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 입니다.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 글. 사진. 아홉시 영화로 읽는 시공간 - ‘손님’ (2015) 과 ‘경성학교’ (2015) / 글. 곡주대비 나의현대예술순례 #01 그림자의 詩學 / 글. 사진. 황정운 작곡가 B의 노트 - 사람들 속에서 음악이 울려 퍼질때 / 글. composer B 옆사람 인터뷰 - 자연을 자연스럽게 보기 / 글. 정리. 이내 의미 없는 이야기 / 그림. 글. 철민 이재명 성남시장 인터뷰 / 정리. exxx 조선소 노동자 - 그림. Min the Elephant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소개소 / 글. 신당동 파르한 idology’s pick - 2015 걸그룹 지형도, 건축이 좋아 - 한여름의 판타지아 / 글. 사진. aoikasa Iran Sold/ 글. 사진. 김성연 Road - 8. 맛집 / 글. exxx
운이 좋게도 해외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머리가 충분히 자라고는 처음 떠난 해외 여 행이라 신기한 것들이 아주 많았는데, 그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개’였습니다. 여행지에서 인간이 이룩한 것을 다 지우고 익숙한 것을 찾아보니 ‘개’와 ‘나무’가 남아 두가지를 유심히 보았습니다. 여행지가 한국 보다 더운 지역이라 나무들이 부쩍 크게 자라 그것들은 너무 낯설어서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았고 낯선 ‘나무’들 을 지우고 나니‘개’만 남더군요. 참 이곳과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지역을 넘고 문화를 넘어 같은 것은 또 무엇이 있을까요. 양국의 사람들이 다 사라진 다음에도 개는 남아 늘 같은 행복한 삶을 살아가리라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습니다. 창창한 인생이 남았는데 사라질 것을 염려하거나 그 이후를 걱정하는 것은 불행의 단초이기도 하고 의미없는 행위일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남길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솔직히 저도 제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네요. 날이 덥습니다. 대충 합시다. 뭐 BH에서도 그런것 같은데, 그것보다 월급도 덜 받 으면서 열심히 할 필요 있겠습니까. 대충합시다. 대충대충 화이팅하시면서 각자의 꿀잼을 찾기를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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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화 로 보 는 시 공 간
납량? 역사? 특집: ‘손님’ (2015) 과 ‘경성학교’ (2015)
필자가 몇 년 전 학회에서 만난 학자에게 한국 영화는 너무 ‘정치적’ 이라서 부담스럽다는 이야기를 들 은 적이 있다 (2000년대 영화들을 보고 하는 말이었다). 영화의 subject matter (주제)가 정치적인 이야 기를 다루는 것이 아닌데도 강박증 적으로 정치적인 혹은 역사관등을 굳이 집어넣은 것처럼 보인다는 것 이다. 과연 그럴까 생각해 보았다. 물론 현답이야 한국 영화 전체를 그런 시각으로 일반화 할 수 없다는 것이겠지만 한국인의 입장에서 본 한국 영화들에서도 그런 느낌을 받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 필자 의 결론이었다. 물론 매우 좋은 작품이었다면 그것이 정치적인 주제를 다루든 그렇지 않든 관객 입장에서 강박증 적으로 보인다던 지 혹은 부담스럽다고 느껴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영화가 이야기를 재현해 내는데 있어 서 무언가 매끄럽지 않고 뜬금 없었거나 불필요한 요소들이 있었다는 것인데 그 영화들이 졸작이라 그렇 다고 치부 하기엔 이러한 예가 무수히 많다. 특히 암울했던 군사정권 시절에 만들어진 영화들에서 이른바 의식 있는 감독들이 만든 영화들을 보면 그것들이 검열을 피하기 위한 도피 장르, 예를 들어 멜로나 공포 물 심지어 에로물에도 뜬금없는 독립투사 (뽕) 라든지 고문 받아 죽은 친척 (?) (월하의 공동묘지) 등의 캐 릭터가 네러티브와 아무런 상관없이 등장 하곤 하는데, 많은 학자들이 이를 독재 정권의 탄압을 그렇게 나마 표현 했다고 주장 한 바 있다. 그렇다면 그 이후의 한국 영화에서 앞 서 언급한 다른 나라 학자가 봤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검열도 군 사정권도 사라진 현재 한국에서 잉태된 영화들에서 왜 그러한 과도한 ‘정치성’ 혹은 ‘역사성’ 이 보이는 것 일까. 물론 이 ‘과도함’ 이라는 것은 소수의견 이나 변호인 같은 영화들에겐 해당되지 않는다. 이런 영화들 은 정치적인 소재, 혹은 인물을 전면으로 내세워 만들어진 영화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전혀 다른 영화들로 눈을 돌려야 한다. 예컨대, 왜 ‘손님’ 같은 영화는 굳이 배경을 6.25 전쟁 시절로 삼았던 것 일까. 어차피 ‘피리부는 사나이’ 라는 외국 동화를 각색해서 만드는 ‘한국형 공포영화’가 주된 컨셉 이었다면 왜 꼭 그 시대 배경이어야 했던 것일까. 조금 앞서 개봉한 ‘경성학교’의 예를 보면 영화의 배경이 일제 치하 라는 것이 전혀 큰 기제가 되지 않는다. 원래 시나리오상 굉장히 의미 있는 설정이었으나 영화에 표현되지 못한 것인지 애초부터 별로 상관없는 설정이었지는 모르겠다. 사실 이 영화를 보고 ‘큐브’ (Cube, 1997) 를 떠올렸는데 (혹자는 독일 영화, Das Experiment를 떠올릴 수도 있을 듯 하다) 어차피 국한된 공간에서 조종당하는 피해자들이 주인공이고 그
들의 심리묘사가 주요한 요소라면 ‘큐브’처럼 시대 설정을 배제하고 조종하는 자와 조종당하는 자 에 좀 더 주력했으면 어땠을까? 사실 조연으로 등장한 경성학교의 일본인 장교 캐릭터는 없었다고 가정해도 전 혀 영화의 진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이 두 영화를 굳이 비교하자면 ‘손님’에게 좀 더 좋은 점수를 주고 싶다. 손님의 경우 영화의 배경이 6.25 전쟁 직후이고 이 것에 대한 실제적이고 효과적인 쓰임이 곳곳이 있다. 예를 들어 피리 부는 사나이가 결핵 에 걸린 아들을 고쳐주고자 데리고 가려 하는 곳은 그가 알게 된 미군 병사가 소개시켜준 (혹은 주었다고 믿는; 스포일러 므로 생략) 병원이다. 또한 마을의 이장이 자신이 마을을 계속 통치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 에게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말하지 말아달라고 피리 부는 사나이에게 부탁하는 것도 억지스럽지 않은 설 정이다. 6.25 전쟁이나 그에 대한 사람들의 피해가 대사 속에 묻어 나오고 몇몇 행동들에 동기가 되긴 하지 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의 배경이 꼭 6.25 전쟁 직후였어야 했으며 만약 아니었다면 영화가 많이 달라 졌을까 생각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경성학교와 손님 두 작품 모두 격리된 공간 그리고 그 공간에 있는 사 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권력과 음모에 대해 다루고 있는데, 결정적으로 이 사람들이 격리 되게 되는 6.25 전쟁이나 일제 통치 라는 거대한 기제가 그 다지 큰 명분을 갖거나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 못한다는 것이다. ‘손님’과 ‘경성학교’는 여름이라는 타이밍을 이용한 오락영화다. 질 좋은 오락 영화라는 것이 굳이 역사 적인 성찰이 있어야 한다거나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또 다시 어디서 줏 어 들은 풍월을 인용하자면, 한국 영화는 “이도 저도 아니게 꼭 뭔가를 집어 넣을려는 특성이 있어 망한 다” 라고 말했던 평론가가 생각 나는데 이 두 영화가 그 이도 저도 아닌것을 굳이 넣고 싶어했던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앞 서 언급했던 군사정권 시절 영화들처럼 이 작품들의 창작자들 역시 특정 시대나 역사적인 지표들이 시사하는 상징성을 내포하고 싶었는지는 불확실하다. 만약 그런 의도가 작품성을 기반으로 전달되지 못 한다면, 외국 학자의 지적처럼 이는 ‘역사적인 강박증’ 이며 지식인의 ‘아집’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자꾸 다른 나라 영화들을 언급해서 죄책감이 들지만, 이러한 의미에서 반례로 들었던 ‘큐브’ 라는 영화 는 정말 뛰어나다. 손님이나 경성학교와 매우 비슷한 플롯과 등장인물들을 갖고 있지만, 쓸데 없는 가지 나 설정들로 스릴러 장르영화에 무엇보다도 요구되는 ‘집중력’을 분산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씁쓸한 공리 (shared belief) 지만, 짬짜면은 둘다 맛있기도, 둘 중 하나가 맛있기도 쉽지 않은 법이다. 글. 곡주대비
나의현대예술순례 #01 그림자의 詩學
글. 황정운
1_ 지난 6월, 지하철 4호선 쌍문역 4번출구에 내리니 여름에 접어든 계절은 이미 몹시 더워져 있었다. 김수영 문학관을 찾아가는 길이었다. 김수영 문학관 홈페이지에는 쌍문역에 내려 마을버스를 타라고 권했지만 출발하기 전 지도로 살펴보니 생각보다 멀지 않았고 중간의 큰 언덕만 넘으면 제법 걸을만한 거리로 보였다. 무엇보다 詩란 온 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란 그의 말이 쉽게 편하게 그를 만나는 것을 주저하게 했다. 전국 곳곳에 위대한 문인들을 기리는 문학관이 있지만 그 문인의 정취까지 느낄 수 있게 하는 문학관은 그리 많지 않다. 시의 친필원고나 숨겨진 문학세계를 새롭게 엿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일생의 시학세계가 온전히 묻어나기엔 건물이 지나치게 현대적이거나 혹은 오랜 기간 방치되어 그 공간이 죽어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많았다. (그러고 보면 전주 최명희 문학관은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는 감사한 공간이었다) 2013년 말 늦게 개관하여 현대적일 수 밖에 없는 김수영 문학관은 그의 날 선 시학세계를 어떤 감각으로 담아내고 있을까, 혹시 이곳도 학생들의 봉사활동 장소로 전락하진 않았을지, 그런 생각과 함께 쌍문동 언덕을 넘어 신동아2단지아파트에 이르렀을 때 김수영 문학관이 보였다. 시여 침을 뱉으라는 말처럼 문학관은 날카롭고 높이 솟아 있었다. 그 사이 햇살이 더 강해졌고 태양 속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아이들 세 명이 문학관 입구 그림자에 앉아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막 오후 2시였다. 1,2층의 전시실과 도서관, 대강당으로 구성된 문학관에는 다행히 아무도 없었고 김수영의 일대를 다룬 영상을 조용히 상영하고 있었다. 일제, 독립, 6.25, 4.19, 5.16을 거치며 날카롭게 다듬어졌던 그의 시 세계를 단지 연도별이 아니라 일련의 주제로 묶어 의미 있게 소개하고 있었다. 인상적인 것은 1층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흰 벽면이었다. 김수영 시에 등장한 다양한 단어를 하나 하나 나무 조각으로 걸어놓았는데, 한 눈에 보아도 100개 이상은 될 법한 막대한 양이었다. 지나가는 누구나 단어를 자유롭게 연결하고 이어 조합할 수가 있었는데 기존의 시어를 단절시켜 새롭게 결합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정신세계를 표현할 수 있게 했다. 흔히 김수영을 말할 때 가장 널리 표현되는 자유의 상징과도 같았다. 자유. 나는 이것저것 시어를 조합해보며 문득 이곳을 찾게 된 원인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팽이는 지금 수천년 전의 성인과 같이 내 앞에서 돈다 생각하면 서러운 것인데 너도 나도 스스로 도는 힘을 위하여 공통된 그 무엇을 위하여 울어서는 아니된다는 듯이 서서 돌고 있는 것인가
2_ 김수영 문학관을 찾게 된 것은 2012년 발간된 강신주 작가의 <김수영을 위하여> 책 한 권부터였다. 이 책은 거의 유일하게 김수영을 대중적으로 그것도 인문학의 이름으로 소개하는 책이기도 한데 김수영을 널리 알리는 것이 반갑기도 하여, 때문에 그에 대해 조금은 호의적으로 생각해도 될 것인지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반복하여 읽다 보니 처음의 감정은 차츰 희석되고 슬며시 불편함을 느꼈다. 그 불편함은 김수영이 자유와 저항의 상징이라는 일종의 표상화에 대한 거부 반응이었다. 사실 강 작가가 아니더라도 김수영은 자유와 저항의 상징 그 자체였다. 고등학교 수능을 준비하며 읽었던 김수영의 마지막 작품 <풀>에서, 마음껏 가래라도 뱉자는 <눈>에서 김수영이 목도한 4.19 직전의 혼란과 5.16 이후의 절망은 현재 진행 중이며, 온몸으로 밀고 나가야 한다고 외친 바로 그 자유가 아직도 유효하다는 것은 여전히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그 유효성 때문에 김수영의 詩와 生이 하나의 지향점이 되어야 한다는, 혹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김수영을 한갓 아이콘으로 전락시켜 버린 기분이었다. 아이콘으로서의 김수영은 과정이 아닌 목적이 되어버리는데, 김수영 스스로가 정말 우리의 목적이었는지, 다시 말해 그것이 그 스스로 원한 예술세계였는지 묻고 싶었던 것이다. <달나라의 장난>,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거대한 뿌리>에서 나에게 다가온 김수영은 자유를 향해 밖으로 발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안으로 수렴하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내 시선에 비치는 것은 자유를 향한 뒷모습이 아니라 生의 부끄러움에 가득한 그의 얼굴이었다. 두려움 없이 사랑과 혁명을 외치는 용기가 아니라, 내 안의 결여를 발견하려는, 혹은 발견해야만 한다는 강박관념이 읽혔다. 김수영은 분명 용기가 있었다. 융이 분석심리학에서 말한,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하려는 더 중요한 용기였다. 우리의 생각을 의식과 무의식으로 구분할 때, 내가 지배하는 의식 바로 이면에 인지할 수 없는 거대한 무의식의 세계가 있다. 가끔 무의식이 꿈의 형태로 나에게 메시지를 주지만 그 의미를 쉽게 알아차릴 수 없고, 그 존재 여부는 더욱 알기 쉽지 않다. 왜냐하면 내가 인정하기 싫은 나의 부정적인 모습이 무의식 속에 그림자의 형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어떤 방식으로든 그림자와 만나기 싫은 것이다. 인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 그림자는 내가 모르는 나의 결함이며, 그것을 껴안을 때 내가 완전해질 수는 없더라도 최소한 나는 조금 더 온전해 질 수는 있다. 그래서 그림자를 알고 가까워지려는 노력은 그 어떤 용기보다 어렵고, 때문에 위대할 수 밖에 없다.
