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 입니다. 비밀동툰 / 글. 그림. BEAMIL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 글. 사진. 아홉시 영화로 읽는 시공간 - 가난을 찬미하는 슬픈 광대. 찰리 채플린에 관한 명상 / 글. 곡주대비 한국영화 돌려 깎기 - 올망 졸망 / 글. 최지원, 곡주대비, exxx 여기 문학이 필요한시간 - 조신설화 / 글. 고수진 작곡가 B의 노트 - 너와 나의 연결 고리 / 글. composer B 조선소 노동자 - 그림. Min the Elephant 옆사람 인터뷰 - 노르웨이 청년의 서울 공부 / 글. 정리. 이내 idology’s pick -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 아이돌 보컬을 재발견할 가창력 블라인드 테스트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소개소 / 글. 신당동 파르한 다른 나라에서 / 글. 황효정 #67564A / 글. 사진. 김성연 건축이 좋아 - # 20. 꽃이 되어 나무가 되어 다시 만나길 / 사진. 글. aoikasa 구멍난 칼럼 : 메우는 코너 - 보궐선거와 멘붕의 사이에서 / 글. exxx 게임 노동 일지 / 그림. 글. 철민 물질과 비물질 - 16. 의자 / 글.김종소리 사진. 황은정 Road - 5. 해장국 / 글. exxx
5월입니다. 어린이날도 있고 어버이날도 있고요. 날씨도 너무너무 좋습니다. 갑자기 들이닥친 원고 펑크에 눈물을 흘리며.. 기다림의 끝은 펑크라는 락펑크정 신에 입각한 필진들의 활동에 팬질을 거듭하며..(아 이게 무슨소리인지..) 속이 시 커멓게 타들어가는 편집인이 졸음을 쫓으며 글을 쓴다는 것을 기억해주세요 흙흙. 이번달에는 종영된 코너와 펑크난 코너들이 겹치면서 갑작스러운 공황을 맞았습 니다. 편집일정마저 미뤄지는 바람에 다음달 필진 섭외마저 용이할지 걱정스럽기 도 합니다. 이별에 아파해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데 현실에 쫓겨 정신이 없네 요. 푸념은 이정도로 하고 ^^a 이미 아시다시피 날씨가 너무너무 좋습니다. 책을 들고 친구들과 산으로 들로 쏘 다니시기를 기원해 봅니다. 낮잠도 잘 수 있을 때 최대한 주무세요. 6월되면 더워 서 못잡니다. 지난 달을 끝으로 사진 코너였던 <낭만스파이>의 연재가 종료되었습니다. 그동안 여러 사진으로 월간이리의 면면을 알차게 채워주셨는데, 연재가 끝나 참 아쉽습니 다. 그래도 해외에서 간간히 원고를 날려주기로 하셨으니 기대를 슬쩍 해봅니다. 시간이 너무 잘 가는 것 같아 슬플지경입니다. 잘 가는 시간 가운데 저의 새로운 싱 글 <체조와 마음>도 챙겨 들으시면서 기운 챙기시기를 기원해봅니다. 월간이리는 여전히 여러분의 후원을 기다리고 있답니다. 우리은행 : 1002 045 784310
월간이리 exxx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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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밀 동물툰
Animal Toon by BEAMIL
귀여운 산체가 갖고싶은 사람들에게
* 2015년에도 여전히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나름 위트있게, 뜨끔하게 쓰고 그린 짧은 만화를 기고합 니다. 팩트를 뒷받침하는 기사와 간단한 의견도 함께입니다. 많이 공감해주세요. 제보도 감사합니다. twitter/ _beamilie 기사 원문의 훼손은 없으며, 요약 편집은 있을 수 있습니다.
* 지난 몇 달 삼시세끼 어촌편이 방영됐었다. 광고계를 섭렵하며 인기를 증명한 차줌마부터 못생김의 대명사격으로 취급받던 배우 유해진까지 여럿이 삼시세끼의 수해를 받았지만, 가장 화제가 되었던 캐릭터는 역시 ‘산체’였다는 것을 누구도 부정치 못하리라. 미숙하게나마 동물관련 글도 기고하고 있는 필자로써는, 새로이 나타난 ‘장모 치와와’종의 ‘슈퍼큐트’가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 았는데 그 이유는 그 프로를 보는 이들이 어떤 식으로 제 2의 산체를 소비하게 될 지 예상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전 시즌 삼시세끼에서의 ‘밍키’는 대중으로부터 유기견으로 오해받을 정도로 약간은 낯설고, 종종 불쌍해보이기도 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충분히 귀엽고 사랑스러웠던 밍키의 등장은 나를 그저 흐뭇하게만 했고 대중의 생각도 같았는지 확인 불가 능한 상태에서 봐도 밍키가 산체만큼의 파급력이 없었던 건 사실이다. 아니나 다를까 믹스견도 아니고 새로운 귀여움으로 무장한 산체의 등장은 삼시세끼 제작진도 예상 못 했을 정도로 큰 파장을 몰고왔다. 차줌마와 참바다씨의 케미나 예의 바른 후배 손호준의 활약도 아닌 산체를 보기 위해 삼시세끼를 시청한다는 팬들도 생겨났고, 방송 이 후에 톡에서 사용할 수 있는 이모티콘 등이 나오기도 하면서 그 인기에 보답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장모 치와와라는 살아있는 대상에 대한 대중의 실질적 소비로 이어지면서‘사지말고 입양하세요’라는 문구의 나약함을 증명했다. 대중이 살아있는 특정의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에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문제가 초래된다. (유행처럼 번지는 것은 모두 위태롭다.) 전국의 수많은 개장수들은 장모 치와와를 번식시키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할 테고, 운은 나쁘지만 건강엔 이상없는 장모 치와와 종은 영 문도 모른 채 번식장에 갇혀 제 2의 산체와 제 3의 산체, 제 100000... 산체를 생산해낼 것이다. 그리고 비관하자면, 수없이 소비되어진 제 2의 산체들은 적어도 2, 3년 안에 길에서 마주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입양’의 대상이 없는 상태에서의 “사지말고 입양하세요”가 얼마나 공허한지.. 언젠가의 글에서 방송에서 자주 보게 되는 동물들을 긍정적으로 언급했었지만, 사람이 좀 더 현명한 발상의 주체가 되지 않고서는 이러 한 소비가 긍정적이라고만 말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오마이뉴스 ‘삼시세끼’이후 인기 치솟은 장모치와와...전문가들‘우려’도 2014. 3. 19 [이현진 기자] 최근 tvN <삼시세끼-어촌편> 페이스북에는 강아지 산체의 근황이 올라왔다. 차승원, 유해진, 손호준 등 출연진을 담은 게시물보다 월등 히 높은 ‘좋아요’ 추천수를 자랑하는 이 귀여운 장모치와와는 프로그램이 낳은 의외의 스타다. ‘국민 강아지’가 된 산체 덕분에 장모치와와의 인기도 치솟았다.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한 것은 물론, 관련 기사가 쏟아졌고, 인터넷에서는 장모치와와의 가격과 판매처 등을 문의하는 글을 쉽게 찾을 수 있다. 특히 “예전에는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 었던 화운, 세이블 모색을 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한 애견샵 관계자의 말은 산체의 인기를 증명하고 있다. 얼마 전 SBS <한밤 의 TV 연예>에서는 <삼시세끼> 이후 장모치와와의 분양가격이 두 배나 올랐다는 내용을 전하기도 했다. 이에 우려의 목소리도 들리고 있다. 지난 13일 방송된 EBS <하나뿐인 지구> ‘강아지 공장을 아시나요?’에서는 산체를 예로 들며 갑 자기 인기를 얻은 품종이 충동 구매되고 버려지는 실태와 그 수요 때문에 죽을 때까지 열악한 환경에서 임신과 출산을 반복해야 하는 어미 개들을 적나라하게 담았다. 이 방송에서 이혜인 수의사는 “TV를 보며 ‘귀엽다, 갖고 싶다’는 마음이 들 수 있지만, 귀여운 모습은 4개월 정도밖에 안 간다”며 “충동적으로 특정 품종을 구입하게 되면 1년 뒤에 그 품종이 유기견으로 많이 발생된다”고 말했다. ‘공장식 번식’의 문제를 책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 등에서 지적해 온 강형욱 반려견 훈련사는 최근 <오마이스타>와의 인터뷰 에서 “몸이 약한 개에게서 태어난 강아지는 건강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소형견에게서 흔히 발생하는 슬개골 탈구를 예로 든 그는 “유전이고 기형이지만 이제 많은 강아지가 앓고 있어 당연한 병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우리나라에 좋은 브리더(동물분양업 자)가 없는 것이 문제”라고 꼬집었다. 강 훈련사는 “브리더들이 건강한 강아지를 태어나게 하고 잘 키울 수 있는 보호자들에게 입양 보내야 한다”며 “유기견을 입양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런 헌신과 사랑도 소유욕을 넘을 순 없기에 유기견이 생기는 근본적인 문제를 없애는 것이 먼저”라고 덧붙였다.
산체가 보고싶다면 Instagram @tvn_insta 으로 만족하세요
영화로 보는 시공간 리틀 트램프 (Little Tramp) 탄생 101 주년 기념: 가난을 찬미하는 슬픈 광대. 찰리 채플린에 관한 명상
4월에 채플린의 명작들 중 두 편이 디지털 마스터되어 재개봉 된다. 모던타임즈와 위대한 독재자가 그것 이다. 그의 영화들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일인이지만, 무엇보다 난 채플린 그 자체의 팬이다. 그는 배우면 서 배우라는 직업의 상징이고, 약장수처럼 모든걸 해내는 만능 아티스트며 (각본과 연기, 감독은 물론 음 악까지 담당한다), 그가 무수히 창조해낸 영화 속 에서 가난뱅이들의 영웅이고. 음…또 개인사로 좁히자 면, 내가 태어나서 두 번째로 극장에서 관람한 영화 (모던 타임즈) 의 주인공이다. 채플린은 언제나 슬프다. 그는 내게 한번도 웃음의 아이콘이 었던 적이 없다. 족히 그의 인생 만큼은 같 이 해 온 듯한 탑 햇 (top hat). 더 헤져 버리면 속살이 나올 것 같은 양복. 발가락이 다 나와 샌들인지 구 두인지도 모르겠는 신발. 실제 채플린은 가난뱅이가 아니었지만 그의 이러한 가난뱅이 페르소나는 철저 히 계산된 것이었다. 채플린이 부자들과 권력자들에게 휘두르는 귀여운 폭력, 요컨데 다리를 걸려 넘어지 게 한다 던지, 그들의 여자들을 꼬여낸다 던지 하는 ‘반항’들은 그가 보잘것없는 가난뱅이기 때문에 용인 될 수 있는 것 이다. 채플린에겐 가난이 권력이었고 그의 영화들은 전쟁에, 가난에 지쳐버린 민중들에겐 구원 같은 것이었다.
채플린의 팬이 아니어도 그의 역대작, 모던 타임즈 (Modern Times, 1936) 를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 영화 전체를 보지 않았어도 그가 거대한 톱니에 끼어 부품처럼 돌아가는 장면을 본 독자는 많으리라 생각한다. 공장의 생산라인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 채플린은 생산 수량을 맞추기 위해 점점 높아지는 가동 속도를 따라 가지 못해 급기야 기계 속 에 빨려 들어가 끼이게 된다. 이 어처구니 없는 씬은 보는 이로 하여금 실 소를 머금게도 하지만 사실상 공장의 기계만큼도 대접받지 못하는 하류층 노동자 계급에 대한 신랄한 풍 자이고 영화가 개봉되던 시점에 도처에 존재했던 군수공장들, 그 안에서 희생되던 노동자들, 그리고 가난 의 쳇바퀴에 ‘끼어 살아야’ 했던 저소득층에 대한 채플린의 연민일 것이다. 그의 또 다른 가난에 대한 연가, 씨티라이트. 채플린의 1931년 작품, 씨티라이트 (City Lights)에서 만큼 가 난이 아름답게 나오는 영화가 있을까. 떠돌이 채플린은 장님 꽃팔이 소녀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가 시력 을 회복할수 있게 도와주고자 그는 수술비 마련에 사활을 걸게 된다. 소녀는 수술을 할 수 있게 되어 눈을 뜨지만 이는 곧 그로 하여금 감옥에서 여생을 맞이 해야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그가 감옥에 있는 중 소녀 는 그녀가 앞을 볼 수 없었을 때 자신을 도와준 은인을 찾아 나서게 되고 결국 감옥에서 수감되어있던 채 플린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 둘 이 맞는 눈물의 상봉. 그들의 운명과 사랑이 그녀가 이고 다니며 팔던 초라 한 데이지 만큼이나 애처롭고 가냘프다. “채플린은 언제나 슬프다. 그는 한번도 내게 웃음의 아이콘이 었던 적이 없다.” 그의 축 처진 어깨, 짧은 팔과 다리, 그리고 그 짧은 다리로 가열차게 체중을 실어 만드는 다소 과한 팔자 걸음. 그의 몸을 감싸고 있는, 혹은 그의 몸의 한 부분으로 기능하고 있는 모든 장치들 그리고 그의 영화를 채우고 있는 사물들은 무엇 하나 슬프지 않은 것이 없다. 그립다. 가난이 이렇게 잘 어울리는 배우가. 가난 을 힘으로, 웃음으로 무기 삼았던 배우의 지혜가 그립고 그립다. 글. 곡주대비
최지원: 안녕! 유에프오(김진민 감독) 줄거리는 이렇다. UFO의 존재를 믿고 있는 시각장애인 경우
곡주대비 (hjkanjy@gmail.com) : 피아노 맨 (1996, 유상욱 감독 작)
(이은주)는 상현(이범수)의 동네에 UFO가 출현했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상현의 동네로 이사를 간다. 그곳에서 두 사람은
정말 부끄럽게도 이 영화를 최고의 스릴러
우연한 계기로 가까워진다. 하지만 시내버스 운전기사인
라고 외치고 다녔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상현은 경우에게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 친구 사이로 대한다.
중3때였나, 미성년자 관람 불가인 이
이처럼 영화에 등장하는 ‘UFO‘는 서사의 진행을 끌고 나가는
영화를 보기 위해 청량리 길바닥에서
중요한 소재로 등장한다. 과거에 UFO를 본 적이 있던 경우는
1000원짜리 립스틱을 사서 대충 바르고
UFO를 본 순간 잠시 시력을 회복했던 경험때문에 UFO를
매표소에 갔는데 표를 끊어주는 것이
다시 보기를 바란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UFO’라는
아닌가 (아름다웠던 90년대여…). 설레는
소재는 오히려 서사의 진행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어버린다.
마음을 안고 퀴퀴한 재개봉 관에 앉아
물론 영화에서 UFO가 등장하는 이유는 분명히 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가발을 쓴 연쇄살인마
짐작컨대 경우가 UFO를 통해 상현의 얼굴을 보게 되는 그
최민수 (그가 소리 지를 때 마다 가름마가
순간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UFO가 등장하는 몇몇 장면들은
돌아가는 옥의 티를 찾는 것은 별미) 는
단발적으로 웃어버리고 마는 에피소드로 소비된다. 주민들이
이 영화가 제공하는 최고의 스펙타클이
UFO가 나타났었다며 소동을 벌이는 장면을 예로 들 수 있다.
아닐까 싶다.
