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 입니다. 도토루의 하루 / 그림. 호지 영화 리뷰: 두번 본 영화 - 나쁜 영화 (1997) / 글. 가람 백림서신 - 07. 재능 / 글. composer B 글로 배우는 그림도구 - 아크릭 물감 / 글. 사탕고양 사무실에서 드는 생각 - 04. 아나키스트가 되자 / 글. 권근혜 만든다오 - 07. 중앙난방 아파트와 코타츠 / 글. 사진. 진선 체니 사이드 - 01. 손가락 나비 / 글. 사진. 장수양 느낀다 그러므로 나는 - 힘 / 글. 사진. 민하 의미 없는 이야기 / 그림. 글. 철민 I MB U 3화. 네이버 / 글. EXXX
짜잔! 맨날 부지런 해야지 하고 혼자서 생각만 하다가 1년이 지났습니다. 여러분! 12월 호에는 어쩌면 지금과 다른 디자인의 월간이리를 만나게 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특별히 혹은 앞으로 꾸준히 판형을 바꾸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해볼 참입니다. 필진 과 주변 분들에게 의견을 듣고 결정을 지어서 12월호에 앞서 결판을 짓고 오겠습니다. 저는 요즘 커피 마시는데 무척 재미를 들였습니다. 늘 마시는 커피를 좀 더 집중해서 좀 더 멀리 여행을 떠나는 느낌으로 마시고 있답니 다. 이 커피는 브라질의 1300미터 고지의 농장에서 손으로 따 말린.. 그런 생각 까지 는 하고 있지 않고요. 와! 맛있네. 커피 다 마실 때 까지는 다른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하는 느낌으로 마신답니다. 그래서 인지 커피를 마시는 일이 괴롭지 않습니다. 저에게는 명상이기도 하고 여행이 기도 하고 망실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좀 있으면 추위 때문에라도 이를 앙 다물 수 밖 에 없으니 11월에는 여유롭게, 휘파람도 부시고 주변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도 줄 수 있는 시기를 보내셨으면 합니다. 이런 이야기를 7년 째 하고 있습니다. ㅋㅋ 마지막으로 너무 너무 훌륭한 연기를 보여주었던 김주혁 배우를 그리워 한다는 말을 남기며 인사를 마칩니다. 제가 예술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사라졌습니다.
월간이리 exxx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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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 두번 본 영화 나쁜 영화 (1997) 감독 장선우
개봉한 영화마다 ‘화제작’ 꼬리표를 달았던 장선우 감독이지만 게 중에서도 가장 ‘화제작’이었 던 것은 아마 나쁜 영화가 아닐까 싶습니다. 개봉 당시 영화 잡지 키노(KINO)와 했던 인터뷰에 서 감독은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계기를 이렇게 밝힙니다. <아주 잘 짜여진 아름다움을 만드 는 것에 지겨움을 느꼈고, 그런 영화들(만)을 ‘좋은 영화’라고 칭송하는 관객과 평단에 무언가 다 른 걸 보여주고 싶었다.> 가출 청소년들과 거리 부랑자들의 삶을 보여주는 나쁜영화는 영화에 서 다루는 이미지와 소재의 선정성이 ‘나쁜’ 것을 넘어서, 영화의 형식까지 의도적으로 ‘나쁘게’ 만든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는 형식적으로 다큐멘터리와 극영화의 경계를 넘나듭니다. 실제 가출 청소년들과 부랑자들 이 출연한다는 것, 그리고 그들이 거리에서 겪은 실제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에서는 다큐멘터리 와 닮았다고 볼 수 있지만, 그 가출 청소년들을 고용해서 배우로서 연기를 시켰다는 것, 그리고 그들의 경험을 토대로 장면을 연출해 촬영했다는 것에서는 분명 극영화라 할 수 있습니다. 노숙 자 관련 에피소드들은 배우들이 연기한 것과 실제 부랑자들은 촬영한 것이 반 씩 섞여있습니다.
이미 많이 알려져 있듯이 지금은 너무나도 유명한 안내상, 기주봉, 송강호 등 당시 무명배우들이 노숙자 역할을 맡아 연기했고요. 실제 노숙자들은 청소년들처럼 ‘연기를 했다’기 보다는 촬영팀, 연기자들과 어울리는 모습이 찍힌 것으로 다큐멘터리에 가장 가깝게 촬영된 장면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6mm 카메라와 디지털 캠코더를 사용한 점, 관객들이 사건을 직접 지켜보는 느낌을 주기 위해 혹은 미숙련 배우들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행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원거리에서 촬 영한 것 등 역시 다큐식 연출처럼 보이는 데 한 몫 합니다. 즉 이 영화는 다큐멘터리처럼 연출된 장면들, 실제 다큐멘터리처럼 촬영된 장면들, 일부이지만 실제 극영화를 찍는 것처럼 찍은 장면 들이 한 데 섞여 있습니다. 몇 장면을 예로 들어서 설명해 보겠습니다. 영화에서 가장 사실적으로 보이는 폭주족 씬을 보면, 도로 위, 자동차들 사이로 오토바이를 탄 한 무리의 폭주족들이 정신 없이 지나갑니다. 그 옆 인 도에서는 여학생들이 환호를 하며 오토바이에 태워달라며 애원을 하죠. 여학생들 사이로 방송 기자처럼 보이는 여성이 인터뷰를 시도합니다. 인터뷰를 하는 사람들의 표정, 말투 등 모든 것이 누가봐도 TV다큐멘터리나 뉴스의 한 장면처럼 보이는데요. 사실 이 장면은 나쁜 영화에서 가장 제작비가 많이 든 연출된 장면이라고 합니다. 도로를 통제하고, 스턴트맨과 엑스트라를 대거 고 용해 만든 장면이죠. 실제 다큐멘터리처럼 보이는 배우들의 연기는 미숙련 연기자들이 카메라 앞에 섰을 때 나오는 아주 자연스러운 ‘부자연스러움’입니다. 부랑자 에피소드 중에서는 배우 안 내상과 기주봉의 에피소드가 가장 많이 나오는데요. 배우 안내상은 감독의 권유로 서울역의 부 랑자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실제로 3개월 동안 노숙생활을 하기도 했 고요. 기주봉 배우는 캐릭터를 연기할 때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실제 모습이 나오는 것을 경계하 기 위해 촬영 현장에 아들을 데려와 자신의 연기를 지켜보게 할 정도로 자연스러운 노숙자 연기 를 구현하려 애를 썼다고 합니다.
