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이리 4월호

Page 1


순서 입니다. 도토루의 하루 - 그림. 호지 영화 리뷰: 두번 본 영화 - 풀 몬티 The Full Monty (1997) / 글. 가람 여기 문학이 필요한 시간 - 시조 3편 / 글. 고수진 뼈와 살들 - 글. 그림. 준가 의미 없는 이야기 / 그림. 글. 철민 백림서신 - 00. 문안(問安) / 글. composer B 쁼딩 뭘까? - 리마빌딩 수면을 걷는 사람들 - 나루 / 글. 소한집 사진. @photo.j.keith 지진파 -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김명호의 생물학 공방. 대선을 앞두고 굴림체로 - 4. 쌍쌍바 가르기 / 글. exxx


24시간 카페에서 밤새워 뭔가를 하는 날이 많아졌어요.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거기에서 밤을 새요. 다들 무슨 일을 하는지 정말 궁금해요. 저는 제가 밤을 새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모르거든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토요일에는 밤을 지새는 사람들의 사진이 여기저기 올라와 있었고 지금도 다르지 않아요. 많은 변화가 한 꺼번에 일어나면 오히려 아무것도 느낄 수 없다는 얘길 들었는데 그 기분이에요. 바라면서도 안될 수도 있다고 여겼던 일들이 하나씩 이루어졌고 뉴스도 저도 주위 사람들도 바쁘게 새로운 것들을 소화하고 있고요. 최근에 두 가지 목표를 세웠는데 첫 번째는 행복해지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러 기 위해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거예요. 첫 번째 목표는 순간 순간 이루어지 고 두 번째 목표는 순간 순간 실패해서 이 두 가지를 다 이뤘다고 생각되는 순간 은 영영 오지 않을지도 모르겠어요. 정신 없고 여전히 분노하는 날들이지만 월간 이리 독자분들도 순간 순간 정도는 꼭 행복해지세요. 계속 행복하면 더 좋고요. 종 교는 없지만 기도할게요. 소한집 @condensed_bold

살만하다 싶습니다. 건강을 되찾았고, 죄를 지은 자가 벌을 받게 되었으며, 따스한 봄이 왔습니다. 나 의 일상은 무엇이었을까요. 무기력하기 전 내 삶의 일상은 어떤 것이었을까요. 나 는 다시 나의 시간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기 전에 일단 밥을 지어먹고, 소파에 기대어 다시 시작한 무한도전을 보기로 합니다. 연인을 만나 오랫동안 포옹을 하고 친구를 만나 소리내어 웃음을 나눠보 기로 합니다. 그렇게 작은 기쁨들과 조우하다 보면 언젠가 그것들이 나의 일상이 되겠지요. 우리에겐 그럴 자격이 있지요. 비록 미세먼지 가득한 봄 하늘이지만 햇살은 여전히 우리를 비춥니다. 잠시만 서 있어 볼까요. 온기에 마음을 맡기고 눈을 감아 볼까요. 그러면 조금은 살만하다 싶 을 거예요. 그 이름도 밝은 4월입니다. instagram@photo.j.keith

공식트위터 @postyri




영화리뷰 : 두번 본 영화

The Full Monty (1997) 감독 피터 카타네오 허름한 공장 안에 한 중년 남자가 서 있습니다. 입고 있는 잿빛 점퍼를 불안한 듯 쥐어뜯던 남자는 흘러나오는 노래에 맞춰서 지퍼를 내려 외투를 벗습니다. 무릎을 굽혔다 폈다 리듬을 타는 모습이 너무나 어설퍼 마치 비틀거리며 쓰러지기 직전인 사람처럼 위태로워 보입니다. 남자는 이제 청바 지 속에 넣은 피케 셔츠를 주섬주섬 뺍니다. 셔츠 밑단을 다 빼는 데 예닐곱 번이나 손이 갑니다. 얼 굴은 이미 터질 듯이 붉어지고 표정은 거의 울기 직전입니다. 셔츠의 목덜미를 잡아 당겨 옷을 벗자 중년 남성의 두툼한 맨몸이 드러납니다. 이제 남자의 손은 바지 버클로 향합니다. 버클을 풀어야지. 생각은 하지만 손가락이 도저히 움직이질 않습니다. 보다 못한 거즈(로버트 칼라일)가 아들 네이선 (윌리엄 스네이프)에게 음악을 끄라는 신호를 줍니다. 노래가 멈추자 옷을 벗던 남자가 말합니다.

“미안해.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좀 절박한 상황이었어. 너도 뭔지 알잖아.” 영화 풀 몬티(1997)는 영국 요크셔 셰필드를 배경으로 합니다. 1800년대부터 철강 산업으로 유명했 던 셰필드. 하지만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국제적 경쟁에서 밀려 셰필드의 철강 산업은 쇠퇴하고 맙니다. 공장들은 문을 닫고, 9만 명에 가까운 노동자들이 실직했습니다. 거즈, 데이브(마크 에디), 롬퍼(스티브 휘슨), 제랄드(톰 윌킨슨), 브링톤(폴 바버), 가이(휴고 스피어)도 셰필드의 실업자 중 하나입니다. 매일 직업소개소에 출근해 카드 게임, 농담 따먹기나 하는 게 일상이 된 이 남자들. 어 느 날, 남성 스트립쇼인 치펜데일 쇼가 돈벌이가 된다는 걸 알게 되고, 멤버들을 모으기 시작합니다.


글. 가람

실직이라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도 영화는 시종일관 유쾌합니다. 우선, 어딘가 하나씩 모자란 캐릭 터들이 크게 한몫하죠. 어린 아들을 데리고 다니며 공장에서 철근을 훔치고, 스트립쇼 총괄기획에 까지 나선 거즈는 항상 근자감이 넘칩니다. 데이브는 실직과 자신의 비만한 몸에 스트레스를 받아 아내와의 잠자리도 기피할 정도로 자신감을 상실했지만, 아재 개그로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고요. 6개월 전에 공장 관리직에서 잘린 제랄드는 아직도 실직 사실을 아내에게 알리지 못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는 구직에 열심히 인 모습을 보이지만, 춤에 대한 열정으로 거즈의 스트립 클럽에 함께 합니다. 병든 어머니와 둘이 사는 롬퍼는 절박함에 자살 기도를 하던 중 거즈와 데이브를 만납니다. 그리고 스트립 클럽에 들어가 자신의 성 정체성도 알게 되고 진정한 사랑도 찾게 되죠. 아저씨들끼 리 모여 옷 벗는 연습을 하거나, 공장에서 최종 리허설을 하다가 경찰에게 연행되는 사건들도 재미 있고, 데이브가 장난감 링을 손목에 끼웠다가 빼지 못해서 쩔쩔매는 상황이나, 제랄드의 취업 면접 때 창문 너머로 난쟁이 인형을 들고 장난을 치는 장면처럼 소소한 재미까지. 풀 몬티는 웃으면서 볼 수밖에 없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저 역시 유쾌하게 봤던 기억이 납니다. 같은 주제를 다룬 두 영화 브래스드

오프(1996)와 빌리 엘리어트 (2000)가 당시의 암울한 사회 분위기를 그대로 반영한 것과 달리 풀 몬 티는 ‘이렇게 암울한 주제를 이다지 유쾌하게 만들어도 되는 건가’하는 걱정이 들 정도로 재밌게 봤 습니다. 그런데 영화를 두 번째 보고 나서는 느낌이 조금 달랐습니다. 영화 중 한 씬이 굉장히 강하 게 머릿속에 박혀서입니다. 그 씬을 보면서 ‘이 영화에 이런 장면도 있었나’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 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감독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이거였구나’ 하는 생각이 들 었죠. 이 글의 도입에 묘사한 바로 그 씬입니다. 레지라고 불리는 이 남자는 거즈와 친구들이 준비 한 치펜데일 오디션의 첫 지원자입니다. 누가 봐도 평범한 40대 가장인 레지도 제철 공장 해고 노동 자입니다. 다시 취직하려고 발버둥을 쳤을 것입니다.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데 그럴 수 없 는 상황이 하루하루고 지옥 같았을 것이고요. 그러다가 치펜데일쇼 팀원을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


고 레지는 오디션에 가보기로 결정했겠죠. 레지는 거즈나 데이브, 제랄드처렴 영화를 위해 만들어 진 캐릭터라기 보다는 우리 주변의 현실적 가장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이 장면이 유난히도 무겁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이때문입니다. 평범한 40대 남성에게 이 경험은 이불킥 몇 번으로 날려버릴 수 있을 만한 무게가 아닙니다.

