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 입니다.
나의현대예술순례 - 09. 지금은 없는 것들을 위하여 / 글. 사진. 황정운 즐거운 편지 - 기형도 ‘소리의 뼈’ / 글. 하얀병아리 영화로 읽는 시공간 - 팟캐스트 전성시대: 영화 팟캐스트의 득과 실. / 글. 곡주대비 영화수업 - 장르의 탐구 ‘로맨틱 코미디’ / 글.김 뼈와 살들 - 글. 그림. 준가 옆사람 인터뷰 - 13. 나누는 음악 / 글. 정리. 이내 도토루의 하루 - 그림. 호지 건축이 좋아 - 29. 자하 하디드 / 글. 사진. aoikasa 경계인 - 나르시시즘이라는 벽 / 글. 스푸트니크 Daily Archive - 거울아 거울아 / 글. 모음. 김혜미 의미 없는 이야기 / 그림. 글. 철민 invisible / 글. 김성연 한 쪽 눈으로 바라본 세상 - 4. 어디로 간거야? / 글. exx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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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입니다. 세상에 지난 선거에도 하고 있었는데 요번 선거까지 생존을! 이런 성실하고 귀엽고 무시무시한 무가지를 보셨습니까? 여러분 여러분이 이 잡지가 기괴하고 이 잡지가 성기고 이 잡지가 난해하다고 이야기 하 지 마시고 요놈이 사랑스럽고 요놈이 귀여운 구석이 있고 요놈이 측은하다고 친구 와 엄마 아빠에게 추천해 주시면 더 오래 갈 수 있겠지요? 투표 뿐만 아니라 저희 잡지에게도 하나의 사랑을 나누어 주십시오. 저는 요즘 선거 유세를 조금 도와보고 있습니다. 생전 모르는 사람들에게 인사도 많이 하고 연고도 없는 곳을 하염없이 걷기도 합니다. 그런데 걷다보면 사람들이 표정이 좋지 않은것이 참 아쉽습니다. 후보의 지지여부와 상관없이 땅을 보고 걷 거나 안좋은 일이 있는지 표정이 어둡고 기운이 없는 모습이 자주 보여 안타깝습 니다. 가뜩이나 꽃도 많이 피는 계절이라 가장 즐거워도 모자랄 시기인데 그런 모 습을 보면 너무 속상합니다. 주변에 좋은 분들에게 연락을 해 봄이 왔다고 이야기 해주세요. 같이 꽃 구경도 가시고 술도 한잔 하시고 겨울 동안 얼었던 마음도 녹이고 슬쩍 정 당 지지유세도 하시면서 좋은 봄날을 보내시길 기원해 봅니다. 선거 라는게 어떻게 보면 세상의 흐름과 같아서 휙! 탁! 하고 한번에 바뀌지는 않 습니다만은 또 과거와 완전히 똑같지도 않으니 결과를 놓고 너무 슬퍼하는 일은 없으셨으면 합니다. 오늘도 월간이리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사랑이 저희에게는 큰 힘 이 됩니다. 월간이리 공식 트위터에서 필진들의 트위터 계정 등을 홍보하고 있으니 언제든 @ postyri 를 통해 소식을 받아보세요. (페이스 북 페이지도 있답니다.) 월간이리 exxx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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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현대예술순례 #09 지금은 없는 것들을 위하여
글. 황정운
1_ 한 십 년 전이었을까, 신입생일 때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 정문 앞에는 지하도가 하나 있었다. 정문 앞은 왕복 4차선의 도로가 바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그 도로를 경계로 학교 쪽은 성북구 안암동이었고 그 맞은 쪽은 동대문구 제기동이었다. 평소에도 차가 많이 다니는 지역이고 상권이 어느 정도 있는 지역이라 학생들의 발걸음이 잦은 곳인데 늘 불편했던 것이 지하로 왔다 갔다 하는 점이었다. 폭이 넓은 도로도 아닌데 굳이 지하로 내려갔다 올라오는 그 길은 늘 어둡고 습했지만 당시에는 그 지하도만이 두 공간 사이의 유일한 연결 통로였다. 가끔 지하통로에서 우리가 원만이 형이라고 부르는, 100원만 100원만 하며 돈을 구걸하는 걸인을 만나기도 했다. 나보다 10년 정도 위인 95학번 선배들도 원만이 형을 봤다고 하니, 어쩌면 원만이 형은 고려대 지하보도의 산 증인일 수도 있겠다. 그런데 아쉽게도 2006년 4월 정문 앞에 아주 잘 생긴 횡단보도가 놓인 뒤부터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안암동에서 제기동으로 넘어가는, 20미터도 되지 않는 짧은 거리를 건너가기 위해 지하보도를 이용하지 않게 된 것이다. 어둡고 축축하고 지하도를 건너가지 않는 것은 좋았다. 다만 그 어두운 길을 걸으며 느껴지던 ...... 내가 이곳으로 저곳으로 건너가고 있다는 움직임의 인식, 그 감각에만 집중한다는 건 일종의 쾌감과도 같았다. 그때의 그 지하보도는 일종의 ‘공간의 연결’이었다. 지상에서는 한 눈에 반대편이 눈에 보이지만 결코 쉽게 닿을 수 없는데, 고려대학교 앞 지하보도는 그 단절된 공간을 이어주는 연결고리였던 거다. 단절된 공간에 대한 지하에서의 연결은 횡단보도라는 지상에서의 연결로 단절되게 되었다. 단절된 것은 지하도만이 아니었다. 원만이형도 지하도와 함께 우리들의 대학 생활에서 조금씩 멀어지게 되었다. 지하도가 생각났던 건, 비슷한 시기에 대학 생활을 보낸 직장 동료와 함께 친구와 함께 점심을 먹고 경복궁 방향으로 산책을 다녀온 그 이후였다. 종로 조계사와 트윈트리 빌딩을 지나 경복궁으로 걷던 중 시야에 동십자각이 눈에 들어왔다. 동십자각 멀리로는 광화문의 오른 편이 보인다. 4년 전 서울시 도시갤러리프로젝트 탐사 차 이곳을 찾았을 때와 변함없이 동십자각은 경복궁 담장에서 분리되어 외로이 서 있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 놓인 지하보도. 조금씩 잊혀지고 사라져가고 있지만 서로 다른 공간을 물리적으로 연결한다는 축축한 감각 …… 역시 그것이었다.
2_ 동십자각 바로 앞 삼거리에는 폭이 100m가 넘는 지하보도가 놓여져 있다. 서울시는 2007년 도시갤러리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동십자각 지하보도 개선 사업을 시작하여 어두운 지하도를 밝게 바꾸고 디자인을 새롭게 바꾸기로 한다. 한국과 미국에서 건축 및 도시계획을 전공한 이영조 작가가 진행한 「 동십자각 지하보도; 지하도(地下圖)」 프로젝트는 동십자각의 십자를 기본 패턴으로 차용하여 빛과 패턴의 조화로 지하보도를 새로운 디자인 공간으로 변화시키고 있다. 벽면은 강화유리를 사용하고, 천장은 바라솔로 마감하여 한층 안정성과 빛의 파장을 원활하게 하였는데 흥미로운 것은 지하도 양쪽 벽면의 패턴이 다른 점이었다. 한 편은 강화유리 너머로 빛을 투과하였고 다른 한 편은 벽면타일을 배치하여 십자 무늬를 패턴화하여 삽입하였다. 전반적으로 어두침침했던 동십자각 인근 지하보도를 새로운 디자인 공간으로 바꾸려는 노력이었는데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보존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동십자각 지하보도가 재미있는 건 이 디자인이 아니라 공간의 연결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이곳은 서로 다른 공간들의 경계를 제각기 연결하는 기묘한 곳이었다. 사간동, 삼청동, 종로1동이 이 지하도를 무대 삼아 연결되고 있다. 어느 장소에서나 지하를 통해 다른 곳으로 나오게 되면 또 다른 공간으로 나오게 되는 것이다. 더 재미있는 건 역사를 연결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동십자각은 원래 서십자각과 함께 경복궁의 동, 서를 지키는 망루였다. 때문에 100년 전 까지만 해도 경복궁에서부터 동십자각까지 연결되어 있었고 망루를 오르는 계단도 존재했다. 그러나 일제시대를 거치며 계단과 담은 헐려 없어지고 외로이 동십자각만 남게 된 것인데, 조선총독부가 종로 일대의 도로공사를 하며 동십자각은 지금 자리로 옮겨지게 되었다. 단절이라는 비극을 겪었던 동십자각을 등지고 지하보도를 건너면 이미 현대적으로 변한 종로와 안국동, 그리고 저 멀리 인사동이 나온다. 이 지하보도는 단순히 공간을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비극을 십자무늬로 환기하고 나아가 근대와 현대를 연결하고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함께 걷던 친구에게 들려주었더니 많은 것이 생소하다는 반응이었다. 동십자각의 존재도 생소했지만, 광화문에서부터 동십자각에 이르기 까지 담장이 연결되어 있었다는 것 역시 그는 흥미롭게 듣고 있었다. 지금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것을 그때와 마찬가지의 감각으로 되살리기란 쉽지 않다. 최소한 지금과 다른 시간에 이 공간에는 이러한 것이 있었음을 증언할 수 있는 흔적들이나마 필요했다. 최소한의 흔적들을 최대한의 상상력으로 다시 복원하고 연결하고 재생하는 것이다. 나는 그런 의미에서 동십자각 지하보도 프로젝트가 꽤나 감사하게 느껴졌다.