그대는 반짝거리면서 하늘 아래에서 간간이 자유를 말하는데 우스워라 나의 영은 죽어있는 것이 아니냐
3_ 김수영의 아이콘화는 이 점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와 저항을 위한 용기, 그래 그것은 김수영을 관통하는 시학세계다. 그렇지만 그 생각을 쉽게 인정하기 싫었다. 김수영은 “나는 누군가에게 완성된 시대정신이자 두려움 없는 지향점이 될 수 없다. 밖으로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내 스스로 정말 얼마큼 부족한지 모래와 바람과 먼지와 풀에 물을 수 밖에 없다”라고 말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완전하지 않고 다만 온전해지기 위해 내 안의 결여를 끊임없이 발견해야 한다는 시선이 거대한 아이콘에 차단되어서는 안 된다. 표상이 되어버린 김수영이란 그 스스로 더 이상 갱신될 수 없는 박제와도 같은, 다소 슬픈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그의 예술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현대사회는 지향점만을 말한다. 그것을 제어하는 것은 원래 예술의 역할이었다. 다만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현대예술은 해체되고 분화하여 자신의 세계도 유지하기에 급급하게 되었다. 다양한 재료와 방법론으로 무장하고 더 화려해졌지만 우리 스스로에 대해서는 덜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 현대사회는 예술로부터 도움을 구하지 않고 제어 받으려 하지 않는다. 제어 받지 않는 사회는 걸음의 속도를 멈추지 않고 오직 밖을 말한다. 오직 밖을 바라보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쉽게 자기 자신을 탐구하지 않는다. 시선은 오직 앞과 위를 향해있다. 내가 얼마나 결여되어 있는지, 그리고 무엇이 결여되어 있는지 내부로 시선을 돌리지 않는다. 게걸스럽게 소비하고 게걸스럽게 반성하기 때문에 반성의 목적지를 외부로 돌린다. 현재를 극기하기 위한 외부-타자로의 시선은 그래서 적대적이고 공허하다. 김수영은 이 공허함을 경계했다고 믿는다. 그래서 누군가는 반짝거리며 자유를 말하지만, 그는 靈이 죽어있는 건 아닌지 자신을 돌아봤다고 믿는다. 김수영 문학관을 찾았던 것은 현대사회와 현대예술의 관계를 조금이나마 더듬어보기에 앞서 스스로 반성하고 싶었고, 목적이 아닌 과정으로 예술을 이해하고 싶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오후 4시를 지났고 많은 생각이 들어오고 또 지나갔다. 결여의 근원이 외부와 함께 나 자신에도 있다는 생각. 자기완성적인 타자 대신 예술을 통해 나에게로 더 침잠해야 한다는 생각. 그림자를 인정하고 발견하는 것이 현대예술의 역할이자, 예술을 소비하는 현대인의 거대한 뿌리라는 생각. 이 생각은 현대예술순례에 앞서 나에 대한 자기 선언이자 현대사회가 다시 환기했으면 하는 가치이기도 하다. 쉽게 말해 현대예술을 통해 더 따뜻하고 진실한 현대사회를 바라는 거다. 그러나, 아직은 하 …… 그림자가 없다. 나 역시 그것은 아직 발견되어가는 과정에 있기 때문에.
야경꾼들에게 20원 때문에 10원 때문에 1원 때문에 우습지 않으냐 1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주소: 서울특별시 도봉구 해등로 32길 80 (도봉구 방학동) 홈페이지: http://kimsuyoung.dobong.go.kr
작곡가 B의 노트 <사람들 속에서 음악이 울려 퍼질 때>
글.
composer B
1악장. 그런거 신경 쓰지마 그게 아마 초등학교 3학년 때였던 것 같다. 신문을 보다 우연히 작곡가 故윤이상 선생(이하 윤이상)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TV에서 방영된다는 사 실을 알게 됐다. 당시의 나는 막 클래식을 듣기 시작한 꼬마였고, 주변에서 ‘음악’이나 ‘클래식’같은 단 어가 들어갔다 하면 닥치는 대로 보고 듣고 읽으려했던 욕심 많은 아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의 나에게 ‘윤이상’이라는 이름은 낯설었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동백림 사건’에 연루된 이후부터 1995년 사망할 때까지 그는 조국에서 철저하게 지워진 존재였기 때문이다. 알고 있는 작곡가라고는 베토벤이나 브람스, 기껏해야 프로코피예프 정도가 전부인데다가 현대음악을 들은 적도 없는 초등학 생이 ‘윤이상’이라는 이름과 그 이름 석 자에 담긴 역사적, 사회적 함의를 어찌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지금이야 그렇지 않지만 그 때의 나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다큐멘터리는 절반도 채 보지 못하고 잠들어버렸고, 다음날 아침밥을 먹으며 어머니를 통해 대략적인 이야기를 들었던 것 같다.
내용인즉슨-세계적으로 인정받는 훌륭한 한국인 작곡가가 독재 정권 시절에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게 되어 모진 고문과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지만, 세계적인 음악인들과 정치인들의 구명 운동 끝에 특별 석방 조치를 받아 서독 국적을 획득해 평생을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조국으로부터 철저 히 잊힌 존재가 되어야만 했고 죽기 직전까지 단 한 번도 조국 땅에 발을 붙이지 못한 채 쓸쓸하게 독 일에서 세상을 떠야만 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솔직히 어린 내가 뭘 제대로 알고 실감이나 했겠는가. 고문 받으면 아팠겠다, 무기징역이면 평생 감옥에 있는 그거 맞지? 근데 진짜 그 할아버지는 한국에 한 번도 못 오셨던 건가? 몰래 오면 안 돼? 뭐 대략 이런 생각들만 했었던 것 같다.
그 이후로 시간이 흘러 조금 살기 괜찮아진 이 나라에서는 윤이상 선생에 대한 명예회복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을 딴 음악제와 콩쿠르를 열었고, 대통령이 선생의 미망인을 직접 청와대에 초청 해 환담을 하는 ‘그림’도 만들어냈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서 나는 음악대학에 진학해 작곡을 공부하는 학생이 되었다.
7년 전이나 지금이나 세계 음악계의 흐름에 비춰 봤을 때 윤이상의 음악은 약간 old-fashioned로 비 춰지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여전히 한국의 작곡 전공생들이나 교수들 사이에서 만큼은 절대적인 입지 를 가지고 있었다.
대외적으로는 ‘한국인 음악가도 이렇게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곡을 쓸 수 있다’ 는 자신감을 심어주기 에 충분했고, 내적으로는 그의 음악 어법과 작품 경향을 공부하며 ‘어떻게 해야 한국적이면서도 세계 적인 곡을 쓸 수 있는가’에 대해서 공부하는 계기를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교의 그 어떤 선생들도 그의 인생과 예술철학이 가진 정치, 사회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제대 로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의 작곡 기술과 그것을 습득하는 것에 대해서는 차고 넘치도록 공부했지만, 삶에 대해서는 ‘동백림 사건에 휘말려 옥고를 치른 안타까운 일이 있었다.’ 정도로만 언급했을 뿐이지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나는 선생들이 그런 훌륭한 예술가가 어떻게 해서 그 사건에 휘말리게 되 었고 예술가와 사회 혹은 권력 간의 함수관계에 대해서 설명해주기를 바랐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선생들은 늘 ‘작곡가는 자신이 사는 시대를 반영하는 작품을 써야한다’고 습관적으로 혹은 강 박적으로 말을 하곤 했지만 그들에게 특정한 사회 이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거나, 자신들 이 그러한 이슈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상황이 오면 역시 습관적이고 강박적인, 하지만 아까와는 많이 다른 내용의 대답이 돌아오곤 했다. 그 대답은 “예술가는 정치에 관심을 두면 안 된다.”였다.
2악장. 난 음악밖에 몰라요 그 이후로 늘 의문을 품고 살게 됐다. 왜 대다수의 음악가들은 ‘난 음악 밖에 모른다’는 말을 자랑스럽게 하는 것일까. 어쩌면 그들은 ‘난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 접을 테니까 댁들도 우리 업계에 신경 끄시오’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 밖의 약자들이나 사회문제에 대해서는 일말의 관심도 없으면서(“난 음악 밖에 몰라요”) 그로 인해서 내가 손해를 보는 상황이 오면 그제야 움직이는(“하지만 이럴 땐 다른 것도 잘 알지”) 그들에게 이런 질문을 한다면 당연히 화를 내거나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바람과는 다르게 음악은(넓게는 예술은) 오랜 옛날부터 지극히 정치적인 도구로 사용되어왔다.
어떤 예술가들은 권력자들의 치부를 가려주고 보기 좋도록 색칠하는 데 동원되어 그것을 널리 퍼뜨리는 선발대의 역할을 자처하기도 했었다. 우리에게 ‘왈츠의 왕’으로 알려진 작곡가 요한 슈트라우스 2 세는 젊은 시절, 왕정에 반대하는 혁명에 동조하다 경찰의 압박을 받게 되자 재빠르게 노선을 바꿔 왕실과 귀족들에게 접근하기 위해 부지런히 그들을 쫓아다녔고, 독일의 전설적인 지휘자 빌헬름
푸르트뱅글러(Wilhelm Furtwängler)는 나치 독일의 정권아래에서 어설프게(스스로는 머리를 썼다고 생각했겠지만) 처신한 끝에 전범들의 프로파간다에 앞장섰다는 의혹을 받아 말년에 큰 오명을 남겼다.
반면 타락하고 부패한 권력자들의 실상을 풍자하는데 앞장선 예술가들도 있었다. 14세기 프랑스에서 만들어진 노래집인「포블의 노래(Roman de Fauvel)」에는 용감무쌍하게도 당시의 최고 존엄인 귀족과 성직자들이 저지르는 부조리를 비난하고 풍자하는 노래들이 잔뜩 실려 있었으며, 앞서 언급한 윤이상은 광주 민주화 운동의 참상을 표현한 관현악곡「광주여 영원하라(Exemplum, In Memoriam Kwangju)」 를 작곡해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드높였다.
음악이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기를 바라고, 누군가에 의해 강제적인 영향을 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당연히 이해를 한다. 하지만 그에 대한 해결책(?)이 기껏 ‘난 음악 밖에 몰라요’라고 말하는 정도라면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그렇다고 지금 당장 하던 거 그만두고 민중가요만 쓰라거나 특정 정당에 가입을 하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사회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으며 자신은 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그 생각을 담은 자신의 작품이 세상과 어떻게 호흡하게 될지 정도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그런 고민들이 자신이 추구하는 예술적인 영역에 영향을 주어도 좋고, 주지 않아도 좋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이 ‘예술’ 이라는 영역은 ‘몰라요’라는 말로 가리기에는 생각이상으로 크고 강하고 위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됐든지 간에, 누군가에게 휘둘리기 싫다면 먼저 자신의 세계를 단단히 구축해놓는 방법 밖에 없다. 부디, 우리 스스로 강해지자.
미묘 (Mimyo) – Go Wild 미묘 (Mimyo) – Go Wild (디지털싱글, 컬리솔 레코즈, 유통 미러볼 뮤직, 2 (디지털싱글, 컬리솔 레코즈, 유통 미러볼 뮤직, 2015.07.29)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송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한 송가
<Le Devenir>(2010)와 <Floating Ones>(2012)의 몽상적인 사운드로 감명을 남긴 일렉트로
<Le Devenir>(2010)와 <Floating Ones>(2012)의 감명을 남긴 일렉트로닉 뮤지션 미묘(Mimyo)가 디지털 몽상적인 싱글 “Go 사운드로 Wild”를 발표한다. 대중음악 평론가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
미묘(Mimyo)가 디지털 싱글오랜만에 “Go Wild”를 발표한다. 활발히 미묘가 선보이는 음악대중음악 작업이기도 하다. 2015 년 7활동하고 월 29 일 있는 정오에 국내 주요 음원 사이 뮤지션 미묘(@mimyo_)의 신곡이평론가로도 나왔습니다. 오랜만에 선보이는 음악 작업이기도 년 7 월 29무료 일 정오에 국내 음원 사이트를 통해 발매되며, 하다. 미묘의2015 밴드캠프에서 스트리밍 혹은주요 다운로드 구매도 가능하다.
발매되며, 미묘의 웹진 밴드캠프에서 무료 필자로 스트리밍 혹은 다운로드 구매도 가능하다. 아이돌로지의 활동중이신 미묘님이 드디어 오르신 심판대 “Go Wild”는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는” 여자가 싫다는 한 연예인의 발언으로 촉발된 SNS 상의
“Go Wild”는누가 “설치고, 말하고,#GoWildSpeakLoudThinkHard 생각하는” 여자가 싫다는 한 연예인의 발언으로 촉발된 SNS 상의 해시태그 에 감명 받아불벼락을 제작되었다. 앰비언트 음악을 기조로 하던 미 찾아가겠습니까!! 우리가 찾아가야지요!! 클릭과 하트의 내립시다.
#GoWildSpeakLoudThinkHard 에 감명사뭇 받아달리 제작되었다. 앰비언트 음악을달려나가는 기조로 하던 미묘의댄서블한 평소 작업과는 스트레이트한 사운드로 곡이다. 신서사이저가
작업과는 사뭇 달리 스트레이트한 사운드로 달려나가는베이스와 곡이다. 지글거리는 댄서블한 신서사이저가 화사하게 설치는’ 분위기를 리드하지만 무겁게 찌그러지는 노이즈를 통해 ‘어쨌거나
리드하지만 무겁게 찌그러지는 베이스와 지글거리는 ‘어쨌거나 설치는’ 분위기를 자아낸다. 강예진이통해 상냥한 듯 짓궂은 목소리로 참여하여 매력을 더해, 설쳐야 투스토리(2Story)의 보컬노이즈를 투스토리(2Story)의 보컬 강예진이 짓궂은 목소리로 참여하여 매력을 더해, 설쳐야 할 때에도 마음이 상냥한 답답할 듯 때에도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답답할 때에도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이다.
6_ 자연을 자연스럽게 보기
옆 사람 인터뷰
지리산에 갔다. 자연도 산도 좋아해서 참여한 3박 4일의 산 탐험. 백두대간의 식생을 조사하는 프로젝트로, 이 분야를 1_ Granz Globewalker, 여행하며 음악하기 연구하시는 분들 틈에서 나는 체험학습을 하는 학생 정도로 작은 노력을 보탤 수 있었다. (근데 이거 등산이 아니라 타잔이 되어야 하는 자리였다. 아이쿠) 그곳에서 자연을 닮은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면서 사람도 많이 만났는데, 생태계만
승은 언니를 만났다.
큼이나 귀한 사람들을 만나는 보람도 있었어요.
�� ���� ��� ��� ���� ���� ���� ��� ����� ����� ���마쳤어요. 밤�� �� ��� 결 석사 과정을 시작하고 첫 학기를 어떤 ���� 공부와 연구
환경운동가로서 좋은 점은 무엇이고 힘든 점은 무엇인가요.
를 하고 궁금합니다 ��있는지 사람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어디에 가도 있
는 것은 사람이요, 사람으로 펼쳐진 시공간이
섬 조사를 하러 배를 타고 바다를 가로질러 나갈 때, 산양
생태계었다. 조사 연구와 생태계 서비스 연구를 함께하고 내가 만났고 만나고관련 있는 사람들 또한있 어요. 조금 더 쉽게 이야기하자면 한라산이나 백두대간에 올 아름다운 여행지의 하나였다. 여행을 이야기하 라가 그곳에서 자라는 식물을 연구하고, 환경으로부터 인간 고 싶었으나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생 이 받는 다양한 혜택(물이나 음식 제공, 휴식처, 홍수 조절 등) 각했다. 사람을 여행해볼 작정이라고. / 을 연구하는 거예요.
