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 입니다.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 글. 사진. 아홉시 영화로 읽는 시공간 - 사도가 주는 부채씬의 배고픔 / 글. 곡주대비 나의현대예술순례 #03 은유의 예술 직유의 예술 / 글. 사진. 황정운 작곡가 B의 노트 - 만화가 가르쳐줬던 노래 / 글. composer B 택시를 탔다 - 02. 노총각은 웁니다. /글. 사진. 고수진 옆사람 인터뷰 - 물 만난 영화를 빛내다 / 글. 정리. 이내 Daily Archive - 파비앙 / 글. 모음. 김혜미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소개소 / 글. 신당동 파르한 의미 없는 이야기 / 그림. 글. 철민 Idology - H.O.T. 데뷔 19주년 외. / 정리. 미묘 Stigmata / 글. 사진. 김성연 Road - 10. 능사 / 글. exxx
안녕하십니까? 혹시 얇아진 책에 당황한 독자분이 계신가요? 네 얇아졌습니다. 열독자 분들이 기 다리셨을 두껍고 알찬 책을 준비하지 못한점 먼저 사과드립니다. 월간이리의 마감은 월말에 이루어집니다. 이번에는 명절인 추석도 끼어있고요. 명 절이 끼었는데 마감을 재촉하는것도 명절 답지 못한듯 하고 저도 참 게으르다보니 이달은 좀 얇게 마감 되었습니다. 죄송합니다. 나이가들면 살이 빠지고 눈빛에 총기가 사라진다고 하는데, 요즘은 문득 제가 그 런 상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올해 잡지를 만들 면서 혁신까지는 아니어도 변화의 바람을 불어넣는다고 생각하던 시기도 있었는 데, 몇번인가 문턱에서 스텝이 꼬이다 보니 가을이 되었습니다.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곡이 여물고 떨어질 즈음이 되면 늘 이런 질문을 떠올 리게 됩니다. 아마 작년 이맘때의 잡지를 갖고 계시분이 있으시다면 그때도 이런 소리를 늘어놓는 인사글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돌고도는게 인생이지요. 앞으로도 몇 해를 살게 뻔하고 그동안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은 것인지도 여전히 고 민하고 있습니다. 남들은 그런 고민들은 다 어린시절에 한다던데 .. 어째서 저는 요 즘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죠. 어린시절에는 그 말이 무척 좋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보니 좋은놈도 나쁜놈도 다 이름 을 남기더군요. 좋은 이름을 남겼으면 합니다. 기운없는 소리는 여기까지하고 독자분들의 건투를 빌고 싶습니다. 추워지기 전에 사방에서 열리는 많은 축제에 참석해 사진도 찍고 단풍도 즐기시길 바랍니다. 세 상이 다 등을 돌린 것 같은게 인생이라지만 또 둘러보면 손내미는 사람은 늘 있 는게 인생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마음이 뚝 뚝 떨어지는 계절에도 모두 화이팅. 그리고 언제든 연재를 원하는 분들은 ‘월간이리 기고안내문’으로 검색하시거나 exxx2x@gmail.com 으로 문의주시면 친절 안내 해 드리고 있습니다. 월간이리 exxx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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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도” 가 주는 부채씬(?) 의 배고픔
한 3년 전 쯤이던가… 우리나라 사극영화 붐이 얼마나 계속 될 것 인지 지인들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대부분의 여론은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나를 포함한 그들이 ‘결국’ 틀렸음을 떠 올렸다. 최근 개봉한 이준익 감독의 사도를 두고 하는 이야기다.
물론 흥행면 으로 보아 대박 작품이라고 말하긴 애매한 스코어를 보여주고 있긴 하 지만 적어도 사극의 제작 열풍 만은 명백히 유지 되는 것처럼 보인다. 더군다나 사도 의 경우, 차고 넘칠 만큼 많이 만들어 졌던 사도 세자의 이야기가 아닌가. 그럼 일단 사극 제작 붐에 대해서는 잠시 덮어두고, 사도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자. 사이 나쁜 부자지간의 아버지가 아들을 굶겨 죽인 이 폐륜 적인 이야기가 왜 지속 적 으로, 점점 더 큰 스케일로, 사극이 가진 그 시각 적인 화려함 안에 끊임없이 부활 하 는 것일까. 이준익의 사도를 보면 기존 드라마나 영화에서 극화 되었던 스토리들 과는 다른 관
영 화 로 보 는
점이 보인다. 이준익의 영조는 동정할 만한 면모를 많이 드러낸다. 그는 자식을 죽 인 중죄인 이지만, 그가 온갖 부정으로 얻어낸 왕위에 대해 그가 갖고 있는 불안함 과 열등감이 그가 하는 미신적인 행위들 (ex. 자신에 대한 나쁜 소문이나 얘기를 들 었을 때 귀를 닦아내고 부정을 태우는 행위) 이나 아들을 향한 과도한 학문적 집착 등을 통해 충분히 설명된다고 보여진다. 그는 결국 이러한 병적인 불안감에 잠식 되 어 자신을 따르지 않는 아들을 죽이게 되는데 이 폐륜적인 행동이 한 편으로는 이해 가 갈 정도로 (정당하다는 뜻으로 오인하지 않길 바란다) 영화 속에서 잘 드러나 있
시 공 간
다는 말이다. 또한 순하디 순했던 사도 세자가 아버지의 폭언을 감내하는 과정에서 틀어지는 과정 도 왜 그가 아버지를 살해하겠다고 까지 결심했었는지 ‘대리청정’ (왕의 일을 대신 맡 아 하는 것) 에서 비롯된 갈등의 재현을 통해 설득력 있게 잘 그려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작품과 다른 사도 세자를 다룬 작품들의 교차점으로 읽혀지는 엔딩에 관해 서는 아쉬운 점이 많다. 여타 다른 이준익 작품들에서 보여지듯, 사도 역시, 등장인물 들의 갈등 혹은 비극 적인 죽음을 제 3자 캐릭터를 통해 의식을 하듯 풀어내려는 (왕 의 남자에서 장생의 마지막 춤사위 씬) 어찌 보면 약간 신파적이면서도 동화적인 엔 딩 씬을 택하는데 이번 사도에서는 좋은 선택은 아니었던 듯 하다. 명백한 스포일러 라 후환이 두렵지만, 사도 세자의 아들 분으로 등장하는 소지섭의 부채춤사위 씬은 결정적인 ‘사족’ 이 아니었나 싶다. 두 부자의 비극을 손자가 살풀이 한다는 동화 적인 결론은 물론 감독의 로맨틱한 상 상력이겠지만 필자가 이를 굳이 사족이라 여기는 이유는 영화의 상당 부분에서 영조 나 사도세자가 빚어낸 비극적인 사건에 대한 명분을 잘 그려낸 것이 순기능을 갖고 있지 않은 신파씬 하나로 축약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바로 이러한 점이 같은 이야기를 계속 재생산 할 수 있는 사극 장 르의 현저한 매력 포인트가 아닌가 싶다. 사극 영화는 같은 스토리지만 다소 과한 신 파가 허용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 영화나 한국 관객들처럼 (장르 구분 없이) 신 파적인 요소에 강렬히 반응하는 추세를 고려하면 이러한 사극 제작은 계속 될 것으 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지인들이 사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문득 궁금해 진다.
글. 곡주대비
나의현대예술순례 #03 은유의 예술 직유의 예술 글. 황정운
1_ 2009년 봄 경희궁에서는 조금 특별한 설치프로젝트를 진행한다. 경희 궁 앞뜰에 초대형 크기의 흰 천으로 둘러싸인 4면체 형태의 임시 철골 구조물을 설치하였는데, 이 구조물은 하나의 행사가 종료될 때마다 새로운 주제를 구현하기 위해 구조물 전체가 회전하며 자유롭게 변형된다. 건축가 렘 쿨하스(Rem Koolhaas)가 주도한 이 프로젝트의 이름은 프라다 트랜스포머(PRADA Transformer). 프라다의 미술, 패션, 문화의 지향점을 보여주기 위한 현대적인 프로젝트를 과거의 유산인 경희궁을 배경으로 한다는 점도 흥미로웠지만 각 구조물 안에서 전시되었던 파격적인 형식과 내용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수상한 스웨덴 아티스트 나탈리 뒤버그의 비디오 작품은 정말 아슬아슬하고 어지럽고 의미를 쉽게 발견할 수 없었다. 벌써 6년 전 일이 되었지만 당시 전시회에 다녀온 뒤 나는 느낀 점을 한 단어로 적어놨었다. ‘불협화음’ 그런데 이 예술과의 불협화음이야말로 예술을 더 알고 싶게 하는 돌파구였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건 단지 혐오스럽고 싫다는 감정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나와 예술사이의 공백에 가까웠고, 아직 이해해야 할게 더 남아있다는 그 간극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뭔가를 더 알고 싶다는 감정은 그 예술의 표현목적이 손쉽게 읽혀지지 않고 은밀히 감추어져 있을 때 더 강한 감정으로 변했던 것 같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구상보다 추상으로 표현된 예술에 더 이끌리기 시작한 것도, 추상의 캔버스 안에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감추어져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추상이라는 말 자체가 현실적인 구상을 관념적으로 추려낸 것이니 그렇게 생각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정직하고 강렬한 스케치로 표현된 구상예술은 여전히 감동적이었지만 그것보다는 한번에 이해되지는 않던 추상의 그림들로 관심을 의도적으로 옮겨갔던 것이다. 환기미술관에서 보았던 수없이 점멸하는 점과 선, 음(音)을 선과 색으로 구현한 칸딘스키, 이 추상의 그림들은 그 어떤 구상보다 감동적인 메타포가 있었고 캔버스에 감추어진 이 메타포야말로 진정 예술적이었다. 그 인식의 수준은 꽤 속물적이었지만 말이다. 요컨대 쉽게 이해되지 않는 메타포가 예술의 본질이라 믿었고, 직관적으로 쉽게 이해되는 것으로부터 의식적으로 스스로를 밀어내왔다.