3_ 동십자각을 뒤로 하고 회사로 돌아오는 길. 교보문고에 들렸더니 제법 오래 된 표지의 시집들이 문학 베스트셀러 코너에 진열되어 있다. 소와다리 출판사에서 옛 시집 초판본 혹은 증보판을 복원하여 펴낸 시리즈였다.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1925)>, 백석의 <사슴(1936)>, 그리고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1955)> …… 사실 최근 영화 <동주> 개봉과 함께 윤동주의 증보판 시집이 서점가를 휩쓸고 있는 것은 들었지만, 김소월과 백석의 초판본 시집도 발간된 것은 몰랐다. 베스트코너에 꽂혀 있는 윤동주 시집을 읽어보았다. 활자 인쇄로 찍힌듯한 듬성듬성한 인쇄술, 세로로 쓰여 있는 글자들, 중간 중간에 읽기조차 쉽지 않은 한자, 그리고 그 시대의 언어들…… 이 책이 쉽게 읽혀지지 않는다. 윤동주의 걱정과 같이 쉽게 쓰여지진 않았지만 쉽게 읽히는 것도 아니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갖고 있는 것,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더 큰 가치가 느껴지는 듯 했다. 사실 그것은 조금은 걱정스러웠다. 이런 초판본 바람에 대한 출판계 내부의 반응은 우려와 기대가 엇갈린다. 한 출판사 대표는 “초판본은 맞춤법도 다르고 한자가 많아 읽기 불편하다. 그런데도 초판본에만 관심이 쏠리는 것을 보면 책이 팬시용품처럼 취급 받는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 …… (중략) - 중앙일보 김동근 소와다리 대표 “투박한 초판본에 끌리는 독자 마음 읽었죠” (3/14) 그러나 나는 자꾸만 헐려 없어진 경복궁 담벼락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사방이 끊어진 채 외로이 서 있는 동십자각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2006년 횡단보도가 설치되고 1년 뒤인 2007년 남아있던 흔적조차 철거되어 버린 고려대 정문 앞 지하보도가 생각나는 것이었다. 그랬다. 누군가 이곳에 무엇이 있었음을 증언하지 않는다면, 그 흔적을 기록하려 분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기억은 놀랍게도 금방 휘발될 것이었다. 사라져 가는 것 역시 안타깝지만 무엇이 사라져갔는지를 증언하는, 과거와 현재의 연결이야말로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젊은이들이 어떤 마음에서 기행과 동주의 초판본 시집을 몇 만 부씩 사갔는지 그 이유에 대한 집요함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건 멀리 떨어져 있는 것들, 지금 노력하지 않으면 더 멀리 단절되어 버리는 것들과의 연결이었던 거다. 그 단절의 연결이야말로 어쩌면 현대예술의 책무, 혹은 현대예술을 과거와 다른 현대의 것이라고 선언할 수 있는 최소한의 자격이 아닐까, 라고 나는 생각하게 되는 것이었다. 아무도, 아무것도 기억되지 못하고 사라져 가는 시간이 찾아오기 전에…… / [끝]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윤동주 (1948년 정음사 초판본)
즐거운 편지
글. 하얀병아리
기형도 - “소리의 뼈” “공동체의 비극은, 내겐 너무나 복잡 미묘한 삶의 많은 국면들이 타인의 삶에서는 아주 쉽고 단순해 보인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삶도 사랑도 심지어 죽음도, 그것들을 대상화하는 순간 우리는 쉽사리 대담해진다. 요컨대 무례해진다.” 한국일보 최윤필 기자는 다섯 달이나 지나 발견된 전직 재단사의 고독사에 대한 기사를 “대상화”라는 단어로 시작한다. ‘대상화’란 단어의 사전적 정의는 ‘어떠한 사물을 일정한 의미를 가진 인식의 대상이 되게 함’이다. 인식의 대상이 된다는 건 좋게 말하면 나의 시각으로 타인을 응시하는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나의 기준으로 재단한다는 것이다. 슬라보예 지젝은 이 대상화의 과정에서 ‘언어’에 의한 폭력이 필연적으로 일어난다고 본다. 지젝은 이 언어에 의한 폭력이 아주 특별한 순간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모든 순간 순간에서 일어난다고 본다. 우리가 생각하는 욕설이나 언어로 상처 주는 것만이 언어의 폭력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보다 근본적인 형태의 폭력이 언어 자체에 내재돼 있다고 봤다. 그는 “언어는 의미 세계를 대상에 부과할 때 따라 붙는다”고 말한다. 언어는 매 순간 추상화의 과정을 수반한다. ‘나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수많은 다양한 나무를 추상화의 틀에 넣어서 추출해 낸 관념으로 그 단어를 사용한다. 나의 ‘의미세계’를 타인에게 부여하는 순간, 타인의 삶을 이 언어의 추상화 과정의 틀에 넣는 순간 폭력은 발생한다. 나의 사고의 틀에 걸맞게 타인의 삶의 입체적인 부분을 매끈하게 이해할 수 있게, 보기 좋게 평면적으로 다듬어 받아들이는 과정 자체가 폭력이다. 소리의 뼈 김교수님이 새로운 학설을 발표했다 소리에도 뼈가 있다는 것이다 모두 그 말을 웃어넘겼다, 몇몇 학자들은 잠시 즐거운 시간을 제공한 김교수의 유머에 감사했다 학장의 강력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은 일 학기 강의를 개설했다 호기심 많은 학생들이 장난삼아 신청했다 한 학기 내내 그는
모든 수업 시간마다 침묵하는 무서운 고집을 보여주었다 참지 못한 학생들이, 소리의 뼈란 무엇일까 각자 일가견을 피력했다 이군은 그것이 침묵일 거라고 말했다 박군은 그것을 숨은 의미라 보았다 또 누군가는 그것의 개념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모든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에 접근하기 위하여 채택된 방법론적 비유라는 것이었다 그의 견해는 너무 난해하여 곧 묵살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그 다음 학기부터 우리들의 귀는 모든 소리들을 훨씬 더 잘 듣게 되었다 시인의 언어가 다른 것은 이런 폭력의 과정을 최대한 배제하려고 하기 때문이리라. 종종 우리는 시인의 시적 감각을 ‘예민하다’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예민하다’라는 단어 자체도 어쩌면 시인의 무한한 예술적 감성을 추상화하고 대상화하는 표현 일지도 모른다만 예민하다는 것은 쉽사리 단언하지 않고, 재단하지 않고, 정의내리지 않는 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습관처럼 사랑을 달콤함, 쓰라림 다양한 단어로 그러나 사실 너무나 정형화된 단어들로만 묘사해 언제나 사랑 그 자체에 다가가는데 실패하고 만다. 이는 사랑에 대한 폭력이다. 그리움, 슬픔. 얼마나 추상적인 단어인가. 수만의 다양한 슬픔을 ‘슬픔’이란 단어 하나에 담을 때 그건 폭력이 된다. ‘너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 유명한 드라마의 대사지만. 너의 아픔과 나의 아픔은 본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하나의 ‘아픔’이란 추상적인 단어로 퉁 쳐버릴 때 나의 아픔은 영원히 너에게 이해되지 못한다. 나는 시가 이런 언어의 폭력에 대항하는 유일한 기재라고 본다. 그래서 서론이 길었지만 오늘 내가 소개하려는 시는 기형도 시인의 시다. 지금 내가 지하철에서 타자를 두드리는 순간에도 내 앞의 남성의 한 손에는 스마트폰이 다른 한 손에는 기형도 시인의 얼굴이 그려진 한 중고서점의 비닐이 들려 있다. 아마 기형도는 우리가 가장 쉽게 접하고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시인일 것이다. 소개한 <소리의 뼈>는 그의 이름 만큼 유명한 시는 아니다 또, 이 시는 우린에게 널리 알려진 <엄마생각> 이나 <빈집>처럼 감성적인 기형도 시인의 다른 시와 달리 매우 이성적이고 현학적인 시다. 제목부터 그렇지 않나. <소리의 뼈>. 제목부터 의미심상하다. 심지어 이 시는 시에 대해 독자가 머리 아프게 읽고 내릴 해석을 가상의 화자들의 입을 통해 말해버린다. “이군은 그것이 침묵일 거라고 말했다”,“박군은
그것을 숨은 의미라 보았다”,“또 누군가는 그것의 개념은 중요하지 않다고 했다 모든 고정관념에 대한 비판에 접근하기 위하여 채택된 방법론적 비유라는 것이었다”
<소리의 뼈>란 시는 무언가 정의 내리려는 모든 시도를 차단한다. 시인은 우리가 쉽게 다다를 결론들을 자신이 먼저 폭로해버림으로써 쉽게 하나로 결정짓고자 하는 우리의 욕망을 좌절시킨다. 대신 말해준다. “
그 다음 학기부터 우리들의 귀는 모든 소리들을 훨씬 더 잘 듣게 됐다” 나는 <소리의 뼈>란 결국 ‘시’라고 생각한다. 정의 내리는 것을 폭력이라고 말하고 나니 이렇게 정의 내리는 것조차 조심스럽고 부끄럽지만 ‘시’란 결국 모든 소리들을 훨씬 더 잘 듣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시인의 언어를 묘사할 때 예민하다는 단어와 더불어 ‘미끄럽다’는 단어로 설명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람들은 종종 시를 ‘어렵다’고 느끼는데 이는 시어가 어떤 생각이나 현상에 콕 정 중앙에 박혀 이해되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우리의 생각을 어느 지점에 멈추지 못하게 계속 미끄러트리기 때문이다. 늙은 사람 그는 쉽게 들켜버린다 무슨 딱딱한 덩어리처럼 달아날 수 없는, 공원 등나무 그늘 속에 웅크린 그는 앉아 있다 최소한의 움직임만을 허용하는 자세로 나의 얼굴, 벌어진 어깨, 탄탄한 근육을 조용히 핥는 그의 탐욕스런 눈빛 나는 혐오한다, 그의 짧은 바지와 침이 흘러내리는 입과 그것을 눈치채지 못하는 허옇게 센 그의 정신과 내가 아직 한번도 가본 적 없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그의 세계에 침을 뱉고 그가 이미 추방되어 버린 곳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는 나의 세계를 보호하며 단 한걸음도 그의 틈입을 용서할 수 없다 갑자기 나는 그를 쳐다본다, 같은 순간 그는 간신히 등나무 아래로 시선을 떨어뜨린다 손으로는 쉴새 없이 단장을 만지작거리며
여전히 입을 벌린 채 무엇인가 할 말이 있다는 듯이, 그의 육체 속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그 무엇이 거추장스럽다는 듯이
