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 입니다.
한 해 인사 ! / 글. 모든 필진 Where did you sleep last night? / 글. 사진. 아홉시 영화로 읽는 시공간 - 검은 사제들 / 글. 곡주대비 나의현대예술순례 - 05. ‘Before & After 1900’ 공연 객석에 앉아 / 글. 사진. 황정운 작곡가 B의 노트 - 콩쿠르, 그 이후 / 글. Composer B 옆사람 인터뷰 - 09. 제감독 / 글. 정리. 이내 택시를 탔다 - 04. ‘택시기사라고 다 못배운 사람들은 아닙니다.’ / 글. 사진. 고수진 의미 없는 이야기 / 그림. 글. 철민 idology - review 건축이 좋아 - 25. “Happy X-mies!” / 글. 사진. aoikasa 경계인 - 1화 / 글. 스푸트니크 Daily Archive - 뷰 – 티풀! (bea-u-ti ful!; bju-ri-fl!) / 글. 모음. 김혜미 Road - 12. 셈 / 글. exxx
** 식물의 분류나 생태, 인간 관련 의학, 퀴어 관련, 무속, 종교, 음악, 소설 이나 시와 같은 문학 관련, 사진, 일러스트 혹은 적어놓은 것 이외에도 무언가를 꾸준히 기고하실 분들은 언제든 exxx2x@gmail.com 으로 문의주세요. 정말 친절히 안내해 드리고 있습니다. **
안녕하십니까? 드디어 60회 월간지가 60회면 환갑이죠. 60번을 태어난 셈인데.. 세상일이 이렇습니다. 안될 것 같은 일이 되는 순간이 옵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관절이 물러지고 이가 부숴지고 피부가 탄력을 잃죠. 잡지에 는 생각만 담아서 여기까지 왔는데, 살아있는 것보다 더 낡은것이 아닌가 싶어 문 득, 부끄럽습니다. 저는 계절마다 취미를 돌려가면서 씁니다. 책을 읽는 계절이 있고 영화나 드라마 를 보는 계절이 있고 음악을 듣는 계절이 있습니다. 요즘은 음악을 조금 열심히 듣 고 있습니다. 그럴 듯한 mp3 플레이어를 구입하기도 했고요. 돌아보면 한 일은 없 지만 딱히 슬프거나 우울하게 보낸 일은 없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 요? 지나온 계절동안 즐겁게 보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아쉬움이 남는다면 남은 연말이라도 불태우시길 기원합니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구석을 바라보고 궁금증을 가지고 손을 걷어 부칠 수 있는 힘과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잡지가 되어보도록 하겠습니다. 모르는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지만, 일단 월간이리는 예술잡지 입니다. 예술이라면 모름지기 다양한 방향성과 왕성한 호기심, 끈질긴 문제제기가 있어야 겠죠. 저와 저희 필진들이 지치지 않도록 페이스 북에 놀러오셔서 좋아요도 눌러주시고 사람 들에게 알려주시고 하면 감사드리겠습니다. 항상 여러분의 참여를 기다리는 월간이리에서 60회 감사인사 드리며 이만 물러 갑니다.
월간이리 exxx 드림
공식트위터 @postyri
월간이리에서 고딕체로 2015년 한 해 술회 겸 인사 드리옵니다. (순서는 Ctrl-C 순)
아이돌로지 2014년에 창간했으니 어쨌거나 무사히 2년차를 치르고 있다. 국내 최초의 아이돌인 H.O.T. 스페셜과 국내 최장수 아 이돌인 신화 스페셜, 걸그룹 신경향 정리, 그리고 미국에서 열리는 케이팝 페스티벌인 KCON 취재 등이 올해의 주요 기 사였다고 할 수 있겠다. 이만하면 괜찮았다고 생각하는데, 아이돌 음악을 진지하게 다루는 매체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 겠다. 내년에는 그런 특수성을 배제하고도 훌륭한 매체로 자리매김하고 싶다. 아이돌 20주년인만큼 보다 굵직한 기획 들을 준비 중이다.
스푸트니크 안녕하세요. 2016년이 다 지나가는 끝자락에, ‘경계인’이라는 제목으로 월간이리에 첫 연재를 하게된 ‘스푸트니크’라고 합니다. ‘스푸트니크’는 아시다시피 세계최초 인공위성의 이름이었고, 러시아로 ‘동반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꿈 에서 존레논이 밴드이름으로 점지해주어, 난해한 발음에도 닉네임으로 쓰고 있죠. 상수동주민이라서 이리까페엔 음악작 업을 하러 종종 갑니다. 11월의 어느 날, 월간이리 잡지를 보다가 새로운 작가를 모집하는 것을 보고, 이렇게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일기를 넘어선 글을 쓰는 것은 팬사이트에서 앨범리뷰를 쓴 이후 처음입니다^^; 쓰는 김에 유용한 정 보를 공유한다거나, 독자에게 세상의 다양한 인간군상에 대한 이해를 1인치라도 넓혀준다면, 더 없이 좋겠습니다. 혹시 나 자신이 생각하는 경계인의 전형이라던가, 자신의 그런 순간들을 나누고 싶은 독자분이 계시다면 제 메일(salomet@ naver.com)로 보내주세요.그 생각을 지면을 나누어 소개하고도 싶습니다.
김혜미 얼마 전부터 시도때도 없이 시동 디스크가 거의 다 찼다는 경고창이 뜨는 바람에 노트북 정리를 했다. 필요없는 내용물을 모조리 삭제할 요량으로 저장되어 있는 모든 파일, 사진, 영화 등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이 컴퓨터를 산지 3년 정도 됬으 니 3년치 역사가 저장되어 있는 셈이었다. 나는 거의 천장이 넘는 사진들과 백여개 정도의 문서들을 삭제했다. 보통 잊어 버리거나 잊혀지는 것이 두려워서 모아두고 기록해온 것들이었다. 정리를 마치고 생각해보니 단순한 기계 문제 때문에 그동안 쌓아온 과거의 내용들을 삭제한 것 같아 조금 후회가 되었다. 언젠가 친구에게 나는 아주 과거지향적(nostalgic) 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친구는 그 이유가 내가 기억력이 좋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땐 우스갯소리로 그렇게 말했는 데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또 내가 기억력이 좋지 않은 이유는 기록하는 습관 때문이라고 했다. 기억하기 위해 하는 일 이 오히려 기억력을 감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기록에 의존하지 말고 스스로 기억을 되새기는 연습을 해보라고 했다. 기억 연습. 올해가 가기 전에 올해의 사건들을 기억해보는 연습을 열심히 해볼것이다.
곡주대비 다사다난을 실시간으로 체험 하게 했던 징글징글한 2015년 이었습니다. 개인사로도 정세로도 나중에 떠올릴까 싶은 한 해였지만 애잔한 마음으로 회상할수 있는 좀 더 “나은” 새해가 오길 바랍니다. 제발.
고수진 2016년은 별 탈 없이 보내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좀 더 단단해졌으면 좋겠습니다.내년 겨울에는 일을 정리 하고 여행을 다니고 싶습니다. 꿈같은 이야기이지만ㅜㅜ 한 해 한 해 인터넷에는 힘겨운 소식들만 늘어가는 것 같아요. 힘내요, 우리 30대를 잘 넘겨 봐요.
이내 성숙한 한 해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지나고 보니 열두 달은 나라는 사람이 성숙하기에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래도 월 간이리를 만나고 좋은 사람들을 만났으니 훈훈한 마음으로 마지막 달을 보냅니다. 여전히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반대합 니다.
황정운 나의현대예술을 순례한다면서 나 자신만을 순례한 기분입니다. 내가 쓰는 글은 당신이 읽어주었으면 하는 나의 또 다른 그림자입니다. 앞으로도 여러 개의 그림자가 겹쳐 나가길 소원합니다.
Aoikasa 2015년, 참 힘들게 힘겹게 지나갑니다. 올 해 초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떤 꿈을 꿨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한 해동안 개 인적으로 벌어진 어려운 일들, 그리고 국가적으로 벌어진 가슴 아픈 일들에 그저 이 연말 먹먹한 가슴 뿐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시간을 또 버텨내어야 하겠죠. 이번 달 원고에 쓴 것처럼 이 모든 것들을 잘 메꾸고 잘 감싸안아야 Less is More의 아름다움을 정말 깨닫는 날이 오겠지요. 한 역사학자분께서 그러시더군요. 우리 이제 할 일 정말 많다고. 교과서도 다시 써야 하고(국정에 맞서서), 공부도 더 많이 해야 하고, 연구도 더 많이 해야 한다고. 내년에는 부디 더 단 단해진 마음으로 더 많이 공부하고 더 많이 연구하고 더 많이 나누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들 건강하세요.” 올 한 해도 고마웠어요 여느 때보다 더 먹먹한 마음의 한 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다들 더 힘내야겠죠. 건강하세요.
김철민 올해목표는 치과진료 일시불. 하지만 2년차 직장인 월급으로는 무리였다. 내년에는 인센티브 대박을 기대해본다. 그돈 으로 독립출판에 도전.
Composer B 개인적으로는 이룬 것도 많았고, 아쉬운 것도 많았던 한 해였습니다. 사실 연말연시라는 게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나눠놓 은 기준이다보니 이런 후회를 한들 무엇하며, 각오를 세우는 것 또한 참 새삼스럽단 생각도 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 이 험한 세상에서 각자 도생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자는 의미로 인사는 나누고 삽시다. 남은 날들, 힘빼고 지냅 시다. 그리고 앞으로 올 날들, 힘 빼고 맞아봅시다.
exxx - 올해 음원 수입으로 한 만원은 번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내년에는 팀으로 컴백할께요!
이강희 - 저는 패스할께요. 배타고 이동해요.
이주용 - 60회 축하합니다. 편집자님 참여해주신 작가분들 한 해 마무리 잘 하십시오. 월간이리 좋은 독립잡지 입니다.
영 화 로
오컬트 장르는 필자가 가장 열광하는 장르 중 하나다. 희대의 걸작, 엑소시스트 (Exorcist, William Friedkin, 1973), 오멘 시리즈 (Omen, Richard Donner, 1976) 와 엔젤하트 (Angel Heart, Alan Parker, 1987), 그리고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b-급 오컬트 영화들까지 오컬트 영 화들은 항상 심장을 뛰게 만든다.
보 는
카톨릭 집약적인 배경이 국내 장르로 토착화 되기 힘든 요소였는지 한국에서는 전무 하다시피 했던 이 장르가 검은 사제들 이라는 작품으로 극장에 걸렸다. 이 영화의 감상 평을 쓰기 전 기
시 공 간
자 시사에서 나온 평들을 몇 개 읽어 보았는데 ‘나쁘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만 껄끄러운 것은 대부분의 평들에 “~치고는” 이라는 꼬리표가 붙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장편 데뷔 감 독 치고는,” “한국에서 처음 시도된 장르 치고는,” 등등. 아쉽게도 필자 역시 선평들과 뜻을 함께 한다. 좋게 말해 나쁘지 않지만 안타깝게도 앞 서 언 급된 꼬리표들을 떼고 ‘나쁘지 않다’라고 평하기는 힘들다. 감독의 첫 장편 치고는, 그야 말로, 나쁘지 않다. 일단 ‘나쁘지 않았던 점’으로, 검은 사제들은 공간의 활용이 뛰어난 영화다. 이를 테면, 강동원 캐릭터가 귀신 들린 돼지를 안고 뛰어다니던 명동 시퀜스가 그러하다. 명동이라는 누구나 아 는 중심가의 작은 골목들을 후벼내듯 찾아내어 내실 있게 이용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명 동을 쓸어 내리는 네온 사인들 그리고 누구나 알만한 상점들과 그 사이사이를 가르는, 문자 그 대로 ‘귀신 나올 것’ 같은 작은 골목들이 주는 이질감이 그것이다. 그 어둑한 골목 구석 어딘가 에서 이루어졌던 굿판과 사제들의 퇴마 의식의 공존이 주는 이질감과 비슷한 효과라고 볼 수 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영화에서 재현되는 명동 성당은 익숙히 보던 그 명동 성당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의 비주얼을 연출한다. 서양의 웅장한 성당들처럼 크지 않은 약점을 조밀한 디테일로 충당했다고 보여지는데 가령 강동원 캐릭터가 소포를 받으러 가는 시퀜스에서 그가 성당을 돌아볼 때 스 타카토 처럼 보여지는 일련의 공간들 – 기둥, 스테인드 글라스, 어린 사제들이 플래카드를 만 들던 지하 작업실 – 은 등장인물의 동선으로 연결되는 장소들이 아닐지라도 성당이라는 미궁, 즉 미스터리가 태동하는 곳으로서의 묘한 잠재력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글. 곡주대비
그렇다면, 왜 검은 사제들은 ‘조건부’ 나쁘지 않은 영화로 밖에 평가 될 수 밖에 없는가. 이 영화 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장르적인 변주의 부재다. 장르영화에서 그리고 대기업 (CJ Entertainment) 이 배급하는 상업영화 에서 특별한 변주를 기대한다는 것은 과욕일수 있으나 검은 사 제들에서 캐릭터와 갈등의 설정 등은 엑소시스트나 다른 성공한 선례의 오컬트 영화들로부터 차별성이 보이지 않는다. 일단 인물 설정을 예로 들어보자. 김윤석이 연기하는 김신부는 흔히 할리우드 영화들에서 보아왔던 ‘비주류 신부’; 예를 들어 술,담배를 일삼지만 고아들을 자식처 럼 아끼는 인간적인 로버트 드니로의 Father Bobby (슬리퍼스: Sleepers, Barry Levinson, 1996) 와 많은 면에서 교차된다. 김신부와 그의 새로운 예식 보조 최부제가 악령을 처치하는 설정도 엑소시스트와 흡사하다. 영 신의 몸에서 악령을 끌어낸 후 돼지의 몸에 넣고 본인을 희생하여 한강으로 뛰어드는 최부제는 엑소시스트에서 카라스 신부가 귀신을 없애기 위해서 창문 밖으로 뛰어드는 것과 같은 설정이 다 (둘 다 죽지는 않는다). 사실상 영화의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예식의 날 (소녀 몸 안의 악 령을 몰아내는 의식을 하는 날) 전체의 설정, 심지어 방의 구조와 침대의 위치까지 엑소시스트 와 상당 부분 유사하다. 소녀 역을 맡은 박소담 이라는 신인 배우의 연기력은 칭찬 받아야 마땅 하지만 린다 블레어를 카피하는 데만 그친 클라이맥스 장면은 안타깝다. 오컬트 장르에서 악 령과 싸우는 부분이 중추인 만큼 감독의 창의력이 조금 더 요구 되는 부분이었다. 지난 국내영화들 중에서, 한국형 *** 라고 레이블 된 몇 가지 영화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한 국형 블록버스터’ ‘한국형 재난영화,’ ‘한국형 오컬트 영화’ 까지 이 영화들의 공통점 중 하나 는 전체적인 완성도는 아쉽지만 한국에서 시도 된 것만으로 면제부를 주는 평 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한국형 블록버스터’ 같은 경우 쉬리가 개봉했을 때 만들어진 용어였는데 1998년이 라는 당시 시대성, 즉 군부가 끝나고 얼마 되지 않아 영화계가 기사회생 할 수 있었던 상황에 만들어진 작품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그러한 면제부는 충분히 납득이 간다. 하지만 2015년 한 국에서 제작된 문화콘텐츠 들이 국가 수입원이 된 상황을 고려하면 이야기가 다르다. 헐리우 드 영화를 한국 판으로 흉내 내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 해야 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다시 검은 사제들로 돌아와서 영화가 ‘나쁘지 않았다’면 지루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최악을 면 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감독의 연출력이든 연기력이든 공헌이 있었을 것이다. 다만, ‘한국에 서 처음 시도된 것’ 이라는 자유당 시절 명목의 레이블은 제발 달지 말자.
