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이리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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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입니다. 수면을 걷는 사람들 - sns, 우리와 이야기 上 / 글. 소한집 사진. @photo.j.keith 도토루의 하루 - 그림. 호지 영화 수업 - 전쟁 영화의 딜레마: 훌륭한 영화 잘못된 프로파간다 / 글. KIM 뼈와 살들 - 글. 그림. 준가 옆사람 인터뷰 - 23. 오기스러운 삶 / 글. 정리. 이내 건축이 좋아 - 36. 근대의 꿈, 근대의 로망, 타이난의 하야시 백화점 / 글. 사진. 그림. aoikasa 지진파 - 김영란의 열린법 이야기, 우리말로 살려놓은 민주주의 헌법 의미 없는 이야기 / 그림. 글. 철민 대선을 앞두고 굴림체로 - 2. 우리 님이 다 해주실거야? / 글. exxx


단어 하나를 적고 단어 하나를 지우는 일에 하루가 가기도 합니다. 이렇게 인사를 건네는 오늘이 그렇습니다. 따듯한 겨울을 보내고 계시는지요. 여름의 온도가 마음을 뜨겁게 한다던 어느 여행 작가의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신 기하게도 그 문장 하나를 마주하고 저의 여름은 쾌적한 것으로, 뜨겁지는 않더라 도 따듯한 마음을 지킬 수 있는 계절이 되었습니다. 반면 겨울은 예외 없이 차고, 여름을 견디게 한 강박으로 마음까지도 찬 계절이 되 었습니다. 끝내 좋아할 수 없던 겨울이지만 한겨울의 강추위를 지난 지금을 조금은 좋아합니다. 봄이 올 것이라는 기대보다 겨울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겨울을 좋아하는 친구는 찬 공기에서는 온기를 잘 느낄 수 있다고 말해주었습니 다. 요즘은 그 온기를 생각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제각각 다른 체감 온도를 느끼 고 있겠지요. 말이든 글이든 누군가에게 인사를 건네는 일이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2월에는 온 기를 찾는 노력을 해야겠습니다. 따듯한 사람들과 따듯한 2월 보내기를 바랍니다.

월간이리를 애정하는 이내 드림

공식트위터 @postyri


수면을 걷는 사람들

글. 소한집(@condensed_bold) 사진. @photo.j.keith


sns, 우리와 이야기 上 수요일에 리와는 욕조에서 발견되었다. 오후였고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아 창문이 어두워보였다. 교실의 한 가운데 앉아있던 아이가 아무도 없는 칠판과 교단을 향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욕조에서 리와를 찾았대, 라고. 의자가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고 친구들은 일어나거나 앉아서 아이에게 질문을 던졌다. 리와가 욕조에 있었다고? 리와가 언제부터 욕조에 있었는데? 리와를 누가 찾았는데? 아이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아이는 단지 욕조에서 리와를 찾았다는 문자를 받았을 뿐이었다. 그 문자는 진짜였다. 친구들은 그렇게 느꼈다. 아무도 리와가 어디있는지 몰랐다. 리와가 있는 장소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문자밖에 없었다. 리와가 욕조에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친구들은 리와가 마른 알몸을 반쯤 드러내고 욕조에 푹 파묻히듯이 앉아 있는 장면을 생각해봤다. 리와가 있는 것이 어느 욕조인지는 모르겠으나 리와는 그 욕조에 오래 있을 작정인 게 분명했다. 문자의 발신번호는 유령이었다. 전화를 걸면 안내 메시지로 연결되었다. 삐 소리가 난 뒤에는 모든 것이 조용해졌다. 리와를 잊는 것은 쉬운 일이었지만 아무도 잊지 않았다. 리와는 언급되지 않았다. 날짜가 지나갔고 친구들은 리와를 더 깊이 생각했다. 리와를 그리워하는 친구들이 리와에게 전화를 걸었다. 리와는 걷고 있었다. 고속도로에서 또 다른 고속도로를 향해 걷고 있었다. 리와가 위험했다. 친구들은 문자를 교환했다. 리와가 머리카락을 잘랐다. 리와가 미용실에 갔다. 아니 화장실 거울 앞이다. 욕조다. 욕조에 잘린 머리카락이 둥둥 떠있다. 여기에 리와가 있다. 리와는 문자를 통해서 생존했다. 친구들은 그 일을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았다. 리와는 사람들과 많은 대화를 하지 않았기에 저마다 리와의 목소리를 가지고 있었다. 친구들은 할 일이 많았고 멈춰서 하늘을 볼 때와 비슷한 기분으로 리와를 생각하였다. 리와는 호의에 어울리는 사람이었던가. 그게 기억나지 않았다. 리와는 횡단보도를 건너 아파트단지로 들어갔다. 단지 내의 놀이터로 향했다. 정글짐 안에서 웅크린 모습으로 리와는