다시 이 글의 첫 시작으로 돌아가서 공동체의 비극을 말하자면 결국 타인에게 무관심해지는 것의 기저에는 나에게 무관심한 것, 나에게 무관심 해지는 것에는 결국 나를 제대로 표현하지 않는 것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제대로 ‘표현’하지 않는다는 것은 제대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의 유의어다. ‘언어’가 없으면 ‘ 사고’를 하지 못하는 게 인간이기 때문이다. ‘나’를 제대로 생각하지 않고 사는 일은 사실 훨씬 편한 삶이다. ‘나’에 대해 매순간 만족하고 행복해하면서 사는 것은 쉽지 않으니 순간 순간 보고 싶지 않은 것은 외면해버리면 생각에서 저절로 차단된다. 악순환으로 무관심은 생각의 시간을 줄이고, 생각을 안 해 단어를 사용하지 않다 보면 단어도 하나 둘 씩 잊혀진다. 나를 이해하는 단어가 단순해지면, 타인을 이해하는 단어는 더 단순해지게 된다. 단순함은 복잡하지 않으니 편하지만 단순하면 단순할수록 폭력은 더 쉽게 발생하게 된다. 누군가의 죽음을 보고 ‘외로워서 죽었나 보다’로 단정지어버린다면 그 이상의 설명은 필요가 없어진다. 그저 그는 외로운 사람이 되 버린다. 그가 왜 외로운지, 아니 ‘외롭다’는 아래 뒤섞인 욕망과 실망과 절망과 행복과 희망 갖갖이 것들은 다 무시 돼 버린다. ‘소리의 뼈’를 듣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아직 한번도 가본 적 없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그의 세계에 침을 뱉고/ 그가 이미 추방되어 버린 곳이라는 이유 하나로/ 나는 나의 세계를 보호하며/ 단 한걸음도/ 그의 틈입을 용서할 수 없다” 이 시는 타인의 삶에서 나를 생각한다. 모든 시가 그렇듯이. 시인 기형도는 늙은 사람을 속에서 그를 볼 뿐만 아니라 자신을 본다. 그를 경멸하는 자신의 태도에서 자신의 경멸스러움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경멸이 무엇에 기인하는지 쉽게 정의내리지 않는다. 나의 젊음을 탐하는 욕망을 경멸하는 것 같기도 하고, 젊음이 없는 노쇠함 그 자체를 경멸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그런 그 사람의 모습이 피할 수 없는 ‘노화’ 라는 자신의 미래라면 자신의 미래를 경멸하는 것 같기도 하다. 아니, 결과적으로 경멸하는 건 나도 언젠간 늙은 것인데 그 사실을 그 순간에 인식하지 못하고 그를 경멸하는 나 자신을 경멸하는 것 같기도 하다. 시의 마지막은 “무엇인가 할 말이 있다는 듯이, 그의 육체 속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그 무엇이 거추장스럽다는
듯이”로 끝난다. ‘무엇’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이 무엇은 무엇이든 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남는다. 다만 이 무엇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소리의 뼈’를 들어야만 한다. 들리지 않는 소리를 더 잘 들을 수 있어야만 한다. 그리고 이 소리를 들으려고 노력하는 순간 우리는 이 ‘무엇’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모든 소리들을 더 잘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시인은 사물을 사물 그대로 보지 않는다. 사물 안에서 소리의 뼈를 발견한다. 그리고 우리는 시를 통해서 간접적으로나마 배울 수 있다. 우리는 시를 통해 시인의 언어를 습득하게 되고 보다 시인의 보다 섬세하고 예민한 단어를 가지고 세계를 그리고 타인을 대하게 된다.
“언어가 사고를 지배한다” 얼마 전에 페이스북 게시물에 올라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았던 글이다. ‘ 오글거린다’란 단어가 생긴 이후로 진지하거나 감성적인 이야기는 ‘오글거린다’는 이야기로 치부돼 버린다는 댓글이 인상 깊었다. 예전에, 싸이월드에는 개인적인 감정이나 이야기들이 종종 올라오곤 했다. 그런 글들이 페이스북에 올라오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네티즌들이 언제부터인가 페이스북이 사유공간이냐며 그런 글들에 비판을 가하기 시작했고 이제 그런 글들은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가장 자유롭게 쉽게 표현하는 페이스북에는 음식 사진이나 오랜만에 모인 친구들끼리 직은 단체 사진을 공유하는 장소가 됐다. 그리고 이제는 광고가 판을 친다. 광고에는 내가 말하는 내가 아니라 남이 말하는 나만 존재한다. 슬라보예 지젝의 언어가 폭력이라는 말은 새삼 암울하다. 언어 없이 우리는 소통할 수 없는데, 소통의 기본 창구인 언어가 폭력이라면 우리는 영원히 폭력을 행사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그리고 이 폭력은 오늘날 더 거세지고 있다. 폭력이 필연적이라 할지라도 폭력에 대항하는 방법은 있다. 바로 우리의 언어를 더욱 예민하게 섬세하게 그리고 구체적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언어의 추상성이 만들어내는 대상화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자주 느낄 것이다. 무언가 표현하고 싶은데 표현하지 못할 때. 답답함. ‘왜 너는 나를 이해 못해’ 연인과 싸울 때. ‘정말 모르겠어?’ 그러면서 정작 내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나를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어’를 배워야 한다. 나를 보다 더 잘 표현해야 한다. 나를 잘 표현하는 건 타인과 보다 잘 소통할 뿐만 아니라 타인도 보다 폭넓게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언어를 되살리는 방법, 나의 언어를 찾는 방법. 그건 모두 언어가 가하는 폭력에 저항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그건 보다 더 많은 언어를 습득하는 거다. 바로 시를 통해서.
팟캐스트 전성시대: 영화 팟캐스트의 득과 실.
바야흐로 팟캐스트의 시대가 도래 했다고 믿는 사람이 필자 뿐은 아닌 듯 하다. 몇 년간 홍수 처럼 넘쳐나는 음식과 팻(pets), 육아 프로그램들에 대한 톨러런스 (tolerance) 가 바닥이 나고 라디오는 특별히 찾아 듣지는 않으니 생각 날 때 마
영 화 로
다 손이 뻗치는 것이 팟캐스트 채널이다. 모바일 디바이스의 부상으로 진화하기 도 하였지만 팟캐스트는 그 전문 채널들의 다양성으로 그리고 (아직까지는) 심 의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자유로움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듯 하다. 예를 들어
보 는
매주 1위를 차지 해오고 있는 정치 팟캐스트 ‘이이제이’ 를 예로 들면, 그 인기의 비결로서 탄탄한 리서치에서 오는 컨텐츠의 내실도 그러하지만 그들이 쏟아내 는 후련한 욕설과 길바닥 유머를 무시 할 수 없다. 팟캐스트의 초석 과도 같은 나꼼수의 영향으로 아직도 팟캐스트라는 매체는 타 매체에 비해 매우 진보적이다. 유독 정치 팟캐스트가 많은 것도 그러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허나, 내가 이끌고 있는 코너가 그러하듯, 나는 영화 팟캐스트 에 대한 이야기를 좀 해 볼까 한다. 소소한 규모 까지 대충 합쳐 1000개가 넘는 다 하니 존재 하는 모든 팟캐스트를 다 언급하기는 어렵고 100위 권 안에 있는 소위 ‘인기 영화 팟캐스트’ 몇 개를 소개 하고 그 들이 가진 색채에 대해서 이야 기 해 볼 것이다. 순위에 대해 논하자면 “시네타운 나인틴 (24위)” 은 단연 이 들 중 독보적인 존 재다. 주로 주류영화, 신작 들에 관한 스토리들을 제공한다. 세 명의 남성 PD 들 이 진행하는 프로라 그런지 현재 라디오로 옮겨가기 전에는 욕설과 음담 패설 이 그 정도를 넘어섰으나 지금은 솔직히 안 들어 모르겠다. 꽤 많은 영화들에 대 한 이야기들이 오고감 에도 이 팟캐스트를 과감히 unsubscribe 한 이유는 대부 분의 에피소드들에서 영화 자체에 관한 이야기를 제외한 잡담 수준의 ‘털기’ 가 과하게 많거니와 이 영양가 없는 이야기들에 중간 중간 끼워지는 욕까지 합쳐서 듣다 보면 좀 배운 남자 고딩들 버스 안 잡담을 듣는 기분이 들어 개인적으로는 시간이 아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럼에도 항상 높은 순위를 유지하는 데는 이 유가 있을 듯하니 궁금한 독자들은 들어보시라. 그리고 지금부터 티 나게 밀어줄 두 개의 팟캐스트는 필자 개인적인 취향에 따른 것이니 들어보고 안 맞으면 입맛에 차이라고 자비롭게 넘기시길 바란다.
시 공 간
1. 무영보: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테마 별 (예. 정치 영화 베스트, 아버지 영화 베 스트) 로 자의적으로 순위를 매겨 소개하는 영화 팟캐. 네 명의 남자 진행자. 특 히 오샥이라 부르는 메인 진행자의 영화 지식이 뛰어나다. 순위가 다소 그의 주 관적 취향이라는 약점이 있지만, 이 또한 필자는 지지하는 편이다. 작곡가라는 직업을 가졌음 에도 그가 헐리우드 고전영화에 가진 수려한 지식 – 특히 감독, 배우를 비롯한 촬영감독이나 음악, 의상 담당의 이름을 외우고 있는데 놀라운 능 력을 보인다 – 은 전공자인 나도 기죽게 한다. 개인적으로는 전쟁영화 베스트가 가장 좋았던 듯 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메이저 영화들도 소개하지만 번외로 다 뤄주는 고전 영화나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을 소개하는 것이 백미다. 2. B 급 장르영화 팟캐스트 배드 테이스트: 역시 네 명의 남성 진행자. 스탠리라 는 가장 고령의 진행자를 중심으로 영화 쪽의 일을 하는 것으로 추정 되는 듯한 다른 진행자들이 로메로의 영화들이나 13일의 금요일 같은 B 급 영화에 대한 썰 을 푼다. 신생 팟캐스트임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100위권안에 진 입을 한 것을 보면 B 급 영화를 다룬다는 다소 특이한 모토가 청취자들에게 먹 힌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다리오 아르젠토 편에서 이 들이 가진 놀라운 지식과 영화 학자들을 능가하는 첨예한 지적에 감탄하여 숭배하는 팟캐스트가 되었다. 한국에서 국적을 막론하고 B급영화에 대해서 저렇게 많이 아는 사람들을 처음 목격하였다. 거의 걸어다니는 B급 영화 사전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동안 광고를 스킵 할 수 없게 이상한 시스템을 걸어놓아 떠날까도 싶었지만 지금은 광 고 코너가 없어진 관계로 더 애정하게 되었다. 최근 CGV 의 좌석 차등 요금제를 가장한 영화비 인상이 불만스러운 독자들은 이들 팟캐스트을 들으면서 목마른 영화에 대한 대리만족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 이다.
