 찾아 강원도 쪽으로 가 볼 생각도 없다. 집에서 장가들어 살림을 할 생각도 없다 하는 아들에게,
그러나 옥화는 이제 전과 같이 고지식한 미련을 두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 어쩔라냐? 너 졸대로 해라.” “………….”
성기는 아무런 말도 없이 도로 자리에 드러누워 버렸다. 그리고 나서 한 달포나 넘어 지난 뒤였다.
성기가 좋아하는 여러 가지 산나물이 화갯골에서 연달아 자꾸 내려오는 이른 여름의 어느 장날 아침이었
다. 두릅회에 막걸리 한 사발을 쭉 들이키고 난 성기는 옥화더러, “어머니, 나 엿판 하나만 맞춰 주.” 하였다.
“………….” 옥화는 갑자기 무엇으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이 성기의 얼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지도 다시 한 보름이나 지나, 뻐꾸기는 또다시 산울림처럼 건드러지게 울고, 늘어진 버들가지엔 햇
빛이 젖어 흐르는 아침이었다. 새벽녘에 잠깐 가는 비가 지나가고, 날은 다시 유달리 맑게 개인 화개 장터
삼거리 길 위에서, 성기는 그 어머니와 하직을 하고 있었다. 갈아입은 옥양목의 고의 적삼에, 명주 수건까 지 머리에 잘끈 동여매고 난 성기는 새하얀 나무 엿판을 걸빵해서 느직하게 엉덩이 즈음에다 걸었다. 윗
목판에는 새하얀 가락엿이 반 넘어 들어 있었고, 아랫목판에는 팔다 남은 이야기 책 몇 권과 간단한 방물 이 좀 들어 있었다.
그의 발 앞에는, 물도 함께 갈리어 길도 세 갈래로 나있었으나 화갯골 쪽엔 처음부터 등을 지고 있었고, 동
남으로 난 길은 하동, 서남으로 난 길이 구례, 작년 이맘때도 지나 그녀가 울음 섞인 하직을 남기고 체장수 영감과 함께 넘어간 산모퉁이 고갯길은 퍼붓는 햇빛 속에 지금도 환히 장터 위를 굽이 돌아 구례 쪽을 향했 으나, 성기는 한참 뒤 몸을 돌렸다. 그리하여 그의 발은 구례 쪽을 등지고 하동 쪽을 향해 천천히 옮겨졌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옮겨 놓을수록 그의 마음은 한결 가벼워져서, 멀리 버드나무 사이에서 그의 뒷모양 을 바라보고 서 있을 그의 어머니의 주막이 그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져 갈 무렵이 되어서는 육자배기 가 락으로 제법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가고 있는 것이다
성기는 자신의 역마살을 받아들이고 옥화 역시 포기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성기
앞에 놓여 져 있는 자연 풍경은 참 시원하다. 작가가 ‘버들가지엔 햇빛이 젖어 흐르는 아침, 새
벽녘에 잠깐 가는 비가 지나가고, 날은 다시 유달리 맑게 개인 화개 장터 삼거리 길 위’ 라고 묘 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것은 작가가 인간이 운명에게 패배한 것이 비극적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준다. 오히려 운명에 순응하는 것, 자연 질서에 순응하니 내면의 평화를 얻은 것이다. 자 신의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그리고 그 안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오히려 적극적인 삶의 태
도인 셈이다. 한을 수용함으로써 극복하는 성기의 모습에서 작가의 세계관 또한 엿볼 수 있다. 성기 앞에는 세 갈래의 길이 놓여 져 있다. 중이 되려 했던 쌍계사의 길, 계연이 떠난 길, 새로
운 하동길. 성기는 콧노래까지 부르며 새로운 하동길로 발걸음을 옯긴다. 성기는 앞으로도 정
처 없이 떠돌아다닐 것이다. 역마살의 운명대로 말이다. 그러나 콧노래에서 알 수 있듯이 성기 는 지금 매우 편안한 상태이다.
여기에서 자연법칙과 인간의 생명이 하나의 원리에서 조화
되는 세계를 그리는 김동리 문학의 중요한 한 정신을 엿볼 수 있다. 팔자소관에 순응함으로써 도리어 죽음에서 구제된다는, 동양적 운명론을 실천하고 있는 작품이다.
삶의 형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문학에서 제시되는 그 모습은 운명과 자아가 대결하고 거기
에서 패배하거나 극복하여 성취를 하는 모습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이 소설은 조금 독특하다. 어떤 독자는 성기의 태도에서 삶의 적극성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러나 안 되는 것을 억지로 붙 잡고 해보려는 노력은 사실 현실세계에서 더 불가능 한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실제로 참 많은 것을 포기하고 살지 않은가?
체념이라는 단어보다는 순은, 수용이라고 여기는 것도 참 좋을 것 같다. 마음이 아프고 다치는
것보다는 사실 아무렇지 않아. 꼭 아픈 것처럼 보지마. 사실 오히려 담담해 이렇게 말이다. 이 것도 적극적인 하나의 삶의 태도이다. 그래도 여전히 우리 앞에는 일생에 지우지 못할 추억과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이지만 여전히 설레는 봄이 있으니 말이다.
다음시간에는 신라시대 향가 작품을 몇 개 읽어 보겠다. 지각하면 보강이다.
글. 고수진
작곡가 b의 노트 <작곡가 되어보기 - part 2> 글. Composer B
1악장. 남들이 수업들을 때 우리는 곡을 써야해 앞선 호에서는 음악대학 작곡과를 지망하는 입시생들이 어떠한 준비과정을 거쳐 음대에 들어 가게 되는지를 설명했었다. 이번 글에서는 힘들게 입학한 그들이 어떤 식으로 학교생활을 하게 되는지에 대해 적어보도록 하겠다. 작곡과의 수업들은 외형적으로는 다른 단과대의 수업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학교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대개 한 학년에 13~30명1) 정도이며, 수업 당 다섯 명 안팎의 복학생 들이 수줍게 끼어들어오거나 뒷자리에서 ‘꼰대질’을 시전하며 수업을 듣곤 한다. 음대 신입생 기수들의 시간표는 대부분 조교가 일괄적으로 편성해준다. 음대는 학부 특성상 1학 년들이 동원되어야 할 행사가 많고 선배들 어깨 너머로 익혀야 할 것들이 많은데, 개인이 각자 다른 시간표를 가지고 움직이면, 그 인원들이 제대로 모이기 힘들 뿐만 아니라 동기들 간의 유 대감이 제대로 형성되기 힘들다고 보기 때문이다. 작곡과의 커리큘럼은 대부분 시창2), 청음, 대위법, 화성법, 악기론3) 합창, 음악사, 작품 분석, 연 주, 과제곡 제출, 전공실기 등으로 구성되는데, 이 중에서 ‘연주’와 ‘과제곡 제출’ 그리고 ‘전공실 기’는 1학년부터 4학년까지 모든 학생들이 졸업할 때 까지 반드시 들어야 하는 수업이며, 음대생 과 다른 계열 학부생들의 학교생활이 다르게 보이는 가장 큰 부분이기도 하다. ‘연주’ 수업은 통칭 ‘위클리’라고 부르며 한 학기 동안 5~60여 명의 학생들이 한 번씩 돌아가면 서 자신이 쓴 작품을 발표하는 자리이다. 16주 동안 수업을 수강하는 모든 학생들이 작품을 발 표할 수 있도록 한 조에 5~7명씩 묶어서 진행되며, 연주는 대개 기악과, 성악과 학생들에게 맡 긴다. 수업이 끝나면 교수의 간단한 코멘트와 질문, 비평이 뒤따르는데 이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 이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해서 곤욕을 치르기도 한다. ‘과제곡 제출’은 연주 수업을 위해 제출하는 곡과는 별개로 한 학기에 두 번(중간/기말고사 때) 씩 곡을 써서 제출해야 하는 과목이다. 한 학기당 두 곡인 경우에는 자유곡(편성이나 형식에 상 관없이 쓰고 싶은 곡을 쓰면 된다)과 과제곡(편성, 형식이 정해져있다)을 제출하는 경우가 많은 데, 작곡과 학생들의 정체성을 가장 잘 나타내 주는 과목이라고 할 수 있다. ‘전공실기’는 쉽게 말하자면 과제곡을 제출하기 위해 1:1로 레슨을 받는 수업이다. 정해진 시간에 교수의 연구실로 가서 한 주 동안 썼던 작품을 가져가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지도 받고 토론(이 라고는 하지만... 주입식 교육의 영향으로 인해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 제대로 디펜스를 하는 학 생은 극히 드물다)하는 수업을 의미한다. 작곡과뿐만 아니라 모든 음대 학생들에게 가장 두려운 시간이지만 또한 가장 크게 성장할 수 있도록 밑거름이 되어주는 과목이기도 하다.
1) 학생 수가 많은 과의 학생들(경영학과라든가...)은 이 얘기를 들으면 ‘와, 가족적인 분위기네! 서로 다 얼굴도 알고 친하게 지낼 수 있고... 부럽다!’ 와 같은 반응을 보이곤 하는데... 그래, 가족 같은 분위기 맞긴 하다.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족 같은 분위기’라는 것이 대개 어떻게 작용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길 바란다.
2악장. 행사, 행사, 또 행사 전공실기 레슨을 받는다고 해서 매 주 차근차근 제대로 분량을 채워 곡을 써가는 학생들은 그 렇게 많지 않다. 일주일 동안 한 두 마디 끄적거린 다음에 교수님께 애교를 부려 무마시킨 다음, 제출 3일 전부터 학교에서 밤샘으로 곡을 써 퀭한 눈으로 제출하고 집에 가서 자는 게 작곡과 학생들의 일상이기 때문이다. 사실 제대로 된 곡을 쓰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게, 음대 는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한번 꼴로 행사들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교수의 연주나 발표회에 동원 되어 객석을 채우는 건 놀라운 일도 아니고, 학교의 자잘한 연주회들을 위한 연습과 무대 세팅( 주로 1학년들이 한다), 과제로 제출해야 하는 감상문을 작성하기 위해 억지로 보러가는 음악회, 음대생들의 재능을 필요로 하는 전교 차원의 행사 준비, 그리고 여전히 남아있는 선배들의 쓸 데 없는 군기 잡기에 끌려 다니다 보면 한 학기는 물론이고 한 해가 우습게 지나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 역시 하루에 연주회 두 개를 연달아 보러 다닌 적도 있고,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연주 회(보통 ‘필참’이라고들 한다)가 매일 잡히는 바람에 오히려 개인적으로 보고 싶었던 연주회의 예매표를 욕만 잔뜩 먹고 취소해야 하는 경우가 생긴 적도 있었다. 만약 새파란 1학년이 학교에 서 ‘필참’으로 공지한 연주회에 가지 않고 개인적으로 다른 연주회-설령 학사 일정이 나오기 전 에 예매를 했다 하더라도-에 가면 연계 과목에서 감점되는 경우는 물론이고, 다음날 조교나 교 수에게 ‘찍혀’서 그 이후의 학교생활이 조금씩 피곤해지는 건 시간문제기 때문이다. 특히 몇몇 악질 교수들이 자신들의 프로필에 실적을 채워 넣기 위해 날림으로 준비한 연주회에 학생들을 불러 강제로 티켓을 사게끔 만드는 경우도 있는 바람에, 학생들의 입장이 난처해지는 경우가 많다. 음악회를 억지로 가야하는 것도 힘든데, 기껏 참석한 연주회에서 배울 것 마저 없 는 현실을 보고서는 극심한 회의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라도 해야 좀 더 많은 경험을 쌓을 수 있다’며 좋게 생각하는 쪽도 있지만... 글쎄, 그렇게 타율적으로 끌고(려)간 곳에서 학생들이 얼마나 많은 것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 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가장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할 예술인을 양성하는 곳에서 ‘ 통제’와 같은 연주회나 행사동원이 어떠한 이득을 가져다주는지도 의문이고.