숨을 이어갔다. 정글짐이 리와의 얼굴을 가렸지만 철장처럼 보이는 그 안에서 바깥을 보는 눈빛은 어느 때보다 형형하였다고 친구들은 적었다. 리와는 사라지기 전처럼 말이 없었고 저항 없이 연장되었다. 친구들은 학원에 가거나 놀이터에 갔다. 친구 중의 하나가 정글짐에 들어가자 다른 친구들이 뒤따랐다. 많은 친구들이 정글짐의 안쪽으로 들어가서 정글짐의 바깥을 응시했다. 친구들은 그 일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리와에 대해서 문자를 나누었다. 그 일은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았다. 친구 중의 하나가 문자를 보내고 잊으면 다른 하나가 문자를 보냈다. 친구들은 그 일에 대해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친구들은 그 일에 대해 전혀라고 해도 좋을 만큼 대화하지 않았다. 오로지 문자를 통해 리와는 연속되었다. 리와 역시 그 일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리와의 세계는 방해받지 않았다. 친구들은 수학 문제를 풀거나 시험지를 뭉쳐 버렸다. 친구들은 문제집의 지우갯가루를 털어내다가 실수로 문제집을 쓰레기통에 넣었다. 친구들은 쓰레기통을 둥글게 둘러싸고 쓰레기통의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친구들은 쓰레기통을 등졌다. 어떤 날에는 리와가 쓰레기통 안에서 상반신만 내민 모습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친구들은 조금 흡족하였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친구들 중 하나는 그것을 비난하고 싶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난 후에 리와는 다시 욕조에서 발견되었다. 리와는 처음부터 거기에 있었어, 라고 누군가 적었다. 리와는 상아색 피부를 가리지 않은 채 물에 반쯤 잠겨 있었다. 물은 맑았다. 리와구나. 거기 있었구나. 친구들은 지금까지의 리와가 없었던 것처럼 리와를 반겼다. 한 명의 친구가 부모를 잃었다. 그 일은 나중에 알려졌다. 그 일이 알려지기 전에 리와가 장례식장에서 발견되었다. 누구의 장례식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리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친구의 부모를 조문하지도 않았다. 리와는 다시 욕조로 갔다. 리와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욕조 안에서 흐르는 시간을 멍하니 관전하기만 했다. 친구들은 리와가 입술을 움직여 무언가 말하거나 미소를 짓는 장면을 생각했다. 친구들은 모르는 사람과 리와가 섹스한 것을 알았다. 친구들은 유명 연예인과 리와가 새벽에 가로수길을 걸은 것을 알았다. 친구들은 리와가 사랑하는 사람을 리와가 증오하는 사람을 알았다. 친구들은 리와가 욕조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욕조의 물은 맑았다가 거품으로 탁했다가 자유자재였다. 친구들은 리와를 생각하고 리와는 친구들에게 무심했다. 그러나 리와는 계속 발견되었다. 마치 리와의 어느 부분이 세계 속에서 무방비하게 드러나 있는 것처럼 친구들은 또렷하게 리와를 감지했다. 친구 중의 두 사람이 서로 사랑했다. 두 사람은 함께 리와를 발견했다. 리와는 유리잔 속의 포도주를 흔들고 포도주를 마시고 있었다. 리와는 두 사람을 만났다. 아무 대화도 나누지 않았지만 잔을 나눴고 식사를 함께했다. 두 사람은 리와와 친밀해졌다. 모든 친구들은 사랑하는 두 사람을 축복해주었다. 리와는 두 사람을 축복하지 않았다. 그저 손을 흔들었다. 리와는 손을 흔드는 모양 그대로 발견되었다. 두 사람은 다시는 문자를 쓰지 않았다. 두 사람은 손을 잡고 리와의 세계를 걸어나갔다. 여수 바다에서,


강의실에서, 재수 학원에서 리와가 손을 흔드는 모습은 계속해서 발견되었다.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견되었다. 한동안 리와는 손을 흔드는 모습으로만 살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리와는 길게 관찰되었다. 긴 문자를 받은 친구들은 눈을 반짝였다. 리와는 욕조 안에 있었다. 리와는 자기의 피부 색과 똑같은 상아색 욕조를 좋아해. 그래서 화장실을 치우고 타일들을 다 닦은 뒤 새로 마련한 상아색 작은 욕조를 들였어. 욕조를 벽에 붙여두면 가장자리에 곰팡이가 피기 쉽다고 해서 중앙에 두었지. 집에 비하면 화장실은 그나마 넓은 편이어서 수월했어. 욕조에 아로마향초를 올리고 가끔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반신욕 커버도 샀지. 창고에 쳐박아둔 라디오를 꺼내 비닐을 씌워 화장실 선반에 놓아뒀어. 내가 고등학생 때 만들었던, 좋아하는 소리를 녹음해둔 테이프를 하나씩 재생해주려고. 첫 번째 테이프에는 콜라 캔 따는 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 딸꾹질하는 소리 아기가 아기에게 말 거는 소리 은박지를 흔드는 소리 죽은 친구가 흥얼거리는 소리 자동차 바퀴에서 간혹 나는 우아한 소리 돌과 돌을 서로 비비는 소리 유리잔 입구를 유리막대로 만지작거리는 소리 새소리 큰 나무에서 많은 나뭇잎들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 휘파람 소리 달리면서 숫자 구호를 외치는 소리 무표정을 연상시키는 고양이의 발소리 얼음을 얼음각에서 꺼내는 소리 욕조에서 물이 흘러 넘치는 소리 수챗구멍이 물 마시는 소리 네가 리와를 부르는 소리 둘이서 셋이서 다 같이 한꺼번에 부르는 소리 혼자서 일상적으로 부르는 소리 우리가 리와를 향해 하고 싶은 말들을 건네는 소리가 들어있지. 이 테이프를 들으면 리와가 행복해질까. 나는 리와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행복한 리와가 많이 발견되는 시기에는 행복한 뉴스들을 많이 보곤 했어. 불행한 리와의 모습은 그런 기억들을 잊게 만들어. 좋은 날들이 마치 없었던 것처럼 살고 싶지 않은 불행한 날을 살아야 하고 그럴 때마다 리와는 욕조를 그리워하는 것 같아. 욕조를 마련하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어. 형편이 좋지 않은데도 리와가 언제라도 와서 쉴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드는 일이 하나도 버겁지 않았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우리가 이렇게 불행한 이유는 불행을 선택할 자유가 박탈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 이제는 문득 엄습하는 불행을 만날 수 없고 행복과 마찬가지로 불행은 많은 취미 중의 한 가지가 되었지. 나는 리와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리와가 나보다 행복했으면 좋겠어. 그리고 나는 리와를 떠나고 싶지 않지만 리와는 나를 떠나게 해주고 싶어. 언제든지 떠나고 언제든지 돌아오게 해주고 싶어. 나는 이제 리와를 보내주고 싶어. 내가 준비한 욕조에 리와가 들어와서 잠든다면 리와를 보내줄 수 있을지 몰라. 무척 기다려져. 하지만 분명히, 나는 벌써 리와를 보내주고 싶어하는 거야. 이미 리와가 와있어. 욕조를 주문하기도 전에 라디오를 비닐에 넣기도 전에 내가 잠에서 깨기 전에 우리 모두가 욕조에서 나와 몸에 붙은 물방울을 털어내기도 전에. 리와가 와 있었어. 이제 리와를 보내주고 싶어. 리와에게 계속 여기로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 우리 모두가 그렇지 않아? 침묵은 모두가 이 문자 안에서 리와를 읽어냈다는 걸 알게 해주었다. 친구들은 그 문자를 소화할 만큼만 조용했다. 시간이 지나자 변화가 일어났다. 누군가, 아마도 리와가 직접 문자에 응답하기 시작했다.