영화의 내러티브는 산만하게 얽힌 에피소드의 연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 에피소드들이 무 작위로 배열되어있는 것은 아니라는 느낌도 있습니다. 중간 에피소드들이야 무슨 이유로 그렇 게 배열됐는지 유추할 길이 없어도,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은 기존 영화들처럼 캐릭터와 공간을 소개하거나, 나름대로의 클라이막스를 보여주는 등 나름의 질서가 분명히 보이죠. 초반에는 적 극적으로 자막까지 이용해 캐릭터들을 하나하나 설명하고요. 영화는 가장 첫 장면, 실제 장례식 장면을 보여주며 꺼내놓은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꺼내 놓는데요. 이후에도 삶과 죽음 노 출된 길거리 청소년/부랑자들의 모습을 간헐적으로 보여주던 영화는 결국 마지막에 연출된 죽 음을 보여주며 영화를 갈무리합니다. 영화 형식의 혼란스러움은 안그래도 나쁜 영화의 이야기를 더욱 선정적으로 만듭니다. 당시 장 선우 감독은 15세에서 17세 사이의 실제 가출 청소년들을 섭외하고, 그 친구들이 진짜로 겪었 던 에피소드들을 연출해 연기하게 했습니다.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여학생들은 패싸움에서 벽 돌로 상대 학생의 머리를 내려쳐 결국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연기한다거나, 아버지에게 혼나고 팬티만 입은 채 길거리를 걷는 연기, 돈을 벌기 위해 호스티스바에서 중년의 남성들을 접대하는 연기, 또 나체로 세 명의 남학생에게 강간을 당하는 연기까지 합니다. 남학생들 역시 사람을 칼 로 찌르고 퍽치기를 하는 연기, 호스트바에서 돈을 벌기 위해 중년의 여성들을 접대하는 연기, 여자 친구를 발로 차는 등 폭행하거나 강간을 하는 연기를 하죠. 술마시고, 담배피고 본드하는 장면은 매 에피소드마다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지난 번 장선우 감독의 꽃잎 (1996)에 대한 글 을 쓸 때도 언급했지만, 미성년 배우에게 이런 내용의 연기를 시킨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지탄받 아야 할 문제입니다. 하지만 꽃잎의 경우, (그 어떤 이유도 도덕적 문제를 경감할 순 없지만) 당 시 이정현 배우의 데뷔작이긴 했어도 전문 배우로 섭외됐으며, 콘티와 대본이 있고 리허설 등 을 통해 배우가 촬영할 장면을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반대로 나쁜 영화는 청소 년들 모두 전문 배우가 아니었으며, 콘티, 대본은 물론 리허설도 없었고, 그저 촬영 장면에서 감 독이 촬영할 장면과 그 장면에 대한 설명을 구두로 간단하게 설명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어떤 장면에서는 감독이 촬영 현장에 부재했다고 감독 스스로 밝히기도 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한가득 껴안은 영화를 또 비난만 할 수 없는 이유들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영화 예술로서 가치입니다. 영화라는 매체/예술에 대한 형식적인 고민. 그리고 그것을 영화의 주제 와 연결시켜 구현했다는 점이 참 놀랍습니다. 그 외에도 나쁜 영화는 당시 한국 사회가 직면했 던 청소년 문제를 아주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경각심을 주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실제 가출 청 소년들이 겪은 이야기들을, 그들을 통해 재연한 이 영화를 통헤 많은 사람들이 충격을 받았었 죠. 흥미로운 점은 나쁜 영화가 개봉한 같은 해, 정우성, 고소영 주연의 비트(1997)도 개봉했다 는 것인데요. 비트 역시 나쁜 영화처럼 탈학교/가출 청소년들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두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은 극과 극입니다.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영화 비트를 회상하며, 학창시절 민(정우성)과 태수(유오성)를 동경했던 추억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
는 비트가 보편적인 영화 문법과 합법적/도덕적인 영화프로덕션의 틀 안에서 만들어졌기 때문 일 것입니다. 예를 들면 당시 이미 성인이었던 주연배우들이 흡연, 음주, 본드, 패싸움을 연기하 는 것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영화에서 배우들이 하는 행동을 텍스트로 바꾸고 보면, 비트와 나 쁜 영화의 내용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곰곰히 생각해보면, 결과적으로 비트는 청소년 문제에 ‘아름다운 방황’, ‘어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고독’ 등 낭만이라는 프레임을 씌 워 청소년 문제을 미화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겠지요. 결과적으로 민과 태수, 로미(고소영)는 비극적인 결말을 맞긴 하지만 사람들의 기억에 남는 것은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가는 주인공들 의 마지막 모습이 아닌 오토바이를 타고 도로를 질주하거나 지포라이터로 담배에 불을 붙이는 아름다운 장면들이니까요.
최근 이 두 영화를 함께 보며 과연 좋은 영화는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비트는 흥행에 성공한 것과 주연배우들을 완전히 스타 반열에 오르게 했더는 것 이외에는 연기나 연출 등 영화적인 면에서 훌륭하다고 할만한 요소가 적습니다. 반면 나쁜 영화는 아주 큰 도덕적 문제가 있지만,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봐도 영화의 형식적인 면에서 신선한 충격을 주며, 비전문 배우와 전문 배우들의 연기 연출과 즉흥에 가깝게 찍은 장면들을 엮은 편집 연출이 아주 인상적이죠. 물론 두 영화를 두고 어떤 것이 훌륭하다느니 굳이 비교하며 논쟁을 할 필요는 없습 니다. 영화는 보는 사람의 기호에 따라 평이 다르고, 영화든 소설이든 그림이든 작품을 평할 때 는 그 작품 자체만 보고 판단을 해야지 다른 작품과 비교를 하며 판단을 하는 것은 옳지 않은 방 법이니까요. 다만 같은 시기에 개봉한 두 영화가 우연히도 같은 주제를 너무나도 다른 방법으로 보여주고 있어, 함께 봤을 때 ‘영화란 무엇인가’, ‘영화란 어때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되 묻게 되는 것 같습니다. 이 질문에 완벽한 답을 내릴 수 있기는 할까 의문이긴 하지만 말이지요. 소문은 익히 들었지만 선정적인 이미지나 불편함 때문에 나쁜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이 계셨다 면, 영화의 형식에 대해 고민하면서 이 영화를 보길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보기 전에 키노에 실 렸던 장선우 감독의 인터뷰를 보신다면 영화가 더 흥미롭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글. 가람
akakk_@naver.com
백 림 서 신
伯 林 書 信
Composer B
07. 재능
잘 지냈어? 이 곳 베를린에도 본격적인 가을이 찾아왔어. 여름에 비하면 화창한 날들도 점점 줄어들고 있고, 사람들은 다시 코트를 꺼내 입기 시작했어. 학교들은 다시 학기를 시작했고, 휴가에서 돌아온 학생들도 저마다 자신의 공부를 하기 위해 분주한 하루를 보내고 있겠지. 나는 학생들을 볼때마다 ‘재능’에 대해서 생각하게 돼. 사전적 의미의 ‘재능’은 ‘어떤 일을 하는데 필요한 재주와 능력’ 이라고 되어있네? 다시 말해 ‘일을 하기 위한 능력’이라는 뜻이고, 그 수준이 어떤가에 대해서는 명시가 되어있지 않은 셈이지. 게임 속 인물들처럼 ‘재능’을 수치화 한다고 치면, 30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나 99의 능력을 가진 사람이나 모두 ‘재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다는 것이겠지? 하지만 언제부터 인가 우리는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면, 재능이 ‘없다’고 말하고, 남들보다 월등한 수준인 사람들에게나 재능이 ‘있다’라고 말을 해. 그래, 뭐 사실 그건 말장난에 지나지 않아 보일 수도 있어. 하지만 그 말장난 같아 보이는 ‘재능’이라는 단어 하나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웃고 울면서, 자신을 자랑스러워 하거나 혹은 자책하게 되니? ‘비범한’ 혹은 ‘특출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을 보고 자극을 받거나 존경심을 가질 때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느끼게 되는 절망감말이야.
또한 그 ‘비범한 재능’이라는 것의 기준은 참으로 상대적인 것이다 보니, 자신의 앞이나 뒤에 있는 사람이 얼마만큼의 재능을 가진 사람이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 같아. 영화 하나 때문에 ‘ 노력형 작곡가’처럼 이미지가 박혀버린 살리에리를 생각해봐. 그 역시 당대에는 상당히 인정받는 작곡가였고 어렸을 때부터 남다른 음악적 재능이 있었지만, 하필 자신의 후배가 인류 역사를 통틀어 손꼽히는 재능을 가졌기 때문에 빛이 바랄 수 밖에 없었잖아? 더불어, 평범한 재능을 가진 쪽에 속한 나는 다 알 수는 없겠지만, 비범한 재능을 천형(天刑)과도 같이 짊어지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들과 다르다’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일거야. 그들의 상당수는 부러움과 질투, 존경과 의도적 폄훼 그리고 섬세함과 과민함을 온 몸으로 겪으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곤 하잖아. 남들이 바라보는 시선 때문이 아니라 하더라도, 자신의 그릇이 큰 재능을 감당치 못해서 스스로 무너지기도 하고. 그럴 때면 그들이 가진 ‘특출난 재능’이 마냥 좋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정말 무서운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도 하게 돼. 뭇사람들은 그들을 보고 ‘나도 저 사람이 가진 재능의 반이라도 가졌으면…’하고 바라겠지만, 그로 인해 아픔을 겪는 천재들은 자신의 재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남들과 비슷한 수준의 능력을 가져도 좋으니 무탈한 삶을 살고 싶을까? 아니면, 그것 때문에 아파도 좋으니 자신의 재능을 잘 간직하고 싶을까? 여느 선진국이 그렇듯 이 곳 독일에도 세계에서 온 ‘출중한 재능’의 학생들이 참 많아. 물론 그 가운데에는 ‘평균적인’ 수준의 학생들도 있고. 당연히 독일의 교수들이라고 특별할 것 없이, 학생을 뽑을 때 높은 수준의 재능을 가진 학생들을 원하겠지. 하지만 그렇지 않은 학생들을 볼 때는 ‘가능성’이나 ‘성실함’과 같은 부분에 대해서도 조금 더 생각해주는 것 같아. 짧은 면접 혹은 시험 시간은 당연히 그 사람의 모든 것을 보기에 부족할 수 밖에 없고, 학교라는 곳은 자신의 높은 재능을 뽐내러 오는 곳이 아니라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오는 곳일 테니까. 그 양이 많든 적든, ‘재능’이라는 것은 오로지 그것을 쓰는 사람과 보는 사람들의 행복만을 위해 존재했으면 좋겠다는 순진한 생각을 해본다. 또한 그 재능으로 인해서 사람들이 서로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미워하지 않았으면 해.
