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이리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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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입니다. 도토루의 하루 / 그림. 호지 영화 리뷰: 두번 본 영화 - 부산행 (2016) / 글. 가람 백림서신 - 08. 그곳 / 글. composer B 글로 배우는 그림도구 - 색연필 / 글. 사탕고양 사무실에서 드는 생각 - 05. 당신의 연말은 따뜻한가요? / 글. 권근혜 만든다오 - 08. 침묵의 석고 방향제 / 글. 사진. 진선 체니사이드 - 02. 농담 上 / 글. 사진. 장수양 느낀다 그러므로 나는 -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당신 마음에 비친 내 모습, 내 마음에 비친 당신 모습. / 글. 사진. 민하 의미 없는 이야기 / 그림. 글. 철민 I MB U 4화. 명박산성 / 글. EXXX


연말이 되었습니다. 벌써 눈도 여러번 내렸으니 겨울이 맞겠지요. 저는 요즘 게으름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정말 부지런하게 살았다면 하는 후회가 드는 것은 아니지만 책은 좀 읽었어야 했던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2주. 이 말을 하고도 한 권도 다 못 읽겠지 만 한 번 펼쳐보긴 하려고 합니다. 그래도 연말에 책 읽으라는 건 좀 빡빡하죠. 적당히 즐기세요. 2018년에도 각자에게 좋은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시길 바라며 이만 줄입니다.

PS. 개인 사정으로 잠시 연재를 중단하시는 가람님에게 깊은 감사와 좋은 결과를 기 원합니다. 화이팅

월간이리 exxx 드림

공식트위터 @postyri




영화리뷰 : 두번 본 영화 부산행 (2016) 감독 연상호

외국인들에게 유난히 인기가 좋은 한국 영화는 역시 호러 장르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시아 영 화에 대한 비아시아 대중의 관심이 지대하게 쏟아진 가장 큰 계기가 일본의 호러영화였던 영향 이 있겠지요. 최근 해외 대중들에게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던 한국의 공포영화는 단연 부산행 (2016) 일 것입니다. 영화는 개봉 직후부터 국내외에서 호평을 받았죠. 그동안 해외에서 주목받 았던 동양적 귀신영화가 아닌 외국의 좀비 장르를 차용한 공포 영화인 점이 독특합니다.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의 평론가 별점들을 살펴보면 5개 만점에 3.5/4점이 가장 많았습니다. 개인적으로 부산행 보기를 미루고 미루고 또 미뤘던 것은 포스터와 캐릭터 설정에서 풍기는 고 질적인 한국형 신파의 냄새때문입니다. 물론 한국 상업영화에서 신파를 배제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지요. 당장에 역대 한국영화 박스오피스 순위 차트만 보더라도 그 이유를 알 수 있 습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한국 상업영화의 핵심은 신파의 유무가 아닌 신파를 어떻게 풀어가 느냐라고 생각합니다. 영화 부산행은 캐릭터 설정부터 장면 연출까지 신파의 공식을 교과서적 으로 답습한 사례라고 생각합니다. 영화의 마지막에 석우(공유)가 죽는 장면에선 절정으로 치닫 죠. 성공적 탈출을 코앞에 두고 좀비 바이러스에 감염된 아빠, 자신을 위해 떠나려는 아빠에게 가지말라며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아이. 상황과 대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아이의 눈물과 함께 시 작되는 그 음악과, 감염이 진행되면서 딸이 탄생하는 순간을 회상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연출한 방식들을 보면 아이고.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연상호 감독의 돼지의 왕 (2011), 사이비 (2013) 같은 작품을 돌이켜봤을 때 부산행의 마무리는 너무나 아쉽습니다. 첫 장편 영화에 거대 제작 비가 투자되었으니. 감독이 포기해야할 것이 당연히 있었겠지만 너무 큰 걸 내어준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영화의 마지막 석우의 죽음 장면만 제외하면 훌륭한 좀비 장르의 조건을 가졌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감염의 재앙이 시작된 이후부터 주인공들이 좀비떼로부터 벗어나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영 화의 엄청난 속도감은 보는 내내 ‘심장이 쫄깃’해지는 게 바로 이런 기분이구나를 느끼게 해줍니 다. 전통적인 좀비들과는 다르게 달리는 속도와 힘이 엄청나죠. 한정된 공간에서 마치 곤충떼가 습격하듯 몰려드는 좀비들의 움직임은 관객들을 공포에 떨게 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입 니다. 기존의 할리우드 좀비 영화들이 바이러스 출몰 이후 며칠, 몇주간의 과정을 보여주며 인간 군상을 드러내는 반면, 부산행은 바이러스가 시작된 첫 날, 반나절 정도에만 집중합니다. 공간도 기차와 역을 벗어나지 않죠. 이런 제한들은 한국형 좀비물을 만들기 위해 선택한 아주 영리한 설 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할리우드 영화들처럼 총으로 좀비들을 쏠 수 없는 것은 물론, 워킹 데 드처럼 시체들을 칼로 쑤시거나 뎅강 썰며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80억 들인 한국 상업영 화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말이지요. 그 짧은 영화적 순간 속에서도 현재 한국 사회에 대한 반영을 충실히 하고 있는 것도 인상적이 었습니다. 특히 아직까지 사회적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세월호 참사를 반영한 듯한 고등학교 야 구부 학생들의 등장과 죽음의 과정은 묵직한 울림을 줍니다. 특히 영국(최우식)과 진희(안소희) 의 마지막 장면에서, 영국이 죽은 진희를 안고 ‘미안하다’ 외치는 장면이 참 먹먹합니다.. 대한민 국 특권 계급으로 대표되는 김의성 배우의 용석 역이 보여주는 이기주의, 재난이 닥쳤을 때 절 박함과 불안함으로 괴물보다 무섭게 변하는 군중들의 모습은, 비슷한 상황이 등장하는 다른 영 화들과 크게 다를 것은 없어도 2010년대를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 누릅니다. 최근 한국영화에서 신파만큼이나 고질적 문제로 꼽히는 것은 영화 속 여성 캐릭터의 사용입니


다. 개인적으로 모든 캐릭터들의 성격과 존재여부는 이야기와 감독의 특성(성향, 취향, 능력 등) 에 따라서 결정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든 영화들이 의무적으로 여성캐릭터를 포함해야 하거나 의무감을 가지고 적극적인 여성 캐릭터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예로, 류 승완 감독은 2008년, 자신의 책을 통해 ‘나는 여성의 정서와 심리상태를 잘 모른다’고 솔직하 게 고백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는 여성이 부재하거나 그래도 한 명 쯤은 필요해서 등장하는 듯한 여성 캐릭터들이 종종 보입니다. 베테랑(2015)의 미스 봉(장윤주) 같은 캐릭터가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캐릭터의 존재 이유와 목적에 맞는 캐스팅, 연기 연출 덕 분에 영화를 보는데 구태여 거슬릴 것이 없습니다. 다른 예로, 홍상수 감독은 자신의 많은 영화 에서 여성 캐릭터들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으로 그립니다. 이는 여성에 대한 감독 자신 의 이해를 반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죠. 부산행을 보면서 짐작은 했지만, 이후에 찾아보니 역시나 여성 캐릭터가 수동적이라는 비판 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한 감독의 반응이 궁금해 찾아보니 이런 아래와 같은 인터뷰를 읽게 됐 는데요.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여성 캐릭터가 액션을 하지 않기 때문인가? 싶었다. 여기서 성경(정유미 분)이나 수안(김수안 분), 진희(안소희 분)까지 대단히 적극적이다. 육체적 으로 떨어질 뿐이지 다른 사람을 구한다든가 하는 면에서 가장 적극적인 인물이 성경인데다… 수안은 좋은 방향으로 사람들을 이끌기도 하고, 아빠를 기차 위로 끌어올리려 한다. 마지막 신 도 수안이 구출됐다는 게 아니라, 스스로를 구원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 (2016.7.28 연상호 “<부산행>, 원래는 다른 스토리였다” 오마이뉴스)

감독의 의도가 이런 것이었다면, 저는 감독의 캐릭터 설정과 연출이 그다지 훌륭하지 않았다 말하고 싶습니다. 감독의 말처럼 영화 속 여자 캐릭터들은 나름의 노력들을 합니다. 진희는 15 호 칸에서 유일하게 생존자들을 들어오게 해야한다 주장하는 인물이며, 성경(정유미)은 누군가 위험에 빠질 때마다 남편인 상화(마동석)을 부추겨 구하도록 하거나, 본인이 직접 넘어진 사람


들을 도와주려 애씁니다. 수안(김수안)도 아빠 석우의 ‘자기만 아는 태도’를 나무라며 변화시키 는 인물이죠. 하지만 부산행의 모든 주요 여성들 캐릭터들은 사회적 약자들로’만’ 구성되어 있습 니다. 노인(인길/종길 자매), 미성년자(진희 역. 소희), 임산부(성경 역. 정유미), 아이 (수안 역, 김 수안). 때문에 이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애초에 제한되어 있습니다. 진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15 호칸 사람들이 문을 막고있을 때 등을 콩콩 때리며 사람들을 성가시게 하는 정도이고요. 성경이 할 수 있는 일은 노인들과 수안을 부축하며 도망가는 일이 다입니다. 감독의 말대로 수안은 석 우를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중요한 존재이지만, 애초부터 수안의 캐릭터가 오직 석우에게 교훈 을 주기위해서 이 세계에 존재한다는 느낌도 듭니다. 감독의 의도가 캐릭터들을 통해 여성의 적 극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거라면, 이다지도 ‘적극적인 인물’들에게 신체적 제약을 부여한 이유가 무엇인지 덧붙여 묻고 싶어집니다.