영화수업

장르의 탐구 : 전쟁 영화의 딜레마: 훌륭한 영화 잘못된 프로파간다

전쟁 영화는 영화 장르 중에서도 가장 정치적인 장르이다. 그리고 가장 대중적인 장르이기도 하다. 인류의 역사는 곧 전쟁의 역사라는 말처럼 우리네 삶은 언제나 전쟁과 함께 해왔다. 지금 이순간에도 아프가니스탄, 시리아, 레바논 등지에서 사람들이 총성에 쓰러지고, 아이들의 고사리 손에 연필 대신 라이플이 쥐어진다. 할리우드의 전쟁영화는 남한과 다르게 대체로 국가의 정치이념에 부합하는 주제를 시사해 왔다. 전장에서 죽어가는 보통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휴머니즘이 담겨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할리우드 영화는 전쟁을 ‘민주주의와 정의를 위해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포장한다. 이런 이유로 할리우드의 단골 주제가 되는 전쟁은 단연 세계 2 차 대전이다. 파시즘과 히틀러라는 아주 강력한 악이있어 미국, 영국 등의 제국주의 패권다툼은 가려지고 ‘고귀한 민주주의와 세계 평화를 위한 정의로운 싸움’으로 포장하기 편리하기 때문이다. 영화 통계 사이트인 Box office Mojo에 따르면, 지금까지 만들어진 2차 대전 배경 영화가 74 편, 그리고 2017년에만 3 편이 더 개봉 예정 중이다. 셈해보면 종전 이후 1년에 한 편 이상씩은 꾸준히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영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베트남 전쟁이나 이라크 전쟁을 배경으로 만들어진 영화들은 반전 영화들도 꽤 있다. 하지만 시사성이 있음에도 흥행에서는 2차 대전 영화들보다 부진한 편인데, 이유야 어려가지가 있겠지만 투자가 적어 제작비가 충분치 않은 탓도 크다. 일례로, 미국의 전쟁 미화 대표작 중 하나로 꼽히는 진주만(Pearl Harbor, 2000)이 당시 제작비 140만 달러, 마케팅비 70만 달러를 투자한 데 비해, 미국의 이라크 전쟁의 참상을 보여준 허트 로커 (Hurt Locker, 2009)는 총 제작비가 15만 달러밖에 안 됐다. 결과적으로 허트 로커는 흥행에 성공해 약 5천만 달러를 벌어들였지만, 진주만의 흥행 성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진주만은 4억5천만 달러의 흥행 성적을 거둬들여 역대 할리우드 전쟁영화 중 세 번째로 흥행 성적이 좋다. 허나 반대로 작품성에서는 허트 로커가 더 좋은 평을 받았다. 허트 로커는 그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작품상을 포함 6개 부문에서 수상했지만, 진주만은 노미네이트 된 부분도 모두 기술적인 부분이었으며 사운드 편집 한 부문에서만 수상했다.


글.kim

진주만은 정치적으로 잘못된 영화라고 말할 수 있지만, 사실 그 영향력이 우려할만한 수준은 아니다. 흥행에 성공하긴 했어도 너무나 노골적인 애국주의 프로파간다와 전쟁 미화로 평론가들은 물론 관객들도 최악의 전쟁 영화로 꼽기 때문이다. 정말 문제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 (Saving

Private Ryan, 1998) 같은 영화적으로 허점을 찾아볼 수 없는 영화이다. 2차 대전 중 세 명의 형을 잃은 라이언 일병(맷 데이먼)을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찾아나선 밀러 대령(톰 행크스) 와 분대원들의 이야기를 그린 이 영화는 개봉한지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전쟁영화의 교과서로 남아있는 대작이다. 영화 속 파편적인 사건들은 전쟁의 끔찍한 참상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이 영화는 히틀러에 맞선 미국의 정의로운 싸움과 자국민을 생각하는 미국의 애민심을 찬양하고, 애국심 그리고 전우애를 주축으로 점철된 휴머니즘을 전장에 녹였다.