이 장면을 보면서 의문이 드는 것은 동네에서 UFO를 가장
이
보고 싶어 하던 경우는 영화 초반에만 그것을 드러내는 반면,
부정하고 싶거나, 혹은 무한대의 노력을
UFO의 존재에 대해 심드렁했던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UFO를
통해 이미 지워버린 독자들을 위해 간단한
기다린다는 것이다. 또한 UFO를 기다리는 경우의 캐릭터를
줄거리 설명을 하자면, 영화는 자신에게
보여주는 장면들은 단순하다. 경우의 컴퓨터 배경화면에 UFO
습관 적으로 폭력을 행사했던 아버지를
가 그려져 있을 뿐이다. 이처럼 ‘UFO’라는 소재가 영화에서
살해하고
별다른 기능을 하지 않은 채 소비되어 버릴 바에 애초에 ’
찢고 썰어 죽이는 재즈광 싸이코 패스,
영화에 등장하지 않는 게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최민수와 그를 추적하는 미모의 여형사,
이밖에 가수 전인권이 등장하는 장면이나 상현의 아버지가 만나는 여자가 있다는 설정이나 상현의 동생(봉태규)이 등장하는 장면들도 그렇다. 이 장면들 또한 이 영화와 어떠한 관련이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이 장면들은 서사와 어떠한 관계도 없으며, 이 장면들로 하여금 이야기를 확장되거나 관객들이 다음 장면에 호기심을 가질 수 있는 역할을 하지도 않는다. 별다른 이유 없이 단지 관객들을 웃기기 위해 쓰이고 마는 이런 장면들은 유치하게 느껴질 뿐이다. 사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떠한 것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상현과 경우에 대해 몰입하려고 할 때면, 느닷없이 튀어나오는 장면들 때문에 시큰둥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상현이 경우에게 “유치하지만 진심이란 말야.” 라고 외치는 장면이 있다. 나는 이 영화에게 말하고 싶다. 영화가 진심이라 하더라도 유치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영화의
존재조차
여성들만
모르는,
골라
혹은
잔인하게
이승연의 추격전으로 포커스가 맞춰져 있다. 즉 한국판 양들의 침묵 비스무레 버전이라 할까. 양들의 침묵과 조나단 드미 감독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피아노 맨이 너무 많은 장치를 양.침. 에서 퍼왔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싸이코 패스는 열혈 재즈광으로 가공할 만한 두뇌의 소유자고 그로 인해 요리조리 법망을 잘도 피해간다. 양.침의 버팔로 빌이나 한니발 렉터의 취향을 그대로 반영하는 대목이다. 게다가 양.침에서 지배적으로 사용되었던 심리학 적인 장치들, 즉, 렉터 박사가 오이디푸스 신드롬을 이용해 버팔로 빌을 조종 하는 것 같은 심리전 역시 피아노 맨에 고스란히 차용되어있다. 물론 우리의 이승연 형사는 범인의 어린 시절과 그가 재즈에 집착한다는 단서들을 가지고 마침내 그를 포획 (?) 하는데 성공한다. 사실 시놉만 놓고 보면 90년대에 한국에 이런 영화가 만들어 졌다는 것은 신선한 시도로 간주할 수 도 있을 정도로 파격적인 요소가 많다. 피아노 맨 이전에 싸이코 연쇄 살인범이라 던지, 그를 쫓는 여형사 (형사는 대부분 남자였다) 라던지 하는 소재/설정을 이용하는 한국 스릴러 영화는 많지 않았을 뿐더러, 피아노 맨 에서 이용되는 복화술 이나 (최민수가 다른 용의자로 누명을 씌우는데 이용된다) 여성을 살해하는 잔인한 방법들, 그리고 그에 대한 상세한 시각화는 동시대 다른 한국 영화들에게서 보기 힘든 요소들 이였다. 문제는 이 영화가 성공적인 스릴러 영화들에서 차용되었던 모든 (스릴러) 장르적인 관습들을 이 ‘한국형 스릴러’에 다 ‘우려’ 넣으려고 했다는 데 있다. 연쇄 살인범의 암울 했던 과거, 그의 범상치 않은 두뇌와 그에 걸맞는 아리스토 크래틱한 고상한 취미, 그를 쫓는 ‘뛰는 놈 위의’ 여형사, 그 사이의 묘한 심리전, 결과적으로 영화는 개연성 없이 감독이 써먹으려고 평소에 적어두었던 것 으로 추정되는 리스트의 나열이 되어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에서 잊혀져서는 안되는 주옥이 하나 있다. 바로 영화에서 여자들이 죽어 나갈 때 마다 시종일관 나오는 빌리 할리데이 (Billie Holiday) 의 summer time 이다. 재즈에 대해 쥐뿔도 몰랐던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빌리 할리데이의 초기 앨범은 물론 듀크 엘링턴 같은 빅 밴드 재즈 넘버들 까지도 모조리 사 모으게 되었다는 건 이 영화가 수여한 몇 안 되는 축복들 중 하나 일 것이다. 졸작을 보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허나 어린 시절 보았던 졸작들은 (영구와 땡칠이 전편, 전영록의 돌아이 시리즈 등..) 왜 그렇게 키치하고 즐겁기만 한지 모르겠다. 사실 그 당시에는 걸작이라고 칭송했던 작품들이었을 수도 있고 말이다. 지금 생각 해 보면, 걸작과 졸작의 차이는 참 미미한 것이 아닌가 싶다. 시대를 넘어 두고두고 회자 되는 것은 마찬가지 아닌가. 더군다나 그 영화가 말이야, 하면서 웃고 떠들 수 있다면 졸작이든 걸작이든 즐거운 명상 아니겠는가.
한국영화 돌려 깎기 올망 졸망 (망하거나 졸작이거나)
exxx : 우는남자 (이정범 감독) 이정범 감독의 전작 <아저씨>의 흥행은 아저씨라는 단
아주 싸움을 잘하는 늘상의 주인공이 나오고 언제나
어를 잠시나마 어쩐지 따뜻하고 훈훈하면서 그럴듯한 느
그렇듯 일직선으로 달려 간다. 어린이가 사라져 악당은
낌을 주게 만들었지만 현실은 무척 차가워서 그것은 그
덜 나쁜듯한 밍숭한 악당이 되었다. 남주인공의 목소리
냥 원빈이 난닝구를 입어도 빛이나는 그런 위약효과일
는 좀 덜 굵어 가벼워 보이고 여주인공은 좀 더 나이가
뿐이었다.
들어 관계의 명쾌함이나 순수함을 갉아먹었는데, 영화 는 참 매끈한 화면으로 재생된다.
농담은 치우고..아저씨가 흥행했을 때, 내가 주구장창 했던 이야기 중 하나는 만약에 원빈이 아니고 다른 남자
그 흔한 매끈함. 단순히 매끈함 만을 이야기 하자면 좋
주인공에 어린 김새롬이 아니라 젊은 여성이었다면 이 영
은 필름에 비싼 렌즈로 찍은 멋진 영화가 얼마나 많은
화가 과연 흥행했을까? 라는 질문이었다. 나는 여전히
데 이 영화가 뛰어나 보이겠는가.
이 질문이 유효하다고 생각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우는 남자가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우는 남자를 골랐다.
장동건. 원빈은 아니다. 하지만 언제나 얼굴 이야기를 할 때면 손에 꼽히는 그가 아닌가. 얼굴의 기대치 만을 생 각하면 사실 장동건이 원빈에 비해 전혀 밀리지 않는다. 세상에 현대 한국에서 장동건 앞에 누굴 놓을 수 있을 까? 동일선상이 아니면 그 뒤 일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얼굴을 이야기 할 때의 것이고, 여기에 목소리와 나이 등의 변수가 더해진다면? 그는 얼마나 유효한가? 김민희. 아저씨의 흥행공식 중 하나로 나는 어린 김새롬 을 꼽는데, 그녀가 연기를 잘해서라기보다 전혀 이성적 감정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하지만 영화 내에서는 미묘 하게 어필을 하는 구석이 있다고 생각한다.) 요소가 아 저씨의 순수함을 배가시켜 준다. 만약 김새롬이 아니라 좀 더 성숙한, 적어도 20대 전후의 여배우였다면 영화는 어정쩡한 액션 멜로로 치부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영 화는 미묘한 연기는 흩뿌리면서도 결정적 관계는 어른과 어린이의 그것으로 남겨둔다. 부인이 산모일 때 사고를 당해야할 이유가 없음에도 스토리상 그 시기를 택한 것 은 마치 이후의 관계를 애써 어른과 어린이의 관계로 규 정지으려고 한계선을 긋는 것 같다. 여기에 어린이라는 소재는 상대하는 악당의 악질스러움을 더하기도 하고... 이렇게 아저씨 이야기를 실컷하고 그 두부분을 툭 변화 시키고 나면 우는 남자가 나온다.
뭐가 뭔지도 모르겠고..
여기, 문학이 필요한 시간
작자미상, 「조신설화」
글. 고수진
‘망연히 세상일에 뜻이 없다. 괴롭게 살아가는 것도 이미 싫어졌고 마치 한평생의 고생을 다 겪 고 난 것과 같아 재물을 탐하는 마음도 얼음 녹듯이 깨끗이 없어졌다’
지금 시간은 자정으로 넘어가기 직전의 11시 59분이다. 퇴근 하고 씻고 망고를 잔뜩 얹은 요 거트를 먹고 뒤늦은 월간이리 원고를 쓰고 있다. 4월초부터 시작된 시험대비 기간이 어느덧 막 바지로 접어들었고 나의 4월을 그대로 학생들에게 바치고 으악, 봄도 빼앗겨 버렸네. 집 앞과 학원 앞의 벚꽃구경으로 봄을 보냈다. 정말 반포 지박 령이 될 것 같다. 아니 이미...
하필이면 이번 호 주제가 일장춘몽의 시작인 조신설화인데, 내가 무엇을 위해 이렇게 청춘을 보내고 있나 싶다. 예? 30대는 청춘이 아니라고요? 누가요?
일장춘몽이란 이런 것이다. 젊음, 부, 사랑, 우리를 둘러싼 지극히 개인적인 욕망들은 한 순간 의 꿈이고 고통의 근원이다. 그러니 잡으려고, 옆에 두려고 억지로 그렇게 삶에 구겨 넣지 말 자. 우리의 삶은 봄날처럼 이렇게 짧고 유한하니 말이다.
아, 그런가? 일장춘몽이 이런 뜻인가? 그렇다면 난, 와따시와 혼또니 뭐하고 있었단 말인가. 청춘을 고딩들에게 바치고 정작 나의 유한한 삶을 성찰하지 못한 체 이대로 이렇게 또 하루가 저물어 가는 것인가. 다시 한 번 찬찬히 읽어봐야겠다. 좀 더 깊은 뜻이 숨겨져 있을 것 같다.
「조신설화」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권3에 수록되어 있는 신라시대의 설화이다. 이 작품은 정토사의 건립과 관련된다는 점에서 사찰 연기 설화에 해당한다. 하지만 설화의 구조가 특이 하고 그 내용도 흥미로워 이후 다른 문학 작품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따라서 이 작품을 설 화로 보기보다는 소설로 보는 견해도 있다. (참고로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은 조선시대 김시습의 금오신화. 월간이리에서도 다루었었죠)
평소의 내적욕망을 꿈속에서 자신이 바라던 모습으로 체험하고 꿈에서 깨어나 참다운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구조를 가진 설화를 환몽 설화라 하는데 이 조신설화는 그 구조를 따르고 있다. 이후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에서도 이 형식이 쓰이게 된다.
먼저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조신은 경주의 세달사(世達寺:뒤의 興敎寺)에 속했던 명주(溟州:강릉) 장원(莊園)의 지장( 知莊:장원을 관리하는 사람)으로 임명되었다. 그곳에서 군수인 김흔(金昕)의 딸을 본 뒤 매혹되어 낙산사(洛山寺) 대비관음보살상(大悲觀 音像) 앞에서 그 사랑을 얻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수년 동안 정성을 다하였으나 그녀가 이 미 출가하여 자기의 소원을 이루지 못하게 된 것을 알고, 관음보살상 앞에 가서 원망하다가 지 쳐서 잠이 들었다. 뜻밖에 그 여자가 나타나서 사실은 마음으로 그를 사랑해 왔으나 부모의 명을 거역할 수 없 어 억지로 남의 아내가 되었지만, 이제 함께 살기 위해서 왔다고 하였다. 그는 기뻐하여 그녀 를 데리고 고향으로 가서 살림을 시작하였다. 40년 동안 깊은 정을 나누고 살면서 자식 5남매를 거느리게 되었으나 가난하여 사방을 떠돌 아다니며 10년 동안 걸식하였다. 명주의 해현령(蟹縣嶺)에서 15세 된 큰 아들이 굶어 죽자 길 가에 묻었고, 우곡현(羽曲縣)에 이르러서 길가에 초막을 짓고 살았다. 두 부부가 늙고 병들어서 움직일 수 없게 되자 10세 된 딸이 걸식하였는데, 그만 동네 개에 게 물려 드러눕게 되었다. 부부가 함께 통곡하다가, 50년 동안 고락을 같이했으나 이제는 늙 고 병들어 빌어먹기도 어렵고 자식들도 헐벗고 굶주려 어찌할 수 없으니 헤어져서 살아갈 길 을 찾자고 하였다. 부부는 아이를 둘씩 나누어 데리고 남북으로 정처없이 헤어지려던 차에 꿈에서 깨어났다. 그 의 머리는 백발이 되어 있었고, 속세에 살려던 뜻이 사라졌으며, 인생의 허무와 회한을 느꼈 다. 그 길로 해현령에 가서 시체를 묻은 곳을 파보았더니 돌미륵이 나오므로 이를 이웃 절에 봉안하였다. 그 뒤 정토사(淨土寺)를 창건하여 부지런히 정진하고, 그 후 종적을 감추었다. 이 작품의 구조를 먼저 살펴보자. 주인공은 자신의 내적욕망의 성취를 절실하게 원하여 결국 ‘꿈’을 통해 그 욕망을 성취하게 된다.
사실 조신은 처음부터 소원을 빌 대상을 잘 못 선택하기도 했다. 관음보살 상에게 자신의 욕 구를 들어 주지 않는 다며 원망을 하다니, 그러니 꿈에서 관음보살상이 시련을 주신 것도 없 지 않겠나싶다. 그는 또 불당(佛堂) 앞에 가서, 관음보살이 자기의 소원을 들어 주지 않는다고 원망하며 날이 저물도록 슬피 울다가 생각하는 마음에 지쳐서 잠시 잠이 들었다.
- 불행의 시작
그러나 그 꿈의 내용은 매우 가혹했다. 지독한 가난으로 인해 아름다웠던 그녀는 늙어 버렸 고 소중한 자식들도 잃어 버렸다. 결국 아내가 먼저 이혼을 요구했고 조신은 기다렸다는 듯이 그녀의 결정을 따르게 된다. 그리고 아내의 앞날을 빌며 헤어지려던 찰나 조신은 꿈에서 깬다.