3악장. 뭐든 열심히 하는 애들이 잘 살더라 하지만 이런 환경에서도 작곡 공부에 매진하는 학생들은 조금 다른 생활을 한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방학 때의 시간을 이용하는데, 개강을 하게 되면 앞서 말한 행사나 학교 공 부에 치여서 제대로 된 레슨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방학 때 학교에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는 ‘귀찮은’ 곡들은 미리 써 놓는다는 뜻이다. 부지런한 그들은 개강을 하자마자 4~5주 안에 의무로 제출해야 하는 곡들에 대한 레슨을 먼저 끝내고, 나머지 레슨 시간은 개인적으로 교수와 상의하 여 콩쿠르나 공모전에 제출할 작품을 준비하게 된다.
2) 악보에 적힌 선율을 정확한 음정으로 노래하는 연습. 설명만 들으면 어려울 게 없어 보이지만, 그 ‘선율’이 대중가요처럼 따라 부르기 쉬운 선율들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다. 3) 오케스트라에서 쓰이는 악기들을 중심으로 그들의 주법과 음역, 주의해야 할 점 등에 대해서 배운다.
사실 큰 뜻을 품고 들어온 신입생 대부분이 ‘작곡과에 들어온 이상 콩쿠르에서 상도 한번 받아 봐야지’라고 생각은 하지만, 제도권 콩쿠르에서 요구하는-대개 명문대의 나이 많은 교수들이 심 사위원이 된-스타일의 ‘현대음악’을 접하고 나서는 ‘대체 이걸 음악이라고 부를 수 있단 말인가’ 라고 탄식하며 작곡 공부에 흥미를 잃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인이 작곡 공부에 대한 열정이 있다면, 그 고비를 넘어설 때 또 다른 문이 보이기 시 작한다. 학교를 다니면서 적어도 한 두 번의 작곡 콩쿠르에 입상하면 지도교수나 주변 강사들의 기대가 커지기 마련이고 그들의 시야에 들어가게 된다. 그 이후로는 선생님들과 자연스럽게 이 런 저런 공부나 연주회를 함께 하며 본격적인 직업 음악가로의 길에 들어서는 기회를 부여받게 된다. 그 중에서 실력이 좋은 학생들은 국제적인 규모의 콩쿠르에 입상을 해서 조금 더 넓은 반 경에서 활동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코스를 밟는 작곡과 졸업생들은 약 20명 중 3~4명 정도로 지극히 소수이다. 다른 학생들은 교육대학원에 진학해서 음악교사가 되거나 학원을 운영하기도 하고 입시생들을 가르치는 전문 레스너가 되기도 하며, 몇몇은 음악과 연관성 있는 직종(공연기획, 음반사 등)에 취직해서 직장인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지금도 이 나라에는 시장규모에 비해 너무나도 많은 작곡과 학생들이 졸업을 준비하고 있으며, 그들은 앞으로 음악을 계속 하면서 살 수도,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나 역시 이미 학교를 졸업한 입장으로써 ‘요즘 작곡과 애들은 곡 쓸 생각을 안 해’ 같은 말을 하 고 싶은 마음은 없다. 오히려 그들이 작곡이라는 학문에 흥미를 잃었으면서도, 작곡과 교수니 저 작권 재벌 작곡가니 하는 허황된 꿈을 위해 억지로 그것을 붙들고 있지는 말았으면 하는 마음뿐 이다. 작곡이란 분야가 참 매력적인 영역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그에 도달하기 위해 지 불해야하는 정신적 스트레스는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자신도 잘 모르는 확신 없는 무언가를 좇고 막연한 허상들을 위해서 작곡을 공부하고 싶다면, 나는 우선 말리고 싶다. 하지만 본인의 꿈이 작곡공부를 통해서 온전히 실현될 수 있다고 굳게 믿거나, 가벼운 마음으로 스트레스 받지 않고 즐길 자신이 있는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조언을 해주거나 도움을 주고 싶다. 긴 시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을 웃고 울리게 하는 그 음표들을 창조해온 사람들은, 모두 그런 갈등의 기로에서 확실하게 준비를 하고 또한 즐길 마음가짐을 갖춘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 작곡공부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심사숙고하고 결정하길 바란다. 그리고, 그 결정이 무엇이든 나는 기꺼이 당신에게 박수를 보낼 것이다.
인디 잡지에 관한 혼자만의 세미나 - exxx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진행중인 행사의 포스터 잡지목록에 월간이리가 적혀 있지 않은 것에 앙심을 품고, 세미나에 가지 않았다. (밥준다기에 가려고 했었는데..)소인배의 마음으로 세미나에서 다뤘을 법한 것들에 대한 내용으로 스스로 질문 답변 기획을 시작한다. 읽어볼만 하길 바랄 뿐이다.
아니! 이렇게나 많은데!! 왜 !!
1. 독립출판의 부흥(?)과 나의 경우 왜 독립출판이 시작되었는지, 유행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당시의 원고나 이미지, 표지를 볼 수 있다. 월간 이리의
많은 분석이 있겠지만 나는 도구의 힘이 가장 크다고
탄생이야기는 언젠가를 위해 아낀다.
생각한다. PC통신 시절에도 사람들은 게시판에 열심히 글을 썼다. 지금은 지루해서 쳐다보지도 않는 단색의 녹색화면에
2. 도서관과 인디 잡지
열심히 말이다. 일단 사람은 누가 볼 여지가 있으면 쓰고 싶어 하는 것 같다. 그게 표현욕구인지 배설욕구인지는 모르지만
월간이리가 2년차쯤 접어들 무렵 도서관에 월간이리를
PC통신 이전, 도서관의 빌린 책이나 화장실의 벽에도
넣기 위해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시청에 있는 서울
사람들은 열심히 뭔가를 적어놓았다. 그냥 그게 연계 확장 된
도서관 정도면 나쁘지 않을 것 같았지만 여러가지 이유로
것이라고 생각하면 편리한것 같다. 하나의 책이라는 형태를
좌절되었다. 컬러인쇄의 문제 ISBN 등록 문제 등등 게을러서
만드는 것은 컴퓨터를 이용하기 전에는 등사도 하고 조판도
그리고 약간의 현실과 충돌이 있었다.
했었다. 그 이전에는 손으로 쓴 정약용 형도 있지 않은가. 승정원 일기도 있고.. 아무튼 책스러운 뭔가를 만들어 내려면
인디 잡지를 도서관 간행물실에서 열람하는 것은 아마 쉽지
무척 고생스러워야 했다. 비용이 많이 들거나. 하지만 지금은
않을 것이다. 단발성 전시 형태라면 가능하겠지만 본격적으로
잡지나 책의 형태를 구성하는 글자, 그림, 사진, 구성편의, 외형,
장서를 한다면 책의 외형 규격이나 안정적인 발행일자,
종이를 조합하기가 무척 편리해졌다. 그래서 확대되고 있고
독자층의 반발? 같은 것들도 고려해야 한다. (도서관애
앞으로 어느 수준까지는 더 늘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
맥심이 없는 것과 같은 이치) 만약 허용이 쉬워지면 명예를 생각해서 들이밀려는 사람은 많아지고 관리는 안될 확률이
나는 어떻게 만들기 시작했냐면.. 지하 이리카페 시절에 왠
높다. 도서관에서는 아얘 관심을 갖지 않는 것이 이득일 수도
시 낭송 행사가 있었는데, 그 행사가 내가 보기에는 너무
있다. 기존의 형태에 새로운 무언가를 들이미는 것은 쉽지
시원찮아서 ‘아 이러느니 내가 잡지를 만드는게 낫겠다!’ 라는
않다. 비슷한 블럭을 만들어 끼우는 것이 가장 편리하다.
마음으로 만들었다. 얕잡아본 것이다. (그게 인생이 꼬인
그러므로 도서관에 넣을 기획을 한다면 여러가지 제약을
계기라면 계기인가.) 당시 만들기로 한 책의 제목은 <월간
감수하고 필요이상의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그것을 다
고민과 잡담> 다들 폼을 잡는 시기여서 책 이름에 월간이라는
해결하고도 인디잡지 일지는 잘 모르겠다. 가능은 하겠지만
촌스러운 단어를 쓰는 책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굳이 <월간
쉽지는 않을 것이다.
고민과 잡담>이라고 이름을 확정했다. 지금은 워낙 ‘월간’ 이란 단어가 많아서 원조의 원조, 월간의 월간이라고 적어야
장서이외에도 공공기관이나 단체의 지원을 받아 인디
하나 싶기도 하다 물론 월간 중앙이라던가 월간 조선이 훨씬
잡지를 만드는 것은 그 내용에 창작 갈등을 빚어올 수 있다.
유명하겠지만.. 쩝.
자기검열이 있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자기 검열이라는게 우습다고 이야기 할지도 모르겠지만, 세금으로 뭔가를
이 책은 1년 반 정도 사비를 들여서 만들었다. (삽질에는
만든다는 것은 내돈으로 만드는 것보다 어려움이 있다.
유통기한이 없는게 분명하다.) 무가지 100부. 온라인 블로그
예를 들면 월간이리가 누군가의 마음에 몹시 안드는 경우
형태의 공개. 책의 형태는 오는 원고 순서 그대로 컨트롤
세금을 왜 그런 곳에 썼는지 항의를 받을 수도 있다. 이것은
C 컨트롤 V 형태. 정말로 필진에게 자유를 주고 싶었다.
단순히 발간인과 잡지 안의 문제가 아니라 지원을 결정한
사람들에게 자유를 주면 무척 열심히 써 줄 것이라고
공무원 혹은 중간 사람들도 복잡하게 얽힌 문제다. 뭐 도와준
생각했지만, 명예가 없어서 인지 고료가 없어서인지 모르게
사람들의 어려움이야 무시하고 나는 나만의 예술을 하겠다면
원고의 완성도가 좋지 않았다. 그리고 나도 그렇게 성의있는
모르겠지만 누군가의 호의를 그렇게 되갚아 주는 것에 불편한
뭔가를 쓰지 않았다. 지금도 <월간 고민과 잡담> 을 검색하면
감정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자기검열로 이어질 수 있다.
4. 가격과 페이퍼 혹, 국가의 지원으로 만드는 경우 공돈이라는 인식보다 엄마
다른 책의 가격은 뭐라고 하지 않겠다. 각자의 값어치가 있고
아빠가 소중하게 벌어서 낸 세금이라는 인식을 꼭 가졌으면
제작자와 시장이 결정하는 문제일 것이다. 다만 나는 가끔
좋겠다. 그리고 그것은 언젠가 떠나갈 수 있다. 아무리 책이
월간이리의 가격은 얼마 정도일까? 하는 생각을 하곤한다.
훌륭해도 누군가 굶고 있는데 책을 계속 만들 수 없는 것처럼 한정된 세금의 분배의 문제로 들어가면 이야기는 무척 복잡해
인디잡지와 가격에서 <페이퍼>는 꽤 잘 자리잡은 경우가
진다. 자기검열과 상관없이 내용 자체에 불만이나 불편함을
아닐까. 무가지로 시작해서 5000원이라는 높지 않은 가격대로
갖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다. 아무리 내가 편한하고 재미있고
안착했다. 엄청난 노력이 들어간 결과라고 생각한다. 광고를
밝고 쾌활한 내용이라고 해도 누군가 보기에는 기분나쁘고
늘일 때 가격을 올릴 때 갈등과 저항을 잘 넘어왔다. 돌아보면
꺼림찍하며 이게 왜 여기에 있어야 하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포지션을 굉장히 잘 잡은 것 같다.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문화
없는 이야기 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해오지 않는다는
(패션) 지 같은 맛이 있는 잡지라고 생각한다. 방향이 좋았고
것은 일정부분 이유가 있다.
안정적으로 잘 구축해 나갔다. 페이퍼를 생각하면서 두번째 성공을 기대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기존의
결국, ’자비로 만들고 손해를 보거나 자비로 만들어서 본전을
잡지사가 페이퍼 같은 잡지를 만들겠다고 생각하면 가능성이
하거나 자비로 만든 다음 이익을 내거나.’ 이다. 그리고 이
없지는 않겠지만 인디잡지에서 시작해서 페이퍼의 위치를
문제는 지속성과 연관이 있다.
빼았겠다 라고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그 과정은 어떤식으로든 곱씹어보거나 짚어볼 부분들이
3. 새로운 것
있는 것 같다. 페이퍼가 파고들었던 욕구의 여백이 언젠가는 드러나거나, 태어날 것이다.