시적이고 재치있는, 게다가 완성도까지 높은 시나리오와 스티븐 스필버그의 엔터테인먼트에 충실한 연출은 이 끔찍한 전쟁을 사람들이 우러러볼 수 있도록 멋있게 포장한 일등 공신이다. 총 59일의 촬영 기간 중 25일을 투자해 촬영한 노르망디 상륙작전 씬은 지금까지도 영화 속 최고의 한 장면으로 꼽히며, 실감나는 전쟁 사운드 효과는 근래 개봉하는 어느 전쟁영화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는다. 배우들의 호흡도 백미다. 스필버그가 주연으로 발탁한 톰 행크스는 당시에 이미 관객들에게 신뢰받는 할리우드의 대표 배우였는데, 그 기대에 부합하며 전쟁 속에서 내면 갈등을 겪는 밀러 대위 역할 매력적으로 그려냈다. 호바트 중사를 연기한 톰 시즈모어는 80년대부터 비중있는 주조연급 역할을 안정적으로 해 온 배우로, 이 영화에서도 명품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다른 여섯 명의 분대원들은 당시 신인 배우였거나, 경력이 있어도 그리 두각을 나타내는 배우들은 아니었는데 준수한 외모와 썩 괜찮은 연기력에 스필버그의 연기 연출이 더해져서 모두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후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엄청난 제작비, 좋은 연출, 시나리오, 배우까지 모든 것을 갖춘 영화였으며, 영화팬들이 이 영화를 좋아하지 않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나는 최근에야 이 영화를 접했는데, 처음 영화를 본 이후 열 번 이상을 다시 봤다. 이후에는 메이킹 비디오를 보고 시나리오까지 읽을 정도로 이 영화에 매력을 느꼈다. 하지만 이 영화 역시 할리우드의 전쟁 미화에 일조한다는 사실은 여전히 큰 불편함으로 남아있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기 전에 내가 가장 찬양하는 전쟁 영화는 켄 로치의 랜드 앤 프리덤

(Land and Freedom, 1995)이었다. 1936년 스페인 내전을 배경으로 하는 이 영화는, 프랑코의 파시즘 정권에 맞서 싸우는 노동자들과 농민들을 보여준다. 당시 미국과 유럽 전역에서 파시즘에 반대하는 젊은이들이 참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스페인에 모여들었다는 사실은 나에게 충격과 감동으로 다가왔다. 국가적 군대지원이 아닌 의용군들이 말이다! 랜드 앤 프리덤은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영국인 데이비드(이안 하트)의 시선으로 그려지는데, 이는 스페인 내전에 참전했던


조지 오웰의 자전적 소설 ‘카탈루냐 찬가’가 바탕이 됐다. 2차 대전과 다르게 스페인 내전은 조명할만한 정당성이 있다. 조선의 민중들이 일제강점기에 일본군경에 맞서 싸우고, 박정희 전두환의 독재권력에 맞서 싸우던 한국의 민중투쟁과 같은 성격을 가진 싸움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영국이 패권다툼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수많은 젊은에게 애국심을 들먹이며 전쟁터로 내몰았던 것과는 다른 성격의 것이다.

켄 로치의 연출도 훌륭하다. 교전 중에 죽은 민병대원들의 무덤앞에서 살아남은 동지들이 눈물을 훔치며 인터네셔널가(The International)를 부르는 장면과 파시스트가 장악하던 마을을 탈환한 뒤 마을 주민들과 민병대원들이 토지 관리 문제에 대해 토론하는 장면은 영화가 프로파간다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훌륭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랜드 앤 프리덤은 영화를 열 번 넘게 돌려보게 하는 힘은 없다. 켄 로치에게 더 좋은 배우를 캐스팅하고, 좋은 장비와 후반 작업에 더 공을 들일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매년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영화들의 흥망성쇠를 보면서 스스로 이런 고민을 한다. ‘시장 예술(평론가 이동진)’ 이라는 영화 미디어에서 창작자는 얼마나/어떻게 자본과 (혹은 지배 사상과) 타협해야 하는가? 이 고민에 대한 나의 답은 ‘그래도 신념을 버려서는 안된다.’이다. 하지만 언젠가 실제로 이런 고민의 순간이 온다면 이렇게 간단하게 결정을 내리진 못 할 것 같다.

akakk_@naver.com

이달의 원고와 관련하여 kim 님과 의견을 나누실 분들은 위 메일주소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 식물의 분류나 생태, 인간 관련 의학, 퀴어 관련, 무속, 종교, 음악, 소설 이나 시와 같은 문학 관련, 사진, 일러스트 혹은 적어놓은 것 이외에도 무언가를 꾸준히 기고하실 분들은 언제든 exxx2x@gmail.com 으로 문의주세요. 설마 이런걸 연재가 될까? 하는 것들 다 되게 만들어 드립니다. **


살들 그림 / 준가 junga.pic@gmail.com





옆 사람 인터뷰 23_ 오기스러운 삶

walker, 여행하며 음악하기

사람들은 그녀를 ‘오기’라고 부른다. 이름 대신 별명을 부르는 것이 이곳 문화이고, 아마 이름이 옥으로 끝나기 때문에 오기가 된 듯하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 위계 없는, 주어진 이름 대신 그들 각자가 불리고 싶어 하는 방식으로 부르는 호칭이 좋았