검은 사제들
나의현대예술순례 #05 ‘Before & After 1900’ 공연 객석에 앉아
글. 황정운 1_ 영화 <The Pianist> 엔딩 장면. 나치의 홀로코스트 속에서도 극적으로 살아남은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은 오케스트라와 함께 쇼팽의 화려한 대 폴로네이즈 Op.22를 협연한다. 영화 후반부 폐가에서 독일군 장교에게 발각되어 쇼팽의 발라드 1번을 연주할 때의 숨막히는 긴장감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지만,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다시 피아니스트 본연의 자리에서 연주하는 이 순간도 인상 깊은 장면이다. 인간의 본질을 상실하기 쉬운 시대에도 끝까지 음악을 계속한다는 숭고함을 담담한 표정으로 멋지게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폴로네이즈를 연주하는 스필만의 손을 비추며 엔딩 크레딧이 흘러간다. 피아노는 역시 저렇게 건반을 두드려서 연주하는 악기다. 피아노 음악은 두드려 만들어내는 예술인 것이다. 비록 같은 폴로네이즈 곡은 아니었지만 이번에 쇼팽 국제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 군의 결승 영상이 떠올랐다. (조성진이 연주한 곡은 폴로네이즈 Op.53) 조성진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등장했던 수많은 스타들의 영상이 생각났다. 2005년 같은 대회에서 공동 3위를 수상한 임동민, 임동혁 형제, 차이코프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2위를 수상한 손열음, 젊은 남성 피아니스트의 선두주자인 김선욱까지. Youtube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이들의 연주는 주로 연주자의 표정에 시선이 향한다. 연주의 하이라이트를 향해가며 이들의 표정은 시시각각 바뀐다. 표정만이 아니다. 고개를 흔들고 몸이 들썩인다. 억지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는 것과 감상하는 것이 분리된 회화와 달리 음악은 작가와 관객이 예술의 창조 순간을 함께 공유한다. 더구나 같은 비언어적 표현이지만 눈으로 보는 것보다 귀로 듣는 것은 훨씬 직접적이기 때문에, 표현하는 이나 듣는 이 모두 그 음악적 떨림을 무의식 중에 나누는 것일 테다. 다만 그것에만 집중되는 시선이 조금은 불편했다. 조성진이 우승을 하고 난 직후 KBS에서 그의 갈라 공연과 결승실황 영상을 2일에 걸쳐 방영하였다. 조성진의 폴로네이즈 Op.53은 정확하고 깨끗했다. “연주는 손이 저절로 하고 있었고, 나는 내가 연주하는 음악을 즐기면서 듣고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한 건지는 진짜 잘 모르겠다 (중앙일보 인터뷰 10.23)” 말처럼 그의 표정과 몸짓은 저절로 내면으로부터 흘러나왔다. 그 모습에서 나는 <The Pianist> 의 마지막 엔딩이 생각났고, 그 다음부터는 조성진의 연주하는 손을 더 유심히 봤다. 피아노는 역시 저렇게 손으로 건반을 두드려서 연주하는 악기다, 라고 생각했다.
2015 쇼팽 피아노 국제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 (사진 출처: Chopin Competition Homepage) 2_ P와 나는 오랜만에 예술의 전당을 찾았다. 김대진 수원시향 상임지휘자가 해설과 지휘를 맡은 토요콘서트 공연 때문이었다. 예술의 전당에서는 금년 8월부터 ‘Before & After 1900’이라는 주제로 근대음악과 현대음악을 소개해 오고 있다. 2시간의 공연 중 전반부는 1900년대 이전의 근대음악을, 후반부에는 20세기 현대음악을 소개한다. 이번 공연에서는 차이코프스키와 프로코피에프 순서였다. 둘다 러시아를 대표하는 근현대 음악인인데, 프로코피에프는 다소 생소하다. 그러고 보니 창비 출판사라면 차이코프스키를 차이꼽스끼라고 썼을 것인데, 프로코피에프를 어떻게 쓸지 궁금했다. 공연 시작은 11시였는데 P와 나는 무료로 나눠주는 커피를 홀짝이다가 프로그램북을 사서 2층 앞자리에 앉았다. 의외로 2층은 한산했다. 프로그램을 보니 예매할 때와 달리 차이코프스키를 먼저 연주하는 모양이었다. 연주곡은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 Op.35. 세계 4대 바이올린 협주곡 중 하나로 명명될 만큼 특히 한국인에게 유명한 곡이다. 21세기 현의 여제로 불리는 율리아 피셔(Julia Fischer) 의 연주를 미리 듣고 온 터라 기대가 컸다. 이 곡의 바이올린 협연자는 김화라 양.. 오늘 이 공연을 지휘하는 김대진 교수의 딸이다. 프로그램에는 “뉴욕 타임즈가 눈부신 화려함과 정확성을 동시에 갖춘 드문 솔로이스트라고 묘사했다” 라고 소개하고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바이올린 카덴차의 화려한 기교가 돋보이는 곡인데, 젊은 신예답게 그녀의 연주는 자신감 넘치고 화려했다. P 도 나도 모주 만족했다.
프로코피에프의 교향곡 제5번 Bb장조 Op.100으로 공연 2막이 시작되었다. 1944년에 작곡된 곡이니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보다 70년 뒤의 현대음악이다. 과연 1막과는 달리 무대가 꽉 찰 정도로 금관과 현악, 목관, 타악기가 총 동원되었다. 음악을 텍스트로 풀어내는 것의 한계는 있지만 프로코피에프의 이 곡은 근대 낭만음악과 현대음악의 과도기의 양면성이 느껴졌다. 현대미술을 보며 느꼈던 이질감 ( 이것이 미술인가?)은 윤이상의 교향곡을 들으면서도 느껴졌는데 (이것이 음악인가?), 프로코피에프의 음악은 현대음악에서 상실된 서사가 어느 정도는 다소 남아있었다. 근대 관현악에선 쉽게 들을 수 없는 생소한 선율이 과격하고 거칠게 사용되긴 했지만 음을 밀고 나가는 방식은 꽤나 고전적이고 낭만적이었다. 쉽게 말해 분절되지 않은 멜로디가 아직 있었다. 그 멜로디의 흔적이 프로코피에프라는 길에서 탈선하지 않고 끝까지 연주를 감상할 수 있었던 이유였다. 다만 이 곡이 소련이 독일에 승승장구하던 1945년에 초연되었다는 점을 프로그램에서 미리 읽어서일까, 4악장 마지막으로 향하는 오케스트라의 다이나믹한 연주에서 붉은 광장이 머리 속에 그려졌다. 그러나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화려하게 연주한 바이올리니스트 김화라 (사진 출처: 김화라 공식 사이트)
3_ 공연 내내 연주를 감상하던 P는 음악당에서 나오며 의외로 “집중이 잘 안되었어” 라고 말한다. 차이코스프스키의 음악에 비해 뚜렷한 서사가 느껴지지 않으니 조금은 지루했고 무대를 가득 채운 악기만 기억난다는 것이다. 나는 의외로 공연이 좋았기 때문에 쉽게 대꾸하지 못했다. 프로그램에 소개된 인간의 영혼의 해방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지만 프로코피에프가 남긴 낭만적 서사의 단서들이 좋았고, 현대음악이 추구하는 표현에 대해 생각할 거리를 남겼기 때문이었다. 사실 P가 이야기한 지루함이란,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는 고백과도 같게 들렸다. 그리고 그것이 현대음악을 대하는 솔직한 심정일지도 모르겠다. 이제 아름다움은 낭만적으로 추구되지 않는다. 무엇을 표현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보다,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겉의 질감에 더 집중한다. 어쩌면 현대예술이 아름다움을 표현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를 일이다. ‘표현한다’ 그 자체가 별도의 조건 없이 ‘아름답다’와 동의어가 되어 버렸기 때문에.. 작품에 이르는 아이디어나 과정, 표현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는 개념미술이 크게 각광받는 현대미술의 특징이 현대음악에서도 재현되는 것일까? 그 날 인상적이었던 것은 중간 중간의 작은 순간들이었다. 2막 앵콜곡으로 연주된 프로코피에프의 발레곡 <로미오와 줄리엣> 중 “Dance of the knights”의 장중한 선율이 본 공연보다 오히려 좋았던 점과, 1막 앵콜곡으로 바이올리니스트 김화라가 독주를 하던 순간이었다. 앵콜곡을 연주하며 파가니니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기교를 선보였던 그녀는 조성진의 그것과 유사한 절정의 표정을 하고 있었다. 내가 앉았던 2층 좌석은 오른편에 치우쳐 있었기 때문에 김화라의 뒤편으로 오케스트라 악장의 모습이 보였다. 프로그램에서 찾아보니 심보라미 라는 젊은 바이올리니스트다. (그녀는 김대진 교수가 지휘하는 수원시향의 제1바이올린 수석을 맡고 있기도 하다) 비슷한 또래의 연주자가 한 명은 홀로 서서 독주를 하고 있고, 또 한 명은 전체 중의 한 명으로 그 옆에 앉아 있다. 저 둘의 위치와 자리를 갈라 놓은 것은 무엇일까, 그 차이를 만든 건 한 끝 차이의 실력일까, 여기 음악당에 모인 수 많은 사람들은 그 차이를 세심히 가려낼 수 있을까, 나는 약간은 감상적인 생각이 들었다. 요즘 논란이 되었던 금수저를 떠올린 것은 아니었다. 김화라의 연주는 아주 훌륭했다. 다만 타인의 영혼을 움직이는 실력과 기회는 미묘한 부분에서 차이가 날 수 있다는 현실이 어렵게 다가왔다. 그렇지만 ‘누군가가 운이 좋았다’ 라고 간단히 말해버리고 싶지도 않았다.
[끝]
작
1악장. 현실
곡 가 B
얼마 전, 제17회 쇼팽 국제 피아노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도쿄에서 가졌던 인터뷰의 내용을 보게 되었다.