많은 영화들이 그렇듯, 부산행은 영화적 장단점이 한데 섞여있습니다. 하지만 부산행에서 아쉬 운 점은 그 장점과 단점의 간극이 너무 큰 것입니다. 초반부터 끌어온 긴장감, 박진감이 아무리 좋았다 한들 영화의 마지막에서 너무나도 형식화된, 신파의 끝을 보여줌으로써 영화를 다 본 후 에는 허탈감이 듭니다. 연기도 좀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개인적으로 배우 공유의 로맨틱 코메디 (커피프린스 1호점/ 2007), 액션(용의자/ 2013), 멜로(남과 여/ 2013) 연기를 아주 좋아하는데 부 산행에서의 연기는 전작들에 비해 돋보이지 않습다. 아주 자잘한 것이지만 인길/종길 할머니 역 의 분장과 코스튬이 연극적이라 혹은 TV 재연드라마에서 볼법한 모습이라 조금 당황스럽고 볼 때마다 몰입을 깨기도 했습니다. 의미심장한 메시지들을 모두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하고있는 점도 영화적으로 아쉬운 부분입니다. 담고자하는 메시지는 좋았지만 얼마나 영화적으로 표현됐 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글. 가람

akakk_@naver.com


백 림 서 신

伯 林 書 信

Composer B

08. 그곳

잘 지냈어? 독일은 한국보다도 먼저 겨울이 찾아왔지만, 이곳 베를린에 아직 눈은 오지 않았어. 남부 도시인 뮌헨에는 꽤 많은 양의 눈이 내렸다고 하는데, 베를린에는 산도 없고, 공기도 그다지 차갑지가 않아서 그런가? 뭐 어차피 내가 이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눈은 결국 올 것이고, 그러면 이 어수선한 회색빛 도시의 풍경도 조금은 달라지겠지. 내가 방금 ‘회색빛’이라는 말을 했지? 베를린은 한 나라의 수도인 만큼 독일의 다른 도시들에 고층 건물이나 새로 지은 건물들이 많아. 하지만 서울에 비할 바는 아니야. 독일은 한국과는 다르게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기존의 건물을 허물고 새 건물을 올리는 일이 적은 것 같아. 현실적인 이유도 있겠지만, 독일인들은 사는 데에 큰 지장이 없다면 건물이 오래됐든, 나무 계단이 삐걱거리든 오래된 건물에 굳이 손을 대지 않는 편인 것 같아. 특히 옛 동베를린 지역을 비롯한 일부 노후지역은 그 경향이 심해서 한국에 비하면 낡고 칙칙한 건물들이 즐비해. 아마 사람들은 ‘ 최근에 지어진 건물은 삭막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겠지만, 베를린은 딱히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아. 독일사람들은 건물을 분류할 때 ‘새 건물(Neubau)’과 ‘오래된 건물(Altbau)’로 나누는 경향이 있어. 분류에는 구조나 건축방법도 기준이 되기는 하지만 대부분 건축 년도가 1950년 이전인지 이후인지를 따져서 구분 하곤해. 지금 내가 사는 집은 1975년에 지어진 아파트이기 때문에 독일인들은 ‘노이바우’라고 부르지만, 아마 한국 이었더라면 재건축과 재개발을 겪으면서 건물이 지금까지 남아 있지도 않았을거야. 베를린처럼 2차 세계대전의 포화를 직접 맞은 도시도 이 정도인데, 다른 도시의 건물들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그래서 그럴까? 독일에는 과거의 유명인들이 살았던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주소만 알면 그 건물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경우가 많아. 그래서 이런 장소들을 모아 놓은 책도 따로 있을 정도야.


<Wer lebt wo in Berlin(누가 베를린의 어디에 살았나?) : 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가 살던 곳을 설명한 페이지>

한국에도 이런 곳들이 많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보다 많이 남아있었더라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문화 컨텐츠를 뒷받침해주고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기회가 훨씬 풍성해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들거든. 꼭 위대한 인물들이나 역사적 사건이 있던 건물이 아니더라도 좋아. 홍대 인근을 드나들다 보면 자주 다니던 카페나 식당이 몇 년을 버티지 못하고 없어지거나, 그 자리에 아예 새 건물이 들어서는 경우가 많이 있잖아? 그럴 때면 ‘그냥 자주 가던 가게 하나 없어졌으니 새로운 곳을 찾지 뭐’ 하는 생각보다는, 우선 마음이 허전해지는 걸 견디기가 힘들어. 그리고 한동안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그 곳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나눴던 이야기 그리고 겪었던 일들을 천천히 추억해 보곤 해. 지난 여름, 한국에 다녀갔을 때에도 어김없이 그런 일이 있었어. 동교동 삼거리 대동모피 뒷골목에 있었던 카페 ‘생선캠프’는 내가 홍대 인근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디기 시작할 무렵인 2013년 12월에 목적지 삼아 찾아갔던 곳이야. 그 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났고, 또 그곳을 베이스캠프 삼았던 덕분에 인근의 골목길을 마음 놓고 구석구석 돌아다닐 수 있었거든. 그 카페는 1년쯤 후에 주인이 바뀌면서 ‘금성’이라는 이름의 카페로 바뀌었고 지금은 그 자리에 4 층짜리 새 건물이 들어섰어. 한창 공사가 진행되던 그 자리에서 또 그렇게 멍하니 서있었던 기억이 난다. 또다른 한 군데는 홍대입구역 3번 출구 맞은 편 건물 2층에 있었던 ‘나인당케(NEIN DANKE)’라는 카페야. 커피 맛은 별 특별할 게 없었지만, 묘하게 빈티지스러운 구석이 있는 인테리어와 경의선 숲길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창가쪽 자리가 인상적인 곳이었어. 아이러니하게도 홍대에서 가장 번잡한 장소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꽤 조용한 곳이라서 생각을 정리하거나 마냥 쉬고 싶을때 자주 갔던 곳이야. 너무 조용해서 그랬을까? 아쉽게도 지금은 없어져 버렸지만 말이야. 그렇게 사라진 공간 앞에 멍하니 서있으면, 나의 눈 앞에는 카페를 들락거리던 몇 년 전의 내 모습이 보이기도 하고 함께


이곳에 놀러 왔던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 지나가기도 하고, 그때 이 곳에서 들었던 음악들이 들려 오기도 해. 그렇게 몇몇 곳들이 없어지고 나서 나는 몇 군데의 단골 카페를 다시 만들(?)었고, 그 중 한 곳을 제외하면 다행히 지금까지 잘 버텨주고 있어. 앞으로 나는 몇 번이나 더, 문을 닫거나 없어진 건물의 흔적 앞에서 멍하니 과거를 추억하게 될까? 부디 앞으로는 그런 일이 없거나 적었으면 좋겠지만, 그게 나 혼자만의 의지나 바람으로 되는 것만은 아니다 보니 단골로 삼고 싶은 집이 생겨도 우선 마음부터 졸일 수 밖에 없네. 10년 혹은 20년 후에도, 같은 골목에서 저녁이면 오렌지색 불을 켜놓고 늘 조용하게 나를 맞아주는 곳이 있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그 곳에서 알게 된 사람들과 처음 그 곳에 갔던 때를 오래 추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 아, 그리고 오늘부터 편지를 읽으면서 듣기 좋은 음악을 함께 보낼게. 같이 음악을 틀어 놓고 얘기하면 참 좋겠지만, 그렇게 하기는 힘드니까 QR코드를 스캔해서 음악을 들으며 편지를 읽으면 어떨까 싶어서. 오늘은 한국의 탱고 밴드인 ‘라 벤타나(La Ventana)’가 연주한 <El dia que me quieras>를 보낼게. 내가 밤 산책을 다닐 때면 늘 듣는 곡이야. 이 음악을 들으며 밤 산책을 다니면, 좁은 골목에서 나를 맞아주는 오렌지 색 등불을 켜놓은 카페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거든. 말이 길어졌다. 또 편지할게.