그녀와 사십여 년 간 같이 살면서 자녀 다섯을 두었다. 집은 다만 네 벽뿐이고, 좋지 못한 음 식마저도 계속해 갈 수가 없었고, 마침내 꼴이 말이 아니어서 식구들을 이끌고 사방으로 다니 면서 얻어먹고 지냈다. 이렇게 십 년 동안 초야(草野)로 두루 다니니 옷은 여러 조각으로 찢어 져 몸도 가릴 수가 없었다. 마침 명주(溟洲) 해현령(蟹縣嶺)을 지날 때 십오 세 되는 큰아이가 갑자기 굶어 죽어 통곡하면서 길가에 묻었다. 남은 네 식구를 데리고 그들 내외는 우곡현(羽 曲懸)―지금의 우현(羽懸)―에 이르러 길가에 모옥(茅屋)을 짓고 살았다. 이제 내외는 늙고 병 들었다. 게다가 굶주려서 일어나지도 못하니, 십 세 된 계집아이가 밥을 빌어다 먹는데, 다니 다가 마을 개에게 물렸다. 아픈 것을 부르짖으면서 앞에 와서 누웠으니 부모도 목이 메어 눈 물을 몇 줄이고 흘렸다. 이후 꿈에서 깬 조신에게 밀물처럼 망연함이 몰려왔다. 무엇보다 꿈을 꾼 시간은 겨우 한 밤 의 시간이었으나 꿈속의 내용은 한평생을 다 산 듯하고 그리하여 피로감과 허무함이 그를 견 딜 수 없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관음보살상을 대하기가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꿈의 내용을 더 듬어 보니 큰 아이를 묻은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곳으로 가 땅을 파보니 돌미륵이 나왔다. 아, 관음보살님이 나를 깨우치려 꿈을 꾸게 하신거구나,
타다 남은 등잔불은 깜박거리고 밤도 이제 새려고 한다. 아침이 되었다. 수염과 머리털은 모두 희어졌고 망연히 세상일에 뜻이 없다. 괴롭게 살아가는 것도 이미 싫어졌고 마치 한평생의 고 생을 다 겪고 난 것과 같아 재물을 탐하는 마음도 얼음 녹듯이 깨끗이 없어졌다. 이에 관음보 살의 상(像)을 대하기가 부끄러워지고 잘못을 뉘우치는 마음을 참을 길이 없다. 그는 돌아와 서 해현에 묻은 아이를 파보니 그것은 바로 돌미륵(石彌勒)이다. 물로 씻어서 근처에 있는 절 에 모시고 서울로 돌아가 장원을 맡은 책임을 내놓고 사재(私財)를 내서 정토사(淨土寺)를 세 워 부지런히 착한 일을 했다. 그 후에 어디서 세상을 마쳤는지 알 수가 없다
이 돌미륵과 근처에 정토사라는 절을 세웠다는 결말을 통해 이 이야기를 사원 연기설화(절의 건립의 내력)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렇게 보기에는 이 서사구조가 참 재미있다.
놀라지 마시라, 조신의 신분은 바로 중이었다. 중이 관음보살에게 태수의 탈과 연을 맺고 싶 다고 소원을 비는 첫 장면부터 가히 충격적이다.
종교적인 관점에서 세속적 욕망이란 반드시 끊어버려야 할 것으로 가르친다. 조신이 소원을 비는 이러한 행동을 통해 세속적 욕망이 얼마나 끊기 어려운 것인가를 역설적으로 읽을 수 있 다. 인간이 인간다운 것은 욕망 때문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어렵사리 꿈속에서 이룬 사랑이 아름답고 행복하기는커녕 정반대로 고통의 연속이 었다. 가난, 지독한 가난으로 사랑을 파기해야만 할 처지에 이르렀고 조신은 헤어지자는 부인 의 말에 기뻐하는 지경에 이르고 만다. 애정에 대한 기대만큼 환멸도 컸음을 말하는 것인가?
‘꿈’이라는 것은 현실의 불만족스러움을 해소시켜준다고 한다. 그리하여 불만족스러운 삶에 서도 우리는 어느 정도 버티고 살 수 있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꿈’이 욕망실현을 넘어서서 현실 생활의 다양한 어려움, 즉 빈곤, 가족의 죽음, 이별 등의 삶의 괴로움으로 확정되고 있다. 조신설화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아무리 소망하던 삶이라도 현실 의 고난은 피할 수 없다 일까.
이 작품의 주제는 다분히 종교적, 불교적이다. 인생의 즐거움에 대해 욕망은 한 순간의 꿈이 요. 고통의 근원이니 그로 인한 집착을 버려야 한다’는 가르침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필자는 인생의 진정한 가치가 어디에 있을까 하는 질문이 든다. 조신의 빌었던 소망의 내용을 보며 욕구, 욕망을 누르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간에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 수 있다. 조금 더 인생에 대한 진지한 숙고가 필요하다.
심보선이 쓴 시 ‘풍경’에 이런 시구가 있다.
‘기다림의 부피란 언제나 일정하다. 이쪽이 체념으로 눌리면 저쪽에선 그만큼 꿈으로 부푼다.’
꿈으로 부풀었던 사람이 있었다. 용기를 내서 밥 한 번 먹자고 했다. 세심하며 감성적인 물고 기자리에 A형인 나는 그 와중에 핑계거리를 만들어야 했다. 그냥 밥 먹자고 하면 될 것을 월 급이 올랐어요. 라고 했다. 왜 그런 핑계를 댔는지 모르겠다. 뭐랄까 그 와중에 멋있어 보이고 싶었나보다. 도시여자같은? 아이고 이 부질없는 사람아. 그렇게 구질구질하면서 서글픈 핑계 를 대며 그의 반응을 보고 있는 나는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겉으로는 싫음 말구 이런 표정으 로 서 있었던 것 같은데. 대학교 때 연극한 게 좀 도움이 됐을 거라 믿으며 그렇게 짧고 짧은 20초를 견뎌야 했다.
‘아마 이정도면 상대도 알아차리지 알았을까, 월급이 올랐는데 왜 지를 사주겠냐. 부모님이나 절친을 챙겨야지, 이 바보야’를 연신 외쳐댔다. 머릿속에서 혼돈의 우주를 만들어 갈 때 상대 는 ‘언제가 편해요? 한 번 시간을 맞춰 봐요.’라고 대답을 해 주었다.
싱긋 웃는 그의 얼굴을 보며 ‘그동안 결연아동들을 다달이 도와주고 보모님께 효도관광 시켜 드리고 뭐 그런 일들을 이렇게 긍정적인 선물로 주시나이까. 신이시여.’ 굉장히 신이 나서 연 신 ‘신이시여, 퐈더,’를 외쳤었다.
그러나 신은 가혹하게 ‘그런데 그거 아니? 시험기간이다 이 똥멍청아.’ 를 안겨주시며 결국 4 월을 통으로 그냥 한 달을 그렇게 날려 버리고 말았다.
미루고 5월이 오고 있다. 그도 바쁘고 나도 바쁜 4월이 그렇게 지났다. 그리고 상대에게는 이 미 다른 연인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다행이다. 바쁜 4월에 명확히 알게 되어서 말이다.
내게 밥 한 번 먹을까요는 굉장한 용기였는데 이 굉장한 용기는 장렬하게 전사하고 말았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는 가슴에 묻어 두고 이제 학원 측의 배려로 1주일간의 휴가를 어떻게 보 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 약 7개월 정도의 인연이었다. 아무렇지 않게 지인으로 남을 수도 있 지만 못 된 희망을 품었던 적이 있어서 차마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볼 수가 없었다. 당분간 마음 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하다.
짧은 삶 동안 계속 우리는 끊임없이 갈구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언제나 적당하게 만족스럽 게 손에 잡히지 않을 것이다. 일장춘몽이란 그런 것 같다. 당신의 마음을 가라앉힐 온전히 나 만을 위한 시간.
꿈같다.
다음시간에는 다시 현대 시로 넘어 오겠다. 이 페이지를 쓰면서 이렇게 최근에 나온 현대시 를 다루어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데, 심보선 시인의 「슬픔이 없는 십 오초」를 같이 읽어보 려 한다.
지각하면 보강이다.
1악장. 쓰는 자와 듣는 자 혹시 기성 작곡가(보통 대학원을 졸업하거나 유학을 다녀온 뒤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경우가 많다)들의 작곡 발표회에 가본 적이 있는가?
흔히 우리가 ‘현대음악’이라고 부르고 앞에 ‘난해한’과 같은 수식어를 붙이곤 하는 음악을 작곡해서 발표하는 연주회 말이다. 그 발표회의 프로그램 노트나 팸플릿에 적혀있는 작곡가들의 설명이나 창작 의도는 대개 비슷비슷한 경우가 상당히 많다. 작품의 성격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은 ‘관객과의 소통’ ‘다가가기 쉬운’ ‘실험적’ ‘한국적’ ‘그러면서도 세계적인’ 대략 이런 단어들이 많이 쓰인다. 얼핏 설명만 본다면 이 곡에는 대중들이 괴리감을 느낄 만큼 불필요한 수준의 전위적인 요소도 없으며, 그들이 말하는 ‘한국적인 것과 세계적인 것1)’을 가장 작곡가 B의 노트
이상적으로 조합한 음악으로 보인다.
<너와 나의 연결 고리> 하지만 연주를 듣고 나온 청중들 -대부분 작곡과 학생들이다- 의 글.
composer B
반응은 여전히 비슷하다. 잘 모르겠다, 어렵다, 지루했다- 이런 반응이 대다수이고 ‘꼭 저렇게 작곡해야 인정받는 건가’와처럼 반감이 느껴지는 볼멘소리도 많다.
여러 해 동안 곡을 쓰고 들어왔지만 참 알 수 없는 일이다. 작품을 쓰는 사람들은 최대한 관객에게 다가가고 싶어 하지만, 그에 대해 친근하게 느끼는 관객들은 많지 않은 상황. 굳이 책임을 묻자면, 어느 쪽에 더 무게추가 쏠리게 될까?
혹자는 최근에 창작되는 음악에 대해서 청중들이 큰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작품을 써도 묻힐 수밖에 없고, 업계 전체에 반향을 일으킬 정도의 열광적인 반응 같은 것은 더더욱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이에 대한 청중들의 반론 또한 존재한다. 물론 청중 혹은 대중들이 창작자의 모든 예술적 의도를 항상 고차원적인 수준으로 분석하고 이해하는데서 비롯된 선택을 한다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지금까지 즐기고 있는 수많은 명곡들은 결과적으로 대중들의 귀를 사로잡았기 때문에 셀 수도 없이 연주되고 재생산되고 있는 것들이 아닌가?
사실 이 ‘쓰는 자와 듣는 자’의 문제에 있어서 정답은 의외로 간단할 지 도 모른다.쉽게 말해서 ‘사람들이 다시 듣고 싶어 하는 음악’을 만들면 된다. 물론 문제는 그게 쉽지 않다는 게 문제겠지만... 1) 작곡가들에게 클리셰처럼 되어버린 표현인데다가 음악의 다양한 면을 지나치게 이분법적으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아 나는 이 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
2악장. 이거 다시 듣고 싶으신 분? 작곡가와 청중이 가진 인식의 차이가 큰 이러한 현상은 비단 최근뿐만의 일이 아니다.
아마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많아서 음악사에 대한 글을 조금이라도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에 쉽게 수긍할 텐데, 지금은 불후의 명곡으로 칭송받는 수많은 작품들도 대중들 앞에 처음 공개되던 역사적인 초연 당일 비판에 시달려야 했던 일들이 숱하게 있지 않았던가. 물론 발표 당시에도 열광적인 반응에 힘입어 초 단시간에 명곡 소리를 듣던 작품들이 없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위치에 비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흑역사급의 초연을 치러버린 작품들의 임팩트가 너무 크기 때문에 ‘원래 걸작은 당대에 이해를 못 받아’ 같은 이야기가 나올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지금 작곡되고 있는 작품들이 주는 Francis Bacon
거리감은, 몇 백 년 전에 베토벤이나 차이콥스키가 겪었을 초연 스캔들과는 조금 다른 선상에서
개방적인
음악가마저
‘조성체계는
우리에게
봐야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거부하거나 벗어날 수 없는 가족이나 친구와도 같다. 이것을 어떻게 쉽게 버릴 수 있겠는가’며
나는 국내 작곡계의 상황에 대한 생각을 할 때마다
대놓고 의문부호를 단 사람도 있다.
제2 빈 악파2)를 떠올리곤 한다. 기나긴 시간동안 서구 음악세계를 지배해 온 조성음악의 체계를
그런데 답답한 것은 현재 상당수 음악대학
본격적으로, 그것도 아주 파격적인 방법으로
작곡과에서는 이 쇤베르크의 무조음악4) 이나
깨뜨리고 부정했던 작곡가 쇤베르크는 일찍이
음렬기법에 대해서 신앙 수준의 믿음을 가지고
사람들에게 ‘머지않아 사람들은 내가 작곡한 무
있는 선생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또한 그들
(無)조성 선율을 휘파람으로 불며 거리를 거닐
중 일부는 ‘새로 곡을 쓰는데 조성음악으로 쓰면
거야’라고 말했던 바 있다. 하지만 우리 시대에
유치하고 안일한 것이다’라는 해괴망측한 고집을
정말 그런 모습을 볼 수 있게 되었는가? 전혀
부리기도 한다. 어쩌면 이러한 독선은 ‘조성음악은
그렇지 않다.
대중 영합적이고, 무조 음악은 학구적이다’와 같은 생각과 맞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공부 깨나
이것은 사람들의 근본적인 사고체계 자체를
했다는 교수나 강사들마저 스스로가 왜 자신의
뒤집어 놓는 일대 사건-그 ‘사건’이 긍정적인
작품에서 조성을 피하려 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미든 부정적인 의미든-이었다. 물론 이렇게
질문에 대해서 ‘안 그러면 안 알아주잖아’와
새로운 음악관에 대해서 열광하는 음악가들도
같은 무책임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런 코메디
있었지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이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한, 국내 작곡과의 침체된
대다수였다. 심지어 레너드 번스타인3) 처럼
분위기는 아마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2) 20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쇤베르크, 베베른, 베르크를 일컫는다. 3) 1918-1990, 미국 출신의 세계적인 지휘자, 작곡가, 피아니스트이자 음악학자. 4) 물론 무조음악 안에서도 다양한 갈래가 있다. 하지만 초창기의 무조음악을 보다보면 단순히 조성을 회피하는데 지나치게 집착 하는 경향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3악장. 어쩌면, 자기 객관화의 문제 그래, 좀 양보해서 음악관의 차이라고 생각을 해보자. 하지만 그런 작곡가들이 작품 발표회를 하면 연주회장에서는 어떤 풍경이 벌어지는가?
여전히 객석에는 그들의 가족이나 제자들이 억지로 와서 앉아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며 빈자리가 관객 수보다 더 많은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면서 그들은 ‘현대음악이 어렵고 난해하겠지만 탐구하는데 의의가
있으며,
반복해서
들어보면
무언가
느껴질 것이다’고 말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초대권이나 은근한 압박이 아니면 제대로 표를 팔기(잠깐, 표를 ‘팔았다’라고?) 힘든 현실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쉬운 음악만 들으려한다’며 자조 섞인 푸념을 동시에 늘어놓기도 한다. 대체 이게 뭐하자는 상황인지 원.
매체가
대답하면 할 말이야 없고 그저 부러울 따름이다.
다양해지면서, 사람들은 굳이 학교에서 음악을
아마 그런 말을 하는 작곡가는 이미 세계적인
전공하지 않아도 높은 수준의 감식안을 가질 수
명성을 누리고 있는 사람일 테니까.