의 노
‘유명한 음악가 보다는 훌륭한(그는 great라는 단어를 썼다. 언론사에 따라
트
‘탁월한’ ‘위대한’ 등으로 번역한 경우도 있다.) 음악가가 되고 싶다’는 말을 했다던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어린 나이에 답지 않게 진중한 그의 성격을 알기에
콩
그 말이 단순한 ‘겸손 코스프레’가 아니라는 정도는 잘 알고 있었지만, 내게는 그
쿠
것이 평소에 음악과 음악가의 삶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이 호들갑만 일삼는
르,
언론과 여론을 향해 미리 쳐놓는 일종의 ‘방어막’과도 같이 느껴졌다. 아마도
그
그들이 얼핏 보기에 ‘국제 콩쿠르 1위’라는 타이틀을 가지게 된 음악가의 앞날은
이
잘 포장 된 탄탄대로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실황 연주가 담긴 기념음반은
후
물론이며 가는 곳 마다 세계 최정상의 오케스트라들과 협연 무대가 그를 위해 약속되어 있고, 음악 비즈니스계를 주름잡고 있는 매니지먼트사와 매니저들은 새로운 계약을 맺고 싶은 마음에 쉴 새 없이 러브콜을 보낼 것이다. 하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그뿐만이 아니다. 예전에 비해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 존재하는 곳에서 평생동안 ‘그래 네가 얼마나 잘하나 보자’는 서양인들의 시선을 이겨 내야하는 것은 기본이고, 악의적으로 흠을 잡으려 드는 비평가들의 공세에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준비한 것을 온전히 보여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어쩌면 이런 문제들에 있어 어렸을 때부터 꾸준히 자신만의 길을 걸어온 조성진 스스로에게는 별 문제가 없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늘 주변이다. 언론이든 주변 사람들이든, 콩쿠르의 결과에 대해 충분히 축하해주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에 따른 큰 관심을 가져주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가 가진 음악에 대한 철학이나 앞으로의 계획을 차분하고 깊게 다룰 생각은 없고, 콩쿠르 한 번 만에 그를 세계 유일의 피아니스트인 것처럼 만드는 것은 오히려 그에게나 팬들에게나 좋을 것이 없지 않을까. 또한 기자들이 최고 수준의 콩쿠르에서 우승한 음악가에게 하는 질문들이라는 것의 수준들이 대개 단편적이며 일차원적인 질문들로 점철되고 있는 것도 매우 아쉬웠다. 음악 전문 기자 수준 (사실 수준 높은 음악 기자들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은 바라지도 않고, 다른 사안들에 대한 취재로 바쁜 기자들이 체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제한적인 것도 대략 이해는 간다. 하지만 과거 인터뷰 기사만 찾아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을 내용을 굳이 일본에 가서까지 질문을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씁쓸함이 남으며, 그 중에서도 ‘1점을 준 심사위원을 만나봤냐’는 질문은 그저 짓궂은 호기심에서 나온 떡밥성 질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다.
2악장. 굳세어라 성진아 제1회 국제 차이콥스키 콩쿠르 피아노 부문의 우승자였던 미국의 피아니스트 밴 클라이번(Van Cliburn, 1934-2013)은 수상이 결정된 뒤 자신을 향해 기립박수를 보내는 청중들을 보고 있었다. 그 때 심사 위원 중 한 명이 다가와 ‘ 청중들의 저 박수 소리를 장송곡이라고 생각해라’라는 충고를 하고 갔다고 한다. 흡사 일본의 음악 만화에 나오는 장면처럼 콩쿠르가 끝나자마자 “자! 이제 목표는 세계무대다!”라며 앞날에 장밋빛 미래만이 펼쳐질 거란 생각은 하지 말라는 경고의 의미였을 것이다. 하지만 애써 이런 에피소드들을 끄집어내지 않더라도 앞에 놓인 어려움과 압박감에 대해서는 그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가 미래에 맞서야 할 상대는 더 이상 동년배의 피아니스트들이 아니다. 이미 증명한 스스로의 능력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유지해야한다는 부담감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과 설렘을 동시에 가져다주는 그 실체 없는 힘이 그의 가장 큰 경쟁상대일 것이다. 그는 그 힘으로부터 일반인들은 쉬이 상상할 수도 없는 공포감이나 허무감을 느끼게 될 지도 모르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 압박감을 털어놓아도 따뜻한 위로와는 별개로 제대로 된 공감까지는 받기 힘들지도 모른다. 또한 그 시간이 길어져 스스로를 괴롭히는 나날들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래도 콩쿠르라는 특별한 환경에서 벗어나 자신이 계획했던 길로 돌아가는 것은 다소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것 보다 훨씬 ‘훌륭한’ 음악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으며, 또한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하고 있다. 어쩌면 이름 앞에 ‘ㅇ ㅇ콩쿠르 우승자’라는 수식어가 아닌 ‘피아니스트’라는 평범한 직업인의 하나로 돌아오게 될 때가 그 압박감을 이겨내는 순간이 될 수도 있다. 주변의 그 어떤 소리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만을 묵묵하게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더 이상 타이틀로 인한 무게감에 눌리지 않는다는 증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인터뷰에서 ‘유명한 음악가 보다는 훌륭한 음악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 그 순간부터 대결은 시작되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의 너른 시야가 그 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큰 밑거름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기에 그다지 걱정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앞으로 10년이나 20년 뒤, 우리는 지금보다 더 크고 깊어진 그를 만나게 될 수 있을 것이며 ‘한국의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아닌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사랑하고 아끼는 피아니스트가 된 그와 함께할 것이다. 그에게 악운(樂運)이 따르기를 기원하며.
Composer B
9_ 제감독
옆 사람 인터뷰
정모에게서 연락이 왔다. 또래 친구들이 전역한 지 오래된 요즘 흔치 않은 입대 소식이었다. 정모와는 작은 영화들을 찍으면서 알게 되었는데 지난겨울에도 그가 연출을 맡은 단편영화를 도왔다. 모든 촬영이 그렇지만 중에서도 유독 1_ Granz Globewalker, 여행하며그 음악하기 춥고 배고픈 시간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부산국제영화제에 출품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은 너무나도 단 열매였으리라. 입대 전 오랜만에 만나 담소를 나누었다.
�� ���� ��� ��� ���� ���� ���� ��� 입대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여전히 바쁜 것 같다. 10 ����� ����� ��� 밤�� �� ��� ���� 결 월 부산국제영화제에 다녀온 이후로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 하다. �� 사람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어디에 가도 있
글, 정리 : 이내 음 뮤직비디오를 찍은 이후로 1년에 두 편 이상 꾸준히 작업 했다. 영화제에 영화를 올리는 일이 운이 아니라 실력이었다 고 말하고 싶다.
는 것은 사람이요, 사람으로 펼쳐진 시공간이 었다.영화를 내가 돕고 만났고 있는곧 사람들 또한 아는 형의 있다.만나고 조연출이고 촬영에 들어간
꾸준히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가장 최근에 연출
아름다운 여행지의 하나였다. 여행을 다. 틈틈이 광고 촬영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을이야기하 벌기도 했
한 <안나>에 대해 간략히 얘기해 주면 좋겠다.
다. 영화를 만든답시고 빚을 많이돌아오는 져서 갚아야 한다. 하하.생촬 고 싶었으나 한국으로 비행기에서 영이 끝나자마자 집에서여행해볼 하루 자고작정이라고. 바로 입대하는데, 각했다. 사람을 / 부모님
여고생이 목사인 아버지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자 목사는 딸
께 얼굴만 비추고 바로 가는 거라 불효가 아닌가 싶다. 마음
을 동정녀 마리아처럼 대한다. 믿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
에 걸린다.
고, 이 가운데 종교에 관심이 갔다. 믿음에서 드러나는 이중
게스트하우스에는 다양한 삶이 오고갔다. 그 몇 년 전부터 군대에 간다고 한 것 같은데 이제 정말 간다. 랜트는 미국에서 온 장기 투숙객이었는데, 여 늦은 입대다. 행을 온 사람치고는 그의 하루가 꽤 정적이었
성을 말하고 싶었는데, 여전히 더 고민해 보고 싶은 주제다.
다. 그는 공용 공간에서 편의점 음식을 먹거나 이래저래 미루다 보니 이렇게 늦어졌다. 예전에는 입대 전에 비틀즈의 전곡을 모아 놓은 교본을 옆에 두고 뭔가를 하고 싶었고, 아직 가면 안 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 기타를 치고는 했다. 내가 그의 반려자와 다름 금이 적기인 것 같다. 앞만 보고 지낸 시간이 정신적 피로를 남 없던필요한 기타를 두 것동강 겼다. 내게 시간인 같다. 내기 전까지는(당분간 Hey Jude를 배우겠다고 설칠 일은 없으리라).
고향은 전라남도 장흥이다. 영화를 이유로 서울까지 온 것으 로 알고 있는데 그때의 이야기가 궁금하다. 고등학생 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낮은 성적으로 집 근 처 대학교의 경영학과에 붙었는데 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 는 비틀즈와 로드리게즈 만큼이나 그의 노래를 더라. 다시 대학교에 가는 걸 생각했고, 실기 수업이 주를 이루 는좋아한다. 학과에 가고 싶었다. 예술을 생각하고 그 다음으로 영상이
더 열심히 쓰고 더 열심히 찍는 때에 입대한다는 생각이 든
떠올랐다. 내게 가장 가까운 분야인 것 같았다. 처음에는 평택
어릴 때부터 사람들은 그가 의사가 될 것을 다. 아쉽지 않나.
에 있는 친척 집에서 한 달을 보냈다. 이후로 서울에서의 생활
기대했지만 6살 때부터 그는 음악을 꿈꾸었다
을조금 시작했다. 부모님께서는 그건 갔 스무 살 더 오래 머물 줄반대하셨기 알았는데 때문에 시드니에
아쉽기도 잠시 돌아볼 있는그대로였으나 시간이 필요한 대학 것같 고 하지만 한다. 소망은 오랜 수 시간
의다. 가출이었다. 8개월 정도를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부모님과 있나. 연락을 끊고 지냈다.
다. 이번에 영화 <안나>를 예상보다 돈도 하기로 많이 쓰 을 졸업한 후에야 찍으면서 그는 온전히 음악을 고 순조롭지 좋은 결과를 얻었지만 기쁜 마음과 함께 마음을않았다. 먹었다.
낮에는 공부를 하고 저녁에는 일을 했다. 일한 돈은 방값과
걱정이 앞서더라. 좀 더 신중해지고 싶고 더 좋은 영화를 만 들고 싶은 생각이 든다. 현장에서의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처 그를 마지막으로 본 날, 직접 녹음한 아홉
곡이 담긴 CD 한 장을 선물로 받았다. 요즘 나
학원비와 생활비로 나갔고, 공부와 일의 반복이었다. 나도 오래 있고 다 싶었지만 관광비자만으로는 그 그때 처음 직접 무언가를 만들었다. 처음은 뮤직비디오였다. 매일 럴 수 없었다. 한국에 다시 가고 싶고 그전까 2시간만 자고 생활했고 피곤했지만 내 머릿속에 있던 것이 실 지 시드니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비행기
표를 사기 위해 잠시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
체화되었을 때의 쾌감이 더 컸다. 처음에는 영상 전반에 관심이 있었는데 어느 날 학원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신 <박하사탕>을 보고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한테 그런 감정이 휘몰아칠 수 있다는 것이 소름 돋았다. 좋아하는 영화 혹은 좋아하는 감독이 있다면. 이창동 감독님의 영화를 좋아한다. 기교가 아닌 이야기로 풀어가는 영화의 힘이 좋다. 어떤 영화를 만들고 싶은지 궁금하다. 내가 만들고 싶은 영화도 앞서 말한 것과 맞닿아 있다. 모두가 알고 있지만 외면하는 것을 끄집어서 이야기하고 싶다. 때로는 ‘이게 너야’라고. 영화와는 별개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 솔직한 사람이고 싶다. 나를 포장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요즘 느낀 거지만 나와 더불어 타인을 생각하고 우리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너무 나만 생각하며 시간을 보낸 것 같다. 영화가 좋은 이유 중 이게 있다. 이전에는 의미 없는 하루를 보냈다면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 이후로 나를 돌아보며 생각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영화는 나를 찾아준다. 처음 접한 정모의 모습은 어쩐지 우유부단하고 쉽게 무너지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내 그런 면들이 그가 지닌 욕심이고 끈기 라는 생각이 들었다. 깨진 유리가 알고 보니 사탕인 느낌이랄까. 정모는 내게 없는 어떤 용기를 지닌 것 같아서 부러운 적이 있 었는데 지금은 그저 응원한다. 미숙한 현재도 그의 열정으로 채워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제감독이라는 호칭이 자연스러워질 날을 기다리며 당분간 충성.
택 시 를 탔 다
S#4. 이수초교-구반포역, 7300원 - ‘택시기사라고 다 못 배운 사람들은 아닙니다.’
글, 고수진 (gomin19@hanmail.net)
요즘 몸이 너무 무겁고 잠을 자도 개운치가 않은 것이 독소가 많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마침 해독과 관련 방송도 보고 있었다.) 학원근처에서 조금만 가면 사당역에 해독주스를 파는 ‘디톡스 주스바’를 발견하고 출근 전 주문한 ‘밀싹 주스’, ‘콜라비+자몽+케일+토마토’등등 몸에는 좋은데 맛은 없고 색은 예쁜 해독주스를 사러 갔다. 지금 생각해보면 운동이 낫다. 포만감은커녕 폭식을 하게 되었다. 여하튼 비가 좀 오는 오전이었고 이수초등학교에서 택시를 탔다. “죄송합니다.” 택시 어플로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과 내가 좀 지도상의 묘한 오차로 약 10분정도 서로를 못 찾고 헤맸었다. “아닙니다. 취소를 안 해 주셔서 허허허.”