특별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무례하게 굴거나, 자기 자신의 재능을 감당하지 못해서 스스로를 망가뜨리는 일이 없기를. 평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보다 더 큰 재능을 가진 사람을 미워하지 않고, 또 스스로를 책망하거나 괴롭히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 나 역시 어느 쪽이 됐든지 간에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사람이 하루 아침에 바뀌기는 힘들테니, 노력해야겠지? 말이 길어졌다. 또 편지할게.
글로 배우는 그림 도구
아크릭 물감(Acrylic paint) 오랫동안 캔버스 위에 칠해진 물감은 유화물감이었다. 유화물감은 작품을 만들기에 모든 면에서 거의 완벽했다. 하지만 단점도 있었다. 기름을 써야 하고 쓰는 순서를 알아야 하고 그림을 그리는 화판이 어느 정도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유화보다 더 광범위하게 쓰이는 물감은 없다. 기술의 발달은 화구에도 영향을 미쳐 내광성이 낮다고 생각되던 수채물감에 작품을 그릴 만한 내광성을 부여했다. 화구도 기술 발달로 업그레이드 됐지만 물감자체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지금으로부터 70여 년 전에 없던 새로운 물감이 탄생했다.
화학기술로부터 탄생한 아크릭 물감 아크릴 물감이라고도 부르는 아크릭 물감은 유화물감 대신 사용하는 물감으로 자리잡고 있다. 사실 작품용보단 리폼 용도로 더 많이 쓰인다. 캔버스만이 아니라 가구에 신발에 심지어 돌 뒤에도 그릴 수 있다. 굳은 뒤 프라스틱 같은 느낌이 싫다는 사람도 있지만 은은한 광택, 냄새도 없고 물로 희석할 수 있고 마르면 단단히 굳어 아크릭 물감 사용자는 꾸준히 늘어나는 중이다.
이 물감의 역사는 100여년 전에 독일에서 시작했다. 독일의 한 화학자가 물로 희석가능한 플라스틱 수지를 만들어 냈다. 이 물질은 계속 개량돼 1930년대에 다용도로 쓸 수 있고 사용하기 쉬운 아크릴 수지 에멀젼이 만들어졌다. 아크릴 수지 에멀젼은 물로 희석 가능하고 마르면 탄성이 있고 투명해지며 단단히 굳어 내구성이 높았다. 독성도 없고 온도 특성도 좋고 접착력이 아주 우수했다. 그렇다. 이 물질은 개발초기부터 우수한 성능의 접착제로 개발됐고 지금도 주로 접착제로 사용되고 있다. 접착제 이외에도 건축용 바닥 재료, 나뭇조각으로 만든 블록이나 판재, 섬유 바인더 등에 사용된다. 물로 희석하지만 물이 마르면서 건조해지는 건 아니다. 물이 빠져나가면서 내부의 분자들이 서로 이어져 젤 형태의 물질이 고체로 바뀐다. 이걸 중합반응이라 부른다. 유화물감의 린시드도 이런 중합반응을 통해 단단한 물질로 변하며 안료를 캔버스 위에 단단히 고정한다. 수채화나 유화나 아크릭 물감이나 말린다라고 표현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의 세계에선 전혀 다른 과정으로 마른다. 다시 말해 물로 희석해서 쓰는 아크릭 물감은 수채물감처럼 수분이 증발해 굳는 것이 아니기에 한 번 마르면 다시 녹여 사용할 수 없다. 접착제에서 페인트, 그리고 물감으로 아크릴 수지 접착제가 등장하고 10년도 안 돼, 이 접착제에 안료나 염료를 넣어 산업용 페인트로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했다. 오랜 옛날부터 바인더는 물감 재료임과 동시에 접착제로 사용되었으니 뛰어난 접착 특성을 가진 아크릴 수지 에멀젼이 페인트로 만들어진 것은 필연적이다. 산업용 페인트이던 아크릭 페인트가 예술가를 위한 물감으로 다시 태어난 곳은 멕시코에서였다. 1950년대 일이다. 호세 L, 구띠에레즈(Jose L. Gutierrez)는 벽화 작업에서 아크릴 페인트를 접했다. 빨리 건조되 며 어디든 바를 수 있고 마르면 단단한 피막을 형성하고 농도를 조절해 수채화처럼도 유화처럼도 그리고 대 부분의 물체 위에 그릴 수 있다는 점이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아크릴 페인트를 작품용으로 쓸 생각을 한 사람은 구띠에레즈만이 아니었다. 많은 예술가들이 벽화를 그리 며 이 페인트를 접했다. 빨리 마른다는 점 때문에 캔버스 위에 그림을 그릴 때 유화물감 대신 쓰는 작가들 도 꽤 있었다. 그는 이 페인트에서 사업성을 보았다. 1953년 호세는 회사를 만들어 Politec Acrylic Artists’ Colors란 이름으로 작품용 아크릭 물감을 출 시했다. 1955년에는 미국 오하이오 주 신시네티에 위치한 Permanent Pigments Co.에서 지금도 아 크릭 물감으로 유명한 리퀴텍스(LIquitex)가 출시됐다. 이 두 가지 물감이 바로 최초로 생산된 예술가를 위한 아크릭 물감이다.
Politec Acrylic Colors와 LIquitex는 작품용으로 나온 최초의 아크릭 물감이다.
다양한 가능성의 아크릭 물감 보통 아크릭 물감을 유화 대용으로 많이 쓴다. 유화 같은 터치와 두께 표현이 가능하고 마르면 표면이 비닐 같은 광이 나는데 유화의 광택과 비슷하다. 유화처럼 팻 오버 린을 지킬 필요도 없다. 하지만 아크릴이 인 기를 끈 것은 유화와 비슷한 점이 아니라 폭 넓은 표현능력 때문이었다. 농도를 달리해 수채화처럼도 칠할 수 있고 유화처럼도 칠할 수 있다. 다른 특성을 가진 미디엄을 섞으면 유 화로는 표현하지 못했던 것까지 가능하다. 원래 접착제로 쓰였던 만큼 다양한 물질을 섞어 마치 물감처럼 쓸 수 있을 정도다. 모래, 곡식뿐 아니라 심지어 파스타까지 캔버스에 바를 수 있다. 어디든 잘 발리기에 공예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가구를 리폼할 때, 톨 페인팅에도 모형 도색에도 쓴다. 붓 으로 칠하거나 에어브러시로 뿌리기도 한다. 다양한 점성으로도 나와 필요에 따라 특성을 조절해 사용할 수 있다. 내수성이 높고 어디든 잘 부착되고 단단하게 고정돼 야외 작품에 쓸 수도 있으나 표면 상태에 따라 오히 려 쉽게 벗겨지기도 한다. 마르면 다시 녹지 않는데 이소프로필알코올, 톨루엔, 아세톤 등으로 지울 수 있다.