글. 곡주대비
영화수업
강의: 장르의 탐구 케이스 스터디 ‘로맨틱 코미디’
글. 김
나는 왜 롬콤을 배우며 홍상수를 떠올렸을까 길티 플레져 Guilty Pleasure? 장르 수업의 마지막 강의 주제는 로맨틱 코미디(이하 ‘롬콤’)였다. 강의 시작에 앞서 교수가 학생들에게 물었다. “롬콤은 어떤 영화지?”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한 남학생이 대답한다. “Bullshit.” 여기저기서 킥킥거리는 남학생들의 웃음 소리가 들렸다. 이어 교수는 학생에게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를 물었다. “ 내용에 항상 뻔하잖아요.” 학생이 대답했다. 영화 장르 중 로맨틱 코미디는 가장 대중적인 장르이다. 영화의 이야기나 장치가 특별하지 않더라도 관객을 영화 속으로 잘 끌어 들이고, 또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법이 쉽기 때문이다. ‘쉽다’는 말은 그만큼 영화가 ‘뻔하다’는 말도 된다. 롬콤이 선택할 수 있는 플롯이 한정 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500일의 썸머 (2009) 같이 서사 구조를 뒤섞는 롬콤도 많아졌지만, ‘사랑’이라는 주제의 특성상 이야기의 결말은 늘 비슷한 끝을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다. 롬콤을 뻔하다고 얘기하는 이유는 단지 그 주제때문 만은 아니다. 영화 산업의 구조도 한 몫 단단히 거들었다. 적은 제작비로 나쁘지 않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이에 공장에서 대량 생산한 듯한 롬콤이 우후죽순 늘어났고, 이런 조류 속에 탄생한 영화들은 롬콤이 ‘수준 떨어지는 장르’라는 인식을 조성했다. 영화를 좀 본다 하는 영화광들이나 영화를 공부하는 학생들이 롬콤을 멀리하거나, 행여 ‘재미있게’ 본다고 하더라도 길티 플래져를 느끼는 것은 아마 이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롬콤은 대중들에겐 여전히 잘 먹히는 장르임은 분명하다. 매년 다양한 롬콤이 개봉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쉬운 스토리, 수려한 외모의 스타들, 유쾌하게 웃을 수 있고, 공감하며 울 수 있는 이야기. 영화라는 매체에 감탄하는 즐거움이 아닌, 일차원 적인 즐거움을 느끼기 충분한 영화. 롬콤은 가장 심플한 즐거움을 주는 장르기이도 하다.
로맨틱 코미디는 무엇인가 모든 장르가 그러하듯, 롬콤에도 장르적 특징이 있다. 그리고 그 요소들은 다른 장르들에 비해서 그리 많은 변화를 겪지 않았다. 대부분의 롬콤에서 영화 속 두 남녀는 당대의 도시를 배경으로 사랑과 맞닥뜨린다. 관계에 대한 고민과 갈등이 진행되는 동안 영화는 사랑을 대하는 전형적인 남성상과 여성상에 대해 얘기한다. 눈물의 이별과 감동스런 재회, 그리고 눈부신 외모의 주인공들은 롬콤의 전형적인 요소이다.
‘로맨틱 코메디’를 검색하면 뜨는 영화 포스터들. 포스터에도 장르의 전형성을 어렵지 않게 짚어낼 수 있다.
할리우드 롬콤의 변화는 1930년대 부터 시작했는데, 남녀 주인공이 티격태격하다 결국 사랑에 빠지는 플롯의 ‘스크루볼 코미디’나, 사랑의 과정과 목적이 섹스로 묘사되는 ‘섹스 코미디’ 같은 하위 장르를 두는 식이었다. 이런 식의 변주는 롬콤을 즐기는 다양한 재미를 만들었고, 흥행 성적이 그 성공을 증명했다. 그런데 왜일까? 이런 설명들을 들으면서 내가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을 떠올리게 된 것은.
홍상수 영화는 로맨틱 코미디이다? 나는 홍상수의 영화들을 20대 초바부터 보기 시작했다. 주변에 홍상수 감독의 열렬한 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30대 후반이었던 그 사람은 나에게 홍상수의 영화를 보면서 자신같은 아저씨들이 홍상수의 영화들을 보면서 느끼는 낯뜨거움에 대해 낄낄거리며 이야기 했고, 나는 그게 퍽 재밌게 느껴져 홍상수의 영화들을 하나씩 보기 시작했다. 홍상수의 영화들은 주로 지적인 남자에게 열광하는 여성과, 그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지식인’ 남성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30대 중반에서 40대 중반 사이의 영화감독, 영화과 교수가 홍상수 영화의 단골 주인공이다. 그들의 열망은 여자 주인공과의 섹스, 혹은 ‘섹스가 있는 연애’이다. 돋보이기 위해 술자리에서 내놓는 철학적인 사색들. 관찰자 입장에서 들어보면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게 함정이지만, 그 순간 그 자리에 있는 여자들은 남자 주인공을 ‘일반 남자들과는 다른 남자’로 생각한다. 그 연애의 과정과 결과의 지리멸렬함은 혹자에겐 낯뜨거움을, 혹자에겐 어이없음을 선사하는데, 영화를 보면서 받는 이런 느낌들은 자연스럽게 웃음으로 연결된다. 롬콤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지금까지 봐 온 홍상수의 영화가 장르적인 면에서 로멘틱 코미디와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영화의 중심에 있는 남녀의 관계,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엔 관객들의 웃음을 끌어내는 재미난 상황과 대사들. 로멘틱 코미디의 아주 기본적인 컨셉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들. 감독 특유의 ‘로맨틱’과 ‘코메디’를 유쾌하게 즐길 수 있는 영화들이다. 그뿐인가. 홍상수의 영화에선 롬콤의 하위 장르인 섹스 코미디나 스크루볼 코미디의 요소도 찾아볼 수 있다.
해변의 여인 (2006) 을 기점으로 베드신이 사라졌다고 하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의 섹스에 대한 갈망과 목적 의식은 여전히 영화 속에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영화에 대사가 많다는 점, 고현정과 엄지원이 맡았던 역할들 처럼 강한 여성상이 남자들과 언쟁을 벌이는 장면은 스크루볼 코미디의 특징이기도 하다. 홍상수 영화는 현대 롬콤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네오 트레디셔널 로맨틱 코미디의 특징도 갖고 있다. 90년대 이후에 등장한 네오 트레디셔녈 롬콤은 이전의 롬콤보다 현실에 부합하는 이야기를 한다는 게 특징이다. 두 남녀 주인공에게 닥친 사랑의 시련이 현실의 사랑들이 마주치는 ‘넘기 힘든 장벽’이라는 게 한 예인데, 홍상수 영화로 치면 아마 이 장벽은 유부남, 유부녀와의 사랑으로 설명할 수 있겠다.
홍상수의 변수; 아저씨를 위한 비터스윗 로맨틱 코미디 홍상수 영화를 롬콤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당일에 시나리오를 써서 영화를 만드는 연출 방식, 내러티브가 명확하지 않다는 특징 등 여러모로 상업영화의 정형에서 벗어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들은 작가주의 영화, 아트 영화로 통하며, ‘홍상수’라는 장르로 분류 된다.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홍상수라는 장르를 롬콤의 변수로 받아들일 이유는 충분하다. 그의 영화들이 “웃으면서 볼 수 있는 사랑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홍상수의 영화를 보며 웃을 수는 없을 것이다. 영화 속의 연애 방식과 인물들이 우리가 흔히 ‘연애’, ‘사랑’이라는 단어와 연결시키길 꺼려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홍상수 영화를 ‘롬콤의 변주’, ‘아저씨들을 위한 비터스윗 롬콤’이라 말하고 싶다. 달콤한 사랑의 속삭임, 로맨틱한 고백 대신 술, 담배 냄새 풍기는 구애와 섹스 도중 (혹은 후에) 전하는 ‘사랑해요, XX씨’. 누군가는 비웃고 냉소하겠지만 누군가는 몰래 숨어서 맞장구치는 그들만의 사랑의 방식인 것이다.
끝
뼈와살들 또다시 ‘4월’이다. 숙제들을 잔뜩 안은 채 순이 돋고 꽃이 피고 이곳에서 살아가는 나는 더욱 웅크려야 한다.
글, 그림 / 준가 junga.pic@gmail.com
13_ 나누는 음악
옆 사람 인터뷰
새로운 일을 하면서 다양하고 또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축 제와 문화 기획을 배우는 자리. 문화 기획이라는 하나의 시선 에 닿기까지 지나온 이야기는 저마다 다른데, 미지 언니에게 1_ Granz Globewalker, 여행하며 음악하기 는 음악과 작곡이 있었다.
금도 여전히 구체적이지 않아서 내 것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 대학교에서 작곡을 전공했다.
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해외를 돌며 좋은 공연들을 보고 싶다.
���� ��� ���� ���� ���� ��� 열여덟��살에 영화��� <어톤먼트>를 보았는데, 다른 영화에서 느
그런 관심이 문화기획 가운데에서도 공연예술 기획을 배우
끼지 못한 가슴 먹먹함이 있었다. 보고, 수능 ����� ����� ���이후로 밤�� ��반복해서 ��� ���� 결
고자 하는 이유이기도 하겠다.