오늘의 이야기. 직업, 학벌로 여전히 차별하는 사회. ‘택시기사라고 다 못 배운 사람들은 아닙니다.’ “취소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럼요, 많아요. 콜을 받고 가면 우리도 중간에 다른 손님을 받을 수 없으니까, 그런데 5분을 못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어요. 중간에 취소를 하면 얼마나 우리가 손해인지. 아직 콜 문화에 대한 예의나 그런 것들이 없어요.” 기사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일명 ‘갑질’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기사님은 공무원을 하시다가 은퇴하시고 택시를 시작하셨다고 했다, 이제 꼬박 3년차다. 기사님도 처음에는 택시기사라는 직업을 무시하셨다고 했다. 공무원을 은퇴하고 택시기사를 할 것이라는 생각도 못했고, 힘들고 소위 좀 무식한 사람들이 하지 않나 라는 인식이었다. 그런데 막상 이 회사에 들어가 보니 자기 같은 사람, 사업에 실패해서 온 사람 생각보다 화이트컬러의 직업을 가졌던 사람들이 많았다는 것이다. 조금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이곳은 가장들의 마지막 종착지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루에 할당금이 있지만 생각보다 손님은 없고 그래서 시작한 것이 이 카카오콜이다. 수수료와 이것저것 떼고 나면 한 달에 대략 130만원 선. 그러다 가끔 심야에 과속카메라에 찍히기라도 하면 벌금도 내야하고... 참 고충이 많은 직업이다. 고충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뒷자석에 타는 손님들의 말투와 행동이 더 힘들게 한다. 3000원 기본요금의 거리의 콜이라도 손님을 더 태워야 하니 승인을 한다. 사실 이런 기본 요금은 손해에 가깝다. 서로 이해해주면 좋겠지만 중간에 취소하는 사람, 콜을 받고 가도 행선지를 네비게이션에 맞춰가지 않고 돌아간다며 생떼를 쓰는 사람, 다짜고짜 늦었다고 더 빨리 가달라고 하는 사람(그럼 좀 빨리 나오던가),
대뜸 이런 택시기사는 월 얼마나 버냐고 묻는 사람들,
“마누라가 능력 없다고 안하냐”(사실 이혼하는 택시기사들이 많다고 하셨다) “젊은 시절에 열심히 살았어야지” 하며 훈수를 두는 사람들 까지 듣고 있어도 믿기지 않는 말들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분명 그런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나는 뒷자석에 앉아 ‘아..’라는 짧은 탄식만 내뱉었다. “아가씨 불친절한 기사님들도 많죠?” 룸미러로 미소 짓는 기사님의 눈가 주름들이 정겹다. 잘 다려진 셔츠, 택시 안 달랑거리는 손주들 사진. 사람을 대하는 직업은 쉬운 게 없다며 타는 사람도 운전하는 사람도 예의 있게 인사하고 행선지를 말하면 더 좋은 택시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거라 하셨다. 자기는 인사하면서 타는 손님을 너무
오랜만에 만났다고 하셨다. 그리고 아무래도 더 잘 데려다 줘야지 라는 생각이 든다고 하셨다. 기사님과 나는 잠깐 웃었다. 차가 좀 밀리는 틈을 타 기사님은 갑자기 일회용 비닐에 담겨져 있던 포도를 뒷자석으로 넘겨주셨다. 이거 진짜 맛있는 포도라며 먹으라고. 그렇게 몸을 돌려 싱긋 웃으시는 기사님은 서글서글한 큰아버지 같았다. 가는 길에 방배동 카페골목 고가도로에서 창문을 내리고 하늘 사진을 찍었다. 비가 그치고 있었다. 갑질은 우스갯소리가 아니다. 어디서부터 이런 건방지고 볼썽사나운 문화가 생겨났는가. ‘ 서비스를 받는다’라는 정의가 곡해된 듯 하다. 우리는 모두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일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쓰면서 나는 무슨 성인군자인척 하는 것 같아 부끄럽지만 적어도 예의 있는 사람으로 나이를 먹어야지. 곱게 늙자.
의미없는 이야기 글. 그림. 철민
의미없는 이야기 글. 그림. 철민
김영대 : '새 신발'은 근래 들어본 가장 유 려 한 보 컬 편 곡 이 빛 나 는 작 품 이 다. 'Zeze'에서는 조금 진부하지만, '스물셋'에 이르면 유연하게, 때로는 야무지게 음을 연주하는 센스가 보통이 아니다. 전작 "Modern Times"에서 그 복잡한 매력을 비로소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조금 더 모 순된 성격들이 맞닿은 앙칼진 사운드에 재능을 집중시키면서 캐 릭터가 더 강하게 폭발한다. 나는 뭐로도 규정할 수 없지만 동시
아이유 - Chat-shire
에 모든 것이기도 하다는 식의 모순된 관점은 아이유가 그 이후
로엔트리
품어온 일관된 정체성의 핵심이었고, 그것은 여전히 유효하다. 허
2015년 10월 23일
나 그 모든 것이 납득가는 내러티브로 바뀌는 것은 어찌 되었건 바로 아이유라는 목소리의 존재감 때문일 것이다. 본인 스스로도 왜인지 답할 수는 없지만, 뭘 걸쳐도 얼추 그림이 나오는, 그야말 로 의욕과 센스가 정점에서 만나는 시기는 한 번쯤 찾아온다. 아 이유라는 가수에겐 지금이 바로 그렇다.
아이유 - “스물셋” https://youtu.be/42Gtm4-Ax2U
김윤하 : “높은 계단 좁은 골목 난 어디든 가 / 내 마음에 꼭 맞는 새 신발을 신고”. '새 신발'의 이 가사는 그대로 아이유가 "CHAT-SHIRE"를 통해 전하고 싶어하는 메 시지다. 흥미로운 건 이제야 처음으로 앨범의 모든 키를 쥐게 된 그녀가 그렇게 주어진 무한자유 에도 불과하고 지난 자신의 모습을 지워버리거나 대상으로 치부하지 않고 모두 안고 가는 방식을 택했다는 부분이다. 크게 이민수 사단의 영향이 느껴지는 복고풍의 스윙감과 펑키함을 잃지 않은 파트와 '복숭아'나 '마음' 등의 곡의 뒤를 잇는 '아이유 어쿠스틱'이 어울렁 더울렁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앨범은 그 자체로 더도 덜도 아닌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스물셋 아이유가 놓인 자리 그 대로다. 특별히 새롭지는 않지만 이제야 그 모든 것이 자신의 의지였음을 발톱을 살짝 세운 채 윙 크하며 드러내는 방식. 지금껏 이런 식의 탈-아이돌 루트는 좀처럼 없었다. 솔직함과 언어유희, 리 듬감까지 모든 면을 충족시키는 '스물셋'의 가사를 몇 번이고 곱씹어 보게 되는 건 그런 이유다. 돌돌말링 : 어리고 나이브한 자신를 기대하는 대중과 그걸 꼭대기에서 쳐다보는 자신를 놓고 저글 링하는 듯한 '스물셋'을 필두로, 자연의 언어를 센슈얼하게 이용한 '푸르던', 흐름 상 거슬리긴 하지 만 왜 넣었는지는 알 것 같은 '무릎', 초연한 시선의 'Red Queen', 논란의 중심에 선 곡 'Zeze'까지. 모 두 아이유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쩌렁쩌렁 외치고 있다. 가사도 멜로디도 어딘지 조금 과하지 만, 그 센스에 매혹되면 참을 수 있다. 앨범 전체에 흐르는 로리콤적 함유에 문제 제기 하는 우려들 도 충분히 이해하나, 오히려 전작들에 비해 순진한 표정을 하지 않기 때문에 감상하기가 나았다. 방송 활동을 안 해도 이만큼 들려진다는 것은 미우나 고우나 해도 아직까지는 그가 관심의 중심에 있다는 이야기겠지 싶다. 다만, 해석이나 창작자의 모럴에 대해 토론하는 것은 좋으나 애인 취향 얘기까지 나오는 인터넷의 반응에는 조금 지쳤다. 아이유 본인은, 이 거품이 빨리 꺼지기를 바라고 있을까? 오랜만에 한 앨범을 깊이 들었다.
김영대 : 아이돌 음악도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F(x) (혹 은 그들과 유사한 접근 방식을 가진 샤이니)를 가장 힙한 아이돌로 평가 하는 속내를 더듬다 보면 결국 SM이 꾀하는 '탈-가요'의 방정식과 마주하 게 된다. 새것과 지나간 요소들을 한국적인 혼종성으로 탈바꿈시킨 게 (여전히 유효한) SMP였다면, 가벼운 블랙 사운드에 근간해 근본 없음과 무맥락성을 혼재시킨 팝 콜라주는 그다음 단계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제 그들의 댄스 음악은 신스팝과 딥 하우스를 바삐 오가는 EDM의 필터링에 더 노골적으로 여과된다. 근본은 있으나 맥락은 없는 탈-가요의 방법론. 어쨌든 이들은 여전히 나름의 방식으로 '최전선'에 다시 서 있다. f(x) - 4 Walls SM 엔터테인먼트
김윤하 : 소녀시대가 스타일 변화와 고른 파트 분배를 통해 이전과는 다
2015년 10월 27일
른 보컬 그룹으로서의 안정감을 꾀했다면, f(x)는 기존의 '패셔너블'하고 '힙'한 자신들의 모습을 다른 차원으로 옮겨 어른스럽게 업그레이드시키 는 데 집중한다. 결과는 가볍게 성공. 최근 SM이 내놓는 결과물들에서 느 껴지는 '평균 이상'의 퀄리티가 담보되었다. 유제상 : 음반의 퀄리티는 말할 것도 없고, 이 앨범은 그 이상으로 나아가
f(x) - “4 Walls” https://youtu.be/4j7Umwfx60Q
어떤 아련한 추억 같은 것을 손끝으로 건드린다. 격찬 말고 쓸 말이 없어 짧게 쓰지만, 분명한 건 '4 Walls'가 (뮤직비디오와 함께) 주는 즐거움은 대중문화 전체를 통틀어도 이에 비견되는 것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 다. 미묘 : 아직은 보이그룹 트렌드가 묵직하고 공격적인 노선에 있는 와중에, 로미오가 청량한 화성감과 일렉트로닉의 에너지를 조합하는 방식은 꽤 인상적이다. 그것은 과거 SS501을 위시한 '얄쌍한 보이그룹'의 공기를 연 상시키기도 하나, 사운드의 운용은 그간 아이돌이 가요를 극복해온 역사 를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Present'는 이를 보다 미래적인 댄스팝으로, '너만 보여'는 로맨틱한 힙합비트로 구현하고 있어 듣는 즐거움이 크다. 블럭 : 다섯 곡 중 세 곡을 맡은 스윗튠은 자신들이 어떤 것을 제일 잘하 는지, 그리고 어떻게 했을 때 퍼포머와 곡이 잘 맞아 떨어지는지 제대로
로미오 - Zero In
보여주는 듯하다. 곡이 가진 색채와 로미오라는 그룹이 워낙 잘 맞기 때
CT 엔터테인먼트
문에 기분 좋은 결과를 낼 수 있었지만, 특유의 밝고 화사한 느낌을 마음
2015년 11월 5일
껏 살린 덕분에 데뷔 때보다 훨씬 좋은 모습을 선보였다고 생각한다. 별민 : 올해 데뷔한 신인 남자아이돌 중 '주요 그룹'으로 꼽힐 만한 팀들 은 전부 두 번 정도 앨범을 발매했는데, 세븐틴, 몬스타엑스의 연타를 생 각해보면 로미오의 연작은 어딘가 '약하다'. 앨범은 스윗튠의 지휘 하에 과거 '스윗튠 보이즈'였던 인피니트, 보이프렌드 등의 초기작과 별다른 차
로미오 - “Target” https://youtu.be/ieqfUJLv27Y
별성 없이 흘러가고 있는데, 자신들만의 개성으로 앨범을 채울 힘이 멤버 들에게 없거나, 기획자가 이 부분을 간과하거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 각이 들었다. 스윗튠이 아이돌 인큐베이터의 역할을 잘 해내는 팀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지만, 인큐베이터가 왜 인큐베이터인지 고려해보고 협업해야 하지 않을까.
미묘 : '사슬'의 도입부는 빅스에게서 익숙히 기대할 법한 어둡고 드 라마틱한 분위기지만, 후렴에서는 갑자기 쿨하게 돌변한다. 스탠다드 팝 발라드에 가까운 '지금 우린'을 비롯해 명랑한 'Heaven' 등, 제법 넓은 스펙트럼의 곡들이 연잇는다. 설마설마했던 '이별공식'까지 빅 스의 '본편'으로 포섭해버리는 듯한 이런 욕심은 그러나 꽤 설득력이 느껴진다. 가장 눈에 띄기로는 역시 빅스 음악의 시그니처 같은 라비 의 적극적인 활약이지만, 음반 전체는 차라리 솔로 가수의 음반을 듣 는 듯한 '목소리'의 상징적 일관성을 유지한다. 백화점식의 구성이 산 만하지 않은 것은 그 덕일 것이다. 물론 빠질 것 없이 든든하게 마감 된 수록곡 각각의 매력도 크게 한몫한다. 어쩌면 조금 느리다고 느낄 수 있겠지만, 빅스는 차근차근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빅스 - Chained Up 젤리피쉬 엔터테인먼트 2015년 11월 10일
빅스 - “사슬” https://youtu.be/vqzBrI76e4g
별민 : 기승전결의 스토리와 그에 맞춘 곡의 진행 및 구성이 돋보였던 이전 작품들과 달리 '사슬'은 뚜렷한 내러티브 없이 그저 막연히 '섹 시함'을 내세우고 있는데, 덕분에 음악과 비주얼과 퍼포먼스 등 모든 요소들이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튀어나가고 있어 산만한 느낌까지 든다. 이제 수트를 입는 팀은 너무나 많고, 빅스만큼 컨셉츄얼한 팀도 너무나 많아졌다. 이런 와중에 정규 앨범의 방향성과 색깔이 흐려져 버린 것이 못내 아쉽다. 오요 : 데뷔 싱글부터 타이틀 곡들을 관통하는 정서와 분위기를 유지 하면서도 자기복제 혹은 대박 공식을 답습하지 않는 태도가 대단하 다. '사슬'은 특히 파트 간 낙차가 인상적인데, 베이스 라인과 리듬 파 트로 간결하면서도 묵직한 1절을 지나 멤버들의 목소리가 겹쳐지며 그에 조응하는 전자음이 공간을 확 메운다. 랩 부분을 브리지 앞뒤로 나누어 배치한 것도 감정의 고조 측면에서 효과적인 장치다. 돌돌말링 : 이번 텀에 유독 브라스를 포인트 삼는 곡들이 많은데, 개 인적으로는 '또또'에서 가장 잘 쓰였다고 생각한다. 존재감은 있되 전 면에 내세워 과시하진 않고, 단독으로 들어도 훌륭하다. 데뷔작 '심장 어택' 때도 생각했지만, 탈색한 롱헤어의 소녀들이 운동화를 신고 챈 트를 외치는 쾌활함엔 당해낼 수가 없다. 시장의 좋은 포지션을 잘 선 점해가고 있는 중이다. 의상은 조금 더 예뻐졌으면 좋겠지만.