PRADA Transformer, 2009, 경희궁, 서울
2_ 메타포... 그건 은유로서의 화법이었다. 사람들은 직유보다 은유에 더 깊은 관심을 갖는다. 은유는 좀 더 세련되고 섬세한 비유의 한 방법이라고 은연중에 배워왔던 것이 사실이다. 시험을 위한 공부였기는 했지만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배웠던 서정주의 <귀촉도>, “피리불고 가신 임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리” - 과연 서역 삼만리가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단어들이 가지고 있는 메타포는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인지 항상 은유의 해석에 열광했던 것이다. 더 나아가서는 작가가 독자, 관객으로 하여금 그 작가가 던져놓은 메타포에 대한 해석의 자유야말로 예술과 문학에서 중요한 것이라고 우리는 암묵적으로 합의해 왔다. 그래서 예술에서 느껴지는 심상이 감추어있지 않고 거칠게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때 우리는 이것은 메타포가 풍부하지 않아서 세련되지 않다고 어느덧 비평하게 되었다. 예술이 고차원적이지 않고 단조로울 때, 1차의 평면에서 직접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때, 더 나아가 직유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올 때 은연중에 그것이 은유였다면 더 훌륭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 역시 예술이 좀 더 어려운 은유의 화법으로 말을 건네길 바랬다. 그것이 어려울수록 더 가치있는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직유로서의 예술 화법이 달리 읽히기 시작한 것은 아마 몇 년 전 서울시 공공미술 정책의 하나인 도시갤러리프로젝트 작품을 돌아보면서부터였을 것이다. 공공미술은 예술에 대한 이해가 저마다 다른 다수의 시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직관적으로 표현되거나 혹은 그렇게 표현될 수 밖에 없는 직유의 화법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도시갤러리 작품을 표현하는 그 직유의 화법을 대할 때마다 은유의 메타포에서는 얻을 수 없는 또 다른 감정이 느껴졌다. 그건 메타포의 고민을 통해 예술과 나 사이의 공백을 줄여나가려는 관념의 예술이 아니라, 현실세계에 보다 직접 맞닿아 있는 아주 생생한 감정이었다. 동대문 동화시장에 여전히 사람이 있음을 다룬 작품, 효자동 서울농학교 담벼락에 전시된 청각장애학생들의 작품, 안국역에서 인사동 거리로 들어가는 초입의 거대한 붓 같은 작품들은 관념적으로 사유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그만큼 직관적이고 쉽게 읽힌다. 그러나 그 직유의 화법이 그 속에 담긴 것마저 쉽게 만들지는 않았다. 사람들의 生이 담겨있는 그 현장들은 은유보다는 직유의 화법이 오히려 타당했다. 불협화음을 느끼며 작가와 나 사이의 공백을 관념적으로 음미하기엔 우리가 몰랐던 사실-진실이 많았다. 서울시 곳곳의 공공미술은 내가 의도적으로 멀리했던 직유의 화법이 요구되는 예술이 있었던 것이다.
서울시 도시갤러리프로젝트 (순서대로) 동대문 동화시장, 세상의 모든 의류부자재 동화(童話)에서 찾다 효자동 서울농학교, 수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
3_ 회사에서 점심을 먹고 근처 일본대사관을 찾았던 날이 수요일이란 걸 깜빡 잊었다. 사실 일본대사관 바로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볼 생각이었는데 가까이 갈수록 마이크 소리가 크게 들리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다. ‘평화의 소녀상’은 비록 정식 이름은 아니지만, 매 주 수요일마다 일본대사관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수요집회가 열리는데 그 기념일을 맞아 2011 년 그 자리에 평화비와 함께 세워진 앉아있는 소녀의 동상이다. 소녀는 입을 꼭 다물고 주먹을 꼭 움켜쥐고 정면으로 시선을 던진다. 그 시선의 끝에 일본대사관이 있다. 말 없이 저들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다. 평화의 소녀상에 가까이 갈수록 이것이 뉴스에서만 보던 수요집회임을 알았고 미리 신청한다면 자유롭게 앞에 나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그 말을 듣는 이들은 수녀도 있었고 외국인도 있었고 많은 기자들도 보였고, 대개가 젊은 학생들이었다. 그들이 손에 들고 있는 유인물을 보니 언뜻 197회 정기 수요시위.. 라는 숫자가 눈에 들어왔다. 생각보다 집회를 끈질기게 하고 있구나 생각하며 유인물을 받아 들었는데, 197이 아니라 1197이었다. 이것은 제1197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 시위였다. 무려 1197회였다. 1992년부터 계속 해 온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이 평화의 소녀상도 수요시위 1000회를 기념하여 평화비와 함께 건립된 것이었다. 평화의 소녀상은 예술인가 혹은 예술성이 있는가. 그 질문에 답하기는 쉽지 않다. 추상의 선과 점은 여전히 나를 설레게 한다. 나는 쉽게 말하여지지 않는 것에 가까워지고 싶은 욕망을 떨쳐낼 수 없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이 그러한 은유의 화법으로만 기록될 수는 없다. 메타포가 필요한 곳엔 메타포가 직유가 요구되는 곳엔 직유가 예술의 화법으로 그 기능을 다해야 한다고 믿는다. 이곳은 직유로 기록되어야 할 공간이었다. 1197번 반복되어도 변화되지 않는 공간이었다. 아직 나 스스로의 의식이 뒤쳐져 있기에 이들의 감정에 전부 공감한다 말하는 것은 거짓말이겠다. 그러나 적어도 이들과 함께 있는 이 소녀상만큼은 직유로서의 예술에 가깝다고는 생각했다. 예술은 무엇을 그리고 어떻게 표현하는가에 대한 고민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발언 시간에 일본에서 온 일본인 시민운동가의 솔직한 고백이 기억에 남았다.
“과거의 일은 반드시 기억되어야 합니다. 전달되어야 합니다. 다음 세대에 공유되어야 합니다. 잊혀져서는 안됩니다.”
평화의 소녀상 김운성, 김서경 조각 / 2011년 作 종로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
작곡가 B의 노트 <만화가 가르쳐줬던 노래> 글.
composer B
1악장. 가장 따뜻하고 쿨했던 선생님 나는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에 초등학교를 다녔었다. 2015년의 초등학생들은 음악시간에 어떤 노래를 배우고 있을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생각해보면 내가 학교에 다녔던 당시만 하더라도 아이 들 사이에서 동요와 대중가요가 나름대로 균형을 가지고 소비되었던 시기로 기억된다. 개성 있는 아이 돌 그룹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던 시기였던 만큼 그들이 부르고 추었던 노래와 춤들은 아이들에게 빠 른 속도로 흡수되고 있었지만, 학교에서 배웠던 동요들 역시 아이들에게 음악을 좀 더 친숙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요소였던 것만은 틀림이 없다.
그리고 우리에게 음악적으로 영향을 주었던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TV에서 방영했던 애니메이션의 주 제가들이 그것이다. 어쩌면 만화라는 건 우리에게 있어서 학교보다 더 많은 것을 종합적으로 가르쳐주 는 절대적인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보기에는 빤한 스토리 였겠지만 아이들은 만화의 줄거 리를 따라가며 자연스럽게 권선 징악의 개념에 대해 배우고, 생 동감 있게 표현된 등장인물들의 성격과 그로 인한 갈등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또, 각각의 만화 가 보여주는 서로 다른 그림체와 색감을 비교해보며 미술의 아름 다움에 눈을 뜰 수도 있었다. 하 지만 그 중에서 아이들의 기억에 가장 크게 남는 것은 역시 주제 가가 아닐까 싶다. 꼬마가 성인 이 될 만큼 긴 시간이 지났을 때, 어렸을 때 봤던 만화의 구체적인 스토리나 등장인물의 이름까지 는 기억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입과 귀는 알고 있다. 비 록 우리가 가사의 정확한 뜻을 모른 채 암송하듯 부르긴 했었지만 여리고 말랑말랑한 두뇌에 깊숙하게 각인되었던 숱한 만화 주제가 들은 성인이 된 지금 와서 전주부분만 다시 들어도 이건 무슨 만화 의 주제곡이며, 첫 부분의 가사는 어떻게 시작하고 중간 부분에서는 어떻게 코러스를 넣어 불러야 하는지를 말이다. 심지어 더 이상 만 화 주제가는 부르지도 않을 것 같은 대학생들도 학교 축제에 초대된 가수가 만화 주제가를 부르면 열광적으로 반응하며 떼창을 하지 않던가.