새로운 주제를 찾고 사람들이 보았을 때 흥미로운 책이 나오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나도 가끔 그런 책들을 발견하면 무척
5. 남은 문제
즐겁다. 갖가지 아이디어가 발현하고 축적되는 것이야말로 씬이 확대되는 것이다. 하지만 낱권의 책이 아니라면 가능한
나도 글자만 그득한 책은 잘 보지 않지만 인디 잡지나 책이
오래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월간이리를 오래 만들어와서
외형이 아니라 내용으로 일가를 이루는 경우가 생겼으면 한다.
자부심을 갖고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책이 만들어지고
이미지나 아이디어가 아니라 가슴을 치는 내용으로 말이다.
아이디어와 새로움의 벽에 부딪히고 수정되는 과정을
인디잡지나 책이 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성공의 기록은 없기
거치면서 필자와 독자 모두에게 누적되는 상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기원해 보는 것이다. 어떤 영웅의 탄생을기다린다.
때문이다. 이런 누적이 정말로 씬을 풍부하게 만드는 것이
잡지가 아니라 책이라도 그런일이 일어났으면 좋겠다. 혼자
아닌가 한다. 새로운 것도 좋지만 낱권이 아니라면 적어도
만들어서 책을 찍어내고 수백권을 팔고 책의 라이센스를
3-4회 정도는 각오하고 시작하는 것이다. 힘은 들겠지만
큰 출판사가 구입해 수십 수백쇄를 찍는 일이 일어나길
쓸데없는 시간은 아닐것이라고 생각한다. 계간이라면 1
바란다. 신춘문예와 전혀 상관없이 혼자 쓴 엄청난 소설이
년정도 인데 이 정도 하면, 만드는 사람이나 독자나 충분히
등장한다던가, 시집이 나와서 기록적인 (기억될만한) 판매가
성장할 수 있는 기간이다. 기왕 씬에 뛰어들었으면 씬의
이루어진다면 참 좋겠다. 덜 예쁘고 덜 아기자기한 책이
외연과 깊이를 확장하는데 일조 하고 떠나는 건 어떻겠느냐
필자의 힘으로 전진하는 것을 보고 싶다.
하는 이야기다. 우습게도 나는 그런 각오는 하지 않고 살지만 말이다. (죄송) 어쩌면 어떤 사람들은 한 두권에서 멈추는 책
이쯤 쓰니 더 쓸 말이 없는 것 같다.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때문에 인디잡지 전체를 겨우 장난인것 처럼 우습게 볼 지도
도망치듯 물러선다. 이것이 그간 버틴 이유라면 이유일까
모르니 말이다. 애써 고생했는데 얕잡히는 것은 억울하지
싶다. 허풍선이는 이렇게 산다.
않은가.
끝.
두근두근의 불모지 : 뭄바이 공항 사건 2015.02.04 | 전문 보기 : http://idology.kr/3431
2월 2일, 한 인도 팬이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글에 었다고 밝혔다. (이러한 내용은 사건이 처음 알려진 따르면 1일 저녁 9시 30분경 약 15명의 팬들이 뭄바 페이스북 글에도 포함돼 있지 않다.) 다만, 가지고 온 이 공항을 찾았다. KBS 〈두근두근 인도〉 출연진들이 플래카드와 포스터, CD 등을 모두 집어넣고, 출연진 도착한다는 정보가 있었다. 그런데 KBS PD가 찾아와 을 전혀 못 알아보는 척하길 요구했다는 것이다. A씨 팬 여부를 확인한 뒤, 팬이 아닌 척하기를 요구했다 에 따르면 팬들은 출연진이 지나간 뒤 허탈함과 안타 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칫 방송을 취소할 수도 있 까움에 울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페이스북 글에서도 다는 발언도 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고생보다는, 황량한 게이트 앞에 선 출연진
의 허전한 얼굴이 마음 아팠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KBS 측은 촬영이 끝난 뒤 팬들을 따로 만나 사인도 있다. 어디를 가나 팬들의 마음이란 비슷한 듯하다. 해주며 인사를 나누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현장에 있었던 또 다른 팬인 대학생 A씨의 이야기는 KBS 측은 뭄바이 공항 촬영 허가를 받아내기가 매우 달랐다. 출연진을 따라간 팬은 없었으며 그들이 차에 힘들었다고 밝히며, 소란이 일어나면 촬영 허가가 취 탑승해 출발하는 것까지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다는 소될 것을 염려해 팬들에게 이 같은 요구를 했다고 것이다. 출연진이 뭄바이 시내나 고속도로 상에서 팬 해명했다. 일견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인도에서 20 들에게 사인을 해준 일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년 이상 거주한 항공사 직원 출신 한 소식통에 따르 들이 공항에서 기다리던 팬들이 아니라는 것만은 분 면, 뭄바이 공항은 인천이나 부산과는 전혀 달라서, 매우 작고 혼잡한 곳이라고 한다. 더구나 2008년 뭄 명해 보인다. 바이 테러 사건 이후 공항의 보안이 극도로 강화돼 A씨는, 미리 뭄바이에 와 있던 PD가 비행기 도착 약 공항 측도 매우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경향이 있 1시간 전에 통역을 대동하고 공항 게이트 앞으로 찾 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양자 간에 다소의 오해가 있 아왔으며, 많은 국내 언론이 보도한 것처럼 가방을 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가능하다. A씨에 의하면 영어 뒤지거나 휴대폰, 카메라의 메모리를 확인한 일은 없 가 서툴렀다는 PD는, 방송을 취소하겠다고 말했다고
알려졌지만, 촬영 허가가 취소돼 방송을 찍을 수 없 까. 그러나 더 낯뜨거운 것은 인도에 대한 시각이다. 게 된다는 말이 와전되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인도는 IT 산업 세계 2위, 구매력 평가 기준 GDP 세 그리고, 이름을 밝히거나 하지 않은 PD의 자세가 그 계 3위인 나라이다. 이런 지적이 잇따르자 KBS는 한 런 고압적인 인상을 더 강화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제작진의 우려는 얼마나 현실적인 것이었을 까. 소식통은 인도의 한 국민 배우가 일요일마다 자 신의 집 앞에 나와 팬들과 인사를 나누는 영상을 소
류가 덜 알려진 곳이란 표현이었다고 해명했다. 케이 팝 팬이 없는 곳은 “미디어의 불모지”라는 정도가, 케 이팝의 자부심을 한 꺼풀 벗겨보면 벌써 드러나는 맨 얼굴이다.
개했다. 모든 팬이 다 차분하고 이성적이라 생각할 설령 인도가 정말 “미디어 불모지”라고 한들, 그곳에 순 없지만, 팬 문화의 차이는 엿볼 수 있다. 국민적 서 케이팝을 ‘전파’하며 ‘개척’하는 과정을 예능으로 인기를 누리는 연예인이 팬들을 매주 사실상 집 앞으 담는다는 설정은 괜찮을까. 실제 방송을 보기 전에 로 초대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소식통은 인도 단정하긴 어렵지만, 타자화와 제국주의적 시각(원한 사회가 소리 치며 달려드는 팬 문화를 별로 경험해 다면 ‘국뽕’이라 읽어도 좋다)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본 적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인도인 팬은 사전에 있을까. 그것이 아니었다면, 제작진의 다소의 과잉 “Fluttering India Fan Project”라는 페이스북 페이지 대응이 이렇게 큰 오해로 이어졌을까. ‘언어는 달라 를 통해 이미 여러 차례 주의가 오고 간 바 있다고 밝 도 전해지는’ 것은 케이팝의 매력만이 아닌 것이다. 혔다. 촬영을 방해하면 안 되니 현장에 찾아가거나 사진을 찍고 선물을 보내는 일을 삼가야 한다는 내용 이 지속적으로 포스팅 되었고, 자신도 아쉽지만 출연 진이 인도에서 좋은 추억을 만들기 원했기에 그 내용 을 따랐다는 것이다. 이 페이스북 페이지는 현재 폐
쇄된 상태이다.
“KBS가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인도가 무척 가 난한 나라라고 보여주는 것? 우리 팬들에게 그보 다 더 슬픈 건 우리가 좋아하는 아이돌들이 가까 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그들과 소통하거나 우리의 애정을 보여줄 수 없다는 것이다.” – 인도 팬 P
더구나 뭄바이 공항은 게이트를 나서면 바로 공항 밖
으로 나가는 구조로 돼 있다고 한다. 펜스도 쳐져 있 이번 취재로 접한 인도 팬들은 이 방송이 인도에 대 으며 게이트와 펜스의 거리는 인천 공항보다 훨씬 멀 해 어떤 편견을 보여줄지 오래도록 걱정해 왔다고 입 다는 것이다. 앞서 살펴본 인도 팬 문화의 일면과 이 을 모은다. ‘가난하지만 행복한 나라’ 류의 오리엔탈 러한 환경을 고려하면, 15명의 팬이 삼엄한 보안이 리즘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은 누구보다 그들이 잘 이뤄지는 공항의 야외에서 얼만큼의 ‘소동’을 피울 알고 있을 터이다. 그러나 인도 팬들은 이 방송에 기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게 대를 걸었다. ‘케이팝 팬 3백 명’ 설은 터무니 없으며, 이트를 빠져 나온 뒤에는 이미 건물 밖인 뭄바이 공 그런 잘못된 통계로 인해 인도에 케이팝 공연이 유치 항에서, 공항 측의 촬영 허가가 취소된다고 해서 잃 되지 않아 늘 아쉬웠다는 것이다. 〈두근두근 인도〉의 을 것은 얼마나 되었을까.
꺼림직한 제작 취지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만나기 어
려운 케이팝 아이돌들이 자신들의 나라에 오는 것만 팬들에게 ‘조용히 할 것’이 아닌, ‘모르는 척할 것’을 으로 기뻤다고 한다. 공항에서의 일 역시, 팬의 존재 요구한 이유는 그곳에 있는지 모른다. “미디어의 불 를 알리지 못한 아쉬움이 가장 컸다는 것이다. 취재 모지 인도에서 펼쳐지는 신세계 개척기”라는 〈두근 내용을 기사화해도 되겠냐는 질문에 A씨는, 아이돌
두근 인도〉의 제작 취지를 감안하면, 아무도 몰라보 들에게 화살이 가지 않도록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는 편이 ‘그림이 나오기’ 때문이다. 즉 방송의 재미를 익명을 요구한 것은 그 다음 일이었다. 위해 현실을 왜곡하려 했고, 이를 위해 팬들에게 고 압적 태도로 요구를 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두근두근 인도〉는 처음 제작발표 단계부터 많은 논 “Fluttering India Fan Project” 페이스북 페이지 운영진은 란을 일으켰다. 외교부에 의해 여행 자제국으로 지정 된 인도가 위험하지 않냐는 것이었다. “미디어 불모 지”를 찾아 대도시 밖으로 나간다면 더 위험할 것이
이후 루머와 오보에 관해 정정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이와 관련한 후속 기사는 아이돌로지에서 온라인으로 확인할 수 있다.
라는 우려는, 공항에서의 상황을 보면 잊어버려도 될 http://idology.kr/3458
1st Listen : 2015년 1월 하순 전문 보기 : http://idology.kr/3483
인피니트H - Fly Again 울림 엔터테인먼트 2015년 1월 26일
인피니트H - “예뻐” http://goo.gl/L5i2tP
오요 : 브랜뉴뮤직과 손을 잡고 만든 앨범답게 프로듀서진의 면면이 화려하다. 한국에서 힙합이 갖추어야 할 미덕으로 꼽히는 모든 요소 를 전부 집어넣었다. 트랩을 위시한 강렬한 인트로(심지어 '월드 디제 이 챔피언'이 참여, 디제잉의 진정성까지 획득했다)에 이어 여성 보컬, 자전적 가사를 통한 응원가(솔직히 추억의 소울컴퍼니가 떠오르는 것 은 어쩔 수 없다), 여러 명이 돌아가며 소위 '쎈 랩'을 쏟아내고 ('바빠 서 Sorry'), 적당히 R&B를 섞은 감성 트랙('지킬 앤 하이드')까지 듣고 나면 '그래, 이게 '국힙' 맛이었지......'하며 입맛을 다시게 된다. 오히려 흥미로운 건 타이틀곡 '예뻐'와 '어디 안 가'로 이어지는 부분이다. '예 뻐' 같은 경우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말랑말랑한 힙합이지만 베이스 의 질감과 후렴 멜로디가 뜻밖에 세련됐다. '어디 안 가'의 사운드는 힙합보다 팝에 더 가까운데 시원하게 뻗어 나가는 멜로디와 세심하게 선택한 전자음이 랩과 잘 맞아떨어져 아이돌 힙합의 최선을 보여준다. 유제상 : 다른 건 모르겠고 타이틀곡 '예뻐'가 너무 좋다. 아이돌에게 기대할 수 있는 아기자기함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곡이다. 바로 다음 곡인 '어디 안 가'도 그렇고 수록곡 전체가 그야말로 웰메이드. 그러면 서도 만드는 쪽 혹은 아티스트의 '버릇'이 드러나지 않은 '범용의 음 반'이라는 점이 놀랍다. 하물며 이전 회차 종현의 음반도 '어쨌든 이건 SM産이야'라는 고집이 미약하나마 있었는데. 유닛 활동을 위한 EP조 차 이렇게 잘 만들어내다니 훌륭하다 인피니트, 훌륭하다.