다. 오기와는 모극장(모두를위한극장 공정영화협동조합) 활동을 통해 만났다. 그의 언어나 시선에는 따듯한 데가 있다. 개인 �� ���� ���� ���� ��� 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자리는 별로 없었는데, 문득 오기가 궁금해졌다. �� ��� 밤�� �� ��� ���� 결

각이 스쳤다. 어디에 있 모극장에서 오기의 역할은 무엇인가요. 모극장은 어떤가도 곳이고,

요, 사람으로 펼쳐진 시공간이

고 만나고빠지는 있는 말들이 사람들많을 또한 것 같아 조심스러운데 간단히 설명하자면 영화 관련 협동조합이에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영화 제작이

의 하나였다. 여행을 이야기하 나 극장 운영이 아닌 영화를 매개로 하는 일이에요. 커뮤니티시네마 활동을 바탕으로 영화의 대안적인 상영과 배급 등을 진행

하고 있어요. 저는 모극장의 조합원이면서 협동이사예요. 조합원들 간의 협동, 조합과 조합 간의 협동에 관한 일을 하고 있어요. 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생

여행해볼 작정이라고. / 모극장과의 인연은 어떻게 맺게 되었는지요.

모극장에서 기획한 랩톱영화제라는 게 있었어요. 포스터를 보고는 반해서 찾아갔어요. 랩톱영화제 1회 관객으로 참여하고, 이 는 다양한 삶이 오고갔다. 그 후 모극장의 청년기획단으로 활동하고, 이렇게 조합원이 되었지요. 온 장기 투숙객이었는데, 여

는 그의 하루가 꽤 정적이었 모극장에 오래 있었기 때문인지 학교를 졸업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에요. 간에서 편의점 음식을 먹거나

모아 놓은 교본을 옆에 두고 졸업 요건을 맞췄다고 생각했는데 아니더라고요. 하하 디자인을 전공했고, 이에 관한 고민이 많았어요. 나중에는 꼭 어떤 유형 다. 내가 그의 반려자와 다름 의 디자인이 아니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디자인의 의미를 생각해 보았을 때, 시각적인 것에 국한되지 않고 좀 더 넒은 동강 내기 전까지는(당분간 는 비틀즈와 로드리게즈 만큼이나 그의 노래를 의미의 디자인을 생각해요. 커뮤니티 디자인에도 관심이 있고요. 졸업은 지금 시점에서 중요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겠다고 설칠 일은 없으리라).

좋아한다.

만남중개사무소 작당모의자라는 것도 하고 있어요.

람들은 그가 의사가 될 것을

유진이라는 둘이서 하고 있어요. 고민이 22살의시드니에 끝에 대안적인 때부터 그는 음악을 친구와 꿈꾸었다 조금 더 이런저런 오래 머물 줄 많던 알았는데 갔 삶의 가능성을 모색하기 시작했어요. 이

관련된 활동이 대학 작당모의자였고요. 삽질도 많이 지내고 했어요. 어떤 오랜 시간와그대로였으나 다. 요즘은 어떻게 있나.책임을 안고 사회적으로 풀기보다는 지금 당장 만나고 싶은 사람, 하고 싶은하기로 프로젝트 등을 산발적으로 진행하기도 했지요. 하나 예를 들자면 주간 작당모의라고 해서 다양한 삶의 방식 그는 온전히 음악을 을 지닌 사람들을 매주 한 명씩 초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관광비자만으로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나도 오래 있고 싶었지만 그 하고요. 만남을 통해 일상의 변화를 만들 어 나가고 싶었어요.

럴 수 없었다. 한국에 다시 가고 싶고 그전까

로 본 날, 직접 녹음한 아홉 지 시드니에서 시간을 보내려고 한다. 비행기 누군가 오기에 대해 이렇게 말했어요. 오기는 공감할 줄 안다고.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요. 오기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장을 선물로 받았다. 요즘 나 표를 사기 위해 잠시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 이렇게 얘기하면 이기적인 것 같기도 하지만 상처 받지 않기 위한 방법인 것 같기도 해요. 누군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거


나 내가 상처 받을만한 행동을 하거나 화가 날 법한 행동을 할 때. 왜 그런지 조금씩 생각하다 보면 저 사람은 이런 입장에서 이런 행동을 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해요. 공감이라고 하는 게 나를 위한 것일 수도 있어요. 누군가를 100프로 공감한다고 자신 할 수는 없지만 최대한 상대방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오기라는 단어가 지니는 의미도 있으니, 문득 오기에게 어떤 오기가 있다면 무엇일까 궁금해졌어요. 있던 오기도 사라진 느낌이 들 때가 있고 없던 오기가 생기는 때도 있어요. 오기라고 표현하니까 좀 부정적인 느낌이 들기도 하 지만 요즘의 오기라고 한다면 이렇게 살아가는 데에 오기가 생긴다는 거예요. 이렇게 사는 게 뭐냐고 물어보면 잘 설명할 자 신은 없지만 내 삶의 방식에 오기가 생기고 있다는 정도. 요즘 이루고 싶은 일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해요. 어떤 호기심이나 진심을 가지고 무언가를 대하는 것들에 스스로 방전되어 있다고 느껴요. 이 에너지를 회복하고 싶어요. 그리 고 하고 있는 일을 좀 더 멋지게 해내고 싶고, 한동안 하지 않았던 드로잉을 다시 하려고 해요. 또 있는데 노브라. 지금은 겨울 이라서 가능하지만 날이 풀리면 어렵겠죠. 그래도 도전. 몸에 대한 불편함을 극복하고 싶어요. 오기가 사랑하는 것은. 빈티지. 요즘은 옷뿐 아니라 모든 빈티지를 좋아해요. 그리고 함께 작당모의자를 하는 친구 유진이를 사랑하지요. 우리는 계속 무언가 하고 있어요. 그리고 나를 많이 사랑하지요. 조금 지나면 지금 키우고 있는 고양이 두 마리도 사랑하게 될 것 같아요.