공부를�� 할사람이라는 때도 몰래 보고는 했다. 한 번은어디에 도서실에서 생각이 스쳤다. 가도이있영 화를 보다가 엄청사람이요, 울었던 기억이 난다. 특히 엔딩에시공간이 나오는 음 는 것은 사람으로 펼쳐진
요즘은 고민이 많다. 작곡도 어떻게 보면 기획에 들어간다. 이
악이 너무 좋고, 원래만났고 가지고 있던 영화음악에 대한 관심이 었다.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들 또한여
런 식으로도 풀어갈 수 있겠구나 생각했다. 우리가 배우고 있
기서 불꽃처럼 트였다. 입학은 공대 컴퓨터과로 했다. 열흘 나 아름다운 여행지의 하나였다. 여행을 이야기하 가보니까 이건 아니다 싶어 다시 준비하고 작곡과에 들어갔 고 싶었으나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생 다. 집에서 반대가 있었지만 항상 마음이 있었고, 배우지 않았 각했다. 사람을 여행해볼 작정이라고. / 다면 많이 후회했을 거다.
는 건 축제나 문화기획이 많은데, 물론 기획을 시작하는 단계 라 비슷할 수도 있는데 무대 자체가 다르다고 할까. 이걸 하 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작년에 뮤지컬 공모를 했는데, 내가 기 획자나 제작자 입맛에 맞는 공연을 못 썼다는 생각이 들더라. 기획 실무를 배우면 관객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것을 찾을 수
영화 이전에 음악을 접할 기회가 많았을 것 같다. 게스트하우스에는 다양한 삶이 오고갔다. 그
미국에서 온 장기 투숙객이었는데, 여 어렸을랜트는 때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다. 집에 피아노가 없던 행을 온 그의 하루가실로폰으로 꽤 정적이었 때 어디선가 듣고사람치고는 온 음악을 멜로디언이나 연주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요즘은 어떤 곡을 쓰고 있나.
다. 그는그걸 공용 공간에서 편의점 사주셨다. 음식을 먹거나 하기 시작했고, 보고 엄마는 피아노를 집에 피
특별히 이런 곡을 쓰고 있다고 말할 만한 것은 없다. 취미 정
전곡을 모아 놓은되더라. 교본을또 옆에 아노가비틀즈의 있으니 자연스럽게 연주하게 영화를두고 좋아
도다. 요즘은 내가 나의 삶을 주인공처럼 살고 있는지 점검해
하시는기타를 아빠, 비디오 영향으로 치고는가게를 했다.운영하시던 내가 그의엄마의 반려자와 다름영
보게 된다. 잘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게 아니라 오래 하는 사람
화를 좋아하게 되었다. 두 손님이 빌려내기 가지 않은 비디오를 보고, 없던 기타를 동강 전까지는(당분간
이는 성공한다더라. 나도 모르게 만큼이나 머리를 굴리고 비틀즈와 로드리게즈 그의있었다. 노래를
포카혼타스, 인어공주와 같은. 영화도 찾아보게 되었고 Hey Jude를 배우겠다고 설칠많이 일은 없으리라).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 중학교 때는 음악 선생님이 작곡을
음악을 좋아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이 가운데 왜 작곡이었
하시는 분이었고 그때부터 나만의 음악 목록을 만들고 누군 어릴 때부터 사람들은 그가 의사가 될 것을 가에게 들려주기를 즐겼다. 직접 작곡을 하지는 않았지만 음 기대했지만 6살 때부터 그는 음악을 꿈꾸었다 악에 많이 가까워진 또 다른 계기가 되었다. 고 한다. 소망은 오랜 시간 그대로였으나 대학
을 졸업한 후에야 그는 온전히 음악을 하기로 작곡 안에서도 다양하게 나뉘지 않나. 마음을 먹었다.
좋아한다. 을까.
조금 더 오래 머물 줄 알았는데 시드니에 갔 그냥 표현하는 게 재밌어서 그런 것 같다. 물론 악기를 연주할 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 수도 있고, 노래를 할 수도 있지만 나는 내가 만든 곡을 주변
클래식을 전공했고, 그러면서도 영화음악을 좋아했다. 예술 그를2년마지막으로 본 날, 직접 녹음한 아홉빠 의 전당에서 6개월 정도 일을 했는데, 그때는 그 일에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일이 좋다. 교수님이든 친구든 들려줌 나도 오래 있고 싶었지만 관광비자만으로는 그 으로 해서 서로 공감할 수 있을 때 며칠 밥을 안 먹어도 살 수 럴 수 없었다. 한국에 다시 가고 싶고 그전까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곡을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들 지 시드니에서 비행기 려주고 싶다. 음악은시간을 삶에서 보내려고 계속 함께할한다. 수 있는 친구 같은
곡이것담긴 한 장을 선물로 받았다. 요즘 져 지냈던 같다.CD 음악극이 좋더라. 복합공연예술 같은.나지
표를 나를 사기 빨리 위해찾았다고 잠시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 존재고, 생각한다.
기억에 남는 여행지는 어디야? 아마도 가장 오래 있었던 베네수엘라가 기억에 남아. 여행지로서 가장 좋았던 곳은 에콰도르랑 볼리비아. 에콰도르는 그냥 이 유 없이 좋았고 볼리비아는 참 예뻤어. 여행자 사이에서 자선 파티가 종종 열리는데, 거기에도 참여하고 자원봉사도 하고. 좋 은 레스토랑의 맛있는 음식들을 저렴한 가격에 누릴 수 있었어.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게 있다면. 항상 생각하는 건 철없고 싶다. 창작자에게 중요한 덕목인 것 같다. 내 앞의 난관이 너무 많은데, 이럴 때 생각이 많으면 어렵 다. 가볍게 생각하고 싶고, 그런 사람을 좋아하기도 하는 것 같다. 너무 많은 생각은 주저함을 낳는다. 나를 찾는 과정이라는 말이 좋다. 나만의 삶을 꾸리는 방식이 어떤 결과물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하나의 과정이라고 비추 어 볼 때, 한결 유쾌하다. 뚜렷한 직업이 없어서 인터뷰가 어려울 것 같다던 언니의 말을 듣고, 내가 사람들을 통해 보고 싶었 던 건 그 사람들만의 삶을 일구어 나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의 곡을 통해 많은 이들이 서로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글, 정리 : 이내
건축이 좋아. #29. 고마워요, 그리고 미안해요. aoikasa
만우절 하면 장국영이 먼저 떠올랐다. 장국영의 빅팬은 아니었지만, 장국영이 나오는 광고 속 초콜렛을 먹고, 장국영이 나오는 영화 해피투게더를 보며 맘보춤을 따라해보는 그런 세대였던 나로서는, 갑자기 그가 죽었다는 소식은 너무나도 심한 만우절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이제, 만우절 하면 떠오를 사람이 한 명 더 생겼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를 설계한 건축가, Zaha Hadid이다. 현지 시간으로는 3월 31일이었겠지만, 내가 그 소식을 본 건 4월 1일이 되는 새벽이었으니 그녀가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플로리다에서 죽었다는 소식은 마치 만우절 거짓말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뭔지 모를 고마움과 그리고 미안함이 마음 속에 떠올랐다.
(4월 1일 새벽 12:26. 갑작스럽게 전해진 그녀의 부고)
솔직히 말해 그녀는 내가 좋아하는 류의 건축을 하는 건축가는 아니었다. 동대문운동장을 철거하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짓는 결정에 대한 안타까움과 그 건축의 거대함에 대한 반감 같은 게 겹쳐져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대해서도 환호하는 입장은 아니었지만, 그 건축물 자체의 가치, 흘러가는 공간들을 걸으며 느끼는 즐거움이라든지 공간의 힘 등은 그녀의 건축만이 가지고 있는 강력한 힘이자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그녀를 소개할 때 늘 따라오는 수식어는 ‘세계적인 여성 건축가, 자하 하디드’였다. 그냥 세계적인 건축가가 아니라 세계적인 여성 건축가. 하긴 교사도 여자는 여교사, 교수도 여자는 여교수, 기자도 여자는 여기자라 불리는 대한민국에서 그녀가 여성 건축가라 불리는 건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건축이나 건설업의 주요 종사자는 남자이기 때문에 굳이 ‘여성’을 붙이며 그녀의 특수성을 강조한 것이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녀의 건축은 그 누구보다 강력했고, 그녀는 결코 ‘여성 건축가’의 ‘여성성’을 강조하지도 않았다. 아니, 그럴 필요도 없었겠지. 그리고 또한 그녀는 세계 건축계에서 주류가 아닌 중동지역의, 이라크 출신의 건축가(국적은 영국이지만)였다. 유럽과 미국이 주도한 20세기 이후 세계 건축의 흐름에 이라크 출신의 여성 건축가가 던진 파장은 상당했다. 물론 그녀가 ‘중동’이나 ‘여성’이라는 건축계에서의 소수를 대표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구미출신의 남성이 지배적인 이 세계에 그녀의 존재는 누군가들에게는 큰 힘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그녀의 건축은 로마에 있는 현대미술관, MAXXI이다. 로마에 간다고 했을 때 친구는 내게 MAXXI에 가보길 권했지만, 로마까지 가서 뭐하러 자하 하디드를 보러… 라는 생각을 한 (어찌보면 큰 기대가 없었던) 나는 당연히 갈 생각이 없었다. 대신하여 로마에서 현대건축은 렌조 피아노가 만든 오디토리움을 봐야지 하며 버스를 타고 1시간여를 가서 로마외곽으로 나갔을 때 오디토리움은 공사 중이었고 잔뜩 실망한 표정으로 주변을 배회하던 내게 요정처럼 나타난 이탈리아 건축가 할아버지가 건축 전공하냐 묻더니 렌조 피아노의 건물은 지금 못 들어가지만, 그래도 이 주변에는 좋은 건물이 많다며 네르비의 체육관과 자하 하디드의 MAXXI 를 추천해줬기에 우연히 그 곳에 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곳에 갔을 때 나도 모르게 그녀에게 미안해졌다. (사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그녀에게 전혀 상관이 없겠지만 말이다.) 그녀의 건축물에 큰 기대를 하지 않던, 그냥 그녀의 건축 스타일은 내 취향은 아니라고 못박아버렸던 게 MAXXI 를 보며 깨어져버렸다. 서양 건축의 시작점에 있을 만큼 긴 역사를 가진 로마라는 도시, 어딜 가도 2000여년의 시간을 담은 유적이 가득한 이 도시에서 기죽지 않으면서도 결코 두드러지지 않게 강하게 그녀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하 하디드 건축치고는 얌전한 형태의 외형과는 달리, 내부에서는 전시관과 전시관이 끝없이 흘러가며 역동적인 구성을 하고 있었고, 관람객은 자신도 모르게 그 흐름에 끌려가며 자연스레 전체 전시관을 둘러볼 수 있었다. 마침 네르비와 이탈리아 현대 건축가들의 전시, 스카르파의 스케치 전도 열리고 있었기에 더욱 더 의미가 깊었던 시간이었다.