인피니트H - Fly Again (2015) 그대 아이돌의 자랑이듯, 아이돌 그대의 자랑이어라.
2015.02.07 by 별민
아주 거시적인 시점으로 보자면 인피니트H도 결국 몇 년 간 이어져 온 최근의 힙합 시류에 편승한 것으 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힙합 음악에의 진정성이라든가, 정통성이라든가 하는 것들을 떠나서, 이들 의 음악은 그 힙합과 아이돌, 혹은 ‘힙합 아이돌’의 트렌드 안에서 상당히 이색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기 성 힙합 아이돌들이 그들의 작품을 만들 때 가장 신경 써온 점은 아무래도 힙합 씬의 아이돌에 대한 주목 이었고, 지금도 많은 힙합 아이돌이 대중보다는 ‘힙합’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개중 에는 이미 충분히 인정받은 아이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아이돌도 있는데, 인피니트H는 그런 인정과 부정 여부를 떠나, 다른 힙합 아이돌과 다른 지향점을 갖고 있다. 이들의 음악은 철저히 ‘아이돌 팬덤’을 향해 있고, 이들이 인정받고자 하는 쪽은 ‘힙합’이 아니라 ‘아이돌’에 가까워 보인다. 이들과 함께 한 힙합 프로 듀서들이 하나같이 ‘이 음악(= 힙합)을 아이돌 팬들이 좋아할까’에 대해 고민했다고 밝혔던 것을 생각해 봐도, 이들의 지향점이 다른 힙합 아이돌과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번 앨범에는 인피니트 내 솔로/유닛 앨범 최초로 멤버 호야가 작곡에 참여하고 있고, 이전 앨범에 대한 지적을 수용한 듯 두 멤버가 전곡의 가사를 썼으며, 심지어 이들이 만든 노래가 타이틀곡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이런 ‘아티스트적’인 면을 그다지 과시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이들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음악이나 퍼포먼스 자체의 경쾌함 등이다. 이들이 지금 스스로가 아이돌인 것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고, 그들이 만족하고 있는 그 아이돌로서의 정체성을 굳이 부정해가면서까지 아티스트가 될 욕심은 없 기 때문으로도 읽혀진다. 이것은 억지로 지켜가는 미덕이라기보단 이들의 천성에 가까워 보여 무척 자연 스럽게 다가온다.
[…] 전문 보기 : http://idology.kr/3497
1st Listen : 2015년 2월 초순 전문 보기 : http://idology.kr/3569
포미닛 - Crazy 큐브 엔터테인먼트 2015년 2월 9일
김윤하 : 타이틀곡 '미쳐'는 캐릭터를 살린 케이팝이 흔히 그렇듯 음 악만 들었을 때와 뮤직비디오나 무대와 함께 놓고 이야기할 때가 사 뭇 다른 곡이다. 트랩 비트를 메인에 둔 흔한 걸스 힙합이라는 다소 밋밋한 첫인상은 '빨개요' 활동 이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현아와 급 부상한 전지윤의 존재감, 특유의 '뽕기'를 살려주는 허가윤의 보컬을 만나며 속된 말로 '케미'가 터진다. 걸그룹의 자켓과 뮤직비디오에서 색(Color)과 얼굴마저 빼버린 이 자신감은 '이래라저래라 꼰대질하지 말라'며 허리에 손을 올리고 상체를 낮춰 위협하다 문득 표정을 바꾸 며 '날 내버려둬요' 애원하는 '1절만 하시죠'나 시원하고 세련된 팝 스 타일 코러스가 돋보이는 'Show me'까지 무난히 이어진다. 과하거나 부담스럽지 않게, 지금 포미닛의 위치와 성장 모두를 제시하는 한 장 이다.
맛있는 파히타 : 포미닛으로 말하자면 몇 번의 굵직한 히트는 있었지 만, 팀의 방향성에 있어서 이렇다 할 느낌을 받은 적이 없어 이번엔 또 뭐가 나올까 싶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이번 앨범은 매우 즐 길만하다. 작년 현아의 '빨개요'를 이어 타이틀로 내놓은 '미쳐'는 전 작을 닮았으나 더 강력하고 본격적이라 어떤 연장 선상에 놓인 느낌 을 준다. 트랩 비트와 에스닉한 샘플은 잘 어우러져 좋은 사운드를 만 포미닛 - “미쳐” 들어내는데 pre-chorus 부분의 멜로디가 약간 통속적으로 느껴지는 점만 제외하고는 매끈하게 세련된 인상을 받는다. 수록곡 '간지럽 http://goo.gl/zjmkRS 혀'와 '눈에 띄네'의 깔끔하고 쿨한 느낌도 개인적으로 마음에 든다. 흠이라고 느껴질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닌데 '1절만 하시죠'는 코러스가 너무 이질적으로 느껴진다는 점, '추운 비'는 앨범 전체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통속적이라고 느껴진 다는 점이다.
포미닛 - Crazy (2015) 포미닛이기에 가능한 퍼포먼스
2015.02.23 by 박준우
사실 두고 보자는 사람 하나도 안 무섭다는 말처럼 보통 센 언니를 표방했다고 공개적으로 말하는 걸그 룹 치고 센 그룹을 못 봤다. 하지만 포미닛은 센 언니의 모습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그것도 앨범 전체 를 통해서 말이다. 멤버들이 비주얼뿐만 아니라 직접 작사 작곡에 참여했음에도 완성도를 해치지 않았고, 오히려 ‘추운 비’를 제외하면 EP 규모의 앨범임에도 트랙 간의 긴밀함이 작용한다. 특히 가사의 결에서도, 마찬가지로 ‘추운 비’를 제외하면 어느 정도 통일된 정서를 가지고 있다. ‘미쳐’의 경우 현아와 전지윤의 파트, 소현의 파트가 존재감이 크게 느껴지는 동시에, 화자가 여럿이지만 가사들끼리 잘 맞는다는 점에서 더욱 성공적이다. 안무도 한 몫 단단히 했지만. 앨범은 첫 곡부터 ‘미쳐’로 시작한다. 첫 트랙을 재생하자마자 “I’m the female monster”라고 하는 이 굉 장함을 보라. 흔히 말하는 ‘걸그룹의 카리스마’로 아예 분위기를 다잡고 시작한다. ‘미쳐’에서는 권소현의 존재감도 존재감이지만, 미쳐있는 현아에게 뒤지지 않는 전지윤의 힘 있는 랩도 인상적이다. 허가윤이 맡 은 빌드업 파트에서는 “문이 열리고 멋진 그대가 들어오네요”와 같은 실수를 범하지 않으며 충분히 긴장 을 쌓고, 그 뒤로는 신스 플레이가 인상적인 훅이 등장한다. 사실 이 신스 때문에 레퍼런스 논란이 제기되 기도 했는데, 나는 크게 공감하지 못했기에 ‘그렇게 따지면 스캇 스토치(Scott Storch)부터 꺼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농담을 던져본다. 곡은 소스 선택부터 스크래치, 훅 등 여러 면에서 구성의 짜임새가 탄탄 하다. 무엇보다 지속해서 교체되는 사운드 소스와 빠른 전개는 시원시원하게 느껴지면서도 곳곳에 전체 흐름을 유지하기 위한 요소들을 배치해 재미를 더했다. […]
전문 보기 : http://idology.kr/3646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소개소
1. 지금부터 끝까지 - 럭스
2. 음탕소년표류기- 청춘스타라이더즈
3. 소녀 - GUMX
[우린 어디로 가는가](2004), 2
[음탕소년표류기](2014), 5
[What’s Been Up?](2003), 11
10년이 넘은 곡이지만 여전히 들을 때마다
대전을
밴드
조선펑크로 처음 펑크를 접해 현재 멜로딕/
많은 다짐을 하게 한다. ‘언제든지 돌아갈
청춘스타라이더즈의 첫 EP앨범과 동명의
스케잇 펑크에 빠져있는 나에게 요즘 영감을
순 있다 하지만 난 절대 변치 않겠어’나 ‘
타이틀 곡. 1절보다 묵직하게 시작하는
주는 곡이다. GUMX의 1집은 일본에서
나의 길을 걸어 가겠어’라는 가사가 특히
2절 연주가 있어 더 좋다. 노래 중간에
먼저 발매되어 큰 인기를 얻었는데 <소녀
그렇다. 좋아하는 곡이지만 개인적으로
마치 우주로 떠나는 듯한 소리가 나는
>는 한국 발매 앨범에만 수록되어있다. ‘
이
힘들었는데,
것이 인상적이다. 밴드 이름과 어울리게 ‘
하지만 넌 내 마음을 가지고 떠나버렸지’
펑크 락커들의 어쿠스틱 공연 <I Can’t
빛나고 있었지만 나는 아니였어’, ‘빛나고
라는 가사는 평범해 보이지만 왠지 모르게
Believe This Is Not Punk Rock>에서의
싶었지만 나도 아니였어’와 같이 청춘이 쓴
설레게 된다. 현재 GUMX의 멤버들은
솔로 버전을 들을 때면 힘든 기억이 모두
듯한 가사가 참 매력적이다.
펑크 밴드 스타트라인, 풀개러지, 옐로우
곡을
잊혀졌다.
카피하는
것은
기반으로
하는
로큰롤
몬스터즈에서 활동하고 있다.
최근 제가 자주 듣고 있는 여섯 곡을 소개합니다. 장르는 다양하지만 모두 가사와 멜로디가 잘 어울려 왠지 설득력 있게 느껴지는 곡들 입니다. 신당동 파르한 (@chungchoon98)
4.셀수없이 여러가지 - 위댄스
5. Black Rose Tattoo - 스트릿건즈
6. Free Ass - 러브엑스테레오
[Unfixed album 120406](2012),1
[Ordinary Band](2015), 7
[We Love We Leave, Part 1](2015), 6
처음 들었을 때, 전주 부분의 밝은 기타
스트릿건즈는 로커빌리 밴드 ‘락타이거즈’
2011년 발표한 데모 앨범 수록곡 <Free
소리가 독특해서 놀랐다. 드럼 비트 외에는
를 전신으로 하는 밴드이다. 이 노래를
Ass>의 새로운 버전. 공연에서 ‘I wanna
기타 연주와 보컬밖에 없는데도 너무 멋진
들으면 단지 제목과 가사 때문이 아니더라도
have sex with Americans’라는 가사를
곡이다. ‘동쪽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검은
올드 스쿨 스타일의 장미 타투가 눈앞에
들으며 항상 궁금했던 곡이다. 좀처럼 볼 수
머리를 가지고 나오지만’ 같은 독특한
그려진다. 신나는 멜로디에 착착 감기는
없는 독특한 가사가 인상적인데 신기하게도
가사도 곡과 잘 어울린다. 천천히 말하는
가사를 듣고 있으면 락타이거즈 때부터
노래와 아주 잘 어울린다. 멈춘 듯 하다가
듯이 노래를 부르고, 드러머 대신 드럼
늘 그래왔듯이 한국어가 로커빌리 음악에
다시
비트를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잘 느낄 수 있고 ‘
반복되는 비트를 따라 저절로 스텝을 밟고
김치빌리’(한국형 로커빌리)라는 수식어가
춤을 추게 되는 곡이다.