음악을
접하고
공부할
수
있는
있게 되었다. 또한 몇 십 년 전처럼 의도적으로 난해하다는 반응을 유도해낸 뒤 평론가들에게 ‘
다만 그들이 작곡 발표회의 썰렁한 객석들을
알고 보니 예술적이다’는 소리를 듣는 시대도
확인한 뒤에도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학부를
지났다. 물론 그러한 의도적 난해함이 정말로
졸업한 뒤에도 작곡을 하겠냐는 질문에 고개를
음악사 전체적으로 봤을 때 아주 혁신적인
젓는 제자들을 보고서는?
무언가를 보여준 작품이거나, 창작자의 의도를 확실하게 전달할 수만 있다면 그건 그 자체로
아무리
작곡이
창작자
스스로의
정체성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드러내는 분야라고는 하지만 아무도 다시 듣고
하지만 새로운 트렌드를 제대로 쫓아가지도
싶어 하지 않는 곡만을 쓴다면 그것이 어떠한
못하는 마당에 이미 시간상으로도 대중들과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
거리감이 있는 철지난 기법들을 들먹여가며 ‘ 현대적이다’라고 말하는 속임수는 그만두어야
‘당신들은 이것의 가치를 몰라’같은 말을 대놓고
한다.
하는 오만함은 벗어던져야 한다. 심지어 앞에서는 ‘청중과의 적극적인 소통’이라는 문장을 적어놓고
그냥 현대음악은 원래 난해하다느니 어쩌니
뒤에 가서 내뱉는 푸념이라면 말이다.
하면서, 연주자가 틀리게 연주하면 작곡자가 틀렸는지도 모르는 그런 음악은 그만 했으면
감상자와의 거리를 좁히려는 노력을 자존심
좋겠다는 말이다. 물론 내가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상하는 행위로 치부하는 한 창작음악계의 미래는
‘나는 내 음악이 듣기 좋고 또 듣고 싶던데’라고
계속해서 어두울 수밖에 없다.
조선소 노동자 #2 행복한 아침식사
Min the Elephant @mintheelephant
3_ 노르웨이 청년의 서울 공부
옆 사람 인터뷰
이달은 노르웨이에서 온 David의 이야기를 들어 본다. 진달래가 피어날 무렵 한 등산모임에서 그를 만났다. 밝고 1_ Granz Globewalker, 여행하며 음악하기 꾸밈이 없는 그에게는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우면서도 동시에 주변 사람들을 잘 챙기는 재주가 있었다. 먼 나라 혹은 이웃 나라일지도 모를 노르웨이에서 온 David. 그의 눈으로 본
교환학생으로 와 있다. 영국에서와 한국에서의 학교생활 중
서울 풍경과 노르웨이 냄새를 맡아 보자. 킁킁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하다.
�� ���� ��� ��� ���� ���� ���� ��� ����� ��� 밤�� �� ��� ���� 결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되었는지 궁금하다.
한국은 단체 활동이 많고 소속감이 강한 것 같다. 예를 들어
�� 사람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어디에 가도 있
고려대학교는 그들만의 응원가와 춤, 특유의 응원 방식이 있
영국에서 대학교에 다니고 있고 현재는펼쳐진 고려대학교에 교환 는 것은 사람이요, 사람으로 시공간이
다. 영국에서 재학 중인 더럼대학교는 단과 대학별로 커뮤니
학생으로 와 내가 있다. 아버지가 노르웨이인이고 어머니가또한 한국 었다. 만났고 만나고 있는 사람들 인이다. 노르웨이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한국이 궁금했고, 아름다운 여행지의 하나였다. 여행을 이야기하 이곳에 교환학생으로 온 이유이기도 하다. 고 싶었으나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생
티가 나누어져 있어서 그럴 수도 있지만 확실히 덜하다. 학
각했다. 사람을 여행해볼 작정이라고. / 서울에서 지낸 지 얼마나 되었나.
교 외에도 한국은 서양의 개인주의와는 반대로 공동체 의식 이 강한 것 같다. 우리나라 여행은 많이 했나.
지난 8월에 한국에 왔다. 교환학생으로 두 학기를 신청했고 게스트하우스에는 다양한 삶이 오고갔다. 그 이번 학기가 마지막이다. 랜트는 미국에서 온 장기 투숙객이었는데, 여
한국에 온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어렸을 때 가족여행으
행을외에도 온 사람치고는 꽤 정적이었 학교생활 다른 활동을그의 하는 하루가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안 틈틈이 놀러 다녔고 서울에 있는 유명한 곳은 다 가본 것
다. 그는 공간에서 편의점 음식을 먹거나 하고 있는 일들은공용 무엇인가.
같다. 하지만 서울과 일산 외의 다른 지역은 가본 적이 없다.
로 온 적이 있었다. 세종문화회관에 가고, 동대문에 가서 옷 을 사고, 산낙지를 먹었던 기억이 난다. 교환학생으로 있는 동
비틀즈의 전곡을 모아 놓은 교본을 옆에 두고 기타를함께 치고는 했다. 내가 그의 반려자와 다름 학교생활과 SeoulSync에서 인턴십을 하고 있다. 여기서
교환학생으로 왔으니 타지에서의 생활이라고 해도 크게 어
내가 하는 이벤트두 기획이다. 야외 활동을 많이 없던일은 기타를 동강 주말에는 내기 전까지는(당분간
려운 없을 것 같다. 혹 힘든 점이 있었다면. 는 점은 비틀즈와 로드리게즈 만큼이나 그의 노래를
하려고Hey 한다.Jude를 지난 학기에는 수영 클럽에 들기도없으리라). 했는데 지금 배우겠다고 설칠 일은
좋아한다. 낯선 곳이니 누구를 만나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할 때
은 인턴십과 시간이 겹쳐서 못하고 있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은 그가 의사가 될 것을 SeoulSync에 대해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거다. SeoulSync 기대했지만 6살 때부터 그는 음악을 꿈꾸었다 를 소개한다면. 고 한다. 소망은 오랜 시간 그대로였으나 대학 을 졸업한 후에야 그는 온전히 음악을 하기로 웹 출판을 기반으로 하는 커뮤니티다. 한국과 한국의 생활에 마음을 먹었다.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기사, 사진, 영화, 이벤트 등 다양한 미 디어를 창출하고 공유하는 장을 마련한다. 2014년에 시작한 그를 마지막으로 본 날, 직접 녹음한 아홉 벤처 기업으로서 세계적으로 한국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연결 곡이 담긴 CD 한 장을여기 선물로 받았다.있다. 요즘 나 하는 다리가 되는 것이 목표다. 홈페이지가 www.seoulsync.com
가 있다. 그럴 때일수록 낯선 곳을 탐험하고 사람들과 교류하 려고 하는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에는 이런저런 조금 더 오래 머물 줄 알았는데 시드니에 갔 활동을 많이 하려고 했고 특별히 어려운 점이 없었다. 이건 사 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람마다 다른 것 같다.
나도 오래 있고 싶었지만 관광비자만으로는 그 David의 눈으로 본 한국 혹은 서울의 매력은? 럴 수 없었다. 한국에 다시 가고 싶고 그전까 지 시드니에서 보내려고 한다. 비행기 공동체 의식이다. 그시간을 안에서 서로 챙기는 모습이 좋다. 또 유럽 표를 2시면 사기 가게가 위해 잠시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 에서는 문을 닫고 집에 가야 하는데 서울에서는 밤을 새고 5시에 해장하고 집에 가도 된다. 하하 서울의 경우
도시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다. 다른 나라나 도시의 경우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 도시 밖으로 나가야 하 는 경우도 많은데 서울은 그렇지 않다. 노래방, 영화, 등산 등 다양한 여가 활동을 할 수 있다. 또 한국은 유럽의 다른 나라와 는 다른 아시아만의, 또 한국만의 문화와 역사, 색깔이 있고 그게 매력적이다. 글로벌 시대이지만 노르웨이라는 나라가 친숙하지만은 않다. 내게는 오로라와 아름다운 자연의 나라다. 얼마 전 본 기사에 서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라고 하더라. 고향인 노르웨이를 이야기한다면. 노르웨이는 푸른 자연과 숲, 맑고 신선한 공기로 유명하다. 또 복지 제도가 잘 정비되어 있어서 살기 좋은 곳이라는 데 동의한 다. 일하며 보내는 시간보다 여가 시간이 더 많고, 주말을 가족들과 함께 보낸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주말에 가족과 숲이나 산에 가서 시간 보내기를 즐긴다. 버섯을 따서 먹기도 하고 스키를 타거나 낚시를 하거나 보드게임을 한다. 우 리는 이처럼 가족들과 친구들과 아늑한 시간을 보내기를 좋아한다. 한국에서의 버킷리스트가 있다면 무엇인가. DMZ에 가고, 설악산을 등반하고 싶다. 또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부산과 제주도를 여행하고 싶다. 서울의 명소는 대부분 가 봤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공간들이 있을 거다. 숨겨진 공간 발견하기. 그리고 학기가 끝난 후에도 한국의 문화를 조금 더 느끼다 가고 싶다. 이따금 그는 한국어로 말했다. ‘몰라요’, ‘아니요’, ‘좋아요’ 나라와 나라의 경계가 많이 허물어진 요즘, 어디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을 그는 빠르게 한국 문화에 적응한 듯 보였다. 생활과 여행, 우리나라와 노르웨이가 그에게는 양면과도 같았다. 시시각각 변하는 익살스러운 표정이 카멜레온 같은 그의 모습을 대변한다.
미스터리 음악쇼 〈복면가왕〉 2015.04.25 by 별민 | 전문 보기 : http://idology.kr/4149
이미지 ⓒ MBC
[…] 경연이라는 형태는 필연적으로 스타 파워에 의존한 다. 승부에는 승자가 있게 마련이고, 주목받는 승자 가 등장하는 그 과정 자체가 핵심적인 스토리를 형성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드라마를 좀 더 극적으로 만 들기 위해 몇몇 경연에서는 과도한 작위적 연출을 시 도해 거부감을 얻기도 했다. 그리고 그 거부감이 누 적되어 한동안 거세게 불었던 오디션 프로그램의 열 풍은 최근 한풀 꺾인 분위기를 내고 있었다. 이런 상 황에서, 냉정히 말해, 시청자가 MBC <복면가왕>을 시청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익명성에 있었다. <복면가왕>에 참 가한 가수들은 모두 기존에 자신이 갖고 있던 캐릭터 와 드라마를 버리고 가면을 통해 전혀 새로운 익명의 캐릭터를 부여받는다. 결국 집중하게 되는 것은 바로 노래 그 자체다. 실제로 <복면가왕>이 참가자의 익 명성을 최대한 지키기 위한 철저한 장치를 해두기도 하지만, 가수의 정체를 알 수 있는 단서로 주어지는 것은 성별뿐이라는 점 때문에 많은 방청자들과 시청 자들이 가수의 원래 정체를 유추하기 위해, 혹은 유 추하는 것과 상관없이 노래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되 는 것이다. 따라서 <복면가왕>의 ‘가면’은 음악 프로그램으로서 음악에 대한 진정성을 추구함과 동시에, 공정한 승부 로서 스포츠적인 면모가 극대화된 경연 프로그램의 묘미를 극대화한 장치인 셈이다. 스포츠 경기에서 선 수의 개인적인 스토리까지 일일이 고려하며 경기를 관람하는 관중은 아마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대 부분은 경기 내용에 근거하여 그 날 일시적으로 생겨 난 선수들의 캐릭터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복면 가왕> 가면의 디자인이 프로레슬러와 비슷하게 느껴
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복면가왕>은 노래를 휘두르고 던지고 받는 스포츠다.
[…] 아이돌 보컬에 대한 주목도 다른 어떤 음악 프로그램 보다 더 자연스러운 형태로 이루어진다. 파일럿 방송 당시의 우승자였던 EXID 솔지부터, 2AM 조권, FT아 일랜드 이홍기, 지나, B1A4 산들 등 여러 아이돌이 이 프로그램에서 가창력으로 재조명 받았다. 아이돌 에게 굳이 기성 뮤지션과 같은 연출을 요했던 <불후 의 명곡>보다, 처음부터 가수 간 장르 격차를 없애버 린 <복면가왕>이 시청자로 하여금 조금 더 아이돌 보컬을 편하게 받아들이게 할 것이다. 실제로 <불후 의 명곡>에서는 ‘아이돌 치고 노래 잘하는 친구’에 머물렀던 산들은 <복면가왕>에서 ‘중견 가수의 목소 리다’라는 확신까지 받아 반전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래서 신기하게도, <복면가왕>은 이겨도 행복하고 져도 행복한, 그저 노래 부르는 것이 행복한 가수들 을 그려냈다. 가수 지나는 4월 19일에 방송된 <복면 가왕> 3회에서 “(심사위원이) 내 목소리를 딱 알아챘 을 때 그걸로 저는 벌써 승자가 된 느낌이었어요”라 며 내심 정체를 알리고 싶었던 심정을 고백했다. 실 제로 <복면가왕>의 승자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중들 에게 이미 충분히 익숙한 가수보다 기대감이 없는 상 황에서 고평가를 받은 가수들이 더 쉽게 승리하는 경 향을 발견할 수 있다. 패배해도 그의 목소리를 그렇 게 쉽게 알아챌 정도로 그 동안 많은 사람이 그의 노 래를 사랑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셈이고, 승리하면 걸 출한 가창력의 가수임이 증명되는 셈이니, 승부지만 모두가 이기는 승부를 만들어낸 것이다. […]
이미지 ⓒ 신컴 엔터테인먼트
신화 17주년
1998년 3월 24일 데뷔한 신화는 한국 최장수 아이돌이자 한국 아이돌계의 입지전적인 그룹이다. 그런 신화 의 데뷔 17주년과 팬클럽 ‘신화창조’ 10기 모집을 맞이해 아이돌로지는 신화의 다양한 양상을 살펴볼 수 있 는 특집을 준비했다. 오래된 만큼 아이돌의 역사를 일궈온 신화. 그들이 한 국 아이돌 사상 최초로 해낸 일들을 모아보았다. 단지 http://idology.kr/4004 by 박준우 아이돌 1세대라서 처음 한 것들도 있지만, 오직 신화 였기에 가능했던 일들도 있다. 루머 빼고, 비공식 빼 고, “‘신화’란 이름으로 데뷔한 첫 아이돌” 같은 것도 신화는 아이돌 1세대 중에서도 남성성을 중점적으로 모두 빼고도 한참 남는, 우리 아이돌계에서 신화가 최 어필한 그룹이다. 그러나 남성미를 내세우는 것에만 초였던 기록들. 그치지 않고 남성성을 상품화한다는 비교적 급진적 인 전략을 행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보깅 댄스나 뮤 지컬 〈헤드윅〉 등 LGBT 친화적인 행보를 통해 단지 선 굵은 마초적 보이그룹 이상의 의미를 보여주기도 했다. 박준우가 젠더 중심으로 들여다 본 신화의 역사.
신화, 그리고 남성성
“‘짐승돌’이라는 이름이 처음 붙을 만큼 근육 을 뽐냈던 적도 있었다. 무대에서 여성과 호흡 하는 순간도 잦았고, 심지어는 누드집을 내기 도 했다. 활동하는 기간이 길었던 만큼 남성미 를 과시하는 순간도 정비례했다. 그러나 ‘Venus’ 이후로 신화는 조금씩 변화를 모색한 다. 신화는 단순히 ‘오래 했다’는 것만으로 존 경받아야 할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고 있는 지에 대해 존경받아야 할 것이다.“
2nd Listen : 신화 디스코그라피 http://idology.kr/4029
신화창조 비망록 http://idology.kr/4074 by MIL
아이돌로지는 “1st Listen” 코너를 통해 열흘 간격으 로 아이돌 신보를 집중 리뷰하고 있다. ‘해결사’에서 ‘표적’까지, 지난 만 17년간 발매된 신화의 앨범 12장 에 대해 새롭게 바라본다. 발매 당시의 맥락과, 지금 다시 들어야만 들리는 것들까지. 아이돌로지 필진의 전집 회고전 리뷰.