을 찾으러 깊은 숲속으로 들어갈 때, 나무 둘레를 재기 위해
일을 하다가 비교적 늦게 대학원에 입학했어요. 새롭게 공부 게스트하우스에는 다양한 삶이 오고갔다. 그 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 랜트는 미국에서 온 장기 투숙객이었는데, 여
15년째 채식을 하고 있어요. 주변에 채식하는 분들이 있긴
행을공부보다는 온 사람치고는 꽤 정적이었 20대에는 다양한그의 경험을하루가 더 중요하게 생각했어 다. 그는 공용 공간에서 음식을 먹거나 요. 그래서 정말 다양한 일을 했던편의점 것 같아요. 그러다가 내가
서 나보다 큰 나무를 감싸 안을 때. 그때 생각을 하죠. 이 공 간이 내 활동의 터전이고 동력이 되어서 너무 좋다고. 힘든 점 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아직 제대로 환경운동가가 되질 못 했나 봐요. 하하
하지만 종교적인 이유를 제외하고는 언니처럼 오랜 시간 지 속한 사람을 처음 만났어요. 시작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 요?
비틀즈의 전곡을 모아 놓은 옆에 두고 하고 싶은 일을 좀 더 긴 호흡으로 하기교본을 위해서 필요한 게뭘
저는 고등학교 때 모피 옷을 입지 말자는 캠페인을 했었어요.
기타를 치고는 내가 생태계에 그의 반려자와 다름통 까 생각해 봤는데, 바로 했다. 공부였어요. 대한 공부를
당시 털가죽을 쓰자고 밍크나 여우를 껍질만 벗겨서 죽이는
해 내가 그동안 경험했던 깊이 있게 만들고 싶었고, 없던 기타를 두 것을 동강더 내기 전까지는(당분간
비틀즈와 로드리게즈 만큼이나 그의 노래를 게는옳지 않다고 생각을 했거든요. 그래서 환경단체 내 청소년
당장 한 사람이라도 더 생태계를 전문적으로 사람 Hey Jude를 배우겠다고 설칠 일은 연구하는 없으리라).
좋아한다. 모임에서 또래 친구들과 모피 반대 활동을 하다가 내가 동물
이 필요하다는 간절함도 있었어요. 조금이라도 더 파괴되기
들을 위해 실천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한 끝에 채식을
전에 말이죠. 어릴 때부터 사람들은 그가 의사가 될 것을
하게 되었죠. 저의 생각은 소는 갈비가 아니고, 돼지는 소시지
기대했지만 6살 때부터 그는 음악을 꿈꾸었다 이전에 어떤 일을 했는지 얘기해주세요. 고 한다. 소망은 오랜 시간 그대로였으나 대학
가조금 아니고, 치킨이 아니라는 거예요. 인간이 더 닭은 오래후라이드 머물 줄 알았는데 시드니에 갔 육
을 졸업한 후에야 그는 온전히 음악을 하기로 대학을 졸업하고 가장 오래한 일은 환경단체에서 3년 간 지 마음을 먹었다. 낸 거예요. ‘현장과 이론이 만나는 연구소’라는 모토가 제가 지향하는 바와 딱 맞았고, 꿈이 환경운동가였기 때문에 그곳 그를 마지막으로 본 날, 직접 녹음한 아홉 에서의 단체 생활은 정말 행복한 하루 하루였어요. 저는 주로 곡이 담긴 CD 장을 선물로 받았다. 가기 요즘 힘든, 나 비무장지대(DMZ) 지역한관련 일을 해서 일반인은 귀한 생태계가 남아 있는 아름다운 곳을 많이 다녔어요. 조사
식을 수도 있지만 그 있나. 정도가 지나쳐서 생명이라는 다. 할 요즘은 어떻게지금은 지내고 근본적인 가치가 상실되어버렸다고 생각해요. 멀지 않은 미래 에 우리 후손들은 우리가 동물들에게 하고 있는 행동을 ‘비정 나도 오래 있고 싶었지만 관광비자만으로는 그 상적이다’라고 말하게 될 것 같아요. 아무리 입이 즐거워도 생 럴 수 없었다. 한국에 다시 가고 싶고 그전까 명을 그렇게 다루어선 안 되지요. 지 시드니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비행기
표를 사기 위해 잠시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 언니의 어릴 적 꿈이 궁금해졌어요. 채식을 시작한 즈음과도 관련되어 있을 수 있고, 그 이전의 꿈 이야기도 좋아요.
중학교 때 본 사진 한 장에 제 꿈을 결정해버렸어요. 자신의 몸을 던져 죽음의 위기에 닥친 어린 하프물범을 구하는 그린피스 대원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에요. 그때부터 그린피스라는 세계적인 환경보호단체 활동가가 되고 싶었죠. 지그재그로 나아가고 있지만 그 꿈은 지금까지 쭉 이어져 오는 것 같아요. 앞으로 연구실에서 더 공부하고 연구하고 싶은 분야가 있다면 무엇인지, 혹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해요. 분야를 아직 결정하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보다 정확하게 관찰하고, 기록하고, 정리하고, 분석할 수 있는 방법과 지식을 많이 배우려고 해요.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지금은 정확한 나침반이나 시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언니에게 자연이란. 돌아갈 곳. 내가 마침내 머무를 곳. 이따금 좋아한다는 것 혹은 사랑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그 대상은 사람뿐 아니라 또 다른 생명이나 어떤 물건, 시공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승은 언니는 나의 이 개인적은 물음에 하나의 삶의 방식을 보여주었다. 자연이라는 대상이 있다면 언니는 자연을 알고, 이해하고, 배려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지리산을 함께 오를 때 산에 있는 녹음이 언니에게도 푸르게 서려 있음을 느꼈다. 새로운 배움이 더 많은 녹음을 만들어 내리 라 기대하며 언니를 응원한다.
의미없는 이야기 글. 그림. 철민
이재명 성남 시장 인터뷰 질문. exxx
먼저 성남시에 대한 개략적인 정보를 정리하고 넘어가겠습니다. 간략하게 정리된 것들을 먼저 보시고 인 터뷰를 보시면 보다 더 재미있게 보실 수 있습니다. (2020 성남 도시 기본 계획 (변경) 발췌) 서울의 동남쪽으로 접경, 지역공간상으로는 경기도의 중심부에 위치, 성남시 중앙으로 경부고속도로가 남북을 관통하고, 본시가지 서측에서 북측으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가 통과한다. 반경 20km 내외의 서울시, 하남시, 광주시, 용인시, 수원시, 의왕시, 군포시, 안양시, 과 천시 등의 지역에 대해 출퇴근 고용인구,상 품소비, 시장이용권 등의 지역경제권이 미치 고 고부가가치산업인 벤처산업을 중심으로 경기도 남동부권에 위치한 중소도시에 영향 력을 미치고 있다.
2015 세입 세출 예산 총액 : 2,355,191,023 원 인구현황 : 980,190인 (2010. 12. 31) 세 대 수 : 385,050세대(2.55인/세대) 분당 및 판교신시가지 개발에 의해 농가인구가 급속히 감소하였으며, 과밀억제 권역내 총량규제에 의해 신규 공 업용지의 추가 지정이 불가능한 상황. 2010년 12월말 기준 성남시내 총 사업체수는 50,923업체이며, 종사자수 는 310,658인으로 전체인구의 31.7%를 차지. 종사자기준 산업구조는 3차 산업이 81.3%, 2차산업 18.7%, 1차산 업은 거의 전무한 실정. 최근 10년간 분당IT밸리, 판교 테크노밸리 등 첨단지식기반산업의입지로 3차산업은 지 속적인 증가추세. 도시기반 형성 시기 (1960 ∼ 1980년대) :‘중부면 성남지구 일단의 주택단지 경영사업’에 의해 조성공사가 착수 되었으며, 1969년 5월부터 서울시 철거민 집단 입주가 시작되는 등 인구가 급증. 기존의 성남 출장소 관할 인구 가 14만명에 육박하자 1971년 9월에 경기도 직할 성남출장소를 설치. (1971년 8월 10일 광주 대단지 사건) 동년 10월부터 ‘성남개발 3개년 투자계획’에 의해 도시건설사업을 착수. 수도권의 인구집중 억제와 수도권 주변의 무 질서한 도시 확산 방지 및 서울시 외곽도시의 합리적인 육성을 목적으로 ‘시설 설치와 군의 폐지 분합에 관한 법 률’ 이 1973년 3월에 공포되었고, 동년 7월 1일 성남시로 승격 도시성장 시기 (1990~2000년대) : 주택건설 200만호 사업의 일환으로 성남시 남쪽지역에 위치한 ‘남단녹지’를 중심으로 하여 분당신도시 건설. 10만 5천호의 주택이 들어섬에 따라 경기도 내에서 수원시 다음 규모의 대도시 로 성장. 1996년을 정점으로 분당신도시 유입인구가 정체기에 들어섰고, 인구증가율이 감소하기 시작. 1990년 대 말, 판교지역을 중심으로 인구 10만명에 육박하는 신도시 개발 발표 도시환경정비 시기 (2000년 이후) : 분당신도시 개발 이후 도시공간구조의 양분화와 지역간 삶의 질적인 차이 등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공원, 녹지, 주차장 등의 관련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지역여건을 개선해 나 가고 있다
먼저 잘 모를 독자 분들을 위해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졸업 후 성남에 올라와 6년간 공장생활을 했습니다. 공장생활 2년 쯤 되 었을 때 사고를 당해 장애를 가지게 되었고요.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해 검정고시를 봤습니다. 대입검정 고시에 합격하고 1년 더 공부해 대학에 갔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1986년 사법고시에 합격 후 판검사 발령이 가능했지만 현장의 요구 사이에서 갈등하다가 군사정권을 거부하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외면할 수 없어 인권 변호사, 시민운동 등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10년 성남 시장에 당선되었고 작년에 민선 6기 성남시장에 당선 된 이재명입니다.
시장님에 대해 아무런 정보도 없던 시기에 제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왜? 성남시에 이 사람이 등장했을 까?’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성남과 시장님의 인연에 대해서 이야기 해 주세요. 처음 성남에 올라왔을 때는 당시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일자리를 찾아 가족이 올라왔습니다. 가족의 생계를 위해 초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공장으로 갈 수 밖에 없었고요. 성남의 오리엔트 시계공장에 서 소년 노동자로 처음 일을 하기 시작했는데 산재를 당하고도 보상 한 푼 받지 못했던 일과 비인간적인 노동환경에서 일했던 기억 때문에 변호사가 된 후 다시 성남을 찾게 된 것 같습니다. 대학에 입학 후에는 군사정권과 사회구조의 부당함에 대해 많이 생각했었고요. 궁극적으로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장기적인 여정이라고 생각하고 사시를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사법연수원 시절 만났던 동기, 선후배와 함께 지역 과 현장에 다가가기로 마음먹은 다음 성남으로 와 지역에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왜 시장 출마를 결심하게 되었느냐?’는 질문에‘시립병원 설립운동과 관련해 도피 중이던 2004년 3월 28일 오후5시, 성남 주민교회 지하 기도실 에서 처음 청원하고 감시하는 3자가 아니라 권한을 가지는 사 람이 되자는 결심을 했다’고 답하시곤 하는데요. 이 당시 함께 활동하던 분들이 지금도 함께 활동 중 이 신가요? 함께 하고 계신다면 그간 어떤 영향을 받으셨고 함께 하시는 분들은 어떤 역할을 맡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시민운동을 함께 했던 분들은 지금도 지역사회에서 여러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성남에서 처음 지역활동 을 할 때 장명국 선생(현 내일신문 대표), 최영희 전 의원(구 민주통합당) 등을 만났습니다. 사실 성남에 는 그전부터 자체적으로 조직된 모임이 있었고 저는 그곳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시민운동을 시작 했습니다. 지금 저는 정치인이자 선출직 공무원이 됐고 다른 분들은 각자 여러 분야로 흩어져 자신의 역할 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부조리를 바로 잡아, 공평한 기회 속에서 노력한 만큼 성과가 보장 되는 정상적인 사회, 주권자의 의사가 제대로 관철되는 민주사회를 만들자는 목표는 다르지 않을 것이라 고 생각합니다. 저도 지금 시장을 하고 있지만 시민운동을 할 때와 목표나 자세가 다르지 않습니다.
성남시의 경우 2015년 세입 세출 예산 총액이 약 2조 3천500억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정도의 재정이란 것이 보통 사람의 감각으로는 알 길이 없고 체감하기도 어려운 큰 크기인데 이런 큰 금액을 처음 맞닥뜨 렸을 때 어떠셨나요?
시민운동할 때는 실무자 1명에 예산 3천만원으로 일을 했습니다. 당선이 되니 정규직 2,600명에 예산 2 조4천억 원을 다루게 되더군요. 쉽게 실감을 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었습니다. 주민들이 위임해 주신 권 한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더 많아졌으니 기대와 책임감도 커졌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생각 보다 너무도 큰 부채가 존재했습니다. 취임당시 판교 특별회계 부당 전입금 5,400억과 미편성 법적의무 금 1,885억 등 성남시 부채가 7,285억 이었습니다. 이후 예산을 삭감하고 지방채 발행하고 시 자산을 매 각해서 5,731억을 갚았습니다. 이 금액도 사실 체감하기에 너무 큰 액수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일평생 제 일 큰 돈 쓰는 게 아마 집 한 채 장만하는 것인데, 그 수 억 원의 금액도 엄청나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소 위 부자도시라는 성남에 이렇게 많은 숨겨진 부채가 있다는데 많이 놀랐습니다. 어느 정도의 부채는 예상 하고 있었지만 막상 파악해 보니 그 금액이 충격적인 수준이었습니다. 당장 제 때 빚을 갚을 수 없는 상황 이어서 고민을 많이 했었고 시의 주인인 시민들에게 사실대로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성남 모라토리엄 선언입니다. 결과적으로 시민들께서 인내하고 협조해주셔서 조기에 모라토리엄을 마칠 수 있 었고, 부정부패하지 않고 제대로 예산을 쓰면 생각보다 훨씬 많은 예산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것도 체득했 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노무현 전 대통령 말기의 인터뷰 집에서 ‘지금이 민주주의의 위기다.’라는 발언을 인상 깊게 보았고, 지금도 그 발언에 대해서 많이 생각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서 김대중 노무현 정부 10년 간 어떤 부분이 부족 했는가를 많이 고민하고 있는데, 최근에 쓰신 책에서‘민주주의의 위기’라는 언급을 하는 부분이 있어 놀랐습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신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지방자치제가 실시된 지, 20년이 되었고 전 세계적으로도 가장 빠르게 민주화를 이룩한 나라라는 대한민 국의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드러난 많은 의혹과 국정원 선거개입, 댓글 등을 포함해 세월호 참사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이 과연 민주국가가 맞나 하는 의심이 들게 합니다. 국민 한사람, 한사람의 의사를 합쳐 국가기구를 구성해야 한다는 민주주의 제일의 원칙이 파괴되는 행위가 일 어나고 국정원이 국민을 사찰하는 행위가 버젓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일부 정치인은 국민들로부터 위임 받은 약속을 버리고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을 져버리고 있습니다. 가까이로는 민주주의의 학교라고 할 수 있는 지방자치제 또한 위기를 맞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외형적인, 법적인 민주주의는 이루어진 것으로 보 일지 모르지만 현실적으로는 수많은 국민의 희생으로 이룩한 민주주의가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시스템 또한 망가져 간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수의 개인이 무시당하고 배제당하고 박탈당하는 일이 많아지고 있 습니다.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해지고 승자독식, 무한경쟁의 사회 속에 개인은 희생을 강요당하고 있습니 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고귀한 인격은 무너진 사회 속에서 각자도생하도록 하는 것은 국가가 그 책임을 방 기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가 ‘공공의’ 본연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성남시에서는 그것을 실 현해보려고 합니다. 그것이 성남에서 일으키고 있는 공공성 강화 정책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자서전인 <여보 나 좀 도와줘>에 보면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아내는 대체로 내가 하는 일이 옳다는 점은 인정 하는 것 같다. 그렇지만 내가 한국 정치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 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정치를 하거나 말거나 한국 정치가 달라질 것이 없는데, 왜 그 고생을 하느냐 는 것이다.”이후의 활동을 생각하면 사실 한국 정치에 끼친 영향이 대단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에 는 가장 가까운 사람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정치가 아닐까 합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어보신 일이 있으신가요?