라 벤타나(La Ventana)’가 연주한 <El dia que me quieras>


글로 배우는 그림 도구

색연필 가지런히 놓여있는 색연필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색이 많을수록 기분도 업 되기에 색연필은 최대한 많은 색을 사게 된다. 어떤 인테리어 디자이너는 벽 한쪽에 수백 개의 색연필을 색 순서대로 나열해 놓기도 했다. 어릴 땐 24색이나 48색 세트를 사는 것이 고작이었으니 돈이 있다면 120색이나 150색 세트 등 제일 많은 색이 들어있는 세트를 산다. 물론 세트의 색 대부분을 쓰지 않게 되리란 건 알고 있다.

유치원생부터 노인까지 쓰는 그림도구, 색연필 색연필은 다루기 쉽고 사용방법이 직관적이라 쉽게 접하고 사용한다. 수채물감보다 더 넓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 그림도구라 생각된다. 그림도구가 아닌 문구용까지 포함하면 아마도 다른 그림도구 전부를 포함한 정도의 규모가 아닐까.


폭넓게 사용하기에 한 세트에 1~2천 원 하는 색연필부터 20색에 9만원 하는 고가 색연필까지 있다. 이름은 연필이지만 심에 흑연이 들어있지는 않다. 색연필은 안료와 왁스를 뭉쳐 심을 만들었다. 일종의 연필처럼 생긴 크레용이다. 실제로 색연필을 크레용 펜슬이라 부르는 나라도 있다. 색연필 심은 안료와 왁스를 뭉쳐서 만들기는 하나 이 왁스는 회사마다 조금씩 다른 것을 쓴다 어떤 왁스를 쓰느냐에 따라 느낌과 성능이 달라진다. 왁스 성질에 따라서도 구분되는데 왁스가 유성이면 유성색연필이고, 물에 녹는 수성이면 수성색연필 혹은 수채색연필이다. 유성색연필은 같은 브랜드 같은 등급 수성색연필에 비해 색이 좀 더 진하고 더 부드럽다. 색연필 그대로의 기법을 사용하려면 유성색연필이 좋다. 수성색연필은 물에 녹기에 수채화처럼도 그릴 수 있는 등, 다양한 기법을 사용할 수 있다. 보통은 물에 녹이는 기법을 잘 쓰지 않기에 색연필을 산다면 유성색연필을 추천하는 편이다. 스케치용이라면 애니메이션 색연필을 추천한다. 지우개에 지워지는 색연필이다. 옛날 복사기에서는 연한 색연필로 쓴 글이나 그림이 복사가 안 되기에 색연필로 스케치하고 펜화를 그려 복사하면 잉크 선만 남아 애니메이션을 제작할 때 많이 쓰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색연필의 단점 색연필의 단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강한 필압 이 필요하단 점. 하나는 내광성. 색연필을 일정 이상 진하게 칠하려면 필압을 주면서 촘촘히 칠해야 한다. 종이 결이 보이며 하얗게 되는 것은 색연필 차이라 기보다는 기술 차이다. 방법만 알면 진하고 매끈하게 칠할 수 있다. 색연필 자체가 연해도 일단 종이 결 이 안 보이게 칠할 수 있다. 그래서 색연필 화를 오 랜 기간 그리다 보면 손목이 아파오기 시작한다. 손 목 통증으로 색연필에서 오일파스텔로 넘어가는 작 가도 있을 정도다. 그리고 내광성. 색연필은 수채화와 함께 내광성이 낮아 밝은 곳에 오래두면 색이 연해지는 그림도구 중 하나다. 수채화가 다른 그림도구에 비해 내광성이 낮은 이유는 안료가 연하게 그리고 얇게 발리기 때문 인데 색연필 또한 같은 이유다. 그래도 안료 기술 발전으로 전문가용 색연필의 내광성은 크게 올랐다. 전문 가용 색연필에는 내광성 표시가 있다. 보통 별표로 되어 있는데 세 개는 최고 내광성 두 개는 보통, 한 개는 낮은 내광성이다. 안료 기술이 발달했다 해도 내광성 등급 I, II만으로 세트를 구성하면 색이 한정되기에 저 조건에 부합하는 색연필 세트는 단 하나밖에 없다.

색연필의 역사 색연필의 역사를 올라가면 크레용과 만난다. 앞서 말햇듯, 색연필은 나무 몸체 안에 크레용 심이 들어있는 연필이다. 크레용의 역사는 확실하지 않지만 고대 그리스에서 밀납에 색소를 섞어 만들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집트와 로마에서도 밀납 크레용을 사용했다 전해진다. 인간이 벌을 키운 역사가 5~6천 년 전부터라고 하 니 크레용의 역사도 그만큼 오래됐을지도 모른다. 지금과 같은 형태의 색연필은 19세기에 들어서 나타났다. 독일 회사 스테들러는 1834년, 연필에 흑연 심 대신에 가느다란 크레용을 넣어 만든 색연필을 출시했다. 색연필은 색이 있어 스케치에 쓰면 구분하기 쉽 다는 점 때문에 보조적인 용도로 쓰였다. 물론 거의 지워지지 않았지만 스케치가 익숙하다면 그 점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안료가 많이 넣고 진하고 부드러워 덧칠이 가능해 미술용으로 적합한 성능의 색연필은 20세기나 돼야 나 온다. 이쯤에서 크레용과 색연필의 길이 크게 나뉜듯 하다. 1908년에 파버카스텔이 예술가를 위한 60색 색연필을 만들었다. 이어 1924년에 까렌다쉬가 전문가급 색연필을 출시했다. 수성색연필은 1930년대에 나왔는데 베롤, 더웬트, 프로그레소, 리라, 블릭, 까렌다쉬 등 여러 제조사가 자신들이 최초의 수채색연필 을 발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색연필의 기본 기법 크로스햇칭 색연필의 기본적 기법은 크로스햇칭이다. 크로스햇칭은 펜화에서 많이 쓰이는 기법인데 빗금을 여러 각도로 그어 선을 중첩함으로 명암의 단계를 만드는 방법이다. 색연필에서 크로스햇칭이 쓰이는 이유는 덧칠과 혼색 때문이다. 색연필은 혼색이 거의 안되는 편이다. 덧칠은 아주 부드러운 전문가용 색연필이라야 몇 겹으로 칠할 수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전문가용 색연필이 아니라면 두세 겹 정도가 한계다. 색을 더 올리려면 칠해지지 않고 미끄러진다. 색연필 대부분이 반투명한 편이라 덧칠하면 혼색 효과가 있긴 하지만 색이 탁해진다. 이 두 가지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크로스햇칭이다. 종이에 선을 그으면 색연필이 지나간 종이 표면 전체에 안료가 칠해져있는듯 보이나 실제로는 종이 요철 한쪽 방향에 주로 올려져 있다. 그래서 더욱 진하게 칠하려면 여러 방향으로 칠해야 한다.


이걸 응용해 한 색은 한 방향으로 약간의 간격을 두며 선을 긋고 다른 색은 다른 각도로 선을 그으면 덧칠이 잘 되지 않는 색연필도 여러 색을 덧칠할 수 있으며 병치혼합의 효과로 색이 덜 탁해지며 색 혼합 효과도 생긴다. 이 방법이라면 비싼 전문가급 색연필이 아니라도 덧칠과 혼색이 가능해진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했지만 요즘은 이 방법으로 색연필 채색을 하는 사람이 별로 없긴 하다. 요즘은 옛날과 달리 부드러운 전문가용 색연필이 많이 나와 크로스햇칭 없이도 덧칠이 수월해서다. 그래도 저가 색연필로 그린다면 이 기법을 쓰면 색 표현의 폭이 넓어진다.