글. 정리. 이내


건축이 좋아. #36. 나는 오늘도 행복을 사러 간다. 근대의 꿈, 근대의 로망. 타이난의 하야시백화점. aoikasa

백화점. 말 그대로 백가지 물건을 살 수 있는 곳. 그러나 그 곳에서 파는 것은 단순한 ‘물건’이 아니다. 그 곳에서 우리는 근대의 ‘경험’을 사고, 조금 과장하 여 ‘행복’을 산다. 그래서 구보와 이상도 그토록 백화점을 헤매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 어디엔가 있을지도 모를 행복을 사 고 싶어서. 구보는 화신에서. 이상은 미츠코시에서. 근대를 보고, 갈망하고, 또 좌절한다. 대체 백화점이 어떤 곳이기에. 그 시기 지식인들은 그토록 (아무 이유없이) 백화점으로 향해 백화점이라는 공간을 향유한 걸까.

(타이난 모던. 하야시백화점)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백화점은 현재의 신세계백화점 본점인 미츠코시백화점이다. 미츠코시백화점으로 1931년 신축된 이 곳은 이후 미군정 PX를 거쳐 지금의 신세계 백화점이 되었고 2개층 증축 및 2007년 대대 적인 리노베이션을 통해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새로운 외피로 덥힌 백화점은 고전적인 형태를 가졌지만, 당시의 ‘모던’한 느낌은 나지 않는다. 롯데백화점 영플라자가 되면서 외피를 완전히 다 바꿔서 이전의 모습 은 거의 찾을 수 없는 조지야백화점의 경우에 비해서는 매우 고전적이면서 또한 매우 모던하지만 그래도 무언가 아쉽다. 이상과 구보처럼 하릴없이 걷다 들어가, 엘레베이터를 타고 옥상정원에 가기엔 조금은 부 담스러운 공간이랄까. 그런데 정말 1930년대의 백화점의 느낌을 고이 간직한, 문을 열고 들어선 순간 1930년대로 이동한 듯한 그 런 느낌의 백화점을 대만의 남쪽 도시, 타이난에서 만났다. (실제로 이 백화점도 전후 폭격으로 인해 훼손 되었고, 오랜 시간 타이완 소금 회사의 사무실로 사용하다가, 2013년에 이르러서야 리노베이션한 것이다.) 언제나 구보와 이상이 거닐었던 1930년대의 백화점이 궁금했던 내게 이 곳은 그저 물건을 사기 위한 백화 점이 아니었다. 근대의 표상이자 근대의 감각 그 자체. 1930년대의 눈으로 하야시백화점을 산책해 보자.

근 대의 산책. 그 끝에 백화점 하야시백화점은 지금의 중정로, 1930년대 지명으로는 수에히로초(末広町)와 Zhongyi Road가 교차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 곳을 지도에서 찾아보면 타이난 철도역에서 출발해서 타이난 주청사 (현재의 문학관)과 소방서 건물 등이 위치한 근대기 타이난의 중심이라할 수 있는 로터리을 지나 쭉 직진하면 만나 는 그 끝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수에히로초는 근대기 타이난의 중요 상업 가로로, 하야시백화점은 1931년 지어진 쇼핑몰이라 할 수 있는 Street House의 코너에 위치한 건물로 1932년 건축된 것이다. 타이난에서 최 초로 엘레베이터를 설치한 이 건물의 옥상에는 꽤나 근사한 옥상정원이 설치되어 있었다. 타이난 철도역을 통해 타이난에 도착한 한 모던 보이를, 혹은 모던 걸을 상상해보자. 그는 혹은 그녀는 1936년 건축된 작지 만 고전적인 타이난 철도역을 지나 부청사와 소방서, 경찰서 등으로 둘러싸인 타이난의 중심인 로터리를 향해 걷는다. 로터리를 지나 직진하는 길을 선택하여 걸어가다보면 길이 꺾이는 지점이 나오는데, 그 지점 의 끝에 하야시백화점이 서 있다. 근대의 풍경을 소비하며 상점이 이어지며 만들어낸 아케이드를 지나 다다 른 그 곳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진열된 근대의 상품들을 만나고 자연스레 그 발걸음은 엘레베이터로 향하 게 된다. 고운 타일바닥의 엘레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오르면 만나는 옥상정원. 옥상정원은 2개 층으로 되 어 있어 계단을 오르면 옥탑부와 작은 신사가 나온다. 그리고 그는 혹은 그녀는 다시 한 번 그가 지나온 거 리를 바라보게 된다. 그렇게 그는 혹은 그녀는 근대의 산책을 매듭짓는다.