주권자가 국가의 주인인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한 사람의 정치인이 모든 것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 혼자 그 렇게 튀면 그만큼 공격당할수도 있고 그래서 뭐가 바뀌는 것이냐는 이야기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국 민이 참여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기득권의 승자독식 구도는 더욱 단단해져 공평한 기회를 가질 수 없게 됩 니다. 한 사람의 힘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콩알 줍듯’ 한 명 한 명 설득하고 바꿔나가면 나중엔 광주리 가득 엄청난 시너지가 발생합니다. 한 말씀 더 드리면, 정책은 소수의 관심 있는 사람들이 경합한 결과를 다수가 따라감으로써 결정되는 것입니다. 옳은 생각을 가진 소수의 역할과 행동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래서 행동해야 합니다. 이러한 행동이 하나하나 모여서 거대한 흐름이 되는 것입니다. 정치가 바뀌지 않 을 것이라는 신화는 일부 기득권층에서 원하고 있는 시나리오라고 생각합니다.
시의 운영에 있어서 시민들의 참여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시고 시민들의 참여를 더욱 높일 수 있도록 노력 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지역 정치 활동 참여가 발전되고 있다고 느끼신다면 그 사례를 들 어보고 싶습니다. 성남시에서는 행정에 시민들의 참여를 최대한 보장하고 있습니다. 신년 인사회 등 수시로 각 동을 찾아 시민의 의견을 직접 듣고 있고요. 초등학생부터 어르신까지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말씀하시고 그것을 시 정에 반영합니다. 일종의 직접민주주의에 가깝게 하려고 합니다. 중요한 지역 현안사항이 있을 때는 일종 의 공개토론장과 같은 노상방담도 수시로 엽니다.공개된 자리에서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직접 듣는 것이죠. 답변해드릴 것은 그 자리에서 직접 답변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시간을 갖습니다. 또한 시민참여 예산축제를 통해 시민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렴합니다. 시민들이 원하는 사업, 아이디어를 직접 발표하 고 전문가, 일반시민들의 투표를 통해 정책화 하여 예산에 반영시킵니다. 이러한 예는 성남시의 정책 수립 에 중요한 부분이다. 처음에는 주저하던 시민들이 시간이 갈수록 더 많이 참여하고 더 많은 아이디어와 의 견을 내고 있다. SNS를 통해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불편사항을 접수받는 것은 성남시 행정의 기본이 된지 오래되었다. 앞으로도 시민참여창구를 더 다양화 하고 더 많은 의견을 구하려고 한다.
가정주부나 노인들과 같이 외부 활동이 많지 않은 시민들과의 소통은 어떻게 하고 계신지 알고 싶습니다. 요즘은 SNS가 워낙 다양화되고 많이 퍼져있어 전 계층이 SNS를 통해 의견을 보내주십니다. 어르신들에 게는 동 주민센터나 구청에서 SNS 강의도 하고 있고요. 교육을 받으신 다음부터는 젊은 층 보다 더 적극 적으로 활동하시고 의견도 보내주십니다. 친구신청도 하시고 직접 멘션도 보내주시죠. 메일, 홈페이지 등 온라인을 통해서도 많은 목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피드백은 기본이고 당장 처리가 어려운 일은 진행사항과 예정 등을 신속하게 알려드립니다. 시장실도 언제나 개방되어 있습니다. 누구나 언제든지 들 어오셔서 대화를 하시는 것은 물론이고 사진도 찍으실 수 있습니다. 어르신들은 직접 찾아오셔서 말씀을 나누고 가시는 경우도 많습니다. 보다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노상방담, 주민제안의 날에 직접 가서 말 씀을 듣기도합니다. 성남시에서 소통은 일상적이고 다양한 통로를 통해 진행되고 있습니다. 가능한 소외 되는 계층이 없도록 여러 통로를 열어두고 있습니다.
시민들의 정치참여와 관련해서 지금은 시장님이 계셔서 가능할 수도 있지만 다음이나 그 다음시장 시기 에도 이와 같은 기조가 유지가 가능할까요? 리더의 교체와 관계없이 시민들의 참여를 방해 할 수 없는 제 도적 보완이 가능할까요?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결국 주민의 의사결정으로 미래가 결정됩니다. 이재명이라는 사람이 없어도 지금의 기조는 유지될 수 있습니다. 단, 주민의 의사가 결집되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투표하지 않으면 의사가 제 대로 모아질 수 없습니다. 나 한 표쯤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무너질 수 있습니다. 깨어 행동해 야 합니다. 뛰어난 리더 한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다수의 시민이 세상을 바꾸는 것 이죠.
세금 체납과 관련해 세금으로 임금을 받는 사람 혹은 고액소득자들에게 더 엄격하게 적용한다는 이야기 가 있습니다. 이유는 무엇인가요? 고액체납자는 가택수색에서 출금금지까지 해서라도 끝까지 추적하고, 생계형 체납자는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는 것이 성남시 체납 징수의 기조입니다. 사회의 모범을 보여야 할 지 도층이 국민의 의무인 납세의 의무를 저버린 데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해서라도 더 적극적으로 체납세금 을 추징해 나갈 것입니다. 직업별로 조사해 보니 고액 체납자 중에 대기업 임원, 법조인, 언론인, 의사 등 사회 지도층이 다수 있었습니다. 월 3200만원을 버는 의류회사 대표이사가 자동차세 2건, 68만원을 내지 않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차량 압류 뿐만 아니라 가택 수색, 공매 등을 통해 적극적으로 추징하고 있습니 다. 반면에 ‘생계형’으로 파악된 실직자, 일일노동자, 소규모 영세사업자 등에 대해 체납처분과 행정제재 를 유보하고 체납액 납부계획서를 받아 분할 납부하도록 했습니다. 사업 실패로 생계유지가 힘든 130명 의 체납처분을 유예하는 한편 성남시 무한돌봄센터와 연결해 공공근로 또는 지역공동체 일자리를 제공하 기도 했습니다. 이는 경제적 자립에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때문에 체납액 징수율을 높이는 효과를 보고 있 습니다. 생계형 체납자들은 체납액 납부계획서대로 체납액을 분할 납부해 실제로 징수액을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기도 했습니다.
체납 실태 조사반에 시민들의 참여는 어떻게 이끌어 낸 것인가요? 성남시의 시민 체납 실태조사반은 3.5대1의 경쟁률을 뚫고 공조직에 들어온 임기제 공무원입니다. 시민들 이 직접 공무원으로 채용 되 체납 징수 활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시민들이 지역사정과 각 개인별 체납 상 황 등에 대해 더 밀착해서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시민의 참여를 통한 체납실태 조사반을 구 성했습니다. 체납 실태조사반은 연말까지 2개월 이상 200만원 미만의 세금을 체납한 17만8077명 체납 자의 집을 찾아가 실태조사 활동을 하고 생계형 소액 체납자에게는 분납 안내를 해 주거나 생활편의 복지 서비스를 연계해 재기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것도 체납 실태조사반의 몫입니다. 잦은 거주지 이동으로 세금 고지서를 받지 못한 사람에게는 고지서를 직접 전달해 납부 약속을 받습니다. 고의적인 체납자는 차 량 번호판 영치, 관허사업 제한, 부동산 압류 등 불이익을 알리고 세금을 내도록 합니다. 세무 행정 서비스 개선, 시민 일자리 창출, 건전한 납세 풍토 정착까지 다양한 효과를 보고 있습니다.
지방자치와 민주주의에 큰 가치를 두고 노력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개별 사례들도 내부적으로 하나 둘 씩 누적되어 가고 있고요. 이와 관련해 다른 지역의 시민들이 쉽게 참고할 수 있도록 개별 사례집 같은 것을 낼 계획이 있으신가요?
시정 성과에 대한 사례 홍보는 선거법에 저촉될 여지가 있어 답변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그 대신에 SNS나 인터뷰 등 언론매체를 통해 성남의 사례를 알리고 있습니다. 특히 SNS를 통해 공감해 주시는 타 지역 분들도 많고 조언이나 정책 제안도 많이 해주시고 계십니다.
시민들의 정치 참여와 관련해 지역사회의 사안이 아닌 정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는 것에 대한 의견이 있다 면 듣고 싶습니다. 정당정치도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정당에 가입한다고 해서 꼭 지역사회의 현안과 별개로 활동 하는 것은 아니고요. 정당은 말 그대로 정치 공동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정치적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같은 목소리를 내거나 대안제시, 방향 설정을 합니다. 지역 현안에 대해서도 충분히 정당 활동의 가치가 있습니다. 다만 정당이 아닌 정파적, 정치적 이해득실에 따라 움직이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특 정 개인의 목적 달성이 아닌 지역사회 전체의 발전을 위한다면 정당에 가입해 활동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활동이라고 봅니다.
시도자치장들 사이에서 시 운영에 대한 긍정적 사례들을 적극적으로 공유 하고 나누어지고 있는지 궁금 합니다. 얼마 전 메르스 관련해서 당 차원의 지방자치단체 간담회도 있었지만 이런 방법의 정책 교류는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간담회에서 성남시의 선제적인 메르스 대책에 대해서 소개도 했고 타 시의 사례도 듣고 왔습니다. 우리시의 좋은 정책, 예를 들어 공공의료 강화를 위한 시립의료원 건립 같은 경우는 중앙당 차원에서 직접 보고 전파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정책과 사례 공유는 활발하게 잘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실 무선에서도 벤치마킹을 하거나 정책 소개를 하기도 합니다. 시민을 위한 정책은 적극적으로 전파하고 잘 하는 정책을 배우는 것은 지자체장으로서 당연한 직무이기도 합니다.
공약집을 살펴보니 꽤 디테일한 측면까지 잘 정리되어 있던데요, 후보의 공약은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 어지나요? 다양한 경로를 통해 공약이 발굴되고 다듬어집니다. 시민 의견, 제안뿐만 아니라 타 시도, 해외 사례 등 광 범위하게 자료를 살펴보고 수집합니다. 여러 단체의 의견이나 전문가 조언, 직접 겪으면서 느꼈던 것들도 포함된다. 여러 제안 중 현재 성남시에서 실현 가능한가를 가장 먼저 평가하고 다양한 전문가 집단을 통 해 구체화 합니다. 치열한 토론 과정도 필수입니다. 단순히 무엇을 하겠다가 아니라 어떻게 하겠다가 핵 심이 되도록 공약을 만듭니다. 실질적인 공약 실현을 위해서 구체적인 방안, 예를 들어 예산확보나 실현 가능성 등을 면밀하게 살핍니다. 실천할 수 있는 약속만 한다는 것이 기본 원칙입니다. 그 결과, 2012년 과 2013년 매니페스토 경진대회 일자리창출분야에서 2년 연속 최우수상을 수상했을 뿐만 아니라, 공약 이행 및 정보공개 평가에서 2013년에 이어 2014년에서도 2년 연속 종합평가 최우수(SA등급) 평가를 받 았습니다. 최근 화제가 된 무상 공공산후조리원의 경우도 민선 6기 핵심 공약 사업의 하나였습니다. 시 민들과 약속한 데로 예산확보, 조례 제정이 다 끝났고 실행만 하면 되는 단계에서 복지부에서 반대해 지 연되고 있습니다. 치밀하게 준비해 온 공약을 이런 식으로 막는 것은 중앙정부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 합니다. 시민께 약속을 했고 이를 지키려는 노력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복지에 많은 관심을 갖고 계시고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혼자서 마음을 먹는 것과 달리 예 산을 만들고 집행하는 것은 여러 사람의 공감이 필요한데요. 방향을 설정하고 정책이 결정되기까지 어려 움은 없으 셨나요? 이것을 어떻게 넘어섰는지 궁금합니다. 정책 결정은 방향성의 문제입니다.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결정하면 정책도 그에 따라 맞춰갑니다. 정 책의 방향은 선거를 통한 시민의 의사표시로 결정됩니다. 공약을 내 걸었고 이에 대한 평가를 시민들이 해 주신 것이죠. 민선 6기 성남시는 우리의 공약 방향 데로 이끌어 가기를 원하신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성남 은 복지와 공공성 강화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공공성 강화를 위해 안전, 의료, 교육에 중점을 두고 정책 을 만든다.’ 이는 선거 전 공약을 통해 밝힌 내용이고 시민의 선택을 받은 방향입니다. 구체적으로 정책을 만드는 과정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리더는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머리가 없으면 팔다리가 제멋대로 움직이고 실행도 되지 않습니다. 정책에 대한 반대도 있고 다른 의견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를 잘 수렴해서 정책에 반영하거나 불가능한 것은 과감히 도려내야 합 니다. 최대한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정책으로 다듬는 과정이 가장 힘든 과정입니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 도 공감을 얻지 못하면 실행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일부 반대에 대해서는 다수가 공감한다면 과감하게 실행하는 결단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시장이란 자리가 쉽지 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성남시의 재정자립도가 상당히 높고 궁극적으로는 100%라는 목표가 적혀 있던데, 이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시나요? 일시적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것인지 궁금합니다. 재정자립도는 지방세와 세외수입을 합한 금액에서 자치단체의 예산금액으로 나눈 값으로, 자치단체의 재 정 건전성을 측정할 때 사용하는 지표로 활용됩니다. 총 국가재원의 60% 가량이 지자체로 배분되고 있으 나, 전체 지자체 예산 가운데 사회복지 등 국가위임사무와 관련된 재원이 40%를 넘어서면서 중앙에서 넘 겨받은 예산중 자치단체가 임의로 쓸 수 있는 돈은 사실상 전무한 실정입니다. 오히려 고갈 위기인 지방세 를 투입해 중앙 위임사무를 떠 받들어야 하는 상황입니다. 결국 지자체로 배분되는 재원은 상대적으로 많 지만, 자치단체가 자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용재원의 규모는 매우 낮은 수준에 불과해 세정면에서만 본다면 ‘지방자치’라는 말 자체가 무색한 지경입니다. 지방자치가 확립되려면 확실한 자주재원이 마련돼야 합니다. 재정자립도 100%는 확실한 자주재원의 확보라는 목표를 수치화 시킨 것이죠. 이를 위해선 중앙정부의 노력이 병행돼야 합니다. 현재 성남시는 60%대로 전국 최고 수준입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자자체가 재정자립도가 떨어지고 있습니다. 이 같은 원 인은 기초연금·무상보육 등 각종 사회복지비용 부담과 중앙정부의 취득세 등 지방세 감면정책, 중앙정부 사업의 지방 떠넘기기 때문입니다. 곧 중앙이 부담해야 할 예산을 지방에 떠넘기거나 국가가 받는 세금이 증가했다는 뜻이다. 이래서는 진정한 지방자치를 이룰 수 없습니다. 지방 재정을 확충하도록 중앙이 지원 해야 진정한 지방자치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남은 자주재원을 확보하고 새로운 세원을 발굴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지자체의 노력도 필요하지만 지방을 하부기관 정도로 여기는 중앙정 부의 인식개선 또한 시급한 것이 현실입니다. 최근의 사례를 살펴보면 복지부가 성남시 자체재원으로 하 려는 공공산후조리원을 ‘불수용’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지방자치라는 헌법의 가치를 정면 부정하는 것입니다. 성남시는 부정부패하지 않고 예산낭비 막고 세금 철저히 걷어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자체적인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을 것입니다.