맞다. 그 만화 주제가들은 실로 고마운 존재들이었다. 인터넷 보급과 밀레니엄의 시대를 겪으며 성장했 던 아이들에게 60년대부터 불려왔던 동요를 계속 부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좀 답답한 일이었을 것이고, god나 H.O.T의 노래에 대해 온전히 감정을 이입하며 듣고 부르기에는 좀 어렸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당시의 우리는 만화 주제가에 더 열광했던 건지도 모른다. 물론 어른들이야 TV는 바보상자고 만화는 시 간을 정해서 적당히 봐야하는 것이라고 훈계하곤 했었지만, TV에서 방영되던 만화와 그 주제가들만큼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줬던 것이 또 어디에 있었단 말인가? 촌스럽지 않되 그렇다고 너무 앞서나가지 않은 적당한 세련미로 무장한 음악은 호기심 많던 아이들의 귀를 사로잡았고, 만화의 줄거리와 보편적 인 도덕관을 절묘하게 섞은 가사는 아직 여리고 순수한 아이들이 가진 세상에 대한 환상을 깨지 않으면 서도 더 넓은 세계에 대한 꿈을 꾸게 해주는 정말 강력한 매체였다. 알고 보면 만화 주제가야말로 어린 날의 우리들이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가장 따뜻하면서도 쿨했던 선생님은 아니었을까.
2악장. 한 사람만 있어도 성인이 되어 음악을 공부하면서 곧잘 그 때의 만화 주제가들을 떠올리고 또 복기해보곤 했다. 그리고 대체 이런 멋진 음악들을 만든 사람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일지 너무너무 궁금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이런 저런 자료를 찾던 중 정말 놀라운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그렇게 열심히 부르고 좋아했던 대부분의 인기 만화주제가들이 한 사람의 작곡가에 의해 쓰인 노래들이었다는 점이다. 그것도 나와 사회적으로 꽤나 가깝다고 볼 수 있는 카테고리에 있는 분이었던 것이다.
그 모든 노래들은 바로 작곡가 방용석(1959~) 선생의 작품이었다. 그가 작곡한 애니메이션 주제가들을 일부만 써볼까? 「달려라 하니」「드래곤 볼」「슬램덩크」「포켓 몬스터」「디지몬 어드벤처」「검정 고무신」「밀림의 왕자 레오」「 이누야샤」「카드캡터 체리」「탱구와 울라숑」「하얀마음 백구」「지구용사 벡터맨」「헌터×헌터」.....
맙소사. 만화 한 편당 노래 한 곡만 쓰는 게 아니라 오프닝, 엔딩, 중간음악이 기본이니 편당 최소 2~3 곡이란 얘기인데, 그 노래들 하나하나가 아직도 우리의 기억 속에 남아있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기까지 하다. 게다가 이건 방용석 작곡가의 작품 목록 중 극히 빙산의 일각일 뿐이며 수면 아래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듣고 지나쳤던 수많은 광고음악들도 있다. 이런 분이 거장이 아니면 누가 거장이란 말인가.
나중에 방용석 선생의 인터뷰를 보니 본래 자신이 가장 큰 시간을 할애하는 분야는 광고음악이나 드라마 쪽이었지만, 아이들을 위한 사명감을 가지고 애니메이션 주제가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순간 이후로 나는 이 분을 그 어떤 음악가보다 존경하게 될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보면 무엇이든 다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위험할 수도 있었던 어린 시절, 내 머리와 마음 그리고 귀를 풍족하게 채워주고 올바르게(나름대로) 클 수 있도록 잘 이끌어 주었던 그 음악을 만든 분을 어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사실 예전에 방용석 선생의 SNS를 방문해서 인사를 올렸던 적이 있다. 선생은 친절하게도 스튜디오에 한 번 놀러오라며 답글을 남겨주셨지만 아직 선뜻 찾아갈 엄두가 나지 않아 실제로는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같은 업계에 있는 만큼 인연이 닿으면 꼭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날이 되면 다시 한 번 정중하게 인사드리고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선생님이 쓴 음악을 듣고 부르며 자라는 동안 참 많은 것을 배웠고, 나도 내가 그렇게 배운 음악들을 언젠가 어린아이들에게 꼭 나누며 살고 싶다고.
택 시 를 탔 다
S#2. 홍대 수 노래방 – 천호 우리집, 24000원 - ‘노총각은 웁니다.’
글, 고수진 (gomin19@hanmail.net)
압구정에서 일 할 당시 친했던 영어 선생님을 만났다. 홍대에서 만나 한 잔 두 잔 마시다 흥이 올라 노래방까지 갔다. (수 노래방은 왜 무알콜 맥주를 파는 것일까.. 그것을 먹는 사람도 있단말인가?) 시간은 어느새 새벽3시.. 평일 홍대의 새벽은 공포영화의 한 장면처럼 너무 조용하고 스산했다. 수 노래방 주차장에 세워져 있던 차 한 대가 갑자기 빈차로 깜빡거렸다. 나는 그 택시를 잡아탔다. “안녕하세요, 천호역 현대백화점 쪽으로 가 주세요.” 차를 타자마자 동시에 비가 기다렸다는 듯이 후두둑 쏟아졌다. 강변북로를 진입했을 때는 굵은 빗줄기로 바뀌었다. 우산도 없었는데. 나도 모르게 ‘하. 다행이다.’라는 말이 나왔다. “운이 좋으시네요. 이런 비는 우산을 써도 다 젖어요. 천호역 도착하면 비가 딱 그칠 것 같은데.” “그래요?”
하반기에 뭔가 되려나보다. ‘로또나 살까..’ 술기운에 운이 좋다는 기사님의 농담에 기분이 좋아졌다. “사실은 아까 닭 꼬치를 먹을까 했거든요, 수 노래방 앞에 닭 꼬치 장사 2명이 있는데 젊은 사람이 아주 잘 구워줘요. 그런데 이 젊은 사람이 잘 나오지 않아요. 오늘은 나왔는데.. 손님이 손을 흔드니, 하.. 아쉽네 하하’ 분명 농담이었는데 나는 너무나 죄송스러웠다. 즐거운 간식타임을 빼앗은 격 아닌가. “아니에요, 닭 꼬치가 대수인가, 돈 벌어야죠.” 굉장히 호탕한 웃음소리에 나까지 기분이 좋아졌다. 무척 살가운 기사님이셨다. 정갈한 컷트머리. 이 새벽 운전에 굳이 흰 장갑을 끼신 모습. 마치 드라마에서나 볼 법한 기사님의 모습이셨다. 왜소한 체격에 야무지게 낀 그 흰 장갑. 친절한 그의 말투와 주신 레몬 맛 사탕에 왠지, 집에서 좋은 아버지 일 것 같았다. 그러나 나의 이 주책이 그의 가슴을 후벼 팔 것이라고는 생각하지도 못했다. “좋은 아버지요? 그그그그렇죠... 허허허 좋은 아들이죠 뭐.” “어머... 어머 죄송합니다. 어두워서 밤이라서 새벽이라서 죄송합니다.” 뒷자석에서 계속 고개를 떨구며 죄송합니다를 연신 외쳤다. 아 쥐구멍, 아 내리고 싶다. 아이고 어머니. “괜찮아요. 제가 나이가 39이니까, 뭐 그렇게 보실 수도 있어요.” 하.. 오늘의 이야기. 노총각은 웁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조그만 회사에 취직을 했다. 그러나 내수경기는 갈수록 침체되고 회사 또한 인원수를 감축해야 할 상황이 왔다. 어쩔 수 없었다. 회사에서 나가라 하니 나가야지.. 삼십대에 실업자가 되었다. 결혼하자 약속했던 여자는 떠났다. 괜찮다. 응원해줬던 그녀였는데, 그녀의 나이도 집에서 가만히 두질 못하는 나이였고 그런 그녀를 그는 더 이상 잡을 수가 없었다.
나이가 문제였다. 나이가 그의 발목을 붙잡았다. 나이가 그의 모든 것을 붙잡았다. 삼십대가 되면 결혼도 하고 가정을 이끌고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다시 일하기 위해 여기저기 이력서를 썼다. 큰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그러나 쉽지 않았다. 학력, 나이, 이력서를 쓸 때마다 자괴감이 그를 괴롭혔다. 부모님의 권유로 택시를 시작했다. 택시는 이제 2년차. 이 일도 나름대로 즐겁다. 물론 새벽 6 시까지 운전하는 것도, 취객을 만나는 것도 곤혹스럽지만... 얼마 전 취객은 안산까지 갔는데, 편의점에서 돈을 뽑아서 준다고 하고는 그대로 뒷문으로 도망쳤다고 한다. 안산 새벽 4시. 서울로 올라오면서 들었던 음악을 틀어주셨다. 최호섭, ‘세월이 가면.’ 한 해 한 해 나이 먹는 게 제일 서글프다며 내 나이를 묻는 기사님의 선한 얼굴이 살짝 룸미러사이로 보였다. 어느새 택시는 강변역 테크노마트를 지나고 있었다. 기사님이 틀어주신 ‘세월이 가면’을 기사님과 함께 조용히 흥얼거렸다. 창 밖에는 빗줄기가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차를 세우고 기사님께 아까 닭 꼬치는 죄송하다고 2천원을 더 드렸다. 뒷좌석에 탄 나에게 안전벨트 매야 한다고 밤 빗길운전이라고 살뜰하게 챙겨 주신 것도 감사했고, 정말 닭 꼬치도 죄송했다. 기사님은 웃으시며 500원을 덜 냈다는 농담을 하셨다. 요금을 계산하며 기사님의 얼굴을 처음으로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그제야 왜 그녀를 잡지 못했는지, 더 독하게 하지 않으셨는지 알 것만 같았다. 삼십대가 되면 안정적이고, 고민 없는 그런 어른이 되어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더 고민도 많고,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불안감, 회의감. 그 나이에 해야 할 과업. 이런 것들이 더 끊임없이 쌓여가고 있는것 같다. 슬퍼지지만 말자.