마이비 - 또또 마루기획 2015년 11월 13일
마이비 - “또또” https://youtu.be/oKjlIbckuW4
미묘 : 전작보다는 점잖은 캔디팝(!)을 구사하면서, 대신 조금씩 까불 거리는 요소들이 포함돼 다채로운 음악적 표정으로 반짝인다. "혼자 네 생각에 이히히"하는 랩이나 그 뒤로 더블링 된 목소리 등이 그렇 다. 시종일관 씩씩하게 뛰어다니는 음악이 문득 리듬을 잡았다가 풀 어내는 호흡 역시 매우 안정적이면서도 효과적이다. 보다 가요에 가 깝게 보수적인 곡풍을 사용하는 서정적인 'D-Day' 역시 현재의 아이 돌팝 문법을 조금씩 섞어 넣어 경쾌한 캐릭터를 유지한다. 걸그룹 팝 의 모범적인 영역에서 꼼꼼하고 상큼하게 마무리된 곡들이다. 지지한 다. 별민 : 뭐니 뭐니 해도 결국 아이돌의 본질은 청춘의 에너지에 근거한 다. 비비드한 색감의 레고 블럭 사이에서 활짝 웃으며 힘차게 춤추는 소녀들은 너무나도 충실하게 아이돌의 소임을 다하고 있다. 충분히 신나고 발랄하지만 귀에 거슬리는 부분 없이 편하게 들을 수 있는 후 렴이 마음에 든다. 하지만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은 후렴으로 이어지 기 전까지 펼쳐지는 브리지 파트다. 이 파트에서 신스음은 마치 사랑 에 빠진 소녀가 창가에 팔을 괴고 달을 보며 사랑하는 이를 그릴 때 그의 눈에 비친 별빛처럼 예쁘게 반짝인다. 그 위에 기교나 꾸밈이 심 하지 않게 담백한 보컬이 흐르는데, 이 부분이 묘한 설득력을 만들어 낸다. 다른 허튼 생각 없이 그저 무대 자체에 집중해 즐기는 표정의 멤버들이 팀의 미래를 기대하게 만든다.
김윤하 : 지난 회차에 소개되었던 로미오의 'Target'과 함께 스윗튠의 '회생튠'을 소개할 수 있게 되어 더없이 기쁘다. 차와 포는 물론 마지 막 카드로 여겨졌던 나인뮤지스와도 결별하며 위태로움을 넘어선 위 기상황에 직면한 듯 보이던 이들의 재기포인트는 '초심'이다. 카라나 인피니트 등 기존 단짝 그룹들의 성공이 끼친 영향으로 사운드의 확 장에만 전념하는 듯 보이던 이들은, 신인 그룹들과 함께 새로운 호흡 을 맞추며 초기의 '소박하고 단단한' 매력을 다시 찾았다. 덕분에 그 간 잊고 있던 '90년대식 친숙함'이 다시 전면에 나서며 '스윗튠 사운 드'의 설득력을 높인 건 덤. 특유의 인트로와 이어지는 타이틀 곡 '쉘 위 댄스'의 에누리 없는 훵키함, 입구에서 바닥까지 어쨌든 꽉 채우는 사운드에 맞춰 돌처럼 단단하게 다져 담은 보컬 어레인지 모두 풋풋 함이 살아있어 좋다. 스누퍼 - 쉘 위 위드메이 2015년 11월 16일
스누퍼 - “쉘 위 댄스”
돌돌말링 : 회사에 소속된 배우 라인의 연장으로, 이 신인 남돌 그룹 의 셀링 포인트는 '장신의 미남들'인 듯하다. 사전 정보 없이 처음 들 었을 때 이 신스로 꽉 채운 청량감이 익숙하다 싶었는데, 역시나 스윗 튠이었다. 그 정보가 입력되고 나니 인피니트의 몇몇 수록곡들을 생 각하지 않을 수 없었고. 신인이고, 가사 역시 서툶에 대해 말하고 있 지만, 아무래도 바로 떠오르는 다른 그룹이 있다 보니 가창이라든지 안무를 비교하게 되더라. 이것을 털어내는 것이 현재로서 중요한 미 션이지 않을까 싶다. 요즘은 케이팝 씬의 가창 및 안무 소화 능력들이 워낙 상향평준화 되기도 했고. 그렇지만 곡 자체는 데뷔곡 삼기 좋은 예쁜 노래다.
https://youtu.be/nB6eX7Lc2CY
돌돌말링 : 아무리 다른 디테일을 찾아보려고 해도, 전체적인 스트럭 처가 '위아래'와 너무 비슷한 것이 감상을 방해한다. 'Ah Yeah'도 그랬 는데 말이다. '위아래'의 인기 요인은 인트로의 캐치함이나 눈을 끄는 안무였으면 모를까 예의 스트럭처가 아니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 다. 아직 보여줄 게 많은 것 같은데, 좀 더 올라가야 멤버들도 골고루 주목받을 텐데 하는 탄식이 나온다. 한편, 브리지에 말소리 같은 정화 의 보컬을 넣기로 한 건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톤이 독특 해서 배치하기 까다로울 것 같은데 전작들보다 훨씬 부드럽게 녹아 들었다.
EXID - HOT PINK 예당 엔터테인먼트 2015년 11월 18일
EXID - “HOT PINK” https://youtu.be/8NaeaLW8CLY
미묘 : 확실히 '위아래' 이후 노를 젓고 있는 곡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번에는 보다 원론적인 차원에서 이를 반복, 발전시키고 있다. 곡의 구조는 어느 때보다 복잡하게 분산돼 있는데, 프리코러스에 해당하는 랩에 남성 랩을 추가한 뒤 반복하여 몇 배는 길게 느껴지도록 하고, 뒤에 이어지는 보컬 파트도 '위아래'와 매우 유사하지만 일부러 끝을 살짝 더 늘려준다. 후렴 뒤 정화의 보컬로 넘어갈 때도 시간차를 두어 이질감을 강화한다. 후렴은 '가요'보다는 차라리 CM송 같은 '덩어리' 느낌이지만 꽤나 칼칼한 사운드의 훵크 질감이 훵크 답게 '끝도 없이 이어지는 듯한' 기분이라 듣기에 즐겁다. 정화의 보컬 파트가 비디오 를 포함해 곡 전체에서 매우 이질적인데, 그것이 (역시나 이질적이게 도) 너무 신인 느낌인 것은 아쉬운 일이다. 유제상 : 단정적으로 말하긴 어렵겠지만, 평자는 EXID를 '원 히트 원 더'라고 생각한다. 'Ah Yeah'가 나올 때도 그랬지만, 'HOT PINK'를 듣 고 나서는 이 생각 말고는 아무것도 떠올릴 수 없게 되었다. 분위기를 유지한 상태에서 지명도 있는 멤버가 팀의 상승세를 지속시켜주는 것도 상업적으로 중요하겠지만, 뭘 들어도 '위아래' 같아서야 무리가 있지 않나 싶다.
건축이 좋아. #25. “Happy X-Mies!” aoikasa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송년인사인가. happy x-mas도 아니고 happy x-mies라니! 그냥 아무 뜻 없다. Mies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마침 크리스마스고 그래서 그냥 말장난 한 번. 2015년도 어느덧 지나버렸다. 한 해를 보내며 언제나 그렇듯 나이만 먹고 한 건 없는 듯한 아쉬움에 한 숨만 나온다. 뭔가 손에 잡히는 것도, 남은 것도 없고 또 빈 손으로 빈 맘으로 한 해를 시작해야하는구 나라는 생각에 가슴도 답답해진다.
답답한 마음을 안고, 그 옛날, Mies님이 남긴 명언, Less is more, 적은 것이 더 많은 것이다(건축계에 선 이 말을 주로 적은 것이 아름답다로 표현한다)라는 그 명언을 가슴에 다시 새기며 아껴두었던 그의 이야기를 꺼내보려 한다. 내 가슴이 가장 사랑한 건축가가 루이스칸이라면, 내 머리가 가장 사랑한 건축가는 미스, Ludwig Mies van der Rohe이다. 이유없이 그냥 좋았던 건물이 루이스 칸의 건축이라면 알면 알수록 더 좋아지는 건 물이 미스의 건물이었다. 어디에나 있는 듯 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그만의 건축 어휘. 얼마전 archidaily 가 건축가들만 쓰는 이상한 단어들 중 하나로 Miesian이라는 단어를 꼽을만큼 건축계에선 보편적이면 서도 특별한 Mies. 2015의 끝에서 그의 이름을 불러 본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사진출처: Wikepedia commons. 곧게 뻗은 지붕과 벽들이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준다.)
첫 만남.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정말 적은 것이 아름답구나! 2002년. 여름. 배낭여행의 끝무렵에 들린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1929년 바르셀로나 박람회를 위해 지어 졌다가 철거되었으나 1992년 다시 복원. 몬주익언덕의 초입에 있는 작은 파빌리온 건물에 들렸다. 그 유명세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작은 사이즈의 건물. 그러나 그 사이즈에 비해선 꽤나 거대한 지붕. 하 늘을 향해 쭉 뻗은 그 지붕을 바라보며 계단 몇 개를 올라 전시관 내부로 들어섰다. 가느다란 십자기둥 외엔 아무런 방해요소가 없이 온전히 투명한 이 공간의 가운데에는 빛나는 듯한 Onyx벽 하나가 마치 홀로 서 있는 듯 하게 서 있었고 이 벽은 공간의 주인공으로 존재하는 동시에 이 투명한 공간을 분절하 고 있었다. 벽들에 둘러싸여 방이 만들어지고 그 방이 연결되어 내부 공간이 만들어지는 것이라 생각했 던 공간에 대한 개념을 완전히 깨버린 이 공간. 자세히 살펴보니 군더더기라곤 존재하지 않는다. 유리, 벽, 기둥, 지붕, 바닥, 그 외의 모든 것, 예를 들어 기둥머리나 기초, 걸레받이나 벽의 몰딩 같은 게 다 사 라져버린 건축. 모든 요소가 아주 순수한 그 상태로 돌아가버렸다. 접합을 위해, 혹은 지저분한 부분을 감추기 위해 필요했던 요소들은 모두 지워져버렸다. 수평 수직으로 완전히 대칭을 이루는 그 완벽함은 감탄을 넘어 경외를 불러일으킨다. (사실 이 모든 것을 그 때 다 알았던 건 아니다. 겨우 학부를 졸업하 고 역사공부를 막 시작한 석사1학기가 뭘 알았겠는가. 이 모든 건 2008년 NYU에서 미스에 대한 수업을 한 학기 동안 들으며 배우고 깨달었을 뿐. 암튼 한참의 시간을 지나 이런 내용을 배우며 5년 전 바르셀 로나에서 날 숨막히게 했던 미스의 힘의 실체를 본 듯 했다. 그래서 그는 알면 알수록 더 매력적인 것이 다.)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내부: 오닉스월(미스의 아버지는 아헨의 석공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미스 건축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는 이 오닉스 벽이 자주 사용된다. 십자 크롬 기둥과 저 멀리 보이는 코르베의 조각도 이 건축의 매력 중 하나)
유리벽을 돌아나와 밖으로 나오면 건물의 끝에 위치한 작은 못의 끝에 서 있는 corbet의 조각이 보인다. 개인적으로 미스 건축의 또 하나의 매력은 그의 건축과 당대 예술가들의 작품들과의 콜라보!라 생각하 는데, 바르셀로나 파빌리온과 corbet, seagram building과 칼더의 조각, 그리고 그의 아파트(레이크 쇼어 드라이브 아파트) 에 걸려 있는 paul klee의 그림까지! (미스와 파울 클레는 바우하우스의 동료이 기도 했지만 사돈지간이기도 했다. 배우였던 미스의 딸이 파울 클레의 아들과 결혼. 그래서인지 들리는 얘기에 의하면 미스가 파울 클레 그림을 가장 많이 소장하였다고(정확한 건 아니다.))
(본인의 아뜰리에에 앉아 있는 미스 반 데어 로에, 저 뒤의 그림, 분명 파울 클레다! )
아무튼 믿을 수 없겠지만, 스물초중반의 아직 순수했던 영혼을 가진 나는 그 날의 다른 일정을 모두 잊 은 채 파빌리온 앞에 앉아 그가 만들어낸 이 절대적인 아름다움 앞에 혼을 뺏긴 채 두어 시간을 있었다. 파빌리온 앞 연못에 비친 파빌리온의 그림자가 잔잔한 물결에 일렁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그의 그 절대 적 아름다움을 따라서라도 해 보려고 공들여 스케치도 해 보며....