오빠가 처음이에요 http://idology.kr/4058 by 13
‘난 이대로 괜찮은가?’하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아이 돌 팬질. 팬클럽 ‘신화창조’ 10기를 모집한 신화의 팬 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회인이 되어 신화를 ‘재발 견’한 한 신화창조가 바라본, 신화와 팬질의 의미. “몇 번씩 사표 던지고 싶은 순간에도 끝까지 막아준 최종수비수가 신화다. 신화가 밥 먹여 주냐고? 신화 보려고 개미처럼 일해서 그 돈으 로 먹고사는데, 이 정도면 신화가 밥 먹여준다 고 봐도 괜찮지 않을까?”
엑소 - EXODUS SM 엔터테인먼트 2015년 3월 30일
엑소 - “Call Me Baby” https://youtu.be/yWfsla_Uh80
김윤하 : 훵키한 댄스 팝 ‘Call Me Baby’가 보여주는 풍경은 데뷔곡 ‘마마(MAMA)’에서 ‘으르렁’, ‘중독’을 거친 그룹 엑소의 여정이 그대 로 새겨진 동시에 블랙비트, 신화, 동방신기 등 자사 남성 그룹 역사 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 유토피아다. 웬만한 단편영화 이상의 물량 이 동원되었던 일련의 티저 영상부터 매 앨범 정규 이상의 볼륨을 고 집하는 면까지 SM 엔터테인먼트가 이 그룹에 대해 얼마나 특별한 정 성과 공력을 기울이고 있는지 더 이상 의심할 필요가 있을까. 지난 상 처를 모두 잊고 그 정상의 기운을 마음껏 즐기는 데 큰 부족함이 없 는 앨범이다. 언더독(Underdog)이 참여한 ‘시선 둘, 시선 하나(What If..)’나 ‘EXODUS’, ‘Beautiful’ 등, 타이틀곡이나 공연 퍼포먼스를 위해 특별히 구성된 곡들을 제외하면 가요 팬보다는 메인스트림 R&B를 즐겨 들어온 이들에게 어필할 요소가 풍성한 앨범이라는 점도 흥미 롭다. 오요 : 타이틀곡 'CALL ME BABY'는 많은 이들이 지적하듯 엔싱크를 강하게 연상시키지만 90년대, 2000년대 초반 영미팝 레퍼런스를 잘 못 주워먹고 체한 몇몇의 사례들과는 달리 충분히 설득력을 가질 뿐 만 아니라 초기 엑소 곡('HISTORY', 'MACHINE' 등)에서 들려준 세밀 하면서도 짜임새 있게 직조한 사운드를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 올렸다. 음반의 구성 또한 유기적이면서 통일성이 돋보이는데 아이돌 음반에서 으레 발견할 수 있는 '흐름을 잘라먹는 어색한 발라드'나 다 른 곡들에 비해 질이 한참 떨어지는 '수록곡을 위한 수록곡'이 없다는 점도 고무적이다. 이 정도면 레퍼런스에 매몰되지 않고, 이를 바탕으 로 훌륭한 엑소의 음반을 탄생시켰다고 봐도 되지 않을까.
미묘 : 그다지 뭔가를 증명하고자 하지 않는 듯하다. 좋은 음악과, 괜 찮은 보컬 조합으로서의 미쓰에이 외에는 말이다. 이를테면 '다른 남 자 말고 너'는 비트의 패턴이나 흐드러지는 색스 샘플, 퍼커시브하게 사용되는 기타 등이 여성 아이돌 세계에서 무척이나 유행한 모 프로 듀서의 익숙한 스타일을 연상시키는데, 그의 친숙한 통속성에 비춰 확실한 품격을 보여준다. 다른 수록곡들도 백화점식이라면 백화점식 이지만 보컬의 장악력 없이는 잡아먹히기 쉬운 곡들을 준수하게 늘 어놓고 있다. 그리고 모든 곡이 일청을 권할 만한 매력적인 곡들이다. 요컨대 '미쓰에이는 아무튼 근사한 여자들입니다.' 같은 표정이다. 그 리고 그것이 근사하다.
미쓰에이 - Colors JYP 엔터테인먼트 2015년 3월 30일
미쓰에이 - “다른 남자 말고 너” https://youtu.be/zO9RzrhYR-I
별민 : 타이틀곡 '다른 남자 말고 너'만 놓고 보자면 아마 데뷔곡이었 던 'Bad Girl, Good Girl' 이후로 가장 직설적이고 강렬한 가사를 쓰고 있지 않나 싶은데, 고조되는 트랩 사운드와 가사가 귀에 함께 꽂히는 부분이 마음에 든다. 모든 트랙들이 각각의 색채를 가지면서도 큰 그 림은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점이 인상적인데, 특별히 거창한 음 악 외적 장치 없이 이런 유기성을 보이고 있는 점은 분명 높이 사야 한다고 본다. 최근 발표된 아이돌 신보들 중 단연 수작으로 꼽힐 만하 다. MRJ : 의외로 무척 훵키한 사운드는 듣기에도 좋거니와 미쓰에이에 게 너무나 잘 어울린다. 보컬과 곡 자체는 다소 느긋한 편인데, 메인 멜로디는 늘 매우 가깝고 긴밀하게 처리돼 마치 미쓰에이가 바로 곁 에 서서 귀에 대고 노래하는 듯이 느껴진다. 그루브와 악기 편성도 매 력적인데, 날렵한 어쿠스틱 기타 리프에서 저조파가 강조된 베이스 톤까지 모든 것이 매우 잘 조화돼 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은 양의 아이돌 신보를 리뷰하는 아이돌로지의 1st Listen 코너는 각 음반에 대 한 다양한 필진들의 단평을 모아 보여준다. 발매일 기준 열흘 단위로 묶어 리뷰한다.
김윤하 : 다소 파격적인 이미지로 범벅된 ‘품행제로’만 기억하고 넘긴 다면 분명 아쉬울 만한 앨범이다. 블락비의 가장 ‘싸가지 없는’ 부분 에 확대경을 들이댄 듯한 이 노래와 마지막 곡 ‘배째’를 제외한 나머 지 곡들은 훵크(funk)나 네오 소울을 베이스로 한 팝 넘버들로 이루어 져 있다. 심지어 두 번째 곡 ‘찰리채플린’에서는 이들에게는 꽤나 이 질적인 ‘일반적’인 아이돌 무드까지 소화하며 다채로운 매력을 선보 인다.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완성도가 돋보이는 반면 멤버들간의 유 기적인 조화는 아쉬운 부분.
블락비 바스타즈 - 품행제로 세븐시즌스 2015년 4월 14일
블락비 바스타즈 - “품행제로” https://youtu.be/F32G-iOirbg
미묘 : 시작부터 터져 나오는 '미쳐있음'의 공기는 기존의 블락비를 듣다가 지코의 솔로 트랙을 들었을 때와 같은 위압감이다. 재미있는 것은 가사가 "어렸을 때 나쁜 짓"을 언급하고 있음에도 그 '스왝'의 근 거가 거리의 행동이 아닌 애티튜드와 무대에서의 댄스에 가 있다는 것이다. 래퍼이자 아이돌이었던 지코의 날카로움이 스타이자 아이돌 인 블락비의 영역으로 옮겨왔다고 할까. "룰 따윈 어겨", 그렇다. 박준우 : 블락비 내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개성 강한 멤버만 모았다. 개별적으로 움직여온 지코, 박경, 태일, 재효를 빼면 자연스럽게 모이 는 결과이기도 하지만 지코라는 태그를 떼어놓고도 블락비 특유의 장 점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조합이다. '품행제로'는 누가 봐도 블락비 그 자체이고 그래서 조금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지만 '찰리채플린', '도 둑', 'Nobody But You'로 이어지는 세 곡은 바스타즈가 선보인 블락 비의 가능성이다. 그 가능성에는 유권과 비범의 보컬도 해당한다. 조 금 아쉬운 건 유권이 비주얼에서 보여줄 수 있는 걸 아직 덜 보여줬다 는 느낌이다. 유권은 지금보다 더 섹시해질 수 있다.
김윤하 : 스타일, 구성, 멜로디 모든 면에서 기대를 반하는 A 파트가 조심스레 지나고 맞이한 후렴구, 소녀시대와 f(x), 심지어 애프터스쿨 까지 시대도 색깔도 다른 앞선 걸그룹들의 좋았던 시기가 무지개처럼 흩뿌려진다. 게다가 소녀들이 호흡을 맞춰 구호를 지르는 파트를 후 렴구로 사용하다니, 정말이지 얄미울 정도로 약았다. 작곡가진을 확인 하니 그제사 고개가 끄덕여진다. ‘으르렁’ 단 한 곡으로 엑소는 물론 다음 스텝을 고민하던 케이팝 씬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던 신혁의 이름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Cupid' 이외의 곡에서는 SM 엔터테인 먼트의 황금기를 함께했던 션 알렉산더(Sean Alexander)가 힘을 보태 고 있는데, 이들의 만남이 일회성에 그치지만 않는다면 앞으로도 오 마이걸이 만들어 낼 결과물들에 끊임없이 신경이 쓰일 것만 같다. 오마이걸 - Oh My Girl WM 엔터테인먼트 2015년 4월 20일
오마이걸 - “CUPID” https://youtu.be/Ov3MT0vdI9c
미묘 : 어쿠스틱 기타나 스네어롤 등 텍스처가 살기 좋은 악기들로 귀 를 간지럽히면서 살짝 신비한 화성감과 리프레인을 적극 활용하여 청 아한 소녀상을 제시한다. 소녀의 이미지를 어떻게 담아내느냐가 케이 팝 걸그룹의 중차대한 이슈라면, 이 음반은 바로 그것을 새롭게 만들 고자 한다. 어느덧 소녀풍 걸그룹 3세대, 이런 변화를 기다렸다. 그 완 성은 조금 더 기다리겠다. 유제상 : 만약 소녀시대가 '다시 만난 세계'에서 '소원을 말해봐'까지의 시절만 반복한다면 지금쯤 무슨 노래를 부르고 있을까, 라는 엉뚱한 상상에 대한 답을 제시해준 EP. 다소 웅장한 분위기의 배경음을 깔면 서, 브라스의 분절이 적당한 긴장감을 자아내는 노래는 더할 나위 없 이 양질이면서도 이미 옛날이 되어버린 2000년대 중반 '근과거'의 어 떤 그리움 같은 걸 상기시킨다.
2015년 3월 하순 http://idology.kr/3965
2015년 4월 초순 http://idology.kr/4116 2015년 4월 중순 http://idology.kr/4185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소개소
1. Alone - 프로펠러21
2. MONOLOGUE - 원톤
3. Where I Belong - 사이드카
[Another Day, A Better Tomorrow]
[Twenty Second Spring](2015), 2
[특별시 부산](2013), 5
1집
젊은 멜로딕 펑크 밴드 원톤의 두번째 EP.
[특별시
타이틀곡. 결성된지 오래되었지만 비교적
드럼 필인으로 시작하는 이 곡의 정확하고
뮤지션들의 컴필레이션 앨범이다. 스케이트
최근 듣기 시작한 밴드이다. ‘우연히 들리는
명쾌한 드럼 연주가 마음을 움직인다.
펑크 밴드 사이드카의 수록곡은 1분 30초
네 노랫소리가 나의 손을 향하게 만드네’
강렬한 연주와 ‘Tell me why my dream
정도로 짧지만 처음부터 빠르게 달리면서,
라는
전체적으로
is getting smaller’와 같이 공감되는
‘My best place is not behind or far away.
가사가 반복되는데 그것이 어색하지 않고
가사들이 참 잘 어울린다. 목소리와 연주가
Now I know where I belong’ 같이 멋진
노래와 잘 어울린다. 특히 라이브 공연에서
처음부터 하나인 듯한 것이 멜로 펑크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얼마 전, 처음으로
‘나의 손을 잡아줘’가 반복되며 노래가
특징이라고 생각하는데, 원톤의 노래를
라이브를 보았는데 서울에서 자주 볼 수
끝나는 부분이 아주 좋았다.
들으면 그것을 잘 알 수 있다.
없는 것이 아쉬운, 기대만큼 좋은 밴드였다.
(2010), 9
1999년
결성된
가사가
프로펠러21의
인상적이다.
부산]은
부산에서
활동하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장르인 멜로딕/스케이트 펑크 밴드들의 음악을 소개합니다. 저는 한국의 밴드들을 통해 이 장르를 알게 되었는데 알고 보니 일본에 많은 밴드들이 있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한국과 일본 밴드들을 소개합니다. 신당동 파르한 (@chungchoon98)
4. STAY YOUTH FOREVER - Northern19
5. Flower - Hawaiian6
6. Falling - Dustbox
[EVERLASTING](2006), 1
[SOULS](2002), 5
[Blooming Harvest](2008), 5
Northern19의 노래를 듣고 본격적으로
사실 Hawaiian6는 내 취향이 아닐 것이라고
멜로디도 좋지만, ‘It’s today or never. I’m
일본 멜로 펑크를 찾아듣게 되었다. 멜로
생각했지만, 이 노래를 듣고 생각이 완전히
gonna let her know that I’m a man.’
펑크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빠른 드럼
바뀌었다. 주위의 모든 것을 감사하고
이라는 귀여운 가사 때문에 이 곡이 더
연주 뿐만 아니라 다른 악기들도 처음부터
긍정하는 내용의 가사는 ‘Try and try and try
좋아졌다. 전체적으로 가사가 구체적이어서
끝까지 계속 빠르게 이어져서 감탄하게
to do the best. I don’t want regret.’으로
마치 일기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드는데 빠른
된다. 게다가 라이브 영상을 보면 멤버들의
끝나면서 ‘이런 가사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연주와 잘 어울린다. 개인적으로는 일본
합이 잘 맞는 것이 잘 느껴져서 기분이
들게 한다. 또 드럼 연주가 정말 곡을 꽉
멜로 펑크 밴드 중 가장 취향에 맞기 때문에
좋아진다.
채워주기 때문에, 악기를 배우는 입장에서도
더 빨리 알지 못했던 것이 아쉬운 밴드이다.
배울 것이 많은 곡이다.
다
매일 듣는 조언인 것 같다. “열심히 살아야지.” “열심히 살아.” 누군가를
른
칭찬할 때도 흔히 쓴다. “걔 진짜 열심히 사는 애야.” 하다못해 우리 부모님도 열심히 사는 사람을 사윗감으로, 또 동생 며느릿감으로 들이고 싶어한다. “성실한 사람이 최고지.”
나 라
도대체 열심히 산다는 게 뭐지.
에
“열심히 살아야지.” 저 말을 이곳, 미국에서도 들을 줄 꿈에도 몰랐다.