풀 몬티는 90년대 *남성성1) 의 위기(Crisis of Masculinity)를 잘 드러낸 영화이기도 합니다. 70 년대 영화에서 나타난 남성성의 위기가 도덕적 타락, 여성적인 남자, 약한 남자로 표현됐다면, 90 년대 남성성의 위기는 경제위기와 맞물려 나타나는 경향이 있습니다. 실직으로 인해 경제력을 상 실한 남자들, 가장으로서 역할을 다 하지 못하는 남자들이 사회로부터 고립되고 비난받는 모습으 로 등장하죠. 강물에 떠 있는 폐차 위에서 중심을 잃지 않으려 발버둥 치는 거즈와 데이브의 모습 은 90년대 평범한 남성들의 사회적 위치를 아주 잘 보여줍니다. 이혼한 아내로부터 사랑하는 아들 을 빼앗길 위기에 처한 거즈, 부인을 잃을까 전전긍긍하는 데이브, 심지어 아픈 어머니를 두고 자 살을 택했던 롬퍼. 이들의 문제도 모두 남성의 경제력 상실로부터 온 위기입니다. 그뿐인가요. 셰 필드의 노동자 회관 (Working men’s club)은 이제 여성들이 스트립쇼를 관람하는 여성 전용 공 간이 되었습니다. 회관의 남자 화장실에 숨어든 거즈가 문틈으로 서서 오줌싸는 여자를 봤을 때 거 즈는 남성의 종말을 예감합니다. 거즈:

내가 말했지. 여자가 우리처럼 오줌을 싸기 시작한 이상 우린 끝난 거야.

데이브: 그런데… 그게…가능해? 어떻게? 동료:

유전자 변형이지. 여자들이 남자로 변하고 있는 거야.

거즈:

몇 년 후에 남자는 존재하지도 않을 거야. 동물원에나 가야 볼 수 있겠지. 우린 더이상 이 세상에 필요 없어.

1) 이 글에서 남성성/여성성은 사회에서 의도적으로 만들어진 고정관념을 의미합니다


이 사회가 여성과 남성의 전형적 이미지를 주입하는 것에 있어서, 여성이 더 피해를 보는 것은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남성들 역시 그 전형성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것은 아니라 는 것을 잘 보여줍니다. 특히나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만 생계가 유지되는 평범한 남자들은 말이 죠. 풀 몬티의 남성들은 두렵습니다. 평생 ‘남자란 이런 거다’라고 배워온 사람들이, 경제력을 잃으 면서 더 이상 남성으로 떳떳하게 설 수 없어졌으니까요. 어렸을 때부터 ‘남자는 여자보다 강하다.’ 는 잘못된 정서를 은연중에 받아들이며 살아왔던 이 사람들은 위기를 맞닥뜨리면서 여성에 대한 적 대감/두려움을 갖기도 합니다. 사실 실업 노동자들의 적대심을 가져야 할 대상은 노동자들을 하루 아침에 해고한 회사들과 그 상황을 용인하고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는 정부에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책임자나 정부는 평범한 노동자들에게 허상과도 같습니다. 만나서 따져 물을 수도, 사정을 할 수도 없는 존재이니까요. 그럴 때 남성들의 눈엔 바로 내 가까이 있는 여성들이 보입니다. 나에게 서 아들을 떼어 놓으려는 전 부인, 내가 실직한지도 모르고 카드를 긁어대는 아내, 돈을 버는 아내, 서서 오줌을 싸며 남자들을 조롱하는 이웃집 여자. (혹은 다른 남성 노동자-경쟁자-가 보이기도 하 죠.) 그렇게 우리는 서로를 물어뜯고 공격하게 됩니다. 하지만 풀 몬티 는 결말에서도 어느 정도 미덕을 갖고 있습니다. 코메디 영화로서는 과연 이들이 스 트립쇼를 성황리에 마쳤는지 아닌지에 초점을 맞추는 게 맞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결말을 향해 가는 과정에 조금 더 집중하고 싶습니다. 예컨대 데이브가 자신의 비만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것은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아내가 용기를 주었기 때문이죠. 제럴드의 아내는 남편의 실직 상태를 알았을 때, 돈을 못 벌어 온다는 사실보다는 그동안 자신에게 숨기며 혼자서 힘들어했던 사실에 대해 화를 냅니다. 그리고 자신의 소비 습관을 고치겠다는 다짐을 하죠. 매일같이 거즈를 한심한 한량 취급하 던 전 부인은 마지막에 그를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참 사소한 것들이지만 이 작은 설정들로 인해 이 영화가 단순하게 사회적 문제를 반영하거나, 단순하게 웃기기만 하려는 게 아니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해서 고민했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끝.

봤던 영화 또 보는 게 취미인 학생입니다. 두 번 이상 본, 개취 영화 리뷰를 쓰고 있습니다.

akakk_@naver.com



여기, 문학이 필요한 시간

일지춘심

오늘 우리가 볼 작품은 시조 3편이다. 모두 고려 말에 창작된 작품인데 시조는 고려 말부터 창 작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도 창작되고 있는 문학 장르이기도 하다. 시조는 3줄, 45자 안에 자 신의 사상을 함축적으로 담아내기 때문에 간결한 아름다움이 살아 있다. 간혹 일본의 하이꾸 와 비교가 되기도 한다. 하이꾸는 17자 안에 화자의 정서를 담는다. 시조보다 짧은 글자 수안 에 내용을 담다보니 독자는 하이꾸에서 다양한 상상과 여백을 발견한다고 한다. 슬프다, 아름 답다의 서술을 과감하게 생략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시조는 어떨까?

우탁 탄로가

한 손에 갓 쥐고 또 한 손에 막대기 잡고 늙는 길 갓으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기로 치려고 하니 백발이 자기 먼저 알고 지름길로 왔다.

춘산 녹인 바람 잠깐 불고 사라졌다. 저 바람 잠시 빌려다가 내 머리 위에 불게하고 싶구나. 귀 밑에 해묵은 서리를 녹여볼까 하노라.


먼저 살펴 볼 작품은 우탁의 탄로가 2편이다. 우탁 역시 고려 말 문인이자 학자였다. 그는 원 나라 때 새로운 유학인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여 은퇴 한 뒤 후학들을 길러냈다고 전해진다. 이 두 작품은 우탁이 은퇴 후 지은 늙음에 대해 한탄하는 노래이다. 그런데 제목과는 달리 늙음에 한탄이라기보다는 앙탈? 비슷한 느낌이 든다. ‘어쩔 수는 없는 거 아는데 그래도 나이 먹어가 는 게 시루당.’ 이런 느낌이 든다.

첫 번째 작품 ‘한 손에~’부터 보자. 시적화자는 노인의 모습으로 서 있다. 그리고 두 번째 줄에 서 늙는 길을 막고자 했음을 알 수 있다. 세월을 구체적으로 늙는 길이라고 표현한 시어가 재 미있다. 그리고 나이 듦의 상징인 흰머리 역시 온몸으로 거부하고 있으나 마지막 줄 종장에서 백발이 마치 사람처럼 지름길로 왔다라고 한다. 결국 나이 듦은 막을 수 없다는 화자의 체념적 어조가 들어난다.

그러나 결코 슬프거나 속상한 표현 같지는 않다.

두 번째 작품인 ‘춘산~’을 보자. 처음에 화자는 봄 산을 바라보며 계절감을 느끼고 있는 듯 했 다. 그러나 마지막 줄 종장을 보니 엊그제 눈 쌓였던 산에 눈이 녹아 봄이 오듯이 그 봄바람을 빌려 내 흰머리를 녹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재치 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흰색 의 이미지를 확장 시켜 백발을 귀 밑에 해묵은 서리라고 압축시켰다.

화자는 하루하루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안타까웠을 것이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더 많 았을 지도 모른다. 후학도 양성해야 하고 읽어야 할 책도 많고 이 나라도 걱정되고 말이다. 그 러다 보니 나이 들어가는 것이 너무나 아쉬웠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라는 것은 우리의 힘으 로 막아지는 게 아니다. 결국 마지막 줄에는 어느새 내 곁에 바짝 다가 온 세월의 흐름을 받아 들이고 있다.

다른 독자는 이 시를 씁쓸하고 서글프게 읽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시조도 이처럼 여백의 미가 살아 있다. 그 여백을 채우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다음은 이 초봄에 읽기 좋은 시조 한편을 더 읽어 보겠다. 이조년의 작품이다. 이화에 월백하고 은한이 삼경인데 일지춘심을 자규야 알랴마는 다정도 병인냥하여 잠 못들어 하노라 이조년 역시 고려말 문인이었다. 지금이야 봄의 상징은 벚꽃이지만 과거에는 봄의 상징이 배 꽃이었던 것 같다. ‘이화’는 흰 배꽃을 뜻하는데 봄과 관련 된 고전 작품에서 자주 나오는 소재 중에 한다. 벚꽃엔딩이 아니라 배꽃엔딩이 우리 선인들의 봄노래가 되었을 것이다.