(1932년 신축된 하야시백화점의 옛 모습 http://www.hayashi.com.tw/)

하야시백화점의 엘레베이터 앞에 섰을 때, 언젠가 보았던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연극의 한 장면이 떠올랐 다. 하늘로 오르는 듯한 분위기의 엘레베이터씬. 구보가 바라보고 있는 한 가족은 엘레베이터를 타고 오르 며 행복한 듯 웃음을 지었고, 엘레베이터를 통한 상승은 마치 신분의 상승인 듯, 하늘로 오르는 듯한 느낌 으로 그려졌다. 한편, 옥상정원에 서서 타이난의 시내를 바라보며 이상이 떠올랐다. 미츠코시의 옥상에는 그래도 신사는 없었는데, 하야시백화점의 옥상에는 여전히 신사가 버젓이 남아 있다. 이상이 이 곳에 올랐 다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잘 정돈된 근대의 가로를 바라보며 느끼는 환영과 동시에 신사를 바라보면서는 식민지 지식인의 무기력함을 느꼈을까. 저 화려한 세상과 결코 합일될 수 없었던, 그 거리를 걷고 있지만 정 작 그 것이 나와는 다른 세상임을 느끼진 않았을까.


(하야시백화점의 엘레베이터 그리고 그 내부 바닥. 무려 1932년)

산책자, 아케이드, 엘레베이터. 그리고 옥상정원. 근대 도시의 산책자. Urban Flaneur는 근대 도시가 낳은 독특한 존재들이다. 별 이유없이 근대 도시가 주 는 그 감각을 느끼며 거리를 거니는 자들. 보들레르와 벤야민의 글들에서 나오는 파리의 산책자들이 경성 에서는 모던 보이들로, 그리고 혼부라(ホンブラ, 현재의 충무로, 명동 일대인 혼마치를 ぶらぶら(빈둥빈 둥) 다닌다는 데에서 유래한 말)로 불렸다. 타이난도 예외는 아니었을 것. 차도와 보도가 분리된 근대 도시 의 가로는 보행자들만을 위한 ‘공간’을 제공하여 주었고, ‘보도’라는 이름으로 대로의 양 옆에 위치한 이 공 간은 필연적으로 건물의 1층 부분과 맞닿게 되었다. 보행자들은 싫든 좋은 가로변 건물의 1층부를 바라보 며 걷게 되었고, 쇼윈도와 진열이라는 새로운 방식의 상품 광고가 등장하게 되며 보행공간은 단순히 통과 를 위함이 아닌 구경을 위한 공간이 되었다. 타이난의 경우, 이 공간이 자연스레 건축물의 필로티 공간이 되 며 사람들은 자연스레 햇빛도 피하고 거리도 걸으면서 쇼윈도를 통해 진열된 상품들을 구경하며 근대의 감 각을 익혀가게 되었다. 타이난에서는 이 공간을 아케이드라 부르는데, 어찌보면 이 아케이드 공간은 백화 점 등이 등장하기 이전 등장했던 파리의 아케이드와는 그 성격이 다소 다르지만, 아마도 타이난의 더운 날 씨 때문에 필로티 공간을 자연스레 연속적으로 구성하여 사용하게 되며 타이난 모던의 (타이페이도 마찬 가지) 한 축을 이루게 된 듯 하다.


(하야시백화점 1층 가로변 아케이드 그리고 스에히로초 스트리트 하우스)

엘레베이터 역시 근대의 산물. 미국의 오티스가 처음으로 개발한 이 기계장치는 철골 구조와 함께 마천루 를 만들어 낸 가장 중요한 장치이다. 철골로 마천루(고층빌딩)의 구조를 만듦으로서 벽돌이나 돌을 쌓아 만들던 시절과는 완전히 다른 높이의 건축물을 짓는 게 가능해졌다면, 엘레베이터는 실제로 그 건축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계단으로 오르내리지 않더라도 기계의 힘으로 오르내릴 수 있게 해 준, 그리하여 마천 루가 가능하게 해 준 중요한 기계장치였다. 사실상 백화점에서는 한 번에 공간을 통과는 엘레베이터보다 는 주변을 둘러보며 위로 오를 수 있는 에스컬레이터가 훨씬 더 기능적이긴 하지만, 에스컬레이터가 등장하 기 전까지 엘레베이터는 아마도 최선의 선택이었을 것이다. (타이난은 잘 모르겠으나, 한국에서 에스컬레 이터가 최초로 설치된 곳은 바로 지금의 종로타워가 있는 곳에 있던 화신백화점이었다. 서울 구경온 사람 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타러 서울역에서 바로 화신으로 오곤 했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엘레베이터와 에스 컬레이터는 당시 사람들에게 신기한 경험이었을 것 같다.) 이 엘레베이터가 닿는 최후의 종착지는 옥상정 원. 옥상정원은 근대건축가 르꼬르뷔지에가 근대건축의 5원칙 중 하나로 꼽았을 정도로 중요한 것이었는 데, 왜 그토록 근대인들은 옥상정원에 열광했을까 라는 의문은 남는다. 아마 그 것은 인간의 힘으로, 즉 근 대의 테크놀로지로 만들어낸 인공적 정원, 즉 하늘에 떠 있는 정원이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땅에서만 나 무가 자라고 꽃이 자라는 게 아니라 하늘에서도 나무를, 꽃을 자라게 하며 새로운 대지를 만든다는 개념. 그리고 그 위에서 근대의 풍경을 내려다보는 건 아마도 꽤나 멋진 일이었을거니까. 일루미네이션으로 치장 된 야경이라면 금상첨화였을 것이고. 하야시백화점에서 1930년대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1932라는 글씨가 새겨진 엘레베이터의 바닥타일, 까 페가 있는 옥상정원과 그 곳에서 바라보던 타이난의 밤풍경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 같다. 내려오는 길에 만 난 계단의 디테일들, 현대적이지만 옛 느낌이 나는 매장의 풍경, 그리고 무엇보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올라


가 옥상정원을 구경하고 계단을 타고 내려오며 백화점 내부를 유유자적 거닐 수 있었던 근대적 산책이 가 능했기 때문이다. 1층에서 파는 근대의 맛, 아이스크림이 맛있었다는 건 덤! Happiness is two kinds of ice cream이라던 찰리 브라운의 노래가 생각나는 그런 순간을 맛보았다.