블렌딩 기법 색연필은 기본적으로 혼색이 잘 되지 않는다. 기본적으 로 혼색이 잘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다른 방법으로 된다는 이야기다. 수채색연필이 물에 녹기에 다른 색 을 그은 다음에 물에 녹이면 서로 녹는다는 건 다들 잘 알고 있다. 이 방법을 이용해 색연필의 거친 느낌을 없 애고 매끈한 질감의 작품으로 만들 수 있다.크릭 잉크 는 딥펜으로도 사용할 수 있고 맑은 수채화 느낌의 그 림을 그릴 수 있다. 이런 기법이 유성색연필은 안될 것 같지만 유성색연필 도 되긴 하다. 유성색연필은 기름 성질을 가지고 있어 물이 아니라 기름에 녹는다. 아세톤, 테레핀, 스피릿 등 을 면봉으로 찍어 문지르면 수채색연필과 비슷한 효과 를 만들 수 있다. 물론 콩기름도 된다. 수채색연필처럼 극적인 변화는 없지만 거의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진한 색상과 결합해 매끄러운 질감은 색연필을 그대로 쓸 때와는 다른 효과를 부여한다. 물보다 기름을 쓰는 건 쉽지 않다. 일단 기름부터 사야하기도 하거니와 냄새도 있고 빨리 마르지 않는 편이다. 편 하게 쓸 수 있게 나온 것이 블렌더다. 안료를 넣지 않고 미디엄만 들어있는 무색 연필이다. 이걸로 칠한 색연필 선 을 문지르면 안료가 펴지며 매끈하게 된다. 블렌더를 쓰면 덧칠은 힘들어진다. 흰색 색연필을 블렌더연필처럼 사용 할 수도 있다. 약간 밝아짐과 동시에 블렌더의 효과가 나온다. 빠르고 편하게 쓰려면 0번 마카를 쓸 수 있다. 원 래 마카 블랜딩을 위해 만들어졌지만 유성색연필도 잘 녹인다.


글 사탕고양 제 블로그(soulcreator.blog.me)에 저의 그림 도구 덕질을 올리고 있습니다. 일러스트레이션에 관심

있으시면

팟캐스트인

일팟을

들어주세요.

팟빵과 팟캐스트에서 일팟이라 검색하면 나옵니다.


#5. 당신의 연말은 따뜻한가요? “언니, 혹시 주변에 보고서 쓸만한 사람 없어요?” 리서치 회사 팀장으로 있는 학교 후배가 평소와 다른 다급한 목소리로 묻는다.

“야, 나 지금 하고 있는 것도 안 끝나서 죽을 맛이야. 이미 거절한 데가 5곳이 넘는다”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옛 회사의 부장님에게 물어봤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바야흐로 마 감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 모든 프로젝트가 그렇듯 리서치도 마감이 있다. 연간 track-

ing 프로젝트라면 연말에 1년치 데이터를 담은 full 보고서가 나가야 하고, 가을이나 초 겨울에 시작한 프로젝트는 대부분 12월 이내 마감을 목표로 한다. 다른 시기와 달리 12월

마감의 프로젝트는 연내 예산처리 때문에 그 일정을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

다. 예산처리를 위해서라도 결과물이 있어야 하고, 이 때문에 12월 안에 무조건 보고서가 나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일정대로 가는 것은 없다. 셋업은 지연되고,

고객사 컨펌은 늦고, 예기치 못한 이슈는 발생한다. 이것이 몇 번 반복되면, 분명 여유로 운 연말을 계획했던 12월은 월초부터 내달려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된다.

입사, 퇴사, 여행을 반복해온 나는 안정적인 연말을 보낸 적이 별로 없다. 회사에 있을 때에는 프로젝트로 정신이 없었고, 책을 출간했던 2년 전에는 인쇄가 예상대로 나오지 않

아 200권을 파기하고 다시 찍는 난리를 피웠다. 특히 작년은 몸과 마음의 가장 밑바닥을 경험한 연말이었다.

작년에 나는 리서치회사의 팀장으로 근무했었다 생애 첫 팀장을 맡았던 나에게 글로벌 회

사 팀장의 to do lists는 너무나 생경한 것들이었다. 특히 마감시즌이 되니 복잡한 행정

처리의 세계가 시작되었다. 일단 팀 매출이 연 내에 잡히도록 회사 내부 시스템에 등록을

해야 하는데 그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프로젝트가 지연되다 보면 완료날짜가 다음 년 도로 넘어가게 되는데, 그렇게 되면 자동으로 팀 매출 일부가 내년으로 잡히게 된다. 이

는 팀과 본부의 당해 년도 목표에 미달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결과적으로 본부장과 그 윗 선 임원라인들의 KPI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게 된다. 한마디로 매출에 미달하는 사태는 발 생해서 안 되는 일인 것이다. 이러다 보니 회사 시스템에 연내 완료로 등록하는 게 최 중

요 우선순위가 되는 것이다. 결국 나는 프로젝트가 모두 올해 안 완료로 일정이 등록 되 도록 몇 번을 접속하면서 확인을 한다. (글로벌 시스템이라 한번 접속하는데 3분씩 걸리

는 그 느려터진 시스템을!) 보통 동시에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6~7개는 되니까 이 과정을 6~7번을 반복하고 다시 보며 실수가 없도록 해야 한다.

이게 전부는 아니다. 연말 팀원 평가를 해야 한다. 팀장의 팀원 평가는 윗선에 보고 되

고, 팀원 개개인의 KPI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특히 진급을 앞두고

있는 팀원의 경우는 더욱 신중해야 한다. 평가결과로 진급이 누락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


이다. 물론 나의 boss가 나를 평가하기 위한 근거를 제공하기 위해 나의 성과도 기술한 다. 이 과정에서 업무성과를 수치적으로도 계산하고 나의 감상적 멘트도 포함해야 한다.

이 와중에 프로젝트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쯤이면 대부분 막바지로 가기 때문에 고객 사의 요구사항이 모두 나에게로 집중된다. 즉 과장이나 대리가 처리할 실무적인 것은 거 의 끝난 뒤이고, 결론이나 보고서 퀄리티 보강에 대한 요구들인 것이다. 물론 고객사와

논의한 뒤 과장과 대리에게 가이드를 줄 수는 있지만, 최종적으로는 결국 내가 꼼꼼히 보 고 다듬어야 한다.

이러는 동시에 부서의 송년회식, 사장임원단 주최의 팀장급 연말 미팅 등 회사 차원에서 열리는 연말 행사들이 줄줄이 이어진다. 정말 숨도 쉴 수 없는 나날들이다.

그로부터 두 달 전인 10월. 설명할 수 없는 무기력에 출근이 힘들었던 어느 월요일. 평소

와 다른 무거움을 느낀 나는 오후에 급히 반차를 내고 마치 누가 등을 떠민 듯 급하게 신

경정신과를 찾았다. 2시간의 검사 뒤, 심각하게 위태로운 상태이므로 절대적인 심신의 안

정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진단과 반드시 챙겨 먹으라는 약 처방전을 들고 나왔다. 그 이후 로 먹지 않으면 바로 증상이 나타나는 흰 알약, 그리고 두려움에 급히 구비한 비타민영양

제와 홍삼으로 두 달을 버티며 12월을 맞이했다. 프로젝트만 잘 마무리하면 될 줄 알았었 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팀장이 아니었을 때의 생각이었다. 글로벌 회사의 복잡하고 불친

절한 마감관련 행정처리 과정에서 난 쓰나미에 떠밀리 듯 휘청거렸고, 결국 두 발로 똑바 로 걷기도 힘든 상태에 이르렀다. 결국 난 전사송년파티 날. 팀원들이 열심히 준비한 공

연을 뒤로하고 택시를 불러 집으로 간신히 들어왔다. 거의 기다시피 해 들어온 싸늘한 방 에서 난 외투도 벗지 못한 채 이불을 감싸고 내내 잤다. 한 시간쯤 가는 숨을 내쉰 것 같

다. 그러다 깨고 나니 따뜻한 게 먹고 싶어졌다. 들어오면 서 간신히 사 온, 집 앞 파스 타 가게의 크림 리조또를 앞니로 꼭꼭 씹어 먹었다. 그리고 다시 내내 잤다.

그 이후 나는 회사로 돌아가지 않았다. 1월부터 휴직이었지만 12월 남은 기간도 재택근 무를 하기로 했다. 프로젝트는 여전히 난항이었고, 매일 아침 집에서 고객사와 통화를 하

고, 팀원들에게 가이드를 주고, 보고서를 썼다. 푹 쉬는 것도 아니었지만, 팀원들에게도

미안한 일이었다. 12월 23일. 특히나 난항이던 프로젝트 보고서의 최종본을 보냈다. 오전

부터 수정의 수정을 거쳐 다섯 번째로 보낸 버전이었다. 담당자도 그만하면 됐다 싶었는 지 오케이의 답장이 왔다. 저녁 7시. 그제서야 난 이미 집에 도착해 기다리고 있는 친구 들과 조촐한 파티를 시작했다.