흰 배꽃이 흰 달 사이에 피어 있다. 하늘에는 은하수가 흘러가고 시간은 삼경이다. 삼경은 밤 11시~새벽1이다. 시간도 어쩜 이렇게 사람의 마음이 가장 말캉말캉 한 시간으로 선택 했는 지... 이 시간은 개인적으로 가장 위험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온갖 일이 일어 날 수 있는 시 간.. 청춘남녀, 맥주. 실연에 빠진 청춘남녀 맥주, 위험하지 않은가?

아무튼 시적화자는 이 시간에 잠을 못 자고 있다. 허허 봄이 왔구나 허허. 그리고 눈을 돌리니 나뭇가지에 봄꽃이 방긋 웃고 있다. 그것을 ‘춘심’이라고 표현한 것이 이 시의 백미이다. 그리 고 어디선가 소쩍새가 울고 있다. 분위기가 참으로 아련하다.

시적화자는 결국 마지막 줄에 이렇게 고백한다. 지금 내 말캉말캉, 애상적인 마음이 마치 병 처럼 느껴져서 잠 못 자겠다고 말이다. 색채이미지를 흰색으로 통일하고 있어서 시의 장면 이 마치 눈앞에 펼쳐진다. 참 아름다운 풍경이다. 봄밤만이 주는 애상적인 기분이 느껴진다. 장범준이 부른 벚꽃엔딩보다는 창법이 바뀐 박효신이 부른 벚꽃엔딩이 떠오른다. (우연히 유 투브에서 봤는데 가슴이 두근두근 하더라.)

박효신 만세. 기승전박효신.이 된 것 같지만 흠흠.

이렇듯 우리 시조 작품에는 아름다운 작품들이 많다. 시조 작품들을 더 많이 소개하도록 하 겠다. 다음 주에는 현대운문으로 넘어가 보겠다. 두근두근.

지각하면 보강이다.

글, 사진 고수진(gomin19@hanmail.net)


살들 그림 / 준가 junga.pic@gmail.com





의미없는 이야기 글. 그림. 철민


**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편집장 빼고 다 잘되는 잡지. 성공을 향한 알미늄 사다리. 이만한 명당 드뭅니다. 식물의 분류나 생태, 인간 관련 의학, 퀴어 관련, 무속, 종교, 음악, 소설 이나 시와 같은 문학 관련, 사진, 일러스트 혹은 적어놓은 것 이외에도 무언가를 꾸준히 기고하실 분들은 언제든 exxx2x@gmail.com 으로 문의주세요. 설마 이런걸 연재가 될까? 하는 것들 다 되게 만들어 드립니다. **


백伯 림林 서書 신信

Composer B

00.문안(問安)

안녕하세요.. 지난 2016년 3월 까지 ”작곡가 B의 노트”라는 글을 기고했던 Composer B입니다. 잘들 지내셨는지요. 저는 얼마 전부터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그래요, 도시 전체가 거대한 홍대와도 같으며 세계 각지에서 힙스터들이 몰려든다는 그 베를린 맞습니다.

앞으로는 이 곳 베를린에서 지내며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바를 글로 써서 이 곳 <월간 이리>에 풀어볼까 합니다. 이 코너는 아마도 고정된 문체나 형식을 가지지 않게 될 것 같습니다. 어떤 때는 일기처럼 제가 겪었던 일들을 평이하게 서술하되 적당히 감정이 들어가는 방식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어떤 때는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나 볼 법한 다정하면서도 나른한 문체를 보게 될 수도 있으실 겁니다. 어떤 방식이 되었든 여러분에게 제가 겪었던 낯선 풍경들과 생각들을 조금이라도 잘 전해 드리기 위해서니까, 이 점을 염두에 두셨으면 합니다.

독일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꿈을 이루거나 더 나은 삶을 위해 이 곳으로 오곤 했습니다. 멀게는 파독 광부와 간호사들 그리고 차범근과 윤이상이 자신의 젊음을 바친 곳이고, 그 후에는 많은 사람들이 통일이


된 이곳으로 와서 학문을 공부하곤 했습니다. 최근에는 학생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보다 색다른 문화를 느끼기 위해서, 혹은 나름대로의 사적이면서 거대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이 나라에 오기도 하지요.

제가 아니어도 여러분은 이미 다양한 방법으로 독일에 대한 이야기들을 접하셨을 것입니다. 직접 겪어본 분들도 당연히 있으실 거구요. 그 중에는 저의 생각이나 경험과 여러분들의 그것이 다른 지점들도 분명히 존재할 것입니다. ‘나는 그런 적 없었는데?’ ‘ 그런 얘기는 들은 적이 없는데?’ 와 같은 반응을 보이실 수도 있을 것이구요. 아마도 제가 구체적인 수치나 사실을 왜곡하지 않는 이상, 그러한 시각과 경험의 차이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외국인으로서의 삶은 늘 변수 투성이일 뿐만 아니라 각자가 처한 상황도 모두 다르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도, 아직까지 한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경우의 수를 전부 겪어보지 못했는데, 다른 나라에서라면 오죽하겠습니까.

아무튼, 본격적인 글을 쓰기 전에 프롤로그 형식으로 이렇게 안부를 묻습니다. 언제까지 이 글을 쓰게 될 지는 모르겠지만, 당분간 이 지면을 통해 많은 즐거움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Auf Wiedersehen!1

1. 아우프 비더젠: “또 만나요


쁼딩 뭘까 ?

장사에 있어 좋은 목은 얼마나 중요한가. 연재도 마찬가지다. 좋은 자리가 생기면 재주가 있든 없든 얼른 좌판을 깔고 판을 벌였다가 빠지는 것이 중요하다. 매달 돌아오는 연재의 압박과 컨텐츠 부재를 드러내지 않는 절호의 찬스. 조금 모자란 것을 내놓아도 AS 책임을 지지 않는 무책임함. 미래의 불안정함을 도외시한다면 이런 좌판 연재야 말로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 그렇게 시작하는 기획물이다. 역사를 돌아보면 인간은 참 많은 건축물을 만들어왔다. 고인돌을 건축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을 제외하고도 세계 여기저기에 역사로 남아있는 무수한 건축물을 보면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틈만 나면 뭔가 근사한 것을 하려고 노력한 것을 알 수 있다. 왕조시대만 해도 그렇다. 이미 궁이 있음에도 궁을 짓겠다느니 능을 짓겠다느니 능을 지었다가도 옮긴다느니 사각뿔에 스핑크스를 덩달아 만든다거나 기이하게 보이는 가로폭을 지닌 사당을 만드는 등 대체 어디서 뭐가 비뚤어졌는지 그 속을 들여다보고 싶을 정도로 뭔가를 지으려고 들었다. 과거에는 기왕 만들어야 한다면 ‘거대하게!’ 가 머리에 입력된 것 마냥 큰 것을 지어댔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그런 양상은 최근도 변함이 없으니, 인간은 참 한결같고, 귀여운 구석이 있다.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나는 과거의 건물들이 현대의 건물보다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유는 별 것 없다. 왕이나 그와 비슷한 권력을 가진 녀석이 건물을 지으면서 주도 관리하는 통에 개인적 취향이나 기호를 담고자 애를 썼던 것이 느껴진다. 개인의 아집이나 취향, 비뚤어짐을 잔뜩 담아 만든 건물을 시대를 넘어 마주하는 게 즐거운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최근 국가에서 짓는 건축물들은 어딘지 모르게 색이 옅어 보인다. 심사단계의 다수의 개입과 응모 그리고 때로는 건축가의 특징을 따라가는 통에 문화 단위에서 보여줄 수 있는 기이함이 사라진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만 봐도 100년 후에 여기서 무슨 특색을 찾을 수 있을까. 물론 건물 자체는 멋지다. 다만 그것이 정말로 세금으로 지어졌어야만 했을까? 뿐만 아니라 한국의 수도 복판에 잘 어울리는지도 잘 모르겠다. 오히려 윈도우 배경화면과 같은 어느 야트막한 언덕에 있으면 더 멋지지 않았을까. 그 형태가 굳이 한국의 동대문이 아니어도 되고 말이다. 현대에 와서 모든 것이 세계화되고 국경을 초월하는데, 굳이 편협함을 추구하자는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순전히 재미 때문이다. 난전에서 제대로 된 물건을 파는 사람이 있던가.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어야 언젠가 바르게 샘솟을 건강한 생각을 하는 이가 빛을 발하지 않겠나. 비슷한 이유로 나는 남들이 촌스럽거나 기이하다고 하는 갓 모양의 예술의 전당 건물을 좋아한다. 백 년이 지나도 저게 뭐야 하면서 손가락질하기 좋지 않은가. 앞에서도 슬쩍 이야기했지만 최근에 나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다수의 세금으로 시작되는 공공건축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수의 사람이 개입해 만드는 빌딩이 오히려 과거의 건축 형태를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보다 많은 아집이 담길 가능성을 높게 사는 것이다. 물론 개인이나 기업이 만드는 빌딩도 유명 건축가가 참여하고 효율을 지나치게 고려한 끝에 특색이 없는 것들도 많지만 상대적으로 덜할 확률이 있다고 단정 짓는 것이다. 최근에 내 눈을 끄는 건물들 가운데 공공 부문의 것들이 거의 없는 것 같아. 이런 글을 쓰게 되었다. 편협하다고 너무 비난하지 말자.