청사 매각과 관련해서 논의 중인 것으로 아는데, 지금 활용되는 청사의 공공성을 생각하면 이것이 매각되 면 비슷한 수준의 공공건물을 갖기가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각을 고려하는 이 유는 무엇인가요? 성남시 모라토리엄 선언의 단초를 제공하기도 한 ‘호화 청사’매각은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판단되었습니 다. 성남공항으로 인한 고도제한, 일반 업무시설로의 건물 용도변경 문제, 건물 효율성 등으로 인해 매각 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연간 1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성남 시청사를 시민 품으로 돌려주는 데 성공한 점도 작용했습니다. 지금은 시청사가 관공서가 아닌 그야말로 놀고, 먹고, 마시고, 공부하고, 운동하고, 문 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전천후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변신했을 뿐만 아니라 시의 랜드마크로 탈바꿈했습 니다. 청사 내에 북까페를 비롯해 홍보관, 아이사랑놀이터, 장난감도서관, 각 종 회의실, 체력단련실 개방 등 시청사가 시민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외국처럼 관광명소로 자리 잡은 것은 이례적인 일로, 청사 시설 개방에 대한 시민들의 뜨거운 호응에 타 시·군은 물론 국제적으로도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시민의 품으로 돌아간 청사를 더 많은 시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할 생각입니다.
본시가지, 분당, 판교 생활권역별 도시문화가 다르고 이것으로 인해 시의 정체성 형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은 체감이 될 정도의 사례가 있나요? 그리고 이에 대한 해법은 어떻게 구상 하고 계신가요? 40년 전 급속하게 조성된 성남시는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라고 불릴 만큼 다양한 갈등도 내재하고 있습니 다. 삶의 조건 뿐 아니라 지역, 정치 등 차이가 있는 만큼 갈등도 존재합니. 그러나 그 차이가 점차 줄어들 고 있다. 작년 지방선거에서 예상을 뒤엎고‘강남벨트’라 불리는 분당 뿐 아니라 본 시가지에서도 고른 득 표율을 얻었습니다. 지역에 따른 정치적 간격이 그만큼 줄어든 것입니다. 양 도심의 생활조건 차이를 줄 이기 위해 본시가지는 재건축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 중입니다. 더불어 지역난방 공급, 주거환경 개선 사업 등을 통해 생활 조건을 개선하고 있습니다. 분당 역시 조성된 지 20년이 넘어가고 있어 대책이 필요한 시 점입니다. 분당 지역은 리모델링 지원을 통해 일부 단지는 시공사를 선정하는 등 사업 추진이 가속화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외적 조건의 개선 외에도 성남 시민프로축구단을 통한 시민의 정서적 통합에도 적극 나 서고 있습니다. 일화 축구단 시절에는 종교적 색채로 인해 시민들의 호응을 얻지 못했으나 시민 프로축구 단으로 다시 태어난 후 성남시민 모두 축구를 통해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재벌 구단만큼 넉 넉하지는 않지만 작년 FA컵 우승에 이어 올해도 강팀을 상대로 끈질긴 승리를 이루고 있습니다. 많은 시 민이 한목소리로 성남을 외칠 수 있는 시민구단은 시의 통합에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외적 인 통합의 노력이 계속된다면 성남이라는 이름 아래의 시민 통합이 가능할 것입니다.
대한민국과 성남이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셨습니다. 저도 자료를 보다보니 그런 의견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지금의 성남이 과거 대한민국의 어느 시기와 비슷하다고 느끼는지 알고 싶습니다. 대한민국의 발전과정이 성남에도 고스란히 응축되어 있습니다. 성남은 서울에서 강제로 이주해온 분들이 터를 잡고 발전시킨 곳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로 이주당해 맨손으로 도시를 만들어 낸 것도 대한민 국의 발전과정과 유사합니다. 압축 성장의 폐혜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곳도 성남입니다. 본시가지의 열 악한 주거환경과 부족한 기반시설 등의 원인도 마구잡이식의 폭력적 개발이 횡횡한 70년대 정책의 산물
입니다. 반면에 계획 신도시로서의 분당 역시 90년대 서울의 집값 안정이라는 정부의 개발정책에 의해 조 성된 곳입니다. 판교 역시 국가의 정책으로 개발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도시개발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이죠. 그 만큼 시민의 삶과 정서도 대한민국의 축소판입니. 성남에는 대한민국의 과거에서 현재까 지, 도시와 사람의 역사가 모두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 단위에서 성남시의 역할을 어떻게 보고 계신가요? 성남은 기초자치단체에 불과하지만 어느 곳보다 더 우수하고 선진적인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대한 민국은 못해도 성남은 합니다’를 모토로 성남의 정책이 대한민국의 표준이 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중앙정부에서도 시도하지 않았던 다양한 정책들을 시행하고 있다. 성남시의 좋은 정책이 퍼져 전국에 시 행되도록 하는 것이 성남시의 역할입니다. 이것은 성남만의 역할이 아니라 전국 자치단체가 해야 할 일이 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남의 변화가 대한민국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성남은 농업이 거의 전무한 상황이어서 대부분의 먹거리가 외부로부터 유입 되는데요. 먹거리 대한 정책 적 접근 같은 것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생협이나 타 지역 단체와 연관하여 농수산 물 유통 계획 등이 있는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좋은 먹거리에 대한 고민도 이야기 해주세요.) 좋은 먹거리는 시민의 안전과도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이는 부분입니다. 특히나 자라나는 학생들은 더 안전하게 먹거리를 제공하야 합니다. 그래서 성남시에서는 무상급식에 더해 친환경 무상급 식을 실시하고 있다. 관내 초·중·특수학교에 친환경 우수농산물 구입액 33%를 지원해 일반농산물 가격과 의 차액을 보전해 준다. 이 친환경 우수농산물 지원비는 전국 기초 자치단체 중에서 최대 규모입니다. 이 와 함께 성남시는 친환경 급식재료를 공급하는 학교급식지원센터를 운영하며 검수 기능을 강화해 품질 좋고 안전성이 입증된 친환경 식재료를 저렴한 가격에 납품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산지와의 직 거래도 지원해 시청 광장에서 홍천 등 자매도시의 직거래 장터를 주기적으로 열고 구청별로도 수시로 장터 를 열어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2014년에 ‘LH’, ‘한국가스공사’, ‘한전KPS’, ‘한국도로공사’, ‘한국식품연구원’과 같은 공공기관이 국가 균형 발전 정책에 따라 전국 각지로 나뉘어 이동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약 근무자는 약 4000명 가족 들을 포함하면 꽤 많은 시의 재화(부)가 빠져나간 셈인데, 이것이 지금 체감 되는지 그리고 이에 대한 보 완 계획이 어떻게 진행 중인지 알고 싶습니다. 경기 침체에 더불어 많은 인원이 한꺼번에 빠져나가 인근 상권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성 남시에서는 이미 2009년부터 이전 후 종전 부동산의 최적 활용 및 자족기능을 확충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 첨단도시산업단지, 수도권 그랜드 연구벨트, 콘텐츠 및 소프트웨어 클러스터로 개발하는 전략을 구상하 였습니다. 도로공사 부지는 제2판교 테크노밸리 부지에 포함되어 개발될 예정이고 정자동 LH 사옥 이전 부지는 분당서울대병원과 연계해 헬스케어 클러스터로 조성됩니다. 식품연구원 부지는 근로자를 위한 배 후단지와 R&D 센터로 탈바꿈할 것입니다. 분당서울대병원은 올해 말 경남 진주혁신도시로 이전하는 한 국토지주택공사(LH) 정자동 본사 사옥과 부지를 매입해 이곳에 헬스케어 기업 연구소, 생명과학 대학·대
학원 캠퍼스, 생명과학 연구지원센터, 의료정책 연구센터, 기숙사 등의 시설을 설치할 예정입니다. 위기 속 에 기회가 있습니다. 공공기관이 떠나서 지역경제가 위축될 것이라는 걱정이 지만 공공기관 이전부지가 단 순 주거공간이 되지 않고 차세대 산업이 활성화되는 지역이 되도록 조성하려고 합니다. 공동화 현상을 방 지하는 것은 물론 지역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핵심거점이 되도록 할 것입니다.
최근에 관심 있게 읽은 책이 있다면? 혹은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으시면 소개해주세요. 젊은 세대들에게 권해드리고 싶은 책이 있습니다. 소설가 조정래 선생이 성남에 사시는데 이 분 책 중에 ‘ 정글만리’라는 책이 있습니다. 저는 선물 받아서 한 번 읽어 보았는데, 역시 대작이었고 중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식뿐만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혀준 것 같습니다. 앞으로 대한민국이 중국과의 관계를 무시하고 존립할 수도 없고 경제협력이던 문화영역이던 정치영역이던 긴밀한 관계를 맺 어야 하기 때문에 중국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다른 방법도 있겠지만 재밌게, 중 국이라는 그 내면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정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지금 이 순간 어디서부터 접근해 나가는 것이 좋을지 조언 부탁드 립니다. 승자독식의 사회에서 국민들은 각자도생하도록 강요받고 있는 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현실입니다. 그러나 국민이 참여하고 행동하지 않으면 기득권자들의 승자독식 구도는 더욱 단단해지고 공평한 기회를 가질 수 없게 됩니다. 한 사람의 힘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콩알 줍듯’ 한 명 한 명 설득하고 바꿔나가면 나중엔 광주리 가득 엄청난 시너지가 발생합니다. 참여는 관심에서 시작됩니다. 관심은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내 가 살아가는 시, 도, 대한민국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한 번쯤 살펴보는 것이죠. 그리고 그 대표들이 어 떻게 권한을 행사하는 지, 시민을 위한 정치를 하는 지 잠깐 고민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또 하나, 정 책은 소수의 관심 있는 사람들이 경합한 결과를 다수가 따라감으로써 결정된다. 옳은 생각을 가진 소수의 역할과 행동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앞서 답변한 내용이었지만, 그래서 행동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주 인은 바로 국민 여러분입니다. 국민 여러분의 관심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어느 인터뷰에서도 묻지 않았지만 물어봤으면 하는 질문이 있었다면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세요. 독자 분들이 젊은 분들이 많을 테니 몇 가지 당부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성남시 시정구호가 “시민이 주인인 성남, 시민이 행복한 성남”입니다. 성남시가 존재하는 이유는 시민들이 행복하기 위한 것이고, 시 민들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소위 민주성의 원리, 성남이 가진 모든 자산과 권한과 예산과 기회는 다 시민들 의 것이다라는 기본은 민주주의의 기초입니다. 이런 기준에 의해서 다 시민들을 위해서 사용이 돼야 하는 데, 그게 제대로 안되면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걸 제대로 작동하게 하는 힘은, 공직자 개인의 윤리 적 의식도 중요하지만 우리 100만 시민들이 살림을 맡긴 사람들 – 시장, 시의원, 국회의원, 도의원, 도지사, 그리고 나아가서 대통령까지 포함한, 선출된 공직자들이 제대로 시민들을 위해서 봉사하고 있는지를 끊 임없이 감시하고, 지켜보고, 평가하고, 잘하면 박수치고, 못하면 혼내주는 신상필벌의 의지를 가지고 실천
해주셔야 합니다. 시민이 공적 영역에 관심을 가지고 시민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잘하나 못 하나를 끊임없 이 살펴 주셔야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시민이 주인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주셔 야 민주주의도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 시민 여러분들께서 정말 관심을 가지시고 우리 대한민국 이 잘돼나, 또 공무원 열심히 일하나, 또 이재명 시장 혹시 도둑질 하지 않나, 또 게으르지 않나, 잘 살펴주 시면 정말 고맙겠습니다.
조선소 노동자 #5 달콤한 담배
Min the Elephant @mintheelephant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소개소
1. One Question - 세이수미
2. 부러진 의자에 앉아서 - 파라솔
3. 사과 -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
[Big Summer Night](2015), 5
[언젠가 그 날이 오면](2015), 5
[썬파워](2015), 11
부산의 서프록 밴드 세이수미의 새 앨범은
오랫동안
기대했던
컴필레이션 앨범 [무드 오브 카바레 2013]
역시
드러나는
이유는 지난 EP 수록곡 <뭐 좀 한 것처럼
에 실렸던 <사과>가 앨범 버전으로 다시
앨범이다. 이 곡은 펑크 밴드 지니어스의
>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이 곡을 처음
만들어졌다. 이번 앨범 버전은 이전보다
커버곡으로 원곡에서 남자의 관점에서
들었을 때, <뭐 좀 한 것처럼>을 처음
더 신나고 가벼운 느낌이 든다. 악기만
말하는 것을 여자의 관점으로 바꾼 가사가
들었을 때의 기분이 들어 아주 좋았다.
연주하던 부분이 끝난 뒤, 연주를 조금 쉬고
재미있다.
멤버 세 명의 연주가 잘 어우러지는 것은
‘무거운 기분으로~’를 부르는 중반 부분이
가장
물론이고, 이런 음악을 좋아하지만 이런
가장 신나는 파트다. 그루브한 연주와
흥미롭다. 베이스 음이 아주 매력적이라고
연주를 하지는 못하는 나에게 듣는 것
가사가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연주 자체도
생각되어서 꼭 라이브로 듣고 싶은 곡이다.
만으로도 만족감을 주는 멋진 음악이다.
정말 훌륭한 곡이라고 생각한다.
with
그들만의
my
특히
색깔이
‘Are
boyfriend?’