Daily Archive 파비앙
E에게 메일이 왔다. 우리는 졸업 이후 짧은 안부를 묻는 쪽지를 주고 받긴 했으나 장 문의 메일은 처음이었다. E는 나와 함께 한 보르도(Bordeaux)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 날 쉴 틈도 없이 바로 고향으로 떠났다. 복잡한 가정사와 정신없이 겪어온 학업의 스 트레스를 털어내고자 미노르카(Minorca)에서 더운 여름을 보내고, 지금은 두 달 남짓 프랑스 보부쉐(Boisbuchet)의 한 예술기관이 주관하는 워크샵에서 일을 하고 있던 중 이었다. E는 아쉬운 마음을 전하며 편지글을 시작했다. 다음 날이면 보부쉐를 떠나 다 시 지루한 현실 세계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E는 그곳에서의 생활이 아주 즐 겁고 만족스러웠다고 하며, 여유로운 시골의 일상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개성있는 사 람들과 가깝게 지내온 것이 가장 그리울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는 그들 중 몇몇의 특 이한 인물들과 그동안 참여한 프로젝트를 소개하면서 본격적인 편지 내용을 꺼냈다.
“ … 나와 내 남자친구는 더 이상 사귀는 사이가 아니야. 여기에서 만난 ‘진저 가이’(E 는 그를 ‘ginger guy’라고 불렀다.) 때문이야. 이곳의 젊고 자유로운 분위기 때문인지 는 몰라도 매일 함께 생활하니 자연스럽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아. 그는 꽤 어리 고 미성숙한 면이 있긴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만나온 사람들과는 달라. 그는 아주 여 유롭고, 천진난만한 구석이 있고, 겸손해. 나는 그냥 그가 말하는 어떤 것이든 듣고 있는 것이 좋아. 그는 아주 다정해. 우리는 최고로 로맨틱한 키스도 했어. 파티가 끝 난 날 밤에 단둘이 호수 한 가운데에 있는 플랫폼에서, 발가벗은 채로 … 그 이후부터 우리는 “함께” 하고 있어. 그런데 우리가 처음으로 했던 대화가 호세(José Antonio Suárez Londoño; 콜롬비아 출신의 작가이다. E와 나는 지난 2년 동안 이 작가의 작 업을 흥미롭게 생각해오고 있었고, 친근감과 존경의 표현으로 ‘우리의 친구, 호세’ 라 고 부르곤 했다. 보르도를 여행한 주된 목적도 이 작가의 전시를 보기 위함이었다.) 에 관한 것이었던 것 아니? 그와 프랑스의 다른 도시들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 리가 함께 다녀온 보르도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어. 당연히 우리의 친구 호세의 전 시에 대해서도 말해주었지. 그런데 이 진저 가이도 호세를 알고 있었던거야. 놀라지 마. 심지어 그는 프랑스로 돌아오기 전에 얼마간 콜롬비아에서 살았는데, 그 때 호세 와 같은 동네에 살았대. 정말 비현실적이지 않아? 그는 늘 ‘호세, 오늘은 어때?’ 라며 인사를 했고, 호세는 언제나 특별히 다를 것 없는 일상을 사는 것처럼 보였대. 그리 고 만약 그 사람이 호세라는 것을 몰랐다면 그저 평범한 이웃 사람으로 생각했을 수
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어. 나는 단지 그가 호세를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놀라웠 어. 시작이 아주 좋다고 생각했지. 이 즐거운 대화가 끝나고 그의 이름을 물었는데, 이 진저 가이의 이름이 파비앙이라는 거야! … ”
파비앙은 E와 내가 보르도에서 묵었던 집 주인의 이름이었다. 떠나기 전, E는 우 리의 재정 상황을 고려하여 코치서핑(Couch surfing)으로 숙박할 집을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낯선 사람에게 무상으로 집을 제공하고 제공받는 시스템을 이해할 수 없는 나에게, E는 몇 차례 이 웹사이트를 이용한 적이 있는데 보안이 잘 되어 있어서 조금 이라도 수상한 후기가 올라오면 바로 명단에서 삭제되니 안심하라고 했다. 그리고 운 이 좋은 경우 집 주인과 친구가 되기도 한다고, 대부분의 집을 제공하는 검증된 사람 들은 순수하게 사교의 목적을 가지고 있고, 여행지를 안내해주는 등의 호의를 베풀기 때문에 여러모로 도움이 된다고도 했다. 보르도는 작은 도시라서 집 제공자를 찾기 쉽지 않았지만, 다행히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파비앙이라는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보통 여행을 하는 사람이 먼저 연락을 취하기 마련인데 파비앙은 선뜻 집을 제공해주 겠다고 자처한 것이다. 우리는 보르도에 도착해 파비앙과의 접선 장소에서 그가 나타 날 때까지 기다렸다. 그는 두 명의 아이들이 있는 40대 중반의 이혼남으로, E에 따르 면 아이들은 보통 엄마와 함께 지내기 때문에 우리가 그 아이들의 방을 사용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인상착의만 대충 알아볼 수 있는 저화질의 프로필 사진을 토 대로 그를 알아볼 수 있어야만 했다. 그곳을 지나가는 거의 모든 사람들의 외모를 자 세히 관찰하면서 E와 나는 파비앙이 어떤 사람일지에 대해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우 리는 기다렸다는 듯이 각자 마음 한 켠에 두고 있었던 화두를 꺼냈다. 혼자 사는 중년 의 남자가 젊은 여자들에게 어떠한 보상도 없이 집을 제공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일인 가, 그런데 왜, 단순히 외로워서? 그렇다면 우리가 계속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 는 것일까,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생기는 것은 아니겠지, 최악의 상황으로 우리의 상상 이 치달을 때 즈음 파비앙이 우리에게 다가와 인사를 했다. 그의 첫인상은 꽤 깔끔했 고, 일부러 시간을 내어 우리를 데리러 온 친절을 베풀었기 때문에 조금 안심이 되었 다. 우리는 근처의 음식점에서 간단한 저녁 식사를 했다. 그는 자신의 직업, 취미 활 동, 가족 구성원들, 이전에 숙박했던 여행객들과의 에피소드 등 자신에 관한 거의 모 든 이야기를 빠른 속도로 서슴없이 하기 시작했다.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E와 나는 그가 그저 말동무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약간의 동정심과 함께 나쁜 사 람은 아닌 것 같다는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그의 집은 앞 마당에 예쁜 고목이 있는 아담한 크기의 집으로 건물 자체는 완벽해 보였지만 인테리어는 엉망이었다. 집안을 돌보지 않는 외로운 이혼남이라는 이미지가 머릿속에 각인되려고 할 찰나, 그가 간단 한 프랑스식 야식을 해주겠다고 나섰다. 그는 토마토와 계란, 향신료로 맛을 낸 수프 를 준비하여 거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거실로 나왔을 때, 그는 타이 트한 짧은 팬티와 흰 반팔티만 입은 채 마중이라도 나온듯 우리 쪽으로 걸어왔다. 불 룩 튀어나온 배 때문에 미처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지 못한 꽉 끼인 티셔츠 아래로 볼
록한 것이 그가 걸을 때마다 움직였다. 그 순간 이 집에 들어온 것을 후회했던 것을 기억한다. 그는 수프를 먹으며 아이들과 함께 한 네팔 여행을 추억하다가 우리가 앉 아 있는 소파로 다가와 옆자리에 앉더니 앨범 속의 사진을 한 장씩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두 세 번 정도 그와 살갗이 닿았는데, 그 때 두 번째로 이 집에 온 것을 후회했다. 그리고 그 날 밤, 우리는 파비앙이 했던 모든 행동에 대해 분석하 다가 늦게 잠자리에 들었고, 나는 불안한 마음에 거의 잠을 자지 못했다. 다음 날, 하 루 종일 우리의 대화 소재는 파비앙이었다. 우리는 그 집에서 보았던 가구, 액자, 수 집품, 칼의 위치 등에 대해 말하다가 집 안에 책이 한 권도 없었다는 것을 떠올렸고, 이틀 간 전혀 움직임이 없었던 먼지 쌓인 사물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만약 오늘 밤에 도 같은 차림새를 하고 있다면 무슨 의도로 받아들여야 하는지, 혹시 우리가 지나치 게 과장하여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니 끝이 없었다. 그날 밤에도 파비앙은 같은 차림새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 다음날에도, 그 다음날 에도 그랬다. 우리는 조금씩 그를 피하기 시작했고, 이 집에서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 나기 위해 거짓말로 비행기 시간을 앞당겨 말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결론을 말하자 면, 파비앙은 우리가 여행 내내 우려했던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넘치는 호의만 있었을 뿐이었다. 그는 매일 아침마다 우리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행동했고, 쪽 지로 아침 인사를 남기고 일을 하러 나가는 자상함을 보였으며, 집안의 모든 것을 자 유롭게 사용해도 된다고 허락해주었고, 밤 늦게 퇴근한 날에는 발꿈치를 들고 걸어 다니면서 우리의 편의를 봐주었다. 떠나는 날, 파비앙은 공항까지 데려다 준다고 했 지만 우리는 비행기 시간을 거짓으로 알려주었기 때문에 거절할 수 밖에 없었다. 낯 선 이들에게 이 정도의 성의를 보인다는 것이 감동적이었다. 파비앙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나오는 길에 E는 엄청난 죄책감이 생겼다고 했다. 파비앙은 그저 외로웠을 뿐 이고, 우리가 작게라도 보답을 했어야 했는데, 의심하고 흉을 보고 거짓말을 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었다. E는 그 이후에도 종종 그때 생긴 죄책감에 대해 언급하곤 했는데, 조금이라도 나쁜 일이 생길 때마다, -이를 테면 타지에서 길을 잃거나 돈을 잃어버렸을 때, 기차 시간을 놓쳤을 때와 같이- 파비앙을 속인 벌을 받고 있는 것이 라고 말하곤 했다. 프랑스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부터는 혹시나 어딘가에서 파비앙을 마주치기라도 할까봐 긴장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