숨은 미스 찾기. 바르셀로나에서 그렇게 가슴 벅차게 미스를 만난 이후, 다시 미스를 만난 건 무려 5년만이었다. 어렵게 뉴욕행이 결정되고 난 후, 뉴욕에서의 생활이 시작된 첫 날. 그 무엇보다 미스의 시그램 빌딩이 보고 싶 었다. 센트럴 파크도 아니고, 자유의 여신상도 아니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도 아닌 시그램 빌딩이 젤 먼저 가고팠다니! 그야말로 어쩔 수 없는 건축오타쿠. 아무튼 호기롭게 집을 나서 시그램빌딩을 찾으러 갔다. 수도 없이 (사진으로) 많이 본 건물, 어릴 적 울 아버지가 일하시던 삼일빌딩과 닮은 그 건물을 아주 쉽게 찾을 수 있으리라 호기롭게 장담하며. 근데 이 게 왠일인가. 이리 보아도 저리 보아도 시그램빌딩같은 게 너무 많다. 하긴, 서울에도 닮은 건물이 있는 데 뉴욕이라고 다를텐가. 게다가 시그램빌딩은 1950년대 이후 오피스빌딩의 전형을 만든 건물 아닌가. 결국 몇 블럭을 거닐며 헤매다 돌아왔다. 다음에 주소찾아 다시 와야지 하며.
(숨은 미스 찾기 #1. 뉴욕의 시그램 빌딩. 언듯언듯 비슷한데 다르다. 그 차이가 바로 Mies!)
힘들게 찾았기 때문일까. 정작 시그램 빌딩을 찾았을 땐 뭐랄까 허탈한 느낌마저 들었다. 이 거 뭐지, 그 냥 커다란 오피스 빌딩이잖아 하는 기분. 칼더의 빨강 파랑 조각과 양 옆의 연못, 그리고 건물이 뒤로 확. 물러나 있기에 생겨난 거대한 도심의 광장. 시그램빌딩은 오히려 조연인 양 뒤 편으로 고요히 물러나 있 었다. 건물의 크기 자체가 인간 스케일에서 느껴질 수 있는 크기가 아니기에 사진에서 보는 듯한 감동은 없었지만 그래도 기대를 품고 건물을 향해 걸었다. 그 숨막히는 건물 파사드의 멀리언(세로줄)들이 다가 오는 건 느끼며. 미스의 시그램빌딩이 그 유사품들과 다른 점은 바로 이 멀리언을, 건물 입면의 세로줄을 처리하는 방식이다. 중간 중간에 있는 기둥들을 도드라지지 않게 하면서 멀리언을 균등하게 전체 면에 분포시키는 기술은 바르셀로나 파빌리온에서 그러했듯 건물 면을 가장 군더더기 없이 단순한 면으로 처 리하기 위한 방식이다. 또한 하늘로 향한 이 마천루의 하늘 로 솟아오르는 수직성을 더욱 강조해주는 요소이기도 하다.
(미스, 칼더, 그리고 자유인.)
사실상 숨은 미스 찾기는 유학 생활을 끝내며 마지막으로 시카고 여행을 할 때 또 한 번 반복되었다. 미 시간호수 근처의 레이크 쇼어 드라이브 아파트를 찾다 또 한 번 시작된 미스찾기. 그래도 이번엔 쉽게(?) 찾았다. 그만의 완벽한 디테일을 찾으면 되는 것이엇으니...
(Lake Shore Drive 아파트, 그리고 그 주변 Mies van der Rohe 길과 미스 닮은 꼴 건물)
Less is more. , 그리고 God is in the detail. 사실 미스의 건축을, 그의 건축에 숨어 있는 절대적 아름다움을 이 짧은 글에 담는 건 불가능일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20개가 넘는 글을 써 오면서도 그의 건축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엄두도 못 낸 건지도. 그 래도 두서없이 써내려간 이 글을 통해 그가 이야기한 'Less is more'의 미학이 조금이라도 전달되길 바 란다. 그가 건축을 통해 보여준 적은 것, 단순한 것의 아름다움은 실제로는 정말 없는 것이 아니라 그의 신적인 디테일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이다. (god is in the detail도 미스가 한 말이다. 이에 렘쿨하스는 detail is in the money라는 말을 덧붙였지만) 바르셀로나 파빌리 온의 미끈한 크롬기둥은 사실상 크롬으로 그 내부의 접합 부분들을 부드럽게 감싸안았기에 가능한 것이며 시그램빌딩의 수직 멀리언이 만들어내는 파사드의 단순하면서도 리듬감있는 면 역시 기둥과 다른 부분의 차이를 지워내고자한 디테일이 만든 결과이다. 이처럼 우리 삶도 진짜 없는 게 아름다운 게 아니라 두드러진 부분들, 상처입은 부분들을 감싸 안고 그 차이를 지워내 단순하게 만듦으로 아름다워 지는 게 아닐까 라는 다소 감성적인 생각도 든다.
잘 보면 보이는데, 이 매끈한 십자 크롬 기둥 안에는 많은 요소들이 숨어 있다.
(미천한 스케치 실력으로는 도저히 흉내낼 수 없던 그의 완벽함. 완전함. 2002년 바르셀로나, 2007년 뉴욕)
아무튼 간에, 올 한 해도 건축이 좋아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리며... Happy X-Mies!!.
Mies van der Rohe(1886.3.27~1969.8.17) 20세기 건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건축가 중 한 명으로서 바르셀로나 파빌리온, 독일신국립미술관, 시그램 빌딩등의 건물로 우리에게는 친숙한 건축가 중 한 명. 그 는 ‘Less is more’ ‘God is in the detail’ ‘건축은 한 시대의 의지가 공간으로 옮겨 진 것으로 그러한 공간은 살아 있고 항상 변화하며 새로운 것’ 등의 말을 남긴 것으 로 유명하다. 피터베렌스의 사무실에서 실무를 시작한 후, 르꼬르뷔제 등과 함께 1927년 바이센호프 전시회를 기획하며 국제주의 양식을 만들어낸다. 1930년에는 바우하우스의 3대 교장으로 취임했으나 전쟁으로 인한 바우하우스의 폐교로 미국 으로 건너간다. 1937년부터는 일리노이공과대학(당시 시카고 아머학교)의 건축학 장을 하면서 시그램빌딩, I.I.T. campus 등 국제주의 양식의 건축물들을 만들어 낸다.
Seagram Building(375 Park Ave. (bet.52nd st. and 53rd sts. 1954-1958) 필립 존슨과 공동으로 설계한 시그램 빌딩은 국제주의 양식의 절정에 이르는 건물로 인 정받았으며, 이 건물로 인해 미스 역시 국제주의 양식을 선도하는 대가로 인정받게 되 었다. 또한 이 건물은 재료와 근대과학기술의 진보를 믿고 있었던 1950년대의 미국의 ‘총체적 문화’를 그대로 보여주기도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미스가 20세기 초반 에 독창적으로 고안한 이 유리박스형 건물들이 미국 및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가며 전 세계의 건물들을 일률화 시켜버리는 독창성의 종말로 여겨지기도 하여 에로 사리넨을 비롯한 많은 젊은 세대의 근대주의자들에게 비판 받기도 했다.
I.I.T. Crown Hall의 미스 흉상
경 계인
스푸트니크
대학에서 한참 방황할 무렵, 교내 서점안에서 ’90%가 하류로 전락한다’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있었다. 순간 왠 중년남성이 내게 다가와 눈을 반짝이며 그 책제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었다. 이미 그 책 내용에 의해서 졸지에 하류가 되어버려 울상이었던 난 “이미 진행중인 것 같은데요.”라고 대답했고 그는 마치 기다렸던 대답이라는 듯, 잠시 이야기나 나누자고 했다.
다크서클이 팬더급인 그의 인상이 치명적인 나머지 대략 10분간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는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바쁘다며 황급히 007가방을 들고 자리를 떴다.
‘뭐...뭐지?’ 대학 내 서점이란 곳이, 창창한 젊은이들이 모여 있는 곳이니 패기를 좀 나누어 받고 싶어서였는지도 모르겠다. 하필 내가 그 표본이 아니었을 뿐. -혹은 그 당시 내게서 절망의 호르몬을 탐지했는지도 모른다.
2006년에 발간된 그 책은 하류의 특징을 상세히 기술하는데 그 중 눈에 띄는 것은, ‘나다움’과 ‘개성’을 중시하는 것이 하류의 특징이라는 것이었다.
일본에서 당시 문제가 되던 36세이하의 젊은이들 중 ‘프리터(일정한 직업 없이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free-albeiter의 줄임말)족’으로 대변되고 무기력·무책임·무감동을 특징으로 하는 ‘3무 (三無) 세대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있다. 딱히 사서 읽어볼 만큼 깊이 있는 내용은 아니었다. 어쨌건, 당시 한 줄 한 줄이 나를 처절히 소외시키던 그 체크리스트를 잠시 소개하자. (동류의 책 ‘하류사회’의 리스트가 더 적절히 정리되어 그것으로 인용) <하류도(下流度)> 체크 리스트 1) 연간 수입이 연령의 10배(×10만엔) 미만이다(한국적으로 고치면 연령X100만원 미만). 2) 하루하루 편하게 살고 싶다. 3) 나답게 사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4) 좋아하는 것만 하면서 살고 싶다. 5) 만사가 귀찮고, 칠칠맞지 못하고, 지저분하다. 6) 혼자 있는 게 좋다. 7) 수수하고 눈에 띄지 않는 성격이다. 8) 패션은 내 멋대로다. 9) 식사하는 게 귀찮은 적이 있다.
10) 과자나 패스트푸드를 곧잘 먹는다. 11) 종일 집에서 게임이나 인터넷을 하는 일이 자주 있다. 12) 미혼(남성은 33세 이상, 여성은 30세 이상)이다. <절반 이상 ‘예’라고 답하면 ‘하류적(下流的)’이다.>
사람마다 정도가 다를 뿐이지, 자신이 하류로 느껴지는 이질감/ 계급적 소외감은 누구나 경험할것이다. 그러나, 나는 경제적 계급 외에도, 심리적 계급도 존재하며 그 경계에서 만들어지는 개인의 고통들에 대한 제대로 된 인식이 한국에서는 제로에 가깝다고 생각 한다. 특히, 누구도 젊은 ‘폐인’ 들의 심리적 고통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것 같다. 그저, 각자의 게으름과 무능력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사회분위기 때문에 그들이 자신의 고통을 속으로 삭히며 자기비하의 늪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
마치 국가재정의 세수를 늘릴 일꾼으로서만 그들의 존재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렇지 못한 젊은이들은, 실업률에 공헌하는 불청객으로서 취급당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지금도 SNS 에서는, 직접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을 면박하진 않지만, 각자의 ‘고통’과 ‘불안’을 이야기하는 행위가 어른답지 못한 행동이라며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트윗들이 추천을 받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불안한 사람’은 만나고 다니지 말라는 충고를 꺼리지 않고 한다. ‘불안한’,’예민한’, ‘감정기복이 심한’ 이라는 애매모호한 형용사를 달고 있지만 사실은 마음의 병에 해당하는 짐을 짊어지고 있는 사람들을 왕따시키는 일은 한국사회에서 은연중에 자주 벌어지는 것 같다. 각자 자기계발과 성공에 보탤 1초도 모자라고 자기보존하기에도 어려운 시대이기에 애초에 사람을 가려 사귀라는 것이다. 물론 어른이라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고 책임질 줄 알아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칠칠맞지 못한 사람으로 보는 차가운 시선이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문제를 햇볕에 말려 소독하지 못하는 큰 외부적 원인이 될수도 있다.
11월 18일 발표된 OECD통계자료에 의하면,
한국이 OECD중 자살률이 가장 높은데 우울증
치료(항우울제 소비량)비율은 가장 낮은 수준에 속하는 것으로 보도됐다. 한국의 우울증 환자들이 정신과 치료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제때에 진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시대의 2-30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그런 문제를 가지고 있다면 정책적으로도 각 개인이 적극적으로 경계를 극복할 수 있게 도와야 한다. 즉, ‘정신건강’복지정책을 제대로 짜야 한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철저히 그 소외라는 고통속에 마모되었던 사람 중 하나로서, 그런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글을 쓰게되었다.
이 글은 내가 시험해볼 수 있었던 개인적
차원의 해결방법에 대한 이야기와 시스템에 대한 생각들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심리적 경계양극화의 문제를 개인적차원에서 해결하기 위해서는 크게 두가지의 문제가 선결되어야 한다.
첫번째는 인식의 문제다.
젊은이들이 아웃사이더의 극단으로만 흐르는 생각의 방향을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느냐, 그리고 그것을 잘 소화해내느냐는 인식의 문제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일단 그 고통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나를 옥죄는 이질감과 열등감, 소외감을 극복해야 의지를 불태우고 무언가를 실행할 수 있다. 제대로 탈출구를 찾지 못하는 분노는 스스로에게 독이 되어, 의욕자체의 씨를 말린다.
2005년쯤 만성피로로 인해 강북삼성병원에 3일간 입원한 적이 있다. 당시 토스트집에서 아침 7시부터 12시까지 고작 5시간 아르바이트를 하였는데, 주인은 대기업을 그만두고 창업한 부부여서, 요령은 1도 없으면서 의욕이 너무 앞섰다. 나는 그 탓이라고 남 탓을 해보기도 하였다. 피곤이 계속되던 어느날 아침, 가위가 눌리지도 않았는데 몸이 바닥에 그대로 붙어있는 느낌을 받았다. 마치 무척추동물이 된 것 같은 그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병원에 가서 진단을 받아보니, 주증상은 빈혈로 인한 것이었다. 달맞이꽃종자유와 빈혈약을 처방받고 제때 자고, 제때 삼시세끼 (한 끼당 8천원) 를 먹고 3일을 지내니 바로 나아서 퇴원했다.