리 마 빌 딩 을 괴 롭 히 는 마 이 크 로 소 프 트

오늘의 타깃은 바로 리마빌딩(오른쪽 황색)이다. 이마빌딩 이라고도 쓴다.

서울시 종로구 수송동 146-1번지, 광화문 세종로 미국 대사관 뒤편에 위치한 빌딩. 지상 15층, 지하 4층 규모로 경복궁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뛰어난 전망을 자랑하는 빌딩이기도 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 빌딩이 있는 지금도 경복궁이 보이는지는 확인을 하지 못했다. 나는 이 빌딩을 아주 오래전부터 눈여겨보았다. 모서리의 은근한 곡선처리와 과하지 않은 높이, 규칙적으로 배열된 창의 형태가 전장에서 진을 짜고 있는 방패병을 연상시킨다. 느슨해서 끌리고 웃음이 나다 못해 정이 드는 건물은 많지만 리마빌딩처럼 크지 않으면서도 강단 있는 외형과 기개가 엿보이는 건물은 드물다.


이름부터도 멋지다. 리마! 그것은 대체 무엇인가? 논리적인 근거를 찾자면 말을 이롭게 한다는 뜻으로 조선시대는 수레, 말, 마구, 목장을 맡아보던 관청 사복시가 있던 자리, 경기도 경찰부 기마경찰대 자리, 서울시 경찰기마대 자리였다는 이유가 있지만 그것은 애정을 투사한 이후의 핑계이고 ‘리마’ 그 이름만으로도 기기묘묘 알쏭달쏭한 것이 매력적이다. 참고로 이 자리는 오직 말과 연관이 있는 자리는 아니고 조선초 이방원과 세력 다툼을 했던 정도전의 집 터이기도 하다. 그 후 수송 국민학교 터이기도 했다. 건물은 누가 설계했을까? (엉터리 약을 팔 때는 내력도 무척 중요하지 않은가.) 건축가 홍순인. 1943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나 홍익대 건축학과를 나온 홍순인은 오른손이 불편해서 입시에서 몇 번 좌절을 겪었지만 결국 극복하고 1965년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했다. 학창 시절 교수진은 정인국, 강명구, 나상기, 김수근 등. 이후 배기형, 이윤형, 엄덕문의 사무소를 거쳐 김수근의 한국 종합기술개발공사에 입사. 홍릉 KIST APT, 세운상가, 남대문시장 종합설계 등의 작품에 참여하였고, 이후 공간연구소에 들어가 서울대 환경 예술관, 서울대 본관, 건국대 등의 작품을 거친다. 김수근이 건축대 학장으로 간 후 1973년부터 공간연구소를 대표하다가 1974 년 자신의 사무실인 ‘대우건축연구소’를 열었다. <대한출판문화회관>은 홍순인이 이름을 걸고 설계한 첫 작품으로 1975년 준공되었다. 스케치부터 건축도면, 구조도까지 많은 도면을 직접 그렸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1975년 대한 건축사 협회상을 수상, <출판문회회관>을 통해 인정받았다. 이후 종로코아빌딩, 관철동빌딩, 충북대 마스터플랜 (1981,1982 건축가협회상 수상) 등을 계획한다. 홍순인은 직원들에게 건축가의 정신과 자세를 가르치려고 노력하였다고 한다. 건축설계뿐만 아니라 구조, 견적, 설비, 감리 등 건축가로서 가져야 할 여러 가지 능력을 경험하게 해 주었고 현장에도 자주 나가게 했다. 특히 설계도면을 체크할 때는 “본인이 그린 도면은 본인이 세상에서 제일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본인이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최선의 최고의 도면을 그리도록 하자”고 주문하곤 했다. 리마빌딩은 1983년 준공되었다. 리마빌딩이 김수근의 건축사무소 출신의 홍순인이 설계했다는 것은 무척 흥미롭다. 김수근의 상징과도 같은 벽돌 건물들을 은연중에 떠올리게 하면서도 기존의 벽돌 쌓기와는 다른 세로 비율이 긴 창문의 빼곡한 나열, 벽돌의 우툴두툴함을 넘어서는 보다 매끄러운 표면, 그리고 장난스러운 블록 쌓기와 같은 구조를 거부하는 꽉 찬 사각형은 이어서 넘어선다는 전통적인 예술의 극복 형태를 떠올리게 한다. 이 앞에 다음 세대의 비례와 보다 세련된 매끄러움을 보여주는 하늘색 마이크로 소프트 사가 있다는 것도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 홍순인의 건축을 이야기하는 책 <젊은 건축가 홍순인 작품과 그의 생애´> 36쪽에는 이런 글이 적혀있다. 이마빌딩은 광화문 종합청사와 마주하는 주요 행정 중심가에 위치하여 건축적으로 상당히 까다로운 설계과정을 거친 15층 건물이다. 최대한의 층수를 해결하기 위해 wall and slab공법을 사용하여 내부 공간에 기둥을 모두 없애 기능적인 오피스의 요소를 최대로 살리고 있다. 특히 오피스의 건조함을 해소하는 방법으로 각 모서리에


적절한 모올딩을 줌으로써 경직된 입면에 부드러운 융통성을 부여하였다. 또한 가장 특징적인 요소는 주 출입구를 중앙에 배치하지 않고서도 모든 동선의 처리가 원만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입구 캐노피에서는 그의 신선한 창작능력을 엿볼 수 있다. 자 그럼 이제부터 반전, <건축과 함께하는 사람들> 건축사 이상헌 : 도자의 세계 중 일부 “리마빌딩이 그를 죽였죠. 싼 설계비에 건축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그렇지 않아도 몸이 성치 않은 그의 명을 앗아간 거죠.” 담담한 목소리와 달리 그의 표정은 굳어졌다. 경복궁 옆 전돌집 출판문화회관으로 유명세를 탄 홍순인은 육신적으로 부자유하였으나, 공간의 김수근 문하에서 독립한 후 노력과 끈기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다가 업무량의 증대에 따른 건강악화로 후배 이상헌을 동반자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그가 일주일 만에 타계함으로,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설계사무소를 운영하게 된다. 입맛이 쓰다. 건물을 지은 이마산업에 대해 조금 알아보자 현재 이마산업은 콜센터 아웃소싱 및 오피스텔 임대업을 하고 있다. 이마산업이 지은 리마빌딩은 과거 경향신문 사주였던 이준구 씨가 1983년에 지은 빌딩으로 이준구 씨는 1978년 이마산업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그는 경향신문사 사장과 한국신문발행인협회 초대 이사장 또한 적혀있으며 사주로 있던 경향신문은 그가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상태인 1965년 박정희 정권하에서 중앙정보부에 의하여 강제 매각되었다고 한다. 이마산업의 임대업 용도로 리마빌딩은 주력 상품이며 이마산업에서는 리마빌딩의 가치를 ‘명당터’로 규정 및 브랜딩 하는 듯하다. 관련 기사들이 일이 잘 풀리는 ‘명당’이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하고 있는 것을 검색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국내 1위의 회계법인인 삼일PwC는 현재 본사인 LS 용산타워로 옮기기 전까지 이마빌딩에서 기반을 닦았다. 코카콜라·ING생명 등 외국계 기업들도 이마빌딩에서 크게 성장했다. 입주 30년이 넘은 삼선로직스는 입주 당시 145㎡를 사용했으나 현재는 10배가 넘는 1,653㎡의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 지하 식당가 일본식 분식 전문점 ‘ 동경암’도 한때 리마빌딩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왔단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시대적 발전시기와 무관하게 명당을 주장하는 기사에 걸맞게 이런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다. ‘불임으로 고생하던 한 입주사 대표가 아기를 갖게 되거나 모 대표는 골프장에서 홀인원을 기록하는 등 ...’ 하지만 늘 승승장구하는 것은 아니다. 유일한 실패 사례는 지난 2002년 대선 당시 이마빌딩에 대선캠프를 차린 이회창 총재. 이쯤 되면 나라의 역사와 함께 한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구국의 빌딩이시다! 2011년에는 스타벅스 400호도 들어왔고 여전히 일본대사관 영사부 등 외국 기관과 정부기관, 그리고 외환은행· 삼선로직스, 페덱스 등 이 입주해 있다. 잔뜩 정리했지만 여전히 모르겠다. 쁼딩 뭘까? 끝.