‘이번 생의 나에게도 행복한 연말 연시라는 게 있을까?’

“해피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와인잔을 부딪치지만 머릿속에는 억울함만 가득했다. 일에 치이고, 마감에 치이고, 바닥이 드러난 체력에 좌절하고, 안부인사를 놓친 지인들에게 뒤

사무실에서 드는 생각


늦은 미안함과 아쉬움을 느끼며, 간신히 연락이 닿아 급히 모인 몇몇 친구들과 위로의 술

잔을 부딪치는 게 전부인 나의 연말들. 이 모습이 내년에는 조금 달라질 수 있을까? 연말 의 정점으로 여겨지는 12월 25일이 지나고, 26, 27, 28…… 점점 끝으로 다가갈수록 알 수 없는 긴장감과 불안함은 진하게 올라오고, 그런 척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 ‘한 해를 돌

아보며’류의 경건함도 가져본다. 하지만 아무리 이렇게 마음의 각을 잡아도 스미듯 밀려오 는 헛헛함을 숨길 수가 없다. 나의 모든 연말은 그러했다.

2017년 12월. 백수로써 맞이하는 연말이다. 올해는 출간한 책도 없고, 아르바이트로 쓰고 있는 보고서도 없다.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연말을 맞이하고 있다. 그러므로 당연

히 마감도 없다. 홀가분하고 가볍다. 대신 확실히 연말에 집중하고 있다. 헛헛하게 손가락

사이로 흘려 보내는 게 아니다. 강가에 앉아 뚫어져라 강물을 바라보듯 흘러가는 시간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다. 이렇게 연말이 다가온다. 이렇게 겨울이 깊어진다.

보고서 마감으로 애를 쓰는 후배에게 초코우유 기프티콘을 보내주고, 프리랜서 일과 전세 금 마련으로 동분서주하는 선배에게 근처 까페의 라떼 기프티콘을 보내줬다. 대신 나는 생

각해 둔 돈까스 집에 가지 못하고 라면을 먹었다. 그렇게 생각나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

고, 내 것을 아껴 작은 응원을 보냈다. 매년 일수를 찍듯 회사 매출을 채우느라 동분서주 했던 연말이었다. 올해는 주머니는 가볍고 혼자라 좀 쓸쓸하지만, 주변을 돌아보고 시간 의 끝을 마주할 여유가 있다. 억지로 ‘올 한해 뿌듯한 일’을 생각해내지 않아도 헛헛한 마

음이 들지 않는다. 대신에 슬펐고, 힘들었고, 불안했던, 그렇지만 그 안에서 행복을 꿈꾸 고, 생(生)의 에너지를 찾아 다녔던 올 한 해를 담담히 바라본다. 내 인생의 쉼표 같았던 올 한 해를 그냥 그렇게 흘려 보낸다.

“당신을 사랑하는지 생각해보기 위해 길을 멈추진 않겠지만,

내 인생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가끔 멈추어야 할 것 같아요.” - 최갑수「우리는 사랑아니면 여행이겠지」

최갑수가 말했듯이 내 인생을 사랑하기 위해서는 가끔 멈추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멈춰 야 내 인생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게 아쉽지만, 바쁜 삶에 함몰되었다면 한번은 쉼표를 찍

을 필요가 있다. 사실 그러라고 한 해가 끝나고 시작되는 것인데, 성실하고 착한 우리는

회사 종무식과 시무식에 이 쉼표의 과정을 양보하고 만다. 설사 당신이 백수가 아니더라 도 회사의 종무식에 연말을 헌납하지 않으시기를 바란다. 잠깐이라도 당신을 보듬어주고

주변에게 수고의 한마디를 전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러면 당신의 연말이 조금은 더 따뜻해 질지도 모를테니.

*글쓴이_권근혜 (lynnox78@gmail.com)


현재 백수 / 과거 마케팅리서처 / 쿠바다이어리 저자

사무실에서 드는 생각


만 든 다 오

시시콜콜하고 사소한 가내수공업 고군분투기

#8. 침묵의 석고방향제 제주도로 여행을 다녀온 이후 1주일 간 엄마와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 이례적인 일이다. 조금은 불안하다. 일촉 즉발, 폭풍의 눈. 전화벨은 울리지 않지만, 휴대폰 너머에서 엄마가 내가 뭐하는지 추측하고 감시하고 있는 것만 같 다. 엄마는 어떻게든 내가 실수하는 타이밍을 기다리고 있다. 내가 실수로 선을 넘는 말을 해버리면 이때다 하고 신 나게 총알 같은 말들을 탕탕탕 쏘면서 공격해 올 것이다. 피곤하다. 석고를 젓는 손이 빨라진다. 가루가 뭉쳐진 거 없이 다 섞였나? 올리브 리퀴드와 프래그런스 오일을 조금씩 넣는다. 힘들다. 한숨이 나왔다. 테이블 위에 조금 흘 린 먼지가 스르륵 날아가 집안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19살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엄마는 하루에 최소 30분은 나와 통화를 하길 원했다. 당신의 어머니와 형제들, 아 빠와 동생, 그리고 길가다 만난 이상한 사람들의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엄마의 인생을 스쳐갔고 스쳐가고 있는 모 든 흔적들에 대해 나는 들어야만 했다. 가끔 조금이라도 귀찮아하는 티를 내면 엄마는 쓸쓸해했고, 우울해했다. 고 작 이야기 들어주는 것뿐인데 내가 너무 심했나 하며, 그때마다 내가 먼저 다가가서 엄마를 토닥였다. 엄마는 나를


어려운 딸이라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제 멋대로인 딸이라고 말했지만, 난 아직 제대로 제멋대로 군적은 단 한 번도 없으며, 항상 엄마 가 어려웠다. 건들면 터질까, 불면 날아갈까, 위 태로웠다. 그런 내가 지금 엄마를 내버려두고 있다. 그건 다 협재 바다 앞에서의 통화 때문이 다. 내 생애 일곱 번째 제주 여행이었다. 세대마다 짊어지고 있는 십자가가 있다지만, 언제까지 지 고만 있을 수는 없는 법. 내가 지고 있는 십자가 를 어떻게 잘 내려놓을 것인지 제대로 마주하고 고민하기 위해 떠난 여행이었다. 난생 처음 혼자 짐을 지고 떠나왔 고, 여행 내내 이런저런 사건들을 마주하며 나는 조금씩 생각을 정리할 수 있었다. 엄마에게 전화가 온 그 날은 내 가 혼자 있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뭐하니?” “바다 보이는 카페에 앉아서 언니 기다려.” 엄마는 내가 언니와 교제하고 있다는 사실만 모른다. 이미 눈치 채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아직 말하지 않았다. 엄 마가 충격 받을까봐 걱정되는 마음에서 커밍아웃을 하지 않는 건 절대 아니다. 크면 괜찮아져. 어릴 때 학교 선배와 사귀던 것을 들켰던 그때 뺨을 맞으면서 들었던 소리가 아직 잊혀지지 않는다. 난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데, 엄마의 다 컸다는 기준은 우습게도 내집 마련이다. 집을 사기 전까지는, 하며 나는 꾸역꾸역 나의 행복을 알리는 것 을 삼켰다. “너 너무 언니랑만 좋은 추억 만드는 거 아냐? 그러다 언니가 먼저 시집가면 어쩌려고 그래. 맨날 둘이 붙어 다니 니까 남자가 안 꼬이는 거야. 여자는 애 낳는 게 행복이야. 근처에 말거는 괜찮은 남자는 없니?” 파도처럼 훅하고 엄마의 공격이 치고 들어온다. 터무니없는 말들, 하나하나 반박하기도 지친다. 오랫동안 싸워왔 던 문제다. 그래, 네가 알아서 해, 라며 얼마 전 겨우 합의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나만의 생각이었던 것 같다. 수없이 대화를 나눴지만 엄마는 벽처럼 그대로였다. 무엇보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더 잘살기 위해 나한테 집중하러 온 여행 도중이다. 한 템포 쉬기 위한 여행이라 는 것은 엄마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왜 저런 말을 하는 걸까. 다시 한 번 그런 식의 생각은 곤란하다 고 반박을 해야 하나, 이 좋은 여행에서, 이 좋은 바다 앞에서. 수많은 말이 떠올랐지만 입 밖으로 내뱉는 게 싫었 다. 말이 실체화 되어 남은 여행 내내 나를 괴롭힐 것만 같았다. “왜 대답이 없어? 내가 이런 말해서 너 기분 확 잡쳤지? 그치?”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주문한 음료를 받으러 가야한다는 핑계로 전화를 끊었다. 지금 하는 대화는 대화가 아니다. 아프다고 말했는데 계속 얻어맞는 형국이다. 아프다는 것을 더 표현해야 하나? 소리를 질러서라도, 악을 써서라도. 하지만 지금까지 그렇게 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했지만 엄마는 일부러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사람처럼 나를 후벼 팠고, 내가 말하는 것은 벽처럼 귀담아 듣지 않았다. 내가 더 발악할수록 엄마는 더 강 압적이지 않은 것에 감사하라며, 자신 자식 교육 방법이 한없는 자비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로 인해 나는 자유라는 혜택을 받고 있다고 여길 뿐이다. 코끝을 치는 민트향이 가득한 석고반죽을 실리콘 틀에 붓는다. 반죽이 굳기 전에 재빨리 허브를 얹는다. 손가락 두 마디만한 로즈마리가 새하얀 석고 반죽에 포박 당한다. 묻은 반죽은 떨어지지 않고 재빨리 굳어간다. 강한 민트 향 때문에 살짝 머리가 어지럽다. 하나를 끝내놓고 다시 다른 하나를 작업한다. 대량으로 만들었다가는 붓다가 굳 기 십상이기 때문에 하나하나 만들어서 굳히는 게 더 편하다.