장점이자 단점은 너무 빨리 마른다 아크릭 물감의 장점이자 단점은 너무 빨리 마른다는 점이다. 바른 후에 10~20분 정도면 다 마른다. 그래서 캔버스 위에서 혼색하는 웻 인 웻 기법을 쓰기가 곤란하다. 건조 지연제인 리타터를 사용하면 건조속도가 느려지지만 이것도 약간 느려지는 정도. 그렇다고 리타터를 너무 많이 석으면 이젠 잘 굳지 않게 돼 곤란하다. 캔버스에서 빨리 마르는 건 좋지만 곤란한 건 붓과 팔레트에서도 빨리 마른다. 팔레트에서 마르니 그리는
중에 계속 새로 짜 써야 한다. 이걸 완화하는 방법도 많이 고안돼 있다. 큰 밀폐 용기 안에 물티슈를 두껍게 깐 다음에 그 위에 팔레트를 올려 쓰는 방법이다. 안 쓸 때엔 뚜껑을 닫아 보관할 수 있고 수분에 의해 물감이 금방 굳지 않고 유지된다. 뚜껑을 덮어두면 최대 3일 간 굳지 않고 쓸 수 있다. 팔레트에 굳은 물감은 재사용할 수 없고 버려야 하기에 팔레트에 랩이나 호일을 씌워 쓰는 사람도 있고 1회용 팔레트도 많이 쓰인다. 특히 붓 관리가 곤란하다. 붓털 사이에 물감이 말라버리는 일이 종종 생긴다. 이를 방지하려고 쓰지 않을 땐 물 속에 담궈둔다. 붓은 물에 담궈두지 말라고 하나 붓에 묻은 아크릭 물감이 마르면 통으로 버려야 해 차라리 담궈두는 쪽이 낫다. 붓을 물에 오래 담궈두면 붓대가 물을 머금어 부풀어 올라 칠이 갈라지고 고정이 벌어져 흔들리기에 몇몇 아크릴용 붓은 붓대가 프라스틱이다.
다양한 종류의 아크릭 물감 아크릭 물감은 사용 분야가 넓은 만큼 특성도 다양하다. 젤리 같은 형태의 헤비바디 타입. 일반적인 물감 농도의 소프트바디 타입, 점성이 약해 흘러내리는 플루이드 타입이 있다. 헤비바디 타입으로 입체감 높은 회화를 그릴 수 있고 플루이드 타입은 얇게 바를 수 있어 공예용으로 좋고 요즘 유행하는 마블링 그림 그릴 때 많이 사용한다. 아 크릭 잉크는 딥펜으로도 사용할 수 있고 맑은 수채화 느낌의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아크릭 물감에 사용되는 다양한 종류의 미디움이 있는데 이것을 사용하면 아크릭 물감의 특성을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
수채 과슈처럼 아크릭 과슈도 있다. 반투명하고 광택이 있는 아크릭 물감과 달리 아크릭 과슈는 무광이며 얇게 발리고 불투명하다. 마르면 다시 녹지 않기에 수채 과슈랑 달리 자유로운 덧칠이 가능하다. 앞서 접착제에 안료를 섞어 물감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이야기에서 ‘혹시?’라고 생각하신 분도 있지 싶다. 그렇다 목공용 풀이 아크릭과 굉장히 비슷한 특성을 보인다. 아크릴 수지 에멀젼보다 특성은 좋지 않지만 일반적인 사용에선 문제가 없다. 목공용 본드의 본 명칭은 약간 식초 같은 냄새가 나는 초산비닐수지이다. 그래서 이걸로 만든 물감을 비닐 물감이라고 부른다. 저가 아크릭 물감은 사실 비닐 물감인 경우가 많다.
글 사탕고양 제 블로그(soulcreator.blog.me)에 저의 그림 도구 덕질을 올리고 있습니다. 드디어 저에게도 출판의 기회가 왔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샘플 원고를 만들고 있습니다.
#4. 아나키스트가 되자 “당신의 전문분야는 무엇입니까?”
이력서에 열심히 써 놓아도 면접관은 또 물어본다. 바야흐로 가을 정규채용이 시작되고 있
다. 구직자의 수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끊임없이 신입과 경력직의 채용공고 가 올라온다. 어느 덧 백수 반년 차에 접어든 나는 불안한 마음에 구직사이트에 슬며시 접
속을 해본다. 비밀번호는 당연히 오류이다. 개인정보를 모두 공유한다고 서약한 뒤에서야 간신히 접속을 한다. 우선 직종을 선택한다. 기존 경력인 마케팅 리서치로 가려면 취업포 탈 사이트마다 다른 분류 체계를 선택해야 한다. 어떤 곳은 기획/마케팅 카테고리로 들어 가고, 어떤 곳은 전문직종 카테고리로 들어간다. 클릭을 하다보니, 예전과 달리 이 분류 가 참 답답해 보인다.
내 전문분야는 무엇일까?
사실 리서치는 기획에 속하지도 않고, 전문직은 더욱 아니다. (사실 전문직이라는 분류가 애매한 게 배관공이나 보일러공 같은 기술직도 전문직일텐데, 그들은 또 기술직으로 분류 가 된다. 여기서 말하는 전문직은 대기업은 아닌, 고 연봉의 지식서비스에 종사하는 화이 트칼라를 지칭하는 것 같은데, 지금의 마케팅리서치는 더욱 해당하지 않는다)
지난 10년간 리서처는 조사전문가에서 조사쟁이로 시각이 변해왔다. 즉, 지적자산을 파는
것에서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오류를 최소화하는 ‘쟁이(기능장)’으로 달라진 것이다. (물
론 이런 흐름에 반감이나 아쉬움은 전혀 없다) 그리고 이와 함께 달라진 것이 리서처들이 가지는 비전이다. 과거에는 나름의 리서치 안에서도 전문분야를 확보하려고 했었다. 예를
들면, 전자제품 조사전문가, 자동차 조사전문가, 식품 조사전문가 같은 식으로 말이다. 그 렇게 제품군을 반복하면서 산업이나 시장상황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이를 토대로 나름의 인사이트를 낼 수 있었다. 전자산업이 한창 호황일 때는 전자 안에서도 가전 조사전문가,
모바일 등 IT 조사전문가로까지 구분되었었다. 그런데 이는 조사의뢰 물량이 많고 담당자 가 조사에 대한 전문지식이 부족했던 리서치 초기 단계였기에 가능했다. 클라이언트들의
경험이 쌓이고, 저성장으로 조사 물량이 감소하면서 이런 식의 전문분야 구축은 어려워졌 다. 대신 설문지가 짧아지고, 온라인 조사가 증가하면서 간단하고 단순한 조사 방법이 점
점 더 선호되었다. 즉, 특정 산업군의 깊은 지식보다 산업군 상관없이 어떤 조사든 빠르 게 척척 해 내는 것이 중요해졌다.
리서치 입문 후 한동안 자동차 조사를 주로 했던 나는 차량 조사 전문가가 되겠다는 포부 를 가졌었다. 한국이 자동차 생산국이라는 것에 묘한 자부심을 가졌고, 심지어 국내 자동
차 회사에 무한한 존경심까지 가졌었다. (사실 해외조사를 하다 보면 제품력에 상관없이 자국 브랜드 대한 불공정한 애정이 생기게 된다) 하지만 경력이 쌓이면서 나의 이런 시
도가 전체 흐름에 역행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조사 전문회사는 더 이상 산업 전문가
를 바라지 않았다. 그 산업 프로젝트만 해서는 매출을 올릴 수 없고, 회사에서 원하는 대 로 활용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즉, specialist 대신 generalist가 필요해 진 것이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장기불황, 세상에 나온 상품이나 서비스는 충분히 발전해버렸다. 이 런 상황에서 ‘special’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300만원을 넘는 루이비통 가방이 3초 백 (3초에 한번씩은 보인다)으로 불리는 시대, ‘Mass premium’이라는 단어 아래 모두가 명품
을 선호하고 즐기는 시대가 된 것이다. 계속 Special을 외쳐봤자 더 이상 Special 한 게
없다는 건 이제 누구나 안다. 즉, Specialty가 Generalize 된 시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리서처들은 어떠한 미래를 가져야 할까. 그냥 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하면 될까? 제대로 된 결론을 낼 시간도 없이 닥치는 대로 프로젝트를 해 치 우면 되는 걸까?