(자하 하디드 건축 치고는 너무나도 얌전한 MAXXI의 외관. 로마의 힘을 느끼던 순간)
(얌전한 외관 뒤 바로 펼쳐지던 역동적 흐름이 있는 중)
사실상 이번 달은 너무 바빠 휴재를 하려고 했으나, 그녀의 소식을 듣는 순간 늦더라도 글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며, 당신의 MAXXI를 참 좋아한다고. 고마웠다고, 그리고 미안했다고 말하고 싶어서… 그녀가 이젠 저 하늘 위에서 우리들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기발한 무언가들 계속 만들고 있길 기대하며. R.I.P. Zaha Hadid…
경 계인
5화.나르시시즘이라는 벽
글. 스푸트니크
그리스신화 속 인물 나르시스는 강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과 사랑에 빠진다. 평소 남에겐 기본적으로 차갑고 무관심하던 그는, 자기애로 인해 결국 죽음에 이른다. 얼마 전, 알베르 까뮈의 ‘전락’을 읽었다. 모놀로그의 형식으로 늘어놓는 클레망스의 이야기에서, 다른 이들은 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비판을 주로 읽었다면, 나는 나르시시즘을 주로 읽었다. 클레망스는 원래 잘 나가는 변호사였다.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만족스러운 생활을 하고 있었다. 변호사도 재벌을 변호하거나 범죄자들을 변호한다면 그 만족감이 달라지겠지만, 그는 도덕적 우월감을 느끼게 하는 클라이언트-약자를 주로 변호했다. 여자를 만나는 것도 식은 죽 먹기였다. 자신이 주인공인 극의 시나리오가 있다고 하면, 그는 원하는 대로 주연을 만끽하고 있었다. 어느 이슬비가 내리던 밤, 그는 세느 강 다리를 지나다가 강물로 뛰어든 한 여자의 비명을 외면하고 지나친다. 그 일은 즉시 그에게 영향을 끼치진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다른 어느 날 밤 강 근처에서 어떤 정체불명의 웃음소리를 듣고 지난 과오- 죽음을 목격하고도 그냥 지나친 것-를 떠올리며 고통에 빠진다. 작가 까뮈는 그 웃음소리의 정체에 대해선 함구한다. 실제로 그 웃음소리가 클레망스의 환청이었는지도 확실치 않다. 중요한 것은 그 외부에서 들린 웃음소리가 그의 만족스러운 생활에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는 점. 만족스럽기만 해 보였던 그의 삶과 자신의 인격이, 사실은 속 빈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 것인지 의심을 하기 시작하면서, 그는 그토록 만족스러워하던 정상에서 ‘전락’한다. 불교철학 수업시간에 들었던 불교의 교리 중에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라는 것이 있다. 이 보시는 ‘내가’ 무엇을 누구에게 베풀었다.’라는 의식과 자만심 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베풀어주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相’은 한 개인이 세상과 그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갖게 되는 의견, 고정관념 등을 뜻하는데, 불교에서는 이 ‘相’이 상당히 중요한 개념이다. 그것이 어떤 이념과 이상의 경계를 만들어내고, 결국 세상의 모든 분쟁을 시작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즘이라는 건, 결국 ‘자아’라는 ‘相’ 이 너무 강해서 자신이 아닌 환경과 타인이 있는 그대로 보이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신이 노동을 들여 남을 돕는 행위조차, 진정 남을 생각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이 바라는 자아이상에 대한 집착 때문에 실천할 수도 있다. ‘결국 좋은 게 좋은 것 아니냐’ 는 마인드로 보자면, 결국 선한 일을 한 것이기에 어떤 문제도 없을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클레망스는 후에 회상하는 글을 보면, 세느 강 사건 이전에도 그 문제를 인지하고 있었다. ‘나는 인생의 표면에서, 이를테면 말뿐으로 현실 속엔 발 딛지 못한 채 나아가고 있었던 거예요 (...) 왜냐하면, 나야 모든 걸 다 잊어버리고 마니까요. 나 자신밖에는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는 게 없었어요.’ 맞다. 나르시스트들의 문제는, 현실과 날 것 그대로의 접촉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마치 나르시스가 강물에 비친 자신을 목격한 뒤, 강물에서 한 발자욱 뗄 수 없이 자신만의 세상에 갇혔던 것처럼, 그 주위환경의 존재의미는 제로에 수렴한다. 대인관계에서의 최고정점이라고 볼 수 있는 사랑. 그것은 왜 의미있는가. 나는 사랑에 빠지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감정은 ‘이질감’이라고 생각한다. 굳이 자기를 혐오하지 않더라도, 상대는 나와 다르기에 아름답다. 내가 예상하지 못하는 행동을 할 수 있고,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없기에 나를 아프게 할 수도 있고 내 마음을 가져가기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자와의 섹스가 마스터베이션보다 낫다면 그것은 마찬가지로 내가 조종하지 않는 이물감의 정체와 그 조화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다름의 매력을 주위로부터 느끼지 못한다면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을 놓치는 것일까. 대인관계는 또 어떠한가. 항상 자아의 연장선으로만 타인을 대한다고 하면, 그런 관계가 얼마나 오래가겠는가. 상대가 아무리 눈치가 없다고 해도, 반대쪽에서 바라보는 그 시선의 공허함을 언젠가는 알아챌 것이다. BPD 증상으로 고생하기 이전을 돌이켜보면, 내겐 어느 정도 나르시시즘이 있었던 것 같다. ‘심리학이 서른 살에게 묻다’라는 책으로 유명한 정신과전문의 김혜남씨가 한 인터뷰에서 현대인들은 ‘자아이상’을 ‘자기자신’으로 착각하여 그 괴리를 받아들이는 것에 미숙하다고 언급했던 적이 있다. 사실 이 것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에게 푹 빠져있는 나르시시즘 자체보다 더 고통스러운 증상일 수 있다. 왜냐하면 받아들여지지 않는 짝사랑만큼이나, 자아이상과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간극을 줄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내 경우엔 대학에 들어온 뒤, 자아이상과 가까운 줄로 알았던,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에 대한 긍지가 형편없이 무너져버렸다. 클레망스와 마찬가지로 나를 비웃는 누군가의 웃음소리, 시선을 의식하게 된 것도 그 때였던 것 같다. 그러니, 이상과 다른 나의 부족한 모습, 열등한 모습을 받아들이기가 배로 어려웠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럴수록 자기자신을 다잡고 내실을 기해야 할 때, 나는 단지 나를 대하는 타인의 시선 속에서만 내 자아이상을 찾았다. 중심이 내 속에서 타인의 시선과 반응으로 향하자, 나의 감정은
그들의 반응에 따라 크게 요동쳤다. 그러나 내가 타인의 시선에 크게 신경을 쓴다는 것은 그들을 그만큼 더 존중한다는 것과는 엄연하게 달랐다. 내가 원하는 반응을 얻지 못한다는 좌절감이 커지면, 그 관계를 쉽게 그 관계를 정리하곤 했던 걸 보면 그저 유아기적인 독점욕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 같다. 또한, 가족사에 불행이 닥칠수록, 그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도 또 다른 방식의 나르시즘 서사를 시작하는 것일수도 있다는 걸 그 때는 몰랐다. 상담을 했을 때, 나는 사람들이 내 고충, 비극을 알아주지 않아 화가 난다고 말했다. 상담사는 말을 아끼는 신중한 타입이었는데, 그래서 그 한마디는 내게 더 큰 충격을 줬다. “사람들이 ◯◯씨의 고통을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있나요?” 처음 그 말을 들은 순간은, 서운함이 앞섰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았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각자가 주인공인 삶을 살고 있고, 자신의 삶을 꾸리기도 바쁜 세상이다. 그리고 내 삶은 내 것, 그들의 삶은 그들의 것. 그렇게 따지면, 다른 이들에겐 어떠한 기대도 하지 않아야 한다. 오히려 내게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써주는 이들에게 감지덕지 고마워하며, 매사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야 할 일이다. 결국 나는 나 자신 이외에는 너무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내가 너무 힘드니까’라는 핑계로 다른 사람의 삶, 그 대단하고 버거운 것에 대한 인정과 존중이 부족했었던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나만큼 생이 버겁지 않고 설령 행복하기만 하다 하더라도, 그건 그들의 운일 따름이다. 그렇다고 나의 인생보다 그들의 생이 더 가벼워지고 의미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반대로 상대가 내가 원하는 반응을 보이지 않고, 내게 관심이 없다고 해서 내 존재의미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내 가치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다. 그렇게 각자 흔들리지 않게 서로의 중심을 잘 잡고 살면 좋을 것이다. 나를 사랑하되, 타인에게 때로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다름의 아름다움에 심취해보기도 하고 그렇게 살아야겠다. 클레망스의 전락은, 나르시시즘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로서는 또 다른 상승이기도 했다. 또 한번 내게 견고한 나르시시즘의 벽을 깰 수 있는 나른한 웃음소리가 들린다면, 괴로워하지만 말고 나를 잘 돌아봐야지.
Daily Archive “거울아 거울아.”