틀어두는데도
어떤
사람들을 춤추게 하는 듀오이다.
노래에도
잘 이해된다.
시작되는
뒷부분이
매력적이고,
1_ Granz Globewalker, 여행하며 음악하기
옆 사람 인터뷰
찬란한 빛이 꺼진 홍콩의 김빠진 공기를 모든 감각으로 기억하고 싶던 밤, 그 모든 것들이 결국 사람이라는 생각이 1_ Granz Globewalker, 여행하며 음악하기 스쳤다. 어디에 가도 있는 것은 사람이요, 사람으로 펼쳐진 시공간이었다. 내가 만났고 만나고 있는 사람들 또한
이름이 한국에나 있을 법했다. 한국에 오게 된 계기일지도
아름다운 여행지의 하나였다. 여행을 이야기하고 싶었으나
모른다고 생각했다.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생각했다. 사람을 여행해볼
�� ���� ��� ��� ���� ���� ���� ��� 작정이라고.
맞다. 전부는 아니지만 확실히 가장 큰 이유였다. 지난 7
����� ����� ��� 밤�� �� ��� ���� 결
월, 써큘러 키(Circular Quay, 시드니에 있는 광장)로 가던
게스트하우스에는 다양한 삶이 오고갔다. 그랜트는가도 미국에서 �� 사람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어디에 있
버스에서 희수를 처음 만났다. 첫눈에 반한다는 게 진짜
온 장기 여행을 온 사람치고는 하루가 는 투숙객이었는데, 것은 사람이요, 사람으로 펼쳐진 그의 시공간이 꽤 정적이었다. 그는만났고 공용 공간에서 음식을 먹거나 었다. 내가 만나고 편의점 있는 사람들 또한
있을 수 있구나 실감한 순간이었다. 우리는 대화를 나누기
비틀즈의 전곡을 모아 놓은 교본을 옆에 두고 기타를 아름다운 여행지의 하나였다. 여행을 이야기하 치고는 했다. 내가 그의 반려자와 다름없던 기타를 두 동강 고 싶었으나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생 내기 전까지는(당분간 Hey Jude를 배우겠다고 설칠 일은 각했다. 사람을 여행해볼 작정이라고. / 없으리라).
나는 그녀의 손을 잡기 위해 한국에 와 있었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은 그가 의사가 될 것을 기대했지만 6 게스트하우스에는 다양한 삶이 오고갔다. 그 살 때부터 그는 음악을 꿈꾸었다고 한다. 소망은 오랜 시간 랜트는 미국에서 온 장기 투숙객이었는데, 여 그대로였으나 대학을 졸업한 후에야 그는 음악을 하기로
여행하면서 곡을 쓴다. 펜실베이니아에 있을 때는 피아노로
시작했고 버스에 내려서도 대화는 멈추지 않았다. 6개월 후,
고향이 미국 펜실베이니아인데 시드니와 뉴질랜드를 배경으로 곡을 쓴 것 같다.
작곡을 했고 여행을 시작한 후로 기타를 가지고 다니며 곡을 쓴다. 나를 위한 곡을 쓰기 시작한 건 여행을 하면서부터다.
온 사람치고는 그의 하루가 꽤 정적이었 마음을행을 먹었다.
이전과는 다르게 내 감정을 새롭게 꺼내 보이는 일이었다.
다. 그는 공용 공간에서 편의점 음식을 먹거나
집은 마음을 편히 둘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인데, 여행 중에
놓은 교본을 옆에담긴 두고 그를 비틀즈의 마지막으로전곡을 본 날, 모아 직접 녹음한 아홉 곡이 CD
만난 좋은 친구들은 내게 또 다른 집이 되어주었다.
한 장을 선물로 받았다. 요즘내가 나는그의 비틀즈와 로드리게즈 기타를 치고는 했다. 반려자와 다름 만큼이나 노래를 두 좋아한다. 없던그의 기타를 동강 내기 전까지는(당분간
Hey Jude를 배우겠다고 설칠 일은 없으리라). 조금 더 오래 머물 줄 알았는데 시드니에 갔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어릴 때부터 사람들은 그가 의사가 될 것을
기대했지만 6살 때부터 그는 음악을 꿈꾸었다 나도 오래 있고 싶었지만 관광비자만으로는 그럴 수 없었다. 고 한다. 소망은 오랜 시간 그대로였으나 대학 한국에 다시 가고 싶고 그전까지 시드니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을 졸업한 후에야 그는 온전히 음악을 하기로 한다. 비행기 표를 사기 위해 잠시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고, 마음을 먹었다. 매일 글을 쓴다. 삶은 멋지고, 나는 사랑하며 살고 있다. 그를 있던 마지막으로 본 날, 직접 아홉 CD에 담겨 ‘Kira(Heesu)’라는 곡이녹음한 눈에 띄었다. 곡이사람에 담긴 CD 장을 노래한 선물로 곡인데, 받았다.Heesu라는 요즘 나 사랑하는 대한한마음을
밴드를 했다고 들었다. 지금은만큼이나 혼자 작업하고 건가? 는 비틀즈와 로드리게즈 그의 있는 노래를
좋아한다. 그렇다.
고향에서
The
Airwaves라는
밴드를
했고
노스캐롤라이나에서 공연을 했다. 하지만 대학교를 졸업하고 밴드도 끝났다. 2014년 초 네덜란드에서 온 Oliver Sterk와 조금 더 오래 머물 줄 알았는데 시드니에 갔 뉴질랜드에서 새로운 밴드를 시작했다. 우리 스스로 Space 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Train이라고 불렀고 이따금 밤부터 동이 틀 때까지 거리에서 공연을 하고는 했다. 현재는 완전히 솔로지만 언제나 함께 나도 오래 있고 싶었지만 관광비자만으로는 그 음악을 만들 수 있는 멋진 마음을, 사람을 찾고 있다. 지금은 럴 수 없었다. 한국에 다시 가고 싶고 그전까 또 몇몇 프로젝트 중에 있다. 하나는 혼자서 진행하고 있는 지 시드니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비디오 웹 시리즈이고 또 하나는 영국인 한다. 친구와 비행기 하고 있는 록
표를 사기 위해 잠시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 프로젝트이다.
6살 때부터 음악을 하고 싶었다는 말이 귀엽기도 하고
삶을 반영해보는 시간을 그린다. 반면 표현하고 싶은 것이
신기했다. 특별히 음악이 매력적으로 다가온 무언가가
없다고도 말할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 개인적이고 열려 있는
있었나.
결말이기 때문이다. 해석은 듣는 이에게 달려 있다. 너는 어떻게 느꼈나. 이건 정해져 있는 게 아니다.
글쎄, 우리는 모두 세상의 퍼즐 조각이라고 생각한다. 하나의 큰 퍼즐. 모두는 그들 각자의 모양을 가진다. 나는 단지 이
아직 앨범을 내지는 않았다.
삶에서 음악을 만들기로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은 때로 전쟁 중에 있는 사람들을 형제자매로 만들고 사람들을
맞다. 솔직히 말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내 진심을
따뜻하게 하는 좋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공유하고 싶고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음반사를 알아보고 있다.
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음악은 나를 춤추게 하고 노래하게
그리고 내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찾기 위해 바에서,
하고 웃게 하고 나의 친구들과 함께하도록 만든다. 이 모든
거리에서 공연을 하고 있다. 나와 함께할 수 있는 누구든 어떤
것들이 매력적이다. 음악을 사랑한다.
방식이든 좋다.
의대를 졸업하고 전적으로 음악에 매진하게 됐다. 선택에
혼자 듣기는 아까워서 다른 사람들과 음악을 공유하고 싶다.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나.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알려 달라.
Wake Forest 대학교에서 Pre-med 과정을 공부했다. 사실
무료로 음악을 들을 수 있는 Soundcloud가 있다.
그건 어려운 일이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진실로 찾고자
soundcloud.com/granzglobewalker
했을 때, 그 시기에 많은 일이 있었다. 가장 친한 친구가
올리고 있다. 혹은 유튜브에 Granz Globewalker를 검색하면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도 했고 나는 이제껏 생각지 않았던
몇몇 동영상이 뜰 거다.
이곳에
www. 음악을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이 세상에서 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나는 행복한지, 지금 당장 죽는다 해도 미련이
홍대 거리에서 공연을 하고 싶다던 말이 생각난다. 한국에
없는지. 처음 이 질문들은 나를 화나게 했지만 그것들이 곧
다시 올 예정이라고 했는데 어떤 계획이 있나.
놀라운 질문이었음을 깨달았고 궁극적으로 이런 질문들이 나를 세계를 여행하고 더 많은 곡을 쓰게끔 했다. 내게 가장
그렇다!!! Noridoe(아마도 홍대 놀이터를 말하는 것 같다)! 내
행복한 일이 음악을 만드는 거고 이게 내가 세상을 위해 할 수
마음의 반쪽은 한국에 있다. 8월에 한국에 다시 갈 계획이고
있는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바로 홍대에 갈 거다. 희수와 함께 그곳을 방문했던 날 한 밴드를 봤는데, 굉장히 놀랍고 흥미로웠다. 한 여자가 봉고와
음악을 통해 표현하고 싶은 게 있다면 무엇인가.
키보드, 기타의 비트에 맞춰 탭댄스를 추고 있었다. 나는 사탕가게에 있는 어린 소년이었다. 다시 그곳에 갈 거다.
각각의 곡은 나의 지난 삶을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 이게 나야’라고 말하고자 하는 노력이고 다른 사람들과
멀리 있는 탓에 이메일과 스카이프로 그를 만났다. 이메일로
공유하기 위한 시도다. 예를 들어 시드니에서 만든 다섯 곡을
받은 그의 글은 주인을 닮아 따뜻했는데 나의 서투른 번역이
모은 <Sydney Sage>는 내가 지난 1년 동안 느낀 것이고
그 온기를 앗은 것은 아닌지 염려된다. 8월, 홍대 거리에서
네가 이 음악을 들을 때 너는 내 삶 가운데 하루를 보게
흐를 그의 음악이 기다려진다.
된다. 이 앨범에서 첫 번째 곡은 하루의 시작을 이야기하는 ‘Wakeup!’, 마지막 곡은 ’Reflection’으로 하루의 끝에서 우리
글, 정리 : 이내
다
미국에 산다. 사실 이제 고작 세 달째에 접어들었다. 겨울 계절의
른
끝자락이지만, 여기는 요즘도 많이 춥다. 몇 달 나와있었다고 고새 서울의 온도가 잘 기억나지 않게 됐는데, 사실 같은 온도의 날씨라 해도 이 곳이 훨씬 추운 느낌이다.