“ … 이 파비앙과 그 파비앙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 분명히 알고 있는데도 불 편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어. 진저 가이도 파비앙이 나에게 보낸 벌일까? 얼마나 미 스테리한지! … 진저 가이와의 사이는 앞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모르겠어. 우리가 서 로 좋아하고 있는 것은 확실한데 미래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세우지 않았어. 내일 떠나면 언제 다시 볼지 몰라. 너는 내가 보르도의 파비앙 때문에 진저 가이와의 관 계를 망설인다고 하면 웃을지도 모르겠어. 그런데 나에게 개운치 않은 일인 것은 확 실해. … ”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면 파비앙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기는 하지만, 그는 내 기억 속에 그리 유쾌하지 않은 인상으로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거의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 때문에 나는 E가 처한 상황에 E가 나에게 바라는 만큼 공감할 수 없었다. 대 신 E의 편지는 나에게 다른 죄책감을 전해 주었다. 나는 E와 가깝게 지내면서 (전)남 자친구 L과의 사이가 언젠가 끝날 것이라는 것을 흐릿하게 예상하고 있었다. E가 고 향으로 돌아가고 L과의 장거리 연애가 시작되면서 부터는 이 둘이 어떻게 헤어지게 될것인가에 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아마 이 둘의 별난 관계를 더 별 나게 만들고 싶은 심리가 발동되었거나 단순히 남의 연애담을 상상해보는 것이 재미 있어서 그랬던 것 같다. 주된 상상의 내용은 둘 중 한쪽이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되거 나 둘 다 그러할 것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이들이 마음을 주게 될 다른 사람은 어 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머릿속에 그려보는 것이었다. 이 둘과 어울리는 제 3자를 상 상해보는 것은 생각보다 더 재미있는 일이었다. E와 L은 나의 즐거움을 충족시키기 위한 희생양들이 된 것이다. 나는 이들을 내 멋대로 각기 다른 이유로 여러 차례 싸우 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헤어지게 만들었고, 그 헤어짐의 이유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구차하고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런데 막상 이런 일이 실제로 벌어지고 나니 이들의 헤어짐을 부추기는 주술을 걸어온 것과 같은 찝찝함과 불편함이 마음을 찔렀 다. 나는 이 커플의 이별과 그들이 겪어야 할 상처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어쩌 면 나는 이런 방식으로 파비앙의 벌을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
“ … L과는 정말 좋지 않게 끝이 났어. 나는 그와 직접 만나서 헤어지기로 결심하고 9 월에 런던으로 돌아가려고 했는데, 그가 이미 잘못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감 지하고는 이 일을 해결하려고 나에게 전화를 한거야. 나는 어쩔 수 없이 전화 통화로 그를 더 이상 원하지 않고, 이 관계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어. 그랬더니 보부쉐에서 누군가를 만나서 무슨 일이 생긴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나봐. 그는 내 페이스북을 해킹해서 친구와 진저 가이에 대해 대화한 내용을 모두 읽었어. 그런 식 으로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거야. 그는 너무 화가 나서 나에게 소리를 지르고, 욕설 을 하고, 죄책감을 심어주려고 갖은 이유를 동원했어. 사실 내가 그를 포기한 건 진저 가이 때문 만은 아니야. 이미 오래전부터 L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껴왔기 때문이야. … 어쨌든 연애(love relationship)는 절대 아름다운 방식으로 끝나지 않아. 사람들은 언제나 사랑 때문에 고통 받기 마련이야. … ”
글.김혜미
신당동 파르한의 음악소개소
1. Cigar Store - SHANK
2. YURIAH - HOTSQUALL
3. THE LAST NIGHT - SECRET 7
[Loving our small days](2010), 1
[YURIAH](2005), 1
LINE [THE LAST NIGHT](2014), 1
SHANK는 일본 나가사키를 기반으로
HOTSQUALL은 비교적 최근에 알게 된
SECRET 7 LINE도 일본의 3인조 밴드에
활동하는
처음에는
밴드이다. 기타 멜로디가 너무 마음에
관심을 가지면서 찾아 듣게 된 밴드이다.
평소 듣던 밝은 노래들과 다른 멜로디에
들고, 내가 항상 연주하고 싶었던 드럼
천천히 인트로를 시작하다가 각 악기가
큰 감흥이 없었지만, 들을 수록 엄청난
라인이 있는 곡이기 때문에 좋아하게
합쳐지며
연주력을 가진 밴드라는 걸 알게되었다.
되었다. 이제는 음악을 들을 때도 그렇고,
합이 돋보이는 곡이다. 멤버 모두 연주가
시작부터 시원하게 달리는 연주에서 3
곡을 만들 때도 드럼연주가 빠르지 않으면
뛰어나지만, 특히 곡을 받쳐주는 드러머의
명의 멤버 그 이상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심심하다고
마음에
연주가 눈에 띄었다. 사실 SECRET 7 LINE
무엇보다도 SHANK를 보면서 지방에
들 수 밖에 없었다. 이들과 같이 빠른
은 최근 사고로 베이스를 잃은 안타까운
기반을 두고있지만 전국적으로 활발한
연주를 하면서도 관객들과 함께 뛰는 것은
일이 있었기 때문에 늦게 알게 된 것이 더
활동을
정말 이상적이면서 본받고 싶은 밴드의
후회되는 밴드이다.
3인조
하고있는
멋지다고 생각했다.
밴드이다.
많은
일본밴드들이
모습이다.
느껴지기
때문에
빨라지기
때문에
멤버들의
이번달 에는 최근 관심 있게 듣고 있는 밴드 세 팀과 명곡을 각자의 스타일로 커버한 밴드 세 팀을 골라보았습니다. 요즘 들어 빠른 연주가 없는 음악은 심심하다고 느끼는 저에게 자극을 주는 곡들을 소개합니다. 신당동 파르한 (@chungchoon98)
4. Autumn Leaves (Yves Montand
5. Love Me Tender (Elvis Presley
6. . Hymn To Love (Edith Piaf cover)
cover)
Cover) - COUNTER RESET [Rabbit
- GUMX [WHAT’S BEEN UP?]
(2002), 10
Mask](2006), 7
(2003), 6
Yves Montand의 <Les Feuilles Mortes>
카운터리셋은 자작곡 뿐만 아니라 커버곡도
이 앨범은 일본 발매 후, 동일한 타이틀로
는
아주
공연에서도
한국에서도 발매되었지만 구성은 조금
가장 혁신적으로 느껴졌던 것은 바로
커버곡을 자주 들려주는데, 색깔과 깔끔한
다르다. <Hymn To Love>는 일본 발매
Hawaiian6의 펑크 버전이다. 오래된
편곡이 잘 어우러져 그 자연스러운 흐름에
앨범에만 수록되어있는 커버곡이다. 원곡을
명곡을 펑크로 커버한 음악들을 듣고
항상 감탄하게 된다. Elvis Presley외에도
모르는 상태에서 이 곡을 듣게 되었는데,
단순히 원곡을 빠르게 연주하면 될 것
Cliff Richard와 Michael Jackson과 같은
원곡을 듣고 ‘어떻게 이렇게 신나는 버전을
같았지만, 막상 편곡을 시도해보니 그렇지
뮤지션의 커버곡들과 캐롤송 리메이크를
만들 수 있을까?’ 라고 생각했다. 가장
않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에 이런 곡들이
들어보면 원래부터 카운터리셋의 노래인
처음 들었던 펑크 커버곡이고, 처음 들었던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10월에 있을
것 처럼 느껴져서 언제나 잘하고 멋있는
당시의 느낌이 잊혀지지 않아 요즘도 듣는
내한공연에서 꼭 듣고싶은 곡이기도 하다.