수면을 걷는 사람들

글. 소한집(@condensed_bold) 사진. @photo.j.keith


4 나루

많은 우산들이 발 밑을 지나간다. 나루는 베란다에 서서 밑을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었다. 웃는 표정이 생소하게 느껴졌다. 오래 전 다이소에서 사온 투명한 슬리퍼가 유용했다. 어디든 신고 나갈 수 있었다. 베란다, 수퍼마켓, 공원……미끄러지지 않도록 밑창에 빨판 같은 것이 달려 있었다. 비가 와도 두렵지 않았다. 아빠에게도 한 켤레 사드려야겠다고 나루는 생각했다. 그러면서 발은 한 번 굴러봤다. 발코니는 무너지지 않았다. 슬리퍼에 맺혔던 물방울 하나가 흘러 뒤꿈치를 적셨다. 나루는 슬리퍼를 창문 밑에 뒤집어놓고 거실에 들어왔다. 나루의 집 거실에는 주황색 러그가 깔려 있었다. 캐나다에 사는 이모가 보내주신 것인데, 이국적인 무늬가 있어 이 러그 하나만으로 거실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나루의 엄마는 먼지가 끼지 않도록 한 달에 한 번씩 이 러그를 빨았다. 한 번 아빠가 러그에 케첩을 흘린 적이 있었는데, 혼이 났다. 무척 혼이 났다. 나루는 학원에 갈 시간이 된 걸 알았다. 우산을 쓰고 나가서 아파트 단지 입구의 거북이 분수로 가야한다. 거기서 학원차를 기다려야 한다. 발코니에 말려둔 슬리퍼를 신고 갈까. 걸으면서 찰박찰박 소리를 낼까. 나루는 고민하다가 방으로 들어갔다. 한참을 나오지 않았다. 나루의 방에는 줄무늬 시트가 깔린 침대가 있었다. 나루는 그 침대에 앉아서 무릎 위에 올린 노트북를 켰다. 인터넷 서핑을 시작한다. 서핑이라는 단어가 나루는 마음에 들었다. 포털 사이트의 메인에 뜬 기사들을 무차별로 클릭했다. 파란 우비를 입은 아이가 막 미끄러져 우산을 놓치는 장면을 기자가 카메라로 찍었다. 어떻게 이런 장면을 잘 잡아서 찍었는지 나루는 신기했다. 조금 냉혹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가 웅덩이 위로 넘어졌다면 흠뻑 젖었을 텐데 기자가 손수건으로 얼굴과 다리를 닦아주었을까. 장화를 벗겨 거꾸로 들고 물을 빼내주었을까. 나루는 저 아이야말로 다이소에서 투명한 슬리퍼를 사 신어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다. 스크롤을 끝까지 내렸지만 이 이상 흥미로운 게 나오지는 않았다. 나루가 하고 있는 것이 보드 서핑이라면 좋을 것이다. 우산으로 이루어진 파도를 타고 저만치 밀려갈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나루는 노트북을 침대에 내려놓고 하품을 했다. 목이 말랐다. 물이 든 보틀이 두 병 냉장고 안에 들어 있었다. 아니다. 아마 전부 비어 있겠다. 그저께 나루는 냉장고 안에서 보틀이 빈 것을 보았다. 유리로 된 보틀인데 한 병은 아빠가 식탁에 꺼내 놓았다. 물을 끓여서 채워놓을 기운이 없어 나루는 물을 마시지 않고 방에 들어가 잠들었다. 휴대폰이 울렸다. 이니였다. 이니는 학원차가 거북이 분수대 앞을 지나갔다고 말했다. 창문으로 보았다고 한다. 나루는 이니에게 너는 왜 학원에 안 갔느냐고 묻지 않았다. 나루와 이니는 5개월째 이 수학 학원에 같이 다니고 있었다. 두 사람과 함께 이 학원에 등록한 사람은 한 명 더 있었다. 가였다. 나루와 이니와 가는 어렸을 때부터 이 아파트단지에서 함께 자라왔다. 부모님들도 서로 친했다. 학교 운동회에서 항상 돗자리를 붙여 깔았고 세 가족이 동반 캠프를 간 적도 있었다. 나루와 이니는 서로에게 가가 학원에 갔을지 묻지 않았다. 두 사람은 방학 때 한 번 가를 보러간 적이 있었다. 가는 꽃병의 물을 갈아주는 중이었다. 고등학교는 병원에서 멀지 않다고 했다. 이제부터는 가가 학교를 마치고 쇳냄새 나는 병실에 밤까지 앉아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두 사람은 기가 질렸다. 하얗게 질려서 되돌아왔다. 가의 동생과는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가의 동생이 그러고 싶지 않아했기 때문이었다. 나루와 이니는 그 점이 못내 미안했다. 두 사람의 탓이 아닌데도 그랬다. 가를 만날 수 있는 날은 점차 줄어갔다. 가는 불평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루와 이니도 가에게 보고 싶다고 투정하지 않았다. 전부 몇 달 내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전까지만 해도 언제든지 가는 외출할 수 있었고 두 사람과 같은 아파트에 살았고 자주 셋이서 카페에 가 얘기를 나눴다. 그들의 부모님들도 그랬다. 예전처럼 동반 캠프를 갈 정도는 아니어도, 그분들이 만나서 외식을 했다는 얘기쯤은 들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나루는 언제부터 변하기 시작했는지 되짚어보았다. 어느 친구에게서 먼저 표가 났는지 떠오르지 않았다. 친구들을 만났을 때 나루 자신이 티를 냈는지도 잘 알 수 없었다. 나루는 이니에게 학원에 가지 않은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그 이유를 나루도 몰랐다. 통화가 길어졌다. 이니는 스피커폰을 켜둔 것 같았다. 열린 창밖에서 그리고 휴대폰 너머에서 두 개의 빗소리가 들렸다. 나루는 문득 이니가 빗소리를 듣는 홈페이지를 알려줬던 일을 떠올렸다. 이니는 잘 그랬다. 알려지지 않은 가수나 매니아틱한 일러스트를 어디선가 접하고 추천하곤 했다. 이니가 살이 빠지면 입고 싶다며 옷들을