3일 입원에
종합병원답게, 30만원 정도. 결국 토스트집 알바에서 일한 돈을 다 날린 셈이다.
그러나 그 무기력하고 척추가 흐물거리는 만성피로의 상태-젊은 폐인들에게 자주 나타나는 증상은 심인증1)의 일종이라 생각한다. 왜냐하면, 애초에 제때 먹고 제때 자고 할 수 없게 만드는 심리적 스트레스를 컨트롤 할 수 있었다면, 저렇게까지 드러눕진 않았을 테니 말이다.
사실 당시 나는 대학 내에서 도태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고 있었고, 설상가상으로 가정파탄이 더해져 두배의 소외감, 분노가 속에서 응어리지고 있었다. 내가 사람들에게 일일이 세부적인 집안사정을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지인들에게 ‘불성실’,’감정기복이 심한’, 그리고 ‘ 불안한’ 인간이라는 낙인을 받아가며 점점 그들과 멀어져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음악핑계를 대며 학교를 떠나는 것 외엔 없었다. 분노가 그렇게 쌓이고, 그 화살은 온전히 내 자신에게 향했다. 그러한 자기파괴적 인식상태에서는, 아무런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영화주인공들처럼 복수심을 동력으로 불태워 악인이 되는 것도, 성정이 그다지 독하지 않은 내겐 허락되지 않은 선택지였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 어두운 통로를 지나오면서 내린 결론은, 세상이 날 이해해주지 않는다면, 나라도 세상을 이해해야 한다. 이해하는 만큼, 내가 덜 아프니까.
*1) 심리가 신체적증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는 병
즉, 철저히 자신 개인의 경험에만 집착해서 뇌 속에서 고통의 경로를 문신으로 새기는 것보다는 좀 더 큰 그림에서 인간을 들여다보고, 그 속의 하나로서 나를 좀 더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게 하는 힘을 기르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철학’이라는 이성의 도구를 이용해 격정을 식힐 수도 있고, 전문적인 상담사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남들에게 ‘질척거리는’ 어두움을 드러내는 상태의 경계인은, 대부분 자신의 마음의 병의 중력이 너무 강해서, 오로지 자신에게 골몰해 있기 때문에 타인과 대등하게 소통하지 못한다. 그러한 절박함에 대해 대부분의 상담사들이 하는 첫번째 임무는, 내담자가 자신의 생각과 자신자체를 분리시켜 객관적인 자신을 바라볼 수 있도록 물리적 거리를 제공해주는 일이다.
심리적 경계를 극복하는 두 번째 선결과제는, 일상행위이다. 인식의 전환을 기반삼아 생긴 목표와 의지대로 행동해나가는 것. 대부분 어떤 제도권에 성공적으로 진입한 뒤 계속 끊임없는 노력으로 그 속에 동화되는 결과로 나타난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바뀌어야 할 길이 천리만리인 사람에게는 이 말이 가장 절망적이고, 듣자마자 반항심부터 생기는 말이다. 내가 가장 싫어했던 말이 ‘분수를 알아야 한다’라는 말이었고 이것이 2위였다. 하지만, 저 하류체크리스트 중 5,9,10,11번 행위를 그만두는 것이 폐인에서 벗어나는 첫번째 단계일텐데 요리를 즐기고,운동하고, 모닝페이지2)를 써서 하루의 시작을 적극적으로 해나가고, 인간관계 및 소규모그룹 내에서의 약속에 대한 감각, 책임감을 다시 되살리는 것. 즉, 일상을 바꾸는 것이 정말 쉽지 않다. 아무래도 그것은 습관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기분에 따라 어떤 일을 하고 안하는 불안한 상태에서, 어떻게 즉각 보상이 주어지지 않고 지켜보는 사람도 없는 그 매일의 사소한 약속을 지켜나갈 수 있을까. 매일을 유지해나가는 힘. 그것을 기르는 것이 불안으로 고통받는 경계인들이 가장 먼저 착수해야 할 임무이다. 특히 재정관리 또한 그 힘이 없다면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이런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분에 따라 하루가 달라지는 사람은 돈을 모을 수가 없다. 즉, 심리문제 해결이 성공이고 나발이고 가장 첫 급선무인 것이다. 이 두 가지의 방법론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이야기 해 나가겠다.
*2)줄리아 카메론의 Artist’s Way에서 추천하는 아침일기이다.
Daily Archive 뷰 – 티풀! (bea-u-ti ful!; bju-ri-fl!)
나는 유럽에 머물면서 ‘아름다워 Beautiful’ 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어보았지만 이 흔하디 흔한 감탄사가 A가 말하는 것처럼 아름답게 들린 적은 없었다. 내가 처음으로 A의 ‘아름다워’를 특별 하게 인지하게 된 것은 A의 주도 하에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사운드 탐사(sound expedition)’를 마치고 약 이틀이 지난 저녁이었다. 사운드 탐사는 나, A, 핀란드 커플(J와 J)이 해안가 절벽 중 턱에 버려진 기찻길에서 여러 종류의 소리를 만들어내고 그 소리들로 즉흥 연주 -우리는 이 탐 사에 jam sesseion이라는 부제를 붙였다.- 를 했던 공동 작업 및 실험이다. 아주 늦은 밤이었 고, 그곳을 향해 오르고 내렸던 길을 생각하면 붉은 빛과 습기, 흉가, 거친 풀, 다듬어지지 않은 계단, 검은 물과 같은 이미지가 떠오른다. 우리가 그곳에 도착했을 때 주변은 완벽할 정도로 조 용했고, 바람은 잦았으며, 위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야경은 작은 탄성을 불러 일으켰다. 우리는 주운 돌과 준비해온 숟가락으로 쇠철봉을 치거나 돌바닥을 두드리면서, 또는 몸을 이용해서 소 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흔치 않은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시작했던 그것은 자연스럽 게 무작위한 소리들을 한데 어우러지게 하고자 하는 의지로 변했다. 예를 들어, 나는 다양한 소 리들 속에서 무의식적으로 특정 리듬을 찾아내거나 질서를 만들려고 노력했고, 큰 소리들 속에 서 미세한 변화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담당했다. 소리의 개별성도 그랬지만, 놀라웠던 것은 각기 다른 소리들이 어느 순간 일정한 규칙과 조화를 지닌 음악으로 들렸다가 또 어느 순간 순식간에 난잡한 소리로 해체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무계획적으로 만들어낸 소리들은 이 두가지 요소가 교묘하게 섞여 그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 독특한 음악이 되었다. 이 과정은 가끔 주체할 수 없을 만큼 큰 감정적 소모를 일으켰고, 꿈을 꾸는 듯했으며, 의식과 무의식 사이를 오가는 명상적인 순간을 만들어냈다. 그 조용한 폐허에는 화음과 불협화음, 강약중간약, 가깝고 먼 울림과 진동 같은 음악적 요소가 가미된 소리들로 가득했다. 나중에 이 탐사를 기억하며 A가 했던 말에 따르 면, 그 때의 합주는 우리 중 어느 누가 주도하지 않은 채 동등하게 진행되었고, 그날의 날씨, 시 간, 장소 모든 것이 작은 소리마저 집중할 수 있게 완벽했으며, 비현실적일 정도로 신비로웠다 고 했다. 우리가 탐사를 마치고 다시 현실 세계의 소음 속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모두 엄청난 간 극을 느꼈던 것으로 기억한다.
A는 그때 녹음한 소리를 편집하여 모두에게 공유했는데 기대 이상으로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것을 듣고 직관적으로 ‘아름다워! How beautiful!’ 라고 말했다. 이틀 뒤 우리는 다같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핀란드 커플이 저녁을 준비하는 동안 A와 나는 식사에 필요한 재료를 사러 같이 마트를 가게 되었다. 도중에 우리는 우리가 했던 연주에 대해 의견을 나누었다. “우리 는 평소에 각각의 소리들에 집중하거나 자세히 듣지도 않잖아, 그런데 그런 소리들이 얼마나 아 름다운지!” 간단한 언급을 마치고 나와 A는 거의 동시에 “정말 아름다워!”라고 외쳤는데, 바로 그 순간이 처음으로 A의 ‘아름다워’를 독특한 발음과 목소리 톤과 함께 인지한 순간이었다. 나는 짧은 시간 동안 우리가 폐허에서 경험했던 분위기를 머릿속으로 되짚어 보고 있었고, A가 ‘아름 다워’하고 외치는 순간, 그 표정과 목소리가 내가 기억하는 이미지들과 겹쳐지면서 그 단어를 단 하나의, 유일한 단어라고 느꼈다.
그 이후로 나는 A가 평소에 습관적으로나 의도적으로 ‘아름다워’라는 단어를 많이 쓴다는 것 을 알게 되었다. A는 ‘멋져’ ‘대단해’ ‘귀여워’ ‘좋아’ ‘놀라워’ ‘맛있어’ 등의 표현을 모두 통틀어 아름답다고 표현하는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A가 말하는 ‘아름다워’는 무책임하거나 핵심이 결 핍되어 있거나 텅 빈 말처럼 들릴 때가 있었다. 더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하지는 못하는걸까. 그러나 어느 순간이 지나자 나만의 논리대로 그 습관을 이해하게 되었다. A는 자신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대상이나 순간을 전체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르게 느껴지는 것이 분명 한 각각의 개체를 구분지어 표현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았다. 그 전체가 통틀어 ‘아름 다워’라는 말로 귀결되는 것이다. 나는 내가 사랑하는 순간을 자세히 묘사하려고 하면 할수록 그 것을 완벽하게 표현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마다 ‘좋아, 대단해, Nice, Good’와 같은 단순한 감탄사를 내뱉는 것에 그치게 되는데, 그 말은 모든 것을 말하는 동 시에 모든 것을 말할 수 없는 결핍까지 포함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이것을 멍청하고 불만족스럽 다고 느꼈지만 A는 그 자체를 가볍게 받아들이고 오히려 즐기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점에서 A 의 ‘아름다워’는 나에게 긍정적이고 행복한 표현인 동시에 그것을 온전히 묘사하는데 실패한 결 과물처럼 들렸다. 그러나 나는 A가 개별적으로 가지고 있던 특유의 몸짓과 목소리 음색과 같은 부차적인 표현 방식들이 단어 속에 비어있는 부분을 채우고 있다고 느꼈다. 나는 A가 말하는 ‘아 름다워’ 뿐 아니라 A가 그 단어를 말하는 상황, 에너지 자체를 좋아하게 되었다. 가끔 ‘바로 지 금 이 순간에 제발 아름답다고 말해줘’라고 생각한다든지, 하루에 한번이라도 A의 ‘아름다워’를 듣지 못하면 들을 때까지 기다리게 된다든지, 그 말을 듣고 싶어서 의도적으로 흥미로운 상황을 연출하려고 한다든지 하는 집착에 가까운 현상을 보일 때도 있었다. 나는 A가 말하는 거의 모든 ‘아름다워’를 좋아했지만 가장 좋아했던 ‘아름다워’는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나오는 것이었 다. 한번은 내가 요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단순히 파와 마늘을 기름에 굽고 있었는데 A는 팬 위에서 지글대고 있는 야채의 파편들을 보고 아름답다며 감탄했다. 또 어떤 날은 지붕 위에 앉아 하늘을 바라보다가 창틀에 삐져나온 낡은 철근으로 눈을 돌리더니 아름답다고 말했다. 하 늘과 고철, 이 두 가지의 무관한 것이 ‘아름다워’로 연결되었다.
A가 이곳을 떠나기 몇일 전, 우리는 다같이 할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A는 대만식 야 채 두부 볶음을 준비하고 있었고, 나는 주방 입구에 앉아 요리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A는 갑 자기 무엇이 떠올랐다는듯이 어떤 단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그때 야채가 기름에 볶이 는 소리 때문인지, 그 순간 집중을 하고 있지 않아서 인지 몰라도 나는 그 단어를 자세히 듣지 못했다. 나중에 열심히 기억을 더듬어 보아 M으로 시작하여 Cha 와 R비슷한 소리가 들어있다 는 것을 생각해냈지만 확실하지 않았다. A는 그 단어의 의미가 어떤 말을 습관적으로 반복해서 말하게 되면 말하는대로 될 것이라는 믿음과 말을 효능, 힘에 관련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 말이 자신에게는 ‘아름다워’인 것 같다고, 이것이 ‘아름다워’를 반복해서 말하는 이유인 것 같다 고 말해주었다.
A가 떠나고 나는 꽤 힘든 시간을 보낸 것 같다. 허전했고 즐겁지 않았다. 나는 심한 감기에 걸려 말을 거의 하지 못했고, 요리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A가 ‘아름다워’를 말하는 이유라고 말 해준 그 단어를 기억해내려고 노력했다. 나는 희미하게 기억나는 발음과 소리에 의존해서 그 비
슷할 것 같은 단어들, 이를테면 Macharu, Meracha, Marachu, Machur 등 거의 모든 경우의 수 를 검색해보고, 역으로 의미를 검색해보기도 했다. A에게 그 단어에 대해 다시 말해 달라고 물어 볼 시기를 놓친 것이 후회되었다. 거의 3주가 넘는 기간 동안 그 단어가 떠오를 때마다 찾아보았 지만 알아내지 못했다. 그러는 동안 감기가 나아갔고, 그 단어를 찾는 이유는 더 이상 A 때문이 아닌 그 단어 자체에 대한 궁금증, 기억해내지 못하는 답답함 때문이 되었다.