사실 이는 퇴사 후 그간의 서류작업은 아무 짝에 쓸데 없는 짓이었단 것을 알게 되는 대
부분의 사무직 노동자에게도 적용될 것이다. 맡은 업무에 최선을 다해 Specialty를 키우 고 싶지만 조직은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조직에 맞춰 일하다 보면 ‘내 것’이라 내
세울 게 없는 general한 인간이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게 내가 충실한 조직원이 되고 나 면 회사는 ‘나 하나쯤은 없어도 된다며’ 조용히 내 등을 밀어낸다. ‘개인의 경쟁력’을 다그
치는 사회와 그리고 조직원이 되고 나면 경쟁력이 없다며 등을 밀어내는 회사. 이 반대되 는 요구 안에서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사무실에서 드는 생각
내가 생각하는 길은 Anarchist이다. 사회학 용어지만 아래 정의에서 ‘정치조직, 권력, 사
회적 권위’ 같은 단어 대신 ‘사회, 기업, 관습’으로 대체하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것이다. An Anarchist
- 개인을 지배하는 모든 정치조직이나 권력, 사회적 권위를 부정하고 개인의 자유와 평등, 정의, 형제애를 실현하고자 하는 사상을 가진 사람
발췌 : 다음국어사전
즉, 사회가 요구하는 ‘special한 경쟁력’나 회사가 요구하는 ‘general한 조직인재’는 다
필요 없다고 보려는 시각을 가지는 것이다. 이는 세상이치를 무시한 무모한 도전도 아니 고, 유아독존적인 유치한 자기애(自己愛)도 아니다. 변화의 흐름을 알기에 더욱 주장하 는 바이다.
산업군 기반의 조사전문가가 더 이상 필요해지지 않은 데에는 앞서 말한 경기침체나 고객
사의 경험 증가도 있었지만, 사실 산업 변화가 더 크게 작용한 것이다. 즉, 제품 산업군
의 경계가 무너진 것이다. 이제 누구도 자동차를 엔진과 핸들링으로만 평가하지 않는다. 자동차 기능의 절반 이상이 전자/IT 기술에 토대를 둔지 오래이다. 테슬라가 최초 전기차
를 만든 건 10년 전이다. 이미 자동차 공학(물리학)과 전자공학은 통합된 것이다. 가전제 품은 어떤가? 가전 기능이 모바일로 원격조정할 수 있는 상황에서 가전과 모바일의 구분이 의미가 있을까. 이런 맥락에서 취업포털 사이트에서 기획/마케팅, 혹은 전문직/제조업 같
이 구분하는 게 답답해 보이는 건 당연하다. 예를 들어, 제품을 직접 디자인하고, 3D 프린
터로 자체 제작한 뒤, 온라인 몰에서 판매/마케팅 하는 사람은 어디에 포함될 수 있을까. 이미 융합의 시대에는 들어왔다. 다만 아무도 방향성을 짐작하지 못할 뿐이다. 그 말은 방 향. 즉 주류(Main stream)가 없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믿을 건 나 뿐이
다. 내가 만드는 길. 그것만 있을 뿐이다. Specialty나 General은 모두 비교 대상이나 그
것을 둘러싼 기준이 있을 가능한 단어다. 즉 군중보다 특별하면 Specialty가 되고, 군중과 잘 융화되면 General 한 것이다. 헌데 기준이 되어줄 그 군중집단이 없다. 모두가 개별화
되고, 각자의 방식으로 영역을 부수고 새로 만드는 환경에서 기준 축 자체는 의미가 없다. 개인적인 얘기를 하면 나라는 인간의 융합 키워드는 ‘데이터’와 ‘여행’이다. 지난 20년간 간극이 먼 이 두 단어를 한 몸에 지녀왔다. 이 두 단어를 어떻게 융합시킬지는 지금은 ‘노 아이디어’이다. 그저 풀밭에 길을 내 듯, 한발 한발 걸어갈 뿐이다.
*글쓴이_권근혜 (lynnox78@gmail.com)
현재 백수 / 과거 마케팅리서처 / 쿠바다이어리 저자
사무실에서 드는 생각
만 든 다 오
시시콜콜하고 사소한 가내수공업 고군분투기
#7. 중앙난방 아파트와 코타츠 난방비와 싸우는 계절, 겨울이 왔다. 작년 가을에 이사 온 부산은 서울보다 따뜻하다. 좀처럼 눈이 내리지 않아서 스노우 체인을 파는 곳도 드물 정도 다. 그래도 겨울은 겨울인지라 나는 발이 시렵고 손끝이 얼얼하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키보드를 두드리는 게 내 손가락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감각이 없다. 빼도 박도 못하는 30대, 수족냉증은 비염처럼 내게 들러붙었다. 친해지고 싶지 않았는데, 거스를 수 없었다. 마포구 합정동, 89년도에 지은 3층짜리 빌라에서 나와 그녀는 3번의 겨울을 보냈다. 뜨거운 물을 틀 때마다 펑펑 소리가 나던 10살이 넘은 낡은 보일러는 매달 경이로운 난방비를 선사해주었다. 12평짜리 투룸, 최소 15만원, 최 고치는 23만원. 요즘 걸로 바꾸면 가스비 절반 밖에 안나와요, 보일러 수리를 나온 아저씨가 말했지만, 그게 어디 내 맘대로 되는 일인가. 세입자가 가스비 폭탄을 맞든 말든 집주인은 전혀 관심이 없다.
지금 살고 있는 부산 집은 중앙난방이다. 그 녀와 나 둘 다 어린 시절을 중앙난방인 아파트 에서 보냈으므로 거부감도 없었고, 되려 아파 트니까 더 따뜻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컸다. 여름은 금방 끝이 났고, 겨울은 이르게 찾아 왔다. 바닥은 곧 냉랭하게 차가워졌다. 분명 집안을 걷는데 오래전 학교 복도를 걸었던 일 이 떠올랐다. 바닥에 앉아있는 날에는 엉덩이 는 물론 꼬리뼈까지 시렸다. 그나마 낮에는 거 실 한가득 햇빛이라 따뜻하지만, 그녀가 퇴근 하고 돌아온 밤이 되면 방바닥은 냉골 그 자체 였다. ▲ 겨울이 되면 엘리베이터에 안내문이 붇는다. 자연스럽게 기모와 실내 슬리퍼를 챙기게 되는 날씨임에도 난방에 인색한 우리 아파트.
그래. 관리실에서 난방을 틀어줄 때까지는 기다려보자. 그때 되면 따뜻해질거야.
예상은 보기 좋게 빗겨나갔다. 국가가 정한 적정온도를 보기 좋게 지키는 관공서마냥 웬만큼 춥지 않으면 난방은 하루에 한 번. 그마저도 온기가 돌고 난 오후에는 다시 짜게 식었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 극단의 방책. 나는 코타츠를 만들기로 했다.
▲ 일드 '노다메 칸타빌레'에 나온 코타츠
▲ 에스워머.
일본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보이는 이불을 덮은 탁자형 난방기구 코타츠. 정사각형의 네모난 탁자에 어 딘가 모르게 촌스러운 이불이 덮여져 있고, 사람들은 따뜻하다며 코타츠 밖으로 좀처럼 빠져 나오려고 하지 않는 다. 보는 것만으로도 뜨끈뜨끈할 것만 같은 코타츠가 있다면, 그녀와 함께하는 저녁 시간이 더 즐거우리라. 굳이 코타츠였던 건, 예전 회사에서 유행처럼 번졌던 ‘에스워머’라는 난방기구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손을 데도 화상을 입지 않고, 전력 손실도 적고, 데스크 바로 밑 혹은 다리 쪽에 놔두면 은근히 따뜻했다. 가격은 8만원. 저렴한 가격은 아니다. 히터 바람을 싫어하는 팀장 탓에 하루 종일 손을 호호 불어가며 근무해야했던 그때, 팀장은 “너네도 에스워머 사. 데스크가 따뜻해져서 얼마나 좋은데.”라고 말했다. 지가 사줄 것도 아니면서.