보여줬을 때 나루는 깜짝 놀랐다. 가는 이런 옷을 입은 이니를 모른 척하겠다고 농담했다. 이니는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나는 너네 팔짱 끼고 쫓아다니겠다고 말했는데, 나루는 그때 문득 이니의 이런 면을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그러기 전에는 허리를 꺾고 웃어대고 있었다. 빗소리를 뚫고 이니가 음악을 틀어주겠다고 했다. 나루는 통화라는 것도 잊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 빗소리만 들리다가 이니가 갑자기 조금 웃었다. 이니는 그냥 틀지 않겠다고 말했다. 나루는 가만히 이니의 말을 듣고 있었다. 이니는 자기가 조금 멍하다고 했다. 두통약을 먹었다고 했다. 나루는 자기도 두통약을 먹었다고 했다. 뜯겨진 펜잘 상자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펼친 채로 엎어둔 책 한 권도 보였다. 나루는 아빠도 두통약을 먹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펜잘 상자는 식탁 위에서 가져온 거였다. 나루의 아빠는 회사에 갔다 오면 방에 틀어박혔다. 지금 다니는 회사는 전과 달랐다. 전에 다니던 회사를 나루의 아빠는 소송 때문에 그만 두었다. 준비하기 어려운 소송이었다. 나루의 아빠는 이벤트 회사에서 근무했고 의료 사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소송을 준비할 때만 해도 나루의 아빠는 이 분야를 조금 더 잘 알아둘 걸 그랬다고, 세상의 여러 일들에 대해 더 잘 알아두었어야 했다고 미지근하게 말하곤 했다. 하지만 나루와 아빠는 이제 더 이상 마주 보고 얘기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열심히 준비하던 소송이 기소도 못하고 엎어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아빠는 이 소송을 준비하면서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했다고 했다. 나루도 몇 번 갔던 그 병원에는 피해자들 몇 명이 시위 중이었고, 나루의 아빠는 그들과 함께 소송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었다. 갑작스레 모든 일이 허위 사실로 전락한 데에는 배신이 있었다. 그러나 이 일마저도 나루와 아빠가 이렇게 된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다. 나루는 그 이유를 끝내 알 수는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 휴대폰을 꼭 쥐었다. 힘이 들어가자 나루의 손 마디가 하얗게 물들었다. 휴대폰 너머 이니가 창밖을 보고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루도 창밖을 내다보았다. 비가 계속 왔다. 이 비는 무척 차가워 보였다. 도로를 빠르게 지나가는 차체를 때리는 기세가 매서웠다. 나루는 라면이 먹고 싶었다. 부엌에 오래 있으면 아빠와 마주칠 수도 있었다. 아빠에게 드릴 슬리퍼를 사고 나면 아빠에게 할말이 생기니까 그때까지만 참기로 했다. 이니는 다시 학원차가 거북이 분수대 앞을 지나갔다고 말했다. 학원차에는 아무도 탑승하지 않았다. 학원차가 같은 자리를 맴도는 유기 동물 같다고 이니는 말했다. 나루는, 나도 창밖을 보고 있었는데 왜 보지 못했을까……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하늘을 쳐다봤다. 무거워 보이는 먹구름이 아래에 가벼워 보이는 흰구름이 위에 있었다. 먹구름은 흰구름보다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 그리고 더 많이 몰려왔다. 파악하지 못하는 사이에 하늘의 표정이 달라졌다. 나루는 이니에게 라면 먹고 싶다고 말했다. 이니는 나도, 라고 하면서 너는 듣고 싶은 음악 없어? 라고 물었다. 나루는 없다고 했다. 창문을 닫았다. 빗소리가 하나로 모아졌다. 이니의 숨소리가 들렸다. 나루는 이니의 숨소리가 듣기 좋았다. 스피커폰으로 해놓았는데 숨소리가 들리는 걸 보면 이제 이니가 창밖을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았다. 아마도 침대에 누워서 볼을 휴대폰에 대고 있을 것이다. 나루는 침대에 누웠다. 어떻게 해도 편한 자세가 되지 않았다. 계속 몸을 움직였다. 베개를 껴안았다. 그러는 사이에 휴대폰이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나루는 빗소리를 더듬어 시트에 덮인 휴대폰을 찾아냈다. 이니가 뭘 그렇게 뒤척였냐고 물었고 나루는 웃었다. 이니야 나 가가 보고 싶어 라고 말했다. 이니는 나도, 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자 조금 외로워졌다. 이니의 숨소리가 또렷하게 들렸다. 뒤척이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았다. 나루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창문을 닫아서 하나로 모아졌던 빗소리가 사실은 에코처럼 멀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이니의 휴대폰에서 쏴아 하는 소리가 들리고 닫힌 창문너머로 멀어진, 아니 점점 더 멀어지는 빗소리가 쏴아 소리를 낸다. 그렇지만 이니야 가는 우리를 보고 싶어 할까? 나루는 불현듯 듣고 싶은 음악이 떠올랐다. 음악을 틀면 이니의 숨소리와 두 개의 빗소리를 들을 수 없게 되니까 말하지 않았다. 이니는 한참 있다가 카페에 가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 사람이 자주 가곤 하던 카페의 이름을 말했다. 주소인 도일로 8X-6을 그대로 간판에 써붙인 카페였다. 처음에 그 이름이 주소인지 몰랐다. ‘doilro’라고 영어로 적혀 있어서였다. 가는 그 카페가 세련되었다고 칭찬했는데 나중에 그 이름이 도로명이라는 것을 알고 그 말을 취소하겠다고 선언했다. 도일로 카페에선 검고 따뜻한 브라우니를 팔았다. 가는 브라우니를 다 먹고 나서 오랫동안 포크를 빨곤 했다.


가가 더 이상 카페에 함께 가지 않게 되자 이니와 나루 둘이서 도일로 카페에 가게 되었다. 오래 포크를 물고 있는 여자를 보면 가가 떠오를 거였지만 둘은 한 번도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도 카페에 가면 언제나 가를 생각하였다. 나루와 이니는 알고 있었다. 가가 그들의 곁에 있었을 때 오직 셋이서 함께인 덕분만은 아니었대도 분명히 행복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시기는 그런 시기였다. 지금 나루와 이니는 자기들이 어떻다고 선뜻 말을 할 수 없었다. 많은 것들이 변화하고 있었다. 나루는 이런 식의 변화가 저 차가운 빗속에서 가만히 서있는 일에 익숙해지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가에게 내렸던 비는 아마 지금 이 비보다 더 거세고 무서웠을 터였다. 나루는 가가 그걸 어떻게 이겨냈는지가 궁금했다. 가는 한 번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친구들에게 이야기하지 않았다. 가가 이사하던 날, 나루와 이니는 가를 배웅하기 위해 나왔지만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트럭에 하나 둘씩 가구들이 실릴 때 가의 할머니와, 큰 수술을 치르고 운동 삼아 나왔다는 가의 숙부가 아파트 앞을 어수선하게 왔다갔다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나루와 이니는 선명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그것은 행복이 부재한 장소에서만 느낄 수 있는 기운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가 동일하게 느꼈다는 점에서 놀랐다. 둘은 모두 이러한 기운에 노출된 적이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노출되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가는 어떻게 그걸 이겨냈을까. 어쩌면 가는 이겨내지 못했을지도 몰랐다. 이니야 나도 카페에 가고 싶어, 라고 나루는 말했다. 셋이. 이니의 말은 조금 뒤에 들려왔다. 나루는 나도 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니는 알 것 같았다. 두 사람은 말이 없어졌다. 하지만 전화를 끊을 수 없었다. 나루는 빗소리가 계속 멀어지게 내버려뒀다. 창백한 아빠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난주 일요일에 저도 모르게 러그를 치웠던 일을 나루는 기억하고 있었다. 이니의 전화를 받기 전에도 그 일은 나루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날도 학교에 갔다 오니 무채색의 거실에 주황색 러그가 잘 놓여 있었고, 나루는 문득 저


러그는 어째서 이렇게 눈에 잘 들어올까 의아한 마음이 들었다. 나루는 잠깐 동안 신발장에 멈춰 있다가 운동화를 벗고 들어와서 거실에 있던 러그를 걷었다. 잘 개어서 창고에 넣어두었다. 하루가 지나고 나니 주황색 러그는 다시 거실에 깔려 있었다. 걷기 전보다 더 깨끗해져 있어서 나루는 이제 저 러그를 절대로 더럽힐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도 혼나지 않을 것이다. 이니가 침묵을 접고 말하기 시작했다. 셔플 모드는 내가 듣고 싶은 노래를 나도 알 수가 없을 때 좋아. 나루는 이번에야말로 이니가 셔플 모드로 음악을 틀 거라고 짐작했지만 시간이 지나도 음악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그런데 계속 넘겨도 듣고 싶은 노래가 나오지 않으면 어떡하지? 이니가 물었다. 나루는 이니에게 답을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잠시 고민했다. 나루는 자기가 셔플 모드로 음악을 들을 때, 그리고 한동안 음악을 정하지 못하고 계속 넘기기만 할 때 어땠는지를 더듬었다. 귓속에 닿아있는 이어폰의 촉감이 더 잘 느껴지고 주위의 소리가 들리게 된다. 어서 음악이 나와서 덮어줬으면 좋겠지만 어떤 음악을 들어도 아닌 것 같다. 어떡하지? 라고 나루는 말했다. 이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등학교에 들어온 이후로 나루는 이니에게 불현듯 미안해지곤 했다. 가의 이사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그들은 일부러 평소보다 더 자주 만났지만 나루는 셋이 만나기로 한 장소에 나가고 싶지 않을 때가 많았다. 이니의 얼굴을 보는 것, 가의 얼굴을 보는 것, 셋이 함께 있는 것, 그로 인해 안심이 되었던 적이 많았는데 왜 그런 마음이 들었는지 나루 자신도 잘 몰랐다. 이니는 가가 떠나고 난 후에 이때의 만남에 대해서 속내를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이니는 그 만남에서 어떤 균형을 느꼈다고 했다. 이니는 가보다 가는 나루보다 덜 슬퍼해야 할 것 같았다. 그 균형을 무너뜨리면 뭐가 나올지 알 수 없어서 이니는 셋 중에서 가장 평소다운 모습이었다. 단 하나 달라진 점은 있었다. 예전에 이니는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이따금씩 자기의 상황에 대해 소소한 고민이나 불평을 얘기하곤 했다. 어느 날 집으로 등기가 왔고 그 때문에 엄마와 아빠가 언성을 높였던 일, 밤에 물건을 집어던지는 소리를 들었던 일. 남자친구를 사귀고 싶지만 살이 빠지지 않고 어떨 때는 엄마 아빠까지 나를 그다지 안 예뻐하는 것이 아닐까 고민했던 일. 언제부턴가 이니는 친구들과의 만남에서 더 이상 그런 이야기들을 털어놓지 않았고 나루는 그것이 두려웠다. 나루는 가와 이니에게 만날 때마다 기운 빠지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친구들이 자신의 눈치를 살피거나 매 상황마다 거북해지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누구에게도 얘기할 수 없었던 일들을 유일하게 들어주던 내 친구들에게 이제 무얼 말해도 나아지지 않고 더 굳어지기만 하는 그 시간을 나루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랐다. 나루는 여러 가지 자세를 취해보았다. 침대 위에서 자기 전에 끊임없이 뒤척이는 것처럼 친구들 사이에 있는 자신의 모습이 어색하지 않도록 여러 번 태도를 바꿔보았다. 그런 것들에 집중하자 좀 나아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한참 후에 이니는 나루에게 비가 그쳤는지 물었다. 나루는 빗소리, 라고 말했다. 이니는 웃었다. 맞다 이 빗소리 누가 틀어놓은 게 아니었지. 빗소리는 아직 거셌다. ☔ 나루는 창문을 열고 방충망을 보면서 눈을 문질렀다. 방충망에는 하루살이가 끼어 있었는데 눈을 다 비비고 몇 초가 지나자 보이지 않았다. 아직 낮이었다. 차들이 숨이 찬 것처럼 큰 소리를 내며 도로를 지나갔다. 나루는 화장실에 가서 세면대에 고개를 숙이고 머리를 감았다. 두피를 문지르던 손가락에 머리카락이 끼어 나왔다. 수건으로 터번처럼 머리칼을 감싸고 밖으로 나왔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어딘지 외계인 같았다. 나루는 헤어드라이기를 젖은 얼굴에 쬐면서 두통약의 효과를 느꼈다. 머리가 아까보다 맑았고 마음이 약간 조급했다. 하루가 끝장이 나고 밤이 되어 이렇다할 일 없이 다음 날을 맞는 것이 불편했다. 그렇게 방에 박혀서 보낸 날에는 활동량이 없어서 밤에 잠이 더 안 오는 것 같았다. 예전에는 해본 적 없는 고민이었다. 나루는 우리 어른이 된 것 같아 라고 이니에게 말했지만 대답은 없었다. 전화를 끊은지 한 시간이 지난 참이었다.