글. 김혜미
최초의 유리 거울은 흑요석(obsidian)으로 만들어진 검은 유리로, 신석기 시대 때 터키와 중 앙 아메리카, 그리고 B.C 6000년에 다른 장소들에서도 출현했다. 이 자연에서 발견한 물질의 표면을 세심하고 평평하게 연마하고 윤이 나게 닦아 비추면 어둡고 환영과 같은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고대인들은 청동이나 은과 같은 금속에 광을 내 거울로 사용했다. 당시에 상이 비 추는 것,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신비하고 경이롭다고 여겨졌으나 한편으로 희미한 영 상 때문에 거울에 비친 상은 실체보다 열등하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1세기 로마 제국 때 제 국 전반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던 거대 산업과 더불어 인공 유리가 최초로 발명되었다. 유리와 납 을 다루고 실험하면서 정교한 기술들이 무수히 고안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로마인들은 아 주 작은 크기의 거친 거울 만을 제작할 수 있었다. 중세 시대에는 유리 거울이 자취를 완전히 감 추었는데 당시 종교적 간증에 따르면 거울의 반대면에서 악마가 현세를 관찰하며 지켜보고 있다 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때문에 꾸미기를 좋아하는 부유층 여인들은 안타깝게도 금속을 깨 끗하게 닦거나 그릇에 담긴 물로 자신을 비춰 보는 수 밖에 없었다. 이후 유리 거울은 13세기, 르네상스가 시작되기 바로 직전, 서구의 유리 산업이 재기되면서 다시 제작되기 시작했다. 최초 의 흑요암 거울이 발명된 후 7천여년이 흐른 뒤에야 제대로된 거울 제작의 기술적 발전이 이루 어진 것이다. 그러나 평평한 형태의 유리를 주석에 붙이는 기술이 아직 발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바깥쪽이 굽은 볼록 거울(convex mirror)이 유럽의 많은 장소에서 제작, 사용되었다. 이 볼록 거 울은 비교적 선명하고 보는 이의 주변 환경까지 함축하여 비출 수 있으며 크기를 크게 제작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의 그림,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The Arnolfini Portrait)(1434)의 중앙에 위치한 볼록 거울에서 볼 수 있듯이 실제 시야가 왜 곡되어 보여지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로마 제국의 멸망에 따라 곳곳에 퍼져있던 유리 공장들의 연결망도 몰락하게 되면서 질 높 은 맑은 유리를 제작하는 능력이 서구 사회에서 잊혀져가기 시작했다. 그 기술은 3세기가 지 난 후에 베니스인들에 의해 다시 소개되었다. 베니스 기술공들은 “수평 거울 기술”(flat mirror technique)을 발명하기에 이르는데 이 기술은 초기 로마 제국으로부터 얻은 기술 및 지식을 계 속 유지해오고 있던 시리아 노예들에 의해 얻게 된 기술이라고 알려져 있다. 16세기에 베니스 의 한 섬, 무라노(Murano) -’유리의 섬’이라고도 불렸다.- 거주민들은 그들이 발명한 “크리스탈 로”(cristallo) 유리 제작법을 사용하여 유리 거울을 제작하게 된다. 이 기술은 오늘날의 ‘객관적
인’ 형태를 비추는, 면이 고른 거울과 같은 형태로 주석과 수은 합금을 매끈한 유리의 뒷면에 적 용하는 제작법이다. 그들이 발명한 또 다른 기술로는 금과 청동의 혼합물을 더해 특수한 반사면 을 만드는 비결이 있다. 여기에 물건을 비추게 되면 그 마술적인 혼합 덕분에 거울에 반사된 모 든 물건들은 실제보다 훨씬 더 아름답게 보인다고 한다. 베니스 거울 한점의 생산비가 거대한 군 함 제작비와 동등했다는 기록은 당시 무라노 거울의 유명세와 아름다움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 할 수 있다.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베니스의 기술을 모방하기 위해 첩보 작전을 벌이고 그 외에 많은 시도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그 공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고 한다. 베니스 정부는 비밀 유출을 막기 위해 공식적으로 10인의 위원회 (Council of Ten; 1310년부터 1797년의 정부 전복 때까지 계속된 베니스의 정부 기관)에게 유리 거울 제작의 비밀을 엄격하 게 보호하라는 임무를 주었다. 10인의 위원회는 이 임무를 성공시키기 위해 기술공들을 은밀히 무라노 섬으로 보내 비밀리에 작업을 할 수 있게 만들었다. 기술공들은 위원회들에게 재정적인 지지와 외부로부터 보호를 받았으나 동시에 섬에 갇힌 채 세상과 격리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세기에 콜베르(Colbert; 루이 14세의 재정 총감)는 금 뇌물로 3명의 무 라노 기술공들을 프랑스로 데려오게 된다. 그리고 결국 루이 14세는 그들이 유리 기술의 비밀을 폭로하게 설득하는데 성공한다. 악명 높았던 10인의 위원회는 1667년에 그 반역자들을 파리에 서 암살하는 것으로 그들의 배신에 응답했다. 프랑스 기술공들은 빠르게 무라노 유리 제작 기술 을 배우고 습득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유 리 불기법(glassblowing; 시리아로부터 전수받은 기술)을 기본으로 한 베니스 기술공들과 달리 프랑스 기술공들은 주형(mold)에 액체 상태의 유리를 부어 만드는 캐스팅 기술(casting)을 사용 하여 가공된 거울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이 제조법에서 굳지 않은 유리가 완벽히 반반한 표면의 캐스트 주형에 직접적으로 부어지고, 그 유리가 냉각되면서 굳혀지고 있을 때 특수 제작된 롤러 로 그 위를 굴려주게 되면 표면이 일정하고 단단하며 매끈한 재질의 거울을 만들어낼 수 있다. 이 제조법이 개발되고 즉시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mirrors hall)이 건축되기 시작했다. 거울의 방의 거울들은 73m의 높이에 화려하게 장식된 306점의 거대한 거울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 이 후에도 거울은 귀족들에게 인기있고 가치있는 수집품이 되었다. 영국의 왕 헨드리 8세(Hendry Ⅷ)와 프랑스의 왕 프란시스 1세(FrancisⅠ)는 당시에 가장 잘 알려진 거울 수집가였는데, 특히 프랑스의 귀족들은 왕의 수집품을 따라 잡기 위하여 모든 종류의 고가의 거울들을 사들여야만 했다. 잘 알려진 사실로 한점의 아름다운 거울을 구입하기 위하여 그들 거주지에 살고 있는 거주 자를 팔기도 했다고 한다. 고급의 거울들은 아주 비쌌는데, 예를 들어 한점의 거울의 가격은 같 은 크기의 라파엘로(Rafael) 페인팅보다 더 비쌌다고 한다.
1682년 거울의 방이 완성되고, 17세기 르네상스가 끝이 나면서 전신을 비추는 거대 거울은 유럽과 미국의 사회 고위층 내부 환경의 일부가 되었다. 한편 포켓 버전의 작은 손거울은 사회 일반으로 넓게 퍼져갔다. 18세기 경제 발전과 산업 혁명은 빠른 속도로 거울은 부유한 가정집의 모든 방에 들여놓게 만들었다. 브루주아들은 자아를 조금 더 돋보이게 하기 위하여 장식적인 모 티브들을 거울 표면과 가장자리에 새기고 조각하여 덧붙이게 되었다. 이러한 추가적인 장식은
거울을 실용적인 가치보다 데코(decor)와 같이 미적인 가치를 높이는데 기여했고, 거울 소유자 들의 지위는 그들의 미적 취향을 통해 다시 단정되기도 했다. 18세기 후반과 19세기에 거울은 실내 디자인에 일반화되었고, 20세기에는 유리 건출물과 거울이 만나게 된다. 그리고 21세기, 현재의 거울은 끝없이 확장된 다양한 재료와 형식들 속에서 단언하기 힘든 단계에 이르렀다. 고 정되지 않은 거울의 형식과 같이 거울에 비치는 자신의 상 또한 언제나 유동한다.
내가 무라노 섬에 방문했을 때 16세기부터 사용했던 제조법으로 유리를 만들고 있던 한 유리 공장의 장인은 무라노 유리의 역사와 제조법을 간단히 소개해주면서 이런 말을 덧붙였다. “우리 가 하고 있는 일은 매우 시대착오적이예요. 현재 무라노 유리가 유명한 것은 더 이상 아름다워서 가 아닌 전통의 방식을 고수하여 유리를 제작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죠. 이 사실은 사실 우리 같은 장인들에게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한 자존감을 높여주진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베니스가 점점 가라앉고 있다고 말하지요.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베니스는 아주 천천히 바스러지고(crumbling) 있는 것이예요. 무라노도 마찬가지지요. 무라노는 사실상 더 이상 유리 의 섬이 아니예요. 베니스처럼 우리도 조금씩 바스러지고 있어요. 나는 하루에도 수 천개씩 깨 지는 유리들과 그 파편을 볼 때마다 바스러지고 있다는 표현이 얼마나 적절한 표현인지에 감탄 하게 된답니다. 단지 그 속도가 조금 느릴 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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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없는 이야기 글. 그림. 철민
가독성과 판독성 ⑴ 모든 광고는 다른 광고와 다르게 보이려고 애쓰고,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디자인된다. 여기에 타이포그래피 상의 변수들이 추가된다. (모든 글줄의 길이가 똑같은) 양 끝 맞추기, 왼 끝 맞추기, 혹은 넓거나 좁게 디자인된 문단 등 글을 조판하는 방식은 굉장히 다양하다. 인쇄되지 않은 흰 지면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글을 더 눈에 띄게 하거나 편안한 인상을 줄 수도 있고, 혹은 일부로 빽빽하게 조판해서 여백을 줄이면 긴박한 느낌을 고조시키기도 한다. ⑵ 광고에서 글자를 변형하는 것은 아름다움, 차별성, 정보 전달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진다. 여기서 가독성(readability)과 판독성(legibility)이라는 신화는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판독성은 하나의 글자를 다른 글자와 구별할 수 있게 해주는 정도를 말한다. 예를 들어, 대문자 I와 소문자 l 사이에 충분한 차이가 있는지 말이다. 가독성은 편안함을 일컫는 광범위한 용어이다. 만약 당신이 쉬지 않고 장시간에 걸쳐 신문을 읽을 수 있다면, 그것은 가독이 쉬운 것이다. 다시 말해 가독성이 전체적인 그림을 일컫는다면 판독성은 글자꼴과 그들의 세부 사항들을 일컫는다.