서
나는 이미 미국에 온 것만으로도 게으른 내 본질을 제치고 온 것이니만큼, 상대방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열심히 산다”고, 비율로 따지면 8:2 정도로만 죄책감을 가지고 – 물론 죄책감이 2다 – 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하도 많이 저 말을 들으니, 잘 모르겠다. 내가 잘못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모락모락 연기처럼 내 주위를 스며드는 것이다. 이곳 미국에서도! 나로 말하자면 앞서 적었듯 본질 자체가 게으른 사람이다. 하도 누워있다가 허리디스크에 걸릴 뻔한 적도 있다. 그래도 내가 게으른 만큼 상대방에게 부지런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너무 열심히 사는 사람은, 내 기준에는 조금 피곤하다. 물론 여기서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제외한다. 예를 들어, 우리 월간이리 담당자님. 속된말로 돈이 되는 일도 아닌데 벌써 몇 회째 잡지를 열심히 찍고 계신다. 이건 진짜 이거라도 안 하면 인생이 지루해 미치겠거나, 아님 이 일을 좋아하거나. 둘 중 하나여야 말이 된다. 내 생각에 우리 담당자님은 두 번째 경우인 것 같다. 내 또래 젊은 사람들에게 흔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이와는 다른 케이스다. 열심히 봉사활동을 한다. 열심히 동아리활동을 한다. 열심히 어학공부를 한다. 열심히 해외로 경험을 쌓으러 떠난다. 말만 들으면 즐거울 것 같은데, 이 중에서 정말 ‘좋아서’ 열심인 경우가 거의 없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피곤해하고, 이 부류의 사람들은 나를 답답해한다. 물론 나도 열심히 산다는 것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열심히 자격증 공부하고, 열심히 대외활동하고, 열심히 어학 공부해 해외로 왔다. 세상을 적당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분명 어느 정도 열심히 살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인생을 살기 위해서는, 좀 게으른 게 맞는 것 같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말고, 아무 쓰잘데기 없는 것이라도 하고 싶은 거라면, 내가 좋은 거라면 또 하고.
“미국까지 와서 그러고 있어?” 게으름을 질책하는 말들을 참 쉽게, 많이도 하는데, 아니 나는 그러니까 충분히 열심히 게으르고 있는데. 열심히 나한테 집중하고 있는데? 4월 15일자 허핑턴포스트 코리아에 ‘열정 강박’이라는 제목의, 열정을 강요하고 또 자아내는 우리네를 얘기하는 글이 첫 페이지에 게재됐다. 600명에 조금 못 미치는 이들이 좋아요를 눌렀다. 나만 이런 생각을 하고 사는 게 아니구나, 하는 마음에 조금 안도했다고 고백한다. 근데 한편으로는 또 반대로 게으름을 추구하는 분위기도 생겨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요즘 한국에는 안빈낙도하는 ‘달관세대’라는 표현이 유행이라 들었다(물론 자조적이긴 하지만). 대세 잡지 ‘킨포크’는 특유의 느리고 여유로운 분위기 덕에 인기를 끌 수 있었다. 킨포크의 발생지인 미국 도시 포틀랜드 또한 ‘젊은 은퇴자의 낙원’이라 불리며 유유자적한 분위기로 손꼽히는 여행지가 됐다. 몇 년 전부터는 힐링이라는 단어가 어느새 일상 용어로 쓰이게 됐다.
황 효 정
개인적으로 느끼는 건, 사람들이 또 이 게으른 분위기를 ‘열심히’ 쫓고 있다는 거다. 어느새 게으름의 첫 의도는 사라졌다. 인스타그램에 열심히 킨포크스러운 사진을 올린다. #힐링 #여유 따위의 해시태그도 빠뜨릴 수 없다. 열심히 SNS에 자신의 ‘게으른’데일리라이프를 올린다. 이런 사람들치고 진짜 게으른 사람 한 명도 없더라. 텍사스에 사는 친구는 요즘 사는데 기준을 잡기가 도통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한국에 있는 이들과 통화하고 있노라면 자기 자신을 한심하고 한참 뒤떨어진 게으름뱅이라 느끼고, 바로 옆의 미국인들과 함께 생활하다 보면 반대로 자기가 한치 내일 일도 모르면서 초조해만 하는 겁쟁이 같다는 거다. 그 어느 곳보다도 분주한 도시 뉴욕에서, 나는 오늘도 게으르게 살고 있다. 되는대로 게으르게 항변 중이다. 열심히 살지 말고, 유심히 살자고. 아무튼 이번에도 이리 튀고 저리 가는 이야기, 읽고 있는 당신에게 고맙습니다.
카프카의 세이렌 세이렌들은 노래보다 더욱 무서운 무기를 가졌는데, 그것은 그녀들의 침묵이다. 그런 일이 사실 없었기는 하나, 누군가가 혹 그녀들의 노래로부터 구조되었으리라는 것은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이겠지만 분명 그녀들의 침묵으로부터는 구조될 수 없다. 자기 힘으로 그녀들을 이겼다는 감정, 거기에 이어지는 만인을 감동시키는 자부심에는 이 지상의 그 무엇도 맞설 수가 없는 법이다. 그리고 실제로 오디세우스가 왔을 때 그 강력한 가희(歌姬)들은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이 적수에게는 침묵이어야 필적할 수 있겠다고 믿었기 때문이든, 아니면 오로지 밀랍과 쇠사슬 생각뿐인 오디세우스의 얼굴에 넘치는 행복감을 보자 그들이 노래를 죄다 잊어버렸기 때문이든.
광고문의 어두운 밤,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불 켜진 옥외광고판 사이로 ‘광고문의’라는 글자가 눈에 띈다. 광활한 여백에 고딕체로 작게 쓰인 이 문구는 아직 아무것도 지시하고 있지 않다. 우리는 그 자리에 당연히 있어야 할 것이 없을 때 당혹감을 느끼곤 한다. 혹시 그것을 치웠을지도 모를 엄마를 찾기도 하고, 물건의 행방을 알고 있을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기도 한다. 광고는 상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하여 소비자에게 널리 알리는 활동을 뜻한다. 하지만 광고가 있어야 할 자리에 광고해야 할 대상이 사라짐으로써 화살표는 오롯이 자기를 지시한다. 비로소 우리는 광고가 아닌 광고판을 보게 된다.
저기 빛나고 있는 것은 현대적 재료들로 이루어진 네모난 구조물에 불과한 것이다. ‘광고문의’라는 텍스트는 바로 ‘광고를 저에게 문의하세요. 여러분, 저는 광고를 하는 광고판입니다.’의 축약 버전인 셈이다.
세이렌의 침묵 세이렌은 뱃사공을 단번에 위협할 수 있는 신화적 존재지만, 그와 동시에 뱃사공이 나타나지 않으면 노래할 수 없는 수동적 존재이기도 하다. 그런 세이렌이 카프카 문학에서는 스스로 노래하기를 중단한다. 세이렌의 침묵은 신화(시스템)의 중단이기도 하다. 옥외광고 역시 세이렌의 음악처럼 유혹적이다. 급진적 문화 코드를 전유해 제 것으로 승화시키기도 하고, 익살맞은 그래픽과 세련된 타이포그래피로 지나가는 이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하지만 사람들은 광고 티가 지나치게 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드라마 등장인물이 스토리 전개와 상관없이 핸드폰을 필요 이상으로 오래 붙잡고 있다든가 애인 관계인 두 사람이 매번 특정 카페에 간다면 순식간에 채널이 돌아가 버리기 일쑤다. 이러한 대안으로 웹에서는 ‘네이티브 광고’와 같이 본 콘텐츠와 분리된 배너 형식이 아닌 해당 웹사이트의 주요 콘텐츠 형식과 비슷한 모양으로 제작된 광고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이러한 중립성은 네이티브 광고가 저널리즘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는 측면에도 불구하고 성행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옥외 광고와 같이 전통적 광고 매체에서 중립적 태도를 유지하기는 어렵다. 웹사이트처럼 우리의 생활 세계가 뚜렷이 구획화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공백과 여백 미국의 개념미술가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는 옥외 광고판에 자신과 애인이 막 자고 일어난 흔적이 명백한 침대 사진을 확대 인화해 걸었다. 이 작업으로 토레스는 ‘옥외’라는 공적 공간에 자신의 사적 기억을 주입함으로써 공공성에 대한 논의를 확장하고자 했다. 비로소 우리는 토레스에 의해 광고판을 보는 하나의 기준이 추가된 셈이다. ‘광고문의’라는 문구는 토레스와 같은 미술가가 아닌 ‘도시’가 배출한 일종의 부산물이다. 광고주와의 계약이 만료되고 다음 광고주와의 계약을 기다리는 시간 동안만 광고판은 자기 스스로에 관해 이야기할 수 있다. 시스템의 공백이 광고판의 여백으로 이어진다. ‘광고문의’는 재현 대상을 박탈당해 버렸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용을 지불하고 광고를 집행하는 다른 광고판보다 시각적 복잡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각적 복잡도를 유지하는 광고판 무리 한가운데 텅 빈 광고판이 등장하게 된다면 아무래도 시선이 그쪽으로 향할 수밖에 없다. 여백을 통한 시각적 쾌감이 곧 판독성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세이렌의 바다 아름다운 음색으로 바다를 향해 노래 부르고 있을 세이렌들 속 홀로 침묵 중인 그녀를 상상해본다. 그녀는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어쩌면 한눈에 반해버린 뱃사공에게 사랑의 언어조차 건네지 못하는 자신의 운명을 탓하고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침묵은 다른 세이렌들의 노래와는 결이 다른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저기 폭풍우 속 한 명의 뱃사공이 그녀를 바라본다.
⑴ 프란츠 카프카 [세이렌의 침묵] ⑵ 위키피디아 [광고] ⑶ 자크 랑시에르 [이미지의 운명]
clichecliche@naver.com
건축이 좋아. #20. 꽃이 되어 나무가 되어 다시 만나길... aoikasa
또 다시 돌아온 잔인한 4월을 보내며….
楊花津, 그리고 切頭山. 죽음과 생명. 그리고 죽음과 생명의 공간. 2014년 1월 호로 다루었던 스웨덴의 Skogskyrkogården Cemetery를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스웨덴의 국민 건축가 Asplund가 계획하고 또 그가 평생을 보낸 후 묻힌 그 곳. 죽음의 공간임에도 불 구하고 너무나도 평화롭고 너무나도 아름다운 북구의 풍경을 보여주던 그 곳. 당시 그 곳에 대한 글을 쓰며 ‘죽음의 공간’이 이토록 아름답게 남은 것은 죽음에 대한 인식의 차이 때문일 것이라는 이야기를 남긴 적이 있다. 그리고 또 다시 한 번 ‘죽음의 공간’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한국의 수도, 서울에 남아 있 는 (내 생각엔) 가장 아름다운 ‘죽음의 공간’인 양화진과 절두산에 대해서…
양화진과 절두산은 한국 기독교와 천주교의 대표적인 성지이다. 이 지역은 양화진(楊花津)이라는 이름 에서 알 수 있듯이 배가 드나드는 한강변의 나루였다. 배가 드나드는 나루인 만큼, 물자 수송 및 교통의 중심지일 수 밖에 없었고 이는 곳 서울로 들어오는 관문의 역할을 함도 의미했다. 19세기 후반 이 곳은 배를 타고 들어온 서양인들과 맞닥뜨리는 장소이기도 하여 우리가 모두 역사책에서 배웠듯, 병인양요 (1866) 당시 이 곳 양화진까지 프랑스 함대가 들어오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하였다. 쇄국정책을 펼치던 조선에서는 병인양요에 대한 책임을 천주교 신자들에게 지우며 결국 양화진 언덕 봉우리인 잠두봉(蠶頭 峰)에서 처형하였고, 그 피로 양화진 앞 한강이 붉게 물들었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잠두봉은 절두산(切 頭山)으로 불리게 되었다. 서울의 지명 중 가장 잔인한 지명이 아닐까. 머리가 잘려나간 산, 절두산. 이 때부터 이 지역은 ‘죽음의 공간’, ‘죽음을 상징하는 공간’이 되었다. 버들꽃나루라는 뜻의 다소 낭만적인 이름의 양화진 지역에 머리잘린 산이라는 절두산의 조합이라니, 왠지 그 섬뜩함이 더하게 느껴진다.
죽음의 언덕, 절두산. 절두산의 원래 이름인 잠두봉은 머리를 올려 든 누에고치를 닮아 붙여진 이름으로 한강 너머로는 선유 도가 보이는 경승지였다. 경치가 좋았던 만큼 양반들의 별장이 있었다고도 하는 이 잠두봉의 모습은 겸
재 정선이 그린 『楊花津圖』 에서 잘 나타나는데, 그 모습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깎아자른듯한 절 벽 위 우뚯 솟은 나무들, 한강 옆에 병풍처럼 양화진을 둘러싸고 있는 그 모습은 여전하다. 다만 그 언 덕 위에 절두산 기념관이 살포시 내려앉듯 앉아 있을 뿐.
(좌: 겸재 정선 <양화진> 비단에 채색 33.3 x 24.7cm 영조 18년(1742)경 김충현 구장 <양천팔경첩> 중, 우: 한강변 에서 바라본 절두산 성지와 순교기념관)
절두산 언덕 위에 자리 잡은 버섯 지붕같은 지붕을 가진 건물은 건축가 이희태가 1966년 지은 '절두산 순교 기념관'이다. 지하철 2호선을 타고 지날 때 마다 철교 건너편으로 빼꼼히 보이는 건물, 언제 보아 도 어디서 보아도 예쁜, 개인적으로는 서울에서 조형적으로는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건물이다. 병 인박해가 있었던 1866년의 백주년을 기념하며 천주교에서 현상설계를 실시하여 이희태의 안이 당선되었 는데, 당시 현상설계 지침이 '절두산의 지형을 조금도 변형시키지 말 것'이었다니... 부수고 없애는 게 미 덕이었던 그 시대와는 완전히 다른 현상 지침이라 믿기 어려울 정도이다. (있던 땅의 흔적은 지우고 새로 운 콘크리트 문화재를 창조해내던 시대였으니...) 아무튼 이 지침 덕분에 절두산 순교자 기념관은 마치 봉우리 위에 살포시 내려 앉은 모자처럼, 혹은 봉우리 위에 피어난 버섯처럼 자연스레 절두산의 일부가 되었다. 1960년대 말은 한국 건축에 있어 '한국성'의 표현이 큰 화두가 되었던 시대였는데 이 '한국성'의 표현에 있어서도 이희태의 '절두산 순교 기념관'은 기억할만한 작업이다.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이희태 의 국립 극장도 마찬가지) 초가지붕의 선을 닮은 지붕과 전통 건축의 기둥과 보를 닮은 기념관의 열주랑. 기념비적이지만 결코 압도하지 않는 절두산 순교기념관은 봄에는 흐드러지게 피는 많은 꽃 가운데, 여
름에는 푸르른 신록 가운데. 가을에는 붉게 물드는 단풍 가운데, 그리고 겨울에는 언제나 그 자리를 지 켜주는 듯한 소나무 가운데 절두산과 하나 되어 그 곳의 풍경과 기억을 만들어낸다. 핏빛으로 물들었던 땅에 생명의 기운이, 복숭아꽃 모과꽃 황매화 할미꽃 철쭉 .... 이름도 다 외지 못할 만큼의 많은 꽃들이 피어 그 곳의 죽음을 기억한다.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예쁜 절두산 순교자 기념관)
(한국전통건축의 기둥-보 구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열주랑)
오후 4시, 해질녘의 평화. 양화진 외국인 묘원 절두산에서 조금 내려오면 양화진 외국인 묘원이 있다. 절두산이 천주교의 성지라면 이 곳은 개신교의 성지이다. 19세기 말 입경한 개신교 선교사들이 대부분 묻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떻게 서울 의 중심부에, 비로 서울 사대문 안은 아니지만, 성저십리(성곽으로부터 10리떨어진 지역, 한성부의 권역 에 속한다) 지역이며 주요 교통로였던 이 곳에 한국인들에겐 혐오시설인 묘지가 자리잡게 된 것일까?