잘
you
sleeping
부분이
파라솔의
앨범을
이번 달은 신곡을 많이 발견해서 기뻤습니다. 최근에 알게되어 기대하고 있었던 밴드들의 신곡과 함께, 오래전부터 관심있었던 밴드들의 역시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신곡들을 소개합니다. 신당동 파르한 (@chungchoon98)
4. 마법의 순간 - 슈가도넛
5. 꽃이 져서야 봄인 줄 알았네 -
6. I Won’t Turn Off My Radio - Ken
[POLYVERSE](2015), 3
스트릿건즈(2015), 1
Yokoyama [I Won’t Turn Off My Radio] (2015), 2
특유의
‘서른이 많은 나이였던 시절’로 시작하는
일본의 전설적인 펑크 밴드 ‘Hi-STANDARD’
목소리와 가사들이 생각난다. ‘펑크 밴드’
이 곡은 ‘숨이 멎고서야 삶을 알텐가?’
의 기타리스트 Ken Yokoyama의 신곡으로,
라는 수식어가 붙기도 하지만 슈가도넛은
와 같이 가사가 돋보이는 멋진 곡이다.
얼마 전 최초로 지상파 음악 방송에서
정말 ‘슈가도넛의 음악’을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로커빌리라는 장르를 좋아하면서도
라이브를 선보인 것으로 화제가 되었다. 당시
특히 ‘이렇게 놀라운 우리가 만난 너의
로커빌리는
올드하다는
방송 출연 계기로 ‘자신을 보고 젊은이들이
아름다운 시간들은’ 이라는 가사를 들을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 노래를 듣고
밴드를 했으면 좋겠다’ 라고 말한 것이
때 가사와 멜로디가 잘 어울리는 것이 정말
편견이 깨졌다. 특히 로커빌리라는 바탕
인상적이었다. 가사도 매우 인상적인데,
멋있게 느껴졌다. 여전히 슈가도넛만의
위에 다른 곡들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Buds of The Ramones and Clash’를 들을
음악과
독특한 한국어 가사들이 합쳐진 것과,
때 마다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예상하지 못했던 빠른 드럼 연주가 멋지다.
아주 감격스러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슈가도넛을
생각하면
함께
항상
돌아와줘서
본받고싶은 밴드이다.
고맙고
비슷비슷하고
2015 걸그룹 지형도 2015.07.31 | 전문 보기 : http://idology.kr/5027 지난 27일 한겨레신문을 통해 소개된 아이돌로지의 걸그룹 지형도는 2015년 여 름 현재 기준으로 수많은 아이돌 걸그룹 각자가 표상하는 이미지의 의미와 상호 관계를 파악해 유형화하는 작업이었다.
이미지 ⓒ 퀴어문화축제
아이돌로지는 ‘연령 이미지’와 ‘비일상성’의 두 가지를 중심 지표로 제안하였다. x축의 연령 이미지는 단순히 멤버들의 실제 평균 나이만이 아닌, ‘소녀성’을 포함한 것이다. 소녀성을 정의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걸그 룹 콘텐츠의 다수를 차지하는 연애를 기준으로 미성 숙한 캐릭터를 표현하는 정도를 반영한 것이다. x축에 서 우측으로 갈수록 ‘알 것 아는’ 성숙한 여성을 표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y축의 비일상성은 아이돌이 흔히 갖게 되는 이상화 성향, 그리고 이를 넘어서 ‘사 차원’에까지 이르는 이미지를 말한다. y축에서 높이 올라갈수록 일상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별난 인물형을 표현하고, 아래로 내려올수록 일상적이고 때론 통속 적이기까지 한 친숙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넘쳐나는 걸그룹 씬에는 수많은 ‘정통 걸그룹’과 ‘변종 걸그룹’이 존재하고, 이들의 매력도, 개성도 각기 다를 뿐더러, 하나의 걸그룹이 가진 이미지 역시 무척 다양 하다. 이를 단 두 가지 지표로 제한하여 분류하는 일 은 각 그룹의 개성을 평면화하여 지나친 단순화를 초 래할 수 있다. 또한 앞에서 지적했든 본 지형도의 지 표 역시 상호의존성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이는 현재 이 자료가 갖는 한계이며, 이를 고정적인 결과물로 인식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그러나 수많은 걸그룹을 유형화하고 이들의 상호 관계를 상대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씬 전체를 관찰하는 데에 있어 일정 부분의 유용성을 가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본 작업은 향후 개선의 여지와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이 도표를 통해 걸그룹들의 ‘정체성’을 상호비교할 수 있으며, 다른 지표들을 비슷한 방식으로 적용하는 과 있다면, 감상자의 취향도 조금은 진단할 수 있을 것이 정을 거쳐 보다 완전해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다. 특정 멤버에 대한 호오가 없는 ‘올팬’이라면, 예를 각 영역에 대한 설명과, 상세한 내용은 아이돌로지의 들어 라붐이 마음에 들 경우 오마이걸도 괜찮을 가능 본문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idology.kr/5027 성이 있다는 뜻이다. 혹은, 여자친구와 프리츠는 좋은 데 스피카는 마음에 안 든다면, 그는 소녀적인 이미지 에 더 끌린다고 볼 수 있겠다.
모방하는 케이팝, 복제하는 아이돌 2015.07.22 by 박준우 | 전문 보기 : (1) http://idology.kr/4894 (2) http://idology.kr/4966 최근 케이팝에서는 모방 혹은 복제의 흔적이 뚜렷하 게 늘어나고 있다. 어떤 그룹은 아주 과거의 것이나 마이클 잭슨처럼 신화적인 것을 따라 하기도 한다. 그 러나 등장한 지 얼마 안 된 최근의 것들을 닮고자 하 는 경우도 있어 더욱 흥미롭다. 모방은 그룹의 정체성 부터 음악, 의상, 안무, 뮤직비디오, 메이크업까지 여러 층위에서 이뤄진다. 의상을 구상하기 위해 수많은 룩 북과 포트폴리오를 찾고, 한 편의 뮤직비디오를 만들 기 위해 많은 영상을 참고하는 식이다. 레퍼런스는 이 미 제작 단계에서 조직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한국 대 중음악 산업은 구조 차원에서 기존의 텍스트를 복제 하고 있는 것이다.
하고 비주얼을 기획하기까지는 수많은 인력과 노력이 동원된다. 여기에는 다양한 참고사항이 등장하고, 각 참고사항이 전달하는 소스들 안에서 최선의 것이 모 여 조립된다. 레퍼런스에는 ‘그룹’이라는 중심과 콘셉 트, 그리고 각자의 이유와 선택이 개입된다.
유니버설뮤직코리아에서 일하며 여러 기획사에 곡을 제공한 바 있는 최다해 씨의 경우, 외국 작곡가에게 원하는 바를 전달할 때 보통 그 그룹의 기존 라이브 모습이나 뮤직비디오 등을 직접 보여준다고 한다. 임 광욱 작곡가 역시 그룹이 기존에 만들어 온 영상이나 음악에서 작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신혁 작곡가의 경우 직접 만드는 입장에서는 곡에 관한 스 크립트를 먼저 쓰고 이후에 곡을 만드는 등 다양한 방 모방하는 케이팝 식으로 작업을 시작한다고 한다. 기획 단계에서 많은 한국 대중음악은 신중현이나 미8군 부대에서 영향을 사람에 의해 조직적으로 이뤄지는 레퍼런스가 하나로 받은 이들까지 거슬러 올라가고, 아직도 케이팝은 미 잘 엮일 때 좋은 작품이 나오는 것이다. 국 팝을 모방한다. 또한 아이돌 이전의 소방차 등 ‘일 본 따라가기’의 시도 이후 현재까지 일본 아이돌도 모 레퍼런스의 확장 – 돌리고 돌리고 방의 대상이 된다. 버클리 대학 사회학 교수인 존 리 현재 아이돌이 음악과 콘셉트 양면에서 풍성한 텍스 (John Lie)도 케이팝을 “랩, 힙합, 재즈, R&B의 영향을 트를 지니게 되다 보니 이제는 다른 아시아권 국가에 받아 포스트디스코, 포스트 마이클 잭슨 댄스 팝”이라 서 케이팝을 모방하고 있다. 과거 한국 아이돌의 참고 정의하며 미국, 유럽, 일본의 영향을 논한다. 대상이었던 일본도 예외가 아니다. EXILE 쇼키치의 SM 엔터테인먼트가 초기 아이돌 그룹을 발표하던 당 ‘Back To The Future’는 태양의 ‘Ringa Linga’로부터 뮤직 시도 마찬가지다. H.O.T.는 첫 데뷔곡 ‘전사의 후예’를 비디오 의상과 안무의 일부를 차용했다. 플라워 비롯, 메탈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가져오거나 사회 비 (Flower)라는 그룹은 소녀시대를 참고한 흔적이 보인 판적인 가사를 담는 등, 여러모로 서태지와 아이들을 다. 중국에서는 결승단이라는 그룹이 B1A4를 그대로 염두에 둔 흔적을 보인다. 그런가 하면 S.E.S.는 일본의 베끼는 일도 있었다. 2009년에는 중국에서 빅뱅을 표 걸그룹을 많이 참고하였으며, 후에는 공식적으로 곡 절한 오케이뱅의 등장을 비롯해 ‘Nobody’(원더걸스), 을 사들여오기도 했다. 이후 발표한 신화는 좀 더 영 ‘링딩동’(샤이니) 등을 무단으로 번안하여 부른 캄보디 미권의 보이밴드를 참고했고, 젝스키스나 핑클을 시 아의 그룹 등, 다소 엉망에 가까운 베끼기도 있었다. 작으로 이어진 시장의 후발주자들은 SM 엔터테인먼 모방의 창조적 가능성 트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현재 행해지고 있는 음악 기획 및 제작 단계는 기존의 조직적 모방, 모방의 조직화 ‘순수한 창조’라는 환상을 어느 정도 깨는가 하면 창 최근 아이돌 음반들은 국내외 흐름을 긴밀하게 읽어 조 단계에서의 모방을 긍정한다. 아이돌 그룹의 음악 냄으로써 평단과 대중 모두에게 호평을 받는 좋은 작 이 뭔가를 끊임없이 참고하고, 그러한 과정에서 더욱 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러한 모방은 단순히 보고 베끼 정교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이것은 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획 단계에서 적극적으 무언가를 참고하여 창조하는 방법의 하나이기도 하 로 참고하는 것이며, 미국 팝을 포함한 다양한 팝의 다. 따라서 대중음악에서의 모방은 키스 니거스(Keith 아이디어 중 작품 혹은 가수와 어울리는 것을 취사선 Negus)의 최근 연구와 비교해 ‘긍정적 복제’라는 인식 이 가지는 의미까지 접근하여 대중음악 산업 내에서 택하는 것이다. 의 텍스트 변화와 함께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하나의 팀이 앨범의 콘셉트를 잡고, 타이틀곡을 구상
미묘 : 바로 이런 여름 노래를 기다렸다고 하겠다. 확실한 다이내믹과 화려하고 시원한 사운드, 파워풀한 멜로디에 당해낼 재간이 없다. 나 인뮤지스에게서는 바로 이렇게 숨차는 곡을 기다렸다. 그런가 하면, 화면 너머로 청승이 춤추는 듯한 '너란애', '팬시', 편안하게 흥청거리 는 'Yes or No'도 나인뮤지스의 가장 두드러지는 매력들을 하나씩 정 확하게 선보인다.
나인뮤지스 - 9MUSES s/S EDITION 스타제국 2015년 7월 2일
나인뮤지스 - “다쳐” https://youtu.be/N0PIn3sSZEI
별민 : 꾸준히 보여오던 그룹의 성장세를 이번 앨범에서도 이어가면 서 어떤 정점을 찍었음을 드러낸다. 그동안 시원시원한 기럭지에 걸 맞지 않은 어딘가 답답한 기획물에 갇혀있던 것이 모처럼 세련된 비 키니 같은 여름 노래를 만나 제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고 있다. 이국적 인 멜로디에 나인뮤지스 특유의 잘 짜여진 군무로 완성된 '다쳐'부터, 기존의 나인뮤지스의 음악 색깔을 이어가고 있는 '너란애', 매력적인 멤버들의 목소리에 집중하게 만드는 '팬시', 걸크러쉬의 주역답게 페 미닌하면서도 섹시한 무드를 한껏 살린 'Yes or no'까지, 그동안 나인 뮤지스에게서 볼 수 있었던 모든 매력이 집약되어 있다. 오요 : 나인뮤지스의 '다쳐 (Hurt Locker)'는 오히려 여태까지 나인뮤 지스가 선보인 타이틀곡 중 가장 과감한 쪽에 위치한다. 앨범 수록곡 들도 개별 곡으로 충실히 제 역할을 하고 있다. 나인뮤지스 멤버들이 단순히 곡을 수행해내는 데에 급급하지 않고, 곡이 부여하는 캐릭터 를 연기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백미는 '너란애'의 랩 "너와 꿈같 던 시간들이 다 거짓말 같대 / 내가 바보 같대" 가 "내가 바보 god damn"으로 들릴 때의 그 카타르시스! 여름을 겨냥하고 나온 쟁쟁한 걸그룹 사이에서 단연 가장 탁월하다.
김윤하 : 비로소 팀의 지향점이 명확해졌다. ‘90년대 가요’를 적극적 으로 차용하며 새로운 도약을 꿈꾼다. 중요한 건 ‘90년대 감성’이 아 닌 ‘90년대 가요’라는 점인데, 그간 ‘그때’의 분위기나 멜로디, 편곡 방 식 등을 조금씩 빌려온 이들과는 달리 ‘그때’ 노래를 그대로 타임워프 시킨 듯한 독창적 면모가 포인트다. 정통 ‘R&B 발라드’에서 듀스나 DJ DOC의 미발표곡은 아닐까 의심스러운 댄스넘버들까지, 세련되진 않지만 정겨운 노래들이 가득하다. 생각지 못한 틈새시장과 멤버들의 장기가 13곡이라는 꽉 찬 직구 아래 기분 좋게 조우한다.
비투비 - Complete 큐브 엔터테인먼트 2015년 6월 29일
비투비 - “괜찮아요” https://youtu.be/SNpuKLfv1EE
박준우 : 어떤 특정한 하나를 모방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한 국과 일본에서 등장하는 보이그룹이 걸어온 길에 충실하면서도 그 자체를 자신들의 정체성으로 삼는다. 첫 정규앨범은 그런 부분을 잘 드러내는 데는 성공이라고 말하고 싶다. 큐브의 인하우스 프로듀서들 이 집중적으로 참여해 자연스럽게 일관성이 구성된 앨범에는 멤버들 의 자작곡 역시 앨범 전체를 구성하는 흐름을 만드는 데 공헌한다. 깔 끔하고 세련된 면모와는 거리가 좀 있을지는 몰라도 멋 자체는 분명 하게 가지고 있다. 별민 : 데뷔 4년차에 마침내 등장한 비투비의 정규앨범. 인트로부터 비투비의 훵키한 캐릭터적 매력과 상향 평준화로 유명한 가창력을 유감없이 드러낸다. 댄스 가요의 정통을 선보이는가 하면, '너나 잘 살아', '꽃보다 그녀' 등의 트랙에서는 보컬 그룹으로서의 면모까지 부 각하고 있다. 앳되던 데뷔곡을 다시 부른 '비밀 Acoustic ver.'은 비투 비가 방황했을지언정 결코 답보 상태는 아니었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증명해보인다. '괜찮아요'의 뮤직비디오는 촌스럽고 뻔하지만 멤버들 의 캐릭터를 충분히 살려주고 있고, 그래서 더 귀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무리한 실험보다는 출중한 멤버들의 포텐셜과 색깔을 드러내는 이 앨범이 효과적인 '정공법'으로 느껴진다.