석고가루 100ml과 물 35ml를 섞는다. 요즘은 건조해서 40ml까지 넣어봤다. 반죽이 묽어지면 굳히는 데 시간이 좀 더 걸리겠지만, 그래도 못쓰게 되는 것보단 낫다. 반죽을 섞는 데는 나무젓가락이 최고다. 숟가락으로 해봤는데 주변에 더 튀기만 했다. 열심히 저은 뒤 올리브 리퀴드와 프래그런스 오일을 각각 5ml 씩 넣는다. 올리브 리퀴드를 넣으면 석고가 좀 더 부드럽게 잘 저어진다. 전자저울로 계량해가며 넣는데 자꾸 손이 떨려서 조금씩 더 들어간다. 손바닥이 저릿저릿 하다. 강한 민트향에 코끝도 찡하다.

석고반죽을 틀에 붓는다. 그리고 틀을 통통 치며 공기를 뺀다. 하얀 표면 위로 공기방울이 톡톡 올라온다. 석고 반 죽 사이에 공기가 들어가면 나중에 굳어서 모양이 나지 않는다. 반죽은 틀의 절반 정도만 채워도 충분하다. 틀을 더 통통 친다. 석고반죽이 조금 튀어오른다. 사방에 튄 반죽은 금세 굳었다. 멍때릴 때가 아니다. 제주 바닷가에서 주 워 온 조개껍데기를 석고 위에 올려놓는다. 그리고 조금 누른다. 조개껍데기가 점점 석고 안으로 잠식되어 간다. 섬 뜩하다. 녀석들은 다시는 본래의 모습으로 바다를 마주할 일이 없을 것이다. 숨이 막힌다. 조개껍데기가 된 것만 같 다.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랑했던, 나를 존재하게 해준 태초의 세계도 나를 계속 숨 막히게 한다.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 엄마도 나를 사랑한다. 하지만 엄마는 나를 모른다. 제대로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이미 알 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른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새빨간 핏덩이였을 때, 나보다 더 나를 잘 알았을 때를 기억하고 있는 엄마. 자신처럼 봉긋한 가슴을 하고, 매달 선혈을 내보내는 나를 분신처럼 느꼈을 엄마. 엄마의 손 밖에서 내가 마주한 세계가, 그녀가 직접 마주한 세계보다 더 나아져서 다소 질투를 느끼는 엄마. 더 이상 내 세계 의 신(神)이 될 수 없어서 쓸쓸함을 느끼는 엄마. 나는 엄마를 사랑한다. 더없이 사랑한다. 지금처럼 사랑받지 못할지라도 사랑한다. 엄마의 세계는 점점 굳어간다. 나는 발버둥 친다. 자유롭고 싶다. 행복해지고 싶다. 지금보다 더 나답게 살고 싶다. 석고가 굳어간다. 손을 대어보 니 따뜻하다. 그 온기가 너무도 살아있는 것만 같아서 섬뜩하다. 점점 차가워진다. 죽어가는 것만 같다. 석고를 틀에서 떼어낸다. 거친 가장자리는 사포로 정리하면 되지만, 오늘은 날 서 있는 채로 놔두고 싶다. 마끈을 잘라다가 끈을 만든다. 어릴 적 엄마가 머리를 땋아주었던 것처럼, 나는 마끈을 땋는다. 세가닥, 네가닥. 엄마는 무 슨 생각으로 내 머리를 그렇게 땋아줬을까. 머리를 자르고 싶고, 풀고 싶었지만, 항상 머리는 양갈래로 반머리로 엄 마 취향 껏 묶였던 그때. 저 집 딸 예쁘게 하고 다니네, 하며 내 외모는 엄마를 판단하는 잣대가 되었던 그때. 향기는 석고 안에 갇혀 매달려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나는 죽기 전에 엄마의 세계에 균열을 만들어야 한다. 해가 진다. 조금은 울고 싶어진다.

*글쓴이_오진선(@ss_jinsun) 가내수공업 중독자 / 나노상공인 / 애견인 / 페미니스트 / 레즈비언 가정주부/홍대살다 부산거주 중/ 퀴어여성커뮤니티<언니네달방>운영자 /


체니사이드

글. 장수양(@condensed_bold)


2. 농담 上

영화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기묘할 정도로 태연하다. 여기 온 목적과 달리 스크린 속을 조금도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혼자 온 몇몇 사람은, 영원히 그 자리에서 대기하고 있는 듯하다. 아무도 요구한 적 없는 옅은 긴장감을 줄곧 유지하다가, 영화가 끝나면 전과 다른 사람이 되어서 쏟아져 나온다. 나는 한국에 사는 체니라고 한다. 그밖에는 할말이 없다. 말할 만한 이력도, 특별한 경력도 아직 없다. 나는 캡모자를 푹 눌러쓰고 아직 따뜻해지지 않은 뺨과 이마를 문지르며 무인발매기 앞 소파에 앉아 있다. 서울에서 동네라는 말은 자주 무색해진다. 여기는 집에서 가까운 극장인데, 편한 옷을 입고 온 사람들이 별로 없다. 모두가 조금씩은 각별한 오늘을 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움직이기가 싫다. 영화가 정말 보고 싶었던 건 아니지만 볼 영화가 없으니 서운하다. 할 일이 없어서 그렇다. 나는 뭔가를 기다리고 있는데 날 기다리는 일은 없다. 함께 살던 유지가 고향에 내려간 후로 줄곧 이렇다. 친밀한 사람의 부재는 그의 극단적인 한 면을 보는 것과 비슷하다. 부재의 장소는 함께하며 쌓인 무언가로 가득해지는 것이니까. 어떤 사람은, 몹시 소중했는데도 불구하고 그가 떠났을 때 조금도 힘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별을 받아들이게 되기도 한다. 바빠서일 수도 있고 함께인 동안 언제나 이별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일수도 있다. 그의 이로운 영향력으로 내가 충분히 단단해져, 멀리 있어도 서로의 운이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다고 믿게 되는 경우도 드물지만 있다. 유지는 돌아오기로 되어 있지만 유지가 오는 날까지 내가 그대로 있을지는 모르겠다. 나는 변하고 있다. 처음엔 유지가 오기 전에 머리카락을 아주 짧게 잘라 그를 놀라게 해줄 셈이었다. 지금은 그런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내 의지 밖의 변화에 휩쓸리고 있다. 그게 좋은지 나쁜지는 알 수 없다. 오롯이 나 혼자서, 내 몸을 하나의 장소로 삼아 쉬었다는 기분이 든 것은 얼마 전이다. 나는 모르는 게 너무 많지만 이것만은 알겠다. 내가 나에게 처음이 되는 일은 기쁘면서도 슬프다. 지금까지 나는 나를 어떻게 생각했던 건지, 나를 지탱하는 것이 무엇인지 돌이켜보고 있다. 정신이 없었다. 나는 지금 이십 대인데, 유지의 말에 따르자면―이곳에선 열아홉 살까지는 부엌에도 못 들어가게 하면서 스무 살이 되자마자 도마위에 올라가라고 한다. 아르바이트나 학업이 그다지 의미 있지도 않은데도 시간은 너무 가빴다. 나는 요새 나 자신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되고 싶어질 만한 표본을 세상에서 잘 찾아낼 수 없다. 유지가 없는 집에 오래 있고 싶지 않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도서관, 공원, 카페, 아이스크림할인점, 으레 사람이 지나는 도로, 빈 벤치, 흥미있는 것들이 놓인 쇼윈도 앞, 목적이 없는 모든 복도들. 머물 만한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 않고 있었다. 책 속이나 사람들 틈에서 뭔가 찾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내가 가끔 목격하는 이상야릇한 것들도 잘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에 대해서만 골몰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내가 내 그림자에 자주 눕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눈부시더라도 내가 누운 그 자리에는 그늘이 만들어지니까 말이다. 그러자 어떤 목소리가 말했다. ―신세지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거지.