당시에는 악으로 깡으로 버텼다. 하나 둘, 추위를 못견딘 동료들이 결국 구매버튼을 눌렀을 때도, 에스워머를 사 는 게 팀장한테 지는 것만 같았다. 애초에 너무 비싸게 느껴지기도 했고, 허영 가득한 아이템을 서칭해야하는 업무 특성상 내가 얼마나 여기를 더 다니게 될 지도 미지수였다. 결국 꽃이 피기 전에 회사는 퇴사했다. 재수없던 팀장도 안녕, 골방같이 춥던 사무실도 안녕, 에스워머 다시는 보지말자, 할 줄 알았는데, 웬걸? 다시 돌아온 겨울, 사무실이 춥다는 그녀의 말끝에 가장 먼저 생각난 건 에스워머였다. 내가 추운 건 참아도, 사랑하는 사람이 추운건 못참는 나 란 여자 따뜻한 여자. 인터넷으로 지른 에스워머는 택배 기사아저씨의 따뜻한 손을 타고 그녀에게 전해졌다. 그것도 서울에 있을때나 일이다. 부산에 와서 에스워머 는 창고에서 좀처럼 나오지 못했다. 그녀의 회사도 겨울 이면 히터가 짱짱해서 굳이 부피가 큰 에스워머까지 들고 갈 필요는 없었다. 창고에 쳐박혀 있기만은 아까우니 활 용할 수밖에. 새로운 것을 살 필요는 없다. 8만원어치의 값을 그대는 다 하지 못했으니, 이 겨울 한 번 뽕을 뽑아 보자는 자세로 제작에 돌입했다. ▲ 직접 제작한 원목 밥상 밑에 붙였던 에스워머. 고정 브라 켓이 있어서 손쉽게 붙일 수 있다. 떼었다 붙였다도 가능.
집에는 밥상이 있었다. 2년 전 원목을 재단해 와서 밥상 다리만 붙인 것으로, 에스워머를 붙이고도 남을 크기를 자랑한다. 하지만 밥상밑에 바로 붙여보니 문제가 발생했 다. 상다리 높이가 낮았던 것이다. 일반 밥상다리는 30cm가량이다. 아무리 얇다한들 전 열기구다. 5cm는 더 차지하게 될 터. 접이식으로 만들고 싶었으나, 인터넷 철물점 사이트에는 접이식 밥상다리 브 라켓이 35m 넘는 게 없다. 아니 애초에 제작되지 않는 걸 지도 모른다. 결국 35cm 짜리 각재를 주문했다. 목재 주문재단. 그 자체만으로도 일이 늘어나는 의미다. 사포질을 해서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고, 스테인을 칠해서 자연스러운 색을 입히고, 스테인이 다 마르면 바니쉬를 칠해서 코팅한다. 원래 가지고 있었던 900*1200 짜리 밥상에 가공한 목재를 붙인다. 길이가 긴 나사를 3개를 박 을 거긴 하지만, 혹시 모르니 목공용 순간접착제를 사용 해 붙인다. 완성된 탁상 아래에는 S워머를 붙이고, 위에 이불을 두 른다. 이불을 두르려고 했다가 다시 담요로 바꾼다. 바닥
▲ 수성스테인을 바르고, 각재 원목다리를 붙여 새로 탄생한 밥상. 이젠 밥상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테이블이 됐다. 코타 츠를 켜기 위해서 항상 근처에 멀티탭이 있어야만 한다. 다리 가 닿아도 전혀 뜨겁지 않다.
에 질질 끌리는 이불이 훨씬 더 따뜻하긴 하지만, 바닥 먼 지까지 코타츠 안으로 다 쓸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에 담요로 바꿔주었다. 담요 위서 커피나 밥을 먹을
수는 없으니, 상판이 하나 더 필요하다. 900*1200 두께 5T의 얇은 판을 하나 더 준비했다. 마찬가지로 사포질과 스테인과 바니쉬의 과정을 거친다. 목공작업실이라면 껌도 아닐 일이 집에서 하니 일이 크다. 방바닥에 나뒹구는 톱밥 정리할 일이 꿈만 같다. 바닥에 방석을 깔고 앉고 코타츠 안으로 다리를 집어넣는다. 금새 뜨끈뜨끈한 기운이 올라온다. 하지만 그 뿐. 손 끝까지 다시 온기가 도달하려면 꽤 걸린다. 등으로 부는 냉기는 똑같다. 왜 일본에 겨울 실내 방한복인 한펜이 있는 지 몸으로 이해되는 순간. 온돌의 나라 대한민국에서 굳이 나는 왜 코타츠를 쓰고 앉아있어야 하나, 그저 웃음이 나 온다. 하지만 의외의 복병이 있었으니. 코타츠를 애용하는 건 우리 뿐만이 아니었다. 전원 버튼을 켜놓으면 어디선가 나 타나 슬그머니 들어가는 방년 5세 아메리칸 코카스파니엘 여아 단디. 등이 구워지고 있나 싶을 정도로 뜨끈뜨끈한 데도 녀석은 좀처럼 코타츠에서 나오지 않았다. 덩치 큰 녀석이 상밑에 들어가있으면 우리 다리를 넣을 자리가 없 다. 발로 슬쩍 밀어도 모르쇠로 일관하며 꿈쩍도 하지 않는다. 좁은 코타츠 곁다리에서 우리 두 사람의 발가락만 꼬 물거린다. “계절감 확실하네.” 그녀가 말했다. “그러네.” 눈 깜짝할 사이에 연말. 한창의 겨울이 온다.
*글쓴이_오진선(@ss_jinsun) 가내수공업 중독자 / 나노상공인 / 애견인 / 페미니스트 / 레즈비언 가정주부/홍대살다 부산거주 중/ 퀴어여성커뮤니티<언니네달방>운영자 /
체니 사이드
글. 장수양(@condensed_bold)
1. 손가락나비
누군가 내게 손을 내민다고 해서 꼭 잡아야만 하는 건 아니다. 내게는 자유 의지가 있고 상대방 역시 내가 잡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어딘가 자기 손을 놔둘 데가 있지 않겠는가. 나는 손가락나비가 겁나지 않는다. 그들은 집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나보다는 처지가 낫다. 지난주 일요일까지는 내게도 집이 있었다. 나는 유지라는 친구와 함께 살고 있었다. 우리는 거실에 신문지를 깔아놓고 피자를 먹고 있었는데, 경주에 있는 유지의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무슨 일이었는지 유지는 그 길로 경주에 내려가 버렸다. 표정이 심각해서 연유를 묻지도 못했다. ―체니의 신세를 지고 있어. 유지는 가족의 전화를 받을 때마다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그와 아는 사이였으므로 내 이름을 대면 아무도 걱정하지 않았다. 체니의 신세를 지고 있다. 그 말은 조금 이상했다. 사실, 아주 좋은 말도 아니었다.
나는 대학에 다니고 있다. 한국의, 간신히 가난하지 않은 정도의 가정에서 나고 자란 보통의 이십 대와 마찬가지다. 입안에서 굴려 보면 아무것도 의미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는 단어들이 몇 개 있는데 내게는 한국, 보통, 같은 말들이 그렇다. 그 말들이 내게 줄 수 있는 감각은 불투명하고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내게서 아주 가까운 장소에서 상기되는 순간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손가락나비는 내가 혼자있을 때나 유지와 함께 있을 때, 수많은 사람과 같이 있을 때에도 조용히 나타났다. 강의를 하던 교수님이 누군가의 손을 잡고 있기에 주의 깊게 보니 손가락나비였던 적도 있고, 목욕을 하던 도중 화장실의 나란한 타일 바닥이 엄청나게 많은 손가락나비의 날개들로 빼곡하게 들어찬 적도 있다. 손가락나비들은 대개 한 쌍의 손(손바닥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 수 없는 손등 같은 몸체에 다리로 추정되는 손가락이 붙어 있다)으로 이루어져 있다. 간혹 손이 한짝뿐인 개체들도 있다. 처음 유지에게 손가락나비의 생김새에 대해 말했을 때 우리는 그것들을 벌레라고 부르려 했다. 조금의 망설임 후에 유지는 이렇게 말했다. ―왠지, 나비라고 하는 게 좋겠어. 나는 동의했다. 어쩌면 날아다닐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아직까지 날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우리들이 살던 집에 찾아온 것들은 찰나를 머물고 사라졌다. 나는 손가락나비가 이 집에 조금 더 오래 있어도 상관없겠다고 생각했다. 누군가의 손, 그러나 그것이 전부인 작고 부드럽고 섬세한 것이 나쁘지 않았다. 가끔 징그러울 때도 있었지만 사람의 손이 아니라 사람의 손처럼 보이는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니 싫어지지 않았다. 유지는 이렇게 말했다.