엊그제 그동안 내가 북마크 해온 작가들의 웹사이트를 정리하던 중 저장을 한 이후로 단 한 번도 들어가보지 않은 한 작가의 웹사이트를 들어가보았다. 나는 그녀를 직접적으로 알지 못하 지만 내가 졸업하기 전 해에 같은 학교를 졸업했고, 거의 일여년 전에 그녀와 같이 전시를 한 적 이 있는 친구가 그녀의 작업 중 하나를 나에게 소개시켜 준 것이 기억났다. 그녀는 슬로바키아인 이고, 사진과 글쓰기 작업을 토대로 낭독 퍼포먼스, 혹은 오디오-영상 작업을 하고 있었다. 그녀 의 예전 작업부터 차례로 둘러보던 중 “은 조각상들의 도시(The City of Silver Statues)”라는 작 업이 눈에 띄었다. 아마 제목에서 연상되는 이미지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작업은 오래되어 보 이는 사진과 함께 자신이 쓴 글을 읽는 본인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비디오 작업이었다. 따뜻하면 서도 차가운 사진의 분위기가 흥미로웠고 듣기에 편안한 목소리 때문에 사진에 눈을 떼지 않으 면서 이야기에도 집중할 수 있었다. 약 3분 정도가 지났을까, 한 문단이 끝나고 사진이 화이트 아웃되기 직전 마지막 문장으로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 “This can’t be true, this can’t be...” I repeat this words like a mantra until I fall asleep.’ 그 순간 나는 그녀가 말하고 있는 문맥이 완전히 이해되면서 ‘Mantra’라는 단어가 마치 눈에 읽 히듯이 귀에 잡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만큼 확고하게 무언가를 확신했던 적이 전에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그제서야 흐릿하게 기억났던 A의 발음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만추아” A는 이 렇게 발음했다. 나는 그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고 다시 들어보았다. 이야기의 내용은 이러했 다.; 씨비소크(Sibysok)는 중부 유럽의 가장 주요한 종이 생산지이다. 종이는 섬유소(Cellulose) 를 요리하여 만들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생산되는 가스와 불쾌한 냄새는 도시 전체 곳곳에 스며 들어있고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그녀는 자신이 태어난 곳이자 부모님이 살고 있는 그 도시를 방 문했다. 그녀가 그곳에 갔을 때 이상하게도 그 냄새는 사라져있었고, 사람들은 물론 동물조차 보 이지 않았다. 도시는 아주 조용했다. 그녀는 부모님의 집에서 침실 문을 열었을 때 눈부신 빛과 마주하는데 이것은 커다란 금속 표면에 반사된 빛이었다. 그녀는 빛이 나는 쪽으로 다가가 엄마 의 얼굴을 만졌는데 아주 차가웠고 은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실제 사람 크기의 은 조각상들이 부 모님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녀는 너무 놀라 도망쳐 달아나면서 이웃에게 도움을 청하기도 했지 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가 달리면서 창문 너머 너머로 본 것은 은으로 만들어진 사람들, 동물들이었다. 도시 전체의 생명체들이 은 조각상으로 변해있었다. 그녀는 꿈 혹은 소 설에 가까운 이 이야기를 마치고 이어서 다음 문단에 이에 대한 사실 근거를 덧붙인다.; 2001년 3월 15일에 시비소크의 종이 공장에는 이전에 한번도 쓰여지지 않았던 새로운 공기 여과 장치 가 설치되었다. 얼마 되지 않아 이 필터의 액체 층에 알 수 없는 성분의 가스가 만들어진다. 이 것은 후에 과학자들에게 Liquidum Argentarium Philosophoris 라고 이름 붙여졌다. 아직도 어
떻게 이것이 가능한 일인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 필터를 거친 산소는 혈액 세포를 은으로 바 꾸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공기가 몸속으로 침투되면 초반에는 소수의 세포가 화학적 변화를 거치면서 기억력 감퇴나 방향감각 상실과 같은 사소한 뇌의 손상을 입히지만, 이것이 몸 속의 기관들에 퍼지게 되면 목숨을 잃게 된다. 그리고 모든 유기체가 죽게 되었을 때 은이 피부 표면으로 올라오면서 반짝이는 금속 껍질을 형성하게 된다고 한다. 시비소크의 시민들과 동물 들은 말 그대로 은으로 변했고, 자신의 몸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모른 채 죽어갔다. 현 재 이 현상은 ‘은 피부(Callum Argenteus)’라고 부른다고 한다. 나는 시비소크와 그곳의 종이 공 장에 대해, 그리고 은 피부 현상에 대해 더 알아보고 싶었지만 적어도 인터넷 상에서는 이와 관 련된 어떠한 정보도 찾을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오랜만에 아주 이상한 꿈을 꾸었다. 나는 포르토에서 사람들이 붐비는 장소 중 하나인 볼랴오 시장(Bolhão Marcket)에 있었다. 어둑해진 밤이었는데도 시장의 문이 열려있었 다.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입구에 있는 작은 제단의 선반에서 반짝이는 것을 발견했다. 거기에는 평소에 *치유를 비는 의미에서 밀랍으로 만들어진 발과 유방, 귀, 어린아이의 조각상 이 놓여져 있었다. 그런데 그것들이 금속으로 변해 있는 것이었다. 그 시장은 사운드 탐사를 하 러 가면서 지나던 길이었고, 우리는 그때 처음으로 그 밀랍 조각상들의 정체에 대해 궁금증을 가 지기 시작했다. 안으로 들어서자 시장에 쌓여있는 모든 과일과 채소, 물고기, 꽃 나무들도 금속 으로 변해 달빛에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때 새삼스레 달빛의 존재감을 실감했던 것 같다. 그 중 간 중간에는 내가 교회 주변을 오고 가며 보았던 밀랍 조각들이 구석에 서있거나 물건들 위에 눕 혀 있었다. 마치 우주 한 가운데에서 수많은 별과 알 수 없는 행성에 둘러싸여 있는 것 같았다. 그 와중에 나는 ‘아름다워, 아름다워, 아름다워 / 뷰티풀, 뷰티풀, 뷰티풀…’ 이라고 반복해 말하 면서 걸어 다녔다. 사방은 조용했고 내가 말하는 소리만이 내 입과 귀 주변에 머물러 맴돌았다. 꿈에서 깨니 아직 한밤 중이었다. 나는 그때, 꿈에서 아름답다고 느낀 것은 사실 하나도 없었다 는 것을 깨달았다. -아름답다기 보다 모두가 잔인했다.- 환상적으로 보였던 그 공간은 우주가 아닌 쇠와 철근이 쌓인 폐허처럼 기억되었고, 나는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지도 않았으며, 그것을 반복해 말하는 것은 더더욱 하고 싶지 않았다.
*포르투갈의 전통적인 기독교 신앙에서 비롯된 조각상들로 인체 일부 혹은 전부의 형상을 밀랍 (wax)으로 만든다. 봉헌 촛불(votive candle)과 비슷한 의미로 파티마(Fatima, Portural)에서는 이 조각상들을 쌓아 불에 태우는 의식을 하기도 한다. 흥미로운 것은 발, 손, 가슴, 얼굴, 엉덩이, 코와 같은 신체 일부 뿐 아니라 심장, 폐, 간, 쓸개, 대장과 같은 내부 기관을 형상화하기도 한다 는 것이다. 내가 가장 충격적으로 본 것은 태아가 들어있는 자궁 형상이었다.
글.김혜미
Road - 12 (셈) 글. exxx
드디어 시리즈의 마지막 12월에 이르렀습니다. 얕은 지식의 바닥까지 박박 긁어가며 종착역에 도착한 셈입니다. 어헝헝 ㅠ. 저의 부족한 글을 읽어준 여러분들의 수고와 애정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시작합니다. 얼결에 시작한 한국음식과 관련된 시리즈 였지만, 낱개의 메뉴와 그것에 대한 감상 혹은 조리법에 크게 얽메이지 않으려고 얼개를 짜 놓았더니 나중에는 그물이 하두 커서 걸릴 이야기가 하나도 없어서 고생을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도 그 고생이 끝나지 않아 멈칫거리고 있습니다.
그래도 오늘이 마지막화이니 주머니를 죄 뒤집에 동전을 찾는 마음으로 ‘셈’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 지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예전에도 이야기 했듯 저는 보통 맛있으면 값이 좀 비싸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철저히 제 입맛에 기준을 두고 맛이 있는 음식은 다소 비싸도 좋은 경험이라고 여기고, 맛이 없는 음식은 비싸면 야멸찰 정도로 비난을 하는 편입니다. 친구들은 가끔 이런 모습에 당황하기도 합니다. 온화하던 우리집 강아지가 미친개 마냥 이를 드러내는데 어찌 당황스럽지 않을까요. 그래도 남이 사는 메뉴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맛이 없는 집에서는 일부러 돈을 내는 일도 있고요. 꿀먹은 벙어리가 되지 않기 위해서 나름 최선을 다합니다.
물론, 이것은 제가 가난해서 이기도 합니다. 가벼운 주머니 탈탈 털어서 행복해 보자고 뛰어들었는데 진흙탕이라면 어찌나 슬픈일입니까. 제 돈도 아깝고 들어간 재료도 아깝고 남은 인생의 소중한 한 끼를 이상한 것을 먹으면서 보낸 것도 참 속이 상하는 일입니다. 그 중 오늘은 재료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저는 그동안 시골과 많이 얽혀 있었지만 농사에 관여했다 혹은 도움을 주었다고 느낀 것은 올 해 밖에 없었습니다. 올해는 그래도 법씨를 틔울 때, 모판을 나를 때, 고추를 수확할 때, 콩을 수 확할 때, 들깨를 수확할 때, 각기 조금씩 참여해 보았습니다. 일하고 보니 드는 생각은 딱 하나 뿐이더군요. ‘이거 수고에 비해 물건 값이 너무 싼거 아냐?’ 어머니께 물어보았습니다. “이 고추밭 농사 다 지으면 얼마나 벌어요?” “올해 고추금 생각하면 그래도 한 120만원 정도?” “이거 다하고 다리 아파서 병원다니면 병원비가 더 나오겠네.”
일하느라 경황이 없어 농담으로 한 말이지만 실제로 셈을 해봐도 그렇겠다 싶었습니다.
쌀도 마찬가지 입니다. 저희집에서 만드는 쌀은 소매가로 20KG 기준 45000원 정도 받는데 ( 이것도 사람들의 심리 안에서는 비싼 편입니다.) 이것을 돈으로 환산하면 100G에 223원 정도 합니다. 새우깡이 90G에 1000원 정도 하지요. 물론 공산품과 농작물을 비교선상에 놓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진정 새우깡이 쌀의 다섯배 정도의 가치를 지닐까요?
과자 값이 오르고 또 오르는 동안 쌀값은 얼마나 올랐을까요? 새우깡이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어가는 기술 발전이나 맛의 변화를 꾀했다면 이런 비교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새우깡도 십수년전 그 새우깡, 쌀도 십 수년전 그 쌀입니다. 하지만 과자는 사람들의 인식 변화 와 식습관 변화를 따라서 유동적으로 포지셔닝을 해왔죠. 지금 1천원짜리 과자라고 하면 아마 사람들이 싸다고 할 겁니다. 쌀은 어땟을까요? 그저 조용히 식탁의 한 켠에 앉았을 뿐입니다. 쌀 뿐만 아니라 당근이나 감자는요? 하지만 이런 글을 쓰고 있는 저도 비싼 농작물을 보면 움찔합니다. 솔직히 그렇습니다. 팥죽을 한번 쑤어볼까 하다가도 국내산 팥 가격에 움찔하고요. 양파 한망을 사면서 비싸다고 툴툴 댑니다. 부끄러운 일이죠.
그래도 올해는 농사 폼 좀 잡아본 탓에 반감이 덜 하긴 합니다. 값에 움찔해도 입 밖으로 비싸다는 말은 안합니다. 이해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값이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소비자는 대부분 알고 있죠. 마트의 양파가 비싸다고 농민에게 양파값이 충분히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요. 그러니 값이 올라도 탐탁지 않습니다. 이 돈이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죠. 그런 측면에서 생각하면 보다 큰 틀에서 생각을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투명한 유통 구조를 통해 안정적인 수익을 보장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농촌의 어르신들이 다 돌아가시면 누가 농사 짓는답니까? 대충 손으로 계산해봐도 농사 짓고 살만하겠다는 결론이 나와야 뛰어들죠. 시골에가서 농사를 지어보면 그것이 얼마나 고단하고 몸서리 쳐지는 일인지 깨닫게 됩니다. 하루 종일을 일해도 알아주는 이가 없는 일입니다. 흙먼지를 뒤짚어 쓰며 지난하고 또 지난한 시간을 거쳐서 맞이하는 수확의 기쁨. 이렇게 힘들게 작물을 일궈낸 사람에게 정확한 셈을 하는 일. 중요하지 않을까요? 멋진 일이기도 합니다. 생협을 통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고 제도를 통하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선진국에서는 농민들에게 기본소득 수준의 생활 보조를 하는 방법도 시행중입니다. 그런데, 그런 아이디어가 있을 때 우리는 반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일단 저는 찬성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