그 소리는 그림자 안의 그늘에서 들려왔다. 속편하게 쉬고 있는 듯 여유롭고 심드렁한 목소리였다. 나는 몇 번인가 그 말에 침묵으로 일관했다. 하지만 할 일 없는 걸 아는 듯 소리는 사라지지 않았다. 한 번은 그 목소리가 지치고 외로운 목소리로 이렇게 물어 보았다. ―왜 대답을 안해? 나는 마음이 흔들려서 일부러 바닥만 쳐다보았다. 지금처럼 사람들이 대기하는 어느 소파였다. 바닥에 불특정 다수의 그림자들이 희미하게 겹치며 지나가자 목소리는 더 또렷해졌다. ―말을 할 줄 아는 것에 반응하면 귀찮아 지니까. 저도 모르게 내가 말했다. ―오만한 말이다. ―나도 알아. ―너도 말을 하는 주제에. 그리고, ‘말을 할 줄 안다’는 또 뭐야? 나는 할 말이 없어서 잠자코 있었다. ―귀찮아 진다니. 목소리는 투덜거리는 듯 했지만, 일부러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그는 점점 더 과감해졌다. 다양한 화제로 말을 걸었다. 이런 이를 대할 때는 속으로 성격이나 인상을 특정하지 않는 게 좋다. 웃기는 놈이라든가, 수다스럽다든가, 이런 생각을 할수록 그를 감지하는 센서가 민감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는 내 그림자를 입고 내가 갈 장소에 미리 가 있거나, 내가 물컵을 집어들기 전에 먼저 물컵을 집어들곤 하더니, 결국 뚜렷하지 않은 어둠을 다 벗어버리고 내 앞에서 키득키득거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여전히 실루엣 같았다. 나는 지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해서 경계를 조금 늦췄다. 그는 나보다 키가 컸다. 말라서 가벼워 보였다. 초면에도 이상하게 친밀했던 다른 것들과 달리 헉 소리가 나올 만큼 낯설었다. 이유는, 그가 내게 원래부터 친밀한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수다스러웠던 지난 날과 딴판으로 가만히 나를 지켜보다가, 갓 태어난 것처럼 이렇게 말했다. ―나는 ‘농담’이야. 그는 유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농담은 내 옆의 소파에 비스듬히 앉아 팝콘 기계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와 함께 있는다고 해서 유지와 함께 있다는 착각은 들지 않았다. 느낌 자체가 전혀 달랐다. 나는 모자의 캡을 만지작거렸다. 앞서 볼까 망설였던 영화가 벌써 끝났다. 1관에서 사람들이 쏟아져 엘리베이터와 화장실로 나뉘어 들어갔다. ―계속 볼 거야? 농담이 물었다. ―뭘? ―영화. ―오늘은 안 봐. ―그래?


농담은 영화를 본다는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스크린 안과 밖의 사람을 저항 없이 같은 무게로 받아들이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농담은 거울이나 스크린 안에 있는 사람을 단지 조금 더 무심한 성격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면 계속 할 거야? 다시 농담이 물었다. ―뭘? ―이거.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잖아. 내가 꿋꿋하게 말하자 농담은 나를 보고 웃었다.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농담은 유지와 닮은 눈을 마구 비볐다. 눈이라는 기관을 괴상하게 여기는 듯했다. 고양이나 파리가 동시에 연상되었다. ―지금 어디에 가는 중이야? ―아니. ―그럴 리가. 농담은 이렇게 말하곤 다시 팝콘 기계를 쳐다봤다. 나는 직전의 대화를 잠깐 곱씹었다. 이렇다 할


것 없이 비뚤게 쓰여진 글자 같아서 더 이어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농담과 함께 있는 것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유지를 닮아서가 아니라 그저 내게 달리 그것을 불쾌해하거나 이상하게 여길 만한 기운이 없기 때문이었다. 마음이 평온했다. ―너는 과묵한데, 어쩌면 그렇게 시끄러운지 모르겠어. ―뭐가 시끄러운데? ―난 지금 네 옆에만 있으니까 이런저런 기준을 세울 수밖에 없거든. 기준은 안팎에 있어선 안 되잖아?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모르겠어. 농담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는 자신이 뭔가를 아주 잘 알고 있다는 듯 행동하지 않았다. 나나 농담이나 지금 이 대화가 어디에 물꼬를 트고 흐르는지 전혀 모르는 채였다. 기억해보면 나는 살면서 시끄럽다는 말을 그다지 들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농담은 다시 눈을 비비더니 팝콘 기계에서 시선을 거두었다. ―피로해. 그는 진심이었다. 나는 가만히 농담을 보았다. 사람들은 농담을 보기도 하고 보지 못하기도 했다. 길을 지나다닐 때면 비켜주기도 하고 치고 가기도 했다. 어느 쪽이든 전혀 집중하지 않았다. 어쩐지 나는 농담이 피로해하는 것에 책임을 느꼈다. ―나랑 다니면서 뭘 할 생각이야?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아주 많이 해야지. ―그게 뭔데? ―지금 하고 있잖아. ―유지처럼 되는 게 네가 하고 싶은 거야? ―그런 건 안 중요해. ―너는 농담弄談일까, 아니면 농담濃淡일까? ―그런 상관없는 일에는, 아무것도 소모할 생각이 없어. 나는 웃어버리고 말았다. 농담은 내 캡모자를 가져가 썼다. 나는 눌린 머리카락을 쓸며 다시 한숨을 쉬었다. 평범한 친구였다면 한 마디 했을 것이다. ―생각난 김에 유지에 대해서 얘기할까. 농담이 말했다. 달갑지 않았지만 그가 유지에 대해 뭐라고 할지 궁금했다. 그는 왜 유지의 모양새를 하고 있는지, 내가 보고 싶어해서 그렇다기엔 농담의 성격이 제멋대로였다. 나는 될 대로 되라 싶었지만 농담의 다음 말을 듣고도 이 태도로 일관할 수는 없었다. ―유지는 돌아오지 않을 거야. 농담은 차분하게 말했다. 나는 바닥을 보고 있었다. 사람들이 빠르게 극장 안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나는 소파에서 일어났다.