거실에서 소리 없이 나온 아빠가 창밖을 보고 있었다. 나루는 깨닫지 못한 채로 소파에 앉았다가 무늬처럼 서있는 사람 그림자를 보고 놀랐다. 리모콘을 만지다가 텔레비전을 켰다. 텔레비전이 켜지는 소리에 아빠가 뒤를 돌아봤다. 채널을 넘겼다. 화면을 채운 가로선이 짤막짤막하게 잡음을 냈다. 연예인과 방청객이 한꺼번에 웃는 소리가 들리고 끊겼다. 나루는 홈쇼핑 채널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빠는 학원 안 갔냐고 물어보았다. 나루는 대답했다. 학원에는 안 갔어. 바로 방으로 들어갈 줄 알았는데 아빠는 베란다 앞에 가만히 서있었다. 나루는 텔레비전에서 시선을 떼고 아빠를 보았다. 옆얼굴에선 아무 표정도 읽을 수 없었다. 주름도 많고 입술도 하얗게 일어나 있었다. 모르는 사람처럼 아빠는 납빛 얼굴로 눈을 껌뻑이다가 부엌으로 갔다. 유리 보틀을 만지는 듯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는 수돗물을 컵에 받아 마셨다. 물을 끓여놓을 걸 그랬다고 나루는 조금 후회했다. 창틀 위에는 빈 유리 재떨이가 놓여 있었다. 자개와 소라 장식이 투명한 유리 안에서 얼마 안 되는 빛을 반사했다. 나루는 간혹 아빠가 창문 앞에 서서 오래 전에 쓰던 이 재떨이를 만지작거리기만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루가 앉은 차리에서 유리 재떨이는 창백한 하늘에 붙어있는 것처럼 보였다. 유에프오 같기도 했다. 부엌 쪽에서 아빠가 발을 끌며 서성이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를 바라보다가 눈이 마주치면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 자연스러웠는지 나루는 기억나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시선을 거두는 순간은 거북했다. 나루는 올라탈 수 있을 것처럼 생긴 재떨이를 물끄러미 보았다. 문득 아빠에게 친구들 얘기를 하고 싶어졌다. 가와 이니를 아빠도 알고 있었다. 아빠는 가와 이니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할지도 모른다. 나루는 리모콘을 눌러 채널을 계속 올렸다. 어느 순간부터 아무것도 나오지 않고 지지직거리는 소음이 반복되는 텔레비전을 나루는 새벽에도 몇 번이나 보았다. 그런 새벽에는 텔레비전에서 뿜어져 나오는 회색의 어스름 같은 빛이 아빠의 등을 더 검게 만들었고, 나루는 궁금했다. 혹시 텔레비전을 같이 보는 게 좋을까? 아빠와 밥을 같이 먹고 일부러라도 자주 마주치며 익숙해지는 편이 나을까? 하지만 그렇게 함으로써 무엇에 익숙해진다는 것인지 나루는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나루는 소파에 등을 깊이 파묻었다. 침묵으로 연주되는 피아노곡을 떠올렸다. 나루는 그 곡을 다룬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한 적이 있었다. 프로그램에서는 그 곡을 연주하는 피아니스트가 무릎 위에 손을 가지런히 올려놓고 멈춰 있는 모습을 재현해 보였다. 관객들의 웅성거림이나 의자 끄는 소리가 연주를 이룬다고 했다. 그 피아니스트는 등이 뻐근하지 않았을까. 그렇게 꼼짝 않고 앉아있는데. 나루는 텔레비전의 볼륨을 껐다. 열성적으로 움직이는 사람들 입들이 슬퍼 보였다. 나루는 발을 바닥에서 떼고 떠오르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눈을 감아보았다. 브라운관을 오래 봐서 눈꺼풀이 뜨겁고 멍멍했다. 시간이 조금씩 조금씩 기척을 내며 흘러갔다. 나루는 시간이 이렇게 시끄러운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이렇게 티를 내며 흐르는 줄도 몰랐다. 방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발 끄는 소리도 물소리도 들리지 않자 침묵이 찾아왔다. 아니 멀리서 들었던 빗소리처럼 소리는 멀어진 것 뿐이었다. 그걸 듣기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 있었을 터였다. 나루는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멀어지는 소리를 향해 내가 듣고 있다고, 여기서 이렇게 듣고 있다고 전할 방법을 오랫동안 생각했다. 나루는 발코니에 내놨던 슬리퍼를 들고 신발장으로 갔다. 투명한 슬리퍼는 전혀 마르지 않았고 빗물에 젖어 있었다. 나루는 슬리퍼를 닦지도 않고 신었다. 발이 젖었지만 신경쓰지 않았다. 어차피 나가면 비에 젖을 거였으니까. 나루는 파란 우산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다이소는 멀지 않았다. 집에서 5분 정도 걸어가면 빨간 간판이 보였다. 비가 와서 오히려 어제보다 춥지 않았다. 약한 바람이 불어 웅덩이가 찰랑거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발뒤꿈치에 작은 나뭇잎 따위가 붙은 느낌이 들었다. 나루는 조금 더 걷다가 보다 크고 깊은 웅덩이에 발을 아예 담갔다 뺐다. 물이 마를 때마다 발에 찝찝한 이물감이 들어서 계속 웅덩이를 첨벙이며 걸었다. 횡단보도 앞에 있는 플라스틱 매대에 아무도 거둬들이지 않은 교차로와 날짜가 지난 신문이 꽂혀 있었다. 글씨는 대부분 번져 알아보기 어려웠다. 거리에는 사람이 몇 없었다. 대낮이었지만 하늘은 회색이고 어둑어둑해서 여기서 사고라도 당하면 조용히 누워있는 나루를 지나쳐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걸어갈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자 먼 곳에서 앰뷸런스가 사이렌을 내며 지나갔고 마음이 아득해졌다. 금세 상가에 도착했다. 우산을 비닐로 감싸고 다이소의 오렌지색 불빛 아래로 들어가자 목덜미부터 훈기가 돌았다. 신기하게도 거리에는 없던 사람들이 다이소 안에선 북적거렸다. 카운터에 있는 긴 줄이 비현실적이었다. 가판대를 전부 돌아도 나루가 신고 있는 투명한 슬리퍼는 보이지 않았다. 녹색 화장실 슬리퍼나 철 지난 쪼리까지도 보이는데 나루가 얼마 전에 산 슬리퍼만 없었다. 서성이고 있다가 머리카락이 마구 헝클어진 젊은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여자는 벽지와 요가 매트를 파는 곳에 자신의 젖은 겉옷을 걸어두고 있었다. 젖은 머리칼에서 물이 뚝뚝 떨어져 주저앉은 여자의 치맛자락을