1884년 알렌,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의 입경 이후 서양인 선교사들이 다수 서울에 들어왔다. 이들 은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이 곳에 들어왔지만, 전통적인 세계관이 지배하고 있던, 서양과의 만남에 두려 움을 느끼고 있던 동방의 작은 나라에 적응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사람들은 파란 눈의 서양인들을 두 려워했고 양귀라 하며 도망치기 일쑤였다. 게다가 외국과의 문물 교환 이후 급속도로 퍼진 콜레라 등의 전염병은 많은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였고, 서양과 청, 일본 열강들의 내정 간섭은 이전에 없던 불 안 속으로 사람들을 밀어넣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질병과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던 한국인들을 위해 서양인 선교사들은 병원을 짓고 의 료 행위를 해 나가기 시작하였다. 그 시초가 된 것은 1885년 알렌이 만든 광혜원이었으며 알렌이 미국 공사로 간 이후에는 헤론이 그 역할을 맡았다. 당시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은 매우 빈번하게 발생하였고, 제대로된 격리수용시설이 없었던 서울에서는 이들을 치료하다 죽는 사람들도 많았다. 헤론 역시 전염병 환자들을 돌보다 그 역시 전염병에 걸려 죽고 말았는데, 이 때 그의 시신을 어찌 해야하는지가 문제가
되었다. 당시 제물포에는 외국인 묘지가 있었지만, 거기까지 옮길 수는 없었고, 성 안에 매장을 허락치 않는 한성부의 특성상 성 안에 그를 묻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한성부에서 가까운, 한성부의 성밖이었던 양화진에 외국인 묘지를 정하게 되었고 그 장소성이 지금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지금의 형태로 다시 만들어진 것은 1980년대에 이르러서이다.)
이 묘역에는 지금도 헤론과 언더우드, 아펜젤러, 헐버 트와 배설 등 한국 근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외국인 선교사들이 묻혀 있는데, 묘역을 돌아보다 보면 1-2살 의 어린 나이로 죽은 아기들의 묘도 보인다. 이 묘역은 한국식의 동그란 봉분이 아닌, 서양식 매장 풍습에 따 라 만들어진 각각의 개성있는 묘비와 묘로 만들어져 있 고 그 사이 사이에는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다. 개인적 으로는 일요일 오후 해질녘, 이 곳을 거니는 걸 정말 좋 아한다. 뭐라 말할 수 없는 평화를 느낄 수 있기 때문 이다. 이전에 말했던 죽음 이후에 대한 인식의 차이 때 문일까, 아니면 묘지 디자인의 문제일까, 뭔지 잘 모르 겠지만 이 공간은 꺄르르 웃으며 뛰어다니는 어린 아이 의 해맑은 모습도 잘 어울린다. 울창한 나무들과 흐드 러지게 피어난 꽃, 그 사이 어린 아이의 햇살같은 웃음이 죽음의 공간과 묘하게 어울리고 있는 것이다.
해마다 5월과 10월이면 양화진 외국인 묘원에서는 양화진 야외 음악회가 열린다. 올 5월에는 재즈보컬
리스트 나윤선의 공연이 준비되어 있다 하니, 근처 계시는 분들은 이 곳에서 봄날 저녁을 즐겨보셔도 좋 을 듯 (http://www.yanghwajin.re.kr)
꽃이 되어, 나무가 되어 다시 만나길. 지난 4월 초, 미디어를 통해 오드리 헵번 가족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위해 계획하였다는 세월호 기억의 숲 프로젝트를 알게 되었다.
다양한 방식의 ‘잊지 않겠다’는 표현들이 있겠지만, Tree Planet이 함께 하는 이 프로젝트가 유독 맘에 남은 건, 양화진과 절두산처럼 죽음이 다시 생명으로 피어날 수 있는 프로젝트였기 때문이다. 2,000여 명이 넘는 사람들이 1억원 넘는 금액을 후원하여 이제 곧 숲 조성에 들어간다고 하니, 조만간 노오란 은 행잎 빛깔로 물든 숲을 만나보게 될 것이다. 울창한 나무들이 우거진 숲이 되어, 너무나도 안타깝게 잃 어버린 영혼들을 대신하여 그 곳에 생명을 꽃피우길 기대해본다. 많은 이들의 잊지 않겠다는 약속들이꽃 이 되고 나무가 되어 다시 만나길....
(세월호 기억의 숲 출처: http://treepla.net/sewol_forest.html)
P.S. (죽음의 공간 번외편) 작년 베니스 비엔날레 폴란드관에서 건축가들의 묘비들에 대해 본 강렬한 기억이 있다. 마 치 죽기 전에 자기 묘비를 다 디자인하고 죽은 듯, 건축가들의 묘비는 그 건축가와 닮아 있다. 건축가들의 묘지가 궁 금하다면, 이 사이트(http://curbed.com/archives/2015/03/19/architects-gravestones.php#stoa215345)를 참 고하시길.
구멍난 칼럼 : 메우는 코너 보궐선거와 멘붕의 사이에서 exxx
4.29 보궐선거가 끝나고 어떤 멘붕과 멘붕들 사이에서 정리를 좀 해봐야 겠다는 생각도 들고, 코너도 펑크난 김에 적어봅니다. 오늘 글은 아주 가볍게 쓰지만 꼭 천천히 읽고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분들과 대화를 하실 때 언급해 주셔도 좋고요. 1. 승패 : 선거는 승패가 나뉘지요. 이기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이기겠다고 다 던지고 나면 그 공백을 채우는 것은 의외로 비뚤어진 것이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이기는 것은 공공의 이익을 생각했을 때 지는것만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이기고 난 다음에 바른 길을 갈 수 있는 승리가 좋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리고 이기면 뭐합니까. 제대로 못하면...
2. 실망감 : 그렇다고 사람 속이 져놓고 어찌 허허 웃을 수만 있겠습니까. 선거 결과가 긍정적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알고 있었지만 결과를 보고 아쉬움을 넘어 실망감이나 좌절감이 드는 것또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댓글 알바들의 분탕질인지 개개의 분노인지 모를 글들을 보면서 어금니를 몇번을 씹었는지 모릅니다. 한숨도 꽤 쉬고요. 희망이 없다해도 결과가 나오기 전부터 실망할 필요는 없으니 희망을 가져보자고 의샤의샤 해보았지만 결과를 보면 기운이 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아이고야..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속상함을 느끼는 것 조차 참으로 과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매번 신에게 기도드리는 수준의 노력밖에 하지 않았으면서 비난의 대상이 실재하면서 적당히 원망하기 좋다는 이유 만으로 비난하는 것은 좀 이상하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 정당이 그런 역할이니 비난해도 된다고요? 글쎄요. 그 사람들은 자신을 고용하지도 않은 생면부지의 사람들에게 욕먹는게 좋을리가 있을까요. 같은 사람들인데.. 3. 야권분열 = 필패 : 누군가는 이 공식이 이번에도 들어맞았다고,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승부만 생각하면 말이죠. 다만 이번선거는 미묘한 면이 있었습니다. 시작부터 야권 통합에 선을 그은것은 꼭 짚어 볼만한 부분이었습니다. 긍정적으로 최대한 해석해 본다면, 이런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가장 실패 리스크가 적은 실험의 장. 물론, 실험은 한번 정도만 해야겠지요.
4. 국개론 : 국민 개새끼 론이라는 말인데, 그거 해서 뭐가 바뀝니까. 그리고 스스로를 비하할 필요까지는 없잖아요. 이 런거는 댓글 알바들이나 좋아하는 겁니다. 그리고 댓글알바 해서 뭐하냐고 하지 마세요. 돈 많이 법니다. 돈을 받고 이익을 취하면서 공공선을 해치는 알바들.. 이건 나중에 분명 잡아 족쳐야 합니다. 5. 매직넘버 1 : 이번에는 3명의 1번 후보가 당선되었습니다. 새누리당이 안착해 있는 1 이라는 인식의 벽을 깨기는 쉽지 않을것입니다. 그런 이유로 후보들이 선거마다 숫자 추첨제를 하자는 이야기가 있기도 했습니다. 숫자추첨제로 선거를 한다면 꽤 재미있는 결과가 나올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반 마케팅에서도 1위 기업을 뒤짚는 사례가 극히 드문 것을 보면 번호가 매겨진 선거에서 이긴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뭐 잘나서가 아닙니다. 그냥 숫자가 1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6. 새정치 민주 연합 : 광주 을 지역구의 천정배 의원 당선으로 그간 어영부영 넘어갔던 새정치 민주 연합은 어느 지역의 정당인가? 하는 문제가 표면에 떠올랐습니다. 전국정당인가? 하는 문제. 이 문제는 상당히 미묘한 문제로 이후 여러 부분에서 발목을 잡을 소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후반에 7. 성완종 게이트 : 분석가들은 성완종 게이트라는 좋은 소재가 있었음에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과연 이 것이 선거층(투표 유효층)에 얼마만큼 전달이 되었을지는 깊이 생각해 봐야할 부분입니다. 매체에서 이 사건을 뒤트는 방법 때문일 수도 있고, 뉴스가 다양한 연령대에 효율적으로 잘 스며들고 있는지의 문제도 드러난 것이 아닌가 합니다. 8. 노무현 정부 : 저의 경우 박근혜 정권 초기부터 가장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쳤음에도 왜 이명박 박근혜 정부가 탄생했을까 하는 지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악습들이 당시에 찾아온 변화의 기회를 틀어막고 있었는지를 차근차근히 생각해 볼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대중 정부를 포함해 10년 동안 못바꾼 현실의 여러 가치관과 문제들이 아무것도 개선되지 않은채로 2015년에도 존재할 것이고 내년에도 그 다음 해에도 존재할 것입니다. 정권이 바뀐다고 그 부분들이 알아서 바뀌지는 않을 것압니다. 이것은 정말 중요한 문제입니다. 9. 시민의식 보통 민주정부 10년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표면적으로 생각하면 10년동안 시민의식이 부쩍 성장했을 것 같지만 그 간의 사건들과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면 선거를 했던 그 하루의 우연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떤 변덕이 누적되어 우연히 정권을 만든것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야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부족하고 불완전한 부분들이 많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고서는 변화가 쉽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 면에서 더 많은 사람들과 방향성을 공유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10. 방향성 : 투표는 개개인의 변덕이거나 장난. 단순 분노나 미움의 감정일 수 있지만 각자의 마음속에 자리잡은 정치적 현안에 대한 방향성은 한번 잡히면 잘 변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 방향성이 단순히 현재의 여당이 무조건
싫다는 것 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합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하나마나한 구호이고 설득력을 줄 수 없는 개인적 취향입니다. 미움에 기반한 설득은 전혀 발전적이지 않습니다. 개인의 성격에 거슬리는 일이 생기면 방향이 쉽게 바뀔 수 밖에 없기도 하고요. 그리고 보다 극렬하겠죠. 11. 새누리당 민주 투사 : 이것은 이번 글과 상관 없지만 가끔 이야기가 나와서.. 짚고 넘어가려고 합니다. 누군가를 감정적으로 미워 하는 것 뿐인 활동을 펼쳤다면 그것을 바꾸는 것도 사실 별것 아닌 일일 것입니다. 그냥 에이 좀 그렇지만 오늘 부터 좋아해야지 라고 생각하거나 덜 미워하면 그만입니다. 이런 활동에는 또 다른 근거가 하나 더 있을 것입니다. 젊은 날의 혈기, 좀 더 유명해지고 싶다는 욕망의 경우도 있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예를 들면 스무살에 관심을 받고 싶은 사람이 정치를 택해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특별하고 의식있 는 사람!’ 이라는 인식을 사고의 최우선에 두고 선택지 몇가지를 돌렸는데, 어쩌다 민주 투사의 길을 걷게 된 것입니다. 인생이란게 그렇죠. 몸이 약해서 운동을 시작했는데, 세계 챔피언이 된다던가...하는 우연들,, 그런 경우도 왕왕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결국 처음부터 정치적 방향성이나 목표가 없었던 것입 니다. 공유할 가치관이나 지향점이 없는 정치인이 되는 것입니다. 본인이 유명해지고 위대해지는 것이 중 요한 것이죠. 물론 어떤 정책들을 사회의 눈치를 보면서 적용해 나갈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그냥 한 기회주의자의 생존의 방식일 뿐입니다. 12. 진보: 진보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단순히 야권을 지지한다고 말로, 진보라는 단어를 갖다 쓰는것은 참 이상한 표현입니다. 창피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렇게라도 면을 세워주면서 편을 모셔야 한다면 그것만큼 씁쓸하고 쓸쓸한 것도 없습니다. 물론 그게 다 정치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지요. 모두를 잘 어울러야 한다고, 맞는 말입니다. 그런 면들까지 다 끌어모아서 투표를 하고 승리를 꾀해야지요. 하지만 그런 정치는 장기적으로는 사라져야 하는 것 아닐까요? ‘백성이 왕이 누구인지 몰라야 태평성대’ 라는 말은 왕정시대의 격언이지 민주주의 시대에서는 절대 좋은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복잡한 것은 아니어도 정책이나 방향성 하나 씩은 마음속에 품고 있어야 지지할 당도 결정할 수 있고 투표의 의의나 개개인의 의견 개진에도 힘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두의 한걸음이란 표현이 걸맞는 것이겠지요. 사실 사회에 이미 화두는 차고 넘쳐 있으니 늘상 마음에 걸리는 가장 가슴 아픈 한 가지를 고르기만 하면 될 것입니다. 만약 그것이 세월호 라고 하면 세월호 특별법이 아니라 보다 공공의 목적을 가질 수 있는 청원법이라던가, 안전심의 관리에 관한 엄격한 규정과 같은 것이겠지요. 이런것을 이루기 위해 각자가 정치에 관심을 가지면 어떨까요. 가치관에 기반한 정책 입니다. 이익이 아니라. 13. 전국정당 새정치 연합이 지역색을 없앴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층은 대부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실질적인 힘을 갖지 못하는 숫자이기 때문에 적어도 4배 수 이상의 당원숫자가 발생하지 않는 이상 전국정당의 기치를 내 걸기는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정치 연합에 더 많은 당원이 장기적으로 필요한 것이지요. 한명의 팬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전국정당을 성립시키기 위해서 입니다. 아마 당장 당원수가 4배 는다고 해도 지역색이 줄어들기 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리리라 생각합니다. 이게 사실 새정치 연합이 처한 어려움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 각 지역의 지자치장을 맡고
있는 야권 인사들이 잘 해야 하는데.. 과연 이것이 어디까지 컨트롤이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당원 숫자가 늘어나고 각 지역의 지자치 감시 인원 숫자가 늘어난다면 생각보다 빠르게 변화가 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쉽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14. 야권연합 : 야권 연합이라는 깃발은 큰 틀의 가치관 공유, 장 단기적인 정책 시야의 공유가 있어야 가능한데, 그런면에서 야당간의 골이 너무 깊은 것도 장기적으로 정치 발전에 큰 위험요소가 될 수 있습니다. 이 골이 단순 밥그릇 싸움에서 머물 수 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점 또한 고민해 봐야 합니다. 연합이 밥그릇 싸움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서는 선거와 상관없는 시기에도 상황이나 정책 이슈가 발생했을 때 이를 쉽게 잘 해석 설명해주는 사람들이 정당안에서 필요합니다. 각 정당의 당원들이 해당 문제에 대해 이해도가 충분히 높아져야 연합을 하더라도 이해할 여지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작은 정치활동 단위의 체계적 홍보, 지원도 필요합니다. 민주주의적 가치의 발현에 동질감을 갖고 있다면 단순 이합집산이 아닌 정치 공동체의 동질감을 회복할 여지가 생기지 않을까요? 양측의 충분한 숫자의 당원이 해당 정책에 관심을 갖고 있고 잘 절충해서 협력하기를 바란다면 당에서 활동하는 의원이나 관계자들이 그러한 열망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15. 돈: 이런말 까지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선거는 어찌보면 돈을 두고 싸우는 장입니다. 세금을 두고 따먹기를 한다는 말이 틀린 것은 아닐 것입니다. 결국은 모여지는 큰 세금을 어디에 써, 삶을 보다 안정적이고 잘 꾸려나갈 수 있을지를 꾀하는 분배의 회전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사욕의 혀를 날름거리면 그게 야당이고 여당이고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그냥 다 개새끼 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잘 관심을 가져야 겠지요. 이런 면에서 생각하면 모든 정당의 입장에서 당원들이 영리해 지는 것은 또 그리 환영할 일이 아니기도 합니다. 빼먹을 여지가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16. 질문: 각자가 지지하는 정당과 상관없이 하나의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하는 것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희 부모 님이 새누리당의 후보를 지지한다고 ‘이런 병신같은 가족 같으니 말도 안통하네 ㅅㅂ’ 이래서는 아무것도 되지 않습니다. 오래 관계를 나눠온 가족들이랑 싸워서 뭣합니까. 지식으로 눌러서 뭣합니까. 그거 눌린다 고 지지가 바뀌지 않습니다. 고집만 세지죠. 하물며 가족도 이런데 술자리에서 만난 누군가나, 직장 동료 들은요?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그럼 남는 것은 하나 입니다. 질문과 경청. 그것을 반복해 주는 것만 해도 큰일입니다. “어떤 나라에 살고 싶은지 어떤 정책에 관심이 있는지를 묻고 들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가 갈리고 반박하고 싶어도 참 고 또 참아가면서 느긋하게 가야할 길입니다. 일주일에 한번 만나는 사이라고 해도 일년에 50번 남짓 만 날 것이고 그 중에 정치 이야기 해봐야 몇 번 하겠습니까? 다섯번이나 할까요? 그런 상황에서 세치혀로 상대를 설득한다는 것은 꿈이죠. 저라도 안넘어 가겠습니다. 하지만 자각시킬 수는 있겠죠. 좀 더 알아보 게 관심을 유도하거나 각자 살고싶은 형태의 국가의 모습에 대해 의견을 공유하는 것 같은 것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자 그럼 오늘부터라도 시작해 봅시다. “어떤 나라에 살고 싶으십니까?”