밴드라는 생각을 한다
순간 여전히 정말 좋은 기분이 든다.
-
수많은
Hawaiian6
커버가
[SOULS]
있었지만
나에게
잘
만드는
밴드다.
H.O.T. 데뷔 19주년 이미지 ⓒ SM 엔터테인먼트
H.O.T. the Idol
어느 흔한 팬아트 부스 이야기
1996년 9월 7일, H.O.T.가 데뷔했다. 19년 간의 아이 돌 시대의 막이 열렸다. 그리고 H.O.T.가 제시한 아이 돌의 상은 이후로도 참고, 혹은 기시감의 대상이 되었 다. 문희준, 장우혁, 토니안, 강타, 이재원 다섯 명의 키워드를 통해 각 멤버의 닮은꼴들을 찾아보았다. 당 신의 아이돌은 누구의 모델에 가까운가?
팬아트의 시작이었던 H.O.T., 만화 행사 한쪽에 기생 하며 시작해 팬 행사의 시대를 열기도 했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당시만큼 열정적이고 조직적인 흐름이 일어나지 못하는 것은, 단지 추억이 미화되었기 때문 만은 아닐 것이다. 2001년 여름 여의도 <코믹 월드> 의 어느 흔한 H.O.T. 팬아트 부스의 이야기.
http://idology.kr/5338 | 2015.09.09 | 별민
http://idology.kr/5541 | 2015.09.23 | 강동
H.O.T. 남자 팬 도시전설
2nd Listen : H.O.T. 디스코그래피
H.O.T.의 남자 팬을 봤다는 이들이 있다. 자정에 거울 앞에서 씨디를 입에 물고 이재원을 세 번 부르면 나타 나는지, “하얀 풍선 줄까, 노란 바지 줄까?” 하는지, 아 무튼 드물게나마 보았다는 이들은 꼭 있다. 지금 와서 재구성해 보면 입문하기에 어렵지만은 않았던 H.O.T. 남자 팬. 그러나 결국 19년의 세월 동안 이들은 별다 른 기록도 없이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전사의 후예’에서 ‘Outside Castle’까지, H.O.T.의 디스 코그래피 전체를 다시 들어 보았다. 1996년에서 2000 년까지 정규작 전체에 일부 주요 음반을 추가해, 아이 돌로지 필진에게 수시로 추억과 고통과 재발견을 안 겨준 H.O.T.의 전집 Re-review.
http://idology.kr/5420 | 2015.09.12 | 미묘
http://idology.kr/5557 | 2015.09.25
레드벨벳 : 새로운 인형 ⓒ SM 엔터테인먼트
아이돌에 갇혀버린 아이돌 아이돌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아이 돌은 제조된(manufactured) 것이라 영혼과 진정성이 깃들지 않았다는 믿음 때문일 것이다. 공장에서 찍혀 나오는 몰개성적인 로봇들, 누가 누구인지도 구별 안 되는 꼭두각시들, 마치 카피 & 페이스트 한 것처럼 똑 같은 아이들이 로봇과 같이 춤을 맞추는 모습은 소름 끼친다(creepy)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 표현은 해외의 케이팝 팬들이 레드벨벳의 ‘Dumb Dumb’ 뮤직비디오를 본 소감으로 가장 먼저 언급하 는 것이다. 이 뮤직비디오가 보여주는 기괴한 무한복 제와 대량생산의 이미지는 지금의 아이돌 씬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Dumb Dumb’은 아이돌 자신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아이돌의 탈을 쓰면 누구나 자아를 잃고 로봇
기계장치 소녀들은 웃는다, 웃지 않거나 레드벨벳은 언제나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레드벨벳 에게 개개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레드벨벳은 그저 레 드벨벳으로만 존재한다. 여타 아이돌 그룹들이 메인 보컬, 래퍼 등의 포지션으로 멤버를 나누거나, 혹은 예능 담당, 신비주의 담당 등 그룹 내에서의 롤에 따 라서 멤버 각각의 콘셉트가 부여될 때 레드벨벳은 그 어떤 것도 멤버들에게 부여되지 않는다. 레드벨벳에 는 메인보컬도, 래퍼도 없다. 다만 곡에 따른 ‘레드’의 콘셉트와 ‘벨벳’의 콘셉트만이 존재할 뿐이다.
춤을 추게 되지만, 레드벨벳은 누구도 생각한 적 없는 아이돌의 자아로 폭발직전의 정신세계를 노래한다.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서도 “마네킹 인형처럼 어색하 게” 행동하는 것은 레드벨벳 본인들에게도 미칠 것 같 은 일이다. 게다가 “너만 보면 바보같이 춤을” 추게 된 다니! “저 언니처럼 되고 싶은데 왜 귀엽다고만 하는 건지!” 이것은 아이돌이 아이돌 자신을 바라보는 메타 한 시선이다. 그러나 아이돌에 대한 비판이 아니다. (자아가 없는) 아이돌이 자아를 드러내는 순간이다. 아이돌이 아이돌을 노래하고 그 아이돌 노래는 다시 아이돌이 된다. 이것은 흔한 선언이나 공약이 아니다. 감각이 없는(dumb) 아이돌이 영혼을 갖게 된 것이다. 2015.09.14 | 맛있는 파히타 전문 보기 : http://idology.kr/5427
모두 함께 웃거나 아무도 웃지 않는다. 그녀들에게 감 정은 ‘기쁨’ 외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 러나 그 기쁨마저 온전히 그녀들의 감정이라 하기에 는 힘든데, 다름 아닌 그녀들의 기쁨이 막연하다는 것 에 있다. 레드벨벳의 데뷔곡 ‘행복’에서 어린 소녀들은 본인들의 행복함을 말하면서 어른들의 세계에 대한 염증을 드러낸다. 그것은 분명히 염증이다. 마치 학습 된 것처럼 웃으면서 어른들의 추방을 말한다. 그리고 레드벨벳은 무표정해진다. 누군가 스위치를 누른 것 같다. 스위치를 누르면 레드벨벳은 행복해한다. 밝게 웃는다. 그리고 다시 스위치를 누르면.
‘레드’는 행복하다. 항상 웃고 있다. ‘벨벳’은 차분하다. 레드벨벳은 표정이 없어진다. 웃지 않는다. 레드벨벳의 표정은 딱 두 가지로 정리할 2015.09.19 | 김누누 수 있다. 웃거나, 웃지 않거나. 그 속에서 누군가는 웃 고 누군가는 웃지 않는 경우란 없다. 그녀들은 언제나 전문 보기 : http://idology.kr/5496
김윤하 : "앨범을 듣는 내내 우리가 한 번쯤 마음에 품어본 걸그룹의 모습들이 수십 가지 무지갯빛 레이어로 흩어진다. 핑클부터 이어져 내려온 DSP 특유의 K-프렌들리한 아이돌 감성이 더할 나위 없는 안 정감을 선사하는 사이 황성제, 남기상, 이주형 등 '상큼계' 작곡가들이 조율해 놓은 사랑스러움이 앨범 전체를 감싸 안는다. 이 앨범의 가장 큰 특징이라면 정교하게 구성되거나 이미지화된 ‘소녀’가 아닌, 정말 ‘소녀’들이 부르는 노래라는 감각이 무척 가깝게 다가온다는 점인데, 타이틀곡 ‘꿈사탕’은 그런 의미에서 지난 8월에 들었던 가장 훌륭한 싱글 가운데 하나였다.
에이프릴 - Dreaming DSP 미디어 2015년 8월 24일
에이프릴 - “꿈사탕” https://youtu.be/OyBqE2SL2ac
돌돌말링 : '꿈사탕'은 그동안 DSP 아이돌에게 많은 곡을 제공하며 특 유의 예쁘고 무해한 이미지를 만들어온 황성제 사단(Butterfly)의 작 품이다. SS501의 'Snow Prince'나 카라의 'Jet Coaster Love'가 그랬듯 DSP돌+황성제= '첫만남의 달뜬 설렘'이란 공식은, DSP가 가장 잘하 는 것이란 점에서 첫발부터 필승 카드를 꺼낸 게 아닌가 싶다. 안전한 느낌이다. 유제상 : '꿈사탕'의 경우 이 곡과 관련된 모든 구성요소들이 실로 아 이돌의 전형을 그대로 오려내어 붙인 그런 것들로 가득 차 있다. 너무 정직한 내용물들뿐이라 오히려 놀림거리가 될 수도 있을 정도(중학교 동창이 멤버들에게 찾아가 팔을 높이 들고 "빠라빠빠 빠라빠빠"라고 외친다면?). 이런 전형성으로 인해 같은 계열의 여성 그룹과 비교하 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곡이 (특히 후렴구 가) 인상 깊으니 계속 기억에 남는 것은 플러스. 아마 이후에 다른 곡 들을 발표하면서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가리라 본다.