―보였으면 싫어했을 거야. 평소처럼 차분한 말투였다. 보이지 않으니 아직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인지 좋아하거나 싫어하기를 결정할 자유가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것뿐인데도 동의를 받은 기분이었다. 손가락나비들은 떼지어 나타나거나 홀로 나타나거나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 그들을 보기 전에 나는 손처럼 생긴 존재가 있다면 탐욕스러울 거라고 생각했다. 가판대 위의 초콜릿을 갖고 싶다면 가장 먼저 움직여야 하는 건 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건 나의 경우였다. 손가락나비들은 놀라울 만큼 그들의 안에 아무것도 품으려 하지 않았다. 그들이 쥘 수 있는 것은 많았지만 오래지 않아 도로 놓았다. 소라를 옮기는 소라게처럼 슬픈 모습으로 기어서 어디론가 사라졌다. 한 쌍을 갖춘 손가락나비의 날개가 어떻게 맞물려 있을까 균열을 들여다 보기도 했다. 사람이라면 손목이 있어야 할 부위였다. 서로 바깥을 향해 뻗은 두 손의 틈으로 눈을 찌푸리게 하는 희고 차가운 빛이 새어나올뿐 완전하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 짝만 있는 개체보다는 두 개의 날개를 갖고서 어떤 손도 잡으려 하지 않고 돌아다니는 손가락나비가 조금 더 완전해 보였다. 손가락의 개수가 서로 달라 균형이 맞지 않는다고 해도.
유지에게 전화가 왔다. ―돌아가려면 시간이 좀 걸려. 차분한 목소리에 수긍해버렸다. 겁나지는 않았다. 나는 계획을 짜고 있었다. 유지가 오기 전까지 집에 들어갈 방법을 찾거나, 집 말고도 머물 만한 다른 장소를 찾아야 한다. 돈과 시간이 충분하다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유지가 보고 싶었다. ―손가락나비의 신세를 지고 있어. 내가 그렇게 말하자 유지는 그래, 하고 기침을 했다. 경주는 지금 추운가. 유지는 잔병이 없었고 매우 건강한 편에 속했다. 멀리 있으니 괜히 이것저것이 불안했다. ―무슨 일인지 물어도 돼? 유지는 잠깐 말이 없었다. ―너 경주에 한 번 올래? 시덥잖은 생각에 퍼뜩 제동이 걸렸다. ―왜 갑자기? ―지금 말고. 언젠가. 유지는 ‘언젠가’ 같은 막연한 말을 자주 쓰지 않았다. 아마도 그가 이 말을 입에 올렸다는 건, 이미 어떤 날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걸 알고 있었기에 나는 명쾌하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아직 우리 가족들 만난 적 없으니까. 꼭 만나야 하는 건 아니지만. ―만났으면 좋겠어? ―아니. 통화 내용은 전부 불분명하고 여전히 유지가 경주에 내려간 이유도 듣지 못했지만 그 대답은 진심이었다. 나는 그가 싫은 것을 나에게 제안해야만 하는 여러 상황들을 가늠해 보았다. ―‘어쩌라는 거야’라고 생각하지?
유지의 목소리에 웃음소리가 섞여 들었다. 나는 농담을 했다. 모두 실패했지만, 통화는 짧은 망설임들이 없었던 것처럼 기분 좋게 마무리되었다.
손가락나비는 유지와 나의 집에 하룻밤 묵어간 이들 중 하나였다. 단 하루였지만 나는 그들이 친밀하고 다정한 얼굴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손가락과 손가락의 사이나 그 시원한 빛이 새는 틈에. 어디든지……그들이 유지와 나에게 호의를 내비쳤다고 나는 믿고 있다. 나는 그들이 보이기에 뭔가를 믿을 수 있지만 유지는 아니다. 그는 항상 태연했지만 나만 아는 것들을 친밀하게 여기기 위해서는 많은 불안들을 모른 척해야 하지 않았을까? 어쩌면 내가 들려주는 이야기들의 불확실함이 그를 쉴 수 있게 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유지의 가족들을 사진으로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상상 속에서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손가락나비는 귀갓길에 다시 나타났다. 앞서가는 사람의 손을 잡고 있었다. 평소라면 모르는 그림을 보듯 지나쳤을 것이다. 낮게 드리운 수은등 불빛이 손가락나비의 잠잠한 맞물림을 밝히고 껐다. 횡단보도에 이르자 사람들이 멈춰섰다. 손가락나비는 언제나처럼 사람의 손을 놓고 이동했다. 생김새 탓에 그의 이동은 꼼꼼하게 만지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한쪽만 있는 손가락나비가 종아리를 타고 한쪽 손을 부여잡는 것까지 그저 관망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좋은 기분이었다. 아무런 의도가 없는 사람의 손이 이런 감촉일 것이다. 시원하여 내게 뭐가 붙어있다는 걸 잊게 한다. 이러한 감촉이 세상에 더 많아도 상관은 없겠다. 그렇게 여기자 곳곳에 지금껏 보지 못하고 지나쳤던 손가락나비가 보였다. 무거워 보이는 한쌍의 날개를 질질 끌고 이동하고 있거나 외쌍이어서 누군가의 모자를 쥐고 있었다. 가로등을 쥐고 있거나 벽 한 켠을 붙든 손가락나비가 보였다. 나는 눈을 깜빡거리며 가만히 뭔가를 쥐고 있는 손가락나비들을 보았다. 간절하지도 태연하지도 않은 그들의 모습은 내가 모르는 기묘한 규칙으로 배치한 것 같았다. 시선 때문이었을까. 그들은 하나 둘씩 내게로 모여들었다. 나는 들어갈 마음도 없으면서 나와 유지의 집을 향해 걷고 있었다. 이윽고 다리와 허벅지까지 손가락나비의 감촉으로 뒤덮였다. 번화가가 끝나기 직전 쇼윈도에 비친 나의 모습은 손으로 이루어진 옷을 입은 것 같았다. 손가락나비들이 내 허리를 둥글게 쥐었다. 이제 쥐었다는 표현은 너무 늦었다. 손가락나비가 가슴과 우묵한 명치, 어깨를 덮었다. 걷는 동안 있는 줄도 몰랐던 오금과 타인의 손을 내어준 적 없는 모든 곳들에도 그들이 있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었대도 지금 이들을 거절할 수는 없을 거다. 그들은 천천히 나의 코를 덮였다. 눈이 하나씩 가려졌다. 눈을 뜨지도 감지도 않은 상태가 되어 걸음을 멈췄다. 감촉이 귀를 감싸고 뚜껑을 닫듯이 정수리를 덮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손가락나비로 이루어진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빈틈이 없어지고 세상에서 보이지 않게끔 되어가고 있었다. 두려운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나는 손가락나비가 자신들의 집으로 나를 초대했다고 생각했다. 피자를 먹던 밤 유지와 나의 집에 손가락나비가 하루 머물었던 것처럼. 그러나 그들의 집은 나의 몸이기도 했다. 언제나 나에게 찰싹 붙어있는 장소인데도 나는 한 번도 이곳에서 자본 적이 없었다. 앞이 보이지 않아 이곳이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별이나 꽃이 바닥에 가득한 검은 하늘을 상상했다. 손가락나비들의 촉감이 내가 본 적 없는 색으로 바뀌어 시야를 가득 채운 듯했다. ―하루만 있다 가도 돼? 허락을 구하듯 나는 말했다. 서서히 눈앞이 맑아졌다. 나의 몸은 놀라울 만큼 내가 그리던 모습이었다. 그리고 아직은 어디로 갈 필요가 없었다.