박준우 : 지금껏 해왔던 타이틀곡, 그룹에게 있어 중요한 시점 등 여 러 이야기가 생각나며 자연스럽게 성장 서사를 그려낸다. 그 성장의 결과를 보여주는 것이 안무와 파트 분배가 아닐까 싶다. 현악기를 향 한 사랑은 변치 않지만 발라드 넘버는 가장 세련된 지점을 보여주는 가 하면, 멤버 각각의 존재감이 더욱 커졌다. 'Moonlight', '엔딩을 부 탁해'와 같은 넘버들도 타이틀곡만큼의 매력을 발산한다. 그룹의 위 치나 시장에서의 지점을 생각하면 더욱 재미있는 앨범.
인피니트 - Reality 울림 엔터테인먼트 2015년 7월 13일
인피니트 - “Bad” https://youtu.be/i1oTSAhdzNQ
별민 : 이 앨범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변질을 최소화하면서 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면에 배치되던 자리가 다른 멤버들로 채워졌음에도 큰 틀에서 일정한 색채를 유지한다. 다만 그 농도를 짙게, 그 채도를 더 높게 만들어갈 뿐이다. 곡들을 분석해보면 "First Invasion"이나 "Over The Top"과 별로 바뀐 게 없다. 특히 'Moonlight'나 '발걸음'과 같은 곡들은 데뷔 초 앨범에서 가져왔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Reality"를 가만히 듣다 보면 몇몇 순간 성장의 증거를 느낄 수 있게 되고, 그것이 아이돌 마의 구간이라는 5, 6년 차에 이루어지 고 있다는 점은 인피니트를 특별한 아이돌로 만들어준다. 오요 : 목소리는 더 날카로워지고 소리는 더 정교해졌다. 인피니트 특 유의 비장미가 물씬 풍기는 타이틀곡 'Bad'에 이어 훵키하면서도 세 련된 댄스곡 'Moonlight', 부드러운 전자음과 꽉꽉 눌러 담은 베이스 를 정교하게 매만진 '발걸음'까지 초반의 흐름이 웬만한 전자음악 앨 범들과 견주어봐도 손색이 없다. 일곱 트랙 모두 개별적인 곡으로서 자기주장을 확실히 하고 있으면서도 산만하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역시나 이 다양한 장르의 곡들을 완벽히 통제하고 있는 인 피니트 멤버들 덕분이다. 김윤하 : 이런 곡을 받아 놓고 그런 콘셉트를 유지하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다. 작곡가 황현의 작품인 이 노래는 레인보우나 나인뮤지스의 전성기 곡들이 가진 상쾌한 끈적임을 타고났다. 확실한 굴곡을 자랑 하며 낭비되지 않는 전반부와 안정적 후렴구는 댐핑 넘치는 베이스 와 탄산처럼 공중에 산발하는 신스 음을 배경 삼아 비스듬히 고개를 돌리며 매력적인 미소를 날린다. 샤이니의 ‘방백’, 인피니트의 ‘그리움 이 닿는 곳에’ 등으로 순수한 소년의 새벽 2시 감성을 그리는 데 탁월 함을 보였던 황현의 새로운 발견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이 노래가 지금의 방식으로 소비되는 것이 더없이 아쉽다.
스텔라 - 떨려요 디엔터테인먼트 파스칼 2015년 7월 20일
스텔라 - “떨려요” https://youtu.be/pOmTdFpIDX8
맛있는 파히타 : '떨려요'는 어느 누구도 기대하지 못한 멋진 컴백이 다. 곡의 퀄리티는 좋아지고, 노출은 시장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그렇 다고 해도 섹시코드는 절대로 줄어들지 않았고 은유적으로 여전히 살아있다. 걸그룹 대전에서 가장 놀라운 컴백이며 가장 바람직한 수 익의 재투자일 것이다. 미묘 : 스트레이트한 비트에 매력적인 라인의 화성과 간단히 기억에 남는 멜로디, 확실한 폭발력까지. 후반 브리지 이후 템포를 올리면서 새로운 테마를 가져와 얹어 짜릿함을 더해준다. 멤버들의 목소리도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고, 간헐적이지만 매력적인 보이스를 들려준다. 호오는 갈리겠지만 비디오도 (충격적일 정도로 높아진) 자극의 수위 만이 아닌 퀄리티에서도 높은 곳에 선을 긋는다. 그런데 이전부터 스 텔라는 의상과 안무가 섹시하다기보다는 '아무튼 야한 것을 보여주겠 다'는 식이다. 그룹의 섹시한 매력을 보여주기보다는 '야한 것을 좋아 하는 사람들끼리 놀자'는 것에 가까운데, 그 속에서 주인공이 섹스 어 필에 관한 부담감을 신파로 풀어내고 있는 것이다. 어찌 됐든 곡만은 정말로 좋아서 케이팝 시대의 찬란한 낭비를 느끼게 하니, 정 뭐하면 눈을 감고 음악만이라도 들어보길 꼭 권한다.
건축이 좋아. #22. 한여름의 판타지아 aoikasa
최근 개인적으로 제일 속상했던 일을 꼽으라면, 국세청 남대문별관의 철거가 아니었나 싶다. ' 일제잔재철거' 라는 캐치프레이즈 하에 인기를 얻고 싶은 자들은 그렇게 그 건물을 없애버리고 성공회대 성당이 이젠 잘 보인다고 자랑을 해댄다. 현 서울시장의 정책이나 행보에 대해 그래도 긍정적인 입장이 었지만, 이 건물의 철거를 둘러싸고는 도시적, 건축적 가치가 아닌 여전히 제일 잘 통하는 ' 반일' 감정을 근거로 삼아 그 것을 자신의 정치적 업적으로 만들고자 하는 듯한 모습이 보여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이 건물에 대한 건축문화재로서의 평가는 ' 원형훼손' 이 심해 보존가치가 떨어진다는 것인데, 사실 1930 년대 말에 처음 만들어진 입구 부분도 사라졌고, 태평로 확장과 함께 가로를 향한 건물의 입면도 상당히 변해버렸다. 하지만 태평로가 가지고 있던 ' 모던한 30~40년대 거리풍경' 을바로 옆 서울시의회건물(구 부민관)과 함께 그나마 보여주고 있었다는 측면에서 그 건물을 ' 일제잔재철거' 라는 미명하에 철거해버린 건 내내 아쉽다. (그 뒤에 있는 성공회대성당을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도 사실 의문. 성공회대성 당 건물 나 역시도 너무 좋아하지만, 그 건물이 꼭 그렇게 드러나야하는가 하는 건 잘 모르겠다. 성공회 성당을 가기 위해 들어가던 골목길, 골목길을 꺾어 성당으로 들어가던 그 경험 역시 좋았기에. 그리고 종 교건축이 굳이 그렇게 그 거리에 ' 드러나야하는 것' 일까.)
(그림 1. 부민관(현 서울시의회) 왼쪽에 부분만 보이는 건물이 바로 국세청 남대문별관(구 체신회관)이다. 이 두 건물이 나란히 서 있던 풍경은 1930년대 후반 이후 70여년간 태평로의 얼굴이었다. 구보가, 이상이, 김기 림이 걸었을 쓸쓸한 광화문통의 모습)
아무튼 ' 일제잔재철거' 와 함께 떠오르는 건축들이 있다. 아직도 꽤나 많이 남아있는 우리 도시 곳곳의 ' 적산가옥들' . 적산가옥. 말 그래도 적의 재산이었던 가옥들이다. 우리에게 적산가옥은 즉, 일본인들이 남겨놓고 간 건축물들을 뜻하는데, 그래서 일식 가옥들을 흔히 적산가옥이라 부른다. 적산가옥들은 말 그대로 ' 적의 재산' 이었던 가옥이기에 오랜 시간을 그 자리에서 버티고 있어 우리 도시환경을 구성하고 있었다 하더라도 때로는 그저 ' 일제 잔재' 가 되고 말아버린다. 그 곳에서 일본인들이 산 시간은 비록 10 여년, 그 이후 한국인들이 70년 이상을 살았어도 말이다. 최근 반가운 건 그래도 이 적산가옥들이 하나
의 유행처럼 까페로, 갤러리로 다시 태어나며 사랑받는 공간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오래된 것의 가치를 알아본 보통 사람들의 시선이기에 더 반갑기도 하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우리 도시에 남아있는 ' 적산 가옥' 들이 다 같은 모양이 아니라는 점이다. ' 적산가옥' 은 일본인들이 지은 일본식 가옥도 있지만, 서양 식 가옥도 있고... 목조 주택도 있지만, 벽돌조도 있고 철근콘크리트조도 있고 매우 다양하다. 최근 군 산이나 인천 등에서는 일본인들이 살던 동네의 모습을 그대로 복원,보수하여 관광지화하기도 하였는데, 여기에 하나같이 붙어있는 설명들은 ' 일식주택' ' 일본식 마치야(일본식 상점주택)' 정도이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그 모양들이 하나 하나 다 다르다. 상점가를 형성하고 있던 주요 건축양식인 일본식 상점주택 인 마치야의 경우에도 비슷한 거 같으면서도 지역별로 모습이 다 다르다. (한옥도 마찬가지로 비슷해보 여도 지역별로, 계층별로 다 다른 것처럼) 그런데 우리는 그 건축들에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으니 그냥 지워져버려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일지 모르겠다. 한 편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무턱대고 복원을 해서 셋 트장처럼 만들 곳들도 있는 것도 사실이다. 관광객을 끌기 위해 건물의 전면부만 일본식 마치야처럼 고 쳐 만든 일본인 거리를 보며, 굳이 저래야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이 모든 일이 무지(無知)에서 벌 어지는 현상이라는 생각.
(그림 2. 여전히 일식주택들 이 다수 남아있는 을지로 풍 경,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아무튼... 이번 여름, 마치야 건축이 궁금해서 일본으로 떠났다. 肥前浜宿(히젠하마슈쿠)의 오래된 역참 마을, 그리고 有田(아리타)의 도자기 마을.
200년 넘은 주조장들이 있는 肥前浜宿(히젠하마슈쿠) 히젠하마슈쿠는 간이역이 있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에도시대 역참이 있었던 곳으로 마을은 그야말로 조용하고 조용한, 1시간에 한 번 서는 기차에서 내리는 이가 거의 없을 정도로 작고 조용한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에도시대부터 시작된 주조장들도 있고, 역참 건물도 있다. 에도 시대와 메이지 시대의 건물 들이 늘어서 있는 짧은 거리는 마치 작은 셋트장을 보는 기분도 든다. 여전히 술이 만들어지고 있고, 츠 케모노(일본식 장아찌)가 만들어지고 있는 가게들이 있으며, 그 곳의 사람들의 삶이 ' 관광' 과는 무관하 게 흘러가고 있다는 점에서 분명 셋트장 같은 전통문화마을과는 달랐다.
작은 역을 거쳐 마을로 들어서면 나가사키가도라는 길을 주변으로 마치야들이 늘어선 마치나미(町並み) 를 만날 수 있다. 입구에 있는 곳은 継場(츠기바)라는 곳으로 에도 시대 역참의 역할을 하던 곳이다. 말 을 메어두던 고리까지 남아있는 이 건물은 2층 마치야인데, 기본적으로 나무 구조이지만 화재 예방을 위해 바깥벽은 두터운 회반죽칠이 되어 있다. 2층은 전체적으로 층고는 낮지만 3개 정도의 공간으로 나 누어져 있어 각각의 용도에 맞추어 사용가능하게 되어 있다. 2층으로 오르는 계단과 객장으로 사용되었 을 다다미로 되어있는 내부 공간 사이에는 작은 마당 혹은 복도와 같은 바닥이 있고 이 바닥을 따라 나 가면 부엌을 지나 작은 정원이 있었다. (원래는 창고가 있었다고 한다) 아주 기본적인 형태의 마치야, 즉 점포 주택의 형태를 잘 보여준다. 그 옆에는 메이지 시기 지어졌던 원래 우체국으로 사용되던 공회당 건 물이 하나 있다. 푸른색으로 칠해진 목조 사이딩 패널 2층 양식 주택으로, 이 두 건물은 100여년 전 한 국에 일본인들이 지었던 집들과 비슷한 형태이다.
(그림3. 히젠하마슈쿠의 마치나미. 맨 왼쪽 건물이 継場(츠기바)로, 에도시대에는 역참 역할을 가는 건물인 동시에 그 이후엔 주조장으로 사용되던 곳이다. 지금은 관광안내소로 사용, 바로 옆의 건물이 1900년대 초에 지어진 우체국)
이 마을에는 오래된 주조장들이 다수 남아 있다. 에도시대부터 해 왔다는 주조장이 여러 개. 그 중 몇 곳은 1880~90년대에 지어진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지금은 새로운 방식을 사용하지만, 이전에 사용하던 가마와 굴뚝이 여전히 그대로 남아 있는 모습들도 볼 수 있다. 한 때는 배도 들어왔었던, (그 래서 마을 이름에 항구의 ‘항’자가 들어있다.) 마을이기에 배에서 일하던 사람이나 상인들이 살던 동네에
는 초가지붕을 가진 마치야들이 모여 있는 마치나미도 있는데,그 중 2~3개 정도는 현 수리중이었다. 곧 여관 등으로 사용할 계획이라 하니 다음엔 이 마을에 가면 한 번 묵어봐야지 하는 생각도...
(그림4. 오래된 가마와 굴뚝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주조장(올해 사케대회 1등). 그림5.초가지붕을 가진 마치야들)
주조장이 있다는 건 사실 물이 좋다는 이야기일텐데, 이 마을에서 재미있게 본 건 에도시대부터 사용했 던 수로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이었다. 술 만드는 데 뿐 아니라 생활용수로 사용하였다고 하는데 사실 이 수로가 계속 남아있을 수 있었던 건 자동차 통행을 위해 도로를 확장하고자 했었던 계획을 반대하고 기존의 도로와 주변 건물들을 지키고자 했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마을에 지금의 하마슈쿠라는 이름을 붙이고 복원, 보수 정비작업을 진행했던 건 이 동네에서 건축관련일을 하시며 관광안내소의 가이 드 역할도 하시는 미네마츠씨와 같은 분들이 옛날 마을의 정취를 지키고자 했기에 가능했던 일.
(그림6.7. 기차역에 앉아 그 날의 풍경을 떠올리며 그린 스케치들.)