Invisible Typography Ⅰ tv 광고를 보면 짧은 시간에 읽기 힘들 만큼 많은 정보가 쏟아질 때가 있다. 그중 보험광고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정보는 읽기 위해 존재하는 정보인지 의아할 정도다.
약 2~3초 안에 복잡한 표와 작은 글자들이 화면을 빽빽하게 구성한다. 매체 특성을 고려해보았을 때 tv와는 어울리지 않는 형식이다. 이 같은 형식은 앞서 언급한 가독성과 판독성 어느 한 쪽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단순히 화면에 맞는 타이포그래피와 레이아웃을 찾지 못한 무능한 디자이너의 책임으로 돌리기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존재한다. 몇 해 전 나는 한 의류 브랜드 온라인 배너 광고 디자인을 맡은 바 있다. 광고주가 강조한 요청사항은 콘셉트도, 아름다움도 아니었다. ‘무조건 잘 읽히게 해주세요.’였다. 기획팀은 광고주에게 전달받은 정보들로 배너 스토리보드를 구성했다. 배너 사이즈는 가로 300px, 세로 150px였다. 많은 글자를 담기에 충분한 지면은 아니었다. 지면을 고려해 글자를 분배하니 총 8컷이 나왔다. 그렇게 디자인이 완료되었고 우리는 광고주의 최종 컨펌을 기다리고 있었다. 광고 집행 4시간 전 광고주는 마지막 컷에 상품의 상세 정보를 추가해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마지막 컷에는 이미 다른 글자가 이미지와 함께 구성되어 있었다. 언 듯 봐도 정보를 추가할 상황이 아니었다. 컷 수를 늘리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이런 상황을 광고주에게 이야기하자 돌아오는 대답은 ‘넣기만 하면 되고 안 읽혀도 상관없다.’였다. 꽤 중요한 정보처럼 보였지만, 나는 6포인트 정도로 화면 구석에 글자를 거의 구겨 넣다시피 했다.
Invisible Typography Ⅱ 우리는 따로 학습하지 않아도 읽기(reading)와 보기(looking)라는 두 가지 타이포그래피 형식을 무의식적으로 잘 구별하며 살아간다. 우리가 최초로 글을 읽기 시작했던 시기를 6세 전후라고 가정해보자. 우리는 매일 매체에 담긴 수많은 글자를 보며 살아간다. 그중 전통적 방식의 읽기라고 할 수 있는 책이나 잡지를 제외 하더라도 거리의 간판들, 티셔츠에 프린트된 글자, 핸드폰 문자, 이메일, tv 광고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글자를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다년간 학습을 통해 획득하게 된 이 능력은 일종의 관습처럼 작동한다. 디자이너는 관습에 맞춰 보고, 읽어야 할 것에 적합한 타이포그래피 형식을 부여한다. (물론 관습의 틀에서 벗어난 실험적 타이포그래피를 행하는 디자이너도 많지만 그 부분은 논의에서 벗어나기에 제외하기로 한다.) 예컨대 정확한 정보가 필요한 공공기물(지하철, 공항 사인물 등) 일 경우 가독성과 판독성의 법칙을 따른다. 많은 사람이 정확히 읽어야 할 부분의 정보가 가독성이 떨어지는 필기체나 빈티지한 폰트로 디자인돼 있다면 커다란 불편을 야기할 것이다. 반면 정보보다는 상징성이나 아름다움이 더 중요한 정보들은(티셔츠 프린팅, 잡지의 제목 등) 가독성과 판독성이 다소 떨어져도 무관하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가치가 적절히 분배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이상한 느낌을 받는다. 예컨대 tv 보험광고의 마지막 컷에 등장하는 글자 더미는 어떤 사람에게는 반드시 ‘읽혀야할’ 정보다. 읽고 싶지 않은 글자의 양과 판독성을 흐리는 자간과 행간의 넓이는 이것을 읽는 차원이 아닌 보는 차원으로 향하게 한다. 몇 해 전 나에게 ‘넣기만 하면 된다.’고 주문했던 광고주의 말처럼 어떤 정보는 마치 낙인처럼 그 자리에 들어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여기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어떤 기관의 승인을 위해, 독자가 꼼꼼하게 읽으면 오히려 자신들에게 손해가 갈 수도 있는 사항들 때문에, 상사의 압력에 의한 수동적 조치에 의해. 정보를 읽어야 할 것과 보아야 할 것으로 구분하는 것은 비단 실무에 연관된 사람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읽어야 할 정보를 보기의 차원으로 넘기려는 사람과 그것을 편집하는 디자이너 사이에는 미필적 고의라는 보이지 않는 선이 형성된다. 실무를 겪다 보면 정보의 위계(hierarchy)가 대부분 확정돼 디자이너에게 전달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어떤 정보의 위치는 특정한 곳이 아니면 안 된다는 것이다. 정보의 중요도를 선별하는 위계(hierarchy)의 권한이 누구 주머니에 있느냐는 가독성과 판독성 너머의 문제를 발생시킨다. tv 보험광고 끝자락에 배치된 조악한 타이포그래피의 문제를 편집에 연관된 사람들에게 국한시키는 것은 성급한 판단일지 모른다.
⑴, ⑵ 당신이 읽는 동안[헤라르트 윙어르]
clichecliche@naver.com
한 쪽 눈으로 바라본 세상 / 4. 어디로 간거야? 글. exxx
선거철이다. 그러니 오늘은 그와 걸맞은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런 이유로 오늘의 주제는 국회의원이다.
나는 어린시절부터 어른이 된 이후로 꽤 오랫동안 정치에 관심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알고 있 던 것이 하나 있었다.
“비례대표 1번은 보통 장애인이 하는구나”
늘, 1번은 아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선거 결과를 이야기 하는 자리에서는 늘 높은 확률로 비 례대표 최상위권에 배치되어 선출된 장애인과 함께 당선 인사를 하곤 했다. 비록 보여주기식 정 치라 할 지라도 선거 결과를 이야기 하는 중요한 자리에 휠체어나 색안경과 같은 보조기구들이 보이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글도 관련된 주제를 쓰고 있으니 조금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기로 했었다. 정치에 관심도 늘었고 글까지 쓰고 있으니 비례대표 후보로 어느분이 장애인 권리를 대표하는 역할을 맡을 것인가 궁금했던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어땠을까? 관련 기사의 제목들을 인용해 보자.
“20대 국회 장애인 비례대표 0명, 장애계의 자업자득이다.” “20대 총선 장애인 비례대표 전멸 누구 책임?” “20대 국회에는 장애인 비례대표가 한 명도 없다.” “20대 총선 장애인 비례대표 사실상 전멸”
뭐 내용은 조금 복잡한 이야기가 있지만 제목만으로 알 수 있지 않은가?
0 명이다.
17대부터 이어져온 사회적 약자 대표로 주어지던 자리가 사라진 것이다. 장애를 가진 인물이 완 전히 배제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사회적 약자 대표의 형태로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대표적 성격 의 인물. 그 상징성은 사라졌다는 기사가 내용의 대부분이다.
나는 솔직히 말해 이 것에 조금 충격을 받았다. 선거구 획정이 늦어질 때에도 ‘그냥 그런가 보다. 각자 이권이 달렸으니까 그럴 수 있지.’ 비례대표 의석이 줄었을 때에도 ‘뭐 이런 결과가 예상되 었으니까.’ 했었는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 의석이 사라진 것에 대해서는 무척 놀랐다. 강호
의 도리가 떨어졌다고 해도 할 일이 있고 안할 일이 있는데 넘지 말았어야 할 선을 넘은것 아닌가
물론, 내부에서는 이와 관련해 예견된 미래라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다.
그동안 상징적으로 주어지던 자리의 이미지적 실효가 크지 않았다는 판단 과 줄어든 비례 의석 수에 대한 이해관계가 맞물려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의견도 있고, 장애인들의 권리를 위해 대표 성을 갖고 그들의 이권과 실익을 위해 의견을 모으는 등의 활동으로 접근해야 하는 자리에 장애 인이라는 상황만을 이용해 국회의원 자리를 얻으려 했던 그간의 병폐들이 누적되어 배려 의석이 사라졌다는 의견도 있다. 모두 다 일리가 있는 의견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사라 졌다는 것은 나에겐 충격적인 일이었다.
아주 간단하게는 ‘이제 정당의 사람들이 무서운것도 없고 배려심도 없고 부끄러움도 없어졌구 나.’ 하는 생각뿐만 아니라 지난 번부터 걱정했던 ‘이제 우리들의 시야에서 장애와 같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문제는 완전히 배재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둘 다 일 것이다.
그것이 뭐가 되었든 결과적으로 무척 슬픈 일이다. 더이상 되돌릴 수도 없기에 안타까운 일이다. 글을 쓰는 오늘은 선거를 9일 앞둔 날이다. 나는 오늘 한 후보의 선거사무소에서 자원봉사를 다 녀왔는데,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그 후보는 아마 높은 확률로 사회적 약자를 외면하지 않는 정치를 할 것이다. 하지만 당선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선거 결과를 마치 동전던지기 하듯 기다 려야 하는 상황이다. 앞이나 뒤가 되듯,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 그 리고 정말로 그 후보가 당선이 되더라도 지금 내가 느끼는 이 아쉬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비례 수위권의 상징성과 이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단순한 구조 의 톱니바퀴여도 절대로 빠져서는 안되는 톱니바퀴가 있는 것이다. 나는 그것이 이번 선거에서 빠졌다고 생각한다. 그런 이유로 지금 무척 안타깝고 슬프다.
하지만 세상은 돌고 돌지 않던가. 이번은 잠시 쉰다 하더라도 21대 도 있고 22대도 있다. 다시 기대를 해보련다. 그때가되면 너무 늦는다고, 이 글을 읽는 독자들이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끔찍 한 나이가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결혼을 하거나 흰머리가 숭숭자랄 지도 모르는 시간이라 고 말이다. 하지만 나도 월간이리를 처음 만들던 시절에 다음 총선까지 이걸 하고 있을 줄 몰랐 으니, 시간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충분히 쉽게 지나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자. 그러니 우리 힘들어도 웃음을 잃지말고 앞으로 달려가자.
하니!
아 다들 모르시죠? ㅠ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