느낀다 그러므로 나는
(I feel therefore I am)
심리학 논문 해적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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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희경 작가의 [괜찮아 사랑이야]에서 더 좋아하면 약자가 되는 거 아니냐는 이광수에게, 조인성 은 말한다. 더 사랑해서 약자가 되는 게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 약자가 되는 거라고. 내가 준 걸 돌려 받으려는 조바심 탓에. 나는 사랑했고 그러므로 행복하다, 괜찮다, 이게 여유라고. 권력 관계만큼 사람을 이상하게 만드는 것도 비참하게 만드는 것도 드물다. 먹고 살기도 피곤한 세상, 성인기의 가장 친밀한 관계라 할 수 있는 연인 관계 만큼은 ‘갑을’이라는 그 지겨운 언어가 개입하지 않는 오아시스로 남겨두고 싶지만, 망상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오히려 마음이 많이 쓰 이는 관계이므로, 딱 그만큼, 힘의 역학으로 점철되어버리기도 한다. 연구에 따르면 이렇다. 일반적으로는, 관계에 더 헌신(commit)을 하는 파트너가 약자가 되곤 한 다. 자신의 감정을 그 관계에 더 의존시키고 있는 파트너일수록, 대안(alternative)이 더 적은 파트너일수록, 관계로부터 얻는 것이 많은 파트너일수록 약자가 된다. 젠더 또한 권력의 소스가 되기도 하는데, 여성의 경제권 상승으로 차츰 양상이 달라지고 있으나 전통적으로는 남녀 간의 연인 관계에서 남성이 좀더 힘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동성 간의 연인 관 계는 힘의 논리에서 자유로울까 싶지만, 전체 커플의 절반 정도가 힘의 불균형을 보이는 건 이성 커플이나 동성 커플이나 유사하다고 연구들은 보여주는 편이다. 이런 힘의 균형, 혹은 불균형은 시간이 지나도록 지속적으로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고 또한 종단 연구(longitudinal research; 시간에 따른 변화 추이를 관찰하는 종류의 연구)들은 보여준다. 그리고 힘의 균형이 무너진 유대 관계는 결국 흩어진다. 상대적으로 더 낮은 관계 만족감, 더 낮 은 안정감 등이 서서히 관계를 먹어 들어간다. 평등. 거시적인 평등만 중요한 건 아니다.
Caldwell & Peplau, 1984. The balance of power in lesbian relationships. Sprecher & Felmlee, 1997. The balance of power in romantic heterosexual couples over time from “his” and “her” perspectives. Sprecher, Schmeeckle, & Felmlee, 2006. Inequality in emotional involvement in romantic relationships.
글. 민하 : minha@berkeley.edu 재밌는 거 뭐 있나 늘 딴 짓을 하고 싶지만 현업인 심리학을 하는 와중에 재미있게 읽은 논문들을 야매로 소개합니다. 재미는 좋은 거니까, 그리고 이것도 일종의 딴 짓이니까.
의미없는 이야기 글. 그림. 철민
I MB U 3화. 네이버
글. exxx
나는 주진우 기자를 무척 좋아하는데, 그 때문인지 이명박에 대한 그의 집착 또한 일정부분 영향을 받고 있다. 그래서 가만히 있다가도 MB가 생각나고 문득 궁금해 진다. MB는 지금 뭘하고 있을까? 사랑의 감정일까? 호기심일까? 혹은 악의가 잔뜩 뭍어나는 지분거림일까? 아무튼 그렇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와 당신 사이의 MB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내가 MB를 생각한다고 해서 뭐가 바뀌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하다보면 뭔가 될 것 같기도 하고, 만리타향의 누군가도 나와 같이 이런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면 그래도 세상이 조금은 바뀔 것 같은 막연한 환상이 점점 커지는 맛이 좋다. 이와 같은 생각을 하다보면 왠지 가슴이 따뜻해 지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런 삶을 살다보면 문득 MB를 검색해 볼 때가 있다. 얼굴이 궁금한 것도 아니고 소식이 궁금한 것도 아니고 그냥 그 이름을 한번 타이핑 해보는 것이다. 마치 여느 백사장에서 아름다운 계절에 이름 한 번 써보고 파도에 씻겨 나가길 기다리는 것 처럼 그냥 한번 타이핑 해보는 것이다. 이런 검색 활동은 어찌보면 현 세대의 관심 표현 아닌가. 그런 삶을 살다가 또 그의 이름이 실시간 검색어에라도 올라오면 나는 얼른 눌러보고 또 눌러본다. 이 깊은 애정이 사람들에게도 퍼져 그 이름을 두루두루 기억하고 곱씹게 하고 싶은 바람이 있다. 하지만 나의 이런 개인적이고 기괴한 집착과는 달리 네이버의 마음은 다른지 가끔 MB관련 검색어가 실시간 검색에 오르는 날이면 그 등락폭이 다른 키워드 들과는 사뭇 다르다. 사람의 관심이란 것이 혜성처럼 딱! 추락했다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진데, 20위 부터 차근차근 순위가 오르다가도 10위가 되고 8위가 되고 6위가 되어 이제 1위나 2위로 갈까? 하는 그 기대와 흥분이 마음 가득 들어차는 순간. 거짓말 처럼 MB의 순위는 곤두박질 친다. 17위가 된다거나 18위가 된다거나 하면서 뚝 떨어지고만다. (실시간 트렌드를 몇번 추적해 봤는데 이런 일은 꽤 자주 일어난다.) 이와 비슷하게 아드님의 이름이 프로필에서 사라지기도 했었고... (호부호형 이라는 인문학적 시그날의 미학을 아는 분인가..)
뉴스를 소비하는 시간에 갑자기 곤두박질 치지만 불사조 처럼 살아나는 저 기이한 그래프를 보라
왜 그런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누군가 ‘나만 알고 싶은 MB!’ ‘MB는 나만 관심있어 할테야!’ 라고 하면서 남들 모르게 그의 흔적을 지우는 것일까? 그렇지 않고서는 추세선과 무관하게 곤두박질 치는 그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믿을 수가 없다. 최근의 뉴스에 따르면 네이버가 프로축구연맹의 청탁을 받고 기사를 숨긴 일이 있다고 하는데 그와 비슷한 무엇일까? 아니면 그저 나만 알고 싶다는 직원 개인의 일탈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흔한 일인데 나 혼자 호들갑을 떠는 것일까. 나는 좀 궁금하다. 만약 그것이 고의가 뭍어난 결과라면 뉴스의 공공재의 성격과 더불어 포탈의 공공재 적인 면을 감안했을때 이 공공재의 균형을 흐트리는 ( 침해하는) 누군가가 있다는 말인데, 이때는 나와 당신 사이의 MB에 대해서 생각해 볼만한 여지가 있지 않을까? 오늘 나와 당신 사이의 MB는 공공재의 균형을 흐트리는 MB에 대한 사랑 혹은 배려를 이야기 하려고 한다. 나와 달리 당신은 MB를 떠올리기 싫다고 하더라도 한번 쯤 생각해보자. 우리 사이에 그를 두었을 때, 어떤 공공재 혹은 공공의 지점들이 있는지 그리고 그 가운데 과거 대통령 이었던 MB는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말이다. 그것이 아주 좋은 추억은 아닐 것이다. 그러니 조금 기분이 좋아 질 수 있게 초콜렛이라도 먹으면서 생각해보자. 잊거나 도외시 하지 말고 기분 좋은 계기를 곁들이면서 함께 곱씹어보자. 이제 그를 밖에서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말이 자주 들려오니 있을 때 생각해보자는 것이다. 만약 그가 포토라인에 서면 나도 그를 놓아주련다. 그때는 내가 백 번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단숨에 보게 될테니...
3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