백제인 도공이 전해준 도자기기술로 만들어진, 有田(아리타)의 도자기 마을 원래 히젠하마슈쿠의 주조장마을을 보려고 사가에 간 거였지만, 왠지 이 곳만 보고 오기엔 아쉬워 오래 된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다던 마을 하나를 더 찾아가보았다. 아리타라는 작은 도자기마을. 백제에서 간 도공인 이삼평에게 도자기기술을 전수받았다는 마을이다. (이 곳에는 이삼평의 비석도 있다) 에도시기 대화재로 마을은 한 번 다 불타버려 이전의 건축은 거의 남아있지 않고, 큰 길을 따라 메이지 이후 지어
진, 메이지 시기(1868~1911)와 쇼와(1926~1988) 초기의 마치야들이 하나의 마치나미를 이루고 있다. 히젠하마슈쿠에 비해서는 그 규모도 크고 종류도 다양해 서일본지역의 다양한 마치야들을 구경하기엔 꽤 좋은 지역이었다. 역시나 화재를 예방하기 위해 목조 벽 위에 두껍게 회칠을 한 경우가 많았으며, (이 렇게 목재 위에 두껍게 회벽을 만든 건축의 경우 원래 창고를 만들 때 사용하던 방식이라 창고 타입의 마치야를 일컫는 도조우즈쿠리(土蔵造り) 중이에서도 누리야즈쿠리(塗屋造り)라 불리는 양식이다.) 회 칠의 경우 흰 색 뿐 아니라 검은 색으로 칠해진 건물도 있고, 2층에 격자창이 달린 경우도 있지만, 여닫 이덧문이 붙어 있는 경우도 있어 비슷비슷해 보이면서도 다른 풍경을 만들고 있었다.
(그림 8. 다양한 스타일의 마치야들)
지금도 일본에선 유명한 도자기마을인지라 도자기 판 매하는 상점들이 가로를 따라 연속적으로 늘어서 있 는데, 그래서 쇼윈도우도 설치되어 있고 자연스럽게 시대의 변화에 따라 건물도 변해온 양상들이 보인다. 히젠하마슈쿠가 이전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물론 변형은 있었지만, 그 스타일 자체만으로는) 마을이라 면, 이 곳은 자연스레 함께 현대화되는 마치야들이 늘 어서서 자연스러운 마치나미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아쉽게도 전날부터 이 지역은 오봉휴가라 대부분의 가게가 문을 닫아 아쉬웠지만, 사가 지역의 메이지 이 후 다양한 마치야의 모습들을 본 거 같아 나름의 수확은 있었다.
(그림 11. 역시나 기차를 기다리며 작은 찻집에 앉아 마치야 공부. 비슷비슷해보여도 다 다르다.)
한여름의 판타지아 여행 가기 며칠 전 한여름의 판타지아라는 영화를 보았다. 나라 근처의 고조라는 작은 동네를 방문한 주인공. 아무도 내리지 않을 것 같은, 대체 이 곳에 왜 왔는지가 궁금해지는 작은 시골마을. 그 곳의 관 광안내소에서 만난 청년은 주인공의 가이드를 자처하며 마을 이 곳 저 곳을 안내해준다. 마침 그 날은 축제가 있는 날. 불꽃놀이를 보러가지 않겠냐는 제안으로 영화는 마무리. 히젠하마슈쿠의 관광안내소에서 개인 가이드도 해준다길래 떠나기 전 전화로 예약을 했다. 어떻게 만나면 되냐는 말에 기차역에서 만나면 된다고, 기차역에서 누굴 찾으면 되냐는 말에 아마 알아볼 수 있을 거다라는 대답을 듣고 그 곳을 찾 았다. 나 혼자 내린 역에는 전화를 받으셨던 아주머니가 나 와계셨고, 그 날의 가이드 미네마츠씨를 소개해주셨다. 한여 름의 날씨에 먼 곳에서 찾아온 이를 위하여 원래 1시간 30분
그림 12. 히젠하마슈쿠의 미네마츠씨.
인 가이드 시간은 개의치 않고 2시간 30분이나 마을을 돌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해 주신 미네마츠씨. 마 침 그 날은 히젠하마슈쿠 마을의 여름 축제날이었고, 불꽃놀이는 없었지만 저녁시간에는 춤도 추고 신 사로부터 행렬도 있다는 설명도 들었다. 한여름의 판타지아 영화와 너무 비슷한 이 상황. (미네마츠씨는 75세의 할아버지셨다는 것만 빼고. ^^ ) 미네마츠부부의 친절함도, 예쁜 동네도, 그리고 여름 축제도… 마치 한여름의 판타지아처럼 마음에 각인되었다.
p.s. 어쩌다보니 건축이 좋아가 아닌 여행이 좋아 같은 글이 되어버렸다. 건축을 찾아 떠났다가, 사람과 그 곳의 시간들을 만나고 돌아온 여행이랄까. 유명 건축물은 아니었지만, 내 맘 속에 아주 깊이 남을 ‘좋 은 건축’을 만났다.
정크타입스, 1 며칠 전 광고 촬영차 경기도 인근 폐차장에 간 적이 있다. 황량한 풍경과 옅지만 지속적으로 풍겨오는 쇠 비린내로 인해 나는 금세 머리가 아파졌다. 사납게 생긴 시커먼 개 두 마리의 이유 있어 보이는 침묵을 지나자 시끄러운 기계의 굉음이 귀를 때렸다. 비가 내렸고, 가득 기름을 머금은 땅 위로 묘한 색상의 마블링이 피어났다. 차량 부품과 뒤엉킨 새까만 사람들은 우리에게 하얀 잇몸을 내비치며 인사했다. 한편으로 온몸에 기름때를 묻히고 폐차 일을 하는 사람들의 공간을 미적 관점으로 치환해야 한다는 사실이 죄스럽기도 했다. 촬영 감독과 로케이션 장소를 둘러보다 무겁고 단단한 고철을 상대하기 위해 개발된 갖가지 기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기계들은 폐차를 종잇장 다루듯했고, 차의 부품들을 낱낱이 분해해 종류별로 군집을 형성했다. 주위에는 시간이 응축된 듯 보이는 흔적들과 수수께끼처럼 다가오는 숫자들, 많은 내용을 압축해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이곳 사람들만의 은어가 쓰여 있었다. 나는 잠시 무리에서 이탈해 아직 분해되기 전의 차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향했다. 깨진 유리 바깥으로 에어백이 튀어나온 차량이 처음 내 눈에 담겼다. 가족용으로 선호되는 차량 안을 들여다보니 어린아이의 노트가 어지럽게 놓여있었다. 앞 범퍼는 심각하게 찌그러져 있었고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이 수많은 형상으로 쪼개졌다. 차창에는 ‘Iran Sold’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중국, 인도 등 수많은 나라 이름이 존재했다.
사고의 흔적과는 무관하게 이곳 폐차들은 다른 곳에서 전혀 새로운 맥락을 갖게 될 것이다. 낯 선 나라의 어느 가족이 타는 승합차의 부품이 될 것이며, 철이 부족한 개발도상국의 재료로 쓰일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맥락을 가진 부품은 이전 기억들을 이곳에 고스란히 놓고 가야 한다. 그것은 소위 찝찝하고 폐기처분되어야 할 ‘그 무엇’이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본 폐차장은 제품(Product)의 스킨(Skin)과 함께, 맥락(context)을 제사 지내는 일종의 제의 장소에 가까웠다.
정크타입스, 2 오늘날 동굴로 들어가 기존 수학공식들을 모조리 만들어낸 인도의 천재 수학자에게 박수 보낼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창조가 전유(Appropriation)의 문제로 대치된 현재, 디자인 영역은 라이브러리 경쟁으로 바뀐 지 오래다. 오늘날 디자이너들은 영감의 보고였던 자연 대신 웹에 떠도는 이미지들에 핀을 꼽고 그 관계에서 콘셉트를 도출한다. 비예술가들 역시 자신이 선호하는 이미지에 ‘Like’를 눌러 구성된 이미지들의 분위기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한다. 위의 경향은 사실상 포스트모던 이후가 만들어낸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디자인되어야 할 대상의 맥락(context)을 레퍼런스들의 관계에서만 찾는 형국은 실제적인(the real) 것에 대한 완전한 몰락을 예고케 한다.
정크타입스, 3 생각보다 달큼한 쇠 향이 코에 닿는다. 사납게 생긴 개 두 마리가 얌전히 앉아 하늘을 바라본다. 어디에 쓰인 부품인지도 모를 것들이 그로테스크한 미장센을 연출한다. 그것은 사람의 갈빗대 같기도 하며 황소의 뿔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인도 사람 몇 명과 멀쑥하게 차려입은 직원 한 명이 폐차 앞에서 이야기를 나눈다. 그리고 얼마 안가 직원이 차량에 노란색 펜으로 ‘India Sold’를 쓴다. 여기저기 차 앞 유리가 깨져있다. 범퍼가 깨져있는 형식도 제각각이다. 차에는 차의 제원을 나타내는 듯한 다양한 숫자와 영어가 쓰여 있다. 어떤 사물이 예술인가 아닌가는 그것에 대한 관심을 배제함으로써만 결정된다. 그것이 자연물이든 기계적 복제품이든 아니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물건이든 상관없다. 그것에 대한 통상의 관심(일상적 맥락)을 별도로 떼어놓고 본다는 것, 그러한 '태도 변경'이 어떤 사물을 예술이게 하는 것이다. 예컨대 뒤샹이 [샘]이라는 제목으로 변기를 미술 전시회에 전시했을 때, 그는 예술을 예술이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물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재 이러한 ‘태도 변경’은 그렇게 특별할 것이 못된다. 일상 속 카페는 마치 공장을 방불케 하듯 허물었고, 사람들은 녹슨 풍경 앞에서 셀카를 찍는다. 시체 인형을 가방에 매달고 옷핀을 귀에 꼽고 성기를 재현한 쿠키를 입에 넣어 오물거린다. 촬영에 동원된 사람들 중 예술가/비예술가를 막론해 일상적 풍경으로 폐차장을 바라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우리 모두는 미디어에 의해 구성된 미적 괄호 속 폐차장 이미지에 중독되어 있었다. 그리고 아무도 그 괄호를 벗겨내려고 하지 않았다. 괄호를 벗기고 바라본 폐차장 속 기호들은 더 이상 이미지로 다가오지 않는다. 남성성이나 빈티지한 상징이 아닌 기호의 기억에 초점이 맞춰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상징이 아닌 ‘문학적 지표’에 가깝다. 이미지화된 풍경을 다시 한 번 일상적 차원으로 환원시키는 것은 저항이며 윤리적 행위다. 이제부터 눈앞에 펼쳐진 풍경 하나하나는 해석을 기다리는 상형문자라고 볼 수 있다.
⑴ 가라타니 고진 [윤리21]
clichecliche@naver.com
Road - 8 (맛집) 글. exxx 이달에는 맛집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맛집’
“저도 참 좋아하는데요. 우선 사전적 정의는 이렇습니다.”
‘맛장수(아무런 멋이나 재미 없이 싱거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의 잘못.
네. 우리가 일반적으로 쓰는 그것과 전혀 상관이 없어요. 아마 맛있는 집의 줄임말이겠죠. 물냉, 비냉, ㄹ혜 처럼 그렇습니다.
어느샌가 맛집이라는 표현이 일상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심지어 해외여행 가서도 맛집을 검색하면 나오더군요. 여행 다녀오신 분들의 후기가 쌓여서 그런 결과를 만들어 낸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블라디 보스톡 맛집’ 을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특정 식당들을 지칭하는 결과가 나옵니다. 해외도 나오는 마당에 한국이야 전국팔도 안나올 곳이 없겠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개성 맛집을 검색해 봤는데, 여기는 아직 청정 구역이네요. 맛집 블로거 분들의 블루오션!!) 이런 검색이 잘 모를 때는 편하기도 하지만 여행의 의외성을 조금은 줄여주기도 해서 아쉽기도 한 부분이죠.
이런 것들도 다 검색하는 마당이니 입소문 시장에서는 무슨 키워드로 블로깅을 해준다고 식당에 역으로 제안을 하는 영업도 횡행하고 있습니다. 맛집이라는 키워드가 더이상 맛집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검색보다 지인 추천을 받기도 하죠. 오늘은 그 이야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왜 갑자기 맛집 이야기를 시작했냐면, 간혹 누군가 맛있다고 추천해서 갔는데, 영 맛이 없어서 후회했던 일이 있어서, 여기서는 점잖게 후회라는 표현을 쓰지만 현실은 ‘깊은 빡침’에 가까웠습니다. (저는 워낙 없는 살림을 짜내서 가는 지라 그런 일에 좀 예민하게 반응하곤합니다.) 가끔은 먹다보면 서글퍼지기도 하고요. 그런 희노애락을 경험하다보니 속리한 산자락에서 얻은것과 같은 깨달음이 있어, 오늘은 그것을 나누고자 여러분을 찾아왔습니다. 흠흠. 이제까지는 농담이었습니다. 다만 슬픈일은 줄이고 기쁜일은 나눠야겠지요. 그래서 쓰기로 했습니다.
제 짧은 인생을 되돌아보면 누군가의 추천으로 식당을 찾아갈 때 고려해야할 것은 두가지 인것 같습니다. 알려주는 사람의 식성과 식당의 분위기! 각각을 조금씩 짚어보겠습니다.
1. 대답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식재료가 들어가는가?
예를 들자면 ‘닭고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닭을 고추장에 볶던 간장에 볶던 소금에 볶던 볶다 말던 간에 닭고기 맛이 나면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겠죠. 그 사람이 닭고기 맛을 선호하는 것에 뭐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참고할 수는 있습니다. 평소에 좋아하는 음식을 알고 있다면 되물어보면 간단합니다.
“닭고기가 들어가서 맛있는건 아니야?” 이럴 때는 두가지 대답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가?” 혹은 “아니야 그것과 상관없이 맛있어” 뉘앙스를 잘 판단해서 선택하시면 됩니다.
이와 비슷하게 ‘짠맛’과 ‘단맛’을 적용할 수도 있습니다. 원래 단것을 좋아하거나 매운것을 좋아하거나 짠것을 좋아하거나 하는 것을 생각해보면 식당을 정하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2. 분위기가 좋은 집인가?
인테리어는 식당의 중요한 요소이기도 합니다. 음식이 나오기까지, 그리고 식사 이후까지 기분에 영향을 끼치죠. 방향제나 건물 안의 냄새 등 후각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가 있다면 맛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혹은 직원들의 친절함이 음식의 맛에 영향을 끼치기도 합니다. 이런 모든 것들이 모여서 식당에 대한 기억이 정리되기 때문에 음식 외적인 요소가 식당의 평가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요리가 예쁘게 담겨 나와 사진발이 좋은 경우에도 평가가 후해질 수 있습니다. 식당을 알려주는 사람이 평소에 음식 사진을 많이 찍거나 아기자기한 것들을 좋아한다면, 혹시 분위기에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닌지 고려해 보는 것도 식당을 정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크게 이 두가지 정도를 고려하면, 추천으로 찾아간 식당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실패라고 생각하기보다 ‘아 이런 이유로 추천을 했구나!’ 하고 이해할 수 있게됩니다. 그럼 다음에는 좀 더 마음에 드는 식당에 찾아갈 수 있겠죠. 그래도 아주 친한 친구라면 욕해주는 것을 잊지 마세요. 다른 사람에게는 추천하지 말아야지요.
오늘은 여기서 마칩니다. 양질의 식당을 만나시길 기원하면서 저는 떠답니다. 이달에도 어영부영 때운 감이 있지만 장담하건데 유용하실 것입니다. 다음에는 어떤 이야기를 할지 모르겠습니다. 냉면이라도 한 그릇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싶지만 이대로 나가면 제가 마른오징어가 될 것만 같아.. 너무 두렵습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