끝
게임 노동 일지
글. 그림. 철민
A, B, C는 함께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의 것을 보여주는 데 인색했기 때문이었다. 간혹 누군가가 그들에게 보여달라 부탁하면 A는 부끄럽다며 손사래를 쳤고, B는 묵묵히 고개를 가로저었으며, C는 얼굴이 빨개진 채 “안 돼요”라고 중얼거렸다. 그렇지만 함께 할 미래를 상상할 때면 그들은 누구보다도 대담했다. 통유리창으로 서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오피스텔. 계단이 있는 복층구조. 셋이 함께 누울 수 있는 킹사이즈 침대. 스파 욕조. 탁구대와 당구대. 커다란 회의용 테이블.
어느 날, A는 술자리에서 D라는 여자를 만나게 되었다. 술에 취한 A는 D에게 넋두리를 늘어놓았다.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건 꽤 오래 전의 일이었어요. 만날 때면 늘 함께
할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죠. 제법 과감하게요. 당구대를 놓자는 이야기까지 할 정도이니까요. 하지만 말뿐이에요. 오랜 시간 동안 함께 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해오면서도 B와 C의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요. 부끄럽다는 핑계를 대면서 말이죠. 단순한 겁쟁이들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면서도 지금도 그 친구들과 함께 하고 싶어요.”
“우선 서로의 것을 봐야 함께 할 수 있을지 어떨지 알 수 있지 않을까요?”
D가 물었다.
“보지 않고도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진
것처럼 말이죠. 낯간지러운 이야기이지만 정말 그런 느낌이었어요. 어떻게 해서든 그들과 함께 하고 싶었죠. 하지만 내 것을 보여주고 싶진 않아요.”
“눈을 가린다면 어떨까요? 그럼 보여주지 않고도 함께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눈을 가리고 함께 한다고요?”
“네. 보여주지 않는 대신 그분들의 것도 보지 않는 거죠.”
“하지만 저는 B와 C의 것을 보고 싶어요.”
“자신의 것은 보여주고 싶지 않지만 그들의 것은 보고 싶다?”
D는 긴 생머리를 뒤로 넘기며 기다란 목선을 어루만졌다. A는 슬며시 그 목선을
바라보았다. 하얀 피부가 매끄러운 곡선을 이루고 있었다. A는 D의 목이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만져보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저 아름다운 목은 어떤 감촉일까?
“전 제 것을 보여주는 것에 익숙해요. 괜찮다면 보러 가실래요?”
“보여주신다면 기꺼이.”
A는 D의 것을 보았다. 그녀의 목선만큼이나 아름다웠다. A는 D의 것을 만져보아도
되느냐고 물었다. D는 허락하였고, A는 살며시 그 위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형태를 손가락으로 훑은 뒤 손바닥으로 쓸어내리고 손등으로 어루만졌다. 둘은 D가 어디에선가 선물로 받아온 와인을 나눠 마셨다. A는 눈을 가리지 않고 D와 함께 하게 되었다. A는 자신의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도 보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A가 D와 함께 하게 된 이후에도 B와 C는 여전히 A와 함께 하고 싶었다. 하지만 A는 D와 함께
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더 이상 자신의 것을 보여주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B, C와 함께 하고 싶지 않았다. 언제까지고 D와 함께 할 수 있길 바랐다. B와 C는 A 없이 둘이서 함께 하는 미래를 그려보았지만 색채를 잃은 그림이 되어버렸다.
B와 C는 카페에서 A와 만났다. 셋은 따뜻한 햇빛이 비추는 테라스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A는 라떼를, B와 C는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셋은 말없이 커피를 마시고 내려놓길 반복했다. 이전과 달라진 상황 속에서 먼저 입을 뗀 것은 C였다.
“A씨. 요즘 D라는 여자랑 함께 한다던데 어때요?”
“좋아. 그동안 함께 하는 것에 대해 너무 어렵게 생각해온 게 아닌가 싶어. 이 좋은 것을
왜 그렇게 늘 말로만 했던 건지. 너희도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어.”
A의 말이 끝나자 B가 A를 노려보며 말을 뱉었다.
“씨발. 너 때문에 우리가 함께 하지 못하게 된 거잖아. 그런 주제에 한다는 말이, 너희도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어? 웃기고 있네. 그동안 얘기해온 수많은 것들을 버린 게 누군데? 너 아냐? 너 때문에 우리가 함께 하지 못하게 됐어. 알아?”
A는 빨대로 잔을 저었다. 우유거품에 파묻힌 빨대를 따라 커피와 우유가 동그랗게
회오리쳤다. 빨대를 꺼내 테이블에 두고 라떼를 한 모금 마셨다. 우유의 느끼한 맛이 입 안에 퍼졌고 미세한 라떼 조각들이 혀에 남아 까끌거렸다. A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고 있어. 내가 우리의 관계를 망쳤지. 하지만 나한테는 잘 된 일이야. 어차피
너희와 함께였다면 나는 내 것을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못했을 거야.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은 상상 속의 일일뿐이지. 너희도 실은 알고 있잖아. 전망 좋은 곳? 스파 욕조? 당구대? 전부 꿈같은 소리일 뿐이야. 함께 하고 싶으면 그딴 꿈만 꾸고 있을 게 아니라 내 걸 보여줘야 하는 거였어. 아주 단순한 거지. 그냥 보여주면 되는 거야. 우리가 그때 서로에게 서로의 것을 보여줬다면 함께 할 수 있었을 거야. 현란한 테크닉 따위는 없어도 되는 거라고. 침대 대신 의자 세 개만 있었어도 얼마든지 함께 할 수 있었을 거야. 우리가 함께 할 수 없었던 것은 우리들 스스로에게조차 자신의 것들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야. 부끄러워했기 때문이라고. 작든 크든, 쪼그라들었든 풍만하든 그런 건 부끄러운 게 아니야. 다 다르게 생겼으니까. 결국 우리가 모든 걸 망치고 있었던 거야.”
A가 떠난 후에도 B와 C는 테라스에 오랫동안 앉아있었다. 몇 시간이 흐른 뒤 해가
저물어갈 무렵이 돼서야 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B는 C에게 한 잔하러 가지 않겠냐 물었지만 C는 거절하였다. C가 떠나고 혼자 남은 B는 화장실에 들어가 자신의 것을 보았다. 볼품없어 보였다. 그에 비해 다른 사람들의 것들은 거대해 보였다. B는 홍등가를 찾았다. 그곳에서 몸을 파는 E에게 자신의 것을 보였다. E는 그것이 멋지다고 말했다. B는 우울해져 방을 나섰다.
카페를 나선 C는 집으로 돌아와 창밖으로 펼쳐진 서울 시내 야경을 바라보았다. 잠시 서서 밖을 바라보던 그녀는 욕조에 뜨거운 물을 채운 뒤 옷을 벗고 들어갔다. A, B와 상상하던 함께하는 미래의 모든 것이 있는 생활. C는 B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녀의 것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목욕가운을 두르고 나온 C는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접속하였다. 아이디 F. 그녀는 캠을 향해 자신의 것을 보였다.
Road - 5 (해장국) 글. exxx 오늘은 해장국이다. 누군가의 조언? 혹은 부탁이 있었다.
원래 이런 글은 생활 밀착형으로 술을 잔뜩 마시고 욕을 하면서 재정신이 니정신입네 내정신입네 하면서 써야 제맛인데. 어째 마감을 압두고 맨정신에 허리 꼿꼿이 펴고 한자 한자 읽어가면서 타이핑을 때리고 있자니 참 글 맛 안날 것 같아 걱정이다. 그것도 못하고 있는 나의 인생 또한 무상하다. (주량 맥주 1캔..)
그래도 가자. 그게 인생 아닌가. 원래 아무것도 없는 것.
해장국을 이야기 하려면 먼저 해장국이 뭔지 이야기해야 겠기에 국민검색엔진 네이버를 통해 검색을 시도해 보 았다.
네이버에서 해장국을 검색하면 약62가지의 레시피가 나오는데, 고추가루와 같은 양념 방식이나 부수적인 재료 가 추가되고 그에 따라 분류되는 것들을 제외하면 한국의 해장국은 크게 네가지 정도로 정리되는 것 같다.
콩나물, 북어, 재첩, 선지, 다슬기 이중 재첩과 다슬기는 비슷한 녀석들이니 모아서 생각하면 크게 네종류 정도 되는 셈이다. 밭에서 나왔거나 (콩 to 나물) 바다에서 나왔거나 (명태) 민물에서 나왔거나 (재첩 or 다슬기) 동물에게서 나왔거나 (선지) 바로 이 네 분께서 한반도의 숙취와 싸워온 것이다. 박수!!
해장국의 효험에 대해서는 사실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정말 지겨울 정도로 인체실험을 거치고 거쳐서 선발된 어르신들 아니신가? 게다가 현대로 접어들면서 방송등에서 엄밀한 검증도 거쳤다. 그것이 믿을만한 것인지는 별 개의 이야기지만...
어쨌든 해장국. 그 효험에 의심을 품지는 말자. 다만 각자의 체질의 차이가 있다는 정도로 이해를 하자. 사람마다 잘 받는 해장국이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생각해 볼 것은 해장국이라는 개념이다.
해장을 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양한데, 인터넷을 눈팅을 통해 본 여러가지 방법중에서 개인적으로 최고라고 생각했던 것은 병원에가서 ‘수액’을 맞는 방법이었다. 그러니까.. 말인즉슨.. 대놓고 알콜 농도를 떨어뜨리는 획기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비록 내가 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효과 그 자체로는 저게 제일이지 싶다. 몸에서 분해하나 외부에서 희석하나 그게 그거 아닌가.
해장국이 아니어도 해장을 할 때 짜장면을 먹는다는 사람, 밥을 먹는다는사람, 빵을 먹는다는사람, 짬뽕을
먹는다는 사람, 피자를 먹는다는 사람, 쌀국수를 먹는다는 사람, 물을 먹는 사람 등등 다양한데, 여기까지 보면 나오는 답은 한가지. 해장의 기본 골자는 먹는데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해장을 하기 위해 해장국 따위와 술을 조금 마시는 것이란 의미도 있는데.. 그건 그냥 마취다. 해장이 아니다. 정리하자면 해장은 뭔가를 먹어서 퉁치는 것이다. 혹은 완전히 안먹고 잠만 자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속이 좋고 나쁘고와 관계없이 위산은 정기적으로 분비되니 가능하면 먹어주자. 안들어가면 물이라도 먹고자... ㅠ ㅠ
잠시 재미삼아 해장의 한자를 해석하면 解(풀 해) 수학에서 ‘이 문제의 해를 구하시오.’의 그 해이다. 결자해지의 그 해 이기도 하다. 酲(숙취 정)읽기 특급난이도의 한자어이다. 이걸 합쳐서 해장이라고 한다.
정리하자면 “내몸의 숙취에 대한 해를 구하시오.” ..
해장국이라는 깊이 있는 연관어는 글을 이어가게끔 한다. 해장은 해장이고 해장국은 해장국인데, 해장국이 왜 유명했는지를 생각해보면 국 그 자체의 일상성에 이유가 있는게 아닐까?
술은 먹고 집에는 기어들어온 화상이 밥은 안들어간다니 불쌍해서 국이라도 끓여주는, 혹은 이 놈아 늘 있는 국이라도 쳐먹으라는 따스함이 담긴 유래가 있는 것은 아닐까?
“밥 안들어간다고!!” “국이라도 쳐먹으라고!!”
그래서 해장국. 짜잔!!
농담은 이정도로 하자. ..
해장에 짬뽕이나 매운 콩나물 국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그건 그냥 매워서 정신드는 효과 일종의 자극요법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고추가루가 속을 자극하면 자극했지 달래주진 않을 것이다.
정리하겠다. 술은 작작 마시고 해장 할때는 가능한 물과 비슷한 맑은 형태의 해장국을 먹도록 하자. 그런의미에서 쌀국수도 참으로 인정받을만 하다. (고수향이 코를 자극하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해장국이란 문화 자체가 전보다 줄어드는 이유는 술의 양과 상관없이 문화의 변화도 한 몫하는 듯 하다. 예전에는 눈뜨면 국이 있지 않았던가 엄청난 희생으로 말이다. 요즘에 누가 해장국 끓여주면 잘 받아먹고 정신들면 보답하자. 그것만이 살길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