나 라 에 서
눈이 많이 온다. 얼마나? 그냥 말도 안되게 많이 온다. 자동차가 주 이동수단인 미국은 차도는 눈이 오면 곧바로 치우지만, 인도는 가운데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로만 치워놓고는 그 양 옆으로 그대로 눈을 쌓아둔다. 쌓인 눈은 저들끼리 쌓인 무게 때문에 꼭 극지방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퍼런 색을 띈다. 더군다나 눈은 잘 녹지도 않는, 가볍고 습기 없는 눈이다. (가벼워서 말 그대로 ‘송이송이’ 내리는 눈이라 보기 참 이쁘긴 하다. 스노우볼같아서.) 난방은 공기를 데우는 방식으로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온돌을 경험했던 사람이라면 다들 마뜩지 않을 난방이다. 공기를 건조하게 만들고, 더 춥다. 라디에이터가 없는 화장실도 많다. 지금 살고 있는 집 화장실이 라디에이터가 없는 화장실인데, 볼일 볼 때마다, 샤워할 때마다 얼마나 추운지 모른다. 한국은 추우면 들어갈 실내 공간이 널려있지만, 미국은 아니다. 뉴욕 같은 대도시 한복판이 아니고서야 카페도 드문드문, 심지어 식당도 찾기 힘들다. 장 한 번 보러 갈 때 차를 끌고 가야 하는 게 미국이다. 버스도 빨라야 30분에 한 번 온다. 미국은 땅덩이가 커서 지역마다 차이도 크다. 두 달 전에는 워싱턴DC 에 있었다. 워싱턴DC에는 건축물 높이 제한법이 있어서, 국회의사당보다 높은 건물은 들어서지 못한다. 미국의 수도임에도 불구하고 고층빌딩은 찾아볼 수 없다. 덕분에 빌딩 사이사이로 불어치는 칼바람을 맞을 일이 없다. 갈 길을 떠미는 바람을 맞을 일이 없어서 그런지,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천히 걷는다. 여유로운 만큼 친절하다. 낯선 이와 눈 마주칠 때 인사 안 하면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인사 한 번 나누면 안부를 묻게 되고, 그러다 아예 자리잡고 앉아 길게 대화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문을 여닫을 때 앞사람이 잡고 기다리는 건 당연한 일이다. 서울에서 종종걸음으로 걷고, 눈 마주쳐도 쌩까고, 눈싸움 안 하면 다행이고, 누가 문 열면 새치기해서 그 사이로 몸만 냉큼 디밀 줄 알았던 나는 처음 DC에 도착해서 적응하기까지 꽤 걸렸다. 그렇게 따뜻한 DC의 분위기를 따라 아무튼 결국 나도 천천히 걷게 됐는데, 천천히 걷자마자 이곳, 북동부로 이사를 왔다. 뉴욕 타임스퀘어까지
직행으로 가는 버스가 있는, 북부 뉴저지의 작은 마을이다. 확실히 DC 보다 더 춥다. 그래도 깨끗하게 춥다. 무슨 말이냐면 공기에, 바람에 다른 이물감 없이 추위만 들어있는 느낌이다. 이사 다음날, 마을 지리 좀 알 겸 산책을 나갔다. 눈이 마주친다. 인사하려고 입꼬리와 손을 같이 올렸다. 상대방이 쌩깠다. 춥다. 주말마다 뉴욕 나들이를 나갔다. 여긴 더하다. 춥기도 더럽게 춥다. 매연이 뒤섞인 공기는 빌딩 사이사이를 지나며 칼바람으로 변한다. 그 아픈 바람을 맞으면 자연스레 경보하게 되지만, 그래도 어디 한번 천천히 걸을라 치면 뒤에서 계속 “익스큐즈 미” 한다. 걷다가 멈추면 욕먹는다. 많이 춥다. 다음 주에 맨하튼으로 이사 가는데… 춥겠다. 서울에서 DC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뉴욕으로 갔으면, 덜 춥다고 느꼈을까 궁금하다. 반대로 우리나라 시골에 살다가, DC로 갔으면 한국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을까도. 사실은 결국 우리나라든 미국이든 어디든 다 똑 같은 걸까. 여유로운 곳은 따뜻하고, 바쁘고 복잡한 곳은 춥고.
황 효 정
그런데 우리나라는 웬만한 소도시에서도 인사는 나누지 않으니, 여기가 좀 더 따뜻한 것 같기도 하고. 길 걷다 누가 밀쳐도 “익스큐즈 미” 듣지는 못하니, 여기가 좀 더 따뜻한 것 같기도 하고. 무심결에 나누는 말 한마디의 따뜻함이 엄청 크니까 말이다. 눈 마주치면 굳이 말로 인사말 주고받진 않더래도 눈꺼풀 한번 까딱하고, 실례한 일 있으면 미안하다 하고, 버스에서 내릴 때도 감사합니다 한번 하고, 우리나라에서도 그럼 지금보다 많이, 따뜻할 것 같은데. 사실 미국사람들에게는 DC와 뉴욕 정도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5 시간 걸린다). 그런데도 이렇게나 ‘온도차’가 크니… 아직 가보지 못한, 다른 도시들은 어떤 ‘온도’를 가지고 있으려나. 동부에 뉴욕이 있다면, 서부에는 LA가 있는데, 캘리포니아 살던 친구에 따르면 2년동안 살면서 패딩 딱 한 번 입었다고. 또 “매일 길거리 나가서 훈남한테 무작정 인사하는 게 삶의 낙”이었다던데, 인사하면 잘 받아주고 어떤 매너남들은 인사 나눴다고 집까지 데려다 줬다던데. 소위 대세 잡지 ‘킨포크’의 발생지인 포틀랜드도 궁금하고, 스타벅스의 도시, 우중충한 분위기가 생각나는 시애틀, CSI부터 떠오르는 뜨거운 마이애미… 일단 캘리포니아부터 가봐야겠다.
담배
책장을 넘기던 그의 머릿속에 질문 하나가 떠올랐다. 나는 어떤 욕망을 가지고 있지? 그는 책을 덮고 허공을 응시했다. 돈, 명예, 권력, 식욕, 성욕, 여자… 여자? 그래. 그 빵집 여자.
얼마 전 그는 동네에 있는 작은 빵집에 갔다. 우유식빵을 집어 들고, 둘러보는데 빵을 진열하고 있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작은 키에 마른 몸매. 청바지와 티셔츠 위로 짙은 회색빛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그의 취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가 빵들을 들고 카운터로 가자 그녀가 종종걸음으로 쫓아왔다.
“우유식빵 하나, 건포도빵 하나, 팥빵 하나. 맞으시죠?”
“네.”
“오천사백 원입니다.”
지갑을 꺼내 지폐를 살피는데 그녀가 말했다.
“저희 밤식빵이 인기가 많아요. 다음번에 한 번 드셔보세요.”
고개를 들자 그녀가 활짝 웃어보였다. 그리곤 빵을 봉투에 담기 시작했다.
검정색 뿔테 안경, 그 위로 내려온 앞머리, 단정하게 묶인 뒷머리, 앞치마 끈 사이로
드러난 쇄골. 이십대 후반쯤 되려나?
그녀가 빵을 다 담고 다시 그를 보자, 그는 얼른 지갑으로 시선을 돌려 만 원 짜리를
꺼냈다.
이후 이따금씩 그녀의 웃는 얼굴이 떠올랐다. 양 볼에 쏙 들어갔던 보조개가 참 귀여웠다. 만약 그가 십대였다면 매일 같이 빵집을 들락거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십대가 아니라 사십대였다. 빵집 앞을 지날 때면 슬쩍 쳐다보긴 했지만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았다.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거지?”
그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턱을 만졌다. 며칠 면도를 하지 않아 거칠었다. 혜진과
헤어진 게 벌써 몇 년……. 마지막 연애가 벌써 몇 년 전 일이구나. 혼자에 익숙해지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여자를 만나고 싶지 않은 건 아냐. 그 빵집 여자랑 술을 마시면 즐거울 거야. 말이 안 통한다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그래. 어쩌면 말이 안 통할지도 몰라. 이십대 중후반? 그럼 나랑 열 살 이상 차이가 나는 건데. 그러고 보면 술도 예전만큼 마시지 않네. 마실 사람이 없는 것도 그렇지만 마시고 싶은 욕망이 적어. 혼자 마시려면 얼마든지 마실 수 있는데도 안 마시는 거니까. 이렇게 나이를 먹어가는 건가? 살가죽이 쪼그라들며 욕망도 함께 쪼그라드는 거지.
그는 거울 앞에 서서 얼굴을 살폈다. 예전에 비해 늘어난 주름들이 보였다. 서글픈
기분이 들었다. 담뱃갑을 뒤졌다. 담배가 없었다. 그는 지갑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그의 생각처럼 어떤 욕망들은 나이가 듦에 따라 쪼그라들지도 모른다. 여자를 향한 그의 욕망은 예전처럼 쉽게 끓어오르지 않는다. 하지만 잔잔하게 그 깊이가 더해진 욕망들이 존재한다.
십대 때에는 손에 대지도 않았던 담배를 이십대에는 하루에 반 갑씩, 사십대가 된
지금은 하루에 한 갑 이상을 피우고 있다.
편의점에 들려 담배를 한 갑 사고 나오는데 길 끄트머리에 빵집이 보였다. 갈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두근거리는 건가? 오랜만에 느껴보는 ‘설렘’이라는 감정이었다. 열 살도 더 어린 여자애, 그것도 그냥 말 한 번 주고 받은 빵집 알바한테 이런 감정을 느껴도 되는 건가? 한 걸음 한 걸음 빵집 쪽으로 다가갈수록 점점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가서 뭘 어쩌려고? 그냥 빵만 사서 나오자. 빵집 안에 그녀가 보였다. 짙은 회색빛의 앞치마를 입고 뒷짐을 진 채 밖을 보고 있었다. 그가 빵집에 들어서자 그녀가 그를 맞았다.
“어서오세요.”
그는 고개를 끄덕, 인사를 한 뒤 식빵 코너로 갔다. 옥수수식빵, 우유식빵, 그리고
밤식빵. 그는 밤식빵을 들고 카운터로 향했다. 이내 그녀가 종종걸음으로 쫓아왔다.
“밤식빵 하나. 맞으시죠?”
“네.”
“어? 그러고 보니 손님. 얼마 전에 식빵 사러 오셨었죠? 제가 그때 밤식빵 추천해드리지
않았었나요?”
“네. 맞아요. 어떻게 아셨죠?”
“기억이 나서요. 제가 원래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는 편은 아닌데요. 손님을 보니까 딱
기억이 나네요.”
그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는 그녀의 볼에 움푹 파인 보조개를 보았다.
“사천 원입니다.”
만 원을 내고, 잔돈을 거슬러 받은 뒤 빵집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그의 얼굴이 점차
굳어졌다. 두근거리던 순간이 언제였었냐는 듯 무덤덤했다. 내가 왜? 내가 왜 저런 여자를 계속 떠올렸던 거지? 그냥 애잖아. 너무 어려. 이십대 후반이 아니라 이십대 초반이겠어. 저런 애를 상대로 대체 뭘 기대한 거야? 스무 살 가까이 차이가 나잖아.
그는 담배를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연기를 뱉는데 문득 도서관에서 책들을 빌려온 지
꽤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였더라? 핸드폰을 꺼내 대여 날짜를 확인해보았다. 이틀 후에 반납해야 했다. 남은 한 권을 얼른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무슨 책들을 빌려다 읽을지 생각하며 걸었다.
그는 예전보다 훨씬 더 많은 책들을 읽고 있다. 문학에 집중했던 이십대 때와는 달리 이젠 거의 모든 종류의 책들을 섭렵하고 있다.
어쩌면 사람이 지닌 욕망은 나이에 따라 그 형체를 바꾸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형체는 시간이 지난 뒤에야 알아챌 수 있는 것이고.
여러분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불과 2년 사이에 새로운 식구가 여럿 생겼습니다. 이 아이들이 우리의 그저 그랬던 명절을 밝혀주네요.
letmeflywoo.tumblr.com
ⓒ NANGMANSPY
#11 明節
#423733
에피소드, 1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낸다. 오랫동안 부여잡고 있어서인지 기름과 지문이 범벅이다. 친구가 부른다. 방심한 찰나 휴대전화는 이미 바닥이다. 액정을 확인해 보니 실금이 그득하다. 금이 간 위치들을 피해 문자를 확인한다. 불편해 죽을 정도는 아니다. 액정 위의 금들이 왠지 모르게 멋스러워 보인다.
에피소드, 2 여행에서 만난 캐나다 친구와 자국의 영화 문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한국에서는 인기 있는 영화 서너개가 모든 스크린을 점령한다고 말했다. 그게 사실이냐며 캐나다 친구는 의혹에 휩싸인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 친구는 거짓말 같다며 캐나다에는 똑같은 영화가 관을 두 개만 점령해도 난리가 난다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 영화관에 여섯 개의 관이 있다면 당연히 여섯 개의 영화가 상영된다고 했다. 나는 갑자기 심통이 났다. 그리고 캐나다 친구를 노려보며 ‘그래 봐야 여섯 개 안에서 선택하는 거잖아.’ 라고 말했다.
기호의 천국 휴대전화 케이스는 자신의 기호를 반영한다. 십대 후반 여학생이 큐빅 케이스를 하고 다니는 일은 지극히 자연스러워 보인다. 하지만 사십대 후반의 중후한 남성이 주머니에서 그런 케이스를 꺼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소녀 취향이겠거니’ 하고 웃으며 넘어갈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면 그는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가 만약 회사의 대표라면 나뭇결이 살아있는 고급스러운 케이스를 사용할 것 같다. 하지만 그 회사가 만약 IT업계라면 창의적인 기능들이 탑재된 케이스를 택할 것 같다. 이렇듯 ‘내가 지닌 기호’와 ‘내가 취할 수 있는 기호’는 마치 자유 영역인듯한 착시를 불러일으킨다.