적셨다. 평소라면 못 본 척 고개를 돌릴 텐데 오늘따라 유난히 시선을 떼기가 힘이 들었다. 아니, 이 많은 사람중에 나루만은 그 여자를 쳐다봐도 될 것 같았다. 나루는 묵묵히 다음 가판대를 돌았다. 세계과자들이 아무 냄새도 풍기지 않고 나란히 진열되어 있었다. 나루는 그 중의 하나라도 먹고 싶은 기분이 들지 않았다. 슬리퍼는 가판대가 아니라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의 재고 상자에 들어 있었다. 일하는 사람이 잠시 두고 간 것 같았다. 나루는 물이 묻은 손을 상자로 뻗으려다가 멈칫했다. 재고는 두 켤레였는데, 아무리 봐도 아빠가 신을 만한 사이즈는 아니었다. 그것은 누군가 벗어놓고 간 허물처럼 힘없이 겹쳐져 있었다. 아르바이트생이 돌아오자 나루는 슬리퍼의 사이즈를 물어 보았다. 여드름이 있는 남자 아르바이트생은 이 슬리퍼는 어른용이 없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그는 나루의 신발을 보았다. 나루는 괜히 발가락을 꼼지락거렸고 그는 웃으면서 이거 사셨네요 라고 멋쩍게 말했다. 나루는 할말이 없어 네……하고는 베시시 웃었다. 다른 가판대들도 돌았지만 아빠에게 사줄 만한 슬리퍼는 보이지 않았다. 삼선슬리퍼나, 꽃 달린 쪼리를 지나쳐 입구로 나가면서 나루는 우산에 착 달라붙은 비닐을 억지로 벗겼다. 처음부터 아빠의 슬리퍼를 사지 못할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풍선에서 바람이 나가는 것처럼 기운이 어디론가 빠져나갔다. 다시 거리로 흘러나와 되돌아가면서 나루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이니에게 전화를 걸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뭔가를 해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나루는 이런 생각을 한 것조차 이니에게 미안했다. 미안한 이유는 더 있었다. 가가 이사가기 며칠 전에 나루는 이니를 빼놓고 가와 단둘이 만난 일이 있었다. 가는 익숙했던 장소들을 떠나는 것이 생각보다 서운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그 모든 것들이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단지 그 장소에 있는 것만으로 견디기 어려워지는 순간이 있다고 했다. 둘은 병원에, 간병석에 허리가 아프도록 앉아있는 시간에 대해 아주 짤막하게 얘기를 나누었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었지만 나루는 가를 만났던 일을 이니에게 말하지 못했다. 횡단보도를 건넌 나루는 빗물에 흠뻑 젖은 신문을 집어들었다. 신문지는 찰흙처럼 끊어졌다. 간신히 멀쩡한 장을 집어들어 펼치자 이번에는 글자들이 떨어졌다. 어디선가 벌어진 사고 기사의 중간이었다. 무슨 일일까, 읽으려고 해도 쏟아진 글자들이 하나씩 발밑에 부딪쳐 깨어진다. 박, 모, 씨, 정, 모, 씨……나루는 믿을 수가 없었다. 웅덩이에 스민 글자들이 시멘트 바닥을 떠내려가는 동안 나루는 더 이상 우산을 쓰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보았다. 비가 그쳤다. 그런데도 여전히 빗속에 서있는 일을 견디지 못한다면 결국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나루는 어깨 뒤로 우산을 젖히고 손을 내밀었다. 펼친 손바닥 위로 마지막 빗방울 하나가 똑, 하고 떨어졌다.


지진파

학창시절 CD 한장에 (ㅠㅠ) 조선왕조실록이 발매되었을 때만 해도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국사 선생님도 놀라며 이제는 언제든 조선왕조실록을 볼 수 있고 심지어 검색 도 가능한 것에 감탄 또 감탄 했다.

하지만 600년간 이어진 왕조의 실록을 누가 쉽게 시작할 수 있을까. 가벼운 흥미로 접 근하기에는 지나치게 많은 분량이다.

도저히 다가갈 수 없던 무게감을 덜어내고 재미는 극대화 하되 핵심은 놓치지 않은 그 런 책이다. 한권으로 읽는.. 시리즈와 같이 텅비고 밍숭맹숭한 책에 실망했다면 이책 의 꼼꼼함에는 혀를 내두를 것이다. 만화책 20권으로 600년. 세상에 이런 꿀정보 꿀 팁이 어디 있단 말인가. 보라 두번 보라.


너무 너무 라는 말이 자꾸 자꾸 떠오르는 책.

너무 잘 그리고 너무 설명을 잘하는 책이다. 특히 1장 심해와 4장 박쥐는 감탄을 얼 마나 하게 되는지 말도 못하게 쉽고 재미있다. 내용의 디테일 뿐만 아니라 그림의 디 테일도 놀랍다. 개인적 바람이지만 단권이 아니라 2-3권 정도로 나왔으면 어떨까 하 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그렇게 되었다면 작가의 노동력이 몇 곱이 들어갔을 테지만 독자의 마음은 또 다 른 것 아닌가. 이런 은혜로움을 더 누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를 길이 없다.


대선을 앞두고 굴림체로 글. EXXX

4. 쌍쌍바 가르기

더불어 민주당 서울 경선에 다녀왔다. 결과가 나왔지만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지지자들이 있 는지 결과가 나온 후에도 한 쪽이 시끌시끌했다. 이건 너무 진지한 이야기라 굴림체에 어울리 지 않으니 늘 하던 이야기로 회귀해서 가볍게 가자.

정치적 입장이 다른 부모님 혹은 어르신과의 대화를 시작함에 있어 진작 포기하고 읍소 전략 으로 나가라고 한 것이 벌써 세 달 전의 일이다. 당신은 ‘굽신 또 굽신’ 하여 한 표를 얻어낼 수 있을까? 이 글은 그런 비굴함을 견딜 수 없는 꼿꼿한 분들을 위한 최후의 전략을 다룬다.

이미 나는 설득이 불가능하다는 전제를 깔았다. 그것도 세 달 전에. 당신이 충분한 말재주를 갖고 있지 않은 것은 분명하고 부모님도 그 모자란 말솜씨에 넘어가지 않을 테니 설득은 불가 능 것이다. 게다가 최근 밝혀진 것에 따르면 당신보다 더 친근한 동질집단의 친구들이 보내주 는 가짜 뉴스가 카카오톡을 통해 얼마나 많이 들어앉아 있을까.

이런 상황에서 무작정 ‘굽신굽신’ ‘읍소 또 읍소’ 전략을 취하는 것만이 가장 빠른 지름길인 것 은 맞지만 대통령이 탄핵되었다는 상황 변화 (이는 당신의 행동에 반감을 더하게 한다.) 와 장 기적 흐름에 있어 좋은 전략이 아니다. 구부리는 사람의 자존심도 상하고 다음에 다른 곳을 찍 으려 들 때면 그때는 정말 막을 방도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오늘은 꼭 읽고 기억해 두 었다가 반복해서 써먹도록 하자.

지난 글에서는 오직 효율만을 생각하는 극악한 처방을 이야기했다. 나도 구질구질하다고 생 각하면서도 여러분들에게 좀 도와달라는 마음으로 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오늘은 다르다. 도도한 접근을 이야기할 것이다.

3 스텝 전략이다. 외우기도 쉽다.

1. 묻는다. 2. 참는다. 3. 갈라친다.


1. 묻는다. 우선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에 대한 의견을 묻는다. “이번에는 누구 찍으실 거예요?” 정도가 적당하다.

2. 참는다. 절대로 듣기만 한다. 직접 되묻기 전까지 듣기만 한다. 듣는 동안 반박하지 않는다. 반박=감정싸움의 공식이 성립하니 영 답답해도 참아야 한다. 질문이 들어와도 복잡한 논리적 근거로 설명하지 않는다. 항상 진지한 얼굴로 아무리 허황된 이야기가 나와도 지나치게 웃지 않는다.

3. 갈라친다. 본인이 지지하는 후보에 대한 감정적 동조나 설득은 금물! 부모님이나 어르신들에게 감정적 동조를 시도한다.

예문: “저는 나라가 이만큼 살게 된 게 어른들이 노력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엄마 아빠가 이 룬 성과를 저 사람들이 혼자 먹는게 너무 속상해!.”

딱 이 정도가 적당하다. 부모님이나 어르신은 너무 고생했고 잘못이 없다는 것을 두 번 반복 강 조한다. 그리고 또 듣는다. 절대 다른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

왜냐하면 결국 설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만 스스로 당신이 미움 받는 것은 아니라는 느낌만 큼은 확실하게 전달해야 한다. 사람은 보통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과 싱크 상태이기 때문에 부정하거나 힐난하는 형태로는 설득이 쉽지 않다. 인내하는 자세로 서서히 떼어내야 하는 것이 다. 쌍쌍바를 가르듯 집중해서 조심스럽게.

결국 적은 저 멀리. 가족은 가까이 있지 않나.

사랑만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다.

화이팅



Turn static files into dynamic content formats.

Create a flipbook
Issuu converts static files into: digital portfolios, online yearbooks, online catalogs, digital photo albums and more. Sign up and create your flipb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