김영대 : 'Congratulations'는 분명 올해 하반기 최고의 트랙 중 하나 다. 다소 평이하게도 들릴 수 있는 익숙한 곡 구성이 멀티 리드 보컬 편성으로 완전하게 해소되었다. 기본적인 접근의 차이만 있을 뿐 그 냥 훌륭한 아이돌 팝인 '버릇이 됐어', 솔루션스 나루의 센스 있는 음 악성이 결정적으로 빛을 발하는 'Free하게' 모두 특별한 흠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탄탄한 트랙들이다. 멤버들의 목소리가 아주 따로 놀지 도, 또 그렇다고 아주 변별이 없는 것도 아닌 균형점을 보컬 어레인지 의 측면에서 탁월하게 잡아냈다. 연주와 작곡을 하는 아이돌 밴드라 는 진정성 싸움이 상업적 속임수가 아님을 증명하는 것은 결코 간단 한 일이 아닐 테지만, 적어도 음악만을 놓고 본다면 유쾌한 출발이다.
데이식스 - The Day JYP 엔터테인먼트 2015년 9월 7일
데이식스 - “Congratulations” https://youtu.be/x3sFsHrUyLQ
맛있는 파히타 : 눈이 번쩍 뜨였다. JYP라는 이름이 떠올리는 모든 것 들을 걷어내고 기본으로 돌아가서 쌓아올린 느낌이다. 충실한 팝-록 적인 기조로 엮어진 앨범을 전체적으로 들어보면 이들이 음악방송을 포기하고 외부에서 프로모션하고 있는 이유를 알 것도 같다. 특히 타 이틀곡 'Congratulations'는 젊음을 꿈꾸고 동경하는 이들의 젊음이 아니라 젊음을 헤쳐가고 있는 이들 자신의 젊음, 그 에너지 자체를 폭 발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절대로 놓쳐서는 안되는 트랙. 미묘 : 형식으로서 케이팝 아이돌은 밴드 포맷과 조화되기 어려운 부 분들이 많이 있는데, 이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엿보인다. 록 밴드 아 이돌임에도 몇 가지 요소만 대체하면 JYP 엔터테인먼트의 다른 팀 발 매곡들과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필요하다면 댄스 음악 방향으로 나 아가는 것도 주저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악기 연주의 '손맛' 역시 놓 치지 않는 것이 이 밴드 아이돌의 설득력을 한층 증폭시킨다. 밴드가 연주했을 때의 다이내믹과 현장감을 기분 좋게 보장하면서도 팝적인 세련미를 담보하는 곡들과, 이를 아이돌적으로 소화해낼 수 있는 섬 세한 배려. JYP의 매력과 노하우가 전력 집결돼 있다
돌돌말링 : 최근 대인원 신인 그룹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는데, 세 븐틴은 그중 단연 돋보인다. 생각해 보면 플레디스야 말로 애프터스 쿨을 통해 대인원 그룹 노하우를 착실하게 쌓아온, '아무나 할 수 없 는' 프로젝트를 꾸준히 해온 회사다. 전작보다 상쾌한 느낌을 강조한 메이저 후렴구의 F-E-Am-(B♭sus2)-C 코드 위에 "잠깐 소녀야!" 하고 호명하는 가사를 펼쳐놓은 센스에 반했다.
세븐틴 - Boys Be 플레디스 2015년 9월 10일
세븐틴 - “만세” https://youtu.be/9M7k9ZV67c0
맛있는 파히타 :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노래는 젊은 에너 지와 재기발랄함으로 가득하고, 학교라는 배경에서 다양한 캐릭터들 은 장르적 상상력으로 이끈다. 이것이 아이돌이라는 장르의 기본이고 통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앨범 전체를 살펴보면 뒤에서 힘에 부치 는 느낌은 있지만 마찬가지로 버라이어티한 구색맞춤이 있어서 공히 아이돌적인 진정성이 느껴진다고 말할 만하다. 별민 : 오랫동안 아이돌 보이그룹을 좋아해 온 사람이라면 이런 '종합 선물세트'를 받아들고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화면을 가 득 채우고 "소녀야"를 외치는 소년들은 그저 소녀와의 눈 맞춤 하나 만을 바라는 눈빛으로 카메라를 간절히 응시한다. 가사부터 안무까지, 헤어스타일부터 의상에 붙어 있는 이름표까지, 모든 것이 소녀를 위 한 연가를 훌륭히 불러내는 데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특히 돋보이 는 것은 바로 이 대인원을 컨트롤하는 전략이다. 세븐틴은 그 모티브 를 뮤지컬 등에서 가져오는 듯, 인원수보다는 전체적인 그림에 집중 한다. 그 결과, 누가 보더라도 흥미진진하고 시각적 쾌감이 느껴지는 퍼포먼스를 독보적인 강점으로 갖게 되었다. 신인치고는 물론이고, 여타 기성 인기 아이돌과 비교했을 때도 충분히 대적할 만한 꽤나 큰 무기를 얻은 셈이다. 누나지만 너라고 불러줘도 괜찮아요. 김영대 : 발라드는 전문 작곡가도 클리셰를 피해가기가 어려운 법인 데, ‘하루의 끝’에는 이상하게도 진부하다고 여겨질 만한 곳이 적다. 예상 가능한 곳에서는 살짝 비틀어지고, 또 과한 곳에서는 적절하게 조절할 줄 아는 것은 배움보다는 타고난 센스 때문일 것이다. 창법 면 에서 감정의 굴곡이 지나치다는 느낌은 있으나 결코 고루하지 않은 테크닉으로 훑어낸다. '산하엽'은 한술 더 떠서 운신의 폭이 거의 없 다시피 한 마이너 화성에 신기하리만치 개성 있는 멜로디로 대응한 다. 이번 앨범에서도 여전히 건재한, 그간 주력으로 삼아온 레트로 소 울이나 훵키 넘버들을 제외하고 이 두 곡만으로도 이 앨범은 충분히 들어볼 가치가 있다.
종현 - 소품집 “이야기 Op.1” SM 엔터테인먼트 2015년 9월 17일
종현 - “하루 끝” https://youtu.be/wGP-gfCWXYI
김윤하 : 정규 앨범이 지닌 완성도나 응집력에 비하면 다소 헐거운 것 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바꿔 말하면 종현이 그만큼 다양한 분위기와 멜로디, 비트를 자유자재로 매만질 수 있는 싱어송라이터라는 뜻이기 도 하다. 특히 ‘산하엽’에서 ‘Happy Birthday’, ‘미안해’로 이어지는 축 축하고 어두운 무드의 삼연작은 발라드, 재즈, R&B 등 각 장르를 넘 나들며 종현의 보컬이 가진 가장 돋보이는 부분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춘다. 종현 특유의 극적이고 과장된 표현 방식이 부담스러웠던 이 들이라도 이 정도라면 납득할 수 있지 않을까. 가능하다면 깊은 밤, 어두운 방 안에서 이어폰을 사용해 들어보기를 권한다. 별민 : 특정 장소와 시간에 꼭 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앨범. 필자의 경우에는 그게 늦은 저녁 집에 가기 전 잠깐 멈춰선 작은 스 탠딩 카페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또 다른 새로운 영감을 주고 상상 을 하게 하는 훌륭한 작품. 단순히 들을 사람을 의식하고, 들을 사람 을 만족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앨범이 아닌, 듣는 사람을 배려해주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앨범. 어쩌면 우리는 꽤 근사한 뮤지션의 탄생과 성장을 지켜보고 있는 중일지도 모르겠다.
의미없는 이야기 글. 그림. 철민
하태범, <쓰나미>, 2012, 120x180cm
White - 하태범 작가의 글 중에서 나의 작업은 사건 사고를 다룬 뉴스의 사진 자료를 수집하는 데부터 시작한다. 이 이미지들은 대부분 분쟁 지역이나 재해를 다룬 사진들로 파괴된 건물과 잔해 등 폐허의 모습을 담고 있다. 여기서 몇몇 사진을 골라 실제와 최대한 가깝게 모형으로 제작한 후 다시 평면의 사진으로 보여주게 된다. 모형으로 만들 때는 작은 사진의 이미지로 인해 묘사하는 데 한계가 있다. 그 외에도 사진에 나오는 인물을 삭제하면서 보이지 않게 되는 부분에 대한 표현의 문제와 축소된 형태로 제작하면서 생기는 표현의 한계 때문에 생략과 단순화된 묘사가 이뤄진다. 여기에 실제 당시 상황의 긴박함을 느낄 수 있던 화재의 흔적이나 혈흔은 색채와 함께 제거되고 무채색의 하얀 단색으로 완성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모형이 사진으로 확대되고 드러날 때, 전체적인 이미지는 실제 보도사진과 닮은 형태와 구도를 가지고 있으나 생략된 표현과 무채색의 이미지는 감정이 배제된 물성만이 남아있는 모호한 허구의 형태만을 보여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상황에 대한 고발이나 입장의 전달보다는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대한 물음이다. 실제 사건 현장을 담은 사진은 비록 진실을 전달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마치 허구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관객의 입장과 같지 않을까? 내 작업에서 표현의 부재와 단순화는 우리가 대상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의 여과, 혹은 냉정함이라 할 수 있겠다.