도주론 수많은 사용성 테스트를 거쳐 나온 휴대전화의 모던한 곡선은 사용자에게 편안한 그립감을 선사한다. 하지만 어떤 사용자에게는 휴대전화의 외형이 키치한 장식을 덧씌울 하나의 템플릿에 불과하다. 기하학을 통해 이상적 아름다움을 주조해 내려는 원대한 디자이너의 기획은 개인의 구체적 삶의 맥락 안에서 철저히 붕괴한다. ⑴또한, 개인의 삶이 아닌 생산에 초점을 맞춘 디자인은 디자인과 키치에 선을 긋는다. 그러나 삶이라는 수용의 과정은 디자인과 키치의 경계를 횡단한다. 키치든 아니든 우리를 둘러싼 인공물들은 실제 삶의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기호 게임’의 비어있는 기표들일 뿐이다. 우리는 그 기표들에 의미를 담기도 하고 빼기도 하며, 누군가 담아낸 의미를 읽어내고 변형시키기도 한다. 오늘날 사회에서 사물들의 실존적 의미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① 시내 외곽의 카페에서 연인으로 추정되는 두 사람이 말다툼을 벌인다. ② 말다툼을 벌이다 남자가 여자의 휴대전화를 밀어 실수로 바닥에 떨어트린다. ③ 잠시 둘 사이에 정적이 흐른다. ④ 여자는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휴대전화를 들어 액정을 확인한다. 완전히 깨져있다. ⑤ 여자는 깨어진 유리로 가득한 케이스를 휴대전화와 급히 분리한다. ⑥ 휴대전화를 켜보니 깨진 액정 뒤편으로 행복했던 둘의 사진이 뜬다.
액정이 깨진 여자의 휴대전화는 이제 깨지기 전과는 전혀 다른 실존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여자는 액정을 매개해 싸웠던 순간을 기억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파국과 이별이라는 은유는 생산 중심적 디자인에서 애초에 기획되지 않았던 개념들이다. 모던한 외형이 선사하는 중립적 아름다움에서 이러한 사사로운 감정들은 오히려 배척의 대상에 가깝다. 하지만 여자는 구체적 삶의 맥락 안에서 의도치 않게 파국의 서사를 지닌 휴대전화를 소유할 수 있게 되었다.
자기 지시라는 탈출구 액정 위의 깨진 금은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양태로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여기에는 ‘우연성’이 반드시 개입된다. 우연성 하면 떠오르는 추상회화 중에서도 잭슨 폴락이나 드 쿠닝같이 ‘행위’에 초점을 맞춘 액션 페인팅이 떠오른다. 깨진 액정 역시 ‘떨어뜨리다’라는 구체적 행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⑵액션
페인팅이라 할 때는 완성된 작품에서 미적 가치를 구하기보다 예술가의 구체적 행위에 가치를
둔다. 붓을 쥐고 흩뿌리는 행위로 인해 캔버스는 자연히 거대해지며, 땅바닥에 고정된다. 비로소 화가에 의해 캔버스는 재현해야 할 대상을 상실하고 물감만 덩그러니 남게 되었다.
⑶ 과거
회화가 대상을
탐구하고 모방했다면 모더니즘에서는 회화가 회화 자신을 반성하고 탐구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평론가 그린버그 역시 회화가 그림 밖의 세계가 아닌 제 자신의 가능성을 탐구한다는 ‘자기 지시’의 원리 때문에 폴락을 주목했다. 폴락의 작품에서 물감은 물감일 뿐, 그 밖의 대상을 표상하지 않는다. 대상을 재현하지 않는 작품은 당연히 환영적 깊이가 없는 평면, 즉 물감 칠한 캔버스로 환원될 수밖에 없다.
기업에 의해 생산된 제품은 단지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시장에서 독보적 위치를 점유하기 위한 디자인이 덧씌워진다. 비로소 제품에는 사용가치 이외의 보이지 않는 상징성이 생겨난다. 우리는 이러한 제품의 상징을 자신의 사회적 위치나 맥락에 맞게 향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제품에 부여된 상징이 견고하면 할수록 제품의 실제는 더 깊숙이 가라앉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몇 년 전 보유하고 있던 명품 가방의 귀퉁이가 찢어져 수선을 맡긴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처음으로 가방을 이루고 있는 재질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해부대 위에 뉘어진 개구리처럼 낱낱이 벌려진 가방의 실제는 명품이라는 상징을 해체시켰다. 그것은 나일론과 가죽이 만들어낸 그 무엇에 불과했다. 추락한 휴대전화 위로 새겨진 금들은 이것이 매체 이전에 ‘유리’라고 하는 것을 인지시켜 준다. 그 순간만큼 휴대전화는 내 개성을 드러내 줄 기호가 아닌 베이기 쉬운 유리 조각에 불과한 것이다.
⑴ 오창섭,
[디자인과 키치]
⑵ 진중권, ⑶ 네이버
[서양미술사]
사전, [액션페인팅]
blog.naver.com/clichecliche
건축이 좋아. # 18. MHM BUONA FORTUNA… 피렌체의 두오모 이야기. aoikasa
MHM BUONA FORTUNA…
추운 겨울에 지쳐버려서일까. 자꾸만 따스한 햇빛이 그리워진다. 강렬한 햇살이 내리쬐는 그 곳이 그리워진다.
땀을 뻘뻘 흘리며 거닐던, 금새 녹아버리고 마는 젤라또 한 입에 행복해지던 그 거리가 그리워진다. 단, 하루뿐인 시간이었지만 모든 순간순간이 머릿 속에 각인되어버린 각인되어버린 그 도시. 바로 피렌 체이다.
피렌체하면 두오모가 떠오르고 두오모하면 냉정과 열정 사이가 떠오르고, 영화의 주제곡 ’What a Coincidence’의 낮은 선율이 떠오를 것이다. 쥰세이와 아오이의 10년의 약속이 머물던 바로 그 곳. 피 렌체의 두오모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피렌체라는 도시는 그 자체로 너무 아름답다. 도시 자체가 박물관이라 이야기할 수 있을 정도로 이 작 은 도시의 곳곳엔 르네상스 거장들의 작품들이 자리잡고 있다. 미켈란젤로와 도나텔로, 단테와 갈릴레 오, 브루넬레스키와 알베르티, 미켈라초.피렌체 출신의 수많은 예술가들. 그리고 그들을 후원한 상인계 층인 메디치, 루첼라이, 스트로찌 가문. 5-600여년 전 꽃피웠던 르네상스 문화와 예술이 여전히 남아 21 세기의 피렌체를 지배하고 있다. 이 도시는 그 때 그 시절을 여전히 지켜나가고 있는 것이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쥰세이와 아오이를 기억하는지. 쥰세이의 직업은 복원사. 피렌체는 복원을 공부하러 온 쥰세이가 복원사로 자리잡고 사는 도시이자 영화의 주배경이다. 피렌체같은 도시에서는 과거가 그 도시를 빛나게 해 주지만 동시에 과거에 잡혀 새로운 것을 시도할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이런 측면에 서 피렌체는 쥰세이와 많이 닮아 있다. 과거를 그리워하며 과거와 화해하고 싶은 그의 모습은 그의 직업 과 그의 도시와 닮아 있다. 소설 속에서 쥰세이는 복원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던 건, 그 것이 잃 어버린 시간을 돌이키는 세계에서 유일한 직업이라는 느낌 때문이라 말한다. 반면 아오이는 밀라노에 산다. 쥰세이와의 이별 후 밀라노의 보석 공방에서 일하며 미국인 마빈과 사는 그녀. 그녀 역시 밀라노와 닮아 있다. 밀라노 역시 대표적인 르네상스 도시이지만, 밀라노는 피렌체처럼 과거에 사로잡혀 있지 않 다. 패션의 도시답게 과거의 유산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도 잘 하는 그런 도시이 다. 쥰세이를 잊지는 못하지만, 새로운 사랑에 정착하는 아오이의 모습과 닮았달까.
아무튼, 이 도시 피렌체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두오모가 보인다. 어느 골목에서라도 고개를 들면 두오모 가 보인다. 그만큼 두오모의 존재는 피렌체에서 절대적이다. 이는 무려 그 지름이 40m가 넘는 거대한 크기 때문이기도 할 테고, 피렌체의 파란 하늘과 두오모 벽체의 빛나는 대리석, 그리고 그 붉은 두오모 의 아름다움 때문이기도 하다. (두오모는 이탈리아어로 돔을 뜻하는 duomo이지만, 피렌체에서 두오모 는 성당 그 자체를 지칭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두오모(성당)의 두오모(돔)가 얼마나 컸냐면, 성 당을 다 짓고도 이 크기의 돔을 만들지 못해 한참을 기다려야했을 정도였다.
브 루넬레스키. 르네상스 건축의 시작. 모짜르트와 살리에르 만큼은 아니겠지만, 당시 피렌체에도 경쟁 구도가 많았다. 미켈란젤로와 도나텔 로도 그렇고, 기베르티와 브루넬레스키도 그런 관계였다. 피렌체 두오모 성당 앞에는 세례당이 있는데 이 세례당의 청동문 디자인 공모전 같은 게 있었고, 여기에서 (자신보다 어린) 기베르티가 당선되었다. 마음이 상했던 브루넬레스키는 그 후 로마로 유학을 가버렸고, 피렌체에 돌아온 후 두오모 현상설계에 당선되었다. 이후 두오모는 피렌체의 상징이 되었으니, 이쯤이면 브루넬레스키의 기베르티에게 져서 억 울했던 그 마음은 다 풀렸을 거 같다.
(두오모에서 내려다보는 피렌체 풍)
피렌체의 두오모는 르네상스 건축의 시작이라 일컬어지는 건축이다. 역사적 시기구분이란 사실상 편의 를 위해 만든 것이기에 이 건물이 르네상스건축의 ' 시작' 이라는 측면에 중요성을 두기 보다는 이 건물이 가지고 있는 ' 르네상스적 특징' 에 주목하고 싶다. 흔히들 르네상스를 고전의 부활, 예술과 기술의 조화, 신이 아닌 인간이 중심이 되는 세계관 등으로 설명한다. 르네상스 건축은 그리스, 로마 건축 어휘의 적극 적 사용, 중앙집중형공간의 등장, 화려함과 거대함 대신 단순함과 적절한 규모의 추구, 수직성 보다는 수평성의 추구 등을 들 수 있다. 물론 두오모는 그 규모 자체는 굉장히 크다. 판테온 이후 단일 돔으로 는 가장 큰 것이었으니. 그러나 이 거대한 크기의 두오모는 위압적이거나 하늘을 뚫고 올라갈 거 같지는 않다. 오히려 땅의 인간들을 감싸고 조용히 앉아 있는 듯한 안정성을 가진다. 두오모의 아랫부분, 즉 성 당부분은 고딕 시기 만들어진 것이기에 그 크기나 형태상 이탈리안 고딕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고딕 시 기 계획되었다가 오랫동안 실현되지 못했던 두오모는 르네상스의 기술력으로 비로소 완성시킨 것이다. 두오모는 너무 커서 쌓다 보면 너무 무거워지니 자꾸 무너지곤 하였는데 브루넬레스키는 이중 쉘 + 뼈 대 구조를 제안함으로써 이를 해결하였다. 즉, 안껍질과 겉껍질을 구성하는 뼈대를 만들고 상대적으로 가벼운 재료로 채우는 방식이었다. 게다가 거대 두오모를 만들려면 거대 동바리(건물을 만들기 위해 주 변에 세우는 가설물,scaffolding)가 필요한 것도 문제였는데 이 역시 돔을 쌓아가면서 안 껍질과 겉껍질 사이에 계단을 만드는 방식으로 해결하였다. 우리가 두오모를 방문해서 숨을 헐떡거리며 오르는 그 계 단이 바로 두오모를 쌓을 때 사용한 계단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두오모의 안껍질과 겉껍질 사이를 빙그 르르 돌아가며 하늘로 오르는 것이다. 필요한 재료는 도르래를 비롯한 각종 기구로 끌어올린다. 이 당 시 사용한 기구들이 두오모에서 내려오다보면 나오는 작은 방에 전시되어 있다.