월간이리에서는 새로운 필진을 찾고 있습니다. 차분 하게 차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하듯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하실 수 있도록 돕겠습니다. 장르를 가리지 않으며 이것이 될까 싶은 연재들도 가능한 연재 할 수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습니다. 연재와 관련해서 문의 사항이 있으신 분들은 언제든 exxx2x@gmail.com 으로 문의 주시면 정말 정말 친절 응대 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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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영화 <루비 스파크>를 봤다. <리틀 미스 선샤인> 감독의 영화라고 해서 기대감을 품고 ( 리틀미스션샤인인지 미스리틀선샤인인지 맨날 헷갈리는데, 검색해보니 영어 원제는 little miss sunshine, 국내 제목은 미스 리틀 선샤인이었다. 헷갈릴 만하다.) 친구를 불러들여 집에서 나란히 앉아 밤막걸리를 홀짝이며 봤다. 영화의 ‘메시지’ 혹은 ‘내포된 의미’에 대해 언어영역 문제 풀듯 단정적으로 말하는 걸 싫어하는 편이지만 (영화 또한 기호식품이고, 각자 받아들이기 나름이라고 생각합니다.) 나한테 와 닿았던 건 결국 사랑한다면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바라보고 받아들여주자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선 홍 상수 감독의 <당신 자신과 당신의 것> (마찬가지로 검색을 다시 해야 했던 또 하나의 헷갈리는 제 목)과 비슷했다고도 말할 수 있겠다. 근데 사실은 누군가와 사랑하는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다. 있는 그대로. 우리는 (적 어도 나는) 종종 실패하고, 그래서 결국은 아프다. “알아가고 싶은” 누군가를 만나게 되고, 둘만의 시간을 쌓아가며 알아가게 되지만, 언젠가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면모들을 마주하게 되 고, 조용한 분투를 하게 된다. 그리고 누구나 이 분투를 견뎌내는 건 아니다. 지금은 어느덧 박사 3년차라고 말하는 인간이 되어 있지만, 석사 신입생 시절, 첫 학기에 나는 내가 진짜로 뭘 연구하고 싶은지 몰라하는 채로 첫 학기를 보냈다. 지원서에 썼던 주제는 더이상 와 닿지 않았다. 그러다 이거야말로 나한테 중요한 거야, 라고 느끼게 된 이론이 있었다. William Swann 의 Self Verification Theory.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자기확인이론 정도가 되겠다. 요지는 이러 하다.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이 있고, 더도 덜도 말고 그 모습 그대로 자신을 바라봐 주는 사람들과 교류하기를 좋아한다는 거다. 이건 그전까지 클래식으로 여겨졌던, Self Enhancement Theory에서 사람은 자신을 실제보 다도 더 긍정적으로 봐주는 걸 좋아한다던 것과 약간은 상충되기도 하는 내용이었다. 결국 이 후 로 여러 편의 논문을 통해 연구자들은 어느 쪽이 더 실제에 가까운지 비교하려 노력했고, 연구 결 과들은 아직까지도 “it depends” (상황에 따라 다르다) 정도의 상태인 것 같다. 그치만 그 중 한 논문에 따르면 적어도 가장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적인 면모도 부정적인 면모도) 알고 받아들여주는 편이 나에 대해 필요 이상의 긍정적 환상을 갖고 있는 편보 다 편하다. 사람은 스스로를 좋게 생각하고 싶어지는 경향이 분명 있고, 다른 사람이 나를 좋게 생각해주는 건 물론 기쁜 일이다. 그치만 때론 내가 억지로 만들려고 하는 내 모습, 다른 사람이 멋대로 만들어버 린 내 모습 안에 갇혀버리는 것만큼 숨막히는 게 없다. 보다 더 지속 가능한 건 아무래도, ‘있는 그 대로’가 아닐까. 소중한 관계일수록 더더욱. Swann (1983). Self-verification: Bringing social reality into harmony with the self. 글. 민하 : minha@berkeley.edu


의미없는 이야기 글. 그림. 철민


I MB U 4화. 명박산성

글. exxx

MB로 향하는 고속도로라고 불리던 김관진 전 장관이 구속되었을 때, 코너 종영 이 코앞인 줄 알고 신나했던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인생은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더군요. 시스템에 대한 선명한 추억 하나가 더해진 날이었습니다. 가만 생각 해보니 그런 날이 하루 더 있었습니다. 때는 2008년 6월 10일 쇠고기 수입 관련 시위가 한창인 날이었습니다. 갑자기 광화문에 콘테이너가 길게 쌓여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 소식을 듣자마자 저는 참지 못하고 광화문으로 달려갔습니다. 행정부의 행동에 분노를 표하는 투사의 마음은 아니었고 ‘이 풍경을 내가 눈으로 꼭 봐둬야 겠다.’ 는 생 각이 더 컸습니다. 가로길이 약 100미터 길이의 광화문 광장을 틀어막고 있던 12개의 컨테이너 박 스. 2개가 1쌍으로 이루어진 6개의 짝. 그것을 단순히 컨테이너 박스라고 해야 할까요? 아니면 절망의 벽이자 범람하는 에너지라고 해야할까요? 정의할 수는 없었지만 저는 어쨌든 생전 처음보는 광경에 감탄하며 끝에서 끝을 다녀보고 멀 리서도 보고 가까이서도 보고 또 쓰다듬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전시 같은 것을 즐기는 편이 아닙니다. 그것은 게을러서 이기도 하고 막상 가도 이렇다 할 감동을 느끼지 못해서 이기도 한데, 그런 제가 단숨에 저것 만큼은 봐야겠다는 강렬한 매력을 느낀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강렬함은 백남준의 ‘TV보는 부처’ 이후에 처음이었습니다. 버스를 타고 내릴 때부터 입이 타고 매력적인 냄새에 코 끝이 간질거리던 느낌. 역시 명박산성은 어마어마한 작품이었습니다. 괜히 산성이라고 붙인게 아닐 정도로 산성과 같이 거대하고 웅장했습니다. 단순 히 콘테이너가 쌓여있는 것이야, 몇 수십번을 봐서 그렇게 감동적인 풍경은 아 니었지만 광활하게 탁 트인 광화문 광장만을 봐오던 저에게 꽉막힌 풍경은 색다 른 압박과 스트레스를 주었습니다. 광장을 너머 경복궁과 인왕산 그리고 북악산 까지 두루 즐기던 그 따뜻한 기억이 차갑고 뻣뻣한 컨테이너 벽에 부딪혀 추락 하는 심상이라니... 그것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적임 이었습니다. ‘아 이것이 가능한 일이었구나...’ 왜 이런 것이 있을 수 없거나, 불가능 하다고 느꼈을까요? 그냥 컨테이너 옮기는 사람을 고용해서 12개를 들어다가 가지런히 쌓아서 일상적인 공간을 짙이긴 다 는게 왜 불가능 한 일이라고 느꼈을가요? 모르겠습니다. 상상력이 그렇게 빈약 했던 것인지 아니면 굳이 그런 상상이 필요없었던 것인지 까지는 세세하게 따지 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일상을 가로막고 파괴하면서 밀 어붙이는 것이 어려운일이 아니라는 것 만큼은 확실하게 깨달았습니다. 광장을 파괴적으로 막는다는게 몇 통의 전화로 이루어질 만한 쉬운 일이이라는 것을...


다른 분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정부란 권력이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감각이 뼛속 깊숙히 파고들었습니다. 그 뒤로 의연하게 서있던 이순신 동상이 주는 기괴함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울돌목에서 파쇄된 배와함께 물속으로 쳐박히는 왜적들이 이런 기분이었을까요? 아니 적어도 왜적 들은 침탈이라도 하러 왔다가 손해를 본 것이니 쓰러질 때 쓰러져도 덜 억울하 지 싶었습니다. 그날 그 컨테이너 앞 사람들의 기분은어땠을까요. 저는 무척 처 참했습니다. 저는 그랬습니다. 예술 작품으로써의 명박 산성은 만들기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컨테이너 몇개를 쌓아서 용접 조금 하고 사람이 못 올라오게 미끄러운 기름을 부으면 됩니다. 그 래서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높게 평가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당장이라도 재 현하려는 기획만 한다면 할 수 있겠지요. 지금도 마음만 먹으면 전화 몇 통으로 재현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그날 그 결과물이 보여준 이미지와 충격의 강도는 보 통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마어마한 예술품이 줄 수 있는 강렬함이 저에게 남았 습니다. 보통의 예술작품이 주는 느낌은 비교도 안될 정도의 강렬함이었습니다. 예술가 MB. 제작자는 어청수 경찰청장이었지만 그 완성도와 디테일을 꿈꾸었 던 것은 그 절벽 뒤의 MB였을 것입니다.쉽게 함락되지 않게 기름을 바르고 용접 을 한다는 꼼꼼함은 여느 기술자의 셈으로 나오는 기술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예술가. 아티스트의 꼼꼼함이 반영된 것이지요. 꼼꼼한 누군가가 실눈을 뜨고 봐야 나올 수 있는 디테일입니다. 그 정도는 되니 미술품 너머 전경들이 건 너편 인파를 걱정하지 않고 편안한 얼굴로 앉아 있던 것이겠지요. 지금은 추억이 되어 그 안에서 대기하던 전경들도 제대해 같은 방향에서 광장을 보고 있겠지만 그때 우리는 서로를 노려본 일도 있습니다. 어찌되었든 명박 산 성의 앞과 뒤에서 인연을 맺은 이들이 결국 어느 겨울에 촛불 앞에 앉아있었던 것을 또 생각해 보면 인간사 재미있지요. 웃기다 못해 서글픕니다. 이제 오늘의 이야기, 아티스트 MB 에 대한 이야기는 끝입니다. 막연하고 의뭉 스러운 힘으로 작용하던 국가의 이미지를 또렷하게 만들어낸 마술사. MB. 그것 은 확실히 무너뜨려야 하는 벽이었고 당장은 아니어도 반드시 뚫어야 하는 댐이 었습니다. 그날 저는 선명하게 알아 버렸습니다. 굳이 알고 싶지 않았는데 말입 니다. 그리고 저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를 갈정도로 실감했으리라 생각합니 다. ‘저것은 무너뜨려야 하는 것이다.’ 이런 감각을 전해준 아티스트 MB 를 저 는 오늘도 떠올립니다.

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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