Texture 작가는 사건을 백색으로 탈색시키는 작업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리얼리티의 본질을 깨닫고 공유하려 한다. 축소된 형태로 제작되면서 생기는 표현의 한계로 묘사가 단순화되고, 당시 상황의 긴박함을 간직한 화재 흔적과 혈흔도 탈색된다. 텍스트와 달리 이미지는 다양하게 해석된다. 묘사가 생략된 백색 사진들 앞에 서자 나는 문 듯 친근한 느낌이 일었다. 간결하게 부서진 미니어처는 훌륭한 인테리어 소품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White’는 나를 가치판단의 중립 지대에 머물게 하지 못했고, 물신성을 자극했다. 이것은 작가가 말한 냉정함의 유지와는 달리 가치판단이 뜨겁게 작용한 것이다. 화제 흔적과 혈흔은 보도의 자극성을 위한 장식이 아니다. 흔적은 당시 기억을 보관하는 장소로서 기능한다. 그것이 삭제되는 순간 내밀한 기억도 함께 사라진다. 정작 문제시되는 것은 무엇을 찍고 무엇을 찍지 않을지에 대한 편집의 권한에 있다. 흔적 그자체가 아닌 객관성을 빙자한 대상과의 거리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하지만 ‘White’에서는 보도 당시의 구도를 그대로 따라간다. 흔적은 없지만 이 차가운 시선 역시 누군가의 의견이 아니었던가.
하태범, <연평도>, 2011, 180x128cm
Stigmata ⑴멜
깁슨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뜨겁다. 이 영화는 예수 처형 직전의 24시간을 배경으로 한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관객에게 성서의 추상적 문자열을 생생한 시각적 현상으로 체험하게 해준다. 성서의 기록은 싱거울 정도로 간략하다. “예수는 채찍질하고”, “때려서 놓으리라”, “예수를 데려다가 채찍질하더라”. 이 추상적 언어가 영화에서는 참혹할 정도의 구체성을 얻는다. 카메라는 로마 병정의 채찍이 예수의 등에 닿는 순간을 클로즈업하고, 채찍 끝에 달린 고리에 예수의 살이 찢겨나가는 모습을 그대로 노출한다. 시각적 뜨거움은 곧 신체에 가하는 촉각적 쇼크로 화한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관객의 신체에 충격을 주어 예수의 고통을 전하고, 관객의 영혼에 상처를 주어 ‘성흔’(Stigmata)을 남기려 한다. ‘성흔’은 대상과의 거리가 확보된 관조적 시각으로는 획득할 수 없는 환기성을 가진다.
Imagine 보도자료는 보통 동어반복(tautology)적 구조를 가진다. 객관성을 가장한 도상 위에, 다시 한 번 그것을 설명하는 텍스트가 더해진다. 맥루언의 말대로 정보의 밀도(해상도)가 높으면 관객의 참여도(상상력)가 떨어진다. 이것은 예술에도 오롯이 적용되는데, 사실적으로 재현한 그림일수록 관객의 참여도가 떨어진다. 반대로 추상화에서는 관객의 참여를 적극적으로 요청한다. ‘White’는 관람객에게 사건에 대한 판단 유보라는 숙제를 던진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는 할리우드식 영화 문법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자극적 이미지에 훈육된 현대인에게 순백의 도상은 감정의 여과가 아닌 자신의 취향을 비추는 거울이 된다. 디자인된 표면을 벗겨내 제품의 투명함을 전략으로 삼은 ‘제로 디자인 영역’ 역시 얼마 못 가 타인과의 차이를 위한 지적 장식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탈장식과 흰색은 더 이상 중립성의 표상이 아니다. 내게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기 위한 시작점은 차가운 관조가 아니다. 그것은 공포를 동반한 촉각적 쇼크를 통해서만 미동한다. 문제는 흔적의 자극성이 아니라 어중간한 거리에 있다.
⑴ 진중권의 이매진, [영상의 스티그마타]
clichecliche@naver.com
Road - 10 (능사) 글. exxx
그동안 요리를 하는 수고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했는데, 반대로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지를 이야기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아서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음식과 관련된 개괄은 사실 별 것 없다고 생각한다. 같은 이야기를 이리돌리고 저리돌려서 표현할 뿐, 핵심은 딱 3가지 정도 뿐이다.
1. 먹을것이 누구나 있어야 하고 2. 먹을 만큼만 해서 버리지 말고, 3. 조리는 함께 하고, 3. 어떤 것들은 사다먹자.
이 네가지 이야기 정도로 음식과 관련된 개괄은 정리될 수 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런 생각이 발전하다 보니 어느 순간에는 그냥 다 사다먹자는 이야기 흔히 집밥 무용론으로 까지 정리되곤 하는것 같다. 물론 앞으로 모든 것을 사먹는 미래가 당장 오지는 않을 것 같지만 그래도 무조건 사다먹자는 결론으로 치닫는 이야기만큼은 꼭 한번 짚어줘야 할 것 같아서 오늘 글을 적기로 했다. (능사가 아니라는 말이다!)
아궁이 앞에 앉아서 전통을 지키며 전을 지지거나 바닥을 긁어가면서 밥을 하자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집밥이 사먹는 것보다 훨씬 영양가가 있다거나 하는 그런 종류의 이야기도 아니다. 사실 안이나 밖이나 조리법이 똑같다면 사먹나 해먹나 그게 별 차이가 있을까? 집에서 태양초 고추장에 사카린을 넣어서 떡볶이를 하나, 밖에서 하나 마찬가지 아닌가? (사카린이 해롭다는 말은 아니다. 사카린은 이미 안전식품으로 판명되었다.) 물론, 가족을 먹인다는 목적에 따라 더 나은 재료를 쓴다거나 위생에 신경을 쓴다거나 하는 차이가 집밥의 기능적 우위를 만들어내기는 하지만, 재료와 조리법이 똑같다면 덜 수고롭게 사먹는게 낫지 않느냐는 이야기가 뻗어나가 “ 그냥 아무도 괴롭히지말고 밖에 나가 사먹자.”는 말에 대한 글이다.
시작은 얼추 짚은 것 같다. 그러니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사람 살아서 무엇하나?’ 이다.
시간 노력 아끼고 아껴서 행복에 쓴다고 할지 모르겠다. 솔직히 그것도 틀린 말은 아니다. 각자 행복한 것이 많으니. 그런데 생각보다 인생은 길고 그 시간동안 이것저것 해보는 것도 좋지
않겠냐 이말이다. 인생이 다채롭고 할 것이 많은 것 같지만 생존과 관련해서는 대부분 의식주 3가지 안에서 결판이 난다. 그 중 옷은 이미 만들어 입는 사람도 없고 기워입는 사람도 없고 사고 또 사다 못해 헤지기 전에 버리는 상황까지 왔다. 같은 옷을 계속 입어도 외부 오염물로 인해 오염되는 위생의 문제가 아니고서야 딱히 건강에 문제도 일어나지 않는다. 체온을 적당히 맞춰주고 개인의 마음을 으쓱하게 해주는 정도면 옷으로 인해 생의 곤란함을 겪을 여지도 없다. 오염된 원단을 몸에 꽉 붙여 오염물이 피부로 들어오거나 옷이 꽉끼어 혈액순환에 방해가 되지 않는 정도면 괜찮으니 외주 준다고 큰 사고가 터질 위험도 적다. 그러니 정말로 안전하게 조리된다는 보장만 있다면 옷도 다 외주 줬는데 밥이라고 못주겠나? 할 수도 있다. 그러면 옷도 외주주고 밥도 외주주고 남는 것 집인데, 이건 뭐 진작에 외주주지 않았는가. 자 그럼 남는게 뭐가 있을까?
좀 쓸쓸하지 않은가? 이말이다. 나는 지금 전형적으로 감성에 기대 호소하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 흙흙. plz
원했는지 원하지 않았는지는 모르겠지만 기껏 언어체계와 지식을 습득, 전파하는 능력을 가진 인간으로 태어나 살아가면서 문화라는 것을 다양하게 습득하고 재현하면서 즐겁게 사는게 더 좋지 않을까? 하는 말이다. 물론 자신이 요리에 잼병이고 해도 늘지 않고 자기혐오만 쌓인다면 그만두는 것이 맞다.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라면 다른 것을 하면된다. 스스로의 행복을 갉아먹고 불행을 증폭시키면서까지 뭔가에 투신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그정도의 스트레스가 아니라면 이런 저런 문화의 유산을 가능한 범위에서 받아들이고 재현 발전 시켜보는 것도 사는 재미가 아닐까? 이것을 단순히 효율의 측면에서 이야기한다면 너무 각박하지 않은가.
문화라는 것이 언젠가부터 문화 상품에 가까운 것들만 문화로 이야기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사람이 지나간 길은 다 문화가 아닐까? 물론 범죄도 있을 것이고 철학도 있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이 다 긍정적일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고르고 좋은 것들을 향유하거나 전파하며 살아갈 수 있는 시간과 능력이 있다.
나는 남녀를 떠나 요리를 배우고 생각하고 나누며 사는 삶은 각자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요리를 즐겼으면 좋겠다. 물론 나의 글이 그 높은 이상을 정확하게 가리키거나 많은 분들을 감화시키지 못하더라도 나의 바람은 그렇다. 그러니까 요리할 시간이 없다는 불만 보다는 왜 없는지를 먼저 해결해야 하는것 아닐까? 저녁있는 삶. 나눔이 있는 삶. 그곳이 과녁이다. 요리가 싫다면 그때는 춤을 춰도 좋고 책을 읽어도 좋다. 물론 잠을 자도 좋다. 우리의 시간에 여백이 없음을 탓하자.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