(하야시백화점의 옥상정원, 이층으로 된 옥상정원을 오르는 계단과 저층부의 까페)


지진파

좋은 책은 쉽다. 복잡하지 않고 차근차근히 짚어간다.

1부 법의 기원과 역사

3부 법치주의와 법 실현의 시스템

1장 법의 탄생

1장 정의는 법에 어떻게 구현되나

2장 근대법의 태동

2장 사법부의 독립

3장 근대법의 토대 - 사회계약설

3장 상소제도 - 공정한 재판을 위한 장치

4장 우리나라의 근대법, 그 시작과 왜곡의 역사

4장 표현의 자유 -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근본적인 도구

5장 현대의 법 - 개개인의 생명과 행복까지 관리한다? 에필로그_나는 어떤 주인이 되고 싶은가 2부 헌법정신과 법 질서 1장 법이 추구하는 가치, 정의 2장 다양한 정의관 3장 헌법과 헌법정신

아주 어려워 보이는 내용들이 정말 쉽게 정리되어 있다.

4장 법률의 단계 구조와 그 변천 과정

숟가락만 얹으면 된다.


대통령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우치라 하시니 어찌 그 뜻을 받들지 않을수 있을까

별을 헤는 마음으로 책장을 열어보자.

1조에 주권과 3조에 영토가 5조에 평화와 10조에 행복이 11조에 평등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 듯이,


의미없는 이야기 글. 그림. 철민


대선을 앞두고 굴림체로 글. EXXX 2화. 우리 님이 다 해주실거야?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즈음 기왕 이렇게 된거 내건 공약 잘 지켰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글을 쓴 일 이 있었습니다. 혹시 모르지 않습니까. 전임 이명박 대통령 보다 잘할지도 모르죠. 바람이 이루어지지 않 을 확률이 높았지만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고 하니 ‘혹시.. 우리 대통령 님이?’ 하는 마음이 있었습 니다. 로또 1등도 바라고 사는 마당에 긍정적으로 보면 안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결과는 아시는 것 처럼 처참했습니다.

헌재의 판결을 기다리며 각당의 후보들은 지지세를 올리기 위해 한창입니다. 뉴스에서도 벚꽃 대선 과 같은 신조어를 만들면서 한껏 흥을 돋우고 있지요. 아직 탄핵도 되지 않았는데, 다들 흥에 겨워 어 깨춤을 추고 있습니다. 리듬을 타서 그럴까요?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벌써 대선이 시작된 것 마냥 갈등 의 골이 깊어지는 듯 합니다. 누군가 벌이는 여론전의 일환 일 수도 있겠지요.그런데, 누가 대통령이 되 는게 정말로 중요할까요. 물론 특정 정책을 기획하고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 수 있는 정치인이 대통령 이 되는 것은 정책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 다는 것을 의미하긴 합니다. 하지만 정치라는게, 그렇게 누군 가를 따라서 되어야 하는 것인가? 하는 본질적인 의문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우리 XX님이 다 해주 실거야..’ 라는 생각이 정말로 현대에 와서도 적절할까요?

과거야 왕정에 말한마디 잘못하면 잡혀가는데다가, 어디 게시판에 글을 쓰거나 사람들을 모으는 것 도 쉬운일이 아니었으니 그렇다해도 요즘도 막연하게 해주길 바라는게 조금은 이상한 것이 아닌가 합 니다. 해달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죠. 아주 작게는 구멍난 도로를 메워 달라는 것도 있을 수 있지만 그 런 것 말고 정말로 정책의 방향 같은 것들도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생각하는데 돈 드는 것도 아니고 크 게 수고롭지도 않으니 정세가 흘러가는 것을 보면서 이번에는 특정후보가 반드시 되어야 한다는 강박 을 갖고 다투기 보다 내가 원하는 국가의 방향성은 치매를 국가가 책임진다거나, 기본 소득을 좀 더 신 경써 준다거나, 농업 정책에 신경을 쓴다거나 국토 균형 발전 등등 뭐 생각하자면 한두개가 아닐겁니 다. 이런 큰 이야기를 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어느 님이 해주실 그런 정책은 없습니다. 우리가 다양한 정책에 관심을 갖는다 해도 그것이 쉽게 이루어 지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조금 더 빨라질 수는 있겠죠. 성에 차지는 않겠지만 분명히 속도는 붙을 겁 니다. 무관심 하다면 누가 대통령이 되든지 이리떼 들만 득실거리겠지요. 기껏 만들어놓은 좋은 정책들 도 잠시 눈을 돌리면 약점을 파고드는 사람들이 여전히 득실거립니다.

민주 시민이 감시하는 정부는 그럴듯 하지만 생각하면 너무 피곤한 일이기도 합니다. 오히려 시민이 방 향을 폭넓게 이야기 하는 정부가 괜찮지 않을까요? 시민들이 높은 이상을 잔뜩 이야기 하면 정부는 따 라가기도 바쁘겠지요. 뭐 그런 이야기 였습니다. 조금 낯설어도 거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시대를 움직인 다는 생각을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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