(두오모로 오르는 계단 안껍질과 겉껍질 사이를 연결하는 뼈대 구조가 보인다.)
두오모를 보다보면 자꾸 떠오르는 건물이 있다. 바로 로마의 판테온. 두오모와 거의 비슷한 크기의 이 돔을 대체 로마인들은 어떻게 만든 것일까. 게다가 이 돔, 내부는 대리석이고 외부는 벽돌이다. 그 사이 는 가벼운 콘크리트로 채워져있다. 아마도 흙을 엄청나게 쌓아놓고 이 돔을 만들고 흙을 파내지 않았을 까 하는 추측을 해보지만 정확한 건 알 수 없다. 어쨌든 간에 기베르티에게 패해 분한 맘을 품고 로마로
유학길을 떠난 브루넬레스키가 아마도 이 판테온을 보고 힌트를 얻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로마에서 판테온을 보며 자신의 고향에 있는 미완의 과제인 두오모를 떠올렸을 테니까. 이처럼 로마 고 대 건축에 대한 연구를 통해 자신의 건축에 적용시키는 것도 르네상스적 특성이다.
(두오모로 오르는 계단에 난 작은 창들. 이 곳을 오르내리며 두오모를 만든 이들도 같은 풍경을 보았을 터. )
게다가 브루넬레스키는 최초로! 원근법을 개발한 사람이자 설계도라는 걸 그린 사람이다. 원근법 개발 이후 그림과 건축은 투시도적 효과를 추구하였고, 그 이후 서양의 세계관을 지배하였다. 또한 이전엔 건 축 역시도 누군가의 비법들로 사제관계에 의해 전수되는 것이었는데 브루넬레스키 이후로 설계도라는 것을 그리기 시작했다. (후대의 역사가로선 이처럼 고마운 일이 없다.) 이 역시도 이성적 사고와 과학적 체계를 바탕으로 하는 르네상스의 특징일터.
아무튼 이 두오모를 오르면 하늘을 향해 솟은 큐폴라 공간에 나가게 된다. 큐폴라 테라스로 나서면 피 렌체 구도심이 전부 다 보인다. 쥰세이가 멍하게 앉아 아오이와의 약속을 기다리던 바로 그 곳이다. 그 러나 슬프게도 이 곳은 늘 줄지어 오른 사람들로 가득하고 쥰세이처럼 여유있게 사랑하는 이를 생각하 며 생각에 잠기기란 거의 불가능이다. 뭐 아무튼 그래도 이 곳에 간 이상 최대한 오래 버티며 피렌체의 파란 하늘을, 그리고 그 아래 붉은 지붕의 아름다운 도시를 천천히 음미하길 권한다. 사진찍느라 정신없 어하다 사람에 휩쓸려 내려가지 말고 천천히 천천히 내 눈으로 바라보며 내 뺨으로 바람을 느끼며 말이 다.
사실 두오모를 오르는 과정은 길고 따분하고, 숨차고…. 아무튼 힘들다. 좁다란 계단을 하염없이 오르 고 있자면 내가 과연 여기 오르겠다고 1시간 이상 줄 서서 기다렸나 싶기도 하다. (두오모의 계단에 대 한 이야기를 생각해보며 올라가면, 그리고 두오모의 뼈대 구조들에 대해 좀 더 면밀히 관찰하다보면 그 오르는 길 조차도 재미있지만, 이 건 일부 건축 혹은 역사 덕후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일테니…) 그리 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계단을 다 오르고 나면 두오모는 보이지 않는다. 두오모에서 보이는 피렌체가 보일 뿐이다. 두오모의 아름다움을 보고 싶다면, 바로 옆 조토의 탑이나 미켈란젤로 언덕에 오르길 권한 다. 보통 두오모에 올라갔다와서가 너무 힘들어서 조토의 탑은 잘 안 오르는데… 조토의 탑에 올라야 비로소 두오모의 장대함을 눈 앞에서 바라볼 수 있다. 또한 미켈란젤로 언덕에서도 보통 사람들은 언덕 에 오른 후 바라보고 말지만, 계단을 따라 교회가 있는 쪽으로 한 번 더 오르면 좀 더 한적한 곳에서 두 오모를 바라볼 수 있다. 두오모를 바라보며 한 번 조용히 읖조려본다. MHM BUONA FORTUNA1
“ 정말 필요한 게 있는 걸까.
그 정도로 중요한 것이 과연 우리 주위에 얼마나 있단 말인가. 적어도 이 우아한 피렌체 거리에서, 지금 당 장 해야만 할 일 따위는 없다. … 이 거리에는 늘 비처럼 햇살이 쏟아져 내리고 있다. “ - 냉정과 열정사이, 블루 중에서
1두오모에서 아오이를 기다리던 쥰세이에게 독일인 부부가 건넨 말이었다. 당신에게 행운이 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
(파란 하늘, 붉은 색 지붕들, 그리고 두오모. 그 것이 피렌체.)
게임 노동 일지
글. 그림. 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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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ad - 3 (고추장) 글. exxx 고추장에 대해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달도 넘게 했는데, 머리속에 정리된 것은 ‘아! 그 빨갛고 맵고 짭짤하면서 단 것!’ 정도이다. 한달을 고찰한 것 치고는 참으로 절망스러울 정도의 결과다. 그래도 오늘은 고추장으로 간다. 정확히는 고추와 고추장을 어정쩡하게 섞어 쓰려고 한다. 고추만 쓰자니 고추장을 안쓸 수 없고 고추장만 쓰자니 고추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추를 만드는게 고추장이니 고추 이야기를 먼저 하자면, 한국에 전래된 시기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가장 설득력있게 이야기되는 것은 임진왜란을 통해 한국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드물게 그 이전부터 고추가 한국에 있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고 그 근거를 고추장과 같은 발효식품으로 발전하는, 그리고 김치 등과 같은 다양한 음식에 폭넓게 고추를 넣은 조리법을 응용된 것으로 보았을 때. 당시의 습속 전래 속도상 적어도 200년은 걸렸을 것이고 그렇다면 적어도 임진왜란 보다 이른 시기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렇지만 현대 한국의 빠른 유행 속도를 국민성이라고 생각하면 고추의 전파는 과장 보태 몇일 걸리지 않았을 수 도 있다. “이거 넣으면 짱 맛있어지고 스트레스가 풀리면서 음식이 잘 상하지 않는다.” 라는 슬로건으로 5 일장을 돌아재끼는 장돌뱅이를 상상해보자. 허니버터칩 저리가라 할만 한 어마어마한 인기였을 것이다. 그래도 작물이자라는 기간이 있으니 몇십년은 걸렸을 것이다.
하지만 어디 물건이 마케팅만으로 팔린다던가 분명 고추에는 단순 채소의 한계를 넘어서는 (섹스어필?) 뭔가가 한국인의 정서를 관통하고 있었던 것이다. 1592년 임진왜란 이후 겨우 500년도 안되었는데, 고추는 식탁을 뒤덮었다. 한국보다 일찍 전래되었다던, 일본도 그렇지 않은데 말이다.
(사실 나는, 고추에 고추장찍어 먹는 걸 보면 말 다했다고 본다.)
일본에 고추가 전래된 계기는 스페인을 통해서 라는 이야기도 있고 중국을 통해서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일본의 고추가 중국을 통해서 들어왔다면 오히려 교역 순서상 한국에 먼저 들어왔을 수 있는것도 생각해 봄직하다. 하지만 그 어떤 가정으로도 결과적으로 현대 한국 요리에 고추가 많이 들어가는 것은 쉽게 설명할 수 없다. 북한 요리에 고추가 적게 들어가는 것도 참고 해서 생각해 볼 만하다. 추위에 작황이 좋지 않을테니..
일반 소비자에게 고추는 그저 고추일 뿐이지만 농가에서는 꽤 높은 수익을 제공하는 작물이다. 따서 풋고추로 팔기도 하고 말리고 빻아서 고추가루로 팔기도 하고 가공 형태에 따라 다양하게 유통이 되는데, 심고 추수하는 과정이 영 현대화 되지 않아서 가격이 쉽게 낮아지지 않는다. 바꿔말하면 엄청나게 품이 든다는 이야기 이다. 할머니 댁에서 고추를 따보면 알 것이다. 손은 아리고 허리는 아프고 볕은 뜨겁고, 풋고추 사이로 빨갛게 익은 고추를 골라 따는 일을 몇날 몇일을 반복해야 한다. 어제 녹색이던 놈이 오늘 빨간 꼴은 정말이지 한숨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농담처럼 고추의 ‘고’가 ‘맵다’가 아니라 ‘고생스럽다’라는 말도 한다.
고추장은 고추가루 + 장의 형태로 고추장의 종류는 찹쌀, 맵쌀, 보리, 고구마 등이 있다. 대부분 온라인 판매도 이루어지고 있으니 관심이 있으면 사먹어 보는 것도 좋겠다. 하지만 고추장의 소비란 것이 4인 가정 정도는 되고 집에서 자주 조리를 해 먹어야 회전이 된다는 느낌으로 다양한 고추장을 맛볼 수 있다. 1인 가구 그리고 점차 서구화 되는 식사 환경에서 2-3인 가구에서 다양한 고추장을 맛본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사서 나누는 방법을 고민해 봄 직 하다.
한국음식과 고추장과 관련해서 나도 20대 초반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어째 한국음식은 다양하지 않고 죄다 빨간 것인가. 에잉! 우리나라 음식문화 부끄럽..’ 비슷한 생각의 글을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본 일이 있다. ‘한국음식은 어째 빨간것만 있냐’는 투정이 있었는데, 논쟁은 뒤로 하고 나의 반성만을 적어보면, 인생을 살아보니 안 빨간 음식도 굉장히 많고, 설사 빨간 것이어도 그 맛이 다양해서 하나로 뭉뚱그릴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쉽게 예를 들면, 갓김치와 배추김치, 깍두기와 파김치를 생각하면 간단하다. 그것들이 어찌 다 비슷하다 말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깍두기만 해도 고추가루를 조금 씩 덜 넣는 방법 이외에도 집마다 담그는 스타일이 달라서 ... 김치 이야기는 과거에 했으니 이정도로 마친다.
고추장이나 고추가루가 들어간 음식이 너무 많고 다양해서 그놈이 그놈같지만 사실 고추마다 맛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재료에 다른 고추를 써도 그 맛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니 그냥 빨갛다고 퉁쳐서 비난하지 말자. 그래도 새누리당은 용서할 수 없다. 다 빨갛다.
요즘 인기가 많은 편의점에도 고추장이나 고추가루를 이용한 빨간 음식이 많은데, 그 음식의 가격을 생각해 보면 음식의 맛이 빼어나기 어려울 것임은 예측이 가능할 것이다. 제발, 유통 현실이 시궁창이래도 음식문화가 시궁창인 것처럼 생각하지는 말자. 우리가 모르는 한국 음식과 조리법이 많다.
요즘 그리운 고추장이 하나 있다. 외 할머니가 만든 고추장. 엄마가 쿡 찍어 맛보더니 맛있다고 했던 빨간 고추장. 나는 따라서 찍어먹어보고 맛있다고 말은 했지만 영 무슨 맛인지 몰랐던 그 고추장이 가끔 생각난다.
단맛이 없어서 그게 뭐 맛있는 고추장인지 몰랐던 그것을 옴겨 담으며, 엄마는 말했다. “몸도 안좋은데 힘들게 왜 이런걸 만들어.” 그래서 인지 그 이후로 그 고추장을 맛본 적이 없다. 그 이후로 외 할머니는 15년 넘게 살아계시지만 고추장을 담은 것은 그 즈음이 마지막 인것 같았다. 그렇게 되면 외 할머니가 전수 받은 제조법은 사라지겠지.. 별 특별한 제조법은 아닐지라도 조금은 서운한 일이다.
이렇게 글을 쓰자니 맨 밥에 고추장과 기름만 넣어 비벼 먹었던 군 시절도 생각나고, 여전히 어떻게 만드는 것이 제대로 만드는 것인지 모르는 떡볶이들도 생각난다. 그나저나 이렇게 고추장을 좋아하는 나라에서 레드콤플랙스는 왜 생긴거야.. 진짜. 글은 이제 끝이다. 그리고 다음달에는 뭘로 할지 정말 모르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